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작은 정성이지만 모아진 뜻은 거대하다. 경기지역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이 이라크 어린이들 가슴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경기도교육청, 월드비전 경기지부, 경기일보사가 공동으로 벌인 이라크 전쟁난민 어린이를 위한 ‘사랑의 빵 나누기운동’이 이같은 인류애의 결실을 맺었다. 무려 134개 초·중등학교가 참여, 2억6천827만150원이 모금됐다. 지난해 103개교에서 가진 ‘사랑의 동전 모으기’로 모금된 2억3천500만여원을 전쟁으로 시달린 아프가니스탄에 보내 난민을 도운데 이어 이번에 모금된 성금은 또 이라크의 어린이들에게 더할 수 없는 사랑의 생명줄이 될 것이다. 전쟁의 참화로 폐허가 된 이라크 어린이들이 겪는 고통은 어른들보다 비할 수 없이 더 크다. 기아와 공포에 참새같은 가슴을 조이며 사는 이라크 전쟁난민 어린이들 중엔 눈이 퀭하니 초점조차 잃은 아이들이 많다. 월드비전 경기지부를 통해 모술지역의 초등학교 재건과 마을 식수 개발에 전액 지원될 도내 어린이들의 사랑의 씨앗은 고통받는 같은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싹틔워 줄 것이다. ‘지구촌 사랑 나누기’ 일환으로 도교육청, 월드비전, 본사가 올해 일곱번째 벌인 이 운동은 그간 아프리카 등지까지 경기 어린이의 사랑 나누기를 전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가진 이라크 전쟁난민 어린이 돕기는 또 다른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어린이들이 절약해 한닙 두닙씩 모은 따뜻한 성금이 국제사회의 인류애 다리가 되어 메마른 이라크 전쟁난민 어린이들 가슴을 사랑으로 촉촉히 적셔주는 것이다. 우리의 어린이들이 보낸 돈으로 이라크 초등학교가 재건돼 공부할 수 있고, 물조차 귀해 목 말라 애타는 이라크 어린이들의 젖줄이 될 식수를 개발하는 것은 여간 장한 일이 아니다. 위험과 고통으로부터 가장 먼저 구출돼야 할 어린이 권리를 우리 경기 어린이들이 사랑의 성금으로 뻗쳐준 도움의 손길을 이라크의 그곳 어린이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때마침 정부는 유엔 결의에 따라 이라크에 평화 유지군을 추가 파병키로 했다. 경기 어린이의 이라크 어린이들을 위한 마음이 모술지역에 널리 퍼져 평화가 이룩되기를 기대한다. 그간 모금에 참여한 초·중학교, 그리고 학생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파워 게임인지 세대 갈등인 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두가지가 다일 수도 있다. 통합신당이 청와대 비서진 특히 젊은 30대 대통령 보좌진을 맹폭, 38세의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이 결국 사표를 냈다. 통합신당의 공격에는 “특정인이 권력과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고도 했다. 어떻든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을만큼 이 정권이 이완된 데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일괄 사표가 비록 반려됐다고는 하나, 비서실의 책임이 없다할 수 없으므로 수세에 몰린 건 사실이다. 통합신당측은 이 여세를 몰아 국민투표 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개편해야 한다고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은 5급이상 직원의 86%가 30대들이다. 무척 젊다. 그래서 전문 식견과 경륜이 없다는 말을 듣고있다. 지난 ‘국군의 날’ 행사 때 노 대통령이 조영길 국방부장관이 펴든 우산을 받지않고 우중에 그대로 사열을 받았으면 정말 보기가 좋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아쉬운 대목이었다. 청와대 누구의 생각이었는 지는 몰라도 처음엔 국방부가 우의로 정했던 것을 비서실에서 우산으로 바꾸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이게 다 경륜이 모자란 탓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산 파문은 사실적 판단의 오류에 속한다. 정책적 판단의 오류는 더욱 심한 부정적 파장을 일으킨다. 젊디나 젊은 청와대 비서실의 공과를 말하기는 무척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젊다고 청렴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 많다고 노련한 것도 아니란 점이다. 젊어도 탐욕스럽고 나이 들어서 고집스러울 수가 있다. 이런 반면에 나이가 들면 초탈할 수 있는가 하면 젊은 사람도 그 중에는 경륜이 있는 이도 있다. 문제는 사람 나름이다. 나이가 기준일 수 있지만 만능의 잣대는 아니다. 이리하여 사람 볼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나이를 따지는 것도 좋지만 사람 됨됨이를 보는 눈이 이래서 더욱 중요하다./임양은 주필
