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노인빈곤 OECD 최악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48.6%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2위인 스위스(24%)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5% 안팎의 빈곤율을 보이는 프랑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유럽 선진국보다는 10배 가까이 높다. 2013년 기준 1인 세대의 노인빈곤율은 74%에 달한다. 가족의 부양을 받지 못한 채 가난과 고독, 질병에 시달리는 독거노인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100세 장수시대 운운하지만, 생명 연장이 개인에게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소득 창출이 쉽지 않은 노인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연금의 낮은 수준이 큰 문제다. 2012년 기준 한국 노인의 연금 소득대체율은 45.2%로 34개 OECD 회원국 중 28위였다. OECD 회원국 평균인 65.9%와 주요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70~80%와 비교해도 한참 낮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세후기준으로 은퇴 전 개인소득과 비교해 은퇴 후 받는 연금 수령액의 수준을 의미한다. 문제는 노인들의 최저 생계유지를 위한 정부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1.3%로 일본(24.1%), 독일(20.7%), 이탈리아(20.6%)에 비해 낮지만 65세 이상 인구비중의 증가 속도는 4.1%로 매우 높다. 2년 후면 노인 인구 비중이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노인들의 불안한 삶은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 역시 인구 10만 명당 81.9명으로 OECD 최고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자녀 양육과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붓느라 자신의 노후대책을 준비하지 못했음에도 부모에 대한 부양의식이 희박해지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노인들은 암울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독거노인이 생활고와 건강상의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배우자 병수발을 하던 노인이 함께 동반 자살을 선택하는 사건이 잇따르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한국인의 부모 및 노인세대 부양이 가족 중심에서 점차 가족과 정부ㆍ사회 공동으로 바뀌고 있다. 고령화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국가 현안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노인들이 안정적으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 창출 등 소득보장제도를 확충해야 한다. 또한 노인의 고독사 등을 막기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도 힘써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장래희망 1위 ‘교사’

우리나라 초ㆍ중ㆍ고등학생들은 장래 희망 직업으로 교사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14년 학교진로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ㆍ고등학생은 남녀 성별 구분 없이 모두, 교사를 가장 희망하는 직업으로 꼽았다. 고등학생은 남학생의 9%가, 여학생의 15.6%가 희망 직업으로 교사를 꼽았다. 남학생은 과학자 등 연구원(5%), 회사원(4.5%), 경찰관(4.2%) 등이 뒤를 이었고, 여학생은 연예인(3.6%), 연구원(3.3%), 의사(3.3%) 순이었다. 중학생도 남학생(8.9%)과 여학생(19.4%) 모두 희망 직업 1위로 교사를 꼽았다. 이어 남학생은 의사(5.8%), 운동선수(5.5%), 경찰관(5.3%) 순이었고, 여학생은 연예인(7.4%), 의사(6.2%), 요리사(3.5%) 등이 뒤를 이었다. 초등학생도 여학생들은 교사(17.8%)가 되고 싶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운동선수(21.1%)가 되고 싶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초ㆍ중ㆍ고생 학부모들도 자녀의 직업으로 교사를 가장 선호했다. 학부모 7만4천346명을 표본조사한 결과, 초ㆍ중등 여학생, 고교 남ㆍ여학생 학부모들이 자녀 희망 직업으로 교사를 가장 많이 꼽았다.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희망 직업 1순위로 꼽은 것은, 갈수록 나빠지는 취업환경 속에서 안정적이어서다. 실직 위험이 작으면서 정년이 보장되고 퇴직 후 적지 않은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의 소질과 적성을 따지기보다 자녀들이 먹고살 걱정이 없는 직업을 택하기 바라는 부모의 영향을 학생들을 받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로 나타났다. 교사의 36.6%, 10명 가운데 4명은 직업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교사는 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비율도 20.1%에 이른다. OECD 평균인 9.5%의 2배가 넘고, 전체 34개국 중 가장 낮다. 과열된 사교육으로 인해 공교육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교사의 권위가 떨어진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학교 안팎의 경직된 관료주의 문화와 과다한 행정 업무가 원인이기도 하다.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교사인데, 정작 교사들은 직업에 만족 못하고 교사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많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작은 국세청

과거 김영삼 정부는 작은 정부의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정부기구의 축소와 통폐압, 공무원 인원감축 등을 추진했다. 작은 정부의 시작은 19세기 자본주의 등장 초까지 올라간다. 고전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자유를 위해 국가의 공권력을 최소화하자는 의미에서 최소한의 정부를 주장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빈익빈 부익부 등 시장 실패로 인해 병폐가 잇따르면 작은 정부는 점점 큰 정부로 바뀌게 됐다. 복지국가 개념의 확산도 이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민간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경제가 침체되자 8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가 등장, 작은 정부가 또다시 힘을 받게 됐다. 이런 의미에서 문민 정부는 작은 정부과 관련된 각종 정책을 추진했다. 정부 기구를 축소하고 정원을 줄이고 겉으로 보이는 외형적 규모만 줄이는데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공직사회에 대한 일종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 내게됐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하는 일 없이 놀기만 하고 비효율적인 집단이라는 고정관념도 생겨나게 됐다. 문민 정부 이후 공무원 증원은 항상 비난의 도마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축소가 능사는 아니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생산비를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효율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지 않기 위해 제품의 질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판매량이 늘어나면 투자를 한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현재 경기도내 국세청 공무원 1인당 담당 주민수는 4천343명으로 집계됐다. 담당하는 법인 수는 제외한 수치다. 국세청은 개인과 법인을 나눠 담당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그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도내 경찰 1인당 주민수는 612명, 소방공무원은 1천919명이다. 최근 정부는 경기침체를 이유로 세무간섭을 배제한다며 세무조사 인력을 줄이고 인력 재배치로 업무량을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제품 판매량은 늘어나는데 투자는 없다는 생각이다. 국세청이 판매하는 제품의 질이 떨어질까 걱정된다. 김동식 경제부 차장

