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고대 중국의 전설이다. 복희씨, 신농씨와 더불어 삼황(三皇)의 한 분인 황제(黃帝)가 풍우농무를 맘대로 구사하는 치우와 벌인 싸움에서 고전을 면치못해 자기 딸인 발(魃)을 불렀다. 발은 추녀였으나 몸에서 열화가 들끓었으므로, 아버지의 명을 받아 치우의 풍우농무를 열기로 들이쳐 무력화시켜 항복을 받았다. 그러나 발도 기력을 소진하여 하늘로 다시 오르지 못하고 지상에 머무는 데 그녀가 가는 곳마다 심한 가뭄이 들곤했다. 가뭄을 한발(旱魃)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다. 홍수도 무섭지만 가뭄도 무섭다. 아프리카의 기근은 농토의 사막화로 인한 것인데 그 원인은 해마다 계속되고 있는 극심한 가뭄 때문이다. 한반도는 북태평양의 고기압권에 들어 다행히 가뭄으로 사막화까지 될 염려는 없다. 그러나 고기압의 이상 발달이나 약화로 강우전선이 늦게 형성되기도 하고 기간이 짧은 때가 있다. 가뭄이 드는 것이다. 한 문헌에 의하면 삼국사기와 조선조실록 등에 나타난 한해가 약 2천년동안에 304회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대기근의 한해는 105회다. 현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4년 이래 지난해까지의 가뭄은 159회다. 유의할 점은 문헌에 의한 기록은 가뭄피해, 즉 한해이고 기상관측의 가뭄은 한해에 이르진 않았으나 날씨가 가물었던 것을 말한다. 가뭄의 기준은 1개월이 넘도록 강수량이 전혀 없었던 경우다. 현대 농업은 수리시설이 발달하여 웬만큼 가물어서는 한해를 당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는 논농사 이야기고 밭농사는 한 달동안 비가 안 오면 타들어 간다. 논농사 역시 수리시설이 되긴 했어도 비가 적당히 내리는 자연의 혜택과 비교될 수는 없다. 지난 겨울가뭄에 이어 봄에도 비가 인색했던 차에 엊그제 적지 않은 비가 내렸다. 곧 모내기 철이 닥친다. 뭣보다 파종과 모종이 어려웠을 만큼 가뭄을 탔던 밭농사에는 일적천금의 자우(滋雨)다. 논농사든 밭농사든 열흘에 하루꼴로 비가 흡족히 내리는 것이 좋다. 인공 강우를 말하지만 대자연의 조화를 당할 수는 없다. 날씨가 가물면 농사 짓는 이들의 가슴이 작물과 함께 탄다. 아직도 비는 더 내려야 한다. 올해도 대지를 적시는 순한 비가 흡족히 내려 한발, 한해가 없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임양은 주필

목욕黨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지하 2층에는 ‘건강관리실’이란 팻말이 붙은 곳이 있다. 목욕탕이다. 국회의원 전용이다. 물론 공짜다. 냉온·열탕에 헬스장·이발소·휴게실 등이 있는 호텔급 목욕탕이다. 목욕탕은 좀 묘한데가 있다. 평소엔 서먹서먹한 사이일지라도 막상 목욕탕에서 마주치면 눈 인사쯤은 하게 된다. 물론 벌거벗은 채 그런다. 몸에 걸치는 옷은 치장이다. 치장한 몸은 맘도 치장하게 된다. 그러나 벌거벗으면 달라진다. 뭐라 할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출산됐던 벌거벗은 본연의 모습이랄까, 아무튼 옷을 입고 있을 때와는 다르다. 이래서 부자나 형제, 모녀나 자매 등 가족끼리 목욕탕에 가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등을 밀어주면서 맘을 교감하기도 한다. 국회에 ‘목욕당’이 창당됐다는 보도가 흥미롭다. 지난 19일 창당됐다는 것이다. 당원이 여야를 통털어 무려 45명이다. 안상수(한나라당) 최인기(민주당) 의원을 공동대표로하여 온도조절위원장·시설관리위원장·탈의실복지위원장 등 여러 당직자도 인선했다는 것이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생각하고 인정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 ‘목욕당’의 창당사다. 아마 ‘목욕당’내 여야 의원들의 대화가 목욕탕에서 많이 있게될 것 같다. 목욕탕 밖에서 만나면 서로의 입장 때문에 통하지 않는 말도, 목욕탕 안에서 만나면 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벌거벗은 채 마주 대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몸을 감추지 않고 얘기하다 보면 맘도 열려 감췄던 것도 더러는 털어 놓을 수가 있다. 친화력 역시 더해진다. 국회의사당 ‘건강관리실’(목욕탕)은 평소 이용하는 국회의원이 적잖아 “교섭단체를 구성해도 되겠다”는 농담이 있었던 터였다. 안상수 의원 역시 자주 이용하다가 이번에 ‘당수’가 됐다. 농중진담 끝에 창당을 본 ‘목욕당’ 당세가 확장돼 국회가 종전의 오명을 털어내고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매체가 되면 좋겠다. /임양은 주필

