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거부

학교에서 정규 수업시간에 어쩌다가 결강하는 일이 생기면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우리 기성인들도 학생 때 경험한 일이다. 생각하면 수업료 내고 배우는 수업시간을 잃는 게 결강이다. 그런데도 우선 먹긴 곶감이 달다는 속담과 같은 것이 학생적 심리다. 시험은 더욱 귀찮은 존재다. 시험 좀 안 쳤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필자 역시 그러했다.그러나 시험은 학습평가다. 평가는 모든 분야에 소용되는 필수적 장치다. 현재의 위치에서 미래 지향을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평가의 의의다. 평가를 통해 목표에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효과성은 어느 정도인지,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등을 분석한다. 평가는 단순한 판단자료가 아니다. 이해와 재정립의 변화를 모색하게 되는 것이 평가다. 평가가 없는 발전은 있을 수 없다.학습평가, 즉 시험 또한 마찬가지다. 시험은 귀찮은 것이지만 학습의 공동선이다. 시험이 없는 수업은 어딘 줄 모르고 가는 눈 감고 밤길 가기다. 교육정책학에 나오는 이론이다.오는 13~14일 전국의 초6중3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업성취도 평가의 일제고사가 실시된다. 그런데 이를 반대하는 일부 교사와 시민단체의 극성이 올해도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시험을 거부하는 당일에 체험학습을 하겠다고 벼른다. 체험학습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시험을 치르지 않기 위한 체험학습의 수단과 구실이 적절치 않은 데 있다.일제고사의 부당성을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으로 알리겠다고 한다. 공부를 검증하는 시험이 부당하다면, 검증을 않고 어쩌자는지 알 수 없다. 학교의 서열화를 부추기고 우열화로 학생들을 압박하기 때문이라는 거부 이유는 당치않다. 일제고사가 서열화를 매기기 위한 것은 아니다. 우열성은 확인해야 하는 학습의 필수과정이다.시험은 귀찮아도 치르는 것이 학생의 본분이다. 또한 교육의 소임이다. 대체로 가르치는 데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군말을 많이 한다. 일제고사 거부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다. 무경쟁이 학생을 위하는 게 아니다. 나라 밖 선진국의 교육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임양은 주필

최용신 기념관

심훈(沈熏)의 상록수(常綠樹)는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서 당선된 작품이다. 같은 해 9월10일부터 1936년 2월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돼 일본강점기 시절 농촌 계몽과 문맹퇴치 운동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고등농업학교 학생인 박동혁과 여자신학교 학생 채영신은 모 신문사가 주최한 학생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우수대원으로 뽑혀 보고회에서 감상담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알게 된다. 두 사람은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을 지키러 내려가기로 약속한다. 동혁은 고향인 한곡리로, 영신은 기독청년회연합회 특파로 경기도 청석골(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샘골)로 각각 내려가 농촌사업의 기초작업에 들어간다.두 사람은 각자의 근황과 사업의 진행 과정을 편지로 알리며 서로 의논한다. 동혁, 영신의 동지의식은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3년쯤 지나 후진에게 일을 맡길 수 있을 때 혼인하기로 약속한다.그러나 두 사람은 역경에 휘말리게 된다. 영신은 과로와 영양실조로 몸이 점점 쇠약해지다가 샘골강습소 낙성식장에서 하객으로 초대된 동혁이 보는 앞에서 맹장염을 일으켜 쓰러진다. 동혁은 동혁대로 악덕지주 강기천의 농간에 휘말리다가 투옥된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영신은 서울 연합회의 주선으로 일본 요코하마로 정양 겸 유학을 떠나나 곧 돌아온다. 다시 청석골에서 농촌운동에 몰두한 영신은 각기병에 맹장염 재발로 숨을 거둔다. 출감한 동혁은 영신의 죽음을 알고 비탄에 잠기지만 곧 두 사람의 몫을 해낼 것을 굳게 맹세한다. 소설 상록수는 농촌운동가의 희생적 봉사와 민족주의, 종교적 휴머니즘, 저항의식을 고취한 명작이다.채영신은 실존인물 최용신(崔容信1909~1935)의 소설 속 이름이다. 안산시 상록구 해빛나길 56번지(본오3동 879-4)에 있는 최용신 기념관(031-481-3040)에 가면 손경숙 문화재 해설사의 안내로 최용신 선생의 눈물겨운 생애와 행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최은희(채영신)신영균(박동혁) 주연의 영화 상록수(1961년 신상옥 감독)를 요약한 영상물은 최용신 선생의 민족혼, 애국심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최용신 선생 묘가 기념관 아래 있어 더욱 숙연해진다./임병호 논설위원

직업

시대별로 가장 인기 있었던 직업 중에는 지금은 없어졌거나 인기가 없는 직업도 많다. 1945년 광복 직후엔 미국 군정에서 일하는 타이피스트가, 1950년대에는 전차운전사, 전화교환원이 인기 직종이었다. 1960년대에는 이렇다 할 화이트칼라 직업이 없어 은행원이 모든 이들의 꿈이었다. 여성들은 1960년대에는 전화교환원을, 1970년대엔 버스 안내원을 선호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는 몇 집 건너 하나씩 있었던 전당포가 사라졌으며 서울에만 7천여개에 이르렀던 주산학원은 보습학원 등으로 바뀌었다.일자리가 없어 취업이 어렵다지만 사회가 발달할수록 직업의 종류는 늘어난다. 과거엔 없던 이색 직업들도 생긴다. 과거 직군별 취업자 비율을 살펴봐도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군은 현재완 전혀 달랐다. 1963년 직업별 취업자 비율을 보면 농림어업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중은 62.9%에 달했던 반면 사무직 종사자는 3.5%, 전문기술 관련 종사자는 3.3%에 불과했다. 2007년엔 농림어업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6.9%로 하락한 반면 사무직 종사자와 전문기술 관련 종사자는 각각 14.1%, 19.8%로 상승했다.한국직업사전에 오른 직업 명칭 수도 1969년 3천260개에서 2003년 1만2천306개로 34년 만에 4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11년 한국직업사전을 다시 발간할 예정인데 보다 많은 새로운 직업이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최근엔 직업 혁명의 시대라 할 만큼 다양한 이색 직업들이 등장했다. 손님처럼 매장을 방문해 서비스 수준을 평가하는 미스터리 쇼퍼나 인터넷 학습사이트 교사인 사이처(Cyber와 Teacher의 합성어) 등은 그 대표적인 예다.맞춤형 날씨 서비스 전문가인 기상 컨설턴트, 인간이 쉽고 편리하게 느끼는 컴퓨터 환경이 무언인지 연구하는 HSI(Human-Computer-Interaction) 컨설턴트, 물을 이용해 사람 몸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운동사(치료사)인 수중재활운동사, 바닷속에서 산업적 가치가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산업잠수사, 각종 소품이나 장식품 등에 민속 그림을 그리는 전통 공예 예술가인 포크아티스트, 반려동물장의사 등 이색 신종 직업이 꽤 많다. 실업자 100만명 시대를 헤쳐나가는 노력이 아무튼 눈물겹다./임병호 논설위원

