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희망연대

미래희망연대가 지난 2일 전당대회를 열고 한나라당과 합당을 의결했다. 지난 2008년 3월19일 49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에 반발, 친박연대로 출범했던 미니 정당이다. 박근혜 외곽 정당임을 노골적으로 내세운 친박연대란 당명이 마음에 걸렸는지, 미래희망연대로 바꾸더니 이도 얼마 안가 불과 2년에 그친 단명 정당으로 자멸했다.전당대회라지만 재적 대의원이 129명이다. 이 가운데 91명이 참석해 만장일치 찬성으로 합당을 의결했다. 이규택 대표는 서청원 전 대표의 무조건 합당 제안에 반발, 지난달 31일 이미 대표직을 사퇴했다. 그는 국민중심연합과의 합당을 주장했다.한국정치사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미니정당의 명멸을 들 수가 있다. 건국 이래 100여 정당이 밤 이슬처럼 생겼다가 아침 이슬처럼 사라졌다. 이렇긴 해도 특정 정치인 성씨를 당명으로 붙인 정당은 없었다. 친박연대가 처음이다. 미래희망연대로 이름을 바꾼 친박연대는 생긴 과정도, 없어진 과정도 코미디다. 미래도, 희망도 그리고 재미도 없는 코미디인 것이다.궁금한 것은 박근혜의 무반응이다. 자신을 정서적 주군으로 삼은 정당이 당을 그만 두겠다는 데도 아무 말이 없는 것은 나쁘다는 것인지, 좋다는 것인지 종잡기가 어렵다. 분명한 것은 위상이 전 같지 않은 게 객관적 판단이라는 점이다. 한나라당 당내 친박계 계보에서도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관된 네가티브 처신에 식상했다는 것이다. 만약 미래희망연대가 박근혜의 권유로 한나라당에 들어간다면 또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다. 박근혜의 뜻과는 상관없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결별로 보아진다.그나저나 미래희망연대 소멸로 낭패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미래희망연대로 62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을 해놓고 있는 각급 후보자들이다. 이제 한나라당에 들어가 공천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지지 않아 졸지에 무소속이 될 판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가 군소정당의 난립이다. 정당 질서를 문란케 하기 때문이다. 보수진보 양대정당 체제로 뿌리내려야 하는데 현실은 아직도 요원하다. /임양은 본사주필

효행기념관

서울에서 수원 오는 길에 제일 먼저 이르는 시(市) 경계지점이 지지대고개다. 예전엔 사근현(沙斤峴)이었으나 조선조 22대 정조대왕이 미륵고개라고 불렀다. 행정 구역상 옛날엔 광주군(廣州郡)의 경계였다가 수원군 일왕면, 시흥군 의왕면, 현재는 의왕시와의 경계가 됐다. 경수산업도로가 개설돼 고개의 정취가 사라졌지만 지지대고개는 수원 광교산의 서쪽에서 뻗어온 능선을 따라 산마루의 정상을 이룬 수원시의 관문이다.정조는 수원의 화성(華城)을 축성(1794~1796)하고 부친 사도세자의 원소를 참배하기 위해 수원에 행차할 때나 환궁하는 길에 이 고개를 꼭 넘어야 했다. 정조는 수원에 올 땐 고개가 높아 어가(御駕)가 왜 이리 더디냐고 채근하였고 수원을 떠나 돌아 갈 때는 천천히 더디게 가라고 당부했다. 수원에 이르러선 이르나 저무나 사모하는 마음을 다 하지 못하여 이 날에 또 다시 화성에 왔구나 (晨昏不盡暮 此日又華城)하고 기뻐하였고, 환궁할 때는 남쪽을 바라보며 지극한 슬픔이 가슴 속에 있으니 어떻게 참을 수가 있느냐고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명일화성회수원(明日華城回首遠) 지지대상우지지(遲遲臺上又遲遲)란 글을 지어 떠나기 싫음을 읊었다. 그후 백성들이 임금의 행차가 더디고 또 더뎠다하여 미륵고개를 더딜 지(遲)자를 써 지지대고개라고 불렀고 정조의 아들 순조는 지지대비와 비각을 세웠다. 고풍 서린 한식건물 효행기념관은 바로 지지대 아래에 있다. 어버이를 존경하고 백성을 사랑한 정조의 생애와 치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장엔 우당 이길범 화백이 그린 정조 영정을 비롯 화성의궤 복제분, 홍재어필 복제분, 한중록 복제분, 부모은중경 목판 복제본, 정조시문 한글 필사본, 정조대왕 능행도 등 76점의 문헌과 그림이 내방객들을 맞이한다. 기념관 뒤엔 안찬주 선생이 1986년 9월 15일 조각한 정조대왕 동상이 있어 더욱 옛날을 회상케 한다. 한국효사상연구회가 효행기념관 경내에 있는 것도 뜻 깊다. 효행기념관을 가면 정조 사상과 체취를 느끼게 된다. 지지대에 이르러 노송지대를 지나 화성, 융능으로 행차하던 어가 행렬이 연상된다. 봄날 주위 풍광이 아름다워 가족들이 효행기념관을 찾아보는 일도 매우 유익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경기관찰사

