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후유증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쟁은 증오와 적대심에서 비롯한 가장 극렬한 갈등이 폭력적으로 표출된 상황이다. 전쟁에는 파괴와 살상이 뒤따른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 피해에서 비껴갈 수 없다.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다는 점은 전쟁의 가장 잔혹한 면모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폭력이 진짜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후유증이 오래 간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현대사는 특히 그렇다. 한국전쟁의 폐해는 실제 전쟁이 치러진 시점(1950~1953년)에서 반세기기 흐른 지금에도 부정적인 그림자를 남북 사회에 두루 짙게 드리우고 있다. 군사적으로 세계 최대강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대결하기 위해 전체 사회를 병영국 모습으로 꾸며 놓은 북한 사회는 말 할 것도 없다. ‘빨치산 체제’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남쪽 역시 전쟁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전쟁으로 생겨난 집단적 피해의식은 ‘아군이 아니면 적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보편화했고, 제대로 된 토론을 하기 힘든 비합리적 사회를 만들었다. 왜곡되고 고정된 성 역할을 강조하거나, 성차별적 가부장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등의 문제도 사실은 군사주의와 직간접으로 맞닿아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피해도 막대하다.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되기 전까지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하는 ‘전쟁 대비 비용’, 곧 분단 비용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체재 경쟁이 사실상 끝난 상태인데도 남북한 통틀어 가장 좁은 면적에 가장 많은 전투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남북 모두 국방비의 비중을 줄인다면 여느 나라에 뒤떨어지지 않는 복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이제 상식이 됐다. 그러나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제의를 거부하고 그것이 “분열을 영구화하기 위한 방패로 들고 나왔다가 오물장에 처박힌 반통일 골동품”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에서 보니 한반도는 하나”라고 했는데 전쟁의 후유증이 너무 아프다. / 임병호 논설위원

부모의 마음

“대저 재주가 높고 빼어난 인물이 되는 것, 호걸이 되는 일은 내가 실로 바라는 바가 아니다. 다만 너희가 삼가 이 가훈을 지켜서 삼가는 선비’로 불리며 선조에게 부끄러움을 끼치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 조선 초기의 문신 신숙주(1417~1475)가 8남1녀 자식들에게 남긴 가훈이다. 신숙주는 이 글에서 ▲조심(操心·마음을 다 잡는 것) ▲근신(謹身·몸가짐을 삼가는 것) ▲근학(謹學·부지런히 배우는 것) ▲거가(居家·집안 생활) ▲거관(居官·벼슬살이) ▲교녀(敎女·딸 교육) 등 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눠 행동지침까지 적시했다. 숙종 때 진도로 유배된 문곡 김수항(1629~1689)은 사약을 앞에 놓고도 정적(政敵)을 원망하지 않고 “집안에 독서하는 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영의정까지 올랐던 그는 사약을 받은 뒤 자식들에게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높은 요직을 멀리하라” “부지런히 여러 자식을 가르쳐라”고 당부했다. 한음 이덕형(1561~1613)은 지방 고을 원이 되어 나가는 아들에게 “너는 채 배우지도 않은 아이인데 임금의 은혜를 입어 갑작스레 주부(主簿)가 되었다. 내가 이미 나라를 저버리고 곳간을 훔쳐서는 안 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네가 또 내 음덕으로 백성의 수령이 되었다.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모두 무어라 손가락질을 하겠느냐”고 엄히 말했다. 조선 중기의 학자 김휴(1597~1638)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42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다. 그는 외아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어두운 때를 만나 정치는 혼탁하고 어지러웠다. 이에 자취를 숨길 작정으로 과거 공부도 그만두고 감히 술 마시는 것만 일삼았다. 마침내 ‘술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자, 속으로는 몸을 보전하는 좋은 계책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후회해도 소용없구나. 너는 마땅히 이를 몹시 경계하라”고 썼다. 자신은 비록 평생 술을 벗했더라도 자식은 그 술을 멀리하라고 했다. 부모들의 훈계는 잔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시시콜콜하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게 자식 사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두꺼비

두꺼비는 더터비·두텁·거비라고도 했다. 한자로는 섬여· 축추·추시·섬제·나하마 등으로 불린다. 주로 저산지대의 밭이나 초원에 서식한다. 산란기인 봄이 되면 연못에 모여들어 집단 번식을 하며, 장마 때는 인가로 모여든다. 먹이는 주로 곤충의 유충을 먹으며 육상달팽이·노래기·지렁이 등도 먹는다. 두꺼비에 관한 기록은 비교적 일찍 나타났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애장왕 10년 6월에 개구리와 두꺼비가 뱀을 먹은 사건이 기록돼 있고, 백제본기엔 의자왕 20년 4월에 개구리와 두꺼비 수만 마리가 나무 위에 모였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조(前後所將舍利條)에도 지장법사가 가져온 사리와 가사를 지키는 동물로 기록돼 있다. 이처럼 두꺼비는 나라의 흥망을 나타내는 조짐으로, 또는 불보(佛寶)를 지키는 신령스런 동물로 여러 기록에 나타난다. 민간에서는 두꺼비가 나오면 장마가 든다고 하고, 두꺼비를 잡으면 죄가 된다고도 한다. 영남지방에서는 두꺼비가 허물을 벗는 것을 보면 길하다고 여긴다. 두꺼비는 의뭉스럽고 지혜 있는 동물로 인식됐다. 두꺼비에 관한 설화는 많다. 특히 두꺼비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동물이고 신비한 능력을 갖춘 동물로도 나타난다. ‘두꺼비 보은’이란 설화는 두꺼비에게 밥을 나눠주던 처녀가 마을 당신(堂神)의 제물로 바쳐지게 되었을 때, 따라가서 사람을 잡아먹던 지네를 죽이고 자기도 죽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등장하는 두꺼비는 은혜를 갚을 뿐 아니라 한 마을의 화근을 제거하는 영웅적 행위를 한 동물이기도 하다. 시가(詩歌)·민요에도 많이 등장한다. 아이들이 흙 속에 주먹을 묻고 두꺼비에게 “헌집 줄 게 새집 달라”는 내용의 동요를 부르기도 한다. 두꺼비는 많은 우화·민담·민요 등에서 슬기롭고 의리 있는 동물로 형상화되고 있는데 이번 중국 쓰촨(四川)성의 ‘원촨(汶川) 대지진’에서 입증됐다. 지진 발생 사흘 전부터 쓰촨성 원촨현 인근의 주(綿竹)시와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 등에서 두꺼비떼 수십만 마리가 이동하면서 전조를 가르쳐줬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겨 수십만 명이 참변을 당했다. 자연재앙 징후를 사전 감지하는 두꺼비들의 능력이 놀랍다. /임병호 논설위원

