들곡식

가을 들녘이 누렇다. 오곡백과가 익었고 또 익어간다. 풍요를 품은 대자연의 창고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땀 흘린 한 해 농사의 결실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흐뭇하다. 수확의 계절이다. 그런데 농심을 피멍들게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수확을 도둑맞기 때문이다. 집곡식 도둑은 있어도 들곡식 도둑은 없었다. 못먹고 못살던 시절에도 그랬다. 예컨대 벼이삭을 베어 탈곡한 벼를 멍석에 깔아 논 가운데서 말리는 것은 아직 들곡식이다. 다 말린 벼를 가마니에 담아 광에 옮겨두면 비로소 집곡식이 된다. 들에서 말리는 이런 들곡식을 도둑맞는 일은 예전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벼를 콤바인으로 베어 자동 탈곡된 벼가 자루에 담기기 때문에 기계적인 화기로 건조시키지만, 한편 들곡식으로 말렸다간 도둑맞기 십상이어서 햇볕에 말리지 못한다. 한데, 들곡식 도둑도 아주 나쁜 게 있다. 고추 농사에 병충해가 심해 김장고추값이 폭등하던 해엔 고추 도둑이 심했다. 그런데 밭에서 붉은 고추만 따가는 게 아니다. 아예 고추 줄기를 뿌리 채 뽑아간다. 타이탄 트럭을 대놓고 뽑아낸 고추 줄기를 무더기로 싣고 도망치는 것이다. 요즘엔 인삼밭 도둑이 또 극성이다. 근래만 해도 이천 포천 등지에서 발생됐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특히 포천경찰서에 붙잡힌 인삼밭 도둑은 기업형이다. 한수 이북의 인삼밭에서 수십차례에 걸쳐 1억6천만원 상당의 인삼을 주로 6년생 이상 짜리로 뽑아 훔쳤다는 것이다. 인삼밭 도둑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정말 못된 인간들이다. 기업형의 이들은 일당이 모두 70대들이다. 들곡식 도둑의 금기를 모를 나이도 아닌 위인들이 그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은 용서받기가 어렵다. 인삼은 곡식은 아니지만 땀흘린 농작물인 점에서 들곡식과 같다 할 것이다. 들곡식에 손대는 몹쓸짓은 남의 농사를 송두리 째 망치는 것이어서 죄질이 나빠도 아주 극악하다. 그렇다고 밤낮을 도와 지켜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확기를 맞은 대자연의 창고에 검은 손을 대는 것은 천리를 어기는 것이어서 천벌을 면치못할 것이다. 들곡식이 무르익는 풍성한 이 가을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의 계절이다./ 임양은 주필

국가인권위원회

김대중 정권 때 출범해 노무현 정권 때도 순항했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으나마나 한 처지에 놓였다. 정부 부처들을 상대로 낸 각종 권고 등 결정 사항들이 제 목소리를 못내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권고 등이 모두 적법하다 할 순 없지만 무대응으로 일관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옳지 않다. 예컨대 인권위가 지난 6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과 ‘2008 공직윤리업무지침’에 대해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일부 조항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공직자 재산 등록시 출가한 여성은 제외토록 한 공직자윤리법 규정과, 여성 고위공직자 등에 대해서만 시부모의 재산을 등록하도록 한 공직윤리업무지침 내용이 양성평등 원칙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행안부는 지난달 29일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인권위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의거해 행안부 행태를 ‘권고 불수용’으로 간주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공표키로 했지만 인권위 대응은 아무런 제재 효력이 없다. 지난 5월엔 이주노동자 노조위원장 등에 대한 표적 조사 여부와 관련, 인권위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강제퇴거조치를 유예하라고 법무부측에 ‘긴급구제’를 권고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미 절차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국가공권력 집행을 중단할 수 없었다”며 인권위의 조사권을 외면했다. 이런 현상은 인권위와 이명박 정부가 ‘생리적’으로 맞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기관 속성상 진보적일 수밖에 없는 인권위의 조치들을 야당시절 강력하게 비판해 온 여권이 이념이나 지향점에서 차이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인권위는 이명박 정권 출범 때 대통령 직속기구로 개편될뻔 했다가 민주당이 필사적으로 반대하여 ‘독립기관’으로 살아 남았다. 문제는 인권위와 정부와의 불협화음이 계속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인권위가 제 역할을 못하면 존립할 필요가 없다. 인권위는 각종 사항을 신중히 결정하고, 정부도 인권위의 권고에 대한 가부·찬반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오만한 미국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의 영어사용 의무화 방침은 미국의 오만함을 드러낸 반인류적인 횡포다. 영어를 못하면 출전을 금지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반문화적이다. 스포츠 정신에도 위배된다. LPGA 대변인이 “모든 선수들은 언론 인터뷰와 프로암대회, 우승소감 발표시 우리의 중요한 고객인 팬과 언론, 후원자들과 영어로 소통해야 한다”며 “투어에 참가한 이듬해 말까지 협회가 요구하는 영어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선수들은 요구 수준을 달성할 때까지 투어 참가자격이 정지된다”고 한 말은 모욕적이다. 특히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LPGA 투어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한국 선수들을 모두 모아 놓고 이런 방침을 밝혀놓고는 “영어사용 의무화 방침이 한국 선수들을 겨냥한 게 아니다”라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LPGA가 이런 방침을 정한 데는 한국 선수들의 도약을 저지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은 자명하다. LPGA에는 26개국 121명의 외국 선수들이 등록돼 있는 가운데 한국 선수 45명이 투어를 거의 석권하기 때문이다. 미국여자 선수들이 우승하지 못한다고 영어가 서투른 외국 선수들의 출전을 막겠다니 실로 치졸하기 짝이 없다. 한국에서 태권도 국제경기가 열릴 경우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못한다고 참가를 금지시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미국프로골프( PGA)가 최경주 선수나 에두아르도 로메로(아르헨티나), 앙헬 카브레라(아르헨티나) 같은 유명 선수들을 영어가 서투르다고 하여 출전명단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LPGA의 방침은 철회돼야 한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 “이번 방침은 한국계 선수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사설을 통해 “LPGA의 영어사용 의무화는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선수를 차별하는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며 “차별적인 규정을 선수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자멸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영어실력을 쌓는 것은 선수 개개인의 문제다.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개인교사를 통한 영어수업과 언론인터뷰 훈련 등을 쌓을 수 있다. 미국 언론은 물론 골프계에서조차 비판하는 LPGA의 영어사용 의무화는 백지화돼야 한다. 모든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소방관들의 수기

