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귀국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 루이 18세의 집권으로 해외로 망명했던 프랑스 귀족들이 속속 귀국했다. 이들은 1789년 7월 부르봉 왕조의 절대 권력에 항거한 프랑스 시민혁명이 일어나자 해외로 도피했던 것이다. 무려 25년 동안 갖은 고초를 겪다가 귀국한 귀족들은 그러나 여전히 봉건시대의 옛 영광에 도취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같은 귀족들을 가리켜 프랑스 외교관 탈레이랑 페리고르가 한 유명한 말이 ‘그들은 아무 것도 깨닫지 않았고, 아무 것도 잊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새 봄과 함께 정치권도 ‘춘래불사춘’의 봄이 왔는지, 해외에서 돌아오는 사람들로 설왕설래 한다. 민주당에서는 대통령 선거에 이어 총선에서 떨어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한나라당 역시 총선에서 떨어진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이다. 정 전 장관은 지난 22일 이미 들어왔고, 이 전 최고위원은 오는 주말에 들어올 예정이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이들의 귀국에 긴장하는 이유는 당내 역학 구도의 변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당내 실세 중 실세다. 그의 귀국이 친박 세력의 융합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비이(非李) 비박(非朴) 계열의 관측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그의 귀국에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정동영 전 장관은 자신의 고향인 국회의원 전주 덕진선거구 공천을 당연시하고 있어 당내에 파란이 일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나서 “당이 쪼개지면 안 된다”며 정 전 장관을 엄호하고 있지만,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도 전 같지 않다. 그런데 이들의 말이 가관이다. 민주당은 정 전 장관의 재·보선 출마가 싫다며 재고를 바라는데 본인은 “당에 힘을 보탠다”고 딴전을 피운다. 이 전 최고 위원은 “꽃이 피기전에 만나자”며 꽃타령을 한다. 당에 꽃이 피기는 커녕 아직도 한겨울인데 엉뚱한 소릴 한다. 이 전 최고위원이나 정 전 장관이나 돌아오긴 해도 다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무 것도 깨닫지 않았고, 아무 것도 잊지 않았다’는 옛말 그대로 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오성장군

스탈린은 1924년부터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실권을 장악했다. 1941년엔 수상에 취임, 제2차 세계대전 중 원수(元帥)가 됐다. 그는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이다. 군인이 아닌 사람이 일약 군 최고의 계급인 원수가 되기는 스탈린이 처음이다. 그러나 북녘 정권은 ‘스탈린 원수’를 한층 더 높여 ‘스탈린 대원수’라고 불렀다. 세계적으로 원수 위의 대원수 계급은 없다. 이런 통례를 깬 북녘은 대장 위의 계급을 차수(次帥)·원수·대원수 등 3등급으로 만들었다. 인민군에 차수는 4명이 있다. 김일성 주석은 ‘김일성 대원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정일 원수’로 부른다. 군대에 안 간 김 위원장을 원수로 추대한 것은 스탈린의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원수(元帥)와 원수(怨讐)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원한 관계의 ‘원수’는 ‘원쑤’라고 하는 점이다. 원수는 전시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성장군을 승진시키는 것이 국제간의 관행이다. 2차대전 중 미국은 아이젠하워, 맥아더 등 두 대장의 원수 승진이 있었고, 영국은 몽고메리 원수의 승진이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유럽지역·맥아더는 태평양지구 총사령관, 몽고메리는 영국군 총사령관으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다. 패전국인 일본 또한 하와이 진주만 기습에 수훈을 세운 야마모토(山本) 원수, ‘사막의 여우’로 불리웠던 독일 전차군단의 롬멜 원수가 있었다. 원수라는 국내 명칭은 고려 때 시작됐다. 군 통솔의 으뜸 장수로 붙인 명칭이다. 조선왕조 말인 대한제국에서는 ‘원수부’를 두어 군사에 관한 일을 통할 했다. 황태자를 원수로 임명했다. 원수부는 고종 광무3년(1899년)에 두었다가 순종 융희4년(1910년)에 없어졌다. 정부는 내년 6·25전쟁 60주년을 앞두고 백선엽(89) 예비역 육군대장의 ‘명예원수’ 추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대장 승진 1호로 6·25를 치룬 장성 가운데 주요 현존 인물이다. 미국립보병박물관에는 백 대장의 육성 6·25증언 녹음이 보존돼 있다. 정식 원수 임명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나, 현역이 아닌 예비역이어서 ‘명예원수’로 추대되지만 이도 첫 ‘오성장군’의 탄생이다. /임양은 주필

수원 기생

수원시사는 지난 1919년 수원군에서 일어난 3·1운동이 4월3일까지 줄기차게 계속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주모자로 지목되어 옥고를 치른 사람이 무려 48명이다. 이분들의 명단이 나와 있다. 최하 징역 6월에서 최고 징역 7년을 살았다. 수원예기조합 기생 33명이 당시 수원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인 것은 그 해 3월29일이다. ‘(전략)28일에도 30여명이 독립만세를 불렀고 29일에는 수원기생조합 기생 30여명이 김향화의 선창으로 자혜병원(지금의 팔달산 아래 수원경찰서 앞) 앞에서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불렀다(후략)’ 수원시사 ‘수원군의 3·1운동 전개’ 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러나 독립만세를 부른 기생 전원의 명단은 기술이 없다. 안타까웠던 이 점을 수원박물관 이동근 전문위원이 발굴한 것은 쾌거다. 각종 기록을 추적 조사한 끝에 33명의 인적사항만이 아니고 사진까지 발굴하여 논문으로 발표된 것으로 보도됐다. 그 중 주동자로 징역 6월에 처했던 김향화가 수원보훈지청에서 독립유공자 추서가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은 낭보다. 무려 90년 전이다. 스무살이 갓 지난 꽃다운 나이 때다. 그러나 이젠 고인이 되어도 벌써 오래전일 것이다. 어디에 후손이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독립유공자 추서는 애국심에 불탔던 그와 동료들의 혼령에 위로가 된다고 보여 기대된다. 국내외 선열들의 이런 애국운동이 있음으로 하여 광복이 됐고 나라가 건국됐다. 참고로 말하면 ‘경기도 지방의 3·1운동은 21개 군 모두 일어나지 않은 곳이 없었고 3·4월 두 달 동안 225회의 시위운동이 있었다’고 수원시사는 기록하고 있다. 예기조합은 기생조합이다. 당시의 기생은 지금의 일본 ‘게이샤’와 같다. 기생학교인 권번에서 창(唱) 무(舞) 서화·시문 등을 익힌 예인(藝人)이다. 조선의 으뜸 명기로 꼽히는 황진이 역시 이런 예인이다. 일본의 기생인 게이샤는 특수 직종으로 아직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생은 1945년 이후 권번 폐지와 함께 사라졌다. 옛 수원 기생의 기개가 자랑스럽다. /임양은 주필

