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도입코자 하는 ‘청문회식 재판’ 자체의 순기능은 인정하지만 추진상의 역기능 또한 간과키 어렵다. 지금까지의 대법원 상고심은 법정이 아닌 집무실에서 심리하는 기록 중심의 재판이 관행이었다. 따라서 하급심의 법리적 오류 여부를 가리는 법률심 위주였으므로 사실심리는 외면되다시피 하였다. 하급심의 사실심리에 하자가 있을 수 있었음에도 이를 덮어두고 법률심에만 치우친 폐단을 개선코자하는 노력은 평가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상고심에 해당분야의 전문가 등 의견을 법정에서 청취, 판결에 반영하는 공개변론 형식의 ‘청문회식 재판’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긴 하다. 그러나 폭주하는 상고심을 다 이렇게 재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리하여 계획하는 대법원의 구상이 ‘청문회식 재판’의 선별 적용과 상고의 제한으로 알고 있으나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상고의 남용으로 대법원 업무가 폭주하는 고충은 이해하지만 이를 잘못 제한하면 국민의 기본권인 재판받을 권리를 훼손, 위헌 소지를 다분히 안게된다. 또 선별 적용하는 것도 그렇다. 사회적 가치판단이 요구되는 주요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덴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그같은 판단을 누가 뭣을 기준하여 어떻게 선별하느냐에 있다. 대법원의 ‘청문회식 재판’ 도입은 실무법원에서 정책법원으로 전환, 요즘 같으면 새만금 간척사업처럼 분열된 사회적 주요사안의 여론분열에 통합기능을 갖는 새로운 사법개혁 차원의 노력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법개혁은 상승관계가 있어 대법원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키가 어려운 게 난점이다. 예컨대 상고의 남용방지도 하급심의 재판을 더욱 충실히 이행하게 함으로써 재판 당사자들에게 승복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첩경이지만, 이러기 위해서는 법관 수를 엄청나게 늘릴뿐만 아니라 법관 역시 의료계의 전문의와 마찬가지로 전문분야의 전문법관 양성 또한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 과제일뿐 당장은 실현이 불가능하다. 이토록 어렵게 제한된 여건 속에서나마 대법원이 꼭 ‘청문회식 재판’을 도입하겠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선별에 엄격한 객관적 기준을 규정으로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우선은 ‘청문회식 재판’ 대상을 적게 잡더라도 국민의 상고를 부당하게 제한하여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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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의 연내 입주설은 사실과 다른 것 같다. 개성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경기도 땅이었다. 경기도의 행정이 개성시와 개풍군에 미쳤고, 서울~개성간의 학생들 통학기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이처럼 각별한 정서를 지닌 개성지역의 공단은 경기도 기업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개성공단은 개성~평양간 고속도로가 바로 이웃에 있고 경의선 철도가 공단을 통과하여 공장 입지로는 아주 제격이다. 공단 부지가격도 평당 10만~20만원을 전망하여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시설투자가 가능하다. 고임금으로도 일손 부족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인 들에게 개성공단 입주는 더 할 수 없는 매력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아직도 기획단계다. 착공식이 있은 지 두 달이 됐으나 막상 공단 부지현장에는 공사가 조금도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허허벌판인 공단 부지를 두고 연내 입주설이 있었던 것은 그 연유가 뭣인진 몰라도 사실과는 판이하다. 지금 현재로는 언제 완성될 것인 지 전망조차 예측키가 어렵다. 아무래도 현재 베이징서 열리고 있는 북핵 관련의 6자회담이 끝나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회담 결과가 좋게 나온뒤 후속조치가 이루져야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은 남북경협사업의 하나다. 경협사업은 말 그대로 경제분야 사업인 데도 정치와 결코 무관하지 못한 것이 북측 체제 구조의 특성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물론 당장의 북핵 관련도 그렇고, 그러고도 숱한 우여곡절의 난관은 있겠지만 남북의 평화공존에선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이 개성공단이다. 다만 성급한 기대보다는 차분한 기다림이 있어야 하겠다. 파주시 도라산역에서 자동차로 불과 20분 거리인 지척의 개성공단은 이처럼 가깝고도 멀고 멀고도 가깝다. 남쪽의 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이 한데 어울려 한반도 종단의 물류동맥으로 경의선이 활기를 되찾을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때 가면 개성공단의 규모 또한 더욱 확장될 것이다. 필연적 사실에도 시일이란 게 있다. 개성공단을 두고 더 많은 시일을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치다.
