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 환경

모유(母乳)가 아기들에게 좋다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아기들이 모유를 먹으면 성장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유익하다. 우리나라 모유수유율이 해마다 높아지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다. 2005년 당시 생후 6개월 기준으로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37.4%였다.(본보 8월 6일자 8면) 그러나 유럽을 비롯한 미국, 일본 등의 50~70%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한데 그 원인이 외출시 모유를 마음 놓고 먹일 수 없는 환경때문이란다. 모유가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좋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는 있으나 모유를 먹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여성을 우대하는 백화점, 대형마트, 고속도로 휴게소 등엔 대부분 수유실이 있지만 관공서, 지하철역, 일반 사업장엔 편안하게 젖을 먹일 수 있는 환경이 거의 없다. 예를 든다. 경기도내 91개 지하철역 중 27개 역에만 수유실이 설치돼 있다. 그나마 찾기가 어렵다. 수원역의 경우 수유실을 이용하려면 2층 기차역의 고객상담실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다. 관공서도 마찬가지다. 도내 31개 시·군 청사 내에 민원인이 사용할 수 있는 수유실이 있는 곳은 수원·광명·평택·광주·남양주·김포 등 6곳 뿐이다. 관공서에서 수유실을 이용하려면 여직원 휴게실을 이용하거나 이마저 없는 경우 화장실에서 수유를 한다. 불편이 막심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버스 안에서 여성(엄마)들이 스스럼 없이 아기에게 모유를 먹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모유 수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과거와 달리 변질돼서다. 젖을 먹이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탓이다. 능히 이해된다. 그렇다고 모유수유를 개인적인 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사회구조적으로 문제점을 진단해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말로만 출산장려를 외칠 게 아니다. 수유여성들이 출근하거나 외출할 때 수유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 경기도의 경우 정책적으로 수유실 설치를 유도하고 있지만 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도 걸림돌이다. 가정 밖에서 아기에게 모유를 마음 놓고 먹일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인식변화와 배려가 필요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市長감이 36명?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더니, 그런 짝이 아닌 지 모르겠다. 수원시장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자천 타천설의 하마평이 무성하다. 내년 6·2지방선거까지는 아직도 약 9개월 반이 남았다. 이런데도 수원에서 행세께나 하는 뒷골목 선거꾼들 사이에는 인기 화두가 내년의 수원시장 선거 얘기다. 이에 따르면 거명되는 차기 수원시장의 비공식 후보가 무려 36명에 이른다. 눈에 띨 만큼 두드러진 지하 공작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가 누가 나온다더라”는 식의 ‘카더라통신’의 매명을 일삼는 이도 있다. 또 은근슬쩍 뜻을 비쳐 관심을 유발하는 유형도 있다. 이들 가운덴 같은 정당 소속 인사들이 많다. 어느당이라 할 것도 없이 정당마다 거의가 경합 양상이다. 물론 거명되는 사람들이 다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중에는 내심으로는 정작 나올 마음이 꼭 있는 것도 아니면서, 거명 대열에 끼는 것을 즐기는 이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렇긴 해도 정당마다의 공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는 전망은 거의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모르는 처지가 아니다. 적대 관계인 사람도 있지만 우군이던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어제의 우군이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가 적잖다. 당자들만이 아니다. 저마다의 패거리도 따라 움직인다. 눈치놀음 또한 심각하다. 문제는 이런 핵 분열이 좋게 갈라지지 않는데 있다. 면전에서는 웃어보여도, 돌아서서는 험담하기가 일쑤다. 지방자치 선거가 원래부터 이런 것은 아니다. 지방의 축제여야 하는 지방선거가 지역 분열의 요인이 된 현실은 지방선거의 미숙이다. 또 이같은 미숙은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 정신이 결여된 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유권자들은 뒷골목 선거꾼의 패거리와 무관하다. 수원시장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시장의 재목인지를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공명선거를 저해할 수 있는 점도 유의해야 된다. /임양은 주필

더위

한여름 염제가 맹위를 떨친다. 어제도 수은주가 33℃로 치솟았다. 길을 걷노라면 비지땀이 빗물을 맞은 것처럼 쏟아진다. 더울 때다. 온난화 현상을 말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전에도 이맘 때면 폭염의 위세가 대단했다. 꽁보리밥에 감자국으로 점심을 마친 농부들이 동네 정자나무 그늘에서 한잠 늘어지게 자곤 했다. 한낮 더위를 피해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한여름 폭염은 들녘의 오곡백과의 성장을 재촉한다. 벼는 논물에 발을 담그면 뜨거울 정도로 쩔쩔 끓어야 무럭무럭 자란다. 추울 땐 추워야 하고, 더울 땐 더워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요즘 사람들이 더위를 잘 참지 못하는 것은 성질머리 탓이다. 더위에 짜증을 내면 더 덥다. 더위와 싸워선 이길 수 없다. 더위를 피해 피서를 간다지만, 피서길이 더 더운 고행길이 되기 십상이다. 피서를 가든 가지 않든, 더위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은 피서법이다. 더위를 탓하지 않는 건 친환경적 삶이다. 하긴, 요즘 사람들은 좀처럼 맨땅을 밟기가 어렵다. 온통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산다. 집도 그렇고, 나가서 일하는 데도 그렇다. 길바닥은 또 아스팔트 투성이다. 뙤약볕 열기에 단 도시공간이 한증막을 이룬다. 그렇긴 해도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최상의 피서다. 그나저나 이제 한여름 더위도 곧 한풀 꺾인다. 벌써 태풍 ‘모라꼿’의 영향을 받고 있다. 잠을 설치게 하곤 했던 열대야도 이젠 사라진다. 해수욕장도 이번 주말로 파장이다. 8월20일이면 한류가 상승하는 것이 한반도 주변의 조류다. 한여름 더위가 가면 늦더위가 또 있다.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늦더위다. 한여름 더위는 오곡백과를 성장시키고, 오곡백과를 성숙시키는 것은 늦더위다. 내일 모레 13일이면 추분을 앞두는 말복이다. 계절의 변화는 세월의 흐름이다. 무더운 여름철이 가는 것이 좀 아쉬운 것은, 세월의 흐름은 무심하여 너무 빠르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임양은 주필

