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준다

참새가 소의 등에 앉아 “내 고기 한 점은 네 고기 열 점과도 안바꾼다”고 했다. 참새구이가 그만큼 맛이 있다는 뜻에서 호식가들이 지어낸 말일 거다. 말인즉슨 먹을만 한 게 맞지만 이도 쇠고기가 귀했을 때의 얘기일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고기와 알은 정력제이고 뇌는 귀먹은데, 머리피는 야맹증에 좋고 수컷의 배설물은 종기와 응어리를 다스린다고 했다. 참새는 음력 시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속설은 그밖의 계절엔 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에 못먹는다지만 이유는 정작 다른데 있다. 한햇동안 서너차례 알을 낳아 부화하는 번식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어미새가 잡히면 둥지에 있는 새끼들이 굶주려 죽게 되므로 못잡게 하기위해 먹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가을에 벼가 여물 때에는 참새 떼들의 피해가 적잖았던 가운데도 순리를 존중한 선인들의 자연보호 의식을 엿볼 수가 있다. 어미새는 하루에 22∼26g 체중의 5분의 1인 4∼5g의 낟알이나 벌레를 먹어야 하므로 유수기의 벼는 좋은 집단먹이 대상이 되는 것이다. 수백, 수천마리가 무리를 짓던 참새 떼가 줄었다싶더니 참새가 사라진다는 환경부의 조사보고가 있었다. 국토 100㏊당 서식하고 있는 참새가 139.3마리로 1991년의 428.1마리에 비해 무려 64%나 급감했다는 것이다. 포획 급증과 농약살포에 의한 벌레 감소를 이유로 분석했다. 참새는 해로운 새로 알려졌으나 꼭 그렇지만 않다. 유해곤충의 사냥꾼 노릇도 하여 이로운 면도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하는 여러 속담도 있고, ‘참새 기다리는 호랑이’등 민간설화나 ‘참새잡이놀이 등이 있었을 만큼 참새는 생활에 친근했던 텃새다. 최근 인도와 파키스탄에선 한달 넘게 섭씨 42도를 웃도는 살인더위가 계속돼 800여명이 숨지는가 하면 미국 중동부지방엔 5월 한파가 닥쳐 섭씨 영하 6.6도까지 내려가 눈 내린 곳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기상 역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상고온, 이상저온이 무상하다. 이상기후로 인한 생태계 변화가 참새 감소의 요인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참새도 이제 보기 어려울 것인지, 뭔가 자꾸 달라지는 생태계 변화의 조짐이 인간에게 재앙을 예고하는 것 같아 두렵다. /白山

박태준과 포스코

1968년 포항종합제철을 세우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박태준 대한중석 사장에게 포철사장 자리를 맡겼을 때의 일이다. 이에 앞서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기 전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상공담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박태준은 박 대통령의 제의에 묵묵부답으로 있다가 세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포철 인사에 외부의 개입을 일체 거부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외부의 자재 수납에 일체의 청탁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셋째는 뭔가?”박 대통령이 다그치자 “각하! 저를 믿으시면 증표를 하나 써주십시오!”라고 했다. 첫째, 둘째조건이야 이해할 수 있으나 난데없는 ‘증표’란 말엔 박 대통령도 의아해 했다. 박태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각하! 제가 서울에 없으면 필연코 모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를 믿고, 또 저의 신념대로 지방에서 일할 수 있게 보장해 주실 뜻이 있으시면 증표가 필요합니다”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여 미소 지으며 “그럼, 임자 말대로 하지!”하고는 ‘박태준 동지’라는 휘호를 신표로 써주었다. 박 대통령이 그런데는 사연이 있었다. 박태준이 지휘관 시절 병영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김치가 덤덤한 게 도무지 맛이 없었다. 고춧가루를 더 가져오라고 해 버무렸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춧가루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 비벼 봤다. 가짜였던 것이다. “우리 아들들 먹는 음식에 웬 가짜 고춧가루냐…”며 당장 납품을 끊어버렸다. 납품업자가 몇번 찾아 사정 사정했으나 냉담했다. 나중엔 “그렇게까지 할 게 뭐가 있느냐”며 “후회할 것”이라는 협박까지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상부에서 압력이 있었으나 자리를 걸고 끝내 거부했다. 박 대통령은 일찍이 이런 면모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포항제철이 오늘날 세계적인 철강업체로 성장한 것은 박태준이 25년동안 철강인으로만 정열을 쏟은 헌신의 결정체다. ‘철의 사나이’박태준 포스코(포철)명예회장(전 국무총리)이 며칠전 일본 등지서 귀국하면서 전·현직 임원들을 인천공항에 불러 최규선 게이트 외압과 관련된 포스코의 불명예를 크게 꾸짖었다. “창업자로서 도저히 용서 못할 포스코 사상 중대한 오점”이라면서 관련자들의 책임을 촉구한 것은 그의 권리며 의무다. /白山

