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KT 위즈 가을 전설, 창단 전설을 기억한다

잠실구장이었다. LG팬들이 잔뜩 모였다. 여기서 삭발식이 있었다. 구경꾼들이 어리둥절했다. 야구장에 안 맞는 모습이다. 성명서를 낭독하자 이해했다. 10구단 창단을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 숨겨진 진짜 이유를 밝혀라. 재벌비호 KBO 각성하라. 수원에서 온 시민 대표였다. 프로야구 10구단 수원 유치를 위한 수원 시민 연대다. 그 속에 장유순 간사도 있었다. 떨어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눈물을 흘렸다. LG 팬들이 힘내라며 격려했다. 그건, 온몸을 던진 투쟁의 전설이었다. 광교산 입구에 시민이 줄을 섰다. 10구단 유치 서명 인파였다. 야구를 모를 법한 시민도 많았다. 그런데도 모두 줄을 섰다. 수원성교회 신도들도 거기 있었다. 성경 대신 서명부를 든 날이었다. 예수님 믿고 천국 가자고 하지 않았다. 서명해서 야구단 가져오자고 외쳤다. 보름이면 충분했다. 목표 30만명이 금방 찼다. 염태영 시장에 준 시민의 위임장이었다. 염 시장은 사방팔방을 뛰었다. 설명하고, 논쟁하고, 읍소하고, 담판했다. 그건, 시민이 야구로 하나 된 전설이었다. 경쟁지도 만만치 않았다. 신청지는 전주ㆍ군산ㆍ익산ㆍ완주였다. 그런데 유치운동은 전북도가 다 했다. 180만 전북도민의 염원이라고 명명했다. 수원엔 버거운 광역 지자체다. 그때 경기도민이 나섰다. 1천300만 경기도민의 염원이라고 선언했다. 화성ㆍ오산ㆍ안양ㆍ의왕ㆍ안성ㆍ평택시장이 지지 선언을 했다. 유치 기원 시민대회에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준비된 수원, 든든한 KT(이천시). 이런 응원을 보낸 지자체가 20여개다. 그건, 야구가 행정을 초월한 전설이었다. 그래도 큰 벽이 있었다. 지긋지긋한 균형발전론이다. 1천300만명의 요구다. 이게 180만명 요구에 밀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야구도 지방 배려 야구에도 국토균형발전론. 이 주장엔 김문수 경기지사가 나섰다. 망국적 논리로 야구까지 망칠 거냐고 따졌다. 심사 현장을 직접 갔다. 전북도를 당사자로 인정할 거면 경기도도 당사자로 인정하라. 수원에 불리한 기준 당장 고쳐라. 그는 정치인이었다. 이 승부수는 정확히 먹혀들었다. 그건, 맏형 경기도가 보인 전설이었다. 경기일보도 일익을 맡았다.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위한 시민 서포터즈를 만들었다. 도민의 뜻을 한 데 모으는 역할이었다. 발대식에 도민 5천명이 참여했다. 창단 소식도 신속히 전했다. 2013년 1월 11일자 신문 한 장이다. 10구단 수원 유치를 알린 호외(號外)다. 수원 KT, 10구단 유치 확정. 본업을 훨씬 넘는 열의였다. 편집국장이 서포터즈를 만들었고, 휴일을 반납하며 호외를 찍었다. 그건, 언론이 시도한 작은 전설이었다. 2020년 가을, 이제 그 야구단이 역사를 썼다. 창단 이후 처음 가을 야구에 갔다. 어쩌면 2위를 할지도 모른다. 텅 빈 경기장을 뛰어서 만든 결과다. 담장 밖 시민에 더 없는 선물이다. 코로나 세상에 준 벼락같은 기쁨이다. 강백호, 소형준, 유한준, 로하스, 그리고 이강철. 모두 다 MVP다. 그리고 이들 덕에 창단의 전설도 떠올려본다. 잠실벌을 떨게 했던 전설, 만장 깃발로 한데 뭉쳤던 전설, 수도권엔 안 준다는 벽을 깼던 전설. 그건, 오늘을 있게 만든 전설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없다. 간사 장유순은 평범한 시민이 됐고, 지사 김문수는 힘없는 야인이 됐고, 국장 정 국장은 언론 아닌 길을 갔다. 가을 전설을 자축하던 자리-포스트 시즌 출정식-를 외롭게 지킨 이는 하나다. 시장 염태영 시장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그 기억은 현재를 사는 자의 몫이다. 현재가 이만하면 됐다. KT가 가을의 전설을 썼고, 창단의 전설까지 추억하게 해줬다. 이제, 시민 모두가 주인 될 전설의 차례다. 우승의 전설 말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한국 보수, ‘트럼프 미국’ 추종 버려야

2016 미국 대선 결과는 걱정이었다. 우리를 포함한 세계인에게 그랬다. 공약부터 공포스러웠다. 외국에 간 일자리를 찾겠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300만개를 가져 오겠다고 했다. 대선 구호는 더 노골적이었다.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계가 함께 잘 살자는 건 웃기는 소리라고 비웃었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도 모두 자기 나라를 위한 애국자가 되라고 소리쳤다. 트럼프 4년이 끝나간다. 약속은 어찌 됐을까. 완벽히 성공한 3년이다. 경제지표-2019년 미국 고용률과 실업률-가 증명한다. 고용률이 증가했다. 풀타임 고용이 늘었다. 장기 실업자와 구직 단념자가 감소했다. 의료ㆍ보건ㆍ교육ㆍ여가 등에서 특히 좋아졌다. 수치로 확인되는 실적이다. 여기까지 오게 만든 무기가 있다. 힘을 앞세운 짓누르기다. 그 중에도 관세 철벽은 무지막지했다. 전례 없는 관세 인상으로 세계를 질식시켰다. 미국 상공회의소조차 너무 높다고 할 정도다. 그냥 참고 있을 세계가 아니다. 트럼프 미국에 칼을 꽂았다. 이웃 캐나다부터 시작했다. 대미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EU도 반격에 나섰다. 미국 제품에 3천억불 보복을 가했다. 중국도 미국산 차에 40%의 관세를 매겼다. 아예 위안화를 떨어뜨려 통화 공세까지 했다. 이제 세계는 미국 대 반(反)미국이다. 트럼프 미국에 맞서는 분노의 연대다. 트럼프의 비아냥도 부메랑이 됐다. 모든 나라 지도자가 자국을 위한 애국자로 돌변했다. 동방의 한 나라가 혹독하게 당했다. 대한민국이다. 멀쩡하던 FTA를 다시 손봤다. 국제법상 확정된 협약이다. 손대면 안 되는 거였다. 그걸 입맛대로 고쳤다. 다른 나라는 겪지 않을 고통도 줬다. 주둔 미군 방위비 분담이다. 갑자기 500% 인상을 통보했다. 연간 5조8천억원이다. 어렵다고 하자 온갖 협박을 했다. 한국인은 끔찍한 사람들이라며 폄훼했다. 미군 근로자들을 길거리로 내 쫓았다. 미군 철수 카드도 흔들었다.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끔찍한 한국인, 한국민 모독이다. 아무 말 안 했다. 일방적 무급 전환, 노동 탄압이다. 항의 한 번 없었다. 여단(旅團)급 철수 검토, 안보 동맹 위협이다. 속으로만 끌탕했다. 캐나다, EU, 중국의 반격은 남의 얘기였다. 우리는 그냥 침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이 그랬다. 트럼프 미국도 그걸 잘 안다. 그래서 도를 넘는 막말 무례를 계속한다. 안보 동맹까지 꺼냈다 넣었다 한다. 우리는 반격은커녕 거꾸로 갔다. 광화문 광장을 뒤덮은 성조기(星條旗)다. 한국인이 모욕당할 때, 그때도 휘날렸다. 한국 근로자가 쫓겨났을 때, 그때도 휘날렸다. 미군 철수 으름장이 나올 때, 그때도 휘날렸다. 그 깃발 현장에서 미국은 성역이었다. 건드려선 안 될 존엄이었다. 그러면서 이것만이 대한민국이 살 길이라고 했다. 보수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랬다.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 트럼프 미국 이후엔 특히 없다. 엊그제 이들이 분노할만한 발언이 있었다. 이수혁 주미 대사의 70년 관계론(論)이다. 한국이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망언이라고 했다. 미국 비위를 건드렸으니 그럴 만하다. 참으로 어이없는 현상이다. 뭐가 문제라고 이러나. 모욕당해도, 쫓겨나도, 동맹 흔들어도 옳으신 말씀이라며 무릎을 맞췄어야 옳은가. 미국발 경제 전쟁 중이다. 대사라면 능히 할 말 아닌가. 한스 페터 마르틴이 저서 GAME OVER에서 경고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극우ㆍ신민족주의를 초래했다세계화 덫에 걸린 인류는 침몰 위기로 가고 있다. 트럼프 미국에 내린 진단이다. 세계가 다 그렇게 평한다. 이런 세상에 대한민국 보수만 따로 논다. 홀로 트럼프 미국을 받든다. 홀로 성조기를 흔든다. 안 그래도 다수에 버림받은 보수다. 왜 다수가 거북해하는 찬미(讚美)를 부여잡고 있나. 더 잃을 민심도 없다고 봐서인가. 한국 보수의 부활. 그 출발은 미국을 보는 시각에 있다. 득과 실을 가려내는 냉철함 말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국민은 출두조사 - 장관은 서면조사

대다수 국민의 경우다. 고발당하면 입건된다.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검찰 대기실에서 초조히 기다린다. 호출이 오면 검사실로 들어선다. 철제 의자에 앉아 심문을 받는다. 거친 다그침의 연속이다. 모욕적 취급을 받기도 한다. 1차 조서, 2차 조서까지 작성한다. 시뻘건 인주를 엄지에 묻힌다. 조서에 일일이 간인한다. 수사관이 건넨 휴지로 닦는다. 가서 기다리라는 귀가 허락을 받는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검찰 출두다. 이에 비해 황제급 조사가 있다. 서면조사라는 거다. 검사가 질문을 적어 보낸다. 피조사자가 답변을 써 전한다. 대기실, 철제의자, 대면 추궁다 생략된다. 안방에 앉아 받는 조사다. 누구나 요청은 할 수 있다. 관건은 결정권자다. 전적으로 검사의 결정이다. 검사가 상당하다고 인정해야 허락된다(검찰사건사무규칙 제13조). 일반인은 안 해준다. 거의 안 해준다. 무서워 요청도 못 한다. 서면 질의 보내라며 버틸 배짱이 없다. 서면조사를 남발했던 정권이 있다. MB 정권 검찰이다. 대통령 아들 사건이 그 중 하나다. 내곡동 사저 매입으로 수사받았다. 조사 기간만 8개월이다. 검찰에 나오지 않았다. 서면 조사로 끝냈다. 결과는 무혐의다. MB 측근 임태희ㆍ장정길 사건 때도 그랬다. 출두 없이 서면 조사로 다 끝났다. 역시 결과는 무혐의다. 야권ㆍ언론이 비난했다. 답변서를 내 주십사라는 간청 수사다수능을 집에서 가정교사와 상의해 풀게 하는 꼴이다. 그랬던 서면조사를 또 본다. 국민이 지켜 본 장관 수사다. 법률적 신분은 피고발인이다. 참고인보다 중하다. 장관실로 매일 출근한다. 검찰청과 지근거리다. 신병을 앓았다는 얘기도 없다. 출두 불가 상태가 아니다. 나머지 참고인들은 다 불렀다. 군(軍) 관계자에, 당시 당직 사병까지 불렀다. 그들의 핸드폰까지 추적했다. 그런데 피고발인인 장관은 부르지 않았다. 서면조사로 끝냈다. 그리고 결론 냈다. 피고발인 추미애 무혐의. 대검 중수부 출신 P가 있다. 특수수사에 1인자로 정평 있다. 그가 한 회고담에 이런 게 있다. 수사는 결국 피의자와 수사관의 말싸움이다. 작은 거짓말을 파고들어가 정황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그의 말이 맞다. 심문이 오가면서 거짓말을 찾는다. 그 거짓말을 추궁하며 파헤친다. 대면조사를 해야 가능한 일이다. 서면 조사는 이런 과정을 포기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캐낼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러니 대부분의 서면조사 결과가 무혐의다. 없어야 할 혼란이 생겼다. 추 장관이 밝혔다. 보좌관에게 지원장교 전화번호를 전달한 것을 두고 지시라고 볼 근거는 없다.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는 논리다. 이런 불일치를 추궁해 결론 내는 게 검찰이다. 그러면 전화번호를 왜 준 것이냐고 묻고, 보좌관의 보고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따졌어야 했다. 이걸 검찰이 하지 않았다. 추궁하지 않은 것 같다. 남겨진 의혹을 놓고 이제 국민끼리 싸운다. 서면조사의 후유증이다. 법 앞의 평등이라 한다. 결과의 균등이 아니다. 절차의 공평이다. 죄 없는 군 관계자들이 출두했다. 추 장관도 출두했어야 평등이다. 증언했던 당직 사병이 심문받았다. 추 장관도 심문받았어야 평등이다. 방문조사 방법도 있었다. 제3의 장소 조사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추 장관은 다 안 했다. 세상 편한 서면으로 다 끝냈다. 무혐의? 유혐의? 뭘 더 따져보겠나. 절차부터 기울어진 조사다. 국민이 납득 못할 불평등 수사다. 서면 조사는 권력의 특혜다. 그 특혜는 국민엔 앙금이다. 그 앙금은 권력 이후 칼이 된다. 서면 조사로 무혐의 됐던 대통령의 아들, 그 대통령 아버지는 권력이 기운 뒤 감옥에 갔다. 서면 조사로 무혐의 됐던 권력의 실세, 그 최경환도 朴 정권이 몰락하자 감옥 갔다. 이런 섬뜩한 예가 더 필요한가. 밤을 새워도 남을 만큼 많다. 主筆