설봉산성 복원

성곽사(城郭史)로 보아 기원 전후는 1기에 해당한다. 성읍국가에서 전제왕권이 확립된 시기다. 방어용 축성이 활발하기 시작했다. 한반도는 산세가 많아 주로 능선을 이용한 산성이 축성됐다. 이 무렵 산성 축성의 기술상 특징은 돌을 이용한 내탁식 방법인 점이다. 자연석을 그대로 썼다. 활석의 평평한 한쪽면을 성벽 바깥쪽으로 맞대어 쌓고, 그 안쪽에 석재에서 나온 돌 부스러기를 넣은 다음에 다시 그 안쪽을 흙과 잡석으로 채웠다. 최소의 작업량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는 공법이었던 것이다. 여주 파사산성(사적 251호), 이천 설봉산성(사적 423호)은 성곽사상 1기에 해당된 축성이다. 삼국시대가 갓 시작될 무렵이다. 그런데 이를 복원한다는 것이 되레 망쳐놨다고 한다. 본보 동부취재팀의 기동취재 보도다. 아닌게 아니라 엉망이다. 기사도 그렇지만 보도사진을 봐도 한 눈에 드러난다. 복원했다는 설봉산성 모양새가 마치 담벽 같다. 산성의 형태라고는 도시 찾아볼 수가 없다. 자재도 자연석이 아닌 화강암 자재를 벽돌처럼 채곡채곡 쌓은 게 활석을 이용한 내탁공법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엉터리 복원을 위해 지난 10년 동안에 10억원이 쓰였다. 파사산성도 마찬가지다. 일부는 설봉산성처럼 원형과 판이하게 복원된 가운데 붕괴된 성벽이 장기간 방치되어 본래의 자재인 자연석이 소멸해가는 것으로 기사는 전했다. 국내 학계에서 성곽문화재 연구가 본궤도에 오른 것은 1960년대다. 그 이전에는 일제시대에 일본의 식민지사관으로 고찰된 불행한 과거가 있다. 1960년대 석조문화재의 대가였던 황수영 동국대 교수는 경주 불국사 경내의 일제 석축을 문화재 침탈로 보아 개탄했다. 일제가 보수하면서 원래의 자연석이 아닌 일본식인 간사(間沙)돌로 쌓았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고대축성에서 간사나 견치(犬齒)돌을 쓰질 않았다. 설봉산성 등 복원은 원래의 복원이 아닌 일제식 변형이다. 이런 고증을 누가 내놨는 지 규명돼야 할 일이다. 도대체가 하는 일들에 책임 의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임양은 주필

부부의 날

가정은 국가사회의 기초다. 인류사회의 뿌리이기도 하다. 부부의 인연으로 이루는 것이 가정이다. 남남끼리 만나서 부모형제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이 부부다. ‘한 몸에 둘에 나눠 부부를 만드시니 / 있을 제 함께 늙고 죽으면 한데 간다’ 정철(鄭澈)의 송강가사 훈민가의 한 대목이다. ‘남으로 생긴 것이 부부같이 중하련가 / 사람의 백복(百福)이 부부에 갖췄으니 / 이리 중한 사이에 아니 화(和)코 어찌하리’ 박인로(朴仁老)의 노계집에 나오는 오륜가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어느 라디오 여성프로에서 들은 얘기다. 부부가 법원에서 합의이혼 결정을 보고 나왔다. 석달안에 본적지에 이혼신고서를 내야 하는데 차마 내지 못했다. 아내가 알아보니 남편 역시 그랬다. 결국 둘이는 재결합했다. 젊었을 적의 얘기라며 지금은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란 가요를 그러지말라는 뜻이라며 신청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치도 않다지만, 그래도 역시 칼로 물베기다. 성격차이를 말한다. 거창하게 무슨 이상이 안맞다고도 한다. 다 부질없는 소리다. 부부간에 사랑만 있으면 모든 허물을 덮어간다. 아무리 좋은 남자도, 좋은 여자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살면서 드러나는 서로의 단점을 치유하는 것이 부부의 사랑이다. 사랑하는 부부 사이엔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용서하지 못할 것도 없다. 젊어서는 색으로, 중년에는 법으로, 말년엔 정으로 사는 것이 부부라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사랑이다. 부부의 사랑은 가정을 건겅하게 만들고, 건강한 가정이 많으면 사회가 건전하다. 오늘날의 청소년 문제 등 사회병리가 결손가정에 많이 연유한 것을 보면 건강한 가정을 위한 부부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실감한다.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다.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지났다. 그런데 유독 ‘부부의 날’은 없다. 1년 365일 다 부부의 날로 칠 수가 있어서인 진 모르겠다. 그런다 해도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 든다. 기왕이면 부부의 날도 있었으면 한다. 생활에 쫓기다시피 사는 세태에 부부의 날이 있어 모두가 서로의 인연을 되새김하는 자축을 갖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임양은 주필

빈자의 한 등(燈)

