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道 규제 강화’, 정말로 더민주의 공약인가

‘민심이 발칵 뒤집혔다’고 썼다. ‘내부에서 부글거린다’고도 썼다. 부산지역 신문들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민심이란 부산민심이다. 내부라 하면 새누리당 내부를 말한다. 대구 조원진 후보(새누리)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대통령의 선물 보따리’라 했고 ‘대구 신공항’이라고 했다. ‘밀양 신공항’을 얘기한 것으로 해석됐다. ‘가덕도 신공항’을 학수고대하던 부산이 들고 일어났다. 부산민심이 뒤집혔고 새누리당이 부글댔다. 여기엔 다른 목소리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이 총공세에 나섰다. 새누리당 부산 후보들을 싸잡아 성토했다. 새누리당도 지지 않았다. 5일 부산상공회의소로 부산의 모든 후보들이 모였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서약식’을 거창하게 가졌다. 대구(밀양)에 맞서 싸우는 부산(가덕도)의 신공항 전투다. 부산의 미래가 걸린 이 전투에 정당은 없다. 모든 정당들이 똑같이 ‘가덕도 신공항’을 약속하고 나섰다. 선거란 게 이렇다. 경기도에도 현안이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다. 부산의 가덕도와 닮았다. 가덕도 신공항 유치는 부산을 살리는 일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경기도를 살리는 일이다. 그런데 정치는 다르다. 부산 정치는 가덕도 신공항에 한목소리를 낸다. 경기도 정치는 수도권 규제에 다른 목소리를 낸다. 풀자는 목소리도 있고, 풀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더민주당은 풀면 안 된다는 목소리다. 지금도 충청도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충남도당이 내놓은 공약이 ‘완화된 수도권 규제를 원상 복구하겠다’다. 지금 규제는 성에 안 차니 ‘더 강화하겠다’고도 한다. 충청도당만의 구호였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다. 당 대표도 ‘수도권 규제 완화로 지방이 피폐해진다’고 말했다. 경기도 심장에 와서도 그런 말을 했다. 경기도 기자들 앞에서 ‘규제 완화는 안 된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그렇다고 뭘 가져가겠다는 얘기도 없다. 하기야 가져갈 것도 없다. 참여정부 이후 수도권에서 나간 기관, 기구가 수두룩하다. 부산으로 13개, 대구로 11개, 광주ㆍ전남으로 15개, 울산으로 10개, 강원으로 12개, 전북으로 13개, 경남으로 11개, 제주로 10개가 갔다. 충청권으로는 무려 57개가 갔다. 빠져나간 민간 기업의 수는 여기에 넣지도 않았다. 갈 수 없는 게 아니라 가져갈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뭘 더 옥죄겠다는 건가. 국토균형발전론을 토론하려는 게 아니다. 경기도 표심에 대한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경기도에 승패를 건다면서 경기도의 규제 강화를 약속하나. 옛날엔 이러지 않았다. 수도권에 줄 선물도 챙겼었고 예의도 차렸었다. 2012년 10월 22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경기ㆍ인천 기자들과 만났다. 거기서 문 후보는 경제수도론을 던졌다. 경기북부는 평화경제로, 경기남부는 지식경제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경기ㆍ인천 언론이 크게 보도했다. 모든 공약이 그렇듯 믿음이 가는 약속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기ㆍ인천 유권자들은 그것도 선물이라며 받고 좋아했다. 지금 그런 게 없다. 냉혹하게 자르고 간다. 당이 이러니 후보들도 그렇다. 경기일보가 후보들에게 ‘수도권 규제’를 물었다. 더민주당 후보의 37%가 ‘규제를 풀면 안 된다’고 답했다. 이런저런 단서를 달았지만 결국 ‘안된다’였다. 부산 후보에게 ‘가덕도 신공항’을 물었더라면 어땠을까. ‘유치하겠다’는 답 하나였을 거다. 경기도는 아니었다. “규제 완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안민석 후보의 긴급 논평이 되레 당내 반항처럼 들렸다. 여기엔 자신감이 있는 듯 보인다. 경기도 표심은 특이하다. 규제 완화라는 화두에 흔들린 적 없다. 수도(首都)를 빼겠다는 후보에게도 가장 많은 표를 던졌었다. 충청도 할아버지, 전라도 아버지가 만드는 8도 표밭이어서다. 이번에도 ‘규제’ 화두는 미풍도 못 낸다. 오히려 더민주당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다. 그렇게 보면 더민주당의 선택이 옳은 듯도 보인다. ‘경기도 쬐끔 잃고 충청도 왕창 얻자’는 지혜로운 셈법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서 도민의 상처가 크다. 도민 숙원이 정치 셈법을 넘어서지 못하는 현실이 더 서운하다. 아마도 이렇게 20대 총선이 끝날 것 같아 보여서 더 속상하다. 정치인 1명에게 4월 13일은 ‘행복한 하루’다. 하지만, 1,300만 도민에게 4월 13일은 여전히 ‘고단한 하루’다. 그 고단한 하루 속에 내 땅이 묶여 있고, 내 애들이 실직해 있다. 그 땅 때문에 개발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고, 그 애들 때문에 공장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이런 도민의 뜻이 또 정치에 외면당하고 있다. 그것도 앞서 간다는 제1 야당에 외면당하고 있다. 2년 뒤 여당이 될 거라는 더민주당에 외면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당 차원의 공약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결국, 또 하나의 헛소리-‘어느 정당이든 규제 좀 풀어 달라’-를 기록하는 듯 하다.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포천시장은 견뎌도, 포천시민이 못 견딘다

대법원의 법리(法理) 검토란 이런 거다. 범죄의 행위는 들춰보지 않는다. ‘했느니’ ‘안 했느니’는 논외다. 그 행위의 결론은 이미 1, 2심에서 걸러진다. 그 행위와 형(刑)의 적용이 법 이론에 맞는지만 따진다. 서장원 포천시장의 성추행 사건도 그렇다. 성추행 행위에 대한 판단은 2심으로 끝났다. 사건 무마 시도도 사실로 판명났다. ‘피고인의 성추행 행위가 없었다’는 대법 판결은 나올 시스템이 아니다. 애초 법리는 시민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성추행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였다. 2014년 12월 24일만 해도 시민은 서 시장을 믿었다. 경찰에 나온 그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라는 안도가 많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후로 입을 닫았다. 성추행은 사실로 굳어갔다. 법치(法治)의 보루인 재판부도 성추행을 사실이라고 결론 냈다. 현직 시장의 여성 성추행, 시장실에서의 범행, 입막음용 수천만원 전달…. 이런 참담한 죄명을 쓰고 현직 시장이 구속됐다. 10개월간 수의(囚衣)를 입고 지냈다. 성폭력 치료를 받으라는 명령도 받았다. 성범죄 우범자 명단에도 올랐다. 성범죄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까 보는 명단이다. 이런 판결이 나오자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 법원 판결이 맞고, 성추행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당연히 반성의 길을 얘기할 거라고 봤다. 그런데 뒤에 붙은 말이 묘했다. “판결에 대해서는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아, 보다 더 심도 있는 공정한 법의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대법원에 호소하겠다.” 뭐가 억울하다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판단 받겠다는 게 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면서 그가 간 곳이 시장실이다. 17만 시민을 대표하는-판결문에 성추행 범죄 장소로 명시돼 있는- 그 시장실로 갔다. 그리고 계속 근무한다. 억대 연봉도 계속 받는다. 판공비도 계속 쓴다. 인사권도 계속 휘두른다. 포천시 행정도 계속 지휘한다. 그 행정 속엔 성범죄자로부터 포천의 부녀자들을 지켜야 할 안전 행정도 포함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더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이번엔 형제들의 땅 투기 논란이다. 2014년 포천시가 관내 땅을 용도 변경했다. 이 땅이 아파트 부지로 바뀌었다. 맹지에서 금싸라기로 변한 셈이다. 부동산 업자들은 이 땅의 시세차익을 서너 배로 본다. 이 땅 일부에서 서 시장 형제들의 이름이 나왔다. 근처 땅을 2012년 말에 사 둔 모양이다. 한 마디로 대박이다. 동물적 감각이라도 있는 형제들인가. 아니면 앞날을 보는 예지력이라도 있는 건가. 경찰은 ‘정보 유출에 의한 투기’에 방점을 찍었다. 이쯤 되면 나와야 할 시장의 입장이 있다. “형제들은 땅을 사지 않았다. 정보를 유출한 사실도 없다. 경찰의 표적 수사다.” 그런데 이번에도 말이 없다. 성추행 때처럼 입을 닫았다. 형제가 땅을 산 게 맞는 것 같다. 이제 포천시민은 또 한 번의 못 볼 꼴을 봐야 할 처지다. 주변 사람들이 불려 가고, 애먼 공무원들이 끌려가고, 시청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엊그제였나. 서 시장이 학생들 앞에 섰다. 장학금 수여식이었다. 초ㆍ중ㆍ고생 131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다. 초ㆍ중ㆍ고 8개교 교사들에게도 장려금을 줬다. 열심히 가르친 교사들이다. 그들 앞에서 이렇게 훈시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비롯해 장학금을 후원해주신 지역 여러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혼신을 다해 학업에 정진해 주길 바랍니다.” 포천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 애들인데. 그 애들에게 ‘성추행 피고인 서장원’의 훈시가 과연 필요했을까. 세상에 뇌물 먹고 감옥 가는 시장은 많다. 하지만, 성추행하고 감옥 간 시장은 없다. 세상에 가족범죄로 조사받는 시장은 많다. 하지만, 성범죄까지 겹친 시장은 없다. 그는 세상을 향해 “나만 그랬느냐”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향해 “당신이 처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서 시장에겐 하루라도 버티고 싶은 시장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민에겐 단 하루도 보고 싶지 않은 시장실이다. 2년 전 그는 55.82%의 지지를 받았다. 2년 뒤 그 55.82%가 참담하게 배신당했다. 이 배신의 대가는 대법원이 아니라 서장원 시장이 갚아야 할 몫이다. 사퇴(辭退)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낙후된 권선구? 권선구민 자업자득이다 -수원을 선거구-

