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무방비, 장마철이 불안하다

지난해 태풍 ‘루사’로 입은 수해가 아직 복구도 안됐는데 태풍 ‘소델로’가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나와 국민들이 또 불안에 빠졌다. 특히 수해를 입었던 지역이나 침수예상지역 주민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이렇게 수해가 해마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치밀한 사전 예방 부족과 복구공사 지연 등에 그 원인이 있다. 이는 재해,재난 방지를 위한 예산이 대부분 사후약방문 격으로 배정되는 탓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수해 복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곳의 대부분이 수해를 입은 지 수개월이 지난 뒤인 이듬해 3월쯤에서야 공사에 들어 갔다. 예산 확보가 안됐거나 늦게 집행됐다. 주요 하천의 경우 100 ~ 200년 강우 빈도에 맞춰 하천 단면과 제방 높이를 확보하고, 주변 저지대 하수관은 5 ~ 20년의 강우 빈도에 맞춰 관의 크기를 늘려줘야 하는데도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당장의 복구 공사 마무리에만 급급했다. 게다가 올해는 지난해 ‘태풍’ 루사로 인한 피해가 워낙 커 복구해야 할 지역이 넓어지는 등 상황이 더 나빠졌다. 17일 현재 도로·교량 등 전국 공공시설의 복구 대상 3만9천524곳 가운데 복구율이 70.8%에 머물고 있어 폭우가 쏟아지면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수해를 입은 공공시설에 대한 복구작업을 벌여 전체 1천733건 중 1천700건이 마무리 됐고 33건이 공사중이다. 특히 도가 축대와 옹벽, 절개지 등의 재난 취약 시설물 1천636곳에 대해 안전 점검을 벌인 결과, 30.9%인 506곳에서 910건이나 지적사항이 발견됐다. 상습침수 등으로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된 17곳은 배수펌프장이나 하천 제방 공사 등을 하고 있지만 장마철 이전에는 준공이 어려운 상태여서 큰 피해가 예상된다. 인천도 수해 복구율이 60%에 불과해 특단의 대비책이 요구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주민들은 비가 적게 오기만을 기대하고 있는 딱한 처지에 놓였다. 가장 기본적인 예산 배정을 늦게 한 정부가 한없이 답답하지만 우선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된 곳의 보수정비공사만이라도 빨리 완공해야 한다. 기상이변 등으로 피해가 막급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구호 및 복구 등에도 만전을 기할 것을 촉구해 둔다.

카드빚 범죄, 강력 대처를

신용카드 빚으로 인하여 각종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부모살인, 형제살인 또는 친지살인의 끔찍한 범죄는 대부분 신용카드 빚으로 인하여 발생하고 있다. 지난 15일 경기도 부천에서 발생한 조모와 어머니 살해범도 카드 빚 4천여만원을 부모에게 대신 갚아 달라고 하다 거절당하자 살해하였으며, 아버지까지 살해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아버지 살해계획이 실패하자 천연덕스럽게 PC방에 가서 여자친구에게 계획대로 아버지를 살해하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이메일까지 보냈다고 하니 이런 패륜아에게 무슨 말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이런 극도의 패륜적 카드빚 범죄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나를 실감하게 되며, 자식들의 카드 빚 대납에 시달리고 있는 부모들은 혹시나 하면서 불안해하고 있다. 또한 카드 빚이 많은 신용불량자들이 어린 학생들은 물론 부녀자들을 납치하여 돈을 뜯어 낸 후 살해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어 학부모들의 불안 역시 대단하다. 이런 현상이 전국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용카드 빚으로 인한 범죄가 증가하고 또한 범죄 수법도 더욱 흉악해지고 있는데도 당국은 물론 사회전체가 이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조속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특히 최근 금융감독원 통계에 의하면 카드연체가 전달보다 무려 16.9%로 더욱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카드빚 범죄의 증가 가능성은 더욱 높다. 카드빚 연체자들은 카드 회사들의 연체 대금 회수에 더욱 압박을 받을 것이며 이 때문에 연체자들의 범죄 유혹 역시 증가할 것이 예상되어 더욱 사회방어가 요구된다. 신용카드 빚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범사회적인 차원에서 강구해야 된다. 신용카드 빚에 대한 제일차적인 책임은 신용카드 소유인 개개인에게 있으나 카드회사나 정부 당국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개인의 신용도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돈놀이에만 급급, 카드 빚을 양산시킨 카드 회사는 카드 대금 회수만 몰두하여 갖가지 압력을 가해 카드 연체자들을 괴롭히기 보다는 장기적 차원에서 연체 대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된다.

