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2019년 이재명의 길-道政에 답 있다

이재명은 정치인이다. 그를 싫어하는 유권자가 있다. 그들의 바램은 이재명이 망가지는 것이다. 이재명은 도지사다. 그를 싫어하는 도민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도정의 붕괴를 바라지는 않는다. 2019년 경기도민에게 주어진 고약한 운명이다. 정치인 이재명은 몰라도, 이재명 도정이 망가지는 건 두고 볼 순 없다. 이런 도민의 운명이 곧 이재명의 운명이다. 성공한 정치인 이전에 성공한 도지사로 바로 서야만 할 책임이다. 2018년 내내 흔들렸다. 여배우 스캔들, 혜경궁 김씨, 친형 강제 입원, 이런저런 선거법 위반. 관리되지 않은 지난날이 준 업(業)이었다. 권력 투쟁에서 오는 박해(迫害)이기도 했다. 진통 끝에 법률적 가늠이 났다. 친형 강제 입원과 선거법 위반 두어 개가 남았다. 인격적(여배우 스캔들)ㆍ정치적(혜경궁 김씨)인 치명타는 피했다. 하지만, 피고인 신분이 됐다. 재판정을 오가야 할 처지다. 끝도 모를 지난한 과정의 시작이다. 피고인이란 게 원래 그렇다. 모든 운명을 판사에 맡겨놓고 산다. 그가 맡긴 운명은 더 크다. 피고인 이재명은 유죄다. 그 순간, 야인이 될 것이다. 피선거권마저 박탈당한 박제 인간이 될 것이다. 피고인 이재명은 무죄다. 그 순간,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다. 걸림돌 치워진 탄탄대로를 달려갈 것이다. 이 극단적 선택의 법정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재판만 보이는 게 정상이다. 범인(凡人)이라면 누구나 그런다. 하지만, 현직 도지사다. 그럴 여유가 없다. 매일, 20조 원 예산을 결재해야 한다. 매일, 31개 시군 업무를 조정해야 한다. 매일, 1천300만 도민을 대표해야 한다. 곁눈질하면서 갈 짬이 없다. 마침 그가 했던 이런 말도 있다. 저들의 공격은 이재명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일에 대한 갈증으로 들렸다. 적어도 그 증명의 시간은 왔다. 던져 놓은 약속-복지 경기ㆍ공정 경기ㆍ평화 경기-을 입증할 수 있는 시간은 됐다. 다행히 견본이 있다. 성남시장 이재명의 기록이다. 전임자가 남긴 빚이 산더미였다. 그때, 7천억 원을 만들어 시(市) 곳간을 채웠다. 다른 시는 무상급식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때, 무상교복까지 치고 나갔다. 국가는 청년 실업률 계산에 여념 없었다. 그때, 실업 청년들에 수당을 챙겨줬다. 그런 기억들이 그를 대선후보, 도지사까지 밀어올렸다. 6ㆍ13 지방선거 표심의 기대도 그거였다. 이걸 안 하고 못하며 까먹은 6개월이었다. 재판? 어차피 정치다. 상대 정당ㆍ반대 정파가 시작했다. 그들이 기소(起訴)까지 끌고 왔다. 법정(法庭)에 왔다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이재명 유죄 이재명 무죄 현수막이 내걸릴 것이고, 서로를 향한 악담이 댓글에 도배될 것이다. 판사가 그 복판에 있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한다. 근데 이 양심이란 걸 본 사람은 없다. 결국, 재판도 사람이 하는 거다. 정치로 누더기 된 사건이다. 정치를 쏙 빼고 판결할 장사는 없다. 친형을 감금시킨 인권탄압이라 해도 된다. 친형의 시정 개입을 막는 대처였다고 해도 그만이다. 대장동 개발 이익을 과장한 거짓홍보라 해도 된다. 신도시 조성의 통상 예측을 말했을 뿐이라고 해도 그만이다. 확정된 검사 사칭 전과(前科)까지 숨긴 거짓말이라 해도 된다. 과거 판결에 대한 나름의 의미부여라고 해도 그만이다. 어느 쪽을 써도 판결문은 완벽할 것이다. 이번 재판이 그렇다. 주문(主文) 빼고는 이미 다 까진 재판이다. 그 사이 정치인 이재명에 대한 판단은 끝났다. 새삼 좋다며 돌아올 유권자도 없고, 싫다며 돌아설 유권자도 없다. 이제, 도지사 이재명에 대한 판단이 남았다. 잘한다며 모두가 돌아올 수도 있고, 못한다며 모두가 돌아설 수도 있다. 그래서 도정에 답이 있다는 것이다. 도로 챙기고, 급식 챙기고, 안전 챙기고, 평화 챙기는 속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생긴다. 오늘을 마지막처럼 뛰어야 4년이 주어진다. 피고인 딱지를 붙이고 가야 할 이재명 지사라서 더욱 그렇다. 主筆

[김종구 칼럼] 재판거래說의 역습 - 대법원 화염병

일단 들어가고 봤다. 그게 어디든 상관없었다. 파출 소장실, 서장실, 청장실. 수사 중인 검사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게 풋내기 기자의 일이었다. 그날 밤은 판사실이 목표였다. 당직 판사실 문을 벌컥 열었다. 뭐 재밌는 거 없어요? 기록을 보던 판사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뭐 부탁하러 왔어요? 그때 직감적으로 알았다. 들어오면 안 되는 곳에 왔구나. 세상에서 제일 길었던 몇 분이 흘렀다. 다음날 난리가 났다. 공보판사(당시 수석부장판사)가 기자실에 항의했다. 박 선배가 불렀다. 김 기자, 어젯밤에 판사실 들어갔었냐. 법원에서 말이 나왔어. 그랬었다. 판사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들어가선 안 되는 곳이었다. 천방지축 날뛰는 사건기자도, 청와대를 안방처럼 드나드는 정치 기자도 판사실만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 후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27년이 지나도 민망한 판사실 추억이다. 법원이 갖은 존엄이다. 그 존엄이 있어 법치는 유지된다. 법원이 내린 판결이 종국적 판단이다. 인간계를 지배하는 사회적 질서다. 3심(審) 위에는 어떤 것도 설 수 없다. 번복되어서도 안 된다. 판례가 바뀔 순 있지만, 판결이 바뀔 순 없다. 그걸 결정하는 공간이 판사실이다. 인간계로부터 차단되는 게 맞다. 그 옛날 윤 대법원장도 이런 말을 했다. 법관은 다소 신비로워야 한다. 이렇게 보호되어 온 것이 법원이다. 그 법원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그것도 법원의 상징인 대법원에서, 대법원의 수장인 대법원장을 향했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사건 당사자가 한 짓이다. 대단한 시국사건도 아니다. 이념적 가치가 수반된 재판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민사재판이다. 개인의 재산권이 걸려 있었다. 재판부가 판결을 잘 못해서 내가 손해를 입었다는 게 범인 주장이다. 패소하는 당사자는 수만이고 수십만이다. 이들이 다 던진다면? 단박에 재판거래가 떠오른다. 구(舊)대법원을 향한 비난의 화두다. 권력에 입맛대로 재판을 써먹었다고 한다. 멋대로 판결하고, 멋대로 연기하고, 멋대로 발표했다고 한다. 책임 있다는 법관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됐다. 여기에 결정적인 한방이 매겨졌다. 법관 회의의 결정이다. 책임 있는 법관을 탄핵하자고 의결했다. 정치권 선동이나 검찰 수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법관 스스로 재판거래는 사실이다고 공표한 것이다. 지켜보던 여론도 악화됐다. 잘못된 판결이라며 사건명이 특정되기 시작했다. 재판에 진 여승무원들이 이미 복직했다. 이석기 전 의원이 풀려날 거란 소문도 나온다. 법 감정이 바뀐 것이다. 저마다의 잣대로 판결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내 판결도 잘못됐다며 법원 청사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날아든 게 화염병이다. 이제 판사실 보호도, 판결문 존중도 없다. 법원을 향한 재판거래설의 역습만이 남았다. 비테는 회상록에서 이렇게 평했다. 대다수의 러시아인이 제 정신을 잃고 미쳐 버렸던 것 같다. 트로츠키가 자서전에서 이렇게 반격했다. 그래서 역사는 전진해 가는 것이다혁명과 혼란 속에서 곧 새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사람과 사상이 새로운 수로를 따라 저절로 배치되어 간다. 비테는 틀렸고, 트로츠키가 옳았다. 적어도 러시아 혁명이라는 단기 사건에서는 그랬다. 현재 혼란이 미래 변화로 정리되어 갔다. 기자는 27년 전 판단을 지금도 믿는다. 판사실은 보호받아야 하고, 판결은 존중받아야 한다. 법관들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여전히 법의 존엄을 소중히 챙길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지금은 제정신을 잃고 미쳐 버린 것 같지만, 곧 새로운 법원 질서로 정리되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화염병은 그 전환의 시기를 알려주는 경고였다. 그만 혼란을 끝내라는 경고, 모두 판사실로 돌아가라는 경고 말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퀸 까기 40년, 그 고집이 부질없어 졌다

첫째는 잡탕식 음악이다. 화성학에 기초한 화음 부분이 많다. 흡사 합창단의 하모니를 연상케 한다. 음악을 클래식한 고품격으로 보이게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도입부터 노래 전체에 깔려 있다. 위아 더 챔피언도 코드 전환 부분마다 등장한다. 퀸 팬들은 이걸 자랑한다. 록 밴드에서 볼 수 없는 음악성이라고 칭송한다. 실제로 어느 밴드에서도 시도되지 않은 실험이다. 영화에서도 프레디 머큐리가 자랑삼는다. 퀸만의 음악, 오페라를 접목해 만들겠다. 이걸 그냥 봐줄 수 없었다. 클래식에서는 기초에 불과한 기본 화음이다. 이 단순한 기술을 음악 곳곳에 끼워 넣었다. 그래놓고 록과 클래식의 접목이라고 우겼다. 이도 저도 아닌 잡탕으로 봐야 하지 않나. 수준 떨어지는 밴드 음악을, 낮은 단계의 클래식 기술로 위장한 거다. 퀸의 음악은 사기야. 40년 전 어느 날, 이 얘기로 밤을 새웠다. 학생 밴드를 하던 친구들과의 겁 없는 논쟁이었다. 그날 밤, 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둘째는 배울 것 없는 실력이다. 철저하게 조화를 중시하는 음악이다.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연주에는 애드립이 없다. 라이브에서도 웬만하면 원곡의 연주를 따른다. 로저 테일러의 드럼은 절대로 튀지 않는다. 전체 템포를 지켜가는 리듬 악기의 원칙을 고수한다. 이래서 퀸의 라이브는 언제나 완벽하다. 변화가 불러오는 실수도 없고, 즉흥 연주에 따른 어색함도 없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다. 원곡, 공연 실황, 영화 속 립싱크가 똑같다. 실력에 자신 없어서라고 보였다. 음악 전체를 지배하는 지미 페이지(록 밴드 레드제플린)의 메탈 사운드쯤은 돼야 했다. 수백 번을 연주해도 매번 새롭게 만드는 에릭 클랩턴(록 밴드 야드 버즈)의 애드립쯤은 돼야 했다. 바흐의 푸가를 연주하는 존 로드(록 밴드 딥퍼플)의 건반 실력쯤은 돼야 했다. 레코드를 반복하는 연주에 무슨 록의 저항정신이 있나. 프레디 머큐리의 백 밴드라고 해야 옳다. 이 역시 누구의 동의도 얻지 못했다. 셋째는 멤버 개개인의 고학력이다. 노래만큼 유명한 게 멤버들의 학력이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물리학 박사다. 40년 전에 이미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치의학자다. 명문 런던 호스피털 메디칼 칼리지를 졸업했다. 베이시스트 존 디콘은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퀸 2집을 낼 때까지 학교 교사였다. 40년이 지났어도 퀸의 학력을 뛰어넘는 록밴드는 없다. 퀸=공부 잘하는 천재들 그룹이었다. 영화도 퀸 멤버의 이런 학식을 여러 번 강조한다. 그래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좋아했다. 노래 가사는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그래도 멤버들의 출신 대학과 전공은 줄줄 외웠다. 음악에 학력이라는 허영을 덮어씌운 거였다. 진정한 음악인은 음악만을 추구하는 장인이어야 했다. 마약 중독자 어머니위탁 가정의 탄압. 여기서 만들어진 지미 헨드릭스의 Hey Joe. 박사 논문 쓰며 부업 하듯 만드는 퀸의 노래와는 깊이부터 달랐다. 이 주장은 특히나 맹공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덧 40년이다. 그 퀸이 다시 왔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부활했다. 누적 관객 300만을 넘긴 지 오래다. 스크린 앞 관객이 모두 열광한다. 극장 떼창이란 낯선 광경에 외신도 놀랐다. 퀸을 추억하는 글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특히 중년 아재들의 추억팔이가 한창이다. 다 커서야 퀸의 위력을 알게 됐다(최상진 기자). 50대 아재는 왜 퀸을 보며 울었나(양성희 논설위원). 이들의 추억 속에서 퀸은 여전하다. 위대하고, 역사에 남을 록 밴드다. 나도 가서 봤다. 그래서 쓴다. 여전히 저급한 음악이다. 어설프게 클래식에 버무린 잡탕 밴드다. 뭐 하나 배울 구석이라곤 없는 1인 백 밴드다. 음악과 무관한 학력을 상품으로 포장한 상업 밴드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있다. 세상 사람들은 퀸을 좋아한다. 필요한 곳마다 퀸의 노래가 있다. 록 역사에 위대한 밴드로 결론 났다. 돌아보면 그때도 그랬었다. 혼자서 우겨대던 퀸 까기는 언제나 씁쓸한 패배로 마무리 됐었다. 녀석들은 더 신났을 거다. 40년 전 승리를 또 만끽하고 있을 거다. 역시 퀸이 최고야. 그런데 약 오르지 않다. 더 토론할 생각도 없다. 극장을 나서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음악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거였다. 대중성의 평가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하는 거였다. 퀸 현상이 아재들에 광풍처럼 분다더니. 이런 것도 그런 건가 보다. 40년 전 치열함에 여유를 주는 것, 그리고 그 또한 소중했음을 알게 해 주는 것. 主筆

