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시장없는 '오산문예회관' 개관을 보며

오산시민의 오랜 숙원사업 중 하나인 오산문화예술회관이 드디어 지난 4월 23일, 시 승격 15년만에 개관되었다. 개관되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연면적 3천평 남짓의 웅장한 문화예술회관과 여성회관의 개관은 시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오산시민의 한 사람으로 축하했다. 한국미술협회 오산지부에서도 문예회관 개관을 축하하기 위한 전시회를 가졌다. 회원들 중 40여명이 출품하여 축하의 장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개관 당일 작품을 출품한 회원들이 모여들면서 자부심은 웬지 답답함과 무언지 모르는 슬픔으로 바뀌었다. 문예회관 로비와 복도, 계단 그리고 화장실 입구 등 여기 저기 흩어져 이젤 위에 전시된 작품을 보는 순간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로 와 닿은 그 감정은 분노보다 참혹함이었다. 오산 문화예술회관이 계획되고 설계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오산에는 미술협회도 없었고,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오산 문화원 초대작가전’이 전부였다. 그러나 오산에 미술인들 몇 명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여러 사람들에게 전시공간이 함께 건축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을 주장하였다. 개관 당일 시의원을 만나 이런 현실을 이야기하니 시의원도 의회에서 여러 차례 건의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반영되지 않은 상태로 준공됐다. 공연장만 존재하는 문화예술회관은 전국적으로 없는 것으로 안다. 아니 있었다. 용인 문화예술회관도 10여년 전에 완공될 당시 전시공간 없이 공연장만 준공되었다. 그 후 용인 미술인들의 불만과 건의로 사무실을 개조하여 전시장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전시공간의 부족과 전시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환경으로 인해 현재 ‘용인 미술관 건립’을 위한 미술인들의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미리 설계과정에서 마련되었다면 이중으로 예산 낭비와 비경제적인 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전시장 준공에 따른 활용도 문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미술협회에서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시공간이 없는 오산 미술인들은 현재 개인전을 전시공간이 마련된 수원을 비롯한 타 지역에서 열고 있다. 오산지역의 미술인들이 노력하여 완성된 작품을 전시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타 지역에서 전시회를 갖는다면 이는 엄청난 문화적 손실이다. 더욱이 조명시설이 없는 오산시 청사나 오산문화예술회관 로비나 복도, 계단에서 이젤을 놓고 전시회를 갖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다. 수원지역을 비롯한 전시공간이 있는 타 지역에선 초·중등 학생의 수행평가로 전시장 관람 후 감상문을 과제로 내 주고 있다. 아마 다양한 문화적 체험이 요구되는 학교현장에서는 문화공간 탐방은 중요한 학습과정이다. 그러나 오산 지역의 미술교사들은 전시장 관람에 관한 수행평가를 과제로 내주고 싶어도 타 지역까지 이동하는 어려움에 전시장 관람 수행평가를 포기하는 형편이다. 이처럼 전시공간은 다양한 문화적 현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개관기념 공연 안내 책자에 시장의 말씀을 인용하면 “전국 최고 수준의 시민 문화시설로 거듭날 수 있도록 운영한다” 또한 “지역 예술단체에 아낌없는 지원을 통해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시장의 말씀대로 최고 수준의 문화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빠른 시간 내 조명을 갖춘 전시공간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더불어 미술인들의 숙원인 전시공간이 마련된다면, 오산시민들의 미술문화 욕구 충족을 위해 보다 질 높은 전시회를 유치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유미자.한국미술협회 오산지부장

