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국 문화

지난 7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제대화에서 중국의 고전 명구가 많이 등장했었다. 특이한 점은 중국 고전을 인용한 사람들이 중국 측 지도자가 아니라 버럭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 장관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맹자(孟子) 중 ‘진심(盡心)’ 하편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산에 난 조그만 오솔길도 갑자기 사람이 모여 이용하기 시작하면 큰 길로 변한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그러나 잠시라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으면 다시 풀로 가득 덮여 길이 없어지고 만다(爲間不用則茅塞之矣).” 사람은 자주 만나야 정이 든다. 왕래가 드물면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도 자주 왕래하고 상호 소통의 큰길을 만들자’는 뜻에서 맹자를 인용했을 터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나 맹자 원문의 마지막 한 구절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대의 마음은 풀로 뒤덮여 무성하구나(今茅塞子之心矣)!’ 해석에 따라 중국이 기분 나빠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人心齊 泰山移)’라는 표현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손자병법’의 한 구절 ‘비바람이 불어도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무사히 건널 수 있다’는 ‘풍우동주(風雨同舟)’를 중국어로 인용해 중국 지도자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오늘날은 미국이 혼자서 세계를 끌고 가기엔 버거운 시대다.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자 미국 기업의 제품을 만드는 생산기지다. 중국 쪽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최대 소비시장이다. 중국 인민에게 존경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는 과거 미국과의 외교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외쳤다. 서로 같은 것을 추구하되 서로 다른 의견은 담아 놓았다가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뜻이다.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상호 협력을 해야만 두 나라 모두에 이익이라는 저우언라이의 철학은 이제 현실이 됐다. 서양은 물질이고 동양은 정신이라는 이분법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상대국의 고전을 인용해 이쪽 생각과 의도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의 뜻을 전하는 외교적 수사법이다. 지도자들이 상대국의 고전 몇 구절쯤은 알아야 하는 이유다. /임병호 논설위원

성경의 요셉(Joseph)은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극심한 불행을 겪었다. 아버지(야곱)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고 시기한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다. 노예로 일하면서 충성을 바쳤던 주인으로부터 성추행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다. 평생 원한을 품고 어두운 그늘에서 살았을 법 하지만 요셉은 당시 대강국 이집트의 총리가 됐다. 요셉이 그런 시련을 극복하고 배반의 세월, 고통스런 질곡을 이겨낸 원동력은 신앙심이었다. 요셉은 십대였을 때 두 번의 꿈을 꾸었다. 한 번은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단에 절하는 꿈이었다. 또 한 번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그 꿈을 꾼 후 요셉은 가족들로부터 절을 받는 신분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갖게 됐다. 마음의 영롱한 꿈 때문에 고난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고통스러운 환경에도 성실하게 적응해 나가면서 비통함이나 저주의식을 거부했다. 요셉에겐 어떤 불행덩어리도 소화시키는 지혜가 있었다. 바로 ‘꿈’ 이었다. 요셉이 절대신으로 믿고 의지한 하느님은 하느님의 모든 자녀를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꿈 꾸는 자를 ‘사용’한다. 사람들은 요셉이 총리가 되면서 순탄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총리가 된 이후 주변의 도전은 만만치 않았다. 당장 이집트의 관료· 정치인들의 시기의 대상이 됐다. 그들은 요셉의 흠집을 잡는 데 혈안이 되고 왕과 요셉의 사이를 벌려 놓으려고 온갖 음모를 다 꾸몄다. 그러나 그 사면초가 같은 환경에서 요셉을 꿋꿋이 버티게 한 것은 역시 꿈이었다. 꿈은 갈 길을 일러 준다. 최악의 환경에서도 최선의 길을 만들어 지름길로 가게 한다. 요셉은 평생을 들여도 불가능할 신분상승이라는 목적지를 종살이, 옥살이 13년 끝에 꿈을 통해 만든 지름길로 걸어가 도달했다. 그 지름길을 가기 위해선 먼저 꿈이 있어야 한다. 꿈을 가져야 한다. 요셉은 억울한 종살이, 옥살이 중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고 공경했다. 가해자를 저주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요셉은 후일 형들을 용서하고, 보디발과 그의 아내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원수를 은혜로 갚았다. 모름지기 꿈을 가지고, 인내하며, 용서하며, 성실하게 살아가야 함을 성경 속 요셉의 일생이 사람들에게 일러준다. /임병호 논설위원

