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죽 걸어도 넘어지지 않을 뚝심 하나로 하늘 이고 땅 짚어 때로는 비명 삼키며 무언으로 채워 무수히 밟고 지나는 山사람 소리로 세월 버무리네. 속 깊어 채워진 연륜 있어 객식구 돌개바람 흔들 때도 첩첩사연 내색 없이 버티고 살아 허기진 행복을 태양 빛 눈부실 날을 속절없이 기다리고 기다려 뜬구름 아래 버티고 있을까 청정한 내면에 수놓아 프르른 내일 꿈꿀 테지 말없는 까닭을 어찌 알까. 임병숙 시집< 하얗게 하루가 열리는 소리> <작은 그릇의 행복> <한 줄기 빛으로>, <향 맑은 날에> 등 다수. 한국문인협회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순수문학상순수문학작가상영랑문학상 수상.
용케도 견뎠구나 입구도 출구도 없고 고소공포증이 무서워 땅속에 살았다 ...참 많이 살았구나... 묻혔다고 잊혀지는 건 아니었다. 어두울수록 잘 보였던 너는 나를 믿고 나는 너를 믿고 나를 기다려 준 건 이처럼 환한 세상, 이처럼 눈물겨운 세상 이처럼 끈질긴 세상 이리도 아픈 세상 생각하기보다 살아가고 싶다 마침내 보여주고 싶다 이애정 전북 익산 출생 서울에서 성장 <책과 인생> 수필 당선 2002년 <문학시대> 시 부문 당선 2005년 시집 <다른 쪽의 그대>, <이 시대의 사랑법>
고향을 찾아드니 개들이 짖어댄다. 모처럼 내민 얼굴 낯설어 저러는가. 허물없는 나그네 속뜻을 나누자는 것인가. 주인 잃은 감나무 돌담에 기대서서 인사를 한다. 시름도 녹아내리면 눈물이 된다고 했던가. 까맣게 지난 시절 숙연한 빛깔로 떠오른다. 장태윤 전북 임실 운암 출생. <한국시>로 등단. 한국문인협회ㆍ전북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시집 <물소리 바람소리> <운암 여정> <갈대밭> 등 다수.
늦가을 물위로 날아오른 水鐘寺 그림자가 곱다. 물속에 빠진 종소리를 건지려다, 내가 빠졌다. 물버둥치다 말고 하늘오르니, 하, 우습다. 스님, 허공에도 감옥 있어예. 복짓는 소리 하들랑 마라. 스님, 스스로를 가두면 그게 감옥이라예. 감옥바깥도 감옥인 게야. 아, 그렇구나. 나를 건지려다 水鐘寺 종소릴 놓아버렸다. 단청이 단풍으로 떠있었다. 송세희 부산 출생.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가을 진달래> < 시는 말 라꼬 쓰노> 제31회 한국 현대시인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이사. <시와 전각> < 맑은시> 동인.
검문받지 않습니다 해빙의 바람은 강원도 철원군 민통선을 조금 지나 동면을 채 깨지 못한 강물이 흐릅니다 녹이 슨 경원선을 들풀이 사열합니다 금강산 발밑을 굽이돌던 물줄기가 철책을 외려 잊은 듯 남으로 깊어집니다 빙하기에 길을 내어 마른 적이 없습니다 이른 봄 갈증으로 덧난 평야를 바라보며 속 깊은 강의 울음을 오래도록 듣습니다 스무살 초병으로 나는 강을 보았습니다 승일교 고석정 노동당사도 보았습니다 나직이 풀리고 있는 철책은 강물입니다 제주도 애월 출생.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조집 <숨은 꽃을 찾아서> <상수리나무의 꿈> <오래된 숯가마>, 詩畵集 <마라 도 쇠북소리>. 2000년 중앙 시조대상 신인상 수상, <역류> 동인.