[김종구 칼럼 ] 양승태 상고법원 과욕은 감옥 갈 일 아니다

김종구 주필 빵을 훔쳤다. 배고픔 때문에였다. 빅토르 위고는 그 장발장(Jean Valjean)을 사회적 희생양이라 했다. 꿔 준 돈을 받으려 했다. 받을 수 없자 살 1파운드를 떼려 했다. 햄릿은 그 샤일록(Shylock)을 악덕 사채업자라 했다. 범죄라는 게 그런 것이다. 범죄를 평하는 별개의 잣대가 있다. 이때의 잣대는 범죄로 얻으려는 대가다. 대가의 내용에 따라 비난 가능성은 달라진다. 눈물 젖은 빵에는 동정이, 살 1파운드에는 비난이 간다. 재판 거래라면서 시작했다. 누가 지었을까. 기가 막힌 명명(命名)이다. 재판을 사고팔았다는 뜻이다. 재판이 거래의 물건이었다는 말이다. 법원 역사에 없던 참담한 단어다. 사회적 평가가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전례 없는 공분(公憤)이 일었다. 법원이 장사치 그룹으로 전락했다. 전직 대법원장은 그 거래의 수괴로 몰렸다. 따랐던 이들도 범죄 집단이 됐다. 전 차장은 그래서 구속됐고, 전 대법원장도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거래설(說)의 객체가 상고법원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바꿔먹으려 했다고 한다. 개인의 치적으로 삼으려 했다고 한다. 숙원을 풀어낸 대법원장으로 남으려는 욕심이란 뜻이다. 인사권을 키우려는 탐욕도 있었다고 한다. 상고법원 판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의 길이다. 이들을 상대로 인사권을 휘둘러 보려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재판을 정권 입맛에 맞췄다고 한다. 세상천지에 나돈 재판거래의 가설이다. 그런데 그리 치가 떨리진 않는다. 상고법원이 뭔가. 대법원 사건을 나눠갖는 법원이다. 대법원 사건 중 단순 사건을 맡는다. 지금 대법관은 혼자서 3천402건을 처리한다.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사건이다. 그 중한 결정을 한 사람이 3천402건씩 한다. 기록을 다 살핀다면 거짓말이다. 법원도 정부도 십수 년째 고민해온 숙제다. 상고법원 신설은 그래서 나왔다. 뭐라도 해야 하니까 내놨던 대책이다. 이게 뭐가 잘못인가. 개인의 치적? 아직 없지만, 꿈꿨다 치자. 인사권에의 탐욕? 아직 없지만, 품었다 치자. 그렇더라도 그게 상고법원이 국민에 줄 실익을 덮진 못한다. 국민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그런 건 헌법 27조 3항에만 있다. 민사 본안 사건 1심은 5개월 내 끝낸다? 이 규정 다 지키면 판사 태반은 죽어나간다. 이걸 고쳐보려는 대안이었다. 이런 상고법원 추진이 왜 재판 거래의 범죄 대상이 되나. 처음부터 그렇게 몰면 안 되는 거다. 8월이면 재판거래가 정설처럼 여겨지던 때다. 그때 이용우 전 대법관이 이런 예언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서 전 현직 대법관들이 검찰의 포토라인에 설 것이다(검찰이)대법원 재판의 합의과정을 추궁할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조사해봐야 재판거래 의혹은 혐의 없음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그러면 검찰은 꿩 대신 닭이라도 잡으려고 재판거래와 관계없는 대법원의 다른 비리를 들여다보려 할 것이다. 얼추 맞아가는 듯하다. 재판거래라는 명명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재판거래로 죄 삼기 쉽지 않음을 알아서다. 상고법원 논란에 국민이 공분하지 않음을 알아서다. 대신 그 자리를 사법 농단이란 명명이 차지했다. 보다 넉넉하게 엮어갈 수 있는 덫이라 여기는 듯하다. 그도 그럴게, 웬만하면 다 사법 농단이다. 블랙리스트 작성, 특정 법관 인사 불이익, 부적절한 지시. 하다못해 대법원장 관사 담장 수리까지도. 장발장에게 눈물 젖은 빵, 그건 범죄를 동정케 하는 연결이었다. 샤일록에게 1파운드 살, 그건 범죄를 더 비난케 하는 연결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상고법원 거래, 이건 어디로 연결될까. 어쩌면,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당당함으로 연결될 것이다. 어쩌면, 이념 쟁투에 피해자가 됐다는 억울함으로 연결될 것이다. 어쩌면, 대법 개혁을 위해 당신들은 그나마라도 하고 있느냐는 반문으로 연결될 것이다. 아닌가. 포토라인에 이끌려 서게 될 양 전 대법원장의 말을 기다려보자. 主筆

[김종구 칼럼] 교육청, 인조잔디 사고 책임 다 떠안을건가

영국에서 이런 설문이 있었다. 축구 선수들에게 물었다. ‘인조잔디 경기장이 사용되어야 하는가.’ 답변한 선수의 94%가 ‘안 된다’고 했다. 말할 것 없이 부상 위험 때문이다. 조사한 단체는 영국축구선수협회(PFA)다. 선수들의 복지를 위해 만든 단체다. 유명 축구 선수 즐라탄의 일화도 있다. 미국 LA갤럭시에서 뛰는 그가 느닷없이 경기 출전을 거부했다. 역시 인조잔디가 이유였다. 인조잔디 부상의 예가 차고 넘치는 스포츠계다. 미국 축구장의 인조잔디는 세계 최고품질이다. 영국 축구장은 종가(宗家)의 자부심이다. 그런데도 선수들이 벌벌 떤다. 인조잔디가 곧 선수생명 끝이라 여긴다. 그만한 기술이 없는 우리네 인조잔디다. 학교 운동장은 그중에서도 값싼 제품이다. 그 위를 지금도 애들이 뛰고 달린다. 자빠지기도 하고, 나뒹굴기도 한다. 영국 축구선수들이 보면 뭐라 할까. 즐라탄이 보면 뭐라 할까. 혹시 한국 아이들이 목숨 걸고 논다고 하지 않을까. 더 기가 막힌 사실이 폭로됐다. 이보다 더 불량한 인조잔디가 학교에 깔리고 있었다. 공사 기준에 충격흡수성이라는 게 있다. 사람이 뛸 때 받는 완충치를 정한 기준이다. 국가 표준인 KS에도 있다. ‘평균치에 50% 이상 되어야 한다’고 딱 정해져 있다. 학교 실상은 턱없었다. 본보가 조사한 7개 학교 운동장이 모두 30%대였다. 26%로 시공된 운동장도 있었다. 육상 트랙 바닥이 35%다. 애들이 지금 육상 트랙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공사비 빼먹기였다. 공사 시방서에는 충전재 기준도 정해져 있다. 1㎡당 11㎏ 이상이다. 이 좁쌀 만한 게 꽤 비싸다. 이걸 빼먹고 있었던 것이다. ‘3분의 1만 넣었다’는 업자의 고백이 나왔다. ‘6천만원쯤 남겨 먹었다’는 증언도 했다. 위법이다. KS로 정한 기준을 위반했다. 범죄다. 시방서를 속인 공사비 횡령이다. 이 위법과 범죄의 희생양은 아이들이다.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까지는 아이들, 걷지 못할 정도로 다치는 아이들이다. 그때, 배가 뒤집힌 걸 보고 뭐라 했나. 운송비 아끼려는 어른들의 탐욕이라 하지 않았나. 그 탐욕이 아이들을 죽였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국민이 분노했고, 선장이 징역 갔고, 대통령이 쫓겨났다. 그것과 이게 뭐가 다른가. 돈 남기려고 엉터리 운동장을 깔았다. 똑같은 탐욕이다. 아이들이 다치고 부상당한다. 똑같은 희생이다. 학부모도, 국회의원도 그래서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전수 조사해 대책을 내 달라고 촉구한 것이다. 교육청도 국감장에선 ‘알았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다. “향후 회의를 통해서…해결에 힘쓰겠다”. 이렇게 느긋해도 되나. 인조잔디 운동장만 도내 311개다. 양심을 고백한 업자는 ‘내가 공사한 (엉터리)운동장이 100개쯤 된다’고 했다. 본보가 조사한 7개 운동장은 모조리 엉터리였다. 대부분 엉터리일 것이다. 아이들이 이 시간에도 거기서 뛰고 논다. 오늘 다칠 수도, 내일 다칠 수도 있다. 곧 땅 어는 겨울까지 온다. 대한민국 학교는 복지천국으로 가는 중이다. 공짜로 밥 준다. 급식 복지다. 공짜로 옷 준다. 교복 복지다. 인조잔디 문제도 그렇게 봐야 한다. 맘 놓고 뛸 권리, 안 다칠 권리가 학생에게 있다. 공짜 밥, 공짜 교복보다 훨씬 소중한 기본 복지다. 표(票)는 덜 될지 모른다. 지나간 과오(過誤)가 얘기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미적대면 안 된다. 보름여를 끌다 보니 이런 말까지 나오는 거 아닌가. ‘교육청 담당자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어쨌든 모두가 알았다. 충격흡수성 부족, 불량 인조잔디…. 학교도 알았고 교육청도 알았다. ‘몰랐다’는 핑곗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부터 인조잔디 사고는 학교와 교육청의 책임으로 갈 것이다. 관련 재판 때마다 교육감에겐 이런 판결문이 보고될 것이다. “충격흡수성이 부족한 인조잔디 운동장 상태를 알면서도 이를 보수하지 않은 책임이 교육청에 있다. 그러므로 사고를 당한 학생 피해의 ○○%를 경기도교육청이 배상하라.” 主筆

