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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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지역 수해예방대책 세워라

경기북부 일부 지역의 수해방지시설이 상당수 갖춰지지 않아 본격적인 장마철을 맞아 침수피해가 심히 우려된다. 더구나 올해도 기습폭우가 잦을 것이라는 기상대의 예보가 북부지역 주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현재 북부지역에서 수해에 가장 취약한 곳 중의 하나가 한탄강 유역이다.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한탄강 유원지는 지난해 8월에도 건물 9채가 물에 잠기고 이재민들이 발생하는 등 침수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주변 신천과 차탄천 등의 지류에서 갑자기 많은 양의 물이 흘러 들어 유원지 일대를 덮친 것이다. 한탄강 유역에는 이처럼 수해위험에 노출돼 있는 지역이 많다. 하지만 튼튼한 제방을 찾아보기 힘들다. 강이 지나는 구역의 70% 이상을 절벽 주상절리가 둘러싸고 있어 범람의 위험이 적고, 자칫 수려한 자연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제방을 쌓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한탄강에 대한 치수계획을 수립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탄강댐 건설사업이 수년째 표류하는 탓이기도 하다. 2000년 8월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된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와 청산면 초성리는 아직도 수해에 무방비 상태다. 연천군이 1999년 행정자치부에 배수펌프장 설치를 위한 예산지원을 요청했으나 지난해 고작 10억원이 예산에 반영됐다. 오는 10월 배수펌프장 공사에 들어가 내년 10월쯤 완공될 예정이어서 올해는 물론 내년 장마도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두천시 안흥동 주빈들도 올 장마에 겪을지도 모르는 수해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이다. 동두천 시가지는 시내(市內)를 관통하는 신천보다 지대가 낮아 그동안 수해를 자주 입었다. 제방을 높이고 배수 펌프장도 13곳을 설치해 2000년 이후로는 비교적 대규모 침수해는 입지 않았다. 그러나 신천의 하천폭이 좁아지는 안흥동 안흥교 부근은 여전히 물난리가 예상된다. 동두천시가 안흥교를 재가설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2006년에나 완공될 계획이어서 여전히 비피해가 우려된다. 북부지역의 수해는 제 때 반영되지 않는 부족한 예산과 한탄강 댐이다. 건설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수해방지시설 계획을 추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탄강댐 건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속히 밝혀 수해를 예방해야 한다.

동전 바꿀 때 수수료를 낸다?

한국은행이 일정 수량 이상의 동전을 교환할 경우 수수료를 물리거나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니 그야말로 황당하다. “대량의 동전 교환이 현실적으로 은행업무에 불편과 방해를 주는 데다 아무 제한없이 언제라도 바꿀 수 있다 보니 동전을 쌓아두고 유통시키지 않아 동전을 추가 발행하는 데 따른 비용만 계속 늘어나는 부작용이 있다”는 말도 그러하다. 법적으로도 현행 한국은행법은 동전과 지폐는 똑같은 법적 화폐로서 무제한 통용된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동전교환도 원칙적으로 한국은행과 모든 시중은행에서 가능하다. 이런 데도 대량의 동전을 바꿔주려면 세는 데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므로 수수료를 받도록 하자는 제안을 일부 은행장들이 주장하고 한국은행도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다면 근검절약의 상징이던 ‘돼지저금통’은 귀찮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셈이다. 어린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모은 돼지저금통을 들고 은행에 가면 홀대하기가 일쑤라니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 일례로 잔뜩 배가 부른 저금통을 들고 딸과 함께 은행을 찾아간 한 주부가 톡톡히 무안을 당했다. 딸아이에게 저축습관을 가르치기 위해 동전을 모으도록 시켰는데 기특하게도 1년 만에 돼지저금통이 묵직해진 것이다. 동전을 바꿔 딸아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줄 계획이었으나 낭패를 당했다. 은행 직원이 동전 교환은 오전에만 가능한 데다 은행에 거래게좌가 없기 때문에 교환이 안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돼지저금통 두 개를 들고 은행을 찾았다가 망신을 당했다. 은행 직원이 ‘10원, 50원, 100원, 500원’등 액수별로 갯수를 세서 분류하고 총액이 얼마인 지 알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은행측의 태도는 심히 부당하다. “객장에 번호표를 받고 대기 중인 고객이 수십명이나 있는 데 그런 업무는 내팽개치고 저금통과 씨름할 순 없지 않느냐”는 말은 은행이길 포기하는 것이다. 도대체 은행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동전을 바꾸러 온 사람도 고객이다. 동전 바꿀 때 수수료를 받으려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한국은행의 방안은 어불성설이다. 만일 이 방침을 강행한다면 향후 동전 자체를 없애야 한다.

