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의 ‘오류’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재판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기피의 판단기준을 비교적 소상하게 제시하기는 했다. ‘오직 양심에 따른 결정임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과정·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특별한 사정·거부 결정 전후 종교나 양심과 관련된 지속적인 사회활동 여부’ 등을 유형으로 제시했다. 같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기소된 4명중 3명은 무죄를 선고하고 1명은 실형을 선고한 이유가 바로 이같은 재판부의 자의적 판단기준의 차이 때문인 것으로 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주관적 판단기준을 수많은 병역거부 신도들을 대상으로 기소전에 국가 공권력이 일일이 점검할 수도 없고, 또 그럴 의무가 없다고 보아 재판부의 그같은 판단기준 자체가 국가사회에서 필요치 않다는 생각을 갖는다. 재판부가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면서 무엇보다 헌법이 정한 병역의무를 간과한 것은 큰 오류다. 또 양심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같은 공공성이 아닌 개인의 인생관, 종교관 등 사생활까지 실정법을 초월하여 보호받는다고는 믿지 않는다. 더욱이 헌법상의 병역 의무보다 한 종파의 교리에 불과한 집총 거부의 교리를 더 우위로 본 판결은 법치국가 사회에선 승복하기가 심히 어렵다. 담당 판사는 대안으로 대체복무의 필요성을 밝혔으나 당치않다. 독일의 대체복무법을 참고했다지만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에서 대체복무가 허용된 나라는 독일 말고도 여러 나라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병역의무가 부하받고 있는 특수성이 있다. 대체복무가 허용된 나라치고 우리처럼 군사적 대치가 첨예한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담당 판사가 남북의 군사력 대치를 어디까지나 낙관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나라의 안위에 부담이 용인될 수는 없다. 현실을 비약한 그같은 판단은 현실에 적응될 수 없다고 보는 게 객관적 관점이다. 군입대의 병역의무는 국방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작전에 내놓는 적극적 행위다. 이처럼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대체복무를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인 지 묻는다. 서울남부지법의 한 형사단독 판사의 판결은 법리면에선 헌법상 병역의무를 간과, 양심의 자유를 헌법보다 교리에 치중해 잘못 해석한 오류를 지녔으며, 사실면에서는 국민개병주의를 해치고, 정황면에서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사시(斜視)적 판결이라고 보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금감의 ‘한도감액 기준’을 환영한다

앞으로 경영사정이 어려워진 중소기업의 대출을 은행 맘대로 줄이거나 중단하지 못하게 된 것은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다. 기업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는 현행 기업대출약정서를 개선, 은행들이 자의적 판단 하에 기업여신을 임의로 조정하지 못하도록 금융감독원이 나선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금감원은 이를 위해 은행의 기업대출 담당자들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뒤 은행권 공동의 ‘기업대출 한도감액 기준’을 만들어 3·4 분기 중 은행들의 내규에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행 기업 대출 약정서에는 ‘국가경제· 금융 사정의 급격한 변동 또는 본인의 신용 상태의 현저한 악화 등으로 여신 거래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판단될 때’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감액 또는 중단할 수 있게 규정돼 있다. 이같이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규정을 근거로 그동안 은행들은 일시적인 경영난에 직면한 중소기업에 대해 마이너스 대출 한도를 일방적으로 줄이거나 한도가 남아 있는 대출도 거부하여 중소기업들이 극심한 애로를 겪었다. 대출길이 막힌 중소기업들은 자금난을 겪다 못해 사채를 썼다가 고금리에 시달리는가 하면 사채시장에서 어음할인 금리도 올라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 들어 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사금융 관련 신고 건수는 1월 211건, 2월 213건, 3월 224건에 이어 지난 달 227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 이 중 고금리 관련 신고는 2월 46건, 3월 33건에서 지난 달에는 51건으로 다시 급증했다. 특히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가 대부업법에 따른 이자 상한선인 연 66%를 넘는 고금리에 시달리는 사례가 최근 잇따라 신고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빚을 얻어 은행권 대출을 갚는 악순환의 연속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으로 줄줄이 무너질 경우, 국내 경제기반이 붕괴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금융감독원이 만들 한도감액 기준을 환영하며 은행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한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은행도 존립하는 것이다.