클린턴의 평양 길

미국 커런트 텔레비젼은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설립자다. 이 방송사 소속 여기자 로라 링(33)은 중국계 미 국민이다. 그가 지난 5일 평양 억류 140여일만에 석방돼 돌아간 귀국 일성 보도가 감격적이다. “언제 노동교화소로 보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는데 갑자기 불려나가 한 방의 문을 여는 순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30시간 전만 해도 유나 리와 나는 북한에서 죄수였다”며 눈물을 쏟았다. 미 연방정부는 이번 클린턴의 평양 방문에 돈 한 푼 쓰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클린턴 개인의 인도주의적 비공식 방문 성격으로 국한하기 위해서다. 클린턴이 탄 보잉737 여객기 전세비와 왕복연료 및 조종사 승무원 수당 등 20만달러를 영화 제작자인 스티브 빙이 제공했다. 빙은 클린턴의 오랜 친구다. 비공식 방문이긴 해도 클린턴은 김정일과의 만남을 비롯한 평양 일정을 오바마에게 자신의 관점과 함께 직접 전했다. 오바마에겐 베일속이던 김정일 근래 동향의 목격담은 아주 귀한 주요 정보인 것이다. 외국에 대한 미국의 자국민 관리는 철저한 보호주의다. 억류된 산 사람은 물론이고 죽은 사람도 미국으로 데려간다. 제2차대전의 미군 전사자 유해가 발굴되면 지구촌 어디든 장소 불문하고 찾아가 자기나라 국립묘지에 안장한다. 한국전쟁 당시 북녘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 유해 또한 북에 달러를 주어가며 운구해간다. 이같은 자국민 보호는 물론 공식적이다. 미국 국민사회는 세계의 ‘인종시장’으로 불리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위대한 아메리카 합중국을 이루고 있다. 미 국민이면 공식·비공식이든 피부 색깔을 가리지 않는 연방정부의 전통적 대외 자국민 보호정책이 인종을 초월한 국가건설의 저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은 김정일과의 만남에서 한국과 일본 국민이 억류된 현안도 언급한 걸로 알려졌다. 지금 북에 있는 남쪽 사람은 미송환 국군 생존포로, 납북 어민 등을 비롯해 약 500명이다. 이중 현대아산 직원 1명과 연안호 어민 4명 등 5명은 당장 돌아와야 할 사람인데도 못돌아오고 있다. “대북 특사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이 과연 능사인 가를 생각해 본다. /임양은 주필

서머타임

‘서머타임(summer time)제’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낮의 길이가 긴 여름 동안 시곗바늘을 표준시간보다 1시간 앞당겨 일광시간을 유용하게 쓰자는 제도다. 새벽 시간 가운데 1시간을 줄이는 대신, 저녁의 일광 활용시간을 1시간 늘리자는 것이다. 서머타임제는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이 양초 절약 방안으로 제안한 것이 시초다.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2차 세계대전과 오일쇼크 등 위기 상황에서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부터였다. 1915년 독일에서 세계 최초로 채택한 데 이어 영국, 미국 등이 뒤따랐다. 특히 서머타임제가 도입되기 시작한 20세기 초엔 전력사정도 좋지 않은 데다, 전체 전력소비량 중 조명의 비중이 워낙 높아 에너지 절약 효과가 상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서머타임제를 두번 시행했었다.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6·25 한국전쟁을 제외하고 10년간 실시하다가 1961년 폐지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표준 자오선을 지금의 동경 135도가 아니라 동경 127도를 사용, 일본(135도)과 시간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두번째는 1988년 올림픽 개최를 맞아 2년간 시행됐다. 이 기간 동안 5월 둘째주 일요일까지 서머타임제를 적용했다. 우리나라는 서머타임제를 시행령 개정으로 도입할 수 있다. 1986년 12월 표준시에 관한 법률을 개정, 대통령령으로 서머타임제 도입의 근거를 마련했다. 법과 시행령이 모두 1개의 조문으로 구성돼 서머타임제 도입시 시행령이 제정되고, 서머타임제를 폐지할 경우 시행령을 폐지하면 된다. ‘표준시에 관한 법률’ 내용엔 표준시를 동경 135도의 자오선을 표준자오선으로 정하도록 했다. 서머타임제는 미국, 유럽 등 세계 80여 나라에서 이미 생활화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백야 현상이 심한 아이슬란드를 제외하면 미시행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문제는 노동계의 반발이다. 내년 여름철, 출근은 1시간 일찍하고 퇴근은 서머타임제 도입 이전과 똑같이 하게 될 경우 노동시간만 길어진다고 주장한다.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에 따라 찬반 차이가 난다. 서머타임제를 도입할 경우 삶의 질은 올라갈 수 있다지만 노동계의 의견을 전면적으로 무시해선 안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행복의 조건