[김종구 칼럼] 무분별 조두순 분노, 지역·출소자·가족 잡는다

첫째, 안산시민을 잡고 있다. 수원에서 오원춘 살인 사건이 났다. 범행 수법이 재론하기에도 끔찍하다. 사건 초기 언론이 범죄를 명명했다. 동네 이름을 넣었다. 수원 ○○ 토막살인 사건이다. 수원시가 총력전을 폈다. 수원 ○○을 빼달라고 했다. 언론이 협조했다. 그때부터 사건명은 오원춘 살인 사건이 됐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기억은 더 절절하다. 화성시민이 들고 일어났다. 화성에서 찍지 말고, 화성을 쓰지 말라고 했다. 도시 명예를 지킨 노력이다. 안산시는 70년대 형성된 산업도시다. 전국에서 근로자들이 몰려들었다. 삭막한 도시라는 선입견이 박혔다. 범죄가 유독 많았다는 통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산을 어둡게 봤다. 그 안산이 활력있는 문화도시가 됐다. 2000년대 이후로 기억한다. 요 며칠 안산이 다시 침울하다. 조두순 때문이다. 안산으로 간다는 소식이 벌집을 건드렸다. 어느새 안산을 검색하면 조두순이 따라온다. 시에 온 시민 전화만 4천여통이다. 둘째, 출소자들을 잡고 있다. 6만명이 교도소에 있다. 연간 출소자는 훨씬 더 많다. 1년 미만 단기 복역자가 있어서다. 사회의 눈총은 따갑다. 출소자라며 손가락질한다. 전과자라며 일자리도 안 준다. 결국, 출소자가 가는 곳은 다시 교도소다. 출소자 전체 재범률이 50%다. 3년 이내 재범률은 22.5%다. 이를 막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법무부 갱생보호공단이다. 기술 가르치고, 일자리 알선해 준다. 희망을 주는 일이다. 이런 노력은 결과로 이어졌다. 재범률 2%다. 경기지부에도 4천400명이 있다. 성범죄 전과자도 있다. 전자 발찌를 찬 사람도 있다. 그래도 모두 열심히 산다. 취업 성공금 180만원을 받기도 한다. 가정을 새로 꾸린 삶도 많다. 어제도 8쌍이 합동결혼식을 했다. 이들이 지금 조두순 현상을 보고 있다. 출소자를 향한 사회적 분노를 보고 있다. 속이 어떨까. 김영순 경기지부장이 전한다. 다들 불안해합니다. 직원ㆍ봉사자 350명도 허탈하다. 조두순 분노, 이런 식은 안됩니다. 셋째, 조두순 가족을 잡고 있다. 수년 전 강력 사건이 있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언론은 연일 보도 경쟁을 했다. 범인의 모든 것들이 공개됐다. 그러던 중 고민해야 할 일이 생겼다. 범인의 자녀 신상이다. 잘 자라고 있었다. 특별한 재능도 있었다. 교육계가 키우는 꿈나무였다. 고민해야 했다. 결국, 보도하지 않았다. 몇 언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도 보도하지 않았다. 엠바고(비보도 약속)는 없었다. 다들 아이는 죄 없다고 판단을 해서다. 조두순 부인은 죄짓지 않았다. 벌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참담한 벌을 받고 있다. 이 짧은 워딩 때문이다. 조두순이 출소하면 부인이 있는 안산으로 간다. 부인 소재가 지목됐다. 안산시장이 신문에 기고했다.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조차 부인 소재를 거론하고 있다. 부인이 있는 경기도 안산시로 돌아온다는 소식. 구체적 신상까지 이미 떠돌아다닌다. 꼭 집어 주는 셈이다. 마녀 사냥하라며 좌표를 알려주는 것이다. 난장(亂場). 법 위에 여론이 춤추고 있다. 올 7월, 한 남자의 신상이 공개됐다. 인터넷 디지털교도소라는 곳이다. 지인능욕범이라는 죄명이 붙었다. 억울하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자살했다. 젊은 고려대생이었다. 이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법원의 재판 따윈 전심(前審)에 불과하다. 본심(本審)은 인터넷청원 등이 한다. 인권도 없고, 법도 없다. 그저 분 풀릴 때까지 두들겨 팬다. 이런 걸 국가는 여론이랍시고 보고만 있다. 사람 잡은 그 디지털 교도소, 여태 못 없앴다. 문둥이 촌이란게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다. 이름은 잊었다. 얌전하고 반듯했다. 애들이 싫어했다. 집이 문제였다. 문둥이 촌에 살았다. 그땐 그랬다. 병 없는 가족도 함께 넣었다. 문둥이 촌의 야만성은 훗날 규정됐다. 국가ㆍ사회가 가한 인권탄압! 조두순 현상에서 그 모습을 본다. 동네 까발려 범죄촌 몰고, 출소자 싸잡아 우범 집단 몰고, 가족 신상 털어 혐오 대상 모는 모습. 이 또한 누군가-지역ㆍ출소자ㆍ가족-엔 사회가 가하는 탄압일 것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市長 대통령ㆍ市長 도지사, 민초의 시대가 온다

염태영 시장이 최고위원이 됐다. 현직 시장으로는 사상 처음이다. 최고위원의 벽이 그렇게 높았다. 중앙 정치의 둥지였다. 현직 국회의원에만 허락된 자리였다. 간혹 원외 의원이 된 적은 있다. 그렇더라도 중앙정치인이었다. 특별한 사건이 생긴 것이다. 언론도 평가한다. 이낙연 대표 이름과 같은 크기로 제목을 뽑았다. 이변 역사라는 형용사도 붙였다. 그 이변, 그 역사가 수원시장이다. 경기도민도, 수원시민도 다 뿌듯하다. 시장이면서 최고위원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자리가 없다. 양쪽 모두에서 욕먹을 수 있다. 결국, 선택과 집중이다. 시정에선 버릴 게 없다. 다 챙겨야 한다. 가려내야 할 건 최고 위원 임무다. 간단한 작업이라 볼 수도 있다. 지방분권의 완성이라고 하면 된다. 선거 때도 그렇게 선언했었다. 그런데 매력이 없다. 와 닿지도 않는다. 좀 더 지방을 들끓게 할 화두가 필요하다. 거기 권력 쟁취를 권하고 싶다. 지방에 의한 권력 쟁취 말이다. 권력의 복판에 지방이 서야 한다. 그래야, 중앙 독점 구조가 깨진다. 그 기대를 떠안고 된 염태영 최고 위원이다. 그도 소감에서 몇 번 말했다. 전국 곳곳에서 내가 염태영이다라는 심정으로 더 적극적으로 주변 당원들에게 저를 알리고 설득해주신 분들 덕분에 됐다. 그렇게 지방이 만든 2등이다. 중앙 정치보다 위에 세웠다. 민초의 기대 말고는 달리 설명되지 않는다. 이제 그 힘을 권력으로 끌고 가야 한다. 조직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진 없었다. 228개 시군구가 따로 놀았다. 시장 군수 구청장도 각자였다. 동료를 보지 않고 중앙만 봤다. 지방의 연(緣)을 외면한 게 아니다. 중앙 권력에 짓눌려서 그랬다. 공천(公薦)에 매달리니 그렇게 됐다.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의도 다를 게 없었다. 모이라면 모였고, 피켓 들라면 들었다. 시장 몇이 고개를 들었던 역사가 있다. 이내 중앙 정치에 짓눌리고 말았다. 시청 일이나 잘 챙기라며 면박당했다. 30년 자치가 이래 왔다. 자칫 염태영 로또로 끝날 수 있다. 제2의 염태영의 싹이 잘릴 수도 있다. 중앙권력이면 그러고도 남는다. 당헌(黨憲)ㆍ당규(黨規) 바꾸면 끝이다. 염태영 최고에겐 빠듯한 2년이다. 조바심 내며 가야 한다. 빨리 지방의 힘을 결집시켜야 한다. 지금의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아니다. 228명이 헤쳐 모일 새 깃발이 필요하다. 광역의회의원협의회ㆍ기초의회의원협의회도 아니다. 3천여명의 지방정치인을 담아낼 새 그릇이 필요하다. 거기에 분명한 목표도 부여해야 한다.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권력 교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다. 염 최고 말에서도 어렴풋이 묻어난다. 지금 정치 구조로는 될 게 없다고 한다. 지방의 힘을 모을 조직을 만들겠다고 한다. 다음 대선에서 조직이 후보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격에 맞는 포부다. 시장 출신 최고위원이 할 일이다. 시의에도 적절한 구상이다. 대선을 2년 앞둔 지금 할 일이다. 광주도, 부산도, 대전도 원치 않을 리 없다. 마침 개척의 역사가 가까이 있다. 이재명 지사의 3년 도전이다. 시장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대통령 경선을 뛴다고 했다. 다들 일개 시장이 뭘이라고 했다. 대선판이 점차 그로 요동쳐갔다. 2등 같은 3등의 결과를 냈다. 3년 뒤 그는 대권 후보 1,2등이다. 시장 한 명이 만들어낸 역사다. 이제 시장이 대통령 꿈꿔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그 선상에 염태영 시장의 역사도 있다. 시장이 최고 위원 도전해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겁 없이 가도 될 도전의 순간이다. 진보의 유전자는 도전에서 흐른다. 민주당이 부여잡는 노무현 정신, 그 본질도 도전이다. 대통령으로 가는 그를 기득권이 막았다. 그 기득권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하는 역사가 이뤄져야만이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이 명연설의 단어 하나만 바꿔 되살려 보자. 중앙에 맞서서 당당히 권력을 쟁취하는 역사가 이뤄져야만이 새로운 지방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이제 그 새로운 역사의 끝점도 가까이에서 어른거린다. 시장 출신 대통령ㆍ시장 출신 도지사의 모습으로. 主筆