[지지대] 리퍼트의 I am OK

▲리퍼트 주한미국 대사가 테러를 당한지 6일 만인 10일 병원문을 나섰다. 그는 지난 5일 오전 7시 42분께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조찬강연회에 참석했다가 급진 진보성향 단체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55)이 휘두른 흉기에 80바늘을 꿰매는 큰 부상을 입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한미동맹의 테러, 서울 한복판의 참상, 북한 배후설, 정신병자의 광란 등등을 운운하며 요란법석(현재도 진행중)을 떨고 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 리퍼트는 평정심을 잃지 않는 의연한 모습이다. 병상에서 김치를 먹으니 힘이 나네요라며 웃던 모습 그대로였다. ▲마크 리퍼트. 그는 친한파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세준으로까지 지었고 둘째도 한국에서 낳겠다고 밝히는 등 한국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사랑이 깊어 그는 지난해 10월, 주한 미국대사로 한국 근무를 시작했다. 테러를 당한 이후 병실에서 그는 I am ok라며 오히려 한국 국민들의 안심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그는 같이 갑시다. 한미동맹을 위해 최대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올 것입니다란 약속도 지켰다. ▲그의 모습에서 한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다. 흉기에 의해 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보이기보다는 의연함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주변인들의 안심시키는 모습에서 네티즌들은 대인배라며 칭송을 이어가고 있다. 또 일부 국민들은 그의 쾌유를 위해 개고기까지 보냈고 그가 김치찌개를 먹는 모습, 국제시장을 관람하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 모음도 인기를 끌고 있다. ▲리퍼트의 테러는 한미 양국에 있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테러 당사자인 리퍼트는 이제 오히려 한미 양국 혈맹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그를 어떻게 안아 주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 여야 대표 모두가 그를 병문안했지만 왠지 흡족하지 않다. 김기종에 대한 처벌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단호하고 엄격해야 하지만 이도 무언가 빠진듯하다.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다만 I am ok에 대한 답으로 I love you라는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마음을 가져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지지대] 세종의 明사신 접대

세종 즉위년(1418 무술) 9월 2일. 예조에서 명나라 사신 접대 방식을 왕께 보고한다. 그날을 앞서 유사(有司)가 모화루(慕華樓)의 서북쪽에 장전(帳殿)을 설치하고, 장전 앞에는 홍문(紅門)을 세워 오색 비단으로 꾸미고사신이 장전 앞에 와서 말에서 내리면, 상왕 전하와 전하께서 백관을 거느리고 허리를 굽혀 사신을 영접한다사신이 어명(御命)이 있다고 말하면, 인례가 꿇어앉으라 창하여 상왕 전하가 꿇어앉고, 또 사찬이 꿇어앉으라 창하면 전하와 여러 신하들이 모두 꿇어앉는다 ▶세종 1년(1419 기해) 1월 19일. 세종이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부절과 고서를 받는다. 임금은 받고서 뜰에 내려가 여러 신하와 더불어 네 번 절하고 악차로 들어가 면복을 입고 나와, 여러 신하와 더불어 멀리 사은하며 네 번 절하고 향을 피우며, 또 네 번 절하고 만세를 부르며 춤추고 발구르며, 네 번 절하고 악차에 들어가 면복을 벗었다. 사신은 절(節)을 받들고 나가니, 임금과 상왕은 전정에 나가 공경히 전송하고, 여러 신하는 절을 인도하며 태평관(太平館)에 당도하여. ▶세종 2년(1420 경자) 4월 17일. 세종이 명 황제의 생일 의식을 거행한다. 임금이 성절(聖節)이라 하여 경복궁에 거둥하여 악차에 나아가니, 사신이 평복으로 와서 근정전 노대(露臺) 위에서 네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린 뒤에 물러나 동쪽 행랑으로 들어가고, 임금이 면류관을 갖추고 백관을 거느리고 의식에 따라 요하(遙賀) 한 뒤에 사신과 함께 경회루에서 잔치하였다. ▶세종실록에는 사신이라는 기록이 2,238번 나온다. 아버지 태종의 실록에는 645번, 장수한 영조의 실록에는 1,283번 나온다. 명나라 사신에 대한 세종의 접대가 그만큼 각별했다. 재임 후반부로 오면 사신을 위한 잔치 기록이 숱해진다. 4군 6진으로 북방을 개척하고, 대마도 정벌로 왜(倭)를 물리친 세종이다. 그런 세종이 명 사신 앞에서 엎드리고, 절하고, 춤추고, 만세 불렀다. 태평성대를 위한 외교술인가 강대국에 대한 사대주의인가. 정답은 없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피습당했다. 편향된 이념주의자에 의한 테러다. 그의 병실이 내방객들로 붐볐다. 여야 정당 대표가 문안했다. 대통령도 중동 방문 귀국길에 병실을 들렀다. 병원 밖에는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우방국 대사에 대한 따뜻한 위로의 표현인가 강대국 대사에 대한 과한 사대인가. 이 물음에도 정답은 없다. 세종의 명나라 사신 접대의 경우와 같다. 다만, 정치인들은 좀 빠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범죄예방환경 ‘셉테드’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범죄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다. 청소년 범죄, 어린이ㆍ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됐고, 폭력과 살인 등의 강력범죄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범죄 발생 원인과 사례 또한 다양해지고 새로운 유형의 범죄도 늘고있다. 범죄 예방을 위해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등에선 CCTV를 설치하거나 여성안심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엔 환경으로 범죄를 막는다. 바로 셉테드(CPTEDㆍ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다. 셉테드는 범죄예방환경설계의 줄임말로, 도시 환경설계를 통해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는 선진국형 범죄 예방 기법이다. 아파트ㆍ학교ㆍ공원 등의 설계 단계부터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안전시설 및 수단을 적용해 도시계획 및 건축설계를 하는 것이다. 셉테드는 범죄는 치밀한 계획 하에 저질러지기보다 물리적인 환경에 따라 발생빈도가 달라진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아파트 단지내에 놀이터를 짓고 주변에 낮은 나무 위주로 심어 시야를 확보하고 CCTV와 가로등을 설치하는 것, 침침한 수은등이나 나트륨등을 밝은 할로겐등으로 교체하는 것,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밖의 가스배관을 사람이 오를 수 없게 미끄러운 재질로 만드는 것, 지하철 등 공공장소의 엘리베이터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투명유리로 설치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셉테드를 도입했다. 코네티컷주 하트포트시의 경우 1973년 주거지 위험도로 진입차단, 일방통행 유도, 보행자 중심의 도로 폭 조절 등 셉테드를 적용한 후 1년간 강도범죄가 183건에서 120건으로 감소했다. 영국도 1989년 셉테드 원리에 기반한 SBD(Secured By Design) 인증제도를 시행했는데, 인증 지역은 범죄 및 불안감이 25~5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2005년 부천시가 국내 처음으로 고강동과 심곡동 주택단지에 시범 적용했는데 실제 범죄 발생률이 줄어 셉테드 효과를 입증했다. 경기도가 올해 안전망이 취약한 평택시와 시흥시의 다세대주택, 원룸 밀집지역 등 2곳에서 셉테드 사업을 전개키로 했다. 골목길 조명을 밝게하고 투명한 담장을 설치하는 등의 일상속 작은 변화가 범죄를 예방하고 안전한 주거환경을 만든다니, 셉테드의 확대가 필요해 보인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3월병