연등(燃燈)은 부처님께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 등불이다. 부처님 앞에 향을 피우는 향공양과 더불어 주요 의례인 등공양은 밝고 바른 심성을 기원, 불덕(佛德)을 찬미한다. 신라 진흥왕 12년(551년)에 시작된 팔관회(八關會)는 국가적인 연등 행사다. 태평성대를 빌었다. 팔관회는 고려 들어 더욱 성행했다. 음력 정월 대보름 전후로 궁중에서 있었다. 조선조 들어 팔관회가 폐지됐다. 초파일 연등이 생겼다. 태조 15년(1415년) 조정은 연등을 중지시켰다. 허례허식으로 낭비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태조는 원래 불교 신자다. 연등을 대신하는 수륙제(水陸齊)를 나중에 유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열었다. 팔관회는 국가적 연등행사인 데 비해 사월 초파일 연등은 민속적 연등행사랄 수 있다. 절에 가서 자신의 이름, 또는 가족의 이름으로 연등을 밝혀 단다. ‘기원정사’는 인도 중부 마갈타국 성 남쪽에 있던 절이다. 석가모니가 머물던 곳이다. 수달장자가 세웠다. 석가가 아시세왕의 초대를 받고 밤늦게 기원정사로 돌아갈 때다. 갑자기 일진광풍이 불었다. 아시세왕이 밝힌 만 개의 등이 일시에 모두 꺼졌다. 유일하게 한 여인이 바친 등만은 꺼지지 않아 석가의 발길을 밝혔다. 그 등불은 양초 살 돈이 없어 자신의 머리를 잘라 판 돈으로 밝힌 등이다. 그 무렵엔 양초가 굉장히 비쌌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절마다 연등이 넘친다. 연등을 다는 데도 꽤 많은 불전(佛錢)이 든다. 이도 돈을 많이 낸 연등은 위치가 좋은 곳에, 돈이 적은 연등은 비교적 후미진 곳에 단다. 연등을 다는 사람들도 대개는 돈을 벌게하거나 자녀의 대학 입시 등을 위한 마음에서 단다. 석가는 말했다. “깨우침이 곧 부처”라고 했다. 마음을 깨우치면 그가 누구든 상관없이 부처라는 것이다. 석가는 또 자비를 중생 제도의 길이라고 설법했다. 연등은 밝고 바른 심성의 자비로 충만할 때도 비로소 부처의 공덕이 가득해진다. 생기있는 빛을 뿜는다. 현세의 연등을 석가모니는 어떻게 볼까, 혹시 절은 세속화하고, 신심은 기복신앙화 했다고 본다면 ‘빈자의 한 등’이 없는 것을 슬퍼하실 것 같다. 이런 의문은 모든 종교가 다 한 번 돌아볼 일이다./임양은 주필

‘세금을 냈으니 괜찮다’?

“무연고 지역의 토지와 임야를 갖고 있는 경우 취득과정이 적법하다고 해도 청와대 비서관들은 고도의 청령섬이 요구된다는 점을 감안, 조건이 맞으면 가급적 조기 매각토록 했다. 자녀들에 대한 증여세 미납도 자진 납부토록 했다.” 1급 비서관 34명의 재산 등록현황을 공개한 뒤 청와대가 한 말이다. “3천만원 이상 주식 보유자에 대해선 가급적 모두 처분토록 했고 처분 안 한 사람들은 직무 연관성에 대한 심사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임대소득 누락자는 모두 임대사업자로 등록하고 세금을 납부토록 했다”고도 밝혔다. 한 마디로 소가 웃을 노릇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무위원들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재산 공개에서 평균 재산이 각기 33억원과 35억원에 이르고 전국 각지에 숱한 부동산들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강부자’ ‘땅부자’ 정부라는 얘기를 들었다. 두 차례 재산공개에서 곤욕을 치른 나머지 1급 비서관 재산공개를 앞두고 미리 흠집을 없애려고 한 ‘사전 조치’가 옳지는 않지만 이런 지침을 받고 비서관들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괜찮다. 아무런 하자가 없음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비서관은 아들, 딸에게 각각 수억원을 증여해 놓고 증여분에 대한 세금을 최근에야 납부했다. 또 다른 비서관은 2005년 연고가 없는 곳의 임야를 사서 부동산 투기를 받고 있으며, 또 장인이 딸에게 준 돈에 대한 증여세를 지난달에야 냈다. 건물이나 오피스텔을 빌려주고 세를 받고 있던 몇몇 비서관은 뒤늦게 임대사업자 등록을 했고, 어떤 비서관은 수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이들이 청와대 비서관이 되지 않았다면 증여세도 내지 않고 임대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로 살았을 게 분명하다. 재산을 등록해둠으로써 재임 기간에 직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재산을 늘리는 것을 방지하고, 재산 형성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검증함으로써 도덕성과 자질을 높이는 것이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를 도입한 취지다. 하지만 이 정부는 재산 공개의 의미나 취지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명백한 잘못이 드러나도 ‘일만 잘하면 되지 도덕성이 무슨 문제냐’는 식이다. 이번에도 ‘세금을 냈으니 괜찮다’는 식이다. 정말 큰일 났다. /임병호 논설위원

