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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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의 56호 홈런, 아시아 신기록 위업

이승엽 선수(27·삼성)의 시즌 56호 홈런, 이 프로야구 아시아 신기록은 한·일 두 나라 주축의 기록이긴 하나 39년만에 이룬 위업이다. 20여년 연륜의 국내 프로야구가 40여년 전통의 일본 프로야구 대기록을 추월하였다. 지난 2일 밤 대구구장서 가진 프로야구 정규리그 롯데와의 최종전 첫타석 2회말, 마침내 터져 가운데 담장을 장쾌하게 넘기는 120m 솔로 홈런은 55호 홈런 타이기록을 세운지 꼬박 1주일의 침묵을 깬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는 철저한 프로의식의 결실이다. 신기록 달성 염원의 강박 관념에 쫓긴 이승엽 선수는 “잠 자다가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고 그의 부인 이송정씨는 전했다. 남들은 당연히 신기록 홈런을 쳐낼 것으로 믿고 있지만, 막상 당자는 그같은 기대가 크면 클 수록이 온 몸을 짓누르는 부담감으로 시달려야 했다. 이런 가운데 타석에서 보여준 초인적 침착성은 뛰어난 프로 근성을 가졌으므로 인해 가능하였다. 자신의 체격 및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기량이 곧 관중들에게 평가받는 고가 상품이라는 직업의식의 자기관리가 또한 주효한 것이다. 야구를 흔히 개인경기로 보는 것은 개인기록의 가짓 수가 특히 많아 그렇게 여겨질뿐 경기 자체는 다른 단체경기 못지않게 철저한 팀 워크를 이뤄야 하는 경기다. 이승엽 선수의 아시아 신기록 수립은 스포츠의 냉엄한 승부 세계 속에서 경쟁과 화합을 잘 도모한 팀의 단결력으로도 보아진다. 비록 대기록을 내주긴 하였으나 프로 2년차의 롯데 투수 이정민 선수(24)의 배짱있는 투구 또한 평가할만 하다. “자신있게 던진 공에 홈런을 얻어 맞았으므로 미련은 없다”라고 말한 대범함에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홈런 레이스에서 이승엽 선수를 한동안 바짝 추격하며 경합을 벌이다가 53호 홈런에 머문 현대 강타자 심정수 선수(28)는 이면의 공로자다. 대박꿈의 56호 홈런공을 잡기위한 수천·수만명의 뜰채 군단이 전국에서 이동하며 몰린 가운데, 막상 행운의 주인공은 삼성구단 이벤트 대행업체 팀이 차지한 것은 기이하다. 홈런공을 구단에 기증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 삼성라이온즈역사관에 전시되어 누구든 언제나 볼 수 있는 모든 야구팬의 기념비적 홈런공이 될 것을 기대한다. 이승엽 선수의 미래는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이다.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더욱 큰 꿈을 펼치길 바라는 국민적 여망의 정진에 소홀함이 없기를 당부하고자 한다.

