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수수료 장사’에만 급급하고 있어 고객들의 원성이 높다. 7월중 똑 같은 수준으로 각종 수수료를 올려 담합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소액송금 수수료를 지방은행에 비해 최고 3배까지 받고 있어 주먹구구식 측면도 있다. 시중은행들이 수익부진을 자체 구조조정이나 영업비 절감 등의 자구노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인건비 등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 자동화기기 이용 수수료 대폭 인상 등을 통해 고객들의 호주머니에서 메우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달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은행연합회의 금리·수수료 공시사이트(www.kfb.or.kr)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10만원 이하의 송금 때 수수료를 지방은행에 비해 최고 3배까지 더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10만원을 은행 영업시간 이후 자동화기기(CD·ATM)로 다른 은행으로 보낼 경우 수수료가 부산은행은 600원이지만 신한·한미·외환·조흥은행은 1천800원으로 3배나 된다. 영업시간 중에 자동화 기기로 송금할 경우 수수료도 은행간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은행창구 이용때 수수료는 경남·광주 은행 등이 1천원이지만 조흥은행은 3천원으로 3배 차이가 난다. 국민·기업·신한·외환·우리·제일·하나·한미은행도 2천원으로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은행간 예·적금 금리차도 최고 연 1.2%에 이른다. 6개월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3.2∼연4.4%의 차이를 보였고 6개월 정기적금 금리 차는 최저 연3.7∼최고 연4.4%이다. 더구나 시중은행들은 지난 4∼5월 연이어 창구 및 자동화기기 수수료를 인상한 데 이어 7월 들어 또 일제히 수수료를 올리고 있다. 국민은행은 7월 중순부터 자행 고객이 타행 자동화기기를 이용할 때 내는 수수료를 종전의 700원에서 800원으로 인상키로 했다. 제일·하나·신한·외환은행 등도 7월중으로 국민은행과 같은 수준으로 수수료를 올릴 방침이어서 은행간 담합의혹에 대한 비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은행들이 전통적인 예대금리 차이를 통한 수익보다는 올 들어 두번이나 각종 수수료를 인상하여 수익기반을 넓히는 것은 잘못된 경영방침이다.
이제 그런 말들을 안하면 좋겠다. 이성이 아닌 감성에 치우친 언사는 듣기에도 거북하다.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노동권 유린, 노동계 탄압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아무래도 이성적 대처라고 할 수 없다. 집단행위로 저지른 불법에 귀납되는 응징을 노동권 유린이니, 노동계 탄압이니 한다고 해서 그렇게 곧이 곧대로 들을 민중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근래엔 두 노총이 강성 경쟁 양상으로 치달은 감마저 없지 않았다. 상급 노조의 그같은 무모한 영웅심리가 일선 노조와 조합원들을 얼마나 희생시키고 또 피곤하게 했는가 하고, 한편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사회생활 중 개인 간에도 불법으로 피해를 끼치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진다. 하물며 거대한 조직과 힘을 지닌 노동계의 불법행위엔 더 말할 게 없다. 국가사회와 기업에 법 절차을 일탈한 치명적 손상을 입히고도 부득이하다고 보는 독선적 사고는 심히 더 이상 용납하기가 어렵다. 노동계 지도부가 흔히 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키기가 어렵다고들 말하는 것은 강변이다. 노동관련 법규가 국제수준인 것은 객관적 정평이다. 국가 정책에 물리적으로 항거하고 기업 자본에 직접적으로 간여하러 드는 노동운동의 궤도 이탈, 노동혁명이 아니라면 법질서를 지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노조활동이 또 민생경제 위협에 대해 인내성의 한계를 넘어서면 공연한 집단이익으로 변질된다. 그렇다고 노조의 무력화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본의 오만에 부단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건강한 노조활동, 건실한 노동운동으로 근로자의 권익이 신장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떼를 쓰기보다는 매섭게 따져가며, 법질서를 지키는 것이 진정 힘있는 노조활동이고 노동운동이라고 믿는다. 노동법률문화가 서릿발처럼 살아있는 마당에 노동운동의 상투적 전투 태세가 과연 이 시대에 맞는가도 고려해 봐야 한다. ‘쟁취’의 용어 같은 살벌한 연출보다 ‘협상’의 개념으로 강인함과 유연성을 살리는 시대적 전환을 촉구한다. 아무튼 신 노사문화 정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영·미식이냐 유럽식이냐 하는 것은 더 두고 논의돼야 하겠지만, 이제 ‘한국식’은 어떻게든 탈피해야 하는 것만은 부인될 수 없다. 양대 노총의 용기있는 도덕적 각성을 기대한다.