지지대/중우정치

지지대/중우정치 白山 중우(衆愚)정치란 말이 있다. 민주정치를 비꼬아 하는 말이다. 조직이 민주적이라고 하여 반드시 선정(善政)이 베풀어지는 게 아님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역설했다. 민주적 상황에 적합한 효과적인 리더십이 결여됐을 때 일어나는 정치현상으로 민주제가 타락한 정체에 이런 명칭을 부여했다. 아테네의 타락한 민주정치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예컨대 삼두정치를 파기, 종신 독재를 노린 케사르가 그러했고 패각추방이라는 게 그러 하였다. BC 5세기 경 아테네에서는 독재자의 출현을 막기위해 정치적 위험 인물을 투표로 뽑아 신분이나 재산은 보장하면서 일정기간 추방하는 제도가 있었다. 시민들이 아고라 광장에 모여 행사한 투표에서 당시엔 종이를 이집트서 수입해 썼을만큼 귀했으므로 조개껍질 등에 이름을 새기도록 했다. 후세에 아고라를 발굴한 결과 동일 필적의 패각이 무수히 발견됐다. 이로 미루어 그 무렵 역시 문맹자가 많았던 것을 악용한 부정투표가 자행됐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우정치는 중세, 근세에 이르기까지 대중에 의한 정치를 혐오하는 많은 보수 정치가, 사상가들이 민주주의를 멸시하는 뜻으로 사용 하였다. 실제로 현세에서도 독재를 행사하는 나라 치고 표방은 민주주의를 내세우지 않은 독재자가 없다. 민주주의는 좋으면서도 이런 허점을 안고있다. 도내 6개 지역의 기초단체장에 대한 민주당 경선을 중앙당이 비토해 진통을 겪고있다. 선거편력, 지역신망, 자격함량 등에 문제가 심해 당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교체한다는 것이 중앙당의 생각이다. 그러나 상향식 공천을 내세운 경선은 민주당의 정치개혁 상표다. 이같은 지역경선을 중앙당이 무시하는 것은 과거와 같은 하향식 공천의 부활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경선 당선자들의 반발엔 이유가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의문이 가는 경선 당선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교체 여부는 전적으로 민주당 당내 사정이므로 알바가 아니지만 중앙당 생각에 일리가 없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역시 한국판 중우정치 경선의 소산이 아닌가 생각된다. 민주정치란 쉽고도 참 어렵다.

실패한 대통령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프랭클린 피어스(1853∼1857)는 잘 생긴 외모 하나만 빼면 한가지도 볼게 없었다. 집안 문제를 일에까지 연장시켰다. 죽은 아들에 대한 슬픔을 백악관으로 가져온 그는 역사상 가장 우울한 백악관 생활을 연출했다. 제임스 뷰케년(1857∼1861)은 무능하고 서툰 판단으로 미국을 남북전쟁으로 내몰았다. 특히 남부의 승리를 위해 판사들을 회유함으로써 대법원의 공명정대성에 대한 미국인의 믿음을 파괴했다. 앤드루 존슨(1865∼1869)은 독단과 아집으로 상생의 정치를 무시했다. 완고하고 음울한 성격으로 의심이 많고, 남의 비판과 비평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율리시스 그란트(1869∼1877)는 대통령직을 영달과 보상의 영역으로 다룬 인물이다. 자신의 군시절 동료들, 고향 친구, 선거 때 자금을 동원한 사람, 친인척들을 불러 들여 보좌관이나 정부 공직에 들어 앉혔다. 벤지민 해리슨(1889∼1893)은 공화당 보스들과 기업인들 얼굴 마담으로 만족했고 사람도 제대로 쓰지 않았다. 사회성마저 부족해 따뜻함이나 서민 감각 같은 것이 없었다. 윌리엄 태프트(1909∼1913)는 진보의 물결이 넘실대던 시대에 보수주의에 집착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전임 대통령 루스벨트였지만 태프트는 취임하자마자 루스벨트 개혁 프로그램들을 중지시키거나 제쳐 두었다. 위런 하딩(1921∼1923)은 장관직을 비롯해 국가의 중요한 자리를 고향 오하이오 친구들과 친인척들에게 분배, 행정부는 그들의 사리사욕으로 가장 추잡했다. 캘빈 쿨리지(1923∼1929)는 투기를 막지 못해 대공황의 중요 원인이 됐다. 거스름돈 5센트를 주지 않는 보좌관을 혼냈고 제일 싼 담배를 피우면서 손님들에게는 그 보다 더 싼 담배를 권했다. 리처드 닉슨(1969∼1974)은 음모와 오만과 거짓으로 국민을 속였다. 헌법을 위반하고도 뉘우침이 없었던 몰염치하고 뻔뻔한 대통령이었다. 지미카터(1977∼1981)는 재임 중 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인권·환경·핵무기감축·평화와 정의의 추구 같은 것들을 정책으로 내세웠지만 메시지는 뚜렷하지 않았다. 기자생활을 한 네이슨 밀러가 쓴 ‘미국 최악의 대통령 10인’이라는 책에 나오는 실패한 미국 대통령들의 행적이다. 친인척과 가신 중심의 인사, 고집 불통, 우유부단 등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앞으로 이런 류의 대통령은 뽑지 말아야겠다.

아버지 탓?

미국 ABC 방송이 얼마 전 권력자의 아들이 부패에 빠진 이유를 집중 분석한 프로그램을 내보냈었다. 이날 ABC 방송은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의 아들 토미 수하르토가 ‘오입쟁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사생활이 문란했음을 밝혔다. 32년을 집권한 아버지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온갖 파렴치한 범죄를 일삼았으나 아버지의 집권이 끝나자 그는 대법원 판사를 살인토록 교사한 죄 등 8가지 범죄 혐의로 구금돼 있다. 세르비아 독재자의 아들 마르코 말로세비치 슬로보단은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외국산 주류·약품·담배의 독점 매매 등에 관여해 떼돈을 벌었다. 지금은 아버지가 일급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세르비아 외지, 혹은 러시아나 구소련 국가 중 어느 한 곳에 숨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전 대통령의 아들 장 크리스토프 미테랑은 ‘미스터 아프리카’라는 별명을 들었을 정도로 프랑스 정부의 아프리카 정책에 은밀히 관여했다. 앙골라 무기 판매와 관련하여 스위스은행에 180만달러의 계좌를 개설했는데 본인은 컨설팅 대가로 얻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뇌물죄로 기소됐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아들 우다이 후세인은 이라크에서 살인·강간·고문 등 각종 반인권적인 범죄를 저질러 국내외에서 원성이 자자하다. 우다이는 형제들과 함께 유년기 때 아버지의 지시로 사형수들을 공개 고문·처형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참관하여 야만성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권력자 아들들이 부정 부패의 길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를 ABC 방송은 “그릇된 자식 사랑이 권력자의 아들을 망친다”고 분석했다. “권력자인 아버지가 감싸고 돌면서 결코 나무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어제 16일 오전 10시 검찰에 출두, 조사를 받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셋째 아들 홍걸씨 모습에서 외국 권력자의 아들들이 연상되는 것은 불행한 노릇이다. 김 대통령이 아들들의 잘못을 알고도 감싸기만 했을 리는 없었을텐데 인생 말년, 정치 말년에 아무튼 딱하게 됐다. 이런 경우를 두고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는 모양이다. /淸河

