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틀린 것’ 아니라 ‘다른 것’

프랑스 작가 알렉스 쿠소가 쓴 ‘눈먼 소년 미로, 바다를 보다’는 선천적 시각장애인 소년 미로가 첫사랑과 이웃의 죽음을 겪으면서 커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이다. 프랑스 한적한 마을에 사는 소년 미로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미로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로는 고아로 태어나거나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잔소리꾼 어머니를 부모로 두는 것이 훨씬 눈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나쁜 경우라고 생각한다. 어부 팔뤼슈 할아버지와 낚시를 다니기도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미로에게 사랑이 나타난다. 팔뤼슈 할아버지가 살던 집에 ‘륀’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이사를 오고 미로는 볼 수는 없지만 ‘은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륀을 사랑하게 된다. 장애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할아버지의 죽음 같은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가 다뤄지지만 우울하거나 쓸쓸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년의 이야기가 서정적으로 꿈을 꾸는 듯 그려진다. ‘다름:세상을 보는 또 다른 방법’은 ‘다큐멘터리 동화’다. 지난해 중등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해 1급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반인을 가르치는 영어 교사가 된 최유림씨의 실화다. 최유림 씨가 아이들을 가르쳤던 첫 날, 아이들은 아무도 선생님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최 씨의 고백에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묻고 최씨는 “가장 힘이 드는 것은 바로 ‘장애인이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사람들의 그릇된 생각”이라고 이야기한다. 동화 속에 나타나는 그의 어려움은 실제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에서 비롯된다. 학창 시절에 영어학원을 다니지 못했던 것은 그의 눈이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장애인이라 다른 학생들이 싫어할 수도 있고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두 편의 동화는 장애인들에겐 희망을 주고 비장애인들에겐 편견을 고쳐 준다. /임병호 논설위원

셸리의 심장

20세기를 대표하는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뇌가 부검 과정에서 조금씩 없어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안구들이 안과의사인 헨리 에이브럼스 박사에 의해 수십년간 보관돼 왔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올해 96세로 미국 뉴저지주에 살고 있는 에이브럼스 박사가 “세상의 아름다움과 미스터리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는 이 안구들을 지역 은행의 개인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세의 ‘은밀한 부분’은 1821년 그에 대한 부검이 실시된 프랑스 코르시카에서 비그날리 신부라는 이름의 성직자가 다른 나폴레옹의 유품들과 함께 빼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약 4㎝ 길이의 이 ‘유물’은 1977년 미국의 비뇨기과 의사 존 킹슬리 래티머 씨에게 팔렸는데, 래티머 씨가 지난해 사망한 뒤 그의 후손들이 이 ‘유물’을 판매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토벤의 신체 일부분 역시 부검과정에서 분실됐는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대학이 머리뼈 조각들을 구입해 보관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갈릴레오의 손가락은 그의 무덤이 발굴되는 과정에서 분실됐는데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의 과학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의료진이 떼어낸 에이브러햄 링컨의 머리뼈 조각은 암살범이 사용한 총탄과 함께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국립 보건의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미국의 24대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1893년 수술을 받으면서 떨어져나온 생체 조직 종양은 필라델피아주 소재 머터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셸리의 심장은 퍼시 셸리의 아내이자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에 의해 몇년동안 보관되다가 결국 퍼시 셸리의 아들과 함께 무덤 속으로 돌아갔다. ‘발명왕’ 에디슨의 마지막 날숨은 1931년 에디슨이 사망할 때 ‘마지막으로 내쉰 숨에 영혼이 들어 있다’고 믿은 친구 헨리 포드의 요청에 따라 에디슨의 아들 찰스가 유리관에 이 ‘공기’를 채집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코르크 마개로 봉해진 이 유리관은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헨리 포드 박물관에 소장됐다. 셸리의 심장, 오늘날은 에디슨의 날숨이 잘대 필요한 시대다. /임병호 논설위원

‘철새’가 없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한 뒤 봄이 되면 모두 번식지로 떠났던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가 여름이 지나도록 떠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겨울철에도 백로와 왜가리를 쉽게 볼수 있다. 에전에는 번식을 위해 여름철에 한반도로 건너왔다가 겨울이 되면 모두 월동지로 이동했었다. 현재의 추세대로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2020년 기온은 2000년과 비교해 평균 1.2도 상승하고 강수량은 11% 증가할 것이라는 보고가 나왔다. 이렇게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먼저 철새들의 이동시기와 이동양상이 바뀔 것은 자명한 현상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한반도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철새연구센터는 2000년 이후 국내에서 총 69종의 미기록 조류가 새롭게 관찰됐다고 밝혔는데 원인을 3가지로 구분, 분석했다. 우선 한번 미기록종으로 관찰된 이후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는 종(種)은 태풍 등 기상에 의한 종, 2회 이상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종은 서식지역을 확대하고 있는 종, 나머지는 원인 미상의 종으로 구분했다. 또 서식지역을 확대한 종 가운데 동남아시아나 중국 남부 등 한반도보다 연평균 기온이 현저히 높은 지역에서 온 것은 온난화에 의한 종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태풍 등 기상에 의한 것이 48%, 서식지역 확대에 의한 것이 29%, 지구온난화에 의한 것 16%, 원인 미상이 7% 등으로 나타나 미기록종의 발견이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철새 이동시기인 5월과 10월에 각각 18종과 11종이 관찰돼 미기록 조류의 발견과 철새이동에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일부 종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서식지역을 북쪽으로 확대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미기록 조류는 분류군별로 소형 참새목이 59%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도요목(18%), 매목(10%), 두견이목(4%), 기러기목(3%) 등의 순이었다. 흑산도와 홍도, 가거도, 어청도, 소청도 등 서해안에서 53종(76.8%)이 관찰돼 서해안 지역이 철새 이동에 중요한 지역임이 재확인됐다. 지구온난화로 계절 감각을 잃고 한반도의 ‘조류지도(鳥類地圖)’가 바뀌면 ‘강남 갔던 제비’, ‘길 잃은 철새’가 옛말이 되게 생겼다./ 임병호 논설위원