길거리 소음

외국의 가요를 들으면 가사는 몰라도 음률은 느낀다. 음률을 통해 가사를 느끼기도 한다. 말은 달라도 음률의 감정은 다 같기 때문이다.서울에 전차가 다녔을 때다. 정류장을 안내하는 전차 기사의 목소리가 그렇게 다정다감할 수 없었다. 다음 정류장은 서대문입니다하면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멘트가 마치 노랫말처럼 들렸다.행상들이 내는 소리도 그러했다. 장작 같은 나무 땔감을 때던 시절이라, 그을음으로 막힌 굴뚝을 뚫던 굴뚝쟁이가 있었다. 들고 다니는 징을 한 번씩 치면서 구울뚝!하는 소리가 무척 청아했다. 채소장수들의 무우더렁 사려!하는 외침도 곡조가 있었다. 두부장수가 찰랑찰랑 흔드는 요령 소리만으로도, 여인네들이 알아듣고 사러 나갔다. 아련한 옛적 일이다.그런데 지금은 전철역을 안내하는 소리가 뚝배기 깨지는 소리 같다. 행상들이 내는 소리는 완전히 소음이다. 자동차 행상들은 고함 치듯한 소리를 녹음기로 계속 틀어댄다. 짜증스럽다. 안내하는 목소리도, 행상꾼들 외침도 연음으로 가다듬으면 듣기가 좀 좋을 것이다.길거리 소음은 또 있다. 이따금씩 구급차가 길거리를 질주하며 내는 소리는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질주하는 거야 마땅하지만, 웽웽 하는 된소린 행인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구급차일지라도 소린 부드럽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동차 경적 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날카로운 소리보단, 듣기에 편한 좋은 소리로 바꿀 필요가 있다. 소릴 알아들으면 되는 것이 경적이다.현대인들은 생활 양상이 복잡하다. 신경이 예민하다. 이런 데다 길거리 소음을 듣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유럽의 우화로 이런 게 있다. 백성들이 성질이 급해 싸움질이 잦아 왕이 모든 대화를 노래로 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이렇다 보니 싸우는 욕설도 노래로 하게 되어 한참 싸우다 보면 서로가 웃음이 절로 나와 백성들이 싸우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길거리 소음 역시 좀 듣기 좋게 바꾸면 사람들 마음이 조금은 여유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소음은 마음에 자극을 주고, 음률은 마음에 위안을 준다./ 임양은 주필

우리식사회주의

각자의 능력에 의해 기여하고, 수요에 의해 공급된다는 것이 공산주의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발전하는 중간 단계가 사회주의라고 자칭한다. 이의 이행 과정에서 부르주아 타도를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정권이 공산주의를 포기했다. 새 헌법 294043조에 사회주의와 함께 조문화됐던 공산주의 용어가 삭제됐다.(4월9일 최고인민회의 12기 1차 전체회의서 헌법 개정) 29조의 경우,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근로대중의 창조적 로동에 의하여 건설된다고 했던 것을 사회주의는 근로대중의로 공산주의란 말을 뺀 것이다.삭제된 대신에 추가된 것이 있다. 선군사상을 명문화하고 국방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아울러 국방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령도자(100조)라고 못박았다. 국방위원회 위원장 명령, 결정, 지시에 어긋나는 국가기관의 결정 지시를 폐지한다(109조)고도 했다. 국방위원회가 모든 권력 기관에 우선하여 최고 기관으로서 통제하는 무소불위의 전권을 장악한 것이다.선군사상, 국방위원회 위상 강화의 헌법 조문화는 군벌정치의 노골화다. 허황된 공산주의를 폐기하는 반면에 자기네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나마 강력한 통치로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것이 헌법 개정의 배경이다.때마침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사회주의의 현실화를 선언했다. 사실상의 자본주의 나라다. 중국의 사회주의 현실화란 자본주의적, 열린 사회주의로 더 가까이 접근하는 플러스형 재수정이다. 이에 비해 북녘의 우리식사회주의는 닫힌 사회주의로 더 멀리 치닫는 마이너스형 재수정인 것이다.지난 4일 2박3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순안공항까지 나가 환대한 것은 중국에 대한 기대심리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영한다. 2차 핵실험 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중국의 조정 역할과 함께 대북 지원이 절실한 것이다. 문제의 근본은 사회주의를 해도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쿠바의 모델이 아닌, 별난 우리식사회주의를 하는 데 있다./ 임양은 주필