[김종구 칼럼] 적폐의 적폐-항공산업의 9·28 추락

2017년 7월14일이 공식 수사의 시작이었다. 경남 사천 본사 등에 압수수색이 들어갔다. 적폐 청산 수사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그때 처음 KAI(Korea Aerospace Industriesㆍ한국항공우주산업)를 안 사람도 많다. 검찰ㆍ정치권에 흐르는 소문이 흉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자금을 댔다더라’ ‘엄청난 돈이 정치권에 갔다더라’ ‘항공기 거래로 천문학적 비자금이 조성됐다더라’…. KAI는 이 ‘설’만으로도 부패 집단이 됐다. 검찰 수사는 셌다. 압수수색이 정신없이 이어졌다. 그사이 ‘설’이 ‘진실’로 굳어갔다. 원가조작을 통한 개발비 편취설이 기정사실이 됐고, 천문학적 분식회계가 이뤄졌다는 검찰 발표까지 나왔다. 분식회계가 뭔가. 법원에서 확정되면 해당 기업은 상장을 폐지해야 할 중죄(重罪)다. 여기에 경찰도 가세했다. KAI 본사를 또 한 번 수색했다. 검찰 건과는 다른 비리가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9월21일, 결국 KAI 부사장이 자살한다. 그때가 어떤 때였는지 업계는 다 안다. 전쟁 중이었다. 항공 산업의 미래가 걸린 전쟁이었다. 타깃은 미국이 던진 초대형 입찰이었다. 공군 훈련기를 30년 만에 교체하는 사업이다. 교체 비행기만 350대다. 20조 원 짜리다. 이 세기의 입찰전을 펴던 게 바로 KAI다.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한 조(組)였다. 그해 7~10월이면 입찰 서류가 접수돼 채점이 매겨지던 때다. 하필 그때 적폐 잡도리가 시작됐다. 발주국에서 어찌 봤을까. 그 결과가 나왔다. 지난 9월28일 새벽이다. ‘美 훈련기 교체 사업자, 보잉사로 선정’. 업계 충격이 크다. 록히드마틴은 미국 방산업계에 절대 강자다. KAI의 T-50 훈련기는 수출까지 한 검증품이다. 보잉은 군 훈련기를 만든 적도 없다. 여기에 믿는 구석이 또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원이다. 트럼프를 다섯 번 만났다. 마지막 만남은 결정 사흘 전이었다.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들 이길 거라고 했다. 그런데 졌다. 실망이 여간 아니다. 사업비 수조원은 차라리 일부다. 협업을 통해 얻어내려던 항공기술이 컸다. 이 기회가 사라졌다. 향후 세계 훈련기 교체 시장만 100조 원에 육박한다. 이 동력이 사라졌다. 파급 효과를 기대했던 국내 관련 업체만 수백 개다. 이 일거리가 사라졌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이라크에 3조 원 어치나 팔던 T-50이다. 이 수출길이 사라질 판이다. 미국에서 퇴짜 맞은 비행기다. 어떤 나라가 돈 주고 사가겠나. 조용하다. 이 지경이 됐어도 나라가 조용하다. KAI 사장은 입장문 한 장 던지고 안 보인다. ‘저가 입찰’ 핑계만 줄줄이 적어놨다. 정부도 안 보인다. 어떤 부처 하나 나서 설명하지 않는다. 지난해 6월에만 해도 이렇게 공치사하던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 전투기를 더 살 테니 KAI를 선택해달라’고 요청했다.” 업계만 답답하다. 서운함을 섞어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지원하는 척만 한 거 같다.’ 여기서 9년 전 어느 대통령 얘기를 해보자. UAE가 발주한 47조 원짜리 원전 입찰이 있었다. 결정을 앞두고 대통령이 현지로 날아갔다. 그리고 9시 뉴스에 직접 출연했다. ‘우리가 원전 공사를 따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눈살을 찌푸린 이들이 많다. ‘대통령이 유난 떤다’고 봤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그날 밤 한국은 47조 원짜리 수주에 성공했다. 그리고 9년 뒤 9월28일 새벽, 한국은 18조 원짜리 수주에 실패했다. 감옥 간 사람과 견준다고 언짢아할 것 없다. 문 정부 출범 이후 ‘KAI 1년’은 비교되어 마땅하다. 하필 수주 전쟁 한창일 때 기업을 털었다. 정경 유착 회사, 분식회계 회사, 부사장 자살 회사로 세계 언론 앞에 망신을 줬다-그나마 핵심 혐의 대부분은 1심 무죄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사장은 경쟁사 응찰가를 어림잡지도 못했다. 했다는 정부 지원도 실체가 없다. 이러니 ‘유난 떨던 前 대통령’까지 추억하게 되는 것이다. 청년 실업 해소? 이 순간에도 항공학 배우고, 기계학 배우는 청년들이 많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공부한다. 날개 만들고, 엔진 만드는 청년들도 많다. 판교에서 일하고, 용인에서 일한다. 이들에게 9월28일은 절망일로 기록됐을 것이다. 20년치 먹거리를 놓친 날로 기록됐을 것이다. 이들에게 뭐라고 할 건가. 할 말이 있나. 혹 다음 기회를 기다려보자고 할 건가. 다음 미국 훈련기 교체는 30년 뒤에나 올 텐데…. 主筆

[김종구 칼럼] ‘대통령-이재용 회동’의 이상한 법칙

판에 박듯 닮았다. 7월 초,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방문 일정이 공개됐다. 삼성 현지 공장 준공식 참석이 있었다. 언론이 이재용 부회장을 주목했다. ‘문 대통령-이 부회장 회동 임박’이라며 대서특필했다. 한 켠에서 싸늘한 반응이 나왔다. ‘친여’라 할 노동ㆍ시민사회의 시각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청와대가 초대하지 않았다” “(통상의) 범위와 형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대통령 출국을 이틀 앞둔 6일의 일이다. 회동은 예정대로 이뤄졌다. 노이다 공장에서 9일 만났다. 분위기가 좋았고 일자리 얘기도 오갔다. 그런데 다음 날-더 정확히는 열서너 시간 후- 이런 속보가 떴다. ‘檢,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집무실 압수수색’. 혐의는 노조와해 기도다. 이미 해오던 수사였다. 책임자 상무는 이미 구속돼 있었다. 그런데 하필 압수수색 시점이 ‘문 대통령-이 부회장 회동’ 바로 다음 날이다. 정경유착 논란이 쑥 들어갔다. 노동계ㆍ시민사회가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또 이런다. 9월 16일 청와대가 방북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 중에 52명의 특별 수행단이 있다. 최태원, 구광모, 현정은 등 재계 인사들이 포함됐다. 삼성 이 부회장도 명단에 들어갔다. 친여 성향 쪽에서 또 비난이 나왔다.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대통령과 피고인이) 밀착되어서는 엄정한 사법적 판단이 안 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청와대가 또 해명했다. 이번에는 임종석 실장이 직접 나섰다. “재판은 재판, 일은 일이다.” 하루 뒤, 눈에 익은 기사가 떴다. ‘檢, 삼성 에버랜드 전격 압수수색.’ ‘노조와해 기도’라는 혐의가 7월과 같다. 9월 10일에 접수된 사건이다. 고소인은 삼성 협력사 노조, 피고소인은 삼성 계열사였다. 그중에 에버랜드를 검찰이 치고 들어간 것이다. 역시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동행 방북’을 하루 앞두고다. “재판은 재판, 일은 일”이라던 임 실장의 해명이 마치 예언처럼 들어맞았다. 웅성거리던 ‘친문’여론은 다시 한 번 조용해졌다. 우연일까. 이쯤 되면 법칙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이 부회장이 대통령 만나면 삼성엔 압수수색 들어간다!’ 압수수색은 수사 중 강력한 단계다. 본격 수사로 향하는 상징적 행위다. 제3자에 비치는 모습도 그렇다. 상대가 세계적 기업이라면 더하다. 삼성 압수수색 장면을 보는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했다. ‘검찰이 삼성을 계속 밀어붙이는구나’. 이런 해석도 있었다. ‘삼성을 바꾸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변함이 없구나’. 여론 흐름을 잘 알고 있을 검찰이다. 그런 검찰이 ‘대통령 회동’ 얘기만 나오면 치고 들어갔다. 이걸 우연이라고 봐야 하나. ‘공안감(公安感)’이라는 말이 있다. 검찰 출입기자 시절 들었다. 대충 풀면 이렇다. ‘정치가 가려는 방향을 읽는 감각’. 특히 대형 사건을 처리할 때 얘기됐다. 그 공안감을 이번 일에 대입해보자. -삼성의 경제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일자리ㆍ경협 등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통령이 삼성 부회장을 만났다. 그런데 그때마다 검찰이 삼성을 치고 들어갔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혹시 이러지 않을까. ‘공안감이라곤 없는 검사다’. 그런데 이 공안감을 한 번 더 뒤집어 보자.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는 건 업무다. 요즘 같은 경제위기 땐 더 절실하다. 그런데 걸리는 게 있다. 노동계ㆍ시민 사회세력의 시선이다. 정경 유착이라며 삐딱하게 본다. ‘재판은 재판, 일은 일’이라고 해보지만 달래기 쉽지 않다. 이때 검찰의 압수수색이 등장했다. 삼성에 대한 정부의 초심이 변함없음을 한 방에 증명했다. 이쯤 되면 평가가 달라지지 않겠나. “공안감이 뛰어난 검사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아주 오랫동안 알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쪽이 옳은지는 말할 수 있다. 차라리 ‘공안감 없는 검찰’이었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의 기업인 회동이 당당해진다. 검찰의 압수수색도 당당해진다. ‘공안감 뛰어난 검찰’이었다면 큰일이다. 대통령의 기업인 회동이 치사해진다. 검찰의 압수수색도 유치해진다. 공안감이 뭔가. 권력에 맞추는 정치 행위다. 문재인 정부는 그걸 적폐라 했다. 그런 정부가 이런 의혹을 사면 되겠나. 반복되는 ‘이재용 법칙’을 보면서 안 좋은 얘기들이 많아지고 있다. ‘짠거 같다’ 主筆

[김종구 칼럼] 공공기관 더 빼가기? 이럴 거라 했잖나

20일 전 이 지면(紙面)에 이렇게 썼다. ‘송영길 후보는 호남이 돕는다. 이해찬 후보는 충청권이 돕는다. 그러나 경기도는 김진표를 돕지 않는다. 제목-‘당당한 지역주의, 경기 출신 김진표라고 말함’-부터 공정성을 잃은 글이다. 다분히 편향적 논조(論調)로 꾸린 선동이다.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적어도 충청일보와 전남일보는 나를 욕하지 못할 거라 자신했다. 며칠 뒤 민주당 대표선거가 끝났다. 이해찬 1등, 송영길 2등, 김진표 3등. 충청ㆍ호남ㆍ경기 순서다. 우려스럽던 예상이 실망스럽게 맞았다. 허기야, 특별하게 언급할만한 일도 못된다. 민주당 내 지역 DNA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이보다 가슴 졸인 예상은 따로 있다. ‘노무현ㆍ문재인 정부와 세종시를 묶어주는 국토균형발전의 끈도 있다’는 구절이다. 이해찬 당 대표의 미래에 대한 예상이었다. 공공 기관 추가 이전에 화두를 던졌던 그다. 국회 분원도 만들자고 했었다. 2차 국부(國富) 이동을 선창할 걱정이 컸다. 예상은 생각보다 빨리 맞아떨어졌다. 어제 처음으로 당대표 연설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수도권의 공공기관 122개를 옮기자고 했다. 지역 혁신도시의 성장 기반을 조성하자고 했다. 국회의사당의 분원을 세종시에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원래 돌려서 말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답게 첫 번째 연설부터 터뜨린 것이다. 언론은 이를 ‘노무현 정부 국토균형발전론의 부활’이라고 받았다. 틀렸으면 좋았을 예상이 맞은 것이다. 정답 없는 논제(論題)다. 노무현 정부 5년간 토론했다. 나온 답은 없었다. 이제 와서 재삼 토론할 일도 아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할 통치행위다. 이해찬 대표는 세종시민과 약속했고, 그 약속대로 한 것이다. 힘 있는 여당 대표가 됐고, 정부에 주문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이고, 역시 국토균형발전론을 가슴에 둔 통치권자다. 그러면 그냥 가는 것이다. 눈치 빠른 지방에선 벌써부터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한 모양이다. 경기도? 남 탓할 것 없다. 경기도 정치가 자초한 일이다. 경기도 민주당 국회의원, 경기도 민주당 시장ㆍ군수, 경기도 민주당 당원들이 자초한 일이다. 전당대회에 조금만 목소리를 높였어도…. 전화 투표에서 조금만 더 버텼어도…. 8월 25일 투표장에서 조금만 더 경기도를 말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덜 소리 지르고, 덜 요구하고, 덜 투쟁한 결과다. 김진표 얘기가 아니다. 경기도의 존재감을 보여줬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필 올해가 ‘경기 정년 천 년’이다. 다들 대단한 역사라도 되는 양 떠든다. 따지고 보면 한 번도 주인 되지 못한 굴욕의 역사다. 송악군(松岳郡ㆍ왕건)에 자리를 내준 고려 경기도였고, 화령부(和寧府ㆍ이성계)에 자리를 내준 조선 경기도였다. 황해도(이승만), 경상도(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ㆍ노무현ㆍ이명박ㆍ박근혜ㆍ문재인), 전라도(김대중)에 자리를 내준 대한민국 경기도였다. 1천 년 내내 외지 세력에 짓눌려 지내온 정치 변방의 역사다. 경기도 정치가 져야 할 중죄(重罪)다. 권력에 빌붙기 바빴던 중세 호족, 강자에 맞추기 바빴던 근·현대 정치가 다 죄인이다. 불행히도 지금도 그 역사는 진행 중이다. 경기도 정치는 여전히 권력에 줄 대느라 여념이 없다. 18개 공기관을 빼겠다는데도 반대 한마디 못한다. 동네 상가가 통째로 문 닫을 일인데도 이견 한 마디 없다. 기껏 한다는 말이 “큰 영향 없다”다. 1~2억 예산 챙긴 것도 자랑삼는 사람들이 공기관 18개 이전엔 “큰 영향이 없다”고 한다. 겨우 18개 기관? 국토균형발전론이 경기도엔 어떤 괴물인지 몰라서 이러나. 공기업, 사기업, 문화행사, 대학입지까지 모든 영역에 빨대를 꽂았던 십수 년 전 흡혈악몽을 정말 몰라서 이러나. 오늘 아침 부산, 한 부동산 사이트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여권 내 실세 중의 실세인 이해찬 대표가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공공기관 이전 추진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금융 쪽 공공기관은 다 문현 금융타운으로 이전, 해양 쪽은 영도로 이전, 영상 쪽은 센텀으로 이전하지요. 이거 대박이지요.” 오늘 아침 경기도, 딱 그만큼의 목소리가 공포로 들려왔다. “우리 동네는 괜찮은 거냐” “경기도 민주당 의원들은 뭐라고 말하더냐.” 主筆