잦은 비로 풍년 농사에 비상이 걸렸다. 수확량 감소에 따른 농산물·과일의 가격 상승으로 추석을 앞둔 물가 관리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전국이 거의 비슷하게 벼의 키는 현재 76.5㎝로 지난 해보다 2.2㎝, 평년보다 7.8㎝ 작다고 한다. 조생종 벼의 이삭 패는 시기도 예년보다 6일 가량 늦고 이삭이 팬 벼는 알이 여물지 않아 농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게다가 병충해 발생 면적이 75%나 늘어 이번 추석에는 햅쌀 구경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추는 웃자람 현상에 역병까지 번져 수확량이 20% 이상 줄었고, 사과와 배는 일조량 부족으로 크기가 작고 당도도 떨어졌다. 반사 필름과 비 가림 시설을 설치하는 등 ‘이상 기후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농민들의 모습이 실로 안쓰럽다. 1980년 이후 23년만에 겪는 최악의 냉해도 크게 우려된다. 4월 이후 누적 일조시간은 596.1 시간으로 지난 해보다 61.4시간, 평년보다 221시간 적었고, 강우량은 823.5㎜로 지난해보다 302.4㎜, 평년보다 204㎜ 많았다. 전국적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려 고추에 탄저병, 역병이 돌아 수확 포기 농가가 적지 않아 이대로 가면 전체 작황이 예년의 절반에 그쳐 모종값, 농약값도 건지기 힘들 지경이라고 한다. 문제는 농민들이 겪는 극심한 경제난과 영농의욕 상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농현상이 속출하고 농사를 지어봤자 부채만 쌓이는 현실에서 최근 수확기의 일기마저 좋지 않아 농민의 시름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더구나 농작물의 전반적인 작황 부진으로 가격이 크게 올라 추석을 앞둔 서민 가계에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작황 부진으로 농산물 가격은 비싸지지만 생산자에게는 수익이 별로 없다. 중간상인들이 폭리를 취해 결국은 농민들과 소비자들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다. 계속 내리는 비로 타격을 입는 농민들을 위해 당국의 대책 마련은 물론 병충해 방제에도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 농산물 등 추석물가가 폭등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할 것을 아울러 촉구해 둔다.
나폴레옹은 “남자는 3시간, 여자는 5시간, 그리고 바보는 6시간 잔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하루 3시간만 잤다는 기록이 있고, 4시간 정도는 눈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나폴레옹이 하루 18시간을 일하는 일벌레였다는 점이다. 유럽 평정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나폴레옹은 전투 중 말안장 위에서 짧게 짧게 잠을 해결하며 수면시간을 충당했다고 한다. 토머스 에디슨은 하루 평균 세시간의 잠만 자며 연구에 매달려 주위에서 “수면에 대한 그의 천재성은 발명에 관한 천재성 못지 않다”고 평했고,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일에 집중할 때면 며칠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다고 한다. 다빈치는 부족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자신만의 독특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는데 4시간마다 15분씩 낮잠을 자는 것이 그 비결이었다. 피카소는 짧지만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 침대 옆에 양철판을 놓고는 붓을 손에 든 채 낮잠을 청하는 습관이 있었다. 설핏 잠이 들어 붓이 양철판에 닿아 소리가 나면 피카소는 낮잠을 접었다. 10여 초도 안되는 시간이지만 그는 충분히 상쾌했다고 한다. 미국의 트루먼, 케네디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도 낮잠 예찬론자였다. ‘잠은 인구의 진화과정에서 벌어진 최대의 실수’라고 폄하한 과학자도 있지만 다른 과학자는 하루 8∼9시간 정도의 수면이 다음 날의 생산성을 20%나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잠은 사치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잠은 개인차가 심해 누구는 10시간을 자도 마냥 졸립고, 누구는 2 ~ 3시간을 자고도 거뜬하다고 한다. 신생아는 보통 하루 중 19시간, 노인은 5시간30분을 잔다. 같은 사람이라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면시간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잠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인생의 3분의1을 잠으로 소비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만, 그러나 ‘잠’만큼 편안한 휴식은 없다. 잠은 재충전의 의미로서 뿐만 아니라 마음의 양식으로서도 존귀하다. 