천자춘추/새로운 정치를 하라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총선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도 끝났다. 대통령과 여당의 뜻대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었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도 기각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것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에 대해 많은 국민이 탄핵소추반대의견을 표출한 것도 모두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17대 국회의 회기가 시작되기도 이전임에도 요즘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스타일을 보면서, 또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저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인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열린우리당,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자임했다. 그런데 아직 17대 국회의 회기가 시작되기도 이전에 정권실세라는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세(勢) 과시를 하는 모임을 가진다. 또 차기 대통령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이 행정부 입각을 하겠다고 하면서 그 장관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인다. 적어도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정당이라면 먼저, 당선자들, 당원들, 또 국민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17대 국회에서 어떠한 일들을 해야할 것인가 하는 의제를 설정하는 작업을 하고, 이를 통해 설정된 의제들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렇게 설정된 의제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실행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한다. 누가 더 힘이 센 실세인지 세력(勢力)을 과시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또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국민들의 삶의 현장에 내려와서 그들의 삶 가운데서 가려운 곳을 찾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을지에 대하여 궁리하기를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은 책임총리제를 주장하고 당·정의 분리를 주장하며 기존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겠다고 했다. 그런 대통령이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힌 총리에게 정치적 이유로 하는 개각에 제청권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러한 요청에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시한 총리에게 제청권 행사를 강요하는 모습은 책임총리제를 주장하는 입장과는 전혀 상반된 것이며, 총리에게 제청권을 준 헌법정신에도 반하는 것이다. 또 차기 대통령후보직에 도전하고자 하는 열린우리당 인사들을 행정부에 입각시켜 관리하겠다는 것도 당·정분리를 주장하는 대통령의 언행과 상반되는 것이며, 이렇게 차기 주자를 관리하는 것도 구시대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빼닮은 것이다.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구정치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말 새로운 정치를 시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독자투고/‘Lost 114’ 활용해 잃어버린 물건 확인을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소중한 물건들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가끔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를 접한다. 또한 길을 가다 다른 사람의 지갑이나 핸드폰 등 물건을 습득하여 경찰서로 들고 오는 민원인들도 있다. 이처럼 분실물이나 유실물을 발견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음에도 관심이 적은 것 같다. 이른바 로스트114(www.lost114.com)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소중한 물건을 되찾아줌으로써 작지만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 주는 공익을 생각하는 인터넷 사이트이다. 로스트114는 경찰청, 지하철공사, 도시철도공사, 철도청 등 각종 국가기관에 접수된 분실품이나 유실물, 애완동물 등을 통합 안내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익기관이다. 각종 분실품 및 유실물에 관한 자료를 실시간 입력 관리함으로써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를 조회하여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인터넷없이 하루도 살기 어려운 이즈음 일상속에서 그 폐해도 적지 않으나 실의와 한숨속에서 발품을 팔며 찾아헤매는 불편보다는 효율과 신속한 조회로 분실품을 확인할 수 있는 로스트114의 적극 활용이 아쉽다./김동원·가평경찰서

대체 누굴 위한 평지풍파의 ‘분도론’인가

경기도가 남·북으로 분도가 되면 한수 이북의 지역 주민들에게 과연 무슨 실익이 돌아가는가, 분도가 된다해서 일반 주민의 생활이 더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정치인은 나중에 ‘경기북도’ 도지사를 꿈꾸고 지역 유지는 도단위 기관장이나 단체장 등의 꿈에 부풀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일반 주민들은 지방세 부담만 가중된다. 분도가 되어 예컨대 접경지역 문제가 해소되고, 수도권규제가 풀리고, 팔당호 상수원보호 규제 등이 해결되어 지역사회 발전과 지역주민의 복지가 증진된다면 기꺼이 동의하겠다. 그러나 이같은 여러 문제는 시대적·지역적 특수성의 제약이다. 분도를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물론 시대적·지역적 특수성의 불이익은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지극히 당연한 현안이긴 하다. 하지만 충청북도보다 못한 열악한 ‘경기북도’를 만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웅도의 경기도 도세로 이를 추진하는 게 탄력성이 더 강하다. 도는 해마다 지방세입의 막대한 부분을 북부지역에 투입하고 있다. 같은 지역사회의 입장에서 북부지역 주민들을 위한 이러한 지원이 마땅하다는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이 있을 수 없다. 한강이 가운데 낀 지형적 조건을 분도의 이유로 삼는 것은 실로 황당하다. 정보통신이 극도로 발달된 이 시대에서 도대체 분도가 안 되어 불편이 많다는 주장은 구차한 강변에 불과하다. 걱정스런 것은 분도의 포퓰리즘이다. 어떻게 보면 분도론은 북부지역 주민들에게 매력적 환상일 수 있고, 더욱이 이 정권의 실세가 분도에 앞장서며 부추기는 포퓰리즘은 한층 더 감성을 끌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권은 유한하며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고 유한한 권력의 분도 게임이 천년 넘는 경기도의 단일 정서를 우선할 수는 결코 없다. ‘범경기분도추진창립위원회’를 탓하기 보다는 바로 이런 동질적 단일 정서를 간곡히 호소하고자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하여 그토록 분도를 서두르는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다. 생각하면 경기도는 상처 투성이다. 개성시와 개풍군이 북녘 땅이 되고 장단군은 비무장지대에 묻힌 채 반세기가 지났다. 이에 굳게 단합해야 할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을 남북으로 또 갈라놓고자 하는 공연한 분도론을 배격한다. 더 멀리보는 깊은 안목의 성찰이 있기를 간곡히 촉구한다.

