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아기울음

태아가 모체로부터 독립 개체를 이루는 것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 즉 출생이다. 이 과정을 출산 또는 분만이라고 한다. 분만은 진통이 시작되는 1기(개구기), 태아가 나오는 2기(만출기)를 거쳐 태반이 처리되는 3기(후산기)의 임상경과를 거치는데, 분만 소요시간은 초산부는 12~15시간, 경산부는 5~8시간이다.여성의 출산은 뱀의 유혹을 받은 이브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한 원죄라지만, 그 고통은 참으로 크다. 옛날 사람들은 출산하려고 방에 들어가면서, 섬돌위에 벗어놓은 신발을 다시 신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정도다. 지금이야 병원에서 낳아 위험을 줄인다지만, 출산의 고통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다.출산은 한마디로 신비의 세계다. 태아를 만출시키는 산모의 그 엄청난 힘의 내공이 뭣인지를 의학은 아직도 규명치 못하고 있다. 출산 전후에 부정을 막기위해 옛 사람들이 지켰던 갖가지 금기의 풍습은 신비에 대한 외경심이었던 것이다. 아이를 가진 아내만이 아니고, 아이를 갖게한 남편도 출산을 목격하여야 한다. 비록 아이를 직접 받아내진 않을지라도, 분만실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아내와 아기에 대한 남편과 아빠로서의 사랑이며 책임일 것이다. 또한 생명의 존중함도 터득한다.흥미있는 외국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갓난 아기의 울음 소리도 국적이 있다는 것이다.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연구팀 발표다. 독일과 프랑스의 갓난아기 각 30명의 울음을 비교 분석한 결과 울음의 운율이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 어조에 따라 뚜렷하게 달랐다는 것이다.연구팀은 그 이유를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엄마 말을 듣고 익힌 억양을 말 대신에 울음으로 모방해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구팀이 조사한 아기는 생후 이틀이 지난 아기들이다.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내는 첫 울음 소리를 고고(呱呱)라고 한다. 엄마의 체온으로 양수 속에서 보호받다가 갑자기 닥친 바같 세상의 기온차로 터지는 울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아기 스스로의 선언이기도 하다. 아마 고고의 울음소리는 만국 공통어가 아닌가 싶다. /임양은 주필 지지대

출판기념회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책이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고 보았다. 나쁜 책이든 좋은 책이든 모두 쓰는 데 많은 노력이 들고 저자의 정신으로부터 진지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개인의 생각을 가장 온전한 형태로 드러낼 수 있는 것으로 책만한 게 없을 뿐더러, 사유의 과정을 글로 가지런히 옮겨 책으로 묶어낸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책이 나오면 저자와 지인들이 출판기념회란 이름으로 어울려 집필의 산고와 출간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 세상에 책보다 더 이상한 물건은 없다. 그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인쇄하고 제본하고 팔고 사고 비평하고 읽고, 이제는 저술마저도 한다. 18세기 독일 물리학자이자 작가인 게오르그 리히텐베르크는 책에 대해 엄격했다. 너무 쉽게 내는 책, 영혼이 담기지 않은 책의 남발을 경계했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도서관의 반을 뒤지는 지적 치열함을 강조한 말이다. 리히텐베르크의 말대로라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저자와 지인들의 출판기념회보다 더 이상한 모임은 없다. 세상에 알려지기 위해 원고를 출판하는 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시장에 가는 바보와 같다. 20세기 미국 시인 제임스 릴리는 잿밥에 눈먼 저술을 경계했다.한국의 경우 출판기념회는 근대에 들어 주로 문인들이나 학자, 언론인 등이 저서를 발간하면 축하해주는 자리로 마련됐다. 대개의 출판기념회가 가족 또는 단체, 제자들이 주선해 열리는데 경제상 수월하진 않았다. 문인들의 경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다방이나 음악감상실, 또는 주점, 중화요리집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어 작품집 발간을 자축하고 격려를 받았다. 출판기념회에 초대를 받으면 기쁨으로 알고 책값 개념으로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참석했다. 요즘이야 각종 저서를 출간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크고 작은 출판기념회가 여기저기서 열린다. 500여명은 적은 편이고 보통 1천여명이 참석하는 출판기념회도 적잖다. 특히 지방선거나 총선 등 선거철을 앞두고는 수 많은 저자들이 탄생한다. 전문서적들도 많지만 개인의 사상, 성공담을 소개한 책들도 많다. 궁금한 일은 출판기념회 참석자들이 책의 저자책명만 알고 내용은 모르지 않나하는 점이다. 저술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지지대

여군

여군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신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전사(女戰士)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종족 아마존이 그것이다. 그녀들은 1년에 한 번 다른 나라의 남자들과 교합하여 자식을 얻었으나 남자가 태어나면 가차없이 죽였다고 한다. 활과 화살, 방패로 무장하고 말을 타고 전투약탈수렵에 종사했다. 오른쪽 유방은 활을 쏘는 데 방해가 돼 잘라냈다고 한다.그리스신화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12과업을 수행하는데 처음의 8가지는 당시 그리스 영토 안에서 수행했다. 아홉 번째부터는 외부세계로 나아가는데 그 첫 번째 과업이 바로 아마존 여왕의 허리띠를 빼앗아오는 일이었다. 아마존의 위력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의미다.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위해 앞장서 싸웠던 16세 소녀 잔 다르크는 대표적 여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에서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 승리로 이끈 여군이 있다.여군은 이제 대부분 나라에서 존재한다. 특히 세계 1, 2차대전을 거치면서 보편화했다. 미국에선 1976년 사관학교 입학도 허용됐다. 우리나라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여군의 임무는 의료간호수송병참통신 등 후방 지원업무이며, 전투임무를 맡기고 있는 나라는 벨기에와 네덜란드뿐이다. 여군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과 유고슬라비아뿐이고 나머지는 지원제다.한국 여군은 정부수립 직후인 1948년 말 32명의 여군 장교가 교관 요원으로 선발되면서 시작됐다. 1950년대 한국전쟁 때는 여자의용군 500명이 통역 등 행정분야와 첩보대(HID)에 배속돼 첩보수집, 심리전 등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 한국 여군은 1969년 공수요원을 최초로 배출한 이래 헌병대와 의장대가 창설되고, 1993년부터는 사단 신교대 소대장에도 진출했다. 2001년엔 금녀의 구역으로 인식되던 함정에 여군 장교가 파견됐으며, 2003년엔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탄생했다. 전투함에 승선하는 등 여군에 대한 문호가 전방위로 확대됐다. 국방부가 2012년부터 도입을 검토중인 여성사병지원병 제도를 여성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소식이다. 여성시대의 도래가 멀지않은 것 같다. /임병호 논설위원