잠은 삶을 위한 짧고도 긴 휴가다. 잠은 몸과 마음의 보약인데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밤엔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아침에 검찰 내부 통신망에 들어가 보니 친절에 관한 논쟁이 직원들 사이에서 뜨거웠다. 사정은 이러하였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상급기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소속도 밝히지 않다가 나중에는 반말까지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직원은 아침에 좋은 기분으로 출근하여 불친절한 전화 한통으로 기분이 상한다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인력낭비가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덧붙이고 있었다. 그 글 아래에는 줄줄이 다른 직원들의 의견이 달려 있었다. 앞으로는 그런 사례들을 실명으로 올려 잘못을 시정토록 해야 한다는 다소 감정적인 의견, 상대방을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자는 의견,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도입한 운동이니 만큼 상급기관이 솔선수범하자는 의견 등이었다. 얼마 전에는 우리 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시민의 소리 담당관실’에서 다음과 같은 시민의 소리를 청취하였다. ‘음주운전으로 조사받은 후 벌금이 나왔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나온 것 같아 문의를 하였더니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아 아쉽다’는 것이었다. 단속당한 시민의 음주수치를 보니 우리 청의 양형기준에 따라 처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담당검사실에서 조금 불충분하게 설명하다보니 당사자는 자신만 불리한 처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위 두가지 사례는 어떻게 보면 형식에 불과한 친절이 실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나타낸 사례이다. 상급기관 직원의 친절하지 못한 전화로 인해 하급기관 직원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었고,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또한, 검사실에서는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고도 민원인의 질문에 대한 불충분한 설명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검찰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고양지청장에 취임한 이후 민원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검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하여 왔다. 국민들이 검찰에 대해 갖는 불신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검찰은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기관이라는 인상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다가서려는 우리 청의 여러 가지 몸짓도 결국은 친절을 통한 권위주의의 탈피가 그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얽힌 것을 풀어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꾼다’라는 톨스토이의 말이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김 인 호 서울지검 고양지청장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살고 있는 시민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지 벌써 24년째다.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 소리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무덤덤히 살아 왔는데 최근에는 거의 5분마다 한대씩 연속으로 비행기가 뜨고 있어서 생활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만병의 근원인 이 스트레스를 누구한테 항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그마한 소음에도 방음벽을 설치하고 보상받고 있는데 이쪽의 주민들은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냥 보고만 있어왔다. 수원 비행장이 이곳 주민들에게 준 피해는 엄청나다.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어마어마한 피해를 주고 있다. 아는게 없어서 당하고 있다는 생각 뿐이다. 관계기관에서는 하루 빨리 비행기 소음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요즘 수원시에서 ‘해피 수원’을 모토를 시정을 펼치고 있다는데 수원시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비행기 소음에 대한 대책마련에 힘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터넷독자