산불

산림녹화가 잘됐다. 전국의 어느 산하를 가도 임목이 창창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경제림의 빈곤이다. 경제림의 빈곤은 산림정책의 부재다. 그래도 어떻든 산림이 푸르른 것은 다행이다. 다행이긴 해도 이 또한 산림정책이 잘 돼서 산림녹화가 이룩된 것은 아니다. 화목을 안 쓰는 취사 및 난방 생활의 변화 때문이다. 산림녹화의 공은 연탄에서부터 시작됐다. 연탄이 대중화 되지 못했던 1950년대까지는 땔감이 주로 화목이었다. 당시엔 연탄이 있었어도 비싸 귀했던 시절이다. 이래서 농촌은 말 할 것 없고 도시 주변의 산에 널린 잡목이며 소나무 갈비가 동이 났다. 생솔가지를 마구 꺾어 가기도 했다. 웬만한 산은 민둥산이 됐다. 민둥산이 푸른 나무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들어 연탄이 대중화 되면서다. 연탄가스는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지만 연탄이 산림녹화에 기여한 공은 절대적이다. 1980년대에 등장한 LP가스는 종전의 아궁이 부엌을 거실로 옮기고 입식주방으로 바뀌면서 일상의 생활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LP가스는 인도네시아 등지서 수입한다. 만약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 유사시 LP가스 수입에 문제가 생기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대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LP가스 공급 중단이 장기화하면 다시 연탄이나 화목에 의존해야겠지만, 이미 우리의 생활구조는 쉽게 바꿀 수 없게 돼 있다. 각설(却說)하고 LP가스의 대중화로 소나무 갈비며 낙엽이 해마다 그대로 쌓여 밑거름이 되면서 산마다 숲이 우거질대로 우거졌다. 비록 경제림은 아니어도 소중한 산림자원인 것이다. 그런데 적잖은 산불이 일어나 산림자원이 소실되고 있다. 산불은 인재다. 바람이 불어 나무끼리 비벼대는 마찰로 발생되는 자연 발화는 아프리카 같은데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내에서 나는 산불은 모두가 담뱃불 등 사람의 부주의로 불을 내는 인재인 것이다. 한 순간의 부주의로 산을 벌겋게 태우는 산불이 올해 들어서만도 벌써 전국에서 129건이나 발생했다. 한 번 불 붙은 산불은 기압골의 변화로 바람을 불러들여 기세가 기하급수적으로 더 한다. 산불도 무섭다. 잘못 끄다가는 연기에 질식하거나 불에 갇히기가 십상이다. 산불이 나면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약 50년이 걸린다. 어느새 초여름이 닥쳐 신록의 계절을 맞는다. 산불이 잦은 봄철은 지났지만 산불에 계절이 꼭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임양은 주필

예술가적 기개

조선조 영조 말 화가 성재(星齋) 최북(崔北)은 산수화와 인물화에 능통했다. ‘한국의 고흐’라고 불린다. 불우했던 삶도 비슷했고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잘랐듯 최북은 스스로 한쪽 눈을 찌른 기인이었다. 최북의 예술가적 기개는 대단했다고 한다. 어느 날 양반집에서 그가 그림을 펼쳤다. 양반집 자식들이 그림을 보고는 “도대체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네”라고 하자 최북은 “그림을 모른다고? 그러면 다른 것은 아느냐?”고 받아쳤다. 물론 그림은 팔지 못했다. 문신이었던 신광수(申光洙)는 최북이 사망하자 이런 詩를 남겼다. “어찌하여 최북이는 세길 눈 속에 묻혔는가 / 아아 그의 몸은 얼어 죽었어도 / 이름은 오래 사라지지 않으리”. 200여년이 지난 요즘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김홍도나 신윤복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고 있는 최북을 보면 신광수의 예언은 적중했다. 시인으로 이름을 날린 임제(林悌·1549~1587)도 뛰어난 예술가였다. 임제는 중화의식에 젖어 있는 조정을 비난했고 늘 나라를 걱정했다. 풍류를 좋아했던 임제는 서도병마절도사 부임차 평양으로 가던 길에 송도에 들러 황진이의 무덤에서 술을 한 잔 따르고 시조를 읊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임제는 이 시조로 인해 벼슬을 버렸다. 조정에서 임제의 행동을 두고 관리의 품위를 해쳤다며 상소를 해 스스로 물러났다. 조선 성종 때 높은 벼슬아치가 대궐로 행차하고 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길을 비킬 때 누더기를 입은 한 거지가 행차를 가로막고 벼슬아치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강중이 평안한가”. 그러더니 둘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벼슬아치가 입궐하자 다른 관리들이 조정 대신에게 반말 짓거리를 한 거지를 벌 주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벼슬아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만들 두게. 그 사람을 벌하면 뒷날 자네들 이름에 누가 될 걸세”. 벼슬아치는 대제학 강중(剛中) 서거정(徐居正)이고, 행차를 가로 막은 거지는 김시습(金時習)이었다. 둘 다 사는 형식은 달랐지만 당대의 시인묵객이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한다. 그들의 예술가적 기개가 그리워지는 세상이다./임병호 논설위원

난고 김삿갓 문학관

“네 다리 소나무상에 놓인 죽 한 그릇(四脚松盤粥一器) / 하늘빛과 구름그림자 함께 노닐고 있네(天光雲影共徘徊) / 주인이여 무안해 하지 마오(主人莫道無顔色) / 나는 청산이 물에 거꾸로 비치는 것을 더 좋아한다오(吾愛靑山倒水來)” - ‘죽 한 그릇(粥一器)’. 조선 팔도 방방곡곡을 유랑하며 양반들의 부패상과 죄악상, 비인도성을 풍자한 시인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1807~1863)의 작품이다. 난고는 별호인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으로 유명하다. 김삿갓이 어느 시골집에서 죽 한 그릇을 얻어 먹고 남긴 절구(絶句)다. 너무 가난한 촌부는 햇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사발 속에 어른거릴 정도로 멀건 죽을 주고 무안해하였다. 그러나 김삿갓은 오히려 “주인이여 무안해 하지 마오. 나는 청산이 물에 거꾸로 비치는 것을 더 좋아한다오”라며 주인을 위로하였다. 김삿갓은 초탈적이고 몰아적 경지의 시인이었다. 죽 밖에 줄 수 없는 가난한 여인의 심정에 대한 긍휼(矜恤)한 마음을 나타낸 작품이다. 난고는 5세 때 안동 김씨의 시조인 고려개국공신 선평(宣平)의 후예로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삼족을 멸하는 위기에 처했으나 노복의 도움으로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해 살았다. 후일 폐족으로 사면돼 강원도 영월 삼옥리로 옮겨 살다가 과거에 장원급제 하였지만 자신의 집안 내력을 모르고 조부를 조롱하는 시제(詩題)를 택한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22세 때 방랑길에 올랐다. 전라도 화순군 동북면 구암리에서 57세를 일기로 별세하기까지 삿갓을 쓰고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으며, 발걸음이 미치는 곳마다 시를 남겼다. 3년 후 둘째 아들 익균이 유해를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 태백산 기슭에 안장했다. 난고는 1천여 편의 시를 쓴 것으로 알려지지만 456편만이 전해진다. 1939년 이응수(李應洙)가 ‘김립 시집(金笠 詩集)’을 냈기 때문에 확인됐다. 영월군이 2003년 10월 하동면 와석리에 개관한 ‘난고 김삿갓 문학관’에 가면 김삿갓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수 있어 연중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다. 지난 4월11일엔 경기시인협회 회원들이 묘소를 참배하고 문학관을 순례, 난고의 시정신을 기렸다. /임병호 논설위원

