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오류

한비자(韓非子) 좌하편에 나오는 고사다. 그대로 옮긴다. 공자가 위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그 제자 자고가 옥리로 있으면서 어느 죄인의 발을 자르고 그 사람을 문지기로 삼았다. 이즈음 공자를 위나라 임금에게 참소하는 사람이 있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중니(仲尼공자의 자)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위나라 임금이 이 말을 듣고 공자를 잡으려 하였다. 이 때 자고가 공자를 따라 문을 나가려 하자, 발 잘린 문지기가 자고를 인도하여 문 밑에 있는 방 안으로 피하게 하였으므로 관헌이 추적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한밤이 되자 자고가 물어보았다. 나는 임금의 법령을 어기지 못하여 그대의 발을 친히 잘랐으니 이 때야말로 그대가 원수를 갚을 기회인데 무슨 연고로 나를 피하게 했는지, 어찌하여 이 대접을 그대에 받는가? 발 잘린 사람이 말하였다. 내가 당한 벌은 진실로 내 죄에 해당하거늘 어찌할 수 없는 것 아니겠소. 그러나 귀공께서 저의 죄를 다스려야 할 때, 귀공은 저를 도와 면죄를 심히 바랐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판결이 끝나 죄의 언도가 정하여지자 귀공께서 슬피 생각하였음이 안색에 드러났던 것을 저는 보고 또 알았습니다. 이를 어찌 귀공의 은덕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공자 일행은 그 문지기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할 수가 있었다.한비자는 엄격한 형벌로 치세를 주장한 형명(刑名)사상의 법술가였다. 위의 고사는 죄가 있어 처벌을 받으면 윗사람을 원망하지 아니한다고 한 예증(例證)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틀렸다. 현세는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고도 깨끗하다고 우긴다. 나라에서 으뜸가는 자리에 앉아 260억원을 해먹은 비리 추궁을 너무 심했다는 사람들이 있었다.온갖 몹쓸 짓을 일삼으면서도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모함을 서슴지 않는 세태다. 은혜를 원수로 갚고, 의리를 배반하기가 일쑤다. 눈앞의 이해관계에 부딪치면 배신을 밥먹 듯이 해댄다. 한비자가 현세에 있으면 뭐라고 말할 것인지 궁금하다. /임양은 주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

장 칼뱅은 일생 동안 경건한 삶, 즉 성화(聖化)를 이루어가는 표본을 보여줬다. 일반 성도들은 평생 건강한 삶, 영성(靈性)을 추구하지만 완전한 경건에 이르기는 무척 어렵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획득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칼뱅에게 회심은 즉각적인 완성이 아니라 참 경전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다. 청교도 신학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존 오웬은 하느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 것은 성령의 역사 외에 다른 길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론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거룩은 철저하게 성령의 몫으로 거룩의 능력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나온다고는 주장한다.균형 잡힌 영성의 사람 조너선 에드워즈는 뜨거운 가슴으로 복음을 가르쳤다. 탁월한 설교자요, 타오르는 열정으로 말씀을 선포한 목회자였다. 하지만 에드워즈의 설교를 설교 되게 한 것은 영성의 기둥에 새겨진 설교였다. 뜨거운 감동이 있었다. 영성이 없는 설교는 냉랭하다. 기독교 대각성운동의 최고 공로자 조지 휘드필드는 목회자로서 자신의 소명을 확인할 때까지 수 천번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았다. 피땀 흘린 수천번의 기도, 아마도 그것이 없었다면 휘드필드는 글로스터 주변의 한 교구 목사는 됐을지 몰라도 한 시대를 움직일만한 위대한 설교자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설교의 왕자 찰스 스필전은 청지기 영성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목회자들의 양심에 호소한다. 하느님의 가족을 섬기는 청지기 직분을 제대로 감당했는지, 얼마나 무관심하게 살았는지 날카로운 화살을 날린다.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자이자 탁월한 복음주의 지도자 마틴 로이드 존스는 성경과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자신은 하느님과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대 기독교 복음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 존 스토트는 총체적 영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뛰어난 지성을 소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도가 빈약하면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도 없다고 하였다. 불꽃처럼 살다간 믿음의 거장들의 흔적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하게 후세 영혼에 각인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소망교도소

소망교도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교도소다. 2010년 6월 완공을 목표로 지금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외룡리에서 한창 공사 중이다. 지난해 10월 기공감사예배 이후 1년 만에 공정률이 42%를 넘었다. 수용동, 교육센터, 공장동, 청사동 등 주요 시설들이 제 모습을 나타냈다. 독거실, 3인실, 5인실 등을 갖춘 수용동은 각 방마다 창(窓)틀이 널찍하다. 넓은 창부터 기존 국가 교도소와 다르다. 내년 10월 소망교도소가 문을 열면 재범 이하 잔여 형기 1년 이상의 성인 남성 300명이 이곳에 수용될 예정이다.소망교도소 건립은 재단법인 아가페 이사장인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가 주축이 돼 1995년부터 한국교회와 정부, 지자체가 힘을 모아 추진해 왔다. 소망교도소 교정(矯正) 프로그램은 정직, 책임, 수용, 공동체, 회복 등을 매일 주제로 정해 성경공부 등 신앙훈련과 내적치유 등 회복훈련 및 상담 등 공동체 훈련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수용자들의 재범 방지 효과가 실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아가페가 2005년부터 10월까지 여주교도소 수용자 중 일부를 선발해 매년 6개월씩 시범운영을 실시한 결과 프로그램 이수자 120명 중 83명이 출소했으며 이들 가운데 재범자는 5명(6%)뿐이었다. 기존 교도소 출소자 재범률(50%)은 물론 아가페가 모델로 삼은 미국 IFI 기독교교정프로그램의 평균 재범률(8%)보다 낮았다.핵심 기능 시설이 한 블록에 모여 있는 것도 특징이다. 소망교도소는 시설별로 수용자 이동 경로를 하나로 통합해 적은 인원으로도 관리가 가능하다. 수용자 이동에 따른 시간 효율성도 극대화한다. 기존 교도소는 수용자 식사가 수용동 내 사방에서 이뤄지지만 소망교도소는 모두 식당을 이용하게 된다.소망교도소 설립비는 총 300억원이 드는데 현재 교계 관계자들이 약정한 금액은 160억원 정도다. 부족한 비용을 채우기 위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가 올해 성탄절 헌금을 전액 소망교도소를 위해 전달할 것을 최근 제94회 총회에서 의결했다. 여주군도 소망교도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편의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제2영동고속도로 동여주(주암) IC 유치를 추진 중이다. 기독교가 관리하는 소망교도소의 개설이 기다려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국회 ‘소묘’