많은 사람들이 3월을 기다린다. 3월이면 만물이 생동하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칙칙한 겨울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한켠엔 3월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3월이면 병을 앓는 학생과 엄마들이다. 이들에게 3월은 공포의 달이다.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학생들에게 탐색기다. 아이들은 서로의 깜냥(능력)을 재면서 누가 반의 실력자가 될지, 혹은 찌질이가 될지를 가늠한다. 이 과정에서 폭력과 괴롭힘은 절정에 이른다. 경찰청 117학교폭력신고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학교폭력 신고는 7천184건으로 2월보다 두배 가까이 뛰었다. 학교폭력이나 왕따를 경험한 학생들은 3월이면 또 찍히면 학교에 어떻게 다니나 두려움에 떤다. 제발 찍히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나 교사에게 얘기 않고 혼자 속앓이 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초등 4학년고등 2학년생 5천9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혼자 끙끙 앓는 경우(38.5%)가 가장 많았고, 부모에게 알린다(23.8%)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부모가 어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느냐에 따라 아이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도, 덧낼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3월은 엄마들에게도 힘든 시기다. 설 명절에 이어 졸업, 입학 등 가정 대소사가 많은 3월이면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형 장애로 병원을 찾는 여성환자가 급증한다. 보통 심신증으로 알려진 신체형 장애는 정신적 갈등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스트레스가 근골격계와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끼쳐 소화불량이나 두통, 흉통, 복통, 근골격계 통증 등이 생기는데, 정작 검사를 하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검사를 중복하게 되고 약물 남용이나 꾀병이라는 오해를 사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5년간 신체형 장애 환자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환자 약 13만7천명 가운데 여성이 9만여명으로 남성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환자는 1년 중 3월에 많이 몰렸다. 엄마병은 보통 2월에 있는 설과 졸업에 이어 3월 입학 시즌으로 이어지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고교 졸업후 대학 입시, 대학 졸업 이후의 취업, 대학생인 경우 수백만원에 이르는 등록금 부담 등이 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학생이나 엄마나 모두 가족의 세심한 배려가 약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

스포츠 분야,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최근 프로야구계의 최대 화두는 바로 김성근 한화이글스 감독이다. 지난 2009년부터 6시즌 중 5시즌이나 최하위에 머무르며 패배 의식에 빠진 독수리 구하기에 나선 김 감독.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지옥의 펑고를 날리며 선수들에게 승리 DNA 심기에 열을 올리는 등 팀 체질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또 식사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줄이며 진행되는 빡빡한 훈련 스케쥴에 맞춰 선수들은 연일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고 또 뛰고 있다. 일각에서는 너무 가혹하다는 시선으로 김 감독을 바라보고 있지만, 선수단과 팬들은 조금씩 변해가는 한화이글스의 모습에 내심 올해 일 한번 내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희망가를 부르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치러지는 전국동시조합장 선거가 이제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기존의 조합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농업 분야도 변화와 개혁을 통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제한된 각종 선거방식으로 인한 진입 장벽이 높아 변화를 시도해 보려 해도 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선거운동이 진행되면서 특히 능력보다는 인맥, 진심보다는 선심, 통합보다는 편가르기가 보는 이의 시선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더 나은 조합의 미래를 위해 선출하는 조합장 선거가 축제의 장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구태를 답습하고 불법이 판치는 아사리 판이 되면 안 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조합의 체질 개선을 이끌어내고 조합원 모두를 똘똘 뭉치게 해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지역 농ㆍ축협, 수협, 산림조합이 건강한 조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앞장서는 그런 조합장이 필요한 시기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 거는 기대감이 여느 때보다 높은 줄도 모르겠다. 조합계의 김성근 감독이 많이 나와 안주하고, 안일했던 조합의 체질을 개선하는 동시에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구태에 메스를 댈 수 있다면 어떨까.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이 세간에 화제가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김규태 경제부 차장

