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진청 개혁, 제도개선이 먼저다

농촌진흥청 조직의 갈등 요인은 인정된다. 연구직과 지도직의 이중계급제, 국가직과 지방직의 이원화조직, 이에 겹친 사(士)와 관(官)의 불균형 등은 문제점이 많다. 단일직급호봉제도입은 설득력이 있다. 불공정 직급체계로 인한 위화감을 시정키 위해서는 격차가 우심한 직급별호봉제를 없애고 열악한 지도직 처우도 개선할 필요는 있다. 물론 연구직 역시 우대되어야 하지만 농진청은 연구진 위주의 다른 기술부처와는 달리 연구직과 지도직의 조화를 요구받는 농진청 조직 특유의 성격이 강하다. 나아가 투명한 직급체계를 위해서는 보직자 공개모집 등도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직제개편의 제도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간부들에 대한 일괄사표로 대대적 변화를 모색하는 농진청의 개혁작업이 제도개선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문제점이 파생된 제도개선 없는 인적 청산만으로는 여전히 문제점을 내포하므로 개혁이랄 수가 없다. 신임 손정수 청장의 인적 청산 구상은 이래서 인사쇄신의 미봉책일 뿐 조직 활성화의 근원적 처방은 못된다. 더욱이 그 방법이 일괄사표인 것은 직업공무원제를 위배했다고 보아 의문이다. 과거 신군부 국보위시절 강요된 사표로 희생된 공무원들이 줄줄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명예회복한 전철을 연상케 한다. 일반 기업체에서도 일괄사표의 요구는 노동권 침해로 인정된다. 하물며 정부 부처인 농진청이 일괄사표를 받는 건 국가공무원법에 비추어 심히 합당치 않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방법이 좋지 않으면 합목적성을 상실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법치사회다. 이러므로 시급한 것이 앞서 밝힌 직제개편의 제도개선이다. 직제개편을 통해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이 참다운 인사쇄신이며 또한 개혁이다. 직제 개편이 꼭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설령 어렵다 하여도 필요하면 강력히 추진해야 하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다. 국내 농업구조는 가뜩이나 불안하다. 여기에 국내 농업의 미래 창조를 주도하여야 할 농진청 조직마저 불안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신임 청장은 부하된 소임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잘 헤아려야 한다.

체면

‘삼국지’의 조조(曹操·154~220)는 자타가 공인하는 용인(用人)의 천재였다. 위나라의 조조와 촉나라의 유비, 오나라의 손권 등이 중국을 삼분하고 싸우던 삼국시대의 일이다. 조조의 오랜 벗으로 위충이란 인물이 있었다. 조조가 연주전투에서 계속 패하자 배반하고 적에게 투항하는 자가 많았는데, 조조는 “오로지 위충만은 나를 버리지 않을 거요”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위충마저 달아나고 말자 조조는 대로하여 그를 잡으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조조의 군대가 위충을 사로잡아 오자 ‘재능 있는 사람’이라며 그를 묶었던 오랏줄을 풀어주고 다시 임용했다. 위충을 이렇게 대접하자 조조를 배반하고 달아났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다시 돌아왔다. 관도전투에서도 빼앗은 원소의 문서 가운데 조조 진영의 일부 사람들이 원소에게 보낸 항복문서들이 발견됐지만 조조는 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모두 불태운 뒤 말했다. “원소가 강력했을 때는 나도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었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조조는 필요에 따라 얼굴표정을 자유자재로 지을 줄 알았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흔히 쓰는 ‘체면(體面)’이라는 말과 비슷한 중국어로 ‘미옌쯔(面子)’란 것이 있다. 우리에겐 체면이 실속없이 형식적인 겉모습을 의미하는 것에 비해, 중국인들이 말하는 체면에는 자신에 대한 존엄성, 나아가 ‘존재가치’의 뜻이 담겨 있다. “차라리 내가 천하를 등질지언정 천하가 나를 등지게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처럼 조조는 고대 중국에서 체면을 가장 중시했던 사람으로 꼽힌다. 세련되면서도 위엄있는 모습의 원소나, 키가 8척(188㎝)을 넘고 용모가 위풍당당했던 형주자사 유표, 각각 키가 7척5촌, 8척이었던 유비와 제갈량 등에 비해 외모가 출중하지 못했던 조조가 천하를 차지한 힘은 면자(面子)에서 나왔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체면을 세우고 호방한 기세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던 처세술 덕분이었다. 조조의 처세술은 체면이 구겨졌을 때 특히 떠오른다./임병호 논설위원

