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자선냄비

1928년 전국적인 가뭄으로 서울 거리가 걸인들로 넘치던 때 구세군 자선냄비 운동이 처음 시작됐다. 그해 성탄절 기간 전국 20개 지역에서 849원을 모금했다. 그 돈으로 130여명의 걸인들에게 식사를 배급했다. 태평양전쟁 때인 1943~1946년과 6·25전쟁 때인 1952년을 빼고 자선냄비 모금은 꾸준히 이뤄졌다. 모금액은 해마다 늘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모두가 허리띠를 동여맸을 때도 자선냄비 모금액은 늘었다. 1996년 12억2천487만원이던 모금액은 외환위기 한파가 불어닥친 이듬해 13억4천59만원으로 1억원 이상 증가했다. 경제 위기가 회복될 무렵인 2001년은 22억5천403만원으로 훌쩍 뛰었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우리나라에서 연말 사회 구제 운동의 한 척도가 돼왔다. 올해 목표 모금액은 32억원이다. 사상 최대치다. 하지만 모금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위기를 알리는 한파가 곳곳에서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선냄비 모금 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모금액이 줄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외환위기 때를 비교하지만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전국민이 합심해 난국을 헤쳐가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지만 요즘은 배부른 사람만 계속 배부른 양극화 현상이 심해져 온정까지 추위에 얼어붙는 마당이다. 자선냄비는 다른 모금들과는 달리 돈을 내는 사람을 밝히지 않는 소액 구제 운동이다. 그러나 80년 동안 천사의 손길처럼 세상을 밝히고 사람들의 가슴을 추위에서 녹여 주었다. 자선냄비는 세월의 인정을 가늠하는 줄자와 마찬가지다. 그 옛날 어른들과 함께 자선냄비에 정성을 넣던 나이 어린 소년·소녀들이 지금은 성인이 됐다.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들도 적지 않다. 8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계시다. 인정이 강물처럼 흘러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훨씬 많음을 입증한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사랑의 종’은 11월 1일 울린다. 내가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이웃을 돕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은 눈물겹다. 전국 거리 거리에서 사랑의 종이 울리면 뜨거운 인정들이 빨간 자선냄비를 뜨겁게 채워줄 것으로 믿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농산물 산지폐기

농산물 산지폐기는 정부가 수급안정사업을 실시한 1995년부터 시작됐다. 가격등락이 심한 농산물의 가격을 안정시키고, 최소한의 농가소득을 지지하기 위한 수급안정사업의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도입됐다. 농산물도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공급과 수요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공급이 많으면 값이 떨어지고 공급이 모자라면 값이 올라가게 된다. 농산물의 가격지지를 위한 산지폐기 수급안정사업은 지역농협이 파종기나 정식기에 재배농가와 계약재배 또는 출하약정을 체결한 후 생산과잉으로 값이 폭락하면 수매 후 산지폐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모든 농산물이 대상은 아니다. 수급 안정사업 대상품목인 16개 품목만 해당된다. 무·배추·마늘·양파·파·고추·당근 등 노지채소, 오이·호박·가지·풋고추 등 시설채소, 사과·배·단감·감귤 등 과실이다. 폐기 기준은 품목에 따라 다르다. 노지채소는 시장가격이 정부가 예시한 최저보장가격 이하로 하락하면 계약물량을 수매한 후 산지폐기 등 시장격리 조치를 한다. 시설채소는 경영비와 출하비용을 합친 금액 이하로 가격이 하락할 경우, 과실은 시장가격이 하락하거나 과잉생산이 우려될 경우 중하품을 대상으로 산지폐기하거나 시장격리한다. 농가에 대한 보상이 있는 건 다행이다. 지역농협이 산지폐기 대상 물량을 수매하면서 해당 농가에 최저보장가격을 지원한다. 최저보장가격은 품목별로 차이가 나는데 생산비에서 자가노력비를 뺀 경영비로 산정돼 있다. 올해 들어 유난히 농산물을 산지폐기하는 사태가 잦았다. 풍년과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부진이 산지폐기의 주범이다. 공급량이 너무 많아 값이 폭락해 농가들은 인건비는커녕 생산비도 건지지 못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은 수급안정자금으로 사회복지시설에 무상기증하면 좋았을 터인데 무·배추·오이·호박·가지·배 등이 무참히 폐기됐다. 수급안정과 시장격리로 가장 빠르게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 산지폐기라고 한다. 사회복지시설 무상공급은 운송비 등 추가비용이 발생, 한정된 예산으로 많은 물량을 격리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어 망설이는 모양이다. 농민들의 아픈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산지폐기는 너무 아깝다. 산지에서 폐기되는 농산물들을 보면 처참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노인범죄