노무현 상속재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속 재산이 자산 13억원에 비해 부채가 16억원으로 빚이 3억원이 더 많은 것으로 국세청에 신고됐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재산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와 인근 임야 뿐이라는 것이다. 부채는 사저 건축비 충당을 위한 은행 대출 등이라는데, 대출 얘기는 처음 듣는 소리다.하여간에 이상하다. 그토록 빚 뿐이라면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검찰수사 당시 박연차 게이트로 건네진 뇌물이 600만달러+3억원+1억원짜리 시계 2개 등이었다. 그의 아들 딸은 미국에서 각각 저택을 샀었다. 시계는 논두렁에 버렸다니 그랬다 쳐도, 현찰은 이름이 안쓰였으므로 쓰는 사람이 임자다. 그의 아들 딸이 부모에게 받은 돈으로 저택을 구입했을지라도 저택을 자기 이름으로 샀으면 이미 부모 재산이 아니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할 권리가 있을 수 없었다. 피의 사실에 대한 규명을 저해, 비리 혐의를 덮어두게 만든 것이 자살에 의한 현실 도피다. 전직 대통령으로 국민에 대한 규명 의무를 저버렸다.전직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재임 중 좌파정책의 시행착오는 그가 대통령이었으니까, 한 번 해보고자 했다면 굳이 이해하지 못할 게 없다. 온갖 돌출적 언행도 개성적 기벽으로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보면 된다.봉하궁 신축은 민중적 이미지가 아니다. 유감스럽지만 그래도 거기까진 봐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는 용서될 수 없다. 그가 자신이 최후를 선택했다 하여 용서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참다운 민중의 대통령이었다면 도덕적, 법률적 치명상의 그런 흠결을 저지를 수 없다.유족들의 상속세 신고서 작성에 변호사와 회계사 등의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전문가들이 어련히 알아서 꾸미지 않았겠나 싶다. 그렇긴 해도 빚이 3억원이라는 말을 곧이 들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는 심히 의문이다. 이 같은 의문은 통념적 상식이다. 이렇긴 하여도 빚투성인 유족돕기 운동에 나서는 엉뚱맨들이 또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자성 상속세 신고를 보면서 생각나는 게 있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흥한다는 말이다./임양은 주필

사회복지비

보육시설 보조금이 요지경 속이다. 도내 461개소의 보육시설에서 39억2천만원의 국비 등 보조금을 부당 수령했다 하니, 나랏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항간의 말이 실감난다.퇴소아동 미처리는 원생수를 부풀리는 허위 조작이다. 무자격교사 채용은 인건비를 줄여 가로채는 수법일 것이다. 보육시설 지원 강화는 사회복지시책의 일환이다.사회복지시책은 보육시설 지원 말고도 많다. 그러나 시책의 누수가 허다한 게 문제다. 의료보험료를 허위로 꾸며 과다청구하는 예는 이미 많이 알려진 부정이다. 멀쩡한 교통사고 가짜환자도 마찬가지다. 차량 접촉사고가 났다하면 다친데가 없어도 다친 것처럼 입원하는 나이롱환자가 숱하다. 의사들도 수입이 생기는 일이므로 허위진단서를 발행하기가 예사다. 상해보험료를 타먹고, 입원 수익금을 챙기는 이런 족속들로 인해 사회복지비가 부당하게 축난다. 이만도 아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복지시책의 누수가 막심하다.도둑 하나를 열이 지켜도 못당한다는 속담이 있다. 해먹으려고 하면 아무리 제재를 가해도 해먹을 수 있는 것이 사회복지시책이다. 그 많은 사회복지시책 현장을 실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도상의 완벽을 기하는데도 한도가 있다. 사회복지시책은 사회보장제도의 방어망이다. 따라서 혜택을 베푸는 것이므로 규제가 까다로워선 실효가 있을 수 없다. 사회복지시책의 이런 본질적 취약점이 누수의 원인이 되고 있다.국민사회의 인식이 앞서야 된다. 즉 선진국 의식이다. 선진국은 물질문명의 발달이 높아야만이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니다. 국민사회의 인식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달해야 선진국이 된다. 우리는 과연 선진국 국민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흔히 사회복지비 예산의 증가를 말한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예산의 누수가 많아서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 예산의 누수를 막는 것이 예산의 증가 못지 않는 현실적 과제다. 경기도는 보육시설의 부당 수령금에 대해 환수조치에 나섰다. 당연하지만 어찌 그만이겠는가 싶어 영 개운찮다. /임양은 주필

