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유치 '반역설'

프라하의 평창 석패 뒷소식이 개운치 않다. 현지 서포터로 갔던 평창 출신의 김용학 국회의원이 제기한 김운용 IOC위원의 처신은 오비이락일지 몰라도 문제가 없지 않다. “사실상 준비가 덜 됐다”는 말을 IOC위원들에게 흘리고 다녔다는 김의원의 주장을 김위원은 부인해 여기서 진위를 가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IOC부위원장 출마설이 2010년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전에 벌써 나돈 것은 의문이다. 가령 본인의 뜻이 정 그게 아니라면 완강한 해명과 함께 개최지 득표에 혼신의 힘을 다 했어야 했다. 개최지와 IOC 부위원장 자리를 다 주는 지지표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IOC 부위원장 선거는 개최지 투표 이후인 마지막날 있었긴 해도, 김 위원이 이를 탐내어 들리는 말대로 “동계올림픽, 유치를 방해했다”는 것까진 몰라도 개최지 득표에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지는 객관적 의문이 성립된다. 불과 3표 차이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보니 이런저런 아쉬움이 더 많다. 1차 투표(평창 51·밴쿠버 40·잘츠부르크 16)에서 107표의 과반수가 안나와 가진 2차 투표 끝에 53표 대 56표로 밴쿠버에 역전 당해 아깝게 놓친 프라하 유치열전, 이 이면에 2012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키 위한 유럽표가 이번에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북미권으로 몰아 준 것이라는 패인 분석 외에 나도는 설상가상의 반역설은 참으로 유감이다. 김위원은 이미 IOC 부위원장 자릴 한 차례 했으면서 하필이면 이번 총회에서 굳이 출마했던 것인지 안타깝다. 생각할 수록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훌륭했던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나서기 전까지는 사실상 세계적으로는 무명이었던 산골 평창, 프라하의 코리아 열풍은 실로 장하다. 밴쿠버 역시 1976년 유치에 실패하고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해 성공했다.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기가 기대된다. 그 땐 보다 국민적 단합과 성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월요칼럼/‘覺’자도 제대로 모르면서

새만금개펄 살리기 삼보일배(三步一拜)로 잘 알려진 수경스님의 수행승 시절의 일화는 지금도 스님들 사이에서 회자된다고 한다. 수경스님이 선방에서 눈을 부릅뜨고 철야정진하고 있었다. 스님은 시시때때로 삼매에 빠져 선사들이 모든 번뇌와 자각이 사라지며 순간적으로 깨친다는 바로 그 ‘확철대오(廓撤大悟)’를 감지하곤 비몽사몽간에 ‘바로 이거다’며 성철스님께 한달음에 달려갔다. “스님, 제가 깨쳤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방문이 열리더니 벼락같은 호통소리와 함께 날아든 것은 성철스님의 목침이었다. 간신히 도망쳐 나온 수경스님은 자신의 경솔과 부족함을 탄식하며 수행에 정진했다. 진정 깨달았다면 성철스님의 목침이 무서워 피해서는 안되었었기 때문이었다. 수경스님이 심산유곡 선방을 박차고 나와 속세의 거리에서 삼보일배하며 ‘환경·생명’을 화두로 생사를 건 두타행(頭陀行)을 하는 것도 그때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작은 깨달음이 씨앗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속세의 온갖 미련을 헌신짝처럼 버린 출가승들이 오매불망하는 오도송(悟道頌)은 불가의 오묘함이 서려 있다. “깨달음은 깨닫는 것도 깨닫지 않는 것도 아니니(각비각비각·覺非覺非覺)/ 깨달음 자체가 깨달음 없어 그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라네(각무각각각·覺無覺覺覺)/깨달음을 깨닫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각각비각각·覺覺非覺覺)/어찌 홀로 참 깨달음이라 이름하리오(기독명진각·豈獨名眞覺)” 임진왜란 때 3년간 승군을 이끈 청매선사의 이 ‘십이각시(十二覺時)’오도송이야말로 성철스님이 수경스님에게 목침을 던진 의미였을 것이다. 근대 한국불교의 중시조라 일컬어지는 경허(鏡虛·1849~1913) 스님은 64세가 되던 어느 날 열반을 앞둔 몇시간 전 열반송을 쓰고 홀연히 입적했다. “마음의 달이 오직 둥금에(심월고원·心月孤圓) / 그 빛이 모든 것을 삼키다(광탄만상·光呑萬象) / 빛도 없고 빛의 대상도 없으니(광경구망·光境俱忘) / 다시 또 무엇이 있을꼬(복시하물·復是何物)”라는 열반송을 남겼다. 경허 스님의 제자인 만공(滿空·1871 ~ 1946) 스님도 입적하는 당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 보며 “자네 나와 이별할 때가 되었네”라는 혼잣말과 함께 홀연히 몸을 바꾸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로 대중의 의표를 찌른 성철(性徹·1912 ~ 1994) 스님의 열반송은 지금도 큰 화제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넘친다 /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도다 / 둥근 수레바퀴 붉은 해를 토하며 푸른 산에 걸렸다” 지난 3월29일 입적한 서암(西庵·1932 ~ 2003) 스님은 생전에 열반송을 남겨달라고 제자들이 조르자 수차 그런 것 없다고 하다가 드디어 한 말씀 했다. “그 노장(老長)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는 젊은 중이었을 때 계룡산 토굴에서 뼈만 앙상하도록 정진하다가 ‘본무생사(本無生死)’ 한마디를 토해냈다고 한다. 본래 생도 죽음도 없다는 뜻이다. 열반송은 고승이 남긴 마지막 깨우침의 말씀이다. 임종계라고도 한다. 보통 4행의 한시(漢詩)로 돼 있는데 스님들은 열반을 얼마 앞두고 써놓거나 몸이 불편할 경우 제자들에게 불러 주어 쓰게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涅槃)은 해탈의 경지, 곧 죽음을 말한다. 열반송은 불자가 아닌 세인들도 숙연하게 한다. 깨달음의 각(覺)자의 뜻도 모르면서 “자네 나와 이별할 때가 되었네”라는 만공스님의 열반송이 요즘 감히 자주 떠오른다. /임병호 논설위원