영화산업 ‘수구주의’ 탈피해야

국내 영화계의 수구주의적 생각은 아무래도 옳다고 보기가 어렵다. 그동안 줄곧 스크린쿼터의 보호막 속에서 성장해 왔으면 이젠 능히 자생력을 갖출 때가 됐다. 국내 영화관의 방화상영 의무 일수를 연간 106일에서 73일로 줄인다고 한국 영화산업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껏 그만한 경쟁력을 지니지 못했다면 그것은 영화계의 책임이긴하나 그토록 허약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을 두고 미국측이 제기한 스크린쿼터 이의에 문화는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영화인들의 생각 또한 맞지 않다. 영화산업 역시 엄연한 경제행위의 범주에 든다. 새삼 대미 수출액 330억달러의 수출 의존도와 BIT 체결에 따른 40억달러의 투자유치 효과를 말하는 정부측 설명이 아니어도 영화산업만이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것은 시대 착오다. 국제사회에 개방되지 않은 산업분야가 없다. 농·수산업도 완전히 노출되고 있다. 심지어 대학도 조만간 개방되어 경쟁관계에 들어간다. 영화도 미국 영화만 더 들어오게 되는 게 아니다. 지난 한·일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일본 대중문화 확대 도입의 후속조치가 이루어지면 ‘짠짠 바라바라’ 사무라이(武士) 영화도 들어올 것이다. 국가경영을 위한 총체적 대외정책에 의해 거론되는 스크린쿼터에 대해 국수주의적 애국심만을 고집하는 것이 애국일 수는 없다. 영화계에서 말하는 정신문화의 혼은 영화인들의 의지가 있으면 더 개방된 영화산업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꽃피울 수가 있고 또 그러한 경쟁력을 보일 때 더욱 빛을 뿜는다. 어쩌다가 스크린쿼터는 영화인들의 집단이기주의라는 말까지 나왔는지 참으로 답답하지만, 스크린쿼터는 방화의 생명선이므로 절대 포기못한다는 영화인들 주장이 얼마나 사회정서에 합치될 것인지는 심히 의문이다. 방화상영 의무 일수를 없애는 것도 아니고 줄이자는 것이다. 또 이에 문제가 있으면 탄력적인 방안을 강구해 보자는 것이다. 이런데도 무작정 현행 스크린쿼터제만을 우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정부의 조속한 단안을 촉구해 둔다.

팔당호 감사조치 이행, 확인하고 있나

팔당호의 수질이 난개발로 인해 오염·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은 그동안 수 십차례 있었다. 감사원의 감사를 비롯, 환경부, 경기도 등의 수질관리에 대한 감사도 많았다. 하지만 솜방망이같은 조치에 그치거나 엄포수준이어서 도대체 법 무서운 줄을 모른다. 더구나 팔당호에 인접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수질오염 및 자연환경 훼손을 조장하고 있다면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2000년 제정된 한강수계 수질개선법은 팔당호 주변지역을 모두 수변지역으로 지정, 오염시설의 건축물 설치를 제한했다.그러나 용인시와 광주시는 2000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수질보전구역 안에 대부분 면적 300㎡ 이상의 대형공장 설립을 무려 60건이나 승인해 주었다. 양평군 등 3개 시·군도 도시기반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팔당호 주변지역에 3만㎡ 이상의 대규모 전원주택 단지 64개의 건축허가를 내줬다. 이로 인해 전원주택 단지 주변에는 새로운 도로를 낸다는 구실로 산림이 마구 훼손되고 난개발로 인해 수질이 크게 오염되고 있다. 이렇게 대규모 건축허가가 무차별 남발되는 이유는 팔당호 수변지역은 여관, 음식점 등은 개발이 제한돼 있지만 이 용도만 피하면 병원, 연수시설, 주택단지 등은 마음대로 지을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팔당호로 많은 물을 방류하고 있는 충주조정지댐 상류지역, 의암댐 상류지역 등 남·북한강 지천 13곳 주변지역은 아직 수변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아 난개발이 극심한 상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느슨한 단속망은 팔당호 수질 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광주시 등 시·군은 팔당호 인근에 육상양식어업들이 오·폐수를 방출하는데도 수질관리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단속을 하지 않고 있다. 양평군도 수변구역 안의 오염건축물에 대해 오수처리시설을 건물주가 직접 관리하도록 방치, 오·폐수를 정화하지 않은 채 그대로 상수원으로 방류하는 실정이다. 감사원이 올해초 팔당상수원에 인접한 6개 시·군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 139건의 부당 건축허가를 적발해 허가취소와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고, 관계 공무원들을 징계토록 해당 지자체에 통보한 조치가 이행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경의선, 연결도 좋지만 개통을