미래의 재앙

1274년 중원을 지배하던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은 징발한 고려군 3만5천명을 포함한 4만명으로 일본 정벌에 나서 단숨에 규슈까지 진격했지만 태풍에 밀려 퇴각하고 말았다. 태풍의 정체는 열대성 저기압이지만 일본인들은 이를 ‘가미카제(신풍·신성한 바람)’라 여기게 됐다. 칸은 7년 뒤 4만명의 몽골·고려·중국인 연합군에 남중국인 10만명까지 보내 설욕을 시도했지만 태풍의 공격에 또다시 전멸했다. 이 ‘가미카제의 전설’이 일제의 악명 높은 ‘가미카제 자살특공대’를 낳았다. 1923년 9월 이틀 사이에 500여 차례의 여진이 강타한 관동대지진은 일본 제국주의를 잉태한 또 하나의 자연재해다. 흉흉해진 민심은 ‘우물에 독을 타 일본인들을 죽이려 했다’는 거짓 소문에 광분해 조선인 대학살을 빚었다. 유럽의 1차 세계대전 특수를 타고 아시아 첫 근대국가로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지진 후폭풍을 돌파하고자 호전적인 팽창정책을 펴 끝내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아프리카의 뿔’ 에티오피아 고원의 악숨 왕국은 기원 후 1~8세기 사하라사막 남쪽을 지배한 강대국이었으나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소멸했다. 건조한 사막 기후에서 몬순 기후로 바뀌자 나무를 베어내고 경작지를 늘려 산림을 파괴한 까닭에 기후가 다시 건조해져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기원전 3천년부터 지중해의 크레타섬에서 번성하던 미노아 문명이 기원전 1628년 인근 화산섬 칼리테스의 대폭발로 쇠락하는 바람에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에 서양문화의 원류자리를 빼앗겼다. 1360년 영국-프랑스의 백년전쟁 흐름과 유럽 중세사를 바꾼 것은 무서운 폭풍우가 쏟아낸 우박세례였다. 1815년 지금의 발리섬 인근 숨바와섬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이 동남아시아는 물론 북반구 전역에 강추위로 인한 대기근을 낳았다. 1888년 미국 동부 해안지역을 마비시킨 폭풍설 ‘킹 블리자드’의 충격으로 뉴욕에 지하철이 건설됐다. 이제 예상되는 21세기 미래의 재앙은 ‘환경 파괴로 인한 지구 온난화’다. 예측 불가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재해다. ‘현대인은 서서히 가열하면 뜨거운 줄 모르는 채 죽어가는 냄비 속의 개구리와 같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지구촌 곳곳의 자연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봄철 보약

‘봄철 반찬은 보약’이라고 한다. 영양가 높은 봄나물 반찬이 많아서다. 그 가운데 ‘냉이’는 식탁에 가장 먼저 오르는 봄나물이다. 냉이는 특유의 알싸하고 독특한 향이 입맛을 돋운다. ‘동의보감’에 “냉이로 국을 끓여 먹으면 피를 끌어다가 간에 들어가게 하고 눈을 맑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위와 장에 좋고 간의 해독작용을 도와준다. 간 기능이 떨어져 피로가 심한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특히 냉잇국은 술독을 빼는 데 효과적이다. ‘달래’의 뿌리는 마늘을 닮았고 줄기와 향은 파와 비슷하다. 달래엔 비타민을 비롯해 갖가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고 칼슘이 많아 빈혈과 동맥경화 예방에 좋다. 한방에서 빈혈, 동맥경화뿐 아니라 부인과(婦人科) 질환에 효과가 뛰어난 나물로 꼽힌다. 옛부터 달래는 강장식품으로 꼽혀 된장국에 넣으면 개운한 맛이 우러난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쑥’은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하다. 비타민A가 듬뿍 들어 있어 체내 저항력을 길러준다. 해열이나 해독, 혈압을 낮추는 데도 탁월해 조상들은 쑥을 넣어 복대를 만들기도 했다. 쑥 줄기와 잎은 쑥뜸이나 약용으로 쓰이고 어린 잎은 식용으로 사용된다. 쑥떡, 쑥버무리, 쑥국, 쑥차, 쑥인절미 등 봄나물 중 쓰임새가 제일 많다. ‘씀바귀’와 ‘고들빼기’는 이름 그대로 첫 맛은 쓰지만 미각을 돋우는 데 으뜸이다. 새콤하게 무쳐 먹으면 맛이 아주 그만이다. 잎이 조금 솟아난 2월부터 씀바귀 뿌리를 캐어 쓴맛을 우려내고 초고추장에 무쳐 먹기도 한다. 대개 쓴 나물은 열을 풀어 주고 위장을 튼튼하게 해 소화기능을 좋게 한다. 열병과 속병에도 좋아 조상들은 이른 봄 씀바귀나물을 먹음으로써 여름 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취나물’은 산나물의 대명사처럼 여겨질 만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산채다. 취나물엔 참취, 곰취, 개미취, 단풍취 등이 있으며, 나물로 주로 무쳐 먹는 것은 참취의 어린잎이다. 산나물 중에서도 칼륨, 칼슘, 인, 철분등 무기질 함량이 매우 높다. 봄나물 반찬이 가득한 밥상을 대하면 어머니가 봄나물을 캐러 다니실 제 소쿠리를 들고 다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러는 아들을 보며 미소 지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더욱 선연하게 떠오른다. /임병호 논설위원

