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는 그래픽 위주의 가상사회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가상육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아바타가 이용되는 분야는 채팅이나 온라인게임 외에도 사이버 쇼핑몰·가상교육·가상오피스 등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초중학생들에게 아바타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아바타 아이템 한 개를 보면 약소한 금액이지만 그야말로 생색나게 자기 분신을 만들게 되면 장난 아닌 금액을 지불할 수도 있게 된다. 불과 5개월여 동안 170만원 상당의 아바타를 구입한 초등학생이 그로인해 어쩌면 당연한 어머니의 꾸중을 듣게되었고 결국 아이는 못다핀 꽃 한송이를 땅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가나다라…’를 알기전에 POWER키를 배워버린 아이들에게 금딱지붙은 몇급, 몇급하는 휴지로도 쓰지 못할 컴퓨터 급수자격증을 걸어놓고 유혹하지 말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에 관한 근본적 도덕성을 시급히 지도해야 한다. 왜 이 아이들의 무면허운전을 방조하는 것인가? 규제나 제재를 통한 임시방편은 이제 소용이 없다. 인적이 뜸한 보도블록의 틈새로는 잡초가 자라는 법이다. /인터넷독자
{Image}
김영완씨의 180억원 도난사건은 마치 권력의 주술과 같다. 그토록 엄청난 돈을 강도질한 범인들이 피해자의 보호 속에 호텔서 경찰관들과 양주를 마셔대며 취조를 받았다는 것이나, 청와대의 비호를 받았다는 것이나 모두 이해가 안간다. 납득되지 않은 일은 김씨의 미로 같은 역할 등 이밖에도 허다하다. 도대체 대명천지에 어떻게 강도질을 한 패거리가 지존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건지,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고는 나라의 기강이 살아있다 할 수가 없다. 청와대 막후 인물의 경찰 간부로부터 시작해 경찰청, 경찰서에 이르기까지의 조직적인 경찰 은폐도 가려내야겠지만, 그 배후의 정체를 밝혀내야만 한다. 문제의 돈은 박지원씨가 돈세탁을 의뢰했던 걸로 대북송금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그 흑막의 실상이 베일에 가려진 대 의혹사건이다. 마땅히 수사가 있어 국민적 의문을 한 점도 미진함이 없이 규명돼야 한다.
지금은 노동운동의 초창기가 아니다. 1970년대까지는 초창기였다. 그러나 1980년대의 정착기를 지난 지금은 노동운동의 성숙기다. 초창기는 노동문화가 말살된 황무지였으며, 정착기는 투쟁수단이 그런대로 시인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노동문화가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보장된 성숙기다. 그런데도 노동운동은 초창기나 정착기에 비해 거의 다름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느 외지와의 회견에서 ‘노동자 특혜 해소’를 피력한 것은 노동운동의 시대적 변화와 관련하여 매우 주목된다. 노 대통령이 재야시절 노동운동 편에 섰을 적엔 노동운동의 정착기였다. 참여정부의 친노정책이 이젠 그같은 시대가 아닌 것으로 인식된다고 보아 새로운 전환이 있을 걸로 기대한다. 특히 일부 상급노조는 거대화하여 노동운동이라기 보다는 무소불위의 정권운동 양상으로까지 변질되어가는 우려스런 경향이 짙다. 불법 파업을 노동운동의 본질로 삼아 사회질서와 공공이익 유린을 당연시하는 추세는 매우 위험하다. 철도파업 역시 이런 범주에 든다. 국가 경영에 속하는 정책사업을 투쟁 대상으로 삼는 파업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저의가 심히 의문이다. 정부가 철도노조 농성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여 강제해산 시킨 것은 잘한 조치다. 더 나아가 불법파업 주동자에 대한 엄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민중은 파업이 불가피할 정도로 그들의 권익이 훼손됐다고는 결코 믿지 않는다. 노동운동이 민중의 지지를 받는 성숙된 면모를 보일 때, 비로소 노동자들의 권익 또한 실질 신장이 있게 된다.