노인범죄가 늘어가는 추세다. 또 범죄는 아니어도 체신머리 없는 짓을 하는 노인들이 적잖다.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노인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다. 할아버지 할머니 소매치기 조직이 붙잡힌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지하철에서 그 몹쓸짓을 일삼았다. 젊어서 하던 몹쓸짓을 나이가 들어 은퇴했다가 다시 현역으로 복귀한 것이다. 정말 나잇값을 못하는 위인들이다. 이래저래 노인범죄가 늘어간다. 일본사회도 고령화 여파로 노인범죄가 급증하는 모양이다. 노인 재소자들 때문에 교도소들이 골치를 앓는다는 소식이다. 지난 6년 새에 65세 이상의 노인범죄가 160%나 늘어 재소자가 무려 4만6천630여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일본 교도소는 노인들을 따로 모아 수용한다. 귀가 어두운 노인은 교도관이 깨워가며 기상시킨 다음엔 치아가 부실한 노인은 영양죽 같은 특별식을 먹이고는 작업장에는 갖가지 편의시설이 갖춰진 시설에서 일을 하는 것이 노인 재소자들의 하루 소일이다. 무료양로원 비슷한 것이 일본의 노인교도소다. 이 때문에 의지할 곳 없는 독거노인들은 교도소에 가기 위해 일부러 사소한 범죄를 저지르곤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사지 멀쩡한 노인도 아닌 사람들이 침식이 보장된 교도소에 들어가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예가 있다. 하물며 일본처럼 노인 재소자들을 특별 대우해서 수감하면 역시 무료양로원화 되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 그러고 보면 교정행정의 선진화도 엉뚱한 역기능이 없지 않다. 교도소는 아니지만 구치소 지원자도 급증한다. 불황으로 벌금을 낼 돈이 없어 구치소 노역장에서 몸으로 떼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수원지법 관내만도 지금 노역장 유치자가 1천70여명이나 되어 지난해 같은 시기 820여명보다 무려 77%나 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수원구치소가 수용 인원의 한계에 부딪쳐 꽤나 애를 먹는다는 것이다. 교도소나 구치소가 어려움을 겪는 판에 노인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사회문제다. 국내 교도소는 일본처럼 노인을 특별 대우하는 것도 아니다. 노인범죄의 증가 역시 생활고 탓이 많지만, 그래도 얼마 남지않은 여생을 범죄로 얼룩지게 해서는 안타깝다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귀족학교

‘시드웰 프랜즈 스쿨’이 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사립학교다. 수업료가 연간 2만9천442달러(약4천200만원)다. 최고급학교로 행세깨나 하는 집안의 자녀들만 다닌다. 루스벨트, 닉슨, 클린턴 등 전 미국 대통령 그리고 고어 전 부통령 등의 자녀들이 이 학교엘 다녔다. 주목되는 것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부부가 어린 두 딸이 다닐 학교로 명문교인 ‘시드웰 프랜즈 스쿨’을 지정한 사실이다. 외신은 자녀의 안전, 일등급 시설이 선택된 이유라고 전했다. ‘시드웰 프린즈 스쿨’은 워싱턴의 하버드라고 불리운다. 말하자면 귀족학교다. 오바마는 워싱턴의 귀족정치를 깨뜨린 서민정치의 우상이다. 이런 그가 딸이 입학할 학교에 하필이면 귀족학교를 택한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우리네 생각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그렇지 않는 것 같다. 서민정치의 우상이 귀족학교에 딸을 입학시킨다는 비난은 들리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학생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는 것이 이 학교의 교육철학’이라며 오히려 오바마 부부의 판단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오바마는 주례 라디오 연설서 “2년 안에 25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서점가에서는 오바마 바람이 불고 있다. ‘버럭 오바마 담대한 희망’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등 자서전적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있다. ‘열등감을 희망으로 바꾼 오바마 이야기’는 그의 청소년 시절을 쓴 책으로 출간된 지 한달 만에 5만부가 팔린 것으로 전한다. 특목고 등 특수 사립학교를 귀족학교로 매도하고 이런 학교를 다니면 비도덕적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풍조에 비하면, 미국 사회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오바마의 ‘시드웰 프린즈 스쿨’ 선택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버티는 것은 인재 양성에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네 인식도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교가

초등학교 졸업식에 ‘졸업식 노래’가 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여 /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재학생들이 부르는 1절에 이어 졸업생들이 2절을 부른다. ‘아우들 잘있거라 정든 교실아 / 선생님 우리들은 물러갑니다 /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 우리나라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3절은 재학생, 졸업생이 다 함께 부른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면서 /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졸업식 노래’가 끝나면 재학생 대표의 송사가 있고 졸업생 대표의 답사가 이어진다. ‘졸업식 노래’는 지금의 초등학생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불렀던 노래다. 다른 점은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날 졸업식 땐 으레 눈물바다가 됐던 것에 비해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경기도교육청에 대한 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가사가 난해한 초등학교 교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예컨대 ‘청결재단’이란 게 있다. 숙성되지 못한 합성어다. ‘총준자제’란 말도 있다는데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지 지지대子도 종잡을 수 없다. ‘동지여’란 단어는 초등학생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밖에 단일민족을 부각시켜 다문화 가정 시대상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단일민족이라 하기엔 무리가 없지 않다. 예를 들면 고구려엔 말갈족들이 많았다. 중국에서 망명해오거나 건너와 국내 성씨(姓氏)의 시조가 된 이들도 적잖다. 그렇잖아도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초등학교에서 소외당한다. 다문화시대에 적절치 않은 가사는 시류의 역행이다. 교가는 알기 쉬우면서 의미가 담겨야 된다. 인격 형성 과정에도 부합돼야 한다. ‘졸업식노래’가 바로 좋은 그 같은 노래다. 교가는 거의 평생 잘 잊혀지지 않는다. 잘못됐으면 고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가령 교장선생이 노랫말을 지었다 해서 못 고치는 체면치레는 교육이 아니다. 초등학생 스스로가 평소 잘 부를 수 있을 만큼 어린이들과 친근한 교가가 진정한 교가다. /임양은 주필

