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가을 바람과 함께 우편물 속에 청첩장이 한두 장씩 꼭 끼어 들어옵니다. 그런가 하면 며칠 전엔 잘 아는 분한테서 주례를 서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날 나는 나도 모르게 “아, 가을은 역시 짝짓기 계절이야!”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답니다. 그렇습니다. 가을은 역시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과일이 오랜 기다림 끝에 단물이 들듯이 사람들도 짝을 찾아 결실을 맺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한가지 좀 맘에 안드는 게 있습니다. 요즘의 결혼은 웬지 너무 겉치레적이고 사치스러워서 정감이 안 갑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마음과 마음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조건과 조건의 결합처럼 여겨져서 마치 무슨 장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K형, 나는 요즘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는 것을 보다 보면 우리 집사람과 결혼했을 때의 생각이 나서 혼자 웃습니다. 요즘의 결혼에 비하면 우리 결혼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한창 추운 1월에 난방도 들어오지 않은 농협 강당에서 덜덜 떨며 결혼식을 치렀으니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집도 없어서 남의 전셋집에서 양친을 모시면서 방 한 칸을 장롱으로 가려놓고 신혼 살림을 차린 것을 생각하면 뭐가 그렇게 급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답니다. 집사람과 맞선을 보았던 일은 더더욱 우스웠지요. 그 날은 눈이 엄청나게 내려서 버스도 안 다녔기 때문에 집사람은 나를 만나기 위해 30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읍내까지 나왔습니다. 나는 상대방을 본 순간, 다른 것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저 여자가 다시 30리의 눈길을 걸어서 갈 일만 아득히 떠오르더란 말입니다. 만약에 내 쪽에서 싫다고 한다면 저 여자는 얼마나 상심한 채 그 먼 길을 도로 걸어가야 할까 생각하니. K형,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집사람을 구원(?)하기라도 한 것처럼은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좀 더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 보겠다는 겨를을 ‘30리의 눈길’이 거두어 간 것뿐이니까요. 그 자리에서 확답을 한 것은 내 운명의 큰 행운이었다는 것을 지금도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날에 비하면 요즘의 맞선은 그냥 한번 만나보는 정도로 쉽게 치러지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가 상대방을 저울질하고 남과 비교하기까지 하면서 무슨 물건 고르듯 하잖습니까. 이것도 또한 맘에 안 듭니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의 이혼율이 높은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사람 고르는데만 똑똑해졌지 함께 노력해서 사는 데는 하나도 똑똑해지지 않았다고요. K형,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성경 구절 가운데 이 글귀를 참 좋아합니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나중은 장대하리라’는 글이지요. 시작은 좀 어설프더라도 서로 노력하여 목적한 바를 이룬다면 그것이야말로 보람을 얻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일 하나가 익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나를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 인생도 과일과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윤 수 천 동화작가
‘제72조(중요정책의 국민투표)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국민투표에 관한 헌법 조항이다. 또 있다. 헌법 개정에 관한 조항으로 제130조(개정안의 의결과 확정·공포)는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라고 돼있다. 이같은 헌법 조항을 근거로하여 제정된 국민투표법은 ‘국민투표에 관한 운동’ 조항을 제6장(25조~48조)에 규정해 놓고 있다. 이에 의하면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하여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적극적 행위로 신문·방송과 정당연설회 등을 이용할 수 있으나 대통령 선거 등 보다는 제한됐다. 국민투표가 정쟁 수단화 되는 것을 방지키 위한 배려로 해석된다. 국민투표는 집권자가 좀처럼 패배하지 않는 것이 세계 여러 나라의 통상적 관례다. 프랑스 제5공화국의 드골 대통령은 주요 정책에 관한 4차에 걸친 국민투표의 승리를 통해 강력한 프랑스의 위업을 이루었으나 1969년 신임과 연계한 국민투표에서 마침내 패배해 하야와 함께 향리로 돌아갔다. 우리나라는 헌정사상 모두 3차의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이중 1972년 제4공화국의 유신헌법(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 1980년 제5공화국 헌법(대통령 선거인단을 선거하여 대통령을 선출)을 확정한 2차의 국민투표는 독재에 이용당한 것이었다. 마지막 3차 국민투표는 1987년 제6공화국의 현행 헌법을 확정시킨 투표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방법으로 국민투표가 거론되고 있다. 국민투표의 경험이 있는 이들도 상당수가 국민투표법이 있는 줄조차 모를만큼 잊고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임양은 주필