때 : 2일 오전 10시18분~ 10시25분곳 : 국회의사당 본회의장특별출연 : 자유선진당 의원 17명민주노동당 의원 5명상황 :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대통령 시정연설을 대독하려는 정운찬 국무총리를 제지키 위해 연단을 에워싸 한동안 승강이가 벌어짐. 정 총리는 옥신각신 끝에 오른쪽 팔을 붙잡힌 상대의 손을 뿌리치고 연설을 시작했음. 자유선진당 의원 전원 퇴장.(정 총리 연설 도중 민주노동당 의석에서 용산 참사와 관련, 총리는 약속을 지켜라는 플래카드를 펼쳐듦. 총리, 여기 좀 보고 하세요 용산사태 빨리 해결하시오 등 고함 소리가 나옴. 자유선진당은 의사진행을 방해하고, 민주노동당은 의사일정에 없는 일로 소란을 피운 것은 국회의 후진성을 드러낸 부끄러운 행태다. 이날 국회 방청석엔 키르기스스탄(옛 소련의 자치공화국) 국회의원 8명이 방청하고 있었다.주목된 것은 민주당 의석이 조용했다는 사실이다. 자유선진당 의원들의 물리력 행사를 막으려고, 한나라당의 몇몇 의원들이 나갔을 적에 전 같으면 민주당 의원들도 덩달아 쫓아 나갔을 법한데 그냥 자리만 지킨 것이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변화론 이후 처음 보는 달라진 모습이다. 앞으로는 국회에서 몸싸움도 않고, 국민의 실익을 위한 것이라면 이념을 초월한다는 것이 정 대표의 변화론이다. 미디어법과 관련해 의원총회에서 결의했던 의원직 총사퇴도 철회했다. 의회정치의 존중을 의미하는 그 같은 변화가 얼마나 갈 것인진 두고 봐야겠지만 아무튼 다행스런 현상이다. 민주당으로서는 고무적인 1028 재보선 승리가 변화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눈여겨 보아지는 것은 지난 1028 재보선에서 몰락한 군소정당이 국회에서 이번에 소란을 피웠다는 점이다. 자유선진당이나 민주노동당은 단 1석도 못 얻었을 뿐만이 아니라, 득표율 또한 민주노동당은 7.2%, 자유선진당은 3.3~4.4%에 그쳤다.국민은 국회 파행에 넌더리가 나있다. 민생국회가 돼야 한다. 깡패 같은 짓을 일삼는 정당은 이제 미래가 없음을 명심해야 된다. /임양은 주필

가사노동

가정에서 부부의 역할은 뭘까, 흔히 남편은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한다고 여기는 것은 낡은 생각이다. 사회적 통념은 시대따라 바뀐다. 지금은 아내도 밖에 나가 돈을 벌거나 사회활동을 하는 주부들이 많다.설령, 집에서 살림만 산다고 해도 주부의 역할은 막중하다. 돈 번다고 아내에게 큰소리 치는 남편은 뭘 모르는 구닥다리다. 전업주부도 이렇거니와 겸업주부는 더 말 할 것이 없다.주부의 가사노동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주방노동청소노동육아노동지원노등 등으로 나뉜다. 주방노동은 가족들 먹을거리 준비부터 시작해 식탁을 차리고 설거지 물에 손을 담가야 끝난다. 청소노동은 방거실가구 등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화장실 변기 청소까지 포함된다. 육아노동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로 가정해 본다. 지원노동은 가족들 뒷바라지로, 예컨대 옷가지를 세탁하고 입도록 챙겨주는 것을 비롯해 이외에도 많다. 모든 주부들은 이 같은 가사노동을 하루에 몇 시간씩 날마다 되풀이 한다.자신은 텔레비전 보면서 설거지하는 아내더러 마실 물 한 컵 떠오라고 하는 것은 빵점짜리 남편이다. 가사노동이 가족을 위하는 것이라면 여성만의 일이 아니다. 특히 육아는 부부 공동의 책임이다. 육아를 졸업한 부부일지라도, 아내를 거드는 가사노동 분담은 현대 가정의 필수다. 남편도 집안일을 해봐야 가사노동의 어려움을 안다. 난 집안일 따윈 모른다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없는 시대다.남편이 아내에게 군림하려드는 가정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 요즘 세상에 또 군림만 당할 아내도 있지 않다. 서로가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 남으로 생긴 것이 부부같이 중(重)할런가 / 사람의 백복(百福)이 부부에 갖췄으니 / 이리 중한 사이에 아니 화(和)코 어찌하리 박인로(朴仁老1561~1642)의 고시조다.김장 등 월동채비도 해야하고 주부의 가사노동량이 더 많아지는 겨울철이 다가온다. 겨울살림은 생활비도 더 든다. 아내의 집안일을 돕는 남편은 행복이 더 할 것이다. 영국의 작가, R 버튼(1821~1890)은 훌륭한 남편은 훌륭한 아내를 만든다고 했다. /임양은 주필

