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경연대회

국악경연대회에서 입상대가로 심사위원에게 거액의 뒷돈이 거래됐다는 소식은 유감천만이다. 서예계에서 심사위원이 ‘대필(代筆)’을 해준 대가로 출품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사건이 터져 실망이 컸는데 국악대회마저 ‘검은 고리’가 드러났다. 국악대회 참가자들이 입상을 하기 위해 심사위원들에게 수십만 ~ 수천만원의 사례금을 ‘후불제’로 내놨다니 그동안의 실상이 한눈에 보인다. 한 예로 A씨의 경우 1998년 11월 광주광역시가 주최한 국악대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회가 끝난 뒤 대통령상 수상자로부터 자그마치 2천만원을 건네 받았다고 한다. 문제점은 국악대회 참가자들에게도 적지 않다. 심사위원들에게 입상을 대가로 어느 정도 ‘인사’를 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더구나 받는 사람도 이를 뇌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동안 전국에서 열리는 국악대회의 절반 정도가 심사위원들의 담합과 뒷돈 거래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었다. 특히 판소리의 경우 ‘대통령상 = 명창’이라는 공식이 일반화해 금품 로비가 더욱 치열했다. 국악대회의 심사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국악대회가 전통문화 보전이라는 취지에서 벗어나 계파간 전승 세력 확보와 국악인으로서 ‘상품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국악대회 대상만 타게 되면 지명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문하생이 많아져 학원 운영이 잘돼 생활하는 데 걱정이 없어진다. 예술보다 생존이 먼저라면 참가자들이 수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 문화관광부의 시상 지원 대상 국악대회만 79개다. 이 중 대통령상이 주어지는 대회가 19개다. 국악대회 난립에 따른 심사비리가 끊이지 않자 지원대상 대회를 지난해 104개에서 18개로 대폭 줄였으나 대회 주관 단체 등의 거센 반발로 다시 늘렸다. 돈을 주고 상을 타려는 참가자도 문제지만 심사위원의 공정성, 도덕성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인간문화재라는 사람이 대통령상을 받게 해주겠다며 2천만원, 1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데 5년 전의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고 한다. ‘받은 사실이 없다’가 아니라 ‘기억이 안난다’니 정치판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기고/'여.야 중진의원들은 나라의 대들보'

옛날에는 인간 고려장이 오늘에는 정치 고려장? “부모 없는 자식 없고 농촌 없는 국가 없고 옛날 없는 오늘이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를 모르는 도덕적 패륜아인 철부지 정치꾼들이다. 도대체 나라의 정체성이 뿌리째 뒤흔들리는 현실에는 무감각·무응답이면서 마약에 중독되어 혼미상태에 빠져있는 사람처럼 경륜과 지식이 풍부하고 지혜롭고 조국의 미래와 오늘의 어지러운 현실을 올바르게 이끌고자 하는 중후한 경륜과 인격을 갖춘 정치인들은 수구요, 보수요, 반 통일론자로 말도 꺼내지 못하게 중국 홍위병 식으로 몰아 부치려는 철부지 정치꾼들은 누구의 사주와 조종을 받고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이들은 오늘을 똑바로 내다보아야 밝고 희망찬 미래가 펼쳐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앞을 내다보는 데에는 감성으로 보지말고 냉철한 이성으로 보기를 부탁한다. 감성으로 치우쳐 앞을 내다보면 진리는 땅속에 묻혀 버리고 도덕성은 없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경제원론에서도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말이 있다. 젊은 정치인들이 60세 이상 당 중진은 정계를 떠나라는 말은 큰 실언을 한 것이다. 한 집안의 부모가 큰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죽이는 패륜아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초가삼간 집을 지을 때에도 대들보도 있어야 하고 서까래도 있어야 한다. 대들보가 60대 중진이라면 서까래는 젊은 정치인인 것이다. 나라와 소속된 정당의 중진 정치인들은 즉 나라의 대들보인 것이다. 대들보를 빼내버리면 그 집은 무너진다. 젊은 정치인들이여, 집을 부숴 버릴 것인가. 아니 나라를 부숴 버릴 것인가. 신문 방송에 그런 말한다고 몇자 써주고 TV화면에 비추어주면 그 사람이 유명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철부지 불장난 한다고 오히려 책망을 한다. 해당 지역구에서는 알아줄지 모르지만 나라가 흔들리고 소속된 정당이 소용돌이치며, 그렇게 되면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하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느 정당이건 나라와 국민과 소속정당을 위하여 건전하고 진취적인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부자 되기를 바라며 그러한 기초 위에서 정치를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들이 외면하며 싫어하는 나라와 정당이 깨어지는 소리를 계속 외쳐댈 것인가. 아니면 국민이 부자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앞장설 것인가.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며 우리 다함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보자. /정창현.前 국회의원