정동영

미국에 체류 중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4·29 재보선 출마 선언으로 민주당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정세균 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부정적 기류 속에 일부에선 정 전 장관의 출마에 무게를 두어 가세하고 있다. “당을 내가 만들었다” “지금은 당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 할 때다” 정 전 장관의 말이다. 그러나 정작 당은 그를 반기지 않고 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사람이다. 그의 참패로 민주당이 정권을 잃었으면, 야당 전락의 첫 번째 책임자라는 것이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당내 기류의 시각이다. 대선 실패에 이어 18대 총선에선 서울 동작구서 “이곳에 뼈를 묻겠다”며 출마했으나 또 낙선했다. 그랬던 그가 고향의 이점이 있는 전주시 덕진선거구 재보선에 나서 정치활동을 재개할 움직임이다. 민주당이 공천을 주든 안 주든 선거구가 덕진이면 당선은 거의 확실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정치 복귀 이후다. 민주당에 다시 돌아가면 그의 입지와 역할이 과연 뭣이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평당원으로 백의종군 하겠다’고 한다고 해도 곧이 들을 사람이 있을리 없다. 당 의장을 두 번이나 했다. 비록 떨어졌지만 대통령 후보를 지냈다. 평당원으로 그칠 리가 만무하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인 눈이다. 민주당의 권력구도 개편이 어떻게 되는 안 되든 당내에 갈등의 소리가 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정치 재기에 성공만 하면 반대했던 사람들도 절로 모일 것으로 보는 것이 정 전 장관의 속내임을 어렵잖게 짐작된다. 정치 재개의 궁극적 목표는 차기 대선의 재수일 것이나, 한 번 흘러간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정 전 장관의 4·29 재보선 출마는 차기를 겨냥, 자연법칙을 거역하는 인위적 회귀다. 그도 대선 재수병에 걸린 사람 같다. 구실은 당을 위한다지만 개인의 실리를 챙기기 위한 것이 그의 정치 재개다. 이에 비해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4·29 재보선 불출마 선언은 신선하다. 물론 당선 가능성을 저울질한 고뇌 끝의 결정이었을 것이나 잘 한 일이다. 정동영의 출마선언, 박희태의 불출마 선언은 한나라당쪽에 짐스러웠던 4·29 재보선 부담을 민주당이 되레 무겁게 진 역전 현상을 가져왔다. /임양은 주필

망나니

문제아가 있다. 훼방꾼이다. 아이들 노는 데마다 가서 방해를 놓곤 한다. 뭐라고 하면 행패를 부린다. 그래서 어르고 달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훼방꾼의 행패엔 연유도 많고 까탈도 많다. 이런 문제아가 더러 있다. 어른들도 아이들 적에 대개는 경험한 일이다. 훼방꾼은 왕따 당하는 열등 의식을 행패를 부려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그렇다고 같이 놀자고 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리기엔 너무도 보잘것없는 자신보단, 훼방꾼으로 있는 것이 욕은 먹어도 더 낫다고 보기 때문인 것이다. 북의 평양정권이 꼭 이런 문제아를 방불케 한다. 6자회담만 해도 그렇다. 이런 구실, 저런 구실을 붙여가며 2년여를 끌고도 알맹이는 아무것도 없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란 것은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대표의 체험담이다. 무슨 합의를 볼 듯하다가도 뒤트는가 하면, 합의를 본 것도 나중에 엉뚱한 소릴 하기가 일쑤라는 것이다. 인민은 배곯아도 수천억 원을 들인 미사일 도박을 벌인다.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나라 안에서 먹고 살 수가 없어 탈북한 수만 명의 인민들이 중국이며 러시아,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유랑생활을 하고 있어도 수치를 모른다. 근래에는 거의 날마다 대남 협박을 일삼았다. 서해 긴장을 고조시킨 데 이어 민항 항공 노선의 안전을 위협하고 개성공단 길을 차단하는 등 육해공 전면으로 윽박질을 가해 마침내 남쪽 사람들을 인질로 삼기에 이르렀다. 며칠 전 갑자기 개성 가는 길을 막은 지 하루 만에 풀더니, 다시 막아 760여명의 남쪽 사람들중 일부는 어제 돌아왔으나 대부분은 닷새째 아직도 개성에 발이 묶여있다. 개성공단에 들어갈 물자도 못들어가 공장 가동이 어렵게 됐다. 제멋대로다. 아이 망나니는 자라면서 그래도 철이 든다. 그런데 평양정권의 어른 망나니는 철이 들 줄을 모른다.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 그렇긴 해도 같은 동포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사람들이다. 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쪽을 위협하고 있다. /임양은 주필