서울 홍제동 집에서 바쁜 걸음으로 무악재 고개 넘어 영천의 전차 종점 언저리에 이른다. 벌써 공사판엔 이른 새벽부터 줄지은 샛 노란 얼굴의 군상들이 현장감독의 삽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게으른 출근(?)으로 뒷줄에 처져 삽 배급이 끊긴 나는 그 날 하루를 공칠 수 없어 고양 신도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공사장을 허겁지겁 찾았다. 거긴 일당제가 아니고 돈 내기식의 할당제였으므로 쉽게 일할 수 있었으나 돈을 거머쥐진 못했다. 며칠동안 내리는 비로 천막 속에서 먹고자는 한밥집의 밥값마저 대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 부자들은 나에겐 저주의 대상이었다. 자본은 내몫을 빼앗아간 착취로 여겼다. 서울시의원선거 서대문구 제5선거구에서 갓 피선거권을 가진 스물다섯살에 출마했던 것은 나보다 앞서 입후보 등록한 채석장 사장 자본가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밑에서 저임금의 잡부로 뼈빠지게 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선거구호는 ‘무산계급에서 나온 사람, 무산대중이 밀어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힘은 달걀로 바위치기에 불과하여 돈키호테 같은 꼴이 됐다. 그 채석장 자본가는 시의원에 당선되어 서울시의회 의장까지 지냈다. 사회적 모순에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진보당 사무실을 드나들기도 했다. 공산주의자가 되려고 자본과 노동에 관한 책자, 그 중에도 불온서적을 특히 탐독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가 되진 못했다. 잉여가치설의 모순, 수요에 의해 공급되고 능력에 의해 기여하는 계급없는 사회실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계급투쟁 논리가 얼마나 허구에 찬 것인가를 발견한 것은 그 당시 나에겐 절망이었다. 무엇보다 인성 말살의 혁명관은 현실 불만의 저주는 될지언정 미래적 가치기준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더욱 북의 공산주의는 일찍이 마르크스와 레닌의 원전이 경계한 전형적 수정주의자며 종파분자 집단에 속하는 김일성주의다. 저들이 차라리 공산주의를 한다면 남북관계가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우리식 사회주의’의 주체사상으로 포장된 김일성주의로 인해 선뜻 개혁·개방을 못하는 데 오늘의 문제가 있다. 예컨대 일부 대학생들이 ‘민족공조’ ‘민족자주’의 어휘에 감춰진 저들의 혁명전략 차원의 전술적 개념을 모르고, 순수한 우리식 개념의 ‘민족공조’ ‘민족자주’로만 알고 동조하는 것을 보면서 철 없었던 나의 젊은 날을 생각해 본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작금의 노동운동이다. 학생은 학생이니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기성사회의 노동계가 벌이는 지금의 노동운동은 사회파괴가 아니면 집단이기주의 지 노동운동이 아니다. 노동운동에 관한한 뼈저린 젊은 시절을 체험하여 비교적 좌파성향의 관대함을 지녀온 개인적 노력을 배신당한 감마저 갖는다. 노동운동의 발상기, 정착기를 지나 이제는 개화기에 접어 들었음에도 노동계는 아직도 발상기의 투쟁이론을 내세우는 것은 엄청난 시대 착오다. 자본과 동등한 노동의 신성한 생산가치를 잘못된 노동운동으로 인하여 자본의 우위를 생성케 함으로써, 노동의 권위를 떨어뜨린 책임을 현 노동계 지도부는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른바 ‘노조귀족’들, 이들은 잘 먹고 잘 산다. 해마다 일선 노동자 노조원, 하위 노조 집행부를 불법의 아귀다툼 현장으로 몰고가는 이들의 선동은 부동의 만년 직업이 돼버렸다. 이 때문에 노조도 못만드는 숱한 일용직 진짜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 저소득층의 삶만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나는 부끄럽게도 이 나이 되도록 살기를 잘못 살아 매월 돌아오는 카드빚에 쪼들릴만큼 여전히 가난하지만, 젊어서처럼 가진자를 저주하는 우매한 생각은 갖지 않는다. 그래서 자본을 턱없이 저주하여 핏대 높이며 거품 쏟는 ‘노동귀족들’ 입에서 그들의 위선을 나는 발견한다.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고독하다. 이미 국내 노동운동은 상당부분 고독해 졌다. 여기서 노동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오기가 아니고 반성이다. 설령, ‘노동귀족들’ 그들에게 어떤 불이익을 받는다 하여도 나는 물러서지 않고 자신 있게 반성의 충고를 거듭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임 양 은 주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