행복추구권은 헌법상의 권리다. 자연법적 사상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그러나 행복을 느끼는 행복감은 주관적 비판이다. 가령 아흔아홉섬 가진 이가 백섬을 채우기 위해 한섬 다툼으로 바동거린다면 행복감을 갖지 못한다. 그 한섬으로 인하여 지녔던 것도 잃을 수가 있다. 백섬을 채운다 해도 새로운 욕심이 생긴다. 물론 높은 성취도를 달성하는데서 행복감을 갖긴한다. 하지만 희망과 허욕은 다르다. 행복은 먼데있는 신기루 같은 게 아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 널려있는 것이 행복의 대상이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곧 행복이다. 행복은 감사한 마음에서 싹튼다. 물론 범사의 행복은 일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 행복을 고맙게 여기지 못하면 특별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어떤 처지에 있느냐는 것은 행복의 상대적 조건일 뿐, 절대적 조건은 아니다. 예컨대 중국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사마천(司馬遷)은 조정에서 이릉이라는 사람을 변호하다가 궁형(宮刑)을 당했다. 거세와 함께 절단하는 것이 궁형이다. 이릉은 흉노를 상대하여 화살이 바닥나고 창칼이 부러질 때까지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어서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할수 없이 항복한 게 논란이 됐다. 사마천은 한동안 실의에 빠졌다가 자신이 할 일을 찾았다. 그리하여 황제(黃帝)에서 한무제(漢武帝)에 이르는 130권의 ‘사서’(史書)집필을 18년만에 완성시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사마천은 상대적 악조건에서 자신의 행복을 일궈낸 것이다. 경기도청 공무원들의 설문조사 결과가 눈길을 끈다. 직장내의 행복 정도에 30%가 ‘매우 행복’이거나 ‘약간 행복’이고, 54%는 ‘보통이다’인 반면에 ‘불행하다’는 응답이 14%라는 것이다.(나머지 2%는 뭔지 설명이 없다) 경기도청에도 문제가 많을 것이나, 문제가 없는 조직문화는 아무데도 없다. 아무리 잘된 조직일지라도 문제는 다 있다. ‘보통이다’라고 했거나 ‘불행하다’고 응답한 원인 또한 여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 남들에 의해 시정되기 보단, 자신이 먼저 극복해낼 줄 아는 것이 행복을 거머쥐는 생활의 지혜다. 사람은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능히 행복하다. /임양은 주필

학자금 대출

대학 입시가 지옥이라는 것은 쏠림 현상이다. 엄청난 경쟁 비율의 대학이 있는가 하면, 지원자가 정원 미달의 대학들이 적잖다. 사교육이 판치는 것은 입시 경쟁의 쏠림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학원은 참 이상한 곳이다. ‘학파라치’ 실시 이후 7천여만원의 보상금이 지출 됐다고 한다. 심야반을 제한한다고 하니까, 새벽반을 두는 기발한 착상을 하는데가 학원이다. 입시사정관제가 확대된다니까, 입시사정반 수강생을 또 모집하는 모양이다. 학력(學歷)은 높은 데, 학력(學力)은 낮은 게 한국적 사회의 병리현상이다. 영국의 경우엔 학문을 하거나 전문인이 될려는 사람들만 대학을 간다. 우리나라 역시 고등학교 과정만 제대로 공부해도 고등 소양의 시민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나 어떻든 대학 진학은 필수 코스로 인식된 것이 현실이다. 가령 중매가 들어오면 대학은 당연히 다녔을 것으로 치고, 으레 “어느 대학 나왔지요?”하고 묻는 세태다. 이렇다 보니 형편이 어려운 집 자녀들은 연간 1천만원대의 등록금이 여간 벅찬 게 아니다. 정부가 가난해서 대학 못다니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맞춤형 국가장학 지원책으로 ‘한국장학재단’을 설립한다고 한다. 21세기 지식산업사회에서 인재 양성은 미래지향적인 투자다. 미국 같은데선 민간장학재단이 많다. 이 때문에 미국 대학생들은 여기 저기서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가 있다. 또 미국 사회는 고등학교까진 부모의 도움을 받아도, 대학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자립하는 인식이 보편화 됐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도 아깝고, 대출받은 학자금도 아까워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연애 끝에 결혼을 하려면 서로 빚진 학자금 대출 상환이 얼마 남았으며, 앞으로 어떻게 갚을 것인가를 미리 의논할 정도라고 한다. 나라에서 집이 가난한 대학생에게 혜택주는 학자금 대출의 취지는 참 좋다. 하지만 문제점도 많다. 우선 국가의 재정 부담이 수 조원에 이른다. 무슨 돈으로 조달하느냐가 과제다. 취직해서 갚도록 한다지만, 갚지않는 도덕성 해이도 고려해야 된다. 또 학자금 대출을 기회로 대학 등록금이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점 없는 시책은 없다. 문제점이 많아 미리 포기하기 보단, 문제점을 보완해가며 실시하는 것이 전향적이다. 인재 양성을 위해서다. /임양은 주필

‘먼지부자’의 아들들

무척 부지런한 사장이 있었다. 시외버스 사장이다. 새벽에 다른 직원보다 먼저 출근해 차량 점검이며 사무실 등의 이런 것, 저런 것을 다 챙기곤 했다. 부실한 점이 있으면 직접 손질을 하기도 했다. 광주(光州)여객 사장이 이랬다. 1945년 광복 직후다. 그 무렵은 100리 길은 걷기가 예사였다. 이러던 참에 시외버스의 출현은 경이적인 교통수단이었던 것이다. 버스라고 해서 지금같은 버스가 아니다. 일제 때 썼던 도요타 트럭 같은 것을 드럼통을 편 철판 용접으로 겨우 버스 모양을 갖췄다. 이렇다 보니 의자는 나무 의자고, 차창은 있지만 창문은 없이 커튼같은 걸로 차창을 가렸다. 그러니까 승객이 운행 중 창밖을 보려면 덜렁거리는 커튼을 제쳐보곤 하였다. 도로는 국도도 아스팔트 길이 아니고 온통 자갈모래를 깐 비포장 도로 일색이므로 차가 지나가면 먼지투성이가 되곤 했다. 도로 여건도 차량운행에 대비한 안전대책이라고는 전혀 없어 열악하기가 짝이 없었다. 이런데도 ‘운수(運輸)사업은 운수(運數)’라는 데, 별 사고 없이 버스사업이 잘 되어 돈을 무척 많이 벌었다. 광주여객 사장을 가리켜 사람들은 ‘먼지부자’라고 불렀다. 초창기의 광주여객은 구 광주역사 역전통에 있었는 데, 그 ‘먼지부자’가 바로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朴仁天)씨다. 금호그룹은 광주여객이 모태이고 금호(錦湖)는 고인의 아호다. 캐캐묵은 얘길 장황하게 꺼내는 것은 이러한 금호그룹이 ‘형제의 난’을 겪고 있어서다. 결국 경영 일선에서 동반 퇴진했다는 박상구씨는 고인의 3남이고 박찬구씨는 4남이다. 창업주 박인천씨는 1984년에 세상을 떴다. 얽히고 설킨 그룹 내부의 갈등을 여기에 옮길 필요는 없다. 각기 또한 입장이 있을 것이다. 다만 생각되는 것은 ‘수성(守城)이 창업보다(創業)보다 어렵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이다. 아버지가 ‘먼지부자’였을 적에 박상구씨는 20대초반의 청년이었고, 박찬구씨는 세살난 아기였다. 혼백이 있어 저승의 아버지가 이승의 형제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우애를 다지는 화해를 질책삼아권고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어린이 생일파티

