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사는 집엔 전기밥솥이 딱이다 밥솥에 쌀 넣고 물 붓고 딴 일 좀 하다 보면 어느새 다 됐다고 신호를 보낸다 참 고마운 밥솥 이젠 한 가족이 되었다 요 예쁜 딸아. 윤수천충북 영동 출생, 국학대학 국문과 2년 수료, 7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쓸쓸할수록 화려하게 빈 주머니가 따뜻하다.
공원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하늘, 신선이 된다 스르르 감기는 눈조차도 한가로이 보이는 허세가 저 새순이 파릇한 나뭇잎에 앉아 노는 바람보다 여기저기 빨갛게 핀 철쭉 사이 들풀조차 화려하니 바람이 불어와 내 열정을 훔치려고 흔들어 대는 모습도 시 한수 읊은 신선보다 못하다 저기 저 아저씨 악기 들고 오시더니 화려한 날의 축제를 연다 박효찬강원도 속초 출생, 시사문단으로 등단,북한강문학제 풀잎문학상·경기문학 공로상·오산문학 문학공로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오산지부 회장.
맑은 물 하얀 행주로 거울같이 훔쳐낸 드넓은 대청마루 정갈하게 윤이 나네 어머니 굽은 허리로 바다 물빛 닦으시나 고향집 앞뜰에는 부지런한 명절맞이 은조기 한 켜 한 켜 햇살 받아 눈부시네 대나무 푸른 채반에 언제 저리 담으셨나 섬 사이 바지랑대 구름 홑청 널어놓고 물 깊은 화선지에 손수 쓰신 쪽빛 편지 객지로 나간 자식들 펼쳐보라 띄우시네 김경옥부산 출생. 중앙일보 백일장한국시조시인협회 전국백일장 장원. 유심 신인상 수상. 수원문인협회한국시조시인협회한국여성시조문학회 회원.
[시가 있는 아침 ] 강가에 앉아강가에 앉아 햇살이 물결을 타고 도란도란 흘러가는 모습을 본다. 저토록 다정한 모습으로 저토록 눈부신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수만 가지 언어를 가지고도 변명밖에 할 줄 모르는 수만 가지 수식어를 가지고도 가슴엔 벽만 쌓고 사는 우리는 따스한 온기를 나눌 줄 아는 햇살이 부럽다. 조용조용 다정한 눈빛으로 속삭일 줄 아는 강물이 부럽다. 원망과 비난으로 가득한 우리의 대화 폭력과 악으로 남용되는 우리의 언어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의 대화 기쁨을 잃어버린 우리의 언어 강가에 앉아 햇살이 물결을 타고 도란도란 흘러가는 모습을 본다.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나를 흘러간 수많은 일상들 세상을 흘러간 수많은 사람들 상처 지고 얼룩진 채로 흘러가는 흔적 또한 삶의 강물이 아니던가 무심한 강물은 그지없이 평화로운데 내 마음은 외로움으로 절절하구나 - 충북 보은 출생, 순수문학으로 등단. 영랑문학상 수상, 시집 강가에 앉아 등 다수. 현, 한국 문인협회 여주지부장
암흑 속 내 떠날 채비란 불빛을 찾겠단 의도였다 일부러 주섬주섬 찾아가는 손짓에 밝은 햇살을 기다리는 게다 유년시절의 찾고픈 향내는 장거리의 시간이 내어 준 안착 안착의 애미 품 타임머신을 타고 입가에 고정시킨 달고나 멈추어 착륙한 세 개의 기둥 가운데 설탕 속 선들을 분명화시킨다 첫 번째 기둥에 기대 바라봤던 그 하늘, 품 나도 모르던 기록이 기록될 때 채비에 차비를 더해 뒷모습에 슬픈 고마움 건넨다 그리 무겁고도 단단했건만 이제야 놓고 서서히 시동을 켤 수 있다니 함께 지닌 시와 잠시 마주할 때 풀어헤친 머릿속 마음을 덮기 위한 고백이 시작된다. 장선아 중앙대학교 대학원 졸업(영문학/국문학 전공). 호주 Conservation Volunteers Australia 수료. 한국문인으로 등단. 라디오 포옹(The Radio‘s Embrace)한ㆍ영 대역 시집 출간. 문학미디어 올해의 작가상 수상, 중앙대문학상 수상. 국제PEN 한국본부 경기지역위원회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ㆍ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단국대 영어(TOEIC)강사