낙엽의 계절

낙엽은 고등식물의 잎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고등식물이란 뿌리잎줄기 등 세 부분을 다 갖춘 몸체가 발달된 식물을 일컫는다. 낙엽이 질 무렵이면 잎 속의 영양분이 줄기 등으로 옮겨져 엽록소가 소실된다. 이렇게 되면 이파리가 붙은 부분의 이층이 약해져 떨어지게 된다.낙엽은 낙엽수에서 많이 생기지만 상록수도 낙엽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명암의 영향을 받는다. 즉 해가 길면 덜 떨어지고, 해가 짧으면 더 많이 떨어진다 요즘처럼 해가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진 특히 많이 떨어진다. 빛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가령, 같은 가로수도 밤에 가로등이 비추는 쪽 잎은 그늘진 쪽 잎보다 더 오래 붙어있는 것이다.낙엽의 계절이다. 한 해의 역할을 마치고 나무뿌리의 겨울철 이불이 되고, 이듬해 봄엔 거름이 되기 위해 떨어진다. 식물의 영양기관으로 호흡작용이며 탄소동화작용을 하는 것이 나뭇잎의 여름철 소임인 것이다. 보도 위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나무뿌리의 이불이 되지 못하게 만든 인간들의 손길에 미안한 맘이 든다.하염없이 길바닥에 뒹구는 낙엽이다. 하지만 그 속에 올 한 해의 세월이 담겼다. 낙엽따라 세월도 간다. 쓰레기가 아니다. 자연의 한 부분이다. 어느 고시조에 아이야, 낙화인덜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마찬가지로 낙엽인덜 잎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라고 말할 수 있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돌담거리를 걷고 싶다.낙엽이란 샹송이 있다. 프랑스 영화 밤의 문에서 배우 이브 몽탕이 불렀다. 1950년대에 세계적으로 풍미했다. 프랑스 시인 자크 프케베르 작사에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 조젭 코스마가 작곡했다. 낙엽을 긁어모아도 북풍이 싸늘한 망각의 어둠 속으로 몰아가버리네. 추억의 회한도 저 낙엽과 같은 것은 노랫말의 한 부분이다. 낙엽을 빌어 덧없는 인생과 사랑을 노래했다.그러나 인생과 사랑이 비록 세월 앞에선 덧없어도, 지나온 의미가 공허한 것은 아니다. 행인의 발길에 차이는 것이 낙엽일지라도, 낙엽마다 지닌 의미는 있다. 내년 초여름이면 잎은 또 핀다. 삶은 저 낙엽과 같다. /임양은 주필

공무원

공직은 나라 일을 하는 자리다. 공직자공무원은 나라 일을 하는 사람이다. 임무가 막중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고 직무를 수행한다. 보통 자리, 보통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우리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선언하고,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했다. 국가공무원법은 이를 거듭 강조한다. 이 원칙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적용된다. 공무원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자리매김돼 있다면, 공직을 수행하는 덴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충실히 좇는 행위 규정이 있다. 그 가치는 궁극적으로 국민이 정해 놓은 국가 최고규범인 헌법상의 가치다. 공무원은 바로 이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종사한다. 그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곧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다.국가와 사회를 위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직자는 각별한 윤리적법적 의무를 진다. 공직자윤리법이 그래서 제정됐다. 공무원이 실천해야 할 규범은 과거와 현재, 어제와 오늘이 있을 수 없다.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로 시작되는 공무원윤리헌장과 국가에는 헌신과 충성을, 국민에겐 정직과 봉사를, 직무에는 창의와 책임을, 직장에선 경애와 신의를, 생활에는 청렴과 질서를 다짐한 공무원의 신조는 공무원이 지켜야 할 금과옥조다. 시대와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그러함에도 이따금 공무원이 각종 부정부패에 연루된다. 심지어 애국할 나라가 아니라서 애국가를 부르지 못한다며 국가 정체성을 부인하는 부류도 나타났다. 12월 통합 출범을 앞둔 일부 공무원 노조가 그들이다. 통탄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경기일보사가 제정한 제16회 경기공직대상 시상식이 어제 있었다. 수상자들은 공직에 몸 담은 이래 각 분야에서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주민을 위해 헌신한 진정한 공무원들이다. 주위의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공직자의 본분을 지키며,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하여 일했다. 공직자가 바로 서야 국민이 편안히 살고 나라가 부강해지는 건 진리다. 공직의 길을 의연하게 걸어온 수상자들의 면면이 자랑스럽다. 거듭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임병호 논설위원

표준 없는 사회

표준(標準)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각종 문제를 편리하게 다루기 위한 합리적인 기준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같은 분야에도 기준이 서로 다른 게 많아 불편을 겪는다. 예컨대 의료 서비스의 경우 표준화되지 않은 게 상당수다. 본인이나 가족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을 때 전 병원에서 받은 검사를 중복해 받게 돼 불편이 크다. 의료기관 사이에 진료 자료가 제대로 호환되지 않아 새로 자료를 입력하기 위해 같은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 X선 사진은 의료 기관별로 진료 자료의 저장 방식이 달라 병원을 옮기면 다시 찍을 것을 권하는 사례가 많다. 옷이나 신발을 살 때 크기를 표시하는 기준이 달라 혼란스럽다. 신발의 경우 같은 사이즈로 표시돼 있지만 브랜드별로 길이나 폭이 다르다. 옷을 구입할 때도 같은 크기로 표시돼 있으나 길이나 둘레가 달라 수선을 해야 된다. 기준이 다른 게 되레 표준으로 착각될 지경이다.특히 세계적 수준의 정보기술(IT)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면서도 IT제품 관련 표준화는 요원하다. 휴대용 IT 기기를 새 제품으로 바꾼 뒤 종전에 사용한 충전기, 어댑터를 그냥 보관하고 있는 소비자가 전체의 45%를 넘는다. 새 제품을 사고 난 뒤 기존 충전기 등은 재사용이 안 돼 무용지물이다.휴대용 기기의 충전기 표준화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 이동통신사업자 연합체인 GSM협회는 올해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7개 이동통신사 및 제조업체가 범용 충전기 규격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표준에 맞춰 제품이나 충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선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일부 기업은 의도적으로 표준화를 늦추고 있는 상태다. 휴대전화의 문자 입력 방식도 기계별로 제각각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휴대전화 문자 입력방식의 표준화 논의가 있었지만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특허임을 앞세워 입력 방식 통일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술표준원이 중재를 시도했으나 역부족이다.일치되지 않는 표준은 있으나 마나 한 기준이다. 경제적 손실이 크다. 국가적, 인류적인 자원 낭비다. 의료기관, IT 기업의 표준 사용은 특히 절실하다. 물질문명이 과학화첨단화될수록 필요한 것이 표준화인데 표준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어 답답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장안구