기고/한류 열풍의 진정한 의미

“한국은 알면 알수록 참 재미있는 나라예요” 친구들과 한국어를 배운지 1년이 넘었다는 교토 동지사대의 한 여학생이 던진 말은 긴 여운을 남긴다. 한류 열풍에 휩쓸린 일본 청소년들의 관심이 온통 한국의 대중 문화와 스타에만 쏠리는데 비해, 그녀는 차분하게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류의 위세는 겨울연가와 욘사마(배용준)에 대해 거듭 언급하고 나선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에서도 충분히 확인되는 일이다. 우리 드라마 한편이 파생하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7천억원이나 된다는 이야기도 반가운 소식이지만, 무엇보다 한류 열풍으로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가 수월해졌다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일 양국에서 주목하고 있는 한류 열풍은 과연 갑자기 돌출한 이색 기류였을까? 이미 삼국시대에 한류 열풍의 초기 버전이 일본에 상륙했음을 너무 쉽게 잊지는 않았을까? 당시 오사카와 나라 거주민의 대부분이 한인이었으며, 이들이 일본의 주류사회를 형성하여 한국의 고대문화를 전파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실체이기도 하다. 이처럼 고대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빚어낸 한류 열풍을 회상해 보면, 21세기 한류 열풍도 일시적 유행으로 지나쳐서는 안될 것 같다. 한류의 역동적 에너지에는 그간 한국과 한국인을 폄하해 온 일본인의 편향적 사고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저력이 분출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일본에 부는 한류의 주체는 일본 측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인이 우연히도 그들의 정서적 공감대에 맞아 떨어진 한국 드라마를 발견하고, 열광하는 형국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측에서 한류의 드라이브를 공급자편으로 바꾸어 나갈 때가 되었다. 문화는 흐르는 물처럼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게 마련이다. 일본 문화에 미친 중국 문화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는 일본의 지식인들은 한국 문화의 영향력은 쉽게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한국 문화의 진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은 그들이 한국어를 알지 못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대일무역 역조보다 대일언어 역조 현상은 더 시급한 현안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고교가 제2외국어 과목으로 일어를 채택하고 있으며, 정규 대학에서는 일어 일문과를 설치하고 있다. 그밖에도 사설 어학원에서 누구든 쉽게 일어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개인적인 노력과 상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번거로운 일이다. 우선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설 어학원이나 교육기관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국어 교육은 주로 개인 교습에 의존하게 된다. 앞으로 일본에서 한류 열풍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려면, 그 기간작업의 조성은 한국어의 보급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국어를 모른 채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는 어려운 반면 한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문화를 우호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일본인 뿐 만 아니라, 재일교포 청소년의 90% 이상이 우리말 모른다는 사실은 이제 심각하게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일본 관서지역만 해도 우리말을 배우기를 희망하는 청소년이 2만명 쯤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작 우리말 교습처나 교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오사카의 한국 영사관에서 개설한 한국어 강좌가 30대 1의 경쟁률을 보일만큼 신청자가 쇄도했다는 사실도 한국어를 배우기가 어려운 저간 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여름방학에도 유스 웨이브가 개설하는 국제 청소년 봉사학교에는 일본에서 13명, 러시아에서 30명, 중국에서 5명의 해외교포 청소년이 참여하게 된다. 그들은 7박 8일 일정으로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배우게 되며, 동수로 참여하는 한국 청소년의 도움을 받아 한민족의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민간 차원의 노력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어의 해외 보급에 적극 나서길 촉구한다. /김은미.유스 웨이브 대표

