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이나 천 등을 염색할 때 쓰는 공업용 염색체로 냉면이나 감자떡 제조용 혼합가루를 만들어 유통시킨 식품업자 등이 입건됐다. 이들은 ‘아닐린 블랙’으로 밀가루와 전분 등을 섞어 식품혼합가루 약 2만kg을 제조해 유통시켰다. 더구나 혼합가루에 다시 전분 등을 혼합해 냉면제조용 전분과 감자떡가루 30만kg을 만들어 음식점 등에 판매했다. 아닐린 블랙이 무엇인가. 플라스틱이나 고무장화, 그림물감, 아스팔트 도색제, 학생복이나 우산의 천 등에 염색제로 쓰이는 공업용 화학품이다. 사람이 섭취할 경우 현기증과 두통, 귀울림, 구토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이런 독성이 있는 아닐린 블랙을 사람이 먹는 음식에 사용한 것이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르고 무역 규모도 세계 10위권에 이르는 우리나라가 국민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식품안전관리 수준이 이 정도라니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닐린 블랙뿐만이 아니다. 광택제인 왁스나 비누 등에 쓰이는 공업용 착색료를 넣은 가짜 고춧가루가 전국에 유통됐는가 하면, 유통기한을 190여일이나 넘긴 초콜릿을 원료로 사용한 어린이 기호식품이 나돌았었다. 이중 공업용 착색료는 장기섭취할 경우 안면마비나 구토, 복통, 설사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발암물질이다. 이렇게 반사회적인 식품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처벌이 솜방망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행 식품위생법은 식품위생사범에게 최고 7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일본의 경우 최고 3년 등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형량에 있어서는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낮은 형량을 구형하거나 소액의 벌금형 등으로 선고되는 경우가 많아 식품위생사범들이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근본원인이다. 그렇다고 법을 고쳐 형량을 높이기 보다는 사법부에서 악질적인 식품사범은 일벌백계식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등 법적용과 운용측면을 개선하는게 더욱 시급하다. 농림부, 교육부, 행자부 등으로 분산된 식품 조사권한을 전문성을 갖춘 식약청 등으로 일원화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도 필요하다. 불량식품 제조 및 유통은 수십만, 수백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간접살인행위와 다름없다. 적발되는 모든 범죄행위는 마땅히 중벌을 적용해야 한다.
사설
경기일보
2003-06-0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