수원시 장안구는 서울에서 오면 수원에 첫발을 딛는 북쪽 관문이다. 경수 1번 국도가 관통한다. 수원은 구시가지, 동수원신시가지, 영통신시가지 등으로 구분된다. 장안구는 구시가지에 든다.광교산이 있고 북문과 성곽을 중심으로 장안공원이 있으며, 유서 깊은 만석호 주변의 호반공원인 만석공원 등이 있다. 서민층의 주거지역, 영세상인의 상업지역이 대부분이다.차분하고 조용했던 장안구가 일약 유명해졌다. 1028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재보궐선거 선거구는 다섯 군데다. 이의 승패 분수령이 장안구 결과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보는데, 승부처인 장안 대회전의 전망이 한 치 앞도 안 보인 혼전 양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같은 관측이 맞은 건지, 틀린 건지는 오늘 투표하는 투표함을 열면 알겠지만 아무튼 대단했다.지난 15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가 바쁘게 여야 거물들이 설치고 다닌 게, 어젯밤 자정 선거운동이 마감되기까지 불을 뿜었다. 아마 장안구가 생기고, 여야 정치인들이 그렇게 많이 집합되기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가히 중앙정치판 무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원종합운동장 네거리는 연일 밤마다 선거유세로 북새통을 이루고, 공원 같은 덴 선거꾼들이 북적댔다.공약도 연수표를 떼다시피 했다. 어느 유권자의 말이다. 그는 물론 지하철 4호선이 장안구까지 연장되면 좋다는 전제 아래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어려운 문젠데 두 후보가 다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누가 당선되든 두고 볼 것이나, 부도가 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서 내건 사탕발림공약 같다는 것이다.어쨌든 약 2주일 동안 좁은 바닥을 휩쓸었던 선거 광풍은 이제 지나갔다. 그동안 길 가는 사람마다 붙들고 굽신대던 그 많은 정치인들도 이젠 와 달라고 해도 안 올 것이다.장안구는 느티나무며 은행나무 가로수가 특히 아름답다. 선거판 바람이 한바탕 지나간 거리에 단풍 들어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쌓인다. 인심은 유상해도 자연은 무상하다. /임양은 주필

무궁화

우리나라 나라꽃인 무궁화는 아욱과에 속하는 활엽관목이다. 개화기가 길고 추위에 강하다. 나무 줄기를 꺾어 땅에 꽂아도 살아나 번식한다. 꽃은 화려하진 않으나 은은한 품위를 풍긴다. 꽃이 지면서 또 피고, 어떤 악조건도 이겨내는 강한 생명력이 우리의 국민성을 닮은 꽃이다.일제 식민지시대에 일제는 초등학생들에게 무궁화꽃을 외면하도록 이간질 했다. 무궁화꽃을 바라보면 눈병이 든다고 학교에서 가르쳤다. 일제 식민지교육의 한 단면이다. 겨레의 혼을 말살키 위해 나라꽃을 눈병꽃으로 왜곡했던 것이다.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애국가 가사의 한 대목이다. 삼천리 근역이란 말도 있다. 근역의 槿域에서 槿자는 무궁화근 자다. 한반도는 이처럼 무궁화로 상징돼 왔다.북녘의 국화는 목란꽃이다. 목련꽃을 말한다. 1964년 김일성 주석이 나무에 피는 난이라 하여 목란꽃으로 이름을 바꿨다는데, 결국 이것이 그들의 국화가 됐다. 저들의 조선말대사전은 수령님께서 몸소 지어주신 꽃 이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데도 이상한 것은 헌법에 국장국기국가수도 등은 명시해 놓고 있으면서, 국화는 명문화가 안 된 점이다. 아무튼 북쪽에서는 무궁화가 나라꽃이 아니다.무궁화는 우리의 나라꽃이면서 또한 겨레꽃이다. 우리나라 최고훈장은 무궁화대훈장이다. 국가 원수 내외나 외국의 국가 원수에게만 수여된다. 정부의 배지에도 무궁화가 들어있다.그런데 정부 배지의 무궁화를 빼고 다른 도안으로 검토한다고 한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공연한 짓이다. 전통을 존중할 줄 모르는 좁쌀스런 발상이다. 무궁화 도안이 어때서 바꾸겠다는 것인지, 생각한다는 게 영 방정맞다. 그럼, 무궁화대훈장도 바꾸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수원 영복여고에서는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학생들이 돌아다니며 무궁화 달아주기 운동을 벌인다. 카네이션꽃 대신에 우리의 나라꽃, 겨레꽃을 어버이 가슴에 달아 드리자는 것이다. 정부에서 생각하는 게 여학생들 생각보다도 못하다./임양은 주필