밭작물 피해

수확을 앞둔 농작물은 이를 가꾼 농업인의 자식과 같다. 한해동안 땀흘려 애써 일군 결실이기 때문이다. 농업소득도 관심사지만, 탐스런 결실 자체에 갖는 애정 또한 각별하다. 이런 농작물을 마구 해치는 야생동물이 있는가 하면, 도둑질해가는 ‘인종동물’이 설쳐 수확을 바라보는 농업인들의 가슴을 애타게 한다. 농작물을 해치는 야생동물은 멧돼지, 고라니, 노루, 까치 등이다. 고구마나 장뇌삼이며 땅콩밭을 헤집어 파먹기도 하고, 포도 봉지를 찢어 쪼아대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짐승들은 그냥 파먹기만 하는 게 아니다. 거친 발길로 온 밭을 휘저어 파먹지 않은 작물도 줄기가 상해 망치기가 일쑤다. 지자체에 따라서는 이의 피해를 막기위한 철선울타리나 방조망 설치 비용을 40%가량 지원한다. 고맙긴하나 자부담 소요액 몇백만원을 당장 마련할 길이 없어 야생조수 피해에 속수무책인 농업인들이 적잖은 것 같다. 그런데 야생조수는 갈수록 는다. 환경보호 측면에선 야생조수가 느는 게 긍정적이지만, 또 이런 부정적인 면도 있다. 얼마전 도내서 발생한 일이다. 밤에 남의 고추밭 안으로 소변 보려고 들어갔던 여인이 고추밭 주인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불행한 사건도, 따지고 보면 야생동물의 상습적인 농작물 기습이 원인이었다. “짐승인 줄 알고 총을 쐈다”는 것은 고추밭 주인이 경찰에 밝힌 진술 내용이다. 강원도에서는 피서객이 역시 고추밭에 소변 보려 들어가다가 밭 둘레에 쳐놓은 전선에 감전되어 죽은 일이 있었다. 밭주인 말이 “하도, 고추 도둑이 잦아 전선을 치긴 했지만 설마 사람이 죽을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남의 일년 농사를 송두리 채 도둑질해 가는 ‘인종동물’이 없진 않다. 예년에 보면 다 익은 고추밭이나 콩밭 등에 밤중 도둑이 들어 뿌리 채 뽑아 타이탄 트럭에 싣고 달아나는 절도범들이 있었다. 수년동안 가꾼 인삼밭에 도둑이 들기도 한다. 애써 작물을 가꾼 밭 주인이 망연자실할 노릇이다. 야생조수로 인한 작물피해는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밭도둑은 못살아 보릿고개가 있었던 시절에도 없었던 도둑이다. 밭작물 피해도 이제 인수 공동의 시대가 됐다. 아니, 그 죄질이 짐승보다도 못하다. 가히 ‘인종동물’이라 할 밭 도둑을 엄단해야 된다. /임양은 주필

임진강

북의 댐 방류로 인한 임진강 범람은 전에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만도 다섯번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물폭탄을 퍼붓기는 처음이다. 2000년대 이전에는 이런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은 임진강 상류에 댐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만든 4.15댐 1·2호에 이어 2000년 들어 황강댐이 준공되면서 임진강 수위가 북측 사람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황강댐만도 팔당댐에 비해 1.5배나 된다. 임진강의 급격한 범람으로 인명 피해의 집단 참사를 겪고 나니까 나오는 소리가 경보시스템 문제다. 하지만 경보시스템이랄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 때 취한 유일한 대처 방안이 임진강 중류에 설치한 관측소다. 당시 건설교통부가 이런 조치를 했다. 그렇지만 관측소가 그뒤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뒷말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 같다. 의문스런 것은 북측이 왜 댐을 갑자기 방류했느냐는 것이다. 북녘 땅에 지금 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지난 장마로 댐이 만수위는 됐겠지만 물이 더 느는 것은 아닌데도, 전에 비해 그토록 많은 물을 쏟아낸 이유가 궁금하다. 설마한들 수공을 시험삼은 게 아니라면 댐의 부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댐의 붕괴를 막기위해 급격한 방류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댐 물을 빼면서 우리쪽에 통보도 안했다는 일부의 보도가 있지만, 언제라고 통보해 준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저 사람들은 통보라도 좀 해달라고 해도 묵묵부답이다. 임진강 남북공동수방대책으로 수년전 우리가 임진강변 북측 치수를 위해 묘목을 대는 등 여러 협력사업을 벌이기로 했지만 북쪽 사람들은 그만 시큰둥하다. 남북경협위에서 한동안 논의되다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임진강은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에서 발원한다. 강원도 이천군, 황해도를 거쳐 경기도 연천군 등 북부로 들어와 한탄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강의 길이가 354㎞다. 연일 2천여명이 동원되어 수장된 인명 피해자들을 수색하는 데도 아직 다 찾지 못했다. 북측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동포애는 과연 뭣인가? /임양은 주필