4년 뒤엔?

이명박 정권이 2년차로 들어서 앞으로 4년 남았다. 관심은 앞으로 4년뒤 이 정권이 물러나면 또 뭣이 터질 것이냐는 것이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 이래 정권 퇴진후 아무 탈이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전 정권의 비리 설거지가 관행화 됐다. 얼마 전 ‘선진국민연대’ 핵심 인사 250여명이 청와대에 초청돼 만찬을 가졌다. ‘선진국민연대’는 대선 때 구성된 이명박 대통령의 외곽지원조직이다. 주목된 것은 참석자 소개에서 공기업 사장급 이상만 소개된 사실이다. 이사, 감사 등은 너무 많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도 집권 이후 친노세력의 청와대 초청 만찬이 있었다. 이들은 “우리들이 청와대서 만날 수 있을 줄이야!”하며 ‘님의 노래’를 부르며 거나하게 취했다. 권력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며 즐겼다. 5년이 지나고 한 해가 더 지난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을 비롯한 친노세력들이 부패척결의 수술대에 올려져 난도질 되고 있다. 이미 줄줄이 영어의 몸이 된 사람들이 많다. 개혁을 부르짖던 노무현 정권은 부패 정권의 대명사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지지세력이 노무현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것이 국민적 시선이다. 노무현 정권이라고 처음부터 부패의 늪에 깊이 빠진 것은 아니다. 한 발, 두 발 부패의 유혹에 발을 들여놓다 보니 헤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권력에 취하기 시작하면 취한 줄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웬만한 부패는 부패로 여기지 못한다. 부패 권력의 속성이 원래 이런 것이다. 이미 청와대 비서진 일각에서 부패가 드러났고 여권내 지지세력들 간에 상당한 부패 냄새가 풍긴다는 항설이 자자하다. 측근은 일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일을 망치는 것도 측근이다. 대통령을 잘못되게 하는 요물은 적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측근이나 지지세력 가운데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측근이나 지지세력의 부패에 둔감한 것은 유감이다. 앞으로 4년 뒤 이 정권이 물러나면 과연 또어떻게 될까?/임양은 주필

자율출근제

삼성전자 일부 임직원들의 출근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 사이다. 퇴근 시간은 출근 시각에서 9시간 후다. 이러한 자율출근제를 지난 1일부터 실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점심이나 저녁 식사 시간이 포함된 9시간 근무를 마치고 자기가 알아서 퇴근하는 것이다. 우선은 디자인부문, 디지털프린팅 사업부, 완제품 부문 연구소 임직원 등 800여명이 시범적으로 자율출근제를 하고 있다. 약 2개월동안 시범 운영을 한 뒤에 문제점을 보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창조적 조직문화 구축의 일환’이라는 것이 자율출근제 실시의 이유다. 자율출근은 형식출근의 반대 개념이다. 더 말하면 출퇴근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 반드시 유능한 직장인은 아닌 것이다. 출근시간 맞춰 나왔다가 밖에 나가 진종일 개인 일 보고는 퇴근시간 맞춰 들어오는 직장인이 더러 있다. 그런가 하면 또 진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있다고 해서 성실한 직장인이 아닌 경우도 있다. 여기저기에 개인 용무의 전화질이나 해대고 엉뚱한 생각으로 시간을 떼우는 사람들이다. 직장인은 프로 의식이 중요하다. 기업체 임직원은 자신이 기여한 기업 수익에서 월급을 받고, 관공서 공무원들은 자신이 기여한 사회공익의 대가로 세금에서 월급을 받는다. 월급값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월급도둑’이란 말이 이래서 성립된다. 프로 의식이 빈곤한 사람들이다. 형식출근제는 피동형인 반면에 자율출근제는 능동형이다. 피동형은 소극적이고 안일주의의 폐단이 없지 않은 데 비해 능동형은 적극적이고 창조주의의 강점이 높다. 삼성전자의 자율출근제는 국내에선 처음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인 기업에선 이미 실시하고 있다. 역시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사람을 신뢰하는 기업이다. 임직원들의 프로의식이 충만함을 믿는 것이다. ‘월급도둑’이 없기 때문이다. ‘월급도둑’이 있는 직장에서 자율출근제를 했다가는 큰일 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기업이든 관공서든 가장 주요한 것은 인적 자원의 품격이다. /임양은 주필