“차라리 군자에게 잘못을 저지를 지언정 소인에게 실수하지 말라” 제(齊)나라 관중(管仲)이 인사 관리에 대해서 한 말이다. 상대가 군자라면 처우를 잘못하더라도 깊이 원한을 사지 않지만, 소인을 후대한 경우 그 손해는 헤아릴 수 없다. 오늘날 한국 정치판에도 나타나는 극명한 사실이다.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는 데는 잘못된 경우가 없지 않다. 그래서 관중은 사람을 등용할 때 “첫째, 지위에 어울리는 덕을 지니고 있는가 둘째, 봉록에 어울리는 공적을 세우고 있는가 셋째, 관직에 어울리는 재능을 지니고 있는가를 평가하라”고 했다. 무릇 통치자는 자기를 위해 진력해 줄 그 나름의 충신, 현자(賢者)를 등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좀처럼 이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충신이라고 여긴 사람이 실은 충신이 아니고, 현자라고 여긴 사람이 실은 현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기(史記)’의 ‘굴원열전(屈原列傳)’에 “이른바 충신은 불충이고, 이른바 현자는 현자가 아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전국시대 초(楚)나라 회왕(懷王)은 굴원을 중용했다. 당대 최대의 시인인 굴원은 학식과 정치적 식견이 풍부하고, 예절과 응대하는 태도 등 정치가로서의 소양을 갖춘 인물이었다. 회왕이 굴원을 중용하자 시기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하루는 회왕이 굴원에게 법령의 초안 작성을 명했다. 굴원이 초안작성을 완성했을 때 중신 하나가 그 것을 가로채려 하였다. 굴원이 거부하자 그 중신이 회왕 앞에서 모함했다. “법령을 작성할 때마다 왕께서는 언제나 굴원에게 명하십니다. 그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굴원은 법령이 공포될 때마다, 이것은 자기가 만들었으며, 자기가 없으면 왕은 아무 것도 만족하지 못한다고 떠벌리고 있습니다.” 회왕은 금세 안색이 변했다. 그 뒤 굴원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다. 전국칠웅(戰國七雄)에 의한 패권쟁탈전이 한창인 때여서 국가의 앞날을 위해 간언(諫言)하는 굴원을 끝내는 조정에서 추방해 버렸다. 그러나 굴원은 추방된 뒤에도 나라와 회왕을 생각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었다. 굴원은 자신의 詩 ‘이소(離騷)’에 군주의 지위를 튼튼히 하고 나라를 바로 잡아 조국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이키고 싶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러나 회왕은 최후까지 잘못을 깨우치지 못했다. 초나라는 하루가 멀게 영토를 뺏기고 결국 진(秦)나라에 멸망당했다. 굴원은 원통한 마음을 지닌 채 멱라의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통치자는 누구나 자기를 위해 충성을 다해 줄 사람을 구하고, 우수한 사람을 등용하고 싶어한다. 충성한 자, 우수한 자를 등용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반대인 경우가 왕왕 있었다. 충성한 체 하는 자, 현인인 체 하는 자를 표면으로만, 인지상정으로만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회왕도 마찬가지였다. 충과 불충을 분간하지 못한 실정(失政)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진나라에서 객사하는 비운을 당했다. 작금 한나라당, 민주당, 통합신당, 자민련 등 각 정파가 오직 당리당략만을 위해 이전투구하는 판국에 소위 ‘정신적인 여당’인 통합신당 김근태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진은 책임을 깊이 느껴야 하고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했다고 해서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 며 “국무총리 이하 내각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경험미숙과 개혁 일변도로 국정 난맥상을 일으킨 청와대 비서진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잘라야 한다는 뼈 아픈 말이다. “차라리 군자에게 잘못을 저지를 지언정 소인에게 실수하지 말라” 굴원의 충정을 오판한 회왕 같은 어리석음도 없어야겠지만, 관중의 이 말을 오늘날 역(逆)으로 생각하면 청와대 비서진, 모든 각료들이 자신의 德과 공적, 재능을 스스로 판단하고 처신할 것을 암시하는 뜻이다. 그러나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말고는 불행하게도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있다. 우이독경이다. 여전히 마이동풍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우리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정치인들의 말에 불신이 가득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선거때가 되면 거짓공약으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정당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말바꾸기를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하는 그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많은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입장표명에 진실감을 더하기 위해 ‘고해성사를 하는 마음으로’ 혹은 ‘고해성사를 하듯이’등 가톨릭 전례용어인 고해성사를 인용한다. 가톨릭 신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요즘 정치인들이 심심치 않게 고해성사를 운운한다. 이런 말들을 쉽게 할때마다 가톨릭신부로서 속이 상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들이 과연 고해성사를 아는가. 사실 고해성사라는 표현은 그저 자신들의 진실성을 표방하기 위해 함부로 사용되어질 단어가 아니다. 