복통을 호소하는 119전화에 황급히 달려간 젊은 소방관은 임산부 홀로 분만하는 아기를 받아내야 했다. ‘신비로운 출산의 경외심이 지금도 또렷하다’고 했다. 지원석씨(포천 소방서)의 수기다. 심미현씨(일산소방서)는 2001년 3월 서울 홍제동 주택 화재 당시 담장이 무너져 9명이 깔려 6명은 희생되고 3명이 산 소방관 중 1명이다. ‘지금도 그 주택화재 참사가 꿈에 나타나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곤한다’고 수기에 썼다. 하재철씨(성남 소방서)는 어느 화재 현장에서 겪은 생사의 갈림길을 이렇게 썼다. ‘열기가 더 심해지고 움직이기도 힘들어졌다. 두려움과 뜨거움, 그러나 난 할 수 있다며 탈출을 시도했다. 순간 희미하게 느껴지는 지원대원의 인기척…’ 경영현씨(분당소방서)는 구급대원으로 출동했다가 말벌떼에 쏘여 얼굴이 부어올라 죽을 고비를 넘겼던 체험을 수기로 썼다. 소방관들의 비화를 103편의 수기로 엮은 단행본이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 나오기는 가장 뒤에 나오는 소방관 직무의 긴박한 현장이 생생하다. 배정환씨(의왕소방서)는 ‘자신의 생명과 타인의 생명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소방관의 운명’이라면서 ‘타인의 생명에 더 비중을 두게되는 자신을 생각할 땐 가족들에게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 미안할 때가 많다’고 했다. 정말 아름다운 책이다. 처음에는 소방관들끼리 돌려보기 위해 수기를 공모했다는 것이 경기도소방재난본부측의 얘기다. 그런데 근래 소방관들의 희생이 잇따라 안전의 중요성을 일반에 일깨우기 위해 출판도시문화재단에 의해 책으로 펴내게 됐다는 것이다. 책은 어느 부부의 잔혹한 폭력 부부싸움을 떠밀리면서 말린 김유화씨(수원남부소방서), 관악산에서 조난당한 등산객을 구조하다 굴러 떨어진 김경수씨(안양소방서) 등 다양한 체험이 수기로 실렸다. 열악한 근무환경속에도 주민의 인명과 재산보호를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들의 눈물겨운 노고가 한없이 고맙다. 그래도 주민에게 불평 한마디 없이 ‘기다리라, 우리가 간다’며 상시 출동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는 소방관들이 미덥다. 우리의 안전 지킴이 소방관들에게 뜨거운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우리 모두가 보내자. / 임양은 주필

대통령 전용기

제임스 마샬 미국 대통령의 전용기 ‘에어포스 원’이 저널리스트로 위장해 잠입한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공중 납치된다.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그러나 마샬 대통령은 테러리스트와의 타협을 단호히 거부한다. 지도자다운 용기와 신념에 찬 고군분투가 돋보인다. 마침내 테러리스트 일당의 소탕에 성공하는데, 이에 내통한 배신자가 대통령 측근인 것으로 밝혀진다. 1997년 개봉된 미국 영화 ‘에어포스 원’의 내용이다. 마샬역으로 해리슨 포드가 열연했다. ‘날으는 백악관’ ‘에어포스 원’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 직전에 서울을 다녀간 부시 미국 대통령이 타고 왔었다. 보잉 VC-25(군용 보잉 747) 기종이다. 길이 70.6m에 높이 19.3m로 승무원 26명을 포함한 탑승 인원이 76명이다. 시속 1천15㎞까지 날수있다. 가격은 약 3억2천500만 달러다. 대공미사일 공격 방어, 적 레이더 교란, 공중급유 등이 가능하다. 청와대가 대통령 전용기 도입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이의 예산편성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잉사의 보잉 747이나 에어버스의 A380 기종이 검토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인원은 40명 밖에 안 되어 먼 나라 방문에는 민항기를 전세내야하기 때문에 새 전용기 도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현 전용기가 20년 이상 됐기 때문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부시가 탄 ‘에어포스 원’도 1990년 제작된 것이다. 18년이나 된다. 흥미로운 것은 여야의 입장 차이다. 대통령 전용기 도입은 노무현 정권에서도 추진된 적이 있다. 지난 2006년 1차로 300억원을 정부 예산안에 편성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불요불급한 항목이라며 전액 삭감해버렸다. 그런데 이제 와선 여권에서 전용기 도입이 필요하다고 하고, 야당이 된 민주당은 부정적인 입장으로 뒤바뀌었다. 청와대는 새 전용기를 도입해도 2012년쯤 돼야 하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쓸 수 있는 기간은 6개월 정도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때 추진한 전용기 도입이 실현됐어도 실제로 노 대통령이 쓸 수 있었던 기간 역시 약 6개월 정도밖에 안 된 것이었다. 전용기 도입론은 원칙이 실종된 편의적 논리다. 지지대의 판단은 이렇다. 민생이 말이 아니다. 민생경제는 도탄에 빠진 터에 대통령 전용기 도입은 사치다. 말을 꺼낼 시기가 아니다. 민중정서와 거리가 멀다. 청와대는 아직도 뭘 모르고 있다. / 임양은 주필