최악흉작인데 농림예산 동결이라니

올해 쌀 생산량이 잦은 비와 재배면적 감소 등으로 1980년 이후 23년만에 최저인 3천121만섬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농림부의 대책이 너무 태평스러워 황당하기 짝이 없다. 흉작에도 불구하고 올해 재고쌀 842만섬에다 외국쌀의 최소수입물량(MMA) 143만섬을 올 쌀 생산량에 더할 경우 내년 예상소비량(3천374만섬)보다 730만섬의 여유분이 있어 수급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내 농사가 흉작이어도 수입할 쌀이 있으니까 걱정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쌀 생산량 감소는 농민과 국민 모두에게 물심양면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상대로라면 올해 쌀 생산량은 지난 해에 비해 300만섬이 줄어 든다. 쌀 300만섬이 줄어들 경우 농민들의 수입은 무려 8천700억원이 감소되는 막심한 타격을 입는다. 일반 소비자들 역시 쌀 생산량이 줄어듦으로써 햅쌀 가격이 올라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해야 한다. 여기에 각종 재해 등으로 올해 생산된 쌀의 품질이 떨어져 소비자 만족도도 낮아질 게 분명하다. 쌀 재고 처리로 골머리를 앓았던 정부가 1년만에 쌀 수급대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무시한 농정 탓이다. 앞으로 올해와 같은 대규모(278만섬) 대북지원은 고사하고 농림부가 올초 세웠던 300만섬 특별재고 처리 방향도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더구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국내비상상황을 대비해 비축하도록 요구한 적정재고량(600만섬)을 제외할 경우 가용 쌀은 130만섬에 불과한 실정이다. 태풍이 또 다시 불어 닥치거나 내년에 자연재해가 있을 경우 적정재고쌀마저 풀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사정이 이렇게 급박한데도 정부가 최근 확정한 내년도 농림예산을 올해 예산수준인 8조8천여억원으로 동결하다시피 하고 사업성 예산마저 줄인 것은 벼랑 끝에 몰린 농업·농촌의 위기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행정이다. 지금 농촌은 과다한 부채와 흉작, 태풍피해, 농업협상의 불안감 등으로 삶의 의욕조차 상실하고 있는 중이다. 농민과 농업단체가 요구하는 올해 수매가격의 10여 % 인상과 농림예산 증액은 당연히 관철돼야 한다.

기고/잘난 아들 덕분에…

아침 저녁으로 제법 차게 느껴지는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서늘한 바람의 시작은 추운 겨울의 예고이고 가진것 없는 영세민들의 걱정이 앞서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추워지면 홀로 살아가는 늙으신 어르신들이 힘들어진다. 누구하나 돌보아주는 사람없이 노구를 이끌면서 어렵사리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 말이다. 현재 나날이 증가되고 있는 노령인구에 대하여 정부가 어떻게 대책을 세워 나갈지 걱정스럽다. 늙으신 부모가 고생하며 길러주고 가르쳐 준 자녀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군수로 재임중 관내를 순회하다가 칠순 잔칫집에 들러 축하의 말씀을 드린 일이 있었다. 동리 어른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칠순잔치 하는 분 친구의 부탁을 받았다. 두내외가 늙은 몸을 이끌고 작은 논밭에서 나오는 식량으로 연명하고 있는데, 생활하기 무척 어려우니 군수가 영세민 생활자금을 지원하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왜 우리 공무원들은 이런 딱한 사정의 어려운 분들을 찾아 자발적으로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각종 혜택을 나누어 주지 못하고 있을까 궁금하였다. “어르신, 이장이나 공무원에게 딱한 사정을 말씀해 보신 적 있습니까?” “그럼했지. 그런데 나는 해당이 안된다고 거절했어” “그러면 자녀들이 있습니까?” “아니, 나를 도와주는 자식은 하나도 없어. 주민등록에도 자식이 없어.” 돌아온 즉시 호적등본을 발급받아 보았다. 아들이 셋이나 있었다. 모두 40대였다. 다음날 그 영감을 다시 만났을때 그는 순간 안색이 변하면서 고개를 숙이며 자기 아들들에 대해 실토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젊은날에는 황소를 두마리씩 키우고, 논도 5천여평이나 있어 동리에서 인정하는 부자였지. 내가 배우지 못하여 한글도 못읽는 한을 풀기위해 아들을 위해 소팔고 논팔아 온 정성으로 아들들을 공부시켰어. 큰아들은 우리집 기둥이니 대학까지 가르쳤지. 공부도 잘하고 시골에서 있기가 아까우니 서울로 유학 보내라고 해서 중학교 때부터 부모 곁을 떠나 있었지. 작은아들들은 여기 농촌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어.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소도 없고 땅도 얼마남지 않게 되었고 아들들은 모두 집을 떠났어.” 그 노인의 말은 계속되었다. 큰아들은 하기 어려운 유학시험까지 합격하여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40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부모를 찾아오지 않았단다. 작은 아들들은 모두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설, 추석 명절에 내려오기를 마지못하여, 하루전에 오는것이 아니고 당일 아침 일찍 내려와 아침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먹고 직장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돌아가는 처지라는 것이다. 늙으신 부모의 방은 찢어진 창호지 문에 퀴퀴한 늙은이 냄새가 나고 반찬 없는 식사는 입맛에 안맞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제발 도와 달라는 애원이었다. 어떻게 할까. 우리 주위에는 잘난 자식을 둔 부모님들이 인생 말로를 더욱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종종본다. 공부 많이 시키는 것을 부모의 책임으로 알고 있는것 없는것 모두 팔아 자식에게 다 주고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자식들은 내가 잘나서, 내 능력이 출중해서 지금 누리고 있는 만족은 부모님 은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찬바람이 불어오니 그 영감님 내외분 생각이 난다. 어르신들을 한번 생각 해본다. 뒷동산에 올라 나뭇가지 걷어다 방 불을 피우는 농촌의 어르신들이 늘어날까 걱정이 앞선다. 젊은이들은 너나 할것 없이 도시로 떠나니 혼자 사시는 노인들은 누가 돌볼수 있을지 안타깝다. 왜 세상이 이렇게 변하여 가는 것인지 슬픈 현실이다. /김 선 흥 안양대 생활법률학과 교수

