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았는데도 안 본 것같이 오늘 못 보았는데도 본 것같이 그대는 언제나 내 눈꺼풀 위에 서 있어 희한한 무중력의 허공을 걷고 있네 밤을 통하지 않고서는 낮을 볼 수 없는 이 찢겨진 비형(鼻荊)*의 슬픔을 부활절의 태양보다 더 따스한 빛의 옷으로 감싸주는 그대 오늘 보았는데도 안 본 것같이 오늘 못 보았는데도 본 것같이 한 발짝 한 발짝 생의 비밀을 만들어가는 눈시린 만남의 기적 새겨지네 *비형(鼻荊):『삼국유사』의 「도화녀(桃花女)와 비형랑(鼻荊郞)」 편에 나오는 진평대왕 시절의 인물로, 왕이 용사 50명을 시켜서 지키도록 했으나 밤마다 성 밖으로 멀리 도망가서 놀다가 새벽 종소리를 듣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고 전해짐.
봄은 첫사랑을 닮아 손길이 섬세하다 샘물에 떨어지는 이슬 같이 맑다 들녘이나 산에서 보드랍게 불어오는 바람아 나 어릴 적 고향의 마음으로 살게 해 누구라도 만나면 반가이 가슴을 열게 해다오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 꽃 꽃잎 따라, 꽃잎 따라 날마다 봄의 오솔길 저어가게 해다오. 한상준 <순수문학>으로 등단. 등단 영랑문학상 수상 안양초등학교 교장 정년퇴임 한국문인협회. 인천문인협회 회원
새해에는 넉넉한 마음이게 하소서 그저 바람에 순응하면서 강물의 유속에 맡기는 시간이 되고 하루를 말갛게 씻는 청정한 물이 되어 새벽 찬 이슬로 태어나게 하소서 하여 메말라 가는 글밭을 촉촉이 적시고 새순 돋듯 푸른 언어 틔우게 하소서 당신을 바라보는 맑은 눈망울이 되어 들여다보는 혜안을 갖게 하소서 새해에는 아아 새해에는 눈물 나게 하소서 맑고 고운 시심으로 글을 쓰는 당신에게 시집을 바치는 시간이게 하소서 차용길 1955년 김제 출생 月刊 《순수문학》 신인상(시) 등단 시집 『여울각시』, 『맨드라미』, 『소래포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회원 인천문인협회 이사, 남동문학회 회장
시냇물 산골 옹달샘에서 내가 태어날 때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건 아니지만 모두들 축복하여준 탄생이었는데 맑게, 맑게 흐르라고 빌어준 축복이었는데 다른 물과 섞이면서 점점 몸은 커지고 내가 날 속이고 더러는 탁해질 때도 많아 조용히 노래 부르며 흐르고 싶어도 여울을 만나 소리소리 지르기도하고 바위에 부딪쳐 깨질 것 같은 아픔을 격기도 한다. 품엔 예쁜 무지개 송어나 은어를 품는 꿈을 꿀 때도 있었지만 때 되면 다 떠나고 그렇게 그냥 그렇게 우물쭈물 살아온 세상 긴 여정 바다에 내려놓을 때 되면 펼쳐지려나 고운석양빛 한 폭 약력 전남 고흥 출생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재회> <석간송석간수> 국제펜한국본부 인천지역위원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내가 그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사랑받고 싶다 그대가 나를 우러러보는 것같이 사랑주고 싶다. 이은욱 약력 <순수문학>으로 등단 한국공간시인협회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제25대 홍보위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인천지역위원회) 회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부장 재직 중
동백꽃이 등불처럼 깜박거리는 붉게 점등 된 바다 속으로 흰 갈매기가 가라앉는다 하늘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헤엄치던 은빛 파도 떼들이 고깃배 그림자 속으로 숨는다 햇살 머금은 것들이 바다 깊은 고요까지 내려가 쪽빛 바다를 꿈꾸다가 서귀포 꽃그림자로 기어오른다. 한연순 약력 2000. 조선문학 시 등단 조선시 문학상, 인천 펜문학상 수상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한국문협, 현대시협, 인천문협, 조선문인회 회원 저서 시집『방치된 슬픔』『공기벽돌쌓기놀이』『돌담을 쌓으며』외 동인지 다수
