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고물론

제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 그늘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이가 있었다. 그의 말 가운데 당시 유명했던 말이 있다. “떡을 만지다 보면 떡 고물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무슨 의혹사건이 있었던 차에 그같은 말이 나왔다.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내기도 했던 그는 지금 수십년째 조용히 재야 생활을 하고 있다. ‘떡 고물이 떨어진다’는 건 이를 테면 절로 생긴다는 것으로 떡을 베어먹지 않고 고물만 챙기는 것은 굳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인 것이다.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대북송금 관련 특검수사를 보면서 정몽준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지시를 받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으로부터 박 전 장관이 150억원을 받았다는 혐의 사실에 대해 예의 그같은 떡고물론이 생각난다. 현대의 금강산사업 등 대북사업 전반에 관한 협조 등 명목으로 건네진 이 돈 외에도 250억원의 추가수수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물론 완강히 부인하지만 혐의사실 대로라면 대북 송금의 떡 덩어리가 워낙 엄청나게 큰 것이어서 고물도 그토록 많았던 모양이다. 대북송금이야 정권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하여도 이 과정에서 비자금이든 사리 사욕이었든 고물을 챙긴 것은 그 돈을 다 박 전 장관이 독식한 게 아니더라도 지탄을 면할 수가 없다. ‘떡고물론’은 생각해 보면 부정적 명언으로 공직자의 잘 못된 도덕상을 잘 나타낸다고 보아진다. 높은 자리의 공직자만이 아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모든 공직자가 다 경계 삼아야할 말이다. 고물을 챙기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떡고물도 결국 떡이다. 남에게 뇌물로 받아먹지 않고 예산에서 빼먹는 떡고물도 있다. 예산 떡고물은 단 한 톨의 고물일 지라도 다 국민의 세금이다. 떡고물을 탐내는 공직자들은 직위가 높고 낮건 간에 지금도 무척 많을 것 같다. /임양은 주필

월요칼럼/‘수인번호 1617’의 落花頌

김대중 대통령의 퇴임을 5일 앞둔 2003년 2월 20일 낮 12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과 각 수석, 그리고 청와대 출입기자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별 오찬’이 열렸다. 주인공은 ‘박지원’ 실장이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시절부터 재임 5년간 그가 맡은 직함은 ‘당선자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 ‘문화관광부장관 ’ ‘청와대 정책기획 수석’ ‘대통령 정책특보’ ‘청와대 비서실장’ 등 무려 6개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비밀협상 때 가졌던 ‘대통령 특사’라는 직함도 있었다. 김대중 정권하의 실세 중 ‘왕실세’인 그에게 야당이 ‘부통령’ ‘소통령’ ‘대(代)통령’이란 별칭을 붙여준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고별 오찬 때 박실장은 “비서실장에 임명될 때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 내외분이 건강하시고 국정을 마지막까지 잘 챙겨 국민과 함께 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보필하자고 두 가지를 다짐했다 ”고 술회한 뒤 “나름대로 참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그날 박실장은 “다시 한번 가슴 떨리는 심정으로 석별의 인사를 마친다”면서 안경 너머로 눈물을 떨궜다. 그날의 약속대로 그는 퇴임 후 마포의 오피스텔에 개인 사무실을 마련하고 매일 동교동 김대중 전대통령의 사저에 출근했다. 그 박지원씨가 대북송금 의혹사건과 관련해 특검 소환조사를 받게 될 처지이면서 지난 7, 8일 지인들 몇몇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김대중 전대통령 내외의 건강과 국운융성의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내가) 역사적인 남북정상 회담에 기여했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똑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박지원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혐의로 6월 18일 구속, 수감됐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자신이 20년간 총애한 그가 구속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았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지원씨는 6월 18일 밤 11시 30분쯤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을 떠나와 12시 50분쯤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도착했다. 수형자 옷을 입은 그의 수인번호는 ‘1617번’ 이었다. 그는 수감되기 전 18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가기 전 소회를 묻는 기자들에게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며 조지훈 시인의 시 ‘낙화’를 인용,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꽃의 의미’가 한때 ‘소통령’이라는 별칭을 들으며 국정을 장악했던 그의 처지인가. 좌초위기에 처한 햇볕정책인가. 정치적 공세를 받아 위기에 몰린 김대중 전대통령인가. 그는 수감될 때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한강’ 7·8·9권을 갖고 들어갔다. 박지원씨는 수감 첫날인 19일 자신에게 150억원의 뇌물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이익치 전현대증권 회장을 명예훼손, 공무집행방해,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가증스러운 술수를 부리는 자, 과연 누구인가. “꽃이 지기로소니 / 바람을 탓하랴 / 주렴 밖에 성긴 별이 / 하나 둘 스러지고 / 귀촉도 울음 뒤에 / 머언 산이 다가 서다 / 촛불을 꺼야 하리 / 꽃이 지는 데 / 꽃 지는 그림자 / 뜰에 어리어 / 하이얀 미닫이가 / 우련 붉어라 / 묻혀서 사는 이의 / 고운 마음을 / 아는 이 있을까 / 저허하노니 / 꽃 지는 아침은 / 울고 싶어라” 맑은 영혼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답고 서러운 ‘낙화’의 절창을 권력의 허무와 비정에 연결시킨 박지원씨가 만일 무혐의로 풀려 나온다면 그는 감회를 어떻게 비유할 것인가. “그래도 한강은 흐른다”? 정치가 참으로 더럽고 추악해도 한강은 흐른다. /임병호 논설위원