고해성사의 본질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고해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살펴보고 그 잘못에 대하여 깊이 뉘우치는 통회의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의 준비가 되면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해소에 들어가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에 대하여 진실하게 고백한 뒤에 그 죄과에 합당한 ‘보속’을 성실히 이행해야 하느님께로부터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해성사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통회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단지 말만 앞세운다면 그것은 참다운 고해성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말하는 고해성사는 무엇인가. 그들은 아무런 내적 성찰도 하지 않고 참된 통회도 없이 다만 자신들의 입장만을 표방하고 진실성을 호도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고해성사라는 단어를 이용할 뿐이다. 정치인들의 진정한 고해성사란 하느님앞에 발가벗는 심정으로 깊은 자기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국민들을 기만하고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면서 함부로 신성하고 거룩한 가톨릭교회의 고해성사를 운운하며 하느님을 모독하고 진정한 통회가 없는 그들은 참으로 하느님의 보속이 무엇일지 깊이 자성해야 할 것이다. /송영오.인덕원성당 주임신부
청명한 농촌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길 위에 고추 등 농작물을 말리는 모습을 자주 본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고추나 벼 등 농작물을 건조하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교통사고의 위험이 높다. 특별한 양곡건조시설이 없는 농촌의 경우 수확한 농작물을 잘 건조해 좋은 가격을 받으려는 농민들의 마음이야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이렇게 국도변이나 지방도로변에 말리기 위해 널려 있는 농작물은 교통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도로 사정을 잘 모르고 빠르게 달리는 초행 운전자의 경우 농작물을 발견하고 커브를 꺾다 반대 차로의 차와 충돌하는 사고도 종종 있다. 또한 해질 무렵 농작물을 다시 거둬들이는데 여념이 없는 농민들이 달리는 차량에 다치는 사고도 빈번하다. 곡식 한 알이라도 알차게 거두려는 농민들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차량 소통이나 사고예방을 위해 왕래가 많은 도로 위에서 농작물 건조는 피해야 한다. 지난 봄 가뭄과 여름수해를 이긴 농민들의 결실이 도로상의 위험으로 인해 비극이 초래되는 건 아무도 원치 않을 것이다. 농작물은 가급적 차량 소통이 적은 이면도로를 이용해 농작물을 말리고, 차량소통이 많거나 급커브길에는 농작물을 널지 말고 야광표지나 마을단위로 커다란 사전안내판을 설치하는 슬기도 필요하다./채종오·가평경찰서
송두율씨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학자를 위장한 남북대결의 북측 하수일 뿐이다. 그러한 그가 일부의 방송에서 민주화의 영웅으로 귀환해 보인 것은 어디까지나 편향적 시각인 남남갈등의 병폐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가 솔직한 반성의 자세를 보이길 바랐다. 그런데도 두차례에 걸친 기자회견에서 어휘의 농간으로 일관할 뿐 전향을 거부하고 있다. 북측 노동당 규약에는 탈당이란 게 없다. 이 틈을 노려 탈당은 말하면서 전향을 거부하는 것은 사상의 불변을 고집하는 그의 술수다. 그가 실정법 준수를 아무리 말해도 신뢰할 수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일 뿐 진심이 입증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북측 중앙통신사 부사장이던 이수근의 이중간첩 행위를 생각한다. 이수근은 위장 입국하여 결코 그들의 김일성 수령이나 북측 체제를 단 한마디도 비판한 적이 없었다. 그러기는 커녕 북과 관련한 고급정보 하나 털어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끝내는 북으로 재탈출하려다가 붙잡혀 처형됐다. 송씨가 이러한 제2의 이수근이라는 단정을 하기엔 물론 아직은 어렵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맨 처음 기자회견에선 국정원 조사에서 드러난 혐의 사실을 부인하는 것으로 일관하더니, 두번째 회견에서는 실정법 준수니, 노동당 탈퇴니 하는 의미없는 화두로 자신의 처지를 얼버므렸다.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그의 개전은 나중에 가서 ‘남한 당국의 요구에 의해 마지 못해 한 것’이라고 둘러댈 수 있는 그같은 말이 아니라 그의 학자적 양심의 고백이다. 송씨가 진정 학자라면 우리는 그의 양심의 자유에 의한 진솔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같은 전향의 실증적 입증이 없는 한 그는 어디까지나 북측의 하수일 뿐이다. 그가 굳이 추방당하지 않고 살수 있길 바라는 저의가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남한 사회를 농락하는 그를 더 좌시할 수는 없다. 검찰이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임을 시인하고 상당한 전향의 실증적 고백을 해보이지 않는 한 뉘우치는 기색이 없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이는 보수·진보의 개념을 초월한 국가 보위에 관한 문제다. 우리는 검찰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고자 한다.