엄마의 젖

엄마젖은 신비의 영양소다. 특히 산후에 나오는 노란 첫 모유는 면역성이 취약한 갓난 아기가 꼭 섭취해야 할 항균성 요소가 들어있다.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는 지능지수(IQ)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국립과학원(NAS) 회보가 이같은 발표를 했다. 아동 3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IQ조사에서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의 90%가 우유를 먹고 자란 아이보다 평균 7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이의 정서발달 역시 엄마의 수유가 크게 작용된다. 엄마의 젖을 물고있는 아이는 안정된 정감에 푹 파묻혀 인격 형성에 좋은 정서의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젖을 물린 엄마와 아이의 모습은 그 정경이 아름답고 거룩해 보인다. 모유은행이 있다. 남아도는 엄마의 젖을 기탁받아 엄마젖이 모자란 아이에게 먹인다. 엄마젖을 먹을 수 없는 미숙아나 조산아 등에게 공급되기도 한다. 음식 섭취가 어려운 암 환자도 수혜 대상인 것은 먹기가 쉽기도 하지만, 젖에 면역인자가 고루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모유 기증엔 엄격한 검사가 따른다. 혈액검사 등으로 감염성 질환이 없는 엄마의 젖을 제공받는다. 그런데 수요는 많은데 비해 공급은 적은 게 모유은행의 고충이다. 모유은행은 한국모유수유협회 사랑나눔모유은행을 비롯해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인천 다산한의원 등으로 국내에서 다섯군데 뿐이다. 모유은행이 보편화된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대조적이다. 구미에서는 모유은행과 산부인과의 상호 연계가 발달돼 있다. 그들은 기증받은 모유를 아프리카 등지의 굶는 아기에게 공수하기도 한다. 국내 모유은행이 더 많아지고 모유의 기증과 수요가 증가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생명을 건강하게 해주고 더 나아가 살릴 수 있는 생명의 줄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주는 세계모유수유주간(1~7일) 이었다. 서울에서는 모유 기증왕 행사가 있었다. 생각하면 참으로 위대한 것이 엄마들의 젖이다. 모유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 준다. / 임양은 주필

한나라당

한나라당¶¶한나라당은 정녕 ‘차떼기당’의 오명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부패 정당인가, 집권한지 얼마됐다고 벌써부터 비리가 줄줄이 터져 나온다.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의 정치권 금품살포, 대통령 사촌 처형 김옥희의 공천행상에 이어 이번에는 유한열 상임고문이 국방부 군납업체로부터 챙긴 수억원대 로비 의혹으로 말썽이다. 군납 로비 의혹은 청와대와 당내 고위층까지 관련설이 나돌아 관련 여부가 주목된다. 설령 공모하여 돈은 안받았다 할지라도, 청와대와 당내 고위층이 유한열 고문의 비리 정황을 몰랐다 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한심한 것은 한나라당의 대응 자세다. 어정쩡하게 눈치 보기에 바쁜 수서양단(首鼠兩端)의 면모는 공당, 특히 집권당으로는 심히 부적절하다. 비리의 뿌리가 어디까지 번졌던, 그런 것에 상관없이 ‘읍참마속’하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부정부패 척결을 말할 수 있겠는지, 하는 일이 정말 마뜩찮다. ‘후목분장’(朽木糞牆)이란 말이 있다. 썩은 나무에 벽흙이라는 것으로 썩은 나무에는 흙손으로 아무리 흙을 발라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공자가 한 말이다. 어느날 한 제자가 공부를 게을리하여 대낮에 자기집 침실에서 제 아내와 자고 나온 것을 보고 개탄하여 했던 말이다. “썩은 나무에는 제아무리 명공이라 해도 조각을 하지 못하고, 낡고 썩은 토벽에는 흙손으로 벽토를 덧바를 수 없다”고 했던 것으로 한서(漢書)는 전한다. ‘후목분장’은 그같은 구절의 한 대목으로 공자는 그 제자의 가르침을 그로써 포기한 것이다. 청와대는 국정 운영의 비전이 빈곤하고, 집권 여당은 ‘후목분장’의 처지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기왕 곪은 환부는 빨리 도려내는 것이 상책이다. 도려내는 아픔이 겁나 자꾸 시일을 늦추면 더 깊이 곪는다. 부정부패는 망국의 근원이다. 부패한 권력 또한 반드시 망한다. 한나라당이 살고싶으면 지금이라도 아주 늦진 않았다. 당내 부패에 적극 대응, ‘정풍쇄신’의 자정운동을 벌여야 한다. 만약 이를 못한다면 누가 누굴 탓할 수 없는 부패의 총체적 만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정당이라고 깨끗할리 없지만, 한나라당은 집권당이다. /임양은 주필