후보 등록장에서 둘이 만났다. 김진표 후보가 덕담을 건넨다. “김상민 후보가 젊고 미남이어서 선관위 직원이 말을 잃은 것 같다.” 김진표 후보는 수원무에 출마했다. 김상민 후보는 수원을이다. 싸움터가 다르다. 그래서인가, 여유가 보인다. 하지만, 칭찬만으로 끝낼 김진표 후보가 아니다. “김상민 후보 위장전입 아닌가 서류 잘 봐주세요.” 농담치곤 묵직한 뼈가 들어 있다. 언론도 이 농담을 비중 있게 다뤘다. 김상민 후보가 가장 아픈 곳이다. 꽤 오랜 기간 김 후보가 뛴 곳은 장안구였다. 큼직한 현수막이 걸린 곳도 장안구 대로(大路)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옮겼다. 당 원내대표가 그렇게 제의했다고 한다. 김 후보도 ‘수원을로 가겠다’고 받았다. 그때가 3월 7일이다. 후보 등록일로부터 17일 전, 선거일로부터 36일 전이다. 이런 걸 낙하산이라 한다. 상대 당이 놔둘 리 없다. 김진표 후보의 ‘위장전입’ 농담도 그거였다. 그런데 말이다. 낙하산에 관한 한 상대 후보는 할 말이 없다. 재ㆍ보궐 선거를 앞뒀던 2014년 6월 26일. 백혜련 후보가 기자회견을 했다. “(정치 시작을) 제2의 고향, 검사로서의 첫 임지였던 수원 영통에서 하고자 한다.” 영통주민을 만났고 명함도 돌렸다. 법원 사거리에 현판도 걸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수원을로 옮겼다. 당 지도부가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가 7월 9일이다. 후보 등록일로부터 하루 전, 선거일로부터 20일 전이었다. 시기(時期)로는 기록적이다. 오십보백보요 초록이 동색인 것을, 누가 누구를 비난하나. 이런 취급받을 권선구가 아니다. 칠보산 자락마다 시민의 추억이 서려 있다. 학창 시절 소풍의 기억이 대부분 칠보산이다. 서울대 농대 금잔디 마당은 시민들의 나들이 공간이었다. 최고 대학을 가진 주민의 자부심이 컸다. 농촌진흥청은 대한민국 농업의 중심이었다. 툭하면 대통령 헬기가 착륙하던 권력의 중심이었다. 추억, 자긍심, 권력의 역사가 함께하던 곳이었다. 그런 권선구가 십수 년째 쇠락하고 있다. 공교롭게 그 쇠락의 시기에 정치가 맞물려 있다. 길을 잃은 정치가 있다. 신현태(16대ㆍ2000)-이기우(17대ㆍ2004)-정미경(18대ㆍ2008)-신장용(19대ㆍ2012)-정미경(재선거ㆍ2014)으로 바뀌어왔다. 현역이 빠졌으니 또 바뀔 것이다. 16년간 국회의원이 다섯 번 교체 된 곳, 그 다섯 번 중 한 명도 연임하지 못한 곳. 여기에 선거구 획정 때마다 이리저리 휘둘려 온 곳. 정치가 이랬으니 동네가 잘 될 리 있나. 이런 권선구에 또 선거가 왔다. 후보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다. 김상민 후보는 수원 토박이임을 내세운다. 현역(비례대표) 경험을 앞세워 권선구 발전을 장담한다. 백혜련 후보는 지역의 선점자임을 내세운다. 화장장, 비행장문제에 쏟아온 열정을 자랑한다. 이대의 후보, 박승하 후보의 목소리도 크다. 참 식상하다. 언제적 비행장 얘기고, 권선구 발전인가. 누가 그런 말은 못하나. 지나간 국회의원들도 다 그렇게 말했었다. 그 결과가 여전한 낙후도시고, 여전한 소음도시다. 정치만 탓할 것도 아니다. -맞아 죽을 각오로 말하면-권선구민의 자업자득이다. 주인 의식 없이 치러왔던 권선구 선거의 결과다. 민주주의의 주인은 시민이다?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민주주의의 주인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권력이 시민을 지배한다. 이런 권력자를 뽑는 작업이 투표다. 그래서 다수의 학자가 말한다. ‘시민이 민주주의의 주인 되는 날은 선거일 단 하루뿐이다.’ 수원을도 이 법칙 속에 있다. 권선의 주인은 권선 국회의원이다. 권선 국회의원이 권선을 지배한다. 그런 권선의 권력자를 뽑는 것이 투표다. 16년을 망쳐 온 권선구민이라면 이번이라도 눈치 채야 한다. ‘권선구민이 권선 주인 되는 날은 4월 13일 딱 하루뿐이다.’ 달라야 한다. 정치 따지고, 고향 따지면서 엉뚱하게 뽑아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능력 있고, 조금이라도 오래갈 후보를 뽑아야 한다. 다른 데선 말한다. ‘수원갑 총선에 장안구의 미래가 달렸다. 수원병 총선에 팔달구의 미래가 달렸다. 수원정 총선에 영통구의 미래가 달렸다. 수원무 총선에 남수원의 미래가 달렸다.’ 그런데, ‘못 사는 동네’ 수원을은 다르다. 4ㆍ13 총선에 현재가 달렸고, 집값이 달렸고, 생계가 달렸다. 본디 권선구는 위대했다. 그때로 돌아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최선(最善)에의 미련을 버리고 차선(次善)을 찾으려 들여다 보면 된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한선교 vs 이우현, 극과 극의 두 남자 -용인병 선거구-

80년대 이전 수지는 가난했다. 덜컹대는 시외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어쩌다 오는 이 버스가 도시로 향하는 통로였다. 광교산 자락 동네마다 각기 다른 공동체가 자리했다. ‘수지국민학교’ ‘고기국민학교’ ‘대지국민학교’, 그리고 ‘문정중학교’가 교육의 전부였다. 소작 농업, 배급 가정, 결식 아동…. 지금은 특별하게 여겨지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이 당시 수지에는 일상이었다. 50대 이상 원주민에게 남아 있는 기억이다. 이우현 후보(더불어민주당)가 그 중심에 있다. 주변인들이 기억하는 이 후보의 어릴 적 별칭은 ‘가난한 집 아이’다. 가난한 수지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 아이였다. 배급받은 밀가루로 아침을 때웠다. 그의 도시락을 본 친구가 없다. 4교시가 끝나면 교실을 뛰쳐나왔다. 수돗가 물로 배를 채우고 학교 뒷산으로 올라갔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고 붙여 먹던 소작농도 끊겼다. 비 새는 초가지붕 이엉을 동네 청년들이 고쳐줬다. 이 후보가 정치를 한 것도 그 가난 때문이다. 모두 떠난 고향을 홀로 지켰다. 새마을지도자로 동네 심부름을 도맡았다. ‘먹고 살만해지자’ 결식 아동 돕기에도 나섰다. 이런 그를 보고 주민들이 정치를 권했다. 어릴 적 먹여 살려준 지역이 베푼 또 한 번의 은혜였다. ‘가난했던 추억’에 대한 뿌리 깊은 지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싹쓸이하던 선거 때도 그는 매번 당선됐다. 지금도 그의 첫 번째 자랑은 ‘수지 출신 시 의장’이다. 90년대 이후 수지가 달라졌다. 수지지구가 개발되면서다. ‘제2의 분당’이라 불리며 사람들이 몰려왔다. 신봉리에는 신봉지구가 섰고, 성복리에는 성복지구가 섰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세무 조사…. 강남ㆍ분당의 고유명사였던 단어들이 수지지구에 등장했다. 중학교가 늘었고 고등학교도 생겼다. ‘수지고등학교’는 언제부턴가 경기 남부 최고 명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수지구 주민들에겐 대한민국 최고 도시라는 자부심이 있다. 한선교 후보(새누리당)가 그 중심에 있다. 애초부터 ‘스타’였다. ‘아침 만들기’(MBC), ‘좋은 아침’(서울방송)을 진행했다. TV 앞 주부들에게 그는 최고의 아이콘이었다. 그가 2004년 3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정치 기자들 사이에 박지만씨와의 특별한 관계가 알려지지 시작했다. 서울 출신, 인기 방송인, 세련된 외모까지. 도시적 이미지를 온몸으로 풍기며 등장한 그가 17대 총선에서 수지를 택했다. 수지구민들이 환영하며 만든 당선이었다. 18대 총선은 그에게 특별했다. 친박(親朴) 성향이 발목을 잡았다. 친이(親李)의 표적이 되면서 공천에 탈락했다. ‘살아 돌아가겠다’며 무소속을 택했다. 탈락한 친박 여럿도 같은 길을 택했다. 하지만, 실제 살아 돌아간 건 그였다. 정당ㆍ기호 정치 속 기적이었다. ‘한선교=수지구’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게 그때부터다. 당내 경쟁자든, 상대 경쟁자든 그의 이름 앞에서 무력화됐다. 지금도 새누리당은 용인병을 ‘능히 이겨 줄 곳’으로 꼽는다. 한선교와 이우현. 20대 총선 용인병에서 맞붙은 두 남자다. 어디서도 찾기 힘든 극단의 대비다. 한쪽은 풍요로운 ‘수지구’의 상징이다. 다른 쪽은 가난했던 ‘수지면’의 상징이다. 한쪽은 세련된 ‘도시 남자’ 이미지다. 다른 쪽은 투박한 ‘농촌 남자’ 이미지다. 한쪽은 중앙 정치의 ‘권력 실세’라 불린다. 다른 쪽은 지역 정치의 ‘산 증인’이라 불린다. 지난 주말, 풍덕천 오거리에서 들어본 여론도 둘 만큼이나 극명하게 갈렸다. “역시 수지에는 한선교 후보가 필요하다”(한선교 지지). “이제 수지를 아는 이우현 후보가 필요하다”(이우현 지지). “시 의장만으로는 국정능력이 안 된다”(이우현 비판). “국회의원 3번 하더니 건방져졌다”(한선교 비판). 용인병 예비후보: 한선교(새누리당)ㆍ이우현(더불어민주당)ㆍ김해곤(국민의당)ㆍ하태옥(정의당)ㆍ정익철(무소속)-2015년 3월 21일 현재 선관위 등록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정미경·김진표, 누가 더 능력자인가 -수원무 선거구-

영통 아줌마가 말한다. “우리가 왜 비행장 이전 얘기를 들어야 하냐구요.” 권선 아저씨가 말한다. “오지도 않는 전철 급행 얘기를 왜 들어야 하냐구요.” 그만큼 수원무가 엉터리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떼어다 붙였다. 권선구에서 6개 동, 영통구에서 2개 동을 추려(?) 갔다. 생활권도 다르고, 이슈도 다르다. 그런 동네에서 한 명만 대표자로 뽑으라 한다. 이러니 나오는 당선 공식이 동네마다 제각각이다. 어디선 구(舊) 선거구별 인구를 기준 삼는다. 2년 전 권선구민들은 정미경 후보를 택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도 그랬다. 그 권선구민들이 수원무에 16만2천816명 들어왔다. 4년 전 영통구민들은 김진표 후보를 택했다. 2004년 17대부터 쭉 그랬다. 그 영통구민들도 수원무에 9만9천561명 포함됐다. 62%가 옛날 정 후보 동네 사람이고, 38%가 옛날 김 후보 동네 사람이다. 정 후보가 이기는 공식이다. 어디선 지역 연고(緣故)를 기준 삼는다. 정 후보는 수원 출신이 아니다. 2008년 래수(來水) 해서 국회의원이 됐다. 타지(他地) 출신의 수원 입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김 후보는 4살 때부터 수원서 살았다. 출신 중학교도 그 언저리다. 2004년 귀향(歸鄕)해서 국회의원이 됐다. 그의 이름 앞엔 언제나 ‘수원출신 최초의-’라는 형용사가 붙는다. 권선구엔 유독 수원출신이 많다. 김 후보가 이기는 공식이다. 두 공식대로면 선거는 끝난다. 그런데 그럴 것 같진 않다. 두 공식 무너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새누리당 권선구 당원 일부가 정 후보를 반대하고 나섰다. 정 후보로선 믿었던 동네에서 얻어맞은 한방이다. 김 후보의 연고 셈법에도 ‘반란’의 조짐이 꿈틀댄다. 8도(道) 집합소 영통구의 독특한 분위기다. 지금도 영통주차장은 명절 때마다 텅 빈다. 언제든 타지역 출신 정 후보에게 손 내밀 표들이다. 그래서 두 공식은 답이 아니다. 결국, 바람직하면서도 유일한 공식이 남는다. ‘능력 대결’이다. 정 후보는 능력자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이다. 인기 없는 소위지만 자청했다. 국방대학원에 다니며 전문지식도 공부했다. 군 전력(戰力) 문제, 장병 복지 문제 등을 앞장서 해결했다. 그러나 국방위에 자리 튼 그의 진짜 목적은 비행장 이전이다. 군(軍)에 파고들어가 비행장을 옮기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그만이 갖고 있는 권선구 현안에 최적화된 능력이다. 여기에 집권 여당 소속이라는 덤까지 있다. 김 후보도 능력자다. 부총리를 두 번 했다. 한국 경제를 관리했고, 한국 교육을 총괄했다. 관료 출신의 최대 무기는 인맥이다. 경제부처와 교육부처에 연결 지어진 그의 인맥이 대단하다. 특히 경제부처 내 ‘김진표 마피아’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권력이다. 그와 연 맺은 차관, 실ㆍ국장들이 중앙부처마다 수두룩하다. 비행장 이전도, 분당선 급행화도 돈이 관건이다. 그 돈의 맥을 잘 아는 이가 김 후보다. 이만하면 남 부러워할 능력자들 아닌가. 전국 유일의 무(戊). 돌아봐도 수원무 획정은 엉터리다. 유권자를 무시했고 행정을 무시했다. 그런데 그런 수원무에서 선거문화 혁신의 기회를 엿보게 된다. 인정(人情) 선거, 인연(因緣) 선거를 끝내고 정책(政策) 선거, 능력(能力) 선거로 갈 수 있을 거란 역(逆)을 본다. 그렇게 기대해도 좋을 소재는 던져졌다. 가장 성실하고 가장 능력 있다는 후보들이 모였다. 누가 당선되든 수원무의 선택은 당당할 듯하다.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다. 4월 13일 그날 저녁. 기자들은 수원무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정미경 당선’ 또는 ‘김진표 당선’을 메인 뉴스로 타전(打電)할 것이다. 그러면서 수원무는 ‘버림받은 지역구’에서 ‘부러움 받는 지역구’로 바뀔 것이다. 능력 있는 후보 중에 더 능력 있는 후보를 제대로 골라낸 모범적인 선거구가 될 것이다. 인구 26만2천377명의 선택. 수원무의 4ㆍ13 게임은 ‘누가 더 능력자인가’다. 수원무 후보자: 정미경(새누리당)ㆍ김진표(더불어민주당)ㆍ김용석(국민의당)ㆍ김식(민중연합당)ㆍ김현우(무소속)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新도심 vs 舊도심 vs 本도심 -수원정 선거구-