청와대 터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 ‘청와대(靑瓦臺)’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이궁(離宮)이 있던 곳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1426년(세종 8)에 창건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밖 후원에 해당하는 이 지대를 경무대(景武臺)라 했었다. 북악산 산록에 위치하여 서울 장안을 전망할 수 있는 경무대는 어영(御營)의 연무장이나 과거(科擧場)으로, 또는 친경(親耕) 장소로 사용됐다. 원래 이 울안에는 융무당(隆武堂)과 경농재(慶農齋) 등이 있었으나, 한일 합병 후 1927년 일제에 의해 헐리고 일본인이 조선총독 관저를 건립하였다. 이곳을 제7·8·9대 조선총독이 관저로, 광복이 되어서는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지(Hodge.J.R)중장이 기거했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한국정부로 이관됐고,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경무대’로 명명, 이름을 되찾아 제1공화국의 대통령 관저명으로 사용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의 피란시절을 제외하고는 1960년 4월까지 초대·2대·3대·4대 대통령으로서의 12년을 이곳에서 보내고 4·19에 의한 하야와 함께 이화장(梨花莊)으로 옮겼다. 경무대라는 이름은 3·15 정·부통령 선거부정 등 독재와 비정(秕政)의 대명사처럼 인식돼 1960년 8월 13일 제2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보선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 명칭은 대리석으로 된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이어져 있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뒤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를 거쳐 갔으며 현재는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말을 앞두고 아들들 문제로 가슴을 태우며 살고 있다. 청와대 터야 분명히 명당일텐데 역사적으로는 파란만장의 현장인 것이 이상하다. 일본인 조선총독, 미국인 조선주둔군사령관이 관저로 삼은 것도 굴욕적인데 독립국가가 돼서도 청와대 터에서는 쾌거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그래서일까, 이회창씨는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서 집무하지 않겠다 했고, 어떤 스님은 저서에서 청와대를 이전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터에 맞는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淸河

직책과 직급

각 부서에 국장 부장 차장의 보직자가 각 1명씩 있고 부원들은 연륜과 능력에 따라 국장급 부장급 차장급 사원(기자포함)이 있다. 물론 평사원도 있다. 그러니까 보직 직책은 부서마다 1명뿐이지만 ○○급 사원은 한 부서에 여러명이 있을 수 있다. 이러므로 후배부장 부서에 선배국장급 사원이 있기가 예사다. 후배부장 보직자의 지휘를 받는 선배국장이 부장이 부재시라 하여 부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보직차장이 부장을 대리한다. 국장급 부장급 차장급 사원은 처우상 직급일뿐 직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국장급, 부장급 기자는 일선 취재현장에 나가 기사를 써 후배 데스크에 내 놓는다. 급 제도는 대우 제도와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예컨대 국장이나 부장하던 사람을 대우 제도에선 취재 또는 업무 일선에 내보낼 직함이 없지만 급 제도에서는 국장이면 국장, 부장이면 부장 보직만 떼어내면 절로 국장급, 부장급 사원으로 일선에 복귀하게 된다. 직책과 직급을 구분한 이같은 인사제도는 대한매일신문이 서울신문 시절부터 시행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인사적체를 해소하고 인사순환에 능률을 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팀 제도 역시 직책과 직급 구분을 준용한 인사방안이다. 이같은 인사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계급의식이 유연해져야 한다. 조직이 계급사회인 건 맞다. 그러나 경직된 계급지상의 조직은 현대사회에 적응이 어렵다. 현대적 위계질서는 기여도 측면에서 측정되는 조직이어야 활성화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계급의식이 강하다. 높은 자리만 찾는다. 무엇을 하는 자리냐 하는 것 보단 얼마나 높은 자리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좀 나이들면 현장에 나가는 것을 수치로 알고 책상머리만 지키려 든다. 서구 언론계의 경우, 백발이 성성한 노기자들이 수두룩한 것에 비하면 우리의 의식은 아직 멀었다. 유럽연합(EU)이 고령사회에 대비키 위해 정년퇴직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영국은 이 권고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년퇴직제의 국내 도입은 물론 요원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계급의식이 희석돼야 한다. 계급의식이 유연해져야 고령사회의 재취업이 가능하며 정년퇴직제 폐지도 장차 성공하게 된다. /白山

술문화

술은 인류와 함께 가장 오래된 친근한 음식이다. 원시시대의 과즙이 천연효모 번식으로 절로 알코올 성분이 된 것을 먹게 된 게 술이다. 과주에 이어 곡주를 빚다가 화학주까지 나왔다. 술은 예부터 기혈(氣血)을 순환시키고 정(精)을 펴 준다하여 잘 마시면 양약이 되는 것으로 전한다. 설이나 생신때 어른들에게 오래 사시라는 뜻으로 술을 헌수(獻壽)하고 정월 보름에 귀밝이 술을 마시는 게 이에 연유한다. 그래서인지 술 자리에도 예절이 있다. 요즘은 술잔 안돌리기 풍조가 더러 있긴 있지만 술은 역시 권하는 맛으로 먹는다 하여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수작(酬酌)이 보통이다. 잔을 돌리는 행배(行杯)는 권주받은 잔을 비어 되돌려 주는 반배(返杯)를 해야하고 ‘주불쌍배’(酒不雙杯)라 하여 자기 앞에 술잔을 두잔이상 두지않는 것이 술자리 예절이다. 그러나 술은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잘 마시면 백약지장(百藥之長)이지만 잘못 마시면 광약(狂藥)이 된다. ‘술 먹은 개’ ‘술 덤벙 물 덤벙’ ‘술 취한 놈 달걀 팔듯 한다’는 전래 속담은 술의 폐악을 일깨우는 잠언이다. 심지어 정신병을 유발하거나 불치의 병을 얻는다. 술로 인한 버릇, 즉 주벽은 습관이다. 예컨대 술만 먹었다 하면 옆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 싸우려 들고, 횡설수설 해가며 친구를 피곤하게 만들고, 작취의 주독에 시달리는 주벽은 잘못 길들인 습관이다. 그런가 하면 술을 먹으면 친구간에 재미있고 집에 돌아가서도 가족들에게 더 다정다감한 사람이 되는 좋은 주벽 또한 습관이다. 술은 취하라고 마시고 취하면 심신이 흐트러지게 마련이지만, 남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술도 좋은 음식인데 입에 댈 자격이 있다할 수 없다. 시인이었던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1898∼1961)는 ‘명정(酩酊) 사십년’을 쓴 두주불사의 호주가였지만 술에 취해 실수를 해도 남을 괴롭히는 실수는 않기로 정평이 났던 분이다. 지난해 국내 술 소비량이 307만㎘로 전년에 비해 9%가 늘었다는 재경부의 분석이 보도 됐었다. 위스키 맥주 소주 할 것 없이 소비량이 다 늘어 미국 일본의 27, 28위보다 높은 세계 24위의 술 소비국이 됐다는 것이다. 술을 마셔도 좋게 마시는 좋은 술 문화가 이룩됐으면 좋겠다. /白山