부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

일본 자민당이 소비세 증세와 함께 고소득자 과세를 강화하는 ‘양극화 시정 세제’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아사히(朝日) 신문이 보도했다. 단일 세율(현 5%)인 소비세를 올리면 저소득층일수록 상대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고소득자 과세 강화로 이를 완화하려는 계산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연 과세 소득 1천800만엔 이상인 고소득층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는 사실상 부유층에 대한 증세전략으로 평가된다. 자민당은 대표적 ‘부유층 세금’인 상속세도 과세 최저한도인하나 최고세율 상향조정을 검토 중이다. 자민당은 대신 기업지원을 위해 법인세는 낮추는 방안을 수립 중이다. 일본은 국세와 지방세를 합쳐 기업이 부담하는 조세 비율이 외국보다 높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를 경감해주기 위한 조세특례조치법 도입이 주요 검토 대상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경기 회복 대책으로 국민에게 일률 지급키로 한 총 2조엔 규모의 생활지원정액급부금의 1인당 지급액을 1만2천엔으로 잠정 확정했다. 18세 이하와 65세 이상에겐 8천엔을 추가로 지급한다. 하지만 고소득자에게도 지급할지 여부는 지방자치단체 판단에 맡기고 제한할 경우 연소득 1천800만엔을 하한으로 삼도록 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도 부유층 소득세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6개 소득등급 중 상위 2개 등급의 소득세율을 인상하고, 특히 현재 35%인 최고세율을 39.6%로 대폭 상향조정한다는 것이 그의 공약이다. 아울러 상속세 완화방침도 백지화하는 한편, 저소득층 소득공제 항목을 신설하고 연 소득 5만달러 이하 고령자에 대해선 소득세를 완전 면제해 준다는 방침도 갖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이같은 부유층 증세기류는 우리나라의 감세 정책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특히 소득세, 상속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 부유층 관련 세금을 대폭 깎기로 하고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우리 정부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국회심의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되긴 하지만, 아무튼 대한민국은 땅 많고 집 많은 부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맞수 끌어안기’

버럭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7일 대선 경쟁자였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과 만나 주요 현안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오바마와 매케인, 두 사람은 시카고에 있는 오바마 정권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회동을 마친 뒤 공동성명을 내어 “미국인들은 두 지도자가 현 시기의 긴급한 도전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워싱턴의 ‘나쁜 관행’을 바꾸는 데 협력하기를 바란다는 데 동의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 2주가 채 안돼 경쟁 상대와 만나 화해·협력을 다짐하고 공동성명까지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매케인 의원은 회동에 앞서 오바마 정부를 도울 것인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오바마 당선자는 이보다 사흘 앞서 힐러리 상원의원에게 국무장관직 수락을 제안하고 힐러리는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 국무장관’이 유력해진 가운데 오바마 정권 인수위는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8년 설립한 자선 재단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CGI)’의 재정과 퇴직 뒤 활동에 대한 검증에 착수했다. 힐러리가 국무장관을 맡게 될 경우 클린턴 전 대통령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려는 것이다. 힐러리의 ‘마지막 관문‘은 남편이 된 셈이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오바마의 경험 부족을 비판했던 힐러리 의원의 최대 강점은 퍼스트레이디로, 또 상원 군사위 활동을 통해 쌓은 인맥과 외교·군사 분야의 경험이다. 힐러리는 북핵문제를 두고서 6자 회담의 틀의 유용성을 지지하면서 북한과의 직접 대화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전제조건 없는 정상회담엔 반대한다. 오바마도 신중한 준비 과정을 거친 정상회담 쪽으로 후퇴한 상태다. 차기 미국대통령 오바마가 최대 라이벌이었던 매케인과 힐러리를 동지적인 관계로 다시 만나고 있는 것은 ‘맞수 끌어안기(Team of Rivals)’ 덕분이다. 지난날 우리나라 대통령 당선자들이 취임 전 보였던 졸렬한 행보와는 전혀 다르다. 대통령 경선자, 경쟁자를 무슨 철천지 원수처럼 대하던 한국 대통령들이 ‘맞수 끌어안기’를 흉내라도 냈었다면 오늘날 정치판이 이렇게 타락하진 않았다. /임병호 논설위원

仁者有敵?

빨치산이던 외할아버지는 비전향 장기수로 있다가 자연사했다. 작은 외할아버진 5·18때 광주(光州)에서 진압군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탤런트 문근영씨(21) 외가의 시대적 비극이다. 문씨가 ‘기부천사’로 알려지자 이런 외가의 일을 들먹이는 악플이 나왔다. 심지어는 그의 기부행위는 “빨치산의 심리전”이라며 “좌파의 음모”로 규정하기도 했다. 정신나간 소리다. 문씨는 5·18 세대가 아니다. 빨치산 세대는 더욱 아니다. 친가도 아닌 외가의 전력을 외손녀와 연관 짓는 것은 무리다. 또 “돈 몇 푼 쥐어주고 생색낸다”는 악플도 있다. 문씨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6년간 기부한 금액이 무려 8억5천만원이다. ‘돈 몇 푼’이 아니다. 익명으로 기부했다. 본인은 철저히 당부한 익명을 들춰낸 것은 매스컴이다. ‘생색낸다’는 건 당치않다. 세상을 살다보면 별의별 일이 있긴 있다. 그렇긴 하지만 문씨의 경우 악플은 봉변이다. 본인의 좋은 뜻이 철저하게 왜곡당한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클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꽃동네 오웅진 신부는 “제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용서는 하지만, 그들을 사랑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자신의 업무상 횡령 등 혐의에 대한 무죄 확정 판결이 있고난 뒤의 일이다. 그는 7년동안 ‘악덕’의 누명을 뒤접어쓴 채 심신의 시달림을 받으면서, 꽃동네 시설은 시설대로 엉망이 되는 고통을 인내해야 했던 것이다. 발단은 꽃동네 인근에 난 광산 허가를 반대한 것이 모함을 산 화근이 됐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고 했다. ‘인자불우’(仁者不憂)란 말도 있다. 어진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므로 적대시하는 사람이 없고, 어진 사람은 마음에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사는 또 틀린 말은 아니어도 말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인 것 같다. 오웅진 신부가 그렇고, 문근영씨의 경우가 그러하다. 좋은 일을 하면서 좋은 소릴 못듣는 이들은 이외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은 어진이들이 있으므로 하여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임양은 주필