천자춘추/어머니와 중소기업

갓난아이들은 용케도 어머니의 젖무덤을 잘 찾는다. 눈을 뜨지도 않았는데도 이내 젖꼭지를 찾아 젖을 먹는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잘 구별한다. 울다가도 어머니의 발자국이나 목소리를 알아보고 울음을 그친다. 어머니는 갓난아이들을 언제나 옆에 두고 하루시간을 보낸다. 자기의 생명처럼, 누가 그처럼 돌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헌신적으로 돌본다. 무슨 일이 있어 잠깐 남에게 맡길 경우에도 마음은 늘 불안하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만큼 헌신적으로 그 아이를 돌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조금 자라 어린이가 되었을 때도 어머니의 돌보기는 계속된다. 유치원 준비물과 옷을 챙기고 세수를 시키는 등 온갖 준비를 다한 후에도 손을 꼭 잡고 길거리에 서서 유치원 학교차가 올때까지 줄을 서면서 다른 아이 어머니들과 이야기 하면서 기다린다. 어머니는 장남인 나를 너무나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인생을 사면서 3번 큰 기쁜 일이 있었는데 시집오셔서 장남인 나를 낳은 일, 내가 대학에 합격한 일 그리고 내가 회사에 취직했을 때라고 하셨다. 모두가 나에 대한 일이다. 과다 할 정도로 정열과 마음을 쏟으시면서 나를 돌보셨다. 젊은 시절은 어려운 형편으론 살림을 꾸려 나가는데 세월을 보내신 어머니는 연세가 드신 후에도 절약이 몸에 배어 무엇하나 제대로 사지도 못하시고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하시다 얼마전에 세상을 뜨셨다. 살아 계실 때는 몰랐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기만 하고 공허하기까지 하다. 자식에 있어서 어머니는 살아계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된다. 얼마전에 중소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후에 몇 분이 모여 하신 이야기가 귀에 아직도 생생하다. “중소기업에 있어서 중소기업청은 어머니와 같은 곳입니다. 만일 중소기업청이 없다면 우리 중소기업은 어미 없이 버려진 자식과 같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의 역할이란 자식에 대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중소기업청이 이 역할에 얼만큼 충실했는지 반성해 보았다. 정말 중소기업은 어린 아이와 같다. 자라는 아이를 늘 돌보아야 하지만 조금 자라면 그 나이에 맞는 또 다른 관심과 돌봄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헌신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지원은 생색내는 업무가 아니다. 중소기업인들의 마음과 애환을 현장에서 끝까지 들어주고 단 한가지라도 해결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 있어야 한다. 어미없는 자식이 안 생기도록 우리 지방 중소기업청은 항상 중소기업인 곁에 서서 그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중소기업인 곁에 어머니와 같은 중소기업청이 있기에 우리 경기 중소기업인 모두가 더욱 힘찬 도약을 하길 기원해 본다. 경기중소기업인 여러분 파이팅! /정영태.경기중소기업청장

발언대/자동차 매연 심각성 깨달아야

아침에 출근하면서 앞차가 내뿜는 새까만 매연의 매캐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차로를 변경해야만 했다. 문제의 그 차는 오래된 지프형 경유차로 매연 배출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엑셀러레이터를 밟을 때마다 시꺼먼 연기가 나왔는데 그 차의 운전자는 과연 이를 알고나 있을까? 문제는 이런 일이 그 차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질오염은 생활하수, 대기오염은 자동차가 주범이라고들 한다. 이제 자동차는 생활필수품에 가까워서 그 사용을 막을 수도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전기차, 수소차 등 저공해차가 개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공해차가 상용화되고 대중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에 의한 대기오염 원인 중 다른 하나는 공회전이다. 정부에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 공회전을 단속하겠다는 것을 언론에서 여러 번 접했으나 한 번도 단속했다는 뉴스를 접해본 적은 없다. 아직도 학원가나 버스종점 등에서 시동을 켜놓고 대기하는 학원버스 등을 쉽게 볼 수 있을 뿐이다. 요즘에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오존주의보가 수시로 내려지곤 한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서도 환경보전을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최고과제로 삼고있다. 국토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며, 앞으로 환경보전을 배제하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인식하에 계획단계에서부터 환경을 중시하고 개발과 보전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해 나가고 있다. 오염된 공기는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공평하다. 환경은 누구나 보전해야하는 과제임에 틀림없다. 환경은 혼자서 노력하여 보전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오염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류봉혁.한국토지공사 경기지역본부 과장

7월 31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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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생태보전지역’ 지정에 대한 당부