천자춘추/수원에 국제적인 식물원을 만들자

그 동안 우리 나라는 수많은 개발 계획에 밀려 푸른 산과 들이 아파트 빌딩 숲으로 또는 산업단지로 변화해 왔다. 최근 도시의 허파라 불리는 공원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도심 소공원들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한 택지개발에 따른 무분별한 난개발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산림자원의 경제성 평가를 보면, 목재 생산보다 휴양 수익이 6배나 높고, 도시공원의 경우는 공익기능이 공원의 운영비보다 665배나 높다는 보고를 보면, 식물원의 조성과 그 활용에 의한 효과는 단순한 목재생산과 휴식공원 조성보다 몇십배 아니 몇백배 크다고 생각된다. 수원시를 보자. 아름다운 숲과 성곽(화성)으로 둘러 싸인 전원도시로 외곽에는 광교산, 칠보산, 도심에는 팔달산, 여기산 등이 자리잡아 전원도시의 기틀이 되고 있고, 친환경적이며 창조적인 연구, 교육기관들이 자리잡고 있어 수원시민의 쉼터로서 삶의 질을 높이는데 활용되고 있지만 도시화의 논리에 밀려 갈수록 수성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 동안 수원시민의 쉼터로, 산 교육의 장으로 사랑을 받아오던 서울대학교 수원 캠퍼스(농업생명과학대학)가 2003년 8월, 50년만에 서울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다. 이 곳에 식물원을 조성한다면 그 동안 다양한 식물과 나무를 가꾸어 왔기 때문에 50년을 앞당길 수 있는 장점과 많은 조성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수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식물원을 갖는 국내 유일한 도시로 태어날 것이며,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세계의 유명한 도시들은 모두 오래된 식물원을 가지고 있다. 독일 베를린식물원(1815년), 시드니 왕립식물원(1816년), 인도네시아 보골식물원, 북경식물원, 뉴질랜드의 크라이스처치 같은 40만명의 소도시에도 규모가 대단한 식물원을 조성하여 많은 시민들이 즐기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하고 있다. 영국의 왕립큐식물원(1759년 설립)의 경우 많은 관광객의 입장료 수입으로 식물원 운영은 물론 도시 재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우리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꿈과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수원식물원’을 조성·발전시켜 나간다면 미국의 뉴욕식물원, 영국의 왕립큐가든과 같은 매우 아름답고 창조적인 식물원이 자리잡게 되어 수원이 국제적인 도시로 부상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임명순.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장

10월 10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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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지뢰매설지대 없애라