골목길 주차난

‘가까운 이웃이 멀리 있는 친척보다 낫다’고 했다. 옛 말이다. 지금은 아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서로 모르고 산다. 별미를 만들면 이웃 간에 돌려 나눠먹곤 했던 옛 이웃 정리는 간 곳 없다. 지금은 설령 음식을 나눠 전처럼 돌린다 해도 반기지 않는 세태다. 버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웃 사촌’의 개념은 전래의 미풍양속이던 것이 무관심의 대상이 된 지가 벌써 오래 됐다. 그런데 무관심도 아닌 ‘이웃 원수’로 만든 것이 주차난이다. 주택가의 이면골목은 밤마다 주차 문제로 이웃 간에 신경전이 날카롭다. 고성을 지르는 쌈질이 비일비재하다. “왜 남의 집 앞에 주차했냐?”느니, “집앞도 길인데 길바닥에 문패 달았냐?”느니 언쟁도 가지가지다. 주차난이 이토록 신경을 돋우는 불화의 악재가 되고 있는데도 별 뾰족한 방안이 없다 보니 점점 더 험악해진다. 한동안 차고지증명서란 말이 있었다. 지자체가 발행하는 차고지증명서가 있어야 차를 뽑아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결국 말만 나왔다가 흐지부지된 덴 이유가 있다. 제도 자체는 그럴 듯 하지만 차고지 있는 집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게 해서는 자동차 수출도 어려운 판에 내수까지 둔화시켜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불법주차를 단속은 해도, 한편으로는 골목길 불법주차가 불가피하다. 이런 현실 문제를 전제해 두고 자동차의 수요공급을 이루고 있는 모순된 묘한 처지에 있다. 그런데 이웃 간의 담장 허문 공간을 이용해 주차난을 해결하는 데가 있다. 인천시 부평구가 추진하고 있는 ‘그린파킹사업’이다. 지겨운 주차 시비도 없어지고 담장을 없애고 보니 마음의 담장도 없어져 친해지게 됐다는 소식이다. 부평구는 담장의 주차장 만들기에 일정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데, ‘빌딩형 공영주차장’을 만드는 것에 비해 12%밖에 안 들면서 주거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임양은 주필

낙엽

흩 날리며 지는 낙엽, 우수수 지는 낙엽, 하늬바람은 낙엽을 재촉한다. 지는 낙엽의 허우적 거림은 보는 이의 맘을 시리게 한다. 앙상해진 나뭇가지 새에 드러난 파란하늘 사이로 겨울이 오고, 떠가는 구름은 세월같아 세모가 벌써 저만치 성큼 다가선다. 산야의 단풍나무만이 단풍이든가, 시가지 가로수 단풍도 단풍이다. 빨간 느티나무 단풍잎, 노란 은행나무 단풍잎이 떨어져 곱디곱게 보도에 수북히 깔린다. 길가는 이의 발에 채여도 밟혀도, 말이 없는 것은 나무를 위한 마지막 순절의 묵언이다. 환경미화원의 빗자루질이 부질없다. 낙엽은 쓰레기 같지 않아 계절의 정취를 풍긴다. 낙엽 또한 자연이다. 자연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서울시의 낙엽 치우기 작업은 공연하다. 많은 돈을 들여 그 많은 낙엽 치우기에 날마다 바쁜 모양이다. 담뱃불을 떨어뜨려 불이 나거나 길가는 사람이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염려는 기우다. 낙엽을 놔두는 것도 시민정서를 위하는 것이다. 그대로 두어도 절로 소진된다. 대공원이나 큰 농원에 퇴비용으로 보낸다지만, 퇴비로 필요하면 긴요한 측에서 낙엽을 잘 모아 가져갈 일이다. 수원시가 ‘낙엽밟는 거리’를 선정했다. 매탄공원(매탄동), 살구골공원(영통동), 벽적공원(영통동), 중앙공원(권선동), 장안공원(영화동), 만석공원(송죽동), 여기산공원(서둔동) 등 7군데에 총 연장 2.4㎞ 거리다. 과천시에는 중앙동 등지에 ‘걷고 싶은 낙엽의 거리’가 있다. 고양시는 시민들이 낙엽의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충장로 등지의 낙엽을 치우지 않는다. 낙엽의 거리를 둘이 걷는 것도 좋지만 혼자 걸으며 고독을 반추하는 맛도 나쁘진 않다. 낙엽도 잎이고 낙화도 꽃이다. ‘낙화인덜 꽃이 아니랴 / 쓸어 무삼하리오’는 간밤의 비바람에 떨어진 꽃을 안쓰러워 해 윤선도가 읊은 시조의 한 대목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면서 가사문학의 대가를 이룬 이다. 하늬바람은 낙엽을 재촉하고, 낙엽지는 허우적 거림은 보는 이의 맘을 시리게 한다. 하지만 이도 대자연의 이치다. / 임양은 주필