[김종구 칼럼] 당당한 지역주의, ‘경기 출신 김진표’라고 말함

송영길 후보는 전남 고흥 출신이다. 당대표 선거를 치르며 이런 말을 했다. “호남 출신 당 대표가 영남 출신 대통령과 균형을 맞추면 지역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해찬 후보는 충남 청양 출신이다. 20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발의한 법안도 ‘충청 살리기’였다.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다. 김진표 후보는 경기 수원 출신이다. 고향 대신 이런 얘기를 했다. “아이들이 영월에서 살았다” “정세균 전 의장이 지지하고 있다”. 송영길ㆍ이해찬은 고향을 내세운다. 호남ㆍ충청이 도움될 거라고 봐서다. 김진표는 고향을 감춰 둔다. 경기 수원이 도움 안 된다고 보는 모양이다. 대의원(45%), 권리당원(40%)의 비중이 큰 선거다. 호남의 권리 당원이 전체 27%다. 경기ㆍ서울이 40%인데 여기서 3분의 1도 호남 출신이다. 충청권 권리당원은 호남 다음으로 많다. 여기에 노무현ㆍ문재인 정부와 세종시를 묶어주는 국토균형발전의 끈도 있다. 앞선 후보들의 셈법이 영 틀린 건 아니다. 뿌려지는 여론조사를 보자. 최근(14일 발표) 조사치가 이렇다. 이해찬 후보가 대전ㆍ세종ㆍ충청에서 37.4%로 1등이다. 송영길 후보는 전라ㆍ광주에서 39.4%로 1등이다. 이해찬ㆍ송영길 후보에게 주어진 고향의 선물이다. 그런데 김진표 후보의 1등 지역은 고향 경기도가 아니다. 대구ㆍ경북에서의 23.5%다. 김진표 잘못인지, 경기도 잘못인지 따질 필요 없다. 분명한 건 호남은 송 후보 찍고, 충청은 이 후보 찍는데, 경기는 김 후보 안 찍는다는 거다. 뭐 대단하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영원한 정치 변방 경기도 정치다. 중앙 권력의 들러리 경기도 정치다. 정체성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경기도 정치다. 지난 50년, 경기도 정치는 그렇게 영호남 권력에 기생하며 지냈다. 그 권력이 흘려준 부스러기를 먹고살았다. 그런 힘과 부스러기로 으스댔다. 영ㆍ호남 권력, 충청 세력엔 눈 한번 크게 뜨지 못하면서, 경기도민에게만 힘주고 거들먹거리며 아낙 군수 노릇을 했다. 그랬던 경기도 정치가 요 며칠 달라져 보인다. 경기 출신 김진표 후보의 입이 사뭇 거칠다. 충청권 맹주를 향한 공격에 거침이 없다. 호남 한복판에 가서 ‘호남표는 내 것’이라며 호언한다. 지역 정치인들도 함께 변했다. 수원시의장은 열 일을 제치고 전국을 돈다. 알 만한 지방 의원들이 ‘김진표’ 플래카드를 실어 나른다. 3선 수원시장은 일찌감치 ‘김진표 지지’로 커밍아웃을 했다. 충청 연설장, 호남 연설장이 경기도 구호와 경기도 기호로 넘실댔다. 때가 왔음을 알아가는 듯 하다. 대한민국 인구의 25%가 사는 경기도다. 대한민국 수출의 27.7%를 담당하는 경기도다. 진작부터 소리 질렀어야 했다. 50년 가까이 수도권 정비 계획법에 억눌렸다. 지방 살리려고 60개가 넘는 공기업을 빼앗겼다. 벌써부터 소리 질렀어도 됐다. 이제라도 알아가면 된다. 당당하게 경기도 정치를 말하면 된다. 국회 의장에 경기도 출신이 앉았다. 경기도의 힘이다. 여당 당대표에 경기도 출신이 앉으면 더 좋을 것이다. 7월 26일, 김진표 송영길 이해찬 세 후보가 확정됐다. 다음날, 전남일보는 이렇게 썼다. ‘세대교체 바람 탄 송영길…세대교체를 바라는 중앙위원들의 표심이 작용했다…급부상할 것이다’. 8월 13일, 충청일보는 이런 사설을 실었다. ‘충남 청양 출신 이해찬 의원이 나서 수원과 전남이 고향인 김진표ㆍ송영길 후보와 각축을 벌이고 있다…바른 미래당에도 충북 괴산 출신 김영환 전 장관이 도전장을 냈다…당선돼서 충청도 사랑을 보여주기 바란다.’ 경기도 합동연설회가 18일이다. 이틀 남겨놓은 오늘, 충청일보ㆍ전남일보가 담았던 딱 그만큼의 지역주의를 담아 이런 말을 남겨볼까 한다. “경기도 출신의 김진표가 출마했다. 경제 회복을 바라는 표심이 작용하고 있다. 당 대표가 돼서 경기도 사랑을 보여주기 바란다.” 主筆

[김종구 칼럼] 市長 최고위원 임명을 공약해 보는 것이…

많은 이들이 말했다. ‘주제넘는 소리다.’ 그런데도 계속 들렸다. ‘이재명 시장이 곧바로 대통령에 갈지, 도지사를 거칠지 고민 중이다.’ 2014년 초반 언저리 때 얘기다. 마침 이 시장이 국정원과 한판 붙고 있었다. 국정원 정치 사찰 의혹을 폭로했다. 야당 시장의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다. ‘이석기 RO 사건’을 돌파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도 있었다. 어쨌든 그는 옹골차게 치고 나갔다. 그즈음 기관 관계자는 그렇게 표현했다. 일개 기초단체장이 고른다? 도지사부터 할지, 아니면 대통령으로 바로 갈지? 우리 정치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제넘는 소리’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듣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3년, 이 시장은 대통령 경선장에 있었다. 프로 정치인들 사이에 3등을 했다. 그리고 또 1년여 뒤, 이번엔 경기도지사 집무실에 앉았다. 정치사에 없었던 일이다. ‘주제넘는 일’이 ‘주제 맞는 일’로 뒤바뀐 대단히 특별한 역사다. ‘주제넘는 짓이다’를 사전에서 찾아보자. ‘말이나 행동이 건방져 분수에 지나친 데가 있다’라 풀고 있다. 영어 표현도 몇 가지 있다. ‘You are out of line!’ ‘Who do you think you are?’. 직역하면 이렇다. ‘너는 금을 벗어났다’ ‘너의 현재 모습을 뭐라고 생각하나’. 결국,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넘었다는 소리다. 시장이 대통령과 도지사를 꿈꾸면 절대 안 된다는 경고다. 다분히 지방 권력을 향한 중앙 권력의 지배논리가 얼비친다. 이재명 시장은 그 경계를 넘었다. 순전히 개인의 능력이 만든 결과다.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바뀐 정치 지형은 없다. 시장들은 여전히 중앙 권력이 정해놓은 ‘주제’ 속에 갇혀 있다. 벗어나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때마침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다. 시장들에게 도전을 권해봤다. “민선 시장 23년이다. 중앙 정치에 참여할 때가 됐다. 누구든 최고위원 선거에 나섰으면 한다”고 썼다. 근데 다들 고개를 젓는다. 중앙권력 눈치 보기다. 눈치 안 본 시장이 있긴 하다. 논산시장이다. 용기 있게 출마했다. 그런데 암만해도 벅차다. 중앙 권력이 뽑은 대의원 1만135명은 어차피 중앙 권력 편이다. 45%(대의원)ㆍ40%(권리당원)의 비율도 중앙 권력에 맞춘 황금률이다. 여기에 내세울 대표성도 없다. 243개의 대표 지자체도, 243명의 대표 시장도 아니다. 떨어질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 예상이다. 눈치 안 보고 덤볐지만 이번에는 제도가 막아선다. 눈치 때문에 안 되고, 제도 때문에 안 되고…. 이게 현실이긴 한데…. 그렇더라도 바꾸긴 해야 할 거 같은데…. 궁색하지만 남은 길이 하나 있다. 중앙 권력의 배려다. 151명-민주당 소속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을 위한 자리를 챙겨주면 된다. 시장을 그 자리에 앉혀 지방 현실을 말하고 건의하게 해주면 된다. 때마침 당 대표가 갖고 있는 최고위원 자리도 있다. 임명직 최고위원 자리 2개다. 그 하나를 내어 주면 쉽게 될 일이다. 중요한 건 당 대표의 결심이다. 그 대표를 뽑는 선거가 한창이다. 공약으로 내놓으면 된다. “당대표가 되면 최고 위원 한 자리를 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주겠다”고 하면 된다. 전국의 151명이 얼마나 좋아하겠나. 나름 지역 내 장악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공약한 후보에게 표를 주자고 말해줄 수도 있다. 표 셈법으로 봐도 적잖이 도움될 일이다. 김진표ㆍ송영길ㆍ이해찬 후보가 공약하면 좋겠다. 한 명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이게 정치분권이다. 행정은 분권을 말하고 있다. 중앙 사무 518개를 지방으로 보내겠다고 한다. 재정도 분권을 말한다. 국비와 지방세 비율을 8 대 2에서 7 대 3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유독 정치만 분권의 ‘분’자도 안 꺼낸다. 여전히 쥐고 군림하려고 한다. 이제 누군가 나서서 정치 분권을 말해야 한다. ‘이제 지방에도 나눠주자’고 선창(先唱)해야 한다. 그 적기(適期)가 이번 당대표 선거고, 그 적임자(適任者)가 이번 당대표 후보들이다. ‘주제를 넘는 소리다’-최고위원을 꿈꾸던 시장들이 이제껏 듣던 말이다. ‘주제에 맞는 소리다’-최고위원을 꿈꾸는 시장들이 이제부터 들어도 될 말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문재인 성공? 김진표 경제당이 답이다