사이클론 ‘나르기스’의 교훈

미얀마 국민 2만2천여명이 사망하고 4만1천여명이 실종된 사이클론(열대성 저기압) ‘나르기스’ 발생 원인이 환경 파괴와 미얀마 정부의 안일한 대처인 것으로 드러났다. 나르기스는 시속 190㎞의 강풍과 3.5m 높이의 파도를 동반, 수십만명을 거리로 내몰고 농토를 순식간에 휩쓸었다. 나르기스가 강타하면서 서남부 이라와디주의 중심도시이자 미얀마 3대 도시인 파테인과 인근 마을, 전 수도이자 경제중심도시인 양곤 등이 대부분 폐허로 변했다. 나르기스는 이라와디 지역의 맹그로브숲 등에 대한 무분별한 환경 파괴로 발생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민들이 삼림보호구역까지 농지로 개간하여 (해안과 강 어귀에 형성된 열대우림인) 맹그로브숲이 급속히 사라지면서 피해를 키웠다. 파도나 강풍으로부터 거주지역을 보호하는 ‘천연방파제’인 맹그로브숲이 사라지면서 주민들의 보호막도 없어졌다. 이로 인해 인구 밀집지역이면서 해발고도 5m 이하의 저지대가 순식간에 물에 잠겨 인명피해가 커졌다. 정부의 늑장대처도 피해를 가중시켰다. 미얀마 정부 기상당국은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강타하기 전 인도기상국(IMD)으로부터 48시간 전 그 위험성을 경고받았다. 하지만 군부독재 미얀마 정부는 10일 있을 신헌법 투표 독려 방송만 했을 뿐 주민대피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IMD가 4월 26일 사이클론이 접급 중이며, 그 세력이 더 커지고 있다고 처음 경고한 이후 지난 3일까지 모두 41차례나 경고했었다. 지금 국제구호단체가 걱정하는 것은 구호활동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아 일어날 추가 인명피해다. 세계식량계획(WFP)이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피해지역 등에서 이재민 100만여명에게 식량 분배를 개시했지만 홍수와 도로 유실로 접근이 어렵다. 더구나 미국이 3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국제사회의 지원도 쇄도하고 있는데 입국 비자를 빨리 발급해주지 않는다고 외신들이 전한다. 우리나라도 원인이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괴파도’가 충남 보령시 죽도 해안을 덮친 자연재앙이 돌발했다. ‘나르기스’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직업편견 깨기

여성 군인, 여성 조종사에 여성 우주인까지 나오는 시대다. 전통적으로 남자 분야라고 여겨졌던 곳에 여성들이 진출해 능력을 인정받는다. 여성 정치인, 여성 판·검사, 여성 기업가 등 여성의 활동이 대단하기는 하다. 그러나 높은 벽을 뛰어 넘은 소수의 이야기를 일반화했다는 의견들도 많다. 현실적으로 ‘남자 분야’로 이미지가 굳어버린 곳에 뛰어드는 여성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자연- 공학과정을 선택한 남학생 수는 전체의 46%이지만, 여학생 수는 전체의 29.0%(2006년, 교육통계연보)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는 여학생들은 주로 자연계를 택한다.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에 입학한 여자 신입생 가운데 이공계 학생은 전문대학 15.3%, 4년제 대학 25.4%(한국교육개발원 교육인적자원 통계서비스, 2006)로, 남학생 이공계 신입생 수(전문대 52.0%, 4년제 대학 46.8%)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기계 분야는 여전히 여학생 기근이 심각하다. 기계공학과 100명 가운데 여학생은 두 세명에 불과하다. 기계 분야는 물론 공학 자체가 ‘상대적으로 힘이 세고 노동을 잘할 것 같은 남자들에게 적합하다’는 인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견이다. 기계공학에서 공구를 다루기도 하지만 이는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을뿐더러 요즘엔 컴퓨터 설계를 비롯해 전산 작업이 늘어나는 추세다. 성별로 직업을 나누는 고정관념 때문에 여성 기근에 시달리는 분야도 꽤 있다. 성폭행 범죄가 늘어나는데 여성 피해자들이 상대적으로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여성 경찰이 부족하다. 경호 분야도 여성을 찾는다. 경호 업무가 많아지면서 외강내유형 여성들을 찾는 의뢰인들이 많다. 여자라서 못 가는 분야는 없다. 개인의 능력 차이가 있을 뿐 성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해 졌다. 체력을 이유로 입직하지 못했던 레슬링, 권투, 축구 분야에서도 여성이 활동하는 요즘 단순히 성별에 따른 직업 구분을 하는 인식은 사라져야 할 때가 됐다. 사회의 견고한 벽 때문에 특정 직업군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건 사회로서도 손해다. 그만큼 능력 있는 인재가 나올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임병호 논설위원

광우병

광우병은 4~5세의 소에서 주로 발생하는 인수 공동의 뇌질환이다. 주로 뼈와 내장에 바이러스가 잠복한다. 최초 발병지는 영국이다. 영국이 광우병에 대한 역학조사 보고와 함께 쇠고기 일시 판매중지를 내린 게 1996년 3월이다. 그러나 최초 발생연도는 1986년이다. 그땐 병원체를 규명못해 괴질로 여겼다. 광우병의 원인은 인간에게 잘못이 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인간이 사육편의를 위해 육식인 양고기가 든 사료를 억지로 먹인 것이 화근이 됐다. 인간의 생태계 파괴가 광우병의 원인이 되는 프리온 단백질을 생성, 새 병원체를 일으켰다. 영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이후 주로 유럽지역 22개 나라에서 발생했다. 유럽연합(EU) 14개국, EU 주변국이 6개국이다. 아시아지역은 2개국으로 일본과 이스라엘에서 발병했다. 새 정부의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우선은 광우병 걱정이고 또 하나는 국내 소 사육농가 피해다. 미국 쇠고기 수입은 세계적으로 개방됐다. 재미교포들 또한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을 앓았다는 소식은 없다. 광우병 대처는 한국 정부의 철저한 검역 주권을 확립하는데 있다. 소 사육농가, 특히 영세농가의 피해는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제까지나 무작정 수입 제한의 보호막 속에 두어 사육농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지금도 기업형 사육농가는 한우로 큰 소득을 올린다. 개방에도 능히 대처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한우보다 약 반값인 호주산 보다 미국 쇠고기가 더 싸다. 한우의 3분 1 값으로 사먹을 수가 있다. 서민이나 영세민층의 소비자들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그래도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된다. 미국이 자동차 수입을 완화, 수출을 늘리기 위해 미국 쇠고기 수입을 개방했다. 이에 따지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미친 병에 잘 걸린다’며 나라를 팔아먹은 듯이 호들갑 떠는 정치 선동은 국민을 위하는 게 아니다. /임양은 주필