천자춘추/수원과 삼성과 축구

2002월드컵 이후 축구의 메카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수원시는 삼성과의 인연이 참으로 깊다. 삼성전자와 반도체가 수원에 있고 프로축구팀인 삼성블루윙스가 수원을 연고로 활동하고 있다. 수원시민은 삼성을 사랑하고 있다. 시민들은 지역산업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수출상품의 효자종목인 반도체 생산라인의 원활한 가동을 위해 공장증설이 규제 위주의 법령때문에 어렵다하여 삼성반도체 공장증설 촉구 시민궐기대회와 100만 시민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삼성 프로축구 홈 경기가 있을 때에는 서포터즈인 그랑블루를 비롯하여 많은 수원시민이 ‘수원승리’, ‘블루윙즈 올레’ 등 목이 터져라 손바닥이 부서져라 외치고 응원하고 있다. 금년들어 수원삼성 블루윙즈의 성적이 중·하위권을 맴돌아 서포터즈의 실망이 너무 큰 실정이다. 블루윙즈 구단주인 삼성 반도체는 수원시민을 위해서 수원 프로축구 발전을 위하여 어떤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내 타 구단의 경우 유소년 클럽을 직접운영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미국·일본·호주 등에서는 지역기업이 축구장 명칭을 사용 하는 조건으로 연간 수십억원을 지원하는 등 축구 발전을 위하여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단은 홈경기장에서 관중이 줄어들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신중히 판단하여야 할 것이며, 월드컵 이후로 높아진 관람욕구에 부응하고 좀더 양질의 경기를 보여주기 위하여 단기적으로는 자질이 뛰어난 외국 선수의 영입과 장기적으로는 유소년 축구 활성화를 통한 지속적인 축구 붐 조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난 6월 18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관람좌석수 보다 많은 4만3천77명의 구름 관중이 몰렸다. 100만 수원시민은 수원 삼성이 홈구장에서 이겨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수원’, ‘블루윙즈 올레’를 목놓아 외치고 싶다. 축구를 통해 하나가 된 응원이 수원과 삼성사랑이라는 외침이 될 때 수원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축구 메카도시가 되고, 수원삼성 홈팀 연고지로 재부상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수원 삼성 축구단과 수원시민, 서포터즈 등은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월드컵 경기장에 관중이 넘쳐날 때 수원축구가 발전할 것이고 선수들은 신바람이 나서 더 열심히 뛸 것이다. 시민들이여, 월드컵 경기장으로 오시라. /유도형.수원월드컵경기장 관리재단 사무총장

독자투고/'법과 원칙 지키는 민족이 되자'