가요 PD

가요 녹화는 거의가 가수들의 중노동이다. 녹화엔 프로그램에 따라 여러명이 출연한다. 대가수 단독의 리사이틀이 아니고는 그렇다. 대개는 오전 중에 녹화 무대가 설치된다. 그러나 가수는 미리 녹화 스튜디오에 나가야 된다. 분장을 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분장에 이어 의상을 준비한다. 오후에 녹화가 시작되지만 바로 하는 게 아니다. 리허설을 거친다. 무대 세트에 어울리는 분위기 연출을 시연하는 것이다. 한 두명도 아닌 프로그램 출연의 전 가수에 리허설을 갖자면 시간이 걸리는 게 이만 저만이 아니다. 가수만도 아니다. 안무팀의 리허설도 있다. 리허설 도중에 연출자 의도에 마땅치 않으면 못된 말을 해대는 PD도 없지 않다. 모든 리허설이 끝나면 비로소 녹화에 들어간다. 프로그램이 50분짜리 같으면 녹화시간은 보통 두어시간쯤 걸린다. 그러니까 노래 한 두곡 부르는 것을 녹화하기 위해 으레 진종일 스튜디오에 머물러야 한다. 출연료가 많은 것도 아니다. 출연료라고는 쥐꼬리지만 텔레비전 방송 출연을 무시못한다. 대중에게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다. 밤무대 출연료와도 무관하지 않다. 앨범 판매엔 절대적이다. 가수며 기획사가 텔레비전 출연의 박대속에서도 중노동을 감내하는 이유다. 도박자금이 부족하다며 돈을 받았다. 새 앨범이 나왔다며 돈을 받았다. 빌려달라며 돈을 받았다. 누굴 MC를 맡게 해줬다며 돈을 받았다. 유명 가수 틈새에 끼어 출연케 해주었다며 돈을 받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가수가 소속된 연예기획사로부터 받은 돈이 그때마다 1천만원에서 3천만원까지다. 1~2년 새에 챙긴돈이 모두 2억2천만원이다. 검찰에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된 모 방송사 전 PD의 혐의 내용이다. 검찰은 또다른 방송사 PD도 비슷한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다. 연예 PD, 특히 가요 PD는 가요계의 황제다. 연예기획사의 흥망성쇄 여탈권을 쥔 것처럼 군림한다. 이번 검찰 수사가 처음도 아니다. 비리가 곪아터지면 이따금씩 드러나는 판이니, 여느때의 횡포가 얼마나 심할지 짐작된다. 궁금한 것은 이같은 비리가 연예 PD파트에 국한하느냐는 것이다. 책임은 방송사에 있다. 이런데도 방송사에선 시청자에 대한 사과 한 마디가 없다. / 임양은 주필

막말 해설

일부 지상파 방송사의 베이징올림픽 ‘막말 해설’과 올림픽 출전 약소국에 대한 ‘비하 발언 및 자막’이 제재의 심판대에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금주 중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열어 베이징 올림픽 중계과정에서 불거졌던 막말 해설과 일부 출전국에 대한 비하 자막 등에 대한 제재 여부와 수위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51조(방송언어) 제3항은 ‘방송에서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및 비속어, 은어, 유행어, 조어, 반말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MBC는 개막식 방송에서 입장하는 세계 여러 나라들을 적절하지 못한 비유와 잘못된 정보로 설명했다. 방송 진행자는 버진 아일랜드를 “구글 창업자가 결혼식을 한 곳”으로, 알제리는 “카뮈가 ‘이방인’을 쓴 나라”로 소개했다. 알제리는 프랑스 식민지였고 카뮈는 프랑스 사람이다. 해당 국가가 모욕을 느낄 만한 자막들도 있었다. 케이맨 제도를 “역외펀드를 설립하는 조세 회피지로 유명한 곳”이라고 자막을 달았고,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지대인 차드는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고 소개했다. 특정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나 흥미 수준에 불과한 이슈 등을 해당 국가의 대표적인 사실인 것처럼 자막으로 표시했다. SBS 심권호 해설위원은 그레코로만형 55㎏급 박은철과 60㎏급 정지현의 경기를 중계하면서 “이씨”, “바보야”, “야,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야, 밀어, 조금만 더 밀어야 해” 등 반말을 쓰고 괴성을 질렀다. 코치가 선수에게 지시하는 듯 고성과 반말을 일삼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런 해설은 ‘억양, 어조 및 비속어, 은어 등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규정에 위반된다. 박태환 선수가 수영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지나치게 흥분한 캐스터 해설자들이 고성을 질러 짜증을 불렀고,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 중심으로 방송 3사가 같은 장면을 틀고 또 틀어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빼앗았다. 그러나 방통심의위의 제재 심판을 받더라도 ‘행정지도’는 일종의 권고 성격을 띤다. 문제된 방송 내용을 ‘재미 있었다’고 여기는 일부 시청자들이 있는 게 또 문제거리다. /임병호 논설위원

