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언론사마다 각급 선거를 앞두고 실시하곤 하는 여론조사가 들쑥날쑥 하다. 서로간에 편차가 너무 심해 도대체가 믿기 어렵다. “나도 우리 신문에서 실시하는 조사 내용을 제대로 믿지 못한다”고 했다. 어느 중앙지의 중진 언론인이 최근에 어떤 모임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 선거를 둔 언론의 여론조사가 무더기 징계를 당했다. 최근 기자협회보(1135호)는 방송3사·18개신문이 경고 및 주의 조치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방송3사는 조사방법과 조사기간 등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18개 신문사는 조사주체 방법 일시 지역 표본크기 등을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방송사는 방송위원회, 신문사는 선거기사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조치를 당했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생각나는 것으로 제15대 총선 때 방송사의 엉터리 출구조사를 들 수가 있다. 전국의 개표결과를 여대야소로 예상해 보도했던 것이 오히려 여소야대로 반대가 되는 엉터리 조사 해프닝을 연출했던 것이다. 여론조사의 생명은 신뢰성이다. 신뢰성은 공정성과 형평성에서 나온다. 이런 책임감 없이 ‘믿거나 말거나식’, ‘안맞아도 할 수 없고식’으로 하는 여론조사 보도는 유권자를 우롱한다. 선거풍토를 흐리게 하고 사회를 오도한다. 상업성, 즉 흥미위주에 치우친 보도를 위한 것이 바로 이같은 엉터리 여론조사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심각하다. 연못에 돌을 던지는 것은 재미로 하는 것일 수 있지만 돌에 맞는 개구리는 치명상을 입는다. 연못의 물은 파장을 일으킨다. 잘못된 여론조사로 엉뚱한 피해를 입거나 부당한 반사이익을 보는 것은 조사 당사자인 후보 또는 후보 예정자들에 국한하지 않는다. 유권자와 국민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이런 여론조사가 한두 번도 아니고 잇따라 자꾸 나오면 그 부정적 영향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작금의 여론조사란 게 과연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인지 깊이 성찰해야 할 단계다. 흔히 미국 언론사의 여론조사를 말하지만 그들은 벼락치기 조사를 하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 충분한 인력, 폭넓은 지역, 폭넓은 계층 등을 대상으로 사회과학적 토대 위에서 책임감 있는 조사를 한다. 국내 언론사의 일부 무책임한 여론조사는 자제돼야 한다. /白山

투사형과 전문형

1945년 광복이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정치에 참여했다. 조국 광복을 위하여 몽매간에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한 분 들이다. 그토록 소원하던 조국 광복을 이루었으니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들의 정치참여는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여기에 굳이 실명을 거명하진 않겠으나 건국에서 건국 이후의 정치활동에 좋은 결과를 낸 분들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독립운동가의 정치참여가 이처럼 성공하지 못한 것은 학문적 연구과제가 될 만하다. 어떻든 그 이유로 독립운동과 정치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독립운동은 저항운동이다. 독립운동가는 곧 투사인 것이다. 이에 비해 정치는 저항운동이 아니다. 건국후 독재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장구한 민주화운동 끝에 집권한 분들이 있다. 그러나 그 분들의 집권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영삼 정권이 그러하고 김대중 정권도 마찬가지다. 독재정권에 저항한 분들의 집권은 마땅히 성공한 정권이 돼야 하는데도 실패한 정권으로 낙인 찍히는 이유 또한 그 분들 역시 투사 출신들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투사형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닌 엄연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테크네트로닉 시대다. 비분강개하거나 저항 의지만으로 되는 정치시대가 아니다. 현대 정치, 미래 정치는 더욱 더 테크노크라트층을 필요로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세분화하면서 전문화 하고 있다. 권모술수적 정치 개념은 이제 국리민복을 위해 아무 할 일이 없다. 실사구시의 정치개념이 각 분야에 기여를 요구받는 시대다. 요즘 여야의 대통령후보 경선을 보면서 새삼 그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세계는 지금 나라마다 다투어 실리주의 추구로 적극 가고 있다. 이 와중에서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다음 집권자는 투사형일 수 없다. 저항적 투사 개념의 소유자 보다는 실사구시에 능한 전문 개념의 통치자가 필요한 시대다. 민주당,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 관전은 이런 점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白山

변절과 거짓말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선을 노린 공화당의 닉슨 진영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 선거사무실에 침입,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다. 워트게이트 사건으로 유명한 이 불상사는 결국 닉슨의 사임을 가져왔으나 닉슨이 시키거나 사전에 알고 있었던 일은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이같은 의혹 폭로로 닉슨은 비로소 몇몇 실무진의 아랫 사람이 획책한 사실을 알게 됐으나 보도 내용을 전면부인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의회의 탄핵 사유는 닉슨이 도청을 시켰다는 것이 아니고 알고도 부인한 거짖말에 초점을 맞추었다. 만약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로 자체 조사를 벌여 사실을 시인하고 응분의 조치를 즉각 취했더라면 닉슨이 사임하는 지경으로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이처럼 거짖말 하는 대통령의 부도덕성을 용납하지 않는 고도의 품격을 요구한다. 영국 수상 처칠은 1·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세계적인 정치가며, 1953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정치적인 흠은 있다. 1900년 보수당의 하원 의원으로 당선, 정계에 몸담은지 4년만에 보수당의 보호관세 정책에 반대하여 당적을 자유당으로 옮겼다. 1906년 자유당 내각에 입각, 상상(商相) 식민상(植民相) 해상(海相) 군수상(軍需相) 육상(陸相) 공상(空相) 등을 지내다가 1924년 보수당으로 복귀했다. 자유당의 분열과 대소(對蘇)정책의 이견으로 보수당에 재입당한 후 재상(財相) 등을 거쳐 수상을 세차례나 역임했지만 정치 역정에 탈당 복당의 흠결은 지울 수가 없었다.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에 피해 야당 당수로 있으면서 소련을 ‘철의 장막’이라고 한 유명한 말을 처음 썼다. 1951년 다시 집권했다가 1955년 수상 자리를 이든에게 넘겼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용호상박을 이루는 이인제와 노무현, 노무현과 이인제를 보면서 처칠과 닉슨, 닉슨과 처칠이 생각난다. 정치인에겐 변절이나 거짖말이나 다 지탄의 대상이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게 없다. 그러나 그 둘 중에 하나의 선택이 불가피하다면 어떤 것이 더 옳은가를 생각해 본다. /白山

