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민생체험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두 차례에 걸친 일일택시기사 체험에 이어 도청 직원 50여명이 잇따라 일일택시 기사 체험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이른바 민생체험이다. 행정 당국자가 민생체험에 나서는 것은 가장 좋은 시책 방향의 결정이다. 또 경영 및 임금 구조에 문제점이 많은 것이 법인택시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긴 하나 이상하다. 도청 직원이 떼거리로 서두는 택시기사 민생체험이 과연 뭣 때문인지 궁금하다. 민생이 어려운 건 비단 택시기사 분야만이 아니다. 도청 직원이 무더기로 민생체험에 나설 요량이면 택시기사 말고도 허다하다. 택시기사를 하려면 1종운전면허자격증 말고도 운전종사원 교육을 이수한 뒤 실무교육에 합격해야 된다. 이에 소요되는 노력과 시간이 여간 아니다. 굳이 이러지 않고도 민생체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도청 공무원들이 자가용 승용차를 안 타고 택시를 타거나 시내버스를 타보는 것도 좋은 민생체험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각기 업무를 맡고 있는 행정분야의 현장을 직접 찾아 몸소 경험하는 것은 훌륭한 민생체험이다. 행정이 현장과 괴리현상을 빚고 있는 원인으로 첫손 꼽히는 것이 탁상행정이다. 책상머리 생각으로는 현장의 실정을 반영하기가 어렵다. 이런 점에서 긍정적으로 봐야 할 민생체험이 택시 분야에만 치우친 쏠림 현상은 부정적이다. ‘일견폐형(一犬吠形)이니, 백견폐성(百犬吠聲)’이라고 했다. 후한(後漢)의 사상가 왕부(王付)가 저서 ‘잠부론’(潛夫論)에서 한 말이다. ‘잠부론’은 유교주의 정치론을 설파한 책이다. 일일택시기사 체험은 김문수 도지사가 두 차례에 걸쳐 한 것으로 충분하다. 이에 이은 도청 직원의 무더기 택시기사 체험은 오해를 사기에 십상이다. 무슨 일이든 일은 형평성에 합치돼야 한다. 경기도청의 민생체험 쏠림은 형평성을 잃고 있다. /임양은 주필

바둑 스포츠

바둑은 중국의 상고시대인 요·순 임금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博物誌·송나라 李石 등이 펴낸 책) 지금으로부터 약 4천300년 전이다. 그러니까 문자가 생기기 전에 바둑이 먼저 생겼다. 바둑이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다. 후한서(後漢書·후한의 역사책)는 ‘백제 사람은 여러 유희 중 바둑을 가장 즐긴다’고 했고, 구당서(舊唐書·당나라 역사책)에서는 ‘고구려 사람은 바둑과 투호를 좋아한다’고 써 있다고 한다. 신라 효성왕 2년(738)엔 당나라와 바둑외교를 벌였다는 기록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 조선시대 들어선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 선조 때의 명상 유성룡 그리고 흥선대원군 등이 고수였던 것으로 전한다. 특히 국수를 자칭했던 흥선대원군은 자신을 이긴 백두 김만수를 일약 경상도 의성고을 사또로 임명했다는 설화가 있다. 바둑을 두면 상대의 성품이나 도량이 반면에 거울처럼 나타난다. 한판의 바둑은 또 흥망성쇠가 있어 희로애락의 인생 여정을 방불케 한다. 인생은 다시 못살아도 바둑은 실패를 교훈삼아 다시 두(사)는 데 묘미가 있다. ‘소탐대실’ 등 바둑의 십계명은 인생살이의 계명이 되기도 한다. 바둑은 학술적·예술적·심리적인 3대 요소를 지닌 것으로 전문가들은 말한다. 학술적인 것은 이론, 예술적인 것은 성취감, 심리적인 것은 바둑 두는 마음의 자세를 일컫는다. 아울러 생각하는 힘이 작용되므로 ‘두뇌 스포츠’라고도 한다. 바둑이 대한체육회 정식 종목이 됐다. 지난 4일 대한체육회 이사회에 이어 19일 대의원총회를 거쳐 스포츠 종목으로 채택됐다. 이로써 전국체육대회에서 시범 종목으로 거행됐던 바둑 경기가 메달과 점수가 부과되는 정식 정목으로 치르게 된다. 오는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역시 정식 종목으로 금메달 3개가 걸려있다. 바둑은 한·중·일과 대만 등 극동지역 나라가 주축을 이루는 가운데 서구에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명지대 바둑학과에서는 유럽에서 온 유학생들이 적잖다. 언젠가는 바둑이 올림픽대회 종목으로도 채택될 날이 있을 것이다. /임양은 주필