매탄과 영통은 원래 안 맞았다. 수원의 적자(嫡子)라는 자부심과 신수원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충돌했다. 영통이 들어선 90년대 후반부터 계속된 현상이다. 신도시가 생길 때면 으레 형성되는 신ㆍ구도심 간 갈등이기도 했다. 공교롭게 표의 분포도 절묘했다. 매탄동 인구와 영통동(영통 1동ㆍ영통 2동) 인구가 엇비슷했다. 그 속에서 매번 정치는 긴장했다. 매탄과 영통을 위한 공약을 따로 준비했다. 영통과 광교도 불편하다. 수원고법 유치 때 불거졌다. 영통으로 거론되던 고법부지가 광교로 변경됐다. ‘빼앗긴 영통, 빼앗은 광교’라는 앙금이 생겼다. 분당선과 신분당선의 전철 갈등도 컸다. 분당선 개통의 영통 특수가 신분당선이 개통되면서 광교로 옮겨갔다. 선거구 획정을 두고도 양쪽 감정은 재연됐다. ‘싸워서 영통을 지키자’는 댓글(영통)과 ‘이참에 광교구로 바꾸자’는 댓글(광교)이 충돌했다. 세 지역의 정서가 이렇게 다르다. 여기가 수원정 선거구다. 한 지붕 세 가족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지역에 따라 표도 천차만별이다. 수원정의 전체 인구는 24만명이다. 매탄 네 개 동이 10만4천566명, 원천동이 2만5천313명, 광교 두 개 동이 6만5천756명이다. 영통 2동이 수원무로 빠져나간 영통 1동은 4만4천414명이다. 인구 비율은 매탄ㆍ원천-본도심- 54%, 광교-신도심- 27%, 영통-구도심- 18%다. 4년 전만 해도 이 지경은 아니었다. 광교 신도시를 생각 없이 묶으면서 복잡해졌다. 이제 후보에겐 세 지역을 공략할 최대 공약수가 필요해졌다. 신도심도 맞추고, 구도심도 챙기고, 본도심도 껴안을 공약이 필요해졌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 보인다. 최대 공약수는커녕 잘못했다간 한 방에 날아가게 생겼다. 특정 지역 득표가 다른 지역 감표로 돌변할 수 있게 생겼다. ‘경기도청사 이전’ 문제가 딱 그 짝이다. 4년여를 끌었던 이슈다. 광교 입주민들의 애를 어지간히 태웠다. 그러던 게 작년에 잠잠해졌다. 경기도가 정리했다. 청사 부지를 조정해 건축비를 만드는 안(案)을 냈다. 이를 밀어붙인 책임자가 박수영 행정부지사다. 그때부터 박 부지사에겐 ‘청사 이전 해결사’란 별칭이 붙었다. 그가 공복(公服)을 벗고 출마했다. 새누리당 옷을 입자마자 유력 반열에 올랐다. 지금 광교 인터넷에서는 그가 갑(甲)이다. 그런데 이게 패착일 수 있다. 청사 이전은 광교만의 이슈다. 영통과는 상관없다. 되레 시야 밖으로 벗어날 수 있다. 최근 2년여 간 광교는 급성장했다. 같은 기간 영통은 뒤로 갔다. 늘 있어오던 신ㆍ구도심 간 역학관계다. 물론 그 속에서 갈등도 자랐다. 광교에 대박 공약이 영통엔 쪽박 공약일 수 있다. 이를 모를 박광온-또는 김명수 또는 박원석- 후보가 아니다. 영통 인터넷을 들여다보면 그게 보인다. 이러다 보니 결론은 매탄ㆍ원천동이다. 매탄ㆍ원천동을 잡는 게 관건이 됐다. 54%라는 막강한 표 외에 다른 의미도 있다. 광교에 섭섭하고, 영통에 섭섭했던 매탄ㆍ원천동의 정서다. 불꽃을 그어 댈 폭탄과도 같다. 이를 눈치 챈 후보들이 매탄ㆍ원천동을 뛰고 있다. 박수영 조직, 박광온 조직이 충돌하고 있다. 때마침 27.2% 대 26.7%로 갈라선 여론이 후보들을 애태우고 있다(케이엠 조사ㆍ경인일보 발표). 다들 20대 선거구를 최악이라고 한다. 숫자 놀음이 지역을 버렸고, 정치 타협이 행정을 버렸다고들 한다. 지금의 수원정이 그렇다. 숫자 놀음에 광교가 엮였고, 정치 타협에 영통이 쪼개졌다. 선거구가 이러니 선거도 최악이다. 버릴 곳과 챙길 곳을 고르게 만들었다. 버려질 유권자와 챙겨질 유권자를 가르게 만들었다. 신도심, 구도심, 본도심…. 어쩌면 이 중 한 곳은 버림받은 4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선거판은 냉정하다. 어차피 학자(-Why)가 아니라 기술자(-How)들이 뛰는 판이다. 그 기술자들이 수원정에 내린 정답은 ‘매탄ㆍ원천=승리’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김종인의 逆무기

선거판의 금기(禁忌)라 한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나 행위다. 햇볕 정책을 건드리는 것과 노인을 건드리는 것도 그런 유(類)의 금기다. 특히나 야당엔 그렇다. 그런데 이 금기를 맘대로 넘나드는 정치인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다. 햇볕정책부터 건드렸다. “북한이 핵을 갖지 않았던 시점의 햇볕정책은 유효한 대북정책이었지만, 북한이 핵을 보유한 지금 대북정책은 진일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일보 해야 한다’는 표현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개성공단도 폐쇄되고 대화 자체가 중단돼 버렸는데 대화가 영원히 중단돼선 안 되니 앞으로 가자는 얘기다. 뭐가 잘못됐나.” 25일 호남의 중심 광주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김종인의 광주 선언’이라 명명됐다. 햇별 정책은 곧 DJ(김대중)다. DJ의 철학(哲學)이자 유지(遺志)다. 햇볕 정책을 건드리는 건 곧 DJ를 건드리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호남 민심은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데 김종인 대표는 그걸 건드렸다. 미사여구를 빼고 보면 ‘철 지난 햇볕정책’이란 소리다. 통상 이 정도면 야당 대표에겐 자살골이다. 국민의당이 발 빠르게 파고들었다. 연일 김 대표를 공격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아예 “새누리당과 연대하려는 짓”으로 몰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호남 민심이 그리 나빠지지 않는다. 당내에서도 발언을 문제 삼는 소리가 없다. 왜 그럴까. 복잡하게 보지 말자. 인지상정으로 풀면 된다. 김 대표는 전라도 사람이다. DJ는 전라도 상징이다. 지연(地緣)에 관한 한 둘에겐 동향의 피가 흐른다. 경상도에게 전라도가 ‘문딩이’라면 얻어맞는다. 하지만, 같은 경상도끼리 하는 ‘문딩이’는 애칭이다. 김종인에 흐르는 호남 DNA, 이것이 그에겐 햇볕정책을 쳐도 될 무기다. 아슬아슬한 게 또 있다. 연장자(年長者) 퇴출 분위기다. 현역 물갈이 기준이 마련됐다. 1차 컷오프, 2차 정밀심사다. 그런데 2차 심사 기준이 이상하다. 3선 이상의 50%, 초ㆍ재선의 30%를 무조건 대상으로 삼았다. 3선 이상 대부분은 60세를 넘는다. 정치적 다선(多選) 이전에 인간적 연장자다. 여기에 1차 컷오프 결과가 나왔는데, 당의 어른인 문희상(72), 유인태(69) 의원이 포함됐다. 졸지에 나이 먹은 게 죄(罪) 되는 당이 됐다. 어느 선거에서나 노인층은 지뢰밭이다. 잘못 건드리면 한방에 간다. 12년 전 정동영씨도 그랬다. “노인들은 선거장 안 나와도 된다”고 했다가 호되게 당했다. 해명도 안 통했다. 당 의장에서 쫓겨났다. 지금도 ‘정동영’ 검색어에는 ‘노인 폄훼’가 뜬다. 국민의당이 김종인 표 ‘3선 교체’를 흉내 냈다.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곧 당내 반발로 이어졌다. 3선의 김동철 의원(62)이 ‘나만 3선이냐’며 들고 일어났다. 당(黨)만 우스워졌다. 이것도 이상하다. 김종인 대표는 어떤 욕도 듣지 않는다. 되레 전권(全權)을 더 넘겨받았다. 왜 이럴까. 여기도 간단하게 풀어 보자. 그의 나이 77세다. 현역 국회의원 최고령이라야 75세(박지원ㆍ무소속)다. 원로 대우받던 문희상, 유인태도 동생뻘이다. 50대 안철수 대표가 ‘3선 연장자들 물러나라’면 노인 폄훼다. 하지만, 77세 김종인 대표가 ‘많이 한 애들은 나가라’고 하면 그냥 어른의 조언이다. 이 역시 77세 김종인의 무기다. 그가 느닷없이 등장했던 한 달 전. 다들 얼마 못 갈 거라고 했다. ‘바지 사장’만 하다가 끝날 거라고들 했다. 그런 그가 한 달을 넘겼다. 공천권까지 거머쥔 실세가 됐다. 더민주당의 여론까지 덩달아 올라갔다. 한 달 전 호남은 국민의당이었다. 이제 호남은 더민주당의 땅이다. 그는 지금 당권도 잡았고, 개혁도 잡았고, 여론도 잡았다. 물론 최종 평가는 이르다. 선거 평가는 언제나 소급(遡及)적이었다. 이기면 잘한 게 됐고, 지면 못한 게 됐다. 김종인 대표도 그렇게 평가될 것이다. 4월 14일 아침에야 최종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이란 형용사를 붙여 평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김종인 대표가 더 잘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새누리당보다 화끈하게 개혁하는 것 같고, ‘지금까지는’ 국민의당보다 확실하게 호남을 얻는 것 같다. 그 속에서 김종인만의 무기가 보인다. 전라도 출신-많은 이들에게 정치성장의 한계라 여겨졌던-이 하나고, 황혼의 늙음-많은 이들에게 사회참여의 한계라 여겨졌던-이 다른 하나다. 역(逆)에서 권력(權力)을 만들어내는 김종인 대표. 그에게서 고수(高手)의 향이 풍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세월호 부모님들께

