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사랑

조선왕조 왕세자 교육의 특이점은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이다. ‘딸은 어머니가, 아들은 아버지가 가르친다’는 유교이념에 따라 부왕(父王)이 교과목을 정하는 일부터 교사진 선정, 수업시간 조정에까지 개입했다. 때로 신하들과 학부모인 부왕이 교육방식을 두고 대립하는 일도 있었다. 핵심 교과목은 유교경전과 역사지만 평소 생활을 통한 덕성교육, 예체능교육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강조되는 덕목은 효(孝)였다. 왕세자는 아침 저녁 국왕의 수라상을 살피는 ‘시선(視膳)’과 부모의 약을 먼저 맛보는 ‘시탕(侍湯)’을 해야 했다. 군 통수권자로서 활쏘기, 말타기, 사냥 등에도 일정 정도 이상을 연마했다. 자신의 몸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도 장래 왕이 익혀야할 중요 덕목이었다. 왕세자가 편식하거나 비만해지면 이를 관리하지 못한 내시들이 문책 당했다. 특히 아침을 거르면 학습 진도가 떨어진다 해서 내시들이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조선조 왕세자교육 코스의 단연 우등생은 제22대 정조(正祖)였다. 정조는 돌 지나면서부터 붓과 먹을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원손(元孫·훗날의 정조)이 네 살 되던 해 영조(英祖)는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 원손을 불러 앉히고는 글을 읽고 글자를 써보이게 했다. ‘신체발부수지부모불감(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을 막힘 없이 외운 원손이 ‘부모’ 두 글자까지 크게 써보이자 영조는 “하늘이 우리나라에 복을 주시려고…”라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원손이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우던 여섯살 무렵 영조는 원손의 스승 남유용을 불러 호피 한벌을 내리면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지금 경에게 이것을 주는 것은 원손을 위해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은 엄한 스승이 돼라’는 뜻이다. 경을 포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종묘사직을 위한 것이다.” 수원의 ‘화성(華城)’을 축성한 정조는 184권짜리 개인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썼다. 정조의 제왕적·학문적 성취 뒤에는 손주를 위해 손수 ‘어제조훈(御製祖訓)’이라는 교재까지 만들며 뒷바라지 했던 할아버지 영조가 있었다. 본받을만한 손주 사랑이다. ‘홍재’는 정조대왕의 아호다./임병호 논설위원

기고/한국 경제의 블랙홀 '실업문제'