고추

고추를 고초(苦椒)라고 했다. 椒는 후추초다. 매운 후추라는 뜻이다. 경북 경산지방의 민요에 ‘고초 당초 맵다 해도 사집살이 더 맵더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당초는 ‘唐草’다. 역시 고추를 말한다. 고추는 고온성 채소다. 25℃가 돼야 싹을 틔운다. 남방계 작물이다. 북방계 작물로는 감자가 있다. ‘북감자’라고도 한다. 고추를 또 남만초(南蠻草), 왜초(倭草)라고도 하는데 남방계 작물인 데서 유래된다. 고추는 감기 등 방어에 특효인 비타민C가 풍부하다. 사과에 비해 50배나 된다. 감기에 걸리면 소주에 고추가루를 타서 마시는 민속 전래의 단방이 이에 근거한다. 고추의 주성분은 캡사이신(capsycine)이다. 유산발효를 돕고 산패작용을 막는다. 고추가 김장에 빠질 수 없는 이유다. 고추의 일본 전래설을 부정하는 새 학설이 나왔다.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박사팀이 최근 발간된 전문지에서 이같이 밝혔다. 세조 6년(1460년)에 펴낸 ‘식료찬요’를 비롯해 고추장을 뜻하는 ‘초장’(椒醬)이란 말이 조선조 초기 고문헌에서 많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고추장으로 이름난 전북 순창에서 전래되는 고추장 설화 가운데 이성계가 나온다. 무학대사가 은거했던 순창에 다녀가면서 어느 농가에서 식사 중 맛본 고추장에 매료되어 ‘순창초장’으로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이 설화는 고추의 조선 초기설과 합치된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치른 조선 중기 선조 때 나온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 사람들이 고추를 가져와 ‘왜겨자’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왜초’니 ‘남만초’니 하는 고추 이름과 상통된다. 고추의 원산지는 중부아메리카다. 일본에는 교역을 한 포르투칼 상인들이 가져갔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동아출판사 ‘세계대백과사전’은 일본 문헌에는 고추가 조선에서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며, 이는 조선이 역수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기술해 놓고 있다. 당초(唐草)라고도 했던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말이 또 있다. 1천200년 전의 당나라 땐 아닐지 몰라도 당은 중국을 의미하는 걸로 보는 것이다. 식품사의 연구 과제다. 한국식품연구원 연구팀도 조선 초기설만 제기했을 뿐, 분명한 고추 전래의 기원은 규명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고추는 한·중·일 3국 중 한국민이 가장 애용하는 국민적 식품이라는 사실이다. /임양은 주필

추기경님 다시 오신다

지난 16일 선종(善終)하신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이 오늘 오전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장례미사를 마치고 귀천(歸天)하신다. 장례미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느님 앞에서 영원한 삶을 시작하는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에 장례 절차 중 가장 엄숙하다. 추기경이라는 지위에 계시면서 끊임 없이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을 갈구한 소박한 신앙인이어서 더욱 가슴이 뜨거워진다. 장례미사는 추기경님이 와병 중에도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르도록 누누이 당부해 일반 신자의 장례미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된다.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스도의 평화와 화해를 한 몸으로 실천하셨던 추기경님에 대한 사회적인 존경심은 밤낮 없는 조문 행렬에서도 재확인됐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원로로 자리잡고 계셨던 추기경님에 대한 애도의 물결은 반목과 질시로 나뉘었던 여야·진보·종교간 벽도 허물었다. 전·현직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 문인들도 추기경님의 말씀과 인연을 회고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캐서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 정의를 위해 기여하신 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세계인들이 명복을 빌었다. 거듭 돌아보건대 김수환 추기경님은 진정 그 존재만으로도 빛을 뿌리는 분이셨다.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셨다.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서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교회 안에서만 머물지 않으시고 고통받고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해 오셨다. “사랑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두 눈을 기증하시고 87세로 영면하신 추기경님은 평생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신 성직자였다. 말 못하는 갓난 아이의 인권문제까지 깊은 관심을 가지셨다. 갓난 아이들이 해외에 입양되는 것을 마음 아파 하시면서 국내 입양기관을 만드셨다. 갈 곳 없는 에이즈 환자를 위해 국내 처음으로 에이즈센터를 세우셨다. 힘 없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항상 마음을 쓰셨다. 이제 김수환 추기경님은 명당성당을 뒤로 하신 채 오늘 오후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되신다. 우리 곁을 떠나신다. 그러나 영혼은 다시 돌아 오신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 인간들도 영원한 삶을 누리도록 인도하시기 위해 다시 오신다. 부활하신다 /임병호 논설위원

민권사상

촛불 시위현장에서 어김없이 부르는 노래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내용이다. 원래 헌법 1조의 정신은 다산 정약용(1762~1836)에게서 나왔다. ‘목민관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라는 산문에서다. “지금의 목민관은 옛날의 제후나 마찬가지다. 거처하는 건물, 수레와 말, 의복과 음식, 좌우의 측근과 시종, 하인들이 거의 나라의 임금에 비길 정도다.(중략) 그러므로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 있다고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어찌 바른 이치이겠는가. 목민관은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모든 권력이 백성한테서 나온다”는 다산의 말은 서구 사상과는 무관하게 조선에서 자생한 ‘민권사상’이다. 여기서 다산은 공직자의 개념을 왕으로까지 확산하고 그 비유를 파리에서 찾았다. 1809~1810년에 기근과 전염병으로 수많은 백성이 죽었다. 마을과 거리에 쌓인 시신에서 파리떼가 생겨나 극성을 부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산은 그 파리떼가 바로 굶주려 죽은 백성이 변신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백성의 넋을 위로하는 마음에서 ‘파리를 조문한다’는 글을 지었다. “아아, 파리를 죽여선 안 된다. 굶어 죽은 사람들이 파리가 되었다. 아아, 이 파리들이 어찌 우리 사람들과 마찬가지가 아니랴.(중략) 파리야, 날아서 북쪽으로 가거라. 북으로 천 리를 날아 궁궐로 가거라. 임금님께 그대의 충정을 하소연하고 깊은 슬품 펼쳐 아뢰어라. 어려운 궁궐이라고 시비를 말 못하진 마라. 해와 달처럼 환히 백성의 사정 비추어서 어진 정치 펴 주십사 간곡히 아뢰어라.” 다산은 평생토록 민중의 편에 서서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예리하고 철저하게 비판한 선비였다. 그렇지만 꽃과 나무, 산과 물, 가까운 사람들과 정을 나누기도 하고 홀로 고요와 고독 속에 침잠하기도 하였다. 다산은 국화가 다른 꽃보다 뛰어난 네 가지를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이라고 꼽았다. 40세 때 정적의 모함을 받아 18년 동안 유배된 다산은 “나는 나를 허투루 간수하였다가 나를 잃은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낮췄다. 다산이 굶주린 파리떼를 조문한 마음을 위정자들이 아는 지 모르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김수환 추기경님