사제 관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22세(1783년)때 과거에 급제하여 75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53년의 파란만장한 공적(公的) 삶을 살았다. 53년 중 20년간을 유배생활로 보냈다. 그 중 18년간을 전남 강진 한 곳에서만 지냈다. 이 유배생활 중 다산은 많은 젊은이와 스승-제자의 인연을 맺었는데 황상(黃裳·1788~1863)이라는 제자와의 관계는 사제지간의 표상이었다. 강진 유배생활을 시작할 때 다산은 38세였다. 12세 황상이 다산을 찾아와 제자되기를 청했다. 매사에 자신(自信)이 부족하고 소극적이었던 황상을 다산은 잘 보살펴 주었다. 황상도 시골에서 보기 드문 다산의 진면목을 깊이 이해하고 그의 가르침을 실행에 옮겼다. 12세였던 황상은 30세에 이르고 다산은 56세의 노인이 됐다. 회갑을 몇년 앞두고 유배에서 풀려난 다산은 강진을 떠나 고향인 경기도 마재로 돌아왔다. 황상을 비롯한 강진의 제자들은 다산이 좋아하는 차(茶)를 매년 마재로 부쳐 보내곤 하였다. 다시 18년의 세월이 흘러 황상이 48세에 이르고 다산은 74세의 노인이 됐다. 황상은 스승 다산이 그리워 열흘을 걷는 긴 여행길에 올랐다. 18년 만에 스승과 제자는 해후의 기쁨을 만끽하고 황상은 귀향길에 올랐다. 그러나 귀향 중에 다산의 부음을 듣고 길을 되돌려 상을 치른 후 강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0년 후 58세의 황상은 타계한 스승이 그리워 열흘 길을 걸어 다산의 생가를 다시 찾았다. 다산의 아들들은 이런 황상의 정성을 다하는 제자 모습에 감격하여 정씨(丁氏)와 황씨(黃氏), 두 가문의 계약을 맺었다. “두 집안의 후손들은 대대로 신의를 맺고 우의를 다져갈 진저. 계(契)를 맺은 문서를 제군들에게 돌리노니 삶가 잃어버리지 말라.”고 하였다. 이를 후세사람들은 이른바 ‘정황계안(丁黃契案)이라고 불렀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과 감사가 부족한 오늘날 절실하게 생각 나는 다산과 황상 간의 전설같은 일화이다. 무릇 사제지간의 관계는 이래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열린글밭/좋은 벗이란

올바르게 벗을 사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덕을 사귀어야 한다. 자기가 잘난 것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자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들의 관계는 친밀할 수도 없고 오래 갈 수도 없다. 상대방에게 겸손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들기보다는 교만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마음이 벗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벗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벗의 환경이나 지위 등이 자신보다 못하다 하여 정신적 우월감을 가지고 친구를 대하여서는 안된다. 벗을 사귈때에는 내가 나이가 많다고 자랑하지 말고 내가 존귀한 사람이라고 자랑하지 말며 형제가 많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벗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덕성을 벗하는 것이니 자신이 남보다 나은 점을 믿어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된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보면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하라”는 말이 있다.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고 악한 이는 멀리하라는 말이다. 또한 “대자(大者)는 위형(爲兄)하고 소자(小者)는 위제(爲弟)니라”는 말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은 형이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동생이라 한다. ‘군자는 남들과 조화로울 줄 아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는 않고 소인은 남들에게 부화뇌동하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말이 있다. 이말은 벗을 사귀는데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선조에 남이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또 남이웅(南以雄)의 절친한 벗으로 조경(趙絅)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남이웅은 성격이 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않고 호탕하였으나 조경은 청백하고 검약한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두 사람을 보니 성격과 기질은 전혀 다른데도 친하기가 이를데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묻기를 “보통 사람이 서로 벗하는 것은 반드시 뜻과 취미가 서로 맞은 뒤라야만 오래토록 변치 않는 법인데 공과 남공은 서로 뜻이 같지 않으면서도 사귐이 깊으니 어찌된 까닭입니까”하니 조경이 웃으며 대답하기를 “나는 천성이 좁기때문에 남공의 넓은 것을 즐기고, 남공은 너무 화통하기 때문에 나의 검약한 것을 즐기는 까닭입니다”라고 하였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그리고 성서로운 부처님이 이 땅에서 출현하신 달이기도 하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이겨내야 하겠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내려오신 것도 모든이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서이다. 세상은 혼자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도반, 즉 친구가 없으면 훌륭한 인격체로 선근도 갖추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바로 좋은 벗인 것이다. 우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지만 무턱대고 부화뇌동하지 않는 친구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성형스님.의왕 청계사 주지