최근 우리 산업현장에서는 비자발적 실업이 문제가 아니라, 자발적 실업이 큰 부분을 존재한다는 것이 심각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일자리는 무수히 있고, 고교 혹은 전문대 및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을 찾고 있는 기업체들이 즐비하고, 지금 전국 각지에서 인력채용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인력뱅크, 취업알선센터, 각종 정보망 그것도 부족해 대규모 채용박람회 등을 통해 사람을 찾고 있는 기업이 훨씬 많은데 일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특히 구인자들은 빠짐없이 참석하여 면접을 보려고 하고 있으나, 정작 구직자들은 태부족이고 아예 잘 나오지도 않으며, 어렵사리 만나 면접을 마치고 다음날 회사에 나오기로 약속해 놓고도 막상 그날이 오면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 구인기업들을 실망시키는 사례도 매우 많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체 수출의 대부분을 제조업이 담당하고 있고, 국부의 대부분을 제조업에서 지탱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대안을 제시해보면, 첫째, 공업계고교에 대한 배려와 그 졸업생(전국 318개교 약 12만명) 및 전문대학(전국 21만명)의 산업계와의 효과적인 연계작업이다. 둘째, 생산현장의 인력부분에서의 극심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현상으로 제조업 현장이 아사상태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여건 및 수요에 맞게 해외산업 연수생 인력을 대폭 확대 공급해야 한다. 셋째, 보다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규모의 편견과 오류”를 불식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소기업은 약하고 불안하고 평생 직장으로 삼을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오해와 편견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산업시찰 기회 확대, 방학을 활용한 중소기업 체험활동(중활) 전개,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및 해외신시장 개척 사례 등에 대한 공중파 방송 및 신문지상을 통한 소개 및 무료 홍보 시간의 확대 등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3%를 점하게 된 중소기업의 역할과 위상은 날로 커져가고 있는데, 정작 그 생산·수출의 현장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 사람이 없는 현장에 기술이 꽃 필 수 있겠는가? 우리는 결코 여기에 머무를 수는 없다.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아가야 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노력하면 2만불시대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울러 요즘,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청년실업과 중소기업 인력부족이 함께 발생하는 것은 중소기업 일자리가 청년층에게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소기업의 낮은 보상수준 및 복리후생, 열악한 작업환경 등은 청년인력 유입을 위축시키는 한편, 청년층도 능력보다 높은 취업 눈높이로 인해 청년인력이 중소기업에 유입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은 구조조정으로 인해 신규채용 수요가 감소하고 경력직 선호경향이 심화됨에 따라 전체 실업자의 53%(42만명)를 차지하고 청년실업률, 즉 청년층을 위한 일자리는 중소기업에 의해 창출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청년 인력의 중소기업 취업 확대를 위해서는 청년층에게 재학중 중소기업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중소기업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여 취업 눈높이를 현실화하는 한편, 중소기업의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생산현장 직무 기피 요인 해소 사업을 중점 추진하고 중소기업 재직자에 대한 세제지원, 복리후생 투자 지원 등을 통해 근무여건을 개선하여 청년 미 취업자 유입을 유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신현태.국회의원

천자춘추/송두율교수의 귀국을 에워싸고

독일국적의 송교수가 귀국한다고 하니 한바탕 난리다. 송교수가 독일에서 37년만에 귀국하니 본인으로서 감개가 무량하지만 정부쪽에서는 죽을 맛인 모양이다. 더구나 정보책임자는 송교수를 북한노동당서열 23위인 김철수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정보를 흘리면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매미태풍이 강타하는 바람에 전국이 발칵 뒤집어 졌는데 송교수는 왜 이때 꼭 들어와야만 하는가. 송교수는 그동안 북한에 10여차례가 갔다왔다 하면서 북한체제에 대하여 비판한번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반면 남한체제에 대하여 말끝마다 흠집내기를 일삼은 자다. 물론 우리체제가 당시 유신체제로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니까 송교수가 학자적 양심으로 비난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북한체제 역시 유신체제 못지 않게 봉건왕조세습체제인데 이 점에 대하여 입 닫고 나몰라라 하면서 북한에 10여차례 들락날락하는 것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유신체제가 못마땅하다면 김씨왕조 체제는 더 말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학자라면 양비론입장에서 남북체제를 균등하게 비판하여야 하지 않은가. 국내에서 체제비판으로 구금까지 당한 반독재 투쟁인사들이야 세월이 바뀌었으니 민주인사로 미화될 수 있지만, 해외에서 몇 번 비판하였다고 갑자기 민주인사로 칭송받은 것은 슬픈 해프닝일 뿐이다. 더구나 송교수는 독일국적을 취득하여 독일인이 된 마당에 왜 남한에 들어올려고 기를 쓰고 있는가. 더구나 귀국시 스승을 대동한다고 떠벌이거나 독일대사관 직원이 마중하도록 하는 꼴을 보면 송교수는 학자이기전에 사대주의에 젖은 정치인의 몸짓부터 먼저 배운 것이 아닌가. 철학자는 철학자다워야 한다. 학자적 양심에 한줌 부끄러운점이 없다면 조용히 귀국하였다가 조용히 출국하는 것이 학자 본연의 자세가 아닌가. 대한민국은 언제쯤 좀 조용해질 것인가. /강창웅.수원지방 변호사회장