베이징 낭보

제29회 베이징올림픽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는 잇따른 낭보가 주름살 진 국민들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남자유도 60㎏급에서 첫 금메달을 안겨준 최민호는 이긴 것도 이긴 것이지만, 6연속 한판승의 화끈한 경기가 정말 후련하다. 유도의 한판승은 복싱의 KO승과 같다. 최민호의 괴력과 기량이 돋보인다. 마린 보이 박태환은 남자수영 400m 자유형에서 드디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세계 무대에선 불모지였던 한국 수영의 올림픽 우승이 참으로 감격스럽다. “어젯밤에 잠을 설쳤다”는 것은 우승하고 나서 밝힌 그의 얘기다. 그만큼 긴장했던 것 같다. 남들은 당연히 이길 줄 알지만, 정작 선수 본인은 초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경기다. 불후의 프로복서 알리는 “날 보고 떠벌이라고 하지만 경기를 앞둔 초조감을 떠벌이는 것으로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자 핸드볼은 비록 러시아와 29-29로 비겼지만 극적이다. 게임종료 6분을 남겨놓고 6점이나 뒤진 경기를 비긴 것은 ‘우생순’이 되살아난 투혼이다. 다 이긴 경기를 놓친 러시아는 세계 여자 핸드볼의 최강이다. 여자 양궁 단체 6연패 위업 달성도 낭보다. 지난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당초에는 한국이 176번째 입장한데 이어 북측 선수단이 177번째로 입장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한국 선수단 꽁무니에 따라 들어갈 수 없다는 북측 항의로 올림픽조직위원회가 북측 선수단을 180번째로 바꿨다. 후진타오 중국주석의 각국 정상 초청 오찬에도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남 북측 최고인민위 상임위원장이 가깝게 배치된 좌석을 북측이 거부의사를 전달해 서로 떨어져 앉도록 재배치 됐다. 걸핏하면 “우리 동포끼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하필이면 세계 손님들이 다 모인 외국에까지 나가 왜 유치하게 굴었는 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의 베이징 소식은 답답했던 북측 행태의 우울증을 날려버리는 쾌보다. 우울한 것은 나라 안에도 있다. 국회가 식물화 한지 오래다. 제18대 총선이 실시된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18대 국회는 없다. 기성세대, 어른들은 베이징에서 선전하는 젊은 선수들을 보고 배워야 된다. / 임양은 주필

無用之用

남백자기라는 사람이 상구라는 지역에 가서 큰 나무를 보았다. 나무가 얼마나 큰 지 수레 수천대를 묶어 놓아도 그 나무가 만든 그늘 안에 들어갈 정도였다. 그런데 그 나무는 구불구불하여 집 짓는 재목으로 쓰기에 힘들었다. 밑동은 속이 텅 비어 관이나 널로도 쓸 수 없었다. 나뭇잎에 혀를 대면 너무 독해 혀가 문드러질 정도였고, 냄새를 맡으면 정신을 잃게 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쓸모 없는 나무를 보며 남백자기가 말했다. “이 나무는 재목이 될 수 없는 쓸모 없는 나무로구나 (此果不材之木也). 그러나 그 쓸모 없음이 이 나무를 이렇게 큰 나무로 자라게 한 것이다 (以至於此其大也)” <장자> ‘인간세’편에 나오는 우화다. 일명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장자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우리가 무용하다고 생각하는 것 속에 위대한 유용이 들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와 비슷하다. 쓸모 없음과 쓸모 있음의 경계를 허무는 이 무용지용의 철학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사고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노장(老莊) 철학의 화두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쓸모 없는 나무였기에 그 나무는 크게 자라 유용성 있는 나무가 될 수 있었다. 반대 우화도 있다. “송나라의 형씨라는 지역은 나무가 자라기에 아주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무들이 한줌 되는 크기로 자라면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원숭이를 묶어 놓을 말뚝으로 쓰기 위해 베어가고, 한 두 아름되는 크기로 자라면 집의 마루로 쓰기 위해 베어 간다. 일곱 여덟 아름쯤 크면 그땐 부잣집에서 그들의 관을 짜기 위해 베어간다. 형씨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너무나 유용했기 때문에 결국 큰 나무로 자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상식으로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국 유용지무용(有用之無用)한 이야기다. 유용한 나무는 너무 쓸모가 많아 크게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위대한 창의력을 발휘한 사람이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사람들은 일반인의 상식을 뒤엎는 생각을 해본 사람들이다. 우리 세상엔 이런 삶이 적지 않다. 예컨대 불모지와 다름 없던 바닷가 모랫벌에 건설한 ‘포스코(포항제철)’도 좋은 사례 중 하나로 회자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8월 8일

오늘 8월 8일 오후 8시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을 기치로 한 지구촌의 대축제 베이징올림픽이 개막된다. 올 8월8일은 경기일보 창간 20주년 기념일이어서 올림픽 개막이 더욱 뜻이 새롭다. 경기일보는 1988년 8월 8일 오후 8시 8분 8초 본사 새 사옥에서 대망을 품은 임·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석한 초대 사장이 윤전기 시동(始動) 보턴을 누르면서 힘차게 출범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베이징올림픽은 역대 최다인 세계 205개 국가에서 최고의 기량을 지닌 선수 1만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화려한 개막식을 갖고 17일간의 메달레이스에 돌입한다. 한국은 25개 종목에 선수 257명, 임원 122명 등 총 389명의 선수단을 파견해 최소한 금메달 10개를 획득, 아시아 2위 복귀와 2회 연속 세계 10강 유지를 지상목표로 세웠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올림픽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 대표선수들에 대한 국민의 성원과 격려가 줄어든 것 같아 마음에 걸렸지만 선수단이 심기일전하여 베이징에 도착, 선전을 다짐하고 있어 그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이명박 대통령이 두 차례 태릉선수촌을 방문, 선수단을 격려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태극전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획득 메달별로 4만∼1만2천달러의 포상금을 지급키로 했다. 대한체육회는 정부의 포상금에 각 단체의 격려금을 보태 금메달리스트의 경우엔 5만달러를 주기로 했고, 금메달 배출 종목의 감독과 코치에게도 8만달러를 지급키로 하는 등 포상금을 대폭 상향조정했다. 돈과 명예에 집착한 스포츠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러나 선수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주는 일은 많을수록 좋다.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의 말대로 전 세계 남녀가 스포츠 제전을 통해 우정과 화합을 다지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게 올림픽의 기본 정신이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한 나라다. 그동안 쌓은 기량과 투혼을 발휘해 고유가 시대의 물가고와 경기침체 등으로 찌든 국민의 가슴을 시원스럽게 적셔주었으면 좋겠다. 신뢰받는 언론으로 우뚝 선 경기일보 창간 20주년 기념일 날 올림픽이 개막돼 거듭 감회가 각별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외국인을 울리는 한국인들