‘진짜 탈북자’ 보호하라

2007년 12월 말 국내 거주 탈북자는 1만2천248명, 올 6월 말엔 1만4천명에 이른다. 1999년 148명을 기록해 처음으로 100명을 넘어선 후 2002년엔 1천명을, 2006년에는 2천명을 넘기는 등 매년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탈북자 수 급증은 이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 관리 부실로 이어져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남파 간첩으로 체포된 원정화도 2005년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탈북자 교육시설인 용인시 하나원에서 8주 동안 사회적응교육을 받았다. 하나원 동기 및 탈북자 출신 안보강사들의 명단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원정화는 생사를 걸고 북한 체제를 탈출한 탈북자로 자신의 신분을 ‘세탁’했다. 간첩활동에서 북한 말씨를 쓰더라도 의심 받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었다. 2001년 위장 자수했던 원정화에게는 이듬해 3월 정착금 2천200만원이 일시불로 지급되는 등 정착금·생계비 명목으로 모두 9천90만원이 지급됐다. 합법적인 신분과 수단을 활용해 14차례나 중국을 오가며 남한에서 수집한 정보를 북측에 직접 전달하거나 유·무선 통신으로 보고했다. 북한도 세 차례나 다녀왔다. 더구나 우리 군 장교들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군사기밀을 빼내 북에 넘겼다. 동거까지 한 장교는 간첩인 줄 알면서도 사실을 숨겨줬다. 군 부대를 돌면서 반공 강연까지 했다. 50여 차례에 걸친 안보 강연을 통해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CD를 국군 장병에게 틀어 줬다. 대한민국 군사 보안 현실이 이 지경인데 망하지 않은 게 기적이다. 원정화는 김대중 정권 이후 지난 10년 간 우리 공안 당국이 적발한 2명의 ‘직파간첩’ 중 1명이다. 원정화에 앞서 적발된 북한 간첩은 2006년 7월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잠입했다 붙잡힌 정경학이었다. 원정화 사건은 지난 10년 간의 소위 ‘남북 화해 무드’속에서 우리 사회가 ‘안보 불감증’에 중독돼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대다수의 ‘진짜 탈북자’들이다. 탈북자 속에 간첩이 있는 게 아니라 간첩이 탈북자로 위장한 것인데 앞으로 탈북자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아 걱정스럽다. 탈북자들 가운데 원정화와 유사한 사람이 없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는 시선이 있지만,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선의의 탈북자들이 의심을 받거나 위험에 빠지게 해선 안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수영·역도·사격의 숙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한국이 역대 최다의 금메달 13개를 획득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수영의 박태환이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수영 자유형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것은 기초종목이자 올림픽에서 두번째로 많은 금메달이 걸려 있는 수영에 대한 가능성과 자신감을 갖게 됐다. 박태환의 쾌거는 골퍼의 박세리, 메이저리그의 박찬호의 성공과 견줄만 하다. 하지만 대한체육회나 수영연맹은 박태환의 금메달을 계기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4년 또는 8년 뒤 올림픽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지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상태다. 박태환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은 이뤄졌지만 박태환과 같은 선수를 발굴하는 시스템 구축은 안됐다는 얘기다. 일본의 경우 선수들이 수영을 할 때 자세와 근력, 스피드를 측정할 수 있는 작은 풀 스스템을 6개 이상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엔 이런 풀이 한 개도 없다. 박태환을 계기로 수영 종목의 저변이 확대되겠지만 이에 대한 접근 방법이 개선되지 않는 한 수영은 자칫 ‘반짝 인기’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나름대로 가장 성공을 거둔 종목은 역도다. 우승이 예상됐던 장미란의 세계신기록 달성으로 한껏 분위기는 고조됐지만. 사실 역도는 모든 스포츠에 필요한 기초운동이라는 점에서 이 종목에 대한 세인의 시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사격은 16년만에 진종오가 금메달을 따냈지만, 당장 태릉사격장을 철거할 예정이어서 서울에서 사격대회가 열릴 수 없게 됐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15개나 걸려 있는 사격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사격은 가장 많은 실업팀을 보유하고 있지만 종목별 특성화 전략이 짜여 있지 않아 코칭스태프의 전문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큰 문제점이다. 올림픽에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스포츠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효율적인 투자, 메달이 많이 걸려 있는 종목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이 매우 필요하다. 전종목에 대한 지원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베이징올림픽에서 큰 가능성을 보여준 수영·역도· 사격의 도약을 위해 정부와 대한체육회, 해당 단체간의 끊임 없는 노력과 의견 교환이 있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11번 째 출산

50대 부부가 아이를 낳았다. 엄마는 51살이고 아빠는 55살이다. 40대 출산을 늦둥이라는 것에 비하면 50대 출산은 늦둥이 중에도 상늦둥이다. 그래도 이들 부부는 즐겁기만 하다. 40대 출산을 쑥스럽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평균 수명이 58살이던 1958년 그 무렵까진 그랬다. 2008년인 지금의 평균 수명은 79살이다. 수명이 21년이나 길어졌다. 50대는 아직도 한창이다. 예전엔 식구 하나가 더 느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다. ‘입 하나가 무섭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먹는 게 무서워 출산을 피하진 않는다. 이젠 아이를 낳으면 으레 걱정되는 게 교육이다. 그 50대 부부의 갓난 아기는 맏이와 29살 터울이다. 손주보다 어린 이번 출산이 11번 째다. 아들을 낳았는 데 5대 독자다. 그러니까 딸만 내리 10명을 낳았던 것이다. 아이 아버지의 말이 재미있다. “아들을 바라고 낳은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11명이 됐다”는 것이다. 며칠전 전남 영암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11번 째 출산을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영암 군수다. 미역 등 선물을 푸짐히 들고 50대 부부의 집을 방문해 축하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양육 지원금이다. 무려 1천700만원의 양육 지원금을 11번 째 아이 부모에게 주었다. 출산 장려를 위해 제정된 다자녀 가정 지원 조례가 첫 째는 50만원, 둘 째는 100만원, 셋 째는 200만원을 주게 된 누증 금액이 11번 째엔 1천700만원이 된다는 것이다. 신생아의 울음 소릴 듣기 어려운 시골의 절박한 사정이 조례에 반영된 것으로 보아진다. 신생아의 울음 소리가 반가운 것은 도시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덜 낳아 초등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은 심각한 현상이다. 인구는 국력이다. 인구가 줄어 잘 된 나라는 없다. 어떻게든 인구는 늘어야 된다. 거리에서 임신부를 보면 반갑다. 경외스럽기도 하다. 나라를 위해 애쓴다는 생각도 든다. 여성의 출산은 실로 위대한 능력이다. 도내 지방자치단체도 출산 장려를 위한 갖가지 시책을 펴고는 있으나, 좀 더 적극적인 장려책이 강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 임양은 주필