담배꽁초

희망공공근로사업 참여자들이 벌이는 길거리 쓰레기 줍기에 가장 많은 게 담배꽁초다. 아니나 다를까, 길을 가다 유심히 보면 길바닥에 널브러진 것이 담배꽁초다. 금방 줍고나도 얼마 지나면 또 여전히 담배꽁초 투성이다. 심지어는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불타는 담배꽁초를 길에 획 내던지는 운전자들도 있다. 일본인 사회에서 배울게 하나 있다. 기초질서 준수 의식이다. 저들은 길바닥에 담배를 버리는 일이 없다. 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길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모든 공공 도로가 금연 구간으로 돼 있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꽁초를 길에 버리는 사람은 한국인 등 동남아 관광객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서울시가 지난 1일부터 담배꽁초를 길에 버리는 사람들 단속에 나섰다. 각 구청별로 주요 거리에서 2인1조로 단속반을 편성해 중점단속을 벌인다. 적발된 위반자는 폐기물관리법을 적용, 5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고 있다. 과태료는 벌금과는 다르다. 벌금은 형벌이다. 벌금형도 전과에 속한다. 그러나 과태료는 행정벌이다. 전과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아무리 행정벌이어도 과태료를 물려서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과태료가 자그만치 5만원이면 금액도 만만치 않다. 이래서 단속하는 데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는 모양이다. 담배꽁초 버린 사실을 순순히 시인하는 사람도 있지만, 딱 잡아 떼는 사람도 적잖다는 것이다. 단속반이 주운 담배꽁초를 두고 버린 사람의 유전자(DNA) 감식 말이 나올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냅다 튀는 사람도 있어 백주에 난데없는 도망자 추적의 활극도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하도, 담배꽁초를 길에 버리는 사람이 많다보니 사회에 경각심을 돋우기 위해 단속을 하겠지만, 단속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기초질서 준수 의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돼야 한다. 선진국 진입은 물질문명의 발달이 필수 조건인 것은 아니다. 정신문화의 발달이 더 중요하다. 우린 이 점에서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이렇게 말하는 지지대子도 길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나쁜 습벽을 고치지 못해왔다. 이번 기회에 고칠 것을 작심한다. 다른 사람이 버리니까 나도 버린다는 생각보단, 다른 사람은 다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는 맘 가짐이 주요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홈리스?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법률안’에 ‘부랑인·노숙인’ 대신 ‘홈리스(homeless)’라는 영어 형용사를 도입키로 한 것은 재고돼야 한다. “부랑인·노숙인의 이미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이유를 들었지만 문제될 게 많아서다. 홈리스란 단어를 법률용어로 도입한 까닭이 일견 이해는 된다. 피치 못할 여러가지 사정으로 집을 잃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안타까운 처지의 사람들을 호칭으로나마 배려해 주고 싶은 심정이 이 단어를 도입하게 된 동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노숙인·부랑인이라는 단어가 일반 시민들에게 주는 느낌은 좋지 않다. 하지만 홈리스라는 단어를 써야하는지는 의문스럽다. 우선 홈리스라는 말은 국적불명의 단어라는 인상이 짙다. 홈리스는 형용사로 단독으로는 노숙인·부랑인을 뜻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의미는 통할지 몰라도 실제로 홈리스라는 단어를 따로 떼어서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홈리스는 ‘노숙’ 정도만을 뜻하는 데 그친다. 굳이 조어를 한다면 ‘홈리스人’이 맞을 터이지만 어색하다. 어법에 맞지 않는 단어를 굳이 법률용어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또 홈리스가 노숙인·부랑인에 대한 어감을 순화한 표현이라는 데도 동의하기 어렵다. 홈리스는 영어 단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민들의 의식 속에 형성된 어감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이라면 실업자·실직자는 ‘잡리스(jobless)’ 로 쓰자는 말도 나올 수 있다. 홈리스 외에는 적당한 말이 없다는 게 다수 의견이라 해도 복지부가 슬그머니 이 단어를 법률용어로 끼워 넣은 것은 경솔했다. 먼저 만들어 놓고 사용을 강요하는 것은 공무원들의 행정편의주의다. 만일 홈리스 외에는 대안이 없다면 국어연구원, 대학 등 기관에 자문을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그래야 공감을 산다. ‘노숙인·부랑인’이 주는 나쁜 인상을 지울 수 있는 단어가 찾아진다면 마땅히 그를 사용해야 한다. ‘홈리스’를 반대하는 한글단체 등이 적합한 단어를 제시했으면 좋겠다. 요즘은 초·중·고등학생들도 아주 기발한 의견을 내놓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미녀 자객

자객(刺客)은 사람을 몰래 찔러 죽이는 사람이다. 보통 남을 암살하는 잔인한 사람이란 의미로 쓰이지만 역사에 이(利)보다 의(義)를 중시하는 자객도 보인다. 사마천(司馬遷)이 조말, 전제, 예양, 섭정, 형가 등 다섯명의 자객을 ‘열전’에 올린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야당 민주당이 압승한 8·30 일본 총선거에서 이른바 ‘백주의 검투사’로 불린 ‘미녀 자객’들이 여당 자민당 거물들을 무참히 제거했다. 민주당은 선거전략으로 자민당 거물이 출마하는 선거구에 ‘미녀 자객’을 집중배치, 정계를 쥐락펴락했던 자민당 원로·중진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대행이 선발한 이들 미녀 자객들은 한결같이 미모를 갖췄다. 정치경험이 전무한 후쿠다 에리코(28)는 나가사키(2구)에서 자민당의 규마 후미오(68) 전 방위상을 제압했다. 아나운서 출신의 아오키 아이(44) 민주당 전 참의원 의원은 도쿄(12구)에서 연립여당 공명당의 오타 아키히로 대표를 쓰러뜨렸다. 에바타 다카코(49)는 도쿄(10구)에서 자민당의 고이케 유리코(57) 전 방위상을 꺾었다. 또 다른 미녀 자객 고바야시 지요미(40) 전 의원은 홋카이도(5구)에서 자민당의 마치무라 노부타카(64·8선) 전 관방상을 물리쳤다. 중의원 비서 출신 다나카 미에코(33)와 후지TV 출신의 미야케 유키코(44)는 총리를 지낸 자민당의 원로 모리 요시로(72)와 후쿠다 야스오(73)를 상대로 개표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다. 미녀 자객들의 예리한 칼날 앞에서 노정객 두 명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다나카 미에코와 미야케 유키코는 지역구에선 석패했지만, ‘패자부활전’ 성격인 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돼 자민당 원로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미녀 자객’들의 활약상에 고무받은 건 일본 민주당만이 아니다. ‘일본 민주당’이 54년만에 정권을 차지하자 당명이 같은 ‘한국 민주당’이 덩달아 “일본 국민은 새로운 정권을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논평을 내는 등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30여개월 뒤 한국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예감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희망은 자유이지만 혹 한국 민주당도 일본 민주당처럼 ‘미녀 검객’들을 총동원하자는 당론이 나올지 모르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금배지