외국인보호소가 범죄자 감옥인가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법무부 화성외국인보호소’는 범죄자를 가둬 두는 곳이 아니다. 출국대기 중인 외국인들을 임시로 보호하는 곳이다. 이를테면 쉼터다. 그러나 법률적 근거도 없이 보호소에 수용돼 있는 외국인들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면 외국인 인권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보호소와 법무부에 취재협조를 요청했는데도 “취재를 위한 면회는 안된다”며 언론사의 취재를 차단하는 것은 부당하다. ‘보호소’가 외국인 노동자를 본국으로 보내기 전 잠시 보호하는 곳인데 ‘취재’를 허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취재를 목적으로 언론사가 방법을 바꿔 보호소에 수용된 한 외국인 노동자의 이름을 적어 신청한 ‘면회’는 아무런 걸림돌도 없이 통과됐다니 ‘눈가리고 아웅’이 따로 없다. 취재 결과 보호소에서 지내는 외국인들은 방안에만 갇혀 있고 거의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많아야 1주일에 한 두번 20분 정도 밖에 운동을 했고 수용자가 많을 때는 아예 금지했다. 외국인이 애로사항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경우 독방에 가뒀다고 한다. 언어장벽은 더욱 심각한 문제점이다. 외국인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관련 서류가 모두 한국어와 영어로만 돼 있기 때문이다. 보호소 직원과 공익근무요원들이 외국인들에게 욕지거리나 반말을 함부로 하는 것 역시 인권유린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된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외국인보호 규칙과 그 시행세칙의 조항들이 상위법인 출입국관리법에 근거하지 않아 위헌이라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주장은 적법하다고 판단된다. 물론 외국인보호소는 관리상 고충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날로 늘어가는 수용인원에 비해 시설 면적이 비좁아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능히 짐작된다. 탈출 시도가 빈번하고 특히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외국인들이 없다할 수 없다. 언어가 잘 소통되지 않아 애로를 겪는 것은 보호소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그러나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인권이 있다. 징벌이 불가피하다면 출입국관리법에 징벌 등을 가능하게 하는 규정을 명문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비인권국가라는 낙인이 찍혀서는 안된다.