그는 밤 무대의 악사다. 오르가니스트다. 전자오르간이나 연주하면 그만이라 할지 모르지만 보통 악사가 아니다. 박사다. 그것도 노동운동이 전공분야에 속하는 그런 박사다. ‘박사악사’의 눈엔 그들의 외침이 공허하게만 들렸다. 무슨 연금 승계 등을 요구하며 가지각색의 깃발에 적힌 갖가지 구호, 목이 터져라 하고 핏대를 돋우는 모습들이 도시 이상하게만 보였다. 법 절차도 없고 명분도 없이 제멋대로 사회공익을 유린하는 이기적 패거리 작당으로 밖에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의 발걸음은 그날 따라 더 무거웠다. 아내를 대할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피땀 어린 내조로 명문 대학에서 학문 최고의 학위를 따고도 사회적 정착을 못하는 방황이 아내에게 부끄럽기도 했다. 시간강사다. 그런 자신을 보따리 장사꾼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K대학, S여대, P대학, D대학 등 네군데에 강의를 나간다. 그래봐야 모두 합쳐 200만원을 받는다. 그중 세군데는 지방 캠퍼스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충당하는 승용차 휘발유 값을 제하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다. ‘교수초빙’ 광고를 보고 원서도 내보았다. 아니다. 채용 기준은 학문적 실력이나 소양이 아니고 돈이었다. 그것도 최저가격 1억원을 시작으로 하여 입찰을 붙이는 것이었다. ‘초빙’이 아닌 ‘교수직 경매입찰’을 포기하곤 했다. 자치단체 같은데서 특정직을 공모하는 걸 보고 응모도 해보았다. 역시 아니다. 발령자를 미리 내정해둔 허울 뿐인 공모는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었다. 그의 알찬 이력의 적성, 발군의 실력, 이런 객관적 잣대도 정실 채용 앞에서는 무력하였다. 그래서 부업 아닌 부업으로 시작한 것이 밤 무대의 악사다. 학생시절 부터 악기엔 소질이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음악학원에서 어렵지 않게 솜씨를 익힐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전자오르가니스트로 밤이면 예술가 타입의 가발을 쓰고 무대에 섰다. 그건 우연이었다. ‘박사’의 ‘악사’데뷔는 우연이었으나 알고 보면 그만이 아니다. 부업을 귀띔해준 것은 역시 같은 시간강사였다. 그를 딱하게 보다 못한 동료가 자기도 악사 부업을 한다면서 일깨워 주어 막상 시작하고 보니 ‘시간강사 악사’가 한 둘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다만 서로간에 체면이 있고 해서 굳이 밝히지 않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 어렵게 됐다. 불경기의 장기화로 미사리 카페촌 같은데도 찬바람이 불어 문 닫는 업소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부업 업소 역시 휴업하게 되어 악사 자리마저 실직한 그의 귀가길 걸음이 무거워 진 것이다. 악사 소득이 네군데 대학의 시간강사 강의료보다 많았던 터라 여간 큰 타격이 아닌 것이다. 물론 아내에겐 처음 음악학원에 다닐적 부터 철저한 비밀이었다. 박사 학위까지 따게 해놓으니까 부업이든 무엇이든 간에 기껏 밤무대 악사냐 하는 실망을 아내에게 차마 끼쳐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름방학엔 시간강사 강의가 없으므로 쥐꼬리 만한 강의료도 그나마 없게된다. 시간강사가 주업일 수 있을는 지는 모르지만 어떻든 주업·부업을 다 잃은 ‘박사악사’의 시간강사 마음은 착잡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차라리 길거리에서 노운동이랍시고 되지도 않은 말로 악다구니를 벌이는 그 사람들의 직장, 그 자리가 정말 부러웠다면서 소주 잔을 단 숨에 들이켰다. 희극인가? 웃겨도 너무 웃긴다. 비극인가? 비참해도 너무 잔인하다. 