조선시대의 관찰사(觀察使)는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되는 관직이다. 관찰사는 행정은 물론 지역 최고 군사사령관과 최고 재판관이기도 하였다. 삼권을 틀어쥔 절대 권력자였다. 특히 경기관찰사는 지방 행정구역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을 관할하는 직책이었다. 그래도 관찰사는 임금의 신하였다. 임금은 신하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관찰사는 원칙적으로 그 지역 출신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임기 또한 대체적으로 1년 이상 주지 않았다.조선 왕조 건국 이듬해인 1393년 경기좌도와 경기우도 안렴사(安廉使후일 관찰사)로 장자충과 임구가 임명된 이래 1908년 마지막 관찰사인 김사묵에 이르기까지 515년 동안 경기관찰사는 644명에 달했다. 역대 경기관찰사 중엔 최명길홍봉한채제공김홍집최익현 등 역사상 저명한 인물이 많다. 유철은 1647년, 1651년, 1653년, 1660년 네번이나 경기관찰사를 지냈다.1540년 11대 임금 중종은 임백령을 경기관찰사에 임명하면서 나무는 뿌리가 있어 자라 무성해지고, 물은 샘에서 흘러 바다에 이른다. 나라에 기전(畿甸)이 있음은 나무에 뿌리가 있고 물에 샘이 있음과 같다. 기전의 정치가 잘되고 못됨은 나라 전체의 무게와 관계되며 풍속이 순후하고 병든 것은 사방의 쇠퇴함과 융성함에 관계된다. (중략) 경에게 부탁하노니 부디 가서 직분을 잘 수행하라고 교서를 내렸다. 기전은 나라의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까운 행정구역이다. 오늘날 경기도에 해당된다. 경기도박물관이 지난 27일 개막, 5월 23일까지 전시하는 경기관찰사 특별전은 경기관찰사에 부임하다, 경기감영에서 경기도청으로, 경기관찰사의 업무, 기백열전 등 4부로 전시됐다. 경기감영도(보물 1394호), 채제공초상(보물1477호), 박문수초상(보물 1189호) 등을 비롯 유물 200여점이 과거를 회상케 한다. 62 지방선거에 경기도지사로 출마하려는 후보자들이 관람하여 조선시대 경기관찰사들이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였는지 예습했으면 좋겠다. 임백령에게 내린 중종의 교서 또한 가슴에 담아올 만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천안함 참사

국민사회가 숙연하다. 지난 26일 저녁 9시45분 발생한 서해안 해군 함정 참사가 발생한 지 오늘로 닷새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침통한 사회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애국심이다. 국군 46명이 생사 불명에 처한 비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정치권의 쌈질이 수그러들었다. 62 지방선거 선거판 열기가 주춤해졌다. 당연하다. 나라가 미증유의 참사로 온통 슬픔에 잠긴 판에 선거판 쌈을 벌인다면 염치가 있다고 할 수 없다.정부는 물론이고 각급 공공단체들도 예정된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국민적 불행을 당해 자숙 분위기를 갖기 위해서다. 공무원들은 비상대기 상태다.그렇잖아도 나라가 다사다난한 가운데 돌발한 천안함 폭발 참사는 원인이 뭣이든 심각한 후유증을 예고한다. 함선 자체의 내부 폭발 같으면 군의 기강 해이가 문제된다. 군함은 개미 한 마리도 포착할 수 있을 만큼 장비가 첨단화됐다. 하물며 군함에 적재한 탄약이 일순간에 폭발했다면 군의 지휘체계 문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만약에 외부에 의한 폭발이 북의 소행이라면 명백한 도발이다. 예컨대 1987년 11월29일 발생한 KAL858기 폭파사건은 북의 대남공작부가 자행한 테러다. 그러나 군함 공격은 군의 국지적인 전쟁 도발이다. 도발이라면 연평해전 등의 패전에 대한 보복 등 긴장 고조를 위한 다목적 포석일 것이다. 이의 대응책으로 전쟁을 벌이진 않는다 해도 응분의 응징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그러나 현실은 미궁이다. 한마디로 답답하다. 폭발의 원인도 모르고 실종자들의 생사도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마냥 시일만 간다. 이렇다 보니 세간의 의문만 빗발친다. 정부의 대처가 웬지 미덥지 않아 보이기까지 한다. 당국에서는 최선을 다한다고 하겠지만 실정이 이렇다.하지만 국민사회는 이럴수록 침착해야 한다. 정체불명의 소문에 들뜨지 말아야 된다. 국난이다. 우선은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순리다. 정부는 이런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임양은 주필

김연아의 투지

세계무대의 7위에서 2위에 오른 것은 대추격이다. 지난 27일 이탈리아 토리노서 열린 201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프리에서 김연아 선수(20고려대)는 1위로 130.49점을 얻었다. 그러나 전날 쇼트에서 60.30점으로 7위에 그쳐 이를 만회하기에는 총점 190.79로 197.58점을 얻은 라이벌 아사다 마오 선수(일본)에게 6.79점 차이로 뒤져 우승을 내주었다.밴쿠버 올림픽 정상의 영광에 이어 세계선수권대회 2연패를 노렸던 것이 준우승에 그쳐 아깝게 무산됐다. 김연아 선수의 말이 진솔하다. 올림픽대회 이후 제대로 훈련한 것은 일주일밖에 안 된다고 했다. 본인의 심리적 영향도 있고, 외부 행사의 원인도 없지않을 것이다.아무리 뛰어난 선수일지라도, 할 때마다 이기는 경기는 있을 수 없다. 프로복싱의 전설적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는 유명한 떠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언론은 당연히 내가 이길 것으로 점치지만 나는 경기 때마다 불안했다. 불안한 심리를 그렇게(떠벌이로)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번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도 국내 언론은 김연아 선수가 자신감에 차있다느니, 컨디션이 좋다느니 하면서 우승을 점쳤다. 물론 이 같은 보도는 기대감이다. 한편으로는 신문제작의 흥행성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김연아 선수를 짖누른 올림픽 후유증의 부담감을 간과한 점이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같으면 최고의 챔피언이다. 올림픽 다음의 권위를 갖는 세계선수권대회는 작년에 이미 제패한 바가 있다. 그런데 올해 또 2연패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그러나 도전은 선수의 권리다. 김연아 선수의 그러한 권리 또한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비록 2연패는 이루지 못했어도 역시 위대하다. 메달권에서 먼 7위에서 바짝 추격, 은메달을 쟁취한 기량과 투지력은 놀랍다. 이제 아마추어선수 생활은 사실상 끝난 셈이다. 우리 국민은 그가 있어 행복했다. 오는 31일 귀국한다. 우선 급한 것은 그간 심신의 피로를 풀도록 편한 휴식을 갖게하는 일이다. / 임양은 본사주필