自然美

현대인들에게 못생긴 사람은 없다. 아름다움을 더 추구하는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사회의 미적(美的)인식은 개성미가 강조된다. 누구든 다 개성미가 있다. 또 아름다움이 얼굴만이 기준인 것은 아니다. ‘얼짱’은 아니어도 ‘몸짱’이 있다. ‘맘짱’도 있다. 맘씨 좋은 매력 또한 지극한 아름다움이다. ‘솔짱’도 있다. 목소리 좋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건 즐거움이다. 특히 연인들 사이에는 더 할 것이다. 그런데 성형수술이 성행한다. 이도 예컨대 간단한 쌍꺼풀 수술 정도 같으면 또 모르겠다. 얼굴의 뼈를 깎아내는 성형수술을 한다. 더러는 목숨을 잃는 의료사고가 일어난다. 얼마 전에는 서울에서 턱 성형수술을 받던 20대 여성이 수술 도중에 숨졌다. 마취가 잘못된 탓일 수 있고, 뇌 신경계에 손상을 입힌 집도의의 과실일 수도 있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고 했다. 자신의 몸은 살갗이나 털끝 하나까지 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이래서 자신의 몸을 자신의 것이기 보단 부모의 것으로 여겼다. 부모가 물려준 몸을 온전히 간수하지 못하고 상처내는 것을 큰 불효로 알았다. 부모의 마음 또한 자녀가 다쳐 몸에 상처를 입는 것은 크게 속상한 일이다. 복잡다양한 현대생활에서 몸을 제대로 보전하는 것은 큰 행복이다. 문명의 발달은 그만큼 인체에 위해 요인을 더 한다. 하물며 부모가 물려준 몸에 병이 난 것도 아니면서, 멀쩡한 얼굴을 칼질하고 톱질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좀 더 예뻐진들, 예뻐져서 팔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운명은 다 자기할 나름대로 간다. 자연산 우선의 시대다. 양식(養殖)도 아닌 인공(人工)의 아름다움 보다는 자연산미가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갖는다. 현대 여성들은 누구나 다 아름답다. /임양은 주필

명품 한우

미국산 쇠고기 완전 개방 조치 대응책으로 전국 양축 농가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이 고급 브랜드 한우 육성에 사활을 걸었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평창 한우마을’은 주민10명이 1억원씩 투자해 출범한 영농조합법인이다. 이들 주민 ‘이사’ 10명 중 4명은 한우를 600마리 이상 키운다. 나머지 이사들은 한우 유통·판매 경험자들이다. 영농법인이 직접 정육점 겸 식당을 운영한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유통 마진을 없애 소비량을 늘렸다. 산지 소값이 내릴 경우 바로 소비자 가격도 내리는 소값 연동 체제도 구축했다. 소비자 직거래와 박리다매로 생산자와 소비자, 판매자가 모두 윈윈하는 방법을 찾았다. 인천 강화군은 ‘강화섬 한우’의 인터넷 판매 특히 최근 강화약쑥 사료 개발에 성공한 ‘강화섬 약쑥 한우’를 최고급 웰빙 브랜드로 상품화할 방침이다. 제주도는 조선시대 진상품이었던 제주흑우(黑牛)의 명품화를 추진 중이다. 현재 470여마리에 불과하지만 2020년까지 한우 8만여마리를 모두 흑우로 대체할 계획이다. 충남도와 농협충남지역본부는 대표 한우 ‘토바우’에 올인키로 하고 올해부터 2011년까지 전국에 700~800곳의 토바우 전문식당을 개설키로 했다. 충북도는 광역 브랜드인 ‘청풍명월 한우’의 올해 매출목표를 지난해의 3배인 1천500마리로 높여 잡았다. 경북 안동의 1등급 한우 ‘안동비프’는 최근 수도권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횡성한우’로 유명한 강원도는 도내 6개 한우 브랜드를 하나로 통합하는 등 2017년까지 총 61개 사업에 6천800억원을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전남도는 고급 브랜드인 ‘지리산 순한 한우’와 ‘함평 천지한우’ 판매에 충력전을 펴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도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으면 일본처럼 (우리 쇠고기 값의 10배인 일본 화우같은) 최고의 쇠고기를 먹으려는 수요자가 많아질 것”으로 내다 봤다. 축산농가의 피해대책을 ‘비싸고, 질 좋은 한우 육성’으로 잡은 셈이다.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일부 축산농가들의 비판에 대통령은 생각을 달리하는 것 같다. 문제는 한우 사육의 영세농가 피해를 어떻게 보느냐에 있다. / 임병호 논설위원

長老의 길

한국 개신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장로교(長老敎)’에는 장로, 집사, 권사 등의 직책이 있다. 집사는 교회 실무를 담당하고, 권사는 봉사·전도 활동이 중추다. ‘장로’는 평신도의 최고의 직급이자 대표로서 교회 운영을 결정하는 당회에 참여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그 교회에서 부지런히 신앙생활과 봉사 활동을 해야 장로로 선출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승만(정동 제일교회), 김영삼(충현교회) 전 대통령에 이어 대한민국의 3번째 장로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재직 시절 잦은 해외 출장 때문에 봉사를 못해 장로가 되지 못하다가 1992년 국회의원이 된 뒤 3년 4개월 간 매주 일요일 새벽 주차 봉사를 해 1995년에야 소망교회의 장로가 됐다. “대통령직은 잠시이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영원하기 때문에 어쩌면 대통령직보다 (장로라는 직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만큼 이 대통령은 자신이 장로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난 3월 26일 소망교회에서 장로 선거가 있었다. 45명의 후보 가운데 15명을 선출할 예정이었으나 김태승 한양대 정형외과 교수만 뽑혔다. “국회의원 되는 것보다 장로 되는 게 더 어렵다”는 소문을 입증한 셈이다. 그런데 장로가 되는 과정이 쉽지 않다. 장로 후보가 되려면 권사, 집사 등의 기간을 거쳐 대기업 사장이건 장관 신분이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같이 나와 자동차 주차를 비롯 밥 퍼주기, 청소, 보육시설 찾아가 노인 및 어린이 목욕 시켜주기 등 각종 봉사를 꾸준히 해야 한다. ‘장로의 길’이 실은 고행이다. 교인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각 가정을 목사와 함께 방문해 기도도 해줘야 하고 교회 헌금 감독, 비품 구입이나 교회 건물 신축, 목사 교체 등 모든 교회 안팎살림과 행정을 책임져야 한다.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는 목사보다 장로의 발언권이 더 셀 때도 있다. 목사는 임기가 있지만 장로란 직함은 영원하다. 장로들이 자신들의 소명의식을 바로 알 때 교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한 진정한 ‘파워 엘리트’의 역할을 한다. 작금 극히 소수 교회이긴 하지만 장로들과 목사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얘긴 유감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富者의 덕목