도대체가 열심히 살려고 해도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런 한쪽에서는 자기네 직장을 엽기적으로 헐뜯고 매도한다. 세상을 좀 더 바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약간의 늦잠, 삶의 여백 속에 언뜻언뜻 스치곤 하던 탁 트인 들판을 가슴 가득히 담아보고, 별 생각 없이 의정부시 제일시장 길도 걸어 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한가한 토요일이기에 누릴 수 있었던 호사였다. 게다가 영화 한편에 눈물도 흘려 보았으니, 최소한 내 기준에서의 문화적 충족감을 만끽한 하루였다. 혹자가 치기(稚氣)어린 값싼 감성으로 치부할 할 수 있는 눈물을 흘리게 한 영화는, 오종록 감독의 처녀 연출 작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이다. 태일의 첫사랑 일매를 사수하는 멜로물을 코믹하게 만든 작품이다. ‘生則必死(생즉필사), 사즉필생(死則必生)’의 자세로 첫사랑을 사수하기위한 태일의 열정과 그 사랑을 숭고하게 받아주는 일매와의 사랑이야기다. 전국 30만등인 태일에게 일매의 아버이자 자신의 학교 학생부장인 영달이 전국 3천등 안에 드는 것에 이어,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일매를 시집보내겠다는 제의에 코피를 쏟는 그 진지한 모습에 눈물을 흘린 것이다.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에 갈채를 대신하는 눈물이었을 게다. 이런 눈물이라면 ‘눈물도 참 흔하다’는 지청구를 들어도 할 수 없지 싶다. 오늘날의 현실 속에는 원하는 것을 얻고자 취하는 양태도 퍽이나 다양하다.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눈물은 커녕 근심만 앞서게 하는 것이 있다. 철도파업을 비롯한 노동단체들의 불법·폭력시위가 그것이다. 정부의 경찰력 투입에 대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합세, 임단투(賃團鬪)와 대(對)정부 투쟁을 병행한다니 설상가상이다. 국민을 볼모로 자신들이 취하고자 하는 것만, 취하면 된다는 식의 모습에는 결코 눈물을 보낼 수 없다. 더욱이 지난 4월 철도구조개혁안 협상 때 노조의 뜻을 대폭 수용, 철도 민영화에서 공사화로, 철도청 직원 선별적 고용승계에서 100%고용승계로, 정년보장 명문화로 추진 목표를 대폭 낮췄단다. 그런데도 철도노조 측은 공무원연금을 계속 받아야겠다고 한다니, 철도노조 측의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행태는 노조문화를 퇴보시키는 것 같아 안타까워 눈물이 난다. /백운화.향토사학자
동존상잔의 6·25는 53주년의 세월이 지나고 보훈의 달이 지났으나 상처는 여전하다. 국립묘지에 누워있는 10만 호국영령들, 아직도 보훈병원에서 신음하고 있는 500여명의 6·25 참전 전상 용사들. 월남 참전용사들 그들은 나라의 부름을 받아 나라를 지켰으며 이국 월남땅 전쟁터에서 자유를 지키며 싸우다 지금 그 참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단칸방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힘들어하고 있는 독립유공자와 그 가족들, 8·15 해방후 이 나라를 송두리째 공산화하려는 공산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살생·방화·테러·파업 등으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던 공산프락치들, 이들과 싸워 자유민주주의 나라를 건국하는데 신명을 바치고 산화한 1만8천여명의 민간 반공열사들, 이들은 명예를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는 살만하니까 평등의 민주화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동족끼리 통일을 해야한다고 하면서 목숨걸고 나라를 지키고 자유를 지켜 경제성장을 이룬 사람들을 보수주의니 반통일주의자들이니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6·25 무력남침을 감행한 집단들에게 같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에 수십억 달러를 건네주고도 모자라 쌀과 비료 수백만톤과 각종 의약품 등을 주었다. 