분단의 철조망도 지뢰도 없다. 엊그제 군사분계선서 가진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연결식은 역시 겨레는 오직 하나임을 거듭 확인해주는 역사적 대행사다. 실로 장구한 세월을 지나 52년만에 포옹하는 민족의 환희며 감격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던 목 메인 철마의 절규가 7천만 동포의 염원과 함께 소원을 이루게 됐다. 이런데도 가슴 벅찬 이 기쁨이 현실적으로 체감되지 않는 연유가 또한 한 없이 가슴 아프다. 당장 개통되지 않은 탓만은 아니다. 경의선은 남측 지역은 완료됐으나 북측 지역은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2.2㎞를 제외하고 개성역까지 13.1㎞에 대한 궤도 부설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 때문이 아니다. 동해선 역시 남과 북이 MDL로부터 각각 100m와 400m 구간만 궤도 부설작업을 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경의선은 오는 9월말, 동해선은 올해 말이면 개통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전망을 믿고 싶은데도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불안하다. 남쪽은 6·15 공동선언의 정상회담 경위를 실정법으로 재단하고 북쪽은 공동선언을 민족공조라는 미명으로 반미투쟁을 다그치는 도구로 삼고있다. 북 핵 문제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속에 갖는 이러한 정치적 다툼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 심히 불행하다. 막말로 정상회담에 대가성이 있었으면 없는 것보단 못하지만 어떻단 말인가, 문제는 만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어떻게 해서든 만났기 때문에 남북간 철도연결까지 온 것이다. 북측 역시 핵 문제를 두고 더 이상 당치않은 강변으로 우기기보다는 핵무기 폐기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들이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 이것이 진정한 민족공조며 남북공영의 길이다. 핵을 빌미삼은 북측의 강성 일변도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남쪽이 진실로 원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현실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북측이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지금 모색되고 있는 다자회담이 앞으로의 고비다. 정말 모처럼 연결된 철도가 개통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의 자세를 보이고 남북간 문제에 정치색을 배제해야 한다. 불통되는 연결로 그쳐 계산된 쇼라는 비난을 받는 일이 없기 바란다. 경의선이 예정대로 오는 9월 말쯤이면 남북경협을 통해 동포애를 교환하는 철마가 힘찬 기적을 울리며 서울과 평양을 왕래하게 되기를 간곡히 희구한다.

지도층이 부동산 투기를 어떻게 했길래

부동산 시장의 올바른 환경조성을 위해 지도층의 투기 사례를 밝히겠다는 김부원 공인중개사협회 회장의 발언은 큰 파장이 예상된다. 김회장은 부동산 투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밝히겠다고 했다. 정부의 ‘5·23 부동산 투기대책’에 따른 국세청의 상주 입회조사 등에 반발, 일간지의 인터넷신문을 통해서 밝혔듯이 고위공직자, 정치인 등의 부동산 투기사례가 공개된다면 그 여파는 심대하게 번질 것이다. 고객의 부동산 거래 내용에 대해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공개하겠다는 것은 중개사들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김 회장의 말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가혹한 단속을 할 자격이 있는지, 그만큼 자유로운 입장인지 확인하고 싶었다”는 대목이다. 특히 전국 16개 시·도지부 4만4천여곳의 회원 공인중개사사무소를 통해 정부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과 정치인, 사회저명인사 등의 부동산 투기 사례를 수집중이라는 것도 관심거리다. 부동산투기가 특수층에 의해 조장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겨우 내 집을 장만했거나 마련하려는 서민들은 부동산 투기를 할 수도 없다. 영업과정에서 취득한 고객의 거래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는 것을 두고 부동산법 위반이라는 지적은 법원에서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만일 정부가 자료파일을 통째로 가져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자료파일을 ‘탈취’당했다고 인식하는 공인중개사협회측이 “보호 받지 못할 정보라면 (중개사협회) 우리가 먼저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동안 일부 공인중개사들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일부 투기를 조장하는 행위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그런 사실을 반성하고 부동산시장의 거래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자정운동을 벌이겠다는 계획은 앞으로 지켜볼 사안이다. 우리 사회에서 특권을 이용한 지도층의 투기는 뿌리 뽑혀야 한다. 따라서 공인중개사협회가 불법정보 수집사례를 구체적으로 파악한 뒤 국세청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것은 상당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 부동산 투기에 부정한 방법이 동원됐다면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의법조치해야 한다. 공인중개사협회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위에 또 ‘정부’ 있나?