떼∼한민국’, ‘떼법천지’, ‘판치는 불법 기죽은 합법’, ‘갈등으로 해가 떠서 갈등으로 해가 지는 나라’, ‘데모로 하루를 시작해서 데모로 하루가 끝나는 나라’ 등 법과 원칙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규칙과 질서가 사라진 우리사회의 현실을 빗대어 나온 말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기강이 말이 아니다. ‘목소리만 크면 장땡’이라는 식의 그릇된 의식이 사회전체에 만연하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 철도노조 파업, 지금도 교육계내부에서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NEIS문제, 지방자치단체 주민의 님비근성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은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나자신만 알고 남을 배려할줄 모르는 마음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야 어찌되든 나라와 사회가 거덜나도 오로지 내 주장, 우리 이익만 관철시키면 된다는 극단적 집단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은 뒷전이고 개인과 자신의 집단만 편하면 된다는 편협된 의식만이 있을뿐 도무지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어 보인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준수해야할 법이 엄연히 있음에도 법은 뒷전에 밀려 있는 것이다. 원칙도 질서도 없는 그야말로 ‘無法의식’이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심각한 것은 법을 지키지 않는데 남녀노소, 지위고하가 따로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국가 위기다’ ‘투자를 못하겠다’ 등 국내외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우려하는 소리가 매우 높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과거 1천회에 이르는 외적의 침략을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와 끈기로 물리치면서 이 나라를 지켜왔다.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때 세계인이 놀랄 정도로 하나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겐 위기에 처하면 더욱더 단결하고 화합하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이러한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로 지금의 혼란을 슬기롭게 해결하면 더욱더 발전하는 대한민국이 될것으로 기대한다./신연식·인터넷 독자

7월 7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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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초빙제’ 신청 꼭 해야 되나

교사의 길은 무엇보다 학생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교장 등의 어떤 직책을 맡는 게 최상의 목적은 아니다. 교사들 모두가 간부직 되기에만 연연해 한다면 과연 평교사 생활은 누가 하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교사관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9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4년 임기가 끝나는 도내 일선 교장들이 임기말에 교장을 중임할 수 있는 교장초빙제를 무더기로 신청한 일은 재고해야 할 점이 있다. 더구나 교장초빙제를 신청한 학교 소재지 대부분이 도심지다. 승진 대상자의 정체 현상은 물론 전보지까지 크게 줄어들 뿐 아니라 심각한 인사 불균형까지 초래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도 교육청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신청한 것을 무조건 제한할 수 없었다”며 교장초빙제를 신청한 52개 초등학교 중 ‘특지’를 제외한 47개교를 허용했다고 한다. 이번에 교장초빙제가 허용된 47개교는 예년의 2~10명 내외이던 것에 비해 큰 폭으로 확대된 데다 농촌 등 근무여건이 열악한 ‘병지’는 2개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도심지역의 ‘갑지’와 ‘을지’다. 이처럼 교장초빙제가 늘어난 것은 지난 1998년 교원 정년단축에 따라 조기에 승진한 교장들의 정년이 멀었는데도 4년 임기가 곧 마감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장초빙제 신청학교가 근무여건이 좋은 도심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교장초빙제 학교 대부분이 기존 교장을 재임명하는 관례를 감안하면 교장임기연장과 함께 좋은 조건의 학교에 장기간 근무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만일 임기가 끝난 교장들이 도서벽지 학교에 교장초빙제를 신청했다면 큰 반발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정서가 뒤따른다. 교장초빙제를 신청한 교장들이 용단을 보인다면 교장직 독점이라는 여론을 잠재울 뿐 아니라 후배 교사들에게 승진과 영예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선례를 남길 것이다. 교장이 임기를 훌륭하게 마치고 평교사의 신분으로 교실에서 학생들과 마주 한다면 모두에게 칭송 받을 것이다. 정년을 앞두고 교실에서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전임 교장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지방분권 대토론회와 정부 발표의 방향