예전엔 어린 아들, 딸이 생일을 맞이하면 부모가 ‘작은 잔치’를 마련했다. 아침에는 쌀밥과 미역국, 생선 반찬으로 밥상을 차렸고, 점심 땐 특별외식으로 주로 자장면을 사 먹였다. 형편이 조금 좋으면 새옷이나 새신발을 사주어 생일 맞은 자녀를 기쁘게 했다. 언제부턴가는 초등학생들도 생일을 맞이하면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하는 게 관례가 됐다. 부모가 피자나, 통닭, 과자, 과일, 음료수 등을 대접하면 초대받은 아이들은 미리 마련해온 학용품이나 인형 등 선물을 내놨다. 이런 생일 초대는 제법 살 만한 가정에서나 가능했다. 그런데 요즘 부유층의 어린이 생일잔치는 초호화판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해외여행 바람이 불면서 여행, 연수, 유학 등으로 미국 문화를 경험한 중·상류층이 국내로 들어와 자녀의 생일파티를 미국식으로 챙기게 되면서부터다. 예컨대 서울의 소위 부자 동네 사람들이 선호하는 어린이 생일파티 장소는 특급호텔이나 상류층 전용클럽, 고급 레스토랑 등이다. 50평대 이상의 대형 아파트 거주자는 전문 파티 플래너(기획자)와 케이터링(출장 연회업) 서비스 등을 이용해 자녀의 생일파티를 해 준다.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를 위해 개인 별장으로 자녀와 같은 반 아이들을 전부 불러 파티를 열거나 전세버스로 펜션 등으로 데려가 1박2일로 생일파티 겸 야외 체험학습을 시켜 주는 부모도 있다. 문제는 중산층이나 서민층에도 이런 문화가 퍼져 나가면서 수입이 넉넉지 못한 서민 부모들의 부담이 만만치 않은 점이다. 누구는 생일파티를 호텔에서 했고, 누구는 별장에 반 친구들 모두를 초대했다고 부러운 듯이 말하는 자녀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 생일파티가 집안 기둥을 뽑고, 생일파티 해주려고 적금까지 들어야 할 판이 됐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어린이 호화 생일파티는 어른들의 과시욕에서 나온 것이지 아이들이 원해서라곤 할 수 없다. 하지만 부모가 돈을 물 쓰듯 하는 것을 보고 어린이들이 배울 건 사치와 낭비 풍조일 게 뻔하다. 그런 생일파티를 치르지 못하는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 것도 걱정스럽다. ‘대학 등록금 1천만원’ 시대에 어린이 생일파티로 1천만원을 쓰는 일부 부유층의 과시는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정상적이 아니다. 반사회적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박태환 선수에게 격려를

스포츠 경기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승패를 거듭한다. 개인 경기에선 더욱 그렇다. 베이징올림픽의 수영 금메달리스트 박태환 선수가 로마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저조한 기록을 보인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안타까운 일이다. 스포츠 경기에서의 패배는 물론 선수 본인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박태환도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2연패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이 심적 부담을 주었을 것은 자명하다. 박태환 스스로 “많은 성원을 보내 준 국민의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하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지난해 올림픽 때보다 두 배 이상 큰 부담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나를 둘러싸고 대표팀과 전담팀 사이에서 벌어지는 압력과 수영 관계자들 간의 파벌싸움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는 비판은 의미가 깊다. 결승 탈락의 책임 일부를 남에게 전가하려 한다는 비난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수영계의 고질적 파벌 싸움에 전담코치도 없이 훈련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선 스폰서업체인 SK텔레콤은 지난해 10월 박태환 전담팀을 구성했으나 전담코치를 두지 않았다. 올해 있은 두 차례의 미국 전지훈련에선 미국인 코치의 지도를 받게 했고 국내에 와서는 노민상 대표팀에게 박태환을 맡겼다. 전담팀은 미국인 코치와 함께 박태환의 주종목을 1,500m로 설정하고 이에 필요한 지구력 훈련에 주력했지만, 노민상 감독은 베이징올림픽에서 금, 은메달을 딴 400m와 200m를 주력 종목으로 보고 스피드 강화훈련을 주로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목표가 다른 훈련을 시킨 셈이다. 더구나 스폰서와 광고업체의 경쟁이 훈련을 망쳤다. 현지 적응을 이유로 먼저 로마에 간 박태환의 가장 중요한 기간에 광고 촬영을 한 것은 크게 잘못됐다. 박태환이 거부할 수 없었음은 능히 예상된다. 박태환 선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20살의 청년이다. 내달 1일의 1,500m경기와 내년 아시안게임, 2012년 올림픽 등 세계적인 수영경기는 많다. 박태환은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부진을 귀중한 경험과 보약으로 삼았을 것으로 믿는다. 스폰서업체, 수영계는 물론 국민 모두 박태환 선수가 금빛 물살을 다시 가를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갈비파티