김수환 추기경님, 저는 성당에 나가는 카톨릭 신자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꾸 눈물이 납니다. 엊그제 저녁 7시10분경입니다. TV에서 추기경님 생애가 방송됐습니다. 중간에서 시청한 저는 갑자기 웬일인가 싶다가 선종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가슴속 명치가 뜨겁게 치솟더니 눈물 방울이 뚝 떨어졌습니다. 님의 생전에 직접 뵌적도, 강론 한번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저 먼 발치에서 우리 사회의 큰 어른 한 분이 계신다고만 여겨왔습니다. 그랬는데 왜 이토록 슬픈 마음이 들까요. 님이 떠나시고 나서 나도 모르게 의지했던 마음속 그 자리가 얼마나 컸던가를 비로소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냥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니 뚫린 것만 같아 허전합니다. 저만이 아닙니다. 많은 민초들이 슬퍼합니다. 종교계는 종교를 초월해 한결같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안타까워 합니다. 님이 말없이 누워 계신 명동성당에 조문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생전에 사회통합의 구심점이 되어 몸소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린 그 같은 정신적 지도자를 잃었습니다. 독재 권력에도, 총칼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민주주의를 지켜주시고 약자편에 서주신 담대한 그 많은 일화가 이제 전설처럼 남게 됐습니다. 돌아보면 실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님의 생전엔 미처 다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서야 깨닫는 저의 미거함이 정말 부끄럽습니다. 어려운 투병 중에도 인공호흡기를 마다 하신 것은 자연주의적 인명 가치의 존중으로 믿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섭리니까요. 불우한 이를 위해 빛을 남기신 것은 평소 실천해온 박애정신으로 압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도 우리에게 ‘사랑’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은 어려운 이 시대에 더 할수 없는 처방입니다. 하실 일, 들려주셔야 할 말씀은 아직도 많은 때에 가시면서 남기신 그 한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제 더는 눈물만 흘리진 않겠습니다. 님은 가셨어도 여전히 우리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이십니다. 뜻을 실천하는 도덕적 용기를 갖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삼가 저희들을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 임양은 주필

건달 국회의원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건달이다” 항간에 나도는 풍자다. ‘건달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드는 국민의 세부담이 연간 약 7억원이다. 이런 ‘건달들’을 자그만치 299명이나 두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 국회다. 국회도 구조조정을 해야 된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국가사회가 개혁차원의 구조조정으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있다. 유독 국회만이 치외법권 지대다. 국회의원도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고, 국회의원 세비도 깎아야 하고, 국회의원 1명당 너댓명씩 두는 비서진도 줄여야 하고, 국회의원 수도 감원해야 된다. 헌법 41조 2항에서 국회의원 정원을 ‘200명 이상’으로 규정해 더는 줄일 수 없지만 200여명으로 줄여야 된다. 국회의원 수를 최소 200명으로 정한 것은 너무 적은 소수 국회를 만들어 독재의 하부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을 막기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많아 탈이다. 국회의원 같지 않은 ‘세금 도둑’의 국회의원이 수두룩하다. 국회의원을 무보수 봉사직으로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사회 원로들의 모임인 ‘성숙한 사회가꾸기 모임’이 지난 12일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가진 ‘정치개혁을 위한 대국민 제안문’ 발표를 통해 그같이 밝혔다. 권력을 사유화하는 폐단이 우리의 민주주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국회의원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영예만으로도 충분한 보답이 된다고 했다. 김태길 전 학술원 회장, 손봉호 전 동덕여대 총장, 강지원 변호사 등 전직 장관 및 대학총장 교수 등으로 구성된 모임이다. 영국이나 스위스 등 선진국은 국회의원을 무보수 봉사직으로 선출하고 있는데 비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출세를 위해 의원직에 혈안이 돼 매달리고 있다. 국회의원 무보수 봉사직 제안이 당장은 실현되긴 어렵더라도, 국민사회가 한번 깊이 생각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건달들’이기 때문이다. /임양은 주필

남경필 의원

이진우 변호사는 11·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지검 검사시절이다. 사무실에서 이례적인 묵상 기도를 할 때가 있다. 결심공판 법정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그런 날은 사형이 구형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의 형 집행은 법무부 장관의 결재가 나야 한다. 이의 형집행 결재에 도장을 직접 찍지 않고, 결재 받으러 온 사람에게 도장을 주며 찍으라고 하던 장관이 있었다. 공문서에 지금처럼 사인을 않고 도장을 찍던 때다. 사형을 구형하는 검사나, 선고하는 판사나, 집행하는 장관이나 기분이 좋을리는 만무하다. 사회도 그렇다. 부녀자 연쇄 살인범 강호순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중론은 사형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 같은 인성 상실의 흉악범이 무기나 유기징역으로 살다가 감형되어 언젠간 사회에 복귀할 우려가 있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12년 동안 미집행된 사형수 문제가 공론화됐다. 한나라당은 당정협의회에서 형집행을 촉구했다. 이에 반대하는 것도 무슨 말인지 안다. ‘법을 빙자한 또 하나의 보복 살인’이란 말도, 자연법적 사상의 인명 논리도 안다. 특히 정치범은 진실 규명이 미진한 재판으로 벼락치기 사형을 집행한 폐단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감형 없는 종신형의 대안은 대책이 될 수 없다. 사형과 종신형은 천지차이다. 사형제가 흉악범 방지에 효과가 없다는 반박은 허구다. 사형제가 없으면 맘놓고 설칠 수 있는 것이 강력범들이다. 흉악범 발생을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는 것은 더욱 말도 안 되는 어거지다. 남경필 국회의원(수원팔달·한나라당) 말이 괴이하다. 그는 미집행 사형수 문제에 형집행을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2년간 어렵게 쌓아 놓은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고, 사실상의 사형폐지국으로 얻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상실한다”고 했다. 그가말한 ‘사회적 가치’ ‘국제사회 신뢰’의 실체가 뭔지 알 수 없다. 예컨대 미국이나 일본이 사형제가 있어 신뢰를 잃었단 말은 듣지 못했다. 사형에 처하는 죄목이 너무 많은 건 인정한다. 이런 처벌 규정을 개정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이기를 스스로 부정한 흉악범의 사형은 인성사회 확립을 위해 마땅하다. 법치를 책임지는 법무부 장관이 사형수의 형 집행을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다. /임양은 주필