주례 자격

결혼사상 가장 짧은 주례사를 한 사람은 백범 김구선생으로 알려져 있다. 백범은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먼저 숨진 동지의 아들 결혼식에서 “너를 보니 네 애비가 생각난다. 부디 잘 살아라.”하고 주례사를 끝냈다고 한다. 하객 중 한 사람이 시계를 봤더니 정확히 5초 걸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례를 서는 사람들은 신랑·신부와 하객들 앞에서 덕담을 펼쳐 놓는다.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고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주례사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고린도전서의 일부분이다. 몽테뉴는 “미모나 애욕에 의해 맺어진 결혼만큼 일찍 분쟁을 일으켜 실패하는 것은 없다. 결혼에는 더욱 견실하고 변함없는 토대와 신중한 행동이 필요하다. 끓어오르는 환희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몽테뉴는 또 “결혼은 새장 같은 것이다. 밖에 있는 새들은 함부로 들어오려고 하나, 안의 새들은 함부로 나가려고 몸부림친다”고도 했다. T 폴러는 “결혼 전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보라. 결혼하고 나서는 한쪽 눈을 감아라”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시절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 오정해씨 결혼 주례사를 통해 “부부는 첫째로 상대방의 기를 살려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지 않는 아내는 남편 기를 꺾는 아내입니다. 아내한테는 이 세상의 어떤 금은보화보다도 남편의 사랑과 남편이 자기를 인정해 주는 것 이상의 행복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결혼시즌인 요즘 주례를 서는 유명인사들의 덕담이 신랑 신부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랑 신부의 미래를 축복해주는 주례야 말로 자기 인생에서 한 점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주례 청탁을 받고 “나는 주례를 설만큼 떳떳하지 못하네”라는 말로 정중히 사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며칠 전 들었다. 주례 자격을 갖춘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淸河

그림값

그림값 최근 최고의 작품가격으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서양화가 박수근(朴壽根·1914∼1969)은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한 일생을 보냈다. 강원도 양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할 무렵 가세가 몰락하자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했다. 18세 때인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 ‘봄이 오다’가 입선된 이후 1936년부터 1944년의 마지막회까지 조선미술전람회의 공모출품을 통하여 화가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1952년 월남, 대한민국 서울전람회와 대한미협전을 통해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195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가 되었으며, 1962년에는 심사위원이 됐다. 박수근의 작품은 ‘절구질 하는 여인(1952년 作)’, ‘빨래터(1954년), ‘귀가(1962년)’ ‘고목과 여인(1964년) 등에 나타나 있듯이 가난한 농가의 정경, 서민들의 평범한 생활정경을 일관성 있게 담았다. 풍부한 시정과 향토색 짙은 박수근의 작품은 붓과 나이프를 사용하여 자잘하고 깔깔한 물감의 층을 미묘하게 거듭 고착시켜 마치 화강암 표면같은 바탕을 창조했다. 그 위에 독특한 감흥을 주는 굵고 우직한 검은 선으로 형태화를 단순화시켜 한국적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수군의 작품은 그가 죽은 뒤에 서서히 알려졌다. 1965년 10월 중앙공보관에서 열렸던 유작전과 1970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을 계기로 재평가돼 유화로서 가장 한국적 독창성을 발휘한 화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박수근의 작품값은 국내 미술경기가 최절정에 달했던 1980년 말∼1990년 초 가격인 호당 1억원 선을 훨씬 넘어섰다. ‘앉아있는 여인’이 4억6천만원이었고 지난 3월28일 서울옥션하우스에서 열린 경매에서는 1958년 작 ‘초가집(30×15㎝)’이 4억7천500만원에 낙찰됨으로써 현대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를 또 한번 경신했다. 박수근의 작품은 200여점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의 작품을 소장한 사람들은 “경기가 더 좋아지면 내놓겠다”고 한다. 미술작품이 재산목록이 되고 박수근·김환기·이중섭 등 몇몇 사람들의 작품이 고액인 것은 좋으나 살아 있는 수 많은 다른 화가들의 그림값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은 안타깝다. /淸河