독자투고/가을철 등산객 안전사고에 유념

고봉이 산재하고 유명등산코스가 많은 산악지역의 치안을 책임지다보면 이외로 예상치 못한 인명사고가 빈발하여 여름은 물론 가을철 등반 행락객의 안전의식이 각별히 요망된다. 얼마 전 여름 폭우 시에도 안전을 경시한 방심과 모험심으로 아까운 인명을 잃은 것은 물론 봄, 가을철의 산나물을 뜯는 등산객의 경우 인적이 드문 산길로 홀로 등반하다 실종되는 경우가 잦아 올 가을에도 산악조난사고가 우려된다. 또한 우리사회의 잘못된 보신문화의 성행으로 근교의 깊은 산중에는 야생동물을 밀렵하기 위한 덫과 올가미가 지뢰처럼 설치되어 있어 등산객에 의해서 올가미에 걸린 노루 등 야생동물이 신고되는가 하면 가을이나 겨울에는 낙엽과 눈 위를 걷다 덫에 다친 등산객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변화가 심한 산악날씨도 그렇거니와 등산은 절대 자만심으로 즐길 대상도 아니며 자신의 체력을 넘는 무리한 산행이나 단체에서 이탈하는 개인행동도 위험천만이다. 등반 시는 필히 대열과 함께 등반토록 주지시킬 것이며 항상 중간 중간에 인원을 확인하고 충분한 휴식이 필요할 줄 안다. 출발 전에 관할 파출소로 날씨나 교통여건 등을 확인하는 신중한 주의도 요망되며 핸드폰 등 연락수단을 휴대하여 응급환자의 신고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등반중의 음주행위는 실족 및 심장마비의 사고를 초래할 위험이 많다는 것도 유념하기 바란다. /송석진·가평경찰서 북부순찰지구대장

신용불량정보가 前科기록인가

각 금융기관들이 최장 2년간만 보관해야 하는 개인 신용불량 정보를 기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적합지 못하다. 한시적인 금융신용불량이 영구적인 전과기록처럼 남으면 안된다. 현재 은행연합회의 신용정보관리규약은 신용불량자가 신용불량 등록일로부터 90일 이내에 모든 빚을 갚으면 신용불량정보가 즉시 삭제토록 돼 있다. 또 신용불량 등록일부터 1년 이내에 갚으면 신용불량 정보는 빚을 갚은 날로부터 1년 동안, 1년이 지난 후 갚으면 2년간 보존된다. 예컨대 A금융기관이 연체자의 신용불량 기록을 삭제하면 3 ~ 4일 후 은행연합회의 종합신용불량정보에 반영되며 이후 다른 금융기관에 등록된 신용불량 기록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각 금융기관들은 연합회 전산망에서 삭제된 신용불량 해제자들을 신용도에 따라 신용불량 해제, 요주의 거래대상. 거래금지 대상 등으로 계속 정보를 보존, 금융기관 이용을 가로 막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신용불량 해제자들은 다른 금융기관에서 새카드 발급신청을 해도 거절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연체금을 갚은 지 3개월이 지났어도 거래정지코드가 나오기 때문이다. 또 5개월간 연체된 은행 대출금을 청산한 경우, 빚을 갚은 뒤 1년이 경과했어도 대출을 받지 못한다. 은행연합회 자료를 보면 금융기관에서 사실상 신용불량자로 간주하는 신용불량 해제 후 기록보존자와 특수기록정보 등록자가 지난 7월말 현재 25만9천216명에 달한다. 또 개인워크아웃 적용이나 화의절차 개시 등으로 신용불량에서 벗어나 특수기록정보로 등록된 인원이 4천31명, 여기에다 7월말 금융기관에 대출금과 카드 대금 연체 등으로 신용불량에 등록된 인원 334만6천270명을 합하면 사실상 신용불량자는 360만명이 넘는다. 이중 100만원 미만 연체의 ‘소액’ 신용불량자는 35만6천명이다. 신용불량 책임은 물론 각 개인이 져야 한다. 하지만 신용불량 해제자를 지나치게 제재하는 것은 다른 신용불량자들의 상환 의지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사회안정과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소액 연체로 인한 신용불량자들은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신용불량 해제자 기록 삭제와 일률적인 신용불량자 등록 및 관리제 폐지 검토가 재삼 요구된다.

