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화를 알면 삶이 풍요롭다

우리나라의 위암과 교통사고 사망률은 세계에서 불명예스럽게도 1위라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우리처럼 오래 사는 것을 최대의 복(福)으로 생각하는 민족이 암(癌)에 걸리고 차에 치여 죽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문화는 삶의 질과 폭을 넓혀준다. 우선 우리의 현실이 항상 북한의 ‘전면전’ 도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을 환상(幻想)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가치 관념이나 의식이 지나치게 물신(物神)주의에 병들어 있고, 거짓 아닌 위선을 도덕이라고 생각하는 ‘체면’과 ‘겉치레’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삶의 위상에 보다 진솔하게 가까이 가는 자세가 없고, 숨쉬며 느끼고 생각하고 즐기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명적 사고도 없다. 원시시대는 배고프면 먹는 것이 문화였고, 그 다음시대는 하루세끼 먹는 것이 습관이고 문화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같은 음식이라도 좋은 곳에서, 맛있는 것을, 좋은 음악을 들어가며 먹는 것이 좋다. 말하자면 이 ‘좋은 곳’, ‘맛있는 것’, ‘좋은 음악’이 먹는 것과 어우러지는 문화의 시대이다. 지금은 분명히 ‘문화시대’에 와 있으나 실제 우리의 사고나 습관은 배고파서 뚝딱 먹어치우는 물질주의, 성급주의가 여전히 판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문화를 모른다는 것은 “먹고사는데 문화가 무슨 상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가 당장 먹고사는 일과 관계가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꿈꾸지 않고 사는 재주가 있는가. 웃지 않고, 울지 않고, 감동하지 않고 살수가 있겠는가. 옛 사람도 살았고, 우리처럼 비슷하게 생겼고, 그 사람이 우리의 할아버지였다는 확신과 그 느낌을, 문화와 예술이 아니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잘 입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중요한게 아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감동할 줄을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끝이요, 돈이 많아도 꿈꿀 줄 모르면 그 쾌락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이야 말로 삶의 질이 중요한 때이다. 보다 즐겁게, 보다 좋은 환경에서, 보다 좋은 기분으로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말을 바꾸면 보다 문화적인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문학이나 예술, 문화 문제는 항상 뒷전이라는 느낌이 든다. ‘문화를 모르면 밥 먹은 입에 암이 생긴다.’ 위암과 교통사고는 공통분모가 있다. 문화 부재와 조급성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문화란 눈앞의 일과 관련이 없는 듯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이다. 너무 눈앞의 일에만 관심을 두면 문화가 안 보인다. 눈을 감지 않으면 꿈을 꿀 수 없듯이, 눈앞의 일만이 세상살이라고 생각하면 늘 조급해진다. 문화는 원래 “땅파고 가꾸는 일 (cultura = cultivo)”이라는 말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하늘을 보고 땅파는 마음’을 모르면 ‘문명과 돈은 곧 암’이 된다는 것이다. 외부의 환경 보호만 시급한게 아니라 마음의 환경보호, 마음의 생명 중심적 사고도 중요하다. ‘삶의 진실성을 한순간이라도 망각하면 그 입에 곰팡이가 슨다.’ 예술이나 글은 그 원시적인 삶의 땀과 향기, 그 즐거움을 가장 원형에 가깝게 기억하고 있는 음식들이다. 문화인은 두 곳에서 먹을 것을 얻는다. 그 한곳은 자연, 다른 한곳은 문화이다. 얼마 전부터 ‘신바람’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그 ‘바람’은 몸(자연)과 생활의 절주(節奏)가 맞닿는 곳, 즉 좋은 음식(자연)에 좋은 분위기(문화)가 있어야 가능하다. 예술에 취하지 않고 글에 반하지 않는 사람은 돈이 천금이라도, 늘 죽음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인이 되어 문화와 함께 사는 것이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이라 여겨진다. /김종구.경기도율곡교육연수원 예절분원장