도시계획

프랑스 파리는 도시계획이 세계에서 가장 잘 된 도시로 평가받는다. 지상 교통망과 지하철이 잘 발달돼 교통 역시 아주 편리하다. 현 파리 시가지 대부분은 옛날 파리 시가지가 아니다. 지금의 도시계획이 처음 실시된 것은 1860년이다. 당시 오스만 시장은 도시계획을 실시하면서 광장과 대로를 내어 조경을 하는 등 구 시가지를 마구 철거했다. 시민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미친 시장”이라는 욕설이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당대의 저명한 문학가 고티에마저 “이것이야 말로 신천지 미국의 필라델피아 처럼 만들려는 수작이다”라고 혹평했다. 시인 보들레르는 “이제 파리는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옛 것에 대한 애착심으로 폭이 100m까지 이르는 길을 거미줄처럼 내는가 하면 운동장 같은 공원을 군데군데 조성하느라고 구 시가지가 마구 헐리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과감한 도시계획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처럼 아름답고 살기좋은 도시로 탈바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 도시는 거의가 도시계획에 의해 도시가 조성되지 못하고 기존의 도시를 바탕으로 도시계획이 형성됐다. 즉 도시계획이 앞서지 못하고 도시에 밀려 도시계획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이미 주택이 밀집된 지역에 도로며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을 나중에 하느라고 애를 먹곤 했다.(도시계획과 함께 도시기반시설이 앞선 도시는 안산시가 유일하다.) 그나마 외곽지의 남은 땅도 아파트단지다, 신도시다 하여 전수 집만 짓는다. 여기에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 시설을 없앤다며 당장 자치단체가 사들이지 못하면 도로 등 도시계획 시설을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사유재산 보호의 취지는 좋지만 예컨대 나중에 다시 길이 필요해서 낼려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예산을 시민이 부담해야 한다. 아파트 옆에 아파트를 또 짓고 주택 뒤에 또 주택만 지어 빈틈 없는 숨구멍 막힌 도시를 만드는 것도 문제다. 파리는 140여년전에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시장에 의해 수 백년 이어갈 지금같은 면모의 시가지로 만들었다. 도시계획에 수 백년은 그만두고 수 십년이라도 제대로 내다볼 줄 아는 국내 시장이 좀 나왔으면 좋겠다. /白山

DJ와 노무현

내일 출발하는 임동원 특사의 방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추진이 최대 과제일 것으로 안다. 남북관계의 현안을 푸는 계기를 김위원장의 서울 방문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차 정상회담으로 국내외의 관심을 크게 모아 레임덕을 극복하려는 의도 또한 가질 수 있다. 평양을 다녀온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남측과 이른 시일 안에 대화가 속개되기를 희망한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말한 것으로 전했다. 정부 당국자는 “(김위원장은)대통령을 계속 뵙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메가와티의 전언에 토를 달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최우선으로 꼽는 게 남북관계 개선이다. 노무현씨는 며칠 전 전북지역 지구당 간담회에서 “대북정책은 남북간 신뢰 증진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면서 “DJ의 대북정책은 이 관점에서 하나의 빈 틈 없이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씨의 정치적 견해는 그의 자유지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음모론이 제기된 마당에 매우 중대한 발언이다. 만약 그가 ‘김심’을 얻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이념 성향의 승계로 보아진다. 무엇보다 DJ로서는 자신의 대북정책(햇볕정책)을 가장 확실히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를 원하는 관측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누구든 남북관계 개선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방법에 있어서의 차이를 두고 독점된 대북정책인 것처럼 오도해서는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예컨대 유연한 상호주의나 엄격한 상호주의나 평화지향의 목표는 다 같다. 그간의 대북정책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국민에게 설명되지 않은 돌출적 독단을 일삼은 데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혹시 이루어지면 ‘김심’의 후계자를 뜨게 만드는 정치적 잠수 효과의 노림 또한 없지 않을 것 같다.(경선에서 탈락하면 또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메가와티가 비록 희망적 전언을 했다지만 결과는 임동원 특사가 막상 가봐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반응이 무척 궁금하다. 미국이 겉으로는 특사 방북을 환영하면서 속으로는 왜 걱정하는지도 알고 싶다. /白山

고려 왕실

신라의 성골은 부모가 다 왕실인 근친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로 진덕여왕까지 28대 왕이 성골이다. 신라는 992년 동안에 56대 왕이 재위했다. 고려왕실 또한 근친결혼이 성행하였다. 무려 28명의 아내를 두었던 태조 왕건의 후손들끼리 많은 근친결혼을 했다. KBS드라마 ‘제국의 아침’에 나오는 왕규는 태조와 그의 아들 혜종의 장인이다. 부자가 왕규의 딸을 취한 것이다. 이 무렵은 또 아내를 수 명씩 두기가 예사여서 근친결혼은 더욱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히곤 했다. 태조의 셋째 비 유씨 소생의 흥방공주는 여섯째 비 류씨 소생의 원장태자, 그러니까 이복 남매끼리 결혼했다. 넷째 비 황보씨 소생의 공주는 셋째 비 유씨 소생의 태자(4대왕 광종)와 결혼했다. ‘고려사열전-공주조’는 이밖에도 태조의 아홉 공주가 다 이복 남매끼리 결혼한 것으로 전한다. 이만이 아니다. 2대왕 혜종의 공주 경화궁부인은 4대왕 광종의 둘째 비가 됐다. 광종은 태조의 셋째아들로 셋째 비 소생이며 혜종은 광종의 이복형이 되므로 숙질간에 결혼한 것이다. 또 3대왕 정종의 공주는 태조의 열하나째 비 소생인 효성태자에게 시집갔으므로 이 역시 숙질간의 결혼이었다. 근친결혼의 예는 이밖에도 허다하다. 사가들은 고려 초기 태조가 여러 지방의 토호 세력과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정략결혼의 다처주의, 그리고 외척등 외세배제를 위한 철저한 왕권주의 관념이 이같은 근친결혼을 가져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왕은 상징적 존재인데도 지금의 왕인 아키히토(明仁)의 아버지 되는 히로히토(裕仁)까지만 해도 근친결혼을 했다.) 아무튼 이로인해 민간에까지 파급됐던 근친결혼이 엄격히 금지된 것은 유교가 생활화한 조선조 들어서였다. 근친결혼은 기형아를 낳는 등 좋지못한 유전 요인을 지녔다는 것이 우생학의 통설이다. 서로 먼 혈족끼리 생산되는 자녀일수록 유전적 우수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혼혈아들의 두뇌가 비교적 좋은 게 이 때문이다. 현행 민법은 ‘남매 혈족의 배우자, 부의 혈족 및 기타 8촌 이내의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의 관념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게 고려 왕실의 근친결혼이다. KBS드라마 ‘제국의 아침’시청자들 가운데 혹시 의아심을 가질 수 있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추려 설명해 보았다. /白山