혼인빙자간음죄

형법의 혼인빙자간음죄가 헌법상의 남녀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56년만에 폐기됐다. 헌재 판결은 정부 부처인 여성부의 공식 견해를 받아들인 것으로, 혼빙죄는 여성 비하 라는 것이 여성부의 의견이었다.당초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죄목이 이젠 여성 비하로 판단되게 이른 것은 세태의 변화다. 여성이 굳이 그 같은 죄목의 보호를 받아야 할만큼 약한 존재도 아니고, 성적 자기 의사 결정에 남녀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해석이 위헌의 요지다. 이엔 예컨대 외간 남자에게 손목잡혔다 하여 자진한 수절과부에게 열녀문을 세워주던 조선시대와 다른 시대적 변화의 배경 또한 깔렸다.혼빙죄는 범죄의 성립 요건에 논란이 적잖았던 죄목이다. 처음에는 혼인할 의사가 있었으나, 중간에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 혼빙죄 남성이 흔히 내건 상투적 방어였으므로 처음부터 계획적 위계를 기도한 증거가 있어야 했다.1955년 한국판 카사노바였던 박○○사건은 댄스홀에서 만난 미혼여성 70여명과 성 관계를 가진 사건으로 여대생 등 고위층 자녀들이 포함됐었다. 이에 당시 권영순 서울지법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면서 판시한 것이 법률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貞操)만을 보호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조란 말 자체가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일방적 굴레처럼 들리게 된다.물론 이엔 사회적 시(是)와 비(非)가 있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6대3으로 위헌정족수인 3분의 2를 가까스로 채웠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3명이 사회질서 확립을 위해 혼빙죄의 필요성을 인정, 위헌이 아닌 것으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견해 역시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2년엔 남성의 위계에 의한 성 편취는 자유로운 성적 결정을 넘어선 반사회적 행위로 국가의 형벌권 개입이 불가피하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바가 있다. 같은 헌법기관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변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임양은 주필

경기사랑愛

경기도시공사가 주최한 제3회 수필공모전 경기사랑愛 응모작 120여 편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수도권 교통혁명, 즐거운 상상 GTX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다. GTX는 경기도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다. 러시아 모스크바, 독일 베를린, 헝가리 부다페스트, 프랑스 파리, 영국, 일본 동경은 이미 광역급행지하철광역철도가 운행되고 있지만 한국은 2010년 착공에 들어가 2016년 준공을 목표로 경기도가 추진 중이다. GTX는 지하 40~50m의 공간을 활용, 노선을 직선화하고 최대 시속 160~200㎞ 속도로 운행하는 신개념 광역교통수단이어서 기대가 매우 큰 대사업이다. 응모작품들은 소재를 다양하게 살려 재밌게 글을 썼다. 이무기의 전설을 따라 GTX환상특급열차가 가다 GTX와 올림픽 홍길동이 된 GTX 21세기 축지법 GTX로 통하는 나의 삶 나의 꿈 등 제목들이 다양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교통문제와 녹색성장을 동시에 해결하는 미래형 운송 수단을 그렸다. GTX의 개통을 기다리는 설레임을, 또는 이미 개통 되었음을 가상하고 GTX에 탑승, 여행하는 이야기들이 관심을 끌었다.나는 요즘도 이따금씩 수도권광역급행열차 GTX를 타는 꿈을 꾸곤 한다. GTX와 상호 연계되어 구축된 교통망을 이용, 평택역까지 가서 그 곳 평택항에서 상해로 건너가는 여객선을 타기도 한다. 그 뿐이랴. 어떤 때는 한중 해저터널을 통해 GTX와 연결된 열차편으로 중국에 건너가 상해의 야경을 보고 북경에 들러 출장일을 보고 다음날 돌아오기도 한다. 다음날은 역시 평택항에서 한일 해저터널을 통해 동경, 오사카를 한나절 만에 다녀오기도 했다. 경기도가 지구촌 터미널이 되는 꿈을 꾸며라는 글의 첫 문장이다. 소설적인 구성으로 얘기를 끌어나가 대상을 차지했다. GTX가 개통되면 현실이 될 상황이다.경기도시공사는 그동안에도 경기사랑愛 수필공모전을 통해 경기도 사랑을 깊이 심어주었다. 제1회 때는 살기 좋은 경기도, 살아보고 싶은 경기도를, 제2회 때는 내 소중한 친구, 경기도를 소개합니다를 소재로 내걸고 수필 공모전을 열어 경기도를 널리 알렸다. /임병호 논설위원

아프리카

동반구(東半球)의 남서부에 위치한 아프리카(Africa)는 남북 양반구(兩半球)에 걸친 세계 제2의 대륙이다. 면적이 약 3천36만㎢, 인구는 1994년 현재 6억8천명에 이른다. 동쪽으로 인도양, 서쪽으로 대서양, 북쪽으로 지중해에 면한다. 아프리카라는 명칭으로 불린 것은 16 17세기 네덜란드의 항해자들이 이 곳이 독립된 대륙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다. 아프리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리비아라고 불렀던 지중해 남안(南岸)에서 원주민이 사용한 지명에서 비롯된다.포에니전쟁 무렵의 로마인들은 지중해 대안(對岸)에 있었던 카르타고의 시민을 아프리라 부르고 카르타고 정복 후 이 지방을 아프리카州라고 하였다. 아랍인들이 진출한 뒤부터 아랍어로 아프리키아라는 지명은 보다 넓은 지역(지금의 북서아프리카)을 가리키게 되었다.아프리카라는 지명은 대체로 광대하고 혹독한 더위와 사막, 들짐승이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는 사바나, 혹은 낮에도 어둠을 벗어나지 못하는 고온다습한 정글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이미지가 이질적일 뿐 아니라 지중해에 면한 북아프리카 여러 나라나 인도양과 대서양에 면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겨울엔 산지에서 스키도 즐긴다.일찍이 아프리카는 암흑대륙이라고 불려져 왔다. 외부인들이 이 대륙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엔 검은 대륙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아프리카인들이 자기의 검은 피부색이나 짙은 피부색을 수치로 여기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자랑으로 과시하는 경향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자연의 보고이며 거대 시장이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성장엔진이며 잠재력이 큰 지역이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에 이어 중국, 일본 등이 아프리카 진출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한국도 그제 서울에서 외교통상부와 아프리카 연합(AU)이 제2회 한아프리카 포럼을 공동 개최하고 서울선언 2009를 채택한 것은 한국아프리카 관계에 이정표를 세운 획기적인 일이다. 3년 만에 열린 포럼엔 압둘라이 와데 세네칼 대통령과 장핑 AU 집행위원장, 아프리카 53개국을 대표하는 130여명이 대거 참석했다. 아프리카가 한국의 협력동반자로 성큼 다가왔다.