‘경주(慶州)최부잣집’은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명가(名家)다.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들다’는 옛말처럼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려운 법인데, 경주 최부자집은 무려 12대에 걸쳐 만석꾼 집안의 영예를 누렸다. ‘좋은 일을 한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사실을 잘 보여준 게 바로 최부잣집이다. 이 집안의 부와 명예를 지탱해준 두 기둥은 집안을 다스리는 제가의 가훈 ‘육훈(六訓)’과 자신의 몸을 닦는 수신의 가훈 ‘육연(六然)’이었다. ‘육훈’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마라, 만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에 땅을 사지 마라, 과객은 후히 대접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다. 이는 상생(相生)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남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산다는 호혜와 상호의존의 지혜다. 남은 나를 위해 있다는 상극(相剋)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게 ‘육훈’이다. ‘육연’은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自處超然),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對人靄然),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지고(無事澄然), 일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대처하며(有事敢然),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得意淡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失意泰然)”다. ‘육훈’과 ‘육연’을 대하다 보면, 부자는 훌륭한 품격의 대인(大人)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진 자의 책임의식과 솔선수범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적 기반이 탄탄하다는 뜻도 된다. “(단순한) 부의 축적은 가장 저급한 우상 숭배에 불과하다. 인간에게는 사회를 위한 부의 환원이라는 숭고한 우상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말과 상통한다. 한국 최대 부자인 삼성가(三星家)가 특검을 받은 후 이건희 회장이 물러나는 등 경영쇄신안을 발표해 나라 안팎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병철 전 회장이 1938년에 ‘삼성상회’를 설립한 지 꼭 70년 만이다. 이건희 회장의 퇴진을 놓고 이견들이 많지만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승계 과정이 순탄했으면 좋겠다. 경주 최부잣집의 ‘육훈’과 ‘육연’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가르침을 무겁게 안겨준다. /임병호 논설위원

孔子

공자(BC 552~479)는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 사람이다. 지금의 산둥성이 노 나라 땅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빈곤속에 학문에 뜻을 두어 유가(儒家)의 비조를 이루었다. 그가 가장 존경했던 사람은 어린 조카인 주(周)나라 성왕(成王)을 도와 태평성세를 이룩한 주공(周公)이다. 공자는 오늘날 학문으로 높이 숭앙받고 있지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노나라 관직에 몸을 담아 조정 대신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많은 귀족들과의 의견 충돌로 음해를 받았다. 인(仁)을 바탕으로 하는 공자의 이상적인 도덕정치는 당시 세속에 물든 기성세력으로부터 배척됐다. 요즘 말로 하면 개혁세력의 공자는 수구세력의 정적이었던 것이다. 노 나라 조정에서 물러난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며 자신의 도덕정치를 펼칠 여러 나라의 임금을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더러는 옥에 갇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정(鄭) 나라에 갔을 땐 마침내 일행이던 제자들마저 다 떨어져 나가고 자공(子貢)만이 남았다. 그런데 자공이 스승인 공자를 길에서 잃고 말았다. 공자를 찾아 헤매던 자공은 길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이렇게 생긴 사람이 내 스승인데 못 봤느냐고 묻자 대답이 걸작이었다. “동문쪽에 계신 분이 아마 당신이 찾고 있는 분 같은데, 이마는 요 임금을 닮았지만 몰골은 뜻을 얻지 못한 것 같은 게 초상집 개처럼 초라해 보이더라”고 했다. 자공이 이윽고 스승을 찾고 나서 행인의 말을 들려주었더니 공자는 “용모는 맞지 않으나 초상집 개처럼 초라하단 것은 맞다”면서 껄껄 웃었다.(孔子家語·入官篇) 공자가 학문적으로 대성한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실패하고 고향에 돌아온 말년이다. 그의 고향 곡부(曲阜)는 산둥성 남부의 소도시로 사수(泗水)가 흐르는 곳이다. 나이 일흔셋에 졸(卒)한 공자는 일흔살에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다시 모아 후학들을 길렀다. 한 번은 사수천변을 거닐다가 제자들 보고 “밤낮없이 흐르는 이 냇물처럼 세월이 흘러 나도 이제 늙었구나!” 하고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했다.(論語·子罕篇) 정치가로서는 실패하고 후학 양성엔 성공한 공자의 생애는 오늘날에도 교육의 중요함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준다./임양은 주필