천자춘추/광명 오리문화제 성료

제13회 광명 오리문화제가 성공적으로 막(16일)을 내렸다. 35만 광명시민을 위해 해마다 5월에 광명문화원이 펼치는 광명의 유일무이한 문화축제다. ‘오리’란 이름은 광명시의 정신적 지주요, 역사적 인물로 숭앙돼온 조선 중기 이원익(李元翼: 1547~1634) 선생의 호를 따 붙인 것으로, 그의 올곧은 성품과 사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오리문화제는 지난 14일(금) ‘빛으로 여는 광명’이란 주제 아래, 아침 10시에 백재현 시장을 비롯한 관내 주요인사들의 충현서원지 참배를 시작으로, 저녁에는 인기가수 유열, 한영애와 함께 하는 화려한 개막공연으로 그 열기를 더했었다. 둘째 날에는 ‘음악도시 광명’이라는 타이틀에 오리대감과 함께 하는 ‘명시민 거리행렬’로, 저녁에는 라이브의 황제 이승철과 80년대 이후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봄여름가을겨울’ 밴드 등 국내 록스타가 총출연해 제1회 월드뮤직인 ‘KBS 록의 발자취’를 선보였다. 마지막(16일) 날은 봉산탈춤, 개똥아 놀자, 외줄타기, 쇼태권, 블루그래스 등 30여 가지의 ‘광명가족사랑 큰잔치’로 흥미로웠다. 차제에 잠시 문화예술을 생각해보자. 어서, 문화의 서울집중과 예술의 중앙성을 탈피하고, 지방문화를 적극 키워야 한다. 요즈음 각 시·군들이 각종 문화예술행사를 잡다히 벌이고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 과연 진정한 의미의 지방문화가 있는가? 그 질은 어떠한가? 답답할 뿐이다. 지역간 불균형은 물론, 중앙문화에의 선호가 지역문화의 특수성과 문화향유자의 개성을 마비시키고 있잖은가. 더욱이 우리 광명은 수도권의 전위에 있어 바로 이런 폐해에 직접적이다. 까닭에 광명시가 타 시에 비해 비교적 활발하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멀다. 시 당국은 앞으로 더욱 광명문화원(안수남 원장)과 광명예총(김진 지부장)이라는 두 축을 십분 활용하며, 과감한 예산지원과 행정적 뒷받침을 통해 보다 광명 특유의 획기적인 문화예술 발전책을 펴야만 한다. 하여, 고상하고 품격 높은 문화예술의 광명에 산다는 데에 모든 시민이 자부와 긍지를 갖고, 진정으로 ‘시민이 살고싶은 도시 광명’에서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었음 좋겠다. /김남웅.충현고등학교장-시인

기고/국무총리 제도에 대한 재고

대통령 탄핵문제가 헌법재판소의 기각판결로 끝이 났다. 여야 모두 앞으로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산적한 문제들을 고려할 때 말처럼 순탄할 것 같지마는 않다. 우선 여야는 국무총리 임명을 놓고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우리당에 입당한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국무총리로 임명하려고 하는데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여야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 국무총리 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국무총리는 본래 의원내각제 통치구조에 적합한 제도인데 헌법제정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대한민국 헌법에 도입되었다. 상해에서 귀국한 임시정부 세력들은 자신들이 채택해왔던 의원내각제를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부형태로 주장하였고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 측은 미국식 대통령제를 주장하였다. 그런데 당시는 미군정의 영향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이승만 측의 주장이 대부분 채택되었고 임시정부 세력은 유명무실한 국무총리 제도를 헌법에 삽입시키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렇게 도입된 국무총리 제도는 30여년의 군사정권과 김영삼 정권에서 대통령을 향한 정치적 비판을 막는 방탄용으로 사용되어 왔고 김대중 정권에서는 DJP연합의 권력분점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국무총리 제도는 정치적 민주성과 행정적 효율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먼저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국무총리가 대신 책임을 졌기 때문에 대통령은 실정을 저지르고도 계속 집권할 수 있었다. 또한 이번 탄핵사태와 같이 대통령 유고시 국무총리가 대행하는 것도 민주주의 원리상 큰 문제다. 국무총리는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고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는데 이렇게 민주적 정통성이 낮은 사람이 한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로서 국정을 총괄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에는 다행히 큰 일 없이 넘어갔지만 국민들의 신체와 재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위기나 전쟁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국무총리의 낮은 정치적 정당성으로 인해 상상하기 힘든 정치적 혼란이 초래되었을 것이다. 행정적 측면에서도 국무총리 제도는 비효율을 초래한다. 헌법에 규정된 국무총리의 권한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능은 차관회의, 경제차관회의, 경제장관회의,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 국무회의, 청와대비서실 같은 다양한 기제에 의해 수행되고 있어 국무총리실은 사실상 정책결정의 속도만 지연시키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책임총리제를 주창하면서 국무총리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이양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조차도 최근에 청와대비서실의 정책조정기능을 다시 강화하여 국무총리실을 더욱 더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제반사항들을 고려할 때 다음 헌법개정에서는 미국식 정부통령 러닝메이트제를 도입하여 국무총리직을 폐지하고 국민들 다수의 지지를 받은 부통령이 대통령 유고시에 권한을 대행하게 하거나 아니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여 대통령직을 폐지하고 국무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태수.경기대 행정학과 교수