[김종구 칼럼] 몰빵 정치의 빚쟁이 대통령 만들기

대개 정치인이 비슷하다. 당대(當代)를 난세(亂世)라 칭한다. 돌아보면 버틸만한 치세(治世)였는데. 최소한 최악의 위기는 아니었는데. 난세라고 떠들고 시국이라 우긴다. 뻔한 셈법이 있다. 이래야 자기 정치가 튄다. 난세를 극복한 정치인이 된다. 보릿고개 위기로 해먹던 남쪽이 그랬다. 고난의 행군 위기로 해먹고 있는 북쪽이 그렇다. 그 결과가 남과 북에 다 있다. 정치 왜곡과 경제 파탄, 그리고 진짜 난세다. 3월에 모두가 했던 말이 있다. 코로나19가 최악이라고 했다. 이를 근거로 곳간을 바닥내기 시작했다. 지방이 먼저 돈을 풀었다. 넉넉한 시군은 30만~40만원씩 썼다. 돈 없는 옆 시군도 안 주고 못 배겼다. 10만~20만원이라도 줘야 했다. 너는?이란 눈총이 정부를 향했다. 가구당 40만~80만원(지방 분담금 포함)씩 줬다. 시군은 예산 돌려막기로 마련했다. 정부는 국채 발행까지 동원했다. 최악이라고 하니 박박 긁은 돈이다. 8월 이후 모두가 말하기 시작한다. 더 심각한 코로나19 위기라고 한다. 다시 재난지원금 얘기가 나온다. 1차 때처럼 주면 14조3천억원이 필요하다. 소득 하위 70%로 잘라 줘도 9조7천억원이다. 더 후한 의견도 있다. 국민 1인당 20만원씩 주자고 한다. 10조원이다. 30만원씩이면 15조원이다. 지방 곳간은 1차 때 이미 끝을 봤다. 이제 국가가 모두 떠안아야 한다. 돈 없기는 국가도 마찬가지다. 빚을 끌어다 쓰자는 거다. 3월에 이런 말들을 했다. 이런 때 안 쓰면 언제 쓰나. 최대 위기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대여섯 달 지났다. 격리 치료 환자의 76.7%가 수도권이다(8월 30일 0시 현재). 위중ㆍ중증 환자가 104명이다(9월 1일 0시 현재). 3월 최고점이던 93명을 넘었다. 경기도에 중환자 병상은 동났다. 감염 경로 모르는 깜깜이 환자가 24.3%다. 3월은 고점(高點)이 아니었다. 15조원을 푼 건 잘못이었다. 주더라도 아꼈어야 했다. 한가롭게 재정건전성 따위를 논하는 게 아니다. 한 가지만 고민하고 가려는 것이다. 몰빵(沒放)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언제인가? 그 돈은 어디부터 써야 하나? 상식과 원칙으로 보면 편하다. 몰빵은 필요하다. 곳간이 비었으니 어쩔 수 없다. 몰빵 시기는 신중해야 한다. 3월도 아니었지만 9월이란 장담도 없다. 몰빵해서 쓸 곳은 급한 곳이다. 3월과 다르다. 피해 집단, 피해 정도, 분노 크기가 달라졌다. 3월 위기 땐 이랬다. 식당 문 닫으라면 닫았다. 예배하지 말라면 안 했다. 9월 위기 땐 이렇다. 차라리 폐업하겠다고 한다. 종교 탄압하는 것이냐고 한다. 적극적인 항변도 나온다. 행정명령의 손실 보상을 말한다. 집단 소송으로 권리를 찾겠다고 한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행정명령엔 책임이 따른다. 식당, 교회, 카페, 노래방, PC방, 헬스클럽, 당구장, 학원. 보상을 기다리고 있다. 몰빵한 돈을 우선 써야 할 곳이다. 빚 물려받고 좋다 할 후대는 없다. 남긴 빚은 곧 정권 성적표다. 김영삼 정부는 곳간을 비웠다. 실패한 정부로 남았다. 김대중 정부는 900억 달러를 채웠다. 위기 극복 정부로 남았다. 노무현 정부는 2천600억 달러로 늘렸다. 진보의 상징 정부로 남았다. 이제 문재인 정부도 2년여 남았다. 곧 곳간 열쇠를 내줘야 한다. 거기에 1천조 빚이 남을 듯하다. 이것만으로도 낙제할 위기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빚 더 쓰자고 난리들이다. 성공한 대통령 만든다더니, 빚쟁이 대통령 만들고 있다. 主筆

[김종구 칼럼] 경기도민의 뜻이 경기일보의 길입니다

경기일보 창간 32주년이다. 1988년 8월 8일 이후 오늘이다. 언론 자유의 시작이었다. 경기도민의 언론이기를 약속했다. 지방 자치도 그즈음 시작됐다. 예속(隷屬)에서의 탈피였다. 그 벅찬 도민의 감동도 담아냈다. 때로는 압제(壓制)도 있었다. 정화(淨化)의 탈을 쓴 탄압이었다. 그때마다 맞서 싸웠고 결국 극복했다. 이렇게 온 서른두 해다. 경기도민을 위한 32년이었고, 경기도민에 의한 32년이었다.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기자 생활도 얼추 30년이다. 주필(主筆)에 있는 지금이 무겁다. 짧은 능력이 부끄럽다. 부족한 자격이 민망하다. 생각하지 못했던 현재다. 논설실의 역사가 각별한 경기일보다. 전임(前任)이 물려준 축복이 크다. 고(故) 임양은 주필은 오로지 글만 봤다. 흔들리지 않는 이념을 추구했다. 온갖 협박이 몰려들기도 했다. 그래도 타협하지 않았다. 이제 유언으로 기억되는 그의 말이다. 죽으면 무(無)야. 무서우면 아무것도 못 쓰지. 임 주필이 곱게 보지 않았던 책이 있다. 러시아 혁명가의 자서전이다. 세계를 움직인 논평가의 기록이다. 신문 이스크라에서 펼쳐졌다. 편집위원 7명의 투쟁이 담겨 있다. 레닌도 거기 있었다. 이들의 논평은 곧 혁명의 지침이었다. 이제 100년도 넘은 과거다. 그 책을 10년 넘게 책상에 두고 있다. 읽지 않고 시작한 하루가 기억에 많지 않다. 한 줄이라도 읽어야 강해질 수 있다. 세계는 아니지만, 경기도는 안고 가야겠다. 창간 32년, 행정수도 이전을 꺼내 본다. 본질은 세종특별시 건설이다. 국회, 사법부 다 빼간다. 방송국서울대학교도 얘기된다. 화룡점정으로 청와대 이전이 있다. 노무현 정신의 완성이라고 한다. 20년 전 그가 시작한 국토균형발전론이다. 헌법재판소의 불가 결정으로 중단됐다. 그 과거를 현재로 끌고 나왔다. 부동산 대책이라는 명분까지 얹었다.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서란다. 거대 권력이 결심했으니 거칠 게 없다. 위헌 결정문쯤은 안중에서 사라졌다. 개헌 때 수도 세종 문구 넣으면 된다(이해찬 대표). 국회 분원, 운영위 여야 합의하면 가능하다(김태년). 실제 행동도 시작됐다. 세종의사당 설계가 재검토될 듯하다. 규모를 분원에서 본회로 키우는 작업이다. 전담 조직도 뛰고 있다. 민주당 내 행정수도완성추진단이다. 말하길, 여론이 원하고 있다고 한다. 2004년에는 반대가 높았지만, (지금은) 다수가 찬성한다고도 한다. 176석으로 밀어붙여도 될 거다. 그래도 막을 재간은 없다. 권력이 통치 행위라 규정해도 될 거다. 역시 막기 어렵다. 그런데 굳이 여론을 얘기한다. 국민 지지를 업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막상 확인해보니 안 그랬다. 설문의 49%가 반대했다. 현재 서울 존치를 원했다. 세종특별시 건설을 찬성한 답은 42%뿐이다. 한국 갤럽이 전국 성인남녀를 조사해 나온 결과다. 민주당이 말한 민심은 뭘까. 다른 통계라도 있는 걸까. 서울은 61%가 반대했다. 이걸 두고 또 몰고 간다. 반대는 서울 기득권층이다. 지방의 박탈감을 자극하는 논리다. 그래서 지방을 봤다. 대구경북(TK)도 반대가 높다. 반대 52%ㆍ찬성 38%다. 부산경남(PK)도 반대가 높다. 반대 49%ㆍ찬성 39%다. 충청권을 뺀 지방에서 찬성이 높은 곳은 호남이 유일하다. 찬성 67%ㆍ반대 21%다. 서울 기득권이 반대하는 게 아니다. 충청ㆍ호남을 뺀 모든 지방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 순회 설명회도 할 기세다. 지금이 그럴 땔까. 경제는 코로나19로 난장판이 됐다. 수출이 막혔고, 내수가 멈췄다. 취업문이 닫혔고, 실직자가 늘었다. 이런 마당에 전국을 돌겠다는 거다. 세종특별시 깃발을 흔들겠다는 거다. 먹혀들 거라고 보나. 내용도 20년 전의 그것과는 달라졌다. 그때는 국부(國富)의 분산이었다. 골고루 나눠줄 공기업ㆍ공기관들이 있었다. 이번엔 없다. 오로지 세종특별시에만 몰아주는 작업이다. 영남ㆍ강원이 왜 찬성해줘야 하나. 여론조사 속에 그 증명이 있다. 2003년 12월 실시한 수도이전 조사다. 역시 한국갤럽이 했다. 찬성 44%ㆍ반대 43%다. 찬성이 많았다. 2003년 수도 이전에는 다수가 찬성했지만, 2020년 세종특별시 추진에는 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정치도, 권력도 모르지 않을 거다. 그런데도 몬다. 세종 이전은 선(善), 서울 존치는 악(惡)이라고 몬다. 세종은 품격 있고, 서울은 천박하다고 몬다. 32년을 쌓아온 경기일보 지면이다. 그 중 20년을 이어져 온 화두다. 경기일보는 그때마다 반대했다. 경기도민의 뜻이어서다. 오늘 결론도 마찬가지다. 경기ㆍ인천 지역민의 준엄한 명령을 확인했다. 세종특별시 반대 53%! 찬성 38%! 이 뜻만 받들려 한다. 100년 전 그 혁명가가 스탈린을 공격했다. 마지막 펜을 놓는 순간까지 그랬다. 그리고 살해됐다. 피켈-등산용 도끼-에 맞아 숨졌다. 자서전에 이런 소회가 남아있다. 나는 써야 할 글을 쓰지 못한 적은 있다. 하지만, 쓰지 말아야 할 글을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소회를 100년 뒤로 끌어와 본다. 세종특별시 반대는 써야 할 글이다. 세종특별시 찬성은 쓰지 말아야 할 글이다. 도민 품에서 커온 경기 언론인에게는. 主筆