편지

‘군사우편 찍혀있는 전선편지를/전해주는 배달부가 싸리문도 못가서/복받치는 기쁨에 넘쳐 울었소…’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유행된 대중가요의 한 대목이다. 남편 또는 아들을 생사가 기약없는 전쟁터에 내보낸 당시 여인네들의 애절함이 담겨 있다. 편지엔 기쁜 편지, 슬픈 편지가 있지만 그래도 대개는 편지를 받는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편지엔 또 젊은이들의 연애편지가 있어 낭만적이었고, 무엇보다 사회의 주요 통신 수단이었던 것이 1980년대 전화가 대중화 되면서 급격히 줄었다. 이어 1990년대에 역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컴퓨터는 편지를 용도폐기 하다시피 했다. 전화 한 통화면 국내 방방곡곡 어디고 간에 통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고 더욱이 E메일은 국내외 어디든 다 주고받는 편리한 세상이 됐으니 굳이 편지를 쓸 필요가 없게 됐다. 집배원(배달부)의 우편물이 편지가 주종이던 땐 문맹자가 많아 수취인에게 집배원이 편지를 읽어주곤 했던 게 지금은 우편물에 편지는 찾아보기가 어렵고 각종 고지문 투성이다. 그냥 쓰레기통에 던질 달갑지 않은 유인물 아니면 갖가지 통지서로 우편행랑과 수취함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시류가 달라지면 달라지게 사는 것이 인간 생활이긴 하나 그래도 편지란 것을 생각해 본다. 전화통화로 육성을 전하거나 E메일로 전하는 것도 좋지만 나름대로 정성들여 쓰는 육필엔 지워지지 않는 정감이란 게 담겨있다. 자신의 생각을 직접 글로 표현해 전하는 육필은 전화나 E메일과는 또 다른 인간적 체취가 깃들어 있다. 생활편의를 추구하다 보니 인간생활이 너무 기계화하여 점점 삭막해지는 세태가 됐다. 편리한 것도 좋지만 인간미를 잃어서는 곤란하다. 때에 따라서는 부모에게, 스승에게, 선배에게, 친구에게, 부부나 연인간에 두고두고 다시 읽어 볼만한 문안편지를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표에 소인이 찍힌 편지봉투를 주고 받는 재미도 가져볼만 하다. 요즘 우체국에 나붙은 ‘편지 쓰기’권장 현수막이 체신수입 올리기로만 단순히 치부해 넘길 수 없는 어떤 뜻이 있어 보인다. 값으로 말하자면 편지 우표 값만큼 싼 게 없다. 가끔은 편지를 쓰는 마음의 여유가 생활을 즐겁게 해준다. /白山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은 원래 5월26일이었다. 1963년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J.R.C)가 5월26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고 사은행사를 열었는데 1965년부터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로 변경, 각급 학교 및 교직단체가 주관이 돼 행사를 개최했다. 1973년 정부의 서정쇄신 방침에 따라 사은행사까지 규제하게 돼 스승의 날이 폐지되었으나, 1982년 스승을 공경하는 풍토조성을 위하여 다시 부활됐다. 스승의 날엔 교육공로자를 정부가 포상하고 수상자에게는 국내 산업시찰의 기회를 주었다. 또한 각급학교 동창회·여성단체·사회단체가 자율적으로 사은행사를 했는데 특히 ‘옛 스승 찾아뵙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고 사제관계를 깊게 하는 한편, 은퇴한 스승 가운데 병고와 생활고 등에 시달리는 이들을 찾아 위로하기도 했다. 선후배 및 재학생들은 옛 스승을 모시고 ‘은사의 밤’을 열어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며, 스승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드렸다. 스승의 역할에 대한 특별강연·좌담회·다과회 등도 열어 비록 하루이지만 뜻 깊게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스승의 날이 점점 퇴색되어 간다. 스승의 노고를 하루라도 덜고자 학부모들이 1일 명예교사를 자원하기도 했으나 이마저 중단한 학교가 많다. 심지어 어느 학교는 스승의 날에 선물은 물론 꽃도 가져 오지 말라고 가정통신문을 통해 당부한다. 촌지 수수 등 오해를 받기 싫어서다. 교장 재량으로 수업시간을 단축하여 옛 스승을 찾아뵈라고 한다지만 공휴일이 아니어서 효과가 별로 없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스승의 날이 아니어도 달걀 꾸러미나 과일, 담배 등 약소하지만 감사의 정이 담긴 선물을 선생님에게 갖다 드렸다. 교사들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던 시절엔 점심 때 상추쌈, 고추장을 소쿠리에 담아온 학부모도 있었다. 스승이 대접받는 시대는 이미 사라졌다고 자조하는 교사들도 있어 서글퍼진다. 하지만 며칠 앞으로 다가온 5월15일 스승의 날엔 학교에서 만류한다 해도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드리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줘야 한다. 스승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고 야단치는 학교야 설마 있겠는가. 스승이 웃을 때 제자가 따라 웃는다. 제자가 기뻐할 때 스승의 가슴에선 보람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수명 100분 단축