범죄 교과서

국내 TV에서 방영되는 외국의 범죄 수사물 드라마가 적지 않다. 2000년 첫선을 보인 ‘CSI’ 시리즈는 과학수사대의 활약을 다룬 드라마다. 범죄심리분석관인 프로파일러의 활약을 다룬 ‘크리미널 마인드’, 피해자의 뼈를 추적해 살해 방법과 살인자를 찾아내는 ‘본즈’, 과거 미해결된 사건을 재수사하는 ‘콜드케이스’ 등도 방영된다. 영국 역시 수사물이 인기다. 희대의 연쇄 살인마 잭더 리퍼의 얘기를 그린 ‘화이트채플’은 최근 첫선을 보이자마자 30%의 시청률을 올렸다. BBC에서 새로 론칭한 드라마 두 편 모두 범죄 수사물이다. 국내 지상파인 MBC는 ‘CSI’를, SBS에선 ‘넘버스’를 방영해 인기를 모았다. 미디 전문 케이블 채널인 폭스 채널의 드라마 10편 중 9편이 범죄 수사물이다. 수사 드라마는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교훈을 주지만 문제가 크다. 드라마 내용이 범죄 방법을 가르쳐줄 우려가 있어서다. 지난 2006년 오하이오주에서 일어난 모녀 살해사건 후, 드라마 ‘CSI’가 법죄자에게 어떤 ‘학습 효과’를 주는가에 대한 논의가 벌어졌다. 체포된 용의자는 범행 뒤 손에 묻은 피를 표백제로 완벽히 닦아내고, 시체를 쌌던 담요와 옷가지를 모두 불태웠다. 평소 CSI 팬임을 자처했던 범인은 DNA 채취로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 TV가 보여준 대로 뒤처리를 감행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CSI 효과가 범죄자들에게 증거를 감추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법의학 전문가들과 검사, 경찰 상당수가 드라마가 범죄자들에게 증거를 인멸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교육시키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고 전했다. 범죄 수사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를 끄는 건 인간의 공격적 욕구와 성적 욕구를 대리만족 시켜주기 때문이지만, 문제는 모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반사회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이런 작품에 계속 노출될 경우 마치 영화 대본을 따라 하듯, 행동의 틀을 형성하게 된다. 연쇄 살인범 강호순도 “(드라마 등을 통해 알고) DNA가 묻었을까 봐 손가락 끝을 훼손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피해자들의 옷을 모두 벗긴 뒤 불태웠다”고 한다. 범죄 수사 드라마·영화가 일종의 ‘범죄 교과서’가 되는 실로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초선의원의 입

18대 국회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이 대부분 입을 닫았다. 입법 전쟁, 용산 참사, 개각 등 쟁점 현안이 잇따르고 있지만 초선들의 입이 열리지 않는다. ‘정중동(靜中動)’ 행보라고 보기엔 침묵의 시간이 너무 길다. 패기와 열정으로 정치권 소금 역할을 했던 초선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초선들이 현안 관련 소신 발언을 꺼리는 모습은 올 들어 특히 뚜렷해졌다. 국정감사와 함께 날카로운 질의로 초선들의 진면목을 유감 없이 과시할 수 있는 대정부 질문 신청도 그렇다. 한나라당 원내행정실은 1월 중순부터 대정부 질문 신청을 받았으나 신청자가 크게 부족해 2월 임시국회 직전까지 재공모해야 했다. 초선이 91명이나 되지만 20여명에 불과한 질문자 수를 채우는데 진땀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공룡 여당 내 신선한 목소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초선 모임들도 제 역할을 아직 못한다. ‘이목회(耳目會)’ 등 일부 모임은 사실상 와해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쓴소리’는 그래서 거의 남경필·원희룡 의원 등의 몫이다. 초선 무기력증 원인은 공천 후유증 원인이 크다. 계파 나눠먹기식으로 비판을 받은 지난해 공천을 경험한 초선들이 계파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공천 제도를 개혁하지 않는 한 자신의 향후 정치적 입지를 생각하는 의원들이 마음속 의견을 표출하지 못한다. 주류가 결정한 당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초선 의원들은 “중진 의원들의 지적이 계속되면서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게 됐다”고 토로한다. 그런데 홍정욱 의원이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아마추어에게 프로 중의 프로인 브로드웨이 무대를 맡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현 후보자가 2002년 쓴 ‘한반도 평화와 군사안보’란 글을 거론하며 “현 후보자는 이 글에서 ‘한반도 장래를 생각할 때 가장 영구적이고 탄탄한 평화의 도래는 같은 체제를 가진 두 국가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통일된 한반도가 아니어도 별로 상관은 없다’라고 적시한 바 있다. ‘통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식의 통일관은 통일부 장관의 견해로선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정욱 의원의 말대로 현인택 후보자의 통일관은 걱정스럽다. 여야를 불문하고 홍 의원 같은 ‘소신 있는 초선 발언’이 기다려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틀니