[김종구 칼럼] 채널A 기자 구속, 이건 취재탄압이다

2005년. 방송 Y사가 보도했다. 김선종 연구원이 증언을 번복했다 취재팀의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 다른 언론은 이렇게도 썼다. 취재팀이 황 교수가 검찰 수사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황 교수를 죽이러 왔다고 했다. 취재팀은 MBC PD 수첩이다. 황우석 교수를 추적하고 있었다. 줄기세포 신화를 뒤집는 취재였다. 언론, 국민, 세계가 다 믿고 있었다. 준 충격이 워낙 컸다. 그 와중에 튀어나온 취재 윤리 논란이다. 담당 PD가 해명했다. 검찰 수사 운운은 맞다고 했다. 죽이러 왔다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언론은 MBC 취재 방식을 계속 때렸다. 국민 47%가 PD 수첩 보도가 줄기세포 연구에 걸림돌이 된다(리얼미터)는 통계까지 댔다. 학계의 비판도 이어졌다. 연구실까지 쳐들어온 군부적 PD 수첩(송호근 서울대 교수). MBC는 패륜 취재팀으로 몰렸다. 결국, 취재 윤리를 어겼다며 사과했다. 언론이 강요한 굴복이었다. 한참 뒤, 결론이 났다. 줄기세포 신화는 끝났다. 황우석 전설도 멈췄다. MBC는 특종을 취재하고 있었다. 다른 언론은 그런 특종을 탄압했던 것이다. 줄기세포 전설은 언론이 만들었다. 그 줄기세포에 MBC가 칼을 댔다. 그러자 언론이 MBC를 때린 것이다. 그때 꺼낸 무기가 취재윤리였다. 검찰 수사 언급을 협박으로 몰고 갔다. 죽이러 왔다를 범의(犯意)와 뒤섞었다. 지금은 역사로 정리돼 있다. 언론에 의한 취재 탄압! 거의 꼭 닮은 사건이 터졌다. 2020년 7월, 채널A 이동재 기자가 구속됐다. 강요미수 혐의다. 사달은 수감 중인 취재원에 보낸 편지다. 유시민 비위를 달라고 했다. 만나고 싶다고 했다. 죄로 엮여간 대목은 이런 거다. 검찰 수사가 강해질 수 있다 형량이 더해질 수도 있다. 강요죄에도 구성 요건이 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 재소자를 협박해 유시민 진술을 하게 하려 했다는 것이다. 강요죄 해석은 까다롭다. 박근혜 피고인의 무죄도 여기였다. 대법원이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더구나 이 경우는 미수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취재도 못 했고, 기사도 없었다. 그런데도 강요미수라고 했다. 판사의 영장 발부 사유는 이렇다. 검찰과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해. 세상 시끄럽던 검언 유착 논리다. 유착의 한 축은 검(檢)이다. 한동훈 검사장이 공범이어야 한다. 그런데 녹취록엔 그런 게 없다. 법학 교수 등 수사심의위원들의 결론도 그렇다. 한 검사장을 수사하지 말라고 했다. 방대한 수사 자료를 봤을 거다. 그렇게 나온 검토 결과다. 검사장이 죄 짓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이 기자는 구별했다. 기소하라고 했다. 검언유착이라며 요란을 떨었다. 그러더니 검(檢)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언(言)만 남았다. 교도소에 들어앉은 것도 기자 혼자다. 명칭도 서서히 검언유착에서 취재 윤리 위반으로 간다. 다 빼고 보자. 취재 윤리 위반은 어느 구석을 말하나. 검사장 녹취록에 수감 중인 이 철을 압박하자는 제의가 있나. 교도소에 보낸 편지는 만나 달라는 읍소가 전체 취지 아닌가. 이 기자와 후배 기자의 대화는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는 내부 대책 협의 아닌가. 읽고 또 읽어도 내겐 그렇다. 백번을 양보해 취재 윤리 위반이었다 치자. 그러면 구속하는 건가. 언제부터 법이 비(非)윤리ㆍ부(不)도덕까지 수갑 채워 가뒀나. 집단 관음이다. 기자와 검사장의 만남을 몰래 보고 있다. 기자와 취재원의 편지를 몰래 보고 있다.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 관음에 모두가 취했다. 저마다 관전평을 낸다. 공모로 들었다 하고, 협박으로 봤다고 한다. 집단의 난독ㆍ난청이다. 기자들은 오늘도 쓰레기통을 뒤진다. 시뻘건 김칫국물 사이에서 뭐라도 찾으려고 한다. 이 장면도 몰래 찍어 관음한다면 이럴 판이다. 취재윤리 위반이다. 절도죄다. 구속하라! 혹, 그 쓰레기통에서 권력의 비위를 찾고 있었다면 더 말할 것도 없고. 2005년, MBC는 외로웠다. 성역과의 싸움이었다. 권력 편에 선 언론의 공격을 받았다. 취재 윤리 위반이라며 난도질당했다. 죄가 아닌데도 사과해야 했다. 역사는 취재 탄압이라고 기록했다. 2020년, 이번엔 MBC가 공격자다. 권력의 뒤를 캐던 기자를 공격했다. 무기는 그때 그 거다. 취재 윤리 위반. 결과는 더 잔인하다. 퇴출됐고, 구속됐다. 검찰은 빠지고 기자만 처단됐다. 역사는 또 어찌 기록할까. 아마도 같지 않겠나. 채널A 기자 구속은 취재탄압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그 질문 기자는 ‘○○자식’이 아니었다

쌍욕을 들었다고 했다. 멱살도 잡혔다고 했다. 벌건 대낮에 당한 봉변이다. 어느 시청의 복도였고, 시장실이 코 앞이었다. 시장 가족이 가해자였고, 피해자는 기자였다. 시장의 비위 의혹을 보도했다. 감정이 상했을 법하다. 그 보복인듯했다. 기자가 상기된 채 들어왔다. 맞았습니다. 공무원들은 구경만 했습니다. 발단은 내 취재 지시였다. 그 지시 때문에 당한 봉변이었다. 그래서 동기자에겐 지금도 미안하다. 십수년 전의 일이다. 그때부터도 십수년전이었나. 그땐 내가 당사자였다. 학생 시위 현장이었다. 취재 도중 갑자기 뒷목이 꺾였다. 인근 강의실로 거칠게 끌려갔다. 경찰 프락치라며 몰아세웠다. 신분증이 없었던 게 죄(罪)였다. 30분 넘게 추궁을 당했다. 무리 중 한 명이 들어왔다. 확인됐어, 기자 맞대. 그제야 풀려났다. 사과는 없었다. 빨리 학교에서 사라지라. 너덜너덜해져서 돌아왔다. 부장님이 웃었다. 그때 알았다. 기자 인생은 우아하지 않다. 기자들은 위안 삼는다. 가해자 수준을 탓한다. 시장 가족 때도 그랬다. 시장 가족이 몰상식한 거다. 그러니 기자를 폭행하지. 아주대 감금 때도 그랬다. 학생들이 사리 분별없다. 그러니 겁 없이 사람을 감금하지. 그러면서 애써 잊는다. 무뎌지는 과정이다. 어느덧 협박ㆍ모욕ㆍ폭행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처가 있다. 그러면 안 될 사람들이 그럴 때다. 상식 있는 사람들이 그럴 때다. 이해찬 대표 얘기다. 이 대표의 언어를 모두 문제 삼을 건 아니다. 간혹 독설이 정치 행위일 때도 있었다. 총리 때 차떼기당 발언이 그랬다. 한나라당은 지하실에서 차떼기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 들여왔는데 그런 정당을 좋은 정당이라 할 수 있냐. 한나라당이 발칵 뒤집혔다. 국회는 파행했다. 여론이 갈렸다. 심했다는 평도 있었고, 시원했다는 평도 있었다. 지금 유튜브에서는 사이다 발언으로 정리됐다. 스스로 국면전환용이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변명으로도 덮이지 않을 언어가 있다. 박원순 상가에서의 욕설 파문이다. 별스런 질문도 아니었다.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혹시 여기에 대해 당차원에서 대응하실 계획은 있으신가요. 이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어 노기 띤 어투로 호통을 쳤다.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합니까, 그걸. 최소한도 가릴 게 있고. 이어 욕설이 나왔다. ○○자식 같으니라고. 국민들이 다 봤다. 이해찬 대표가 누구인가. 거대 집권 여당의 대표다. 국회의원 180명을 통솔한다. 말 한마디가 곧 법이다. 그날 현장도 그랬다. 함께 한 당직자가 가세했다. 이 대표를 거들며 나섰다. 기자들 질문 똑바로 하세요. 이게 한 영상에 담겼다. 당 대표는 욕하고, 당직자는 압박하고. 몇 번을 들어도 질문엔 잘못 없다. 충격적인 대권 후보의 자살이다. 성추행 고소장이 접수됐다. 마침 당 대표가 왔으니 물어본 거다. 이게 왜 ○○자식인가. 조문(弔問)엔 어색한 질문일 수 있다. 답할 게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면 답할 거 없다고 하면 된다. 그것도 싫으면 무시하고 가면 된다. 평소에는 자주 그러던 이 대표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누가 봐도 심했다. 정색하며 나무라고, 째려보며 호통치더니, 욕설하며 쫓아갔다. 당직자가 잡아 돌려세웠으니 다행이다. 언론 탄압이 없어진 세상이다. 대체로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순간은 아니었다. 언론을 향한 압박ㆍ압제였다. 결론을 대신할 추억을 소환할까 한다. 2017년 1월 18일. 반기문 전 총장에게 기자가 질문했다.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싫었던 모양이다. (질문)하지 마시라. 식당을 나서면서 대변인에게 말했다. 나쁜 놈들이예요. 기자가 들었고 보도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들고 일어났다. 대국민사과를 요구했다. 열흘 뒤, 반 전 총장은 대선판을 떠났다. 당시 우상호 원내대표-지금은 박원순 차기 후보라고 꼽히는-의 논평이 남아 있다. 나쁜 놈들이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진의를 묻는 건 언론인의 당연한 의무다 국민의 궁금증을 대신 물어준 기자에게 욕까지 한 것은 정치지도자로서 적절하지 않다 국민에 사과하라. 오랜만에 읽어봤다. 버릴 구절(句節)이 없다. 主筆

[김종구 칼럼] 수사심의委 목적에 ‘사회적 약자 보호’ 없다

박용진 의원이 말했다. 수사심의위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설치 목적을 설명한 거다. 이 기준으로 논리를 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그룹 총수다. 돈이 제일 많은 기업인이다. 조직의 권력도 대단하다. 뭐로 봐도 사회적 강자다. 수사심의위원회가 챙길 대상이 아니다. 유리하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목적에 반했다. 결론은 이렇게 냈다. 법적 상식에 반한다. 옳지 않다. 전제부터 틀렸다. 위원회는 2018년 1월 출범했다.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다. 그 목적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1조에 박혀 있다. 검찰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설립한다. 사건 기준도 정했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ㆍ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다. 신청인 자격도 사건 당사자로 해놨다. 거기 어디에도 사회적 약자 보호란 표현은 없다. 결론도 빗나갔다. 상식(常識)의 의미는 이렇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법적 상식이라면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법적 지식이다. 박 의원은 예단을 깔고 있다. 이재용은 사회적 강자다. 고로 기소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 결론을 사람들도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법적 지식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다 보니 불기소 결정=법적 몰상식이라 했다. 틀린 전제가 이끈 틀린 결론이다. 형사 처벌은 행위로 판단한다. 이 판단의 기초는 법전(法典)이다. 이 법전과의 연결은 법 해석이다. 이 법 해석에 범죄구성요건(犯罪構成要件), 가벌성(可罰性) 등이 따른다. 사회적 강ㆍ약자는 여기 어디에도 없다. 있어서도 안 될 기준이다. 박 의원은 지금 그런 논리를 선창(先唱)하고 있다. 이재용을 풀어준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는 이재용은 사회적 강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말로 비튼 묘한 왜곡이다. 영향력 큰 국회의원이다. 분별 있는 논평으로 정평 있다. 언론에는 믿고 쓰는 논평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여권 인사 여럿이 말을 했다. 그중에 언론이 선택한 건 박 의원 말이다. 유독 크게 부각시켰다. 여지없이 큰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여론이 그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간다. 사회적 약자 보호가 위원회 목적이라고 믿는다. 이 부회장 불기소는 이런 목적을 위반했다고 믿는다. 기소불가 위원은 삼성 부역자라고 믿는다. 이쯤 되니 따르는 게 있다. 신상ㆍ과거 털기다. 첫 제물은 김병연 교수(건국대)다. 이 부회장 불기소 의견을 낸 위원이다. 그가 했던 과거 발언이 도배됐다. 합리적으로 결정한 것이면 문제없다(MBN), 법을 위반했다고 볼 의심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시장경제신문). 성균관대 이 모교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성대가 삼성 재단이라는 게 이유다. 얼마나 많은 위원이 더 털려야 할지 모른다. 이런 위원회, 무서워서 하겠나. 제도 개선 얘기까지 나온다. 들어보니 참 부질없는 소리다. 위원의 전문지식 부족이 문제라는데, 애초에 검찰 밖 의견을 듣겠다는 제도 아니었나. 위원의 이념적 편향성이 문제라는데, 어차피 의견 내면 편 가를 텐데 몰리지 않을 위원이 있나. 위원과 피의자의 유착이 문제라는데, 이게 왜 제도의 문젠가. 서로 짰다면 구속해서 처벌하면 끝날 일이다. 공연히 제도 탓할 필요 없다. 둘 거면 따르면 되고, 따르지 않을 거면 없애면 된다. 노무현, 박근혜, 한명숙, 조국. 누군가의 눈엔 핍박받는 약자의 모습이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 역시 누군가의 눈엔 핍박받는 약자일 거다. 많은 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릴 거다. 그때마다 사회적 약자인지 따질 건가. 가능하지도 않지만 가능해서도 안 된다. 수사심의위원회 목적은 검찰 견제다. 검찰 힘의 출발은 기소권이다. 이 기소권을 견제하는 것 역시 기소 분석이다. 이 분석대로 의견 내면 그게 끝이다. 여기에 왜 사회적 약자를 대입하나. 혹시 그 말의 다른 뜻이 내 편 만들기라서 이러나. 主筆