먹고 살만한 집 아이의 급식비까지 그냥 먹이자는 게 초등학생 전원 무상급식이다. 300명 이하의 초등학교만도 171억원이든다.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하자면 수 천억원이 들 것이다. 혈세의 낭비다. 지난 22일 끝난 경기도의회 정례회에서 300명 이하의 무상급식비 예산 전액이 삭감된 데 항의해 철야농성을 벌였던 민주·민노당 도의원들이, 정례회 폐회와 함께 농성을 푼 그날 밤 가진 갈비파티가 구설수에 올랐다. 먹는 것을 두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보아하니 말을 듣게 됐다. 우선 도의회 의장에게 밥을 사라고 한 것 부터가 듣기에 거북하다. 의장이야 ‘그렇게 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녁 식사란 게 술판에 갈비파티일 줄은 도의회 의장도 아마 미쳐 몰랐던 것 같다. 17명의 음식값이 189만원 나왔으면 1인당 10만원도 넘는다. 이토록 질펀하게 걸친 거액을 누군가의 명함 한 장으로 외상을 했다니, 이 또한 공직자의 품위에 흠결이 없다할 수 없다. 다음은 음식값 처리다. 도의회 의장의 업무추진비는 1인당 식사비 기준이 4만원인 모양이다. 4만원 식사비도 상당하다. 한데, 이로 따져 17명의 식사비로 지출할 수 있는 한도액 68만원보다 121만원이 더 많은 게 탈이 됐던 것 같다. 결국 도의회 의장이 68만원을 지출하고, 나머지 121만원은 같이 식사했던 사람들이 각기 나눠 부담키로 했다는 것이다. 생각되는 것은 갈비파티 돈을 나눠 분담할 것을 알았으면 그토록 진하게 먹진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 기왕 그렇게 됐으면 도의회 의장에게 신세도 안 지고, 나눠 분담할 것도 없이 누군가가 혼자 다 냉큼 내는 통 큰 사람이 있을법도 한데, 한 사람도 없었단 사실이 조잡스레 보인다. 작심하면 하다못해 할부로라도 카드를 그을 수가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젠 도덕성이다. 사람의 일엔 장합이란 것이 있다. 도의원이라고 해서 갈비파티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성은 무상급식비 전액 삭감에 대한 항의 농성을 풀자마자 이내 소주에 갈비를 즐긴 것은 장합의 앞뒤가 맞지 않는 데 있다. “철야농성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보도된 어느 학부모의 코멘트는 틀린 말이 아니다. /임양은 주필

A형간염

고등학생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A형간염 환자가 늘고 있다. 며칠전에 본보에서도 ‘A형간염 환자 신종플루 8배’ 제하로 보도된 바가 있다. 그런데 젊은이들의 A형간염도 문제지만, 이 바람에 백신이 거의 바닥나 갓난 아기들의 예방접종이 막힐 지경인 게 또한 큰 문제다. 청소년들에겐 성인용 접종약이 따로 있지만, A형간염 환자 속출로 이미 떨어져 아기들 접종약을 쓰기 때문인 것이다. 또 청소년들에 대한 접종은 아기들 약을 2~3배로 늘려 써야하므로 소비량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의료계에 의하면 젊은층의 A형간염 환자 속출 원인이 참 아이러니컬하다. 엄마들의 아이들 과보호가 면역성이 약한 약골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려서 위생을 지킨다며 흙도 안 묻히도록 하면서, 지나친 청결 위주로 키워 되레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렇게 자란 아이가 청소년이 되어 행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절로 접촉되는 불결한 세균에 면역성이 없거나 약해 결국 A형간염을 앓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유형으로 머슴 아이는 흙바탕에서 놀아도 튼튼하게 자란 데 비해 주인집 도령은 맨땅이라고는 밟지 않고 자라도 병골이 많았었다. 또 머슴 아이는 깡보리밥에 된장국만 먹어도 건강하고, 주인집 아이는 흰 이밥에 고깃국만 먹어도 약골이었던 것이다. 웬만한 간염은 원래 성장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감염됐다가 자신도 모르게 치유되어 면역성을 갖게 되는 데, 주인집 도령처럼 곱게만 키우다 보니 면역성을 기를 겨를이 없으므로 청소년이 되면 그만 감염되기가 쉬운 것이다. 그렇다고 위생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지나친 결벽성도 문제다. 예컨대 병원 문고리를 열면서 화장지로 감아 돌리는 결벽성은 병적이다. “그러나 저러나 큰 일이예요” 아기의 A형간염 접종을 하러갔다가 약이 없어 못했다는 어느 초보 엄마의 걱정이다. 정부의 방역대책에 문제가 없지 않다. /임양은 주필

골목상권

내가 사는 수원 조원동은 서민층 동네다. 집 주변 50m안에 A·B·C 세 곳의 골목가게가 있다. 슈퍼마켓이다. 가장 가까운 곳이 C다. 다음은 B·A 순이다. C는 제일 가깝지만 잘 안 간다. 친절미가 없다. 주인이 간부 공무원을 지냈다는 것으로 들었다. B는 가끔 가긴해도 좀 그렇다. 한 번은 내가 즐기는 상표의 막걸리를 찾느라고 한참동안 뒤졌지만 없었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본 주인의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술을 넣어둔 냉장고 창문을 한참동안 연게 언짢았던 것이다. 아마 전기요금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A는 집에서 가장 멀지만 단골 가게다. 젊은 부부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보기가 좋지만 물건값이 싸다. 예를들면 B에선 ‘맛동산’ 과자 한봉지를 1200원 받는 데 A에서는 1000원이다. 같은 골목가게인 데도 무려 20%의 차이가 난다. A가게는 손님들이 붐빈다. 물건을 든 채 계산대 앞에서 줄지어 서는 경우가 잦다. B나 C가게에선 볼 수 없는 고객 행렬인 것이다. 골목가게를 힘들게 하는 것은 대형유통점만이 아니다. 역시 내가 사는 동네 시장 입구에 가면 O마트가 있다. O마트는 대형 유통점이 아니다. 경찰관 출신이 주인이라는 것 같다. 손님이 항상 와글와글 한다. 물건좋고 값은 싸기 때문이다. 골목가게나 O마트에서나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 거리 안에 골목 상권을 죽인다는 대형유통점이 있다. 대형 유통점을 기업형이라고 하는 데 완전한 대기업이다. 이런 대형 유통기업의 거미줄 영업망이 골목상권을 죽인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해도 번창을 누리는 골목상권의 슈퍼마켓이나 O마트도 있다. 이런가운데 장사가 안되는 동네 슈퍼마켓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이에 대한 대책을 관계 당국이 강구해보긴 해야 된다. 하지만 ‘제자백가 쟁명’식의 중구난방 대안보다 먼저 스스로가 더 노력해야 하지않나 싶다. 지금은 소비자에게 애국심이나 애향심에 호소해서 되는 때가 아니다. 속담에 ‘외삼촌 떡도 커야 사먹는다’고 했다. 동네 골목 같으면 무엇보다 골목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아야 된다. 소비자 주권 시대다. 소비자의 선택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골목상권도 이런 인식에서 출발해야 된다. 대형 유통점 또한 불특정 다수의 서민층 고용효과가 높다. /임양은 주필