북한 군사전략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 북한 최고의 상위법인 노동당 규약 전문이다.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이미 ‘3대 혁명역량강화론’(북조선혁명역량, 남조선혁명역량, 국제혁명역량 강화)을 기초로 한 국방자위정책, 군사외교정책을 수립했다. 국방자위정책은 잘 알려진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를 골자로 하는 ‘4대 군사노선’이다. 기습전략, 속전속결전략,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배합전략이라는 3대 군사전략도 있다. 김일성은 6·25 전쟁 이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2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한국전쟁의 경험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은 미제와 싸운 고귀한 경험이기 때문에 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이후 한국전의 전략적 패인에 대해 심층적인 분석을 기초로 하여 4대 군사노선과 3대 군사전략을 정립시켜 이를 기반으로 북한군을 체계적으로 육성시켜 왔다. 특히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신군정치와 군민일치를 강조하는 군사제일주의의 완성을 위해 대대적인 군 개편을 단행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2년 구체화된 복무기간 단축과 대규모 감군조치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인민군 소장파(친 김정일파)의 지속적인 득세와 김정일의 군부 장악력 강화가 바탕에 깔려 있다. 현재 북한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소장파는 대부분이 1940년대생들이다. 이들은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았고 해외공작 및 심리전 등에 대한 의욕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막대한 재정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기동화된 전투부대와 장사정 무기에 의한 기습전략 강화, 전선 후방에서의 대규모 유격전 수행 능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군사력을 건설하고 있다는 정보 분석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제2의 6·25가 없다고 할 수 없다./임병호 논설위원