[김종구 칼럼] 의정부 시장이 왜 비수도권 걱정까지 해

의정부 시장이다. 인구 43만 책임자다. 경기 북부 지역 시장이다. 역차별받는 접경지역이다.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 회장이다. 31명의 시장군수를 대표한다. 그 안병용 시장이 글을 올렸다. 특례시 명칭 자체가 전혀 공정하지 못합니다. 지방자치단체 간 재정적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특례시 지정은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특례시 지정 심히 우려된다고 결론졌다. 정부를 향한 요구다. 글 쓴 날은 15일이다. 내용이 낯설지 않다. 하루 전 비슷한 게 있었다. 경기도가 정부에 낸 건의문이다. 특례시 명칭이 적절치 않다고 했다. 비특례시와의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취득세 이탈로 경기도 재정이 급감한다는 얘기도 똑같다. 경기도 주장을 재청하는 듯하다. 우연히 닮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대도 문제 될 건 없다. 안 시장 판단의 영역이다. 다만, 경기도민이 거북해 할 법한 구석이 눈에 들어온다. 자본, 인력,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리고 지방은 텅텅 비워지고. 국가균형발전 논리 그대로다. 20년째 수도권을 괴롭히는 논리다. 기업 뺏어가고, 공기업 뺏어가는 논리다. 공장 못 짓게 하고, 사유재산 옥죄이던 논리다. 경기 북부 피해는 더 독하다. 못 사는 데도 수도권이라며 묶었다. 아주 가까이는 지역특구법이 그랬다. 기업하기 좋게 하자는 법이다. 지방은 다 포함시켰다. 경기북부는 뺐다. 수도권이라는 이유였다. 의정부 기업인들이 분노했다. 그 논리를 안 시장이 말하고 있다. (특례시 지정으로) 수도권 집중이 더욱 커질 것이다. 특례시 기준이 바뀌었다. 100만이 50만이 됐다. 100만 기준일 때 특례시는 4곳이었다. 수원ㆍ고양ㆍ용인ㆍ창원시다. 지방에선 창원시 하나였다. 50만 기준이면 지방에 6곳이 된다. 지방이 좋아한다. 전북 국회의원들이 뭉쳤다. 지역에 이익될 법률안을 냈다. 강원도는 우리도 달라며 목청을 높였다. 50만 기준에 반대하는 지방은 한 곳도 없다. 그런데 경기도 의정부 시장이 반대하고 나섰다. 비수도권 망한다고 걱정하면서. 국민은 누구나 어디에 거주하든 차별해서도 안 되고. 진짜 차별은 비수도권 우대론이다. -비수도권이 못 살고 있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차별해야 한다. 수도권 주민은 덜 주고, 비수도권 주민은 더 줘야 한다.- 이거 아닌가. 특례시도 그렇다. -울산에 살면 210명이 공무원 1명의 보호를 받는다. 수원에 살면 362명이 공무원 1명의보호를 받는다. 광역시와 기초시에서 오는 차별이다. 이를 줄여보자는 단계가 특례시다.- 이거 아닌가. 이걸 안 시장은 거꾸로 말하고 있다. 의정부 시장의 말은 곧 의정부 시민의 말이어야 한다. 특례시 개정안은 문제 있다. 이도 저도 아닌 누더기다. 충분히 반대할 수 있다. 안 시장의 결론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 논리까지 동의할 순 없다. 의정부 시민을 대표하는 시장 아닌가. 걱정해야 할 건 텅텅 비는 지방이 아니라 텅텅 비는 의정부다. 의정부 시민이라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경기도 31개 시군을 대표하는 협의회장 아닌가. 말해야 할 건 지방 차별이 아니라 경기도 차별이다. 경기도민이라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북한발 사달이 또 경기북부를 덮쳤다. 안 시장의 글 다음 날이다. 쿵하더니 연기가 피어올랐다. 개성공단 연락사무소가 폭파됐다. 또 다른 도발도 걱정된다. 면사무소로 날아들었던 북한 고사탄이다. 2014년 그 공포가 다시 주민을 움츠러들게 한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시계는 거꾸로 돈다. 규제 해소는 없던 일로 되고, 기업 유치도 없던 일로 된다. 70년째 반복되는 접경지의 한이다. 이런 경기북부인데 잘사는 수도권에 묶었다. 그러면서 비수도권에 더 퍼주라고 한다. 사실은 안 시장도 말했었다. 의정부는 수도권정비계획법, 군사시설보호법 등 각종 중첩규제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재정 확충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동안 역차별로 위축된 의정부 지역경제를 8ㆍ3ㆍ5 프로젝트를 통해 살리겠다. 그때는 분명 역차별에 맞서는 결기였다. 主筆

[김종구 칼럼] 한명숙 무죄라면 1억원 수표는…

한 방송사가 있다. 2010년 12월20일, 이렇게 보도했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재판에서 돈을 줬다는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가 오늘 증인신문에서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진술이 번복돼도 유죄 입증에 자신있다는 검찰 입장도 강조해 전했다. 2011년 3월8일, 이렇게 보도했다. 한씨의 동료 수감자가(한씨가) 광복절 특사가 무산되면 진술을 번복하겠다고 공언했다고 증언했다. 한씨가 공판 전 내용을 달달 외웠다고도 보도했다. 이 방송이 지난 5월22일 이런 보도를 한다. 그 후로부터 만들어진 (9억원)스토리는 검찰과 저희가 만들어낸 시나리오예요. 고(故) 한만호씨 육성이다. 2011년 6월12일 인터뷰다. 한 전 총리에 유리했을 기사다. 당시엔 보도하지 않았다. 9년이 지나서야 보도했다. 앵커가 이유를 설명한다. 시일은 좀 됐다. 9년 전 인터뷰인데. 이 시점에 시의성을 갖게 됐다. 하기야 여기만 그랬겠나. 대개 언론이 그랬다. 그땐 저쪽 얘기, 이땐 이쪽 얘기를 쓴다. 한 전 총리 사건으로 뜨겁다. 이번엔 엉터리 수사였다고들 쓴다. 관련자 증언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한만호 비망록, 죄수 H씨 발언, 최모씨 발언.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9년 전에도 같은 주장은 있었다. 한 전 총리는 돈 안 받았다고 했다. 한만호씨는 돈 안 줬다고 했다. 검찰은 진술 바뀌어도 유죄다라고 했다. 한만호 비망록도 비슷한 내용이다. 회유 받고, 압박받았다. 다만, 유고(遺稿)의 비장함이 더해졌다. 나는 검찰의 개였다. 들여다보면 핵심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다. 1억원 수표다. 한만호씨에서 출발했다. 한 전 총리 비서가 받았다. 한 전 총리 동생이 사용했다. 흐름에는 이견이 없다. 설명이 다를 뿐이다. 한 전 총리는 받지 않았다고 했다. 동생이 빌린 돈이라고 했다. 검찰은 국무총리를 보고 건넨 돈이라고 했다. 금품 수수에서 수표는 중요한 증빙이다. 종종 스모킹 건이 되곤 한다. 검찰이 진술 번복 상관없다고 했던 이유다. 실제로 그랬다. 여기서 유무죄가 갈렸다. 대법원 판결은 징역 2년이다. 9억원을 불법 정치자금으로 봤다. 협의 과정에서 논쟁이 있었다. 유죄 범위에 대한 이견이다. 5명의 대법관은 수표와 함께 움직인 3억원만 유죄로 봤다. 사건 주심인 이상훈 대법관이 이 의견이었다. 8명의 대법관은 9억원 전체를 유죄로 봤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 의견이었다. 쟁점은 유죄ㆍ무죄가 아니다. 9억원 전부 유죄냐, 3억원만 유죄냐였다. 수표로 오간 3억원엔 이견이 없었다. 대법관 13명 모두 유죄라 했다. 꽤 중요한 구절도 나온다. 수사 과오에 대한 지적이다. 이상훈 대법관 쪽 논리에 등장한다. -7개월 넘는 기간 수십 차례 조사를 받았다. 1회 진술조서와 5회 진술조서만 있다. 나머지는 어떤 조사를 받고 어떤 진술을 했는지 자료가 없다. 증거 수집 과정이 수사의 정형적 행태를 벗어났다-. 이를 이유로 6억원에 대한 증거 능력을 부정했다. 협박 회유 수사라 본 것이다. 검찰엔 뼈아픈 지적이다. 하지만, 수표 3억원은 아니었다. 객관적 증거 있으니 인정. 그 수표를 해명해야 한다. 그래야 무죄다. 그런데 언급이 없다. 온통 검찰 수사 얘기다. 아마 이렇게 가려는가 싶다. 검찰 오류 고백재심 청구재판 무효. 수사가 불법이니 판결은 자동 무효라는 논리다. 수표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어진다. 대법관 13명 판단이 통째로 사라지게 된다. 사법부에 너무 모욕적이지 않겠나. 감옥 간 양승태야 사법 농단이라고 한 번 더 몬다고 치자. 수사 오류까지 찾아냈던 대법관 5명의 판단도 적폐로 몰고 갈 건가. 한 전 총리가 억울할 수 있다. 무죄 번복이 정의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설명이 필요하다는 거다. 흐름이 훤한 수표 아닌가. 업자가 주고, 비서가 받고, 동생이 썼다. 빌렸다면 무죄인가.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하나. 유죄라고 보는 국민도 얼마든지 있다. 한명숙 양심의 법정이야 진즉 끝난 판결이다. 그 스스로 나는 무죄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이건 국민 상식의 법정이다.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고, 국민을 납득시킬 책임이 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무죄다! 보름 넘게 나라를 덮고 있는 구호. 이를 들을수록 커져가는 생각이 있다. -새로운 것 별로 없고, 설명된 것 하나 없고, 납득된 것 전혀 없다. 그런데도 무죄로 갈 것 같기는 하다.- 主筆