外國化

최근 사용하는 용어들 가운데 ‘캐시그랜트(cashgrant)’는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에 터 매입 등 투자비 일부를 현금으로 지원하는 것을 뜻한다. ‘클러스터(cluster)’는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려 밀집해 있는 모양이다. 기업·대학·연구소 등이 기술, 인력 및 지식정보의 교류를 통한 상승효과를 얻기 위해 특정지역에 모여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임베디드(embdded)’는 무엇이 속에 고정돼 있는 뜻이다. 전자제품· 컴퓨터· 엘리베이터 처럼 어떤 소프트웨어에 의해 작동하는 자동장치는 모두 임베디드 시스템 이라고 할 수 있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는 물이나 공기처럼 언제 어디서나 모습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시간이나 장소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컴퓨터 망에 접속할 수 있는 통신환경을 의미한다. 이런 용어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요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거나 공문서를 작성하면서 쓰고 있는 외국어들이다. 사전을 뒤지거나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지 않으면 무슨 뜻인 지 쉽게 알 수 없는 용어들이다. 일례로 농림부가 최근 ‘지역농업 클러스터’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는데 정작 농협 직원조차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아예 ‘영어도시 서울’로 만들려는 지 대중교통체계를 바꾼다며 시내버스에 로마글자를 표기하고 있다. 또 거리에 ‘Hi Seoul my bus 7월1일부터 버스가 빨라 집니다’란 현수막을 내걸어 불필요한 영문혼용을 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우리 말 살리는 겨레모임’이 “서울시가 지금처럼 영문표기를 계속 부추긴다면 이명박(李明博)서울시장을 올해의 ‘우리 말 으뜸 훼방꾼’으로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공감이 간다. ‘우리 말 해치는 가장 나쁜 사람’이라는 말도 괜찮겠다. 일본은 ‘유비쿼터스’를 ‘시공자재(時空自在)’라는 용어로, 인센티브는 의욕자극제, 글로벌은 지구규모 등으로 바꿔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행정용어 뿐 아니다. 대기업들도 회사명을 거의 영어로 바꾸고 있다. 이러다간 앞으로 자녀들의 이름도 외국명으로 지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목요칼럼/판사가 별 건가? 암, 별 거고 말고!

재판정 법대위에 높이 앉아있는 판사는 설령 체구가 작아도 형사 피고인의 눈엔 무척 커보인다. 자신의 운명이 판사가 마음 먹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물론 법절차에 의한 재판 진행과 법률에 의한 판결을 받는다. 판결엔 채증의 법칙과 경험법칙이란 것도 있다. 그러나 유·무죄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 유죄일 경우 형의 집행 유예냐 아니면 실형을 얼마로 하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판사 마음에 달렸다. 그래서 같은 성격의 사안이 흔히 판사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온다. 교통사고 뺑소니 사건을 두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병원에 옮겨놓고 사라져도 유죄판결이 났었는가 하면, 가해자가 사정이 있어 피해자를 병원에 안 옮기고 자리를 떠도 그 사정이라는 것을 관대히 보아준 무죄판결이 있었다. 형사재판만이 이런 것은 아니다. 재경부에서 똑같은 이유로 해임된 전직 공무원 두 명이 각각 낸 해임처분취소청구의 행정소송에서 한 사람은 승소하고 또 한 사람은 패소한 엇갈린 판결이 있었다. 민사소송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댄스의 직업 정년을 몇살로 보느냐는 것은 순전히 판사가 마음 먹기에 달렸다. 이에대해 구체적 사안의 검토에 따라 판결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게 판사의 입장인 것은 안다. 하지만 이같은 민·형사 및 행정소송의 유사 재판 사례는 허다하다. 판사에게 보장된 재판의 자유심증주의 권능은 이토록 막대하다. 판사가 오판을 했을 지라도 피고인은 꼼짝 못한다. 오판도 법률적 규제력을 지닌다. 판사 역시 인간이다. 이러므로 중요한 것은 판사 개인의 성품과 성장 과정이다. 이런 게 결국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관이나 인생관 등의 인격 형성에 직접 작용되기 때문이다. 판사의 사생활 체험도 판결에 영향을 준다. 약혼녀와 유원지 데이트 중 불량소년들에게 협박당해 금품을 빼앗긴 젊은 판사가 유사 사건의 피고인이면 나이가 어리든 초범이든 개전의 정황에 상관없이 무조건 실형이 아니면 소년원 송치를 일삼는 것을 보았다. 법조 출입기자 17년을 경험하면서 평생 잊혀지지 않은 법언(法諺) 같은 말을 들은 게 하나 있다. “재판은 판사가 지닌 양심의 반영이다”라는 말을 판사에게 직접 들었다. 그 무렵 전국 법원으로 번졌던 ‘법관정풍운동’의 진원지였던 대구고법 부장판사 중 수석부장판사였던 분이 그랬다. “법조문 해석이나 적용은 제대로 공부한 법대출신이면 다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의 해석과 적용은 판사의 양심입니다. 고시(사법시험)는 다만 (판사) 임용의 객관적 기준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면서 ‘법관정풍운동’은 곧 양심운동임을 강조했다. 벌써 3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의 그 후배 판사들도 귀담아 들을만한 법언이라고 굳게 믿는다. 서울남부지법 어느 형사단독 판사가 특정 종교의 교리를 내세운 양심적 병역거부에 내린 무죄판결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 판결의 법리적 오류는 따로 밝힌 바가 있으므로 여기선 재론 않겠다) 물론 시대의 변천은 사고(思考)의 변화를 요구받는다. 겨울에 여름옷을 입을 수 없고 여름에 겨울 옷을 입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옷이든 옷은 옷다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재조든 재야든 법조계의 사고력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것은 인정한다. 이것이 곧 사회발전이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것은 법조계의 세력화 경향이다. 법조의 세력화는 법조 개개인의 양심의 독립을 저해할 수가 있다. 국가사회의 법질서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라 할 재판이 행여라도 이로 인해 사회적 불신이 싹 튼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미 오래 전에 조계종 종정을 지내고 열반한 효봉스님은 일찍이 판사를 했던 분이다. 그가 뒤늦게 출가하여 세속과 인연을 끊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오판에 대한 참회였다. 모든 게 판사 마음에 달린 재판의 자유심증주의는 이토록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판사 일을 하는 동안은 판사가 판사다워야 하고 판사다움은 스스로가 터득해야 한다. 판사가 별 거냐는 의문에 별 거인 게 맞다는 항등식이 이래서 성립된다. /임양은 주필