淸河담배를 쉽게 끊지 못하는 것은 니코틴의 중독성 때문이다. 담배연기를 한 모금 머금으면, 니코틴은 6초 내에 뇌에 도달한다. 그런데 일정기간이 흘러 뇌 속의 농도가 떨어지면, 흡연가의 몸은 무의식적으로 니코틴을 원하게 되고, 이때 다시 체내로 니코틴이 들어오지 않으면, 불안과 초조감에 휩싸이게 된다. 아침에 깨어나자 마자 담배생각부터 하는 사람은 니코틴의 중독이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흡연자가 내뿜는 담배연기 속에는 무려 4천종 이상의 화합물이 포함돼 있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발암물질만도 43가지에 이른다. 담배의 성분 중에서 특히 무서운 것은 타르(tar)다. 타르는 200여가지가 넘는 화학물질의 복합물로서 각종 암을 일으키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폐암은 물론이고 식도암, 구강암, 방광암, 췌장암, 위암, 자궁경부암 등을 일으키는 물질이 타르 안에 포함돼 있다. 또한 30가지가 넘는 각종 중금속이 타르속에서 검출된다. 하루에 한 갑씩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폐에는 일년이면 종이컵 한잔 분량의 타르가 축적된다. 깨끗해야 할 사람의 산소탱크에 매연 석탄가루 한컵씩을 붓는 장면을 상상하면 담배맛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모든 암의 30%가 담배 때문에 생기는데 특히 담배연기가 직접 닿은 구강, 혀, 식도, 폐, 기관지에 암의 90%가 생기며 담배 연기와 직접 접촉하지 않은 자궁경부, 췌장, 방광, 신장, 위장 및 각종 혈액암의 발생률도 비흡연자보다 1.5∼3배가 높다. 흡연자는 중풍이나 심근경색증, 협심증 같은 혈관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3∼4배 높다. 흡연은 고혈압, 고지혈증과 함께 동맥경화의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애연가들은 “아주 골초인데도 80세 이상 기침 한번없이 장수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특별한 체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몇몇 있기는 하지만 훨씬 많은 흡연자들이 40∼50대에 폐암으로 쓰러지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다.누구나 알고 있는 담배의 해로운 점을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는 정 금연할 수 없으면 적게라도 피우라는 마음에서다. 담배 한 개비당 5분, 한 갑이면 100분의 수명이 단축된다니 알고나 피우라는 뜻이다.

남북경협

어제 서울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경협추진 2차회의가 갑작스런 북측 불참 통보로 무산됐다. 남북관계에 어느 정도는 북측에 끌려가면서 대세를 주도하려 하는 정부 의도를 모르진 않지만 해도 너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수상을 세번이나 지내며 1·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장구한 정치 생활에서 언제나 위기를 찬스로 역전시키는 탁월한 지도력을 보였다. 동양의 고담으로는 ‘홍문의 잔치’가 있다. 항우의 군사 범증은 유방을 죽이기 위해 잔치를 빙자하여 초대했지만 유방의 군사 장량은 이를 알고도 참석해 기지로 주살을 모면했다. ‘장계취계’라는 말은 상대의 계략을 오히려 역이용하는 계교로 중국 삼국시대에 있었던 고사성어다. 임동원 대통령 특사가 방북, 남북의 대화 물꼬를 텄다고 호들갑을 떤지 불과 한달만에 또 꼬이고 말았다. 북측의 회담 거부 이유는 최성홍 외교통상부장관이 방미시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회견(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공책이 먹혀든다) 내용을 내걸고 있지만 이는 지난달 23일에 있었던 일이다. 그땐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회담 거부의 빌미로 삼는 것은 애당초 회담을 할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남북경추위가 무기연기 됨으로써 기대를 걸었던 경의선 개통, 금강산댐(임남댐) 임진강댐(4월5일댐)으로 인한 홍수 및 갈수 대책 등도 무작정 또 북측 처분만 기다리는 입장이 됐다. 남북대화의 재가동은 북측에 식량과 비료를 주는 것으로 시작됐던 게 겨우 이산가족 상봉, 그것도 북측 요구대로 장소를 금강산으로 양보해 만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회담 거부에도 예의란게 있다면 있다. 여유있게 알리지 않고 회담에 임박, 돌연 일방 통고 함으로써 서울 그랜드 힐튼 호텔에 다 마련한 통신등 준비시설물을 철수해야 했던 이쪽 입장은 체면이 말이 아니다. 위기를 찬스로 만들지도 못하고, ‘홍문의 잔치’처럼 낚싯밥만 떼이고, 번번이 장계취계 당하다 못해 이젠 굴욕까지 감수해야 하는게 남북관계에서 보이는 정부 처사다. 그래도 인내를 해야 한다면 해야 하겠지만 도대체가 뭣하나 미더운 것이 없다. 혼자 장구치고 북치다가 제풀에 나가 떨어지는 격이다. 白山