발 아래 찰랑이는 강물에서 정선 아라리가 들려오네. 푸른 잎 수런대는 느티나무 아래 이제는 외로운 두 발자국 포구여, 옛 영화는 어데 두고 물안개만 서성이는가. 두물머리 강물처럼 우리 때 늦은 해후를 한다면 우리 때 늦은 해후를 한다면 목청 높여 정선 아리리를 부르겠네. 전숙녀 강원 정선 출생. <문예비전>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ㆍ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시인협회ㆍ<비전 삶과 문학> 동인. 농촌진흥청 답작과 근무.
조금 느리지만 조금 힘들지만 그대에게 가는 길엔 저녁별 돋아나고 호수공원 물새들의 눈빛도 만납니다 소곤거리는 갈대숲 바람의 이야기 풀꽃들의 수줍은 미소도 그 길 위에 있습니다 반짝이는 별 하나 머리에 이고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그대에게 가는 길 빠르지는 않지만 편하지는 않지만 향기로운 대자연의 숨소리로 가슴 속을 그득하게 채워주는 길 우리가 잊고 살았던 따뜻한 것들은 모두 그 길 위에 있습니다 임애월 제주도 출생. 시집 <정박 혹은 출항> < 어떤 혹성을 위하여> 계간 <한국시학> 편집주간.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겸 남북교류위원. 한국문인협회 문인권익옹호위원. 경기문학인협회ㆍ수원시인협회 부회장. 한국경기시인협회 사무처장
천근 어깨 짊어진 채 정지문 옆 확독속 어머니 힘줄 불거진다 배고픈 눈망울 채워줄 보리쌀 갈아 솥단지에 앉혀 콩대불로 깜밥 태우신다 차가운 정지 바닥에서 지 찢어 한 줌 드시고 질그릇 부뚜막에 눕히고서야 거미줄에 매달린 오촉 전구 꺼진다 정지안 백리길 걸어야 어머니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안균섭 1966년 전북 출생 한국미소문학 등단 오산 문인협회 前 경기도청 근무 現 (주)도시유플러스 대표
살사 댄스 팩토리라는 곳 옛날 맥주 공장 개조한 3층 건물 멜링담 33번가 한여름 저녁 그들이 춤춘다 타인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가락을 얹고 파트너를 바꿔 가며ㆍ 이 달이 환한 밤에 삐걱거리는 바닥 틈 달빛 스텝을 밟고 음악을 틀려면 창문을 닫아야 한다 이웃을 방해하지 않게 땀 흘리며 밤이 깊도록 파트너 없는 이는 글자 쓴 종이를 벽 위에 붙인다 제 이름 나이 키 춤의 수준 여자는 분홍색 종이에 남자는 하늘색 종이에 어떤 이는 흰 종이에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그 사람과 나는 한 시간 춤을 추었다 내 발자국을 따라 흔들리는 숲 검은 숲엔 가지 않았다 김이듬 경남 진주 출생 <포에지>로 등단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작가로 독일베를린자유대학에서 강의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제1회 시와세계작품상ㆍ제7회 김달진창원문학상 수상
가쁜 숨 몰아쉬며 한 계단 두 계단 만리장성을 오르는 칠순 노구 잡은 손도 뿌리치고 한사코 어머니 혼자 가신다 살아온 날들이 습관인 듯 몸에 배인 홀로인생 젊은 날 당신 삶이 끝이 안 보이던 만 리, 만 리였음을 만리장성 앞에서 새삼 보고 싶으신가 평생 자식들 앞세우고 뒤에서 뒤에서만 따라 오시더니 오늘은 짐 될까 앞서 앞서만 가신다 박경숙 전남 영광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졸업. <문예비전>으로 등단. 시집 <비금도의 하루> <야생을 말리다> 한국문인협회ㆍ국제펜한국본부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ㆍ수원시인협회ㆍ수원문 인협회 회원.