남한 곳곳에 매설돼 있는 지뢰지대의 총면적이 91㎢(2천753만평)로 서울 여의도 면적(90만평)의 30.6배나 된다는 국감자료가 놀랍다. 더구나 그중 4분의3은 정확한 매설지점조차 알 수 없는 ‘미확인 지대’라니 그야말로 지뢰밭에 살고 있는 셈이다. 안전대책 마련이 참으로 시급하다. 지뢰지대 총면적 중 전·후방의 확인된 지뢰지대 22㎢(665만평)에 무려 108만발의 지뢰가 묻혀 있고, 이중 105만발은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 등 전방 지역에, 나머지 3만여발은 영·호남, 경기, 강원, 충청 등 전역에 매설돼 있다고 한다. 국토가 분단된 상황에서 지뢰 매설은 군사적으로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확한 매설지점 등을 알 수 없다면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에게도 매우 위험하다. 미확인 지뢰지대의 경우 민통선 이북에 50개소, 민통선 이남 지역에 15개소 등 총 65개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민통선 이남 지역에 있는 15개소는 당초 민통선 이북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나 법개정에 따라 민통선이 북상하면서 민통선 이남에 위치하게 된 것이어서 위험도가 더욱 높다. 민통선 이남의 미확인 지뢰지대는 군 당국이 표지판이나 철조망을 설치, 관리하고 있지만 민간인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여름철에는 풀이 우거지기 때문에 지뢰사고 발생이 심히 우려된다. 더욱 큰 문제는 지뢰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이다. 최근 3년간(2000~2003년) 지뢰사고 관련 국가배상 및 국가소송 현황을 보면 배상 신청건수 12건 중 겨우 3건만 받아들여지고 나머지는 기각됐다. 지뢰사고 배상 집행액도 8천만원으로 국방부가 집행한 국가배상액 80억2천만원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반대로 국제지뢰제거기금은 지난 1993년 유엔 아프간원조기구(UNOCHA)에 7만5천달러를 지원한 이래 지난해까지 모두 98만5천달러(12억원)를 지원했다. 국내에 매설된 지뢰제거보다 외국 땅에 묻힌 지뢰제거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쓴 것이다. 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후방지역 지뢰는 순차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특히 지뢰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국가배상이 이뤄지도록 지뢰사고 피해자 구제 기금 마련은 물론 국가배상법 개정 등 다각적인 대책 강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검찰의 SK 비자금 수사를 지켜본다

검찰의 정치권 비리 수사가 어느 때라고 중요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SK 비자금 수사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지금의 통합신당 이상수 의원에게 건넸다는 70억원,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에게 주었다는 수십억원은 바로 당시 노무현, 이회창 두 후보의 대선자금이란 점에서 그 혐의의 죄질이 지극히 무겁다. 정경유착의 전형적 표본이다. 이른바 돼지저금통으로 선거를 치렀다며 청렴성을 과시하던 이면에 이런 사악한 뒷돈 거래가 있었다는 것은 기만도 이만 저만이 아닌 사기극의 극치다.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의 10억 수수 혐의는 대선이 끝나고 나서 거래된 점에서 또 다른 이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이 된다. 이 거액의 돈이 각종 청탁과 함께 건네진 것이라면 결코 최씨 개인을 보고 준 것으로 볼 수 없는 정황은 이 정권이 표방한 개혁성이란 게 얼마나 허황한 가를 말해 준다. 정치자금 의혹은 이밖에도 현대 비자금 등을 비롯하여 또 몇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도 특히 SK 비자금 의혹을 주목하는 것은 지나간 정권이 아닌 바로 현 정권 정상의 측근이 당사자가 되는 예민성 때문이다. 더욱이 최씨는 출국금지 기간에도 어떻게 해외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인지, 아무튼 그런 조화속 지위의 인물이다. 그리고 단돈 1원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변한다. 만일 최씨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의 소환을 예정한 검찰 수사의 엄청난 혐의 내용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겠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그렇게 믿을 수는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중수부의 나라’니, ‘검찰공화국’이니 하는 해괴한 말들을 한다. 이는 정치권 비리 수사가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는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는 일종의 치기다. 정치권이 비리를 일삼지 않으면 굳이 검찰 수사의 예봉을 받을리 없고 또 이러한 정치권이 되어야 한다. 정치자금은 필요악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잘못된 인식이야 말로 조속히 청산돼야 할 개혁의 대상이다. 참신성과 개혁성을 내세우는 이 정권이 대선자금 이면 거래로도 모자라 당선 이후에 검은돈까지 뒷거래한 것은 실로 용인되기 어려운 위선이다. 국민사회는 지금 검찰에 큰 기대를 갖고 격려한다. 검찰이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은 예전의 일로 안다. 대검 중수부는 특히 최씨에 대한 수사의 어려운 시금석을 잘 극복해 내어 서릿발처럼 살아있는 검찰상을 보여주길 당부한다. 이것이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는 검찰 개혁의 길이다.