경조사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인 이상 전국 가구가 지난해 지출한 경조사비(慶弔事費)가 평균 51만9천원, 한해동안 국민의 경조사비로 사용한 돈은 7조6천681억원 이었다. 관련 통계가 있는 2003년 이후 4년 간 2인 이상 가구의 경조사비 지출액 증가율은 18.7%로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11.6%)보다 높았다. 경조사비 지출액이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생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경조사비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상호부조 또는 사회보험’ 성격이 짙었지만 도시화와 개방화로 공동체의 범위가 불분명해지면서 ‘주고 받기’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예컨대 결혼한 동료가 이직, 퇴직을 하면 돌려받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쪽에 돈이 몰리고 사회적 약자일수록 물질적으로도 손해를 보는 불평등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 문제는 경조사비의 ‘참뜻’의 빛이 바래지는 경향이다. 경조사비를 내는 것은 네트워크를 쌓는 기능을 한다. 가령 ‘내가 이 모임(그룹)에 속해 있다’는 신호를 보내거나 때로는 이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행사에 참석하거나, 축의금만 내고 정작 식장에는 들어가지 않는 일부 관행도 이와 무관치 않다. 때로는 뇌물의 성격까지 띤다. 정권의 실세자 자녀 결혼식에 한 사람이 수백만원, 수천만원의 축의금을 냈다는 설(說)이 풍문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부조금이나 화환 대신 쌀 봉투를 받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이 생기는 등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만 낡은 관행을 바꾸려면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오래 된 얘기지만 수원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심재덕씨는 자녀의 결혼식 때 축의금을 일절 받지 않았다. 물가가 상승되긴 했지만 요즘 결혼식 축의금으로 3만원을 내려면 웬지 인색하거나 궁티를 보이는 것 같아 석연치 않긴 하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면야 넉넉히 내는 게 기분 좋은 일임은 말 할 나위 없다.그런데 가계가 어려워 하는 수 없이 맨손으로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친지를 얼마 전 보았다. 진정한 하객은 바로 그런 사람이지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林 和

임화(1908~1953)는 한국문학의 풍운아다. 임화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중앙위원회 서기장을 역임한 좌익문예활동가이자 ‘네거리의 순이’ ‘우리 오빠와 화로’ 같은 ‘단편 서사시’를 최초로 시도한 시인이다. 선구적인 리얼리즘론과 민족문학론을 개진해 1970, 80년대 민족문학론의 골간을 마련한 문학비평가로 ‘개설 신문학사’ 연재를 통해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입각한 문학사 연구의 깊이를 실증해 보인 문학사가이기도 하다. 임화는 특히 빼어난 외모로 ‘유랑’ 등 영화에도 주연배우로 출연한 바 있는 전방위적 예술가였다. 그러나 1947년 말 월북해 1953년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계열이 숙청될 때 ‘미제의 스파이’로 몰려 사형 당했다. 그후 임화는 남에서나 북에서나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다. 그렇게 역사의 미아가 돼 한국문학사의 뒤안에 내팽겨쳐져 있다시피 한 임화가 되살아나고 있어 매우 반갑다. 우선 지난 2월 창립 10주년 자리에서 ‘임화문학상’ 제정 사실을 공표한 바 있는 소명출판(대표 박성모)이 임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염무웅)를 정식 출범시키고 내년 10월 제1회 시상을 목표로 활동에 들어갔다. 운영위원으론 신경림·구중서·임형택·도종환 씨 등이 참여했다. 임화가 시와 비평, 문학사, 문예운동에 두루 걸쳐 활동한 문인인 만큼 임화문학상 수상자 역시 전인적 활동을 보여준 문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8권으로 발간될 ‘임화문학예술전집’은 특히 기대된다. 전집은 ‘시’ ‘문학사’ ‘문학의 논리’ ‘문학평론 1’ ‘문학평론 2’ ‘산문 1’ ‘산문 2’ ‘연보, 색인, 화보’ 등으로 이루어진다. 월북문인 해금 직후인 1988년, 몇몇 출판사에서 전집 발간을 시도했었으나 ‘현해탄’ ‘문학의 논리’ ‘임화 신문학사’ 등의 간헐적인 출간이 있었을 뿐 임화의 글을 총망라한 전집이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근대문학사 연구는 임화에게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풍부한 창조성과 현재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임화에게서 퍼올릴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월북문인이라는 죄(?) 아닌 죄로 한동안 가려졌던 임화의 문학이 전체적으로 조명되는 게 기쁘다. /임병호 논설위원

몰디브

몰디브(Maldive)는 인도양에 있는 섬 나라다. ‘맬다이브’라고도 발음 한다. 1천100여 개의 섬 면적이 모두 298㎢다. 이 가운데 210여개의 섬에서만 사람이 산다. 주로 산호도다. 산호초가 해수면에 노출되어 형성된 섬이다. 인구는 17만여 명이다. 1887년부터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다가 1965년 7월에 독립해 1968년 공화국이 됐다. 말레(Male)가 수도다. 소국이라기 보다는 초미니 나라다. 나라는 작지만 국민은 행복하다. 열대식물이 풍부하고 어업이 발달됐다. 관광수입이 짭잘하다. 연간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큰 걱정거리가 있다. 국토가 바다에 점점 잠기는 것이다. 몰디브의 수몰 위기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10여년 전부터 해수면이 섬 위로 차올라 오는 것이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m에 불과하여 언젠가는 바닷속에 잠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것이 몰디브의 운명이다. “온 국민이 이주할 새로운 국토를 사겠다”는 것은 새로 당선된 모하메드 나시드 대통령의 신임 포부다. “기후 변화를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곳에 땅을 사야만 한다”면서 관광수입에서 재원을 적립해 가겠다고 밝혔다. 사람이 사는 110여 개의 섬에 해수를 막는 보호벽 장치도 생각해 봤지만, 땅을 새로 사는 것이 아무래도 비용이 덜 들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몰디브를 떠난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인도양의 어느 곳에 새로운 정착 예정지를 희망한다는 것이 몰디브 대통령의 설명이다. 몰디브의 수몰 위기는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가져온 재앙이다. 이렇긴 해도 직접적인 원인이 뭣인지는 아직 미궁이다. 북극의 빙산이 녹고 있어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구체적인 경위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뭔가, 지구촌에 심각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남·북극의 빙산이 균열을 일으켜 바다에 떨어진 빙벽이 유빙이 되어 바다를 뒤덮으며 녹아가고 있다. 몰디브의 국토 이전은 몰디브에 국한하지 않는 인류의 미래 재앙을 예고한다 할 수 있다. /임양은 주필