국회의원 배지가 또 논란이다. 무궁화 잎에 ‘나라 국(國)’자를 새긴 둥근 원 안의 ‘혹시 혹(或)’자가 안 좋다는 것이다. ‘或’이 ‘의심할 혹(惑)’자로 보인다는 것은 전에도 나왔던 얘긴데 국회의원들 간에 또 말이 나온 모양이다. ‘或’은 의심할 혹인 ‘惑’자와는 다르다. ‘의혹’이란 말은 ‘疑惑’으로 쓴다. 그렇긴 해도 ‘의혹’을 연상케 하는 ‘혹’(或)자가 싫다는 게 논란이 재기된 요지다. 기막힌 얘긴 한글로 ‘국’자를 쓰면 좋을 법한데 ‘국’자를 거꾸로 보면 ‘논’자가 돼 이도 싫다는 것이다. 마냥 놀고 먹는 것이 국회의원인데도 막상 놀고 먹는단 소릴 듣긴 싫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국회의원 배지는 어떤 계시적 영험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걸핏하면 비리 의혹에 연루돼 감옥에 들어가는 게 국회의원이고, 대한민국에서 놀고 먹어도 돈 타는 ‘무노동 유임금’이 국회의원인 것을 보면, 배지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국회의원 배지는 보통도 아닌 금배지다. 제3대 국회에서 어느 금광업자가 국회의원에 당선 됐었다. 그 금광업자 국회의원이 금으로 배지를 만들어 국회의원 전원에게 선물로 준 것이 정식 배지가 된 금배지의 유래다. 국회가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국회의원입네 하고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이 오히려 국민들 보기에 부끄러워 해야 할 노릇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에 나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궤다. 이런데도 “정기국회에 등원하겠다”는 게 뉴스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희한한 국회다. 국회의원이 꼭 금배지를 달아야 맛인가, 정 국회의원 티를 내고 싶으면 금이 아닌 보통 배지로 달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세금을 아까운 줄 모르고 써대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돈이 더 드는 금배지만을 고집한다.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들이 어떤 모양의 금배지를 좋아하는 가를 알아서 바꾸기 위해 네 가지 도안을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뭐 그렇게 고민할 것까지 없지않나 싶다. 이 참에 아예 국회의원 배지를 없애면 될 일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원 배지가 없어서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임양은 주필

일본의 정권 교체

정권 교체를 가져온 일본의 중의원 총선이 화제다. 첫 수평적 정권 교체인 것이다. 1947년 자유당의 요시다 시게루 정권 이래로 치면 62년만이고,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한 자유민주당 하토야마 이치로 정권 이래로 치면 54년만의 정권 교체다. 뒷 얘기가 무성하다. 이번에 무려 308석을 확보한 대승으로 집권이 확정된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할아버지 하토야마 전 총리가 만든 자유민주당을 패퇴시켰는가 하면, 자유민주당의 몰락을 가져온 아소다로 현 총리는 외할아버지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이래로 유지해온 자유당~자유민주당 집권을 야당에 내준 마지막 총리의 불명예를 안았다. 또 전직 각료가 20대 여성에게 패배하는 등 자유민주당 거물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이젠 한번 바꿔보자’는 국민적 피로감의 반영이다. 부패한 자유민주당, 무능한 정권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의 집권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당선과 성격이 비슷하다. 오바마가 아메리카 합중국의 국가 개조론을 들고 나왔던 것처럼, 하토야마 역시 일본 개조론을 주창했다. 자유민주당의 장기 집권으로 늙어버린 국가를 젊게 만들자는 국민들 심산이 투표로 나타난 게 이번의 중의원 총선 결과다. 그러나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의 앞길도 순탄치는 않다. 오바마가 예컨대 의료보험 개혁에 진퇴양난의 늪에 빠진 것처럼, 하토야마 정권 역시 국민의 기대에 당장 부응하기엔 산 넘어 산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하토야마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않는다지만, 민주당도 자유민주당과 같은 보수정당이다. 대외정책에 다소 간의 변화를 보이고는 있으나, 하토야마 정권 또한 일본 국익 우선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 보아지는 것은 ‘동아시아공동체론’이다. 말하자면 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공동통화 등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아시아 중시 노선에 바탕을 둔 것이라지만, 아픈 상처의 기억이 있다. 광복 이전에 일본이 내세운 ‘대동아 공영권’을 생각케 한다. ‘대동아 공영권’은 정치적인 데 비해 ‘동아시아 공동체론’은 경제적인 것으로 다르긴 하나, 일본은 여전히 아시아의 맹주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한국, 로켓 선진국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은 고려 말(1377년) 화통도감에서 최무선(崔茂宣·?~1395)이 만든 주화(走火)다. ‘달리는 불’이라는 뜻의 로켓 무기 주화는 세종 30년(1448)에 ‘신기전(神機箭)’으로 발전했다. 신기전은 ‘귀신 같은 기계 화살’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화약의 힘으로 날아가는 화살이다. 소·중·대 신기전과, 산화(散火) 신기전이 있었다. 로켓의 연료는 화약류 중 가장 오래 전에 발명돼 19세기 말까지 사용된 흑색화약이다. 초석이라고 불리는 질산칼륨에 유황과 목탄을 섞어 만들었다. 영화나 TV 드라마를 보면 말똥을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동물의 배설물을 박테리아가 분해하면 질산칼륨이 나온다. 약통에 달린 심지에 불을 붙이면 흑색화약이 맹렬히 타면서 연소가스를 뒤로 분출한다. 화살은 그 반작용으로 앞으로 날아간다. 지금의 로켓 역시 이런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한다. 화살은 로켓이 똑바로 날아가도록 하는 안정막대 역할도 한다. 이 역시 지금의 로켓과 똑같은 비행원리다. 물론 지금의 로켓은 안정막대 대신 꼬리 날개나 전자유도제어장치를 달고 있다. 화약의 힘으로 길이 1m의 화살이 날아가 적을 직접 공략하는 일종의 미사일 같은 소신기전과 최대 700~800m를 비행한 대신기전(길이 5m30)도 있었다. ‘불꽃이 온 사방으로 흩어지는 신기전’이란 뜻의 산화신기전은 1·2단 로켓 구조를 갖고 있었다. 크기는 대신기전과 같으나 대형 폭탄 대신 약통의 윗부분에 소형 폭탄인 소발화와, 작은 로켓엔진인 ‘지화’를 서로 묶어서 몇 개를 넣었다. 1단 로켓인 약통이 다 타면 2단 로켓인 지화가 점화돼 하늘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마지막에 소발화 폭탄이 폭발한다. 당시 제작된 신기전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 자세한 설계 기록이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에 남아 있다. 15세기 이전의 로켓 제작 설계도는 세계적으로 신기전 설계도 이외에는 없다. 신기전의 설계 기법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현대식 기계설계 기법과 똑같다고 한다. 1·2단 로켓 무기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발사한 우리나라다. 25일 발사한 ‘나로호(KSLV-I)’가 비록 부분 실패는 했지만 옛 역사를 이어줄 것으로 확신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도급택시