일터

성경 ‘마태복음’에 ‘포도원의 일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포도밭 주인이 일꾼을 채용했는데, 그때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을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똑같이 1데나리온(로마의 은화 단위)의 품삯을 지불했다. 하루종일 일한 사람이 불평을 토로했다. 주인은 “여보게 이 사람, 자넨 나하고 하루에 1데나리온씩 약속을 하잖았는가. 자네 임금이나 찾아 가게. 난 오늘 마지막에 온 사람한테도 자네하고 똑같이 지불하고 싶을 따름일쎄.”라고 말했다. 물론 여기에서 ‘마지막에 온 사람’이란‘한 시간 일한 사람’을 가르킨다. ‘데나리온’은 당시의 최저의 임금이라고 한다. 예수는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위한 최저임금제를 가르친 것이다. 노동자의 생활보증을 염려하면서 노동의 정신적 의의를 가르쳤고, 노동자는 처음부터 그 노동에 상당한 전보수(全報酬)를 요구하기에 앞서, 보수 이상의 것을 해야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특히 한시간이라도 일하게 한 포도원의 일꾼은 소위 실업자를 위해 직업을 알선해준 것이다. 거기에도 하나의 현대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겠다.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은 다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노동을 통하여 자신이 높여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무엇인가 이익을 주어야 한다. 노동이란 인간형성의 뜻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똑같이 임금을 지불한 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예수의 사랑’이지 어느 누구, 계층을 편애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에게 일터를 준 것이다. 처음엔 불평을 토로했으나 나중에 포도밭 주인의 뜻을 읽은 일꾼 역시 동료애를 느끼고 이해한 것이다. 근로자들의 파업이 연례행사처럼 계속되는 오늘날의 노동현장을 본다면 예수는 어떻게 말씀하실런지 궁금하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마태복음 20장24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淸河

고달픈 위인들

조선시대 왕은 오전 4시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파루(罷漏) 소리에 기상했다. 파루를 신호로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만 열리는 게 아니라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려 왕까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수라(아침 식사)전에 쌀죽인 죽수라를 가볍게 들고 12개 접시에 탕, 찜, 전골 등 반찬을 담은 12첩 반상을 받은 뒤 곤룡포를 입고 외전으로 나갔다. 왕의 공식업무는 조회, 국정 현안 보고 받기, 회의 주재, 신료 접견 등이며 하루 세차례 공부를 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왕은 편전에서 왕의 비서인 승지가 접수해 미리 검토하고 요약해 놓은 공문서에 결재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처리할 문서가 많아 붓으로 일일이 결재하기 힘들면 내시에게 계자인(啓字印) 이라는 도장을 찍게 했다. 오래 앉아 공문서, 상소문을 보며 눈을 혹사했기 때문에 조선시대 왕들은 3대 태종 때 부터 눈병과 종기를 유전병처럼 달고 살았다. 정조(正祖)의 경우 큼직한 벼루만한 종기가 등 전체에 퍼져 서너되의 피고름을 쏟기도 했다고 한다. 왕들은 고단백 식사를 하면서도 운동량은 부족해 비만, 당뇨, 고혈압 같은 성인병에 시달렸다. 왕의 일거 일동은 ‘승정원 일기’에 모두 기록됐다. 공식적인 업무가 시작되는 아침부터 업무를 마치는 밤까지 승정원(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에서 왕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일체의 일을 기록한 승정원 일기는 왕의 행적과 신하들의 대화내용을 속기 형태로 적었다. 조선 초기의 승정원 일기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인조(仁祖)원년부터 순종(純宗)때까지 272년간의 기록만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승정원 일기의 첫 문장은 언제나 ‘오전에 맑았다 오후에 흐린 날’등 날씨로 시작되며 왕의 건강과 감정 등 인간적인 모습도 묘사해 놓았다. 왕들의 생활은 알고 보면 이렇게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대통령을 왕으로야 비유할 수 없지만 그래도 권력자라고는 할 수 있다. 요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가엾은 위인들이다. 승정원 일기처럼 청와대 일지는 제대로 쓰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淸河

솔 예찬

솔바람 소리를 선인들은 송뢰·송운(松韻)·송도(松濤)·송풍(松風) 등으로 표현, 아름다운 음악으로 감상하였다. “솔바람 산골 물이 속된 생각을 씻어준다”라든가 “솔바람 소리 멀리 들려오고 바람비 소리에 학의 꿈이 깨인다 ”, “시냇물 굽이 굽이 돌아서 흐르고 솔바람 소리 끊임없이 들려온다”는 시문을 보면 솔바람 소리를 마음의 때를 씻어주는 명약으로 생각하였다. 솔바람 소리에 매료된 청정(淸淨) 심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신라의 화랑들이 한송정에 솔을 심고 깊은 산 속에서 심신을 단련한 것은 호연지기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3천명의 화랑들은 각각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소나무의 끝이 하늘을 나는 구름에 이어지고 고선(古仙)은 멀리 가버렸지만 소나무만 남아 울울창창하다”고 읊었다. “소나무 숲은 푸르게 우거지고 솔숲에 노도소리가 깨어진다 ”, “강릉 달밤에 높고 높은 소나무가 푸른 연기 속에 솟아났다”, “솔바람 맑게 나부끼니 옥고리가 흔들린다”라는 시는 흰 모래밭에 이어 길게 숲을 이룬 소나무의 풍치를 그렸다. “달 밝은 한 송정의 밤에 파도는 잔잔하고 경포의 가을은 깊어간다”는 시는 송림과 달빛바다의 조화가 마음을 서늘하게까지 해준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약 캐러 산속에 있다”라는 시도 선적(仙的)인 분위기를 나타낸다. “말을 소나무 그늘아래 매어놓고 시냇물 소리를 듣는다”라는 것도 소나무 숲에서 마음소리를 다스리는 태도라 하겠다. 소나무를 시목(市木)으로 삼은 수원에는 ‘노송지대’등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이 많다. 만석공원에도 시민들이 기증한 소나무들이 청청하게 호수를 굽어보고 시청, 장안구청, 한일타운 인근에도 소나무들을 많이 심었다. 경기일보 본사 사옥이 있는 송죽동(松竹洞)의 옛 지명은 ‘솔대골’이었다. 송림과 대숲이 우거져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처럼 송죽동에 솔숲과 대숲이 우거지면 백학들이 날아들 것만 같다. /淸河