오자와 망언

동토의 땅인 알래스카주는 미국 최대 면적의 주이면서 인구는 최소인 천연자원의 보고다. 베링해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마주 대한다. 베링해협은 덴마크의 탐험가 베링이 1728년 이 해협을 발견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울러 알래스카 대륙을 발견한 것도 베링이다. 알래스카를 발견한 베링은 덴마크 사람이었으나, 발견의 계기가 된 탐험은 제정 러시아의 의뢰와 지원에 의하였으므로 알래스카는 러시아 땅이 됐다. 총독을 파견해 알래스카를 관리해오던 러시아가 미국에 단돈 720만달러(약 108억원)를 받고 판 게 1867년이다. 유럽에서 극동지역을 지나 북미 서단에까지 뻗친 광활한 국토를 지녔던 러시아로서는 당시엔 북미 서단의 알래스카에 별 매력을 못느껴 황실 재정의 궁핍 타개책으로 국토를 팔았던 것이다. 일본에서 차기 총리를 노리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의 제주도 매입설 망언이 일본 언론에 보도됐다. 오자와는 지난 12일 어느 노조와의 대화에서 대마도 얘기가 나온 끝에 “지금은 엔고이므로 절호의 찬스다”며 “제주도를 사버리자”고 말했다고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파문이 일자 본인은 부인으로 진화에 나섰으나 설사 그냥 한 말일지라도 매우 고약하다. 대마도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먼 남쪽 제주도는 우리 땅이면서 부산항 코앞에 있는 대마도는 일본 땅이 된 것은 역사의 미스터리다. 제주도 개벽설화에 나오는 3성(姓)이 고·부·량(高·夫·梁)이다. 그중 고을나(高乙那)의 15대손이 신라에 입조하여 ‘탐라’(耽羅)라는 국호를 받아가 한동안 ‘탐라국’으로 불리다가 고려 희종 때(1211년) 지금의 제주도로 개칭됐다. 고려말엽 들어 원나라가 제주도에서 말을 집단으로 사육하면서 세력을 키웠으나 공민왕 23년(1374년)에 원나라 사람들을 모두 몰아냈다. 제주도는 이 같은 문헌상의 기록외에도 제주시에서 한림읍에 이르는 해안지대서 많은 선사유적지가 발견됐다. 이미 선사시대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온 것이다. 제주도는 국토의 남단 보고다. 독도를 다게시마라고 우기는 일본 사람들이다. 오자와의 제주도 매입설은 ‘경제동물’의 근성을 드러내는 망언이다. 또한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산 알래스카를 염두에 둔 헛소린지 몰라도 이도 주권 침해다. /임양은 주필

떡볶이 페스티벌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쌀가공식품협회가 오는 28일, 29일 이틀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2009 서울 떡볶이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2002년 우리나라의 식량 소비량은 415만t(1인당 87㎏) 이었지만 2006년 386만t(1인당 78.8㎏), 2007년엔 379만t(1인당 76.9㎏)으로 줄었다. 5년 동안 8.6%가량 감소했다. 식량 소비량이 줄어드는 반면 공급은 늘고 있다. 해마다 농가에서 생산하는 분량 외에도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 결과에 따라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이 있다. 공공비축 미곡 매입제도에 따라 매년 일정량의 쌀도 사들여야 한다. 정부 입장에선 재정 손실을 줄이기 위해 쌀의 재고를 줄여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쌀 소비를 아무리 장려한다 해도 밥으로 먹어서 없애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많이 먹어야 하루 세 번인데, 세 끼를 모두 쌀밥으로 챙겨먹는 사람은 드물다. 결국 공략해야 할 시장은 떡과 술, 국수 등 쌀로 만든 가공식품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떡볶이를 외식체인사업의 주 품목으로 격상, 가래떡 소비 시장의 규모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름 없는 포장마차에서 이쑤시개로 찍어 먹던 떡볶이를 치킨이나 피자처럼 브랜드화하겠다는 얘기다. 떡볶이가 쌀 재고량만 줄여주는 것은 아니다. 부가가치가 큰 산업이기도 하다. 고추장 등 소스 업체, 떡, 소스 제조기계 업체, 포장 용기 업체 등이 가세하면 시장 규모가 5배가량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떡볶이는 김치, 불고기와 더불어 한식의 세계화를 주도할 음식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인다. 이탈리아의 거리에서 누구나 사 먹을 수 있는 피자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떡볶이도 세계의 인기 요리로 전파될 수 있다. 떡볶이는 집이나 학교 근처에서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어 좋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선 1만3천~1만5천원이지만 일반 시장에선 가격도 비싸지 않다. 떡볶이는 궁궐에서 임금도 먹은 별식이다. 그렇지만 분식집에서 먹으면 더 맛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떡볶이를 먹는 모습은 그림 같다. 아이들과 ‘떡볶이 페스티벌’에 가고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민간조사법

우리나라엔 ‘탐정(探偵)’이란 직업이 없다. 탐정을 내걸고 활동하다가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26조6호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공권력이 다른 곳에 신경쓰느라 일반인의 애로사항이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여서 생겨난 게 흥신소다. 1960년대 후반에 생긴 흥신소는 80년대 이후 심부름센터로 변신했다. 심부름센터는 사업자 등록만 하면 돼 전국에 200여 곳이 등록돼 있고. 미등록 불법센터도 수천개나 된다.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긍정적으로 지향하는 민간조사원(PI·Private Investigator)은 탐정(Detective) 정도의 의미인데 사단법인을 만들어 2000년부터 능률협회 후원으로 교육을 한다. 2004년부터 산업인력공단에서 훈련도 실시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협정에 의해 1997년 탐정시장이 개방돼 미국, 호주 등의 탐정사무소가 한국에 지사를 차리고 기업을 상대로 성업 중이다. 일본만 해도 6만~7만명의 PI가 활약하고 있는데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만 관련법이 없다. 법무부가 ‘민간조사법’(가칭)을 마련하는 배경이다. 민간조사법 초안을 보면, 민간조사인은 범죄·위법·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가출인이나 분실물을 찾는다. 또 불법행위자·채무자의 재산 소재를 파악하며 재판에 사용할 증거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민간조사인 자격시험과 등록은 법무부에서 관장한다. 만일 자격이 없는 사람이 민간조사업무를 하거나 ‘민간조사원’, ‘탐정’ 등의 명칭을 사용하면 처벌을 받는다. 물론 경찰의 지도·감독을 받는다. 법무부가 민간조사법을 마련한 데는 그동안 국가의 수사력이 공익침해 사건에 집중되면서 경미한 범죄나 재산을 둘러싼 분쟁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엔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이 발의한 민간조사제도 도입을 위한 ‘경비업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는데 법무부안과 이인기 의원안 모두 PI제도를 법제화하자는 데 공감하고 있다. 민간인이 범죄수사까지 관여하는 외국의 ‘셜록 홈스 법’이 시기상조라면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양성화하고 관리·감독하는 법은 있어야 한다. 민간인이 수사관 행세를 하는 등 부작용은 우려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을 순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러시아 권력구조