[지지대] ‘삼진아웃제’의 진화

2001년 7월 경찰청은 새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삼진아웃제라는 걸 도입한다. 3회째 음주운전이 적발되면 무조건 운전면허를 취소한다는 거다. 서울 송파구에서는 관내 187개 다중이용 화장실에 대해 불량화장실이 개선될 때까지 3종의 카드를 각각 3회씩 발부하는 화장실 삼진아웃제를 운영했다. 전북 군산시에서는 야간 노숙 차량을 단속해 세 번 계도하고 난 뒤에도 불응하는 차량을 단속하는 삼진아웃제를 시행했다. ▶그동안 종류도 많아졌다. 가정폭력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3년 사이에 두 차례 이상 가정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다시 가정 폭력을 행하면 구속을 원칙으로 수사하는 가정폭력 삼진아웃제가 생겼다. 집행유예 이상의 전과를 포함한 3년 이내 2회 이상 폭력전과자가 또다시 폭력범죄를 저지르면 원칙적으로 구속기소하는 폭력사범 삼진아웃제도 있다. 올 들어서는 택시기사가 승차 거부를 하다 2년 안에 3차례 적발되면 택시 운수종사자 자격을 취소하는 삼진아웃제도 생겼다. ▶삼진아웃제는 재범자에 대한 가중처벌제도다. 야구에서 스트라이크를 세 번 받으면 물러나는 것처럼 같은 유형의 범죄를 세 번 저지른 사람에서 강한 처벌을 부여하는 정책이다. 나름대로 효과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29일부터 시행된 택시 승차 거부 삼진아웃제의 경우만 해도 애초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실효성 논란이 있었지만, 시행 약 한 달간(1월 29일2월 25일) 서울시내에서 적발된 승차거부는 총 4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80건)에 비해 75.6%나 감소한 수치다. ▶삼진아웃제는 그래도 두 번은 봐준다. 하지만, 두 번을 봐줘선 안 되는 게 있다. 최근 잇따른 총기 사고로 여러 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총기사고가 더는 남의 나랏일이 아닌 게 됐다. 이에 당정은 지난 2일 현행 총기소지 허가제도를 보다 엄격하게 강화하고자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총단법)의 결격사유에 해당하면 총기 소지를 영구히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세 번이 아닌 것은 다행이지만, 사고 발생 후 처벌이 아닌 사고 방지를 위한 방안이어야 한다. 박정임 경제부장

[지지대] ‘떡값 99만원’

90년대 형량(刑量)은 대개 이랬다. 징역 6월 징역 1년. 정해진 규정은 없었다. 그런데도 6개월 단위의 형량이 주류였다. 그즈음 수원지법에 젊은 판사가 있었다. 형사 단독 재판부를 처음 맡은 판사였다. 그의 형량이 독특했다. 징역 4월 징역 5월 징역 7월. 죄질은 범죄자의 머릿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그 다양성만큼 세밀한 형량을 선고하려는 취지로 보였다. 출입 기자들에겐 그의 형량 자체가 기삿거리였다. ▶마침 양형 기준으로 시끄러울 때였다. 그런 만큼 그 판사의 형량은 주목을 끌었다. 6월 단위의 형량에 익숙했던 선배 판사들은 이를 좋게 보지 않았다. 당시 A 법원장이 어느 날 기자들과의 오찬장에서 말했다. ○○○판사에게 내가 말했다. 형량 가지고 깐죽거리지 마라. 법원장의 형량 지시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하지만, 참석 기자 누구도 이날 발언을 보도하진 않았다. ▶2007년 5월, 현직 시장 B 씨에 대한 선고가 서울고등법원에서 있었다. 2건의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만원과 80만원을 각각 선고받은 상태였다. 벌금 100만원 이상이 선고될 경우 시장직을 잃게 된다. 이날 고등법원은 B 시장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정에서 박수가 나왔다. 현관에선 많은 지지자들이 축하를 보냈다. 지역 국회의원은 그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전했다. ▶판결은 분명히 유죄였다. 선고유예도 아니었고 무죄도 아니었다. 범죄경력조회에 흔적-전과-으로 남을 불명예였다. 그런데도 B 시장은 좋아했다. 정치인 재판에서만 볼 수 있는 기이한 광경이다. 신분 박탈의 벌금 한계가 300만원(국회의원), 100만원(단체장) 이어서 그렇다. 300만원과 100만원의 기준이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법이 그렇다. A 법원장이었다면 이랬을 것이다. 100만원은 뭐고 300만원은 뭔가. 깐죽거리는 법이다. ▶김영란 법의 핵심 키워드는 100만원이다. 100만원 이상 받으면 조건 없이 처벌된다. 공무원ㆍ언론인ㆍ사립학교 교원이 대상이다. 왜 하필 100만원일까. 이 역시 선거법의 100만원 300만원처럼 합리적 근거는 없다. 그저 100만원을 처벌의 기준으로 만들어놨을 뿐이다. 뇌물 99만원ㆍ떡값 99만원ㆍ촌지 99만원은 괜찮다는 얘긴데. A 법원장이었다면 또 이랬을지 모른다. 100만원 이하 받으면 괜찮은 거냐. 깐죽거리는 법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제암리 스코필드 동상