화학적 거세

중국 역사서의 교범으로 불리는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은 황제의 비위를 거스른 죄로 궁형(宮刑) 즉, 거세형(去勢刑)에 처해졌다. 명나라 때의 회족(回族) 정화는 지리상 대발견의 시대 이전에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아프리카까지 진출한 남해 원정의 주역이었지만 전쟁포로가 돼 환관으로 쓰일 목적으로 거세됐다. 18세기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브로스키(예명 파리넬리)는 최고의 카스트라토였다. 카스트라토는 소년기의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거세한 남자 가수를 말한다. 거세는 환관이나 카스트라토 등 사회적 필요를 위해 시행된 경우와 형벌로 대별할 수 있지만 대체로 형별적 성격이 더 강했다. 고대 중국에서는 사형, 비형 등과 함께 궁형을 5형에 포함시켰고 중세 유럽에선 왕족살해 죄인을 사형하기 전에 거세부터 했다고 한다. 그 거세 형벌이 오늘날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거론되는 건 비극이다. 성폭행범은 거세할 수밖에 없다, 화학적 거세를 선언하자는 주장이 공공연히 언론에 등장한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성범죄자들 때문이다.성욕은 동물적 욕구의 일종이다. 시체만 보면 성욕을 느끼는 사람(necrophile), 어린아이만 보면 성욕을 느끼는 소아성기호증 사람이 있다고 한다. 소아성기호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참는 것, 아니면 거세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참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거세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리적 거세는 육체적으로 없애는 것이지만, 화학적 거세는 호르몬제를 투여해 성적 욕구를 낮추는 방법이다. 성욕의 끝을 자르는 시술이다. 마음 뿌리가 다 썩었는데 성욕의 끝만 자른다고 무슨 효과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잖다. 하지만 독일, 스웨덴, 덴마크 등 유럽 일부 국가, 미국 8개주에선 실시한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화학적 거세 법안이 논의됐으나 인권 침해를 이유로 일단 보류됐다. 그러나 성폭행살인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 성범죄자의 재범, 3범, 4, 5범 예방 대책은 화학적 거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딸 가진 부모들은 불안하다. 화학적 거세를 누가 반대하는가. /임병호 논설위원

물 스트레스 국가

유엔이 1992년 제47차 총회에서 매년 3월22일을 세계 물의 날로 제정한 것은 먹는 물 공급과 수자원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국제사회가 물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독려하려는 취지다. 세계인구는 1940년 23억명에서 1990년 53억명으로 늘었고, 2025년에는 83억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유엔은 지금처럼 물 사용이 늘어나고 소비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2025년에는 25억명가량이 물 부족으로 생사가 어려워 질 것으로 전망한다. 1995년부터 물의 날을 공식 기념일로 정한 우리나라는 당장 물사정이 심각한 물 부족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유엔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가 분류한 물 스트레스 국가다. 물 문제에 적극 대처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심각한 물부족에 시달릴 날이 오게 된다는 경고다.사람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은 하루 2ℓ가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에 물을 어느 정도나 사용하는지, 그리고 한 종지의 먹을 물도 구하지 못해 고통받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빈국 주민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전 세계 물 문제는 공급량 부족뿐 아니라 수질 오염으로 먹는 물 확보가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우리나라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세계화장실협회(WTA)에 따르면 물 부족으로 세계 곳곳에서 해마다 180만명이 설사병 등으로 목숨을 잃고 이 중 90%는 5세 이하 영유아라고 한다. 수질 문제로 인한 고민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한강낙동강 등의 수질이 악화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수질오염 방제센터를 만들고, 수질오염 총량제 등 갖가지 대책을 추진해오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풀렸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수질 오염 문제가 불거질 때면 각종 대책을 마련하며 부산을 떨다가 조금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대처한다. 물은 곧 인간과 자연의 생명이다. 물이 병들지 않도록 정부는 물론 정치권, 국민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임병호 논설위원