폭력국회

경찰관이 국회의원 손목에 덜컥 수갑을 채운다. 놀라운 것은 국회의원이 순순히 응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집회 시위에 참여한 사람이 폴리스 라인을 어기면, 국회의원이고 뭐고 간에 어김없이 이토록 제재를 받는다. 물론 수갑을 찬채 일단 연행된 뒤 대개의 경우 훈방되긴 한다. 이는 법질서 의식의 존중이다. 얼마 전에는 오바마가 양원합동회의에서 의료보험개혁 관련 연설을 하던 중에 거짓말이야!라고 야유한 공화당의 한 하원의원이 호된 비판 속에 치도곤을 치렀다. 자당인 공화당 안에서도 강도 높은 질책이 있었다. 하원은 그 의원에 대한 비난결의를 채택했다. 이는 의정의 존엄성이다.오늘날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치인의 이 같은 법질서 의식, 의정 존엄성 정신이 저력이 되어 초강대국이 됐다. 그런데 집회 시위를 벌이면 으레 난투극을 벌이는 것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다. 경찰이 제재하면 감히 국회의원에게 손댄다고 큰소리친다. 야당 탄압이라며 경찰 책임자를 파면하라고도 한다. 적반하장이다.국회 선진화 관련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본회의장에서 폭력을 휘두른 국회의원은 제명까지 하는 내용이 검토되는 것 같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회의원을 폭력배 취급하듯이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 참 말 한 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사당 문을 전기톱으로 박살내고, 기물을 마구 부수고, 출입문에다 대못질을 해대고, 걸핏하면 의장석 주변에서 난투극을 일삼으면 폭력배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폭력국회는 국제사회에 평판이 나 있다. 폭력배 중에도 조직폭력배나 진배없다.국회 선진화 방안은 국회를 상시국회화하는 것도 포함됐지만, 뭣보다 폭력의원 추방이 반드시 제도화돼야 한다.국회의원 스스로 법질서 의식이 투철하고, 의정의 존엄성을 존중할 줄 아는 새로운 기풍이 조성돼야만 비로소 정치 발전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국회의 개혁이다. 국회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정치집단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추석 풍속도

추석 한가위 명절의 세시풍속 가운데 ‘소놀이’와 ‘반보기’가 있었다.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멍석을 덮어씌워 소 흉내를 내며 노는 게 ‘소놀이’다. 농악대는 이 소를 앞세우고 마을의 부잣집이나 그 해 농사가 잘된 집을 찾아간다. 농악대가 소춤을 추며 노는 동안 집 주인은 술과 안주를 한 상 차려 내온다. 소놀이패 일행은 해가 저물녘까지 마을의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즐긴다. ‘소놀이’는 부잣집에서 농사일로 고생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한턱 내는 풍속이다. 온 마을이 더불어 잘 살자는 상부상조의 정신이 담겨 있었지만 지금은 민속놀이로만 전해진다. ‘반보기’는 시집 간 딸이 마음대로 친정나들이를 할 수 없었던 시절의 풍속이다. 시댁에서 한가위를 치른 딸과 친정 식구가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는데 중간쯤에서 만난다고 해서 ‘중로상봉(中路相逢)’이라고도 하였다. ‘반보기’는 하루 이틀 친정나들이를 하는 ‘온보기’로 발전했다. ‘근친(覲親)길이 으뜸이고 화전(花煎) 길이 버금이다’란 말이 있을 정도로 추석 때 친정나들이는 옛날 여성들에게 기쁨이자 희망이었다. 시집 간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친정나들이가 쉽지 않았지만 추석 때만큼은 예외였다. 요즘은 달라졌다. 딸이 남편을 앞세우고 친정을 찾아온다. ‘명절 때 처가댁을 안 가면 일년 내내 아내의 눈총을 받는다’고 남편이 푸념하는 세상이 됐다. 아이러니한 얘긴 추석을 맞는 며느리의 하소연이다. 같은 딸이지만 시댁과 친정에서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권이 신장되긴 했지만 차례상 준비, 음식 만들기는 여전히 여성들의 몫이고 남성들은 가부장적으로 그것을 누린다. 그런 연유로 ‘명절 증후군’이라는 신종 질환까지 생겨 ‘명절 증후군 예방법’ ‘명절 스트레스 해소법’ 등이 나왔다.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은 조상에게 감사하는 뜻도 있지만 산 사람이 즐겁자는 게 더 큰 의미다. 여성들이 건강한 명절을 보내기 위해선 남편들의 역할도 필요하다. 이른바 ‘민족의 대이동’ 때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위해 부모들이 도시로 가는 ‘역귀성(逆歸省)’도 일반화된 시대다. 남성들이 송편을 빚는 모습은 보기에 좋다. /임병호 논설위원

가나안농군학교

가나안농군학교는 영농사관학교다. 영농 후계자와 미래의 농촌지도자를 양성한다. 영농후계자 등 본과는 교육기간이 2개월이다. 정치인·기업인·공무원 등이 교육받는 특과는 기간이 1주일이다. 모두 60만여명이 이 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1954년 고(故) 김용기(金容基) 선생(1909~1988)이 하남시 풍산동산 52의2 일원에 세웠다. 일제시대엔 기독교의 박애정신에 입각한 민족자강운동을 벌였던 분이다. 광복 후에는 농촌 부흥운동에 심혈을 쏟았다. 농촌운동에 관한 공로로 1966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가나안농군학교의 명칭 ‘가나안’은 팔레스티나의 요단강 서쪽 옛 지명이다. 성서에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이상향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전해졌다. 김용기 선생은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형 농촌 건설을 위해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나라 안팎에서 이토록 명성높은 가나안농군학교가 헐릴 위기에 처했다. 학교의 전 부지가 보금자리 주택사업 시범지구인 하남시 미사지구 수용지에 들었기 때문이다. 김평일 교장이 지금의 자리에 남길 원해 이런 입장을 당국에 전했지만 허사가 됐다. 사업 시행자인 주공 측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했다. 하남 시내에서는 학교를 새로 지을 대체 부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나안농군학교가 경기도내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보금자리주택을 지어도 그렇지, 꼭 가나안농군학교를 쫓아 내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주택지 인근에 명망있는 이런 학교가 있는 게 오히려 자랑일 것으로 여겨진다. 뒷집을 지어놓고 앞집더러 뜯어내라고 하는 격이다. 보금자리주택이 비록 정책사업이긴 해도, 전통있는 가나안농군학교를 철거하라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설령 옮긴다 해도 창설 당시의 유서깊은 면모를 찾아볼 수가 없게 된다. 이도 개발지상주의의 횡포다. 개발도 좋지만 전통을 무시하는 개발 만능주의 사고는 문화사회, 문화국가라 하기 어렵다. 가나안농군학교는 그대로 존속돼야 한다.