이솝우화

이솝의 우화에 이런 게 있다. 여우가 잘 익은 포도를 따먹기 위해 뛰어 올랐으나 높아 딸 수가 없었다. 여우는 마침내 돌아서면서 “이 포도는 시군!”하고 말했다. 흔히 제도를 탓한다. 제도가 좋아야 하는 건 물론 마땅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에도 허점이 있고 역기능이 있다. 운용의 묘가 중요하다. 운용의 묘는 최선이다. 그런데도 제도를 살리고자 하는 순기능엔 최선을 다 하지 않고 역기능의 허점만 일삼으면서 제도를 탓한다. 그리하여 제도를 고치지만 잘 되는 것은 또 아니다. 그 역시 문제가 있다. 멀쩡한 포도를 시다고 말한 여우처럼 제도를 나무라면서 법 고치기를 밥먹듯이 해댄다. 경제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시책도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기 마련이다. 또 시기가 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저금리로 나가니까 예금이 빠져 부동산 투기가 설친다. 일본은 국내 금리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더 저금리다. 보통예금 금리가 연 0.02%에 불과하다. 이를 4월부터는 0.01%로 더 낮출 계획이다. 1억원 예금에 이자가 1만원꼴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사회는 그래도 은행저축을 생활화 한다. 이것이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그들의 저력이다. 은행의 수신 금리가 형편 없어도 예금한 돈을 빼내어 부동산 투기를 일삼지 않는 것이다. 이는 투기의 차액소득을 70%이상 세금으로 환수하는 철저한 추적조사의 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일본인들의 건전한 대체적 의식에 기인한다. 역시 이솝의 우화에 집쥐와 들쥐 이야기가 있다. 집쥐가 들쥐 집에 놀러 가서 보니 사는 게 형편없어 보였다. 그리하여 하루는 집쥐가 들쥐를 자기 집에 초대하였다. 집쥐 집엔 맛있는 음식이 푸짐했으므로 들쥐는 놀랐다. 그러나 음식을 먹으려니까 인적 소리가 자꾸 들려 깜짝깜짝 놀라곤 하여 영 불안했다. 견디다 못한 들쥐는 “변변치 않은 음식이라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내 집이 좋다”면서 제 집으로 돌아갔다. 일본 사람들은 제로에 가까운 금리에도 조용하게 우리보다 잘 살고, 우리는 그보다 높은 금리에 시끄럽기만 하고 일본 사람들보다 못산다. 멀쩡한 포도를 두고 시다고 탓만 할 일이 아니다.

王昭君

중국 한나라 효원제 때 왕소군이라는 궁녀가 있었다. 이 무렵 북방의 흉노족 침범이 잦아 그들을 회유키 위해 황녀를 흉노족 대추장에게 시집 보내기로 했다. 오랑캐와 친화를 도모하는 공주라 하여 화번공주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나 진짜 공주가 아니고 궁녀 가운데 못생긴 여인을 뽑아 황제의 딸로 가장시키기 위해 효원제는 궁중화공 모연수로 하여금 궁녀들의 초상화를 가져 오도록 했다. 평소 다른 궁녀들은 황제의 총애를 받기위해 뇌물을 주어가며 다투어 예쁘게 그려 주도록 부탁했으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았다. 자신의 용모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초상화를 받아 본 궁녀 가운데 가장 못생긴 왕소군을 화번공주로 칙령을 내렸다. 마침내 오랑캐 땅으로 시집 보내는 날, 실물을 대한 효원제는 왕소군이 천하 절색인 걸 보고 놀라 후회했지만 이미 어쩔 수 없었다. ‘소군 백옥 안장을 털었다/말위에 오른 홍안은 울고 있다/오늘은 한궁 사람이지만/내일이면 호지의 첩이 될 몸/’후세에 이태백이 왕소군을 안타까이 여겨 그녀가 떠나는 광경을 돌이켜 이같은 시를 지어 슬퍼했다. 황제는 크게 노한 나머지 화공 모연수를 참하였으나 한궁을 떠난 왕소군은 흉노족 땅에서 얼마 안가 자결하고 말았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게 이처럼 어렵다.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쓸만한 아랫사람을 알아보기란 더욱 어렵다. 측근이나 중간에서 쓸만한 아랫사람을 윗사람이 알아보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 쓸만한 아랫사람은 굳이 윗사람을 가까이 하려 하거나 아첨하지 않아 윗사람 또한 알아보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세상만사는 인간사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사람을 알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중대하다. 사람을 잘 쓰면 윗사람이 잘 되지만 사람을 잘못 쓰면 윗사람이 욕먹는데도 총명이 가려져 욕먹는 줄 모르는 게 또 범사다. 왕소군의 고사는 지금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특히 측근 소동으로 내분 사태를 겪고 있는 한나라당 속사정도 그렇고, 음모론이 일고 있는 민주당 사정도 그러하다. /白山