용서받고 싶어 간절히 모은 손가락 너머로 곱게 핀 생강꽃 꽃길 따라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축하하기 위하여 더러는 위로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 외 갈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과연 무수히 피고 지는 생멸의 필연 속에 구하고자하는 해답은 존재하는가 위로하려는 사람들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 모퉁이 지나 끝도 없이 밀려가는데 통통 물오른 버드나무 깔깔 웃는 개나리, 진달래 강명숙 <한국시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청송시인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간 밤 대설이 내린 새해 아침 따사로운 햇살이 눈물겹다. 1월의 나무들이 고개 숙여 기도하고 방금 숲을 나온 새들이 창공으로 푸르게 비상한다. 어둠은 떠났다. 미련도 흘러가고 드넓게 펼쳐진 광활한 雪原! 누가 저 눈밭을 맨 처음 걸어가 자취를 만들 것인가. 누가 그 눈밭의 맨 처음 발자국 따라 걸어갈 것인가. 누가 백마처럼 눈밭을 달려 신천지로 나갈 것인가 순백의 세상, 참 은혜롭다. 맨 처음 설원으로 가는 이른 아침, 바람이 싱그럽다. 임병호 1947년 경기 수원 출생.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장. 국제펜한국본부 부이사장
한밤에 퍼뜩 창문 열고 내다보니 소나무 가지 가득 눈꽃송이였네 번뇌의 바다 노 젓는 수행자여 깨닫고 못 깨닫고를 묻지 않겠네 일 천 봉우리 지나간 다음 온 누리 눈꽃 세상 그 말고 무엇 또 구하려는가 앉아서 禪이요 서서도 禪이거든 추울 때 불 쬐고 지치면 쉬시게. 이은별 시집 <백목련의 아침> <지혜의 숲> <내일은 푸른 하늘>. 에세이집 <배낭에 詩 한줌> <섬제비꽃 사랑>. 서포문학상ㆍ국제문화예술협회 문학상 본상 수상. 한국문인협회ㆍ국제PEN한국본부 회원.
세상에 와서 처음 배우는 말 엄마 저 세상 갈 때 마지막 하고 가는 말 엄마 윤수천 1942 충북 영동 출생. 1974년 소년중앙문학상 동화 당선ㆍ197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등단. 동시집 <아기 넝쿨> <겨울 숲>, 시집 <너에게는 나의 사랑이 필요하다> <쓸쓸할수록 화려하게>, 동화집 <꺼벙이 억수> < 인사 잘하고 웃기 잘하는 집> <고래를 그리는 아이> 등 70여 권 발간. 한국아동문학상ㆍ방정환문학상 수상.
아이를 낳자 어린 새끼들을 위해 스스로 꽃이길 포기한 여자 뿌리에 매달린 어린 씨알을 위해 따 주어야 감자가 튼실하게 자란다고 감자꽃을 뚝뚝 분지르는 여자 순결하면서도 슬픈 마음이었을까 흰색이라 하기엔 보라색이라 하기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연보랏빛 엄마의 꿈도 그렇게 잘렸다 꽃을 잃고도 말이 없는 감자 땅에 떨어진 꽃을 자식들은 무심히 밟고 지나간다 최대희 (본명 최정희) 경기 평택 출생. <문학세계>로 등단.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정책학 석사과정, 숙명대학교 경영대학원 미용최고경영자 과정 수료(미용장). 시집 <그리움은 오솔길에 있다> <선물> 제1회 농촌문학상 우수상 수상. 한국문인협회ㆍ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이제 좀 쉬어야겠다, 그러나 영원히 잠자는 것은 아니다 대지가 얼어붙어 다른 계절만큼 나를 필요로 하지 않나보다 설한풍 휘몰아치는 어느 작은 마을에는 동심의 썰매가 흥겨운데 지난 여름 땀의 댓가로 저장한 풍년 엷어진 햇살 온몸으로 받으며 한 해의 苦樂을 담론한다 나를 기다리는 어느 곳 생명수 한 모금 뿌려주고 동면으로 다시 내년 봄 기약하지만 눈발 하루 종일 날리고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샘물에서 춥다, 덜덜덜 떨면서도 浮上하는 겨울 이미지 헐벗은 나목의 간절한 기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다만, 기다림이 차갑게 쉬어갈 뿐. 경남 합천 출생. <심상>으로 등단. 시집 <물의 언어학> 외, 시론집 <감응과 반응> 외, 산문집 <지 성이냐 감천이냐> 외, 시창작 교재 <김송배 시창작 교실> 외 다수. 제6회 윤동주 문학상ㆍ제27회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목월문학포럼 중앙위원.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겸 평 생교육원 교수.