도급택시는 법인 택시회사가 정직원을 고용하지 않은 채 일정액의 계약금 및 납입금을 받아 운영하는 택시를 말한다. 예컨대 택시회사가 개인에게 하루 10만원 혹은 한달 200만~250만원 가량을 선불로 받고 택시영업을 맡기거나, 빚을 진 개인택시 운전자로부터 사채업자 등이 싼 값에 택시를 사들인 뒤 운전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택시다.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사람에게 운송사업자 명의의 택시를 운행케 하거나, 제3자에게 유·무상으로 위탁 또는 임대 운영하게 하는 행위, 제3자가 차량을 구입토록 하고 택시명의만 빌려주는 행위 등은 현행 운수사업법상 불법에 해당된다. 지난 2007년 8월 도급택시에 탔던 여성 승객 3명이 서울 마포와 강남에서 성폭행 당한 뒤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었다. 당시 서울시와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가 택시업체를 대상으로 단속을 벌인 결과 2007년 42개 업체 649대, 지난해엔 44개 업체 728대의 불법 도급택시를 적발했다. 이 단속 결과만을 근거로 보면 서울시내에서 운행중인 불법 도급택시는 전체 법인택시 2만2천여대의 3%선인 700여대로 추정된다. 전국에서 실제 운행중인 택시는 수천대에 이를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서울시는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신고포상금제도를 2007년 6월말부터 도입 운영하는 등 불법 도급택시 근절에 노력하고 있다. 포상금은 법인택시의 명의이용 금지 행위의 경우 200만원, 개인택시 불법 대리운전 100만원 등이다. 그런데 택시회사들에 대한 도급제 개선 명령이 기업규제 완화를 목적으로 한 특별조치법에 어긋나 위법이라는 첫 판결이 나왔다. 택시회사인 S사가 ‘도급제 운영금지’ 등의 개선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린 60일간의 운행정지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시 양천구청을 상대로 낸 택시운행정지처분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서울고법 행정2부가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양천구청이 상고를 포기해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문제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도급택시’를 단속할 법적 근거가 사라진 점이다. 과속·난폭 운전을 유발하는 도급택시를 막을 법적 장치가 없다니 이상한 사회다. /임병호 논설위원

‘해외파’ 대표팀

대한축구협회 큰집과 프로축구연맹 작은집의 묵은 싸움이 한국축구 발전을 저해한다. 프로축구연맹의 법인 독립화에 축구협회의 연맹 회장 선임 및 예산 결산 승인권 고수, 축구복표사업의 수익금 배분에 6-4로 협회 측이 더 많은 것이 연맹 측의 불만을 산 갈등 요인이다. 각 구단의 선수들을 뽑아서 갖는 A매치에 상당한 수입을 보면서도, K-리그엔 아무 도움이 없다는 것도 연맹 측의 볼멘소리다. 이런 골 깊은 대립이 마침내 오는 9월5일로 예정된 우리 국가대표팀과 호주 국가대표팀의 평가전에 불똥이 떨어졌다. 프로축구연맹 측이 대표선수 차출을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표면상의 이유는 K-리그 일정 때문이라지만, 묵은 갈등이 대표선수 차출 거부로 표출된 것이다. 다급해진 것은 허정무 대표팀 감독이다. 부랴부랴 서둔 것이 해외파 총동원령이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주영(AS 모나코) 이근호(주빌로 이와타) 안정환(다렌 스더) 설기현(풀럼) 조재진(감바 오사카) 이청용(볼턴 원더러스) 조원희(위근 애슬레틱) 이영표(알 힐랄) 이정수(교토 퍼플상) 차두리(프라이부르크) 김동진(제니트) 김남일(빗셀 고베) 김근환(요코하마 마리노노) 김동진(제니트) 등 15명이다. 그러고 보니 한때 낯익었던 얼굴들이다. 아직은 박지성, 박주영 같은 젊은 층도 있지만 대부분은 노장들이다. 만약 프로축구연맹에서 대표팀 차출을 끝내 거부하면, 축구팬들은 해외파 일색 국가대표팀의 희한한 평가전을 구경하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경우, 걱정되는 포지션이 이운재(삼성)가 비운 골키퍼다. 해외파에 골키퍼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해외파 일색의 국가대표팀은 사실상 국가대표팀이 아니다. 허정무 감독은 그동안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미래 지향적 대표팀을 구성해 성공적으로 육성해 왔다. 기성용(FC 서울) 김치우(〃) 김정우(성남) 조용형(제주 유나이티드) 강민수(〃) 등은 허정무 팀의 핵심 멤버다. 대한축구협회나 프로축구연맹이나, 다 한국의 축구 가족이다. 원만한 해결이 있기를 바란다. 축구팬들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 /임양은 주필