김훈동 시인의 ‘보물’ 기증

김훈동 수원예총 회장(시인)이 잡지라는 잡지마다 창간호를 수집해 온 것은 이미 알려진 일, 그런데 1967년부터 이토록 모아온 한국잡지사(史)의 희귀 자료 9천700여종을 수원시에 흔쾌히 기증해 오늘 수원시박물관사업소로 옮겨진다. 책 목록만 작성하는 데도 한달반이 걸린 물량이다. 창간호엔 잡지마다 각별한 의미가 담겼다는 것이 수집한 이유다. 대중잡지, 전문잡지, 기관잡지, 학교잡지 등 잡지라는 잡지의 창간호일 것 같으면 불가사리처럼 모았다. 팔도강산 구석구석 안 간데가 없다. 무슨, 한 권의 창간호 잡지가 있다는 소식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날아가기도 했다.어느 금융기관 단체가 미쳐 확보해두지 못한 창간호 잡지의 자료를 구하지 못해 안달인 끝에 수소문해 도움을 요청해온 적도 있다. 현대문학은 현대 문단의 원로며 중진들이 등단한 말 그대로 현대문학의 산실이다. 1955년 1월 문학평론가 조연현이 주간을 맡아 펴낸 창간호는 횡서가 아닌 종서다. 54년의 연륜으로 잡지는 종이가 빛바랬지만 천금의 가치가 담겼다. 이외에도 산더미처럼 수집된 각종, 각계의 창간호 잡지를 보면 한국 잡지사의 흐름과 명멸을 읽을 수가 있다.그의 집 2층 서고(書庫)는 온통 종이 냄새다. 방안 벽을 돌아가며 천정에 닿도록 세워진 서가(書架)를 책으로 가득히 메우고도, 방 복판에 책이 꽉찬 서가가 또 서 있다. 책이 만권쯤 돼 보이는 가운데 창간호 잡지가 빠져나가고 나면 좀 헐렁하겠지만, 그래도 많은 책 등 문헌이 서고를 지킬 것 같다. 문헌에는 국내 신문의 창간호며 1000호, 3000호, 5000호 같은 지령 특집호 신문 등이 수백 점이다.이 같은 수집광은 괴벽적 열정이다. 처음 동기부터 그러했다. 서울대농대 3학년 때다. 국립도서관 사서 직원과의 다툼이 있었다. 교수의 강의로 참고자료를 얻기 위해 어느 잡지 창간호를 찾았더니 잡지따위를 무슨 도서관에 두느냐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국립도서관이 안 하면 내가 하겠다는 오기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원시에 기증하는 것은 마치 보물을 내놓은 거 같을 것이다. 어려운 결단이지만 잘했다. 공공기관에서 수원의 명물로 더 가치있게 더욱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임양은 주필

재테크 교육법

중화권 최고 부자로 꼽히는 홍콩 창장실업 리자청 회장은 두 아들을 8~9세 때부터 회사 이사회에 참석케 했다. 둘째 아들 리쩌카이는 수업이 끝나면 잡부 일과 웨이터 일을 했고 일요일엔 골프장 캐디 일을 하며 용돈을 벌게 했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대만 최대 회사인 대만프라스틱을 세운 왕융칭 회장은 유학 중인 자녀들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마치 직원들에게 월급 주듯 정확히 계산해 지급했다. 일본 전자회사 소니 창시자 모리타 회장의 아버지는 경쟁 사회에서 (돈에 대한) 순진함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모리타 회장의 아버지는 모리타에게 너는 집안의 장남이니 가업인 술 제조업을 이어야 한다며 그를 재산상속인으로 교육시켰다.토마스 왓슨 전 IBM 회장은 아들에게 중학생 때부터 용돈 지출 계획을 세우게 하고 매달 소득 목표를 정하게 했다. 그의 아들 토머스 왓슨 주니어는 후에 IMB의 CEO가 됐다. 계란팔이로 시작해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을 세운 모건 회장은 자녀들이 집안일을 하고 용돈을 받아가도록 했다. 막내아들 토머스는 일을 잘 하지 않아 용돈도 적게 받았다. 모건은 토머스에게 모은 돈 범위 안에서만 쓸 필요 없다. 어떻게 돈을 더 벌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고 말했다.미국 석유재벌 존 록펠러는 자녀들 나이에 따라 용돈을 철저히 차등 지급했다. 아이들에게 장부를 만들어 지출 내역을 기록케 하고 용도가 정당하면 몇 원(한 주당)을 더 주고 그렇지 않으면 용돈을 깎았다. 후일 부통령이 된 둘째 아들 넬슨은 어릴 적 가족의 구두를 닦거나 토끼를 길러 돈을 벌었다.미국 철강왕 엔드루 카네기는 자녀들에게 돈으로 사람 마음을 살 수는 없다 훌륭한 장사꾼은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사지 않고 진심으로 얻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미국 보잉항공사 창립자 윌리엄 에드워드 보잉은 자녀들에게 새 물건을 살 마음이 있으면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낡은 물건을 버리면 새 물건을 사기 위해 노력한다고 가르쳤다. 전 세계 자수성가형 억만장자 갑부들은 자녀들에게 재테크의 개념을 어릴 적부터 심어주는 데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자녀 용돈 주는 법이 특이했다. /임병호 논설위원