저마다 말한다.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뛰겠다.” 그런데 믿음이 안 간다. 다른 생각이 있는 듯 보인다. ‘사실은, 우리 계파를 위해 뛰겠다’ ‘사실은, 후년 총선에서 힘 좀 써보려 한다’ ‘사실은,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자리다. 그럴 수도 있다. 계파 수장, 총선 공천권, 대통령 야망이 다 품을 법한 욕심이다. 정치의 목표가 어차피 권력 잡는 거 아닌가. 단지 그 구호가 우습다는 거다. ‘문재인 성공’은 무슨…. 보수가 지방 선거에서 졌다. 져도 참담하게 졌다. 그 패인을 알 만한 유권자는 다 안다.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이다. 국정 농단, 측근 비리, 대기업 뇌물, 국정원 침탈, 부당 인사…여기에 필설로 다 못할 추문까지 있다. 권력이 가질 온갖 오명을 다 쓰고 있다. 그런 오명에 대한 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7년 3월10일, 탄핵일에 맞춰진 분노의 초침이 1초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방선거의 민주당 압승과 보수 궤멸이 그 증명이다. 문재인 성공의 조건도 그 속에 있다. 도덕성에서 이긴다. 영흥도에서 낚싯배가 뒤집혀 15명이 사망했다. 제천 스포츠 센터에서 불이나 29명이 사망했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는 탄핵되지 않았다. 304명이 사망한 ‘박근혜 세월호 사고’가 있어서다. 청와대도 엮여 든 드루킹 댓글 사건이 터졌다. 유권자가 꿈쩍도 안 했다. 국정원이 주도한 ‘이명박 댓글 사건’이 있어서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와의 비교, 이건 문재인 정부에게 슬픈 ‘축복’이다. 그런데 아닌 게 하나 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고용 실적이 낙제로 나왔다. 청년 실업률 9.9%, 전체 실업자 수 102만8천명이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를 다 포함해 최악이다. 취업자 숫자는 2017년 10, 11, 12월 3개월 연속 20만명대다. 2010년 3월 이후 최악이다. 역시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보다 나쁘다. 최악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달 10.5%로 여전히 추락하고 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와 비교하고 싶지 않을 유일한 분야가 이거다. 누가 말했다. “다 깽판 쳐도 남북 관계만 성공하면 된다.” 지금 청년들은 말한다. “다 깽판 쳐도 일자리만 만들어주면 된다.” 이게 민심이다. 문재인 정부의 유일한 실패 가능성도 여기에 존재한다. 문 대통령이 비상을 걸었다. 청와대 경제ㆍ일자리 수석을 경질했다. 경제팀을 향해 서슬 퍼런 경고를 던졌다. 재판 중인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일자리 부탁’을 했다. 정경유착 비난을 각오하며 손을 내밀었다. 대통령의 속이 타들어가는 중이다. 이쯤 되면 모두가 달라붙어야 한다. ‘문재인 성공’을 바라는 집단이라면 그래야 한다. 그런데 당(黨)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신임 대표 경선판이 딴 세상이다. 온통 정치, 계파, 대권 타령이다. 경제를 챙기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치 놀음에 빠져들고, 거친 말로 파국 부르고, 대권 행세로 레임덕 부를 인물만 득실거린다. 누가 봐도 ‘문재인 성공’이 아니라 ‘문재인 실패’ ‘문재인 무력화’로 이끌 인물들이다. 아닌가. 훤히 보이는데…. 대통령을 성공시킬 당 대표에는 조건이 있다. 김동연 경제팀에 칼을 댈 수 있어야 한다. 미ㆍ거시 경제학으로 무장한 당 대표다. 노사간 최저임금 투쟁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기업경영학으로 무장한 당 대표다. 미국 금리 인상의 파급률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국제 경제학으로 무장한 당 대표다. 민주당에 지금 필요한 건 이런 능력을 비교하고 토론하는 경선판이다. 그런데 없다. 해묵은 계파 논리, 지역과 엮인 대권 논리만 있다. 공식은 간단하다. ‘문재인 성공은 경제에 달렸다→그 경제를 위해서는 당의 힘이 필요하다→정치를 쏙 뺀 경제당으로 태어나야 한다→그래야 문재인 성공을 돕는 당이 된다.’ 많은 국회의원들도 동의한다. 그런데 말을 하지는 못한다. 상석에 자리 튼 좌장들이 무섭긴 한가 보다. ‘그래서, 김진표를 찍겠다는 거냐’는 반격이 두려운 거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걸 모른다. 지금 경제당 안 되면 2년 뒤 본인들부터 실직하게 될 거란 사실이다. 어떤 시장이 김진표를 지지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등골이 서늘하다는 대통령 말을 당이 못 알아 먹는다. 우리는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主筆

[김종구 칼럼] 촛불혁명의 완성-경제 대통령경제 민주당

“당신은 어떻게 권력을 하루아침에 잃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그럴 만했다. 트로츠키는 혁명 러시아의 2인자였다. 군사인민위원으로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외무인민위원으로 외교를 책임졌다. 스몰리니 사무실 복도는 그와 레닌만의 공간이었다. 둘 사이를 오간 수많은 쪽지가 곧 러시아 혁명이었다. 그랬던 그가 하루아침에 몰락했다. 1924년 1월27일 레닌 장례식을 끝으로 권력에서 쫓겨났다. 트로츠키가 답했다. “스탈린 역사는 날조된 거짓말이다.” 그의 자서전-나의 생애-은 앞선 질문에 대한 장문의 항변서다. 스탈린을 이론 없는 무식쟁이라 공격했다. 혁명의 역사를 날조한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다. 민족주의만을 부추긴 일국혁명론자라 비하했다. 마지막 망명지 멕시코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스탈린 자객에 목숨을 내주면서까지 그렇게 싸웠다. 이런 주장을 훗날 역사가 인정했다. 음모에 의한 몰락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찌꺼기가 있다. 혁명 직후 소련 경제는 몰락했다. 물가가 1918년 20.76배, 1920년 2천420배, 1921년 1만6천800배까지 뛰었다. 공산당이 신경제정책(NEP)을 꺼내 들었다. 이때 그의 입장이 빌미였다. ‘트로츠키가 농업을 경시했다’는 여론 선동의 제물이 됐다. 농민은 이미 이념을 따지기엔 배고픔이 컸다. 스탈린이 그런 민심에 트로츠키를 먹잇감으로 던진 것이다. 결국 대중의 허기가 끌어내린 권력이었다. 꼭 100년 뒤인 2017년. 우리에게도 혁명이 왔다. 100년 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민중의 힘이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렸듯, 촛불의 힘이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다. ‘사회주의’ 구호가 레닌을 권력에 앉혔듯, ‘나라다운 나라’ 구호가 문재인을 대통령에 앉혔다. 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경기도 시장 군수 31명 중 29명이 민주당이다. 대통령ㆍ국회ㆍ지방 권력이 민주당으로 정리됐다. 이런 적이 없었다. 100년 전 광풍과 빼닮았다. 바로 이런 때, 대통령이 말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정도의 두려움을 느낀다.” “그 지지에 답하지 못하면, 높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 남북 관계도 잘하는 문 정부다. 적폐 청산도 잘하는 문 정부다. 정치도 잘하는 문 정부다. 그래서 싹쓸이 표심으로 보상까지 받은 문 정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등골은 왜 서늘해졌을까. 무엇이 ‘금세 실망으로 바꿀 것’이라는 걸까. 아마도 경제를 말한 것일 게다. 촛불혁명이 요구할 ‘먹거리’라는 숙제를 말한 것일 게다. 촛불 혁명은 국정 농단을 향한 분노의 광기였다. 이제 그 광기가 냉정을 되찾을 때다. 제자리로 돌아가 먹거리를 찾을 시기다. 그런데 그곳에 먹거리가 없다. 실업률은 사상 최악이다. 제조업들은 죽겠다고 난리다. 유가 폭등에 짓눌린 경상수지는 악화일로다. 주 52시간 근무 규정은 막판까지 오락가락한다. 최저임금 1만원도 삐걱거리고 있다. 대통령 걱정은 이제 행동으로 옮겨졌다. 선거 압승을 뒤로하고 참모들을 ‘숙청’했다. 경제수석을 잘랐고, 일자리수석을 잘랐다. 경제 못 챙겼다는 문책이고, 일자리 못 만들었다는 문책이다. 정책실장에게도 ‘경고’가 간 듯하다. 경제부처 책임자들도 덩달아 파리목숨이 됐다. 청와대, 정부가 한순간에 긴장 상태로 빠져들었다. 잘한 거다. 혁명의 열기는 곧 싸늘해지고, 대신 ‘먹거리’를 요구하는 원성이 높아질 것임을 내다본 거다. 문제는 당(黨)인데…. 지방 선거 내내 당은 외쳤다.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민주당을 찍어 주십쇼.” 그랬던 문재인 정부가 지금 ‘등골이 서늘하다’며 경제참모들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도 그렇게 바꿔가야 한다. 정치 정당 대신 경제 정당으로 바꿔가야 한다. 마침 변화의 시기도 왔다. 당 조직을 바꿀 전당 대회가 두 달 앞이다. 대통령 뜻은 ‘경제’로 천명됐다. 돕는 방법은 나와 있다. 경제 정당이다. 그렇게 될런지가 문제다. “당신들은 어떻게 권력을 하루아침에 잃었는가”. 100년 전 러시아 혁명가가 받았던 이 질문. 2020년 4월 어느 날, 대한민국 민주당에 던져질 수도 있다. 主筆

[김종구 칼럼] 정 선배,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심재덕 시장이 낙선했습니다. 3선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낙선 시장들은 업무에서 손을 뗐습니다. 휴가도 갔고 출장도 갔습니다. 심 시장만 달랐습니다. 마무리를 하겠다며 직무실을 지켰습니다. 이미 비서실은 달라져 있었죠. 생기 잃은 직원들이 자리만 지켰습니다. 찾는 공무원들도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외부 손님도 거의 없었습니다. 복잡한 면담 신청도 더는 필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쑥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물었던 것 같습니다. “자전거로 하려던 전국 화장실 투어 계획은 못 하는 거죠.” 선거 전에 계획했던 행사 얘기였습니다. 대답이 이랬던 것 같습니다. “아니야. 그건 해야지.” 그다음부터는 생생합니다. 실장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자전거 화장실 투어를 우리가 해야겠는데, 예산 500만원을 세웠으면 좋겠다. 내 마지막 지시라고 생각하고 해달라.” 화장실 문화에 각별했던 심 시장다웠습니다. 실장이 대답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행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심 시장은 모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장실을 나서던 기자를 실장이 잡았습니다. 쪽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사정을 알잖냐. 지금 심 시장이 지시하는 예산을 어떻게 추진하겠나. 조용히 없던 일로 하자.” 그랬습니다. 심 시장의 ‘마지막 지시’는 믿었던 측근 실장에 의해 묻혔습니다. 벌써 16년 전 일이네요. 퇴임 시장과 퇴임 시장을 보내는 공무원의 모습이었습니다. 대단히 역한 기억입니다. 정찬민 선배, 오늘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입니다. 쓰레기에서 종이 하나를 빼냈습니다. 용인시장 선거공보물입니다. 바닥에 펴 놓고 앞쪽을 봤습니다. ‘4년간 해냈다’는 면입니다. 경전철 빚 8천억 갚았고, 중ㆍ고교 무상교복 실시했고, 세브란스 병원 유치했고, 인덕원선에 흥덕역 넣었고, 임야 훼손 아파트 건립 막았고…. 참 많네요. ‘앞으로 하겠다’는 쪽은 안 봤습니다. 이제는 볼일이 없을 듯합니다. 다음 주에는 버릴 겁니다. 이런 통계 알고 계시죠.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접수된 선거법 사건이 225건이랍니다. 이 중에 184건(257명)이 지금도 수사중이라고 하네요. 흑색선전, 금품 제공, 사전선거운동, 선거 폭력…참 많기도 합니다. 중한 것들도 있을 거고, 시답지 않은 것들도 있을 겁니다. 빨리 끝내면 좋은데 또 질질 끌겠죠. 하나하나가 지역엔 후유증입니다. 1, 2%의 당선 무효를 위해 서로 지지고 볶을 겁니다. 아름다운 퇴장? 철없는 기대라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놔 줘야 합니다. 지지자들부터 놔 줘야 합니다. 많은 후보들이 불복을 말합니다. 지지자들은 그 말에 붙들려 꼼짝도 못합니다. 관심 없는 데 있는 척해야 하고, 결과 뻔한데 기다리는 척해야 합니다. 정 선배는 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공무원들도 놔 줘야 합니다. 많은 시장들이 시정 마무리를 말합니다. 이때의 마무리는 후임자를 위한 비우기여야 합니다. 새로운 주군에 보내주는 배려여야 합니다. 정 선배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유독 많은 시장들이 떠납니다. 선거에 져서, 공천에 탈락해서, 연임 제한에 걸려서 떠납니다. 모두 아름답게 떠나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안 되면 몇이라도 아름답게 떠나면 좋겠습니다. 몇도 안 된다면 한 사람만이라도 아름답게 떠나면 좋겠습니다. 그때 그 한 사람이 정 선배였으면 좋겠습니다. 16년 전 지방자치의 모습-‘심 시장’ 모습이 슬펐고 ‘실장’ 모습이 역했던-과 달라질 때가 됐습니다. 정 선배의 퇴임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힘든 시간이 될 겁니다. 세상은 선배를 버릴 겁니다. 위로의 손길도 사라질 겁니다. 가까운 어느 날, 다시 혼자 돼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푸시킨이 이래서 그말을 했나 봅니다. 노여워하지 마세요. 슬퍼할 필요 없습니다. 텅 비었던 용인시 금고에 돈이 채워졌다면서요. 그만하면 큰 역사를 남긴 겁니다. 먹는 끼니보다 거르는 끼니가 많았던 가난한 집 아들이었는데, 이만하면 잘한 겁니다. 이제, 그 4년보다 더 소중한 열흘이 선배에게 남아 있습니다. 主筆