누가 나뭇잎 푸른 손 흔들어 날 오라 부르나 누가 풀잎 가슴 풀어헤쳐 날 부르나 유리 속에 갇힌 짐승 나를 포효도 잊어버린 나를 누가 자꾸 손짓해 숲으로 가라 하나 저 빗줄기 속에 몸 섞어 풀뿌리 되라 하나 잔뿌리 실뿌리 얼크러져 무너지는 땅 몸으로 감싸 안으라 하나 먹이만 던져주면 배부른 나를 배부르면 젖은 땅 어디서나 잠드는 나를 잠들면 구겨져 꿈도 꿀 줄 모르는 나를 앙상한 손가락을 펴고 동강난 뼈마디로 흔들어 깨우나 굵은 장대로 등허리 후려치며 지금은 잠들 때가 아니라 하네 아직은 잠들어서 안 된다 하네 아, 누가 있어 온 몸 후려치면서. 이혜선 경남 함안군 출생. <시문학>으로 등단. 문학박사. 시집 <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 평론집 <문학과 꿈의 변용> 등 다수. 한국현대시인상ㆍ동국문학상 수상.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부회장.
숲속에 들어가 보라 그곳엔 바람이 있다 천년의 새소리도 곰삭은 나무향기도 없는 건 사람의 손때 넘치는 건 물 소 리. 최오균 경기 화성 출생.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 <산, 먼동 흔드는>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오늘의 시조시인회 회원. 경기시조시인협회 회장 역임.
후드득 간 밤 소나기에 목을 통째로 꺾어 진주성 에워싼 성곽 바위에 몸 던진 능소화 몇 겁 생을 건너와 단 한 번 너를 사랑한 죄로 새로이 아프고 아픈 꽃송이 옥색 안개 헤치고 분향 하는 까치새 한 마리 연지색 소곳한 꽃송이에 검은 점 점 바늘땀 박으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연푸른 소매는 한없이 길어 먼하늘 별을 캐는 산홍* 아씨 영혼이 꿰찔린 가슴 가슴 단 한 번 사랑한 죄로 유월에 꽃이 진다 * 산홍 : 진주 관기 도경회 경남 산청 출생. <詩의 나라>로 등단. 시집 <노래의 빛> <외나무다리 저편> 진주문인협회ㆍ국제펜한국본부 회원. 현재 경상대학교병원 수간호사
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는데 사람의 마음은 부서져 무엇이 되나? 밤새워 우는 새 아침 이슬 기와집 처마 끝에 걸린 초승달 더러는 풍경소리 바다는 변하여 뭍이 되는데 우리의 사랑은 변하여 무엇이 되나? 나태주 1945년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대숲 아래서> <막동리 소묘> <세상을 껴안다> 산문집 <풀꽃과 놀다>, 동화집 <외톨이> 등 다수 박용래문학상ㆍ시와 시학상ㆍ편운문학상ㆍ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초등학교 교장 정년 퇴임 현재 공주문화원장
낮에 보이던 검푸른 알프스 산맥은 태양을 숨긴 채 어두움에 묻혀 있다. 만년설 녹아 계곡에 물 소리 되어 검은 시간을 깨우며 흐른다 알프스 산맥을 언덕삼아 베네딕트 수녀원은 조용히 숨어 있다 아직 어두움이 깔려 있는데, 영혼을 깨우는 종소리가 알프스 계곡에 메아리친다 105세의 수녀원장은 수녀원 창문을 열고 알프스 산맥의 메아리를 듣는다. 김형애 연세대학교 연세의료원 행정실장. <수필문학>(수필), <조선문학> (詩)으로 등단. 수필집 <내 여로의 페치카에서>, 시집 <詩가 있는 페치카> 등 다수. 한국문인협회ㆍ국제PEN한국본부 회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월간 <수필문학> 상임편집위원. 제22회 수필문학상 수상.
봄이면 나비만 사는 섬 하나 있다 별이 반짝이는 푸른 바다를 지나 바람에 일렁이는 유채 밭 끝없이 피어나는 노랑나비 떼 금빛 물결 이루며 꿈에 젖어 나비들만 사는 섬 하루 종일 뜨고 내리며 천년을 살아도 못다 할 사랑으로 한 쌍의 나비로 피어난다 샛노란 나비들 바람물결 타고 온 섬을 뒤덮어 여기저기 꽃 뭉치로 피어 함박웃음 노랗게 날고 있다. 노란 꽃구름 피어나는 이른 봄이면 나비만 사는 섬 그곳에 있다 허정예 강원도 홍천 출생. <문파문학>으로 등단. 문파문학회동남문학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수원시인협회 회원.