사회상식

수원 남문 어느 가게에 들렀다가 봉변을 당했다. 담뱃불 끄고 들어오시옷! 주인의 일갈에 비로소 무심코 손에 피워 든 담배를 발견했다. 순간, 기분이 언짢았으나 이해가 됐다. 이해가 됐을 뿐만이 아니라 좋았다. 기차도 금연칸이 하나만 따로 있었던 것이 지금은 모든 칸이 다 금연칸이다. 비록 끽연권이 혐연권에게 박해 당하고는 있어도, 이런 사회적 변화는 반가운 현상이다.이에 비해 기초질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금연이 일반화된 것처럼, 기초질서 준수도 일반화됐으면 한다. 한데, 이런 일이 있었다. 수일지하도 건널목에서다. 신호등이 좀 멍청하게 작동돼 행인이 건널 만한데도 빨간 불이 켜 있어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냥 무단횡단할까 했는데 초중학생들이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 보는 데서 무단횡단이란 부끄러운 일이다. 학생들이 기특해 보였다.한일아파트 앞에서다. 서울행 7770 버스 정류장에 갔을 땐 아무도 없어 기다리는 동안 의자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웠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10여명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다. 맨 처음에 가놓고도 할 수 없이 맨 뒤꽁무니에 서고 말았지만, 줄 서는 것이 보기 좋아 조금도 언짢지 않았다. 신호등이 지루해도 기다리는 학생들, 버스 승객 줄 서기 등은 기초질서 준수의 일반화가 그리 머지않다는 반가운 조짐이다.금연공간 이행, 신호등 지키기, 줄 서기 같은 것은 사회상식의 생활화다. 사회상식의 생활화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상식은 또 일상의 보편적 가치다. 누구든 마땅히 이행하고 지키고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이런데도 우리 사회는 상식이 통하기보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사회 지도층, 특히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높은 X들은 막 해 먹는 데, 이쯤 가지고 뭘 그러느냐는 것은 박연차 게이트가 한창일 적에 어느 교통법규 위반 차량 운전자가 단속 경찰관에게 퍼부은 푸념이었다.정치인들의 떼법도 상식 불통의 사회상식 파괴에 큰 영향을 끼친다. 노동운동의 떼법 역시 그렇다. 걸핏하면 들고 일어서기 일쑤인 사회적 떼법이 이에 기인한다.민초들 사이에 숙성돼 가는 사회상식의 생활화 풍조를, 더는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의 상식 밖 언행으로 찬물을 끼얹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임양은 주필

은행나무 단풍

요즘 도심 도로를 걸을 때 약간 구린 냄새가 난다. 땅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에서 나는 냄새다. 열매가 으깨져서 보도를 조금 지저분하게 만든다. 도심을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무는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하는 나무이지만 냄새를 풍기는 단점을 지녔다.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에 은행나무의 암나무와 수나무를 구별하는 방법과 열매를 맺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지 등을 묻는 지방자치단체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암수 딴 몸인 은행나무는 수나무의 꽃가루가 날려 암나무의 꽃에 수정되면 열매를 맺는다. 결국 열매가 열리지 않게 하는 방법은 수나무의 꽃가루가 암나무의 꽃에 닿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암나무의 꽃에 화학 처리를 해 수나무의 꽃가루가 오더라도 수정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란다. 암나무의 꽃에 일종의 화학 코팅을 하는 방법이다. 기술적으로야 가능하지만 인력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하기 어렵다. 또 다른 방법은 수나무로만 가로수를 심는 일이다. 암나무만 추려내 먼 곳으로 옮겨 심고 빈 자리에 수나무를 심는다면 열매를 맺지 않는다. 수나무와 암나무를 서로 마주보지 않게만 심으면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꽃가루는 바람을 타고 가기 때문에 주위에만 있다면 어떻게 심어 놓느냐에 상관없이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서울의 경우 가로수 28만3천 그루 중에서 은행나무가 42%다. 서울처럼 전국 지자체들도 은행나무를 시목(市木)도목(道木)으로 지정한 곳이 많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각광받는 것은 공해나 병충해에 강하고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 빨리 자란다. 그런데 근래 주로 은행나무 주변 상인들이 민원을 제기한다고 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냄새가 날 때는 좀 그렇지만 도시 미관으론 은행나무만한 것이 없다. 봄, 여름 싱그러운 녹음과 그늘을 선사한다. 가을엔 회색 도심을 샛노랗게 물들여준다. 가을 한때 잠시 불편함은 감수할 만하다. 지자체들이 은행 열매를 빨리 수거하는 일도 한 방법이다. 도심에서 은행나무 단풍을 구경하는 건 행복이다. 가을의 정취, 낭만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판사의 인품

대구에서 일선 기자로 법조 출입을 할 때다. 판사들과 가끔 논쟁을 벌인 문제가 여름철 아이들의 참외서리였다. 이에 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판사들과 다툼을 갖곤 했다. 그땐 영장 전담 판사 없이 판사들이 돌아가며 야간 영장을 맡았었다.절도의 범의보단, 장난의 의도가 많은 참외서리 아이들을 도둑놈으로 몰아 소년원에 보내면 교화는커녕 진짜 도둑놈을 만든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고, 나도 어렸을 적에 참외서리를 해 봤는데 당신은 안 해 봤냐고 공박하곤 했다. 그러면 판사들은 으레 피해자의 고소가 있었고 또 실정법상 부득이한 것이라며, 자신은 참외서리 경험이 없다고 반박하는 것이었다.이러다 보면 범죄 성립이 안되는 것으로 고의성의 미성립을 들면 학설에 없는 소리라느니, 체험적 진리도 있다느니 하며 서로가 주장을 굽히지 않곤 했다. 국어대사전은 서리란 말을 떼를 지어서 남의 물건을 훔쳐 먹는 장난(닭, 참외)이라 하고, 서리꾼은 서리를 하는 장난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판사의 직무 수행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판사 자신의 인품이다. 사실심리의 정확한 통찰, 증거능력 유무의 판단, 법률 적용의 해석 등 자유심증주의에 속한 이런 주요 내용을 좌우하는 것이 판사의 인품에 달렸다. 판사의 인품이란 양심교양경험성품분별력 등이다.판사라고 해서, 다 같은 판사가 아니다. 판사의 자질이 의심되는 판사가 전혀 없다 할 수 없다. 머리는 총명해서 사법시험에 붙어 판사는 됐어도, 인품이 미흡하면 판사 자질 역시 미흡하다. 이런 판사는 다만 법조문만 살피는 기계판사다.신임 판사가 특목고며 강남 출신으로 30% 넘게 쏠렸다 하여 논란이다. 쏠림 현상 자체는 물론 좋다 할 순 없다. 아마 부유한 집안에서 넉넉하게 공부했다고 보는 것이 부정적인 관점인 것 같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임 판사들 역시 인품이다. 인품 또한 성장 과정이 인격 형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부유한 집안에서 넉넉하게 공부한 환경이 무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인품의 숙성을 좌우하는 것은 본인 당사자다. 판사 수가 많아져 전 같지 않다지만, 좋은 판사들이 많을 것으로 믿고자 한다./임양은 주필