천자춘추/미인은 잠꾸러기

어제 저녁 늦은 시간에 전철을 탔다. 학원에서 과외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두 학생이 경로석에 앉아 졸고있다. 사람이 하루 24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활용하는 일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저마다 자기 입장을 대답할 것이다. 아마도 학생들이면 공부라고 할 수 있고, 직장인이면 회사 업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일생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다름 아닌 ‘잠을 자는 일 바로 수면’이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7시간을 잔다고 가정해 볼 때 칠십 평생 동안 잠자는 시간은 17만8천8백50시간이나 된다. 일수로 치면 7천452일, 연수로는 20년, 즉 일생에 약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는 계산이다. 이처럼 많은 시간 잠을 자야 하는 이유는 잠이든 사이 낮에 고단하게 활동한 신체를 쉬게하고, 집중적이지 못한 일을 조용히 처리하며 다음날 사용해야 할 새로운 에너지를 재충전 시켜주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또 수면주기는 하루를 영위하는 생체주기와 관련이 깊은데, 사람의 생체주기는 25시간이고 지구 자전 주기인 하루는 24시간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살다 보면 생물학적인 시계와 천문학적인 시계가 어긋나게 되고 그 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여러가지 건강상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몸에 적정 수면시간은 얼마나 될까? 정답은 없다. 저마다 피곤하지 않을 만큼 잠을 자면 된다. 잠을 많이 자야 미인이 된다는 말도 있으나, 이 말의 뜻은 적당량 수면을 취해야 건강에 좋다는 뜻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최근에 하루 10시간 이상 자는 사람이 오히려 7~8시간 자는 사람에 비해 기대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1.8배나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현대의 바쁜 일상을 소화해 내려면 누구나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려 모두들 피곤해 하고 잠 부족을 느낀다. 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충분히 잠을 자는 것이다. 만약에 어떤 이유에서든 간 밤에 수면 방해를 받았다면 다음날 병든 닭처럼 졸려 일의 능률도 떨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 업무 중 사고나 교통사고의 위험률도 높아진다. 이처럼 잠은 우리 건강한 삶의 질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잠이 부족하면 만병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장시간 잠을 잔다고 해서 모든 피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잠자리가 편안해야만 충분한 숙면을 취하게 되고 건강에도 이로운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잠을 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방법은 잡념을 없애 주고 마음 편안하게 잠을 이룰수 있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이다. 적당량의 잠은 인간의 최고 휴식이다. /정복희.경기도의사회장