백두산

중국에겐 창바이산(長白山)만 있을 뿐 백두산은 없다. 1950년 북측이 백두산 반쪽을 중국에 할양한 이후, 백두산은 백두산이기보다는 창바이산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백두산 천지에 다녀온 내국인이 많은 것은 중국 땅이 된 창바이산으로 가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지를 포함한 백두산을 반으로 갈라 중국에 할양한 것은 6·25 한국전쟁 때 중국공산의용군(중공군)이 북측을 도와 참전해준 대가였다. 미국지명위원회(BGN)는 백두산과 천지를 반쪽이 아닌 전부를 중국령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중국의 창바이산 개발 붐이 끼친 영향이다. 명백한 오류다. 백두산의 절반은 북측이 관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외국인 관광 특수로 단단히 한몫 본 것이 창바이산 공항이다. 올림픽에 대비해 백두산 입구인 지린(吉林)성 바이산(長白)시에 민간공항을 건설한 게 2006년 5월부터 2007년 말까지다. 중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백두산 일대를 세계자연문화유산 신청을 추진 중이다. 물론 백두산이 아닌 창바이산 명칭으로 한다. 이어도는 제주도 남단의 수중섬이다. 최남단인 마라도에서 149㎞ 거리다. “어야어야 가자가자 이어도가 어디메뇨…”하는 제주 뱃사공들 노래 가락은 전설적인 환상의 섬으로 전해졌던 이어도 관련 민요다. 중국은 얼마전 이어도가 자국 영토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다가 영토가 아닌 해양경계선 확정 방안의 문제라며 한발 물러섰으나, 또 언제 엉뚱한 소릴 다시 할지 모른다. 백두산을 창바이산 일색으로 둔갑시킨 것도 모자라 이어도 수중섬까지 넘본다. 한반도 북쪽에서 남쪽까지 영토 야욕을 드러내는 것이 중국이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어제 국빈 방문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리에 폐막한 이튿날 가진 그의 방한은 이례적이다. 중국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지근거리다. 무한한 잠재력이 폭발하고 있는 나라다. 중국과의 외교 관계는 동북아 정세의 요체다. 후진타오 주석의 서울 방문은 물론 환영할만 하다. 그러나 이어도 영토설, 동북공정, 백두산의 창바이산 일색화 등도 잊어서는 안될 주목해야할 일들이다./임양은 주필

베이징 쇼 특수

야간통행금지 시간이 있었다.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다. 방범의 효과를 위해서보단 오열(五列)분자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였다. 오열이란 스페인 내란시 프랑크 장군이 4개 부대를 이끌고 마드리드를 공격하면서 시내에도 자신에게 내응하는 제5부대가 있다고 한 데서 유래된다. 즉 적과 내통한 세력으로 간첩과 유사하다. 1948년 건국 이후 실시된 야간통행금지 시간이 폐지된 것은 33년만인 1981년이다. 밤문화가 성업을 이루기 시작한 게 이때 부터다. 그 전엔 밤문화는 커녕 야간통행금지 시간에 걸리면 경찰서 유치장에 끌려가 법원의 즉결재판을 받아야 했다. 텔레비전방송의 흑백 화면이 컬러로 바뀐 것도 이 무렵이다. 중고등 학생의 복장도 자율화됐다. 프로야구를 만들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한 것도 이 때다. 전두환 육군소장이 이끈 신군부가 집권했을 적의 일이다. 당시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상임위 중심에서 5공화국으로 이어 정권을 장악했으나 정통성의 취약점을 무마키 위해 선심정책을 쓴 것이 통금 폐지, 복장 자율화, 컬러방송 등이다. 컬러방송은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태인데도 방송사를 윽박질러 앞당겼다. 프로야구도 각 재벌기업에 구단 창설을 강제로 떠 맡겨 처음엔 ‘울며 겨자먹기’로 시작된 것이 프로야구 탄생의 이면사다. 서울 올림픽 유치는 5공 정권의 명운을 걸고 혼신의 힘을 쏟았던 결과다. 실제로 프로야구는 특히 젊은층을 비롯한 사회적 불만의 기운을 많이 흡수해 희석시켰다. 매사에 언필칭 내세운 서울 올림픽대회 준비는 정권 유지의 중심 축 역할을 했다. 제29회 베이징 올림픽대회가 어제 폐막됐다. 텔레비전방송 중계가 인기를 끌었다. 많은 시청자들이 감격, 환희, 아쉬움 등을 맛봤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됐다. 이런 저런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보름 이상을 이렇게 보냈다. 이명박 정부가 방어적 국정 운영에서 공격적 운영으로 전환했다. 베이징 올림픽에 국민의 눈이 쏠린 게 전환의 틈새가 됐다. 베이징 올림픽 특수로 누구보다 덕을 단단히 본 것이 이명박 정부인 것이다. 다 좋다. 국정의 공격적 운영도 좋다. 문제는 나라 살림을 살림답게 얼마나 잘 꾸려가느냐에 있다./임양은 주필

‘이재오 살리기’?

검찰이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건 적법적인 절차다. 문제는 영장 발부 전 국회동의를 받아야 하는 국회법이다. 172석의 다수 정당으로 체포동의안 처리에 열쇠를 지고 있는 한나라당은 소속의원의 자율권에 맡긴다는 입장이지만 검찰 출두를 거부하고 있는 문 대표에 대해선 비판적인 분위기다. 반면 제 1야당인 민주당은 ‘검찰의 사정정국 조성과 국회 길들이기 의혹’을 제기하면서 반대 기류가 강하다. 체포동의안은 동료의원의 체포 문제를 다루는 데다 입법권 존중 문제 등이 걸려 있어 한나라당 의석이 다수라고 해도 가결이 쉽진 않다.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내에 표결해야 한다. 26일 예정된 본회에서 보고가 이뤄진 뒤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들어가는 것이 수순이다. 그러나 체포동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 위해서는 여야 협의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체포동의안 상정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사례는 8건에 불과하다. 14대 국회에서 옛 민주당 박은태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이후 13년간 모두 부결됐다. 하지만 여야의 온도차는 다르다.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지금 검은 돈을 받아 문제가 되고 있는데 마치 민주투사나 된 듯 행동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비판한다. 반대로 민주당은 “검찰이 사정정국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정치권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체포동의안 카드를 꺼내든 것이 아니냐”고 날을 세웠다. 창조한국당과 공동교섭단체 ‘선진과 창조의 모임’을 꾸린 자유선진당은 ‘사건자체에 대한 검토가 먼저’라는 신중론을 폈다. 그러나 창조한국당은 “‘이재오 살리기’를 위한 정치 검찰의 정치보복”이라고 목소릴 높인다. 특히 문 대표는 “여권 컨트롤 타워인 이재오 전 의원을 정계에 복귀시키려는 정권의 포석”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잘못이 없다면 검찰에 자진 출석해 혐의를 밝히면 될터인데 안타깝다. 하지만 사악한 정치판에선 자고로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다. ‘남의 위기는 나의 기회’로 통한다. 4·9 총선에서 정치 신인 문국현 대표와 맞붙어 떨어진 뒤 미국에 가 있는 이재오씨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속내가 궁금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한국야구