[김종구 칼럼] 배곯던 진보, 그리고 부패한 진보

그는 늘 오토바이를 탔다. 덜덜대는 소형 원동기였다. 그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여름엔 더 했다. 땀에 밴 티셔츠 차림이었다. 광교산 보리밥집에서였나. 기억이 맞다면 그날 이런 말을 했다. 누가 오토바이 기름 값 5천원만 지원해주면 좋겠다. 수원경실련 사무국장이다. 지역 진보의 대표 얼굴이다. 그가 한 말이다. 전업(專業) 진보의 고됨이 묻어났다. 거기 현역 국회의원도 있었다. 일부러 지른 걸로도 보였다. 그리곤 아마 불쑥 일어나 갔던 것 같다. 그가 노민호임은 중하지 않다. 90년대 시민운동가가 그랬다. 범인(凡人)의 삶은 포기해야 했다. 고정 수입을 기대하면 안 됐다. 아파트 부금은 꿈도 꾸면 안됐다. 어쩌다 기웃대는 금수저도 있긴 했다. 하지만, 오래 못 가고 사라졌다. 그들에 어울리는 삶이 그랬다. 덜덜대는 원동기가 딱 그거였다. 90년대 시민운동, 그건 미쳐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살면서도 당당히 외쳤다. 권력 물러나라고 대놓고 말했다. 없는 이, 억울한 이들에게 더 없는 언덕이었다. 그 진보가 달라졌다. 권력의 중심으로 옮아갔다. 더는 문밖의 견제자가 아니다. 문 안의 집행자다. 진보 법관은 대법원장이 됐다. 시민 운동가는 인권위원장이 됐다. 각료 선임의 진보 경력은 필수다. 진보의 흔적이라도 있어야 뽑힌다. 정치권력은 더하다. 진보 경력이 곧 공천 조건이다. 비례대표도 그 순서대로다. 1번부터 아래까지 곳곳이 진보다. 윤미향씨도 그렇게 뽑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다. 안정적인 7번을 받았다. 의원배지를 달게 됐다. 이런 때 잡음이 생겼다. 이용수 할머니가 시작했다. 기부금 사용처에 의혹을 제기했다. 92세 위안부 출신 당사자의 폭로다. 사회에 던진 충격이 컸다. 언론이 넙죽 받아 의혹을 키웠다. 이제 의혹은 정의연 전체로 번졌다. 전부 사실인 거 같지는 않다. 후원금을 착복했을까. 그렇지 않을 거다. 할머니들에게 후원금 모두를 줘야 했을까. 그런 것도 아니다. 별일 아닌 것도 있다. 안성 쉼터를 불법 증ㆍ개축했을까. 시골집 창고가 정의연 기본 정신과 무슨 상관인가.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의혹을 대하는 윤 당선인의 자세다. 스스로 권력이 됐음을 모르고 있다. 견제받는 위치에 왔음을 모르고 있다. 내놓는 해명마다 거짓말이다. 최소한 결과적으로 거짓말이다. 기존 아파트 팔아 새 아파트 샀다고 했다. 등기부 등본의 거래일자가 어긋났다. 다른 돈 마련해 아파트 샀다며 바꿨다. 가족에 특혜 준 적 없다고 했다. 아버지의 쉼터 관리 비용이 확인됐다. 심심한 사과를 한다고 바꿨다. 그러면서도 토는 단다. 사퇴는 생각 않는다. 수원에 있는 남편 사업은 생략하자. 미국에 있는 딸 유학도 넘어가자. 아버지 문제만도 심각하다. 아버지가 쉼터 관리를 맡았다. 누군가에겐 너무도 소중했을 일자리다. 7천580만원을 대가로 받았다. 웬만한 노인들 여생 살 돈이다. 모든 게 딸이 대표라서 가능했다. 대표 아니었다면 취하지 못했을 이익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수사가 취업 비리였다. 줄줄이 끌려갔다. 누구 하나 고개 들지 못했다. 하물며 이건 항일(抗日) 공금이다.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이다. . 처음엔 발뺌한다확인되면 사과한다사퇴는 거부한다. 많이 익숙한 흐름이다. 보수 부패가 그랬다. 10년 또는 20년 전이다. 그때 진보는 문밖에서 외쳤다. 인정하라, 사과하라, 사퇴하라. 지금 그 패턴이 재연되고 있다. 이번에는 문 안으로 들어온 진보에 의해서다. 하는 짓은 그 옛날 패턴 그대로다. 의혹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확인된 사실은 사과한다당선인 사퇴는 절대 없다. 기억하건대 그 옛날 패턴의 마지막은 이랬다. 결국엔 쫓겨난다. 그때 언론은 노민호로 충분했다. 모든 기사는 노민호로 마무리됐다. 이에 대해 수원 경실련 노민호 국장은. 이 멘트가 곧 정당성이었다. 오늘 우리는 부패한 진보를 보고 있다. 그래서 20년 전 배곯던 진보를 추억하게 된다. 主筆

[김종구 칼럼] 이성 잃은 퍼주기, 방향 잃는 철도·도로

긴 줄을 서야 했을 것이다. 쿠폰을 받아 들었을 것이다. 행복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 돈으로 뭘 할까. 고기라도 한칼 썰어 갈까. 아들 녀석 휴대전화 바꿔 줄까. 어떤 이는 이런 고민을 했을지도 모른다. 난 괜찮으니 기부할까. 그러다 이내 포기했을 것이다. 그냥 쓰자. 그렇다. 이게 본능이다. 자연스럽다. 정치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퍼주기로 올가미를 씌웠다. 조만간 더 큰 퍼주기도 있다. 정부가 주는 재난 지원금이다. 국가 부채 위기다, 재정 건전성 위험하다. 다 부질없는 소리다. 먹혀들 리 없다. 그런데도 이 소리가 나왔다. 코로나 추경을 세울 때다. 홍남기 부총리였다. 11조7천억원을 제시했다. 민주당이 18조원을 요구했다. 더는 안된다고 버텼다. 양심을 건 공무원의 항변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소신이었다. 그런데 정치는 항명으로 봤다. 여당 대표가 분노했다. 관두라고 할 수도 있다. 홍 부총리가 밝혔다. 자리에 연연 않겠다. 재난 지원금 때도 그랬다. 소득 하위 70%만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9조7천억원 든다. 여당이 100% 다 주자고 했다. 표(票)와의 약속이라고 했다. 이리되면 14조3천억원 든다. 물론 두 번 다 홍 부총리는 졌다. 애초 이길 게임도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입을 닫았다. 묵묵히 돈만 마련한다. 지자체 부담, 국채 발행, 세출 조정으로 얼추 맞췄다. 나라는 그의 걱정대로 간다. 국가채무율이 40%를 넘었다. 재정 적자는 4%를 넘었다. 사상 최악의 국가 부채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재정 적자다. 모두 미래 세대로 넘긴 빚더미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말이 없다. 그도 그럴게, 동사무소 늘어선 행렬이 있다. 누구 하나 근심하지 않는다. 다 밝고 다 들떠 있다. 퍼주기에 길들여진 여론이다. 어느새 짧았던 홍의 전쟁도 잊혀졌다. 몽니 부린 기재부 공무원의 객기처럼 됐다. 걸림돌 사라진 정치만 살판났다. 더 퍼주지 못해 안달이다. 가히 퍼주기 경쟁의 시대다. 정말 미래세대의 일일까. 지금은 받아 챙기면 되나. 세출구조조정 내용을 보자. 쉽게 풀면 사업비 돌려막기다. 사업비 빼내 퍼주기에 쓴다는 얘기다. 이때 기준이 불요불급한 사업이다. 이것부터 난센스다. 이 나라에 불요불급한 사업이 있나. 어떤 철도, 어떤 도로도 그 지역엔 숙원이다. 십수년만에 어렵사리 확정된 일들이다. 하나같이 경축, 00사업 확정이라며 잔치 벌였던 사업이다. 그 사업들에 손대겠다는 것이다. 이미 주변에서 시작됐다.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비에서 2천300억원 뺐다. 안산ㆍ시흥ㆍ광명ㆍ안양시민 난리 칠 일이다. 서울~세종 고속도로 예산에서 1천억원 뺐다. 구리ㆍ성남ㆍ광주ㆍ용인ㆍ안성시민 맥빠질 일이다. 경원선 동두천~연천 구간 사업비도 100억원 뺐다. 대곡~소사선 철도 열차구매비도 103억 뺐다. 이러고도 큰 지장 없다면 그게 거짓말이다. 연기되고, 축소될 게 뻔하다. 이게 다 지원금 퍼주려는 짓이다. 3월 어느 날이었나. 그 시장이 말했다. 코로나가 엉뚱하게 퍼주기로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시군 재정이 위협받을 거라고 걱정했다. 그 시장, 지금은 말없이 돈 나눠주고 있다. 엊그제, 저 공무원이 말했다. 한번은 어찌어찌 된다 쳐요. 계속 감당할 수 있나요. 그건 불가능한 겁니다. 더 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도 지금은 열심히 지원금 홍보하고 있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이다. 퍼주기 광풍에 질식해 할 말도 못한다. 그때, 홍남기 부총리는 이렇게 맺었었다. 눈 덮인 들판을 지나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리라. 그 홍남기와 이름 못 밝히는 그 시장과 저 공무원, 저들의 고민이 전해주는 탄식이 있다. -퍼주기는 더 이상 미래 부담이 아니다. 오늘 현재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남긴 재앙도 이것이다. 퍼주기 합리화, 퍼주기 몰염치, 그리고 퍼주기 무한 경쟁.- 主筆

[김종구 칼럼] 박근혜 때문이다

Y는 진보다. 젊은 날을 가열차게 보냈다. 어느덧 중년의 고개를 넘어간다. 여전히 진보를 끌어안고 산다. 난데없이 전화기 너머로 말한다. (진보가) 너무 크게 이겼다.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 주문한다. (보수 쪽에) 목을 칠 인간들은 쳐내야 한다. 보수를 생각하는 언론이라면 그렇게 써야 한다. 불쑥 온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누굴 치라는 건지 말하지 않았다. 선문(禪門)만 던졌다. 졸답(拙答)이라도 쓰려 한다. 지난 넉 달간, 보수의 질문이 있었다. 도대체 여론조사가 맞는 것이냐. 그럴 만했다. 보수의 눈엔 도대체 이해 못 할 수치였다. 잘 나간다는 한국갤럽의 조사 추이로 보자. 정경심 구속 이후(11월 4주), 38% 대 24%다. 조국 기소 이후(1월 2주), 40% 대 20%다. 코로나19 창궐 이후(2월 4주), 37% 대 21%다. 변화가 없다. 계속 10~21% 차이다. 보수는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선거 날이 되면 다 드러날 것이라며 기다렸다. 투표함이 열렸다. 더불어민주당이 180석 얻었다. 미래통합당은 103석 얻었다. 총선사에 예가 없는 압승ㆍ참패다. 어떤 보수는 득표율을 말한다. 49.9% 대 41.5%. 의석수보다는 덜 초라해 보인다. 득표율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며 위로 삼는다. 딱한 일이다. 그래 봤댔자 참패는 참패다. 8.4%포인트 역시 엄청난 차이다. 넉 달간 여론조사가 이랬다. 선거 당일 결과도 그대로 나왔다. 이제는 믿어야 한다. 여론조사는 정확했다. 그 넉 달, 보수는 자신했다. 문재인 정부는 실패라고 봤다. 경제지표치고 빨간불 아닌 게 없다. 여기에 총선 결과를 예고해주는 사건들까지 겹쳤다. 조국 사태, 분명히 국정 농단이었다. 신천지 사태, 분명히 방역 정책 실패였다. 세월호 텐트 막말, 분명히 규명이 필요한 의혹이었다. 그런데도 여론조사는 그대로였다. 민주당은 35% 위에, 통합당은 25% 아래 딱 고정돼 있었다. 그래서 엉터리라고 했다. 참패가 시작된 곳이 바로 여기다. 믿고 싶은 표-보수-만의 시각이었다. 지켜보는 표-중도-의 시각은 달랐다. 조국 사태를 보며 떠올렸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 농단은 뭐였나. 울산시장 선거 개입을 보며 떠올렸다. 박근혜 정부의 반박 학살 공천은 뭐였나. 신천지 사태를 보며 떠올렸다. 박근혜 기증이란 손목시계는 뭔가. 차명진 망언을 들으며 떠올렸다. 세월호 당일 박근혜 7시간은 밝혀졌나. 대추나무 연 걸리듯 뒤섞였다. 이러니 오를 리가 있나. 3월 4일, 보수는 또 한 번 흥분한다. 박근혜입니다로 시작하는 옥중 편지다. 야권에게 뭉치라 주문 했다. 심금을 울린 승부수같았다. 통합당 지지율은 어떻게 변했을까. 21%(앞 주)22%(편지 주)22%(다음 주)다. 어떤 변화도 없었다. 되레 민주당 지지율이 올랐다. 36%(편지 주)에서 39%(다음 주)로 높아졌다. 박근혜 편지를 본 중도 3%가 민주당으로 간 거다. 집요하고 잔인하게 잡고 늘어지는 박근혜 족쇄였다. 이제 보수를 절망케 하는 예상까지 나온다. 이번 득표율-49.9% 대 41.5%-이 당분간 못 볼 최고 성적일 수 있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증명이 있다. 내놓는 분석이란 게 그거다. 차명진 때문에 졌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졌다고 한다. 차명진 이전에도 13% 차이였고, 코로나 창궐 때도 16% 차이였다. 이 수치는 쏙 빼놓고 얘기한다. 선거 여왕의 몰락을 믿지 않으려는 맹신이다. 이를 눈치챈 민주당은 20년 집권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노무현도 추락했었다. 비리 의혹에 휘말렸다. 진보가 만신창이가 됐다. 그때 노무현이 편지를 썼다. 옥중 편지와 달랐다. 2009년 4월 22일, 이렇게 적고 있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의 가치가 아닙니다 나를 버리십시오. 그리고 스스로를 버렸다. 그 후, 진보는 살아났다. 대통령 당선에서 180석 압승까지 이어져 왔다. 세상 다 아는 노무현의 혼(魂)이다. 이 혼의 차이가 이념 역사를 갈라쳤다. 진보 압승과 보수궤멸로. 172년 전 공산당 선언이 있었다. 그 서문을 베껴 적고 싶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 보수를 떠돌고 있다. 박근혜라는 헤어날 수 없는 유령이. 主筆

[김종구 칼럼] 공약하라, ‘대학 등록금 일부 반환’