1919년 4월 15일 오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 두렁바위로 불리는 농촌마을에 아리타 도시오 중위가 이끄는 일본 군경이 들이닥쳤다. 4월 5일 화성주민들의 발안장날 만세운동을 강경 진압한 것을 사과하겠다며 주민 가운데 15세 이상 남자들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했다. 주민들이 모이자 일본 군경은 교회를 포위하고 창문으로 사격을 가했다. 주민들이 죽거나 부상으로 신음하자 일본군은 만행을 감추려고 교회에 불을 질렀다. 남편 생사를 알기위해 달려온 마흔 넘은 여인이 사살되고, 19세 여인은 칼에 찔려 죽었다.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떠났다. 이렇게 교회에서 죽은 사람 23명을 포함해 무고한 양민 29명이 학살 당했다. 제암리교회 학살사건 사흘 후인 4월 18일, 세브란스 의전 교수인 캐나다인 의사 스코필드 박사(한국명 석호필)가 현장을 찾았다. 제암리 소식을 접한 스코필드 박사는 이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제암리를 찾아 일제의 만행 흔적을 사진으로 찍었고, 주민들로부터 당시 상황을 전해들었다. 그리고 제암리 학살 보고서를 캐나다 선교본부에 제출하고, 장로회 기관지 프레스비테리안 위트니스(Presbyterian Witness)에 기고해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폭로했다. 1920년 일본의 압력으로 캐나다로 강제 출국된 스코필드 박사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일제 식민통치의 진실을 알렸다. 1959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그는 소외된 자와 학생들을 위한 사회봉사활동에 헌신하다 1970년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스코필드 박사는 3ㆍ1운동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34번째 민족대표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박사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스코필드 박사의 제자이면서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2010년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를 만들었다. 강한 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 살았던 그의 삶을 받들어 호랑이 스코필드라 이름 지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3ㆍ1절에 제암리에 스코필드 박사의 동상이 세워졌다.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양손에 카메라를 들고 제암리 교회가 있던 터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95년 만에 다시 제암리에 선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을 조국처럼 한국인을 동포처럼 사랑했다. 이젠 우리가 스코필드 박사를 추모하며 그의 뜻을 기려야 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졸업유예 NG족

연세대 학위수여식이 열린 지난 23일, 신촌 캠퍼스엔 이런 현수막이 내걸렸다. 연대 나오면 뭐 하냐 백순데. 현수막엔 사학과 08 황도영(27ㆍ백수)이란 이름까지 쓰여 있었다. 청년실업 등 졸업 이후의 암울한 현실을 풍자한 글이다. 황도영씨는 임용시험을 준비 중이라는데 친구들이 격려하기 위해 재밌는 현수막을 걸었다고 한다. 지난주 졸업식을 가진 대학가 곳곳엔 백수의 길에 접어든 선배님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같은 현수막이 나부꼈다. 그냥 웃어넘기기엔 씁쓸한 풍경이다. 올해도 수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사회로 나왔지만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죽하면 인문계열 졸업생의 90%가 논다는 인구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졸업생에 취업 재수생, 삼수생, 사수생 등을 합치면 취업을 해야 하는 사람은 해마다 늘지만 취업문은 점점 더 더 더 좁아지고 있으니 이 같은 상황을 자조하는 현수막이 내걸릴 만하다. 웃지 못할 또 하나의 풍경은 졸업장을 집에서 택배로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 H대 정치외교학과 과사무실은 올해 38명의 졸업생 중 12명의 학생에게 택배로 졸업장을 보내줬다. 취업이 된 상태에서 졸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보니 대부분 취업 실패를 이유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학생들은 학사복과 학사모를 미리 빌려 졸업식에 앞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주말에 교정을 찾아 사진을 몇 장 찍고 정작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졸업을 미루는 NG(No Graduationㆍ졸업유예)족 또한 가슴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NG족은 졸업 논문이나 영어 성적을 제출하지 않아 졸업이 아닌 수료 상태로 남거나 1~2학점 등 최소 학점만 남겨놓는 방법으로 졸업을 미루고 있다. 이들은 2년째, 3년째 계속 졸업을 유예하다 보니 졸업식이 언제 열리는 지 관심도 없다. 졸업유예 신청자는 2011년 8천270명에서 2013년 1만4천975명, 지난해 1만8천570명으로 늘었다. NG족이 늘면서 대학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재학생이 늘면 교수 1인당 학생 수 등 각종 대학 평가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선 졸업을 하지 않고 도서관 자리만 차지한다며 재학생들이 항의하는 등 NG족이 학내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갈 곳 없는 서글픈 NG족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걸상(乞床)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지났다. 긴 연휴만큼이나 이번 한 주는 유난히 길다. 큰집이 경주최씨 정무공파 복기 자손의 종가라 명절이면 항상 4대 봉사(奉祀)를 모셔왔다. 조부께서 돌아가시고 큰아버지께서 차례와 제사를 모시면서 최근 집안 회의를 통해 3대 봉사로 줄었다. 고조부와 증조부, 조부의 차례를 모시는 것이다. 1년이면 기제사(忌祭祀)와 시제사(時祭祀)를 포함해 10여 차례의 제사와 차례를 지낸다. 그런데 올해 유독 눈에 띄는 상(床)이 있다. 바로 걸상(乞床)이다. 책상, 걸상 할 때 걸상이 아니다. 걸상이 정확히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안에서는 걸상이라는 표현을 쓴다. 차례나 기제사를 모실 때 상을 3개 차린다. 제일 먼저 성주상에 음식을 올리고 그다음에 제사상에 음식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성주 상과 제사상에 올린 음식 중 남은 것들을 모아 걸상을 차린다. 그동안 수십 번의 기제사와 차례를 모시면서 걸상에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걸상 위에 놓인 10여 개의 수저와 술잔. 과연 이 상은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차린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보통 기제사와 차례를 모실 때 성주상과 제사상을 차린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걸상을 차린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 집 안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무공을 세우신 정무공 최진립 장군이 중시조인데 정무공파 종가에서는 최진립 장군의 죽음을 끝까지 지켰던 노비 2명의 제사를 아직도 매년 지낸다고 한다. 큰아버지에 따르면 우리 집 안은 노비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니고 차례상을 받지 못하는 영혼이나 조상과 함께 오시는 영혼을 모시기 위한 상이라 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예전에는 기제사나 차례를 지낸 후에 걸상의 음식들을 굶주린 이웃이나 걸인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불혹(不惑)을 갓 넘긴 나이에 앞만 보고 내 밥그릇만을 챙기며 달려온 시간이 새삼 부끄러워진다. 2015년 새해 목표가 수정됐다. 청양의 해 나에게 주어진 대명(大命)은 나눔과 배려다. IMF 때 보다 경제여건이 안 좋다는 이때 나눔과 배려의 문화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정치부 차장