민선직과 임명직

조선 왕조시대에 영의정과 좌우의정은 품계가 정일품이다. 지금의 국무총리와 부총리가 이에 해당한다. 장관격인 판서는 정이품이고, 차관격인 참판은 종이품이다. 도지사에 해당하는 관찰사는 정이품 품계다. 이 밑의 수령 방백으로 부사목사현감 등이 있는데 종삼품에서 종육품으로, 지금의 시장군수가 이에 해당된다.62 지방선거에 전직 고관들이 자치단체장으로 많이 나서고 있다. 정일품인 국무총리와 부총리를 지낸 사람들이 정이품에 해당하는 광역단체장으로 나서는가 하면, 종이품격의 차관을 지낸 사람이 종삼품 이하격의 기초단체장 예비후보로 등록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들도 기초단체장에 대거 나서고 있다. 옛날엔 국회의원은 없었으나, 국회의원을 장관 예우로 대하는 정부 의전 규칙에 비하면 이 역시 정이품에서 종삼품 이하를 자원하는 셈이다.품계 하나 올라가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알았던 관념은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은 아니다. 공직사회에서 승진은 더할 수 없는 일신의 영예다. 이런 가운데 전직 총리부총리가 광역단체장, 전직 장차관이나 전직 국회의원이 기초단체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품계의 하락인데도 경쟁이 심하다.그것은 임명직의 품계와 민선직의 품계는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임명직은 임명권자 한 사람에게만 인정 받으면 오를 수 있는 자리다. 이에 비해 민선직은 다수의 선택에 따라 오를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제3공화국에서 국회의장을 지낸 대구 출신의 이효상씨는 고향으로 낙향했던 시절에 단위농협조합장을 지냈다.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서 과수원을 했으므로 조합원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관선) 도지사는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농민이 뽑아준 농협조합장은 영광으로 안다는 것이 당시 그의 말이었다.전직의 임명직 고관들이 자치단체장을 선호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힘이다. 더 말하면 민선의 위력이다. 아울러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임명직보다 민선직이 더 권위와 가치를 지닌다. 지방자치단체장만이 아니고 지방의원 역시 같다. 오는 62 지방선거에 유권자들은 이런 민선 의식을 갖고 투표에 임해야 할 것이다. /임양은 본사주필

개명허가

자기 이름만큼 중히 여기는 것이 없다. 가령 자신의 이름이 난 신문 같으면 자기 관련의 기사 지면이 한 켠 구석에 볼품없이 났어도, 톱기사보다 관심이 더 깊다. 이름은 자신의 간판이다. 이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부모가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그런데 더러는 본인 이름을 맘에 들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름이 촌스럽다거나 부르기가 어렵다거나 나쁜 것을 연상케 한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 역술 풀이로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꺼림칙하게 여기기도 한다. 심지어는 전국을 떠들석하게 만든 흉악범 이름과 같아 곤혹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다.지난 10년 동안에 전국에서 84만4천615명이 법원에 개명신청을 해 73만233명이 허가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개명신청은 비송사건이어서 간단하다. 소정의 양식에 신청서를 내면 지방법원장이 판단해서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신청은 간단해도 좀처럼 허가가 나지 않던 것이 개명이었다. 사회의 소극적 안정을 위해서였다. 어린 아이일적부터 써온 이름을 사회활동이 한창인 어른이 되어서 바꾸면 혼돈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 10년간의 개명 허가율은 86.4%로 무척 높다. 그러나 개명 허가가 까다롭던 시절엔 불허가 허가율만큼 높았다.개명이 비교적 쉬워진 것은 대법원의 지침에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우선으로 본 해석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과 함께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자 하는 것 또한 행복을 추구할 권리로 보는 것이다.따라서 개명신청 사유가 황당하지 않을 것 같으면 허가가 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다. 뭘 황당한 걸로 보느냐는 것은 여기서 딱 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허가권자의 판단에 속하기 때문이다.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보통사람들이야 죽어서 이름을 남길 것도 없지만, 비록 현세에서 사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한 이름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이 갖는 심정인 것 같다. /임양은 본사주필

애완동물 판매

최근 일부 대형 마트에서 애완동물을 판매하기 시작한 건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공간이어서 비위생적이다. 판매코너에 수 많은 동물들을 진열해 놓거나, 비늘색이 변할 정도로 어항에 물고기를 집어 넣은 것도 미관상 흉하다. 가정에서 애완동물을 사육하는 가구가 400만 세대에 달하고, 해당 동물 수가 500만 마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형 마트에서까지 애완동물을 판매하는 건 적절치 않다. 다양한 동물이 있는데도 직원을 많이 고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청결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동물이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 이런 동물들을 손님들이 쉽게 접촉하는 것은 공중보건상 위험하다. 햄스터나 토끼 등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는데도 정확한 사육정보는 주지 않는 채 쉽게 기를 수 있다는 식으로 판매해선 곤란하다. 마트 직원은 동물에게 어떤 주사를 맞혀야 하는 지도 잘 모른다. 이렇게 팔린 애완동물은 죽을 위험이 높다. 동물을 일반 상품처럼 쉽게 사고파는 분위기 탓에 생명경시 풍조가 커진다. 마트 안에서의 동물 학대 사례는 많다. 때가 낀 우리 안의 동물들이 축 늘어진 채 기운이 없거나 만지지 마시오라는 경고 문구가 있지만 직원 1명이 넓은 매장을 지켜 접촉을 제지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키우면 되느냐는 질문에 적당히 주사 맞히고 먹이 잘 주면 된다고 답할 뿐이다. 동물 기르는 방법도 모르면서 무조건 팔고 보자는 식이다. 현실이 이러하지만 관련 법규가 없어 당국이 제재하기가 힘들다.동물보호법상 외부에 노출돼서는 안 되고 채광 및 환기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격리실은 전염성 질병이 다른 동물에게 전염되지 아니하도록 설치돼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시행규칙이 있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 유명무실하다. 보통 물리적 폭력을 가할 때만 학대로 보지만 동물의 스트레스 등 정신적 폭력도 학대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애완동물 판매 관리 기준을 강제력이 있는 규정으로 바꿔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노작 홍사용’ 문학관 개관