시장·군수들 환경의식이 걱정된다

무분별한 도시개발·건축허가 남발은 민선자치 이후 나타난 두드러진 시·군 행정의 병폐 중 하나로 꼽힌다. 예컨대 멀쩡한 야산을 절개지가 참혹하게 드러나도록 깎아 만든 산등성 터에 집단 호화주택을 짓는 사례를 여기 저기서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다. 도대체 저런 곳에 어떻게 토지 형질변경 허가가 나고 건축허가가 날 수 있는것인 지, 시장·군수의 허가 경위가 석연치 않은 생태계 파괴가 심화되고 있다. 가뜩이나 이런 가운데 취락지구 개발계획 확정 전에 내준 무더기 건축허가, 녹지축 단절 투성이의 근래 보도는 생태계 관련의 시장·군수들 인식에 위기감을 갖게한다. 평택시 등 16개 시·군이 314개지구 4천991만㎡의 취락지구에 개발계획도 서기 전에 건축허가를 내준 것은 주택도 있지만 환경 오염의 요인이 되는 숙박시설이나 음식점 등이 태반이다. 이는 취락지구 지정의 의의에 합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시장·군수들 스스로가 난개발을 부추기는 짓이다. 이토록 우정 개발계획이 나기 전에 건축허가를 신청하고 굳이 또 허가해주는 것은 대개의 경우 개발계획이 확정되면 건축허가가 나기 어렵기 때문임을 짐작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허가 경위에 심히 의혹을 떨치기가 어렵다. 주 광역축·부 광역축·소규모 축 등 도내에 모두 136곳의 녹지축이 단절된 것은 한마디로 생태계의 단절이다. 생태계 교류가 이토록 파괴되어서는 자연환경이 온전치 못하고 마침내는 인간 생활에까지 재앙을 가져온다. 이엔 고속도로 같은 국책사업으로 인한 단절도 있지만 대부분이 분별없는 도시개발에 기인한 점은 시장·군수의 책임이 크다. 경기도가 뒤늦게나마 관련 조례를 제정, 체계적인 관리계획을 세워 야생동물 등의 이동연결통로 등을 설치하여 생태계를 복원하고 국책사업으로 인한 생태계 복원사업은 국비를 요청키로 한 건 무척 다행이다. 도가 눈에 잘 띄지 않고 성과가 선뜻 드러나지도 않은 생태계 사업에 이처럼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참으로 평가할만 하다. 문제는 앞으로 시장·군수들의 책임의식 여하에 있다. 후대를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자연환경이나 생태계 파괴를 일삼아선 죄업이 된다는 인식을 새롭게 가져야 한다. 막중한 인·허가권을 가진 게 능사가 아니다. 이의 행사를 잘 해야 능사인 것이다.