[지지대] 금연정책

지난해 12월 전국을 들썩거리게 한 것 중 하나는 담뱃값이었다. 또한 담뱃값 인상을 앞두고 빚어진 사재기, 불법거래 등도 주요 키워드로 부각됐다. 이처럼 담뱃값 인상 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금연, 금연 방법 등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원장 장석일)이 지난해 12월 금연이슈리포트를 통해 보건분야 최초의 국제협약인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ramework Convention on Tobacco Controlㆍ이하 FCTC) 당사국들의 협약이행에 대해 집중 분석한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FCTC는 현재 180개 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2년마다 세계이행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간행된 보고서를 보면 2010년에서 2014년까지 당사국들의 협약 이행수준은 전반적으로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협약 이행률 중 제8조 담배연기에의 노출로부터 보호가 18%p, 제13조 담배광고, 판촉, 후원규제가 14%p, 제12조 교육, 의사소통, 훈련 및 인식제고가 11%p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협약 이행을 위해 각국이 노력한 주요 사례는 ▶필리핀, 스페인, 브라질 등이 담뱃세를 50% 인상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은 금연구역 실외확대 ▶EU, 태국 등은 담뱃갑 경고그림 부착 등이다. 우리나라도 금연지도원 제도 도입을 통한 집행력 향상, 화재 안전담배 도입, 서태평양 최초로 공공기관이 담배업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내용이 우수사례로 보고서에 소개되기도 했다. 한편 경기도의회도 경기도민의 금연 실천 촉진과 간접흡연의 유해환경으로부터 비흡연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환으로, 도내 아파트 등 공동주택 복도, 계단, 주차장 등에서 흡연이 의무적으로 금지되고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례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도민의 건강뿐만 아니라 간접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웃 간 갈등이 대폭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25일부터 금연치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지원한다. 전국 1만4천여 병의원에서 의사의 전문적 금연 상담 등을 통해 금연에 도전해보자. 정근호 정치부장

[지지대] 아내 사랑 語錄

사랑은 영원하다. 링컨의 부인 메리 토드가 세상을 떠났다.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에 있던 글이다. 링컨이 결혼식 때 직접 새겨 끼워준 반지였다. 그는 아내의 성급함까지 평생 배려했다. 변호사 시절, 부부가 생선가게에 들렀다. 아내의 신경질에 화가 난 가게 주인이 항의했다. 그러자 링컨이 주인에게 말했다. 나는 15년 동안을 참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주인 양반께서는 15분 동안이니 그냥 좀 참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나에게 당신을 주신 걸 보니 신이 나를 많이 생각한 모양이구려. 레이건이 영화배우 시절 출연한 영화 워닝팀에 나오는 대사다. 그는 훗날 부인 낸시에게 애정을 표현할 때마다 이 대사를 인용했다. 아내 낸시의 생일엔 장모에게 꽃다발을 보냈다. 부인을 낳아준 데 대한 감사였다. 낸시는 레이건의 생일엔 사랑의 카드를 집안 곳곳에 숨겨 놓았다. 레이건은 사랑의 카드를 찾으며 하루 종일 즐거워했다. ▶(장인어른 좌익 경력을) 알고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딸 낳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이런 아내를 버려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저 대통령 후보 안 할랍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그 유명한 아내 사랑 연설이다. 장인의 좌익 논란은 그를 노리는 경쟁자들에겐 한방이었다. 그런 콤플렉스를 한순간에 헛방으로 날려 버렸다. 그의 마지막 선택-자살-도, 부인에 대한 수사를 내사 종결케 한 법률적 사유가 됐다. ▶난 마누라와 같은 자리에 누워야겠다 싶어서 국립묘지 선택은 안 했어. 가고 싶지도 않고. 집사람은 나와 함께 그 장지에 나란히 눕게 돼. 먼저 저 사람이 가고 그다음에 언제 갈지. 곧 갈 거예요. 외로워서 일찍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부인 박영옥 여사의 빈소를 찾은 이완구 총리에게 JP(김종필)가 한 말이다. 요 며칠 JP의 조문 어록이 언론을 채우고 있다. 그 중에도 아내 사랑에 대한 어록 하나하나가 모두를 숙연케 한다. ▶어제 입관을 하는데 (아내가) 부끄럽다고 안 하고 아프다고도 안 하고 허망하더라. 강창희 전 국회의장에게 한 말이다. 아마도 입관 전 지켜본 세신(洗身)ㆍ염(殮) 과정을 말한 듯하다. 평생 살을 맞대고 살아왔을 아내, 그 아내의 마지막 몸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조차 부끄러워하지 못하는 아내의 주검을 보며 슬퍼했을 것이다. 그가 남긴 어떤 정치적 어록보다도 철학적이고 슬프며 아름다운 말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태극기 달기 운동