천자춘추/통상전쟁과 우리의 선택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이 열렸던 멕시코 칸쿤에서 들려오는 농업시장 개방 압력과 우리 농민의 할복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소리없는 통상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국제경제에 있어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지구촌을 감싸고 있는 큰 흐름은 세계경제의 블록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이 지난 상반기까지 상호간에 체결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관세동맹, 서비스 협정 등 지역별 경제협정은 총 184개에 이르는데 이중 119개가 95년 이후 체결된 것이다. 또 WTO는 2005년말경 약 300개의 FTA가 발효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국의 대외경제적 이익을 선점하기 위한 전쟁에 다를 바 없다. 우선 2004년 5월이면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인 유럽연합(EU)이 회원국 수 25개국, 인구 4억 5천만명의 대규모 단일 경제권으로 새 모습을 드러낸다. 수년내에 세계에는 대륙 차원의 거대한 무역블록으로 EU와 범미주 34개국의 FTA가 출현할 예정이며 타 대륙간 FTA에 EU뿐 아니라 싱가포르, 인도, 태국, 미국, 멕시코, 칠레 등이 적극 나서고 있고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의 FTA 체결을 위해 중국, 일본, 미국, 인도 등이 경쟁을 하고 있다. 세계각국이 이처럼 FTA 체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FTA가 창출하는 무역확대효과 때문이다. FTA를 체결한 국가 및 지역간에는 관세면제 등으로 시장이 하나가 되는 효과가 있고 국가간 투자도 활발해져 산업발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물론 반대급부도 적지않아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상대국에 잠식되어 피해를 입게 되는 부작용도 있다. 세계가 FTA 열기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칠레와의 FTA 체결을 통해 FTA 흐름에 편승을 시도하고 있는 정도인데 그나마 국회 비준이 나지 않아 발효가 늦어지고 있다. 이는 FTA의 부작용에 대한 노심초사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은 선택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없다면 우선 어떤 토끼부터 먼저 잡을지 선택해야 한다. 조선말 개화냐 쇄국이냐를 놓고, 또 60-70년대 경제성장기에 불균형성장이냐 균형성장이냐를 놓고 입씨름하던 때를 회상해 보면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성철.한국무역협회 경기지부장

9월 16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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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대처 시스템 이상 없나

영남지방을 강타한 14호 태풍 ‘매미’는 추석전 수일부터 각종 언론을 통하여 수차례 예고됐다. 물론 이번 태풍이 기상관측 이래 가장 강한 바람을 동반한 것이므로 철저한 준비를 해도 어느 정도의 피해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마산 등 일부지역에서 일어난 피해를 보면 과연 이번 태풍에 대한 피해를 중앙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적절하게 대처하였는지 의문을 제기치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문은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태풍이 몰아친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해당 관서에서 주민대피 등을 사전에 충분히 예고하고, 또한 관계 공무원들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큰 인명사고는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을 비교하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특히 마산이나 강원도 일부지역에서 많은 인명피해와 더불어 큰 재해가 발생한 것은 인재의 탓이 크다. 이번 마산 지하 노래방에서 수명이 사망한 피해는 해안 매립지이기에 많은 비가 올 때마다 바닷물이 역류되어 수해가 상습적으로 발생한 지역이다. 더구나 이 지역을 태풍이 강타한 시점은 만조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대피 등 제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 강원도의 경우, 지난 해 수해지역을 제대로 복구하지 않았거나 또는 제방공사 등이 부실하여 피해가 생긴 지역이 많다. 중앙부처 역시 재난방지 대책 수립에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다. 수년 전부터 재난방지 대책을 위한 별도의 종합기구 설치가 논의됐음에도 불구하고 관계 부처간의 이견으로 아직까지 입법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때문에 효율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처간 집단이기주의로 비판 받아야 한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인간의 능력이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앙 및 지방의 관계기관이 재난방지를 위한 최선의 대책을 강구했다면 최소한 인명피해는 더욱 줄일 수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효율적인 재난대처 시스템 구축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태풍은 올해도 한 두차례 더 온다.