아침 신문에 기사가 났습니다. 단원고가 교실 공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학교의 8개 공간을 교실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교장실과 교무실 등 선생님들의 공간이 바뀐다고 합니다. 음악실 컴퓨터실 과학실 특수교실 6개 등 학생들의 공간도 바뀌나 봅니다. 그러면 교장 선생님은 컨테이너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학생들은 과학 기자재를 교실로 들고 다녀야 하고, 시청각실에 모여 음악 수업을 해야 합니다. 신입생이 들어와섭니다. ‘기억교실’ 11개를 대체할 공간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대로 두고는 수업을 할 수 없습니다. 신입생 학부모들이 요구했습니다. 기억교실을 정리해달라고 했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저지하는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어제(23일)는 유가족 대표와 재학생 부모들이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학부모들은 기억교실 정리를 요구한 모양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어떨지 압니다. 생때같은 아이들을 잃으신 분들입니다. 바로 어제 일처럼 2년을 살아오셨을 겁니다. 그런데 세상은 다 잊고 갑니다. 함께 울던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남은 것은 갈수록 커져 가는 아이들의 빈자리뿐입니다. 그 마지막 체취가 남은 곳이 기억 교실입니다. 그런데 그 교실을 들어내라고들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후배들의 부모들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운해 마시고 미워 마십시오. 저분들도 여러분의 마음을 알 겁니다. 2년 전 그때, 틀림없이 함께 울었을 동네 주민들입니다. 잠겨 가는 에어 포켓의 끝자락을 보면서 가슴 절절히 기도했었을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사시는 곳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동네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맘 아파하고 함께 기도했을 이웃 주민들입니다. 그런 분들의 아들 딸 300명입니다. 스스로 선택해 시험치고 들어온 단원고가 아닙니다. 교육청이 그렇게 정해놓고 가라고 하니 들어온 학생들입니다. 그 학교 바로 옆에, 혹은 그 주변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수업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학실도 쓰고, 음악실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텅 빈 11개 교실을 보는 무서움은 덜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향한 여러분의 서운함, 모두가 압니다. 돈에 눈먼 어른들이 뒤엎은 배였습니다. 선장은 저만 살겠다고 보트 타고 도망쳤습니다. 교육청은 ‘전원 구조’라는 발표로 아이들을 두 번 죽였습니다. 이걸 받아 쓴 언론사는 ‘대형 사고 날 뻔’이라는 제목으로 억장을 무너뜨렸습니다. 하나같이 여러분 가슴에 비수를 꽂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아닙니다. 여러분께 상처주지 않았습니다. 정치가 피를 먹고 자라는 콩나물이라 했던가요. 여러분의 아이들을 희생 삼은 정치가 있습니다. 노란 리본 달고 선거판을 누볐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시장 됐고, 도의원 됐고, 시의원 됐습니다. 그 정치가 또 기웃거립니다. 기억 교실 논란에 은근히 올라타려 합니다. 4.13 총선에 4.16 세월호를 연결해 보려고 합니다. 참 나쁜 사람들입니다. ‘불쌍한 애들 좀 그만 내버려두라’고 해야 합니다. 2년 전 그때. 수원의 유신고 3학년 8반 교실에서 이런 싸움이 있었습니다. 종교반 반장에게 아이들이 따졌습니다. “하나님이 어른들의 잘못을 벌준 것이냐.” “그런데 왜 죄 없는 애들을 데려간 것이냐.” “네가 하나님을 믿으니 대답해 봐라.” 반장은 대답하지 못했고 애들도 울었다고 합니다. 세월호 부모님들. 기억 교실은 이제 사라질 겁니다. 아이들의 체취도 사라질 겁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2년 전에 멈췄지만, 세상의 시간은 그렇게 2년 후에 와 있습니다. 어차피 떠나 보내야 할 아이들이라면 여러분의 손으로 하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결정하고 여러분이 거두셨으면 합니다. 여러분 아들이 공부하고 여러분 딸이 재잘거리던 교실입니다. 그 불쌍한 것들을 어떻게 남의 손으로 거두겠습니까.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반공통일관·反반공통일관

1954년 7월이다. 휴전되고 꼭 1년이다. 나라는 여전히 폐허였다. 그런 나라의 대통령이 미국에 갔다. 이발 좀 하라고 했지만 마다했다. “돈 얻으러 가는데 깔끔하면 누가 돈 주겠나.” 7월 28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 섰다. “소련이 수소탄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전에 미국 공군으로 하여금 소련의 생산 중심지를 파괴해야 한다.” 주제도 모르는 연설일 수 있었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나라의 대통령이다. 누구더러 누구를 공격하라는 것인가.하지만, 이승만에겐 필요한 발언이었다. 그날 연설의 논리는 이랬다. ‘소련이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이 대비해야 한다. 그 행동을 시작할 곳은 극동이다. 한국이 충분한 인적 자원을 제공하겠다. 미국은 현금 현물 지원만 해 주면 된다.’ 연설에서 대통령은 ‘우리(We)’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미국과 한국을 반공이라는 매개로 묶었다. 훗날 혹자들은 이날의 연설을 ‘반공의 성전(聖戰)에 한국을 바치겠다는 반공 세일즈였다’고 정리했다.그렇게 국부(國父)에서 시작된 반공은 오래갔다. 5ㆍ16의 혁명 공약도 반공이었다. 반공으론 성에 안 차는 세상으로 변했다. 북한을 없애자는 멸공(滅共)통일관이 국민에게 교육됐다. 전두환 정권은 더 극단으로 갔다. “우리나라 국시(國是)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 지금 같으면 ‘깜’도 안 되는 연설이다. 그런데 이 연설문을 준비한 유성환의원에 쇠고랑이 채워졌다. 국부에서 군부(軍部)까지, 우리의 통일관은 반공통일이었다. 그 피와 사상이 박근혜 정부로 승계됐다. 그리고 이 정부를 보수(保守)가 받치고 있다. 이들에게 북핵은 청천벽력일 수 밖에 없다. 먹어야 할 적(敵)에게 먹힐 판이다. 뭐라도 해야 한다. 3대 세습 정권을 향해 전단도 날려야 하고, 김정은에 들어갈 돈도 씨를 말려야 한다. 북한의 명줄을 이어주는 개성공단 가동은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가동중단 결정은 진작 했어야 할 만시지탄이다. 이 집단이 ‘개성공단 중단 찬성 60%’로 뭉쳤다.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전혀 다른 통일관을 정식화했다. 6ㆍ15 남북 공동성명 2항에 의미를 정리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Confederation)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Soft Federation)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구체적 행동은 햇볕정책이 맡았다. 반백년 가까이 국시로 모셔졌던 반공통일이 한순간 퇴물이 됐다.좌익(左翼) 전력자의 사위가 대통령이 됐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라는 말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바꿨다. 반공통일관에 맞섰다가 20년간 징역 산 신영복 교수가 대학 강단으로 돌아왔다. 그의 혼(魂)이 담긴 서체 ‘처음처럼’이 국민 소주가 됐다. 국민 누구도 ‘좌빨 소주 안 먹겠다’며 ‘참이슬’을 찾지는 않았다. 그렇게 반백년짜리 반공통일관은 10년 간 반(反)반공통일관으로 대치됐다. 그 DJㆍMH의 계승자들이 지금의 야권(野圈)이다. 진보(進步)가 그들을 받치고 있다. 이들에게 북핵은 ‘이해해야 할 자위수단’일 수도 있다. ‘선거에 조심하라’는 김종인 대표의 경고 때문에 그 말을 아끼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개성공단 사태가 터졌다.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감정적 조치라고 비난한다. 선거를 앞둔 신(新) 북풍이라고 공격한다. 전쟁하자는 것이냐고 따진다. 이 집단 역시 ‘개성공단 중단 반대 40%’로 뭉쳤다. 개성공단 중단 찬성 60%, 개성공단 중단 반대 40%. 결국엔 반공통일관 60%, 반반공통일관 40%다. 2016년 대한민국에 통일관을 대입시켜 산출해 낸 수치다. 이 ‘60대 40’이 남들은 이해 못 할 한국을 만들었다. 핵무기가 터지고 미사일이 날아가도 한국은 다르다. 미국 정치는 만장일치지만 한국 정치는 갑론을박이다. 1만㎞ 밖 미국은 공포에 떨지만 40㎞ 안 서울은 표(票)에 떤다. 미국은 돈줄을 막았지만 한국은 햇볕을 더 주자고 한다. 이쯤 되면 앞날이 보인다. 안보(安保) 앞에서 단결하자? 대통령도 얘기하고 언론도 주장한다. 하지만, 안 될 것 같다. 계속 삐걱거릴 것 같다. ‘종북 좌파 통일관’ ‘꼴통 보수 통일관’이라고 욕하며 벌어진 틈새가 너무 크다. 거기에 합류한 여론의 덩치가 너무 거대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10년보다도 훨씬 긴 시간을 ‘한 지붕 두 통일관’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기나긴 통일관 충돌의 시작이 지금의 개성공단 논란일지 모른다. 한반도(韓半島)! 이 작디 작은 땅에 통일관만 3개다. 반공(反共)통일관, 반반공(反反共)통일관, 그리고 적화(赤化)통일관. 앞의 두 개로 남(南)은 쪼개져 있고, 뒤의 하나로 북(北)은 뭉쳐져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도태호 2부시장의 ‘힘’과 ‘짐’

뚫리기 전에는 논이었다. 그것도 절대 농지였다. 하필 그 논 양쪽에 단지가 들어섰다. 한쪽은 영통, 다른 쪽은 신영통이라 불렸다. 출퇴근 때마다 지역 전체가 마비됐다. 누구 봐도 새 길이 필요했다. 하지만, 농림부가 반대했다. 정확히는 ‘농림부 6급’이 반대했다. ‘수원 최 계장’에게 ‘농림부 6급’은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5년을 끈 뒤에 ‘농림부 6급’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제야 20만 신도시가 살아났다. 지금은 그 길을 ‘박지성로(路)’라 부른다. 수원 2부시장에 도태호씨가 취임했다. 살아온 이력을 보자. 국토부에서 주택정책관, 건설정책관, 도로정책관을 했다.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부단장도 했다. 지금 처한 수원시 현안을 보자. 신ㆍ구 도심 간 균형 있는 주택정책이 시급하다. 비행장 이전에 대비한 밑그림이 필요하다. 한계에 달한 교통망 확충이 필요하다. 흉물로 버려져 있는 공공기관 이전 부지 활용도 시급하다. 부시장 이력과 수원시 현안이 볼트와 너트처럼 맞아 들어간다. 안 그래도 수원 2부시장은 특별하다. 기초자치단체 중 수원시에만 있다. 229개 시ㆍ군ㆍ구의 관심과 평가를 한몸에 받고 있다. 5년 전인 2010년, 첫 번째 선택이 있었다. 다들 정치 주변의 정무(政務)형을 예상했다. 하지만, 시는 실무(實務)형을 택했다. 도시 재생 전문가를 앉혔다. 그를 통해 수원의 재생(再生) 지도가 그려졌다. 시민과 함께하는 참여행정도 만들어졌다. 첫 번째 2부시장 시대가 끝났고 시민들은 5년 전 선택에 후한 점수를 줬다. 이제 두 번째다. 이번에도 용도(用途)는 분명하다. 그의 이력과 시의 현안 사이에 훤히 드러난다. 그런데 그 이면에서 ‘특별한 용도’가 보인다. 그 ‘특별한 용도’의 일단이 26일 배포된 그의 취임사에 있다. “제가 중앙정부에서 축적한 국토교통행정 경험을 살려 수원미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지방정부가 넘기 힘든 중앙정부의 벽, ‘최 계장’이 그토록 버거워했던 중앙부처 6급의 벽, 그 벽을 넘는 게 그의 ‘특별한 용도’다. 기대를 갖게 하는 일화(逸話)가 흘러나온다. 취임 상견례가 서울에서 있었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 국토부의 ‘별’(국장급)들이 대거 참석했다. ‘중앙 6급’도 버거워하는 수원 간부들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신분당선 개통식의 일화도 있다. 국토부가 시간상 이유로 수원시장과 용인시장의 인사말을 뺐다. 그러자 도 부시장이 “시민을 위한 행사에 시장 축사가 빠지면 안 된다”며 국토부를 압박(?)했다. 결국, 두 시장에게 마이크가 주어졌다. 4~5년쯤 전이었나. ‘김 과장’ 에겐 늘 동문 수첩이 있었다. 웬만한 학교의 동문수첩이 다 있었다. 승진해서 처음 한 일도 수첩 뒤져보기였다. “중앙 부처 공무원 좀 알아보려고. 비빌 언덕이라도 찾아보게.” 문화관광부와의 숱한 협의를 앞뒀던 그였다. 말이 좋아 협의지 사실상 허락을 받는 일이다. 그래서 한 게 학연(學緣) 뒤지기였다. 어디 수원 ‘김 과장’뿐이겠나. 성남 ‘김 과장’, 용인 ‘김 과장’들도 운명처럼 안고 있을 중앙의 벽이다. 도 부시장의 미담(美談)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리비아 탈출’에 띄울 비행기 삯을 두고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개인 보증으로 국민부터 구해낸 게 국토부 ‘도 국장’이었다. 구설(口舌)도 알고 있다. 고교동창, 지인 등과의 술자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해명이 됐다지만 ‘엘리트 도 실장’ 에겐 주홍 글씨로 남았다. 앞의 미담은 그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퍼 옮긴다. 뒤의 논란은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퍼 나른다. 생각하면 둘 다 부질없다. ‘리비아 탈출’ 영웅담으로 선택된 게 아니다. ‘친구 술자리’ 과거로 취소될 것도 아니다. 그에겐 수원 2부시장에 선택된 아주 명확하면서 유일한 이유가 있다. 국토부의 연(緣)을 수원에 연결해야 할 책임이고, 국토부의 벽(壁)을 수원 공무원들에 낮춰줘야 할 책임이다. 도태호 부시장 한 사람만이 갖고 있는 ‘힘’이자 도태호 부시장 한 사람만이 지고 있는 ‘짐’이다. 힘으로 삼으면 성공한 부시장이고, 짐으로 남으면 실패한 부시장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교육감 직선제, 총선에 存廢 걸릴 것