"5월 22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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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력중심 일본이동, 제2 ‘덜레스라인’?

미국의 동아시아 전력 중심의 일본 이동은 덜레스라인을 연상케 한다. 1950년 초, 덜레스 미국무장관은 롤백정책에 의한 세계의 집단 안전보장을 강화한다면서 극동방위선을 한반도를 제외한 일본으로 정했다. 이 무렵 남한에선 이미 미군이 완전 철군하였다. 해외 미군 재배치계획의 일환인 미국의 동아시아 전력 중심 일본 이동은 철군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은 전력투사기지(PPH)로 1등급인 데 비해 남한은 주요작전기지(MOB)로 2등급으로 전락, 주한미군사령관의 직급 또한 대장에서 중장으로 하향 조정된다. 이만이 아니다. 주한 미육군의 재배치안은 거의 완전 철군에 가까운 제6안까지 있어 앞으로 단계적 감축을 부정하기가 심히 어려운 상황이다. 수도권을 집중대상으로 하는 북의 장거리 화력에 어떤 대응책이 있느냐와 유사시 미군이 얼마나 기민하게 개입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과제다. 미군의 주둔가치를 자산적 가치, 군사적 가치, 안보적 가치를 통틀어 110조원 이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 국방부 자료다. 자주국방은 더 할 수 없이 좋지만 이를 위해선 20년간 209조원이 소요된다는 게 국방연구원의 분석이다. 무슨 전쟁 걱정이냐고들 말한다. 이를 우려하면 시대를 모르는 꼴통보수의 반공논리라고 매도하겠지만, 이는 반공도 아니고 안보에 보수·진보가 있을 수 없다. 1950년에도 그랬다. 아무도 남침이 있을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못했다. 그러했던 것이 어느날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 3년여의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을 벌였다. 대화는 50여년 전에도 없었던 게 아니다. 평양의 고려호텔에 연금된 조만식 선생과 남한에 검거된 남로당 거물간첩 김삼룡과 이주하의 신병교환을 저들이 먼저 제의해 전쟁발발 직전까지 대화가 있었다. 덜레스라인은 남침을 해도 미국의 개입이 없을 것으로 본 크렘린의 오판을 불러 일으켜 평양정권이 소련서 지원받은 탱크를 앞세워 총 공격을 자행한 것이 한국전쟁이다. 다 나간 주한미군을 불러 들인게 전쟁을 일으킨 저들이다. 평화는 안보에 허점이 없어야 지켜진다. 한·미 동맹의 변화에 이런 우려를 배제하기가 무척 어렵게 돌아간다. 미국과의 변화를 불사한다 하여 중국이나 일본 또는 러시아 등 다른 나라와 크게 선린관계가 형성된 것도 아니다. 이 정부는 새로운 외교방향에 대한 모델 설정도 없이 국제적 고립만 자초하는 것 같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듣고 싶다