많은 국보와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전통사찰은 문화재의 보고라고 할 만큼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본보가 집중 취재, 보도한 바에 따르면 도내 전통사찰 대부분이 화재발생 위험이 상존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사찰 건물 자체가 발화력이 강한 목조건물로 이루어져 있는 데다 화재 진압장비가 거의 녹슨 소화기 몇 개가 고작이어서 화재발생시 초기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찰건물 특성상 전선 관리 등이 안돼 있어 누전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국보 범종과 탱화, 부모은중경목판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화성시 소재 용주사의 경우 분말 소화기가 10여개 있으나 손잡이 부식이 심해 작동이 불가능하거나 압축 가스가 제대로 충전돼 있지 않아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다. 14개의 보물과 도지정문화재 등을 보유하고 있는 여주 신륵사도 사찰건물벽에 나무와 장작이 쌓여 있고 더구나 요사체 쪽에는 LP가스통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어 화재발생시 대형으로 번질 우려가 크다. 소화기나 소화전에 점검날짜 등이 표시돼 있지 않다. 도내의 유명 전통사찰 등 대부분이 이렇게 화재에 방치되고 있는 것은 문화재 보호를 위한 소방규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탓이다. 소방법상 지정문화재를 보유한 전통사찰의 경우 연면적 1천㎡이상이면 옥외소화전을 설치토록 돼 있으나 도내에는 연면적 1천㎡를 넘는 경우가 한 곳도 없어 모두 옥외소화전 설치 대상에 제외돼 있다. 이로 인해 문화재청이 화재 조기진압을 위해 1개소에 1억원을 지원하는 옥외소화전 설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규정은 당장 시정돼야 한다. 사찰에서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 자체가 사찰 소유가 아니라 국가의 재산인만큼 소화전 설치는 정부가 당연히 예산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봉선사의 경우 대형건물이나 공장에서 볼 수 있는 방화관리자를 자체적으로 선정, 소방대책을 수립하고 만일의 불상사를 대비해 매년 2차례씩 구리소방서와 공동으로 소방훈련을 실시하고 있음은 다른 사찰들도 본받아야 할 점이다. 천년 사찰인 치악산의 구룡사 화재를 타선지석으로 삼아 당국은 물론 사찰도 자율적인 소방대책을 수립, 화재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떨면서 힘겹게 아주 힘겹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사고능력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파킨슨병’ 환자의 전형적 증상이다. 파킨슨병은 그동안 뇌중풍, 치매 등 노인성 퇴행성 질환으로 오인돼 왔다. 파킨슨병은 서서히 근육이 굳으며 마비현상이 나타난다. 팔다리가 떨리는 수전증의 경우 주로 밥을 먹거나 글을 쓰는 등 동작을 할 때 나타나지만 파킨슨병은 가만히 있을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이 부족해 병에 걸린다는 사실 외에 뚜렷한 발병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조기에 발견할 경우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어느 정도 방지는 할 수 있다고 한다. ‘엘도파’외에 여러 약이 개발되고 몇 년 전부터는 ‘심부대뇌자극술’이란 수술요법이 개발됐다. 태아의 신경세포를 이식하는 수술법도 있으나 윤리적인 문제와 공급량 부족으로 사실상 시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파킨슨병이 국내에서도 1천명당 1명꼴로 걸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엔 100명당 1명꼴로 급증한다니 보통 무서운 병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네가지 고통(四苦)’을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하였지만, 급작스러운 사고로 타계하는 것 보다 그래도 생로병사가 인간의 순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시절 중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 사람에 비하면 나은 편이겠지만 늙어서 각종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세기의 성인(聖人)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90년대 중반부터 파킨슨병을 앓아 왔다. 관절염까지 겹친 고통을 겪으면서도 복음을 전파하는 교황이 10월 16일 재위 25년, 은경축(銀慶祝)을 맞았다. 교황은 25년동안 102차례의 해외 사목활동에 나서 129개국을 순방했다. 1984년엔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83세의 교황이 지금 죽음에 임박했다는 외신이 들려 온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던가. 생로병사 앞에서는 교황도, 제왕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1995년 대통령의 체코 공식방문에 앞서 정부 종합답사단의 일원으로 체코 대통령궁을 방문했을 때 애연가인 나의 눈에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궁 내 곳곳에 비치되어 있는 크리스탈 재떨이였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곳에서 흡연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세계 어느 대통령 궁에서도 이런 흡연의 자유는 누릴 수 없다) 이렇게 끽연을 만끽(?)할 수 있었던 분위기는 이곳이 바로 대단한(?) 