기고/나누어야 힘이 생긴다

종종 행정기관을 공룡에 비유하기도 한다. 너무 비대해진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멸종한 그 공룡 말이다. 덩치만 크고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이 거대조직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공룡을 죽게 한 그 증후군이 결코 중생대의 그것들만의 운명일 뿐이라고 안심해도 될 것인가? 오늘, 우리의 직장은 어떠한가. 나는 조직을 경직시키고 구성원의 숨통을 죄고 있지는 않은가. 법이니, 명령이니, 비밀이니, 규제니 하면서 사람과 일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직위만 내세워서 통제하고 간섭하지는 않는가. 나혼자서 정보를 독식하거나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조직이 비대하고 경직되고 타성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비대조직에서는 정보가 어느 일부의 전유물이 되기 쉽다. 의사소통 구조가 일방적이 되기 쉽다. 피가 돌지 않는다. 피가 돌지 않으면 죽는다. 심장에서 머리로, 손으로, 다리로 피가 돌아야 하는데 어느 지점에서 막혀버리면 ‘악’하고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도 못하고 죽는다. 상사는 심장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피를 돌게 하는 사람이다. 막힌 것을 뚫어 조직이 잘 돌아가게 하는 사람이다. 정보를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권한과 책임을 나누고, 일을 나누고, 결정과 행복을 나누는 사람이다. 공유하고 공유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특히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자기 혼자서 정보를 독점하거나 의사소통의 통로를 막아서는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마음과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모이고 가치가 창출된다. 창의성에 관한 연구들을 보라. 창의적인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아낌과 보살핌,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지지하는 인간적인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십여년 전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시절의 일이다. 지금은 모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분인데 사실 필자와 알던 사이도 아니었다. 그분도 박사과정에 재학하고 있었고 어느날 학회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인연일 뿐이었는데 그분이 선선히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분은 석사과정 때부터 박사과정을 대비하여 그 분야의 좋은 논문들을 많이 수집해 놓고 있었다. 나는 사실 학문에 뜻이 있어서 박사과정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학문을 할 만큼 논리적인 두뇌를 갖고 있지도 않아서 과정 중에도 마음이 괴로운 날들이 많았다. ‘그만둘까, 어쩔까. 너 같은게 뭐 학문을 한다고. 순수하지도 못하고 기본능력도 학문에 대한 외경심도 없는 것이…’ 해가면서 회의와 연민, 自嘲와 죄책감에 시달리곤 하였다.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다. 그분이 어렵게 모은 자료들(그 당시에는 미국 논문을 한편 들여오려고 하면 배로 6개월 정도가 걸렸음)을 선뜻 빌려주면서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니 무척 반갑다고 하였다.(필자가 진로교육 국내박사 1호니까). 그 후로 서로 정보와 자료를 교환하면서(실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셈이지만) 참 좋은 시간들을 나누었다. 내가 그분으로부터 얻은 것은 귀한 자료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값진 것은 나누는 것이었다. 베푸는 것이었다. 먼저 내주는 것. 자기가 가진 소중한 것을 상대를 믿고 먼저 주는 것, 그런 마음과 행동이 아닌가 한다. 나도 그분을 닮아 후배들에게 내가 어렵게 구한 자료들을 선뜻 내주곤 한다. 정보와 자료를 나누게 한다. 그렇게 해야 힘(power)이 생기고 학파가 형성되는 것이다. 좋은 자료를 자기만 꽁꽁 싸갖고 있으면 힘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다른 사람의 머리로 가면 훨씬 가치있는 보석으로 다듬어질 수 있는 자료들이 옹졸한 두뇌의 소유자에게 들어가면 빛을 보지 못한다. 글쎄 고작해야 그 사람에게 강사료나 원고료 정도 벌어다줄지는 모르겠지만. 나누어야 힘이 생긴다. /김현옥.수원 수일중 교장.시인

천자춘추/아아, 어찌 잊으랴!

아, 비통하다! 김선일씨(33세)가 끝내 살해됐다. 정부의 재빠른 구명운동도, 온 국민의 밤샘 촛불기원들도 다 허사가 됐다.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다. 때마침 오늘이 6·25 54주년! 오늘 다시 그 전쟁의 비극을 맛보는 것 같아 참으로 가슴이 아리다. 그가 무슨 죄가 있는가? 선한 목자가 되어 장차 중동지역에 선교사업을 나가는 게 꿈이라던 순수하기만 한 청년이었는데! 그저 어쩌다 그 무서운 이라크 땅에 잠시 통역관으로 일하러 갔던 것뿐인데! 만의 하나 그에게 죄가 있다면, 그건 불행히도 그가 미 군납업체(가나무역) 직원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결국 자기들의 ‘원수놈’ 미군을 돕기위해 이라크에 와있다는 판단 때문에-맞다. 사실 우리는 미국 요구에 의해 제마부대도 파병했고, 또 다시 3천명의 복구지원부대를 재파병하려던 게 아닌가. 이때 돌연 김선일씨가 납치됐고, 놈들은 이를 ‘철회하라’ 요구하다 끝내 묵살되자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 각설하고, 미국은 지금 위기다. 이라크는 물론 아랍권을 비롯한 세계 많은 나라들로부터 호된 복수의 대상이 되고있다. 그럼 지금 우리 한국은 과연 어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분명 우리에게 고맙기만 한 나라였다. 혈맹이니 맹방이니 하면서 서로가 없으면 죽고 못살 것만 같았다. 더욱이 6·25사변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은 우리의 신(神)이었다. 한국의 생사권을 한 손에 거머쥔 할아버지이셨다. 실제로 많은 미국의 젊은 병사들이 우리 한국전쟁에 참여해 고귀한 목숨을 바쳤는가 하면, 전쟁중 극심한 가난과 병마 속에 죽어가는 우리 동포들에게 온갖 구호물자와 의료, 교육 등을 통해 구세주 노릇을 해줬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의 대미관은 안그렇다. 2년 전, 뜻밖의 ‘효순이·미선이 사건’ 이 터지면서 국민감정이 극도로 나빠져 온게 사실이다. 결국 양국 관계까지도 좀 서먹거리며 미묘해지는 것 같더니, 마침내는 미군 2만500명을 일방적으로 감축한다 발표함으로써 한국은 다시 안보 불안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미국만 쳐다보며 바짓가랑이만 잡을 수도 없잖은가? 차제에 대통령은 어서 자주국방의 기틀을 확고히 해야 한다. 잘살든 못살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는 각오를 보다 새로이 해야 할 것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6·25 54주년 아침에 화두를 던지며 순국한 선열들의 넋을 기린다. /김남웅.광명충현고 교장.시인