정치권의 무중력과 대통령의 입장

정당정치의 붕괴 현상이 집권 여당에서 가속화하여 혼란을 더해 준다. 이른바 민주당 잔류파와 탈당파 간의 신·구주류 분당을 앞두고 중도파를 대상으로 하는 세규합에 서로 혈안이 되고 있다. 이들의 눈엔 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참상, 목전의 농업붕괴 위기, 이라크 전투병 파병 등 당면 과제도 뒷전인 것 같다. 오는 20일로 시한을 정한 탈당 움직임은 집권당의 핵 분열로 헌정사상 초유의 무중력 상태를 가져오는 정당정치의 일대 이변이다. 집권당이 분당되는 것 또한 정당사상 초유의 일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게 아니어서 새삼 놀랄 이유는 없다. 또 민주당 당내 일은 그들의 책임이다. 그렇긴 하나 간과하지 못할 것이 있다. 민주당 잔류파는 반노 세력이고 탈당파는 친노 진영임은 부인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 민주당 간판을 고수하는 잔류파는 여당에서 야당이 되고, 민주당 간판을 부정하는 탈당파는 새로운 신당 간판을 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입지다. 노 대통령은 당분간 민주당 당적을 떠나지 않을 뜻을 비쳤다. 탈당파의 신당과도 무관함을 강조하였다. 내년 총선 또한 초연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 대통령과 정당 구도는 무엇인가가 문제로 대두된다. 대통령 역시 반노 세력인 민주당 구주류와 코드가 맞지않다고 여기는 게 사실이다. 그런 민주당에 당적을 남긴다 해서 민주당이 집권 여당일 수는 없다. 그렇다 하여 친노 진영인 탈당파의 신당이 생겨도 대통령이 입당하지 않으면 여당이라 할 수 없다. 대통령은 정치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국정에만 전념하겠다고 하나 이도 한계가 있다. 비록 대통령중심제이긴 해도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며, 정당정치는 의회정치가 상궤임을 일탈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정이 국회와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대통령은 정치권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정당, 즉 정치권의 무중력 상태는 이래서 국정의 혼란을 가져온다. 책임정치가 실종되기도 한다. 대통령은 대선에서 몰표를 준 민주당 구주류의 텃밭에 대한 원려로 인해 애매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 같으나 그럴 계제가 아니다. 책임정치를 구현하자면 분명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국회와 더불어 처리해야 할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런 마당에 국정 최고의 책임을 져야하는 대통령이 정치권의 무중력 진공 상태를 방기하는 것은 결코 정도가 아니다. 이를 정리해야 하는 것 역시 대통령의 책임이다.

호주제 폐지 입법예고

이혼·재혼 가정의 자녀들이 가정법원 결정으로 새아버지 성(姓)으로 바꿀 수 있고, 남자 형제없이 여성 자매만 있는 집에 국한하여 가능했던 입부혼(入夫婚·남편이 아내의 호적에 들어가 자녀 성을 아내 성으로 하는 것)이 앞으로는 혼인신고서란에 부부가 합의만 하면 무조건 가능하게 된다. 법무부는 며칠전 이같은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라 가족별 호적이 없어지는 대신 개인별 신분등록제가 시행되는 것을 두고 가족개념의 파괴다 아니다 하는 논란이 일고 있다. 또 새아버지의 성으로 바뀌어도 새아버지의 재산 상속과 관련된 권리는 전혀 없다. 오히려 성을 바꿔도 친아버지의 재산은 계속 상속권을 갖는다. 어머니가 개가를 가령 두·세번하면 자녀의 성이 두·세번이나 바뀔 수 있는 반면에 자녀가 성장하여 친아버지의 성을 되찾으려면 가정법원의 결정으로 본 성의 회복이 가능하다. 민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자녀를 혼자의 힘으로 키운 어머니되는 여성이 쥐 뿔도 한 일 없으면서 다만 아버지라는 것만으로 친권 행사를 하려하는 남성의 횡포는 능히 막을 수가 있다. 그러나 예상되는 혼란도 많다. 가령 이름만 바꿔도 동일인 증명 등 입증자료가 번잡한 판에 성을 한번도 아니고 더 이상 바꾼다면 동일인 입증자료가 더욱 번다하여 사회생활에 혼란이 있을수 있다. 또 성씨를 이러저리 마구 바꿈으로써 족보의 개념도 달라질 우려가 많다. 하지만 분명한 한가지 사실은 있다. 호주제 폐지가 어떻든 간에 건강한 가정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되도록이면 이런 가정이 많은 사회가 되면 좋겠다. 민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는 됐지만 국회 통과는 더 두고 보아야 한다.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하고는 있다. 그렇지만 미루적 거리다가 본회의에 상정않고 회기를 넘길 가능성도 없지않다. 제16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로 민법개정안이 자동폐기 되지 않겠나하고 보는 일부의 관측도 있다. /임양은 주필

