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퍼킨수스 방관이 소임인가

해양 어족자원 보호는 해양수산부의 절대적 소임이다. 이런데도 바지락 등 종패류의 구제역이라는 퍼킨수스 감염에 손놓고 있다는 보도는 해수부의 양식을 의심케 한다. 국내 양식어장 중 이에 감염된 바지락 등 종패류 어장이 4만7천138㏊에 이른 것은 국립수산과학원이 파악한 실태다. 서해만이 아니고 남해까지 크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퍼킨수스 감염은 올해 처음 발생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처음이 아니고 해마다 확산되고 있는데도 그동안 계속 방치해오고 있는 데 있다. 퍼킨수스에 관한 전문가가 없어 예방책을 강구하지 못한다면 그래 어민들 피해를 무작정 방관만 하는 것이 해수부의 소임인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연·근해의 어족자원도 마땅히 보호돼야 한다. 하물며 바닷속도 아닌 갯벌 자원인 패류 하나를 제대로 보호할 줄 모른다면 ‘해양수산부’라는 간판이 실로 무색하다. 해수부측은 자연재해가 있을 때 부정기적으로 폐사량을 조사해 어민들에게 복구비를 지원한다는 것 같다. 적조나 태풍 등 자연재해 때의 그같은 조치는 새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퍼킨수스 감염은 자연재해가 아닌 양식재해다. 어민들이 자구책을 강구할 수 없는 양식재해의 병원균이 집단으로 발생하였으면 정부가 마땅히 나서야 하는데도, 소관 부처인 해수부가 이 모양이니 어민들 사정이 참으로 딱하다. 어족자원에 관한한 무엇 한가지도 소홀해선 안되는 긴장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 소관 부처의 정상적 자세다. 퍼킨수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알만한 외국인 전문가에게 배워 오거나 초청해서라도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차선책이다. 이도 안되면 최소한의 성실한 자체 노력이라도 보이는 것이 정부 부처가 요구받는 기능이다. 병원균에 의한 어패류 집단 폐사는 비단 바지락 등 종패에 국한하는 일만은 아니다. 다른 어패류에도 얼마든 지 있을 수가 있다. 걱정되는 것은 해수부의 인식이다. 선진 외국의 해양산업은 점점 과학화·첨단화하는 데 비해 국내 해양산업 행정은 아직도 돛단 배 시절 수준에 머문 것만 같다. 퍼킨수스 감염 대책 또한 안일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뭐가 보여도 비로소 보일 거라는 점을 일러 둔다.

아방궁

진나라 함양에 항우보다 먼저 입성, 진시황에 이은 2세 황제 자영의 항복을 받은 것은 유방이었다. 휘황찬란한 아방궁,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 미색의 궁녀들로 보이는 것마다 눈이 휘둥그래 졌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협객노릇을 하다가 겨우 정장(면장) 벼슬에 있었던 그로서는 궁에 머물며 호사를 누리고 싶었다. 용장 번쾌가 간했으나 듣지않자 군사 장량이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좋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함에 이롭다’(良藥苦於口而利於病 忠言逆於耳而利於行)면서 거듭 주청하여 성밖 패상에서 야영하며 항우가 오기를 기다렸다. 유방은 뒤에 해하의 일전에서 항우를 궤멸시켜 천하통일을 이루고 한 고조에 올랐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항우에 비해 군사력이 열세였던 것이다. 뒤늦게 함양에 당도한 항우는 유방이 야영을 하며 자신을 기다린 것을 알고는 유방을 더 의심하지 않은 게 뒤에 패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아방궁이 별천지처럼 보이기는 항우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는 닥치는대로 노략질 하고는 불을 질렀다. 한서(漢書) 등 중국 역사는 무려 석달동안이나 불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진시황이 궁궐로 지은 아방궁은 불탄 것이 아니라는 외신이 전해져 주목을 끈다. 그토록 오래 탔다면 불탄 흙이나 목탄이 발견돼야 하는 데 그런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방궁의 규모를 동서 1천270m, 남북 426m로 확인한 중국 고고학자들은 불탄 것은 아방궁 부속 건물인 함양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조사단은 지난 1년동안 많은 인원을 동원한 탐사 시굴끝에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한서는 고조에서 왕망까지 전한(前漢)의 229년간 역사를 반표, 반고, 반소 등이 120권의 책으로 저술한 것이다. 한고조의 라이벌이던 항우를 악랄하게 묘사하기 위해 아방궁을 불태웠다고 기록했을 지 모른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다’란 말이 생각난다./임양은 주필