지자체들 민원행정, 확실하게 하라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대하면 말고’식의 행정이 주민들의 시위를 조장하고 ,업체에는 경제적 손실을 입히고 있어 비난이 높다. 최근 도내 각 시·군에서 한창 말썽을 빚고 있는 골프연습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원시 정자동 동우여고 바로 옆 부지에 88타석의 매머드급 골프연습장을 목적으로 한 소유주의 토지형질변경 신청이 허가돼 공사가 진행되자 학생, 교사 등 학교측이 크게 반발했다. 골프연습장 현장과 시청 앞에서 허가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하자 수원시는 ‘사업자와 학교측 합의 없이는 골프연습장 신축을 불허’하겠다고 방침을 밝혔다. 구리시에서는 조선시대 왕릉인 동구릉(사적 제193호) 인근 2천140평에 골프연습장이 들어설 예정인데 주민들이 “연습장 철탑(42m)이 능원보다 높아 동구릉 주변 경관을 해친다”며 연습장 폐쇄조치 서명작업에 들어 갔다. 이렇게 주민들과 끊임없는 마찰이 일고 있는 골프연습장은 근린생활시설로 구분돼 학교나 주택가까지 침투한 ‘러브호텔’과 비슷한 상황이 되고 있다. 필요한 서류를 갖춰 해당 시·군·구에 제출하면 건축허가를 얻을 수 있고 신고만으로도 골프연습장 영업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골프연습장이 들어설 곳이 아파트나 학교와 불과 20 ~ 30여m로 붙어 있고 구리시의 경우 동구릉과는 86m밖에 안떨어져 있다. 소음·불빛 등으로 주거권과 학습권의 침해는 물론 유적지 훼손이 없다 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자치단체들의 안일한 행정이다. 주거지역이나 학교는 물론, 유적지 인근에도 무차별적으로 골프연습장을 허가한 뒤 주민들이 반발하면 뒤늦게 공사중지 명령 등을 내리는 것이다. 수원시는 동우여고 옆 인근 토지 소유주에게 공사중지명령을 내렸고, 역시 골프연습장 허가를 내줬던 구리시도 문화재청의 철거 요구에 따라 다 지은 골프연습장의 사용 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는 상태다. 앞으로 지자체들은 주민은 물론 토지소유주 및 업체들로부터 모두 불신을 당하는 골프연습장 허가와 같은 행정을 반복하지 말기 바란다. 보다 확실한 법적 근거를 제시하여 주민들의 반발이나 시위를 미리 방지하라는 것이다.

줄 파업, 노동운동인가 정권운동인가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노동운동의 진의가 무엇인지 실체가 궁금하다. 민주노총 등이 얼마전에 가진 ‘비상시국회의’ 소식은 이같은 의문을 짙게 제기한다. “노무현 정권의 잇따른 반개혁 정책에 민중의 분노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면서 정부의 뒷걸음질 개혁에 맞서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신자유주의를 독과점적 관료정책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가 이를 예의 주시하는 것은 줄 파업을 예정해 놓고 있는 민노총의 노동운동 시각이 바로 이런 관점에서 시작한 것이라면 노동운동이 아닌 정권운동으로 보아지는 우려에 연유한다. 우리는 이들이 말하는 노무현 정권의 반개혁성이란 것에 타당성을 찾아볼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결함을 국가가 견제하는 경제질서의 기본 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무척 혼란스럽다. 만약 신자유주의적 수정자본주의를 배격하는 것이 참 뜻이라면 우리는 그같은 추구가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경제상 자유와 창의와 소유의 저해라고 보아 견해를 같이 할 수 없다. 개혁을 말하면서도 기실 수구적 면을 발견하는 것은 시대 착오다. 예컨대 경제특구를 국경을 넘어오는 투기자본의 탄압과 착취로 매도하는 편향된 시각은 ‘대원군식’ 쇄국을 고집하는거나 다름이 없다. 경제발전의 저해 요인 중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나라 안팎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거리의 진짜 노동자 대중과 서민 대중은 걸핏하면 들고나오는 파업 등으로 점점 더 살기가 각박해져 분노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사판을 전전하는 날품 노동자 같은 정말 힘없는 민중들은 과격성 일변도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먹고 살기가 요족한 귀족으로 보고 있다. 국내 노동운동, 특히 민노총의 노동운동은 근로자들의 권익옹호 및 복지후생 문제를 떠난 정치색 짙은 쟁점을 구실 삼곤하여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국가운영의 정부 정책이 노동운동의 본질에 속하는 근로조건일 수는 없다. 민노총측은 법과 원칙을 존중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을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우기지만 법과 원칙을 어길만한 불가피한 현실은 체제 안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운동이 아닌 노동단체의 정권운동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줄 파업 예정을 주의깊게 지켜보면서 정부측에 모든 것을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하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 주기를 촉구한다. 이는 정부의 책임이다.