“가구공장에서 일한 우즈베키스탄 청년은 / 각목에 박힌 못에 발바닥 찔리고도 / 불법체류자라서 내버려두었다가 / 파상풍에 걸려서 죽기 전에 / 외국인 노동자병원 찾아왔었다 / (중략) / 임종을 지킨 외국인노동자들은 / 그가 천천히 숨 거두며 웃었다고 기억했다 / 우즈베키스탄 청년의 영혼은 / 일찌감치 가난한 부모님에게 돌아가서 / 정말로 편안해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詩 ‘귀환’ 일부. 하종오 시인이 한국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바라본 ‘국경 없는 공장’과 한국 남성과 결혼해 사는 이주여성의 삶을 비춘 ‘아시아계 한국인들’ 등 두 권의 시집을 함께 냈다. 河 시인의 시에 나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죽어서 귀환한 “우즈베키스탄 청년”처럼 행복하지 않다. “자바섬에서 살다 온 인도네시안”은 고향의 산사태 소식을 듣고도 “공장에서 소리 내어 울면 쫓겨날까 봐 / 날마다 주먹으로 눈물만 닦았”다. 직장 동료들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저녁식사 시간은 “불법체류자 단속반이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시간”(- ‘외식’ 일부)이다. ‘국경 없는 공장’에 수록된 장시 ‘컨테이너 신혼방’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배타적 시선을 비판한다. “파키스탄 남편이 추방당하고 나면” 혼자 아이를 낳아야 하는 한국인 아내는 “아버지 닮아 갈색 피부가 분명할 자식을 / 자기들보다 피부가 희지 않으면 / 얕잡아보는 나라에선 키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이주여성을 다룬 시집 ‘아시아계 한국인들’에는 배타적 시선에 상처를 입은 여성 결혼 이민자의 모습이 보인다.“어미는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들 데리고 / 모롱이 돌다 하늘 향해 한숨 쉬고 / 마을길 걷다 땅 향해 한숨쉬었다 // (중략) // 아비가 한국인인데도 자신의 아들이 / 한국인을 안 닮았다 해서 따돌리는 것이 / 필리핀인 어미는 너무 슬펐다”(- ‘코리안리’ 일부). 이 시에서 한 베트남 여성은 “강간하지 말아욧!”하고 소리치지만 겉늙은 사내는 “부부관계 안 하려면 결혼 왜 했냐!”고 내뱉는다. ‘詩는 시대의 거울’이기도 하다. 하종오 시집에 가해자로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한결같이 비인간적이다. 선량한 한국인들이 언제 이렇게 변했는지 안타깝다. /임병호 논설위원

베이징 올림픽

오는 8일 오후 8시 새둥지 돔 모양의 주경기장에서 갖는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이틀 앞두고 있다. 중국 대륙은 축복과 긴장에 감싸였다. 거국적인 축제속 가운데 개막 나흘 전에 가공할 테러가 발생했다.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위그르족의 신장 테러로, 경찰관이 16명 숨지고 16명이 다치는 등 현실화된 테러 공포로 경계망이 삼엄하다. 지구촌의 100여국 정상이 개막식에 참석한다. 방한 중인 부시 미국 대통령도 베이징 가는 길에 들렀다. 이명박 대통령도 간다. 북녘에서는 명목상의 국가 원수인 김영남 최고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 베이징에 간다. 실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쥔 최고 지도자지만, 헌법상의 의례적 최고 지도자는 국회의장격인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다. 이명박·김영남의 베이징 회담설이 있었으나 확실하지 않다. 개막식에 맞춰 베이징 시가지 일원에서 3만8천66발의 폭죽이 여름 하늘을 오색찬란하게 수놓는다. 29회 올림픽을 상징해 천안문광장 등 29군데서 쏘아 올린다. 개막식장 창공에는 장대무비한 용과 봉황이 두둥실 떠오르는 등 지상최대의 쇼가 연출된다. 시설 및 인원 등에 대륙인 기질다운 최대시설, 최대인력을 도모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테러의 위험에 경계망이 엄중하긴 해도 온통 축제 분위기다. 중국인이 베이징 올림픽에 갖는 관심은 개막식이 열리는 8일 오후 8시에 맞춰 신생아 출산을 제왕절개로 원하는 임산부들의 산부인과 예약이 치열했을 정도로 대단하다. 중국은 이미 국제정치사회에서 비중 높은 정치대국, 경제대국 지향에 이어 군사대국으로도 치닫고 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면 세계적 문화대국으로 도약한다는 야심에 차 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21세기 신기원 발전에 13억 인구의 구심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경기 외적 동력인 것이다. 중국을 가리켜 ‘잠자는 사자’라던 것은 옛 말이다. 긴 잠에서 깨어난 그들은 지금 무섭게 뛰고 있다. 중국인들은 2008년 8월8일 오후 8시로 이어지는 개막식 8자 행렬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8월8일 경기일보 창간 20주년으로 성년이 되는 날이다./ 임양은 주필