철학과 시대상

플라톤(그리스·BC 427~347) 데카르트(프랑스·1596~1650) 스피노자(네덜란드·1632~1677) 흄(영국·1711~1776) 칸트(독일 1724~1804) 등 이들의 공통점은 철학자들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독신주의자들이다. 만년에 장가든 게 악처를 만난 걸로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있지만, 독신주의 철학자는 이밖에도 있다. 제논·로크·라이프니쯔 등이다. 칸트는 여자를 싫어했다. 가정적으로 불행했던 탓이다. 경제적으로 불우했던 게 아니고 집안환경이 그랬다. 칸트의 아버지는 은행가다. 아들이 실업가가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소년 칸트는 어느날 아버지가 갑자기 자살하는 비운을 맞는다. 어머니와 여동생하고 세 식구가 살다가 칸트는 마침내 어머니와 의절하고 집을 나간다. 그 무렵 유행된 사교계서 어머니의 남자 관계가 복잡했던 게 아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칸트는 프랑크푸르트의 하숙방에서 30여년 동안 독신으로 한 마리의 개와 살면서 집필에 몰두했다. 유일한 취미가 피리를 부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 등 수많은 불후의 명저를 남긴 것이 프랑크푸르트의 하숙방이다. 쇼펜하워(1788~1860)도 독신주의 철학자다. ‘결혼한다는 것은 자기 권리를 절반으로 하고 의무는 2배로 짊어지는 것이다’ 쇼펜하워의 말이다. 그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가운데서 한 말이다. 남녀가 동석한 어느 자리에서 “남자와 여자 중 어느 쪽이 영리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자가 더 영리하다”고 즉답했다. “남자는 어리석기 때문에 결혼하고, 여자는 영리하기 때문에 결혼한다”고 이유를 댔다. 쇼펜하워의 그 무렵은 영국의 산업혁명 초기다. 산업구조의 중심이 농경문화에서 기계공업으로 이전되던 때다. 그러나 여자보다 힘이 센 남자가 산업 일선의 주역인 것은 농경시대나 기계공업이나 다 같다. 쇼펜하워의 말은 여자는 힘이 없으므로 부양할 남자를 찾아 결혼하고, 남자는 아내의 부양을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첨단산업 시대다. 고급 업종은 말할 것 없고 단순업종도 힘 위주의 산업이 아니다. 여성도 얼마든지 일 할 일터가 있고 소득을 올릴 수가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오히려 활발하다. 여성이 부양해줄 남자를 찾기위해 결혼하는 사회가 아니다. 쇼펜하워가 지금쯤 살아있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 지 궁금하다. 철학도 시대상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분야가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임양은 주필

글씨

붓글씨는 젓가락을 쓰는 한·중·일 동양 삼국의 극동지역 문화다. 인류의 3분의 1은 음식을 맨손으로, 3분의 1은 포크로, 3분의 1은 젓가락으로 먹는다. 그러므로 붓글씨 문화는 인류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서구문화는 붓글씨가 없어도 서구인들은 붓글씨를 신비롭게 본다. 붓글씨는 한문문화에서 시작되긴 했으나 한문만 쓰는 건 아니다. 한글도 쓰고 일본은 그들 글자인 하라카나도 쓴다. 초등학교 수업에 붓글씨를 배우는 ‘습자’시간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이다. 일상의 생활에선 또 펜을 많이 썼다. 펜촉에 잉크를 묻혀서 쓰는 펜 글씨는 글씨를 늘게 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했다. 사람을 알아보는 네 가지로 풍모·말·글씨·판단력 가운데 세번째에 꼽힌 게 글씨다. 글씨를 잘 쓰는 것, 즉 달필은 사회생활에서 그만큼 중요했다. 볼펜이 나옴으로써 펜이 사양화됐다. 그래도 글씨를 늘게하기 위해 볼펜 대신 펜을 쓰는 사람들이 한동안 있었으나 결국은 사라졌다. 컴퓨터가 일상화되면서 글씨가 또 사라져간다. 핸드폰도 글씨 추방에 한 몫을 한다. 종이 없는 사무의 추세는 좀처럼 글씨를 쓸 겨를이 없게 돼 있다. 현대인들은 예전 사람들처럼 글씨를 많이 안 쓴다. 굳이 달필일 필요가 없다보니 글씨 쓰는 것에 신경 또한 쓰지 않는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만능이기는 초등학생이라고 다르지 않다. 글씨가 엉망인 초등학생들이 점점 많아져 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공책을 나눠주며 글씨를 채우도록 글씨 연습을 유도하는 학교가 생기는 것으로 들린다. 컴퓨터를 포함한 영상문화의 발달은 독서를 저해시켰다. 요즘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다. 그런데 독서만이 아니고 글씨 쓰는 것 마저 잘 안 쓴다. 그러나 책은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크게 다른 양식의 보고다. 비디오는 감각적인 감성을 자아내는 데 비해 독서는 인식적인 이성을 쌓는다. 비록 글씨를 많이 안 써도 되는 세상이긴 해도 글씨는 인간생활의 기초다. 컴퓨터를 쳐서 뽑아낸 편지보다는 육필 편지가 인성의 정감을 훨씬 더 한다. 편지도 거의 안 쓰는 세태이지만 편지만이 아니다. 초등학교에서 붓글씨 습자는 안 가르쳐도 글씨 쓰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은 이도 인성교육이다. 글씨 교육이 많이 파급되기를 기대해 본다./임양은 주필