우골탑이라 했다. 소 팔아 보내는 대학이었다. 요즘은 다르게 들린다. 쇠고집 부리는 대학이다. 학생들이 수없이 외친다. 등록금 일부를 반환해달라. 꿈쩍도 않는다. 개강이 늦어도 30주 채우면 된다고 본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11조 2항이 근거다. 등록금 감액은 강행규정이 아니라고 본다. 대학등록금에 관한 규칙이 근거다. 저급한 온라인 강의도 문제되지 않는다고 본다. 법적으로는 그것도 강의라고 본다. 대학들이 믿는 구석이다. 말은 맞다. 3월 중순까지는 그랬다. 개강도 2주만 연기했다. 온라인 수업도 2주만 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엄청난 사정변경이 생겼다. 학교 문이 한 달 넘게 닫혀 있다. 온라인수업이 한 달을 넘겨 간다. 1학기 전체로 확대한 대학도 많다. 중간고사도 대부분 사라졌다. 과제로 대신하거나 이마저 없다. 신입생은 대학 구경도 못했다. 이건 대학이 아니다. 강의라 할 수 없다. 학생불만도 차원이 달라졌다. 세상을 향해 폭로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공개된 강의 하나를 보자. 1강, 27분 02초다. 2강, 19분 33초다. 3강, 13분 41초다. 진행된 강의 시간을 모두 더해 봤다. 1주차부터 3주차까지 2시간 1분이다. 정상적인 강의였더라면 9시간을 했어야 맞다. 강의 영상이 그대로 올라 있다. 학교ㆍ학과명까지 공개됐다. 아마 사실일 게다. 게시자가 남긴 말이다. 나는 저런 강의에 90만원을 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도 조사했다. 6천261명에게 물었다. 만족 347명, 6.8%다. 학생 대표단 550명이 탄원했다. 등록금 일부를 반환해달라는 요구다. 사립대총장협의회가 받았다. 가타부타 답이 없다. 대학교육협의회는 이렇게 밝혔다. 아직 논의 계획이 없다. 교육부 답변도 세상 편하다. 대학 등록금에 개입할 명분이 없다. 참다못한 어떤 학생(24)은 헌법 소원까지 냈다. 대학이 등록금 감액 규정을 만들지 않았으니 위헌이라는 논리다. 입법부작위(立法不作爲)에 대한 판단이다. 이런데도 대학은 반응이 없다. 자신 있는 모양이다. 등록금 안 돌려줘도 된다고 결론 낸 모양이다. 그럴 수 있다. 위헌 청구? 위헌 결정 난데도 그만이다. 코로나 등록금까지 소급 적용될 리 없다. 고등교육법상 30주만 채우면 된다. 대학등록금 규칙상 감액 의무도 없다. 온라인 강의도 강의는 강의다. 이러니 학생들의 절규-550명의 호소문ㆍ헌법 소원-를 소귀에 경(經)으로 흘리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모르는 게 있다. 국민이 만드는 코로나 공동체라는 게 있다. 국밥집(수원시 팔달구 교동) 할머니가 힘들다. 느닷없이 문을 닫았다. 시설에 들어가 보름을 격리당했다.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이유다. 그래도 희생을 감수한다. 다들 힘듭니다. 괜찮습니다라고 한다. 수많은 국밥집 할머니들, 그런 할머니들에 임대료 깎아주는 수많은 건물주들, 회사를 살리자며 월급을 반납하는 더 수많은 직장인들. 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코로나 공동체다. 5천만이 만들어가는 배려와 양보의 정(情)이다. 이 아름다운 코로나 공동체를 대학은 모른다. 외면하고 있다. 이익만 움켜쥐고 버티며 가고 있다. 이제 곧 코로나는 끝날 텐데. 코로나 공동체가 역사로 남을 텐데. 거기 남을 기록도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2020년 한국의 대학은 털끝만큼의 손해도 거부했다. 법ㆍ규정 따지며 철저하게 숨었다. 학생ㆍ학부모 하소연에 눈 감고 귀 막았다.- 더 혹독한 평도 각오하는 모양이다. -지성의 전당이 아니었다. 수전노의 전당이었다.- 학생들에게 남은 수단은 없다. 해 볼 건 다 해 봤다. 그래서 쳐다본다. 눈앞에 놓인 총선이다. 어느 정당이든 공약해주면 좋겠다. 등록금 일부를 반환토록 하겠다고 약속해주면 좋겠다. 반값 등록금에 모두를 걸던 정치권이다. 그때완 비교도 안 될 명분이 있다. 학생 피해가 명백하고, 그에 비례한 구제요구다. 할 수 있고, 해야 할 공약이다. 학생 된 죄인 200만 학생, 학생 둔 죄인 400만 학부모가 고대한다. 정치권이 나서라. 主筆

[김종구 칼럼] 공항은 뚫렸고, 수도권은 1천명 됐다

결국, 1천명을 넘었다. 수도권 확진자 수다. 숫자가 갖는 의미가 크다. 집단 공포로 가는 임계점이다. 대유행의 문턱에 놓인 계단이다. 정책의 틀을 바꿔야 할 위기다. 많은 시민이 그렇게 말했다. 많은 전문가도 그렇게 경고했다. 어제(4월1일) 0시로 그 선이 무너졌다. 1천42명 확진.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촌각으로 변하는 상황이 어지럽다. 발표되는 수치가 뒤섞여 놓였다. 그래도 찬찬히 보자. 그러면 보인다. 공항 붕괴다. 그 증명이 시민 손에 있다. 휴대폰 속 확진자 알림 문자다. 코로나 사태 초기, 휴대폰은 어쩌다 울렸다. 수원 3번째, 용인 2번째. 그러다가 2월 초 요동치기 시작했다. 분당재생병원, 은혜의강 교회. 3월 초, 못 보던 문자가 등장했다. 미국방문 이력자 확진, 프랑스 입국자 확진. 이 즈음 수도권 확진자는 300명 선이었다. 이후 해외 입국자 확진 문자가 폭주했다. 두 달 걸렸던 500명이 단 열흘만에 1천명에 왔다. 공포의 객체는 확실해졌다. 해외 입국자 감염이다. 3월 하순부터 본격화됐다. 그즈음 정부 통계도 확인된다. 22일 11명, 23일 13명, 24일 20명, 25일 34명, 26일 30명. 입국자의 70%가 수도권 주민이다. 곧바로 수도권 현실로 이어졌다. 이제 수도권 확진자의 절반이 해외 입국자다. 대구 경북에선 없는 경로다. 충청도, 전라도도 이렇지 않다. 전국엔 없고 수도권에만 있는 통로. 이 통로가 수도권 확진 1천명의 주범이다. 공항에 정부는 없었다. 순서도 없이 갈팡질팡했다. 유럽발 입국자를 검역했다. 3월22일부터 시작했다. 그땐 이미 이탈리아의 떼죽음이 돌 때였다. 한참 전 시작했어도 늦은 거였다. 현장에서 결과가 나왔다. 22일 이전 입국자의 확진이 속출했다. 유럽발 통제는 실패했다. 이번엔 미국 등으로 확대했다. 27일부터다. 이날 미국의 확진자는 18만1천99명, 사망자는 3천440명이다. 미국발 확진자도 여럿 나왔다. 역시 늦었다. 지자체와의 공조도 안 보였다. 지자체는 어떻게든 해보려 했다. 공항에서 지역민을 빼냈다. 호텔로 가족을 대피시켰다. 명단이 필요했다. 23일 서울시장이, 24일 수원시장이 호소했다. 입국자 명단을 보내 달라. 그때 흘러나온 정부 측 답변이 이거다. 명단 제공 방식을 논의 중이다(법무부), 중대본 차원에서 검토할 일이다(질병관리본부). 세상 느긋한 핑계를 해대던 그 이틀, 프랑스 입국자와 가족 3명이 또 실려 나갔다. 이 와중-27일-에 총리의 자랑이 나온다. (코로나에 임하는 우리 자세는) 신속, 투명, 혁신, 자율 네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절대 공감 못 할 단어다. 대한민국 공항 검역은 느렸고, 불투명했고, 보수적이었고, 타율적이었다. 덧붙여 이런 자랑도 한다. 우리 경우는 봉쇄보다는 열어놓고 전파를 차단하는 방법에 집중해왔다. 외신 기자 모임이길 다행이다. 수도권 기자였다면 따졌을 것이다. 공항을 연 겁니까. 뚫린 겁니까. 서로 다른 두 코로나다. 하나는 대구경북 코로나다. 신천지발 코로나로 초토화됐다. 주민이 힘들었고, 정부도 고생했다. 고비를 넘기고 있다. 잘했다고 자평(自評)한다. 다른 하나는 수도권 코로나다. 해외 입국자발 코로나로 초토화됐다. 공항이 뚫렸고, 정부는 헤맸다. 확진자가 1천명까지 왔다. 옆 시(市)에서 옆 동(洞)으로, 이제 옆집까지 왔다. 내 생활 속에 들어온 공포다. 실패한 공항 방역이다. 무능한 정부 행정이다. 형법(刑法)에 권한과 책임론이 있다. 그때 들은 우스운 예(例)다. 장마에 떠내려온 돼지똥에 하류 주민이 피해를 봤다. 돼지 기른 주인 책임이냐, 아니면 똥 싼 돼지 책임이냐. 강의에나 쓸법한 질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선택이 종종 생긴다. 대구경북 코로나는 신천지 책임으로 끝났다. 똥 싼 돼지가 진 책임이다. 공항 뚫린 수도권 코로나는 누구 책임일까. 이번에도 똥 싼 돼지책임일까. 정부 아닌 공항만의 책임일까. 단언할 수 있다. 정부의 공항 방역 행정은 실패했다. 그 결과가 수도권의 4월1일 1천명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경기 남부 후보자들, ‘국제공항’을 公約하라