수혜국에서 시혜국으로

625 전후 젊은 세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얘기가 625 얘기다. 전쟁의 참상을 듣기 싫어하는 게 아니고, 먹을 게 없어 고생했다는 얘길 싫어한다. 전쟁후 1960년대 중반까지 10여년동안 미국 구호물자에 의존해 살았다는 얘기도 듣기 싫어한다. 얘길 해봤자 귓등으로 넘긴다. 실감하지 못한다.그러나 전쟁 중의 주먹밥은 그래도 양반이다. 미군부대 구정물통을 뒤져 건져낸 건더기를 끓여 먹었던 것이 부대찌개의 원조다. 해마다 겪는 봄철의 보릿고개 말고도 양식이 귀했다.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어보는 것이 더 바랄 수 없는 소원이었다. 그 무렵에 없는 사람들을 목숨 잇게 한 것이 미국 480 잉여양곡이었다. 자국의 양곡 수급상 태평양에 버려야 할 밀이나 밀가루를 원조물자로 보내온 것이다. 그냥 주어도 가져올 힘이 없어 실어다 주곤 했다. 원조물자, 구호물자라고도 했던 미국 물자는 480 잉여양곡 말고도 옷가지에서 과자류까지 갖가지였다. 이같은 가난을 털어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 들어서다.한국이 오늘 유엔개발계획(UNDP)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그동안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수혜국에서 이젠 원조를 하는 시혜국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에 온 헬젠 클라크 UNDP 총재는 20세기와 금세기를 통해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변신한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의 근면성,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한 슬기로운 발전 전략, 놀라운 기술 학습력이 오늘과 같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이적인 발전 스토리를 교훈 모델로 전 세계에 파급시키겠다고 했다.전후세대의 젊은이들이 찌든 가난속에 살았던 전전세대의 얘길 듣기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인 것이다. 다만 국제사회의 수혜국에서 시혜국으로 바뀐 공식 입장의 전환기를 기해 과거를 기억해둘 필요는 있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기 때문이다.이 시대라고 돌아보면 불평과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다. 그러나 우리는 발전한다.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대한민국이여! 더욱 큰 영광이 있으라!! / 임양은 주필

로또 이야기

로또 바람에 복권의 전성기를 20여년 누리던 주택복권이 쑥 들어갔다. 1억 당첨금을 인생 최대의 횡재로 알았던 주택복권이었다. 그러나 당첨금이 십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이 되기도 하는 로또가 나오면서 복권 마니아들 눈에 주택복권은 하찮게 여겨졌다.지난주까지 364회에 걸친 로또 1등 당첨은 그야말로 운명을 바꾸는 인생역전의 대명사가 됐다. 회당 평균 3명만 잡아도 이 같은 행운을 붙잡은 수가 1천명을 넘는다. 하지만 그늘도 있다. 로또로 돈을 잃은 수 많은 이들의 한숨이 1등 당첨의 제물이 됐다. 아마 수백만명에 이를 것이다. 어느 부녀는 옥탑방에 살면서 있는 돈을 다 털어 로또 투기를 일삼다가 탕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행운의 인생역전이 인생유전의 불운이 된 예도 더러 있다. 어느 절도범은 훔친 로또가 1등에 당첨돼 대전 유흥가에서 돈을 흥청망청 써대다가 간첩으로 오인받아 신고되기도 했는데, 끝내 낭비벽으로 병을 얻어 숨졌다.벼락부자가 된 당첨금 때문에 집안에 불화가 생긴 것이 심해져 가정이 풍지박산이 된 사람도 적잖다. 1등 당첨자가 없어 수차 이월된 당첨금 80억원을 한꺼번에 그도 혼자 거머쥔 어느 경찰관은 운이 억새게 좋았으나, 돈 달라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시달림으로 국내에서 살수 없어 이민가고 말았다.그러나 다대수의 1등 당첨 행운아들은 당첨금을 잘 꾸려 그야말로 역전된 새 인생을 누리고 있다. 이토록 부러움의 대상인 1등 당첨금을 안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곧이 들릴까마는 있다. 이도 지난해 말까지 자그만치 17명이나 된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1등에 당첨되고도 기한내 찾지 않아 국고로 환수된 수가 2005년 3명, 2006년 6명, 2007년 2명, 2008년 6명 등 17명에 이른다. 당첨을 모르고 찾지 않은 예는 1등만이 아니다. 2등부터 5등까지도 많다. 이렇게 해서 국고로 들어간 주인없는 당첨금이 모두 125만건으로 455억원이나 된다. 로또 열풍은 여전히 뜨겁다. 그런데 돈 많은 이들이 재미삼아 사기보단, 돈 없는 서민이 운명을 걸고 사는 것이 로또다. 로또 수익금은 서민들의 사회복지를 위해 쓴다고 한다. 서민의 복지기금 조성이 서민의 호주머니를 축내는 현상이 아이러니컬하다. /임양은 주필