추곡수매값 인하는 철회돼야 한다

2004년산 추곡수매가격을 4%나 인하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황당하다. 인상을 해도 살기 어려운 판국에 현상유지도 아니고 인하라니 어이가 없다. 올 들어 물가가 각종 농자재값을 비롯해 모두 인상돼 서민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는 터에 유독 쌀값만 떨어뜨리려는 정부의 방침은 그러잖아도 빚더미에 눌려 허덕이는 400만 농업인들에게 농사를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쌀은 수입에만 의존하겠다는 것인가. 더구나 올해 논벼 재배면적은 100만㏊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전국 3천200표본농가를 대상으로 올해 쌀 농사 의향을 조사한 결과, 올해 논벼 재배면적이 98만7천㏊로 추정돼 지난해(100만2천㏊)보다 1.4%가 줄어드는 것으로 집계됐다. 논벼 재배면적에 100만㏊로 줄어드는 것은 정부승인 통계가 시작된 1965년 논벼 면적 119만9천㏊ 이후 처음이다. 벼 재배면적이 이렇게 급감하고 농업인들이 영농의욕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 밝혀진 추곡수매가격 인하는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물론 도하개발아젠다(DDA)농업협상 등 시장개방 확대에 따른 농업·농촌의 충격을 완화해가기 위해 쌀의 국내외 가격차를 축소하고 쌀 수급 균형을 도모하려는 정부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매가격 인하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 보전을 위한 구체적인 소득안정대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실책이다. 따라서 정부는 농업인들이 납득할 만한 농가소득 보전대책을 사전에 확보하지 않은 추곡수매가격 인하는 철회돼야 마땅하다. 만일 수매가격 인하가 불가피하다면 이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를 충분하게 보상할 수 있도록 논농업 직접지불제 확대 등 구체적인 소득보전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농업인들이 안심하고 쌀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쌀 수급 및 소득안정대책과 식량자급률 목표치 설정을 포함하는 쌀산업 종합대책을 조속히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도 없이 수매값만 내리고 더구나 내년부터 수매제 폐지를 강행한다면 우리나라의 농림부는 있으나 마나 한 정부기구에 불과하다. 농림부의 대책을 전 농업인들과 함께 지켜보고자 한다.

화술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는 어려서부터 말재주로 유명했다. 나이 든 두 명의 시인이 시험삼아 그를 찾아왔다. 한 사람이 홰(槐)나무에 올라가 물었다. “내가 무슨 나무 위에 있는가?” “소나무 입니다.” “왜 그런가?” “어르신께서는 나이가 많으시니 할아버지(公)입니다. 공(公)자 옆에 나무가 있으니 소나무(松)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시인이 같은 나무에 올라가 물었다. “이 나무도 소나무이니 나도 할아버지가 되겠구나?” “그 나무는 홰나무 입니다.” “왜 전과 다르게 말하느냐?” “이전과 다르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귀신(鬼)이 나무 위에 있으니 홰나무(槐)가 맞습니다.” 두 시인이 감탄해 마지 않았다. ‘자사생합(字詞省合)’, 글자를 해체하거나 조합해서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책략이다. ‘부와 지위의 상징’인 더글러스는 대선에서 “저는 링컨이라는 시골뜨기에 귀족의 맛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링컨은 유세 때 이렇게 말했다. “더글러스는 체신장관, 토지장관, 내무장관 등을 역임한 큰 인물입니다. 반면에 제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의 재산이 얼마인 지 물어 봅니다. 저에게는 아내와 아들 하나밖에 없지만 그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입니다. 게다가 저는 의지할 데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의지할 곳은 오직 여러분들 뿐입니다.” 더글러스의 자랑은 부메랑이 되어 약자를 멸시하는 행위로 비치게 됐다. 부드러움으로 견고함을 이기는 ‘이유극강(以柔克剛)’이다. 일부러 어리석은 척 하는 ‘가치부전(假痴不顚)’, 제가 놓은 덫에 걸리게 하는 ‘청군입옹(請君入瓮)’, 괴이한 물음에는 괴이하게 대답하는 ‘괴문괴답(怪問怪答)’, 잘못한 김에 계속 잘못을 저지르는 ‘장착취착(將錯就錯)’, 사람에 따라 달리 말하라는 ‘인인시언(因人施言)’ 등 화술은 다양하다. 상대를 이기는 데만 힘을 쏟는 변론술의 맹점은 진실의 누락이다. 세치 혀가 백만군사보다 강할 때가 있지만 능란한 화술은 약(藥)이 될 수도 있고,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정치판 달변가들이 쏟아내는 ‘말’이 불안할 때가 많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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