쌀값

조선시대 정승인 정1품의 1년치 녹봉은 쌀과 명주 등을 모두 합쳐 쌀 100석(섬) 정도였다고 한다. 쌀 100석이면 현재 가격으로 2천880만원이다. 당시 정승인 현 국무총리의 연봉이 1억5천만원 정도니까 가치 차이는 5배가 난다.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沈淸)은 몸값으로 공양미 300석을 받았다. 1석이 144㎏이니까 300석이면 4만3천200㎏이다. 이를 80㎏ 쌀 한 가마니로 환산하면 540가마니가 된다. 지금 80㎏ 쌀 한 가마니 가격이 16만원 정도니까 공양미 300석의 지금 가격은 8천640만원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몸값도 쌀로 계산할 정도로 수천년 동안 우리 민족에게 쌀은 가장 확실한 환금가치를 지닌 현물화폐였다. 조선시대엔 대부분 왕이 쌀을 하사하고 세금을 거뒀다. 조선 600년의 실물경제는 쌀의 가치를 기준으로 움직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쌀의 가치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까지만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8·15 직후 전문대학 졸업자의 한달 봉급은 당시 돈 400원 선, 이 돈으로 쌀 한 가마니와 쇠고기 한 근을 살 수 있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쌀 한 가마니의 가치는 지난해 기준으로 대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초봉은 월 200만원 선, 이 돈이면 쌀 열두 가마니를 사고도 남는다. 쌀의 가치 하락은 대학교 등록금과 비교해 보면 더 확연하다. 1970년 80㎏ 쌀 한 가마니 가격은 5천400원, 당시 사립대 1년 등록금이 10만원 선이었으니까 쌀로 환산하면 18가마니 정도였다. 1980년엔 26가마니, 1990년에는 36가마니, 2008년엔 무려 75가마니로 쌀의 교환가치 추락은 그 끝을 모를 정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장에 쌀 한 됫박(2㎏)을 가지고 나가면 닷새치 장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이 돈으론 고등어 한 손 사기 어렵다. 지난 반만년 우리 민족사에서 쌀이 남아 걱정을 한 기간은 10년도 되지 못한다. 지금 쌀이 남는다고 방심하다간 정말 큰일 난다. 쌀 한 가마니의 가치는 농업인의 열정과 그 농업인이 맺은 사회·역사적인 내재가치로 평가돼야 한다. 다른 물품에 비해 쌀값이 너무 싸다. /임병호 논설위원

모의총기

외국과 달리 한국은 총기로부터 안전한 나라로 통했었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다. ‘진짜 총’ 같은 모의총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30일 고양시에서 모의소총으로 버스 유리창을 향해 유리알탄을 발사한 사건이 사례 중 하나다. 범인이 사용한 개조된 M16 모의소총은 4~5m 떨어진 곳에서도 버스 강화유리를 박살냈다. 30m 이내서 사람이 맞으면 치명적이다. 범인은 이 모의총기를 인터넷에서 105만원에 구입했다. 문제는 이런 모의총기류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총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할 정도다. 인터넷에선 완구용 총을 살상무기로 바꿔주는 불법 개조용 부품도 함께 팔린다. 서바이벌 게임 동호인들은 대부분 최대한 실제와 가까운 느낌을 원하기 때문에 게임에 나설 땐 군용 전투식량을 먹는다. 일부 동호인들이 모의총기를 구입해 진짜 총기와 같은 느낌이 나도록 개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개조된 총기의 위력은 실제 총기나 마찬가지다. 격발장치인 공이가 있는 서바이벌 게임용 총기에 화약을 넣고 발사하면 사거리가 1㎞를 넘는다. 완구용과 수출용을 제외하곤 모의총기를 제작하거나 소지하는 것은 불법이다. 5m 이내에서 쐈을 때 A4용지 5장을 뚫을 정도인 0.2J(줄·1줄은 물체를 1m만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을 넘어서면 완구용 총이 아닌 모의총기에 해당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소남 의원 등 의원 10명이 지난 4월 서바이벌 게임용 총기의 제조 및 판매를 허용하되 이를 소지하는 사람은 경찰에 신고해 엄격한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총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미 모의총기를 제작하거나 소지해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총포법)을 위반한 건수가 2002년 31건에서 2007년 161건으로 크게 늘었다. 모의총기를 불법으로 밀반입하다 세관에 적발된 건수도 2004년엔 단 한 건도 없었지만 지난해 43건으로 늘어났다. 불법 유통된 모의 총기는 강도·폭행·협박 등 각종 범죄에 범행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진짜 총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의총기를 들고 백주대로에서 날뛰는 족속들이 나올까봐 심히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이런 지방의원?