독립기념관

외세에 의한 민족 수난에 독립을 위해 항거한 역사적 사료 및 유물 등을 전시하는 독립기념관이 나라마다 거의 다 있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는 1975년 7월 메르데카 광장에 높이 132m의 석탑 등 다양한 시설의 독립기념관을 세웠다. 필리핀은 독립의 아버지 리잘의 이름을 딴 리잘기념관을 마닐라 교외 산티아고에 건립했다.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직후 예루살렘의 헤르줄산 기슭에 ‘신의 손길’(야드바쉠)이라고 부르는 독립기념관을 세웠다. 미국은 1776년 7월4일 독립선언 당시의 수도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비롯, 전국 각지에 독립유적지를 보존하고 있다. 충남 천안시 목천면 흑성산록 128만8천여평의 대지에 37동, 연건평 1만6천900여평의 독립기념관이 건립된 것은 1987년8월15일 이다. ‘독립기념관’현판이 걸린 정면 건물의 지붕은 청동기와로 덮여 장엄함과 숙연함을 더 한다. 전적 수기 무기 유품등 4만6천여점이 전시된 수장고, 겨레의집, 민족전통관, 근대민족운동관, 일제침략관, 대한민국관, 임시정부관, 독립전쟁관, 3·1운동관, 무궁화동산, 통일의 길 등 이밖에 많은 전시관과 시설이 있다. 이 성역이 조성된지 15년만에 처음이라면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엊그제 처음 들렸다. 지난 23일 전명운의사 페리 의거 94주년 기념 및 어록비 제막식에 참석차 독립기념관을 찾아 민족수난사와 함께 일제와 싸운 순국선열들의 생생한 발자취를 돌이켜 볼 수가 있었다. 3·1만세를 부르다가 일경의 총검에 옆구리를 찔려 찢긴 무명 저고리며 두루마기를 적신 혈흔, 낭자한 핏자욱이 아직도 선명한 태극기, 제암리 만행 직후의 생생한 현장사진, 광복군이 사용했던 무기며 군복의 실물, 이루다 열거할 수 없을만큼 많은 유물마다 마치 선열들의 넋이 살아 숨쉬는 듯 했다. 아! 그 분들은 후대에 어떤 나라를 기대하고 독립을 위해 그처럼 목숨을 바쳤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송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분명 지금 보다는 더 좋은 나라를 소망했을 것이다. 그 후대가 되는 우리들은 그 분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나라 안팎이 몹시 시끄럽다. 위정자들도 그렇고, 지도층고 그렇고, 집단이기에 들뜬 민중도 그렇고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민족의 성역, 독립기념관을 찾아 정녕 나라를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白山

‘ 쥐새끼 ’

하순봉 한나라당 부총재가 “배가 흔들리면 쓸데없이 쥐새끼들이 왔다 갔다 한다”고 말한 것은 실언치고는 ‘고약’하다. 술자리나 사석에서도 좀처럼 하기 어려운 표현인데 하물며 ‘강원도지사 후보 선출대회’라는 한나라당의 대규모 행사장에서 당당하게 한 말이니 용기가 대단하기는 하다. ‘쥐새끼’는 몹시 교활하고 잔 일에 약게 구는 사람을 욕되게 일컫는 말이다. ‘쥐’자가 들어가서 듣기 좋은 말은 별로 없다.‘쥐밑도 모르고 은서피(銀鼠皮)값을 친다(사리에 어두운 사람이 굳이 아는 체 하고 출반주함을 비웃어 하는 말)’, ‘쥐 밑 살 같다’, ‘쥐 소금 날으듯’, ‘쥐 소금 먹듯 한다’, ‘쥐코 조림 같다’, ‘쥐 포수(사소한 사물을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등 모두 상대를 하찮게 보는 뜻이다. 합당하지 않은 일은 주착없이 경영한다는 ‘쥐구멍에 홍살문 세우겠다’거나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한다는 ‘쥐구멍으로 소 몰라고 한다’는 말도 그렇다. 또 아무 보잘것이 없다는 ‘쥐뿔같다’는 비아냥도 있다. 한나라당 비주류와 소장파 의원들을 하순봉 부총재가 도지사 후보 선출대회의 축사를 통해 이렇게 형편없는‘쥐새끼’로 비하시켰으니 졸지에 ‘쥐새끼’가 된 사람들이 발끈하지 않는다면 되레 이상한 노릇이다. “당의 단합을 호소했으나 앞뒤가 생략된 표현으로 진의가 잘못 전달돼 당원 동지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하부총재의 개인 성명이라는 것도 구차스럽다. 차라리 “ 어쩌다가 실언했다.용서를 바란다 ”했으면 좋았으련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는 표현은 마지 못해 고개숙이는 척 하는 것 같다. 이회창 총재가 “오해받을 수 있는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하 부총재)본인 스스로 말했다”고 진화하고 있지만 하순봉 부총재는 말 한번 잘못했다가 당직에서 물러날 정풍(整風)대상이 되었으니 설화(舌禍)치고는 꽤 아플 게다. 그러나 저러나 하 부총재의 표현대로 배(한나라당)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격랑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다른 당(黨)에 좋은 구경거리를 주었다. /淸河