여론은 바뀐다. 그것을 수치화하는 작업은 더 하다. 때에 따라 변하고 질문에 따라 변한다.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여론도 그렇다. 2011년의 어떤 조사는 이랬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 찬성 45.0%, 반대 28.0%, 무응답 27.0%. 4년 뒤 조사에선 이랬다. 직선제 찬성 42.6%, 임명제 19.3%, 런닝 메이트제 14.4%. 조사한 기관은 두 번 모두 ‘리얼미터’다. 그런데도 여론은 달랐다. ‘폐지해야 할 제도’에서 ‘존치해야 할 제도’로 변했다. 헌법재판소도 직선제의 손을 들어줬다. ‘교육감 직선제는 위헌이 아니다’라고 결론 냈다. 학부모와 교사 등 2,450명이 냈던 헌법소원이었다. 헌소를 제기했던 이유는 수학권과 수업권 침해다. ‘학생이 교육받을 권리와 교사가 가르칠 권리 등이 침해받고 있다’며 소(訴)를 냈었다. 이에 대해 헌재 재판관 전원이 ‘직선제는 합헌이다’고 했다. 작금의 교육감 직선제의 위치가 이렇다. 다수(多數)가 밀고, 합법(合法)이 받치고 있다. 그런데 피곤하다. 말할 수 없이 피곤하다. 직선 교육감 시대 이후 쭉 이랬다. 경기도민에게 직선 교육감이 선 뵌 게 2009년이다. 곧바로 도의회가 전쟁터로 변했다. 무상급식비를 달라는 교육감과 못 준다는 도지사가 붙었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도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번갈아 점거했다. 학교급식 문제가 문화, 건설, 일자리, 인사 등 모든 행정을 주어 삼켰다. 그 해 그때만의 일이 아니다. 매년 다음해 예산을 짤 때만 되면 전쟁은 재발했다. 초대 직선 교육감 5년 내내 경기도정이 그렇게 휘둘렸다. 사람이 바뀌면 조용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번엔 유치원ㆍ어린이집 전쟁이다. ‘주자’ ‘못 준다’는 입장만 바뀌었다. 이번에도 직선교육감이 중심에 있다. 누리 예산 편성 ‘0원’으로 불을 질렀다. 경기도를 준(準)예산 사태로 마비시켰다. 31명의 시장 군수를 정당별로 쪼갰다. 남경필 도지사의 연정(聯政)도 한 방에 무너뜨렸다. 학부모와 유치원장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두 번째 직선교육감 시대다. 그 사이 학교와 학생은 뒤로 밀려났다. 장기 결석하던 11살 아이가 학대 끝에 탈출했다. ‘급식 천국’ 경기도에서 자란 아이인데 몸무게가 16㎏이다. 3년간 결석하던 또 다른 아이는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빠에게 맞아 죽었고 시신까지 훼손됐다. ‘7일 이상 결석하면 조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규정일 뿐이다. 행정 공무원은 입건됐지만 ‘직선 권력’은 사과도 안 했다. 교육감 협의회는 아동학대 의제를 누리 예산 뒤로 밀어버렸다. 교육을 버리고 표(票)만 쫓는 직선 교육감제의 현실이다. 새누리당이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싶은 모양이다. 토론회마다 내리는 결론이 직선제 폐지다. 이를 눈치 챈 여론이 지금까지는 막아왔다. 42%의 찬성으로 폐지의 ‘폐’ 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 여론이 달라질 수도 있어 보인다. 새누리당 선동 때문이 아니다. 누리 예산 파국을 지켜보며 유권자가 스스로 입장을 바꾸고 있다. 방치되는 학교와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학부모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존폐의 절벽이 4월 13일이다. 여당이 총선에 이기면 교육감 직선제는 사라질 것 같다. 국회 선진화법이 사라진 다수(多數)의 단두대에 제일 먼저 올릴 것 같다. 42%의 ‘존치’ 지지율? 말했듯이 여론은 변한다. “이념 싸움이나 하고 학생 방치하는 직선제 폐지하자”는 설문 돌리면 그걸로 끝이다. 지금의 이 난장판을 보고도 서명 안 할 유권자가 몇이나 되겠나. 많은 이들이 다시 직선제 폐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교육행정을 교육정치로 변모시킨 직선 교육감들. 학생과 학부모를 정치 투쟁의 볼모로 엮어 넣은 직선 교육감들. 어쩌면 저들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려 할 땐 이미 교육감 직선제가 역사 속 구(舊)제도로 기록돼 있을지 모른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대만 눈치 보기, 적당히들 하시오 적당히!

이미 익숙한 모습이다. 대만은 우리를 늘 적(敵)으로 삼았다. 대만 경기가 없는 경기장에서도 그랬다. 관중석에 나부끼는 혐한(嫌韓) 플래카드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2010년 10월 대만에서 있었던 대륙간컵 야구대회엔 이런 플래카드가 등장했다. ‘천안함을 폭파하듯 한국인들을 두들겨라’. 그해 3월 한국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이 있었다. 우리 해군 46명이 전사했다. 그 소름 끼치는 한국민의 상처에 초산을 들이붓는 문구였다. 도를 한참 넘었다. 많은 이들이 그 출발을 1992년 국교 단절로 설명한다. 6·25 때 도와준 은혜를 배신한 한국에 대한 구원(舊怨)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대만인들의 구호도 그랬다. “우리는 당신들을 도왔는데 당신들은 우리를 배신했다”. 우리 사회도 그걸 당연히 받아들였다. 대만인의 반한 감정은 정당한 것이라 여겼다. 한국은 계속 얻어터져도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 후로 툭하면 태극기가 밟히고, 툭하면 한국 상품이 불탔다. 이제 한번 생각해보자. 대륙(大陸)은 우리에게 뭐였나. 늘 축복이고 은혜였나. 우리 역사 최초의 전쟁 상대는 연나라다. 기원전 332부터 321년까지 고조선을 침략했다. 기원전 107년경, 고구려의 첫 전쟁도 위나라와 연나라였다. 대륙의 마지막 침략은 1636년 병자호란이다. 기원전 332년부터 1636년까지 무려 1천968년이다. 이 긴 역사에 기록된 침략자는 모조리 대륙이다. 수(隋), 당(唐), 명(明), 청(淸) 등 모든 대륙의 지배자들이 한반도를 침략했다. 우리가 치를 떠는 일제(日帝) 36년보다 54배나 긴 세월이다. 대륙이 휩쓸고 간 한민족의 역사는 온통 피와 굴욕으로 범벅됐다. 대륙 침략이 있을 때마다 전리품은 여성이었다. 천민 여인, 양반 여인, 왕가 여인을 가리지 않았다. 어엿한 가정주부도 끌고 갔다. 대륙에서 돌아온 여인들은 ‘화냥년’-還鄕女-의 인생을 살아야 했다. 임금도 침략자 대륙엔 놀잇감이었다. 항복한 왕에게 ‘삼궤구고두’(三九叩頭)를 시켰다. 소리가 안 들린다며 머리를 짓눌렀다. 임금의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칸이 술 석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한 잔에 세 번씩 다시 절했다. 칸이 휘장을 들추고 밖으로 나갔다. 바지춤을 내리고 단 아래쪽으로 오줌을 갈겼다. 바람이 불어서 오줌 줄기가 길게 날렸다. 칸이 오줌을 털고 바지춤을 여미었다. 다시 칸이 셋째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남은 절을 계속했다.’-김훈 著 남한산성 중에서- 그랬던 대륙이 둘로 갈렸다. 모택동의 공산 중국과 장개석의 자유 중국으로다. 둘은 서로가 대륙의 적자라 자처한다. 적자(嫡子)란 ‘정실(正室)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수ㆍ당ㆍ명ㆍ청의 아들이란 얘기다. 우리에게 1천968년의 고통을 안긴 대륙의 아들이란 얘기다. 화냥년과 삼궤구고두의 치욕을 안긴 대륙 역사의 아들이란 얘기다. 그런 대만이 1천968년은 쏙 빼고 3년(1950~1053년)만 얘기하고 있다. 그것도 24년째. 이제 바꿀 때가 됐다. 그런데 그들은 안 할 거다. 우리가 바꿔야 한다. 1천968년짜리 치욕의 역사와 3년짜리 빚의 역사를 정확히 계산해 내야 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종잇조각 든 선수에겐 메달도 못 주겠다는 게 스포츠 정신 아닌가. 야구장에서 태극기 짓밟는 퍼포먼스에 항의해야 한다. 이유 없는 야유와 욕설에 항의해야 한다. 근거 없는 갑 질에 빠져 있는 국내 대만인들에게도 ‘주제를 지키라’고 일러줘야 한다. ‘JYP’를 왜 ‘IS 인질범’으로 모나. 대만의 연예 지망생을 발탁했다. 몸값만 30~40억원에 이르는 스타로 만들었다. 그 스타의 대만 국기 사진이 논란을 빚었다. 팬들이 항의하니 사과하도록 했다. 뭐가 잘못됐나. 연습생 발탁과 스타로의 육성, 뜻하지 않은 실수와 이에 대한 공개사과…. 지겹도록 봐오던 한국 연예계 일상이다. 그런데 왜 JYP만, 그것도 우리가 앞장서 잡아 돌리나. 지겹다 못해 역겨운 ‘대만 비위 맞추기’다. 영화 ‘광해’. ‘은혜의 나라’ 명(明)에 비단, 말, 처녀를 바치겠다는 신하들에게 광해가 분노한다. “적당히들 하시오, 적당히.” 400년을 훌쩍 뛰어넘은 2016년. 그 대륙의 적자 대만이 또 한 번 ‘은혜의 나라’를 자칭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비위를 맞추려는 우리 언론과 정부가 알아서 설설 기고 있다. 벌써 24년째다. 400년 전 광해의 호통이 되살아나야 할 순간이 됐다. ‘적당히들 하시오. 적당히’.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염태영·이재명 戰-Ⅰ