아직 밤이 여물지 않은 이른 새벽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며 아침을 여셨다. 올망졸망 감자같은 자식들에, 허기진 살림살이에 쉼없이 살아온 나날들. 사과꽃 속살같이 고운 얼굴은 어디가고 당신이 걸어오신 인생의 갈바람에 깊어진 주름들. 팔남매만 바라보고 살아온 팔십평생 어머니를 잃어야 얻어지는 고된 삶. 자식들에게 모든 걸 쏟아내고 남은 건 말 안 듣는 몸둥아리뿐, 평생 자식을 위해 한파를 온몸으로 막아내신 까닭일까 한여름에도 빨간 내복을 입고 두꺼운 담요를 덮어야 잠을 청할 수 있는 어머니 달빛에 젖은 하얀 박꽃같은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다. 휘어진 소나무처럼 불거진 손가락에 무쇠같은 손을 본다. 이제는 고장난 시계같은 어머니 온몸으로 어머니가 견뎌냈을 세월이 느껴져 마음이 뜨거워진다. 안수경 <제9회 화성시 여성 예능경진대회 백일장 시부문 최우수작품>
봄날 홀연히 나타난 호랑나비 한 마리 빙그르 도는 날개짓에 심장은 천둥소리를 냈다 나비 만지면 눈 먼다는 이야기 있어 만지지도 않았는데 눈 멀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꽃밭에 앉아 향기에 취해서 날마다 분홍색 이야기로 봄 가는 줄 몰랐다 어느 듯 봄은 가고 장마비 쏟아지는 여름 날아가 버린 내 나비 오지 않았다 다시 찾아 온 봄날 행여 올려나 가슴에 북채를 대고 기다렸다 봄 다 지나 나는 알았다 가슴 주머니 속에 나비를 접어 놓았다는 걸 꽃그늘에서 가만히 내 나비 꺼내본다 아직 화려한 날개 그대로다 서선아 <한국문인>으로 등단. 시집 <4시 30분> 한국문인협회ㆍ경기시인협회회원. 문파문학회ㆍ수원시인협회 회원. 제5회 동남문학상 수상.
이 아침 벚나무 한 그루 창가에 섰다 지난 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허공에 날리던 꽃잎들 제 살점 공중에 사정없이 풀어버린 몸의 춤, 그 꽃잎 다 날리도록 기다려주던 나무의 숨 멈춤 입은 옷 다 벗어던지고 바람이 밀어내고 햇살이 거두어가고 비로소 처음의 몸피, 가지런히 드러냈다 고즈넉한 한 그루 나무로 섰다 짧은 사랑을 다 털어내었다 벚나무 나이테, 하나 더 늘었다 장순금 부산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시집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등 6권 출간. 동국문학상한국시문학상 수상. 한국가톨릭문인회 사무국장, 한국시인협회국제펜한국본부목월포럼 회원.
그리움이 하게 흩날리는 날은 너의 꿈에 젖는다 순백의 눈물 훔치며 향기로 날리는 반복 마음에 가득 차 외로움을 숨쉬게 하니 냉이꽃 만한 세월 맑은 영혼 안아 따스하다 건너야 하는 것이 하늘의 비밀이라면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꽃잎 내 가슴에서 흔들릴 때 목이 긴 봄날의 햇볕 퍼내면 더 짙어지는 향기 그윽한 꽃다지로 내 가슴 물들여 바람곁에 둔다 장찬영 강원도 출생. <한맥문학>으로 등단. 문학공간 문학대상 수상. 한국문인협회ㆍ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시집 <가슴 속에 구름 뜨면> <세월은 바람처럼 스쳐가고>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