월요칼럼/화성의 武魂 -24반 무예

수원 화성(華城)과 화성행궁이 장헌세자(조선조 22대 정조의 생부)의 권위와 국왕의 정치적 위용을 돋보이게 하는 왕권 강화의 상징물이라면 장용외영(壯勇外營)은 정조(正祖)의 정치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친위 군사력이었다. 장용외영은 화성 축성 후 국왕의 호위와 화성 방어를 담당한 정예의 군사력이자 정조의 전제적 왕권을 안정, 지탱케 한 버팀목이었다.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정조는 새로운 금위체제를 위하여 1785년 무과출신의 정예금군을 두어 국왕 호위 전담 부대 장용위(壯勇衛)를 창설하였다. 내영(內營)과 외영으로 나눈 장용영의 내영은 한양 도성을, 외영은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갖추어졌다. 장용외영제는 수원부를 화성으로 개칭하고 정3품의 부사에서 정2품의 유수로 승격, 장용외사와 행궁정리부직을 겸하게 하였다. 정조는 현륭원(융릉) 원행 때마다 군복을 착용했다. 때로 6천200여명이나 되는 어가를 호위하는 원행 행렬은 군사훈련을 방불케 하였다. 화성에서 처음 대규모의 군사훈련이 시작된 것은 6차 원행 때인 정조 19년(1795) 윤2월 상순(12일) 이었다. 을묘년은 어머니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의 회갑인데다 화성 성곽이 거의 모양을 갖춰 가고 있을 때 였다. 이해 12일 밤 정조는 팔달산 정상 서장대(西將臺)에 올라 성대히 거행된 성조(城操:성위에서 수비하고 공격하는 훈련)와 야조(夜操:야간훈련)를 총지휘했다. 정조는 화성 완공 직전인 왕 20년(1796) 1월22일 7차 원행 때 동장대(東將臺:연무대)에 나아가 무예를 시험하고 군사를 사열했다. 이때 군용이 엄히 정돈된 것을 가상히 여겨 유수 조심태에게 구마(廐馬)를 내려주고 73세의 나이로 과녁을 명중한 김시묵에게는 호피를 하사하였다. 화성에서의 군사훈련은 정조의 행차 때마다 실시됐다. 정조 14년부터 화성과 인근 백성에게 시사(試射)를 통해 무과 응사입격자를 뽑는 것을 정례화하였으며 궁술이 탁월한 정조는 기회 있을 때마다 대신과 백성 앞에서 모범을 보였다. 정조는 오래 전부터 군제에 적용해온 ‘병학지남(兵學指南)’의 소루한 점을 보충하고 강목을 새로 세워 ‘병학통(兵學通)’을 완성하기도 하였다. 특히 왕 14년 겨울에는 생부(장헌세자)가 생전에 착수했던 작업을 이어 받아 ‘무예도보통지’를 완성, 간행하고 이후 4종의 병서를 더 편찬 할 만큼 군사이론가로서도 깊은 조예를 갖추었다. 정조가 설치한 장용영에서의 군사훈련시 시범은 물론 팔도군영에서 연마한 무예는 ‘24반무예’였다. 지상무예 18가지와 마상무예 6가지를 합친 ‘24반무예’는 동양무예의 정수로 ‘무예도보통지’에 보(譜)와 도(圖)로 나뉘어 상세히 기록돼 있어 전승이 가능토록 하였다. 그렇다 하여도 200여년이 흐른 오늘날 장창·죽장창·기창·당파(삼지창)·낭선·기(騎)창·쌍수도·예도·왜검·교전·제독검·본국검·쌍검·마상쌍검·월도·마상월도·협도·등패·권법·곤방·편곤·마상편곤·격구·마상재 등 24가지의 무예로 적을 무찌르고 심신을 단련하는 ‘24반무예’가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1989년 창립된 ‘24반무예보존회(대표 김영호)’가 24반무예의 본 고장 수원 만석공원에서 지난 9월 6일 시연(공연)을 가졌을 때 시민들은 화성의 역사와 함께 장용영을 통해 국방과 내치에 주력했던 정조의 실학사상을 다시 보는 기쁨을 만끽했다. 10월19일까지 매주 토요일, 일요일 오후 수원 만석공원과 화성행궁, 영통 벽적공원에서 신기(神技)를 펼치는 ‘24반무예’는 본국검이 붉은 노을을 등에 지고 천년의 단심을 베어 내고, 월도는 웅혼한 기세에 달빛마저 잠들게 한다. 24반무예의 검무(劍舞)에 산 자와 죽은 자의 영혼이 교감하고 수원 화성의 무혼(武魂)이 화성행궁 장용영에서 되살아난다. /임병호 논설위원