경기천자춘추/편 지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 전에 외국으로 떠나간 친구한테 받았던 편지가 눈에 띄었다. 우표가 붙여져 있고 편지봉투에 자필로 또박또박 적혀있는 나의 이름과 보낸 친구의 주소와 이름! 정성스럽게 펜으로 써내려 간 글씨! 신기해하며 미소를 머금고 읽어 내려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요, 사이버 시대라 한다. 서로 연락할 내용이 있으면 이메일로 보내고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 또는 집이나 직장으로 오는 편지와 우편물은 모두가 인쇄활자로 혹은 컴퓨터로 프린터된 것으로 가득차 있다. 컴퓨터는 급변하게 움직이는 사회에 신속히 적응하고 정확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해주고 필요한 매체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명의 이기가 우리의 마음을 냉랭하게 하고 우리의 사고를 기계적으로 전환시키며 우리 삶의 틀을 공식적인 틀에 맞춘다고 생각하니 답답한 심정이 들때도 있다. 그런데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 누런 종이로 색이 바랜 친필의 편지를 발견하니 귀중한 골동품이라도 발견한 듯 신기해 하며 읽고 또 읽어 본다. 정감이 깃든 이런 편지를 받아 본지 어언 몇 해던가. 그 편지에서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진솔함과 따스한 정감을 얻게 되었다. 편지지를 통해서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고 필체를 통해서 친구의 성격과 행동이 나타나는 듯 했다. 이제는 자필로 쓴 편지를 받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요사이 청소년들에게 자필로 쓴 편지의 낭만을 이야기 하면 구시대의 발상이요, 세대차이 난다고 거리감을 둘지 모른다. 그러나 정감이 서려있는 자기만의 독특한 필체로 써내려 간 편지가 그립다. 사랑과 정이 담긴 그런 편지를 다시 찾고 싶은 것이다. 이 가을에 자필로 편지 쓰기를 모든이에게 권해 보고싶다. 어느 가수가 노래했던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스쳐간 친구에게도 좋고, 그리운 선생님, 고마우신 부모님, 또는 사랑하는 자녀, 아니면 태풍 매미로 상처받은 우리의 형제들에게 사랑이 담긴 위로의 편지를 자필로 써서 보내는 운동을 전개해 봄이 어떨까 제안해 본다. /김 재 경 경민대학 교무부장

독자투고/노후 보장하는 ‘국민연금제도’