애연가인 하벨 체코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곳이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물론 백해무익하다는 담배로 인해 96년 이후 하벨은 폐암 수술을 받는 등 건강문제로 시달렸다. 어쨌든 문화를 사랑하는 세계적 극작가 하벨은 매우 소탈하고 친근한 대통령이었다. 경호원 없이 청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며 길거리를 걷거나, 퇴근후 맥주집에서 다른 손님들과 격의 없는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는 서방의 언론으로부터 ‘록큰롤 프레지던트’라고 불릴 만큼 대중적 친화력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의 만델라로 불리 울 만큼 인권과 인간성을 중시하는 지도자로, 민주주의의 우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재임 중 경제적 안정과 OECD, NATO, EU가입 등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하였지만 반면,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 총리사임문제 개입 등의 적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가 공산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던 20여년 동안은 물론 지난 2월 대통령직을 퇴임 할 때까지 15년 동안 권좌에 있을 수 있었고 3선 출마 금지에 따라 지난 2월 대통령직을 떠난 후에도 아직까지 정치지도자로서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는 까닭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아주 평이한 기본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벨벳혁명 등을 거치며 반체제 인사로 살아온 그에게 행정경험은 전혀 없었지만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진실과 더불어 박식한 지식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통찰력으로 극복해 왔다. 그는 ‘도덕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치를 삶 자체로 보여준 투사’로 일컬어질 정도로 도덕을 모든 것의 기본으로 삼고, 최선의 정책을 교양과 예의라 하며, 인권과 인간성을 중시한 인물이다. 혹자는 이를 ‘反政治의 政治’라 평하기도 한다. 으레 정치인들의 知行合一이 안 되는 ‘입에 발린 소리’에 익숙한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은 이런 익숙함에 신선한 파괴(?)를 던진 인물이다. 작가에서 반체제 인사로 그리고 대통령으로 그리고 이젠 자연인 하벨로서 다시 극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하벨. ‘재신임’ 뉴스가 지면을 덮은 가운데 수상은 못했지만 올 노벨 평화상의 유력 후보로 거명되었다는 자그마한 기사 한 줄이 새삼 그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치적은 내가 아니라 대중과 정치인 , 언론인, 정치학자, 역사가의 몫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유와 존엄을 위해 일해주십시오.” 하벨의 의회 고별연설이다. /정상환.남서울대 외래교수
요즘 신문이나 뉴스 보기가 싫다. 나오는 내용이 모두 이분법적 대립구도인데다 자기 주장과 다른 반대의견은 용납하지 않고 투쟁대상으로 삼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심지어 옆집 수도공사까지도 시비 거리다. 오늘날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는 이미 학창시절에 역사를 배우면서 포용하였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배워왔다. 중국의 춘추시대 5패중 첫번째 패자였던 제환공은 자신에게 활을 쏘았던 원수인 관중을 기용하여 패업을 이룩할 수 있었고, 당태종 이세민은 형 건성의 편에 서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위징을 신하로 삼아 중국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라는 ‘정관의 치’를 이룩하였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정적을 기용하여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의 주들은 그가 취임도 하기 전부터 잇따라 연방탈퇴를 선언했지만 링컨은 남북전쟁이라는 극한상황 속에서도 늘 포용력을 발휘하여 그의 내각에 대통령선거에서 경쟁상대였던 상대당의 인물까지도 끌어들였고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인물이면 민주당 출신이라도 기꺼이 기용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던 1864년의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앤드루 존슨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기도 했으며 당선후에는 가장 극렬하게 자신을 공격하며 비난했던 스탠튼을 국방장관으로, 윌리엄 스워드를 국무장관에, 자신을 무식한 시골 변호사로 깔보던 새몬 체이스를 내무장관에 기용했다. 전쟁이후 국민화합을 위한 결단이었으며 링컨은 미움과 증오심의 벽을 넘는 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 사회가 왜 시끄러운가. 포용력이 없어서다. 생각과 이해와 뜻을 달리한다고 해서 타도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할 우리의 이웃으로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바다가 넓은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인 결과인 것처럼 각계각층이 민주시민으로서 포용력을 더욱 발휘할 때다. /소병주.경기도의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