낙선 대통령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 같으면 비록 떨어졌을지라도 국회의원쯤은 하게 되면 하고 안 해도 그만인 금도를 갖는 것이 국민적 상식이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민주당을 탈당, 고향인 전북 전주 덕진선거구에서 4·29 재보선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것은 이 같은 국민적 상식에 어긋나는 처신이다. 민주당을 탈당하든, 안하든 무소속 출마를 하든 말든 국민사회가 알 바는 아니다. 문제는 한국형 정치인 수준의 후진형이다. 그가 민주당 공천을 낙관시한 것은 대통령 출마자라는 이력을 착각한 데 있다. 적어도 내가 대선 후보를 지냈는 데 설마한들 국회의원 후보 공천이야 안 주겠느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에 죄를 진 죄인이다. 정권을 빼앗겨 야당으로 전락케 한 장본인이 바로 그 자신인 것이다. 물론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있다. 하지만 선거 패배는 종국적으로 모든 책임이 후보자에게 돌아간다. 정동영 전 장관은 낙선 대통령의 입지를 당에 석고대죄할 죄인으로 보기보단 훈장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복당하겠다는 것은 당을 공당(公黨)이 아닌 사당(私黨)으로 보는 안하무인의 태도다. 정당이 특정인 중심으로 오락가락해선 패거리 모임의 붕당이지 정당이랄 수 없다. 민주당이 정녕 공당이라면 정 전 장관의 공천 배제에 반발, 지도부를 성토하는 당내 파벌주의에 엄정 대처해야 할 것이다. 정 전 장관 역시 대선 ‘재수병’에 걸린 것 같다. 정치 재개의 의도가 차기에 있는 감이 역력하다. 그렇더라도 국회의원이 뭔지, 무소속 출마까지 강행한 것은 무리수다. 원내가 정치 재개의 필수는 아니다. 그가 이번에 당에서 공천을 안주면 ‘그러느냐’며 조용히 백의종군으로 임하면 오히려 다음 전당대회서 당 대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낙선 대통령의 입지를 우월시해 당을 맘대로 탈당하고, 또 나중에 멋대로 복당하겠다며, 혼자 다 좌지우지하려는 듯한 그의 행태에서 국내 정치인이 아직도 못버린 구태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람은 어려울 때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임양은 주필

사찰 음식

‘사찰 음식’은 적게(小) 먹고 채소(蔬)가 주를 이루며 웃으며(笑) 즐기는 ‘삼소 음식’이다. 채식이 전부이지만 금하는 채소도 있다. 냄새·자극성이 강한 오신채(五辛菜·파·마늘·달래·부추·흥거)다. 오훈채(五?菜)라고도 부른다. “오신채는 익혀 먹으면 음심이 동하고 날로 먹으면 성이 난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인에겐 원기·정력을 돕는 음식이다. 오신채 중 ‘마늘’은 냄새가 나는 것 외엔 다른 모든 면이 이로워 별명이 일해백리(一害百利)다. ‘일해’는 매운맛 성분인 알리신의 냄새다. 알리신은 항암 효과가 있고 혈관 건강에 유익한 성분이다. 고의서(古醫書) ‘본초강목’엔 “강정 효과가 있다”고 기술돼 있고, 호색한 카사노바가 굴과 함께 정력식품으로 애용했다고 한다. ‘파’는 양파와 함께 스태미나 식품이다.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에게 파·마늘을 먹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프랑스의 많은 호텔에선 지금도 신혼부부에게 양파 수프를 제공한다. ‘부추’를 민간에선 양기를 북돋워준다고 해 ‘기양초(起陽草)’, 일할 생각은 안 하고 성욕만 커지게 만든다고 해 ‘게으름뱅이풀‘’이라고 부른다. “봄 부추는 인삼·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달래’는 산에서 나는 마늘이다. 마늘과 영양·효능이 비슷하다. 몸을 따뜻하게 하며 몸이 찬 사람이 먹으면 허리 통증도 완화된다고 한다. ‘흥거(興渠)’는 ‘무릇’의 다른 이름으로 파·마늘과 성분이 거의 같다. 사찰 음식의 요체는 제철 재료와 천연 재료다. 인공조미료 대신 다시마·버섯·들깨·콩가루 등 천연조미료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사찰 김치는 젓갈 대신 조선간장·된장·고추장·잣·깨로 맛을 낸다. 감초를 감미료로 쓴다. 단백질은 콩·버섯으로, 칼슘은 우유 대신 무청으로 섭취한다. 사찰 음식 재료 중 웰빙 효과가 높은 것으로 연근·우엉·머위 등이 꼽힌다. 사찰 음식은 성인병·비만의 주범인 고지방·고열량식을 피하는 데 으뜸이다. 채소에 풍부하게 든 식이섬유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혈관질환 예방을 돕는다. 당뇨병 환자에게도 좋다. 유명 사찰이 있는 산은 그래서 더욱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등·하산 때 사찰 음식 한 끼를 대접 받는 게 기뻐서다. ‘절밥’은 ‘약밥’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집사