진(秦)나라가 6국을 통일, 중국 최초의 대제국을 세운 게 BC 221년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를 왕으로 불렀던 것을 중앙집권의 대제국 군주를 처음으로 황제라고 칭한 것이 이때부터다.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유래다. 시황제의 성명은 ‘영정’이다. 시황제는 유명한 아방궁을 두는 등 주지육림의 호사를 누렸다. 부러울 게 없는 그도 부러운 게 하나가 있었다. 건치다. 건강한 이다. 이가 나빠 맛있는 음식이 많아도 잘 먹지 못했던 것으로 문헌은 전한다. 고기도 다져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연회자리에서 신하가 이가 좋은 식성은 금기로 삼기도 했다. 이는 간수를 잘해야 하긴 하지만 유전이다. 시황제는 우리 나이로 50에 죽었다. 나이 50살에 벌써 이가 그토록 나빴다면 유전적이었던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이가 나빠 먹지 못하면 정말 딱한 노릇이다. “실컷 먹어 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것은 이가 나쁜 이들의 탄식이다. 옛부터 건강한 이를 오복 중 하나로 꼽았던 연유가 이 때문이다. 치과 의술이 극도로 발달했다. 지금은 의치나 틀니는 기본이고 이를 새로 심기도 한다. 젖먹이 때부터 난 20개의 유치가 빠진 뒤에 나는 32개의 영구치는 한 번 빠지면 다신 안 난다. 다시 안 나는 영구치를 의치로 해 넣어 보철하기도 하고 많이 빠졌으면 틀니를 하기도 하는데, 심는 이는 원래의 제 이보다 낫다. 시황제가 지금 같았으면 이가 나빠 고생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그 무렵의 치과 의술은 치통에 피마자 열매를 뜨겁게 달구어 환부에 대고 진정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현대인들도 이가 나빠 고생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의술은 발달했지만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새로 심는 것은 고사하고 의치도 못해 놔둔 게 더 나빠져 틀니를 해야 하는데도 못하는 노인이 수두룩하다. 의치나 틀니 정도는 이제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한다. 인천시 남동구보건소가 무료로 틀니를 해주고 있다. 돈도 없고 건강보험도 적용 안돼 고생하는 65세 이상의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노인 90명에게 틀니를 만들어주고 있다. 틀니에 드는 1인당 비용으로 238만원을 남동구보건소가 댄다. 남동구관내 노인들은 그 옛날 시황제가 부러워할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김연아

“IMF 땐 박세리가 있어 웃을 수 있더니,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엔 김연아가 있어 웃을 수 있네요” 한 시민의 얘기다. 듣고 보니 딴은 맞는 말이다. “앗차, 저런!” 지난 7일 낮 캐나다 벤쿠버서 열린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 프리 스케이팅에서 트리플 루트를 시도하다가 넘어진 것을 본 어느 시청자의 안타까움이다. 이날 시청률이 20%를 넘어섰다는 SBS 실황 중계방송은 그 같은 안타까움이 있었던 어느 기원에서도 손님들은 잠시 바둑알을 놓고 TV를 지켜봤다. 김연아는 그 같은 실수에도 더는 흔들림이 없는 환상적 연기로 빙판을 유연하게 이끌어 박수가 쏟아졌다. “넘어지지만 않았더라면…” 역시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토로됐다.(김연아는 기자회견에서 유창한 영어로 몸솟구침이 낮아 (자세가) 불안했다는 것으로 외신은 전했다.) 김연아의 프리 스케이팅 점수는 3위다. 그러나 쇼트 프로그램에서 세계 최고기록으로 벌어놓은 점수가 있어 합계 189.07점을 얻어 캐나다 로세트를 5.16점 차로 2위, 3위인 일본의 마오를 12.5점 차로 제치고 우승의 영광을 안아 태극기 게양과 함께 애국가가 연주됐다. 올해 고려대에 진학한 김연아는 군포 수리고등학교를 나오는 지역사회 출신이어서 더욱 돋보인다. 서구인이 판을 쳤던 피겨 스케이팅 빙판에 우뚝 선 그가 자랑스럽다. 엄격한 자기 관리하에 갖는 피눈물 난 훈련이 오늘의 김연아를 낳았다. 스타플레이어의 길은 오직 실력, 실력 뿐이다. 벤쿠버의 영광에도 김연아는 쉴틈 없이 지옥 훈련에 들어간다. 다음 달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대비키 위해서다. 내년엔 또 동계올림픽대회가 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 트리플 루프에 실패하고도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담대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반 이후의 환상적 연기는 넘어졌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침착해 보였다. 경제위기를 넘기는 데도 본받을 만 한 정신력이다. ‘IMF 땐 박세리가 있더니, 이번에 김연아가 있어 웃을 수 있다’ /임양은 주필

五虎大將

중국 영화 ‘적벽대전 2’가 설 극장가를 석권, 관람 인원이 300만명을 돌파했다. 스펙터클한 규모에 긴박감 넘친 연출로 흥행을 성공시켰다. 적벽(赤壁)은 호북성 가어현에 있는 양자강의 좌안이다. 경치가 수려하여 후세 송나라 문장가 소동파(蘇東坡)가 적벽부(赤壁賦)를 짓기도 했다. 적벽대전은 유비, 손권이 소수 연합군으로 조조의 대군을 섬멸한 싸움이다. AD 208년 겨울의 일이다. 연합군이 적벽에 매놓은 조조 수군의 선단에 불을 질러, 때 아닌 동남풍으로 삽시간에 궤멸케 한 화공이다. 겨울철에 동남풍이 분 것을 제갈공명의 신통력으로 삼국지는 전한다. 그러나 천문에 밝았던 그가 이상기후 현상을 예견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후세 사람들의 관측이다. 적벽대전을 계기로 당시 중국은 완전히 삼분 분할의 삼국시대로 접어 들게 된다. 즉 중원은 조조의 위나라, 강남은 손권의 오나라, 서쪽 파촉은 유비의 촉한이 건국됐다. 파촉은 지금의 사천성 일원이다. 삼국 가운데 가장 형세가 약한 게 유비의 촉한이다. 이럼에도 유비가 황제에 올라 중원 정벌을 꾀할 수 있었던 것은 승상 제갈공명과 오호대장(五虎大將)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원 정벌은 유비가 죽은 뒤에 그 아들이 제위에 올라서도 계속됐다. 제갈공명이 새 황제가 된 유비 아들에게 중원 정벌에 나서면서 바친 글이 유명한 출사표(出師表)다. 오호대장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다섯명의 큰 장군을 말한다.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이다. 일당백(一當百)의 무예와 용맹으로 전쟁터를 무인지경으로 달리곤 했다. 그런데 오호대장은 관직이 아니다. 명예직이다. 그러나 이들은 벼슬이 아닌 그 같은 명예를 더 소중히 했다. 또 관우, 장비는 유비와 무명시절에 뜻을 모아 도원결의를 맺은 의형제인 데 비해 조운, 마초, 황충은 중간에 합류한 외인부대다. 주목된 사실은 유비 황제의 의형제인 관우, 장비와 외인부대인 조운, 마초, 황충 등과 조금도 차별이 없었던 점이다. 유비의 이 같은 용인술이 오호대장들로 하여금 진충보국을 다하게 했다. 책을 잘 안 읽는 요즘 사람들은 삼국지도 별로 안 보는 것 같다. /임양은 주필