카드빚

세태가 점점 더 무서워진다. 예를 들면 택시 기사는 승객이 무섭고 승객은 택시 기사가 무섭다고 한다. 하도 희한한 범죄가 자주 일어나다 보니 이토록 서로가 무섭게 됐다. 사람 사는 게 이런 것이 아닌데 어쩌다 이리 각박하게 돼버렸는지 위정자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신용카드란 생활편의를 위해 참 좋은 것이다. 신용사회의 발달을 이끈다. 그런데도 신용카드가 마치 범죄의 요인인 것처럼 지탄받을 때가 있다. 카드빚 때문에 자살하고, 카드빚 때문에 도둑질하고, 카드빚 때문에 살인하는 예가 잦은 탓이다. 신용카드는 원래부터 잘쓰면 양약이고 잘못쓰면 독약이다. 신용카드를 잘못 썼으면 잘못 쓴 사람의 책임이지 카드를 타박할 일은 못된다. 그러나 이런 건 생각할 수 있다. 신용카드사가 마구잡이로 카드를 발급한 것은 카드사의 큰 잘못이다. 미성년자 그리고 사회인이라도 신용이 의심되는 사람에게까지도 일단 카드를 내주고 보자는 식의 발급은 신용사회의 발달을 저해한다. 이 때문에 선량한 이용자들이 골탕을 먹는다. 미성년자나 신용이 의심되는 사회인에게까지 발급함으로써 손실을 보는 위험부담을 선량한 이용자들이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카드 이용 수수료가 외국보다 턱없이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드빚으로 인한 비극이 많았지만 얼마전 발생한 위장택시 살인범 행각은 정말 모골이 송연하다. 택시로 잘못 알고 탄 여성 5명을 사흘동안에 잇따라 죽인 범인들 또한 800만원의 카드빚 때문에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정말 어리석기가 짝이 없다. 그래봐야 얼마를 털었는가, 겨우 수십만원씩을 빼앗기 위해 인생을 망치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그들의 젊은 나이가 아깝다. 수십만원이 아니고 수백만원씩을 빼앗는다 해도 어찌 젊은 인생을 그토록 망칠 수 있을 것인지 잘 생각해볼 일이다. 카드는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잠언적 속담을 잘 새겨 써야 하지만, 기왕 진 갚을 수 없는 카드빚을 갚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고 갚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차라리 떼어 먹는게 낫다. 빚은 나중에라도 갚을 수 있지만 인생은 한번 망치면 그만이다. 白山

실버타운

고급호텔 수준에 버금가는 실버타운은 주거공간이 30평∼72평에 이른다. 단순한 주거·요양 기능을 떠나 의료·체력단련·문화·휴양시설 등을 고루 갖췄다. 갤러리, 쇼핑센터, 골프연습장, 수영장 등을 갖춰 부족한 게 없다. 의사처방에 의한 치료식이 제공되고 독립생활이 어려운 중풍환자들을 위한 24시간 간호체제도 운영된다. 무료로 세무·법률상담까지 해준다. 입주보증금은 평형별로 2억4천만∼8억3천만원이며 식사·세탁·관리·시설이용료·진료비 등 별도의 생활비가 110만∼180만원 가량 든다. 지난해 5월 용인시 기흥읍 6만8천여평 부지에 문을 연 ‘삼성 노블카운티’의 경우다. 20층짜리 건물 2개동에 590가구가 입주한다고 한다. 실버타운에 입주한 노인들은 동년배 친구들도 사귀고 운동도 하며 ‘자신들만의 인생’을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입주보증금이 최하 2억4천만원에 별도 생활비가 180만원이라면 그야말로 부러울 게 없는 여유로운 삶이다. 명절 때나 돼야 겨우 선물을 받는 양로원 노인들에 비하면 고급 실버타운은 천국임이 분명하다. 오늘날은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령인구가 급상승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나 구호기관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노인과 정신적 소외층 노인들도 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노령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이미 2000년에 전체 인구의 7.1%수준에 도달, 유엔이 정하고 있는 ‘노령인구국’에 진입했다. 노인문제 전문가들은 노령인구가 오는 2005년엔 8.7%, 2015년엔 11.3%, 2020년엔 노령인구국가 기준의 배에 달하는 13.2%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2030년엔 노인인구가 1천만명을 상회,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경제력 부재층의 노인들이 겪는 서러움은 형용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장수하는 게 원망스럽다고 탄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억원의 돈을 내고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노인들은 특수층이지만 가난한 노년은 영혼까지 공허하다. 최근 교회, NGO선교단체 등 기독교계가 입주비가 아주 저렴한 실버타운과 노인전문병원을 속속 건립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반갑고 고맙다.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해 정부는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지 답답하다.

딱한 사람, 박지만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또 히로뽕을 복용하고 윤락녀와 성관계를 갖는 생활을 계속하다 붙잡힌 것은 생각할수록 한심하다. 언론에 보도된대로 박씨는 2000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서울 용산, 청량리 등지 사창가를 돌며 11회에 걸쳐 상습적으로 히로뽕을 몸에 주사했다고 한다. 이제 박씨는 히로뽕 투약혐의로만 다섯번째 처벌을 받게 됐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관이나 집에서 보통 3회 연속 윤락여성과 함께 히로뽕 주사를 맞고 성행위를 했으며 그때마다 수백만원씩 ‘화대’를 지불했다고 하니 보통 탕아가 아니다. 1989년 처음 히로뽕에 손을 대 구속된 그는 1998년 네번째로 구속된 다음에는 공주치료감호소에 입소, 1년간 전문 마약 치료를 받으며 재활 노력을 열심히 하여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했으나 이번 일로 시쳇말로 ‘혹시나’가 ‘역시나’가 됐다.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배려로 전자제품 부품용 산화철 생산업체 부사장이 된 박씨가 또 ‘백색 유혹’에 빠진 것은 지난 날 우리 사회가 그에게 너무 관대했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신분과 부모(박정희·육영수)의 비극적 죽음 등 ‘비운’을 고려해 감옥에 갇힐 때마다 선처한 게 잘못됐다는 말이다. 체포 당시 박씨는 “히로뽕의 너무나 강렬한 마력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며 구치소로 향하기 전 수사검사에게 “검찰의 도움으로 다시 한번 마약의 덫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니 기가 차다. 또 관용을 바란다니 가당치 않은 망상이다. 아버지가 대통령이었다고 해서 그 아들이 특혜나 특권을 누릴 근거는 추호도 없다. 이 땅의 수 많은 아들 딸 중에는 서럽게 억울하게 부모를 잃은 경우가 허다하다.총탄을 맞고 숨진 것만 비극은 아니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과 범부의 아들이 무엇이, 어디가 다른가. 지만씨의 나이가 지금 44세다. 유치원생, 초등학생이 아니다. 아내와 자녀가 없다고 하여 박씨를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결혼 안하고, 결혼 못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박정희·육영수 두 사람은 타계하여 모르겠지만 누나인 박근혜 국회의원만 애꿎게 어려움에 처했다. 딱하게 됐다. /淸河