‘우리법연구회’

법원내 판사들 모임인 우리법연구구회는 1988년 2차 사법파동 때 소장 판사들이 만든 사조직이다. 진보성향의 모임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판이다. 120여명의 회원이 있다. 정기논문집을 발행하는 등 학술 모임을 자칭한다.판사들 중엔 보수성향 판사도 있다. 진보성향 판사가 있어서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판은 법치다. 만약 이념적 잣대로 재판을 한다면 그것은 정치다. 보수성향 판사든, 진보성향 판사든 법치가 아닌 정치 재판은 금물이다. 판사는 예컨대 동창회에 나가기도 무척 조심스럽다. 직무에 자칫 잘못하면 오해를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나 만나지 못하는 고독한 직업이 판사다.판사들끼리 만나는 것이야 괜찮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에도 함정은 있다. 가령 같은 모임을 갖는 하급심의 항소심을 같은 모임의 판사가 맡게되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 역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판사들끼리의 모임 또한 이래서 적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만약 진보성향 판사들 모임이 있으므로, 보수성향 판사들이 모임을 만든다고 가정해보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판사들이 이렇게 편을 가르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보수성향 판사들 모임이 생겨선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보성향 판사들 모임은 있어도 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우리법연구회의 판단이나 논의의 기조가 혹시 회원간에 기속력을 갖는다면, 자유심증주의에 배치될 수가 있음을 우려한다. 이렇게 되면 마치 법정증거주의처럼 재판의 경직성을 면키어렵다. 앞서 예를 든 같은 회원간의 상하급심 재판 역시 마찬가지다.국회를 불법 점거한 민노당 사람들에게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회원 판사가 어느 진보 정당 대표의 후원회에 가서 후원금을 내어 물의를 빚은 부적절한 사례가 판사의 처신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해준다.문제는 또 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판사가 변호사를 개업하면 같은 모임의 회원들로 재조 법조인과 재야 법조인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도 궁금하다. 우리법연구회 자체는 아무리 순수하다 할지라도, 국민사회의 우려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임양은 주필

해외 파병

조선시대 해외 파병 논의는 대략 15차례 있었다. 첫 파병 요청이 들어 온 것은 세종 때다. 명은 당시 몽골 정벌을 준비 중이니 10만 병력을 요동에 파병할 것을 명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왜나 여진이 그 틈을 노릴지 모른다. 조선 강토를 굳건히 지켜 번국(藩國)의 도리를 다하겠다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누구도 청병에 응하자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사대라는 것을 그저 대국으로 섬기는 것으로 이해했다. 세조 때 신료들은 파병 찬성 일변도였지만 국익을 따진 결과였다. 명의 청병 요청과는 별개로 조선은 독자적으로 건주여진(建州女眞남만주 지역 여진) 정벌을 준비하고 있었다. 명의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익 우선 기조는 성종 대에도 이어졌다. 1479년 명은 건주여진을 다시 치고자 하니 조선군이 퇴로를 차단하라는 칙서를 내렸다. 조정은 찬반으로 갈라졌다. 찬성 쪽은 대국을 섬기는 예의상 거절하기 어렵고, 세조 때 출병 전례가 있다고 했고, 반대 쪽은 평안도에 흉년이 들었고, 겨울이라는 시기 문제가 있다며 맞섰다. 승문원참교 정효종은 우리 백성을 창칼 사이로 나아가게 해 타국의 이익을 도와주겠습니까라는 상소를 올렸다. 대명사대(對明事大)와 조선의 국익은 언제라도 충돌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파병 논쟁이 가장 격렬한 때는 광해군 시기다. 파병 요청은 모두 4번이었다. 비변사를 필두로 거의 모든 신료가 찬성론을 펴고, 광해군 홀로 반대하는 형세였다. 광해군의 반대 이유는 조선 초기 때처럼 국제 정세와 실익을 따졌기 때문이었다. 광해군은 명의 후금 정벌 계획이 실패할 것으로 예측했다. 광해군은 파병 요청이 담긴 칙서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기도 했다. 대명사대 원칙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신료들이 보기엔 번국의 왕이 황제 명을 거부하는 것은 항명이자 패륜 행위와 다름 없었다.지금 한국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을 결정한 상태다. 국군의 해외 파병은 헌법 60조 2항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파병동의안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통과된다. 총의석 299석 가운데 169석(56.5%)을 차지하는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파병을 찬성할 경우 민주당이 반대하든 말든 국회 통과는 확실하다. 국익을 위하여 NO라고도 말할줄 알았던 조선의 해외파병 역사를 상고해 볼 시점이다./임병호 논설위원