야구(野球)의 기원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미국기원으로, 1839년 더블데이가 미국 어린이들의 원 올드 캣 놀이를 바탕으로 창안, 베이스볼이란 이름을 붙여 근대 야구의 효시가 됐다고 한다. 또 하나는 영국기원론으로, 13세기경 영국에서 시작한 크리켓이란 놀이가 라운더즈로 되고 이것이 발달해 야구가 됐다는 설이다. 라운더즈는 던져준 공을 방망이로 친 다음 베이스로 달리는 것으로, 뒤에 미국으로 전해져 야구로 발전됐다고 한다. 오늘날과 거의 비슷한 경기로 발전시킨 사람은 카트라이트로, 1845년 뉴욕에서 세계최초의 야구팀인 니커보커야구협회를 조직, 다이야몬드형 경기장을 고안하여 경기 인원을 9명, 3스트라이크가 1아웃이 된다는 등의 근대야구의 규칙을 공식화하였다. 야구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Gillett·吉禮泰)가 황성기독교청년회의 회원들에게 지도한 것이 그 시초다. 당시엔 타구(打球)라 불렀으며, 1906년 황성기독교청년회와 덕어학교(德語學校)가 경기를 벌여 야구경기의 첫출발을 기록했다. 1909년에는 동경유학생들과 선교사들간에 경기가 개최돼 유학생팀이 대승을 거뒀는데, 이 경기가 일대 선풍을 일으켜 우승한 유학생팀이 평양·안악· 철산 등을 순회하면서 야구를 지도하였다. 1910년대에는 황성기독교청년회를 비롯, 한성외국어학교·동경유학생회·대한의원부속학교·한성고등보통학교·휘문의숙 등 여러 학교에 야구팀이 창설됐으며, 1920년 7월 조선체육회가 창설되면서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게 됐다. 오늘날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에서 벗어나 사회전반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특수산업이 됐다. 1982년 창설된 프로야구는 국민들에게 건전한 오락을 제공하면서 내적으로는 선수들이 좋은 대우 속에서 보다 높은 기술을 습득하게끔 자극을 주고 있다. 국가 대항 야구대회는 애국심을 결집시켜 국가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특히 요즘 베이징올림픽에서의 한국 야구대표팀 승전보는 정치에 염증과 혐오감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통쾌감을 선사한다. 미국, 일본, 쿠바 등 내로라 하는 야구 강국을 모조리 연파했다. 20일엔 네덜란드를 10대 0으로 격파, 거침 없는 7전 전승을 거뒀다. 예선 1위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22일, 오늘은 일본과 재격돌한다. 한국 야구대표팀이 자랑스럽다. 예감이 매우 좋다. / 임병호 논설위원

수영 붐

수영은 몸이 좌우로 균등하게 움직이는 근육운동이다. 몸 전체에 물의 압력과 저항이 고르게 영향을 끼쳐 전신을 균형감 있게 발달하게 해 특히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운동으로 꼽힌다. 또 물속에선 부력이나 저항의 작용을 크게 받기 때문에 몸을 지탱하기 위한 관절 부담이 줄어들어 운동으로 인한 부담이 다른 운동에 적은 편이다. 더구나 물의 저항은 많은 운동량을 요구하게 되므로 관절 부상에서 회복중이거나 관절염, 류머티즘, 요통 등이 있는 환자에게 좋은 효과가 있다. 수영은 단순한 스포츠라기 보다 의사들이 환자들의 ‘水 치료’ 방안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수영은 손과 발을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도 부력을 통해 움직일 수 있어 신체장애자의 재활수단으로 활용된다. 물속에서는 공기중에 있을 때보다 2.5배 정도 열을 더 많이 배앗아가므로 인체의 체온조절 기능이 발달한다. 수온, 공기, 햇빛 등의 자극으로부터 피부를 단련시켜 감기 등 질병에 대항하는 능력도 높인다. 수영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심폐지구력을 꼽을 수 있다. 수영을 하면서 숨을 멈추거나 심호흡을 하게 돼 의도적으로 호흡운동이 이루어지며 수압의 영향으로 횡격막, 흉강, 복부에 압력이 가해져 호흡근육들이 강해진다. 혈관계나 심장 기능도 향상돼 천식, 고혈압 환자에게 좋은 운동이며 비만, 당뇨병 등의 성인병 예방과 심장계통 질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베이징올림픽의 스타 박태환 선수와 8관왕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도 건강 때문에 수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환 선수는 천식을 이기기 위해 수영을 시작했고, 펠프스 역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극복하기 위해 수영을 택했다고 한다. 수영의 장점을 세계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수영이 균형있는 몸매를 유지하게 함은 물론 특히 성장기 어린이에게 건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배양하는 데 도움을 준다. 수영은 특별한 선수를 제외하고는 복잡한 동작이 필요 없기 때문에 유아나 노년층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수영이 남녀노소에게 적당한 스포츠로 알려지면서 우리나라 실내·외 수영장들이 만원이라고 한다. 금메달을 내보이며 착하게 활짝 웃는 박태환 선수 덕분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여름의 끝자락에서