A·B 등 두 업체가 있다. 상·하수관 등 부설 전문의 중소기업이다. A가 B보다 규모가 더 컸다. A의 성실성을 관련 업계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A는 검증된 국내 자재만으로 시공한다. B는 더러 중국산 자재를 쓰기도 한다. 이런 시공 자재에도 중국산이 들어온다. 농수산식품만 중국산이 판치는 게 아니라, 시공 자재에도 중국산이 들어오는 것이다. 물론 값은 중국산이 국산보다 더 싸다. 그러나 중국산은 품질이 떨어져 국산 자재보다 수명이 짧다. 땅속에서 더 빨리 부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땅속에 묻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파보지 않으면 국산 자재인 지, 중국산 자재인 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데 A보다 규모가 작았던 B가 갑자기 성장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더 큰 업체가 됐다. 기업주가 지방의원이 되고나서 벌어진 현상이다. 듣건데 자치단체의 공사 발주를 따기 위해 지방의원직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한다. 말하자면 은근히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자치단체 공무원이 만약 지방의원의 의도를 받아들이 지 않아 여의치 않으면 여러가지로 귀찮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방의원들은 기업주 명의를 가족 이름으로 해놓기도 한다. 이를테면 기업주는 차명이고 진짜 주인은 지방의원 자신인 것이다. 기업을 갖고 있지 않은 지방의원도 공사 발주에 관여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 대가성 청탁을 받고 압력을 행사하는 브로커인 것이다. 브로커 지방의원도 있는 터에 기업 겸업 지방의원이 공사 수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치단체와 지방의원의 그 같은 유착은 편법이다. 편법도 엄밀히 따지면 불법이다. 뭣보다 기업 겸업의 지방의원이 지방의원 소임을 제대로 할 리가 만무하다. 어느 전문업종의 국가 자격증을 지닌 인사가 지방의원이 되면서 나름대로 개혁을 다짐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개혁 피로감에 빠져 이렇게 술회한다. “들어가서 보니까, 얽히고 설킨 게 나 혼자 그래봐야 왕따만 당하더라”는 것이다. B는 A보다 어떻게 업체를 빨리 키울 수 있었을까? /임양은 주필

‘뇌파파라치’

파파라치가 사태났다. 우선 생각되는 게 교통법규 위반차량을 신고하는 ‘교파파라치’ 잘못된 음식점을 신고하는 ‘식파파라치’ 쓰레기 무단투기를 신고하는 ‘쓰파파라치’ 선거사범을 신고하는 ‘선파파라치’ 학원 불법영업을 신고하는 ‘학파파라치’ 등이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얼마전 교사에게 촌지 주는 것을 신고하면 3천만원까지의 포상금을 주는 ‘촌파파라치’를 시행한다고 했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파파라치는 염문설이 파다했던 전 영국 왕세자빈 다이애나를 파리 시가지에서 쫓던 사진작가들의 맹추격으로 그녀가 탄 차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사망한 데서 비롯된 유행어다. 파파라치(paparazzi)는 원래 이탈리아 말로 유명인 대상의 몰카꾼을 일컫는다. 파리 떼처럼 달려든다는 뜻이 담겼다. 그런데 이들 사진 파파라치는 극성스럽긴 해도 프로 작가다. 자신이 찍은 희귀 영상을 언론사나 잡지사에 비싼 값을 받고 판다. 이에 비해 앞서 예를 든 국내 파파라치는 남의 비위를 신고해 포상금을 받는다. 즉 포상금을 노려 남을 밀고하는 것이다. 파파라치의 신고 내용은 사회악이다. 사회악 척결은 마땅하나, 순수한 시민정신이 아닌 포상 위주의 밀고는 또한 사회 분열을 조장한다. 이렇긴 해도 파파라치의 신고가 필요하다면, 이 사회의 시민정서 결여라고 보아져 안타깝다. 한데, 또 하나의 파파라치가 등장할 것 같다. ‘뇌파파라치’다. 공무원에게 뇌물로 돈을 준 공여자가 신고하면 그 돈을 수뢰 공무원으로부터 되돌려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가 이의 시행을 8월부터 시작할 예정으로 검토하는 모양이다. 대구시청을 출입했을 때다. 기자실을 찾아 공무원에게 돈을 주었다는 50대 남자가 있었다. 공장 증축을 하는데 건폐율 때문에 준 돈을 지금은 공장을 그만두었으므로 찾아야겠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한심하기도 하고 무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구청 건축과장인 당사자에게 당장 되돌려 주도록 한 적이 있다. 뇌물을 받은 사람도 나쁘지만 준 사람도 좋은 사람은 아니다. 공직사회의 뇌물 풍조는 추방돼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의 법에 반한 이익을 위해 공무원을 이용한 공여자를 두둔하는 것은 인성사회의 방법이 아니다. 경기도의 ‘뇌파파라치’ 검토는 철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임양은 주필

故 고미영씨

이런 말을 했다. “역경에 처해 강하다는 것은 이를 악물고 참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유명 인사의 말이 아니다. 마흔두살 아까운 나이에 히말라야 고산에서 숨진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코오롱 스포츠 챌린지 팀장)의 말이다. 어느 산악 전문기자가 고인을 추모하며 쓴 기사에서 그 같은 말이 소개됐다. 고미영씨는 역경에 대한 도전을 고통으로 여기기 보단, 행복한 마음으로 극복해내곤 했던 것이다. 해발 8천125m의 낭가파르바트 등정은 그가 목표한 8천m급 봉우리 14번 중 11번 째다. 지난 12일 정상을 오르고난 하산길에서 실종된지 사흘만에 발견된 주검은 만년설에 반쯤 묻혀있어 실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추락한 지점의 계곡이 워낙 험준하여 헬리콥터로 주검을 수습하는 데 여러날 걸렸다. 역경을 이겨내는 덴 물론 이를 악무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이다. 그러나 기왕 다진 극복의 의지를 고통스럽게만 여기기 보단, 행복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심오한 의미가 담긴 금언 중 금언이다. 많지 않은 나이에 터득한 고매한 이치는 고산 등반에서 깨우친 좌우명일 것이다. 비단 등반만이 아닌 일상생활의 범사가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갖는다. 우리가 처하는 어려운 역경에, 그 역경을 타개해야 하는 것은 어차피 우리다. 역경 타개의 고통을 고통으로 알기보다는, 기왕이면 행복하게 여기는 게 생활의 지혜일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말을 오바마가 며칠 전 또 이렇게 했다. “누구든 운명을 대신 써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밀어준 흑인사회에 감사한다면서, 그러나 대통령으로 특별히 해줄 게 없다며 오직 배움에 열중하라”고 말했다. 화제가 좀 빗나갔다. 고미영씨의 안태 고향은 전북 부안이고 성장 고향은 인천이다. 고인의 유해가 어제 유족과 산악인들의 오열속에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에 운구됐다. 곧 있을 영결식에 이어 화장되는 유골을 히말라야 8천m급 고산 3개봉에 나눠 뿌려 고인의 염원이었던, 14개 고산의 등정 꿈을 영혼이나마 마저 이루게 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양은 주필