전교조와 조흥은행 파업을 시작으로 철도파업 민노총과 한국노총 간 경쟁 하면서 줄줄이 이어지는 파업, 자고 나면 벌어지는 이익집단들과 노조파업의 대란은 잠시 쉬었다가 해도 될 것인데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 재산 등 모든 것을 바친 그들과 국민들에게는 죄송한 마음도 없는가. 월드컵 4강의 신화는 거저 된 것이 아니고 질서정연하고 튼튼한 경제 그 바탕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난마와 같은 현실이 너무 걱정된다. /이경순.(사)건국회 경기도지회장
{Image}
인제대학교 서울 백병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기일보사공동후원으로 선천적 심실중격결손중에 신음하고 있는 어린이 4명이 수술을 받게된 것은 아름다운 이웃 사랑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각종 희귀병, 난치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희귀·난치병은 막대한 치료비가 들어 환자는 물론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다. ‘우리는 이웃’을 슬로건으로 하여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이웃을 사랑하는 풍부한 사회적인 재원이 마련돼 많은 이웃들을 곤경에서 구하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사회다. 작은 힘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살리는 어린이 대상의 온정 사업이 사회 각계에 파급되어 많은 어린이들이 구제되기를 간곡히 희망한다.
정부가 철도노조의 불법파업 후속 조치로 응분의 강경 조치를 취하는 것은 심히 적절하다. 파업은 자진해서 끝냈다. 하지만 파업을 끝냈다고 하여 불법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과거의 그같은 관용이 되레 불법파업의 악순환을 가져온 사실을 뼈아프게 유념해야 한다. 다중의 위협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된다. 상투적 그런 불법행위에 이젠 그런 게 통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해 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국민적 요구다. 사법조치, 직위해제, 정직 이상의 징계를 100여명, 6백여명, 수천명씩 가하고자 하는 강경한 의지는 이래서 환영받을 만 하다. 그에 해당하는 인원 수가 얼마이든 간에 결코 지나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사회정서다.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현안의 새로운 노사문화·노동운동문화의 정립을 위해서도 정부의 강력한 후속조치 방침이 조금이라도 수그러 들어서는 안된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이 민사상의 손해배상소송 청구에 적정액을 고려하라는 말엔 일리가 있다. 철도노조가 자진 복귀했다 해서 면책을 주장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 나흘간의 불법파업으로 국가사회에 끼친 손실은 영업 손실액 91억원과 비할바가 아니다. 불법행위로 국가사회와 국민에게 심대한 손해를 입히고도 노조가 한 일이므로 괜찮다고 보는 것은 몰염치한 강변이다. 마치 치외법권의 성역처럼 여기는 노조의 그같은 못된 인식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정부는 철도노조의 불법파업에 법과 원칙에 따라 의연하게 잘 대응한 것과 마찬가지로, 후속조치 역시 법과 원칙에 따라 의연하게 처리해주길 거듭 당부한다.