‘홍길동’의 최만규씨

사할린 귀국 동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도 나라를 빼앗긴 상흔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 일본이 2차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우리 한국인 청·장년들을 도처의 강제노역장에 징용으로 끌어갈 때, 끌려간 사람들이 사할린 귀국 동포다. 그 무렵은 사할린이 일본 땅이었으나 1945년 전쟁에 패하면서 다시 러시아(소련) 땅이 돼 돌아오지 못하고 발이 묶여 버렸다. 사할린은 원래 러시아 영토인 것을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강점했던 것이다. 사할린에서 낳은 자녀들과 생이별하고 오직 고국산천이 그리워 맨몸으로 돌아온 것이 사할린 귀국 동포다. 그러나 노환이 겹친 이들의 생활은 정부의 보조가 있긴 하지만 어렵기만 하다. 그들이 거주하는 곳이 안산시 상록구 ‘고향마을’이다. 사할린 귀국 동포의 ‘고향마을’을 돕는 익명의 독지가가 있다. 얼굴을 몰라 ‘홍길동’으로 불렸다. 그 ‘홍길동’이 누구인가를 알게된 보도 내용이 심금을 울린다. 지난 10년 동안 해마다 ‘고향마을’에 익명으로 추원한 금액이 무려 3억3천만원이라니, 매월 275만원 꼴이다. 자신의 집에 갖다준 생활비가 월 150만원일 적도 있었다니, ‘고향마을’ 사람들을 위한 성심이 정말 대단하다. 나눔의 사회는 꼭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란 생각을 갖게 한다. 남에게 베푸는 나눔은 물론 돈이 있어야겠지만, 그보단 마음의 여유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돈의 여유가 아무리 많아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나눔에 인색하다. 반대로 돈은 적어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나눔에 빛이 난다. 더욱이 ‘홍길동’은 자신을 숨겨왔다. 지난 10년 동안 감춰온 얼굴이 알려지게 된 것은 ‘고향마을’ 회장 등의 간곡한 권유에 의해서다. 최만규씨(55)가 ‘홍길동’의 실명이다.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에서 장어집을 하고 있다. 옥호가 ‘힘찬하루’다. 지난 주말에 ‘홍길동’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고향마을’ 사람들을 사업장에 초청하기도 했다. 듣건대 최만규씨 또한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고향마을’을 돕는데 그간 남모를 고초가 많았을 것이다. 그에게 고개가 숙여진다. /임양은 주필

음주운전

술은 잘 마시면 친구다. 그러나 잘못 마시면 악마인 것이 술이다. 친구가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것은 마시는 이에게 달렸다. 주객은 우선 술을 마시거나, 마시고 나서 술자리를 함께 한 사람에게 심적 부담을 주지 않아야 된다. 특히 주정을 부리거나 하는 사람은 술을 입에 댈 자격이 없다. 술도 음식이다. 음식이 인간의 삶에 소중한 것이라면 술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술만 들어갔다 하면 개차반이 되는 음주는 술에 대한 모독이다. 술 버릇은 습관이다. 술을 마시면 남이 더 좋아하게 하는 주벽이 있는가 하면, 술을 마시면 남을 귀찮게 하는 주벽이 있다. 주벽 가운데도 아주 몹쓸 주벽이 음주운전이다. 음주운전 또한 술 습관인 것이다. 딴엔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알코올에 찌든 뇌신경의 순발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음주운전 사고는 자신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엉뚱한 사람에게 날벼락을 안겨준다. 대물사고에 국한하지 않는 대인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낸다. 인명을 해치거나 평생 불구의 결과를 내는 게 한 순간의 실수로 사고를 일으키는 음주운전이다. 음주운전의 증가세는 우려스런 현상이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에 35만3천여명이던 것이 2008년엔 43만4천여명으로 느는 등 해마다 늘고 있다. 이는 적발 건수다. 단속에 안 걸린 음주운전을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지난 8·15 광복절 특사 때 음주운전 전과를 큰 폭으로 사면했다. 이른바 생계형 사면이다. 그런데 이들 중 특사한 뒤 한달 동안에 다시 적발된 음주운전자가 무려 646명이나 된다. 특사 당일에 적발된 사람만도 17명이다. 과연 음주운전에 관대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음주운전 또한 사회의 공적이다. 중국 같은 데선 음주운전으로 인명을 해치면 최고 사형에 처한다. 오는 추석에 일가나 친지들을 만나면 안 어울릴 수 없는 것이 술자리다. 오랜만에 만나 갖는 좋은 술자리가 좋은 기억으로 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설마하고 핸들을 잡는 음주운전을 삼가야 된다.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윤석중 작사 애국가