'별 헤는 밤'

일제는 1939년 11월30일 한민족의 ‘황민화(皇民化)’를 촉진하기 위해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내렸다. 그리고 이듬해 2월1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응한 가구는 6개월동안 7%에 불과했다. 다급해진 조선총독부는 우리나라에 갖가지 불이익을 줘 그후 한달동안 79.3%로 끌어 올렸다. 창씨를 하지 않는 호주는 노무징용에 우선 끌려 갔고 그 자녀는 학교 입학을 못하게 했다. 식량배급도 하지 않았으며 취업까지 막았다. 행정 민원서류도 뗄 수 없었고 우편 배달도 하지 못하게 했다.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는 1942년 1월29일 평소동주(平沼東柱)로 창씨개명한 이름을 그가 다니던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에 냈다. 그는 졸업반이었고 일본 유학을 준비했다. 창씨개명의 수치를 감수하고 유학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본의 아니게 창씨개명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 컸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우에 / 내 이름자를 써보고, /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의 끝부분이다. 이 시엔 그의 창씨개명에 따른 수치감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름을 되찾을 날에 대한 간절한 믿음이 담겨 있다. 이 시를 지은 시기는 1941년 11월24일, 일제가 조선인의 창씨개명을 강요하던 때였다. 윤동주는 이름을 빼앗긴 삶을 벌레의 삶으로 비유했다. 결국 흙으로 덮어버린 이름은 일제에 온 몸으로 저항했던 윤동주 자신의 우리말 이름이었다. 지난 5월31일 도쿄(東京)대 강연에서 일본 자민당 정조회장 아소 다로가 “일제 때 창씨개명은 당시 조선인들이 성씨를 원해 이뤄진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이름은 존재의 상징이다. 이름의 상실은 곧 동물의 삶을 뜻한다. 아소 다로의 망언을 듣고 윤동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일관계는 이렇게 아직도 ‘가깝고도 먼 나라’다./임병호 논설위원

기고/새로운 시대의 자녀교육

20세기말 뉴 밀레니엄을 준비하는 수많은 학자들은 지식기반사회를 위한 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식기반사회란 다른 가치보다도 지식의 가치가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사회를 의미한다. 교육학 영역에서도 끊임없이 이러한 노력이 있었으며, 특히 미국 하버드대 가드너 교수의 견해는 새로운 시대의 자녀교육을 위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독자들은 네가지 유형의 아이들중 어떤 아이가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하는가. 첫째, 유창한 어휘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는 아이. 둘째, 어려운 수학문제에 도전해 과제집착력을 발휘하여 문제해결을 하는 아이 . 셋째, 절대 음감력이 뛰어나 바이올린 연주실력이 탁월한 아이, 넷째 안정환 선수처럼 축구실력이 뛰어난 아이…. 아마도 20세기적인 기준으로 가장 우수한 아이를 선택하려고 한다면 첫째 혹은 둘째 사례의 아이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화했음을 직감하고 있다면 잠시 고민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 새로운 시대의 잣대로는 이 네 가지 유형의 아이들을 서로 비교하거나 서열화할 수 없으며 모두가 다 각각의 영역에서 우수한 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언어, 논리-수학적 능력이든 음악적, 신체적 능력이든 모든 인간의 능력은 평등한 잣대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가 바로 가드너다. 그의 견해가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각이 과거의 언어, 논리-수학적 능력 일변도의 고정된 시각에서 탈피해 개개인의 개성 및 특유의 능력 등 평등한 평가관으로 바꾸는 순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릇된 교육관을 갖게하는 역기능적인 문제를 파생시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즉 그의 견해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다수의 부모들이 갖게된 새로운 자녀교육관중 하나는 ‘수학이든 음악이나 미술 혹은 체육이든 간에 어차피 모든 것이 지능이라면 일찌감치 하나만 정해서 하나만 교육시키자!’ 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의 뒷면에는 다른 것은 일찌감치 포기해도 괜찮다는 자기 위안적인 생각이 들어있어 후일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일찍 진로를 선택한 사람들이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하나를 선택하면서 발달적으로 너무 이른 시기에 다른 영역을 무시하거나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경우에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 너무 이른 시기인지에 대해서는 전공 영역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너무 이른 시기에 하나의 진로를 결정하고 다른 영역을 포기해 버리는 아이는 그 하나만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해도 단순 지식이나 기술의 습득과정까지는 별 무리없이 견딜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전문가 수준에 도달하려고 할 때는 분명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단순 지식이나 기술만으로는 창의적인 지식의 생산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조기에 특정 영역의 지식만을 편식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영역의 지식에 대한 고른 섭취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에서 자녀교육의 출발점은 내 아이의 강점과 약점 영역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는 자녀에 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이 선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간혹 어떤 부모들은 이것이 전문가들이나 할 역할이라고 판단해 성급히 특정 기관에 의뢰하여 내 아이의 여러 특성들을 수치화하는 작업을 먼저 서두르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아이의 학교 및 일상 생활에서의 특성을 면밀히 관찰하거나 아이와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여 다양하고 폭넓은 자료를 수집한 다음 담임 교사나 교육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자녀교육을 위한 방향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부터 조금씩 천천히 내 자녀를 알아가기 위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執着) /박숙희.협성대 교양학부 교수