수원상공회의소가 도내 16개 상의와 연대하여 나선 삼성반도체 증설 허용 촉구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은 범도민운동이다. 세계적 유수 기업의 생산라인 증설이 정치적 고려에 의해 제약받는 국가적 불행을 타개하고자 하는 결단이기도 하다. 이른바 비수도권의 반발을 의식하는 지역균형 발전론은 결과적으로 국가이익을 해쳐 지역공동 퇴보를 가져온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참다운 지역균형 발전은 그같은 수치 개념이 아닌 내실 위주의 지역 특화산업쪽으로 모색돼야 한다고 보는 종전의 지론에 변화가 없다. 민생과 직결되는 경제성장은 곧 기업하기가 좋은 조건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도 우리는 오히려 이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삼성반도체 증설을 가로막는 처사다. 반도체 수출의 증대 효과는 비단 지역사회 뿐만이 아니고 국민경제에 크게 미친다. 우리는 다른 지역의 수출 역시 그렇게 믿고 있다. 사리가 이러하므로 그간 삼갔던 예의 정치적 논리란 것에 대해 한마디만 하겠다. 듣건대 정치적 논리에 총선이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 연유가 이 때문이라면 정녕 1천만 웅도의 경기도 지역사회를 그럼 정치적으로 홀대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싶다. 그러나 우리는 지역사회가 지닌 이같은 절대적 비중의 정치논리를 굳이 내세울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한국경제의 심장부이며, 동북아 경제 중심의 전진기지인 지역사회 기업의 활성화가 곧 국익이란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도내 상공회의소가 추진하는 서명운동은 바로 이 점에서 국민경제를 위한 염원이며 또한 지역사회의 자긍심이라 할 것이다. 삼성반도체 증설 허용 촉구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에 범도민적 참여가 있기를 간곡히 당부해마지 않는다.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약국의 문이 굳게 닫혀 있을 때 갑자기 병이 나거나 다치면 큰 낭패를 당한다. 동네 의원도 일요일에는 거의 진료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연고 한두번 바르면 나을 수 있는 크지 않은 상처도 종합병원 응급실로 찾아가야 한다. 이런 불편을 없애기 위해 4개 약국 중 한 곳을 당번으로 정해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에도 문을 열도록 한 ‘휴일 당번약국제’가 있다고 하지만 유명무실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권유로 대한약사회가 시행해 온 휴일 당번약국제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의약분업 실시와 주5일 근무제 탓이다. 의약분업 실시 후 약국에서 단독으로 판매할 수 있는 일반 의약품의 비율이 30%이하로 낮아지면서 병·의원이 쉬는 휴일에는 수입이 적기 때문에 약사들이 문을 열 의욕을 못느낀다. 주5일 근무제 확산은 더욱 휴일 당번약국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주5일 근무제 세상에 살려면 각 가정이 응급처치할 수 있는 상비약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젊은 약사들의 경우 주말에는 무조건 문을 닫겠다는 생각이다. 몇푼 안되는 수입을 보고 주말을 허비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약사들이 당번약국제를 외면함에 따라 약사회나 지자체, 보건소 등의 홈페이지에 당번 약국을 게재하는 일도 소홀해졌다. 보건복지부 등 행정 당국이 약사회 간부들을 통해 당번약국제 이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래도 잘 안된다. 그렇다면 보완책으로 슈퍼마켓에서도 간단한 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아니면 시민 건강 확보 차원에서 정부가 무엇인가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지 열어 놓지도 않는 당번약국제로는 안된다. 권유사항, 자율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 행정사항이 된다면 당번제약국이 운영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주5일 근무제로 놀기만 좋아하는 이런 사회에서는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아야 하는 게 가장 상책이다. 어쩌다 일요일에 열려 있는 약국이 눈에 띄면 급하게 약 살 일이 없는 데도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임병호 논설위원
현대인의 화두는 변화이다. 모든 것이 변화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추구한다. 그런데 특별히 인생의 절정기를 지난 노년들은 변화에 참으로 약하다. 그 이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생각이다. 모든 행동에서 생각이 먼저이다. 생각에 따라 행동을 몇번 하면서 행동이 반복되는 동안에 생각은 물러가고 자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 때를 흔히 말하기를 익숙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익숙하다고 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어떤 행동은 참 익숙하고 능숙한 것 같으나 거기에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더 발전된 행동이 나오지 않고 거기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이 행동이 지속되면서 습관이 된다. 습관이 지속될 때에 이것이 문화가 된다. 문화화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전통으로 굳어지게 된다. 전통이 되면 그것이 하나 가치관이 되어서 인생의 지침이 된다. 이렇게 가치관으로 굳어진 것은 버리기가 어렵다. 그 가치관이 굳어진 것을 고정관념에 빠졌다고 하는 것이다. 이 고정관념 속에 묵은 경험이 있다. 이것은 새 경험과 반대되는 낡은 특징이 있다. 이 낡은 경험은 반복되는 경험으로서 사람을 아무 생각없이 익숙하게 반복된 습관으로 살게 만든다. 