석동(石童) 윤석중(尹石重·1911~ 2003) 선생은 ‘한국 아동문학의 아버지’다. 윤석중은 1924년 동요 ‘봄’을 ‘신소년’에 발표한 뒤 80년 세월을 동시 짓기와 어린이를 위한 운동에 헌신했다. 그가 지은 동시는 ‘어린이날 노래’ ‘낮에 나온 반달’ ‘기찻길 옆’ ‘앞으로’ 등 1천200여 편이다. 어린이 사랑과 나라 사랑에 헌신했지만 윤석중은 ‘애국가’에 대해선 비판적이었다. 2절의 ‘철갑을 두른 듯’ 등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애국가란 명칭에 대해서도 “애 국가, 어른 국가 따로 있나. ‘나라사랑 노래’가 좋겠다”는 말도 했을 정도다. 그는 작고 3년 전인 2000년 나라사랑 노래 ‘동해물과 백두산’을 새로 지었다. 작곡가 김동진(金東振·1913~2009) 선생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어제 없는 오늘이 어디 있으며 오늘 없는 내일이 어디 있으랴 … 안 마르는 동해물 푸른 그 물결 닳지 않는 백두산 옛날 그 모습”이란 가사를 담았다. 그런데 윤석중이 1946년에도 ‘우리나라 노래’를 작사, 신문에 발표한 사실이 지난 8월 아리랑연합회에 의해 밝혀졌었다. 당시 자유신문은 8월7일자에 “조선아동문화협회가 윤석중에게 우리나라 노래 새 ‘애국가’ 작사를 의뢰했다”고 보도한 뒤 8일자 ‘새 애국가 우리나라 노래, 윤석중씨 작사를 발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1946년 8월8일자에 실린 윤석중의 ‘우리나라 노래’ 1절은 ‘아득한 역사를 품에 안고 / 구비처(굽이쳐) 흐르는 두만강물 / 세계의 하늘과 서로 통한 / 자유와 평화의 우리 하늘’이었고, 2절은 ‘백두산 꼭대기 맑은 정기 / 대대로 물이며(물리며) 크는 겨레 / 이마에 흐르는 땅방울로 / 나날이 살찌는 우리 옥토’였다. 후렴은 ”무궁화 꽃피는 나의 조국 / 이 땅에 태어난 복된 우리”였다. 기존 ‘애국가’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란 가사가 ‘소멸적이고 퇴행적’이라는 당시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듯, 윤석중의 ‘애국가’는 새 나라의 발전을 염원하는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안익태 선생 작곡의 ‘애국가’가 아직도 작사자 미상인채로 불려지는 것이 석연치는 않다. /임병호 논설위원

만석공원 호반 詩와 사진전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에 있는 ‘북지(北池)’의 원래 이름은 만석거(萬石渠)다. 일왕저수지 또는 조기정 방죽이라고도 부른다. 북지는 조선조 22대 정조대왕이 수원에 농업기반 시설을 마련하려는 구상에서 만들어졌다. 정조는 만석을 수확하는 농업을 위하여 1795년 광교산에서 정자동으로 흘러 내리는 진목천 물을 막아 둑을 쌓아 둘레 1천22보(步)의 만석거를 만들고 101석(石) 5승락(昇落)의 둔전 대유평을 조성했다. 조성 당시부터 아름다운 풍광이 되도록 했다. 북지 주변에 아름다운 수목을 심었으며, 호수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어 각종 화목을 조화롭게 가꾸었다. 특히 호수에 연꽃을 많이 심었다. 호수 남쪽 언덕에는 영화정(迎華亭)을, 서쪽 여의교 옆엔 진목정(眞木亭)을 세워 주변 자연경관을 구경토록 하였다. 진목정은 옛날 수원부사가 바뀔 때 거북이처럼 생긴 관인을 교환해 맞춰보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어 일명 교구정(交龜亭)이라고 불렀다. 북지가 일명 조기정이 된 것은 ‘교구정’의 발음상 변천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북지는 시인 묵객들의 뱃놀이와 유락의 명승지가 됐고, 영화정은 승경의 정자로 꼽혀 궁중 화원(畵員)들의 그림소재로 출재됐다. 북지는 수원팔경 중 하나인 북지상련(北池賞蓮)의 현장이다. 호수에 가득 덮힌 흰색, 붉은 색의 연꽃을 감상하는 정취는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붕어·잉어·자라·가물치·민물조개 등과 연꽃이 많았는데 도시개발로 한때 사라졌었다. 하지만 수원시의 친환경 정책으로 연꽃이 다시 살아났다. 특히 북지 둘레를 ‘만석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의 정서와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했다. 정조가 백성을 위하여 영농의 꿈을 펼쳤던 북지, 만석공원 호반에서 지금 경기시인협회가 마련한 ‘2009년 가을 詩와 사진전’이 열려 시민들의 발길이 온종일 끊이지 않는다. 아침, 저녁으로, 한낮에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은 물론 어린 학생들도 액자 속에 담긴 시와 사진을 보며 백지에 옮겨 적기도 한다. 지난 19일 개막한 ‘만석공원 호반 詩와 사진전’은 26일까지 계속된다. “호심에 젖은 별빛 / 그리움을 길어 올려 // 북지상련 만석거에 / 피어나는 연꽃들은 // 오늘도 누굴 기다려 / 눈매 저리 붉은가” 임애월 시인의 시 ‘만석공원에서’다. /임병호 논설위원