수리산

안양·군포·안산·시흥시가 경계로 삼는 수리산(修理山)은 높이가 475m로 일명 견불산(見佛山)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안산군(安山郡)의 명산으로 봉우리가 매우 빼어났으며 산곡이 깊었다. 북쪽으로 안양시, 동남쪽으로 군포시, 서쪽으로 안산시와 접하고 있어 수도권 관광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산이다. 산의 북쪽 골짜기에 있는 안양동의 작은 산촌 담뱃골은 조선 후기 헌종이 천주교를 박해하던 기해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들어와 담배를 재배하며 살던 곳이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들 중 이 땅의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의 가족들이 겪은 수난은 매우 처참하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당고개에서 죽음을 당했는데 최양업의 어머니 주검은 못 찾고 아버지 최경환의 주검만을 거두어 수리산 골짜기에 묻었다. 그 무덤자리는 지금도 남아 있어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이 수리산이 오늘날은 수도권 남부의 각종 도로 계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존의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동서로 산을 관통했고, 남북으로 산을 뚫을 수원~광명간 고속도로가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다 또 건설교통부가 새로운 국도대체 우회도로를 설계 중이어서 산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될 위기에 처했다. 수리산에는 이미 서울외곽순환 고속도로 중 1천886m의 수리터널과 1천254m의 수암터널이 뚫려 있다. 게다가 올해 1월 수원~광명 간 수도권 서부고속도로 민자사업 승인신청서가 건교부에 제출된 상태다. 이 도로에는 148 ~ 500m의 짧은 터널 3개와 1천540m의 터널 1개, 그리고 3 ~ 4개의 고가교량이 개설돼 수리산을 종단할 계획이다. 도로계획이 모두 진행될 경우 수리산 자락을 통과하는 터널이 8개나 된다. 고속도로가 수리산과 의왕시 초평동 일대 1.7km 구간을 통과하게 되면 인근 구봉산, 생태계의 보고인 왕송저수지의 환경 파괴는 물론 마을이 분리되는 등 피해가 크다. ‘수리(修理)’라는 산명(山名)도 예사롭지 않은 터에 산자락에 도로터널만 8개가 된다면 각종 문화재와 녹지 훼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설 속의 산신령이 계시다면 아마 대로할 것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니까 노선은 당연히 변경돼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목요칼럼/누가 배신자냐?

배신인가, 아닌가? 민주당 간판을 달고 당선됐으면서 달고 나온 그 간판을 헌 신짝 버리듯이 버렸다. 이 당에서 저 당으로 옮기기만 해도 변절자라고 한다. 다른 당으로 옮기는 것도 아니고 몸 담았던 당을 박살 내가며 당을 새로 만들었다. 당선의 꿀 물까지 마셨다. 볼 일을 다 보고서는 그 우물이 더럽다며 침을 뱉고 새 우물을 판다. 누가 배신자일까? 민주당(잔류파)은 통합신당을 가리켜 당선의 몰표에 은공을 모르는 배신자로 규정하고, 통합신당(탈당파)은 국민적 여망의 개혁 참여를 외면한 수구집단의 배신이라고 민주당을 욕한다. 권모술수가 갈수록 능하고 타락이 심화할 수록이 더 화려해지는 것이 정치판의 말 재주다. 말 만은 꾀가 조조라던 옛날의 조조(曹操) 뺨치게 잘들한다. 둘러대는 화술이 너무 단수가 높아 듣는 이들을 더러 헷갈리게 만든다. 배신자는 과연 누구인가? 로마 황제를 노린 케사르를 원로원에서 급습해 척살한 두 주모자 중 카시우스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브루투스는 공화정 회복을 위해 케사르의 총애를 배신했다. 추악한 배신이 있는가 하면 배신의 미학도 있다. 서로가 배신자라고 우기는 것은 책임을 서로 미루는 주술적 행위다. 그 보다는 배신을 솔직히 시인하는 용기가 배신의 미학으로 보일 수 있을터인 데도 배신의 추악한 면모만 보인다. 어차피 민주당의 신·구주류는 물과 기름이다. 개혁신당이냐, 통합신당이냐, (민주당의) 리모델링이냐 하는 지루한 기세싸움은 분당의 수순이었다. 다만 서로가 배신자 소릴 듣지않기 위해 상대가 먼저 떠나주길 속으로 바랐을 뿐이다. 결국 (당무회의의) 난투극 시리즈 끝에 신주류가 탈당하고만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시일이 촉발했던 탓이다. 하지만 신주류가 탈당을 이토록 늦춘 게 나름대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호남에서 막상 어떻게 받아 들일 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대선에서 95% 이상 지지해준 인심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 한 것으로 해석되는 노력은 보인 셈이다. 배신이 아니라는 강변이 이래서 나올법도 하다. 또 대통령 당선이 오목눈이 같은 남의 새 둥지에 알을 부화하는 뻐꾸기처럼 보이지 않으려한 객관적 노력도 성립된다. 과연 누가 배신한 것일까? 기왕지사 이렇게 된 마당에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당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코미디다. 민주당원 대통령이라고 하여 당을 배신하고 안하고 하는 문제와 연관되진 않는다. 민주당을 탈당해도 통합신당엔 안들어갈 것이라는 것도 쇼다. 신당의 원내 열세를 내년 총선에서 만회하려는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신당행으로 발표된 이재정, 박양수, 이미경, 허운나, 조배숙, 오영식, 김기재 등 민주당 전국구 의원들이 의원직 상실이 두려워 탈당하지 못하는 것은 신당이 내세우는 참신한 정치개혁에 어긋난다. 신당의 이미지를 출발 선상에서부터 흐리게 한다. 정치개혁도 당연하고 지역구도 타파도 당연하다. 그러나 입으로 하는 정치개혁, 지역구도 타파는 누구라 할 것없이 그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벌여 왔다. 이제 이를 능란한 화술로 포장한다고 하여 민중의 귀에 곧이 곧대로 들리긴 어렵다. 민주당(잔류파)은 과연 DJ 등뒤에 숨어 의원직 탐닉을 노리는 불한당 같은 사람들인 지, 그리고 통합신당(탈당파)은 은혜를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들인 지, 아닌 지 하는 판정은 여기선 유보한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이 잘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 누가 배신한 것일까? 이는 분당을 자초한 민주당이나 통합신당이 앞으로 하기에 달려 평가된다. 번드레한 말 잔치로는 안된다. 속과 겉이 다르지 않아 민중을 감동 시킬 수 있는 용기있는 실천만이 민중의 지지를 받는다. 어느 쪽이 추악한 배신인 지, 배신의 미학인 지는 내년(4월) 총선민심이 판가름 한다. /임양은 주필