김옥희씨 사건

대통령의 인척비리가 괴이하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 사촌 언니되는 김옥희씨(74)의 국회의원 비례대표 공천 로비 의혹을 한나라당이 무조건 단순사기로 우기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로비자금 명목으로 30억원을 받은 전후 사정 정황과 25억원을 돌려주고 아직 돌려주지 못한 5억원의 행방이 수상쩍은 판에 단순사기라는 강변은 되레 의혹을 부풀린다. 국회의원 자릴 두고 로비자금을 주고 받았으면 그야말로 단순한 형법상의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보통법 적용 대상으로 보는 것은 돈을 준 김 아무개 이사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려고 하는 흔적으로 보인다. 김 아무개는 범죄 피해자가 아닌 공모자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토록 황당한 대통령 인척비리를 단순사기로 축소하고자 하는 것은 불리한 일은 무조건 부인하거나 별 일이 아닌 것으로 우겨대곤 한 정치권의 못된 습성에서 기인한다. ‘이하부정관, 과전불납리’(李下不整冠, 瓜田不納履)라고 했다. 오얏나무 밑에서 관을 고쳐쓰지 말고,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신지 말라는 말로 남에게 의심받을 짓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물며 김옥희씨 사건은 오해가 아니고 혐의가 드러난 상황에서 실체적 진실을 숨기려고 하니 더 말썽이 잇따르는 것이다. 1949년 12월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본토에서 쫓겨 대만으로 천도하고도 부정이 끊이지 않았다. 국민당 정부가 모택동에게 패배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 중 부정부패가 큰 이유의 하나였다. 대만으로 쫓긴 국민당 정부의 부패 척결 방침에도 끊이지 않던 부패가 사라진 것은 장개석 총통이 친인척 비리를 엄단하고 나서다. 당시 장개석의 계수되는 사람이 보석 밀수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자, 대북 시가지에서 공개 총살형을 집행했던 것이다. 한나라당은 김옥희씨 사건을 자꾸 덮어두려고만 하지 말고 야당보다 더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된다. 청와대도 어정쩡한 태도 보다는 확 털어놓는 것이 상지상책이다. 악재도 잘 하면 약이 된다. 멀어진 민심을 회복하는 길이 뭣인가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검찰이 한 치의 성역 없이 엄정수사해야 하는 것은 더 말 할 것이 없다./ 임양은 주필

축산발전대책 위한 ‘쇠고기 국정조사’를 하라

미국산 쇠고기 국정조사 증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 협상이 지난 30일 일단 타결됐지만 실망이 크다. 한나라당이 MBC의 PD수첩 관계자들과 박원석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을 증인 및 참고인에서 제외한 것이 타결의 실마리가 되긴 했다. 노무현 정부의 한덕수 전 총리와 권오규 전 부총리가 참고인으로 채택되고, 이명박 정부의 한승수 총리는 증인·참고인에서 빠지는 대신 총리실 기관보고를 통해 질의에 답변토록 정리가 됐다. 대통령 실에선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과 김병국 전 외교안보수석, 김중수 전 경제수석 등 1기 청와대 참모들이 증인으로 채택되는 등 오는 18, 19일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국정조사 특위가 1일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가족부의 보고 청취를 시작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등 외견상으론 미국산 쇠고기 국정조사가 원활히 진행되는 것 같지만 정쟁만 주고 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협상 관련 책임 공방에만 치중해 정작 가장 필요한 축산발전대책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국회가 지난달 16~23일 네 차례의 ‘대정부 긴급현안 질의’를 열고 이 중 두 차례에 걸쳐 쇠고기 문제를 다뤘지만 대부분 정치 공방에 그쳤다. 쇠고기 문제를 주제로 대정부 질의에 나선 20명의 여야 의원 중 실질적인 축산발전대책을 따지거나 대안을 제시한 의원은 3명에 불과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7일까지 열리는 국정조사 대상기관의 현안보고와 특위 청문회에까지 그대로 이어질 수 있어 문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잘·잘못은 분명히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국정조사가 실체적 진실을 면탈하기에 급급해선 안 된다. 한나라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노무현 정부 때 기획된 것이라는 ‘참여정부 설거지론’을, 민주당은 한미 정상회담의 일정에 맞춰 졸속 타결된 것이라는 ‘정상회담 선물설’을 각각 주장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국민의 건강, 식생활과 직결되는 먹을거리 안전 확보 문제, 축산농가 지원대책, 위생검역의 실효성 및 원산시표시제의 개선 방향 등이 핵심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 국회에서 쇠고기 수입문제를 당리당략에 이용한 측면이 강한 건 여야 모두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국정조사는 협상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해소하면서 실질적이고 종합적인 축산발전대책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돼야 한다. 국민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佛家와 중생