경기일보·경기케이블 TV·한중일보 공동주최, 서울중국학센터(SCCS) 주관으로 지난 1일 고양서 성황리에 가진 ‘동북아시대의 차이나타운’ 워크숍은 그 의미가 매우 깊다. 고양시 일산에 추진하는 ‘차이나타운’건설은 경기도가 개성공단 착공을 계기로 계획한 대북교류사업과 함께 동북아경제 중심 추진의 탄력적 요소다. 중국과의 교류협력강화, 북의 교통요로를 배제한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은 그 효율적 면에서 상상할 수가 없다. 일산 ‘차이나타운’건설은 이 점에서 동북아의 전진 기지로, 남북 교류의 교두보로 의미 깊은 적정 지역이다. 지역사회의 국제도시화로 세계화의 도약대가 된다. 지역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효과 또한 높다. 한국화교 100년을 맞아 논의되는 차이나타운 건설에 중국인들 역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차이나타운’이 건설되면 중국 베이징에도 ‘코리아타운’이 건설될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이 있다. 특히 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 주석의 모교인 칭화대학이 ‘차이나타운’과 무관하지 않은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는 7일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 앞으로 ‘차이나타운’건설에 두 나라간에 좀 더 구체적 논의의 진척이 있을 공산이 높다. 한·중협력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다. 중국과 상호협력하지 않고, 중국과 상호교류하지 않고는 서로가 세계를 도모하기가 어려운 입장이다. 무엇보다 중국을 알아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차이나타운’은 바로 이같은 상호간 이해협력의 상징이면서 협력교류의 실질적 마당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준비는 지금부터다. 동북아 경제 공동체의 개방형이고, 미래 지향의 웅지가 담긴 청사진을 만드는 것이 시대적 요구다.
서울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골짜기에서 시작하여 종로·중구를 경계로 흘러 중랑천을 통해 한강으로 유입하는 청계천을 청풍계천, 옥류동천, 누각동천이라고도 했다. 자연하천 그대로였던 옛적엔 여름철이면 홍수가 심하곤 했던 것을 조선조 태종11년(1411년)의 수로공사에 이어 18세기 중엽 영조때 준설과 함께 대대적인 석축공사를 하였다. 1950년대의 청계천은 한국전쟁 직후 하천 둑의 길가에서 하천쪽으로 말뚝을 세워 올린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은 채 즐비하여 무허가 주점 등이 성업을 이루기도 했다. 1958년 복개가 시작하여 1961년 완공된 복개공사로 폭 50m의 청계대로가 생기면서, 광교 입구~청계8가 사이에 건설된 청계고가도로가 이젠 또 한 시대 속으로 사라진다. 어제 시작된 청계고가도로가 헐리면서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공사가 본격화 했다. 청계천 복원은 곧 자연의 복원이다. 서울 도심의 거대한 하수구로 변질된 청계천이 복개의 부스럼 딱지를 떼어내면 당장은 흉물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천 정화작업으로 옛 청계천 같은 맑은 물이 흐르게 되면 광교 수표교 관수교 오간수교 등 그 옛날 정취 높았던 자연친화의 청계천 주변 경관이 재생할 것을 기대해 본다. 기왕 어렵고 어려운 청계천 복원에 나섰으면 아낙네들이 빨래하고 하동들이 멱을 감던 그같은 청계천으로 재현해야 보람이 있다. 청계천 복원을 말하다 보니 수원천 생각이 떠오른다. 광교산에서 발원된 수원천 또한 도심 복판을 가로 질러 흐른다. 영동시장 뒤 일부는 청계천처럼 복개도 하였다. 이 복개가 문제가 되어 교통소통을 위해 더 계속해 복개해야 한다느니, 이미 복개된 부분도 헐어 수원천을 살려야 한다느니 하여 한동안 논의가 분분하였다. 수원천 역시 전쟁 직후 판잣집이 즐비했던 게 어쩌면 청계천 전철을 빼 닮았는지 모른다. 건천화 해가는 수원천에 사시사철 맑은물이 가득히 흘러 고기가 뛰놀고 하동들이 멱 감을 수 있는 그런 수원천 복원을 상상해 본다. /임양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