범죄자 DNA 은행

노무현 정부 시절 17대 국회에서 ‘유전자감식정보수집법안’이 상정됐을 때 인권단체 등이 강력히 반발했다. 법안은 흐지부지됐다. 그런데 지난해 3월 법무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유전자 수집에 관한 법률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이 재등장한 배경은 ‘안양 초등생 살인사건’이었다. 이때 성폭력·살인·강도·방화 등 11개 중범죄자들의 유전자를 수집해 활용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유전자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으로 법안의 명칭을 바꾸면서 인권보호 장치를 명문화했다. 경찰은 구속 피의자 중 본인의 ‘동의’를 얻어, 검찰은 형이 확정된 수령자로부터는 ‘강제로’ 유전자(DNA)를 수집·관리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입법안은 아직 국회에 제출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DNA는 지문과 달리 개인 정보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수집 범위가 늘어날 경우 국가가 국민을 감시하는 체계가 갖춰질 수 있다”는 인권침해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1996년 12월31일 영국 서튼 콜드필드, 17세 여학생이 연말 파티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살해됐다. 여학생 몸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이 발견됐다. 경찰은 DNA를 검출해 보관했다. 2003년 41세의 콜린 웨이트란 남성이 도심에서 난동을 피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의 DNA를 추출한 결과 7년 전 여학생의 몸에서 발견된 유전자와 일치했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영국은 2000년부터 5년간 약 600억원의 예산을 들여 범죄자의 DNA를 관리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모든 범죄자의 유전자가 관리 대상이다. 행패를 부린 사람의 체포가 7년 전 여학생 살인 사건의 해결로 이어진 실화다. ‘시간이 흘러도 범인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이 DNA 수사’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7명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강호순도 경찰이 DNA 물증을 통해 자백을 받아냈다. 지난해 11월4일 화성시 송산면 우음도 고속도로 공사현장 갈대밭에서 백골상태로 발견된 곽모 여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범인도 DNA 분석을 통해 검거했다. 살인·강도·강간·유괴·아동성폭행 등 ‘흉악범 유전자 은행’을 우리나라도 도입해야 된다. 세계 70여 개국은 이미 범죄자 DNA 관리 시스템을 갖췄다. /임병호 논설위원

제2, 제3의 사이코패스

망상이나 환청에 사로잡혀 현실감각이 없고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정신병이 사이코시스다. 흔히 ‘미쳤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사이코는 생각이 지리멸렬하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 근거 없이 누가, 또는 정보기관이 ‘나를 감시한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가족의 죽음, 집안의 경사 등의 상황에서도 감정 표현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뇌 기능이 고장나 병든 탓이다. 하지만 약물로 뇌 기능을 고쳐주면 생각과 행동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사이코 패스’(psychopath·반사회적 인격장애자)는 완전범죄를 계획할 정도로 생각이 논리적이다. 선과 악을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고 분명한 현실감을 갖고 있다.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정상인’이다. 사이코패스는 극단적으로 이기주의적이며 ‘양심이 결여된 고장난 인격’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뇌에 대한 양전자단층촬영(PET) 영상은 충동조절과 사고능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대사작용이 현저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지루함이나 따분함을 느끼는 ‘낮은 각성(low arousal)’ 상태로 인해 극단적 자극과 쾌락을 좇고 위험한 일을 즐기는 경향도 있다. 사이코패스에겐 의리나 양심이 없다. 남의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죄의식이 없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다. 물론 반성도 안 한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일엔 열심 이어서 범행은 뒤탈이 없도록 주도 면밀한 계획하에 실행한다. 문제는 사이코패스와 대화하고 어울려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교육을 못 받은 사이코패스는 쉽게 화내고 공격적으로 돌변하지만, 지능적인 사이코패스는 목적 달성을 위해 이성적으로 활동할 줄도 안다. 그래서 주변의 신임을 잘 얻는다. 말주변이 좋을 경우 능숙하게 남을 속인다. 칼 든 흉악범의 모습보다 ‘양복 입은 독사’의 모습으로 더 많이 존재한다. 일곱 명의 여성을 연쇄살인한 강호순이 대표적인 사이코패스다. 제2, 제3의 사이코패스가 없을리 없다. 여성들이여, 조심하시라. /임병호 논설위원