러시아는 푸틴 전 대통령이 총리가 되고 푸틴 밑에 있었던 메드베데프 전 총리가 대통령이 된 흥미로운 나라다. 물론 메드베데프는 푸틴의 심복이다. 메드베데프를 총리로 기용한 것도,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도 푸틴에 의해서다. 푸틴은 3선 연임 금지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심복에게 한 번 대통령자릴 맡겨뒀다가 다시 대통령을 하기 위한 포석인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가 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총리인 푸틴의 독주에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으로서 제동을 거는 파열음이 잦아 점점 심상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처음 이들의 관계에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만이다. 조각도 푸틴 총리가 마음대로 해 대통령에게 명단만 제출했을 뿐, 현안 보고 없이 1개월여를 지냈다. 푸틴이 어쩌다 메드베데프를 찾아 국정에 대해말해도 보고가 아닌 통고나 기껏해야 협의 수준이었다. 이에 메드베데프는 푸틴의 측근인 발루예프스키 총참모장을 임기 중에 해임함으로써 푸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 이런 일이 있은 이후에도 두 사람은 파워 게임이 은근히 이어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두 사람의 관계에 노골적인 불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메드베데프는 얼마전 “내각의 경제위기 극복 조치가 심히 미흡하다”고 푸틴이 수장인 내각을 싸잡아 비난했다. 3월 초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통합러시아당에 부정이 있다는 여론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통합러시아당은 푸틴이 당수인 것이다. 한편 메드베데프 자신은 정의러시아당 당수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자고로 ‘권력은 나눠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조선 왕조에서 세자의 정치 참여를 금기로 삼았던 것은 차기 집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나눠 가질 수 없는 권력을 부자가 나눠 가짐으로써 불가피해질 충돌을 미리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하물며 아무리 심복이라 할지라도 남남 간이다. 메드베데프가 푸틴이 바라는 대로 과연 끝까지 푸틴 총리의 심복 대통령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러시아의 이례적 권력구조는 정치학의 학문적 연구 대상이다. /임양은 주필

공권력

“사람이 개를 문 것은 뉴스가 되어도, 개가 사람을 문 것은 뉴스가 안 된다”고 했다. 기자 초년병 시절에 선배들한테 들은 말이다. 그런데 개가 사람을 무는 것도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개들도 달라졌는지 전에 없이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까지 종종 발생한다. 경찰이 시민을 때렸다는 말은 들었어도 시민이 경찰을 때렸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적어도 전에는 그랬다. 지금은 과격 시위가 자행되면서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서로 충돌, 경찰이 시위대를 때리기도 하고 시위대가 경찰을 때리기도 하는 세태가 됐다. 한데, 시위 현장이 아닌 길가는 경찰관을 경찰이라는 이유로 집단폭행한 초유의 불상사가 시위대에 의해 발생했다. 지난 7일 오후 9시10분경 서울 동대문역 6번 출구에서 혜화경찰서 박 모 경사(36)가 이런 봉변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용산철거민 참사자 추모행사에 참석했던 군중 가운데 일부로 거리시위를 위해 동대문역으로 이동했던 사람들이다. 시위대 중 누가 사복 차림의 박 경사를 알아보고 “경찰이다!”라고 소리치자 빙 둘러싼 채 폭행을 가했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뭇매 맞는 경찰관의 호주머니를 뒤져 빼앗은 지갑에서 나온 신용카드로 인근 편의점서 담배 열 갑 등을 산 시위꾼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날 밤 종로3가 등지서 벌인 시위로 경찰관 10여명이 시위대에 폭행당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관이 무고한 시민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은 독직이다. 반면에 시민이 경찰관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가 아니고는 비교적 관대하게 보았다. 예컨대 취중난동 등이다. 그러던 것이 이젠 길가는 경찰관을 집단폭행하는 것도 모자라, 지갑을 뺏기까지에 이르렀다. 경찰관이 시민에게 지갑을 빼앗긴 것은 해외토픽감이다. 공권력의 추락이다. 나락으로 떨어졌다. 진압 경찰관이 죽거나 다친 것은 크게 문제가 안 되어도, 시위대가 죽거나 다치는 것은 크게 문젤 삼는다. 문젠 공권력이 무력한 시위 만능의 사회치고 잘 된 사회가 없다는 사실이다. 공권력의 나락을 우려하는 것은 경찰을 위해서가 아니다. 공동체사회의 사회방어를 위해서다. /임양은 주필