노작 홍사용(露雀 洪思容1900~1947) 선생은 192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일생을 낭만과 조선혼을 지키며 선비의 지조를 생활화하였다. 1922년 창간된 순문학 동인지 白潮의 동인으로 이상화박영희박종화나도향현진건 등과 활동한 노작은 소설, 희곡, 평론도 썼다. 개벽 동인으로도 참여했는데 백조 폐간을 전후하여 극단 토월회, 산유화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40세를 전후해 출가하여 전국 사찰들을 순례하며 방랑생활을 했으나 다시 돌아와 서울 자하문 밖에서 한약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815 광복을 맞아 권국(權國)청년단 운동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7년 폐질환으로 47세의 생애를 마쳤다.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 봄은 가더이다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더욱 관심을 끄는 일은 수원시화성시용인시가 서로 노작을 자기 고장 출신이라고 자랑하는 점이다. 용인군지(1990년)는 홍사용은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에서 천석군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호는 노작으로 시인이라고 적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용인 출생으로 아버지는 대한제국 통정대부 육군헌병부위를 지낸 홍철유이며 생후 100일만에 서울 재동으로 옮겨 자랐으나, 아버지의 사망으로 화성으로 이사하여 1916년 휘문의숙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곳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고 게재됐다. 노작은 8세 때 백부의 호적에 입적됐다. 화성군사(1990년)에도 노작이 나온다. 1907년 서울에서 가족들과 함께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 먹실(불당골)로 이사를 와 살았기 때문이다. 1986년 편찬된 수원시사에도 노작이 등장한다. 노작이 유년기를 살던 동탄면 석우리가 당시엔 수원군이었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이 한 뿌리라는 얘기다. 수원시가 노작은 수원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연유다. 1984년 5월26일엔 수원지방 문인들이 석우리의 노작 묘소 앞에 시비도 세웠다.그런데 화성시가 동탄신도시 노작근린공원 경내에 건립한 노작 홍사용 문학관을 18일 개관한다. 27억원을 들인 지상 2층 규모다. 운영 계획도 다채롭다. 연고만 주장하던 수원시가 선수를 놓친 셈이지만 기대가 크다. / 임병호 논설위원

박춘석씨

이미자패티김하춘화나훈아남진 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들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많아도, 이들 대중가수의 이름은 다 아는 것이 사회정서다. 국회의원 뿐인가, 현직 장관 이름도 모르는 국민이 태반이다.섬마을 선생님 비내리는 호남선 초우 물레방아 도는데 하동포구 아가씨 기러기 아빠 흑산도 아가씨 등 가요를 모르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가사를 외진 못해도 누가 노랠 부르면 따라서 흥얼거릴 수 있는 것이다.많은 가수를 스타덤에 올리고 많은 가요를 국민사회에 파급시킨 작곡가 박춘석씨가 80세를 일기로 지난 14일 타계한 것은 이미 다 아는 비보다. 안타까운 것은 마지막 가는 길이 생전의 노고에 상응하지 못한 점이다. 서울아산병원 빈소에는 가요계 사람들만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을 뿐이다.이도 대중문화 홀대인가 싶어 씁쓰레 하다. 대중예술이 없으면 순수예술도 있을 수 없다.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차이는 크게 보아 장르의 구분이지, 우열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KBS 열린음악회에서 어느 성악가가 가수와 함께 출연할 수 없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지극히 용렬한 생각이다.고인은 무려 2천700여곡을 작곡, 서민의 애환을 달랬다. 가히 20세기 후반기의 한국 대중가요를 주도했고 그 영향력은 아직도 막강하다. 그 어느 순수예술인도 따를 수 없는 한국사회의 대중적 정서를 남겼다. 그는 갔어도 그의 노래는 앞으로도 몇십년간 불리울 것이다. 작곡가 박춘석씨는 불세출의 한국 가요계 거인이다. 이만한 작곡가가 또 언제 나올 것인지 알 수 없다.다 같은 대중예술인데도 미국의 마이클 잭슨이라면 사족을 못쓰면서 국내 대중예술인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이도 사대주의다. 우리에게 고인은 마이클 잭슨보다 더 소중하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박춘석 추모특집을 내보낼만 하다. 아니, 내보내야 한다.18일 오전 8시 한국가요작가협회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함께 주관하는 영결식에 이어 성남 모란공원 묘원에 안장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임양은 본사주필

시간강사

A씨는 정치학 박사다. 대학 시간강사다. 충남지역 대학까지 두 곳에서 강의를 한다. 강사료라야 한 대학에서 월 50만원 정도다. 승용차 휘발유 값이라는 건 본인의 말이다. 방학기간엔 이나마도 없다.그래도 전임강사라도 딸까 해서 벌써 수년째 열심히 나간다. 시간강사로는 생활이 안 되니까 생업은 따로 있다. 하지만 명함에 내건 직함은 대학 강사다. 어떨 땐 시간강사는 보따리 장사꾼이라고 자조적인 농담을 하지만 실력은 있다. 국내외 서적이나 국내 실물정치를 통한 연구활동이 꾸준하다. 자신의 학문이 죽은 학문이 안 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대학들은 시간강사를 정식 채용하길 꺼린다. 실력은 인정하면서도 시간강사로만 써먹는다. 교수 한 사람 월급으로 수많은 시간강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마다 강의를 시간강사로 많이 채우는 연유가 이에 있다. 연구활동을 게을리 하는 실력 없는 교수들은 그대로 두면서, 연구활동이 꾸준한 실력 있는 시간강사들의 처우는 제대로 않는다. 대학도 이래서 기득권 타파의 개혁이 필요하다. 국내 대학 시간강사가 무려 7만5천여명이다. 물론 이들이 다 실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시간강사로 그치기엔 아까운 사람들이 적잖다.시간강사도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이 같은 내용의 국민연금법시행령 개정안을 15일부터 4월5일까지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월 100만원을 버는 30대 강사가 30년간 꾸준히 보험금을 내면 60세부터 월 35만원의 국민연금을 탈 수 있다는 것이다.정부가 대학 시간강사를 직장인으로 봐주는 것은 좋지만, 정작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앞서 예를 든 경우, 30년을 시간강사로만 가정한 것은 시간강사들에겐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이다. 월 100만원을 버는 것도 대학 한 군데만 나가서는 어려운 일이다.시간강사 또한 고급 두뇌다. 이러한 인력을 쓰면서 상응한 대우를 외면하고 있는 곳이 대학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시간강사의 정식채용 전환이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지금은 지식산업시대다. /임양은 본사주필