인격 감상법

‘인권을 무시하느냐’고 한다. 인권은 무시할 수 없다. ‘인격을 무시하느냐’고 한다. 인격은 무시할 수 있다. 인권은 빈부의 차이, 문화의 차이, 출신의 차이 등을 가리지 않고 균등하다. 인권은 타고나는 선천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이다. 그 무엇도 인권은 박탈할 수 없는 자연권이다. 이에 비해 인격은 다르다. 빈부, 문화, 출신의 차이에 따라 다소간에 영향이 있어 차등하다. 인격은 가꾸는 후천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이다. 그 무엇도 인격은 절대시 할 수 없는 형성권이다. 인격은 이래서 복잡 다양하다. 자신의 인격은 자신이 가꾼다. 타인이 자신의 인격을 가꾸어 줄 수는 없다. 인격은 타인의 평가에 의해 가치가 인정되는 상대적 도덕률이다. 이 때문에 남의 인격을 박탈할 수 있고 또 개인적으로 박탈 당할 수가 있다. 인격의 기초적 요인은 인간적 품성이다. 승용차 종류가 무엇이냐 하는 차격(車格), 권리의 유무를 존중시 하는 권격(權格), 돈의 다과를 따지는 전격(錢格), 미모와 체구를 중히 여기는(體格), 집안의 내력을 자랑하는 가격(家格) 등이 인격인 것은 아니다. 인격에도 종류가 있다. 학문적 인격, 윤리적 인격, 사회적 인격 등 이밖에도 많은 분류가 가능하다. 또 개인적 인격과 대중적 인격으로도 구분할 수가 있다. 하지만 누구든 아무리 고매한 인격자일지라도 모든 인격적 요소를 다 소유할 수는 없다. 인간으로써 불가능한 일이다. 고상한 인격자로 알았던 사람에게 막상 실망을 가져오는 결함을 이래서 발견하곤 한다. 그렇지만 그같은 기대는 애초에 있을 수 없는 환상이다. 인격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개념이지 절대적 개념이 될 수 없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사회는 개개인이 지닌 인격의 장·단점이 상호보완 해가면서 공동체 생활이 영위된다. 다만 피라밋 구조 같은 지도계층의 상층부로 올라갈 수록 고도의 사회적 인격, 대중적 인격, 윤리적 인격이 요구되는 건 사실이다. 지도계층의 상층부가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데서 사회병리 현상이 출발하고 귀납된다. 심지어 개인적 인격에 속하는 기초 품성마저 의심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의 인격을 능히 무시할 수 있는 현실은 국가사회의 불행이다.

정자·난자 매매

남성의 정자, 여성의 난자가 매매되고 있다. 장기 거래에 이어 이젠 생명의 씨앗까지 팔고 사는 세태가 됐다. 정자는 10만∼20만원, 난자는 400만원선이라고 한다. 주로 남녀 대학생들이 공급원이라는 것이다. 하긴, 미국에서도 팔고 사긴 한다. 가격은 우리보다 훨씬 비싸 정자는 100만원, 난자는 2천500만원까지 하는 모양이다. 그만큼 수요공급이 국내보다 더 희소하기 때문이겠지만 얼핏 사람값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같아 실소를 자아낸다. 국내 불임부부가 100만쌍이 넘는 것으로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남성불임은 무정자증, 여성불임은 염색체 이상으로 신비스런 생명의 씨를 생산하지 못한 것이 불임의 원인이다. 기왕 정자나 난자를 구입, 인공 수정할 요량이면 공부 잘하고 건강하고 잘생긴 남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찾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유전병 등을 가질 수가 있어 내력을 아는 친인척끼리 정자와 난자를 주고 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예컨대 남성 불임의 경우엔 아내가 시동생의 정자, 여성 불임에는 남편이 처제의 난자를 받아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다. 남성불임은 다른 남자의 정자를 아내에게 체내 인공수정을 하지만, 여성불임은 다른 여자의 난자를 남편 정자와 체외 인공수정을 하기 때문에 복잡하다. 도대체 자식이 뭐길래 꼭 이래야만 하는건지 황당하다. 정자든 난자든 한쪽을 주어 아이가 탄생하면 팔았든 기증했든지 간에 생체적으로는 준 사람의 자식이기도 하다. 남에게 판 것이라면 자신의 자식이 평생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살고, 친인척끼리 기증했다면 아무 잘못이 없는 아이에게 장차 출생의 비밀이 평생 부담스럽게 될 것이다. 불임부부 중 남편이든 아내든 한쪽은 진짜 혈육이므로 양자를 들인 것보다 더 낫게 여길 수 있겠지만 윤리성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할 것 같다. 불임에 정자 및 난자의 이식이 정녕 불가피할 것 같으면 영국처럼 매매를 금하는 대신에 국가가 공급 체계를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그러나 불임을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의술의 발달이 빨리 있기를 기대하고 싶다. 의학도는 아니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白山