대통령의 승부수

대통령의 승부수는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바꾼다. 역대 대통령들이 던진 정치적 승부수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줄기가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대표적인 승부수다. 당시 엄청난 반대 속에서도 밀어붙여 성공한 대표적인 승부수다. 먹고살기도 힘든 당시 상황에 정부수립 후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공사를 비싼 차관을 들여 추진한다는 반대를 무릅쓰고 건설한 경부고속도로는 후일 초고속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른바 노동법 날치기 통과는 대표적인 실패한 승부수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위해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154명이 성탄절에 서울 시내 호텔에 나눠 투숙하다 다음 날인 26일 새벽 차창이 가려진 관광버스를 타고 국회로 들어가 야당 없이 단독으로 11개 법안을 7분만에 처리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한 것은 성공한 승부수로 꼽힌다.대선 4수 끝에 꿈을 이룬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1997년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와의 이른바 DJP연합도 승부수였다. DJ는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둔 국민회의 총재 시절 내각제 개헌을 약속하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DJP연합을 이뤄 대통령이 됐지만 국민여론이 내각제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공조를 깼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위기가 닥칠 때마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지지도 추락에 직면한 그는 2005년 한나라당에 느닷없이 대연정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여당인 열린우리당 지지세력들로부터도 무모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제안으로 여겨졌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선 및 국회의원 총선 날짜를 맞추자는 윈포인트 개헌론은 마지막 승부수였지만 차기 정권때 개헌을 추진한다는 정치권의 어정쩡한 약속을 명분으로 철회했다.2009년 11월, 임기 2년차인 이명박(MB) 대통령은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지도 모를 세종시 문제에 정면돌파 승부수를 굳혔다. 대통령 후보시절 거듭 약속한 세종시 원안을 뒤집으려는 건 큰 정치적 부담이다.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내 친박측 의원들의 반대도 산 넘어 산이다. 승부수가 실패할 경우 겉잡을 수 없는 수세에 몰린다. 무슨 비법이 있는지 그래도 MB의 모습이 밝은 건 다행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낙태죄

모자보건법은 낙태(임신중절) 수술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 강간 등에 의한 임신이 이에 해당한다. 이외의 낙태는 범죄행위다. 형법은 부녀자의 낙태죄에 1년 이하의 징역 등을 규정하고 있다. 낙태 수술을 해준 의사는 더 무거운 2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그러나 형법의 낙태죄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 됐다. 낙태를 한 부녀자나 낙태를 도운 의사나 처벌을 받았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한 지 오래다.한 정부 자료에 의하면 연간 신생아 출산 수는 43만명인 데 비해 연간 낙태 건수는 35만건(명)으로 신생아 출산수에 근접한다. 그런데 이 같은 낙태의 96%가 모자보건법이 인정치 않는 불법 시술이라는 것이다. 잉태되는 생명의 절반 가까운 수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다. 인구 정책상 출산을 권장하지만, 낙태만 안 시키고 낳아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태아의 민법상 권리는 일부노출설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우리나라는 독립호흡설을 인정한다. 아기가 다 나와 숨쉬는 순간부터 사람의 권리를 향유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속권 등이다. 그러나 형법상으로는 태아도 생명의 권리를 인정, 낙태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대통령직속 미래위원회가 불법낙태를 단속하는 저출산대책을 오는 25일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저출산대책엔 3자녀 이상 혜택, 보육료 지원 등도 물론 포함된다. 그러나 불법낙태 단속은 좋지만, 이것이 저출산대책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왜냐면 부부간에 아이를 더 키우기가 어려워 부득이 낙태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불륜으로 인한 임신은 키우고 싶어도 낳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확인된 통계는 없다. 다만 혼외정사, 즉 불륜의 임신으로 인한 낙태 또한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면, 불법낙태 단속의 실효가 있기 어렵다.어떻든 뱃속의 생명을 제거하는 낙태는 죄악이다. 도덕적으로는 살인이나 진배없다. 낙태할 임신이 두려울 것 같으면, 아예 피임으로 잉태를 예방해야 된다. 여성만의 책임이 아니다. 남성도 이에 책임감을 가져야 된다. /임양은 주필

정 총리, 무릎꿇다

일본 언론이 연일 한국의 화재방재 미비 실태를 때리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6시30분께 부산 국제시장 실내사격장에서 일어난 불로 숨진 10명 가운데, 자국민 관광객 8명이 희생된 참사를 톱뉴스로 다루면서 한국의 만성적 안전 불감증을 꼬집는 것이다.방화(防火) 자재가 성능이 불량한 인화(引火) 자재로 둔갑됐다고도 하고, 스프링클러는 눈가림에 불과해 작동되지 않았다고도 하고, 불나기 8일 전에 안전검사에서 합격된 시설이 불났다는 등 질책성 기사가 넘쳐난다. 대형화재 참사 때마다 국내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 그대로 지적되고 있다. 안전 불감증의 고질적 병폐가 이제 국제 망신까지 자초하기에 이르렀다.정운찬 국무총리가 무릎을 꿇었다. 희생자의 시신이 안치된 양산 부산대병원 영안실을 찾아간 정 총리는 일본인 유족 32명에게 무릎을 꿇고 정중히 사과했다. 일본은 우리의 대통령중심제와 다른 내각책임제다. 그렇긴 해도 자국 같으면 행정부 수반인 내각총리대신과 같은 정 총리의 무릎을 꿇은 사과가 어떻게 비쳤을지 궁금하다.때 마침 아키히토(明仁명인) 일왕을 예방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허리를 95도나 굽혀 인사한 것은 과공(過恭)이라는 구설수가 미국 신문에 보도됐다. 허리를 95도 각도로 굽히는 인사법을 일본에서는 사이게이레(最敬禮최경례)라고 한다. 일왕에게만 하는 최고의 절이다.일국의 총리가 일본인 유족인 평민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으면 뼈 아프게 여겨야 한다. 대형화재 참사 때마다 지적되곤 하는 화재 방재의 미비는 부산 국제시장 실내사격장에 국한한 게 아니다. 지금도 나라 안 도처에 그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잖아도 겨울로 접어들어 날씨가 추워지면서 크고 작은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 차원의 철저한 일제 화재예방점검이 강도높게 있어야 할 때다.이번 일본인 관광객이 희생된 화재 집단 참사로 한국은 안전대책이 빵점인 나라로 일본 사회에 낙인 찍혔다. 당분간은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들고, 또 관광객이 오더라도 안전대책에 의문을 제기해도 참고 친절히 응대해야 하는 수모를 겪을 판이다./임양은 주필