신종플루

신종플루가 극성이다. 감염 환자수 1천명이라던 때가 불과 3주 전인데 3천명을 넘어섰다. 개학을 늦춰 방학을 늘리는 학교가 속출한다. 개학을 해도 휴교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신종플루가 아닌가하여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보건소가 적잖다. 신종플루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앞으로 찬바람이 나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걱정이다. 약도 별로 없다. 국내에 확보된 항바이러스 치료약물인 타미플루 등 비축량이 인구의 5% 정도여서 대유행이 되면 턱없이 모자란다. 예방용 백신도 거의 바닥이다. 구하기도 힘들다. 타미플루는 스위스 로슈 제약사가 2016년까지 특허권을 가졌다. 지적 재산권 보호의 국제협약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멋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형편은 백신도 다를바 없다. 이를 만드는 유럽의 다국적 제약업체가 이미 많은 나라와 주문 생산계약을 맺어 우린 사들일 여유가 없다. 여기에 일부 약국이나 병원에서는 신종플루 거점약국, 신종플루 거점병원 지정을 싫어한다. 일반 환자들이 꺼린다는 이유에서다. 환자를 골라서 받겠다는 잘못된 상혼이다. 인술이란 말이 무색하다. 그러나 지나친 걱정은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 개인위생만 철저히 잘 지켜도 상당한 방어가 가능하다. 신종플루는 만성병 환자가 걸리면 합병증이 생길 우려가 있어 걱정이지, 건강한 사람은 막말로 걸려도 잘 넘길 수 있다. 과로 않고, 잘 먹고, 잘 자면 걸려도 90%는 가볍게 앓고 넘긴다는 것이 지금까지 치유된 신종플루 임상 실태다. 국내 감염환자 수 3천여명에서 나타난 치사율은 0.07%에 머문다. 물론 조심은 해야 하지만 너무 신종플루 공포에 호들갑을 떠는 것도 사회적 손실이다. 이렇긴 하나, 국민건강의 주권 확립은 절실하다. 변종바이러스 출현이 빈번하다. 이에 자국서 백신과 치료약 등 필수 의약품을 자급자족하는 것이 국민건강의 주권 확립이다. 바이오 주권이라고도 한다. 지금처럼 타미플루 등을 애걸하다시피 해도 구하기가 어려워선 국민건강 주권을 지킨다 할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미래사회에 대비하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임양은 주필

스위스 은행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으로 유엔에도 들지않은 비회원국이다. 유럽 열강의 각축 마당이 된 지난 역사로 인해 영세중립을 표방했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인 등으로 구성된 나라다. 이들 세나라 말이 공용어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에 의해 독립국으로 공인됐다. 1848년 제정된 연방헌법에 따라 26개 주로 구성됐다. 면적은 4만1천228㎢, 인구는 750만 여명이다. 남한의 약 3분의 1쯤 되는 땅에 인구는 경기도 인구의 3분의 2 정도다. 이토록 작은 나라에서 연방제가 실시되고 있다. 지방자치가 극도로 발달된 지방분권화의 나라다. 중앙정부의 권한은 대외정책 외엔 거의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 대통령은 명목상의 국가원수다. 이도 따로 뽑지 않는다. 장관들이 돌아가며 1년씩 대통령직을 겸직하는 윤번제로 한다. 중소기업이 발달됐다. 주로 원자재를 수입, 가공하여 수출한다. 알프스산맥 등은 천혜의 관광자원이다. 관광수입이 연간 20억달러에 이른다. 1872년에 창립된 스위스은행은 세계적으로 인증된 금융시장이다. 철저한 고객 보호위주의 비밀 보장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자금 도피처가 되다시피 됐다. 정정, 즉 정치 정세가 불안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검은 돈을 숨기곤 하였다. 특히 아프리카 후진국의 독재자들이 스위스은행을 즐겨 애용했다. 이런 전통적 비밀보호주의가 깨지게 됐다. 미국의 압력 때문이다. 미국 국세청이 탈세자의 자산 은닉을 방조한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으름장에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미국 국세청은 자산과 소득을 스위스은행에 불법으로 빼돌린 거액 탈세자가 4천450여명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은행측선 이들의 예금 내용 등 정보자료를 단계별로 미국 국세청에 제공키로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기가 바쁘게 자진납세 신고를 하는 탈세자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궁금한 것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엔 스위스은행 고객이 정녕 없는 것일까? /임양은 주필

김홍일 전 의원

제16대,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홍일(61)씨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홍일·홍업·홍걸) 중 장남이다. 경희대 정치학과 출신인 그는 아버지의 정치적인 굴곡을 그대로 뒤따랐다. 아버지가 대선에 출마, 박정희 전 대통령에 맞섰던 1971년엔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고초를 겪었고,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1980년 결성된 30만명 회원 규모의 청년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민청)를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국민의 정부 탄생을 외곽에서 도왔다. 문단(文壇)에 후일 알려진 사실이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경희대 동문 윤채한 시인이 발행하던 계간 문예지 ‘우리문학’을 후원했다. ‘우리문학’은 역량있는 신인들을 발굴, 문단에 소개하면서 ‘우리문학상’과 ‘후광문학상’을 제정, 한국문학발전에 이바지했다. 아버지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세 아들은 야당 지도자의 아들에서 ‘대통령의 아들’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주위에서 가만두지 않았다. 1996년 권노갑 전 의원의 양보로 16대 때 목포·무안갑에서 금배지를 단 홍일씨는 17대 의원 시절인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수사 과정에서 돈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기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50대 중반 파키슨병이 발병, 공개석상에 거의 나타나지 않은 채 투병생활을 해 왔다. 병인은 대부분이 고문 후유증으로 추정한다. 이희호 여사도 자서전에서 공군 중위로 병역을 마칠 정도로 건강했던 홍일씨가 1980년 부친의 내란음모 혐의를 허위자백하지 않으려다 고문을 받았고, 고통을 못 이겨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17대 의원 시절 몸이 다소 불편했지만 별 문제 없이 의정활동을 마쳤다. 당시 살이 찐 넉넉한 풍채였다. 하지만 세브란스 병원에 휠체어를 탄 채 나타난 그의 모습은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행동 및 언어 장애로 거의 말을 하지 못한 그가 아버지 운명 직전 힘겹게 입을 떼 한 음절씩 “아, 버, 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자신으로 인해 병을 얻은 장남에게 평생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력을 다해 “아, 버, 지”를 부른 홍일씨의 ‘삶’이 실로 안타깝다. /임병호 논설위원