‘미키마우스’의 미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는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LPGA 챔피언십, US여자오픈, 브리티시여자오픈 등 한 시즌 4차례 메이저 대회를 치른다. US오픈이 1950년부터 시작돼 역사가 가장 길고, 1955년부터 열린 LPGA 챔피언십이 다음으로 오래됐다. 나비스코 챔피언십은 1983년에 창설됐고, 브리티시오픈은 2001년부터 메이저 대열에 포함됐다. 한국여자골프군단의 LPGA 도전사는 메이저 대회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PGA 무대를 본격적으로 개척한 박세리는 1998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다음 US오프에선 ‘맨발 투혼’을 보인 끝에 우승컵을 더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무렵 많은 여자 어린이들이 박세리의 우승에 감명받아 골프를 시작했다. 이른바 ‘박세리 키즈’의 출발이다. 올해 한국선수단의 6승 중 5승을 거둔 신지애, 오지영 등 우승자들은 모두 1988년생이고, 이들보다 두 살 많은 지은희도 박세리의 전성기 때 골프를 시작해 ‘박세리 키즈’ 중 한 명이다. 박세리는 이후에도 브리티시오픈 등에서 3승을 더해 메이저 대회 5승을 기록했고, 뒤를 이어 6명이 한 번씩 우승을 더했다. 메이저 대회 중 가장 권위 있는 US오픈은 지난해 박인비, 올해 지은희의 연속 우승으로 한국과 가장 인연이 깊은 메이저 대회가 됐다. 2005년 김주연까지 한국선수가 4번 우승했고, LPGA 챔피언십과 브리티시오픈에선 각각 3차례씩 우승컵을 차지했다. 나비스코 챔피언십은 박지은이 2004년 우승한 게 유일하다. 메이저 대회는 박세리를 필두로 1998년부터 7명이 11차례 정상을 차지해 가히 한국 여인천하다. 지난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베슬리헴의 소콘밸리CC 올드코스에서 열린 US여자오픈에서 드라마 같은 뒤집기로 ‘메이저 퀸’이 된 ‘미키마우스’ 지은희는 애칭처럼 언뜻 보기엔 약골처럼 비쳐진다. 1m62의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얼굴은 다소 창백해 보이지만 체력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지은희는 고향 가평에 돌아와 웃음을 지으며 “이왕이면 메이저 대회에서 한번 더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세리처럼 서너번은 더 우승해 한국과 경기도를 세계만방에 빛내주기 바란다. /임병호 논설위원

택시기사들의 고충

지난달 1일 서울시내 택시 기본요금(2㎞ 기준)이 1천900원에서 2천400원으로 오른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유가인상으로 인한 택시업계의 어려움을 감안해 당국이 기본요금을 올려줬지만 택시기사들은 오히려 승객이 감소돼 불만이 적잖다. 번 돈 중 일부를 회사에 내는 사납금이 인상돼 이중고에 시달린다. 택시기사들은 보통 9만1천~9만5천원 가량을 회사에 냈는데 요금 인상 등을 이유로 7월 1일자로 사납금이 1만2천원 이상 올랐다. 문제는 요금 인상과 경기침체 등으로 승객이 줄어 택시기사의 하루 수입이 인상 전과 같거나 오히려 줄었는데 사납금만 올랐다는 점이다. 요금 인상 전 주간 근무자의 하루 수입은 11만원, 야간 근무자는 16만원 정도였다. 승객 수 감소로 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택시기사 수입은 하루 1만원 가량 줄었다. 이 경우 주간 근무자의 하루 수입은 10만원 밖에 안 된다. 10만원 이상으로 오른 사납금도 다 채우지 못한다. 야간 근무 때 번 돈으로 메운다고 하지만 택시기사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서울본부가 밝힌 실정이다. “기본요금이 500원 올랐다지만 승객이 줄어 수입은 그대로다. 그런데 사납금을 1만5천원이나 올리면 어떻게 살란 말이냐?” 택시기사들의 하소연이 정말 절절하다. 업무에 미숙하거나 몸이 아파 결근한 이유 등으로 한 달 사납금을 다 채우지 못하는 기사가 지금도 전체의 10% 가량이나 된다. 택시기사들은 생계 유지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경기도와 인천시 택시운송사업조합,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이 현행 택시요금을 37%와 36%씩 인상해달라며 도와 시에 건의서를 냈었다. 결정은 아직 안 났지만 업계 요구가 관철된다면 현행 기본요금 1천900원이 경기도는 2천700원으로 800원, 인천시는 2천600원으로 700원이 각각 오른다. 추가요금도 동반 인상된다. 택시 업계는 택시요금 인상만이 택시의 경영난을 덜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처럼 주장하지만 대뜸 37%, 36%씩 올리면 많은 시민들이 택시를 외면할 게 분명하다. 사납금도 올릴텐데 그렇다면 골탕을 먹는 건 택시기사들 뿐이다. 서울시 택시업계의 실상을 눈여겨보면 과도한 요금 인상이 능사는 아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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