조선 왕조에서 으뜸가는 청백리를 말하면 단연 황희 정승을 꼽을 수 있다. 정승만도 무려 24년을 지냈으면서 초가집에서 살았다. 태종조에서 시작하여 네 임금을 섬긴 그가 명상(名相)으로 평가받는 것은 조정의 공론을 잘 이끌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웃에서 싸움을 한 두 사람이 시비를 가려 달라며 찾아와 털어놓는 자초지종을 듣고 처음 말한 사람에게 ‘네 말이 옳다’고 하고는 다음 말한 사람에게 역시 ‘네 말도 옳다’고 하자, 부인이 ’무슨 그런 말씀이 있느냐’는 말에 ‘부인 말씀도 옳다’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뒤 황희는 두 사람의 감정이 수그러 질 즈음에 ‘나 같으면 이러 이러 하겠다’고 말하여 화해를 시켰다는 것이다. 조정에서도 그는 이처럼 남의 얘길 충분히 잘 듣고 어느 시기가 되면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으로 공론을 정하곤 하였다. 그러나 결코 주관이 없는 무골호인인 것은 아니다.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세자할 땐 목숨 걸고 반대 주청을 꺾지않았던 분이다. 이를 사서(史書)가 ‘관후정대(寬厚正大)한 인품’이라고 기록한 것은 요즘 말로 민주주의적 사고력(思考力)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사회생활이 옛날처럼 단순하지 않아 여러가지 문제점이 많이 생겨 말들이 꽤나 많은 세태에 살고 있다. 그 많은 말들은 남의 말을 듣기위한 것이기 보다는 자신의 말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남의 말을 듣지않고 자기 말만 앞세워서는 결코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인식시킬 수가 없다. 이런데도 서로가 자기 말만 우기다 보니 공연히 말들만 더 더욱 범람해진다. 필자 역시 남의 말을 들어 수용하기 보다는 내 말을 먼저 수용해주길 바라는 편이지만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는다. 예가 될진 모르겠으나 음식을 가리지 않고 뭣이든 맛있게 먹는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하지만 맛을 가릴 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기왕 음식을 대하면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전의 가르침이다. 어렸을 적에 밥상 머리에서 이건 맛이 없고 하며 반찬 투정을 하면 아버지는 ‘맛이 없으면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래도 먹어야지, 맛 있게 먹는 사람에게까지 언짢게 해서는 안된다’며 타이르곤 하셨다. 말도 음식 같다면 남의 말을 듣는 게 맛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는데도, 듣기좋은 맛있는 말만 들으려 하고 듣기싫은 맛없는 말엔 아예 귀를 막는다. 그러는 사람들도 남에겐 맛있는 말은 못하고 맛없는 말만 하면서도 자신은 맛있는 말만 듣고싶어 한다. 세상에는 맛있는 말도 있고 맛없는 말도 있게 마련이다. 언어의 편식증은 음식의 편식증보다 더 위해가 크다. 음식의 편식증은 개인의 건강문제에 국한하지만 언어의 편식증은 사회의 건강문제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말은 많으면서 막상 해야할 말은 권력이나 금력이 두려워 입을 봉하는 비굴함도 요즘 세태가 보여주는 병폐가 아닌가 한다. 이런가 하면 해서는 안될 말같지 않은 말도 사태를 이룬다. 민주사회의 성숙된 지도력, 민주사회의 성숙된 시민의식은 말 같은 말과 말 같지 않은 말을 잘 가려, 맛있는 말이든 맛없는 말이든 말 같은 말은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부드러움 속에 강단이 있고 기다림 속에 결단이 있었던 황희 같은 분의 말문화를 생각해 본다. /이지현.(사)한길봉사회 경기도지부장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풍경들이 있다. 높고 파아란 하늘, 들판에 누런 벼이삭, 입을 쫙 벌린 밤송이, 그윽한 국화 향기… 그 안에 빠질 수 없는 게 초등학교 가을운동회다. 올해도 몇 군데 학교의 운동회를 둘러보았다. 옛날 잔치판 같았던 시골 학교 운동회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작은 축제였다. 학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늘 맑고 싱싱하다. 그 모습 그대로도 아름답고 귀엽다. 이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뛰고 달리며 즐기는 운동회를 보면 행복하다. 올해 본 한 초등학교 운동회는 여느 학교와는 사뭇 달랐다. 아이들이 펼치는 단체경기나 무용이 모두 쉽고 편안했다. 줄이 잘 맞지 않고 가끔 실수도 했지만 표정은 밝고 살아있다. 별다른 연습 없이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짝을 지어 춤을 추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보여주는 운동회가 아니라 아이들이 주인이 되어 즐기는 운동회였다. 달리기를 할 때였다. 입을 앙다물고 달리는 힘찬 팔다리를 보자니 힘이 솟는다. 일등을 달리면 어떻고 꼴찌면 어떠랴. 있는 힘껏 달렸으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도 많은 학교들이 3등까지만 가려 상을 주곤 한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달린 아이들 모두에게 상을 주었다. 그 작은 배려에서도 아이들을 고루 받아주고 사랑하려는 정신과 교육관이 엿보였다. 그와 달리 마음이 불편한 운동회도 가끔 보게 된다. 보여주기를 위해 지나치게 연습을 많이 한 운동회다. 매스게임이나 무용을 보면 한눈에도 훈련을 많이 한 흔적이 드러난다. 아이들이 기계처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데 생명력이 없다. 그럴 때 박수가 많이 나와도 나는 그리 탐탁치 않다. 뙤약볕에서 같은 동작을 거듭하며 씨름했을 선생님과 아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난날 볼거리가 흔치 않았던 시대의 운동회는 보는 사람 중심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하는 교육 추세에 걸맞게 운동회도 달라져야 한다. 내년 가을에는 아이들이 주인이 되어 즐기고 뛰노는 운동회를 많이 보고 싶다. /최창익.경기도교육위원