소나무

소나무는 우리 나라 수종 가운데 가장 넓은 분포면적을 갖고 있다. 남쪽은 제주도로부터 북쪽은 함경북도에 이른다. 함경남북도의 북반 부분에서는 부분적으로 소량이 나타난다. 수직적 분포는 산악의 황폐 정도에 따라 위도와 일치하지 않는다. 같은 산악도 남북방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지리산, 팔공산, 태백산, 치악산 등은 해발 1,000∼-1,100m까지 자라며 백두산에서는 900m 높이까지 분포하고 있다. 바닷가를 따라 분포하는 해송과는 분포경계가 비교적 뚜렷하다. 울릉도와 홍도에는 소나무가 분포해 있고 해송은 원래 없었다. 제주도에는 소나무와 해송이 함께 자란다. 소나무는 은행나무 다음으로 오래 사는 나무로 우리 민족은 장수의 상징으로 내세웠고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삼았다. 거대하게 자란 노송은 장엄한 모습을 보이고 줄기, 가지, 잎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눈서리를 이겨서 항상 푸른 기상은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부각됐다. 일찍이 사명당은 ‘청송사’에서 “소나무 푸르구나. 초목의 군자로다. 눈서리 이겨내고 비오고 이슬 내린다 해도 웃음을 숨긴다.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함이 없구나! 겨울, 여름 항상 푸르구나. 소나무에 달이 오르면 잎사이로 금모래가 체질하고 바람불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라고 예찬했다. 애국가에서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하고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소나무가 100년 뒤 남한에서 거의 사라진다는 암울한 예측이 나왔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면 남한의 저지대에서 나타나는 난온대림이 2100년에는 북위 40도까지 북상하고 남해·서해안 지역에는 아열대림이 형성된다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내놓은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영향평가 연구보고서’는 2100년 남한의 냉온대림은 1990년의 10분의 1로 급격이 줄어들어 소나무가 지리산·태백산 등지에서만 존재한다고 전망했다. 남한에서는 전체 면적의 36%에서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소나무가 없는 한국의 산하와 섬을 상상하면 적막하기 그지없다. 환경정책연구원의 예측이 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淸河

‘사랑의 교도소’

1950년 행형법(行刑法)이 제정될 당시 형무소로 불리웠던 교도소가 지금의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행형법을 개정하면서부터다. 형무소와 감옥이라는 말은 일제의 잔악상이 엿보여 거부반응이 많았었다. 용어상으로도 형을 집행한다는 소극적이고 해악적인 면이 앞서고 적극적인 교정이념이 나타나지 않아서 였다. 수감생활을 하면서 인권이 유린된 사건도 발생하곤 하여 ‘지옥이 따로 없다’고 경험자들은 말한다. 자유롭지 못한 신체는 물론 정신적인 고통이 지옥이겠지만 어쨌든 교도소는 국가가 관리하지 않으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그런데 2004년쯤 기존의 교도소와는 다른 기독교 민영교도소가 문을 연다고 한다. 1995년부터 기독교 민영 교도소 설립을 추진해온 재단법인 ‘아가페’가 지난 12일 법무부 민영교도소 수탁자 선정심사위원회로부터 민영교도소 수탁자로 공식 확정됐다는 것이다. 2001년 7월1일 시행에 들어간 ‘민영교도소 등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설립되는 기독교 민영 교도소는 기독교 교정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출소를 2년 정도 남겨둔 성인 수형자 500여명을 수용하는 중간구금형 교정시설이다. 오전 5시30분 새벽 찬양모임으로 하루가 시작되며 낮에는 직업훈련, 저녁에는 소그룹 모임을 통해 사회에 적응할 준비를 하게 된다. 주당 40시간의 작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금은 범죄 피해자와 수형자 가족에게 송금되고 나머지는 수형자를 위해 별도로 적립된다고 한다.교도소 건축 및 시설 설비를 위한 초기자금은 아가페에서 조성하지만 운영 경비는 일반 교도소에서 소요되는 예산과 비슷한 규모로 정부 당국이 지급하게 된다. 지금 아가페측은 300억원에 달하는 교도소 건축을 위해 4월중 서울 근교에 부지를 매입, 올해 중반에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며 국민·한빛 등 은행에 기금모금을 위한 계좌와 홈페이지(http://agapeperison.org)도 개설했다. 한 쪽에서는 교도소가 ‘범죄인 양성소’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 터에 기독교 정신으로 운영되는 ‘사랑의 교도소’는 재소자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영적·도덕적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갇힌 자를 돌보라”성경의 말씀이다. 淸河

염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일컬어 염치(廉恥)라고 한다. 부끄러움을 수치(羞恥) 또는 수괴(羞愧)라고도 한다. 얌통머리, 얌치, 얌체란 말도 있다. 역시 같은 어의이다. 중국 송나라에 왕광원이라는 출세주의자가 있었다. 권력자에게 아부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났다. 예를들면 시회같은 데서 높은 사람의 시는 덮어놓고 이태백과 버금가는 명시라며 알랑대기가 일쑤였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보다 못해 채찍으로 매질을 했으나 그래도 개의치 않고 아부를 일삼았으므로 ‘열겹의 철갑을 씌운 것 만큼 얼굴이 두껍다’(顔厚如十重鐵甲)며 개탄하고 말았다. 중국의 고서 북몽쇄언(北夢鎖言)에 전한다. 전래 속담에 ‘족제비도 낯가죽이 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 ‘빈대도 콧등이 있다’는 말이 있다. 염치를 일깨우는 잠언인 것이다. 염치를 인간다움의 근본으로 삼은 옛 사람들은 무엇보다 파렴치한 것을 가장 부끄럽게 알았던 것이다. 물론 인간은 그 누구도 부끄럼 없이 살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일지라도 염치를 다 차리고 산다 하기는 어렵다. 역시 생활하는데 이해관계란 게 있고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하물며 범부들은 더 말할 것 없다. 범사에 실수투성이인 게 세인의 인간사다. 문제는 염치를 차릴 줄 알아야 하는 데 있다. 수치스런 일을 저지르고도 수치를 몰라서는 인간다움이라 할 수 없다. 비록 염치를 차린다 해도 잘못을 또 되풀이 하기도 하는 게 인간이지만 그래도 염치는 알아야 한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제 몰염치는 뒷전에 놔두고 남의 몰염치만 탓하는 습벽이다. 이런 위인일수록 자신의 큰 잘못은 덮어두고 남의 사소한 잘못은 용서할 줄을 모른다. 그래도 이런 일이 범부의 범사에서는 나라나 사회에 나쁜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게 별로 없다. 그러나 권력을 쥔 이들의 몰염치는 나라나 사회에 미치는 그 해악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권력자의 몰염치는 또 아첨배들을 불러들인다. 왕광원 같은 파렴치한 아첨배는 아첨을 좋아하는 그같은 권력자가 있었기 때문에 유유상종(類類相從)으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난세다. 이 시대에도 송대와 같은 몰염치한 권력자와 파렴치한 아첨배들이 들끓는 것 같다. /白山