천자춘추/넥타이 속의 질서

푸른 바다 위에 수십 마리의 붉은 원숭이들이 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유롭게 춤추고 있는 모습. 내가 즐겨하는 색다른 넥타이 중의 한 문양이다. 멋대로 춤추는 듯한 각각의 원숭이들의 질서정연한 배열이 산뜻함과 독특한 세련미를 연출하고 있어 좋아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또는 전철에서 앞에 서있는 사람의 넥타이를 보면서 잠시 미술품을 감상하듯 짧은 즐거움을 가질 때가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내 넥타이의 주인으로서 잠시 미술품의 작가가 되기도 한다. 넥타이 속에서 자유로이 춤추는 원숭이들의 질서있는 배열을 보면서 자연의 질서를 생각해 본다. 봄철 논두렁의 하얀 국수꽃 무리는 태양 아래, 혼자가 아닌 무리로 모여있을 때 아름다우며, 아직 자리를 내주지 못하고 늑장을 부리고 있는 겨울을 떨쳐내기 위해 진달래꽃은 그처럼 진한 분홍을 과시하고, 매서운 겨울의 기세도 봄의 소리없는 움틈에 자리를 내주고야마는 자연의 질서에는 서로를 이해하는 양보와 화합의 질서가 있다. 질서는 획일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특성을 인정하고 장점 뿐 아니라 단점까지도 감싸안고 인정하는데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그로 인한 아픔과 희생이 있다면 그것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면서. 여름을 줄기차게 외쳐대던 풀벌레의 울부짖음을 누그러뜨리고 성큼 다가온 가을의 문턱에선 이달 초, 우리 고양지청은 한해를 마무리할 조직을 새로이 개편하였다. 개편과정에서 흔히 있듯이 어떤 직원에 대해서는 모두들 함께 일하려고 하고, 또 어떤 직원에 대해서는 같이 일하기를 꺼려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단점이 노출되어 잡음의 불씨가 된 그 직원과 함께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관리자가 있었다. 질서의 의미를 아는 사람같다. 상대의 단점을 조용히 감싸안음으로써 그는 개편의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을 잠재우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화합과 질서는 작은 배려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넥타이 속 원숭이들의 춤처럼 우리들의 춤이 아름다워지기를 기대한다. /김인호.서울지검 고양지청장

독자투고/안전띠 착용으로 소중한 생명 지키자

며칠전 순찰도중 도로상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조그만 승용차와 커다란 화물차 사이의 충돌사고 였는데, 화물차는 충격 흔적이 거의 없는 반면 승용차는 앞 범퍼부분이 전혀 알아 볼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져 있어 운전자가 크게 다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큰 사고와는 달리 그 운전자는 머리 부위에 약간의 상처 외에는 별다른 외상이 없어 사고경위를 물어보았다. 추석 귀경길에 오랜 운전으로 인해 너무 피곤하여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겼었는데, 이때 전방에 서행하던 화물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사고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안전띠를 매고 있어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운전자는 사고를 낸 책임인지 미안해 하면서도 안전띠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전띠 착용이 교통사고 발생시 사망이나 치명적인 부상을 막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일부 운전자들은 아직까지도 안전띠 착용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안전띠 착용은 타인을 위함이 아니고 운전자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는 유일한 방안임에도 마치 교통단속하는 경찰관을 위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내자신도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고 안전띠 착용을 생활화하여 자신 및 타인의 귀중한 생명을 지켜나가 선진 교통문화 정착에 노력한다면 교통사망사고 다발국이라는 오명을 듣지 않을 것이다. /전영진·성남중부서 남부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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