기고/모든 것을 용서하는 연말

인간은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 속에는 하기 쉬운 일도 있고 하기 어려운 일도 있게 마련이다. 인생살이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두가지 있는데 첫째는 죄를 안 짓는 일이고, 둘째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Forgiveness)하는 일이다. 인간이 죄를 짓지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람이 어떤 특정종교를 갖지않고 있더라도 선하게 살아야할 책임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죄를 짓지않고 선하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남을 용서하는 일일 것이다. 용서(容恕)란 무엇인가. 동양적 의미에서 容(얼굴용, 담을용, 용납할용, 용서할용)은, 즉 집(家)안일로 골짜기(谷)처럼 너그러운 주름이 파인 얼굴을 뜻하며, 恕(어릴서, 동정할서, 용서할서)란 같을 여(如)에 마음심(心), 즉 네 마음과 내 마음이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에는 고의든, 실수에 의한 것이든 상대의 잘못이 전제되며, 그 상대의 잘못에 의해 우리가 또는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게되는 것이다. 상대는 정부단위에서는 중앙과 지방, 단체와 단체, 직장에선 상급자와 하급자, 동료, 가족관계 등 광범위하다. 그러나 그 잘못이 어떤 것이든 문제 삼지않는 것이 용서이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림을 그리고 있을때, 젊은 조수의 부주의에 의해 중요한 시기에 페인트 몇방울을 흘렸다. 다빈치는 진노하여 젊은 조수에게 심한 말을 마구하며 꾸짖었다. 그 소년은 울적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 버렸다. 다빈치는 혼자 쓸쓸히 그림을 계속 그리려고 붓을 들었으나 갑자기 손이 얼어붙어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그의 창조력을 봉쇄시키고 말았다. 결국 그는 붓을 집어던지고 밖으로 나가서 울고있는 그 소년을 찾았다. 그는 소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사과하였다. 다빈치는 소년과 함께 화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붓을 잡고 그림앞에 앉자 다시 창조력이 생겨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연약하다. 그 연약함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고자 하지만, 결국 많은 잘못과 시행착오를 되풀이한다. 시인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다”고 노래했지만, 정말 그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일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당면업무를 추진하면서 수많은 갈등속에서 상대의 잘못을 사랑으로 감싸고, 이해로 포옹하는 용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행위다. 카네기는 ‘용서하는 자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그 불완전 때문에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 그 잘못은 서로 감싸주고 용서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용서의 방법에는 우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받은 상처를 인정해야 한다. 그후 자신의 불이익에 대한 적개심을 되갚으려는 마음을 버려야 할 것이다. 계미년을 보내면서 상대가 누구이든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자.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현대사회의 진정하고 아름다운 지도자로 남게 될 것이다. /박원용.국가전문행정연수원

천자춘추/정지선을 지킵시다

운전자들이 빈번한 사고를 내는 원인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 일단정지를 무시하는 사례이다. 정지해야 할 곳에서 정지하지 않고 달리다가 사고를 내는 교통사고처럼 부부간에도 일단정지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데서 빈번한 사고(다툼)가 일어남을 알 수 있다. 부부가 일단정지를 해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들어보나 마나 뻔하다’라는 식으로의 일방통행은 상대방을 무시할뿐더러 서로간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정지(Stop)란 약속을 의미한다. 서로를 신뢰하고 믿는 마음으로 일단정지해서 무슨 문제는 없는지, 주위의 상황을 점검하고 다시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지’하는 것에 인색하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또 불편하다는 이유로 상대방보다는 자기 생각을 우선시 하기에 멈출 생각을 않는다. 이러한 평상적 운행습관이 인간관계 안에서 자기 입장만을 고려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얼마전 미국에 갔다가 신호등이 없는 정지선 (Stop Line)을 정확하게 지키는 국민의식을 보면서 그들의 대화 자세도 생각해 보았다. 눈만 마주쳐도 ‘하이(Hi)’하고 인사하는 그들의 정서, 그리고 아무리 급해도 남을 배려하며 기다릴줄 아는 그들의 여유… 그것이 곧 그들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습성인 것이다. 정지(Stop)란 남을 배려하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하는 마음의 경청의 자세가 바로 확립되어야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똑같은 소리라도 그때 그때 감정에 따라 다른 법이다. 등산하는 사람들은 같은산을 오르면서도 늘 새롭다고 한다. 왜냐하면 기후조건, 자연의 변화, 자신의 컨디션 등이 항상 새로운 산을 오르는 기분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만나는 가족들이지만 늘 새로운 관계로 서로를 사랑하려면 멈추어 서서 상대방의 입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송영오.인덕원성당 주임신부

12월 9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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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안전대책 빈틈없어야