병역기피자

“남자들은 셋만 모였다 하면 군대 얘기다”라는 것은 젊은 여성들이 흔히 말하는 놀림이다. 군대에 간 남자친구를 기다려 마침내 제대하고 돌아왔으면 나눌 이야기가 좀 많겠는가, 그런데 또래들의 남자끼리 만나면 한다는 소리가 군대에 있었던 화제뿐이니 여자친구의 입장에선 놀릴만 하다. 군대는 남자의 제련소다. 금속물이 제련소를 거쳐 철강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 또한 군대를 거쳐야 여물어진다. 군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신병이 더러 사고를 쳐 사회문제화 되는 불상사가 있지만,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이 같으면 사회생활 역시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군대에 가봐야 부모의 고마움, 형제 자매 간의 우애 등 가정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된다. 군대생활은 별천지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 30개월의 군 복무기간을 피할 요량으로 병역 기피를 일삼는 족속들이 있다. 요즘은 자신의 몸에 자해를 가해 군 입대를 피한 병역기피자에 대한 경찰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몹쓸 병에 걸린 환자를 군 입대자 본인인 것처럼 신체검사를 받게 한 바꿔치기 기피자가 있다더니, 자신의 몸을 일부러 망가뜨린 자해 기피자들이 또 수두룩한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병역을 기피한 당사자도 한심하지만, 더욱 한심한 것은 남의 몸을 일부러 망가뜨린 일부의 의사들 족속이다. 멀쩡한 어깨에 칼을 대어 삐뚫어지게 만들고, 멀쩡한 무릎을 까발려 인대를 늘어뜨리곤 했다니 이런 의술은 인술이 아니고 사술이다. 그저 돈만 주고 부탁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그들의 지성이 의심스럽다. 몸을 고장냈으면 나중에 또 고쳐야 했을 것이므로, 이래저래 병역기피 자해족들을 봉 잡았을 것 같다. 이런 젊은이들이 있다. 외국의 시민권을 얻어 모국의 군복무 의무가 없는데도 자원해 입대하는 젊은이들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천여명에 이른다. 이에 비하면 병역기피자들은 부끄러운 인생이다. 병역비리를 철저히 밝혀 엄단해야 하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담은 경계선의 표시다. 경계선의 개념을 넘어 방범용으로 높이 쌓기도 한다. 성벽처럼 사람의 키보다 높다랗게 쌓고도, 담 위에 전류가 흐르는 전선망을 치는 재벌 집들이 있었다. 그러나 보통집은 사람의 가슴 높이로 담을 쌓는다. 담은 과연 꼭 필요한 것일까? 서구사회나 일본의 주택가는 담장이 거의 없는 게 특징이다. 담이 있어도 경계선을 이룬 정도일 뿐, 아주 낮다. 공공기관의 담은 흉물이다. 이래서 시멘트 벽돌로 안이 보이지 않도록 쌓던 담을 허물고 틈새로 들여다 보이는 철책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도 거부감을 주어 이젠 아예 담을 허무는 데가 적잖다. 예컨데 수원종합운동장은 담이 없다. 수원 북중학교, 수원보훈지청 등 역시 담을 허물었다. 담이 없는 공공기관은 시민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탁 트인 내부를 그대로 보는 행인의 맘이 웬지 포근해진다. 인천에서는 엊그제 인하대학교가 담을 허물었다. 길이가 750m에 이르는 담을 허물어 대학로를 조성했다. 새 명품거리가 된 인하대 대학로에는 나무와 꽃 등을 심어 휴식의 정취를 만끽하도록 했다. 이번에 담을 허문 곳은 정문 구간이다. 조만간 후문 구간도 담을 허물어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공공기관의 담은 모두 허무는 게 좋다. 공공기관만이 아니다. 주택가의 개인집 담도 허무는 노력이 필요하다. 담을 허물면 주차공간이 넓어져 이면도로의 주차난이 다소간은 풀린다. 주차난 해소를 위해 담을 허무는 데, 얼마간의 보조금을 주는 자치단체가 있다. 이런데도 정작 담을 허무는 집은 별로 많지 않다. 방범을 위해서겠지만 담이 꼭 방범의 요소인 것은 아니다. 집과 집 사이의 칸을 막은 담보다 마음속 담이 더 장애 요인이다. 마음의 담이 굳게 닫혀있으므로 해서 집 담도 허물기가 싫은 것이다. 현대인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자신의 맘속 담에, 스스로가 갇혀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임양은 주필

양성(兩性) 괴담

같은 여자인 줄 알고 한 방에 있던 사람이 양성의 남자일 것 같으면 기절할 노릇이다. 특히 시각이 수를 놓거나 바느질을 하던 야반 같으면 더 할 것이다. 그러나 사연이 이렇게 되어 밀통을 즐긴 일이 실제로 있었다. 조선조 세조실록에 전해지는 사방지(舍方知)는 사대부 집안의 과부인 이씨의 몸종이었다. 천민이긴 해도 바느질과 수놓은 솜씨가 뛰어나 이씨가 각별히 아꼈다. 그런데 사방지는 양성이었다. 이씨는 처음엔 심히 놀랐으나 과부였던 터라, 사방지를 더욱 가까이 두었다. 그러다가 차츰 소문이 퍼져 조정에까지 말이 들어가 마침내 공론화되기에 이르렀다. 사방지의 주인 이씨의 친정 아버지가 세조의 왕위찬탈에 공을 세워 종2품 벼슬을 지낸 공신집안이었기 때문이다. 또 과부 이씨의 외아들이 장가든 며느리 역시 바로 정일품 벼슬의 공신의 딸이었던 것이다. “사방지는 일찍이 (이씨와의 관계 전에도) 여자중과 통간하여 여자중이 머리를 길렀으니, 그 정상을 알만합니다”하면서 임금에게 도성밖 추방을 상주한 것은 신숙주였다. 한명회 역시 유배를 주청했다. 세조는 이씨 친정 아버지 등과의 인연으로 난감해 하다가, 이씨 문젠 집안에 맡기고 사방지만을 “이 사람은 인류가 아니다. 외방 고을의 노비로 소속시키는 것이 옳다”하고 변방으로 내쳤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명종 8년에 또 생겼다. ‘길주사람 임성구지(林性仇之)는 양의(兩儀·음양)를 모두 갖춰 시집도 가고 장가도 들고하니 해괴합니다’라는 함경감사의 장계가 조정에 올라온 것이다. 조정은 공론 끝에 사방지의 전례에 따라 외진 곳에 따로 두어 사람들과 함께 섞여살지 못하도록 인적을 금지시켰다. 지난달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헤로인 캐스터 세메냐(18·남아공화국)에 대한 양성설이 제기됐다. 여자 800m 우승자인 세메냐는 너무 잘 달려 ‘과연 여자가 맞느냐?’는 의문이 일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성 감별을 의뢰했는 데 호주의 한 언론이 IAAF 관계자의 말을 인용, 양성으로 확인됐다는 보도를 했다. 자궁과 난소가 없고 체내 고환을 가졌다는 것이다. 2006년 도하아시아경기대회의 여자 800m 은메달리스트(인도)도 염색체가 남성으로 밝혀져 메달을 박탈당했다. IAAF는 세메냐에 대한 최종 판단은 아직 유보중이다. /임양은 주필