전국 지방자치단체마다 생태계 보전지역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보호 차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사후 관리규정이 미미한 게 문제다. 현행 자연환경보전법은 생태계보전지역에 대한 사후 관리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없다고 하는 것이 맞다. 생태계 보전지역내에서 발생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제한을 할 수 있지만 생태계 보전지역 인근에서 심각한 영향을 주는 행위는 조처할 규정이 없는 것이다. 예컨대 중요 생태계 보전지역의 하나인 서울 강동구 둔촌동 습지는 최근 인접지역에서 건물 신축공사가 진행되면서 훼손 위기에 처했다. 둔촌동 습지는 지하수가 용출해 형성된 희소성이 매우 큰 자연습지다. 특히 희귀식물 부들, 애기부들, 줄, 골풀, 둑사촌 등을 비롯해 천연기념물 황초롱이, 환경부 보호종 맹꽁이, 서울시 보호종인 꾀꼬리, 박새, 오색딱따구리, 제비, 흰눈썹황금새, 산개구리가 집단 서식하고 있어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생태계 보전지역이다. 하지만 습지를 둘러 싸고 있는 야산과 인접한 곳에 건물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덤프 트럭 등 공사차량이 수시로 드나들어 분진과 소음을 일으키고 있다. 습지에서 서식하는 생물종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도 당국은 수수방관하고 있어 생태계 보전지역 지정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최근 경기도가 ‘생태마을 및 생태공원 조성’ 최종 보고회를 갖고 시흥시 장곡동 폐염전 일원, 의왕시 초평동 왕송저수지 일원, 양평군 양수리 일원 등 3곳을 2010년까지 생태공원을 조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에 795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 또 남양주시 조안면 팔당연대마을, 양평군 단월면 문레울 마을 등 2곳을 2005년까지 생태마을을 만든다. 특히 생태마을에는 반딧불이 서식처, 고로쇠 자생지, 생태 숲, 습지 등을 조성한다고 한다. 생태공원·생태마을지역 주민은 물론 타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자연과 동화할 수 있는 점에서 환영한다. 그러나 둔촌습지를 비롯한 다른 생태계 보존지역처럼 지정·조성만 해놓고 ‘나 몰라라’하는 식의 무책임한 행정을 펴서는 안된다. 지정·조성도 좋지만 사후 발생할 수 있는 사회환경적 요인을 충분히 고려하는 관리책임을 다해야 함을 미리 강조해 둔다.

노무현 대통령, 왜 이러십니까

우리는 국정의 혼란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대통령이 국정 중심의 축에서 흔들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 정권과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다. 이런 데도 이 정권은 출범 이후 줄곧 혼란과 혼돈의 중심 축에 서 있다. 나라의 불운이다. 민중의 불행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체성 다툼에서 신기남 우리당 의장의 ‘패가망신’ 발언 이후 노무현 대통령까지 ‘유신시대’ 복귀를 말한 것은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정가 주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여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력인 일제 장교 시절과 반민주적 군사혁명, 유신체제에 대한 작금의 비판 제기는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것으로 보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향한 견제라고 본다.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박 대표가 차기 대통령 감이라고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다만 이 정권의 자만을 견제하는 야당 세력의 대표라고만 믿어 왔다. 이런 데도 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박 대표 경계의식이 이에 미쳐 과거 때리기로 소일하는 것은 실로 소아병적으로 보아 심히 유감이다. 과거사는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역사이긴 하나 과거사에 매달려 미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우매하다. 중국은 홍위병 파동을 부끄러운 이념의 유산으로 비하하면서도 모택동을 아직도 근대화의 국부로 떠받들고 있다. 이와 꼭 비유할 수는 없어도 이 정권의 과거사 때리기가 국가사회의 미래 발전을 위해 정말 유익한가를 깊이 성찰할 필요는 있다. 여권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중심 축인 노무현 대통령만은 해야할 말, 안해야 할 말을 가려야 할 줄로 안다. 지금은 정권 출범의 초기도 아니다. 재임시의 총선도 여대야소로 다 끝냈다. 좀더 시야를 멀리 보고 마음 또한 금도를 갖는 것이 대통령다운 면모라고 보는 것이 민중의 기대다. 앞뒤가 모순되고 언행이 뒤바뀐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는 것이 국가사회를 위한다는 고언이 이래서 요구된다. 대통령은 아까운 남은 재임 기간을 정치 투쟁의 시한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오직 민생경제·민중경제를 위해 전력 투구하여야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음을 유의하기 바란다.

십자가의 수난

‘십자가(十字架)’는 고대 서양에서 죄인을 처형하던 ‘十’자 모양의 형틀이지만, 그보다는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신성시(神聖視) 한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고난을 떠맡는다’는 말이다. 또 ‘십자고상(十字苦像)’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수난을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상이다. 십자가는 거룩한 사랑, 거룩한 희생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난 6월12일 열린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한이 ‘군사분계선상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와 함께 우리측 종교시설물에 대한 이전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군사분계선 남측 지역에 위치한 십자가 및 점등탑 등의 이전 및 철거가 불가피하게 됐다고 한다. 국방부는 그동안 종교시설이 민간시설이기 때문에 군이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며 맞서 왔다. 그러나 저번 군사회담에서 북측이 종교시설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해와 우리측이 우선 가림판을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성탄절을 기해 지역교회의 기도와 물질 후원으로 실시되던 전방부대 크리스마스 점등 행사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또 임진강변의 십자가를 비롯해 전방지역 군인교회나 기타 십자가 탑, 교회 시설물 등도 철거되고 서부전선 최전방의 애기봉에 설치된 30m 높이의 철탑이 북측의 눈에 띄지 않는 제3의 장소로 옮겨지거나 아예 철거할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십자가와 크리스마스 트리 등은 남북한 군인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의 정서적 안정과 종교적 심성을 키워주는 시설물인데 북측이 정치선전물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무리다. 북한은 남북선전중지 합의 후에도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은 반미자주화의 주 타격대상인 미제와 반파쑈민주화의 주 타격대상인 남조선괴뢰도당을 타격목표로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북한이 보여주는 제반 유화적인 제안이나 행태는 모두 전술적인 것이지 전략적 변화는 아닌 듯 싶은데 국방부는 선전수단 제거 시한인 8월15일까지 십자가에 가림판을 설치할 모양이다. 남한이 너무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닌다. /임병호 논설위원