부모없는 자식이 없다. 나도 있고 나의 부모님도 있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부모님이 있으나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이 너무나 적어졌다. 시대가 시대이니 부모들도 자식에게 기대려 하지않아 그런 모습들을 허용하는 분위기인 것은 확실하다. 사회가 급변하고, 핵가족화 되면서 지방의 자식들이 고향을 등지는 것도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부모의 힘으로 노후를 보낼 수 없는 어른이 있는데, 그런 어른을 자식이 버리고 사회가 또한번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자식에게 부담이 덜가고 부모도 자식에게 기대지 않을 수 있는 국민연금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항간에는 강제성이 있는 국민연금을 왜 실행하느냐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사상이 무너지고, 사회가 급변하고, 노령인구는 날로 늘고 있어 이 문제를 지금 국가와 국민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참해 해결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국민연금 밖에 없느냐? 내부모는 내가 모신다. 또한 내 노후도 내가 책임진다 하는 의견들도 있지만, 그래서 지금의 우리나라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인문제는 정말로 심각한 수준이다. 사실 국민연금을 실행해 제 궤도에 오르면, 이 사회는 엄청나게 호황을 누릴 수 있다. 매달 지급되는 돈이 다시 사회로 환원될 것이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노인인구는 주로 소비계층이며, 아까울 것이 없는 계층이라 당연히 돈이 원활히 돌아 침체되어 있는 경기가 활성화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것이다.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우선 아쉽고, 이렇게 국민연금이라도 잘 시행돼 가족관이 깨어지는 일은 막았으면 한다. /인터넷독자