‘집사(執事)’의 사전적 풀이는 주인 옆에 있으면서 그 집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다. 높은 이에게 보내는 편지 겉봉의 택호(宅號) 밑에 ‘시하인(侍下人)’의 뜻으로 쓰는 말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론 고려 국초 때 주·부·군·현(州府郡縣)) 이직(吏職)의 하나로 사창(司倉)에 딸린 끝 벼슬이다. 또다른 뜻도 있지만 요즘은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청와대 집사’로 비유한다. 청와대 살림살이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청와대 집사는 그동안 주로 대통령 최측근들이 맡아왔다. 문제는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인사들이 많았던 사실이다. 김영삼 정권 당시 홍인걸 총무수석은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에게 10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감생활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전달한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도 충실한 집사였다. 정상문씨의 전임자였던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은 임명된 지 1년도 안 돼 당선축하금 22억원 등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정씨 역시 노 전 대통령의 국가가록물 유출 의혹 사건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으며, 2004년 신성해운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 로비 명목으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었다. 원래 집사는 주인을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 주인의 얼굴빛, 눈빛만 보고도 심신의 이상 유무를 알아채야 한다. 그야말로 충복이 아니면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이 ‘사과문’에서 “혹시 정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이라며 감쌌듯이 둘 사이는 오랜 친구다. 정씨는 노 전 대통령과 김해 불모산에 있는 장유암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함께 했다. 사법고시에서 낙방한 정씨는 1978년 경남도 지방직 7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노 전 대통령은 서울시 4급 서기관이던 그를 3급으로 승진시킨 뒤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앉혔다. 정씨가 노 전 대통령을 떠받들지 않을 수 없는 인간적 관계다. 그러나 ‘권불오년(權不五年)’을 모른 ‘무지’와 하늘 높은 줄 모른 ‘방자’를 훈장처럼 달고 다녔다. 일개 ‘집사’가 ‘대감’이라면 혹 모르겠으나 ‘마님’에게까지 뇌물을 가져다 바친 것은 정말 역사에 남을만한 아부의 극치다. 사헌부의 논죄가 어떻게 떨어질 지 모르겠으나 다른 전·현직 청와대 집사들도 잠 못 이루는 밤이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임병호 논설위원

군포의 딸

부모는 딸 아이의 천부적 소질을 살려주기가 벅찼다. 피겨 스케이팅은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내에선 거의 황무지 같은 분야다. 그러나 부모는 딸 아이를 위해 헌신했다. 손잡고 길가던 딸 아이가 스케이트를 보고 “나도 저것 타고 싶다”고 졸라대서 시작했던 게 너무도 열심히 몰입했기 때문이다. 코치도 선임해야 되고 국내외 훈련도 해야 했다. 남의 집에 세들어 살았다. 아버지는 끼니를 혼자 끓여야 할 때가 많았다. 아내가 딸 아이의 훈련에 동행하곤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모진 수많은 세월을 겪었다. 딸 아이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꿈을 키웠다. 믿음을 가졌다. 부모의 이같은 뒷바라지 속에 딸 아이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의지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훈련을 감내했다. 오늘의 세계적인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영광이 있기까진 본인의 그같은 노력과 부모의 뒷바라지가 있었다. 김연아 선수에게 쏠리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그것은 김연아 선수가 충분히 누릴 권리가 있다. 그의 부모 또한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영화를 누릴 자격이 있는 자랑스런 어버이다. 김연아 선수 부모가 비로소 군포시내 한 아파트 40평짜리를 사서 이사한 것은 얼마 전이다. 실로 오랜만에 가정의 안정을 되찾은 보금자리인 것이다. 기왕이면 서울로 이사하라는 유혹도 많이 받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군포에서 살기를 고집했다. 어려웠을 때 군포시청에서도 도와주고 어디서도 도왔다는 말이 들리지만, 얼마나 도왔는 진 확인되지 않았다. 고마운 것은 김연아 선수도 그렇지만 부모의 마음씨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서울 강남 같은데에 대형 아파트를 사서 떠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 부모는 어디까지나 군포 시민이기를 결심했다. 지역사회에 갖는 애착심이 정말 대견해 보인다. 김연아 선수는 부모가 군포에서 고생해가며, 세계 무대의 인재로 키운 자랑스런 군포의 딸이다. /임양은 주필

여배우 리스트 수사

여배우 장자연씨가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오늘로 한 달이 된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는 그가 남긴 유서 형식의 글에 나오는 유력인사들이다. 고인은 특정 인사들에게 술 접대나 잠자리 강요를 당한 연예계 부조리를 폭로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은 당연한 소임이다. 그런데 경찰 수사가 영 지지부진하다. 이에 겹쳐 다소 진척된 내용도 ‘쉬쉬’하며 감추기에 급급하는 형상이다. 예컨대 누군가를 출국금지 시켰으면서도 정작 그가 누구인지는 함구로 일관한다. 유력 인사 소환설 또한 매주 나오는 소리로 ‘설’로 그치곤 한다. 이런 가운데 축소 수사설이 또 나오고 있다. 내사 종결 형식으로 수사를 마무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만 소환 조사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확인되지 않은 ‘설’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설’이 무성한덴 경찰 수사의 책임이 없다할 수 없다. 사건은 미적거리면서 오락가락하다 보니 갖가지 ‘설’이 난무하는 것이다. 경찰은 수사 대상의 유력 인사들에 대한 사생활 보호를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인의 인격권 보호도 생각해야 된다. 벌써 한 달 째 거의 날마다 언론에 보도됐다. 장자연씨 글이 밝힌 술 접대, 잠자리 강요는 강요를 받았다는 것이지 그 이상은 적시된 게 없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에 반한 강요는 그 이상의 행위가 없었더라도 능히 협박죄가 성립된다. 고인은 스물아홉 아까운 나이에 죽음으로 항거했다. 이의 부조리를 척결하는 것은 연예계를 바로 세우고 고혼을 달래는 의미가 담겼다. 그런데 작금의 경찰 수사와 언론 보도를 보면 고인의 인격권이 날마다 침해 당한다. 경찰 수사도 문제가 있지만 언론 보도 또한 문제가 적지 않다. 유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해야 된다. 지지부진한 경찰 수사, 흥미 위주의 언론 보도에 유가족들이 겪는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경찰 수사가 한 달이나 끌면서도 사건을 해결치 못하는 것은 무능하거나 특정인을 봐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무능한 것이 아니라면 사건 뒤에 도사린 유력 인사란 그 자가 도대체 누구인가를 사회는 알 권리가 있다. /임양은 주필