신앙인 김대중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향년 85세로 18일 서거했다. 가톨릭 신자인 DJ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진심으로 믿고 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고뇌하는 신앙인으로 살다 갔다. “나는 온 세상 사람이 예수님을 부인해도 그 분을 사랑하겠소, 나는 모든 신학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드님이 아니라 해도 그 분을 믿겠소. 모든 과학자들이 그 분의 부활을 조롱해도 나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소.” 1981년 1월17일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옥중서신 중 일부다. DJ의 신앙은 1980년대 초 죽음의 위기 속에서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29통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사형언도(1980년 9월13일)를 받고 보낸 첫 번째 ~ 다섯 번째 편지엔 자신의 인생에서 예수의 가치가 어떤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감형조치(1981년 1월23일) 전까지 보낸 편지는 유언의 심정으로 쓴 것으로 글의 절반 이상이 예수 부활과 신앙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것이 현재 나의 믿음을 지탱하는 최대의 힘이며, 언제나 눈을 그 분에게 고정하고 결코 그 분의 옷소매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1980년 11월21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고난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사랑하는 역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려는 사람에게 고난은 그를 성장하게 하는 시련은 되어도 결코 불행의 사자는 되지 못한다.”(1980년 12월19일) DJ는 부활예수의 옷소매를 놓지 않았던 신앙인이었다. 기독교계에선 DJ의 신앙을 “조국의 민주화를 갈망하는 애국심이 배어 있다”라고 말한다. DJ는 “주여, 우리 겨레가 주님의 뜻에 따라 폭력과 파괴를 배제하되 그러나 끈질긴 노력과 전진으로 주님이 주신 권리를 완전히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을 깨우치고 일으켜 주소서.”(날짜 불명의 옥중서신)라고 기도했다. 한국 민주화를 위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신앙적인 삶을 살았던 DJ가 하나님의 품에서 영생하기를 기도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노무현’ 신당

신당이 태동한다.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김충환 전 청와대 혁신관리 비서관 등이 주축이다. 이미 1천642명의 신당 창당 제안자도 확보했다고 한다. 참여민주주의의 ‘노무현 가치 실천’을 표방하는 독자 정당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민주당이다. 정세균 민주당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타계 이후,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들고 나섰다. 그런데 노무현 직계가 독자 노선을 선언해 갑자기 묘한 관계가 됐다. 가령, 신당이 적자라면 민주당은 서자가 되는 형상이다. 그러나 신당파의 적자 확립에 이유가 없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의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의 후신이다. 이도 중간에 통합민주당을 거쳤다. 그러니까 노무현의 열린우리당과 갈라져 통합민주당 간판을 달았다가, 친노 진영과 다시 합치면서 민주당으로 간판을 또 바꿨다. 말하자면 민주당 사람들이 시세에 불리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었다가 또 달라지면 가까이 하는 ‘수서양단’의 처신에 신당파 사람들의 불만이 없지 않아 보인다. 신당이 창당되면 당분간은 민주당과 연대하는 우군 관계일 것이나, 당이 다른 영원한 우군은 없다. 언젠가는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것이 정치권의 역학구조다. 특히 선거철을 맞이하면 이 같은 역학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당파가 노무현의 직계이긴 하지만, 민주당에도 노무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주목되는 것은 민주당 내 노무현 사람들의 귀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타계가 장차 신당과 민주당의 역학 관계에 변수로 작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야권의 신당 출현을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다. 예상은 됐지만 생각보다 빨리 몸체를 드러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갔지만 여전히 정치권 속에 아직 살아있다. 신당의 폭발력이 야권 개편으로까지 갈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임양은 주필