막장

부사로 쓰이는 ‘막’은 방금이란 뜻이 있다. 예컨대 “이제 막 차가 떠났다” 등이다. 이 때의 막은 단일어다. 그러나 합성어로 쓰면 달라진다. ‘막내’를 예로 들 수 있다. 여기선 방금이 아니고 맨 끝이란 뜻으로 뒤바뀐다. 그런데 ‘막’을 합성어로 하는 말은 대체로 의미가 좋지 않다. ‘막일’ ‘막담배’ ‘막 되다’ 등 이외에도 있다. ‘막장’이란 말은 같은 합성어라도 좋지 않은 뜻이 아니고 ‘막내’란 말처럼 맨 끝이라는 어휘다. 광산이나 탄광의 갱도 끝 작업장이 막장이다. 석탄 등을 채굴하는 채굴막장이 있고 갱도를 더 파들어가기 위해 굴진하는 굴진막장이 있다. 막장은 낙반사고를 막기 위해 철재나 목재로 받쳐야 하는데 작업량에 따라 막장은 날마다 지하로 더 전진해간다. 조관일 대한석탄공사 사장이 ‘막장’의 비하에 한 마디 했다. “언론에서 막장국회(깽판국회) 막장드라마(불륜드라마)라고 하는데 탄광의 막장은 희망을 캐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 수백m 30도의 열기 속에 2천여 사원이 땀흘리는 막장은 폭력이 난무하는 곳도, 불륜이 있는 곳도 아니다”라면서 본인은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막장의 남용을 자제해 달라고 항의했다. 그 같은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숙연해진다. 막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신성한 막장을 ‘건달국회’나 ‘X판드라마’에 빗대어 써서는 안 될 것 같다. ‘막장’을 비하하는 것 자체가 막장 일하는 이들의 인격권 침해라는 생각을 갖는다. 조관일 석공 사장의 사려가 깊다. 막장의 의미 자체는 ‘막’의 합성어에서 막내의 의미와 같은데도, 못된 말로 쓰이는 ‘막’의 합성어가 있어 비하 하기 쉬우나 합성어가 다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막장이나 막내처럼 맨 끝을 나타내는 합성어에 비해 첫머리에서 밝힌 것처럼 단일어의 방금과 같은 뜻이 합성어에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막걸리다. 청주를 뜨지 아니하고 그대로 막 걸러 짜낸 술이 막걸리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직언 실종

조선시대에 임금이 과거 응시자 중 최종 합격자 33명에게 당대 국가 과제에 대한 방책을 직접 물었다. “지금 당장 시급하게 힘써야 할 국가 정책은 과연 무엇인가? 그대가 왕이나 재상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름하여 ‘책문(策問)’이다. 책문은 인재 등용을 위한 통과의례만은 아니었다. 왕은 당대의 고질병을 솔직히 드러내 대책을 허심탄회하게 물었다. “법의 페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세종대왕이 물었다. 성삼문은 법을 고치기 전에 임금의 마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삼문은 광무제를 예로 든다. 광무제는 전한(前漢) 말기 군주는 약한데 신하는 강한 형국이라며 삼공(三公·옛 중국 최고의 관직)의 권한을 빼앗았다. 그러나 권력이 환관에게 돌아가 조정이 혼란해진다. 성삼문은 반드시 법을 뜯어 고쳐야 이상정치를 이루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또 사람을 쓰는 것은 국가의 큰 권한이다. 재상에게 맡기되 자질과 이력을 따지는 일은 재상을 번거롭게 하니 전조(銓曹·인사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재상에게 맡기면 재상이 노고를 이기지 못하게 되고, 두 가지 일을 오로지 전조에 맡기면 전조에 권한이 지나치게 편중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신숙주는 언로(言路)를 열어 직언을 받아들인 후 날마다 대신들과 폐단을 고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형은 지나친 개혁은 패망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일을 맡기지 않고 대신들의 자리만 채워 백성에게 근심과 걱정을 끼치지 말라고도 했다. 광해군이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인재등용, 세제개혁, 토지정비 등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유생 임숙영이 되물었다. “임금이 싫어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는 풍조를 좇아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을 숨길 순 없습니다. 어찌 속된 선비처럼 왜곡된 말만 따라하며 인재선발을 맡은 관리의 기준에만 부합하려고 힘써, 전하의 은총을 훔쳐 임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임금의 잘못이 국가의 병 입니다. 왜 자신의 실책을 말씀하려 하지 않으십니까.” 절대 왕권 시절에 정말 대단했다. 그 옛날 군주의 길을 밝혀준 명신(名臣)들의 직언이 지금은 없다. /임병호 논설위원

외국교과서의 ‘한국 오류’

“북한의 침입에 대비해 서울 시내의 광고판들에는 레이더 설비가 감춰져 있다.” (캐나다 ‘21세기 세계의 이슈’),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몇 백년 동안 북한과 남한은 한 나라였다.”(태국 ‘세계지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길상 교수가 최근 출간한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에 실린 내용의 일부분이다. 이 같은 왜곡과 오류는 일본 교과서는 물론 많은 교과서에서 발견된다. 미국의 ‘세계사:인류의 유산’은 “1640년대에 한국은 중국 청 왕조의 속국이 되었다. 300년 동안 한국은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적었고, 멕시코의 ‘우리시대의 역사’는 “한국은 중국의 옛 영토였다가 1910년 일본에 합병되었다”고 묘사했다. 황당한 내용도 적잖다. 캐나다의 ‘유산:서구와 세계’는 “일본에 합병된 한국은 2차대전 동안 일본과 기타 주축국들의 편에 서서 연합국에 대항했다. 그래서 독일처럼 한국도 미국과 소련의 구역으로 분할되었는데, 그 분단선은 38도선이었다”고 묘사하고, 이탈리아의 ‘1900년대 세계사’는 “한국은 암시장을 통해 재료와 기술을 도입하기만 하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나라다”라고 소개했다. 아르헨티나의 ‘일반지리’는 한국을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자동차 강국으로, 파라과이의 ‘역사와 지리’는 한국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지역으로 표현하고 있다. 호주 교과서는 “태권도는 원래 중국에서 차용한 것이다. 한국어는 중국어와 다르며 일본어와 아주 흡사하다”고 적었다. 대만 ‘세계사’는 “한국이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난 것은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중국에 승리를 거두면서 얻어다 준 선물”이라고 기술했다. 이길상 교수가 2003년부터 검토한 세계 40여개국 500여 교과서 중 한국을 제대로 소개한 나라는 몇몇에 불과하다. 튀지니의 ‘현대세계지리’는 “한국은 불리한 여건을 딛고 거의 선진국에 도달한 국가로 아시아 경제발전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라고 기술했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의 교과서에서 한국은 무관심하거나 일본의 식민사관에 의해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한국오류’를 시정하기 위해서 정부의 지원과 민간 차원의 학술적 노력, 문화 교류가 필요함은 말할 나위 없다. 이길상 교수의 노고가 매우 크다. /임병호 논설위원