6월 25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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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시의 쓰레기 반입 재개해야

혐오시설을 기피하는 지역 이기주의와 땅값 상승으로 신규 쓰레기매립장과 소각장 건설이 갈수록 어렵다.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사용중인 238개 매립시설의 운영 현황을 보면 이들 매립장의 총 매립용량 3억6천200만㎥ 중 1억5천만㎥밖에 남지 않았다. 지역별 쓰레기 배출량을 감안하면 현재 사용 중인 전국 쓰레기 매립시설이 평균 14년 뒤면 모두 채워져 더 이상 쓰레기를 묻을 곳이 없어지게 된다. 더구나 여의도 면적 4배 크기(628만평)로 국내에서 가장 넓은 수도권매립지도 이미 3분의 1이 채워졌고, 2022년 말에는 포화상태에 이른다. 여기에다 수도권 지역의 소각장 추가 건설이 어려워져 쓰레기 매립 문제는 실로 심각하다. 사정이 이런 데도 지역주민의 민원과 부지난 등으로 지난해 새로 개설된 매립장이 6곳에 불과하다. 특히 쓰레기 발생량이 2001년 25만2천900t에서 2002년에는 26만9천500t으로 6.6%로 늘었고, 건설폐기물 반입량이 매년 10% 이상씩 급증해 지난 해 전체 매립 쓰레기의 44.6%나 돼 매립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근 쓰레기로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곳이 포천시의 경우다. 지금 포천시는 서울·경기지역 쓰레기를 매립하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포천시의 쓰레기 반입을 지난 1일부터 중단해 임시적환장에 생활쓰레기 수백t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여기에 침출수까지 흘러 내려 악취가 진동한다. 그야말로 쓰레기와의 전쟁 중이다. 시민들은 쓰레기 소각장 건립을 반대하는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포천시는 2007년까지 하루 80t 처리 규모의 소각시설 건립을 조건으로 자체 매립지 없이 1995년부터 수도권매립지를 이용해 왔다. 그러나 지난 3월로 약속했던 쓰레기 소각장 부지 선정을 부지 인근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미루자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쓰레기 반입을 금지시킨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포천시 쓰레기 반입을 중단한 조치는 대다수 시민들의 고통을 감안할 때 적절치 못하다. 포천시와 다시 협의를 해 쓰레기 반입을 재개토록 하기 바란다. 포천 지역을 사례로 이제는 각 지역 주민들도 쓰레기 매립장 및 소각장 건립에 대승적 차원으로 협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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