왼손잡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왼손잡이다. 오바마와 겨뤘던 매케인도 왼손잡이다. 그런데 근래의 미국 대통령 중에는 왼손잡이가 많다.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부시 대통령 아버지), 빌 클린턴 등이 모두 왼손잡이 대통령이다. 현 부시 대통령만 아버지 대통령의 왼손잡이를 닮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무소속이던 로스 페로 역시 왼손잡이로 클린턴, 아버지 부시 등 후보들 모두가 왼손잡이었다는 사실이다. 2000년 대선에서 아들 부시에게 패배한 고어도 왼손잡이다. 그러니까 고어가 당선됐다면 미국 대통령 5명이 줄이어 왼손잡이일 뻔 했던 것이다. 왼손잡이 미국 대통령은 이전에도 있었다. 존 가필드, 하버트 후버, 해리 트루먼 등도 왼손잡이로 확인됐다. 미국 대통령 중엔 이밖에 미확인된 왼손잡이가 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왼손잡이는 정상은 아니다. 습관의 기형이다.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녀가 왼손잡이일 것 같으면 부모가 걱정을 해 고치도록 힘썼다. 이런 생각은 서구사회도 마찬가지였다. 일하는 게 서툴어 보이는 편견을 갖기도 했다. 심지어는 저주받은 악이라는 관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왼손잡이는 다만 습관의 차이일 뿐이다. 왼손잡이라고 해서 이상하게 보는 관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젠 없다. 왼손잡이는 약 10%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상한 것은 10% 정도에 불과한 왼손잡이가 미국 대통령에 많다는 점이다. 당선된 대통령만이 아니고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사람들도 왼손잡이가 많다. 대통령이 됐거나 나섰을 정도의 사람 같으면 보통은 넘는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심리학에는 바른손잡이 보다 왼손잡이의 성취도가 높다는 학설이 있다. 어려서부터 왼손잡이가 겪는 어려움을 극복해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뇌기능의 특수성이 더 영향이 많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왼손잡이에 대한 학구적인 본격 연구가 있을법 하다. /임양은 주필

美 대선 ‘진문기문’

오바마 44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민주당 출신의 15번째 대통령이 된다. 명문대 하버드대학 출신으로는 7명째다. 47세의 오바마는 최연소 대통령으로는 기록에서 4살 더 많다. 26대 리어드 루스벨트가 43세 당선자의 기록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대학을 안 나온 대통령도 많아 33대 트루먼 등 고졸 이하의 대통령이 9명에 이른다. 4대 제임스 매디슨은 키 163㎝에 몸무게 45㎏, 비록 왜소했으나 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해 ‘헌법의 아버지’로 불렸다. 7대 앤드류 잭슨은 100회 이상의 결투 경험이 있는 소문난 결투군의 군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어 저격을 받았으나 결투꾼답게 위기를 모면했다. 최단명 대통령은 12대 자카리 테일러, 멕시코 전쟁의 영웅인 육군 대장으로 퇴역해 당선의 영광을 안았으나 취임 6개월만에 급사했다. 15대 제임스 부캐넌은 변호사 출신으로 평생 결혼하지 않은 독신주의자다. 22대 스티븐 클리블랜드는 퇴임후 1대를 걸러 재선된 이색 기록의 보유자다. 암살된 대통령은 16대 에이브라함 링컨, 20대 제임스 가필르, 23대 윌리엄 머킨리, 35대 존 F. 케네디 등 4명으로 케네디만 민주당이고 나머지 사람은 모두 공화당이다. 38대 제럴드 포드는 대통령 선거를 안치르고 대통령이 된 행운아로 미국 헌정사상 유일한 케이스다. 1974년 10월 스피로 예그뉴 부통령이 뇌물수수 의혹으로 사퇴하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당시 하원 의장이던 포드를 부통령으로 지명했다. 그런데 이듬해 8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대통령직을 사퇴하게 되어 포드가 부통령으로 대통령 자릴 물려 받았다. 미합중국 50개주 가운데 대통령을 단 1명도 배출하지 못한 주가 33개주나 된다. 대서양 지방의 남부나 동북부 등 17개주에서 대통령이 나왔다. 대통령이 나오지 않은 주는 주로 서부지역이다. 미국민의 흑인은 약 27%다. 미국 대선을 둘러싼 진문기문은 이밖에도 또 있지만 이번 44대 선거에서 흑인 대통령이 나온 이상으로 더한 이변은 없다. 오바마는 영광을 한몸에 받은 것 만큼 한편 고생도 많을 것이다. / 임양은 주필