전통주

전통주는 크게 소주(燒酒)와 청주(淸酒) , 탁주(濁酒)로 나뉜다. 맥주에 밀려났던 대중적인 막걸리는 최근 건강 바람을 타고 시민권을 되찾았다. 전통소주와 청주도 부활했다. 한때 청주를 일본 청주의 한 브랜드인 ‘정종’이라고 불렀지만 적절치 않은 말이다. 예로부터 차례상엔 맑은 술인 청주를 올리는 게 법도였다. 청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술은 경북 경주의 교동법주와 충남 서천 한산의 소곡주다. 교동법주는 궁중의 공식 행사에서 사용한 술로, 빚는 날과 빚는 법을 지켜 술을 담근다고 하여 ‘법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주 교동의 최씨 집안에서 찹쌀과 밀로 만든 누룩으로 만드는데, 16~18도 정도로 맛과 향이 좋다. 일반 멥쌀로 만든 경주법주와 찹쌀로 빚은 ‘화랑’도 있다. 소곡주는 백제 때부터 빚어졌다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이다. 경주법주와 함께 대표적인 청주다. 역시 달고 부드러운 맛이 좋아 한번 마시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여 ‘앉은뱅이술’이라고도 한다. 조선 중기부터 빚어지기 시작한 전남 해남의 진양주는 13도 안팎의 청주로 취기가 은은하며 경주법주보다 강한 향이 난다. 충남 면천의 두견주, 밀양의 교동방문주 등이 청주 또는 약주에 속한다. 청주에 약초 등 다른 재료를 첨가해 빚은 술이 약주다. 고려 때 몽골군이 갖고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는 소주는 평양, 안동, 제주 등 몽골군의 주둔지가 명산지다. 안동소주는 45도로 높지만 맛이 깊다. 또 몽골군의 일본 공격 기지가 있었던 제주에 ‘고소리술’이라는 좁쌀소주가 남아 있으며, 전라도에선 진도의 홍주와 영광의 법성포 토주가 이름난 전통소주들이다. 일반 소주는 대기업 양조장과 각 지방 술도가에서 다량으로 생산한다. 제주도의 ‘한라산’ 소주 맛은 일품이다. 수원에선 ‘샛별’ 소주가 유명했었다. 평양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문배주는 1950년 전쟁 때 서울로 이주한 이경찬씨의 아들 이기찬씨와 손자 이승용씨가 5대째 만들고 있다. 문배주도 여러 지역에서 나오는데 중국의 고량주처럼 수수를 넣어 빚은 술이어서 맛이 달다. 40도짜리와 23도짜리가 함께 나온다. 한가위를 앞두고 전통주를 많이 찾는 것은 옛 음주문화를 보전하는 점에서 참 좋은 현상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가을 전어

예부터 봄 도다리(주꾸미), 여름 민어·가을 전어·겨울 숭어라고 했다. 전어는 남해안, 서해안 연안에서 많이 잡힌다. 주로 얕은 바다에서 논다. 플랑크톤 등 각종 유기물이 많은 강 하구를 좋아한다. 산란기는 4·5월, 알을 낳고 나면 몸이 푸석하다. ‘봄 전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가을엔 내년 봄 산란을 위해 다시 열심히 먹는다. 오동통 살이 찐다. 지방이 봄의 3배가 넘는다. ‘가을 전어’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회로 먹든, 구워 먹든 고소하다. 회 무침도 좋다. 깨소금 맛이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갔던 며느리도 돌아온단다. 전어(錢魚)의 ‘전’자는 돈(엽전)을 뜻한다. 조선후기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해서 파는데, 귀족·천민을 가리지 않고 돈 아까운 줄을 몰랐다. 그래서 ‘전어(錢魚)’라고 했다”고 나와 있다. 이때 전어는 전어회나 전어구이가 아니다. 소금에 절인 자반전어나 전어속젓 혹은 전어창자로 담근 돔배젓이다. 전어새끼는 전어사리라고 부른다. 전어사리로 담근 젓이 엽삭젓(뒈미젓)이다. 전어내장을 모아 담근 젓은 전어 속젓이다. 안도현 시인이 “쓰디 쓴 눈송이만 묻어둔 내장(內臟) 한 송이를 남겨 놓으니 이것으로 담근 젓을 전어속젓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한 그 젓갈이다. 일본에선 전어를 ‘고노시로’라고 부른다. 초밥에 많이 쓰지만, 가시가 많아서인지 구워 먹는 것은 즐기지 않는다. 뼈째 썰어 먹는 회는 더욱 그렇다. 회를 뼈째 썰어 오도독, 오도독 잘도 씹어 먹는 한국인들은 유별나다. “전어 한 쌈에 / 달빛 한 쌈 / 작년에 떠났던 가을 / 파도에 실려 돌아오네 / 가족들 모두 병이 없으니 / 떠난 것들 생각에 밤이 깊어도 좋으리 / 창 밖에 / 먼 곳 풀벌레 가까이 다가오누나.” 윤상운의 시 ‘전어와 달빛’이다. 가을에 전어를 못 먹으면 한 겨울에도 가슴 시리다고 하였다. 어느 여름날, 나이 일흔에 죽을 날만 기다리던 노인이 “죽는 것은 괜찮지만, 올 가을 전어 맛을 못 보고 죽는 게 억울하다”고 탄식했다는 우스갯말이 실감난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야흐로 가을이다. 가족들, 친구들과 전어를 안주 삼아 덕담을 나누면 딱 제격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위장전입