재경부의 법인세 인하 추진에 제동을 걸고 나서는 청와대 처사가 의문이다.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수차 밝힌 연내 법인세 인하를 위한 법 개정 추진을 청와대에서 막고 나선다면 국민은 도대체 어떻게 정부 말을 믿으란 것인지 황당하다. 국민은 정부가 정책 집행의 최고기관으로 안다. 그래서 정부 부처가 하는 말은 그대로 실현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것이 정상적 정부 시스템이다. 이런데도 청와대가 걸고 나서면은 정부위에 또 정부가 있는 것인지 실로 괴이하다. 대저 그같은 청와대측 의사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우리가 알기로는 정부 부처 장관의 말을 가로 막을 사람은 청와대에서 대통령 밖에 없다. 만약 경제관련 비서진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같은 말을 경제부총리를 제쳐두고 대외에 밝힐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 국정운영의 시스템이다. 비서진은 수석비서관이라 하여도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지고 보필하는 것이지 정부 정책에 직접 간여할 수 있는 지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청와대측 인사는 법인세 인하 반대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므로 안된다고 했으나 정책 집행 과정에서 상충 요인이 생기면 신축성을 갖는 것이 또한 공약사항이다.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공약사항과 다른 것임을 모르고 추진했을리 만무하며 법인세 인하 추진은 처음 나온 얘기도 아니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장 얼어붙은 경기가 되살아 나는것도 아니어서 기업 투자심리를 살리는데 단기적 실익이 없다는 이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청와대측은 항상 그처럼 상황논리에 급급한 땜질 단기대책에 치중한 나머지 경제가 더 어려워진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각종 규제조치의 점진적 철폐로 기업 투자를 활성화 하겠다고 하지만 이 역시 원론적 수준의 수사로만 되풀이 되고 있어 국민이 보기에 새삼 신뢰하기가 어렵다. 어떻든 정부 부처 방침을 청와대측이 일일이 간여하는 것은 국정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위해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일찍이 부처 장관의 업무집행을 책임평가제로 평가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대통령의 이러한 국정운영 스타일을 저해하지 않는 청와대가 되기를 바란다. 국정운영의 책임은 정부가 지는 것이지 청와대 비서실이 지는 것은 아니다.

여중생 추모행사는 평화적으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신효순·심미선양의 1주기를 맞는다. 그동안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국민적 심정이 전국적인 촛불 시위로 이어진 것은 그 진행과정에서 혼란이 없지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보아 순수한 마음의 발로였다. 오늘 또 서울과 전국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양 살인사건 범국민 대책위원회’(범대위)는 촛불시위와 토론회 등 추모행사가 평화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으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오늘을 기점으로 반미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을 정한 데다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신효순·심미선양의 사고는 분명히 우리가 처한 비극이며 그래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1주기를 맞아 두 여중생의 부모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심경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첨에는 순수한 촛불시위였어요. 국민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한두번 참가하고서 그게 아니었어요. 점점 반미로 가는 것 같아.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 사람들이 애를 그렇게 죽였지만 그런 정도의 적개심은 없었죠.” “솔직히 우리 부모들 마음은 집회를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사회단체에 계시는 분들이 하는 추모집회가 꼭 추모 목적은 아니잖아요. 소파(SOFA) 개정이나 그런 행사니까 우리가 해야 된다 말아야 된다라고 관여할 문제는 아닌 듯 해요.” 두 여중생의 부모는 “국민께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죄스럽기도 하지만 과격한 반미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또 “집회를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으며 소파 개정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이들 부모의 마음이 아니더라도 한·미 양국은 두 여중생의 불행을 교훈으로 삼아 한미우호관계 개선은 물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는 데 더욱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전국 71개 지역에서 100만명 이상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추모행사가 평화적이고 질서를 유지하는 가운데 경건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치러지는 추모행사만이 돈독한 한미관계, 균형된 동맹관계를 발전시키고 신효순·심미선 양의 불행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삼성전자 공장증설, 경제논리로 풀어라