법정 스님

내 것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기 어려운 속세에서 무소유의 개념이 얼마나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러면서도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머리가 숙여지는 것은 그 분 자신이 그렇게 행한 달관된 삶 때문이다. 속가를 떠난 수행의 몸이긴 하지만, 무소유의 행함이 쉬운 것은 아니다.약 1년 전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더니, 며칠 전엔 법정 스님이 열반했다. 이 분들의 말이 우리들 가슴에 와닿는 것은 언행이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사랑하세요 용서하세요는 우리가 늘 하는 소리지만, 사람들 심경을 울리지 못하는 것은 행함이 일치하지 않아서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의 말은 몸소 그렇게 산 분의 말이어서 새삼 의미있게 들리는 것이다.지난 13일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다비식이 봉행된 법정 스님은 그의 유언대로 검소하게 갔다. 영결식의 소유도 마다한 채 평소 입었던 가사만 입고 훌훌 떠났다. 중생에 남긴 무소유의 일깨움만이 그 분의 것이랄까, 관도 마다고 했다. 고승의 달관을 어찌 속인이 흉내낼 수 있을까만은 욕심이 화를 불러 행복을 해치는 것이 중생이다. 분별을 가릴 줄 아는 혜안이 무소유의 경지일 것이다.길상사는 서울 성북동 삼각산 자락에 있는 절이다. 전엔 대원각이라는 고급요정 집이었다. 요정정치가 한창이던 시절 밤의 정치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대원각 주인이 송광사에 시주하여 1995년 6월13일 길상사로 거듭났다. 장애인결식아동해외어린이탈북자 돕기 등을 연례행사로 하고 있다. 법정 스님이 이 곳 길상사 회주로 1997년 12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머물렀다. 오는 21일 법정 스님 추모법회가 길상사에서 열린다.청담 스님이 가고, 성철 스님이 가고, 이젠 법정 스님마저 갔다. 큰 스님들의 입적이 허전한 것은 이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떠나는 길이긴 하나, 아쉬움이 너무 크다.이승을 떠나는 길이 화려한 수의에 값비싼 관속에서 가는 것이나, 입은채 그대로 가는 것이나, 구별이 부질없는 허욕임을 그 분은 보여줬다. 역시 중생에 대한 무소유의 계시였을 것이다. / 임양은 본사주필

‘베스트셀러’

베스트셀러(best seller)의 원래 뜻은 가장 잘 파는 사람이었는데 잘 팔리는 책으로 진화된 미국 영어다. 1897년 미국의 월간 문예지 북맨(bookman)이 전국적으로 잘 팔리는 서적을 조사발표했다. 당시엔 베스트 셀링 북스(best seling books)라고 했던 것이 베스트 셀러로 불리고 점차적으로 전세계에 보급돼 1920년대에는 국제어로 정착되었다. 처음엔 서적에 국한된 말이었으나 다른 상품에까지 사용하게 됐는데, 우리나라는 815 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유사이래의 베스트셀러는 성서(聖書)라고 하지만 통계는 없고, 미국에선 스포크 박사의 육아기가 1946년 1천900만 부가 팔렸다. 종래엔 독자의 자연스러운 선택이 베스트셀러를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근래에는 독자의 경향과 시장조사, 대규모적인 광고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다. 예전엔 교사나 부모의 추천권유로 책을 구해서 읽었다. 지금은 대개 서점이나 언론에서 제공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고 책을 선택한다. 그런데 최근 베스트셀러가 사재기로 조작된 정황이 드러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인터넷 시대답게 온라인 판매망을 이용했다. 같은 주소지에서 다른 주문자가 동시에 주문을 하거나 동일 구매자가 꾸준히 반복적 구매를 하는 방법이다. 사재기를 통해 판매부수가 올라가면 대형서점에 의해 베스트셀러로 지정된다. 베스트셀러에 한번 오르면 대체로 잘 내려가지 않고 판매량이 꾸준히 지속된다. 독자들이 책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사항은 작가나 책에 쏟아진 저명인사들의 평가 등 여러가지다. 광고도 큰몫을 한다. 그 중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게 베스트셀러 목록이다. 사재기 효과를 보려면 1만권 이상을 해야 되는데 지출은 크지만 일단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 수입면에서 재미를 본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선정 무렵이면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문인들의 작품집이 노르웨이, 스웨덴 서점에서 다량으로 팔린다. 혹 사재기가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사재기 의혹을 받는 출판사가 부인하며 법정대응에 나서겠다니 진상이 궁금해진다. 그 베스트셀러들을 읽은 독자들의 평가가 필요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봄나물