감은 크게 떫은 감과 단감으로 나뉘는데, 단감은 일본을 통해 1900년 무렵에 들어왔다. 한국·중국·일본이 원산지로 조선 초기에 감이 진상품이었던 것을 보면, 재배는 훨씬 이전일 것으로 추측된다. 감은 황금빛 옷 속에 신선이 마시는 단물이 들어 있다고 해서 ‘금의옥액(金衣玉液)’으로 불릴 만큼 영양가가 풍부하다. 감 한 개면 성인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비타민A와 C를 모두 섭취할 수 있어 감기 예방에 도움을 준다. 또 어린 감잎이나 감꼭지 등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 별칭이 ‘팔방미인 과실’이다. 감의 맛이 처음에 떫은 것은 타닌 성분 때문이다. 타닌은 수렴작용이 뛰어나 설사나 위궤양 증세가 있는 사람에게 좋다. 또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고혈압이나 동맥경화가 있는 사람에게 감처럼 좋은 간식이 없단다. 숙취 해소에도 감만한 것이 없다. 우는 아이 울음도 멈추게 하는 곶감은 술독으로 우는 어른들의 울음도 그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겨울철 홍시는 아이들의 영양 섭취에도 좋지만 치아가 부실한 어르신들 간식으로도 그만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감 품종만도 200종이 넘는다. 연시(홍시)·곶감(건시·관시·백시)·땡감·골감·반시·소시·둥시·두리감(월하시)·대봉시·고종시·사곡시·(상주) 분시·(예천) 수종시·(임실) 먹시 등 많다. 이 중 고종시는 고종 황제에게 진상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며, 땡감은 덜 익어 맛이 떫은 감으로 따뜻한 소금물에 넣어두면 떫은 맛이 사라진다. 여름철 비 오는 날 뒤란 감나무 밑에 가면 땡감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실에 꿰어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가 떫은 맛이 채 사라지기도 전 어머니 몰래 꺼내 먹었다. 어린 시절의 땡감은 그래도 여간 맛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바야흐로 ‘감의 계절’이다. 농촌엔 감나무가 없는 데가 없고, 감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고장도 있어 운치를 더해 준다. 요즘은 도시에도 감나무가 많다. 여름날 지던 감꽃, 단풍 든 감나무 잎은 또 얼마나 예쁜가. ‘감 고장의 인심’은 인심이 퍽 순후함을 이르는 말이다. 겨울날 까치가 먹으라고 감나무 꼭대기에 달린 감 몇 개는 따지 않은 어르신들의 인심이 그립다. /임병호 논설위원

백봉 문학비

1960대 초반엔 수원(水原)에 문단이 없었다. 일본강점기 및 광복 직후엔 홍사용·최영주·홍난파·나혜석·박팔양·박승극·김수환·이희영 등이 수원지방 출신으로 활동했었다. 20여년의 공백기를 거쳐 1963년을 전후해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오영일·김윤겸·문백희 등이 주축이 된 아마추어 동인회 ‘서호림’ ‘에뜨랑제’와 1965년 임병호가 주재한 전국 규모의 詩 동인 전문지 ‘화홍시단’이 결성됐다. ‘서호림’과 ‘에뜨랑제’는 곧 활동을 중지했으나 ‘화홍시단’은 1966년 창간호를 낸 이래 1983년까지 동인지를 발간했다.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는 1966년 4월 창립됐는데 당시 멤버는 수필가 안익승, 시인 임병호·김석희 등 3인이었다. 소설가 김광주·김영희 등이 수원 출신이었지만 이들은 수원을 떠나 주로 서울에서 활동한 까닭에 수원문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였다. 문협 수원지부 초대 지부장 안익승은 창립 후 백일장·시화전 등을 비롯, 윤석중·어효선·김동리·백철·양명문·손소희·안수길·김남조·정창범·허근욱·조연현·이형기 등을 초청, 문학강연회를 열어 지역에 문학의 향기를 불어 넣었다. - ‘수원시사·하’. 요즘 수원문협 회장으로 17년, 수원예총 회장으로 7년 간 봉사한 백봉(白峯) 안익승(安益承·1920~2001.4.25) 선생의 문학비를 화성시 마도면 해문리 묘소 앞에 건립하기 위한 운동이 ‘백산회’(白山會)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백산회’에는 수원에 거주하는 전·현 도 단위 문학단체장 모임으로 백봉 선생 문학비 건립을 오래 전부터 논의해왔다. ‘백봉 안익승 선생 문학비 건립추진위원회’ 결성을 계기로 수원문인협회·경기여류문학회·수원여류문학회 회장이 추진위에 합류했다. ‘달력 없는 세월에’ ‘겨울 보리밭’ 등 수필집과 각종 사서(史書)를 남긴 백봉 선생은 고위 공직을 역임하면서 수원지역발전과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헌신했다. 특히 문화원장, 사학자로서 구비문학을 정리하고 문화재위원. 한국유네스코 경기도협회 회장 등으로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 후학들의 귀감이 됐다. 2009년 봄날 제막될 백봉 문학비 건립에 수원문단은 물론 각계 각층의 동참이 기대된다. / 임병호 논설위원

이근안 목사

고문기술자란 게 있다. 혐의 사실의 자백이나 조작된 범죄의 시인을 강요하는 수단이다. 고문을 해도 육체적으로 증거가 될 흔적을 남기지 않고 육신의 고통을 참기가 힘겹도록 가하는 기술이다. 이근안 경감은 고문기술자로 불렸다. 1985년엔 경기도경 대공분실에 근무했었다. 그 해 민청학련 의장이던 김근태 전 국회의원을 고문하면서 불법을 자행한 혐의로 수배됐던 게 1988년 12월이다. 무려 10년 10개월의 도피 행각을 벌였다. 잡지않는 것이냐, 못잡는 것이냐는 등 의문이 분분하던차 1999년 10월 검찰에 자수했다.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여주교도소를 출소한 것이 2006년 11월이다. 이런 그가 목사가 됐다. 교도소에서 복역 중에 한국교정선교회의 통신교육을 통해 신학을 공부했다. 출소한 뒤엔 총회 신학교를 졸업했다. 전도사가 되어 100여회의 집회에 간증을 다녔다. 선교목사의 안수를 받은 것은 지난달 30일이다. 이날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가진 목사 임직 예배자리에서다. 기독교 관계자들은 그를 가리켜 “기독교인으로 완전히 거듭났다”고 말했다. 고문 기술자의 목사 변신은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다. 1970년 순경으로 출발, 경감까지 올랐다. 이 과정에서 자행한 그의 고문 기술은 나름대로의 생각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놓고 생각해 보니 정권의 주구 노릇을 한 것밖에 안 된다는 참회가 들었을지 모른다. 교도소 복역 중 신학에 심취한 게 그같은 짐작을 하게 한다. 그의 회개는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정권은 유한하다. 유한한 정권에 충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의 남용은 영달이 아닌 폐가망신의 길임을 일깨웠다. 오늘의 권력자들도 깊이 새겨둬야 할 일이다. 고문의 달인이 선교목사가 된 큰 변신을 보면서 그의 용기있는 결단을 높이 산다. 뒤늦은 신학 공부에 어려움이 많았을 터인데도 애로를 극복해낸 것은 인간 승리다. 나이 70이다. 인생 칠순에 제2의 인생을 새 출발하는 목회자의 앞길에 노익장의 축복이 있기를 빈다./임양은 주필