벼 익어가는 냄새

한자 ‘향(香)’은 벼 화(禾)자에 날 일(日)자를 하고 있다. 뜻풀이를 하면 ‘벼가 익어가는 냄새’다. 고문(古文)에는 기장(수수와 비슷한 곡류) 서(黍)자 아래 달 감(甘)자를 하고 있다. 기장에 단맛이 나게 하려면 발효를 시킬 때 가능한 일이다. 이 기장으로 빚은 술을 울창주(鬱?酒)라고 한다. 울창주는 신을 내리게 하는 강신주(降神酒)로서 오늘날에도 천제(天祭)나 종묘제례(宗廟祭禮)와 같이 나라 규모의 큰 행사에서 쓰인다. 이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하나가 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향’은 술과 함께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어울림을 이루는 매개체다. 선비들은 차를 마실 때 선향(線香)을 피웠다. 선향은 예로부터 문인들이 즐겨 찾던 향이다. ‘한 줄기의 향’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정신적인 부분이 강조되어 선비들이나 의식을 치르는 곳에서 사용됐다. 집중이 필요한 경우엔 향을 곧바로 피우고,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할 때는 비스듬히 피우기도 했다. 사대부들은 선비가 사는 집을 난형지실(蘭馨之室)이라 불렀다. 또 선비들의 운치 있는 네 가지 일, 즉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고 그림을 걸고 꽃을 찾는 4예(四藝)에 향을 즐기는 행위를 맨 앞에 포함시켰다. 연인들은 사랑을 위해 향을 바르거나 먹기도 했다. 향의 은은함과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중요시 여겼던 이들은 향을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남달랐다. 향을 피우면 눈을 감고 좀 더 섬세한 향의 의미, 향의 흥취에 빠져 들었다. 이런 행위를 일컬어 ‘문향(聞香), 즉 ‘향을 듣는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향을 만드는 재료와 효능도 다양하다. 감송향(甘松香)·단향(檀香)·목향(木香)·안식향(安息香)·용뇌(龍惱)·울향(鬱香)·유향(油香)·육계(肉桂)·침향(沈香)·회향(回香)이 있는데 우리 향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가치 외에도 향기 요법과 같은 실용적인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이틀이 멀게 비가 오고, 태풍 ‘매미’가 참으로 혹독한 시련을 주었어도 바야흐로 논에서 벼 익어가는 냄새가 그윽하다. 올 쌀 생산량이 23년만의 최대 흉작이어서 가슴은 아프지만 그래도 가을은 향기로운 계절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동춘 서커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서커스단 ‘동춘’은 일본 서커스단에서 활동하던 박동춘씨(1970년 작고)가 1925년 창단했다. 30여명으로 출발한 초기 ‘동춘’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서커스 뿐만 아니라 신파극, 춤, 만담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명성을 날렸다. 1950~1960년대엔 단원 250명 규모의 거대 공연단으로 명성을 날렸는데 허장강, 서영춘, 배삼룡, 백금녀, 남철, 남성남 등이 당시‘동춘’의 멤버들이었다. 1962년도에 텔레비전이 생기고 극장 쇼와 영화 등이 발달하면서 ‘동춘’은 쇠락해졌다. 이 과정에서 초대 단장이 별세하고 잠시 그의 아들이 2대 단장을 맡았다가 1975년부터 현 박세환 3대 단장이 ‘동춘’을 이끌고 있지만 관객은 갈수록 줄고 마스코트 코끼리가 혹한을 못 이겨 숨을 거두었는가 하면, 태풍으로 무대와 장비가 몽땅 떠내려가기도 했다. 천막무대이긴 하지만 다행히 지난 3월 부천시 중동에 상설공연장을 마련했고 더욱이 오는 2005년 4월엔 부천시의 도움으로 현 공연장 자리에 1천800석 규모의 전용공연장이 완공될 예정이다. 이 곳엔 단원들의 숙소는 물론 인재 양성을 위한 서커스아카데미도 들어선다. 상설공연장과 아카데미가 완공되면 떠돌이 생활은 일단 끝이다. ‘동춘’이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6월 평양교예단의 서울 공연을 보고 나서다. 오랜 전통만을 믿고 별 다른 기술 개발없이 고정 레퍼토리에 집착하던 ‘동춘’에 평양교예단의 공연은 그야말로 가슴 아픈 충격이었다. 서커스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게 사회적 무관심 탓으로 돌렸던 일이 후회스러웠다. 박세환 단장은 바로 중국으로 가서 대륙 곳곳을 헤매며 150여개 중국 잡기단(서커스단)과 접촉하며 그들의 기술을 탐색했고 국내에 초청, 합동공연을 수차례 가졌다. ‘동춘’ 단원들은 여기에서 그들의 신기에 가까운 기예를 커닝하듯 익혀왔고 박 단장은 공연·연습 장면을 ‘X파일’에 구축했다. 어릿광대와 구슬픈 색소폰 소리, 진한 화장과 애처로운 표정의 소녀 곡예사 줄타기 등으로 삶에 지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서커스의 부활’을 ‘동춘’에서 다시 봤으면 좋겠다./임병호 논설위원