한의학에선 겨울철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봄나물에 묵은 것을 떨치고 솟아나는 발진(發陳)의 기운이 충만해 사람의 체내 기운을 증진시키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한다고 본다. 봄나물은 칼로리가 낮고 섬유질이 풍부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받는다. 봄나물은 여섯번째 영양소라 불리는 섬유질 함량이 높다. 섬유질은 변비를 예방하며 콜레스톨의 체내 흡수를 막아 성인병을 예방한다. 포만감을 쉽게 느끼도록 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쑥은 100g당 섬유질 4.7g을 함유해 딸기 같은 과일보다 섬유질 함유량이 2~3배 많다. 쑥 나물 1접시(50g)에는 성인 1일 권장 섭취량보다 2배쯤 많은 비타민 A가 들어 있다. 냉이와 미나리 1접시에도 1일 권장 섭취량 절반 수준의 비타민 A가 들어 있다. 냉이, 부추, 쑥, 미나리, 곰취 등에는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을 도와 신체 활력을 증진시키는 비타민 B1이 많다. 체내 독소를 제거하고 지방이나 당분을 연소하는 데 필요한 비타민 B2는 두릅, 고비, 도라지, 부추 등에 많다. 노화를 방지하고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C는 달래, 냉이에 풍부하다. 봄나물엔 우유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칼슘도 들어 있다.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속담처럼 상당수의 봄나물이 쌉쌀한 맛을 낸다. 사포닌 성분 때문이다. 사포닌이 많이 든 인삼 맛이 쓴 것과 마찬가지다. 사포닌은 혈소판의 응집을 억제해 혈액 흐름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쓴맛을 한의학에선 고미(苦味)라고 부른다. 쓴맛은 식욕을 불러일으키고 신장 등 몸의 장기를 건강하게 하며 기운을 맑게 하는 작용을 한다. 또 늘어져있는 위장 기운에 활력을 주고, 위장의 습기와 열기를 가라앉혀 음식의 소화를 돕는다. 봄나물을 웰빙식품으로 꼽는 다른 이유는 대표적인 항산화 물질로 꼽히는 비타민 ACE를 다량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산화 물질은 우리 몸의 세포를 늙게 만들어 암이나 각종 퇴행성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인 활성산소의 생성을 억제한다. 한의학, 식품영양학 등이 증명하는 봄나물의 특장은 상당히 많다. 요즘 들녘에서 봄나물을 캐는 여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봄나물로 가족의 식탁을 차리는 손맛이 향기롭다. /임병호 논설위원

1천억짜리 수표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서울 H봉사단체에 배달된 1천억원짜리 자기앞수표 이야기다. 1천억원이면 0이 자그마치 11개나 붙는다. 이런 수표가 4장이 배달됐으니 도합 4천억원이다.괴물 같은 초대형 수표는 결국 4장 모두 가짜인 것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내부 확인의 첫 단계에서는 모두 진짜로 확인됐던 것 같다. 이것이 그 중 1장만 가짜로 밝혀졌다가 결국 모두 가짜로 판명됐다는 것이 그간의 경위다.수표는 2003년 2월24일 농협중앙회 서울 명일동지점 발행으로 돼 있다. 그러나 1천억원 수표는 통상적 거래에서는 통용이 불가능하다. 통용은 고사하고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이런 천문학적 수치의 초고액 수표가 진짜일 것 같으면 봉사단체에 익명으로 배달될 리가 없다고 보는 점에서는 가짜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지난 1월15일 낮에 사무실 문틈으로 들이민 대형봉투 속에서 이 수표를 발견한 봉사단체 관계자들도 처음에는 누군지 모를 장난질로 알았다는 것이다. 대형봉투엔 본 수표를 기증함에 있어 어떠한 조건도 없다라는 육필 서신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짜로 발표된 경위가 석연찮은 점이 없지 않다. 가짜 수표 확인이 어려운 건 아니다. 조회하면 당장 드러난다. 그런데 시일도 오래 걸렸을 뿐 아니라, 처음엔 모두 진짜로 알려졌다가 1장이 가짜란 데 이어 4장 모두가 가짜라는 것이다.위조수표 전문조직이 1천억원짜리 수표를 위조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당국의 관측이다. 이 위조단의 하부조직은 검거됐으나 상부조직은 아직 검거치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은 있다. 수표 위조범이 하필이면 통용이 어려운 1천억원짜리 수표를 왜 위조했겠느냐는 것이다. 이래서 나오는 일부의 추측이 세탁되지 못한 정치자금이 아니냐는 것이다. 위조수표라는 발표도 이의 파장을 고려해서 나온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아무튼 1천억원짜리 수표 배달은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행여라도 진짜일 것 같으면 발행 경위가 궁금하고, 알려진 대로 가짜라면 위조 및 유포 경위가 문제다. 이의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당국의 책임 있는 공식 발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임양은 본사주필