“수원은 잘하던데요. 청와대 출신들로 인수위원회도 꾸리고….” 이 말의 묘한 여운이 5년 넘게 남아 있다. 그때의 성남시장실은 어수선했다. 어설프게 꾸려진 소파가 인터뷰 장소였다. 그전까지 신임 성남 시장의 이미지는 강성이었다. 전임 시장의 행정을 어지간히 물고 늘어졌다. 자수성가, 진보주의자, 재야운동가, 고소ㆍ고발로 각인된 이미지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잘 웃었고 말도 잘 했다. 그날 이재명 시장이 툭 던진 수원 평(評)이다. 사실 그랬다. 2010년 ‘염태영 인수위’는 화려했다. 이계안 위원장은 전국적 인물이었다. 황인성 위원은 청와대 수석 출신이었다. 이재준 위원-뒷날 부시장이 되는-은 박사였다. 그때까지의 시ㆍ군 인수위와는 급이 달랐다. 혹시나 기웃대던 지역 인사들의 입이 댓 발쯤 나왔다. 이 시장의 덕담 속엔 그런 가시가 돋쳐 있었다. 적어도 대담자에겐 그렇게 들렸다. 그 후 두 시장은 승승장구했고 재선도 했다. 어느덧 6년차 시장이다. 염 시장은 제일 큰 지자체의 장이고, 이 시장은 두 번째 큰 지자체의 장이다. 양쪽 모두에선 ‘굵직한’ 다음 정치 일정이 거론된다. 염 시장 주변에서는 “경기도지사 하셔야죠”라는 말이 나온다. 이 시장 주변에서는 “대권 후보 여론조사 ○등입니다”라는 말이 들린다. 지금 둘은 경기도를 대표하는 시장이자 미래가 기대되는 정치인이다. 이런 둘이 충돌했다. 누리 예산에서다. 염 시장이 시비(市費)를 들여 우선 집행키로 했다. 파국을 예상하고 159억원을 준비해뒀던 모양이다. 수원의 유치원과 부모들을 넉 달간 안심시킬 돈이다. 꽉 막힌 정국을 뚫어낸 첫 결정이다. 염 시장은 더민주당 소속이다. 누리 예산 보이콧이 당론이다. 그럼에도, 시비 ‘우선’ 투입을 결정했다. 시민들이 좋아했다. 새누리당 도지사까지 ‘나도 도비 쓰겠다’며 이어받았다. 이때가 7일이다. 그런데 3일 뒤 이재명 시장이 입을 열었다. 본인의 SNS를 통해서다. “도지사는 소속정당의 이익이 아니라 도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중앙정부에 경기도민의 혈세를 상납해선 안된다.” 문맥이 직접 겨눈 대상은 남 지사다. 그런데 ‘도지사’를 ‘시장’으로 바꾸고, ‘경기도민’을 ‘수원시민’으로 바꾸면 글의 타깃은 ‘염태영’이다. 누가 봐도 염태영 행정 돌려 차기다. 누리 예산 파국을 풀어가는 두 시장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염 시장의 시비 집행 결정은 조용히 이뤄졌다. 159억원을 미리 준비해뒀는지도 다들 몰랐다. 시비 집행 결단이 언론에 ‘대박’을 친 후에도 그랬다. 부속실과 공보실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모두 거부됐다. 반면, 이 시장은 누리 예산 정국에서 여론을 끌고 다녔다. 청년 배당, 무상 교복, 산후 조리비 지원…. 역(逆)발상으로 연일 치고 나간다.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5년 내내 둘은 그랬다. 신중함과 과감함, 대화와 파격으로 구분됐다. 그런데 신기하다. 둘이 충돌했다는 기억이 없다. 툭하면 싸우는 게 시장들이다. 물 때문에 싸우고, 화장터 때문에 싸운다. 오래전부터 성남 공무원들은 염 시장을 얘기했다. 언제부턴가 수원 공무원들도 이 시장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두 시장은 충돌하지 않았다. 서로를 입에 담았다는 기록도 별로 없다. 그러다가 이번에 붙었다. 염 시장의 위민론과 이 시장의 투쟁론이 붙었다. 쉽게 정답을 내릴 논쟁은 아니다. 굳이 결론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지금 흥미롭게 볼 대목은 두 시장이 6년만에 붙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충돌이 선의로 가면 좋다는 것이다. 미래가 없는 척박한 경기도 정치판이다. 염태영 도지사의 꿈도 좋고, 이재명 도지사의 꿈도 좋다. 수원시장 대통령도, 성남시장 대통령도 가슴 설레는 상상이다. 어차피 평가단은 지역민이다. 어느 지역이 행복한가가 평가 항목이다. 두 시장도 잘 알고 있다. 누리 예산으로 수원 시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염 시장이고, 무상교복으로 성남 시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이 시장이다. 염 시장은 50년 숙원인 비행장문제를 풀겠다며 뛰고, 이 시장은 최대 현안인 구도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뛴다. 비행장 풀리고 1공단 정리되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경쟁이면 백번 겨뤄도 좋다. 계속 지켜 볼만한 ‘염태영ㆍ이재명 戰’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무상누리·무상급식, 누가 누굴 욕하나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 무상급식이 등장했다. 무상급식을 공약했던 김상곤 후보가 당선됐다. 그리고 곧바로, 도 교육청은 630억원의 무상급식비를 경기도에 요청했다. 교육예산과 상관없는 일반 행정예산에의 요구였다. 김문수 지사는 거부했다. ‘포퓰리즘 정책을 던져 놓고 책임은 경기도청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민주당이 ‘아이들을 굶기자는 것이냐’며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 누리 예산이 등장했다. 누리 과정을 공약했던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그리고 2016년, 중앙정부는 5천억원의 유치원 누리 예산을 경기도 교육청에 요청했다. 중앙예산과 상관없는 지방예산에의 요구다. 더민주당이 거부하고 있다. ‘표 받기 위해 던져 놓고 그 책임을 지방 자치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아기들이 쫓겨나면 야당이 책임지라’며 야단이다. 어쩌면 이토록 닮았나 싶다. 서로 자리만 바꿔 앉은 데자뷔다. 무상급식은 야당 교육감의 것이었고, 누리 과정은 여당 대통령의 것이다. 무상급식은 경기도 예산에 떠넘긴 것이었고, 누리 과정은 지방 예산에 떠넘긴 것이다. 무상급식 예산은 여당이 반대했었고, 누리 과정 예산은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 무상급식 무산의 책임은 여당에게 떠 넘겨졌고, 누리 과정 무산의 책임은 야당에 떠 넘겨지고 있다. 흐름이 닮았으니 앞날도 닮을 듯하다. 그때 무상급식은 이렇게 끝났다. 학부모 단체들이 도의회에 진을 쳤다. 슬픈 표정의 학부모가 카메라 앞에 섰다. “애들 급식비가 없어서 너무 힘듭니다.” 그 사람들은 김 교육감의 호위무사들이었다. 그 학부모는 교육청 단체에서 한 자리 하고 있었다. 세상이 쪼개졌다. 애들을 굶기자는 쪽과 먹이자는 쪽으로 갈라섰다. 1년 뒤 지방선거는 퍼주기 무상급식이 이겼다. 지금의 누리 예산도 그렇게 가고 있다. 학부모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이어간다. 카메라 앞에선 학부모가 낙담하며 얘기한다. “막막하죠. 아이는 낳으라고 하면서.”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더 알아봐야겠다. 박사모인지, 새누리당 지지자인지 아직 취재가 덜 됐다. 어찌 됐건 이번에도 세상은 쪼개졌다. 아기들을 챙기자는 쪽과 버리자는 쪽이다. 석 달 뒤면 선거인데 이번에는 새누리당이 표 계산에 바쁘다. ‘얼마 전’ 얘기이자 ‘오늘 현재’ 얘기다. 엊그제 몸싸움하던 도의원들도 7년 전 그 도의원들이다. 사정이 이런데 누가 누굴 욕하겠나. 이미 대한민국 정치 사전은 복지를 이렇게 정의했다. ‘복지란 무차별ㆍ공짜로 퍼주는 행위.’ 알량했던 정당 색깔 따위도 없어진 지 오래다. 선거 몇 번 치르면서 뒤섞여 버렸다. 그 사이 나라 살림만 ‘20도’쯤 기울었다. 경기도를 마비시킨 복지비 5천억원은 돈도 아니다. 무상급식 3조7201억원, 기초연금 11조4천억원, 무상보육 14조7169억원이 기다리고 있다. 2017년에 들어갈 돈이다. 굵직한 것만 뽑았을 때다. 김종인 교수가 말했다. ‘경제력의 한계가 곧 복지의 한계다.’ 맞는 말이다. 돈에 맞춰야 하는 게 복지다. 누리 예산이 부담되면 줄여야 한다. 3천억원으로 줄이고 2천억원으로 줄여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못하겠다고 버틴다. 무상급식도 그렇다. 700억원으로 줄이고 500억원으로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건 더민주당이 못하겠다고 한다. 서로 ‘내 복지’ ‘네 복지’ 갈라놓고 ‘내 복지는 못 줄인다’며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만 골병들고 있다. 월요일 아침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경기 누리 예산 0원-사상 첫 광역 준예산 사태.’ ‘유치원생 19만명이 월 22만원씩 더 내야 할 수도 있다’(중앙일보). 오늘 아침엔 이런 기사가 났다. ‘표 되는 복지에 세금 몰아 쓰겠다는 성남시.’ ‘장애인 불우아동 지원은 부족한데 청년 배당, 공공산후조리, 무상교복만 강행하려 한다’(동아일보). 어제는 돈 없다는 기사, 오늘은 돈 퍼준다는 기사다. 이쯤 되면 복지 난장판이다. 답이 없다. 재벌 손자에 준 점심값은 회수해야 하는데…. 살만한 집 아이들에 준 유치원비는 회수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위인들이 아니다. 결국, 미래의 어느 날-나라가 더 파탄 나서 어쩔 수 없이 거둬 들이게 될 날-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수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복지 망국의 그날이 이미 문지방을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르고…. 누리 예산 4조원? 이것부터가 답 없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한쪽은 거덜날 일이다. 2010년 어느 날, 무상급식 데모대가 창밖에서 확성기를 틀고 있었다. 부지사실에서 내다보던 ‘정창섭 부지사’가 말했다. “김 국장, 복지는 뒤로 갈 수 없는 거야. 그래서 걱정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겨울, 또 많은 이들이 떠나네요

이종구라는 공무원이 있었습니다. 90년대 말 수원시 도시국장을 했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도시계획 전문가였죠. 그런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 맡겨졌습니다. ‘컨벤션 시티 21’이라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수원시 이의동을 개발하는 계획이었습니다. 논밭과 야산으로 뒤덮인 도심 속 농촌을 완전히 뒤엎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었습니다. 상급기관인 경기도가 반대했고, 개발에 대한 특혜 지적도 있었습니다. 사무실에는 대형 청사진이 가득했습니다. 그 속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틈나면 도청을 오가며 동의를 구했습니다. 시의회에 불려나가 특혜가 아님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기를 1년여,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가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일에 치어 방치했던 혈압이 문제였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팔과 다리의 장애가 남았습니다. 결국, 공직을 떠났습니다. 깨끗하고 능력 있던 한 공무원의 쓸쓸한 퇴임이었습니다. 안수현이라는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 경기도청 공보계장을 했습니다. 돌아보면 전형적인 구(舊)시대 공무원이었습니다. 오전 회의가 끝나면 기자실에 들어옵니다. 딱히 업무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기자들의 말동무가 일입니다. 말이 말동무지 기자들이 좀 까탈스럽나요. 말도 안 되는 투정, 위아래 몰라보는 막말이 쏟아집니다. 그래도 그가 웃으면서 던지는 한 마디는 이거였습니다. “에이, 밥이나 먹으러 가.” 기자들과 몸으로 부딪혔습니다. 기자들이 주는 소주잔-때로는 고량주-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룻밤에 두세 자리를 옮겨 다니는 것도 다반사였습니다. 안 계장의 그런 모습을 기자들도 도지사도 좋아했습니다. 나중에 승진도 했고 기관장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재작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출장 갔던 중국에서 고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를 괴롭히던 기자의 핸드폰엔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010-3739-34○○. 이제 이 국장의 동기들, 안 계장의 동기들도 다 떠났습니다. 이 국장보다는 10년쯤 더 했고, 안 계장보다도 2년쯤 더 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은 행복한 퇴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도 정말 행복하다며 떠났을까요. 평생 근무한 사무실을 나가는데 행복했을까요. 그렇치 않을 겁니다. 누구에게나 떠나는 건 허전하고 슬픈 일입니다. 그 허전함과 슬픔이 몇 년 더 했느냐 몇 달 늦었느냐로 위로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제는 ‘강 검사장’이 사표를 냈다고 합니다. 23년쯤 검사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 BBK 주가 조작 사건, 삼성 비자금 특검, 노무현 대통령 수사 당시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등으로 그의 이름이 남았습니다. 같은 검찰 식구를 구속했던 그랜저 검사 사건도 그가 했습니다. 독하게 살았던 23년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에게 기자들은 늘 ‘18기 선두주자’라는 형용사를 달았드랬습니다. 그런 그도 사표를 냈다고 합니다. 행복할까요. 퇴임사에서 뭐라고 할까요. ‘그동안 감사했고 보람 있었습니다. 후배들의 건투를 빌며 행복하게 떠납니다’라고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기는 떠나는 공직자가 이것 말고 할 말이 뭐 있겠나 싶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한 번 물어볼까 합니다. ‘정말 행복한가요. 정말 미련은 없나요.’ 겨울입니다. 인사철입니다. 또 사람들이 떠날 겁니다. 또 다른 이 국장들, 또 다른 안 계장들, 또 다른 강 검사장들이 떠날 겁니다. 하필 그 계절이 우리나라엔 차디찬 겨울입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수원 FC, 힘내라