고위직 인사청문회 때마다 드러나는 단골 메뉴가 병역 관계와 위장전입이다. 병역은 모든 남자의 의무다. 부대에서 입영한 아들의 사복을 보내온 소포를 푸는 어머니의 손끝은 떨리고 가슴은 마구 뛴다. 눈에선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진다. 이런 눈물을 쏟은 경험이 없는 어머니는 ‘대한민국의 어머니’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아들없이 딸만 두었거나 아들이 있어도 병역이 면제된 특별한 경우는 다르지만, 문제는 병역 기피자들이다. 위장전입 역시 실정법 위반이다. 지금 인사청문회가 계류된 민일영 대법관, 이귀남 법무부,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들이 위장전입에 걸려있다. 현직 요인이나 장관들도 위장전입의 전력자들이 적잖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현 정부 인사는 위장전입이 공통적 필수과목”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위장전입 시비는 있었다. 김대중 정부 땐 장상,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가 위장전입이 주요 요인이 되어 낙마했다. 정세균 산자부 장관 역시 위장전입이 문제가 됐으나 간신히 통과됐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재직중 위장전입이 말썽이 되어 물러나는 등 위장전입 시비가 종종 있었다. 위장전입은 주로 두 가지다. 부동산 투기와 학군 선택을 위해서다. 주민등록은 국민의 거주 관계를 파악하고 상시 인구의 동태를 명확히 하는 기초 자료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모든 시책이 여기서 출발하는 주요 문건이다. 그런데 이의 정확성을 해치는 것이 이른바 위장전입인 것이다. 나라의 지도층 인사들이 위장전입을 밥 먹듯이 해댄 준법의식의 둔감은 실로 개탄스런 현상이다. 위장전입에 범죄 의식을 느끼지 않은 비도덕성은 어떤 이유로든 합리화 될 수 없다. 주민등록법은 위장전입에 대해 징역 3년 이하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권력없고 돈없는 서민층은 위장전입 따윈 평생 모르고 산다. 다른 큰 흠집 없이 위장전입만 가지고는 낙마까진 안 되고 그저 “미안하다”는 말로 넘어가지만, 이젠 달라져야 된다. 위장전입은 도덕성의 기본인 양심을 져버린 행위이기 때문이다. /임양은 주필

천수이벤 전 총통

그는 ‘타이완의 아들’로 불리웠다. 대만 국민의 영웅이었다. 2000년 봄 국민당 정부의 만년 정권을 무너뜨린 그의 집권은 기적이었다. 불과 마흔아홉의 나이에 대만 정부의 총통이 된 민진당 당수 천수이벤은 진보세력의 개혁 깃발을 내걸었다. 국민들의 기대 또한 컸다. 그러나 그의 집권은 시행착오 투성이었다. 국민의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정권은 다시 국민당에 넘어갔다. 대만 국민이 그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한 것은 구조적 부패의 베일이 벗겨지면서다. 천수이벤 전 총통이 구속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그리고 지난 11일 수뢰 등 죄로 종신형과 함께 평생 공민권 박탈이 선고됐다. 천수이벤만이 아니다. 부부가 함께 종신형을 받았다. 그의 공소사실에 나타난 비리 금액은 우리 돈으로 약 600억원이다. 부정한 돈의 돈세탁을 맡았던 아들 내외도 유죄가 선고됐다. 이들의 부정을 도운 총통부의 전 집사역 관리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결백하다”는 것은 천수이벤의 말이다. “국민당 정부가 정치적 보복으로 날 얽어 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성하는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타이베이지방법원 형사부의 판결 요지다.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피고인이 총통직을 악용해 비리를 저질러 국민을 실망시키고도, 범행을 감추기 위한 위증을 일삼아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종신형 선고의 판결문 내용이다. 그도 처음부터 비리를 저지를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출발은 순수한 충정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것이 ‘타이완의 아들’에서 ‘타이완의 수치’로 전락된 잘못이 어디서부터 연유한 것인진 알 수 없지만, 권력은 자신도 베일 수 있는 양날의 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직 부패에 대한 형량이 무겁기로 평판난 타이완 사법부의 전통에 비추어 평생 감옥에서 썩게될 그의 쉰여덟 나이가 아깝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에겐 국가의 최고 덕목이 요구되는 것은, 나라가 다르다하여 다를 바가 없다. 천수이벤 전 대만 총통의 중형 선고가 우리의 피부에 와 닿는다. 왜 그럴까? /임양은 주필

수원 장안선거구

수원시 장안구가 갑자기 전국적 화제에 올라 뜨거워졌다. 지난 10일 대법원에서 박종희(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확정 판결이 나기가 바쁘게 재선거가 세인들의 입방아감이 됐다. 참 야박한 세상이다. 하긴, 확정 판결이 나기 전에도 재선거 얘기가 전혀 없진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듯이 해보이는 정치권 인심이 정말 무섭다. 박종희 의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의 와중에도 국회의원직을 누구보다 성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최종 사법적 판단이 공소사실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인 덴 어쩔 수 없다. 이로써 오는 10월28일 실시되는 국회의원 재선이 강원도 강릉·경남 양산·안산 상록을 세 군데서 수원 장안이 추가돼 네 군데로 늘었다. 현직 국회의원이 사퇴하거나 사망하여 치르는 선거는 보궐선거이나, 당선이 무효화되어 다시 갖는 선거는 재선거다. 그러니까 10·28 재선 네 군데가 다 당선 무효로 선거를 다시 실시하는 것이다. 10·28 재선거 중에도 수원 장안선거구가 유별나게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거물급의 출마설 때문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떨어지면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거물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마치 무주공산이 된 것처럼 왜 남의 구역을 넘보느냐는 듯이 뜻을 두는 지역 출신의 인사들도 적잖다. 문제는 소선거구제의 국회의원 선거구는 지역정서가 불가피 하다는 점이다. 여기에 수원 장안선거구는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짙다. 정말 누가 될 것인지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다. 여야도 고심이 많은 것 같다. 전략공천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고민인 것이다. 벌써부터 눈치 놀음이 한창이다. 서로 상대 당에서 누굴 내보내는 지 보고, 결정한다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전국의 재선거 네 곳 중 경기도가 수원 장안·안산 상록을 등 두 군데다. 재선거의 표심을 가름한다. 그나저나, 혹시라도 재재선거를 또 치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공명선거의 10·28 재선이 돼야 할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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