炭川 돌다리에 늙은 두루미 한 마리, 고독이 묻어 우중충 낡은 우장을 쓰고 긴 모가지 웅크리고 외다리로 서 있네. 해넘어 노을빛 차마 떠나지 못해 붉게 타는 유정한 맘 두루미 끌어안고 마음과 마음이 교감하고 있네. 나는 텅 빈 가슴 안에 슬픈 수채화 한 페이지, 찍고 있네. 유소례 전북 남원 출생. 창조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ㆍ한국시인협회ㆍ한국여성문인회 회원. 한국창조문학가협회상ㆍ한국크리스천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 어머니의 깃발 마로니에 공원의 풍경 등 다수.
산천어 사는 곳에 저물어가는 가을이 불경소리를 읊조린다 목탁소리에 낙엽은 흩날리고 그 비 맞으며 작은 소망 기도하는 울긋불긋 중생들 10월이 지난 이 가을에 신라의 고승도 가녀린 비구니도 화두를 잡고 거닐었을 낙엽 쌓인 그 길 오늘도 내일도 발길이 끝나지 않을 그 길. 진영학 충남 연기군 출생. <문학세계>로 등단. 시집 <온누리 향한 땅울림> <논두렁 밭두렁 거닐며> <텃밭에서 그린 그림> 한국문인협회ㆍ한국공무원문학회ㆍ경기문학인협회 회원. 현, 평택시농업기술센터 송탄농민상담소장.
서울의 남산자락에서 또 혜화동에서 선생님의 꿈을 저는 펴보고 있습니다 열정이었던 한 시인의 꿈을 사랑이었던 한 시인의 꿈을 여정이었던 한 宿의 꿈을 오늘은 제 꿈으로 엮고 있습니다 늘 이승이라 믿었던 그 꿈으로 이제는 저승에 둔 선생의 꿈으로 아드님과 며느님, 그리고 따님과 문우들과 제자들과 후배들이 그 꿈을 다시 이승으로 이끌고와서 오늘은 잔치를 펴고 있습니다 안성 땅 난실리 편운재와 청와헌을 서울 혜화동의 집필실과 문학관을 이승과 저승에 긴 다리를 놓고 캄캄하게 살아온 일흔과 여든의 내력 쓸쓸과 정나미와 아쉬움을 엮어 노잣돈으로 늘 셈하는 그런 버릇입니다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시간을 잊고 저승에서도 챙기지 못한 독려를 쌓아 오늘과 내일로, 또 낮과 밤으로 나누지 않고 외로움과 헤어지는 연습을 해가면서 손을 나누어도 석별치 않는 작별의 아름다움 그 모두를 지금 배우며 우리 기리고 있습니다. 성춘복 경북 상주 출생(193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제1회 월탄문학상한국시인협회상ㆍ국제펜문학상ㆍ한국문화예술상 수상. 시집 <길 밖에서> 등 18권. 수필집, 비평집 다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역임.