도덕성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은 하느님의 질책을 받자 도망자로 방랑하다가 도시를 만들었다. 동생 아벨을 살해한 부도덕한 인간이 지도자가 된 것부터가 문제였다.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난 후 도망자 신세를 자초한 카인의 후예들이 모인 사회는 범죄자로 들끓게 돼 있었다. 지도자조차 부도덕한 사회에서 올바름과 그름을 가린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도덕적이지 못한 지도자에겐 그에게 아부함으로써 권력과 영광을 추구하는 무리가 들끓기 마련이다. 인간이 에덴을 떠난 이후 세상은 원래부터 그렇게 되게끔 돼 있었다. 다윗조차도 밧세바를 탐하여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하였다. 부도덕한 사욕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행사했다. 그렇다고 곧은 말 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예언자 나단이 이를 꾸짖었으며, 이에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다. 히브리민족의 역사에는 정치권력 행사의 부당성을 나무라는 종교 지도자가 있었다. 원래 정의롭지 못하게 돼 있는 지상의 도시에서 정의를 확립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의 없이는 인간 사회가 존속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국가가 존속하려면 물질적으로 자급자족하여야 하며, 정의의 감각이 있어야 된다고 갈파했다. 정의가 행하여지려면 무엇보다 권력을 행사하는 지도자의 행위에서 정의가 나타나야 한다. 알렌산더 대왕이 인도양에서 해적을 잡아서 문초했다. 해적 두목이 무슨 권리로 남의 물건을 약탈하는지를 물었다. 해적 두목은 “대왕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약탈을 하고 있는데, 단지 차이는 대왕은 거대한 군단으로 약탈하고 있는 것이며, 나는 재수없게 대왕에게 잡힌 것 뿐”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알렉산더 대왕과 해적 두목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사기와 폭력에서 정치적인 변동이 일어나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경계하였다. 공자는 정(政)을 정(正)이라고 하였다. 국민 사이의 편을 가르지 말아야 한다. 카인은 신이나 부모가 아벨을 편애한다고 생각하여 동생을 죽였을는지도 모른다. 지도자를 믿으려고 하지 않는 국민에게 억지로 믿게 할 재간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에게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개인적으로도 도덕성을 갖추어야 하는 일이다. 인류가 에덴에서의 삶을 희구하는 이유는 그 곳이 가장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바바리맨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공공장소에서 노출하는 사람(남성)이 세칭 ‘바바리맨’이다. 얼마 전 고양시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부근에 전형적인 바바리맨이 나타났다. 파란색 쫄티와 청바지 차림에 모자를 눌러 쓴 20대 전후의 이 남자는 1층에서 서성이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여학생 앞에서 갑자기 자신의 신체 일부를 노출했다.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하고 엘리베이터 안에 경고문을 붙여 놨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잠재적 피해자일 수도 있는 여학생들이 다른 성폭력 범죄자와는 달리 바바리맨을 ‘정신이 약간 이상하고 심약한 남자’ 정도로만 보고 그냥 웃어 넘기는 풍조다. 바바리맨의 ‘희화화’는 각종 영화와 TV프로그램, CF 등에서 ‘별로 위험하지 않은 우스꽝스러운 범죄자’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한 채 자주 등장한다. 영화의 경우 ‘두사부일체’ ‘몽정기 2’ 등에서 힘도 없고 약간 모자란 듯한 모습으로 나와 감초 역할을 했다.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가요 ‘텔 미’와 뮤직비디오에서도 익살스러운 연기가 등장한다. TV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의 형님뉴스 코너에서는 개그맨 한현민씨가 바바리맨으로 분해 코믹연기를 한다. 그러나 바바리맨은 어디까지나 범죄심리학적으로 변태성욕자, 성법죄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다. 바바리맨들은 일단 자신의 행동으로 주위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면 더 큰 관심을 원한다. 더 자극적이 되고 대담해져 나중에는 신체적 접촉 등 성폭력을 시도한다. 바바리맨은 ‘성범죄’의 일종이다. 바바리맨이 신체 특정부위를 노출했을 경우 형법 제245조 공연 음란죄를 적용 받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해지는 이유다. 의학·심리학계에선 바바리맨에 대한 약물처리는 거의 없고, 상담과 같은 정신 치료가 가장 좋다고 한다. (바바리맨에게) 성장 과정 등에 대해 얘기를 하도록 하고 마음 속에 갖고 있는 갈등을 풀어 행동변화를 꾀하는 정신 상담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고생들은 “바바리맨을 세 번 이상 안 보면 대학에 떨어진다는 말도 있어서 일부러 찾아다닌다는 애들도 있다”고 웃어 넘긴다. 일부이긴 하지만 정말 걱정스럽다. 한심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종교 권력’

기독교와 불교의 권력화, 정치화, 상업화, 금권화 등의 문제가 기독자와 불자 교수들에 의해 학술적인 분석과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한국교수불자연합회가 ‘종교권력’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는 불교와 기독교가 권력화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자성의 기회로 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2005년 현재 개신교 인구는 860만명, 교계 추산에 따르면 교회수 5만~6만, 목회자수 10여만명이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와 종교 권력’을 발제한 호남신대 이진구 교수는 개신교의 영향력은 교인이나 교회수보다는 개신교계의 각종 시설과 기관에 의해 보다 정확히 평가된다고 주장했다. 개신교가 보유한 수많은 교육 기관, 수십여종의 신문과 방송, 수백종의 잡지, 고아원과 양로원으로 대표되는 각종 사회복지시설 등이야말로 종교 권력의 원천이라고 했다. 군대, 경찰서, 교도소 등에 파견된 목사들이 여타 종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국회의원, 교수, 의사, 변호사, 기업인 등 사회 지도층의 비율이 높은 것도 개신교 권력의 주요배경으로 지적됐다. 이런 직업들에 대부분 조직된 신우회가 개신교계의 이익을 옹호하는 압력단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신교가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어느 집단도 넘보기 힘든 거대 권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는 선교 초기부터 ‘미국의 종교’로 간주됐던 게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선교 초기 미국 근대 문명의 원동력으로 여겨지며 들어온 종교가 일제 치하에서 실력양성운동과 사회운동으로 역량을 축적한 뒤 미군정과 개신교 장로인 이승만 대통령 시대를 지나며 주류 종교의 터를 다졌다는 얘기다. 개신교는 이어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뿌리 뽑힌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뜨거운 설교와 신앙집회 등으로 세계에 유례없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 권력화의 기반을 공고히 했다고 이진구 교수는 주장했다. ‘불교에서의 종교 권력’에 대해 논찬한 강남대 김흡영 교수는 “한국 불교사를 통해서 볼 때 종교의 권력화는 자기 무덤을 파게 되고 결국 쇠퇴와 멸망으로 귀결됐다”며 “어떤 종교 권력이든 그것이 잘못 사용됐을 땐 어떠한 권력보다도 위험하고 음흉하고 잔인한 것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모두가 숙고해봐야 할 말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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