경기도의회가 지난 4일 제6대 의회 개원 1주년 기념으로 가진 ‘지방분권화와 지방의회 발전 대토론회’는 매우 유익하고 시의적절 했다. 같은 날 대통령 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지방분권의 청사진인 ‘지방분권 로드 맵’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 역시 대토론회에서 거론된 지방분권 실천을 위한 지방자치 관련법 개정방향 지방의회 역할과 의정제도 개선 지방의회의 지방재정 통제권 강화방안 등 3개 섹션의 주제와 대체로 맥락을 같이 했다. 지방분권의 개념은 매우 깊고 폭넓어 그 구현의 범위가 방대하고 방법이 난해하긴 하나 지방분권의 축을 지방자치의 틀 안으로 모아야 한다는 근간은 분명하다. 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책임 강화가 곧 지방분권인 것이다. 이 점에서 중앙의 행정·재정·입법권을 대폭 지방에 이양키로 하고 이를 위한 법제 정비에 나서기로 한 것은 시급성을 촉구하면서 환영한다. 국고보조금을 축소하는 대신 교부세율을 단계적으로 올리는 것은 그렇다 하여도, 국세 대비 지방세의 비율을 높이기로 한 것은 지방 자주재원 확보의 근본 대책인 세제개편을 전제한다고 보아 기대가 크다. 이밖에 위원회가 제시한 주민투표제·주민소환제 또한 대토론회에서 같은 방향으로 논의되었다. 다만 자치경찰·교육자치 역시 위원회 발표와 마찬가지로 대토론회의 논의가 있었던대로 원칙은 공감하나 방법에 있어서는 시일을 두고 다 같이 더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지방분권은 자치단체의 차별화·정책화로 자치단체간의 경쟁을 유발해야 한다. 지금처럼 낡은 중앙통제의 획일적 지방자치 형태는 이젠 벗어 던질 때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차별화·정책화된 조례 제정이 보다 자유로워야 한다. 조례 제정의 위임 상한선을 파격적으로 높여 이를 저해하는 모든 법령은 폐기해야 지방의 입법권 확대가 실질화 한다. 행정권 이양도 전처럼 껍데기만 넘겨주는 ‘검불위임’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과대 비만증이 해소되고 지방정부의 영양 결핍증이 해결될 수 있는 근원적 실질 이양이 요구된다. 중앙정부는 기득권 고수 관념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새로운 인식과 함께 국가경영에만 몰두해야 한다. 이같은 획기적 지방분권 강화만이 이 시대에 부응하는 효율적 국리민복의 증진을 도모하는 길이다.

서예 대필

소문으로 끊임없이 나돌던 서예계의 ‘대필 비리 ’가 또 발생했다. 지난 1993년 서예대전 비리의 복사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착잡하다. 이번에 비리가 드러난 대한민국 서예대전과 대한민국 서예전람회는 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와 한국서가협회가 각각 주최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서예공모전이다. 1982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없어진 뒤 매년 봄·가을로 주최돼온 이들 공모전은 전체 출품작품수의 20 %를 입선작으로 뽑고, 입선작의 10 % 내에서 특선을 뽑는다. 현재 서예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대학에 설치 학과가 거의 없고 서단에 등단하는 데도 공모전이 유일한 인증방식이다. 더구나 이들 공모전에서의 입상 실적에 따라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으로 신분상승은 물론 개인서실을 열 수 있다. 출품자가 심사위원의 제자로 들어가거나 심사위원의 작품을 고가로 매입하는 먹이사슬 관계가 근절되지 않는 큰 이유다. 아무리 그렇기로소니 공모전을 열면서 주최측 주요 인사가 돈을 받고 글씨를 대신 써주고 게다가 그 작품을 입상작으로 선정한다니 서예의 기본정신 파괴는 물론 ‘서예가를 팔고 사는’ 일탈행위 아닌가.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는 욕을 그래서 먹는다. 이들은 또 출품작을 대필, 심사등을 하면서 입상작 수백여점의 표구 제작 소개료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집행부와 친분이 있는 특정작가 중심으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니 입선자 명단에 들어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일부 출품자들이 심사위원으로 자주 선정되는 작가들을 미리 찾아가 그들의 작품을 사주거나 향응을 제공했는데 안되면 이상한 일이다. 지금 한국 서단에는 전국적 또는 지방적인 공모전이 상당수에 이른다. 문제는 이번 파문으로 인해 다른 서예공모전도 의혹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일부 서예가들의 제자 챙기기와 인맥 확장, 심사위원과 출품자의 결탁, 심사위원 위촉 및 심사가 투명하고 공개적이지 못하면 한국 서단의 오명은 씻겨지지 않는다. 서단의 뼈 아픈 자체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기고/역사 (歷史)의 교훈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 삼거리에서 숭의전으로 넘어가는 고개 즉 염창골 고개를 넘어서면 왼편에 초라한 무덤이 하나 있다. 사실 그 앞에 아무렇게나 세워 놓은 비석만 아니면 누가 무덤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 무덤은 초대 숭의전부사(崇義殿副使)를 지낸 왕순례(王循禮)의 무덤이다. 필자는 숭의전을 오갈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왕순례의 무덤에서 인간사 무상함을 느낀다. 태조 왕건의 후손들이 건재한데도 불구하고 저기 누워 계시는 저 분은 죽어서도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일까? 살아서는 많은 부귀영화를 누렸던 분인데… 조선왕조실록에서 왕순례에 관한 기록을 읽다 보면은 한 인간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를 보는 것 같다. 고려가 망하고 나서 충청도 공주에 숨어살던 왕우지(王牛知)는 어느날 갑자기 자신들을 핍박하던 조선의 왕(문종 2년· 1452) 앞에 불려나가 이름을 왕순례라 고치고 종3품 벼슬의 숭의전부사에 임명된다. 나라에서 숭의전이 있는 마전군에다 집을 지어주고, 양가의 딸과 혼인을 시키고 노비 15명에 제사를 도와줄 수복(守僕) 6명과 기름진 땅 10결(약 30,000평)을 받는 등 그야말로 금시발복(今時發福)의 편안한 삶을 살게된다. 그렇게 7년을 잘 보내고 있는데 나라에서 갑자기 숭의전부사의 벼슬을 거두어 간다(세조 7년·1459). 벼슬을 앗아간 이유가 “본처를 박대하고 첩을 매우 사랑하고 있으며 또 거주하는 백성을 침학하고 방자하게 행동하면서 거리낌이 없으니 공경하고 근신하는 뜻이 조금도 없습니다. 청컨대 사헌부로 하여금 그 첩을 이혼시키고 왕순례의 직첩을 회수하여 징벌하도록 하소서.(세조 7년·1459)” 세조는 왕순례로 부터 벼슬을 거두었다가 4년 뒤에 벼슬을 돌려준다. 그리고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불러올려 다독 거리면서 벼슬을 종3품에서 종2품으로 올려주기도 한다. 세조에 이은 성종 때에도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한양으로 불러 올려 빈객의 예우를 다해주는 등 영화를 누리게 되지만 왕순례는 성종 16년(1485)6월에 죽는다. 그가 묻힌 묘는 몇 백년이 흐르는 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최근에 와서 고갯길을 확장하면서 묘비가 발견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필자는 왕순례의 경우를 보며 우리네 선조들이 그토록 역사를 두려워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를 통하여 후대의 평가를 받고 동시에 현재의 삶속에 후대 사람들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역사를 두려워 했던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어느날 갑자기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 왕순례가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생각하며 선대를 공경하고 신중히 행동하였다면 권력을 남용하고 백성을 괴롭히며 안하무인격으로 방자하게 행동한 사실이 역사서(조선왕조실록)에 고스란히 기록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의 무덤이 오늘날과 같이 초야에 묻혀 돌보는 이 없는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교훈은 비단 왕순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몇 백년 아니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교훈이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러한 역사의 교훈을 염두에 두고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최병수.연천문화원 사무국장