겨울철이 본격적으로 다가왔다. 지난 일요일은 금년들어 전국적으로 영하 10도가 넘는 한파가 몰아쳐 전국이 꽁꽁 얼어붙더니, 어제 새벽부터는 경기 일원을 비롯하여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첫눈이 내렸다. 금년 들어 처음 오는 눈으로는 상당히 많은 양을 기록하여 수원을 비롯, 대도시 출근길에는 차량 사고도 많았으며 또한 각종 동파사고가 발생하였다. 다행히 큰 인명 사고는 없었으나 겨울철 안전 대책이 새삼 요구되고 있다. 겨울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설장비의 점검과 더불어 비상 동원 체제의 운영이다. 어제만해도 대부분 도로가 제설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각종 차량 사고와 보행자들의 빙판 사고가 많이 발생하였다. 예상치 못했던 많은 눈이기는 하지만 제설 대책이 적절하게 가동되었다면 사고를 더욱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일부 시·군에서는 제설 작업은 물론 재해 대책 기구가 제때 가동치 않아 주민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겨울철 화재 예방 점검 또한 더욱 철저를 기해야 될 것이다. 추운 겨울철이 되므로 각종 난방 기구의 사용이 급격히 증가함으로써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일반 가정은 물론 대형 작업장에서 화재 발생시 그 피해는 상당하다. 따라서 난방 기구의 안전 사용 요령에 대한 주의 환기뿐만 아니라 각종 전기장치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요구된다. 특히 소방 당국은 화재 예방 및 발생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대국민 홍보를 더욱 강화해야 된다. 아울러 현재 실시되고 있는 각종 건설 사업을 비롯한 공사현장의 안전사고에 대한 철저한 대책이 있어야 된다. 수원시를 비롯한 경기도 일원에서는 최근 가스배관 매설공사 등 각종 공사가 연말을 맞아 예산 지출 관계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겨울철 공사이기에 더욱 완벽을 기해야함은 물론이고 공사 지역에 대한 안전 표시를 시민들이나 차량들이 잘 인식할 수 있도록 설치하여 사고가 발생치 않도록 해야 된다. 시민 스스로의 겨울철 안전 의식에 긴장감을 갖는 것 역시 주요하다. 사고는 안전의식이 희박할 때 발생한다. 지자체를 비롯한 관계 기관의 안전 대책에만 기대지 말고 시민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겨울철 안전 대책을 철저히 이행해야 할 것으로 본다.

개각보다 중요한 것

대통령책임제하의 내각은 대통령에 대한 신임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각료의 잘못은 대통령에게 책임지는 것이 지 국민에게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 각료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에게 묻는 것이 대통령책임제다. 연말에 소폭 개각이 있을 것이라 하여 별 의미가 있을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물론 개각이 관심사가 아닐 수는 없다.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가늠하는 것 뿐이다. 더욱이 내각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제대로 서지 못하는 지금같은 형편에서는 더 말할 게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국정의 무게를 내각에 두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말처럼 제대로 이행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심히 어렵다. 예컨대 경제각료의 정책 제시를 청와대 비서실에서 뒤엎고, 파병 문제에 외교부나 국방부와 다른 말이 청와대에서 돌출하곤 하는 것은 내각의 권위와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능을 가질 뿐, 의사결정 능력을 지닌 기관은 아니다. 한데도 대통령 그늘을 호가호위 삼아 마치 내각위에 군림하듯이 하는 것은 정상 시스템이 아니다. 정부조직법 어디에도 내각이 청와대 비서실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 규정은 없다. 국정운영의 중심이 내각에 쏠려도 대통령책임제 하에서는 내각책임제와 달리 국정의 최고 책임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이러므로 하여 평소 야당이 거국내각이니, 중립내각이니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가져왔다. 야당이 참여하는 거국내각은 대통령의 책임을 희석시킬 뿐 아무 실효가 있을 수 없다. 또 대통령책임제에서 중립내각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연말 소폭 개각에 이어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는 조각 수준의 개각이 있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각료 기용이 좀 더 전문성이 있고 중량감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부터 가져왔다. 국정은 실험대상도 아니고 연습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정시스템의 정상화다. 비서실이 더이상 내각 일에 나서는 폐습이 지속되어서는 국정운영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된다 할 수가 없다.