한비자의 인간관

한비자(韓非子) 비내편(備內篇)을 인용한다. 임금으로 되어 아들7을 너무 신임하게 되면 간신들은 그 아들을 업고서 사사로운 욕망을 이루려 한다. 그러므로 이태(李兌)가 조(趙)나라 왕에게 붙어서 임금의 아버지 주보를 굶어죽게 하였던 것이다. 임금으로 되어 그 처를 너무 신임하게 되면 간신들은 그 처를 업고서 사사로운 야망을 이루려 한다. 그러므로 광대이던 시(施)가 여희(麗姬)에 붙어서 신생(申生)을 죽이고 해제를 임금으로 세웠던 것이다.대저 처처럼 가깝고 아들처럼 친밀한 사이도 오히려 믿을 수 없거늘 그 나머지야 어찌 온전히 믿을 수 있으랴, (중략) 대저 처란 골육의 인정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랑하면 친근해지고 사랑하지 않으면 소원해진다. 세간의 말에 이르기를 그 어미가 좋으면 그 자식도 좋아 안겨진다고 한다. 그러니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그 어미가 싫으면 그 자식도 싫어 버려진다는 것이 된다. (중략)그러므로 도좌춘추(桃左春秋)에서 말하기를 임금이 질병으로 죽는 것은 절반도 못 된다고 하였으니, 임금으로서 이것을 알지 못하면 우환의 염려가 많아진다. 그러므로 또 말하기를 임금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으면 그 임금은 위태하다 할 것이다위의 비내편 뜻을 요약하면 이렇다. 사자 같은 맹수도 자기 몸에서 생기는 해충 때문에 죽고, 절대권을 가진 임금도 안에서 해치는 자들에 의해 붕괴되므로 안에서 일어나는 침해에 대비하라는 경구인 것이다.신하들은 물론이고 처자까지도 믿을 수 없다고 본 한비자의 인간관은 편협성이 좀 심하긴 하나, 임금자릴 두고 부자의 골육상쟁이 없지 않았던 동서의 고사를 상고하면 나눠 가질 수 없는 권력 앞엔 비정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권력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어 정권이나 집권당 역시 내부에 의해서 쇠퇴하거나 와해될 수 있는 것은 고금의 진리다. 어찌 정권이나 집권당뿐이겠는가, 야당도 마찬가지고 지역사회 지도층의 리더십 쟁탈전 또한 다름이 없다. 지방선거 공천을 앞둔 여야의 잡음이 무성하고 후보군의 이합집산이 무상하다. 지방선거가 변절과 배신의 계절인 것을 보면,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설파한 한비자의 인간관이 떠오른다. /임양은 본사주필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

예부터 우리나라는 가족 건강과 마을의 평안, 풍년을 위해 정월대보름날 달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액운을 막기 위해 부럼을 깨고 잡귀를 물리치기 위한 주술적인 놀이인 쥐불놀이 등을 통해 일체감을 조성해 왔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미풍양속이 아련한 추억과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전국의 취학 전 영유아 및 학생들의 입학과 함께 사회 초년생들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것을 보면서 진정한 한 해를 시작하는 달은 3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때 최근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취학 전 유치원, 초등학생의 안전사고 중 교통사고 사망이 70%를 넘고 있으며 학교 앞, 주택가, 아파트 단지 등에서 보행 중 숨진 사고가 90%을 넘고 있다고 한다. 한해 중 가장 많은 안전사고가 3, 4월달에 집중된다는 보고서를 보면서 안전운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다.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스웨덴 2.5명, 영국 2.7명, 미국 5.8명, 한국 12.6명으로 선진국의 2~5배에 이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1가족 1자녀의 저출산 국가로 국가의 미래인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의 잘못된 운전 습관으로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내 가족, 내 자녀라는 생각을 가지고 안전사고 예방과 올바른 운전 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교통사고로부터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린이집, 학교 앞에 어린이 안전구역으로 설치한 스쿨존도 안전하지 않다는 실태조사가 보고된 바 있으며, 초등학교 이하 보행어린이가 가장 심각한 사고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이에 대한 교통안전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 중 가장 높은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률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따라서 우리나라 모든 운전자는 사고 예방을 위해 소홀하기 쉬운 학교 앞, 주택가, 아파트 내에서는 특히 아이들은 움직이는 빨간 신호등이라는 생각을 갖고 안전운전과 모든 아이들이 내 자식이라는 인식 하에 교통사고 없는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최창한 한국아동미래연구소장

출판기념회와 대필

고인이 된 모 재벌 총수의 전기를 대필한 것은 유명 방송작가 K씨다. 대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있다. 집필에 필력도 문제지만, 본인이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대필엔 내용의 정확한 확인이 부단히 거듭된 끝에 원고가 탈고된다.출판기념회가 사태났다. 62지방선거는 마치 출판기념회 홍수로 시작된듯 하다. 너도 나도 출판기념회를 갖느라고 야단법석이다. 남이 장에 가니까, 덩달아 장에 간다는 식이다. 그 중에는 책을 낼만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태반이다. 내용도 조악한 것이 대부분이다. 책같지 않은 책을 두고 출판기념회를 갖는 강심장이 정말 대단하다. 또 책같지 않은 책 출판기념회에 중앙 정치인들이 대거 내빈으로 참석하는 패거리 작당을 보면 코미디 같기도 하다.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런 출판기념회 책들이 대필이라는 사실이다. 하긴, 박사 학위논문도 대필이 있다. 네티즌들에 의하면 논문 한 편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일금 300만원에 거래되는 대필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학위 논문도 대필이 있는터에 있을 수 있는 자전적 책의 대필이 흉잡힐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내용이다.수원시 부근의 자치단체장 입후보에 뜻을 둔 어느 사람의 말에서 대필의 야바위 실태가 묻어난다. 누가 3천만원만 주면 책을 써주겠다고 해서 갑자기 책을 어떻게 써내느냐고 하니까, 몇 마디 말만 들려주면 다 책을 만드는 수가 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 입후보 예정자는 하도 말 같지 않은 소리라 거절했지만, 자꾸 권하는 것을 뿌리치느라고 혼났다면서 쓴 입맛을 다셨다.추측컨대 3천만원의 비용은 이렇다. 250쪽에서 300쪽의 책을 2천~3천권 출판하려면 1천500만원이면 가능하다. 나머지 1천500만원은 거의 대필료로 챙길 수 있다. 보통 200자 원고지로 1천200장에서 1천300장에 사진을 곁들이면 그만한 책을 만든다. 그러니까 200자 원고지 한장에 1만1천500원꼴 치이는 데 꽤 괜찮은 수입인 것이다. 속성으로 책을 뚝딱 만드는 대필 기술자들이 대단하다. 출판기념회 붐은 대필 기술자들의 계절인 것 같다. /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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