로켓

인공위성, 로켓, 미사일은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다르다. 인공위성은 지구에서 쏘아올린 특정 물체가 지구 둘레를 공전한다. 목적과 용도에 따라 통신위성, 과학위성, 기상위성 등이 있다. 로켓은 고체나 액체 연료를 폭발시키는 가스 분사의 반동으로 추진되는 비행체다. 우주개발, 기상관측 등에 쓰이나 병기로 많이 쓴다. 미사일은 사람이 타지않고 로켓추진력으로 레이저 등에 의해 목표물에 유도되는 병기다. 단거리탄도미사일, 중거리탄도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이 있다. 미사일이란 말은 원래 고대 그리스때 투창처럼 인력으로 멀리 날리는 무기를 뜻했다. 인력으로 멀리 날렸던 미사일이 이젠 자체 추진력으로 대륙간을 이동하는 대량 살상무기로 둔갑됐다. 그런데 로켓은 인공위성이나 미사일의 모태다. 인공위성을 지구의 대기권 밖까지 쏘아 올리는 것이 로켓인 것이다. 미사일 역시 지구 상공에 쏘아올린 미사일이 방향을 잡기까지 추진력 역할의 작동을 로켓이 한다. 로켓은 인공위성이든 미사일이든 자신의 역할을 마치면 단계적으로 분리된다. 이러한 로켓은 사용 목적에 따라 평화를 위한 것이 되기도 하고, 무서운 전쟁 무기가 되기도 한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로켓은 평화를 위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사일을 쏘아올리는 로켓은 전쟁 무기다. 미사일 머리에 핵 무기 폭발물을 얹히면 핵탄두미사일이 된다. 함경북도 무수단리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지난 5일 11시30분15초 무수단리에서 발사된 북측 미사일의 2단계 추진체가 일본을 넘어 태평양 공해상에 떨어졌다. 장거리미사일인 것이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2007년 6월7일 서해에 사거리 100㎞의 단거리미사일 발사이후 7번째다. 미사일에 탄두는 정착되지 않았다. 북측은 이번 로켓 발사를 시험통신위성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평화용이라는 것이다. ‘광명성 2호’라는 이름부터가 그 같은 위장이다. 로켓 발사는 더러 실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측은 성공했다.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봐야한다. 앞으로가 주목된다. 같은 면도칼도 이발사가 들면 이기(利器)인 반면에 강도가 들게 되면 흉기(凶器)가 된다. /임양은 주필

명예박사

‘명박 남발’ ‘학위 장사’라는 비판 속에서도 정치인들의 명예박사 행진은 끊이지 않는다. 정치인과 학교 쪽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서는 명예박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경륜과 능력을 인정받는 의미가 있고, 득표와 연결되는 ‘동문’을 확장하는 실리도 챙길 수 있다. 명예박사들에겐 주로 학교 발전이나 지역화합, 민주화 기여 등이 학위 수여 이유로 붙는다. 명예박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거물’이 됐다는 의미이고, 취약 지역에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는 효과도 있어 명예박사 학위를 마다할 정치인은 없다. 학교 쪽에선 돈 들이지 않고 유력 인사를 후원자로 얻으면서 학교 인지도와 위상, 학생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국내 대학들의 연간 명예박사 학위 수여자는 1997년 125명, 2007년 175명, 2008년 184명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4월 기준으로 1945년 이후 국내에서 발급된 명예박사 학위가 모두 3천681명이다. 명예박사 학위가 두 개 이상인 사람의 35.3%가 정·관계 인사다. 하지만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선 명예박사 학위 수여가 매우 드물다. 독일 본대학은 2차 대전 이후 4명에게만 명예박사 학위를 줬을 정도다. 역대 대통령 중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내외 통틀어 16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어, 이 분야 1위다. 한국, 미국, 영국 등에 걸쳐 법학, 인문학, 경제학, 정치학, 교육학 등 분야도 다양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원광대에서 정치학 명예박사를 받은 것을 비롯해 미국, 일본, 프랑스 등에서 정치학, 법학, 철학, 인문학 등 10개의 학위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러시아 모스크바대, 알제리 알제대, 원광대에서 3개의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각각 외국에서 2개, 1개씩 학위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1998년 한국체대 이학 명예박사를 시작으로 서강대(경영학), 카자흐스탄 국립유라시아대, 몽골국립대(경제학), 목포대(경제학),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등 모두 6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명예박사 학위를 모두 고사했다고 한다. 역시 박정희 대통령답다. /임병호 논설위원

간신의 유형

공자(孔子)는 간신의 유형을 다섯가지로 분류했다. 마음을 반대로 먹는 음험한 자, 말에 사기성이 농후한 달변인 자,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자, 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자, 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는 자라고 하였다. 이들 다섯 가지 유형의 간신들은 모두 말을 잘하고, 지식이 많고, 총명하고, 이것저것 통달하여 유명한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진실이 없다는 게 공통점이라고 공자는 지적했다. 도둑은 살려둬도 괜찮지만, 군자들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잘못된 길로 빠뜨려 나라를 뒤엎을 간신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간신의 언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역아는 노예 기술자로 태어났지만 요리 솜씨가 뛰어나 권력의 핵심에 끼어든 인물이다. 그는 춘추시대 초기 패자로 군림했던 제나라 환공(桓公)이 농담삼아 “내가 평생에 안 먹어본 것이 없는데 사람 고기는 못 먹어 봤다”고 말하자 세 살짜리 자기 아들을 요리해 바쳐 환심을 산 뒤 나중에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환공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보잘 것 없는 신분으로 태어난 환관이었던 조고(趙高·?~BC 207)는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해 권력을 훔쳤다가 중국 최초 통일제국 진나라의 멸망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술과 도박에 절어 살던 양국충(楊國忠·?~756)은 사촌누이 양귀비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권력핵심에 들어가 대당 제국을 혼절시켰던 간신이다. 간신들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 농락했지만 그들의 말로는 대개 비극으로 마무리됐고, 역사의 심판도 가혹했다. 명장 악비(岳飛)를 모함하여 죽이고 나라를 팔아먹은 송나라의 매국노 진회(秦檜·1090~1155)는 악비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은 동상으로 남아 사람들이 뱉는 침을 얼굴에 가득 묻힌 채 역사의 심판을 받고 있다. 간신의 수법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데도 통용되는 것은 인성의 약점, 제도의 미비, 경각심의 부족, 역사의식과 통찰력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공자가 말한 간신의 유형은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존재했다. 물론 대통령제인 오늘날도 많다. 문제는 권력자가 간신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 역사와 지금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온갖 형태의 간신 현상을 국민이 색출해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공직자 재산신고