탈북자

주중국 스페인 대사관을 진입, 제3국인 필리핀을 통한 탈북자 25명이 어제 입국했다. 동·서독의 통일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을 향해 베를린 장벽을 잇따라 집단으로 넘으면서 시작됐다. 한반도 역시 군사분계선의 삼엄한 경비만 없으면 독일과 비슷한 형태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게 한국 분단의 특수성이다. 도대체 앞으로 얼마만큼 탈북자들이 더 입국할 것인지 심각한 단계가 됐다. 중국과 러시아를 유랑하는 탈북자가 3만명이라고 하고 10만명이라고도 한다. 어떻든 그 많은 탈북자의 상당수가 한국행을 희망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잘못돼 북한으로 송환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어떤 형태로든 한국행을 필사적으로 시도하고, 입국에 성공하는 인원 역시 점차 늘 것이다. 현재는 국내 거주 탈북자가 1천500여명이지만 이대로 가면 조만간 1만명, 수만명에 이를 것 같다. 가족 또는 집단의 탈북자 입국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생활고통, 체제불만, 처벌우려, 기타 개인사유 등이 탈북 사유로 꼽힌다. 세계에 대규모 난민이 일찍이 없었던 건 아니다. 베트남 보트피플은 100만여명이 뿔뿔이 흩어졌고, 반후세인 난민 50만여명이 이라크를 탈출했으며, 코소보 인종청소로 100만여명이 피란길을 떠났다. 국제사회의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는 탈북자 난민은 앞으로 날이 갈수록 더할 전망이다. 우리로선 반갑진 않으나 홀대할 수 없는 게 입국하는 탈북자들이다. 정부의 탈북자 대책이 더욱 적극화 해야 할 단계가 됐다. 남한사회의 적응 여부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가 있다. 탈북자의 절반 이상은 비교적 생활형편이 괜찮은 편이지만 약 40% 정도는 자립·자활에 비교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공무원, 회사원을 비롯한 봉급생활, 상업 등 자영업의 직업을 갖고 있으나 사회적 인간관계에 외로움을 겪는 게 가장 큰 애로로 꼽고 있다. 탈북자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그들에겐 가장 큰 고통인 듯 싶다. 평범한 이웃으로 대하는 노력이 탈북자들을 돕는 첩경인 것이다. 白山

산유국

1966년이던가, 전 언론이 우리 나라도 ‘산유국’이 됐다는 보도를 일제이 한 적이 있다. 경북 포항의 영일만 앞바다에서 유전층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감격스런 나머지 청와대서 샘플로 가져온 원유로 얼굴을 씻기도 했다. 전국의 신문이 1면부터 각 지면마다 떡칠한 유전 발견 보도는 그러나 한바탕 해프닝의 오보로 끝났다. 신문사상 1980년대 중반에 있었던 김일성 사망 오보와 쌍벽을 이루는 오보였다. 비록 정부 발표를 믿고 그대로 쓴 것이지만 나중에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보도 사실과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은 어떻든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언론의 오보인 것이다. 유전은 중동이 세계 매장량의 55%를 차지하는 가운데 극동 및 동남아시아에선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파키스탄 인도 일본 등지에 다소간이나마 있는데 한반도만 유전이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으면서 에너지 소비는 선진국 수준으로 많은 전량을 수입해 오는 터에 동해서 천연가스가 생산된다는 보도는 비상한 관심을 끈다. 울산 앞바다 남동쪽 58km의 수심 150m 대륙붕에서 매장량 400만t, 10억달러 규모의 가스전이 발굴됐다는 것이다. 매년 40만t씩 10년동안 생산해 낼 수 있는 이 천연가스는 국내 가스 소비량의 2.6%에 해당, 1천300억원의 수입 대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수입물량 가운데 지극히 적은 분량의 국내 생산이며, 그것도 원유가 아닌 가스이긴 하지만 앞으로의 기대가 크다. 우선 경제성이 있는 점이 고무적이다. 대륙붕의 추가 탐사로 가스전은 물론이고 유전층도 발굴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이트 의혹, 빌라공세, 경선파문, 내분파동, 은행강도, 살인사건 등 온갖 우울한 소식으로 연일 신문 지면을 가득히 채우는 판에 내년 말엔 우리도 ‘산유국’이 된다는 보도는 신선하다. 천연가스 또한 유징(油徵)의 자연 에너지이므로 산유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가스에 이어 유전 발굴의 오보 아닌 낭보가 언젠가는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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