천자춘추/공모

문화예술 지원단체에서는 크고 작은 공모를 한다. 문화예술인들의 창작과 연구, 그리고 교육 의욕을 북돋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공모에 접수된 제안 사업 내용을 보면, 시대정신과 작가정신 또는 철학과 미학을 읽어내기가 쉽지않다. 무엇을 왜, 어떻게 하려는 지가 선명하지 않다. 문화예술 지원정책은 이미 바뀌고 있다. 예술 또는 예술인을 위한 지원정책에서, 예술 또는 예술인을 통한 건강한 시민 문화예술 육성으로 지원 방향이 서서히 전환되고 있다. 시민들은 문화예술인들이 공급하는 문화예술품을 감상하며, 향수하는데 머무르기를 원치않고 있다. 스스로의 삶을 의미있고 풍요롭게 하기위해, 더 많은 문화예술적 소양과 기량을 갖추기를 원하고 있다. 나아가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뜻있게 창조하는데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가 일반화되기 이전이라 지금은 이같은 욕구가 다음세대의 교육문화환경 개선과 지역사회 주민문화 생성으로 부분 분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문화예술인 가운데에는 예지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을 먼저 느끼고, 변화의 조짐을 먼저 읽는다.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고, 다양한 정보와 문화를 접하며, 나름대로의 식견과 가치지향을 뚜렷이 하여가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새롭게 자각하며, 새로운 출발을 예비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중요한 동력 하나를 소진하고 말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이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고 보다 나은 창작과 연구, 그리고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문화의 담지자인 문화예술인들이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이끌어내며, 다시금 대중의 미적 대리자, 대중의 교사로 나서야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정신, 학자정신을 또렷이 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공공선(公共善)과 공공미(公共美)를 지향하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왜, 어떻게 하려는지를 늘 안으로 되물어야 할 것이다. /양원모.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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