불교가 숭불정책이던 고려 시대에는 권력과 가까웠다. 억불정책이던 조선시대에는 중생과 가까웠다. 조선이 억불숭유(抑佛崇儒)이긴 했으나 초기의 태조, 태종, 세종은 불심이 깊었다. 후기에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수원 근교로 이장하여 용주사를 세웠다. 이런 가운데 불교는 민중신앙으로 깊이 토착화 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을 상징하는 대표성은 종정(宗正)이다. 총무원장은 행정실무의 총책이다. 경찰이 지난달 29일 오후 4시 총무원장이 승용차를 타고 조계종 밖으로 나오는 차량 트렁크를 뒤졌다. 촛불시위 관련 수배자가 조계종 경내에 피신중이었던 것이다. 총무원장이 탄 차량을 검색한 것은 결례이긴 하다. 설마 수배자를 차 트렁크에 숨겨 빼돌리기란 만무하다. 수배자에게 피신을 허락한 것은 인도주의상의 일일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됐다. 안 그래도 불교 폄훼설이 있던 차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화가 날만도 하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볼 수 없을까, 말단 경찰관의 검색은 소임에 충실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고사(古事)가 있다. 계포(季布)는 초왕 항우의 맹장으로 한왕 유방을 수차 사지로 몰아넣곤 했다. 그러나 유방은 초를 멸한뒤 계포를 중용했다. 계포의 행위는 당시 그의 소임에 충실한 것으로 보는 관용을 베푼 것이다. 감히 생각컨대 석가여래는 정좌사유(正座思惟)끝에 인과(因果)의 리(理)를 터득, 대각성도(大覺成道)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세상사는 우연이 없는 필연의 법리란 것으로 안다. 대통령 이명박은 알다시피 장로다. 장로 대통령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불문(佛門)으로서는 섭섭한 일이 이상하게 자꾸 생긴다. 그러나 또 대통령과 가까우면 별 건가, 속인의 눈으로 보면 커보여도 영겁의 시공에서 보는 권력은 한 줌도 아니다. 권력이 불교를 홀대한다는 말보단, 불교가 권력을 가볍게 보는 눈이 중생들에게는 설득력을 갖는다. 권력과의 시비는 속설이기 때문이다. 권력과의 관계가 좋든 궂든, 어떻게 나오든 간에 일희 일비해가며 구애될 이유가 없다. 종도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고해에서의 중생 제도(濟度)가 아닐까. / 임양은 주필

美 여군 수난

이라크전에 참전한 간호장교 다이앤피클 플래퍼트(47세)는 2003년 이라크 힐라지역에서 임무 수행 중 동료부대원들과 잠시 떨어졌을 때 이라크 남성들에게 집단성폭행 당했지만 곧 바로 상부에 보고하지 못했다.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보고가 제대로 받아들여질지도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공황 장애 속에 이혼의 아픔까지 겪은 그녀는 결국 6개월만에야 재향군인청(VDA)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재활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전에 참전, 정보수집 활동을 벌인 캐롤린 섀퍼(35세) 역시 남성대원들이 숙영지에 여성의 나체 사진을 붙여놓는가 하면 불쑥불쑥 방으로 난입하는 등 성희롱 피해를 입었지만 전출될 우려 때문에 상부에 정식 보고하지 않았다. 섀퍼는 “군 정보활동 특성상 정보 수집을 꾸준히 해 왔던 사람이 갑자기 전출되면 그동안 성과를 거둔 일 뿐 아니라 부대 자체도 망가질 수 있다”며 “난 전출을 원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일종의 형벌을 받으며 지내야만 했다”고 말했다. 미국 여군은 전쟁터에서 성폭행과 성희롱이라는 또 다른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여군만 19만명이 넘는 상황을 고려하면 성폭행 및 성희롱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은 시급하다. 미국 재향군인청에 따르면 이라크와 아프간전에 참전했던 여군 전역자 중 15%는 성폭행이나 성희롱 때문에 우울증, 불안, 가정폭력 등 각종 외상장애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군의 20% 가량이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을 당했다는데 신고되지 않은 사례까지 더하면 실제 피해사례는 이보다 더욱 많을 게 자명하다. 군 내 성폭행 발생률이 일반 사회 발생률보다 더 높은지 여부를 나타내는 통계는 없지만 1991년 걸프만 전역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평시보다 전시 때 성폭행 비율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문제는 남성들이 성희롱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점이다. 성폭행보다 경미한 행위일 순 있지만 성희롱 역시 상대방에게 심각한 충격을 주는 행위다. 한국 여군들이 미군 여군 같은 피해를 당하진 않을 것으로 믿는다. / 임병호 논설위원

미자립교회

우리나라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자의 기본 급여는 1인 가구 16만원, 4인 가족 기준 126만원 정도다. 그런데 한국교회 절반이나 되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생활이 여기에 훨씬 못 미친다. 설교준비와 전도에만 충실해야 할 목회자와 사모들이 직업전선에 내몰리는 건 안타가운 일이다. 많은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이 교단에서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주는 제도를 시행해줄 것을 요구하는 이유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는 2003년 최저생계비연구위원회를 결성하고 지금까지 기금 11억1천300만원을 적립했지만 시행 방법을 학정 짓지 못해 묵혀두고 있는 상태다. 예장통합은 2005년부터 목회자 생활비 지원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초기엔 목회자 생활비 보장에 맞췄으나 지금은 교회 자립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일시적 지원보다는 구조적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여러 개의 자립교회가 한 곳의 미자립교회를 돕는 방식이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최저생계비 대책 대신 2006년 총회 결의에 따라 교단 차원에서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도시 교회와 미자립교회와의 1대 1 결연을 통해 미자립교회를 돕고 있다. 기장 모범적으로 목회자 생활보장제를 시행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기독교장로회는 1천600개 교회 가운데 90% 이상이 참여해 400여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목회자 최저생활비를 목사, 준목, 전도사, 기관 파송 목사 구분 없이 90만원까지 확대했고 수혜 대상 자녀의 대학 진학시에도 자녀당 1회 5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각 교단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미자립교회에 대한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기초생활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성남 금광2동 은혜교회의 경우 차진홍 목사가 지난해 7월부터 학원 버스를 운전하고 있다고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5시간씩 꼬박 운전대를 잡는다. 헌금만으론 교회 유지 자체가 어려워서다. 더욱이 자녀 둘이 대학생이어서 사모도 제조업체에 출근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교회 전체가 농어촌 등 미자립교회의 생활비 지원에 나서야 할 때다. 봉사활동이라면 몰라도 목회자들이 돈벌이(?)에 나서는 건 서글픈 일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恨牛