송두율의 전범 숭배

‘위대한 민족의 태양이시며,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탁월한 영도자의 한 분이시며, 강철의 영장이시며, 백전백승 불패의 탁월한 전략가이시며, 사회주의 공화국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한없는 충성심과 끝없는 경애심으로 흠모하는 위대한 김일성 주석님…!’ 북의 ‘김일성 수령’ 호칭앞에 으레 이같은 극찬의 긴 겹치기 수식어가 붙곤했다. 그가 죽은 지 벌써 8년째지만 ‘위대한 김일성 동지 만세’ 같은 구호는 지금도 나붙어 있다. 유훈통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38선 전역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은 남북간에 전투원 비전투원 할 것 없이 30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1천만 이산가족을 냈다. 동족상잔 3년여의 전쟁을 치르면서 한반도는 폐허화 하였다.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겪게 한다. 이 전쟁이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군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내린 진격 명령으로 일어났다. 이른바 그들이 ‘남반부 해방전쟁’이라고 말하는 참혹한 동족상잔의 1급 전범이 곧 김일성인 것이다. 남북간에 장관급회담을 비롯한 공식 접촉, 그리고 민간인 접촉이 활발하면서 왕래 또한 많이 한다. 평화공존, 평화통일은 어떻든 서로 많이 만나고 많이 왔다 갔다 해야 물꼬가 트인다. 다만 아직 한국전쟁의 책임을 따지지 않고 전범 규명을 않는 것은 지금 그러한 과거를 말하면 남북관계가 다시 꼬일 수 밖에 없으므로 미루고 있는 것이다. 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탓인 지 잊거나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은 것 같다. 그렇다고 전범의 책임이 민족사에서 지워질 수는 없는 일이다. 재독학자 송두율이란 사람이 “조국의 민주화 통일을 화두로 삼아 살아왔다…”고 지난번 첫 공판에서 진술했다. 김일성 주석의 총애를 받는 가운데 평양을 제집 안방 드나들듯이 하며 금품수수까지 했으면서 노동당 규약은 모른다고도 했다. 하지만 검찰에선 “김일성 수령을 존경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부인하는 화술은 실로 현란하다. 그러나 동족상잔의 전범을 존경한다는 그에게 학자적 양심을 얼마나 인정해야 할 지는 의문이다. /임양은 주필

월요컬럼/설득력이 부족하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게티즈버그 전투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당대의 명연설가 에드워드 에버렛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인이 기억하는 말은 두 시간에 걸친 에버렛의 연설이 아니라 링컨이 한 짧은 연설이다. 널리 회자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구절이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사투리를 고민하던 링컨은 이처럼 핵심을 찌르는 말로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1940년 프랑스가 함락되고 영국만이 독일에 대항하던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영국 수상 처칠의 연설을 듣기 위해 라디오를 켰다. 처칠은 “우리는 해안에서 적들과 싸울 것이며, 도심과 구릉에서 적들과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루스벨트는 처칠의 이 연설을 듣고 영국에 군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처칠은 혀가 짧고 말을 더듬었지만 자신감으로 여론을 이끌었다. 1958년 미국의 재정적자는 10억달러에 이르렀는데도 국민은 위기를 실감하지 못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달러짜리 지폐를 10억달러만큼 늘어놓으면 얼마나 되는지 물어 봤다. 일주일 뒤 그는 연설했다. “1달러짜리 지폐를 죽 늘어놓아 10억달러를 만들면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하고도 남습니다” 통계수치에 이야기를 담은 명연설이다. 명연설가들은 운율과 대조법 구사에 명수였다. 케네디는 취임 연설에서 “우리는 어떤 대가(price)라도 치르고(pay), 어떤 부담(burden)이라도 짊어질(bear) 것 입니다”라고 두운(頭韻·Alliteration)을 맞춰 호소력을 높였다.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초반 카터 대통령은 공화당의 레이건을 앞서고 있었다. 텔레비전 토론이 시작되자 레이건은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4년 전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느끼십니까. 그러면 카터 대통령에게 투표 하십시오.”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전투에 나설 때면 출정에 앞서 병사들을 모아 놓고 수십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병사들은 그럴 때 마다 나폴레옹이 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작은 키의 나폴레옹이 창조하는 카리스마의 비결은 침묵이었다. 이제 거미형 최고경영자(CEO)의 시대는 지나고 사자형 CEO의 시대가 왔다. 오늘날 시장이 원하는 것은 현장을 휘젓고 다니는 감독자형 경영자가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강한 리더다. 달변가인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후 보여준 많은 ‘말’ 가운데는 굳이 하지도 않아도 될 말이 많았다. 대통령 후보자 시절과 현직 대통령은 엄연히 다르다. 달변과 웅변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레이건처럼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 하고, 링컨처럼 비록 짧지만 기억에 남는 말을 해야 한다. 나폴레옹처럼 때로는 침묵이 권위를 창조하기도 한다. 물론 알고 있겠으나 말로 세상을 바꾼 리더들의 남다른 화법을 구구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을 아끼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야당이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리더십의 핵심은 설득력이다. 모든 국민이 야당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야당보다 먼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상하게도 요즘 노 대통령의 언행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과거처럼 박력도 없어 보인다. 뚝심이 고집으로 보여 안타깝다. 특검법이나 재의결토록 하여 대통령을 곤경에 빠트리는 측근들은 이제 그만 물리치고 스스로 힘 좀 내기 바란다. 보기에 딱해서 아슬아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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