서민들로서는 불가사의한 것이 벼슬아치들의 재산증식이다. 하루하루 살기가 힘겨운 것이 서민생활이기 때문이다. 저축은 엄두내지 못한다. 빚으로 살림을 꾸려가기가 예사다. 저축은커녕 빚만 안 져도 감지덕지한 것이 서민들 생각이다. 이런 판에 벼슬아치들은 해마다 재산이 늘어간다. 올 고위공직자 재산신고 또한 지난해에 비해 한결같이 늘었다. 불과 한 해 사이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은 보통이고 수십억원이 늘어난 공직자가 많다. 1년에 단 천만원을 저축하려고 해도 불과한 서민들 입장에서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고위공직자 재산 증식이 불가사의한 것은 당연하다. 경제가 얼어붙어 부동산 거래가 위축됐을 뿐만이 아니라 시세도 떨어졌다는 것은 상식이다. 예컨대 지방세 세수가 이 때문에 크게 결함이 생길 정도로 위협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재산 증식 사유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 부동산 가격의 상승인 것은 참 희한한 일이다. 고위 공직자가 지닌 부동산은 불황은커녕 호황이니 도대체 그 비결이 뭣인지 궁금하다.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예금저축으로 증식된 재산이다. 예를 들면 1년 사이에 급여 저축으로 6천여만원을 늘렸다는 사례가 있다. 한달에 500만원을 저축했다는 계산이 된다. 그 사람 월급이 도대체 얼만지는 모르지만, 그럼 그렇게 저축하고 생계는 무슨 돈으로 꾸려갔다는 것인지 이 역시 서민들 입장에서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재산이 많다고 해서 부정축재했다고 볼 수 없고, 재산이 적다고 해서 청백리라고 볼 수 없는 것이 고위 공직자의 재산이긴 하다. 그러나 이상하다. 가령 기업인들은 돈 버는 것이 본업이므로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책잡힐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공직자는 치부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기업인 뺨칠 만큼 재산 증식 수단이 좋은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는 잘하는 제도다. 그런데 잘하는 이 제도가 신고 때마다 서민층의 비위를 뒤틀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임양은 주필

김인식 감독

야구 국가 대표팀 감독은 별로 달갑지 않은 자리다. 월드컵 축구 대표팀 감독처럼 팀을 장기간 맡으며 높은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1회용 ‘반짝감독’인 것이 야구 국가 대표팀 감독이다. 게다가 잘못하면 구설수에 말려들기 십상이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야구 국가 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김인식 감독은 “누군가는 해야 하기 때문에 팀을 맡는다”며 감독직을 수락했다. 그가 후일담에서 “우승을 못한 것은 나의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뭣을 잘못했다는 것인진 알 순 없다. 짐작하자면 두 가지다. 하나는 선발투수 봉중근 선수를 더 일찍 바꾸지 않은 것을 들 수 있다. 봉중근 선수의 역투는 구위가 떨어지면서 일본 선수들에게 집중 안타를 허용했다. 또 하나는 연장전에 들어간 10회초 일본 선수들이 2사에서 공격할 때다. 김인식 감독은 일본의 강타자 이치로 선수를 볼 넷으로 걸러 내보내도록 구원투수 임창용 선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때 1루는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포수 강민호 선수는 감독의 사인을 알았는데, 정작 투수인 임창용 선수는 사인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임창용 선수의 정면 대결이 이치로 선수에게 안타를 내주면서 우승의 염원이 좌절됐다. 김인식 감독은 이의 사인이 제대로 안 먹 힌 데에 자책감을 갖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저런 아쉬운 상황은 결과론이다. 경기를 하면서 최선을 다 하지 않는 감독이나 선수는 없다. 놀라운 것은 김인식 감독의 자세다. 웬만하면 선수를 탓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외경심을 갖게 한다. 스포츠에서 ‘자신이 잘못해서 졌다’는 감독은 일찍이 본적이 없다. 한데, 김인식 감독은 또 놀라운 말을 했다. “나라가 없으면 야구도 없다”고 한 것은 가히 금언이다. 그는 대표팀 감독직 수락의 소회를 귀국해서 이렇게 술회했다. 김인식 감독의 말을 정치인들에게 비유해 이런 말로 들려주고 싶다. “나라가 없으면 정치도 없다”라고. 스포츠 스타들은 국위를 떨치며 국민을 즐겁게 해준다. 이에 비해 정치인들은 국위를 손상시키며 국민을 역겹게 한다. 스포츠 스타가 많은 것은 국민의 행복인 반면에 정치 스타가 없는 것은 국민의 불행이다./임양은 주필