청주 새마을금고 여자강도 사건과 인천 새마을금고 강도사건 등 제2금융권을 주무대로 한 강·절도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지만 금융기관 자체방범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전국 금융기관 가운데 경비원을 배치한 제2금융권 점포는 5%, 우체국 점포는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범죄 표적이 되고있다. 지난 8월 청주 모 새마을금고 강도사건의 경우 여성범인이 장난감 총을 들이대고 위협하자 직원이 쉽게 돈을 내준 장면을 시민들은 TV 방송 화면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이처럼 은행권을 제외한 점포들은 사실상 범죄에 무방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금융권 점포들은 대부분 폐쇄회로 TV를 설치했다는 경고 정도를 붙여놓기는 하지만 범죄 예방책으로는 역부족이다. 경찰에서는 수시로 금융기관장 간담회를 개최하여 협력방범체제 확립을 위한 방범대책 논의와 자체방범을 촉구하지만 소규모 금융기관의 비용절감을 이유로 경비원 채용에 인색하고, 일선방범 경찰은 매시간 금융기관을 위주로한 순찰근무와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주민들을 위한 치안서비스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 그러나 정작 금융기관 당사자들은 강·절도 현금 탈취 사건이 발생해도 보험처리를 하면 금융기관은 손해볼 것이 없다는 인식으로 경찰과 사설경비업체에 모든 방범경비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제2금융권은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범인검거 등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자체 경비인력과 방범시스템을 충분히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성수·인천중부경찰서 동부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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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폭우 등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커지고 있는 것은 기상이변 탓도 있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뒷북치기식 대책 탓이 크다. 사전 예방보다는 뒷수습에만 치중,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하면서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게 지금까지의 실태였다. 때문에 완전한 재해대책을 위해서는 그 해에 일어난 피해를 복구하는 식의 임기응변 대응방식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피해시설들을 시멘트나 철근으로 원상복구하는 식의 대책은 효과도 없다. 건물 안전기준, 신호등 체계 등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전 국토를 자연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세워 전 국토를 대상으로 집중 투자하면,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내수를 살리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태풍 ‘매미’때문에 발생한 피해를 원래대로 복구하겠다는 생각으로 단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차제에 경기 침체 타개를 위한 장기적인 국토 개조 작업 차원으로 재해대책의 시야를 넓히라는 것이다. 태풍으로 해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농업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농업 부문이 재해로 입는 손실도 막대하지만 앞으로 농산물 시장이 전면 개방될 경우 우리 농업은 금융부문이 국제금융 사태때 겪었던 것과 같은 위기를 다시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농작물 피해 보상 차원을 넘어 재해 보험을 도입하는 등 농업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에 수해방지를 위한 중장기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수해방지대책기획단을 만들어 지난 4월 76개 과제를 중심으로 중장기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1999년에도 청와대 산하에 수해방지대책기획단을 만들어 119개 개선방안을 마련했으나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런 계획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는 지에 달렸다. 국립방재연구소가 지난 2000년 용인시를 대상으로 모의실험한 결과 앞으로 20년 동안 145억원을 미리 투자하면 예상 피해액 중 1천760억원 정도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었다. 재해대책은 난리가 난 뒤 부랴 부랴 단순 복구식 땜질 수습에서 벗어나 재해대응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당장 예산 지출은 어렵지만 지방자치단체부터라도 시행한다면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재해복구 공사는 요즘같은 날씨가 가장 좋을 때다.