저녁 바람이 휘익 가슴팍에 와 안긴다. 흔들릴 잎새 하나 남지 않은 가로수들이 바람은 내 깊은 몸 안에서 불어오는 것이라고 귀띔한다. 어린 떡잎이 틜 때부터 죽어 고사목이 될 때까지 오직 건너편 쇼핑몰만 바라다 보아야하는 나무들이 내게 잊혀진 별들의 소식을 전한다. 어느 가지에선들 별이 뜨지 않았으리. 화단의 검은 목련가지 깊숙한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베란다 창문 끝에 매달린 차디찬 겨울달빛 가슴 가득 잃었던 별을 한 움큼 담고 싶다. 휑하니 뚫린 가슴 사이로 바람이 인다. 이진숙 충북 청주 출생. <시조생활> <예술세계>로 등단. 시집 <하루가 너무 길다> <창 너머엔 노을이, 가슴 속엔 사랑이>. 대통령포상 국민훈장 목련장ㆍ 시천시조문학상 수상. 국제PEN한국본부ㆍ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ㆍ예총예시작가회ㆍ현대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성동지부장
신선한 바람위에 누워 가을 교향곡을 듣는다 길 떠나는 뻐꾸기와 뜸북이의 울음이 현을 튕기며 갈대밭의 화음과 물떼새의 높은 음자리 기러기 떼의 협주 깊은 계곡의 사찰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에 우수수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 낙엽 이불을 덮은 공원의 벤치에 걸터앉은 고독이 콧노래를 부른다. 창밖의 화단에서 옷깃을 여민 국화 한 송이가 지휘를 하고 있다. 정순영 경남 하동 출생. 시집 <시는 꽃인가><꽃이고 싶은 단장><조선 징소리 ><잡은 손을 놓으며> 등 다수. 부산시인협회 회장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산지역위 원회 회장동명대학교 총장 역임. 현 세종대학교 석좌교수국제펜한국본부 부이사장 한국자유문인협회 회장.
가을이 온 세상 잎위에 사-뿐히 앉는다 창문 밖 8시 30분 햇살이 나들이할 때 반짝이는 중년의 얼굴이 보인다. 가을빛으로 타오르는 그리움 바람은 다 알고 있지 살짝 흔들어 놓고 도망치고 되돌아와 뒤흔들며 장난쳐도 한 잎 엉킴 없어라 팔방으로 흔들려도 제자리 지키는 저 완벽의 불혹 아름다워라 내일은 더 곱게 단장하고 햇살에 전신을 태워 한줄기 바람 보듬고 거닐면 그 자리에서 활화산처럼 타오르겠다 엄영란 경북 예천 출생. <문파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리움, 이유>. 한국문인협회ㆍ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사계문학회 회원. 창시문학회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원.
문동 저수지에서 점심때가 되어 삼거리에서 받아온 막걸리 한 잔을 놓고 보니 삼거리는 어머니에게 태어나 아홉살이 되도록 사시던 친정이어서 어머니 생각에 술 한 잔을 비웁니다 어머니의 친정 어린 날의 추억이 깃든 외가가 지척인데 저는 이방인처럼 겉돌아 가고 있습니다 통밀 맷돌에 갈아서 쑥잎 얹어 삼베 보자기에 누룩을 딛고 그 누룩 띄워서 술을 담고 항아리 넘치게 술 익는 소리 어머니의 힘든 세상이 오늘은 아름답게도 그립습니다 그리워서 제가 취하고 말았습니다 최영희 경남 거제시 출생. 1988년 마로니아 백일장 장원. <한국시>로 등단. 시집 <정오의 날개> <푸른 스케치북> <봄낳이> 한국문인협회ㆍ한국현대시인협회ㆍ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 거경문학ㆍ모시올ㆍ화요문학 동인
갈 때를 생각한다 저 자유로운 영혼의 손짓 자연에 떨리는 순응 푸른 욕망이 빠진 고달픈 진동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향해 手話를 한다 한 올, 한 올 빠져나가는 빛바랜 머리카락이 흙을 찾아 날아 간다 날기 위해 털고 있는 늦가을의 영혼들 갈대를 보며 갈 때를 생각한다 박일중 강원 횡성 출생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시사문단>으로 등단 광성중학교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