여름철 더위가 한풀 꺾였다. 섭씨 34도를 넘어 마치 찜통 같았던 날씨가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기까지 한다. 열대야의 밤도 줄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자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바다 피서도 오늘이면 끝이다. 한반도 주변의 해류는 8월20일을 기점으로 북태평양의 한류가 해저에 깔리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하룻밤 새에 수온이 내려가 바닷물에 들어가기가 어렵게 된다. 올 여름철 해외피서 행각이 얼마나 됐는지 아직 확인되진 않았으나 역시 적잖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해외 골프객들이 많았던 것이 예년의 현상이다. 2005년 이후 올 상반기까지 한국의 서비스수지적자는 모두 625억3천만 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여행수지적자가 435억4천만 달러로 전체의 70%나 차지한다.(한국은행 서비스수지적자 원인과 대책보고서) 수출로 어렵게 벌어들인 달러를 분별없는 해외여행으로 펑펑 써대는 탓이다. 더위가 꺾였긴 해도 선풍기를 치우기는 아직 이르다. 앞으로 노염(老炎)이란 게 있다. 잔서(殘暑)라고도 한다. 들녘의 곡식들을 갈걷이 단계로 영글게 하는 대자연의 에너지인 것이다. ‘봄볕 들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 들에는 딸을 내보낸다’는 속담이 있지만 가을볕도 만만치 않다. 그러고 보니 좀 있으면 가을이다. 봄이 재생의 계절이면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다. ‘가을에 밭에 가면 가난한 친정가는 것 보다 낫다’는 옛말도 있다. 뭣보다 풍년이 들어야 인심이 후하다. 아무리 농경문화시대가 아니라고 해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섭리는 어길 수 없는 하늘의 이치다. 걱정인 것은 계절적인 태풍이다. 올 여름에 비가 적잖게 내리긴 했으나, 폭우를 동반하는 계절풍이 불어 닥치는 게 또 가을이다. 농사에 백해무익하고, 도시 시설물에도 위험과 인명 피해의 우려가 있는 태풍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오는 9월14일이 추석이다. 꼬박 한달 남은 셈이다. 허겁지겁 뭔가에 쫓기다시피 살다보니 어느새 벌써 추석을 앞두게 됐다. 사람 일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세월인 모양이다. /임양은 주필

광교행정타운 조성, 나홀로 강행 안된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광교신도시 행정타운 조성사업이 안심찮다. 정책구현 요건인 담보성이 없다. 행정타운 조성은 들어가겠다는 기관 선정이 앞선다. 그런데 선정은 커녕 경기도가 들어오라고 해도 안 들어 가겠다고 한다. 경기도교육청이 이렇고 법조기관이 이렇다. 입주가 확실한 것은 경기도청 청사와 경기도의회 의사당 뿐이다. 이래가지고는 행정타운이라고 할 수가 없다. 행정타운 조성의 이유로 삼는 수도권 성장거점의 기능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시작부터가 의문이다. 기관의 청사 이전은 중앙의 승인이 요한다. 도교육청은 정부의 과학교육부, 법조에서 법원은 대법원 그리고 검찰청은 법무부의 최종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절차 이행이 제대로 추진이나 됐는지 궁금하다. 경기도교육청이 요구하는 부지가 충족되지 못해 입주를 포기한 것은 경기도의 단견이다. 도교육청만이 아니라 산하에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 등 12개 기관이 있다. 이 모든 기관이 행정타운으로 함께 들어가지 않는 도교육청의 단독 입주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경기도가 말하는 3만㎡부지는 도교육청의 입주이겠으나, 도교육청으로서는 산하기관 부지를 포함하는 7만9천㎡가 필요한 입장인 것이다. 경기도의 부지 이해타산과 도교육청의 수요에 비한 공급량 미흡이 도교육청 입주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법조기관 조성 부지 5만㎡도 사실은 부족하다. 지금은 수원지법과 수원지검, 그리고 재야법조기관인 수원변호사회 뿐이지만 조만간 수원고법 신설을 전제해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는 재조·재야 법조의 3개 기관외에 수원고법과 수원고검이 늘어 5개 기관으로 증설돼 어차피 이전이 불가피해진다. 이에 대비하는 법조타운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전비 문제로 서수원 이전을 검토한다면 이른바 행정타운과는 문제가 또 다르다. 결국 행정타운은 경기도청 나홀로 행정타운이다. 도의회야 바늘 가는데 실이 따라가는 거나 같다. 도교육청이며 법조기관이 정 안 들어서면 책정 부지를 공공기업이나 공공기관 몫으로 돌리겠다는 것은 안일하다. 행정타운이 ‘안 되면 말고식’의 정책추진은 도민을 희롱하는 무책임의 극치다. 정책 목표를 뚜렷이 해놓고 확실하게 추진해야 된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행정타운 조성의 포기를 과감하게 선언하든지 해야 하는 것이다.