경기도의 화근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고 했다. 백번 들어도 한 번 보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을 확대하면 ‘백견이불여일행’(百見而不如一行)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백번 보아도 한 번 행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듣는 것보단 직접 보고, 보는 것보단 몸소 실천해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약 1년 전이다. 서울고법 형사부 판사들이 사건 현장을 검증했다. 화성시의 한 편의점에서다.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은 30대 남자다. 범인은 범행 당시 얼굴에 팬티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증거는 점원이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진술뿐이다. 물론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했다. 재판부의 현장검증은 그냥 둘러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판사가 직접 똑같은 문양의 팬티스타킹을 뒤집어 썼다. 범행 시각과 같은 시간, 범인과 점원이 서 있었던 똑같은 거리, 점포 실내 조명도 똑같은 조명으로 하여 현장 재연을 실행했다. 판사 세 명이 서로 번갈아 범인이 되어 팬티스타킹을 뒤집어 쓰는가 하면 또 점원이 되어 얼굴을 확인해보곤 했다. 결론은 세 판사가 모두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는 것으로 나왔다. 얼굴을 알아봤다는 점원의 진술은 지레 짐작일 뿐, 증거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결났다. 그 피고인에겐 유죄의 원심을 깨고 무죄가 선고됐다. 만약 항소심에서도 재판부가 점원의 진술만 믿고 현장검증을 안 했더라면, 꼼짝없이 특수강도의 죄인이 될 뻔 했던 것을 실체 규명에 진력한 재판부의 노력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모면한 것이다. 경기도 안성 미산골프장 승인 취소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잘못된 근본은 허위보고다. 그러나 허위보고에 속아 넘어간 책임 또한 없다할 수 없다. 어떻게 일일이 보고내용을 다 따질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미산골프장 문제는 사태가 심각했던 중대 사안이다. 실사 내용을 거듭 확인해봐야 하는 주의 의무가 있었다고 보아야 된다. 무명 시민의 재판을 위해 서울서까지 판사들이 현장에 내려와 몸으로 하는 검증을 해보였다. 미산골프장은 코 앞이다. 현장 한 번 안 나가 본 경기도의 안일함이 화근이다. /임양은 주필

X판 국회

국회가 깽판을 넘어 X판이다. 해머로 의사당 문을 부수더니 이젠 사람을 개 패듯이 해댄다. 전여옥(한나라당) 의원이 부산 민가협 사람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한 데 이어 차명진(한나라당) 의원은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두들겨 맞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서갑원 의원(민주당)은 한나라당 의원에게 떠밀려 허리를 다쳤다. 국회의원이 외부 사람에게 그것도 의사당 안에서 뭇매를 맞은 것이나, 다른 당 당직자가 상대 당 국회의원을 목 졸라가며 때린 폭력행위는 일찍이 대한민국 의정 사상 없었던 초유의 불상사다. 제18대 국회는 참 대단하다. 총선 직후 원구성을 석달이나 늦추고도 모자라, 일은 않고 계속 싸움질로 거의 1년 세월을 보내더니 이젠 주먹이 난무한다. 부끄럽게 알라, 정치권이 그 모양이니 사회 혼란 또한 더해 간다. 사회가 법치보다 떼법이 무성하고 갖가지 강력범이 설쳐대는 게 다 정치권의 막가는 행태에 영향이 없지 않다. 소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부터가 시정잡배보다 더 하는 난장판을 일삼으니 사회 정의가 설 수 없고 도의가 설리 없는 것이다. 헌정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의정투쟁이 아닌 반정부 투쟁은 정권퇴진운동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해고한다’느니 하는 해괴한 소리가 나오는 게 그에 연유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명박 정부 발목잡기는 자승자박이다. 경제가 나빠 살기 어려운 민중을 마구 충동질 하지만,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민중은 지금은 그래선 안 될 때라는 것을 더 잘 안다. 물론 민심은 이명박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당은 더 좋아하지 않는다. 민주당 사람들은 잃었던 민심을 되찾을 기회를 스스로 짓밟고 있다. 국회는 다수결로 의사 결정을 하는 헌법기관이다. 다수의 횡포는 국민이 심판한다. 한데, 18대 국회는 다수의 횡포가 아닌 소수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X판 국회에 부담하는 국민의 세금이 아깝다. 도대체가 반성을 모르는 위인들이다. /임양은 주필

영국의 저력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나라가 영국이다. 민주주의의 발상지다. 그런데 중세기의 귀족제도가 아직도 있다. 공작·후작·백작·남작·자작의 귀족계급은 비록 명예에 그치지만 지독한 모순이다. 지독한 모순이 또한 사회기여에 의한 사회통합에 지극한 조화를 이룬다. 영국 왕실의 소식은 내각보다 더한 국민적 관심의 뉴스다. 정신적 단합의 구심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같은 왕실이 있고 귀족제도가 있다고 해서 영국을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사람의 값어치를 존중하는 나라가 영국이다. 불문율이다. 성문율이 아니다. 관습법이 곧 법인 것이다. 심지어 헌법도 불문헌법이다. 성문헌법이 아닌 불문헌법은 영국이 유일하다. 전문(前文)에 전문(全文) 130조와 부칙 6조로 된 성문헌법을 두고도 위헌 여부의 헌법 소원이 잇따르는 우리와는 판이하다. 국정 운영에 조문으로 된 헌법이 아니어도 헌정 질서가 확연하다. 영국의 불문헌법은 다른 나라에서의 성문헌법보다 더 존중되고 있다. 일곱살난 남자 아이의 죽음에 영국 정치권이 애도했다는 외신보도가 눈길을 끈다. 남자 아이 아이번은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와 중증 간질을 앓은 장애아다. 부모가 쏟는 애정은 극진했다. 아이번 또한 밝게 자랐다. BBC 방송은 3년 전 이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영해 영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 아이가 지난 25일 죽은 것이다. 아이 아버지는 데이비드 캐머린 보수당 당수다. 캐머린 부부는 장애아 아들을 키우면서 사회적 약자보호에 관심을 크게 갖게됐다. 노동당 정부는 투병 중 갑자기 악화되어 숨진 아이번의 죽음을 애도해 의회의 질의 답변 일정을 하루 쉬었다. “정치는 때로 우리를 갈라 놓지만 시련의 시기에 서로를 향한 위로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집권 노동당 당수인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말이다. 영국이라고 정권 투쟁이 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투쟁을 할 때 하더라도, 인간적 불행을 서로 보듬는 영국 정치인들의 미덕이 무척 부럽다. 모순의 조화로 민주주의의 인간애를 꽃피우는 그들의 젠틀맨십, 즉 신사도 정신이 대영제국을 대국으로 이끄는 저력이다. /임양은 주필