청와대가 삼성전자 기흥공장 증설을 허용하면서 일부 라인의 지방 이전을 조건 삼는다는 소식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한마디 않을 수 없다. 우선 시각이 잘못됐다. 수출 상품의 대표 주자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정상의 평가를 받고있는 D램 S램 등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을 증설키 위해 공장을 더 세우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가경쟁력 강화와 직결된다. 그럼 정부가 고맙게 여겨 도와주는 것이 마땅한데도 되레 무슨 은혜나 베푸는 것처럼 이러쿵 저러쿵 군 말을 일삼는 건 정치논리다. 공장을 세우고 말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기업 경영에 관한 일이다. 이런데도 여기다 이 공장을 세웠으면 저기도 똑같은 공장을 세워야 한다는 어거지 논법의 지역 균형 발전론은 정치논리다. 진정한 지역 균형 발전은 지역 특성을 살리는 특화산업 방향으로 모색돼야 한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증설 또한 기업 수요의 경제논리가 작용되지 못하고 일부 라인의 지방 이전을 강요하는 따위의 정치논리가 작용되어서는 국가경쟁력을 해친다. 부존 자원이 없어 순전히 수출로 살림을 꾸려가는 나라에서 왜 이토록 배부른 정치논리만을 앞세우는 지 실로 답답하다.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 언론사 편집국장 및 보도국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실효성 없는 수도권 규제를 과감히 풀 것”이라고 밝혀 조만간 그렇게 될 것으로 믿었다. 이같은 대통령의 의중을 청와대 보좌진이 방해한다면 대통령 말조차 국민이 믿지 못하게 만드는 정치논리의 폐악이다. 정부의 관련 부처를 제쳐두고 청와대 비서실서 ‘감 놔라 배 놔라’하며 간섭하는 것 역시 바람직스럽지 못한 정치논리다. 청와대측이 민간 공장의 부지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이런 시스템의 경직성은 곧 이 정부가 말하는 개혁의 대상이다. 정부가 실효성 없는 수도권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하는 것은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조치다. 삼성전자 기흥 공장 증설 역시 되지도 않은 단서를 붙여 괴롭히기 보다는 기왕이면 화끈하게 도와주는 것이 국익을 배양하는 길이다. 경제 살리기의 묘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경제문제에 정치논리를 철저히 배제하여 경제논리대로 풀어가는 것이 바로 경제 살리기의 첩경임을 알아야 한다.

일관성 있는 경제정책을

노무현 정부가 이제부터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겠다는 것은 참여정부 100일에 대한 정치·경제적 평가가 부정적인데 따른 각오로 생각된다. 물론 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북한 핵 문제 등으로 야기된 국내외 환경의 악화로 경제문제 해결에 주력할 여유가 없었음을 인정하지만, 지난 100일간의 국정운영에서 특히 경제정책은 일관성 없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혼선을 야기시켜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출범 초기에 발생한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부터 경제문제가 꼬이기 시작하였으며, 또 재벌에 대한 경직성 인식으로 상당한 긴장관계가 조성되었다. 더구나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한 조기 대처가 미흡하여 물류대란이 야기됨으로써 경제정책이 표류한 것 또한 사실이다. 더구나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치솟는 아파트 가격 때문에 일반 서민들의 실망은 물론 기업, 노동계로부터도 역시 정부의 경제정책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강력한 투기억제책을 실시함으로써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 값이 다소 진정되고 있기는 하나 아직 그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이르다. 대부분의 투기꾼들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난 후 이기에 결국 막차를 탄 서민들만 또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사문제에 대한 정책도 대처시기를 놓쳐 결국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면서 물류대란만 야기시켜 국제신인도를 금가게 했다. 정부가 이제부터라도 경제 살리기에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하니 기대는 하고자 하나 미덥지가 않다. 다른 정책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경제정책은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기업들이 미래에 대한 예측 하에 투자 및 인력수급 계획 등을 수립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 있는 경제정책의 추진으로 신뢰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 국내 중소기업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경인지역의 가동률은 47개월만에 최저수준이다. 특단의 대책을 시급히 세워 죽어가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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