수원문화원

우리나라에 문화원이 생겨난 시기는 1950년대 초기다. 당시엔 복지관·문예관·공회당·국민문화원·공보원 등의 여러 이름을 사용했다. 재정은 지방자치단체나 미국공보원(USIS)의 지원 또는 지방 유지들의 성금, 원장의 사재 등으로 충당했다. 문화원이 국가적인 보호육성책으로 정상화된 것은 1961년 5·16이후였다. 수원문화원은 1957년 10월28일 개원됐다. 초대부터 4대까지의 원장은 당시 수원시장이었던 김한복(金漢福·1957.10.8~1960.10.30), 2대 윤긍렬(尹兢烈·1960.12.27~1961.5.24), 3대 이백일(李白日·1961.5.25~1963.2.1), 4대 허철(許哲·1963.2.12~1964.10.20) 씨였다. 시장이 겸직했던 문화원장 시대를 거쳐 5대 (김승제·金承濟)부터 민간인이 원장으로 선출됐다. 김승제씨는 7대까지 연임(1964.10.21~1973.9.10)했고 안익승(安益承·1973.9.11~1979.9.25)씨가 8·9대 원장으로 봉사했다. 10대 홍사일(洪思日·1979.9.26~1983.9.14), 11대 이수영(李秀榮·1983.9.15~1987.9.7), 12·13대 심재덕(沈載德·1987.9.8~1995.6.29), 14대 김종기(金鍾基·1995.9.26~)에 이르는 동안 수원문화원은 명실상부하게 수원지역 문화발전에 이바지했다. 1960년대엔 수원지역 청년·학생들의 모임인 장원회, 난파합창단, 문학동인회 서호림·에뜨랑제 등이 문화원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1980년대부터 ‘수원시사’ 편찬, 월간 ‘수원사랑’ 발간, 서호 및 수원천 살리기, 수원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발족, 한 여름밤의 음악축제, 수원사랑 백일장 등 많은 사업을 펼쳤다. 그런데 2개여월 전부터 원장 권한에 이상이 생겼다. 지난 7월29일 총회를 열어 전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회장으로 선출된 김종기 원장의 후임으로 유병헌(劉秉憲)씨를 15대 원장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법원등기서류에 원장 임기가 올 12월 18일까지로 돼있어 유병헌씨가 직무대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등기서류상의 원장과 행정적인 원장, 그러니까 지금 수원문화원은 원장이 2명인 셈이다. 문화원 내외에서도 묵시하고 있는 모양인데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는 지 걱정스럽다. 만일 임기만료일 이전에 불상사라도 생기면 ‘좋은 일은 내 덕분, 나쁜 일은 네 탓’이라고 서로 원장 책임을 전가할텐데 그런 민망한 일이 생긴다면 뒷모습, 앞모습이 아름답지도 당당하지도 못하다. 문화적인 조치가 속히 있어야겠다./임병호 논설위원