5,800,000,000원.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받는다는 연봉이다. 4,300,000,000원. 기성용이 스완지 시티에서 받는 연봉이다. 국내 리그의 몸값은 이보다 적다. 그래도 서민 입은 딱 벌어진다. 이동국(전북 현대) 11억, 김신욱(울산 현대) 10억, 김두현(수원 삼성) 8억…(2014년 기준). 선수 하나하나가 곧 기업이다. 그래서 프로다. 몸값이 곧 선수 가치다. 1998년 이동국과 안정환이 ‘상대보다 1원이라도 더 받겠다’고 버텼던 것도 프로라서다. 수원 FC는 어떤가. 선수단 몸값이라야 23억원이 전부다. 그나마 승리수당까지 다 포함했을 때 얘기다. 이 돈으로 감독과 코치, 선수 32명이 연봉을 받는다. 1인 평균 9천만원 정도다. 이 속에도 차이는 있다. 9천만원마저 꿈인 선수가 있다. 번외(番外)지명자들의 연봉은 2천만~2천400만원이다. 월급으로 보면 160만~200만원이다. 시가 꾸려가는 살림이니 이럴 수밖에 없다. 시비(市費) 40억과 연맹 지원금 10억으로 1년을 버텨야 한다. 전용 연습 구장은 꿈도 못 꾼다. 여기산 시민 공원이 연습장이다. 축구장으로 쓸 수 없는 인조잔디다. 툭하면 화상을 입고, 발목이 돌아간-골절- 선수도 한둘이 아니다. 종합운동장은 말뿐인 홈구장이다. 유명 축구인의 축구교실에 보조경기장을 내어준 지 오래다. 선수들은 월드컵 경기장 옆 보조 구장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기회는 좀처럼 없다. 공원에서 운동하고, 짐 메고 돌아가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수원 FC 선수들이다. 그런 수원 FC가 일을 냈다. 28일 달구벌로 대구 FC를 찾아갔다. 연간 예산 140억원을 쓰는 팀이다. 선수단 몸값만 70~8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선수들은 기죽지 않았다. 스타도 없고 선수층도 얇지만 정신력으로 뛰었다. 2대 1, 승리였다. 한국에서 순수 2부 리그 출발팀이 1부 리그에 승격한 역사는 없다. 그 새로운 역사를 만들 자격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휴일을 마다 않고 달려간 수원시민들의 함성이 대구 경기장을 뒤덮었다. 흔히들 칼레의 기적을 얘기한다. 2000년 5월 7일 프랑스 컵 결승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프로팀 낭트와 맞선 상대는 ‘라싱 유니온 FC 칼레’였다. 장식품 가게 종업원, 청소 용역회사 직원, 난방기구 수리공, 부두 노동자들이 선수였다. 4부 리그 소속팀이 결승에 오른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패했지만 프랑스 국민은 이미 칼레의 편이었다. 경기를 본 시라크 대통령도 “낭트는 결과에서 이겼고 칼레는 정신에서 이겼다”고 격려했다. 칼레 시는 가난했다. 도버해협에 접한 인구 7만5천명의 항구도시였다. 인구의 절반이 연 수입 5만 프랑도 못 벌었다. 그 칼레 시가 두 달여 동안 프랑스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16강전, 8강전, 4강전이 치러지며 모두를 칼레 시민으로 만들었다. 결승에서 패해 눈물을 흘리는 칼레 선수들에겐 세계 축구팬이 박수를 보냈다. 이제 칼레는 기적의 성지다. 칼레 정신은 불굴의 정신의 다른 표현이다. 축구가 칼레 시민을 그렇게 만들었다. 수원 FC의 선전을 기적이라고 하지 않겠다. 수원은 칼레처럼 가난하지 않다. 40억을 투자해 선수단을 살필 수 있는 도시다. 수원 FC 선수들도 약하지 않다. 눈발 속에 90분을 뛰고도 운동장을 펄펄 뛸 기운이 남아돈다. 번외지명이라고 부끄러워하는 선수도 없다. 번외지명자 정기운은 이제 상대 선수들을 벌벌 떨게 하는 최고의 공격수다. 마땅히 받아 들 결과다. 단내나도록 뛰어온 선수들에게 주어진 ‘아직도 미진한 보상’일 뿐이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연습장을 전전하는 그들을 챙겨줄 곳이 없었다. 골을 넣고 달려오는 그들을 맞아줄 관중도 없었다. 시민이 만들어 놓고도 그들을 기억하는 시민은 없었다. 그들이 새로운 한국 축구사를 써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미안하다. 오늘, 그들의 마지막 고비 1차전이 벌어진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삼성축구단 옹호의 거짓말·왜곡·과장

정확한 출처는 모른다. 짐작은 되지만 말할 수도 없다. 어쨌든 인터넷은 연일 불을 뿜는다. 때론 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재단을 향해, 때론 민선 단체장을 향해, 때론 맘에 들지 않은 기사(記事)를 향해 포화를 퍼붓는다. 그리고 그 속에 왜곡과 거짓말, 과장이 있다. ‘삼성이 IMF에서도 280억원을 기부했다’ 그만 들어도 좋을 20년 전 얘기다. 그런데도 툭하면 인터넷에 떠돈다. 그러니 또 짚어야 할 듯하다. 월드컵 경기장에는 2천522억2천700만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기관별 부담액은 국비 440억, 경기도비 1천80억1천600만원, 수원시비 720억1천100만원이다. 애초 삼성이 짓겠다고 했던 경기장이다. 그 약속이 기업 사정-IMF로 인한 경영 악화-을 이유로 파기됐다. 그걸 때운 것이 국민의 혈세, 도민의 혈세, 시민의 혈세다. ‘280억’은 결코 기부금이 아니다. 삼성이 처음에 벌려놨던 토목공사비다. 약속 파기 시점에는 이미 돌려받을 수도 없는 재화(財貨)였다. 더구나 삼성은 이 토목공사를 이유로 경기장 공사를 전부 수주했다. 월드컵까지 시일이 촉박하고, 기(旣)건설부분과의 연계성을 인정한다는 게 특혜계약의 이유였다. 이렇게 보면 280억원은 2천500억원짜리 대형 공사를 따 낸 마중물이었다. 이걸 왜 자꾸 기여금이라고 거짓말하나. ‘경기장 사용료가 서울보다 비싸다’ 수원 경기장의 사용료가 부당하다는 단골 비교표가 있다. 서울상암월드컵 경기장과의 비교다. 이 표가 경기도나 수원시에 대해 ‘축구 장사를 한다’거나 ‘축구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우악스런 비난으로 옮겨졌다. 수원의 경기당 사용료는 252만5천원이다. 19경기를 기준으로 치면 연간 4천797만5천원이다. 서울은 경기당 186만5천원, 연간 3천543만5천원이다. 실제로 수원이 서울보다 경기당 66만원, 연간 1천254만원 높다. 그런데 여기엔 왜곡이 있다. 광고와 관련된 사용료가 빠졌다. 경기장에는 현수막, A 보드, LED 전광판 등이 있다. 이를 사용하는 요금이 수원은 연간 2억900만원, 서울은 3억400만원이다. 서울이 9천500만원 비싸다. 경기장 사용료와 광고 사용료를 합하면 서울이 8천246만원 높다. 그런데 이 얘긴 안 한다. 1년 전에는 경기장 사용료만 얘기하며 더 깎아야 한다고 했고, 이제는 광고 사용권만 얘기하며 다 넘겨야 한다고 한다. ‘삼성의 기부 40억, 현대의 기부 2천400억이다’ 염태영 시장은 삼성 축구단 편인듯하다. 경기도에 월드컵 경기장을 넘겨달라고 요구한다. 삼성 구단에 혜택을 줄 모양이다. 이 논리가 시작된 것은 프로야구 10구단 유치 때다. KT 야구단에 준 ‘시(市) 야구장 무상 사용권’이 사달이었다. 그때부터 ‘저기에 특혜 줬으니 우리도 특혜 달라’는 위법적 논리가 선출직을 볼모 잡고 있다. 이번 광고권 마찰 때도 염 시장은 ‘삼성 측 주장이 맞다’는 입장을 일찌감치 내놨다. 혹 이런 통계 봤나. 현대의 울산시 기부와 삼성의 수원시 기부 분석표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의 집계다. 현대는 울산에 2천400억원을 기부했다. 같은 기간 수원에 대한 삼성 기부는 40억원이었다. ‘2천400억: 40억’. 이 민망한 비교 속에 체육도 있다. 수원시가 떠안은 운동부가 20여개다. 모두 열악하다. 삼성 골키퍼 연봉의 100분의 1로 생활하는 선수도 있다. 그들이야말로 염 시장이 먼저 챙겨야 할 계약상 식솔(食率)이다. ‘축구 경기장은 수원시민 경기도민의 것이다’ 수원시장이 주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 경기도지사가 혼자 결정할 일도 아니다. 시민이 있고 도민이 있다. 시의회도 있고 도의회도 있다. 어떤 이는 ‘축구는 축구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던데, 작금의 문제는 축구가 아니다. 깨 놓고 말해, 새로운 구단주의 축구단 경영 문제다. 바로 그 경영이 시민ㆍ도민의 재산권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떼’와 ‘외곽’으로 시작했던 게 애초 잘못이었다. 도민이 화난 것도 그래서다. 언제부터 ‘축구’가 ‘도민’ 위에 군림했나.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4대 강 사업은 옳았다