김연아 선수

소녀는 일기장에 이렇게 호소했다. ‘꿈의 세계무대에 꼭 나가야 한다…. 태극기를 올려야 한다. 애국가를 울려퍼지게 해야 된다… 그런데 자꾸 다친다. 그렇지만 이 고비를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 이런 내용의 일기가 빽빽하다. 일기장엔 눈물자국이 얼룩지기도 했다. 세계무대의 피겨여왕 김연아(19·고려대)의 무명시절 일기다. 소녀는 무릎을 다쳐 치료하고 나면 발목을 다치고, 발목을 치료하고 나면 허리에 무리가 가는 등 부상이 끊일 겨를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통증은 소녀를 무수히 괴롭혔지만, 소녀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서 열린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우승한 김연아 선수의 영광 뒤엔 남다른 그 같은 의지와 노력의 피눈물이 고여 있다. 김연아 선수는 역대 여자 싱글사상 최초로 꿈의 200점을 돌파,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진정한 세계 피겨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어제 프리스케이팅에서 131.59점을 얻어 전날 쇼트프로그램 점수 76.12점을 합친 총점 207.71점으로 장식한 우승은 역대 최고 점수다. 단연 타선수의 추종을 불허했다. 뛰어난 점프력에 환상적인 연기, 유연하면서 순발력 넘치는 그의 경기는 대회장인 스테이플스센터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올해 군포 수리고를 나와 고려대에 진학, 소녀티를 갓 벗은 가녀린 그녀가 불모지였던 한국 피겨 스케이팅을 일약 세계 정상에 들어올렸다. 야구 대표팀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의 준우승 쾌거에 이어 김연아 선수가 전한 승전보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준 장거다. 또한 이 국민적 행복은 어린 소녀가 피눈물 나는 고통을 이겨내므로써 일궈낸 선물이다. 생각컨대 어른들은 지금의 경제위기 고통을 불평만 할 일이 아니다. 특히 정치권은 쌈닭노릇만 해서는 안 된다. 남다른 형극의 소녀시절을 보내면서 일기장에 스스로 다짐한 꿈을 이룬 김연아 선수의 이번 우승은 휴머니티의 인간승리다. /임양은 주필

야구선수 병역특례

강승규 대한야구협회장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한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회의원(한나라당)인 강 회장은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고 국민에게 기쁨을 안겨준 선수들에게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며 “병역특례 법안을 의원 입법 형식으로 발의하겠다”고 말했다.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은퇴 이후 1년 정도 유소년 스포츠를 지도하게 하는 등 병역을 대신할 수 있는 의무를 지우는 방법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WB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대표선수들의 병역문제는 국민정서와 여론을 봐가며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천명에게 휴대전화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대다수가 야구대표팀 병역 미필자에게 병역특례를 줘도 좋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야구대표팀에 병역특례 주는 것에 찬성한다”가 전체의 71.3%, 반대가 23.1%였다. 찬성하는 측도 조건에 관해선 입장이 갈렸다. “이미 4강에 올랐으니 특례를 주어도 좋다”가 26.0%, “결승 진출 시”는 22.3%, “우승 시”는 23.0%였다. 성별로는 남성(77.5%)이 여성(65.3%)보다 혜택을 주는 것에 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방부와 병무청은 “병역특례는 여론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세계선수권대회가 있는 스포츠 종목뿐 아니라 바둑대회 수상자,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입상자, 한류 스타까지도 병역특혜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집단 민원이 끊기지 않는 것도 반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체력과 기량을 한껏 발휘할 20대 초반에 운동선수들이 군대생활을 하는 건 ‘국가적으로 손해’라는 인식이 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운동선수 격려는 국군체육부대 입대나 체육훈장 수여 등으로도 가능하다. 올림픽대회에서 동메달 이상과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에 한해 병역특례를 주는 현행 병역법이 무난하다.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기영합적인 차원에서 수시로 바뀌면 안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훈장 받은 ‘엘레지의 여왕’

‘엘레지의 여왕’으로 칭송받는 이미자씨는 400여곡의 히트곡을 냈다. 올해로 데뷔 50년을 맞은 그는 지난 반세기 동안 2천100여곡의 노래가 담긴 음반 600여장을 발표했다. 1990년 기네스북(2천70곡)에 이름이 올랐다. 열아홉 살이던 1959년 내놓은 ‘열아홉 순정’(나화랑 작곡)으로 시작된 히트 릴레이는 1964년 만삭의 몸으로 녹음한 ‘동백아가씨’(백영호 작곡)의 빅히트(전국 판매 100만장)로 이어졌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엔 지구레코드사와 손을 잡고, 작곡가 박춘석을 만나면서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그리움은 가슴마다’ ‘흑산도아가씨’ ‘황혼의 블루스’ 등으로 절정을 이뤘다. 1960년 말 발표된 백영호 작곡의 ‘여자의 일생’ ‘서울이여 안녕’ 등도 반세기 동안 한국인의 심금을 울린 히트곡으로 자리 잡았다.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 대표곡들이 1965년 이후 금지곡이 되면서 고난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1987년에 이르러 해금조치 됐고, 1989년엔 국내 대중가수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히트곡들을 불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금지된 노래인줄도 모르고 이미자씨를 청와대로 초청, ‘동백아가씨’를 청해 듣곤 했다. ‘이미자 전성기’ 때 일본 쪽에서 “사후에 성대를 영구보존해 해부학적으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었는데 최근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가 “이미자씨 목소리의 비밀은 폐활량이 일반인보다 2.5배 큰 데 있는 것”이라고 연구 결과를 밝혔다. 저음과 고음 양쪽 모두에서 바이브레이션을 구사할 수 있는 것도 폐활량 덕분이라고 진단했다. 저음의 목젖 떨림과 중음의 혀 떨림이 자유자재이며 굽이굽이 애절하게 넘어가는 리듬과 템포를 50년째 유지한다는 것은 다른 가수들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데뷔 50주년 기념 음반을 내고 4월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전국 16개 도시에서 기념 콘서트를 여는 이미자씨가 어제 청와대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가 노래한 것은 대중가요지만 그 절절한 노래들은 이 땅에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며 영원한 클래식으로 살아 있다. ‘엘레지의 여왕’의 변함 없는 건강을 축원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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