기고/내가 보는 한국 사람

나는 교류공무원으로 올해 2월에 한국에 와서 이미 7개월이 되었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났다. 한국 땅의 깨끗한 물과 공기, 다정한 한국 사람들은 나에게 아름다운 인상을 남기게 하였다. 한국사람들은 정이 많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을 존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한다. 버스에서 노인이 올라타면 젊은이는 곧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하고 지하철은 각 칸 양측에 노약자 좌석을 설치하고 있어 지하철 안이 아무리 붐벼도 젊은이들은 자발적으로 그 좌석에 앉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효 사상을 아주 중요시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어버이날이 있고 내가 머물고 있는 수원시에는 효 문화축제도 있다. 부모님의 말씀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TV드라마에서는 부모님이 반대하시면 두 사람이 아무리 사랑해도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도 많이 보았다. 한국사람의 자원절약 의식과 환경보호의식은 생활 속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중국에서도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한국처럼 이렇게 세분하지는 않아 처음 쓰레기를 분리해 버릴 때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많이 당황했었다. 조금은 번거롭다고 느끼지만 사람들이 다 잘 지키고 있다. 한국식당에 가면 나무로 만든 이쑤시개를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이쑤시개를 나무로 만들었지만 환경보호기관이 이에 대해 자원의 낭비뿐만 아니라 환경오염도 된다는 판단 하에 감자전분이나 찹쌀로 이쑤시개를 연구, 개발해 이를 전국에 널리 보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회용 수저, 일회용 세면도구 등도 이제는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한국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자원절약 의식과 환경보호 의식은 아주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는 한국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생활하고 최선을 다 하는 사람들이다.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게한 사람들중의 하나가 에버랜드 직원들이다. 내가 에버랜드에 간 날은 날씨가 아주 덥고 사람들도 아주 많았다. 공원에서는 미소를 짓고 특유의 손짓으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이런 미소와 열정에 찬 손짓은 공원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하룻동안 마음껏 논 후 덥고 피곤하여 이야기할 힘도 없었지만 우리보다도 더 피곤할 것 같은 직원들은 여전히 아침과 똑같은 미소와 똑같은 열정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순간 나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위가 있다. 그들은 무엇으로 발전했는가?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한다는 정신이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직장동료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근무하는 국제통상과의 직원은 30여명이나 된다. 나는 이런 큰 사무실에서 일을 한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이 근무하면 얼마나 시끄러울까 생각했는데 시끄러움은 전혀 없고 아주 조용하며 모두다 업무에 몰두하고 있다. 업무가 많을 때는 누구나 자발적으로 연장근무를 한다. 그래서 밤 10시 전이나 주말에도 사무실에는 항상 일하는 직원을 볼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이웃나라이다. 예부터 중국과 한국 양국은 교류를 많이 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양국가는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여 동아시아 경제발전과 사회진보를 추진하는 큰 역할을 담당하리라 믿는다. 나 개인적으로는 힘이 작지만 이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 /관향군.중국 산동성 경기도파견 공무원

천자춘추/정보화 시대의 국제미아

30여년 전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 헤드는 “박식하기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만든 가장 쓸모없고 귀찮은 존재”라고 말했다. 이제 많이 안다는 것은 컴퓨터의 몫이 되었고, 사람은 컴퓨터를 이용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 이 정보를 종합하고 활용해서 새롭고 생산적인 정보를 다시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정보화는 이제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되었다. 이렇게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 몇가지 국가생존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고 본다. 첫째, 정보화 사회로 가기위해 구축되고 있는 정보시스템 산업의 국내 자족 능력이다. 현재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있는 시스템의 대부분은 수입의존도가 높다. 국가 정보화사업에 따라 국내 시스템산업도 공존하며 발전해야 하는데 많은 부분의 정보화 시스템은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일부 국내장비조차도 부품 해외 의존도가 높은 실정이다. 정보화 욕구와 함께 시스템산업 부품산업 등의 균형있는 발전이 국가적으로 고려돼야 된다. 둘째, 우리가 세계에 보여줄 정보구축이다. 정보망을 통해 많은 것들을 국경을 초월해 얻고있지만, 정보망을 통해 우리의 것을 다른 세계에 소개할 내용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 보아야겠다. 우리가 보여줄 것보다 얻어 오는 것이 더 많이 있다면 미래에 국가생존 자생력이 얼마나 남아있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정보화 구축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정보수단을 통해 우리의 것을 세계를 향해 전해줄 내용 사업에 전력을 기울여야 된다. 셋째, 정보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정보화를 이용한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인류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지금은 정보화 사회로 가고있고, 정보화의 꿈인 가상사회가 구축되고 있다. 그러나 미래학자들은 가상시대는 매우 비인간적이라서 생명력이 짧게 유지되고 미래에는 문화의 시대가 전개될것을 예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것들을 지키고 계승 발전시켜 우리의 문화를 정보망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릴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사업에도 많은 관심이 있어야겠다. 위에서 지적한 문제에 대한 심각한 인식과 구체적인 방안의 준비없이 정보화의 빛만 보고 가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국가의 자주성·주체성은 없어지고, 국가 산업도 문화도 민족정신도 국제미아가 되어 버리는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질 것이다. /김재평.대림대학 전자정보통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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