그때부터 2015년까지는 3년밖에 흐르지 않았고, 2025년까지 헤아려도 13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 4대 강 사업이 완공됐고, 2015년에 38년짜리 소(小) 가뭄 주기가 정점에 왔고, 2025년에 124년짜리 대(大)가뭄 주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때 물 부족 국가가 예언됐고, 2015년엔 최악의 가뭄이 나타났고, 2025년엔 물 부족 재앙이 예고돼 있다. 논문-‘한국의 가뭄주기에 대한 연구(변희룡 박사)’-과 사업-4대 강 정비사업(이명박 대통령)-이 불행히도 맞아간다. 비가 내리긴 했다. 밭작물 잎새는 촉촉이 적셨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댐들은 여전히 말라 있다. 대청댐이 3㎝, 보령댐이 12㎝ 높아졌을 뿐이다. 4일간 들어간 물이라야 대청댐에 100만톤, 보령댐에 20만톤이다. 앞으로도 대청댐에 7억5천200만톤, 보령댐에 5천300만톤이 더 들어가야 한다. 나흘간 들어간 물의 752배, 265배다. 야속하게 비는 그쳤다. 이제부터 갈수기(渴水期)다. 제발 미신(迷信)이었기를 바랬는데, 가뭄 주기 예언은 과학(科學)이었다. ‘달리 수가 없다. 4대 강 물을 써야 한다.’ 변 교수는 말한다. “국가적인 재난입니다. 큰 재난인데, 여당, 야당, 정치 싸움은 그만 하시고, 재난 앞에서 겸허해야 해요. 옛날에 잘못된 주장을 했더라도, 또 옛날에 반대한 사람도 섭섭한 마음은 그만 털어버리고, 일단 우리 국민이 살고 봐야 합니다. 4대 강 보 안에는 물이 철철 넘쳐 있는데 하도 반대가 심해서 그 수로를 연결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 수로를 연결하고 해야죠.”-11월 9일, YTN 인터뷰 중-. 사실 4대 강 사업은 동네북이었다. 야당은 총체적 비리로 단정했다. 국정조사를 하겠다며 별렀다. 환경단체는 망국적 사업이라고 단정했다. 국토 생태계를 파괴할 재앙이라고 비난했다. 새누리당도 삐딱했다. 친박(親朴)의 눈을 거슬리는 친이(親李)의 유산일 뿐이었다. 올 초 ‘성과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없다’고 한마디 했던 이 전 대통령이 융단폭격을 당했다. 정치에 동화된 여론의 마녀사냥이었다. 지금도 국민 68%는 ‘잘못된 4대 강 사업’이라고 답한다. 그런 대한민국에 가뭄이 왔다. 고종 5년 이래 최악의 가뭄이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입을 닫았다. 국정 조사하자던 야당도, 생태 파괴라던 단체도, 친이 작품이라던 새누리당도 입을 닫았다. 가뭄 속에도 철철 넘쳐나는 4대 강 봇물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불과 3년 만에 반대논리가 틀렸음이 확인됐다. 대한민국은 물 부족 국가로 가고 있었고, 국토는 4대 강이 아니라 가뭄이 파괴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보(洑)를 더 쌓았어야 했고, 물을 더 담았어야 했다. 오판의 정치, 무지한 정치였다. 그런데도 항복하기는 싫은 모양이다. 안희정 도지사가 금강 물을 끌어가는 공사를 시작했다. 정부 여당에서는 이 물이 백제보의 것이라고 했다. 충남도는 백제보에서 6㎞ 떨어진 물이라고 했다. 여당은 갑자기 4대 강 치적에 올라타려 하고, 야당은 여전히 4대 강 치적과는 담쌓으려 한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얄팍함이다. 논바닥은 갈라져 거북이 등껍질이 됐고, 댐 바닥엔 수풀이 자라 야산이 돼가는데…. 어떻게든 인정하기 싫어 억지를 고집하는 것이다. ‘쿨’하게 반성하고 사과하면 될 일이다. 당대(當代)는 언제나 난세(亂世)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논리로 나라를 걱정한다. 3년 전 그때는 4대 강이 난세였다. 혹자는 찬성했고 혹자는 반대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간 애국(愛國)이었다. 그 결과가 빨리-당혹스러울 정도로- 왔을 뿐이다. 그 당시 난세는 ‘4대 강 사업이 옳았다’로 정리됐다. 2015년 지금의 난세는 가뭄이다. 물을 만들 걱정만 해야 한다. 4대 강 반대론자였던 안희정 도지사도 말했다. 그의 말이 이 시대 정답일 수 있다. “정치쟁점이 아니다. (지금은) 가뭄 극복이 우선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현대사-교과서에서 줄이고, 수능 출제에서 빼고

검사(현 서울고검)는 공부를 잘했던 모양이다. 고교시절, ‘장학퀴즈’ 오프닝 화면에도 등장했다. 기(期) 장원 경력 때문이다. 서울법대에 입학했고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연수원도 최고 점수로 수료했다. 그에게 국민윤리 2차 논술을 잘 보는 방법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신선한 뒤통수’였다. “국민윤리는 국가에 대한 충성도를 보겠다는 과목이잖아. 그냥 ‘내가 대통령이다’라고 생각하고 쓰면 편해.” 간단하면서 잘 정리된 답이었다. 그러면 한국사는 어떤가. 2017년부터 수능 필수다. 유치원, 초ㆍ중ㆍ고교생 680만명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 두 배쯤 될 부모들도 덩달아 급해졌다. 돌아보면 학력고사 시절 국사는 점수 따는 효자과목이었다. 웬만한 학생이면 만점을 목표 삼았다. 범위와 정답이 한정된 역사학의 특징이다. 부활하는 수능 한국사도 그럴 것이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려 들 것이다. 환웅(桓雄) 할아버지부터 오늘까지의 모든 것을 외우려 들 것이다. 현대사 논란의 배경이 여기에 있다.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이는 정부 여당이나, 극력 막아서는 야당이나 분명한 노림수가 있다. 수능에 목매는 학부모 집단의 무지막지한 표(票)다. 교과서 승리가 내년 총선 승리라는 셈법도 끝낸 듯 보인다. 이 의도에 휘말려 든 학부모 단체들이 정치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정 교과서 안된다”(전북 학부모들 단체 연합회), “편향된 교과서 고쳐라”(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27일 하루 충돌만 이랬다. 과목 이름이 한국사다. 학문적 분류는 역사학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대사는 진정한 역사학이 아니다. 토론이 자유로울 수 없고, 합의가 만들어질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5ㆍ16을 보자.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남북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구국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2007년 7월). “가난했고 안보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위기상황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 아닌가”(2012년 7월). ‘구국혁명’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5ㆍ16은 정당했다’는 인식이 뿌리 깊다. 그에게 5ㆍ16은 현대사가 아니라 가족사다. 그런 박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개정을 주문했다. ‘친일 독재 미화를 위한 개정’이라는 의심을 살만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현대사를 보자.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라도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모른 척하고 외면했습니다. 이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2002년 대선 후보 연설). 남로당 당원이었던 장인(丈人)이 수감 중에 사망했다. 그에게도 좌익 논란은 현대사가 아니라 가족사다. 하필 그런 노 대통령부터 역사 교과서가 바뀌어 갔다. ‘교과서 좌경화의 출발’이라는 지적을 살만했다. 한국 현대사의 민낯이다. 과거(過去)가 아닌 현재(現在)의 기록이다. 행위자도 현재고 기록자도 현재다. 박근혜 대통령은 ‘5ㆍ16 역사’의 2세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로당 역사’의 사위다. 그 2세가 현재의 여당 권력이고, 그 사위의 비서실장이 현재의 야당 권력이다. 그들에게 현대사는 곧 아버지의 기록이고 주군(主君)의 기록이다. 사정이 이러니 서로 사생결단하듯 대치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내가 대통령이다’라며 작정하고 쓰는 현대사다. 이건 학문이 아니라 정치다. 애들에 가르쳐선 안 된다. 인생이 달린 국가시험에 출제할 문제는 더욱 아니다. 교과서 속 현대사 부분을 줄여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수능에는 출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라도 정해야 한다. 그래야, 학부모들의 관심이 줄어든다. 관심이 줄어들면 정치가 빠질 것이다. 정치가 빠지면 나라도 조용해질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 본디 역사 인식에 머리띠를 동여맬 정도의 구국집단은 아니었다. 그저 학부모 표(票)를 노리는 욕심일 뿐이다. 그 탐욕의 숙주(宿主)를 끊어내야 한다. 현대사 부분 축소와 수능 출제 제외가 그 방법일 수 있다. 그때, 검사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내가 전두환(대통령)이다’라고 생각하고 써내려갔어”.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이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현대사 접근 이데올로기가 딱 그렇다. ‘학생 여러분이 새누리당 대표라고 생각하고 판단하세요’ ‘학생 여러분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라고 생각하고 판단하세요’. 아이들이 안쓰럽지 않나. 애들에겐 이런 현대사 수업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고, 이런 현대사 문제를 풀지 않을 권리가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歡迎이 아니라 謹弔라 붙이고 싶은…

차라리 시내버스 노선(路線)이다. 북수원역에서 영통역까지 거리라야 8㎞ 남짓이다. 여기에 무려 7개의 경유역이 정해졌다. 1㎞마다 한 번씩 서는 꼴이다. 웬만한 광역 버스 정류장만큼이나 잦다. 노선도 이상하다. 구상에 없던 3㎞가 생겼다. ‘이웃 동네’까지 훑고 지나가기 위해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이 안 선다. 예산은 또 얼마나 늘어날는지 걱정이다. ‘기본 계획’인가 ‘미친 계획’인가. 도면을 받아든 정치인들이 신났다. 북수원역 일대에는 ‘박종희’ ‘이찬열’ ‘김상민’이란 정치 현수막이 내걸렸다. 3㎞짜리 ‘이웃 동네’에는 ‘이상일’이라는 현수막이, 영통에는 ‘박광온’이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SNS도 난리다. 저마다 공치사(功致辭)가 한창이다. 유일호 국토부 장관과의 면담은 빠지지 않는 영웅담이다. 하나같이 ‘당초 없던 역사를 내가 장관에 부탁해서 만들어냈다’고 말하고 있다. 원래는 판단력 좋은 기자였고, 계산 빠른 사업가였고, 정의감 넘치는 운동가였다. 기자였다면 ‘정치로 누더기 된 신수원선’이라고 썼을 거고, 사업가였다면 ‘서울행 전철의 사업성 상실’이라고 했을 거고, 운동가였다면 ‘미래 교통 망친 정치인 반성하라’고 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이 저러고 있다. 왕창 늘어난-그래서 사업 착수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미친 계획을 보며 ‘경축’이라 선동하고 있다. 현수막을 보는 시민이 저마다 한 소리 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 잊어버리기엔 너무 가까운 분당선의 추억이 있다. 첫 구간 완공은 1994년이었다. 수원 구간 완공까지 19년 걸렸다. 그 기간을 보고만 있을 정치가 아니다. 너도나도 경유역과 노선 확충을 요구했다. 그때마다 늘어났고 결국 36개 역사가 생겼다. 서울에서 수원역까지 총거리는 53㎞다. 1.47㎞마다 하나씩 만들어진 셈이다. 속도를 낼래야 낼 수가 없다. 달릴만하면 서는 기차다. 그렇게 분당선은 오늘도 버스로 50분 갈 길을 86분 걸려 가고 있다. 전체 시민의 피해는 둘째다. 직격탄은 경유역 동네로 떨어졌다. 영통이 그랬다. 개통만 되면 집값이 오를 거라고 했다. 서울 손님들이 왕창 오면 장사가 잘 될 거라고 했다. 기대 속에 2012년 12월 개통했다. 그런데 반나절도 안돼 실망이 쏟아졌다. 전철 노선도에 빼곡한 경유역을 본 뒤 주민들이 ‘서울 갈 수 없는 전철’이라고 결론냈다. 결국 ‘환영’ 현수막보다 먼저 떨어진 것은 집값이었다. 그렇다고 어찌해볼 도리도 없다. 경유역을 뺐을 수도 없고 노선을 펼 수도 없다. 36개나 되는 경유역이든 86분이나 걸리는 시간이든 50년쯤은 그냥 참고 살아야 할 듯 보인다. 정치가 한번 들쑤신 철도교통의 폐해가 이렇게 길면서도 무섭다. 그런데 또 그런 일을 벌이려 한다. 그때의 1.47㎞로는 부족했던지 이번엔 1㎞에 하나씩 역사를 세우자고 한다. 옆 동네 안마당까지 철길을 대자고 한다. 이건 철도 교통이 아니다. 막아야 한다. 신수원선엔 아직 기회가 있다. 역사와 노선 변경을 촉구하면 된다. 북수원역, 장안구청역, 월드컵역을 하나로 줄이자고 하면 된다. 법원 삼거리역, 원천역, 영통역도 통폐합하자고 하면 된다. ‘이웃 동네’로 끌고 갈 노선도 돈 없으면 1차 사업에서 빼자고 하면 된다. 장안구 주민에게 돌 맞고, 영통 주민에게 벽돌 맞고, ‘이웃 동네’ 주민에게 멱살 잡힐 일이다. 그렇더라도 해야 한다. 철도교통이 뭔가. 2014년 타당성 재조사 보고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인덕원~수원 복선전철 건설사업은 수도권 서남부 지역과 서울시 동남부 지역의 광역 교통기능 확충을 통하여 대중교통 서비스의 개선 및 대중교통 이용률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이다.’ 분명히 ‘광역 교통 기능’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시내버스 교통 기능’을 내놨다. 무책임한 정치와 무원칙한 행정이 빚은 탈선(脫線)이다. 이걸 원래 목적대로 돌려야 한다. 그게 안양도 살고, 수원도 살고, 동탄도 사는 길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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