영화 국제시장의 관객이 1천400만명을 넘어섰다. 영화는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이 시대 아버지의 삶을 덕수의 인생을 통해 생생하게 그렸다. 영화 속엔 주인공 남녀가 말다툼을 하다 국기 하강식이 시작되자 벌떡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를 두고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간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 회의에서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 보니까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이 말이 계기가 된 것일까. 정부가 대대적으로 전 국민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든 정부 부처가 참여하고,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운동추진단을 구성해 운영토록 했다. 3ㆍ1절을 통해 분위기를 확산시켜 올해 70주년을 맞는 광복절에는 태극기 게양률이 최대치가 되도록 해 애국심을 고양하겠다는 것이 정부 목표다. 행정자치부는 민간건물과 아파트 동마다 별도의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민간 건물의 국기 게양대 설치 의무는 1999년 5월 규제완화 차원에서 폐지됐는데 부활하게 됐다. 정부는 학생들에게 국경일마다 태극기를 게양한 뒤 인증샷을 찍어 제출하고 일기와 소감문 등을 발표하도록 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유치원생에게도 국기 교육을 시키고, 각 교실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지 등도 점검한다. 국기 게양ㆍ하강식 실시도 계획돼 있어 1989년 1월 이후 사실상 사라진 국기 게양ㆍ하강식이 재현될 수도 있다. 폐지된 지 오래된 국기 게양ㆍ하강식 부활과 국기 게양 소감문 및 인증샷 제출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을 연상케 한다. 인터넷엔 벌써 점차 유신으로 돌아가는거냐? 태극기 강제 게양한다고 애국심이 생길 거라는 발상 자체가 독재스럽다는 등의 댓글로 시끄럽다. 국경일 국기 게양 비율이 10%에도 못 미칠 정도로 하락했다. 국민들의 태극기 사랑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애국심은 정부의 강요가 아닌, 국민 각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삶은 팍팍하고 미래 희망은 보이지 않은데,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가득한데 태극기 달기를 강요한다고 과연 애국심이 생길까.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살인죄 공소시효

미국의 유명 드라마 제목이기도 한 콜드 케이스(Cold Case)는 수사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고 미결로 남은 사건을 의미한다. 녹지 않는 얼음처럼 공소(公訴)를 영원히 유지해 강력범은 반드시 잡겠다는 수사기관의 의지를 담고있다. 실제로 지난달 켄터키주 루이스빌시에 있는 장기 미제사건 전담팀은 30여년 전 무고한 여성을 살해한 70대 진범을 붙잡아 화제를 모았다. 한국과 달리 미국ㆍ일본 등에서는 흉악 범죄의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소시효란 범죄사실에 대한 처벌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범죄 사실이 확인돼도 처벌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살인죄 공소시효가 15년이었다가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고, 시효가 짧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2007년에 25년으로 늘어났다. 공소시효 폐지가 다시 화두로 떠오른 것은, 1999년 발생한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을 최근 법원이 기각했기 때문이다. 1999년 5월, 대구의 한 골목길에서 당시 6살이던 김태완 군이 누군가가 던진 황산을 온몸에 뒤집어썼다. 김 군은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었고 49일 동안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아이가 이웃 주민을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김 군의 부모가 검찰 수사가 적절했는지 따져달라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면서 지난해 7월이던 공소시효가 잠시 멈췄지만 고등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약 대법원에서도 기각된다면 공소시효가 만료돼 범인을 잡아도 처벌을 할 수 없게 된다. 공소시효가 25년이라지만 김 군의 사건은 법 개정 전에 일어난 것이어서 소급적용 되지 않는다. 국내 미제 사건은 2010년 20만6천647건에서 2012년 25만4천457건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일종의 미제사건으로 볼 수 있는 검찰의 기소중지도 2010년 10만 명에서 2013년 13만 명으로 늘었다. 장기 미해결 사건은 증가하고 있지만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새정치연합 서영교 의원이 지난 20일 모든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법안을 발의했다. 영미나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살인을 포함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 피해를 당한 가족은 평생 아픔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데 가해자는 일정기간 숨어살면 면죄부를 받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가짜 방화복

올 들어 아파트 등 고층건물의 화재가 많다. 화재 현장에서 나오는 열은 보통 섭씨 300도를 웃돈다. 소방관들이 목숨을 건 현장에 뛰어들어 인명 구조작업을 펼칠 수 있는 것은 고온에도 견딜 수 있는 특수방화복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뜨거운 불길 속에서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에게 방화복은 최후의 보루다. 그런데 믿기 어려운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품질 검사가 조작된 가짜 방화복이 전국의 소방서에 수 천벌 납품됐다는 것이다. 일선 소방관들은 몇 개월간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방화복에 목숨을 의지한 채 현장에 출동한 셈이다. 오늘도 소방관들이 검증되지 않은 방화복을 입고 화재 현장에서 사투를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화재 진압시 소방관들이 입는 특수방화복은 고온에 잘 견디고 강철보다 질긴 아라미드계열 등의 특수섬유로 만들어진다. 400도 이상의 열을 견뎌야 하는 등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제품인정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2013~2014년 조달청을 통해 구매한 방화복 일부가 품질 검사를 받지 않고 유통된 것으로 드러났다. 두 업체가 2년간 납품한 방화복은 1만9천300벌. 그러나 소방산업기술원이 인증한 제품은 1만4천벌밖에 되지 않아 5천300벌이 검사를 거치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도 이 방화복에 버젓이 소방산업기술원 합격표시 마크가 찍혔다. 문제는 이런 가짜 특수방화복들이 언제부터, 얼마나 전국 소방서에 지급됐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소방당국은 뒤늦게 안전검사 미필로 의심이 가는 방화복 착용을 중지시켰지만 안전을 최일선에서 다루는 현장부서에조차 이런 부실, 불량장비가 공급되고 있는 현실이 충격적이다. 목숨을 건 임무 수행에 보호 장비의 제품 검사는 필수다. 이번 사건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인만큼 엄정한 조사와 처벌이 요구된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재난 현장에 뛰어들어 국민 안전에 앞장서는 소방관들의 처우는 형편없다. 지방직 공무원 신분인 이들은 열악한 재방재정 탓에 장갑과 산소마스크 등의 소방 기본장비를 자체 구입하기도 한다. 소방관들에게 제대로 된 방화복 하나 챙겨주지 못하면서 어찌 국민의 목숨을 책임져 달라고 할 수 있을까. 이참에 정부는 소방관들의 낙후된 장비 보강과 신분 보장 등 근본 대책 마련에 나서길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엔젤지수