권력꾼의 수명

초패왕 항우가 해하의 대회전에서 유방휘하 한신에 의한 사면초가의 포위망을 간신히 뚫고 도망쳤을 때의 일이다. 양자강의 오구에 이르러 돌아보니 따르는 장졸수가 겨우 28기 뿐이었다. 오구의 면장격인 정장이 서둘러 강을 건널 배를 마련했다. 양자강만 건너면 고향땅인 강동인 것이다. 그러나 항우는 강을 건너지 않고 추격한 한신의 군사를 맞아 자결했다. 항우의 자결은 패왕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그가 자신이 왕으로 임명한 한중왕 유방에게 패한 좌절감 때문이었다. 막강한 권력을 마구 휘두르다가 권력을 놓치면 견디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 자고로 권력의 속성이다. 돈을 잘 쓰던 부자가 망하면 돈 없는 이보다 더 견디기가 힘드는 것과 같다. 김대중 정권의 임기말이 너무 걱정스럽다. 청와대와 그의 가족들 주변이 온통 부패의혹으로 뒤덮였다. 얽히고 설킨 권력형 비리의 미로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국민들이 되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다. 그러고도 큰 소리 친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은 커녕 의혹 부풀기라며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아직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이래서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영원한 권력은 없다. 이 정권도 불과 10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권력의 정상 그리고 권력의 상부층, 중간층, 하부층에서 나름대로 정권을 믿고 권력을 남용해온 이들의 권세 역시 1년도 못돼 허무하게 사라진다. 권력을 의무로 알고 행사한 권력자는 권력을 내놓는 것을 마음 편하게 여긴다. 반대로 권력을 탐욕스럽게 행사한 권력자는 권력을 내놓는 것이 두렵게 여겨진다. 권력의 남용은 법에 의한 법치가 아니고 사람에 의한 인치의 소치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장차 자신이 권력에 의해 응징당할 이도 없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정권의 부패상이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사회정서다. 사면초가 속에 있으면서도 권력에 근신할 줄 모르는 이 정권의 권력꾼들 말로가 어떨지 궁금하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은 시정의 잡배가 아니라, 권력의 잡배들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白山

편견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을 차지한 선수는 소년시절을 휠체어에서 보내야 했던 레이유리라는 지체장애인이다. 레이유리는 1873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났는데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를 갖게 됐다. 레이유리는 달릴 수 없는 것은 물론 걷는 것도 불편했지만 신기하게도 서 있는 자세에서 껑충 껑충 뛰어 오르는 것은 잘했다. 어린 레이유리는 아이들이 뛰어가서 볼 것을 껑충 몸을 추켜세워 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것이 뛰기라는 운동의 좋은 훈련이 된 것이다. 당시 올림픽 종목에는 선 자세에서 치뜨는 높이뛰기, 넓이뛰기, 세단뛰기가 있어 레이유리의 희망을 키워 주었다.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제2회 올림픽에 26살의 나이로 출전한 레이유리는 이 3개 종목에서 우승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제3회 올림픽에서도 역시 이 3개 종목을 모두 석권, 2연패를 차지했다. 이어 1906년 아테네에서 개최된 중간대회와 1908년 제4회 런던올림픽에서도 종목이 없어진 세단뛰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2개 종목에서 각각 우승, 연속해서 금메달 10개를 획득하는 역사를 기록했다. 오늘날의 장애인 올림픽이 아니라 올림픽에서 10관왕을 차지한 레이유리가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은 인간승리의 표상이다.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다리가 불편한 지체 장애인이었고, 독일의 작곡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장애는 문학과 음악 창작에 전혀 장애를 주지 않았다. 사람들 또한 그들의 장애를 문제 삼은 적이 없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의 장애가 바로 셰익스피어와 베토벤을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한 축복으로 여겼다. 한국화단의 거목 운보 김기창 화백이 청각 장애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운보는 청각 장애인이며 화가인 최일권에게 ‘예술의 길은 절규’라고 격려한 바 있다. 장애인은 분명히 비장애인과 조금도 다름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있다. 장애인들만의 특수학교를 자기가 사는 동네에 설립한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편견과 의식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잊고 사는, 그것이 정말 큰 문제다. / 淸河

굴비

참조기를 소금에 약간 절여 통째로 말린게 굴비다. ‘굴비 엮듯이 한다’는 속담이 있다. 지푸라기로 굴비를 한 줄에 열마리씩 엮은 두 줄을 한 묶음 단위로 시렁같은데 걸어놨다. 점심때 물 만 꽁보리밥을 시렁에서 빼낸 굴비를 부러뜨려 조각 내가며 고추장에 찍어 먹곤하였다. 그 무렵의 굴비는 이처럼 단단한 것이었다. 지금의 눅눅한 굴비는 사실상 조기이지 굴비가 아니다. 50여년전이다. 가세가 넉넉지 못했던 집안인데도 굴비는 자주 먹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귀하지 않고 흔했기 때문이다. 홍어 역시 그땐 장에 가면 흔해빠진 천한 생선이었던 게 지금은 좀처럼 먹을 수 없게 됐다. 이도 생태계의 변화인지, 자연의 조화속은 참으로 알 수 없다. 영광굴비가 국산 참굴비의 대명사처럼 됐다. 전국에 보급되는 영광굴비가 다 영광에서 생산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근해에서 잡은 참조기를 영광 바닷 바람으로 말려도 영광굴비의 맛이 난다고 한다. 같은 바닷 바람인데도 이처럼 지역에 따라 다른 게 자연의 조화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중국산 굴비도 그렇다. 가령 공해상에서 우리 어선이 잡으면 국산 굴비가 되고 중국 어선이 잡으면 중국산 굴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산 굴비는 말린 바닷바람이 달라서인지 아무래도 국산 굴비보다 맛이 덜하다. 또 육지에 토양과 기후의 특이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다 또한 바닷속의 특이성이 없지 않다. 예컨대 칠레산 수입 홍어는 진짜 홍어인데도 맛이 덤덤한 게 감칠 맛 나는 국산 진짜 홍어를 당해내지 못한다. 민어과에 속하는 참조기는 입에 홍색을 띤 점이 있으며 몸이 길고 두께가 얇고 폭이 넓으며 꼬리자루가 길고 가늘다. 떼를 지어 회유할 때는 수면위로 곧잘 뛰어 오르고 마치 개구리 떼가 우는 듯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겨울에는 제주도 서남쪽 따뜻한 바다에서 월동한 뒤 북상하기 시작하여 3월 하순에서 4월 중순경엔 전북 부안 위도 부근에 이른다. 이어 4월 하순부터 5월 중순까지 연평도 근해에 크게 어장을 형성한다. 6월 상순엔 압록강 대화도 부근, 하순에는 발해만까지 올라간다. 조기철이 됐지만 옛 맛을 지닌 굴비는 역시 맛볼 수 없을 것 같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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