면신례

관직생활에 처음 입문한 신참들의 신고를 받으면서 선배들이 작성한 문서가 ‘면신첩(免新帖)’이다. 인류학 혹은 민속학에서 통과의례로 이해되는 ‘면신례(免新禮)’의 역사는 깊다. 우리나라는 조선 중종 36년(1541년) 사헌부 상소에 면신례의 유래가 나온다. 고려말 조정이 혼탁한 시절에 처음 관직에 나간 권세가 자제들의 교만하고 방자한 기세를 꺾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갈수록 폐해가 커졌다. 오늘날 신고식과 달리 조선시대엔 모든 비용을 신참들이 대야 했다. 빚을 내서라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리지 않으면 그 집단의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른바 왕따를 당했다. 18세기 신참 관리 정양(鄭暘)은 호된 면신례를 치렀다. 정양의 온몸을 숯검댕으로 만든 뒤 씻은 물을 마시게 했으며, 사모관대를 한 채 연못에 뛰어들어 고기잡이 흉내를 내게 했다. 심지어 얼굴에 오물을 발라 광대놀음을 시켰다. 그런 신고식을 다 치른 뒤 선배 3명이 정양에 대한 합격증을 내어주고 “신귀(新鬼·새로운 귀신) 양정(暘鄭)은 듣거라! 넌 별 볼일 없는 재주로 외람되게도 귀한 벼슬길에 올랐겠다. 전해 내려오는 고풍을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으니, 거위, 담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즉각 내어와 우리에게 바치도록 하라.”고 호통쳤다. 고참들은 정양의 이름을 일부러 ‘양정’이라고 거꾸로 불렀고, 거기에 ‘신귀’라고 하면서 희롱했다. “더러운 너를 거둬들이는 것은 우리가 천하의 도량을 가진 까닭이요, 너의 과오를 사면하고 죄를 용서해주는 것은 성현의 큰 기량을 본받았기 때문이다.”라고 쓴 뒤 문건의 말미에 차례로 수결을 해준다. 이제는 ‘신참을 면하고(免新)’ 동료로 인정해준다는 의미다. 단종 시대엔 승문원에 배속된 정윤화라는 인물이 다른 9명의 신참과 함께 면신례로 사망한 일도 일어나 연루자 3명이 50대의 태(笞)를 맞고 파직되는 등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정국량(鄭國良)은 건융(乾隆) 23년(1758년) 초충(草蟲), 즉 풀벌레 같은 인사라는 모욕을 들어가면서까지 혹독한 면신례를 치른 뒤 ‘합격증명서’를 받았다. 면신례가 요즘은 대학가의 환영식으로 변질돼 신입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과도한 대학 입학 신고식이 벌써부터 걱정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시화호 조력발전소

조력발전(潮力發電)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해낸다. 안산시 시화호는 이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조수간만의 차가 최대 9.16m나 되고 이미 방조제도 갖춰 사업비도 크게 절감된다. 조력 발전소에 필요한 시설은 크게 두 가지다. 발전기가 있는 수차와 물이 빠져나가는 수문, 밀물 때 시화호 바깥쪽 바다의 수위가 높아지면, 이 물이 수차 구조물 안을 지나 시화호로 들어오며 발전기를 돌린다. 이렇게 높아진 시화호 내의 수위는 썰물 때 수문을 열어 물을 빠지게 만들어 다시 수위를 낮춘다. 시화호 주변 지역 침수를 막기 위해선 호수 수면을 높이면 안 돼 썰물 땐 발전을 하지 않는다. 시화호 조력발전소는 수차 10개, 수문 8개다. 시화호 조력발전소 건설은 여러 차례 난항을 겪었다. 2002년 당시 해양수산부가 시화호 종합관리 계획을 심의·의결하고 2003년 한국수자원공사가 총공사비 3천589억원 규모로 입찰을 공고했으나 등록업체가 없어 유찰됐다. 국내 최초인 만큼 공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물부터 새로 만들어야 해 도저히 수자원공사가 내놓은 사업비에 맞출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6개월 뒤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재입찰 선정돼 2004년 12월30일 비로소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착공 2년 만인 2006년 12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가물막이와 기존 방조제 접속구간에서 초당 3t 단위로 물이 샜던 탓이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공사가 6개월쯤 연기됐다. 시화호 조력발전소 공사는 조력발전소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다. 시설용량이 세계 최대인 프랑스 랑스 조력발전소보다 14㎿ 더 많은 254㎿다. 연간 발전량은 소양감댐의 1.56배인 5억5천270만㎾h에 달한다. 이는 50만명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연간 86만2천배럴(390억원)의 유류 대체효과와 31만5천t의 이산화탄소 저감효과가 예상돼 부수 효과도 크다. 발전소와 함께 조성되는 레저단지엔 연간 110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지금보다 바닷물 흐름이 원활해져 시화호 수질 역시 개선된다. 2010년 말쯤 세계 최대 규모의 시화호조력발전소가 완공되면 새로운 에너지 세대가 창출된다.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생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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