기고/‘영정사진’ 무료봉사한 수원 사진작가들

처음엔 뜨악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영정(影幀)이란 게 죽은 이의 장례식장 빈소에 안치하는 고인의 사진이 아닌가, 원래 화상을 그린 족자와 영상의 두가지 뜻이 있다. 사진문화가 도입되기 전의 옛날에는 아마 고인의 얼굴을 더러는 그림으로 그려 안치했던 게 영상으로 바뀌게 되어 ‘영정사진’이라는 합성어가 나오게 된 것 같다. 어떻든 수원시내 사진작가 모임과의 제휴로 노인 분들에 대한 영정사진 무료촬영을 시작할 땐 좀 그랬었다. 자신이 죽은 다음에 쓸 사진을 미리 찍어두는 게 그리 기분좋게 여길 일은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기우였다. 본회 제2사무실로도 사용하는 만석공원앞 경로급식소에서 무료촬영을 시작한 당초엔 100여명을 예정했던 것이 계획을 바꾸어 사흘동안에 300여명을 감당해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일 찾아들어 줄을 서며 차례를 기다리는 노인 분들을 차마 그대로 돌려 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정사진은 상체만 나오는 것이지만 곱게 단장한 정장차림인 것은 자신이 찍힐 영정사진에 쏟는 정성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말로 미리 찍어두면 오래 산다는 말도 있어 그렇겠지만 사후 관심인 인간 본연의 정서로 해석되기도 한다. 무료 촬영을 이렇게 끝내고 두어달 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사진이 아직도 덜 됐느냐며 찾으러 온 분들도 적잖았다. 이윽고 자동차로 싣고온 영정사진은 무더기 무더기였다. 그냥 사진만 찍은 줄 알았는데 25㎝×30㎝ 크기의 사진을 예쁜 액자까지 마련하여 그 속에 넣어왔으므로 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만이 아니다. 시일이 걸린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냥 사진만 덜렁 인화한 게 아니다. 눈썹이며 머리, 수염이 있으면 또 수염을, 그리고 얼굴 군데 군데를 가필하거나 수정하여 컴퓨터처리 하는 덴 작품마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영정사진 무료촬영 봉사는 단순히 사진을 찍어준 것이 아니라 일일이 작품화하여 증정한 것이다. 여기에다 갖가지 컬러의 예쁜 액자에 담음으로써 생전에는 벽에 걸어 두어도 되는 일상의 대형 사진으로 역시 손색이 없는 것은 참으로 대견한 것이었다. 영정사진을 찾아가는 모습 또한 감동적이었다. 할아버지 남편은 할머니 아내의 사진을, 할머니 아내는 남편 할아버지의 사진을 자신의 영정사진은 제쳐둔 채 꼬옥 껴안는 것은 실로 값진 노년의 사랑 나눔으로 보이곤 하였다. 혹은 할머니나 할아버지 홀로 영정사진을 찾아 가면서는 주름 진 손으로 쓰다듬으며 볼에 부비곤 하는 것을 볼 땐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이런데도 작가 모임은 되레 미안하다고 했다. 그동안 두 분의 노인이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그 분들 생전에 마련해 주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그 순박함이 무척 돋보인다. 도대체 값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 것인 지, 아마 영정사진마다 5만원으로 쳐도 족히 1천500만원은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협회장은 이름조차 밝히기를 거부했다. “회원들의 한결같은 정성이 지 회장 자신이 한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 이 작가들 모임은 ‘대한프로사진작가협회 수원시지부’다. 회원들마다 낮엔 앨범 작품 등 생업에 힘쓰면서 밤으로 돌아가며 이 많은 영정사진 작업을 자원봉사한 것이다. /이지현 (사)한길봉사회경기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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