하이힐

서울시가 시범삼아 ‘여행길’을 만든다고 한다. ‘여행길’은 여성 행복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여성이 행복한 길’의 약칭이 ‘여행길’이라는 것이다. 주부가 유모차를 쉽게 밀 수 있도록 보도 턱을 낮추고 여성의 보행 안전을 위해 가로등을 많이 설치하는가 하면, 여성 우선 주차구역 등을 두는 것이 ‘여행길’이다. 이런 가운데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하이힐 뒷굽이 보도블록 틈새에 빠져 겪는 곤혹을 덜기 위해 보도블록을 촘촘히 까는 것도 ‘여행길’ 사업으로 돼 있다. 하이힐 뒷굽이 보도블록 틈에 빠져 넘어지거나 힐이 부러지고, 심지어 다치기도 하는 낭패를 막기 위한 것이다. 미스코리아나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도 가장 우려되고 또 가장 많이 나는 것이 하이힐 사고다. 팔등신의 미를 살리기 위해 되도록이면 뒷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실족하기가 쉬운 것이다. 하이힐은 여성미를 십이분 살리는 것이지만, 그 기원설은 좀 지저분하다. 근세에 파리서 시작된 하이힐은 파리의 이면도로가 오물 등으로 온통 더러워, 더러운 것을 밟지 않는 방편으로 굽 높은 구두를 고안한 것이 하이힐의 원조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발달된 하이힐은 또 여성의 성적 능력을 높여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2008년호 유럽비뇨기학회 저널지에 발표된 이탈리아 전문의팀 연구에 의하면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으면 골반을 받치고 있는 골반저근 근육이 단단해져 성적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골반저근 근육은 평소엔 잘 쓰여지지 않아 하이힐 같은 걸 신을 때나 운동이 된다는 것이다. 올핸 절후가 빨라서인지 설이 지나자 대기에 감도는 봄 기운이 완연하다. 앞으로 꽃샘추위 등 몇 차례의 추위가 있겠지만 그래봐야 반짝 추위다. 봄은 여성의 옷차림 변화와 함께 하이힐 이용이 본격화되는 계절이다. 하이힐 뒷굽이 보도블록 틈새에 빠지지 않게 하는 등 여성을 위한 ‘여행길’ 시범 조성은 다른 자치단체에서도 따라 할 만하다. 좋은 것을 따라 하는 건 흉이 아니다. /임양은 주필

사형(死刑)

인류의 형벌은 응보형주의로 시작됐다. 그리고 근대사회까지 이어졌다. 예컨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였다. 이런 원초적 고대사회의 응보형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름이 없다. (사람을 죽인 것도 살인, 상해치사, 과실치사 등의 구분이 있는데도 이 같은 개념의 구분이 고대엔 동서양 다 같이 없었다) 한비자(韓非子)가 명실상부한 형 집행의 엄정성을 설파한 형명(刑名) 사상 또한 응보형주의다. 소크라테스가 진리의 절대성을 주장하다 신을 모독했다는 죄로 든 독배도 응보형주의다. 중세기의 종교재판도, 조선왕조의 법전 ‘경국대전’도 응보형주의가 근간이다. 현대사회의 형벌은 목적형주의다. 보복적 응보형이 아닌 교화적 목적형인 것이다. ‘형무소’라던 명칭을 ‘교도소’로 바꾼 게 이 때문이다. 흔히 교도소 감방에서 수인끼리 범죄를 배운다지만, 반대로 교화시책이 주효하여 신앙을 갖거나 기술을 익히거나 각종 검정고시에 붙어 만학의 길을 걷는 등 목적형주의의 성공 사례가 적지않다. 그러나 사형은 목적형주의가 아닌 응보형주의의 형벌이다. 교화가 불가능한 흉악범을 사회와 영원히 격리하는 형벌이 사형이다. (외환 내란 등 국사범도 이에 포함된다) “실정법으로 인명을 빼앗는 사형은 자연법에 위배되는 살인”이라는 것이 사형 폐지론자들의 말이다. 종신형제를 두어 사회와 격리하는 방법도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사형을 12년째 집행하지 않는 동안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사형수가 19명이나 된다. 이들 중엔 유기징역으로 또 감형돼 결국은 석방되는 사형수도 없잖을 것이다. 사형과 무기는 하늘과 땅 차이다. 사형 집행을 않는 동안 살인범 증가율이 38%에 이른다. 사형제는 사회방어를 위한 장치다. 그리고 확정된 사형수는 형의 집행으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워야 된다.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범행을 계기로 미집행 사형수 문제가 논란이 됐다. 수감 중인 사형수가 58명이다. 강호순은 부녀자 연쇄살인을 취미삼아 했다. 목적형주의의 형사정책에도, 유일하게 잔존하는 응보형주의의 사형제 형벌이 이런 인간들 때문에 필요하다. 자기네 가족이 그 같은 피해를 입어도 ‘살려야 된다’고 말 할 것인지, 사형 폐지론자들에게 묻는다. /임양은 주필