‘우리법 연구회’ 판사들

판사는 자신의 판결이 곧 법의 집행이다. 잘했든 못했든 상관이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구애받지 않는다. 이러한 권한이 법률로 보장됐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사안에 검사와 변호인이 유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법정에 제출해도, 증거능력이 있고 없고를 판가름 하는 것은 판사가 마음 먹기에 달렸다. 판사가 증거가 된다고 하면 되는 것이고, 증거가 안된다고 하면 안되는 것이다. 물론 채증의 법칙이란 것이 있지만, 관행적인 것으로 기계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판사의 직권에 속하는 증거가치의 판단을 이토록 일임하는 제도를 가리켜 자유심증주의라고 한다. 판사의 직분은 이래서 지고하다. 아무리 거물급 피고인일지라도 법정에 서면 법대에 앉아있는 판사가 무척 커보이는 것은 지고한 직분 때문이다. 따라서 판사직은 지순해야 된다. 외부의 간섭이나 청탁이 없는 재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판사의 지고성이 권한이라면, 판사의 지순성은 의무인 것이다. 판사는 고독하다. 법정에서의 지고성을 위해 법정밖의 생활 또한 지순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함부로 만나지 못하고 사귀지 못하는 것이 판사의 사생활이다. 예를 들면 술자리도 아무나 같이 하지 못한다. 자칫 잘못하면 오해를 받기 때문이다. 판사들은 명함도 없다. 어쩌다 인사를 나누면서 건넨 명함이 잘못 악용되는 화근이 될 수 있어 아예 명함을 만들지 않는 판사들이 많다. 심지어는 동창회 같은데도 잘 가지 못한다. 친구들도 가려서 만나야 된다. 이에 비해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하면 정반대가 된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을 사귀고 명함도 많이 돌려야 사건 수임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판사직에 있는 동안은 고독해야 하는 것이 판사의 직분이다. 법원내 진보성향의 법관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 연구회’ 소속 현직 판사들 명단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고법 부장판사급인 연수원 17기에서 초임판사인 37기까지 무려 129명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판사가 개인적으로 어떤 성향을 갖느냐는 것은 양심의 자유다. 그러나 모임에 속하는 것은 판사의 직분에 위배된다. 모임을 해체하든지, 탈퇴해야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수치 여사

지난 11일 미얀마 특별법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피고인은 아웅산 수치(64), 죄명은 가택연금위반죄로 강제노동의 징역 3년이 선고됐다. 미얀마 군정은 수치 여사가 세번째 가택연금 중 외국인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체포했던 것이다. 코미디가 연출된 것은 재판 직후다. 재판이 끝나기가 바쁘게 돌연 법정에 들어선 정부 고관은 마웅 우 내무부장관, 그는 군정 최고 지도자인 탄 슈웨 장군이 감형했다며 감형 결정문을 읽었다. “미얀마의 평화 유지를 위해 감형한다. 피고인이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점도 감안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면서 징역 3년의 형량을 가택연금 1년6개월로 낮춘다고 했다. 그녀는 1945년 미얀마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아웅산의 딸로 태어났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졸업, 유엔에서 일하다가 미얀마로 귀국해 정치에 뛰어든 것이 1988년이다. 이에앞서 1962년 군부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조국의 군정을 종식시키기 위해서였다. 민주민족동맹(NLD)을 결성,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NLD는 1990년 총선에서 마침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495석 중 392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에 당황한 미얀마 군정은 이내 선거무효를 선언했다. 미얀마의 민주화 서광은 군정의 거듭된 폭거로 다시 암울해졌다. 미얀마는 내년에 총선을 20년만에 또 실시한다. 이를 앞두고 수치 여사의 활동을 묶어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고 쇼를 벌인 것이 군사정부의 재판놀음이다. 지난 세번째 가택연금 기간이 2주면 종료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의 네번째 가택연금 1년6개월은 내년 총선기간이 포함되는 것이다. 수치여사는 민주화운동 투신 21년동안 14년째 연금당해 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의 열정과 투지는 여전하다. 미얀마 국민의 상징적 존재다. 그녀는 키 161㎝, 몸무게 50㎏의 가녀린 몸이지만, 태산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1991년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수치 여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대단하다. 유엔안보리며 유럽연합(EU) 등은 수치 여사의 즉각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미얀마 군정이 획책하는 내년 총선은 NLD의 정치활동을 봉쇄하는 관제선거다. 수치 여사 의 석방에 의한 자유 여부가 미얀마 민주화의 고비가 된다. /임양은 주필

어린이 위자료

서울중앙지법 이옥형 판사가 “불법행위의 피해를 본 어린이의 위자료를 어른보다 높게 책정해야 한다”는 새 원칙을 제시했다. 교통사고로 수년간 치료받다 숨진 A양의 가족이 가해 차량 측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재판에서다. A양은 네 살이던 2005년 왕복 2차로 도로 가에 주차된 부모의 차 근처에서 놀다가 지나던 승용차에 치여 중상을 입고 입원 치료를 받던 중 2007년 숨졌다. 이 판사는 어린이의 피해액이 어른보다 반드시 적다고 봐야 할 근거가 없는데도 실제 보상에서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어린이가 사고로 크게 다치면 성인보다 오랜 기간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목숨까지 잃게 된다면 친구관계, 학교생활 등 아동·청소년기에 마땅히 누릴 생활의 기쁨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 피해가 더 크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고와 관련한 손해배상액은 병원 치료비, 20∼60세 사이의 수입 상실분인 일실수익, 위자료 등 세 가지를 합쳐 산출한다, 성인은 현재의 직업 소득을 기준으로 하지만 어린이는 무조건 도시 일용직 노동자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일실수입을 계산한다. 이 판사는 이를 두고 “아동의 직업 적성과 소질, 가능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소한의 수입을 얻을 것을 전제로 일실수입을 산정하는 것은 피해자인 아동에게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도시 일용직 노동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하는 것 외에 불합리하다고 지적한 점은 또 있다. 법원이 채택한 일실수입 계산법은 미래 소득을 중간 이자를 공제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기 때문에 피해 아동이 어릴수록 일실수입 총액이 적어지게 된다. 예컨대 피해자가 현재 성인인 20세라면 일용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인 146만원을 바로 받지만 5세 어린이라면 15년 뒤에 받을 146만원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해 이보다 액수가 훨씬 적어진다. A양도 만약 20세가 된 해에 사고가 나 숨져 일실수입이 2억3천만원이었겠지만 6살에 숨져 일실수입이 1억7천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어린이의 기본권 침해가 성인보다 크다고 선고한 이옥형 판사의 판결은 합당하다. 앞으로 어린이가 관련된 모든 재판에서도 이옥형 판사의 판결이 적용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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