우리는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코드인사 및 측근비리 척결, 민생 챙기기 등 국정쇄신의 의지이 지, 재신임을 묻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재신임 문제 제기가 철회되기 바랐으나 기정사실화 한 마당엔 시기와 방법을 두고 고민해야 할 단계가 됐다. 이에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염두에 둔 것으로 시사한 것은 우리 역시 국민투표의 준용만이 그래도 순리라고 밝힌 바가 있어 동의한다.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게 국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라는 일부의 부정적 견해는 법리상 지나치게 협의의 해석이라는 판단을 갖는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굳이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문제이 지, 법률적인 문제가 아님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러므로 국민투표의 결과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점을 우려하는 것 역시 문제의 본질을 잘못 혼돈하는 소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표결을 통해 진퇴를 건 국민과의 정치적 약속은 역시 정치적 규제력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투표법을 보완 개정하거나 따로 특별법을 만드는 방안은 반대한다. 대통령의 임기 중 재신임 묻기는 노 대통령이 자청한 이번 한번의 정치행위로 끝나야 한다. 이번 한번을 위해 국민투표법을 보완하거나 특별법을 제정하는 건 대통령 소환을 사실상 법제화하는 것으로 장차 헌정 불안의 불씨로 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년 총선 평가를 기준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다. 당장 노 대통령은 정당을 가늠할 당적도 없거니와 나라의 안정을 위해 이 문제를 조속히 매듭지어야 하므로 내년 4월 총선까지 ‘재신임 정국’을 마냥 끌고 갈 수는 없다. 사리가 이러다 보니 국민투표법을 준용하는 것으로 안된다면 재신임 묻기는 결국 불가능하게 된다. 만약 일이 이렇게 되어 재신임 문제 발언의 실현이 불가능 해지면, 발설 자체가 자연 소멸될 것을 계산한 암수라는 말도 들을 수가 있다. 헌법은 대통령이 부의할 수 있는 국민투표 대상으로 외교·국방·통일 등을 열거하고 있으나 또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제기한 재신임 필요의 심각성 정황이 포괄적 위임의 기타에 해당한다는 판단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어 대통령은 이른 시일 안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 실시를 공고해야 할 것으로 안다.
