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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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대상 국고보조금을 반납하다니

경기도가 정부 각 부처로부터 지원 받은 국고금 200억원을 연말까지 반납해야 된다는 보도는 황당하다. 그동안 소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증거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주먹구구식으로 편성한 예산도 문제점이거니와 “국고 보조금 반납액은 전체 금액으로 볼 때 극히 미미하다”는 도의 태도는 심히 무책임하다. 200억원을 소액이라고 여기는 인식 자체가 크게 잘못됐다. 사회복지·장애인복지 분야는 그러잖아도 가뜩이나 예산이 부족하다. 단돈 한 푼이 아쉬운 곳이 수두룩하다. 지원해주는 국고 보조금을 제때 사용치 못해 반납하는 금액이 가장 많은 데가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 분야인 것은 심각한 행정의 무능이다. 자활근로 사업자와 기초생활 보장자의 근로 사업비, 기초생활 보장 급여, 경기침체로 인한 청장년 실업자 등을 구제하기 위한 고용촉진 훈련비, 농어민훈련 지원비 등은 모두 보조가 시급히 요청되는 분야다. 또 농업정책에 속하는 수리시설비 및 기타시설 복구비, 민간행사 지원을 위한 쌀전업농 교육비, 농산유통과의 태풍·호우로 인한 농가 등의 피해 보상금, 폭설 피해 복구비 등도 절실히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도에 묻는다. 과연 경기도에 자활근로 사업자·기초생활 보장자·기초생활 보장 급여 해당자가 없는가. 청장년 실업자가 없는가. 농업수리시설 및 기타 시설을 모두 복구했는가. 태풍·호우로 피해를 입은 농가에 피해 보상을 완료했는가. 대설 피해 복구사업 집행 잔액도 불용처리됐다니 올 겨울 대설로 인한 축사 붕괴 사태시 축산농가 피해보상 난항이 벌써부터 예상된다. 이밖에 하천정비 사업비, 각종 수해 복구사업, 도시 방재비, 보건위생정책과의 저소득 무료 암 검진사업, 임신부·영·유아 건강검진 사업 등의 적지 않은 집행잔액도 반납해야 된다니 실로 안타깝다. 도청 실·국장 등이 주축이 돼 매년 국고 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해 도 출신 국회의원 등을 방문, 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 놓고 200억원대나 불용처리, 반납한다면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하필이면 왜 예산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사회복지·장애인 복지 등에 쓰일 국고 보조금을 방치했는가. 특히6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 미집행으로 복지 사업에 큰 차질을 빚은 경기도에 대책 마련을 촉구해 둔다.

손 지사의 미 행정부 고위층 연쇄회동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엊그제 부시 미국 행정부의 주요 고위 관리들을 잇따라 만나 한반도 문제의 현안에 유익한 의견을 교환한 것은 방미 성과로 평가할만 하다. 경제외교를 위해 방미 중인 손 지사가 바쁜 일정속에 따로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 라폴러 동북아 안보담당 특사, 로더먼 미 국방부 차관보 등과 연쇄 회동을 가진 것은 북 핵문제 및 주한미군 재배치와 관련한 접경지역의 행정 수장으로서 매우 시의 적절했다. 북 핵 개발의 절대적 불용과 이의 평화적 해결, 한·미 두 나라 동맹관계의 훼손 배제, 주한 미군 재배치의 양국 공동이익 도모와 병력 현대화 등 논의에 인식을 같이 하는 가운데, 손 지사는 2사단 재배치에 대해 ‘굳은 결심과 강한 억지력의 원칙에 의거한 신중한 재고’를 요구하였다. 이어 유서깊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센터(SIS)에서 ‘한·미 동맹의 미래’ 주제로 강연을 가진 것은 매우 인상 깊다. 이 자리에서 용산 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에 따라 높은 문화 수준의 국제적 도시로 개발하는 평화시 건설을 천명한 것은 미국 행정부에 직접 전한 상호 신뢰구축의 메시지로 보기에 충분하다. 이같은 활동은 주한 미군의 60%가 주둔하고 주한 미군 공여지의 61%가 있는 경기도의 접경지 입지에 비추어 그 영향력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측이 켈리 차관보를 비롯,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인 행정부 고위 실무팀들이 기꺼이 가진 회동은 바로 그같은 상당한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예컨대 “북 핵문제의 다자간 접근을 통한 평화적 해결의 협상 테이블에서 모든 옵션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켈리 차관보의 비중있는 말은 앞으로의 북 핵 대응에 시사되는 바가 있어 주목된다.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미 국무부 및 국방부의 고위층 이번 회담은 민선 광역단체장의 첫 안보 외교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경기도의 일부 땅이 북측에 있고 일부는 비무장지대(DMZ)에 파묻힌 행정구역의 수장으로서 안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당연하다. 하지만 이같은 성공적 외교회동은 손 지사의 역량과 함께 인구 1천만 웅도의 저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는 자긍심을 능히 가질만 하다. 또 앞으로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친 대외 활동에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속의 경기도’로 각인시킨 손 지사의 방미활동을 거듭 높이 평가한다.

풍도(馮道)

“입은 화를 불러 들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로다.(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閉口深藏舌)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安身處處宇)” 전당시(全唐詩)에 풍도(馮道)가 지었다고 전하는 시(詩)다. 중국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에 다섯 왕조에서 8개 성씨의 군주 11명을 모셨다는 풍도가 난세를 살아가면서 보여준 처세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풍도는 ‘황소(黃巢)의 난’이 대륙을 휩쓸던 882년 중국 허베이에서 태어났다. 20대 후반에 유주절도사 유수광의 휘하에 들어가면서 관리를 시작했다. 당의 변경인 유주는 유달리 하극상 등에 의해 절도사가 쉼없이 바뀌는 지역이었다. 그가 처음 모신 유수광도 역시 이전의 주군을 몰아내고 절도사에 오른 아버지 유인공을 강제로 밀어내고 절도사가 된 인물이었다. 풍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좌절은 대연(大燕)을 세우고 황제에 오른 유수광의 정벌에 정면으로 반대하다가 옥에 갇히면서 찾아왔다. 군벌의 쿠데타가 생활화된 유주에서의 하급관리 경험은 그의 입을 평생 다물게 했다. 그는 환관 장승업의 추천으로 진왕 이존욱의 휘하에 관리로 재등용되면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47세인 929년 후당(後唐)의 재상이 된 이래 23년간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권력의 정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후당 명종의 사위 석경당이 거란의 도움으로 후진(後晉)을 건국했을 때도 풍도는 여전히 재상이었다. 65세인 947년엔 아예 거란의 신하가 됐다. 풍도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희대의 간신이자 변절자라고 낙인찍혔다. 절묘한 줄타기의 달인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올 수록 평가가 바뀌었다. 왕조 교체 때 마다 백성들의 대참사가 적었던 것은 그의 ‘처세’덕이라고 했다. 풍도가 관계에서 물러난 뒤 자서전에서 자신을 “나라의 은혜를 받으면서 가법을 따랐고”라거나 “나라에 충성을”이라고 자평했다. 섬긴 대상에 군주라는 말은 없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고건 국무총리는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까. 누구를 모셨느냐 보다 무엇을 위해 일했느냐에 달려 있다. 고건 총리도 이제 전면에 나서야 할 때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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