실험용 동물

‘수금의 생명이어, 품성은 다르나 목숨은 같으니라. 아까운 생명이지만 의로운 죽음을 피하지 않음이니, (중략) 사람을 원망하지 말지어다’ 동물 위령제 제문의 한 대목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식품의약품안정청에서 실험용으로 희생된 동물 위령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위령제는 ‘동물공양지비’(動物供養之碑)라고 새겨진 위령비 앞에서 거행됐다. 제상에는 쥐·토끼·원숭이 등 실험용 동물들이 좋아하는 사료며 과일이 가득했고, 식약청 등 직원 60여명이 참석해 국화 헌화와 함께 묵념을 했다고 한다. 위령제는 식품의약품안정청, 국립독성과학원, 질병관리본부 등 실험용 동물을 주로 많이 사용하는 세 기관이 합동으로 거행했다. 이 세 기관에서 연간 사용하는 실험용 동물이 약 5만 마리에 이르고 이 가운데 쥐가 90%가량 차지한다. 쥐도 여러가지다. 가장 많이 실험용으로 쓰는 쥐는 생쥐에 속하는 마우스(mouse)다. 마우스는 애완용으로도 키우는 데 흑색·갈색·담색 등 여러 색깔이 있으나 흰색이 대부분이다. 번식력이 강해 한 번에 5~7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제2차대전 때 만주를 점령했던 일본 관동군은 하얼빈에 생체실험 부대를 두어 산 사람을 실험용 동물처럼 썼다. 독가스를 개발할 때마다 사람을 가스실에 넣어 죽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변화를 관찰했다. 특수 세균을 만들어 감염 및 발병 경로를 연구하기도 했다. 방사능에 대한 인체 반응도 조사했다. 이 같은 화생방전(화학전·세균전·방사능전)의 실험용 인간을 ‘마루타’라고 했는데, 마루타 공급조가 따로 있어 중국인과 조선 사람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납치하기가 일쑤였다. 인명 살상의 전쟁을 위해 생 사람을 실험용으로 쓴 잔인 무도한 사례는 일본 말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실험용 동물은 전쟁이 아닌 인류를 위해 희생된 것이지만, 그 수가 한 해에 5만 마리나 되는 것은 그도 생명체인 점에서 안쓰럽다. 생명의 고귀함을 기리기 위해 위령제를 가졌다는 것은 대견하다. 실험용 동물에 대한 그 같은 생명의 가치 평가는 한편 인명의 소중함을 더 한층 일깨워 준다. 생명의 신비스러움은 실로 경외감을 갖게 한다. /임양은 주필

불가사리

불가사리는 상상의 동물이다. 곰 같은 모양에 코끼리 코, 무소의 눈과 쇠꼬리에다 호랑이 다리를 가졌다. 역시 상상의 동물인 용을 서기(瑞氣)로 치는 것처럼 불가사리도 악몽을 물리치고 사기(邪氣)를 쫓는 것으로 전한다. 경복궁 굴뚝 밑에 불가사리가 새겨진 것은 굴뚝을 통해 침입하는 것으로 여긴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한 주술이다. 그런데 불가사리가 이변을 일으킨 전설이 있다. 고려말 나라가 어지러울 때, 개경(개성)에 불가사리가 나타나 쇠란 쇠는 무기든 농기구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활을 쏴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어느 현인이 불로 없앨 수 있다고 하여 그의 말에 따라 가까스로 죽였다고 한다. 죽일 수 없었다 하여 ‘불가사리’(不可殺伊)라 하고, 한편으로는 불로 죽였다 하여 불가사리’(火可殺伊)로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상상의 동물이 아닌 실재(實在)의 불가사리가 바다 속에 있어 인간을 꽤나 괴롭힌다. 불가사리 강에 속하는 극피동물의 총칭이 불가사리다. 별 모양의 몸체를 조각내도 죽지 않고 조각난 채 살아나 더 늘어나는 골치아픈 동물이다. 국토 연안이 불가사리로 애먹는 가운데, 옹진 앞바다엔 특히 심해 피해가 막심하다고 한다. 전복, 소라 등 소중한 어민들의 패류 어자원을 불가사리가 마구 먹어치워 씨를 말릴 지경이라는 것이다. 군 부대와 주민들이 단 이틀 동안에 무려 9천㎏을 건져냈는데도 바다 속은 여전히 온통 불가사리 천지라는 소식이다. 예전엔 별로 보이지 않던 불가사리가 갈수록 늘어난 이유 또한 밝혀지지 않아 구제책이 막막한 실정이다. 그냥 해수 온도가 상승한 기후 변화와 유해물질의 유입 등으로만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당국은 어민들이 그물에 걸려 올라온 불가사리를 ㎏당 1천원에 사들이는 게 고작이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동강내도 죽지않는 바다 불가사리는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던 육지 불가사리를 불로 다스렸던 것처럼 불에 태워야만 완전히 없앨 수가 있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보니 육지 불가사리가 아닌 바다 불가사리가 설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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