수능 수험생에게

수능시험을 마친 지 며칠 됐다. 가위에 짓눌린 듯한 가슴이 풀렸을 것이다. 앞으로 성적 통보가 있고, 또 대학 지원 문제가 있긴 하나 일단은 해방감을 느낄 것이다. 이렇긴 하면서도 시험을 잘 치른 학생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더 잘하지 못한 아쉬움을 갖고, 잘 못 치른 학생은 못 치른 데 대한 후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못했어도 자신의 책임이다. 비겁하게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지 말라, 결과에 대한 책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된 자세다.수능시험 성적이 좋으면 좋은 새 출발이긴 하다. 하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좋은 대학을 가면 물론 좋다. 그러나 좋은 대학이 좋은 미래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이다. 좋은 시험 성적, 좋은 대학이 행복의 절대적 조건은 아니다. 다 자신이 하기에 달렸다. 대학에 뭣하러 가느냐는 것부터 진지하게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수능시험을 마친 고3은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다. 수능시험을 마쳤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지금 역시 중요한 시기다. 뭣보다 책을 읽으라, 그동안 시험에 밀려 읽지 못했던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할 시기가 지금이다. 무슨 책이든 상관없다. 동서양의 고전도 좋고 국내 고전도 좋다. 현대인의 유명 저서도 좋다. 한 질로 된 총서나 단행본도 좋고, 문학철학과학역사시사 분야 등 어느 것도 좋다. 자신이 읽기 쉬운 편한 책이면 뭣이든 상관이 없다.열 권의 책을 두고 어느 것부터 읽을 것인가를 생각할 시간에 열 권의 책을 다 읽는다는 것은 서구의 속담이다. 요컨대 독서의 시작이 중요하다. 열 권이면 열 권, 삼십 권이면 삼십 권, 아니 오십 권 백 권도 좋다. 일정한 목표를 정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라, 지금이 시기다. 지금 읽는 책의 영양분이 대학 입시의 논술이나 면접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평생 동안 두고두고 도움이 된다.학생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유의 욕구가 물론 꿈틀거릴 것이다. 하지만 고3 예비졸업생 시절은 인생에서 한 번뿐이다. 어른 흉내에 조급할 것 없다. 굳이 흉내를 안 내어도, 어른 노릇을 지겹도록 해야 할 때가 곧 닥친다. /임양은 주필

우리의 소원

우리의 소원은 통일 / 꿈에도 소원은 통일 / 이 정성 다해서 통일 / 통일을 이루자 / 이 겨레 살리는 통일 / 이 나라 살리는 통일 / 통일이여 어서 오라 / 통일이여 오라우리의 소원은 처음엔 어린이극용 합창곡이었다. 1947년 KBS의 전신 서울중앙방송의 의뢰로 삽화가이자 극작가인 안석주(1950년 작고) 선생이 노랫말을 지었다. 안 선생은 그때 31절 기념 라디오 준비극을 맡았다. 안 선생은 자신이 작사한 노랫말을 서울대 음대 재학생인 아들에게 작곡을 맡겼다. 아들은 늘 다니던 교회에서 기도를 하던 중 문득 떠오른 멜로디를 놓치지 않고 오선지에 옮겼다.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 세상에 빛을 본 순간이었다.반응은 대단했다. 전파를 타자마자 각 지방에서 연주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엔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당시 문교부에 의해 개사돼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그리고 40년 세월이 흘렀다. 1989년 북한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임수경씨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민족의 노래가 됐다. 북한에선 이 노래를 그쪽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임수경씨 방북 후 남한 사람 작품인 것을 알고 북한도 우리의 소원 같은 노래를 만들기 위해 두 번이나 공모를 했다고 한다.우리의 소원을 작곡한 그 음대생이 안병원 옹이다. 지금 83세다. 그는 국내 최초 어린이 노래단 봉선화 동요회를 만들었고, 1954년 한국어린이 음악사절단을 이끌며 미국 43개주를 돌았다. 구슬비 나 혼자서 푸른 바람 등 주옥 같은 동요 300여 곡을 만들었다.임수경 씨가 평양에서 우리의 소원을 부른 후 북한은 그에게 3번이나 이 노래 지휘를 요청했지만 이산가족들의 한을 푼 뒤 방북하겠다며 고사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이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을 부르는 모습을 TV로 본 그는 2001년 4월 평양에서 열린 제19차 4월의 봄 친선 예술축전에 참가하면서 드디어 북한 땅을 밟았다. 그때 우리의 소원을 지휘했다.(통일이 되어) 이 노래가 그만 불리는 날이 빨리 와야한다는 안병원 옹은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다. 며칠 전 서울을 다녀갔다. /임병호 논설위원