천자춘추/집착(執着)

공자님께서는 40세에는 의혹이 없고(不惑), 50세에는 하늘의 뜻을 알며(知天命), 60세에는 무엇을 들어도 귀가 순해지고(耳順), 70세에는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라 해도(從心所欲)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不踰矩)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재판을 하다보면 이런 공자님 말씀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사람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재판한 것중에 기억나는 것으로는 수년간의 민사소송 끝에 패소가 확정된 70대 중반의 할아버지께서 민사재판에서 증언을 한 증인이 위증을 했다며 고소를 하였다가 무고죄로 벌금을 받고, 또 고소했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또 고소하였다가 실형을 살고 나왔다. 그런데 이제 포기할 때도 되었을 텐데 또 고소를 한 것이다. 재판을 담당한 나로서는 할아버지께서 오죽하면 그러시는가 하여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민사재판은 대법원은 물론 재심까지 갔어도 뒤집혀지지 않았고, 형사재판도 이미 무고죄로 3번씩이나 유죄가 인정된 것을 어찌할 것인가. 선고하는 날 할아버지께 이제 인생을 정리하실 나이신데 계속 여기에 집착하시면 어떡하시냐. 억울하시겠지만 이제 그만 잊어버리시라고 권유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득불 실형을 선고하였지만 차마 법정구속은 하지 못하였다. 그 할아버지는 끝내 그 사건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세상을 뜨신 것은 아닌지…. 또 하나는 할머니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을 한 할아버지가 다툼 끝에 할머니를 흉기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기억난다. 그 사건을 재판하면서 노인네들도 질투심은 젊은이들 못지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었다. 그런가 하면 10여년전 부산 근무 시절 부산 근처 한 섬의 땅값이 오르면서 네 땅, 내 땅 경계 없이 평화스럽게 살던 3,000여 섬주민들이 동네 어른들까지 모두 송사(訟事)에 휘말려 서로 으르렁거리던 서글픈 기억도 되살아난다. 사람이 집착을 버린다는 것은 그렇게 힘든 것인가. 어차피 죽으면 한 줌 바람에 날아가버리거나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묻힐 텐데 왜 차분하게 인생을 정리할 나이에도 그렇게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지.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천명(天命)을 알아야 할 나이가 점점 다가오건만 아직 하늘의 뜻을 몰라 헤매고 있는데, 60이 되어서도 남의 얘기를 들으면 화를 벌컥 내고, 70이 되어서도 마음 가는대로 따라 했다가 법을 어겨 낭패를 보고 있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양승국.변호사

독자투고/날생선 먹을땐 식중독 조심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비브리오 패혈증 주의보가 내려졌다. 비브리오 패혈증은 세균성 식중독 균으로 주로 어패류에 의해 발생하며 원인 균은 해수 중에 생존하고 식염농도 3~4%에서 잘 발육하기 때문에 세균의 발육에 호적한 고온인(해수온도 17도 이상 일 때) 7~8월에 다발한다. 어패류에만 한정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식염을 함유한 식품이 오염되었을 때 균은 용이하게 증식하고 그것이 감염원이 된다. 이균은 살모넬라 균과 같이 감염 형이며, 임상적에는 복통·설사·구토를 주 증상으로 하는 전형적인 급성 위장염인 것이다. 잠복기는 8~20시간이며 평균 12시간이다. 경과는 조속하고 통상 2~3일 정도에서 회복된다. 비브리오 패혈증을 일으키는 세균은 어패류를 날것으로 먹음으로써 주로 감염되지만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처를 통하여 감염되기도 한다. 균 자체가 해수에 존재하고 있어 어패류의 살속에 파고들지는 못하므로 (어패류에 부착한 미생물이 체내에 증식하여 장 점막에서 작용하는 감염형 식중독균 임) 잘 씻어 먹거나 익혀 먹는 것이 좋다. 요즘은 수족관 설치 기술의 발달로 냉각기를 통하여 수족관 온도를 섭씨 10도~13도로 유지시켜주고 있어 섭씨 15도 이하에서 이균은 자동사멸하며 어류의 육질도 좋게 유지시켜 맛도 좋으므로 냉각기가 설치된 수족관에 있는 어패류는 먹어도 안전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송만재·인터넷 독자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