한우(韓牛)가 위기에 처했다.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브랜드를 제외한 한우 매출이 급락하고 사료값은 오르는데 산지 소값은 계속 떨어진다.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 ‘LA 갈비’가 4년 7개월 만에 유입돼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미 쇠고기 업체들은 가격 할인전을 앞세워 본격적인 판매에 시동을 걸었지만, ‘고급화’ ‘명품화’로 차별점을 찾겠다던 한우업계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형국이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LA갈비는 통관을 거쳐, 8월 중순쯤 인터넷을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육류수입업체들은 마진을 줄이는 대신, 싼 가격으로 판매를 시작해 미 쇠고기를 홍보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앞서 수입육업체들도 뼈 없는 쇠고기를 30%씩 할인해 판매한 바 있다. 한우업계는 미 쇠고기의 저가 공세에 프리미엄급 제품으로 차별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광우병 이슈와 고물가가 맞물리면서 값이 비싼 한우 소비가 줄고 있는데다, 산지 소값 하락에도 불구하고 떨어지지 않는 소비자 가격이 한우의 한계다. 올 3월 대비 현재 소 산지가격은 암송아지가 26.3%, 수송아지가 23.8% 등 18~26%씩 떨어졌다. 그러나 백화점, 마트 등 한우의 소비자 가격은 최근 두달 새 10% 내외 떨어지는 데 그쳤다. 6~7단계식 거치는 한우 유통 구조 때문에 가격 거품이 여전한 셈이다. 한우 고급화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원산지 표시 단속도 문제다. 미국산 쇠고기 판매 이후 정부 차원의 한우 대응책에 대해 논의된 바도 없어 자체적으로 대응책을 강구하는 실정이다. 특히 한우의 산지 직거래를 늘려 고질적인 유통 마진폭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농가와 지자체, 농가와 유통업체가 손잡고 10~20%가량 가격을 낮추는 일이다. 산지 가격이 떨어지면 내린 가격을 빨리 반영할 수 있다는 것도 유리하다. 그러나 브랜드 한우 외 소규모 농가에서는 직거래 판매처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 정부가 장터 형성에 나서주어야 한다. 문제는 미 쇠고기 파문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고 값싼 미 쇠고기가 본격 유통되면 한우 경쟁력 다소 약화될 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한우(韓牛)’ 가 ‘한우(恨牛)’가 돼선 안 되는데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일기예보

옛날 사람도 일기예보를 했다. 단기 예보는 주로 구름 등을 보고 했고 중·장기 예보는 별을 보고 했다. 농경문화를 위해서라기 보단 진중(陣中) 전투를 위해 일기 예찰을 중요시 했다. 예를 들면 수공(水攻) 화공(火攻) 등이다. 근대 기상 관측이 도입된 연유 또한 전쟁 때문이다. 1904년(광무 8년) 러일전쟁으로 일본은 조선의 기상 자료를 얻기 위해 부산·목포·인천·용암포·원산에 임시관측소를 두었다. 조정에서 순수한 기상 활동으로 서울·평양·대구에 측우소를 처음 개설한 것은 1907년(융희 원년)이다. 우리 손으로 기상 관측이 시작된지 올해로 101년이다. 무려 한 세기를 넘겼다. 이런데도 오보가 말썽이다. 기상청의 주말 일기예보가 5주째 내리 오보로 이어져 항의가 대단했다. 오보는 전에도 많았다.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틀리면 이를 받아 방송한 애꿎은 기상 캐스터가 또 곤혹을 치루곤 한다. MBC 김동완 전 기상 캐스터는 기상대에 있다가 스카웃되어 방송에 종사한 사람이다. 그가 한 번은 “일기예보를 틀리게 했다고 어찌 그럴수가…?” 하면서 오보로 당한 말 못할 시청자의 항의를 원망했다. KBS 이찬휘 전 기상 캐스터는 공군 기상장교 출신이다. 그는 기상 관측이 빗나가면 파이롯이 권총을 빼들만큼 항의가 대단하다는 체험담을 들려 주었다. 지지대子가 방송사 취재를 맡았을 때 얘기다. 일본 방송의 일기예보는 열도를 바둑판처럼 조각조각 나눠 상세히 한다. 비가 오면 비오는 시각까지 예보한다. 물론 틀릴 때도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일본 시청자들은 대체로 예보를 신뢰한다. 국내 시청자들은 반대로 예보를 불신하는 경향이 많다. 일기예보는 맞으면 당연한 거고 틀리면 말썽이다. 최근의 오보 소동으로 외국의 전문가 영입설까지 나왔으나 외국사람 데려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기상청의 현대화가 절실하다. 10여년 전 수준에 머문 예보시스템을 전면 혁신하고, 예보관 전문 인력을 키워야 한다. 동남아 여러 나라와의 기상정보 교류도 활성화해야 된다. 기상 관측을 시작한지 100년이 넘고도 오보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역대 정부의 인식이 미흡한 탓이다. /임양은 주필