노벨문학상 푸대접

노벨문학상은 해마다 발표 전 수상이 예상되는 유력 작가들의 작품을 미리 준비하는 게 출판계의 관행이다. 그런데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의 작품집이 한국 서점가에선 보이지 않는다. 국내 어느 출판사도 뮐러의 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출판사들이 앞다퉈 수상자의 책을 쏟아내며 마케팅을 펼치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이전에도 수상 작가들 중에 대중성이 떨어지는 이들이 있었지만 국내에 작품이 소개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04년 수상자 엘프리데 옐리네크도 국내 독자들에게 생소하고 작품도 난해했지만 이미 피아노치는 여자(문학동네)가 출간된 상태였다. 그러나 뮐러는 그림에세이집 책그림책(민음사)에 실린 짧은 에세이 한 편이 수상자 발표 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유일한 번역본이다.수상자 발표 후 뮐러의 작품이 소개된 것은 월간문예지 현대문학 11호 지면이 유일하다. 하지만 뮐러를 특집으로 조명하면서 작품을 일부 발췌해 최소한의 글맛만 보여 주었다. 1984년 출간된 대표작 저지대에 수록된 단편 조사와 1994년 출간된 장편소설 마음 속의 동물 일부, 올해 출간된 숨 쉬는 그네 일부를 발췌 번역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이유는 있다. 헤르타 뮐러의 작품은 참여문학 계열이라서 그런 배경을 알지 못하면 작품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뮐러를 특집으로 다룬 현대문학도 뮐러의 작품은 묘사가 시적이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대중성은 떨어진다고 작품집 출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높은 프리미엄이 있는데도 출판사들이 수익성을 염려해 뮐러의 작품을 출판하지 않아 그의 작품을 국내 독자들이 읽을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뭘러는 독일 문단에서 대중성은 높지 않지만 일정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중요한 작가로 알려졌다. 독일 문단에서 인기가 적다 하여 세계적으로 그렇게 평가받는 건 아니다. 더구나 책은 출간돼 봐야 독자들의 관심 유무를 알게 된다. 국내 독자들이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해외 작가들의 작품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는 출판 환경이 조성돼야 문화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헤르타 뮐러의 작품을 읽고 싶다./임병호 논설위원

통합시와 지방선거

내년 62 지방선거의 도내 판도가 크게 달라질 것 같다. 3개 지역 9개 시의 통합시 선정은 31개 시군의 29%에 해당한다. 큰 변동이 아닐 수 없다. 기초광역의원 선거도 영향을 받지만, 뭣보다 3개 통합시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의 극심한 각축전이 전망된다.물론 이는 3개 지역 9개 시가 3개 통합시로 거듭났을 경우에 예상되는 상황이다. 만약 시의회에 이어 주민투표에서도 통합이 부결되면 통합은 불발된다. 그러나 통합이 성사되면 초미의 관심사가 62 지방선거다. 행정자치부가 통합시 출범을 내년 7월1일로 잡고 있는 것은 62 지방선거를 통합시 체제로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의 선거판도의 유불리에 따라 통합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수원시의 경우, 내년 시장 선거에 자천, 타천으로 출마설이 나도는 사람들 수가 무려 36명에 이른다는 얘기는 여기서 한 번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화성시와 오산시를 합치는 통합시가 될 것 같으면 시장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통합시가 되면 인구 또한 약 150만명에 이른다. 통합시장을 한 번 해보겠다는 욕심이랄까, 의욕이랄까 아무튼 그런 맘이 생길 법도 하다.통합시가 되면 경기도의 수부도시 수원에다가, 해양을 낀 전원도시 및 산업도시의 화성 그리고 내륙도시인 오산이 한 가족이 되어 다양한 자족적 복합도시가 형성된다. 원래가 오산시는 화성시가 되기 전인 화성군에서 생겼고, 화성군은 60년전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수원군에 속했었다.그나저나 내년 62 지방선거에 뜻을 둔 사람들이 더 바빠지게 됐다. 특히 시장선거는 더 한다. 통합시 논의가 전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작 구체적으로 추진 단계에 들어선 것은 급격한 변화다.사정은 성남지역, 안양지역도 다를바가 없다. 주요한 것은 통합 논의는 충분히 활성화해야 하는 반면에, 내력없이 시일을 끌기만 해선 무익하다는 사실이다. 가부간에 결론을 너무 늦지않게 내야 한다. /임양은 주필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이란 게 나왔다. 4천389명의 명단이 실렸다. 민족문제연구소란데서 펴냈다. 이엔 대법원에서 반국가단체로 확정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관련 인사들이 끼어 있다. 1979년에 투옥된 공산주의 지하조직이었다. 친일인명사전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8억원을 국비로 지원해 나오게 됐다.1905년 을사늑약을 지탄한 시일야방성대곡의 사설을 쓴 황성신문 장지연 주필을 비롯, 대한민국 건국후 국가 발전에 기여가 큰 김성수 부통령, 박정희 대통령 등 많은 인사들을 친일파로 분류했다. 친일 행적의 사실도 수록했다.문제는 분류의 관점이다. 일제 강점 36년은 나치 독일이 2차대전 때 프랑스를 일시 점령했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예컨대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성수의 경우, 학병 지원을 독려하는 글을 문제 삼았다. 명의를 도용 당했던, 본인이 기고했던 그런 글이 나간 것은 일제 말기다. 그 이전의 저항운동은 이미 아는 일이다.그러나 그 같은 글이 있었던 것은 물론 불행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된다. 당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지금의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는 폐교되고 없어졌을 것이라는 점이다.일제 식민지 지배하에 살면서는 그들의 강요를 최소한으로나마 받아들이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었던 것이 그들의 식민지정책이었다. 잔학하고 교활했던 식민지 정책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지금의 눈으로 친일을 재단하는 것은 옥석을 구분치 못하는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그래도 그 같은 관점으로 친일인명사전을 기왕 만들었다면 제대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좌파 인사는 죄다 빼고 우파 인사만 수록한 것은 의도적 편향이다. 예컨대 광복 전후에 좌파운동을 한 여운형 역시 학병 권유를 하고, 심지어는 815 직전 일본 총독부로부터 치안권을 인수받은 친일 행각을 벌였는데도 제외됐다.친일인명사전을 만든 기념식 자리에선 애국가도 부르지 않고, 태극기에 경례도 하지 않았다. 국민의례를 거부, 이른바 민중의례를 한 자체가 이들의 친일인명사전이 어떤 성격인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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