‘본드걸’이라니

본드걸은 영국의 첩보영화 007 시리즈 주연 제임스 본드를 둘러싼 미모의 여성들이다. 제임스 본드를 돕는 본드걸도 있고, 해치는 본드걸도 있다. 스토리를 반전시키고 또 몸매가 팔등신인 것이 본드걸의 공통된 특성이다. 영화의 섹스 심벌 구실을 한다.007 영화는 1963년 테렌스 영 감독, 숀 코넬리 주연의 007 위기일발 이후 20여편이 제작됐다. 초대 제임스 본드 역의 숀 코넬리는 무명이었던 것이 007 위기일발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등은 본드 역 후계자들이다. 007 음악은 존 베리가 가장 많이 맡았다.일부 언론에서 은반의 여왕 김연아 선수(19고려대)를 본드걸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007영화음악을 쇼트프로그램 연기의 배경 음악으로 한 데서 그렇게 부른다지만 비약된 표현이다. 본드걸의 섹시한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 또한 망발이다.지난 17일 파리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최 시즌 첫대회 피겨 그랑프리 1차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환상적 연기를 펼친 김연아 선수가 76.08로 1위에 올랐다. 2위의 일본 나카노 유카리 선수는 59.64로 무려 17.6 차이가 나게 따돌렸다.이어 가진 프리스케이팅에서는 210.3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했다. 라이벌인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는 2위로 173.99에 그쳐 무려 36.31이나 차이가 났다. 김연아 선수의 협주곡은 피아노 바장조다. 그랑프리대회 연속 6회 우승의 위업을 세웠다. (꿈의 210점대 진입에) 나도 놀라 한동안 멍했다고 한다. 김연아 선수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 자랑스럽다.스포츠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흥행성을 추구하고 스포츠는 훈련의 진정성을 추구한다. 영화는 한 편 출연으로 일약 행운의 스타덤에 오르지만, 스포츠에서는 한 번으로 단번에 스타플레이어가 되는 법은 없다. 영화는 매스컴에서 스타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스포츠에선 실력이 없으면 스타덤에 오르지 못한다.본드걸이니, 뭐니 하는 선정적 상업성 보도는 선수와 스포츠에 대한 모독이다. 세련되고 우아한 연기다라는 것은 현지 언론의 보도다. 본받아야 한다. 김연아 선수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올 제47회 대한민국 체육상 경기부문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임양은 주필

출산장려

출산장려책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나라는 프랑스가 꼽힌다. 임신기간 의료비, 출산 비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0% 지원한다. 신생아에 대한 수당으로 150만원을 지급한다. 3~5세 아동의 공립 유치원비는 무료다. 2명 이상 자녀를 둔 가족에겐 자녀가 20세 될 때까지 가족수당을 지급한다. 세 자녀를 둔 경우 월 48만원을 지원한다. 또 육아기 근로시간은 주 18시간으로 단축되며 둘째 이상 자녀의 경우 36개월 육아휴직이 가능하다. 프랑스는 이런 과감한 정책을 바탕으로 출산율을 2008년 2.02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프랑스식 해법의 모체는 수당이다. 소득수준을 따지지 않고 자녀수에 따라 영유아 수당과 가족보조금, 주택수당 등을 지급한다. 여기에 드는 돈만 해도 410억유로, 우리 돈으로 70조원에 이른다. 특이한 점은 1999년부터 혼외출산율이 40%가 넘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법적 결혼을 하지 않은 커플, 즉 동거 커플이 낳은 자식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인정한다.스웨덴도 1.75명의 출산율을 유지한다. 양성 평등 정책이 좋은 덕분이다. 출산휴가 14주 중 2주는 남편이 아버지휴가로 사용토록 의무화했을 정도다. 육아휴직도 450일 중 2개월을 남편이 사용해야 한다.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2004년 71.8%에 이를 정도로 높아 영유아 보육시설 확충을 위한 재정지출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러시아의 경우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출산장려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1억4천만명 수준인 러시아 인구가 2050년에는 4천700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푸틴 총리가 직접 나서 국민에게 성명을 발표하고 저출산 극복을 위한 캠페인을 계속 벌인다. 러시아는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임신의 날(Making Love Day)을 따로 정하기도 했다.한국은 2008년 기준 가임여성 1명당 합계출산율이 1.19명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이어서 고심이 크다. 매년 10월 10일을 임산부의 날로 지정하고 2006년부터 각종 행사를 펼쳐오고 있지만 출산장려 성공의 지름길은 프랑스식 수당과 스웨덴식 양성 평등이다. 정부의 과감한 예산 투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신조어