그래서 새로운 인생, 환경에 적응하려면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익숙한 것을 버려야 하는데 그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편하고 삶의 위험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노년의 사람들은 그냥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익숙한 것을 버리기 위해서는 한번쯤은 주도 면밀하게 내 모든 행동과 생각을 품고 바라보아야 한다. 경험이란 사람에게 지식을 주고 지혜를 주지만 반복되면서 고집이 되어 새로운 변화를 거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변화를 거절하는 사람을 고집 불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고집 불통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늘 편한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된다. 물론 모든 변화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주의 법칙도 아니고 만고의 법칙도 아닌 내 삶을 그 자리에 머물게 하는 고정관념, 고정된 행동은 바꾸어 볼 이유가 된다. 빠르게 변화될 것으로 요구하는 이 시점에서 내가 변화되지 못하고 생각 없는 관습에 머물면 속상해서 노년의 인생만 한탄한다. 해묵은 것을 털어버리는 용기가 지금 필요하다. 그대로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된다. 참고 기다리면 무슨 일이 있겠지 해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경험이 많을수록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인생의 궤도수정이 아직 늦지 않았다. 링컨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꽃이 있어야 될 자리에 엉겅퀴가 있으면 비판하고 원망하지 말고 그 엉겅퀴를 뽑고 꽃을 심으면 된다.” 오늘을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지나갔기에 나는 쓸모가 없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 내가 할일이 있다. 그리고 이 시점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자기를 수용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노년에 대한 부정적인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항상 생산적 경향을 가지고 오늘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아가자. /최의동.前 경기도 교육위원
얼마 전 국제화랑에서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빌 비올라라는 작가의 개인전이 있었다. 영상작업으로 벽면에 부착된 모니터를 통해 이미지를 접하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설치된 영상작업이 대부분 팔렸다고 한다. 비디오 작업도 판매가 되며 이를 소장하겠다는 콜렉터(수집가)들이 한국에도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세계적 명성을 지닌 유명 작가의 작품이기에 사둔다면 그만한 값어치를 할 것이라고 예상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비디오 작업도 좋다면 기꺼이 비싼 가격도 마다하지 않고 사들일 정도의 안목과 이해가 있어서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해 그 작품이 그렇게 뛰어나며 국내작가들의 작품보다 큰 의미가 있는지 나로서는 좀 의아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안목, 취향으로 작품을 구입하기보다는 귀에 의존해 사들인다. 귀로 작품을 보는 것이다. ‘눈’이 없으니 명성과 화랑주들의 입 발린 소리에 현혹된다. 신문이나 잡지에 커다랗게 실린 기사로 화랑 벽면을 가득 도배를 하고 바닥에는 온갖 화분으로 둘러친 전시장은 흡사 겁을 주는 것도 같다. 그래서인지 외국작가들이 한국에서 전시회를 갖기 위해 난리들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외국작가작품이라면 사족을 못쓰거나 아니면 유명세에 휘둘리는 미술시장의 허약성의 방증이기도 하겠다. 사실 우리 미술시장에서 작품을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콜렉터의 숫자는 지극히 적다. 기껏 3천명을 못 넘을 것이다. 반면 미술시장에서 작품의 공급은 수요를 넘어선다. 수요와 공급이 불균등한 대표적 시장이 바로 미술시장일 것이다. 사겠다는 이는 거의 없고 팔겠다는 사람만 흘러 넘친다. 귀로 보지 말고 철저히 눈으로 볼 것, 아울러 유명세나 투자가치로 인식하지 말고 자신의 감각과 취향에 따른 수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눈이 높아져야 하고 감각이 예사롭지 않아야 한다. 그만큼 많은 작품을 보아야 하며 정확히 읽어나갈 수 있는 식견이 뒤따라야 한다. 돈만 있다고 되는 문제가 아닌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안목과 감각이다. 미술품 수집에 앞서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섬세하고 뛰어난 취향과 기호의 결이다. 그런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유의 깊이나 자신만의 독자한 삶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다. /박영택.미술평론가,경기대 미술학부 교수
현재 학교 영양사는 학생들의 급식을 책임지는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직(식품 위생직)으로 교사도 행정직도 아닌 위치다.영양관리교육, 위생교육, 식사예절 교육, 음식환경 교육 등 중요한 급식과 관련된 교육의 영역을 무시하고 급식에만 치중하여 관련된 업무처리 등의 어려움으로 급식사고의 증가나 유발 염려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현재의 영양사 위치를 교사로 지위 향상시켜 학생들에게 균형된 식단공급과 바른 식생활 교육으로 성장기 청소년들의 체격과 체력을 증진시켜 심신의 건강을 향상 시켜주는 교사로 변화 되어야 한다. 학교급식에만 치중하는 현재의 영양사를 교사화 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심신 건강을 향상시켜 주는 새로운 영역을 영양 교사들이 담당해야 한다. /인터넷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