CCTV

CCTV는 ‘Closed circuit television’의 약어다. 영문 그대로 ‘폐쇄회로텔레비젼’(TV)이다. 일반 시청자는 수신할 수 없게 유선 또는 무선으로 TV신호를 송출하는 장치가 폐쇄회로다. 그러니까 피사체가 사람일 경우, 흔히 자신은 찍힌 줄 모르게 찍힌다. 또 찍힌 줄 알아도 찍힌 영상을 볼 (수신할) 수가 없다. 즉 감시용 TV다. 예컨대 은행출입이 생활화된 현대인들은 은행마다 설치된 CCTV에 수없이 찍히고 있다. 한데도, 이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공공의 안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희대의 살인마 강호순(38)을 검거한 단서가 역시 CCTV에서 나왔다. 희생된 군포 여대생 신용카드로 돈을 뺀 은행의 CCTV는 얼굴을 못알아보게 변장을 했지만 인출 시간의 흔적을 남겼다. 그 시각에 맞춰 이동된 차량을 추적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도로상의 CCTV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수원시 입북동 버스정류장에서 실종된 김모씨(49)도 그가 납치 살해한 혐의 사실을 그의 점퍼에 묻은 피해자의 피를 유전자감식으로 밝혀내어 범행을 자백 받았다. 그러나 경찰이 한동안 수사에 애를 먹었던 것은 입북동 버스정류장 인근엔 CCTV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원시 당수동 그의 축사는 범행의 아지트였다. 2006년 12월24일 수원 화서동 40대 여인의 노래방 도우미 납치 살해 이후 7명의 부녀자를 죽인 범행이 모두 외딴 축사와 직·간접으로 관련됐다. 그런데도 아무 의심을 받지않고 지내온 것은 축사 인근의 도로 등에 CCTV 한 대가 없는 범죄의 사각지대가 돼왔기 때문이다. 사생활 침해의 논란이 따르는 것이 CCTV다. 방범용 CCTV를 증설하려면 사생활 침해를 들어 반대하기가 일쑤다. 무슨 사생활이 있어 그런진 몰라도, CCTV가 운용돼도 보호받을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부녀자 연쇄살인범 검거 이후 기피되던 CCTV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전엔 쓰레기 무단투기 방지를 위해 CCTV를 달려고 하면 반대하던 주민들이 이제는 CCTV 설치를 자청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임양은 주필

나무심기 운동

기온 상승과 극심한 가뭄으로 나무들이 30년 전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나무들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힘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55년부터 축적된 미국과 캐나다 지역의 삼림 데이터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이 분석한 결과다. 76개 숲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사망률이 평균 87%나 치솟았다. 일부 지역은 17년 만에 사망률이 2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온대성 삼림지역이 형성된 미국과 캐나다 서부 지역은 지난 수년간 평균 기온이 1도 이상 폭등하면서 피해가 컸다. 1도 상승은 별것 아닌 듯 싶지만 강수량 감소의 원인이 되고 겨울철 해빙을 촉진해 여름철 가뭄기간을 늘리는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기온상승과 가뭄이 수십 년간 반복돼 나무들이 왜소해져 전반적으로 산불에 취약해졌다. 병충해에도 급격히 저항력을 잃었다. 기온상승은 해충 번식도 늘려 수목의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사망률을 급격히 높혔다. 나무들의 사망률이 치솟으면서 작은 수목들만 남게 되자 이산화탄소 흡수량도 줄어들어 기온상승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주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삼림은 물론 고산지대인 콜로라도주 북서부의 거대한 소나무 숲도 이미 심각하게 파괴됐다. 이렇게 나무들이 죽어가는 현상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가 주원인이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산들이 무너져 내리는 우리나라는 특히 예외가 아니다. 나무를 심어야 한다.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된 한계농지 등 노는 땅, 집주변 빈터, 울타리 주변, 자투리땅에도 나무를 심어야 한다. 경기농림진흥재단이 올해 ‘내집 내 직장 나무심기 운동’을 펼쳐 100만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나무심기 사업이다. ‘그린 팩토리(녹색 공장) 만들기 운동’, ‘G가든쇼’ 사업도 기대가 크다. 우리나라는 ‘교토 기후변화 협약’에 따라 2013년 탄소 감축 의무국이 될 수 있다. 탄소 흡수량이 침엽수에 비해 1.5배 이상 많은 활엽수를 많이 심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토박이말 맛

한국시인협회가 펴낸 시집 ‘니 언제 시건들래?’를 읽었다. 작고시인 28명을 비롯한 151명 시인들의 토박이말 시가 북한 지역, 중부 방언 지역(강원도, 서울·경기도, 충청도), 동남 방언 지역, 서남 방언 지역, 제주도 방언 지역으로 나뉘어 수록된 이 시집은 우리말의 다양성과 고유성이 한눈에 보여 흐뭇했다. ‘너 언제 철들래?’라는 뜻인 이인원 시인의 표제시를 비롯해 대부분의 시에는 그 지역 출신이 아니라면 주석을 보지 않고는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억센’ 사투리들로 가득 차 있다. 토박이말들이 주는 ‘말맛’은 지역별로 사뭇 다르다. 같은 ‘어머니’를 불러도 충남 당진 출신의 이근배 시인은 ‘울 옴마’(나승갱이꽃), 경남 함양 출신의 허영자 시인은 ‘어무이’, 전남 곡성 출신의 김영박 시인은 ‘어매’(오매야, 오매야), 서귀포 출신의 한기팔 시인은 ‘어멍’ (숨비소리)로 부른다. 제주도 토박이말로 된 시는 흡사 외국어 같다. “야근 허멍 솔짝 졸당보난 /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내불엉 / 프레스가 몽창 끈차 먹어 불언마씨 / 각시도 손가락마디처럼 날아가 붑디다양”(서안나 ‘도꼬마리’ 일부) ‘서울 사투리’도 있다. “그래설라문에 / 서울 사람은, 서울 사람은 / 정말로 깍쟁이가 아니걸랑요. / 갱상도 전라도 모두 한두 차례씩 세상을 뒤잡고 흔들 때 / 대통령도 한 번 못 낸 서울, 서울 사람들 / 그래설라문에 / 겉똑똑이 속미련이 서울 사람은 / 정말로 깍쟁이도 못 된답니다.”(윤석산 ‘서울 깍쟁이’ 일부) “‘오-매 단풍들것네’ /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오아 /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 ‘오매 단풍들것네’” 김영랑(1903~1950)의 이 시 속 누이가 “어머 단풍들었네”라고 말했다면 이 시가 주는 ‘가을 냄새’는 아마 절반으로 줄어들었겠다. 이 땅의 흙냄새가 묻어나는 토박이말은 겨레의 보배다. 우리 겨레의 꿈과 눈물과 한숨이 배어 있는 토박이 우리말로 쓴 시가 계속 발표됐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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