농업과 관련된 속담은 매우 과학적이고 지혜가 담겨 있다. ‘가뭄 때 배를 사 두고 장마 때 수레 사두어야 한다’는 말은 어떤 일이고 닥쳐서 대하는 것보다 미리미리 대비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자연재해에 대비했다면 태풍 ‘매미’의 피해를 덜 입었을 것이다. ‘농부는 논가에, 어부는 물가에 살아야 한다’는 속담은 정성껏 생업에 종사하라는 뜻이다. 농부가 논에 자주 나가 봐야 벼가 자라는 생육 상태나 병충해 발생 상황을 알 수 있고, 어부는 바닷가에 자주 나가 봐야 물의 흐름, 고기의 상태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샛바람 불면 비가 온다’는 속담이 있다. 샛바람은 동풍계열의 바람으로써 온난전선의 전면(주로 동남풍)으로 불기 때문에 동풍이 불면 전선의 통과에 따라 비가 온다는 뜻이다. 태풍이 북상하면 바람의 방향이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서 동북풍이 불게 되고 곧 이어 큰 비가 올 것이란 경험으로 생긴 속담이다. ‘까치집 낮게 지으면 태풍이 잦다’도 기후를 예고한다. 까치는 기상에 민감한 조류다. 집을 높게 짓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낮게 짓는다는 것은 그 해에 태풍이 자주 발생할 것을 예견하여 바람피해를 막기 위한 대비로 까치집을 낮게 짓는다. ‘오이밭에 웃옷을 벗고 들어가면 오이 맛이 쓰다’. 농부가 일을 하면서 웃옷을 벗을 정도라면 날씨가 매우 덥고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한 상태다. 오이를 심은 밭의 토양 수분이 부족하게 돼 오이 맛이 쓰다는 뜻을 지녔다. ‘가을 상추는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속담도 재밌다. 상추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채소다. 따라서 상추는 여름철 높은 온도에서는 각종 병충해 발생과 생육이 나빠 상추잎의 질이 좋지 않아 맛이 떨어진다. 하지만 가을에는 서늘한 기후 때문에 잘 자라므로 상추잎이 부드럽고 맛이 특히 좋다는 것을 이르는 속담이다. 오이나 시금치가 요즘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기는 하지만 가을 상추는 그래도 맛이 다르다. 가을 상추가 싱그러운 식탁에서 햅쌀 밥을 먹는 맛은 정겹다. /임병호 논설위원
국민연금제도가 지난 88년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왔으나 그 때마다 시련을 딛고 일어서 현재 연금수급자 100만명, 연금기금 100조원 적립 등의 가시적 성과를 달성하면서 더욱 건실한 제도로 거듭나고 있음을 볼 때 연금관리업무에 몸담고 있는 필자로서는 남다른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요즈음 입법예고된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에 대한 비판 내지 비난을 접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여러 독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이 글을 쓴다. 국민연금은 제도 도입단계에서 일반 국민의 수용성을 높이고, 경제발전 기여세대와 수혜세대간의 재분배를 도모하기 위해 보험료는 적게 내고 연금급여는 많이 받는 구조로 설계돼 연금재정의 불안정 요소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었다. 즉 제도시행 당시 보험료율은 3%였고 상향조정된 현재에도 9%에 머물고 있으나 연금급여의 소득대체율은 60%(98년까지는 70%였음) 수준에 이른다. 이는 소득대체율이 40%인 미국의 연금보험료율이 12.4%이고, 캐나다는 9.9%의 보험료율을 가지고 25%의 연금급여를 지급하고 있음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연금제도가 그동안 연금재정의 안정화에 역행하고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금재정 불안 요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정부는 각계의 전문가로 국민연금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1년 이상 연구해 보험료는 조금 더 내고 받는 연금은 다소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안을 마련했다. 주요내용은 현 9%의 보험료율을 2010년부터 5년마다 1.38%씩 올려 2030년에 15.9%로 조정하고, 연금급여의 소득대체율은 현 60%에서 2004년부터 2007년까지의 가입기간은 55%로 낮추고 2008년 이후 가입기간부터는 50%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현 급여수준 60%를 유지하고 2008년에 재정추계를 다시해서 급여수준과 보험료율을 결정하자고 하면서 개선안에 반대하고, 재계는 기업부담을 이유로 소득대체율을 40%로 인하하되 보험료율은 동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상반된 주장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이미 밝혔듯이 외국의 예와 비교해도 이번 개선안의 소득보장 수준은 여전히 양호하여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많은 것이며, 차액은 후세대가 부담하게 되므로 현세대에게는 매우 유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의 출산율 저하와 노령화의 급진전 등으로 연금재정의 불안이 누적되고 급기야는 후세대에게 그 모든 짐을 전가하고야 마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국민연금은 사회연대의 원리에 충실해야 하며 특정시기의 보험료 납부자나 급여대상자에게 편파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한 제도가 돼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이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영속적인 사회보험제도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전국민의 이해와 양보속에 재정계산실시 원년인 금년중에 반드시 제도개선을 이루어야 한다. /강금주.국민연금관리공단 경기.인천지역관할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