4년 전 선거 때는 이랬다. 군(軍) 공항 이전 문제였다. 수원, 그것도 서수원권 문제였다. 화성, 그것도 화성 일부 문제였다. 수원권은 당연히 찬성이라고 했다. 화성권은 당연히 반대라고 했다. 너무 뻔해 새삼 살필 것도 없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상황이 딴 판으로 변했다. 이제 군민(軍民) 복합공항이다. 국제공항이 붙었다. 몸통이 바뀌었다. 공항은 광역교통시설이다. 경기 남부 모두의 것이다. 관심이 수원ㆍ화성을 넘었다. 지역마다 들고 일어났다. 8개 지자체에서 추진위가 구성됐다. 4일에는 이를 다 묶는 연합체가 떴다. 서명운동에 나서겠다고 한다. 순회 설명회도 연다고 한다. 4ㆍ15 총선에 맞춰 놓은 듯하다. 총선 후보자들을 압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지역의 지역구만 19곳이다. 지역은 더 늘 것이고, 지역구도 더 늘 것이다. 이쯤 되면 답을 해야 한다. 공약집에 써야 한다. 달리 반대할 여지도 없어 보인다. 추진하겠다가 맞을 듯하다. 필요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인구 2,570만 수도권에 공항 2개다. 1,285만명에 1개다. 강원도는 77만명에 1개, 전남ㆍ광주는 83만명에 1개, 경남ㆍ부산ㆍ울산은 265만명에 1개다. 누가 봐도 하늘길 역차별이다. 지방마다 공항 좀 더 달라며 아우성이다. 경기도의 신공항 요구는 차라리 늦었다. 인천국제공항ㆍ김포공항의 한계도 있다. 각각 2030년에 꽉 찬다고 국토부가 밝혔다. 경기 남부가 힘을 모아야 할 신공항이다. 여전히 키는 화성이다. 새로 옮겨갈 부지가 화성 땅이다. 비행기 소음이 날 곳도 화성 하늘이다. 8개 지역이 다 좋대도, 화성이 싫다면 끝이다. 공식 입장은 강력 반대다. 화성시청, 화성 정치권이 다 반대다. 국제공항도 걷어찬 지 오래다. 꼼수라고 했다. 아마도 이 지역 총선 공약집에는 또 이렇게 쓰일 것이다. 화성을 비행기 소음으로부터 지키겠다. 그런데, 이걸로 끝내면 안 된다. 반대해서 어쩌자는 건지 밝혀야 한다. 그 이유가 수용성이다. 수원, 용인, 성남의 집값 폭등이다. 용인, 성남은 그럴 수 있다. 과거에도 폭등했었다. 수원은 다르다. 이런 폭등이 처음이다. 요 몇 년 올랐다던 집값은 광교의 얘기였다. 이게 수원 전역으로 번졌다. 동쪽 끝 영통, 3억5천 아파트가 6억원으로 올랐다. 서쪽 끝 호매실동, 하루 다르게 오른다. 남쪽 끝 세류동, 분양 경쟁률이 수백 대 1이다. 중심에 우만동, 4억 아파트가 6억이 됐다. 시흥 안산도 이렇다. 화성은 어떤가. 이 와중에도 조용하다. 동탄을 떼고 보면 더 그렇다. 인접 지자체와 격차가 벌어진다. 화성 아파트 두 채가 수원 아파트 한 채가 됐다. 화성시민에겐 앉아서 날려 먹은 부(富)다. 주민들 속이 탄다. 보통리에 산다. 동네 진입로가 1차선이다. 출퇴근 때면 마을 길이 막힌다. 이게 화성이다. 철길이 1미터도 없다. 서울 오고 갈 전철이 없다. 전직 구청장이다. 지금도 화성을 위해 활동 중인 그가 한 탄식이다. 맞다. 전철노선이 곧 지역 가치다. 요사이 셈법이 그렇다. 신분당선 타당성이 2020년 1월 통과됐다. 수원 집값이 확 올랐다. 신안산선이 2019년 9월 착공했다. 안산과 시흥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분당선에 3호선까지 더해지는 용인이다. 집값이 천정 부지다. 서울과 수원ㆍ용인ㆍ안산ㆍ시흥에 깔리는 철도망이다. 화성만 빠졌다. 수원ㆍ용인ㆍ안산ㆍ시흥 주민이 20분 걸릴 서울 길을 화성 주민은 1시간씩 가야 한다. 화성시민도 수도권 주민이다. 멋진 신도시에 살고 싶어 한다. 서울 가는 전철 타고 싶어 한다. 집값 올랐다는 소리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안된다. 들리는 게 한결같이 엉뚱한 뉴스다. 신분당선 발표되던 2020년 1월, 신안산선 착공하던 2019년 9월 9일. 그때도 화성시 검색어는 비행장 반대, 주민 갈등 심화였다. 경축, 신분당선 확정 현수막이 수원을 덮던 그때, 화성에는 여전히 비행장 결사반대 현수막만 보였다. 지금이라도 따라잡아야 한다. 많이 늦었다. 전철만 해도 그렇다. 계획에 10년, 통과에 10년, 공사에 10년이다. 이번 총선에 밑그림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공항 찬성이 아니어도 좋다. 반대해도 된다. 다만, 그 반대엔 대안이 붙어야 한다. 비행장 없이 어떻게 전철을 끌어올지, 비행장 없이 어떻게 배후 신도시를 만들어 낼지, 이 구상을 반드시 밝히고 가야 한다. 대책 없는 비행장 반대, 이 선동의 효력은 4년 전으로 끝났다. 主筆

[김종구 칼럼] ‘전광훈 집회’가 짓는 두 가지 罪

罪, 하나는 반(反)국민 선동이다. 수원제일교회 22일 문자다. 시민과 성도님들의 건강과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교회를 폐쇄합니다. 25일 문자다. 코로나19로 가정에만 있을 영가족을 위해 김근영 목사님의 예배 영상을 올립니다. 김근영 목사는 정부 정책에 놀아난 것인가. 교리를 저버린 정신 나간 목사인가. 전광훈 목사는 그렇게 말했다. 감염돼 생명이 끝난다 하더라도 하겠다(예배하지 않는) 당신들이 목사냐. 정신이 나간 것이냐. 22, 23일은 공포의 시작이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명대로 폭증했다. 환자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길거리가 한산해졌고, 버스가 텅 비었다. 바로 그런 날 수천명을 모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며 선동했다. 야외에선 감염 안 된다며 호도했다. 앞으로도 계속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래놓고 본인은 이틀 뒤 구속됐다. 흡사 구속을 앞둔 환송 예배처럼 됐다. 이제 자신은 춥고 위험한 집회에 갈 일이 없어졌다. 어르신들이 많다. 거동 불편한 모습도 있다. 병에 취약한 분들이다. 코로나 사망자가 많은 중국이 그렇다. 평균 연령이 70세, 65세 이상이 78%다(1월30일 현재). 한국 사망자의 평균 연령도 58.7세다. 41세 사망자 한 명을 제외하면 61세까지 높아진다. 고령(高齡)이란 게 이렇게 아슬아슬하다. 그런 분들을 수백, 수천명 모았다. 빼곡히 세워 놓고 함성 지르게 했다. 그의 말 좀 빌리자. 전 목사, 정신 나간 것이냐. 罪, 둘은 종미(從美) 사대주의다. 집회마다 성조기가 휘날린다. 트럼프 미국이 하는 짓을 보자. 방위비 강탈에 혈안이다. 얼만큼은 올려주겠다고 했다. 1조 몇억에는 응했다. 이것도 8.2% 올린 거다. 그런데 더 내란다. 그 액수가 5조원이 넘는다. 코로나 난리통에도 계속 압박이다. 이제는 미군부대 군무원들의 목줄을 틀어쥐었다. 평택, 동두천 등지에 우리 국민 5천800명이다. 돈 안 내면 월급 안 주겠다고 한다. 전통 우방(友邦)이라면서 이런다. 한국 조롱은 이제 트럼프의 일상용어다. 최근엔 기생충 망언이다. 기생충에 상을 준 아카데미는 나쁜 시상식이다라고 했다. 엊그제는 욕설까지 퍼부었다. 21일(현지시각) 라스베이거스 집회에서다. 빌어먹을(freaking) 영화로 아카데미 상을 탔다. 듣는 미국인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이쯤 되면 국가 모독이다. 국민 모욕이다. 이런 대도 전광훈 집회는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미국이 있어 한국이 있단다. -명이 있어야 우리가 있사옵니다-. 영화 광해다. -명에 군사 2만을 파병하겠사옵니다명 태황 태후에 받칠 품목입니다. 공녀 사십, 황세조 백오십포-. 그때 그 모습과 지금 저 모습이 닮았다. 명(明)이 미국(美國)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5조원 내놓으라는 미국, 우리 군무원 굶기겠다는 미국, 빌어먹을(freaking) 영화라는 미국 대통령, 그런 미국의 깃발을 찢어져라 흔들어 댄다. 친미(親美)를 넘어 종미(從美)다. 십자가 흉내 내기를 보고 싶지 않다. 어제 구속됐다. 선거법 위반 혐의다. 호송인들에게 끌려갔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부여 잡힌 손도 흔들었다. 어떤 지지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처형됐다. 골고다 언덕을 올라갔다. 거대한 십자가를 졌다. 가시 면류관을 썼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지 사흘 만에 사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전 목사가 지금 그 예수님을 흉내 내고 있다. 거대 악(惡)에 맞선 성전(聖戰)인 듯 처신하고 있다. 스페인 혁명가가 말했다. 사람들은 인민의 혁명이 승리하기 5분 전까지는 거기에 범죄와 광기라는 낙인을 찍는다. 하지만, 그것이 성공하자마자 사람들을 밀어 제치고 무대 전면으로 뛰어나온다. 혹여 이 가설이 사실이 되더라도 바뀔 건 없다. 광화문 광장에 구호-탄핵ㆍ친미-가 실현되더라도 바뀔 건 없다. 전광훈 집회는 반(反)국민, 종(從)미국의 무책임한 광기일 뿐이다. 종교 역사에 남을 죄일 뿐이다. 제정(祭政) 분리를 미개 사회와 문명사회의 구획이라 했다. 지금 전광훈 집회가 더 없는 증명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국민청원, 그 인민재판의 퇴조

역사로 남은 두 개의 인민재판이 있다. 로마 Judicia Populi이 하나다. 인민 집회가 재판권을 행사했다. 관(官)이 유죄로 선고한 사안을 재판했다.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인민재판이다. 역시 대중 집회가 재판권을 행사했다. 반(反)혁명ㆍ반(反)체제 재판이 주를 이뤘다. 2천년 시차를 둔 두 인민재판이다. 그런데도 똑 닮았다. 초(超)법적 행위라는 점이 닮았고, 권력의 통치 행위라는 점이 닮았고,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점이 닮았다. 그 비슷한 걸 우리가 봐왔다. 청와대 국민 청원이다. 직접 민주주의 실현이라고 했다.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집단이 가하는 위해(危害)였다. 정적에 대한 숙청(肅淸)이었다. 그리고 법치 위에 군림하는 폭거(暴擧)였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개가 이랬다. 권력까지 힘을 보탰다. 그 위해, 그 숙청, 그 폭거를 그대로 인용했다. 사법의 전치(前置)처럼 됐다. 국민 청원청와대 답변검찰 수사사법처리로 이어진 신(新) 재판질서였다. 이것들이 사달 나고 있다. 줄줄이 무죄로 판결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건, 대대적으로 시작한 방산 비리였다. 무죄다. 박찬주 육군 대장 사건, 군 적폐라 명명된 비리였다. 무죄다. 강원랜드 사건, 채용 부정의 상징적 비리였다. 무죄다. 촛불 집회 계엄령 사건, 국기 문란 비리였다. 무죄ㆍ무혐의다. 그리고 현직 판사 4명 기소, 사법 농단이라며 쑥대밭을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무죄다. 무죄 아닌 걸 찾아보기 어렵다. 그때마다 국민청원이 있었다. 방산비리 수사를 원점에서 재검토해달라는 청원이 있었다. 박찬주 대장을 이등병으로 강등하라는 청원도 있었다. (계엄령 주도한)기무사 해체하라는 청원도 있었다. 사법 농단에 대한 청원은 아주 많다. 폐족(廢族)처럼 만들었다. 청원이 던지고, 청와대가 받았다. 대통령이 답한 것도 많다. 엄단하겠다, 처벌하겠다, 수사토록 하겠다 등으로 갔다. 이게 다 무죄다. 그 책임이 어디로 가겠나. 온통 문재인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돌아보면 군중(群衆)이란 게 그런 거다. 군중의 주장은 지르면 끝이다. 책임은 특정 자연인에게 간다. 그 주장을 따랐던 자연인이다. 이 경우 문 대통령이다. 억울한 사람을 자살로 몰았다, 죄 없는 사람을 옷 벗겼다. 적폐 청산 대통령이었는데, 이제 적폐몰이 대통령이 되고 있다. 항소심, 상고심이 계속 열릴 것이다. 어쩌면 대통령의 책임이 갈수록 커져 갈 수 있다. 다 예정됐던 역습이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말했다. 대다수 사람이 미쳐 버릴 때 비로소 혁명의 정신 상태가 준비된다. 그렇다. 혁명의 본질은 대중의 광기(狂氣)다. 짧게 이는 찰나의 광기다. 2017년 촛불도 그랬다. 순간의 광기가 나라에 넘쳤다. 그 전면에 국민 청원이 섰다. 대통령이 그 광기를 잡았다. 혁명의 지원군으로 삼았다. 이제 그 광기가 식는다. 세상이 다시 냉정해졌다. 모두 죄 없음이 되고 있다. 이제 국민청원도 그때 같지 않다. 지방(地方)도 정신 차려야 한다. 철 지난 광기에 매달리면 안 된다. 경기도가 도민 청원을 열었다. 1년간 답변 1건 했다. 답변 조건 5만을 넘긴 게 없다. 양평군도 콕콕 청원방을 열었다. 답변 건수 0이다. 성남시는 482건 중 3건, 이천시는 54건 중 4건, 용인시는 476건 중 5건 답변하는데 그쳤다. 어느 공무원이 말했다. 시민들이 주민 청원의 의미를 모른다. 분석이 틀렸다. 시민의 경고다. 인민재판에 참여 않겠다는 경고다.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의 한 시대, 사정(司正)이란 인민재판이 있었다. 주연(主演)은 김영삼 정부였다. 5년간 추어댄 칼춤이었다. 그 인민재판의 마지막은 국가부도였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 스스로 마지막 피고석에 앉았다. 역사가 남긴 인민재판의 결말이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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