[김종구 칼럼] 양승태 前 대법원장의 참담하지만 유일한 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얘기를 썼었다. 2017년 6월27일자로 남아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수원고법 功’. 제목이 그랬고 내용은 이랬다. -대법원이 전격적으로 입장을 냈다. “영통 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결단이 있었다. 수원고법 설치 확정의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은 알려지지 않았다-. 2013년 3월21일의 얘기였다. 수원고법 역사에 얽힌 양 대법원장 역할을 그렇게 썼다. 1년이 흘렀다. 양 전 대법원장 얘기를 또 쓴다. 이번에는 ‘검찰 수사를 해야 한다’다. 이미 두 번이나 사설로도 썼다. 그때나 지금이나 볼 것 없는 졸고다. 하물며 1년 전 글이다.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있겠나. 더구나 이번 글과 비교하는 이는 없다. 그런데도 내가 안 좋다. 기억 속 1년 전 글이 자꾸 지금의 것과 뒤섞인다. 양 전 대법원장을 너무 추켜 세웠던 건가. 잘못된 정보로 써내려갔던 글인가. 내가 본 것은 그의 포장된 겉모습이었나. 지금, 양 전 대법원장은 아주 질 나쁜 법관이 돼 있다. 정권과 거래를 위해 판결을 이용한 대법원장이다. 생각이 다른 판사들을 옥죄고 탄압한 대법원장이다. 판사의 재산 관계까지 뒷조사를 하던 대법원장이다. 다른 데도 아니고 법원 내부에서 나온 비난이다. 1년여 전까지 그를 수장으로 모시던 판사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역대 이런 대법원장은 없었다. 퇴임 1년 만에 자신의 조직으로부터 이렇게 참담하게 짓이겨진 대법원장은 없었다. 결국, 그게 큰 죄로 이어졌다. 신뢰 붕괴다. 재판 거래의 증거들이 지목됐다. 과거사 국가배상 제한 사건, KTX 승무원 정리해고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통합진보당 사건 등 20여 건이다. 당사자들이 대법원으로 몰려갔다. ‘양승태 사법부’를 통째로 부정했다. 지켜보던 국민도 싸늘해졌다. 재판을 믿지 않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10명 중 6~7명이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다 ‘양승태 의혹’이 뿌려 놓은 죄다. 법원도 고민하는 듯하다. 처음에는 강경 목소리 위주였다.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대개 소장파 판사들이 주장했다. 그러다가 간부급 판사들의 신중론이 나왔다. 검찰 수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다. 양쪽 모두 맞는 말이다. 수사를 통해서라도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그렇다고 판결이 수사받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잔인한 언론은 이미 선정적 제목을 만들어냈다. ‘양승태, 전직 대법원장 최초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나’. 그런데 그 섭섭한 언론 제목에 답이 있다. 양승태 의혹은 고민의 시기를 넘었다. 사법부는 분열돼 갈등이 크다. 앞선 6년의 재판은 재판이 아닌 걸로 됐다. 국민 다수는 사법부 신뢰를 철회했다. 이걸 어떻게 수사 없이 덮겠다는 것인가. ‘재판 거래가 있었지만 덮고 가자’고 할 것인가. 아니면 ‘재판 거래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할 것인가. 법원이 하는 그런 발표를 어떤 국민이 믿겠나. 수사로 발표하는 것 외 답이 없다. 엊그제, 양 대법원장이 자택 앞에 섰다. 기자들에게 말했다.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 “하물며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는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특정 성향 법관에게 인사 등 어떤 불이익도 준 적 없다”…. 그러면서 “(사실이 아님은)말로만 표현하는 것이 부족할 정도다”라고도 했다. 모든 의혹에 대한 철저한 부인이다. 그런데 믿어주는 이가 없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그에게도 수사밖에 없다. 그 시절, 수원고법은 도민의 숙원이었다. 삭발도 했고, 서명도 했다. 하지만, 씨도 안 먹혔다. 다들 대법원이 막고 있어서라고 했다. 그 체증이 뚫린 게 2013년 3월21일 오후다. ‘기재부 땅을 고법 부지로 검토한 게 맞다’는 대법원 발표가 전환점이었다. 공교롭게 그 통화를 하던 게 나였다. 내 기억 속 양승태 대법원장은 그랬다. 과감하고, 솔직하고, 통이 큰 법관이었다. 그 ‘양 대법원장’이 5년 뒤, 전혀 다른 ‘양 전 대법원장’으로 나타나 있다. 잘 안다. 전직 대법원장의 검찰 소환은 쉽지 않다. 수사를 촉구하는 이 주장도 흔적 없이 묻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말해야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반드시 검찰에 나와야 하고, 검찰 입을 통해 재판 거래의 진위가 발표돼야 한다’. 참담하지만 유일한 해결책이 이거다. 의혹을 주장하는 판사들을 위한 것이고, 사법부 신뢰 추락을 우려하는 판사들을 위한 것이다. 갈데없이 망가져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위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主筆

[김종구 칼럼] 文 대통령이 해야 할 지시-“경제팀은 경제나 챙겨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법이 그랬다. 투박하고 거칠었다. 이 말도 그런 중의 하나였다. “남북 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나머지는 깽판 쳐도 괜찮다.” 2002년 연설에서 했다. 이제는 15년이나 흐른 구문(舊文)이다. 꺼내기도 진부하다. 그런데도 꺼내 볼 일이 생겼다. 남북 정상이 친해졌다. 전화만 하면 만나는 사이가 됐다. 북미 회담으로도 이어진다. 임시로 그은 노란 선을 넘던 게 격세지감이다. 그때보다 훨씬 빨리 ‘통일’이 가고 있다. 도대체 ‘깽판 쳐도 좋은 나머지’는 뭐였을까. 아마도 ‘경제’는 분명히 그 ‘나머지’에 포함됐을 듯하다. ‘통일’과 맞바꿔 말할 가치라면 ‘경제’ 쯤은 돼야 어울린다. 그렇게 풀어서 지금에 대입하면 이렇다. ‘남북 대화를 잘하고 있다. 그렇다고 나머지를 깽판 치면 안 된다. 경제는 잘 챙겨가고 있나.’ 언제부턴가 신문 1면에서 사라진 경제다. 공교롭게 1차 남북 정상회담 즈음부터다. 어렵사리 경제면을 뒤져서 지표를 봤는데…, 아주 안 좋다. 일자리 창출이 뭔가. 문 대통령의 취임 일성이다.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판도 설치했다. 그랬던 일자리가 지금 위기다. 지난 3월 실업률은 4%로 0.4%p 높아졌다. 17년 만에 최고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잘 나간다. 독일은 1990년 10월 이후 최저다. 프랑스는 2009년 이후 최저다. 미국도 17년 만에 최저다. 한국만 17년 만에 최고다. 실업률이 악화된 건 한국과 스웨덴뿐이다. 세계와 완전히 거꾸로 가는 한국의 일자리 지표다. 가계 부채와의 전쟁. 이것도 문 대통령의 핵심 약속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의 숨통을 조였다. 이것도 위기다. 1분기 가계 빚이 1천468조원이다. 전분기 가계 빚보다 17조2천억원 늘었다. 사상 최악이다. 여기엔 실정(失政)의 책임까지 엿보인다. 주택담보대출만 냅다 누르다 보니, 고금리 가계대출이 증가했다. ‘풍선 효과’ 부작용이다. 고금리 가계 대출은 길바닥에 나 앉기 딱 좋은 빚이다. 이게 400조원을 넘었다는 얘기다. 큰일이다. 효자라던 수출까지 이상해지고 있다. 18개월 동안 증가세였다. 그러던 게 4월 들어 처음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4월 대비 -1.5%다. 산업통산자원부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위로한다. 하지만, 전문가들 지적은 다르다. 지속적 마이너스의 경고라고 말한다. 수출의 반대 축, 내수는 더 심각하다. 가구ㆍ침대ㆍ통신 등 내수 1위 업종의 매출까지 감소하고 있다. 내수 침체 지표의 마지노 업종들이다. 수출과 내수의 동시 추락, 경제엔 최악의 지표다. 때마침 주목되는 발언이 나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 1만원 연기’를 말했다. 2020년 목표를 ‘신축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비슷한 말이 또 있다. 여당의 홍영표 원내대표가 ‘속도 조절하자’고 했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은 문 대통령 공약이다. 겁 없이 거기에 제동을 건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였다면 큰 일 날 소리다. 당장에 문책이 날아들 수 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두 사람이다. 그런데도 굳이 했다. 왜 그랬겠나. 현장의 소리를 들은 거다. ‘다 죽겠다’는 제조업계 아우성을 들은 거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에 제조업계가 질식하고 있다. 원가 인상, 일손 부족에 대책을 못 내고 있다. 이 고통을 경제부총리, 여당 원내대표가 말한 것이다. 그랬으면 토론하고 대책을 고민하는 게 순서다. 그런데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 온통 통일 토론만 있고, 통일 대책만 있다. 김 부총리에 돌아온 건 비난뿐이다. “‘감’만으로 대통령 역점 사업에 발목을 잡는다.” 15년 전 구문. 설마하니 ‘경제는 깽판 치자’고 한 소리였겠나. ‘통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다. 남북 대화는 아주 잘 가고 있다. 그런데 경제가 문제다. 열화와 같은 통일의 광풍 뒤로 밀려났다. 거기서 사정없이 뒤뚱거리고 있다. 지표는 빨갛고, 경고가 줄을 잇는다. 이대로 두면 안 된다. 대통령이 한마디 해야 한다. ‘통일’에 기웃대는 주변 경제팀에 경고해야 한다. 15년 전처럼 투박해도 괜찮다. “이러다가 경제 깽판 칠 겁니까. 통일은 대통령이 챙길 테니 당신들은 경제나 챙기세요.” 主筆