목요칼럼/그래도 희망을 갖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공중의 장소에서 처음으로 담배를 피운 곳이 버스칸 안이었다. 대학 입학식을 앞 둔 그 사이에 더 참지 못하고 어른 흉내를 낸다는 게 고작 그 짓거리였었다. 그 무렵엔 버스 안 같은데서도 담배를 마음대로 피울 수 있었다. 비좁은 틈새에서 담배 연기를 너도 나도 내뿜는 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얌체같은 짓이었지만 그땐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끽연권은 공공연하고 혐연권은 개인 사정이었던 것이다. 기차를 타도 금연칸은 고작 객차 한 칸으로 국한했을 뿐 객차 안에서 담배를 태우기가 예사였다. 금연칸도 잘 봐주어서 내주었던 게 요즘은 기차의 전 객차가 다 금연칸이 됐다. 그렇다고 흡연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기차만이 아니다. 지금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는 아마 십중 팔구는 쫓겨날 것이다. 신문기자가 되고 나서다. 법조출입 시절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더러 밤을 새우기도 하는 취재경쟁에 녹초가 될 때가 있지만 재미 또한 있었다. 재벌급 대기업이 수사 대상에 오르면 기자실에 촌지 보따리를 싸들고 오는 것이 관행화 된 의례였었다. 그렇다고 쓸 걸 안쓰는 것도 아니고 집안살림에 보태는 것도 아니어서 술 마시고 ‘옛다 너도 너도 먹어라’하고 후배들에게 나눠주곤하는 객기를 부리기가 일쑤였지만 아무튼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재벌 대상의 수사는 여전히 많다. 하지만 촌지 보따리를 싸들고 기자실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그런 돈을 바라는 기자도 있을리 없다. 수사 중인 사건으로 촌지란 이름의 돈을 먹었다가는 영락없이 같이 떼 들어가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기업인에게 돈 받는 것 쯤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었다. 요즘 말로 대가성이 있던 없던, 뇌물이든 아니든 간에 정치자금으로 받았다고 하면 더 추궁하지 않았다. 정치인의 ‘정치자금’은 곧 기업인 돈 줄의 ‘면피’ 용어로 이렇게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자금에 영수증이나 합법, 불법이 따로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용서받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영수증을 떼어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불법 정치자금은 꼭 들통나 기업이 상처받고 정치권이 수렁에 빠지곤 한다. 전 같으면 정권과 가까운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으레 노골적으로 봐주던 검찰도 지금은 적어도 엄정 수사의 흔적을 드러내 보인다. 세상이 달라지긴 달라졌다. 아직도 달라진 것 보단 달라지 지 않은 게 더 많고, 달라져도 미흡한 게 많지만 세상이 그래도 적잖게 달라진 것은 맞다. 돌아보면 청수는 흘러가고 자갈만 남는 것처럼, 이민 안가는 사람이 마치 못나 보일만큼 이 사회가 절망의 땅으로 비칠 때가 없지 않긴 하다. 그러나 알고보면 암담한 가운데도 희망의 길로 가고 있다. 그 변화의 걸음 걸이가 비록 느려 답답한 가운데, 이마저 가시밭 길이긴 하여도 이 사회의 향방은 절망이 아닌 희망을 향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가 누구이든 듣기싫은 소릴 해야할 사람에겐 듣기싫은 말도 하고, 심지어 욕 먹을 일에는 욕도 퍼부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계절에 상관없이 사시사철 결식 아동이 늘어가고 수업료를 내지못해 교실에서 쫓겨나기도 한다는 소식은, 타임머신을 타고 춘궁기를 연례 행사로 겪던 신문기자 초년병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전율을 갖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보다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희망은 그냥 다가 오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호미로 밭두렁 김을 매는 이의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하다. 눈으로 바라만 보는 희망은 너무도 멀리 있어 보이지만, 이를 향해 노를 젓는 손은 어느덧 희망에 접근시켜 준다. 세상은 달라져 간다. /임양은 주필

천자춘추/인간존중은 앎에서부터

인간중심 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는 인간은 자기답게 살고자하는 ‘자기실현’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은 신뢰할만하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하고, 주변의 조건이 허용되면 방향을 설정하여 발달하고자 하는 자기실현의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존중, 공감적인 이해, 그리고 솔직성 등과 같은 특정 조건이 제시된다면, 인간은 성장·변화할 수 있다고 한다. 칼 로저스가 말하는 세 가지 조건 중 무조건적 존중에 대해 생각해본다. 무조건 존중이란 상대방을 한 인간으로 존중하며 그의 감정, 사고, 행동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조건적인 존중을 받고 있다. 일단 부모가 원하는 임신이었는지, 원하지 않는 임신이었는지에 따라, 그리고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 조건적 존중이 이루어져왔다. 존재가치가 부인된 청소년의 경우, 참 처절하게 살아가는 걸 상담실에선 많이 본다.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기를 감추고 부모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연연해 하다가 결국 노력해도 잘 안되자 자포자기하듯 자기 인생을 내던진 청소년들을 보게 된다. 또는 그런 부모에 대한 분노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단순히 부모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반항의 삶을 일관하는 청소년도 보았다. 그런 청소년을 상담장에서 만날 때마다 상담자인 나는 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지를 수없이 얘기해주고, 그 아이에게 묻혀있는 존재가치를 문화재 발굴하듯 일깨워주고 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나와의 관계를 편안해 하고, 자신에게 묻힌 상처와 감정들을 꺼내놓고 정화를 시키며, 자신에 대해 진솔하게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상담자로서 나의 보람이요 기쁨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존중하기 힘든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존중할 수 있겠는가? 정말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자신의 준거틀을 배제하고 상대방의 준거틀을 탐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알고 싶어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해 판단, 평가 이전에 상대방에 대해 깊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 /유순덕.경기도청소년종합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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