신조어는 시대상이 담겼다. 1970년대는 지우개와 따오기였다. 지우개는 성 개방이 확산되던 시기에 등장한 피임제가 여고생 책가방에서 나왔다는 언론 보도 이후 유행하였다. 미니스커트를 뜻하는 따오기는 동요 따오기의 가사 중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에서 유래됐다. 1980년대엔 부패공화국이었다. 한보사건 등 건드렸다 하면 터지는 부패 사건들이 잇따르면서 등장한 신조어였다. 1990년대는 소통령이 신조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국가 주요 인사권을 좌자우지한다고 해서 유행한 말이다.2000년대는 신조어들이 꽤 많이 나왔다. 명예 퇴직당하거나 해고 대신 타 부서로 전출된 사람, 외환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을 풍자한 동태생태족, 서울 강남의 땅부자와 고려대소망교회 영남 출신 인력을 뜻하는 강부자고소영이 나왔다. 이명박 정권 1기 내각을 비판한 신조어다. 몸매가 S자이거나 얼굴이 V라인인 사람, 외모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생겨난 S라인V라인과 매력적이지만 이미 결혼한 남녀를 뜻하는 품절남품절녀도 있다. 엣지는 날카로움, 각 등을 뜻하며 패션업계에서는 멋있고 개성있다는 말로 쓰인다. SBS드라마 스타일에서 유행한 말로 개성 있다는 의미로 확대 사용한다.정치 권력을 풍자하는 신조어는 언제나 있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최루탄시대(박정희), 땡전뉴스(전두환), 식물대통령(김영삼), 고소영(이명박) 등이 유행했다.고용에 관한 신조어는 외환위기 직후인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때였다. 조기, 명태, 황태 등이 사람들 입에 올랐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뒤에도 삼일절(31세가 되면 어느새 절망),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십오야 (15세만 되면 앞날이 캄캄해진다), 십장생(10대에도 장차 백수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등은 우리 사회의 고용 불안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완판녀, 신상녀 등 최근 생겨나는 신조어는 과거보다 가볍다. 자본외모 관련이 많다. 꿀벅지 황금 골반 등 외모 관련 신조어 중 꿀벅지는 네티즌이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꿀벅지 사용 금지에 관한 청원을 올린 상태다. 이젠 풍자해학이 풍부하면서 희망을 주는 신조어가 나왔으면 좋겠다. 신조어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필요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풍선공약

가장 고약한 풍습은 벼슬하겠다고 선거운동하고 다투는 일이다(키케로106~43BC로마 정치가철학자), 가장 적게 공약하는 자에게 투표하라, 그가 가장 적게 실망시킬 것이다(바루크1870~1965미국 정치가재정가), 정치인들은 강이 없는 데서도 다리를 놓아준다고 말한다(후루시쵸프1894~1971소련 공산당 서기장) 선거를 풍자한 말들이다. 선거의 역기능 등 허점을 들어 비꼰 것이다. 그렇긴 해도 선거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수단이고, 선거를 하면 선거공약이 나와야 하는 것은 필요적 과정이다. 매니페스토운동은 공약 중심의 선거운동을 권장하고, 공약을 검증하는 유권자 운동이다. 입후보자가 우선 당선되고 보자거나, 믿거나 말거나 하는 엉터리 풍선공약을 내놓는 폐습을 시정키 위한 운동이다.1028 국회의원 재선거 수원 장안구 입후보자들의 선거공약이 신문에 발표됐다.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입후보자들 공약이 한결같이 화려하다. 어떤 것은 영어로 표기돼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도 없지 않아 이런 표기는 서민층 접근에 거리감을 낳아 문제가 있다할 것이나, 아무튼 모두가 듣기 좋은 내용들이다.문제는 표심이다. 강이 없는 데서도 다리를 놓아준다는 말이나, 실망시킬 허황된 내용이 아닌지 잘 살필 일이다. 매니페스토운동은 공약의 추진 방법까지 추궁한다. 무슨 돈을 어떻게 조달하여 어떤 방법으로 공약을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다.위의 입후보자 선거공약 역시 매니페스토운동이 적용되면 대답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무작정 지역주민이 들어 귀에 솔깃한 말만 나열한 걸로 보이는 것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이거나, 나중 일은 나중이고 우선은 돼야 한다는 심산에서 못할 말이 없는 것이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의 습벽이다. 만약에 이번에도 또 그렇다면 키케로 말대로 가장 고약한 것은 벼슬하겠다고 선거운동하고 다투는 일이라 하겠다.열쇠는 유권자들에게 있다. 바로 찍기 위해서는 바로 보아야 한다. 투표에는 양심의 책임이 따른다./ 임양은 주필

연예인 수입

텔레비전 방송 출연료가 가장 높은 것이 연예인이다. 유재석이 지난해 MBC에서 출연료 1위로 9억5천440만원을 받았다하여 화제다. 월 7천953만원 꼴이다. 고작 200만~250만원 월급쟁이는 까무러쳤다가 깨어나도 엄두도 못낼 거액이다. 하지만 유재석보다 더 많은 연예인도 있었다.유재석의 출연료가 상당히 많긴 하지만 그냥 준 게 아니다. MBC가 그를 앞세운 프로그램으로 벌어들인 돈은 출연료보다 몇 십배나 많다. 또 방송사가 이처럼 유재석을 앞세운 것은 대중의 인기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즉 대중이 벌게 해준 것이다. 이는 모든 방송사와 모든 연예인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공식이다.그러나 연예인들이 항상 그토록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인기란 영원하지 않은 탓이다. 예컨대 탤런트의 경우, 그 수가 800여명이다. 이에 비해 지상파 3사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수는 다 합쳐도 150명을 넘기 어렵다. 나머진 텔레비전 연기 수입이 없는 것이다. 직업은 탤런트면서도 사실상의 실업자인 게 공치는 탤런트들이다. 배역 하나 얻어 걸릴까 하여 PD들이 왕래하는 로비 소파에 죽치고 앉아 잡담으로 시간을 떼우는 무명 탤런트들이 많다.연예인들이 부업을 갖는 이유가 이처럼 수입이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 부업이 본업이고 연기나 노래가 부업인 경우도 있다.연예인들은 또 대체로 짜다. 잘 버는 사람은 잘 벌어도, 거의가 구두쇠들이다. 자신의 몸으로 직접 뛰지 않으면 벌이가 한 푼도 안 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가령, 날짜가 지나면 정기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것과 다르다. 이 때문에 번 돈에 대한 집착이 유별나게 강하다.잘 번다고 물텀벙 술텀벙 대다가는 아무 것도 아니다란 것은 은퇴한 코미디언이 잘 나갔을 적에 한 말이다. 작고한 원로배우 한 분은 나보고 구두쇠라지만, 내가 고생할 때 누구하나 거들떠 본 적이 없다면서 그때 밥 한끼라도 사준 사람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유재석씨의 벌이는 부러워 할만 하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길은 각기 다르고, 인생의 행복 또한 다르다. 200만~250만원 월급쟁이에게도 행복의 길은 있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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