[김종구 칼럼] ‘최태민 의혹’ 침묵, 그리고 징역 24년

‘의혹 제기 자체를 막아라’. 선거 때는 이 작전으로 보였다. 어느 기자-지금은 정치부장이 된-가 경험을 말했다. 면전에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최태민 의혹이 사실이냐”. 침묵이 흘렀다고 한다. 그 몇 분이 공포스러웠다고 한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고 한다. 더 이상 묻지도 못했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에게 ‘최태민 의혹’은 그랬다. 대통령 선거 내내 금기어였다. 기자가 물으면 침묵하거나, 째려보거나, 역정냈다. ‘권력으로 의혹을 짓눌러라’. 당선 후에는 이 작전으로 보였다. 어떤 ‘목사’가 아프리카 TV에 등장했다. ‘최태민과 박 대통령’을 거론했다.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인터뷰하던 ‘목사’를 체포해 나갔다. 그 사이 금기어는 ‘최태민’을 넘어섰다. 최태민의 딸, 사위까지도 전부 성역이 됐다. 사위를 건드렸던 경찰이 자살했다. 그 사위를 보도한 일본 기자는 법정에 끌려갔다. ‘최태민 의혹’은 그렇게 무섭게 틀어 막혔다. 영원히 끝나는 듯 보였는데, 아니었다. 의혹은 잠시 숨죽여 있었을 뿐이다. 권력이 황혼에 걸치자 봇물로 터져 나왔다. 국민들이 경악했다. 이미 의혹이 아니었다. 거악을 토해내는 괴물이 돼 있었다. ‘최태민’의 딸이 나라를 농단했다. 연설문 주무르고, 대기업 겁박하고, 뇌물 받아내고, 인사권 휘둘렀다. 대통령은 시키는 대로 했다. 고쳐주면 읽었고, 시키면 협박했고, 명단 주면 잘랐다. 외신은 이걸 ‘샤머니즘’이라 썼다. 아주 가까웠던 날의 선거 얘기다. 그리고 그 선거에 얽혀 있던 의혹 얘기다. 이제 또 선거다. 한 달도 안 남았다. 뜨거울 때가 됐다. 그런데 밍밍하다. 한쪽으로 너무 기울었다. 경기도지사 선거부터 그렇다. 이재명 후보가 54.1%인데 남경필 후보는 15.9%다. 정당 지지율 차이는 더 벌어진다. 민주당이 61.8%, 한국당이 11.7%, 바른미래당 5.7%, 정의당 4.2%다(경인일보 14일 발표). 시장 군수 선거라고 다를 게 없다. 경기일보의 조사가 한 달 넘게 계속됐다. 예외 없다. 전부 민주당이 1등이다. 이쯤 되자 등장한 유혹이 있다. 판을 뒤집을 폭로 한방이다. 다들 식상하다고 욕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여전히 매력 있는 술수다. 먹혀들었던 과거의 예도 꽤 된다. 아예 공언을 해 놓은 후보도 있다. ‘폭로전으로 가겠다’. 여기에 대고 무슨 ‘정책 선거’를 말하나. 선거란 것도 어차피 그렇다. 고상하게 포장된 투박한 짓이다.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표 많이 받는 사람을 뽑는 거다. 폭로도 그렇게 봐 넘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폭로 상대방의 대응이다. 대개 1등을 달린다. 당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기억해 둬야 한다.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무시하는 후보, 반격하는 후보, 협박하는 후보…. 이걸 다 섞어가는 후보…. 물론 각자가 고민해서 낸 전략일 게다. 말로 못할 사연도 있을 거다. ‘좋은 대응’의 훈수를 말하기가 그래서 어렵다. 다만, ‘나쁜 대응’ 한 가지만은 권해두고 갈까 한다. 침묵? 이게 최악의 대응이다. 공격은 다양하다. 해도 될 공격이 있고, 해선 안 될 공격이 있다. 미지근한 공격도 있고, 과하다 싶은 공격도 있다. 하지만, 공격받는 후보의 길은 하나다. 성실하게 설명해서 완벽하게 해명해야 한다. 공격이 거짓이면, 자료를 내놓고 거짓을 증명해야 한다. 공격이 진실이면, 내막을 털어놓고 결과에 사과해야 한다. 침묵하며 덮으려 들면 안 된다. 그랬던 게 ‘최태민 의혹’ 이다. 그 대가가 나와있다. ‘탄핵, 징역 24년ㆍ벌금 180억’. 主筆

[김종구 칼럼] 竊盜 취재를 위한 辯, 그러나 이제 달라져야

정보가 많은 기자였다. 동료들도 다 인정했다. 어떻게 찾아내는 것일까. 그만의 기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말하지 않았다. 그랬던 ‘강 부장’에 위기가 왔다. 2002년 언저리였을 게다. 정몽준 신당이 관심사였다. 하느냐 마느냐, 하면 누가 참여하느냐. 역시 ‘강 부장’은 정답을 들고 왔다. 정몽준 신당 지구당 조직책 명단이었다. 이름 수십개가 들어있는 CD다. 다음날 신문에 표까지 나갔다. ‘단독’ 정보로 작성한 ‘대단한’ 기사였다. 다음날, 정몽준 캠프 쪽에서 반응을 냈다. ‘확정되지 않은 명단이다’였다. 특별할 건 없었다. 정치 기사에 붙는 해명은 늘 그랬다. 사달은 다른 곳에서 났다. ‘(강 부장이) CD를 훔쳤다’라는 말이 번졌다. 낙종 한 경쟁지 기자들일수록 열심히 퍼뜨렸다. 자칫 문제가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은 조용히 마무리됐다. 피해 당사자인 정몽준 캠프가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강 부장’은 이런 전화를 받았다. “다 썼으면 이제 돌려줘.” 90년대 중반. ‘김 기자’의 정보력은 하찮았다. 빡빡하기로 이름난 검찰이었다. 그저 땀 흘리고 다니는 게 다였다. 허구한 날 버려진 서류 뭉치 뒤지는 게 일이었다. 그런 ‘김 기자’가 안쓰러워서였을까. 특수부 김태희 검사가 ‘선물’을 줬다. 검사실 탁자 위에 수첩이 있었다. 수첩 사이로 종이가 보였다. ‘수사 보고’란 제목이 삐죽거렸다. 법조 비리를 수사 중인 방이었다. 사법처리자 명단이 틀림없었다. 기자들이 갈망하던 명단이었다. 그때 갑자기 김 검사가 방을 나갔다. “화장실이나 다녀 와야겠다.” 혼자 남은 ‘김 기자’의 일은 뻔했다. 서류 훔쳐 보기였다. 수첩을 열고 종이를 폈다. 10여 명의 사법처리자 명단이 있었다. 내로라하는 법조계 인사들이었다. 외울 순 없었고, 서둘러 적었다. 재빨리 원래대로 덮었다. 넉넉한 시간 뒤 김 검사가 들어왔다. 뿌듯해진 ‘김 기자’는 일어섰다. 설레는 맘으로 문을 나섰다. 뒤를 따라오던 김 검사가 작게 말했다. “잘 적었어?” ‘강 부장’의 CD 절도, ‘김 기자’의 수사보고서 유출. 그 시절 취재는 그랬다. 퇴근한 사무실에도 들어갔다. 녹음기를 숨겨 두기도 했다. 파쇄기에 바둑알을 넣기도 했다. 수사관을 사칭해 참고인을 빼돌리기도 했다. 들통나는 일도 숱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갔다. 기관은 기자단에 항의하는 선에서 끝냈다. 기자단은 해당 기자를 출입정지하면 됐다. 시간이 지나면 그 기자만 영웅이 됐다. 후배 기자들에게 잘난 척할 더 없는 무용담이 됐다. 그러던 게 달라졌다. 그래선 안 되는 세상이 됐다. 그런 게 용서받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이제는 절도죄가 된다. 무단침입죄, 손괴죄, 신분 사칭죄가 된다. tv조선이 지금 그렇다. ‘드루킹 댓글 사건’을 끌고가는 방송이다. 정부 여당과 각을 세우는 전쟁 중이다. 보도국 상황이 어떨지 눈에 선하다. 앞서가는 기사를 계속 써야 한다. 그 압박이 극에 달해 있을 게다. 기자도 그런 긴장 속에 있었을 게다. 결국, 기자가 느릅나무출판사 사무실에 들어갔다. 허가가 없었다. 태플릿 PC, USB, 휴대전화를 들고 나왔다. 역시 허락받지 않았다. 취재였을 건 맞다. 드루킹 비리 캐기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심각해졌다. 기자는 절도 혐의로 입건됐다. 평생 따라다닐 ‘도둑 전과자’가 됐다. tv조선도 곤경에 처했다. ‘도둑 취재’의 본산으로 몰렸다. 허가 취소 청원에 ‘껀수’가 더해졌다. ‘드루킹 댓글 사건’의 본질도 흔들리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흔들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최순실 태블릿 PC 논란 때와 닮았다. ‘jtbc가 태블릿 PC를 조작됐으니 박근혜는 무죄’라고 했었다. 지금은 ‘절도 취재를 했으니 드루킹은 오보’라고 한다. 턱없는 소리다. 최순실 PC 논란은 법원에서 무시됐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4년이 선고됐다. 드루킹 의혹도 계속 밝혀야 한다. 드루킹 취재의 필봉이 꺾여선 안 된다. 다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절도 취재’가 남긴 섬뜩한 결과는 심각히 받아야 한다. 시대가 변했다. 탈ㆍ불법 취재가 설 곳을 잃었다. 그런 기자를 범죄자라 말하고, 그런 언론을 범죄집단이라 말하기 시작했다. 취재 관행을 바꾸라는 사회적 명령이다. 그렇다면, 바꿔야 한다. 힘들겠지만 바꿔가야 한다. ‘tv조선 절도 기자’와 ‘나’, 시대를 달리하는 둘의 차이는 ‘들킨 기자’와 ‘안 들킨 기자’ 뿐이다. 김종구 주필·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