‘임금인상 억제’가 능사 아니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내세워 임금인상을 억제하려는 건 잘못된 일이다. 지난 17일 강만수 장관의 주재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나온 정책이다. 노동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장관들이 참가한 회의에서 최근 고용상황과 임금체결 동향을 점검하고, 아직 임금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사업장의 임금인상 억제를 유도하기로 했다. 정말 위기를 모르는 회의다. 물가급등과 고용부진으로 가계의 고통이 나날이 심각해지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노동부가 점검한 사업체 6천745곳 가운데 올해 상반기에 임금협상이 타결된 사업체의 임금 인상률은 평균 5.1%다. 한국은행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4.8%를 겨우 웃돌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물가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며 하반기 임금인상 억제를 강조한다. 노동계의 희생을 강요한다. 물가는 하반기에도 가파르게 올라 가계의 실질소득을 더 갉아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위기관리 대책회의에서 가정용 도시가스 소매요금을 2.5% 올리기로 결정했다. 전기요금 인상안도 곧 확정할 방침이다. 가스요금과 전기요금 인상만으로 소비자 물가는 0.6% 더 오른다. 한국은행은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5.2%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가 임금인상 억제를 강조하는 것은, 임금인상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그것이 다시 임금인상 요구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아주 다르다. 임금이 대폭 올라도 비싼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부 점검대상 사업체 가운데 상반기에 임금협상이 타결된 사업장은 26.7%다.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은 13%, 한국노총 산하 사업장은 20.4%만이 타결됐다. 6월 물가상승률이 5.5%에 이른 점을 참작하면 앞으로 협상을 할 사업장의 임금 인상 요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부가 노동자를 설득할 어떤 유인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저소득층을 지원하기보다는 부유층에 대한 감세 등 거꾸로 가는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아무 대책 없이 노조 파업 등에 대한 강경대응 등 고통분담을 노동자들에게만 지워선 안 된다. 임금인상 억제를 계속하면 노동자들이 견뎌내기 어려워지는 내년엔 갈등이 폭발한 우려가 크다. 노동자의 임금은 소폭이라도 인상돼야 한다.

퇴직 동료와의 유착 주공은 복마전인가

대한주택공사(주공)가 마치 복마전 같다. 경기경찰청이 당초 주공 간부에게 로비를 한 건설브로커를 검거하면서 시작된 뇌물수사가 진행되면서 전관예우·인사청탁·개발정보 유출·수주비리 등 거대 공기업의 각종 비리가 고구마 줄기 엮여 나오듯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수사가 진전되면 또 어떤 비리가 밝혀질 지 주목된다. 경기경찰청은 분당 주공 본사에서 압수한 공사발주 관련 서류를 분석한 결과 주공의 전 서울본부장 A씨(구속)가 퇴직한 뒤 부회장으로 입사한 토목설계회사 B사에 특정 지역의 개발계획 정보가 넘어간 것으로 확인했다. B사는 A씨가 2005년 5월 주공서 퇴직한 뒤 입사하기 전엔 주공에서 발주한 설계용역 수주 실적이 거의 없었으나 이후 수주는 17건(255억원)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주공 간부 10여명에게 수억원의 뇌물이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집에선 100만원씩 봉투에 든 현금 4천만원이 발견되기도 했다. 주공 직원 접대용으로 7천500만원의 판공비를 카드로 사용하기도 했다. 토목설계회사 B사는 퇴직한 주공 간부에게 고액 연봉을 주며 임원으로 영입하고 그 임원은 인맥과 돈을 동원, 친정인 주공의 발주 용역을 수주하는 전형적 로비 행태다. 주공 간부들 또한 퇴직 동료 뒤를 봐주고 뇌물을 받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식의 전직 동료와의 유착 비리다. 전직(前職) A씨의 주공에 대한 영향력은 그의 여러 행태에서 감지된다. A씨는 토목설계사인 B사 입사 이후 주공 직원 8~9명을 스카우트, 주공 인맥 관리에 활용했다. 주공 퇴사 후에도 주공 판교사업단 전문위원이 인사 청탁을 할 정도로 주공 내에 확실한 인맥도 갖고 있었다. 숨은 비리가 더 없는지 우리가 수사 추이를 지켜보고자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찰이 주공에서 압수한 서류중에는 퇴직자 모임과 관련된 서류도 있다. 또 퇴직자 200여명이 주공 사업과 연관된 업체에 입사해 활동 중인 것도 밝혀졌다. 퇴직 동료 뒤 봐주기는 한창 문제가 됐던 공직사회의 전관예우와 다를 바 없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유사한 일이 전에는 없었는지 철저히 수사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과 퇴직 동료의 공생을 위한 유착은 필연적으로 부정으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국민이 입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명박 대통령의 격노다. 휴가중인 대통령이 미국지명위원회에서 독도 귀속의 국가 명칭을 한국에서 주권 미지정 지역의 암석으로 변경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긴급 보고에 그같이 격노했다는 것이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는 의장 성명에 유명환 외교의 10·4선언 문구 삭제 요구에 박의춘 북측 외상의 맞불 대응으로 금강산 총격 살해 사건의 언급이 빠졌다. 독도 문제는 믿었던 동맹국에게 봉변을 당하고, 금강산 사건 언급 누락은 국제 여론을 환기시키려다가 망신만 당한 꼴이 됐다. 외교 역량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비단 외교 분야만이 아닌 국정 전반에 엇박자 투성이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정부가 하는 일은 아마추어리즘의 발상”이라고 꼬집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현 여권이 대정부 야당 공세로 한 말을 되듣고 있는 것이다. 정부 부처는 장악력을 잃고, 한나라당은 여당의 기능을 다 못하고, 대통령 측근은 제각각인 가운데, 청와대는 조정 능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김대중 정부의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 같은 사람이 없다. 한 고조 유방이 항우와 천하의 패권을 다툴 때 대원수 한신과 용병을 두고 주고받은 말이 있다. 한신이 자신은 군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며 백만대군도 일사분란하게 지휘할 수 있다는 말에 유방이 “그럼 과인이 지휘할 수 있는 군사는 얼마냐”고 물었다. 한신은 서슴치 않고 “많아야 10만이지오”하자 실망하는 유방에게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신은 군사를 다스리는 장수지만, 한왕께서는 장수를 다스리는 능력이 있으므로 신과 비할바가 아니지오”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에 장수다운 장수, 즉 참모다운 참모가 극히 빈곤한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덕불고’(德不孤)라 했으니 인덕이 없는 것도 덕이 미흡한 본인의 탓인 것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격노로 휴가도 취소하고 밤늦게까지 수석회의를 가졌다지만, 뾰족한 대안이 나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답답한 일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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