경기도교육청, 왜 맹아학교 설립 외면하나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는 생존을 위한 기본적 권리다. 그런 만큼 모든 장애인에겐 교육받을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경기도내 4만여명에 달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것은 경기도교육청의 장애인 교육진흥에 대한 노력이 미흡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원도와 전라 제주도 등 지역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맹아학교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단적으로 이를 알 수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시각장애인이 재활과 사회학습 등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맹아학교는 서울 2곳을 비롯 인천과 대전 춘천 부산 광주 목포 제주지역에 각각 1곳 등 모두 13곳이다. 물론 도내에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가 24곳이 있긴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시각장애 청소년을 위한 특수학급은 거의 없는 상태다. 때문에 시각장애 청소년과 사고 질병으로 인한 실명 시각장애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원정 교육을 받아야 하는 불편과 고통을 겪고 있다. 그동안 특수교육진흥법과 장애인 차별금지법 등 장애인 교육과 관련된 법률이 없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 관련단체가 경기도교육청에 맹아학교 설립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희망적인 진전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지역에 맹아학교가 없다는 것은 장애인 그들에겐 헌법이 명시한대로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인 기회균등의 제한이다. 모든 장애아동들에게 초중등과정 교육을 의무화한 특수교육진흥법과도 어긋난다. 장애인 차별금지법과 지난해 한국 등 81개국이 서명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교육관련 조항도 장애인이 자유롭게 교육받는 일은 모든 사람과 동등하게 보장받아야 할 권리임을 규정하고 있다. 교육기관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교육을 받음에 있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시각장애학생들처럼 일반학교의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교육하는 통합교육이 어려울 경우엔 별도 특수교육기관은 절대 필요하다. 장애유형과 수준에 따른 특수교육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경기교육청의 신속한 대책 강구를 촉구해 둔다.

베이징 올림픽 散考

※배드민턴의 셔틀콕은 무게가 4.75~5.5g이다. 거위털 14~16개가 꽂혀 마치 새털같은 이 반구형의 코르크가 약 2m앞에 두깨 1㎝의 판자를 놓고 남자선수가 강스매싱하면 판자를 깨뜨린다. 강스매싱한 초속(初速)의 시속이 무려 320㎞에 이르기 때문이다. 스매싱한 셔틀콕이 상대 선수에게 다달을 즈음의 종속(終速)은 약 60㎞로 감속되긴 하지만, 일반인의 눈엔 셔틀콕 행방이 어디로 날으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울만큼 빠르다. 배드민턴은 인도네시아의 국기(國技)다. 베이징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결승전에서 이효정(27)·이용대(20)조가 세계랭킹 1위인 인도네시아 노바 위디안토(31)·낫시르 리리아나(28)조를 세트 스코아 2대0(21-11, 21-17)으로 꺾은 환상의 콤비는 수비의 교란작전과 강스매싱의 속도전이 어울려 주효한 승전보다. ※이번 올림픽의 이색 메달리스트로 중국 귀화 선수인 당예서(27·대한항공)를 단연 1호로 꼽을 수 있다. 당예서는 한국에 온지 8년만에 여자탁구단체전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3-0으로 완파하는데 크게 기여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단체전에서 제2 조국에 메달을 안긴 그녀는 개인전에선 태어난 중국에 반역을 시도할 것이다. 지난해 한국 국적을 얻은 당예서의 한국행은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역시 중국 탁구선수로 있다가 귀화한 선배 자오즈민의 권유에 의한 것이다. 자오즈민의 귀화는 그무렵 한국 탁구의 귀재였던 안재형과의 국경을 넘은 열애에 의한 것으로 선풍적인 화제가 됐었다.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살고 있는 안재형·자오즈민 부부는 열일곱살 된 아들과 함께 세 가족이 며칠전 서울을 거쳐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베이징으로 갔다. ※기왕이면 메달을 따면 좋고 금메달을 따면 더 좋다. 하지만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이 더 많다. 최선을 다 했으면 판정은 심판의 몫이다. 비록 메달을 따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선수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고대 그리스 올림픽은 스파르타식이었다. 예를 들면 복싱 경기는 라운드 없이 어느 한 쪽이 넉다운 될 때까지 싸웠다. 물론 글러브나 안면 보호장치도 없었다. 근대 올림픽을 가리켜 ‘총성이 없는 전쟁’이라 하고, 그런 일면도 있지만 스파르타식은 아니다. 근대 올림픽은 평화와 인간 한계를 추구하는 아테네식 성격이 짙다. 노메달도 우리의 선수들이다./ 임양은 주필

장미란

수더분하고 듬직했다. 뭣보다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의젓한 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척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25·고양시청)은 그렇게 해서 지난 16일 저녁 베이징 올림픽의 한국선수단에게 일곱번 째 금메달은 안겨 주었다. 연일 금메달이 이어지다가 전날 공친 금메달 가뭄을 속시원히 해갈시켜준 것이다. 여자 최중량급 +75㎏ 경기에서 인상 140㎏, 용상 186㎏으로 합계 326㎏을 들어올려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이날 장미란은 모두 다섯차례나 세계신기록을 스스로 경신하는 위업을 기록했다. 한국 여자 역도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세계여자역도 여왕’의 등극은 이토록 찬란했다. 강력한 라이벌로 꼽힌 중국의 무솽솽 불참으로 일찌감치 우승 후보로 지목되긴 했다. 국내 언론은 마치 당연히 금메달을 딸 것으로 보도하기가 일쑤였다. 만약 못 따면 역적이 될 정도로 장미란을 금메달로 몰아넣었다. 스타플레이어에게 지나친 부담감을 주는 이같은 보도가 과연 괜찮은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없지않다. 장미란은 “무솽솽이 나오지 않아 더 긴장됐다”는 우회의 말로 그간의 부담감을 토로했다. 모든 경기에는 이변이 있다. 가변성이 있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있다’고도 하고 ‘영원한 챔피언은 없다’고도 말한다. 이런 이변 말고도 선수 개인의 가변성으로 컨디션이 또 있다. 특히 역도 경기에서는 손가락이나 발가락 하나에 좀 이상이 있어도 제 기량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컨디션 관리를 잘해 제 기량을 십이분 발휘한 장미란이 고맙다. 선수는 상대와 싸우기 전에 먼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다. 고려대 3학년이다. “2학기엔 미래를 위해 수업에 더 충실히 할 계획”이라면서 “그냥 왔다 갔다 하진 않겠다”고 하는 말이 대견하다. 마지막으로 도전한 용상 186㎏을 불끈 들어올려 세계신기록 경신의 대미를 성공하고 나서는 두 손을 꽉 거머쥐며 기도했다. “하느님께 감사하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마웠다”고 한 것은 뒤에 밝힌 깜짝기도의 소회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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