[김종구 칼럼] 警, 잘못 시작한 브리핑이 불신 자초했다

‘의례적’이라고 했다. 서울경찰청장이 한 말이다. ‘드루킹 사건’을 브리핑 하면서다. 김경수 의원의 답장을 그렇게 규정했다. 둘의 관계는 국민적 관심의 핵심이다. 동지적 관계였다면 대형 사건이다. 일방적 관계였다면 개인의 일탈이다. 그 가늠의 일단이 메시지 성격이다. 청장이 여기에 가치판단을 내린 것이다. ‘의례적’의 뜻이 뭔가. ‘형식이나 격식만을 갖춘’이다. ‘김 의원이 형식적 답변만 했다’는 뜻이다. ‘공모 안 했다’로 들린다. 그러면서 정작 밝힐 건 안 밝혔다. 김 의원이 읽은 메시지가 있다. 경찰도 확인한 모양이다. 그 숫자를 공개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읽지 않았다’고만 했다. ‘대부분’의 뜻은 또 뭔가. ‘절반이 훨씬 넘어 전체량에 거의 가까운 정도’다. ‘거의 전부’를 읽지 않았다는 표현이다. 전날 김 의원 표현을 그대로 닮았다. 전체 확인이 안 끝났다면 ‘대부분’이라 쓸 수 없는 것이고, ‘대부분’이라고 쓸 수 있다면 전체 확인이 끝난 걸 텐데…. 언론 취재의 대상도 언급했다. 기자가 김 의원 조사 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앞서 나가는 것”이라고 막았다. 그러면서 “수사의 핵심은 매크로프로그램으로 여론을 조작했는지 여부”라고 했다. ‘김 의원 수사는 핵심이 아니다’란 설명이다. 국민은 궁금해한다. 수사를 해야 김 의원도 좋다. 그걸 물은 것이다. 그런데 취재 대상을 정정하듯 설명했다. ‘김 의원 공모 사건’으로 보지 말라로 들린다. ‘드루킹 댓글 사건’으로만 보라로 들린다. 사건기자를 해봤다. 사건 브리핑만 10여 년 쫓아다녔다. 선혈 낭자한 현장 브리핑도 있었다. 정치 사건의 브리핑도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이렇지 않았다. 청장 스스로 수사 초기라고 말했다. 그러면 돌려 답하면 됐다. ‘수사 중 답변 불가’라고 하면 끝이었다. 사건기자들이 싫어하는 답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유용하게 쓰이는 ‘브리핑 기술’이다. 그런데 청장은 그날 그러지 않았다. 대놓고 ‘죄 없다’ ‘수사 대상 아니다’라 했다. 여론이란 걸 어찌 봤는지 모르겠다. 상황은 뒤집혔다. 경찰 비난이 시작됐다. ‘한 달 동안 휴대폰 분석도 안 했다’, ‘김 의원 접촉 메시지를 검찰에 안 보냈다’, ‘민주당원 확인하고도 숨겼다’…. 야권도 성토하고 나섰다. 첫날은 한국당만 경찰청을 찾았다. 브리핑 이후엔 바른미래당도 몰려갔다. 브리핑에서 항의거리를 얻은 모양이다. 인터넷의 변화는 더 극명하다. ‘TV 조선 억지’에서 ‘권력형 사건’으로 넘어갔다. 다 브리핑 이후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김 의원과 청와대 타격이 제일 크다. 김 의원은 신뢰를 잃었다. 청와대는 새로운 표적이 됐다. 민정수석실은 지금 난타전 중이다. 대통령 턱밑까지 갔다. 깔끔한 결말은 기대도 할 수 없게 됐다. ‘김경수 무혐의 통보서’를 쓸지도 모르는데, 이게 꼬였다. ‘김 의원 답장은 의례적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써야 하는데, 이걸 미리 말했다. ‘드루킹의 메시지를 읽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써야 하는데 이것도 미리 말해 버렸다. 이런 결과표를 내놓으면 다들 뭐라 하겠나. ‘그럴 줄 알았다’고 하지 않겠나. 차라리 청장 개인의 공명심이길 바란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니 걱정이다. 수사권 조정 얘기가 나온다. 브리핑 이후 언론이 그렇게 평한다. 한겨레 신문은 ‘警, 청와대 눈치 보나’라고 썼다. 문화일보는 ‘수사권 조정 앞두고 靑 눈치 보나’라고 썼다. 안 그래도 권력에 기우는 게 수사기관이다. 정도만 달랐지 기울기는 늘 있었다. 여기에 집단 이익까지 더해질 수 있다는 얘긴데, 걱정이다. 아닐 것이라 믿기로 하자. 그래서 더 궁금하다. 서울청장이 입신양면의 ‘수’로 쓰려 한 것일까. 경찰이 수사권 조정의 ‘패’로 쓰려 한 것일까. 속을 모르니 뭐라 할 순 없다. 대신 그날 이후 현실만은 말할 수 있다. 잘못된 브리핑 피해가 경찰조직으로 갔다. 국민 의혹에 불을 그어댔고, 경찰 불신에 단서를 남겼다. 명쾌히 가야 할 사건에 시효 없는 정치 수명이 주입됐다. 이제는 아주 오랫동안 시달릴 불공정 시비만 남았다. 이게 바로 16일 브리핑이 뿌린 ‘불복’의 씨앗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지극히 인간적인 약속-‘장수(長壽) 공약’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딘가. 분당이라면 74.8세까지 건강할 것이다. 포천이라면 64.8세까지만 건강할 것이고. 이걸 건강 수명이라고 한다. 분당이라면 86.3세까지 살 것이다. 포천이라면 79.7세까지만 살 것이고. 이건 기대 수명이라고 한다. 분당에 살아야 10년 더 건강하고, 10년 더 산다. 부(富)가 곧 명(命)인 셈이다. 부유장수 빈곤단명(富裕長壽 貧困短命)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건강불평등 보고서다. 보고서는 단명의 원인을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가 낙후된 주거환경이다. 사는 곳이 추하고 비위생적이다. 둘째가 낮은 교육 수준이다. 배움이 짧아 못 벌고 못 산다. 셋째가 자가용 미소유다. 온갖 공해 속을 걷고 뛴다. 산 좋고 물 맑은 포천인데도 분당과 비교하니 이렇다. ‘79.7세’라는 한계를 부인하고 싶을 것이다. 낙후된 동네라 인정하기도 싫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다. 2억9천만개나 되는 자료로 만든 통계다. 보고서는 과제를 던진다. ‘대책을 마련하라’고 한다. 그리 어렵지 않다. 주거 환경 개선하면 된다. 교육 수준 올리면 된다. 자가용 보급률 높이면 된다. 누구 책임인지도 명확하다. 국가, 도, 시(市)다. 그 결정을 할 사람은 대통령, 도지사, 시장(市長)이다. 두어 달 뒤면 도지사, 시장 선거다. 그러니 지금은 도지사, 시장의 책임을 말할 때다. 그런데 어딜 봐도 ‘장수 공약’이 없다. ‘오래 살게 해드리겠다’는 약속이 없다. ‘공약 속에 있다’고 할지 모르나, 아니다. ‘장수 공약’은 방향부터 달라야 한다. 의료 공약을 보자. 저마다 대학 병원 유치를 첫머리에 꼽고 있다. 쓰러진 환자가 골든타임에 달려갈 근접 의료 체계를 약속해야 한다. 주거 공약도 그렇다. 너나없이 신도시ㆍ재개발 위주다. 날파리, 쥐가 득실거리는 뒷골목정비에 돈 쓰겠다고 해야 한다. 도로 교통 공약도 틀렸다. 차 다닐 도로가 아니라 사람 다닐 도로를 공약해야 한다. 복지? 이건 아예 통째로 잘못됐다. 원래는 이런 게 아니다. 배고픈 자를 먹게 하고, 추운 자를 따뜻하게 하는 거다. 그래서 주어진 천명을 다하도록 돕는 거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바뀌었다. 배부른 자에까지 더 먹이고, 따뜻한 자에까지 더 덮어준다. 이런 보편적 복지를 시대정신이라고 우기고 있다. 어느덧 이런 복지가 정치를 장악했고, 그 정치가 표심을 삼켰다. 그렇게 완성됐다는 복지천국이 대한민국ㆍ경기도ㆍ성남시다. 건강불평등보고서가 그 실정(失政)을 까발렸다. 국민 생명을 책임진다는 대한민국, 그 국민의 건강 수명이 경기 분당구민 74.8세, 경남 하동군민 61.09세다. 도민 생명을 책임진다는 경기도, 그 도민의 건강 수명이 성남 분당구민 74.8세, 포천 시민 64.8세다. 시민 생명을 책임진다는 지자체, 그 시민의 건강 수명이 분당구민 74.8세, 중원구민 65.3세다. 같은 복지천국인데 사는 곳에 따라 이렇게나 ‘명줄’이 엇갈린다. 보고서가 내린 예상은 더 잔인하다. “2025년까지 국민의 기대 수명은 3.5년 늘어나지만, 소득에 따른 기대 수명 격차가 0.31년 커질 것이다.” ‘부유장수 빈곤단명’이 더 극단화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멀지도 않은 날의 얘기다. 다음 대통령이나 다음 도지사ㆍ시장 때 일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중요해졌다. 하동군민 13년 더 살게 하고, 포천시민 10년 더 살게 하고, 중원구민 9년 더 살게 할 ‘장수 공약’이 필요해졌다. 표(票)-후보자들이 그토록 좋아하는-도 된다. 60대 이상 유권자가 1천75만명이다. 전체 유권자의 25.2%다. 50대까지 합치면 45.1%다. 이들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손주의 무상급식? 자녀의 반값 등록금? 아마도-틀림없이- 그건 아닐 것이다. 장노년층이 입으로 말 못하는 소원은 따로 있을 것이다. 병 없이 오래 살고 싶은 꿈이다. 지극히 인간적이지 않나. 한없이 소박하지 않나. 장수공약이 그렇게 인간적인 공약이고 소박한 공약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前 역사 비틀기와 소련의 패망

레닌은 스탈린을 선택하지 않았다. 말년에 남겨놓은 평가가 혹독하다. 무지하다며 무시하고 거칠다며 경계했다. 사회주의 혁명의 대업을 넘겨줄 리가 없었다. 대신 점찍은 후계자가 트로츠키였다. 혁명의 와중에 둘은 복도를 마주하고 지냈다. 둘 사이를 오간 쪽지들이 혁명의 모든 걸 결정했다. ‘잘한다! 트로츠키 동지’란 글은 둘의 우정을 표한 숱한 증거의 하나다. 유언도 그랬다. 후계자를 트로츠키라 했고, 스탈린은 제거하라고 했다. 하지만, 권력은 스탈린에게 넘어갔다. 1924년 1월21일, 레닌이 죽은 그날이 거사 당일이었다. 불행히도 트로츠키는 요양을 가고 있었다. 그가 탄 기차로 전문이 날아들었다. ‘장례식은 토요일에 거행될 겁니다. 제시간에 돌아올 수 없으실 테니, 치료를 계속하십시오.’ 거짓말이었다. 장례식은 일요일이었다. 트로츠키를 배제하려는 전략이었다. 스탈린과 지노비예프, 카메네프-훗날 3두 정치라 표현되는-가 손잡고 벌인 희대의 역모였다. ‘트로츠키는 농민을 무시했다.’ 스탈린이 왜곡한 첫 번째 과거다. 트로츠키가 농민을 과소평가했다고 비난했다. 농업정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도 했다. 당시 러시아는 전형적인 농업국가였다. 프롤레타리아의 절대다수는 농민이었다. 이들과 트로츠키를 떼어놓는 작업이었다. 트로츠키는 시골 야노프카에서 태어났다. 혁명의 시작도 슈비고프스키라는 시골에서의 일이다. 이게 다 바뀌었다. 트로츠키는 반(反) 농민주의자가 됐다. ‘레닌과의 관계를 비틀어라.’ 트로츠키 죽이기의 결정판이다. 1905년 1차 혁명이 꼬투리가 됐다. 트로츠키가 레닌의 혁명 노선에 반발했던 시기다. 둘 사이에 있었던 유일한 갈등 시기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둘은 한 몸이었다. 그런데도, 1905년의 트로츠키만 부각했다. 레닌에 맞섰던 반혁명분자로 몰았다. 트로츠키는 자서전에서 레닌과의 추억을 비망록처럼 적고 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스탈린 생전, 그는 반레닌주의자가 됐다. 위대한 러시아 혁명에 숨겨진 추잡한 뒷모습이다. 과거를 왜곡하고 트집 잡으며 시작된 역사다.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일 수도 있다. 이념, 유산까지 모조리 뜯어고치겠다는 것이 사회주의 혁명 아닌가. 그래서였나. 소비에트 소련의 그 후 역사는 그렇게 갔다. 스탈린은 후르시초프가 부정했다. 공산당의 폐쇄성은 고르바초프가 부정했다. 옐친은 사회주의 100년을 송두리째 부정했다. 1991년, 그렇게 ‘과거 비틀기’가 끝나자 소련은 멸망했다. 그 100년, 미국은 어땠나. 트로츠키가 처음 미국 땅을 밟은 건 1917년 1월13일이다. 뉴욕에 대한 그의 감상이 이렇게 남았다. ‘거대한 빌딩군, 가스레인지, 전화, 엘리베이터…아이들이 순식간에 뉴욕의 포로가 됐다.’ 그러면서도 비꼰다. ‘달러( Doller)의 도덕 철학이 완전히 석권한 나라다’ ‘인류의 문명이 버려질 대장간이다’. 하지만, 그는 틀렸다. 100년 뒤 미국은 더 풍요로워졌다. 과거사를 부정하지도 않고, 전임자를 격하하지도 않는다. ‘과거 비틀기’의 결말은 비극이다. 세상 어떤 현재도 언젠가는 과거다. 미래에 바쳐질 예비된 제물일 뿐이다. 지금 권력이 짠 관(棺)도 미래 어떤 날은 스스로 들어갈 어둠의 상자일 뿐이다. 그 적나라한 표본을 사회주의 소련이 보여줬다. 창시자 유언이 휴지가 되고, 후계자 머리에 등산 도끼가 꽂히고, 권력자 흉상이 땅바닥에 구르고, 위대했던 혁명이 참담한 실패가 됐다. 그러면, 어떤가. 대한민국은. 소련의 100년 교훈에서 자유로운가. 김영삼 정부는 ‘5공 청산’으로 과거를 뒤졌다. 김대중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로 과거를 뒤졌다. 노무현 정부는 ‘부패 정치 척결’로 과거를 뒤졌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 수사’로 과거를 뒤졌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로 과거를 뒤졌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으로 과거를 뒤지고 있다. 어떤 대통령들은 감옥에 갔고, 어떤 대통령은 감옥에 있고, 어떤 대통령은 감옥에 갈 판이다. 20년째 이러고 있다. 불행한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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