3월 입학 예정인 초등학생을 붙잡으려는 유통가의 판촉 열기가 뜨겁다. 특히 책가방 시장은 14K 금장식까지 등장할 정도로 고급화 경쟁이 치열하다. 아이를 한 명만 낳는 시대에 책가방 시장이 커지는 것은 한 명에게 소비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저출산 시대의 외동 자녀는 골드 키즈(Gold Kids)다. 공주나 왕자처럼 자란다. 책가방도 하나만 갖고 다니지 않는다. 학교 갈 때, 학원 갈 때, 나들이 갈 때에 따라 그때 그때 골라서 멘다. 초등학교 입학 가방은 하나뿐인 아이의 첫 출발 선물이기에 비싼 가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책가방과 신주머니 세트가 15만~20만원이면 중가다. 20만~30만원대가 프리미엄급이고, 일본 수입 브랜드는 60만원을 호가한다. 이렇게 고가 전략이 먹히는 현상은 식스 포켓(6 pocket)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자녀 한 명에게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등 6명의 재력이 몰리는 것이다. 여기에 이모나 고모가 더해져 에이트 포켓(8 pocket)이 되기도 한다. 조카를 돕는 능력 있는 이모, 고모를 통칭 골드 앤트(Gold Aunt)라 부르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 구찌 칠드런, 펜디 키즈 등 명품 브랜드의 어린이용품 전문매장이 백화점에 몰리는 것도 한 아이에게 몰리는 여러 주머니의 힘이다. 어린이 책가방은 0~14세 용품을 파는 엔젤산업의 단면을 보여준다. 엔젤산업은 영유아 및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으로 엔젤지수(Angel Coefficient)에서 파생됐다. 가계 총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인 엥겔지수(Engel Coefficient)에 빗대, 아이를 위해 쓰는 보육ㆍ교육비의 비율을 엔젤지수라고 한다. 2013년의 엔젤지수는 17.7%로, 엥겔지수가 13%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엔젤지수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도 줄지 않는다. 특히 교육비를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불황이 심할수록 교육비를 늘리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아이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는 부모의 열정이 만든 엔젤시장은 기업엔 불황 돌파구다. 엔젤시장은 2012년 기준 27조원 규모다. 사람 이름을 붙인 엥겔이던, 천사라는 뜻을 가진 엔젤이던 식품비나 교육비는 현대인의 생활에 필수적이면서 이 수치가 높아질수록 삶의 질이나 인간다움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자유, 그 이상에 대하여

오빠, 저 자유예요. 너무 행복해요 며칠 전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목소리였다. 순간 당황했다. 한껏 들뜬 여성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숨돌릴 틈도 없이 여기서는 숨 쉬는 공기조차 틀려. 마음이 너무 편해라는 말도 이어졌다. 이내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바로 향림원에서 각종 인권침해를 당했던 장애인 K씨였다. K씨는 향림원에서 드디어 나왔어. 핸드폰도 장만했다고 말했다. 이어 요새 허리가 아파서 몸은 아픈데 너무 행복해. 걱정없이 살 수 있어서 너무 좋아. 활동보조인도 잘해주셔서 크게 불편한 것도 없어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컥했다. 향림원에서 거주하던 K씨와 Y씨는 최근 향림원에서 벗어났다. 광주시내 작은 빌라에서 함께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고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으며 평범한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을 당할까 하는 걱정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향림원에서의 나날과 달리 이제는 마음 편히 단잠을 잘 수 있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단다. 문득 몇달 전 향림원 뒤편에서 몰래 이들과 만났던 추억이 떠올랐다. K씨가 전화를 걸어 너무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치킨과 맥주가 너무 먹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며칠 지난 뒤였다. 이미 취재는 끝난 다음이었지만, 외롭고 힘들다고 전하는 이들의 절절한 마음은 우리를 향림원으로 이끌었다. 그들의 절실함은 모든 것이 통제된 생활속에서 숨 쉴 공간을 찾고자하는 몸부림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리고 그때 또하나를 약속했다. 2015년에는 놀이동산에서 함께 놀고싶다는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기로 이제 이들은 심리적으로 억눌려왔던 무엇인가에서 벗어났다.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취재를 통해 알게된 이들과는 어느덧 단순한 취재원과 기자와의 만남 그 이상이 됐다. 그들은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인연이다. 이번 봄은 기대된다. 날이 따뜻해지면 이들과 함께 콧구멍에 봄바람을 실컷 넣을 수 있기에. 이명관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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