천자춘추/쌀! 왜 중요한가?

우리 농업을 이끌고 온 대표적 품목은 쌀이다. 먹거리의 대표적인 쌀을 생산하는 우리 농업인이 천하의 근본이 되었음은 우리 조상님들이 쌀을 얼마나 소중히 여겨 왔는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또한 모든 지구인도 쌀이 소중하기에 유엔에서 올해를 ‘쌀의 해’로 정했다. 그러나 쌀의 해를 맞는 우리의 심정은 매우 착잡하기 그지 없다. 올해는 95년 UR협상에서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 받아, 쌀에 대한 관세화를 10년간 유예로 국내 쌀소비량의 1~4%까지 최소시장접근(MMA)물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마지막 해이다. 그리고 올해는 쌀에 대한 재협상으로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든가, 아니면 관세화로 전면 개방을 하든가를 결정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해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96억달러어치의 농산물을 수입하고 16억달러어치를 수출함으로써 농산물 무역에서 8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고 농촌경제연구원에서 최근 발표한 식량자급률이 47%로 사상 최저에 이르고 있다. 쌀은 비교역적 기능과 다원적 기능이 너무나도 큰 농산물이다. 단순한 경제논리로 다루어 포기하거나 값싼 수입쌀에 의존하기에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전통적으로 쌀을 보호해야 할 가치로서 식량안보기능은 우리가 식량자급률을 지켜나가야 하는 중요한 몫이되어 논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쌀생산과 연계된 소위 비교역적 기능(NTC)의 위축으로 인한 국민경제의 새로운 비용 문제에 대하여도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아시아적 몬순기후대에 속한 한국과 일본은 논의 홍수조절기능 등 국토와 환경보존 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들은 논농업의 지역사회 유지기능과 경관 유지기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비교역적 기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선진국에서 농가소득의 절반 이상을 직접 보조하고 이를 늘려가고 있음은 결국 비교역적 기능의 중요성 때문이 아닌가? 아무튼 논농업을 포함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50조원에 이른다하니 쌀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는 이제 쌀은 식량안보, 농촌사회 유지, 환경보존, 전통문화와 가치관의 계승, 고용창출과 유지, 국토의 균형적 발전에 기여하며 유망한 미래산업이라는 올바른 농업관을 확산 시키고,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국내 농업정책을 통해 우리농업· 농촌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시켜 나아가야 한다. /박재근.농협경기지역본부장

"5월 27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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