천자춘추/법과 여론사이

몇년 전인가, 미국 서부의 새너제이 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시립 도서관의 정기 간행물 열람대에 놓인 ‘플레이 보이’, ‘펜트하우스’ 등의 성인용 포르노 잡지 정기 간행물들이 인기를 누리는데, 문제는 독자들이 주로 미성년자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머큐리’신문은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힙입어 연일 특집기사로, 사설로 시립 도서관을 질타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이 시민의 자녀들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신문은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한 시립 도서관의 입장은 아주 당당했다. “도서관당국은 최근의 일부 잡지와 관련된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이 문제는 ‘구입도서선정위원회’의 다음 정례회의에서 충분히 검토될 것이다. 위원회의 별도 결정이 있기 전까지 문제가 된 성인 잡지들은 그대로 열람대에 놓여 있을 것이다.” 시립 도서관장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서관에 비치하는 책의 선정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그때의 여론에 의해서 원칙이 무너질 경우에 우리 사회가 입게되는 폐해를 아이들이 포르노 잡지를 볼 때의 악영향보다 훨씬 더 크고 심각한 것이다. 공산주의나 반기독교적 서적들의 도서관 반입금지 조치가 우리사회에 결코 유익하지 않았다는 교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병역의무는 회피한 채 국내에서 가수활동을 하려는 유승준이라는 젊은이의 문제로 시끄럽다. 물론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은 그의 입국불허 방침에 찬성의사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그의 입국을 불허할 정당한 법적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론을 앞세워 그의 입국을 막아 옳은가. 유승준이 입국하여 그전 같은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여론 재판은 옳지 않은 것이며 여론은 정당한 절차에 의해서 제도와 법으로 구체화 되어야 한다. 법에 의하지 않고 여론으로 애매하게 응징할 경우에 우리 사회가 입는 피해는 그들을 처벌하지 못해서 우리 사회가 입는 피해보다 아마도 훨씬 더 클 것이다. /오병익.경기도의회 경제투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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