화성 봉수대 아랫마을 골목 안 온기 사라진 지 오래, 계단마다 아픔으로 덜컹거리고 알 없는 창 깊은 동공으로 쏘아 본다 지붕 위를 가로지르는 고양이 목젖이 붉다 만삭 우편함 입추의 여지없어 하나 둘 흩어져 나부끼고 널브러진 잔해 속에서도 발자국 스탬프처럼 찍힌 숱한 사연 누워 뒹군다 인증 샷 한 컷 눈물로 얼룩진 얼굴 아픔의 크기로 들어와 찼다 수신인 없는 편지 허공에 파문을 그린다. 임종순경북 안동 출생. 문파문학으로 등단. 수원문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가 있는 아침 ] 작은 새 아파트 나무 위에서 아침마다 우는 새 회색의 옷을 입고 꾸르륵 꾹꾹 운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닌다. 눈길을 주면 울음을 그치고 내 눈을 본다. 앙상한 가지에 잎을 피우려는 나무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작은 새 비둘기보다는 작고 참새보다는 조금 큰 네 이름을 알 수 없다 내 마음도 작아질 때 있고 산만큼 커지면 부러움도 근심도 없으련만 자꾸 작아진다 아픈 다리 절룩이며 걸어 갈 때는 나도 너처럼 가지마다 날아다니며 노래나 불렀으면 싶다. 꾸르륵 꾹꾹 꾸르륵 꾹꾹 찌든 내 영혼을 씻어주는 작은 새 소리다. 충북 청원 출생. 문파문학으로 등단.시집 달콤한 오후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내 가슴 태운 자리 恨 심고 떠난 이여 봉수당 회갑연에 축수잔 받자오니 아들의 지극한 효성 천만세를 빛내리다 뒤주 속 제 아비를 눈 뜨고 볼 수 없어 식음을 전폐하고 발 구르며 애원해도 권력은 가혹하여라 서슬 퍼런 칼날이여 슬퍼서 울어주랴 미쳐서 웃어주랴 골수에 맺힌 원한 녹아내린 슬픔인 걸 울어라 내 아들이여, 엉킨 한을 풀어라 구충회전 경기도교육청 교육국장,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
모퉁이 돌아 가을이 온다 오래 된 나무 의자 길손 기다리다 깜박 졸음에 겨운 날 맑아진 국화의 숨결 나 홀로 깊어지고 잠자리 투명한 날개 위 바람의 무늬, 비행을 한다 예보 없이 지나던 소낙비에 망초꽃 까무룩, 깨어보니 여름내 바지랑대 맴돌던 섧고 푸른 그대 생각 산그늘에 내려앉은 노을빛 풍경소리 오늘은 아슴한 얼굴로 뎅그랑 뎅그랑 울린다
작별 인사도 없이 여름이 떠나고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에 묻어 있는 가을 향 높고 푸른 하늘 새털구름 풍요로운 들녘 살살이꽃 하늘거리는데 알알이 익어가는 석류 새색시 볼처럼 곱다 눈이 시리도록 햇살 고운 날 은빛 억새밭에서 바람이 출렁이는데 누구를 기다리나, 미루나무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서성인다. 양길순전북 임실 출생. 합동신학대학원 평생교육원 수료. 한국문인으로 등단. 경기여류문학회 회원
몸에, 미움이 가득 차니 아프고 무겁다 미움도 사랑이라고 몸이 먼저 말을 건다 나를 위해 이젠 널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최대희평택 출생. 문학세계로 등단. 시집 선물 그리움은 오솔길에 있다 2004년 농촌문학상 우수상 수상. 수원문인협회, 경기문학인협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사무국장.
망망대해의 종이배,어제는 폭풍우 속에서동녘으로 광명의 햇빛이 찬란한오늘이 있기를 기도했습니다오늘도 기도 합니다 굶주린 배 채우고 허기진 영혼 위로받을 수 있는 내일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바람 불면 돛 올리고 바람 자면 노를 저으며 세상 바다를 지나갑니다 바람이 시나브로 갉아 먹은 젊음, 머리엔 서리 내리고 새우 등에 곰팡이 핀 얼굴 되어도 서편 하늘 별 밭에 닿을 때 까지 사랑을 노래하며 평안을 염원하며 그렇게 기도하며 쉬지 않고 갑니다. 김도희황해도 사리원 출생. 스토리문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ㆍ경기여류문학회 회원.
서산 팔봉산을 지나 구도항에 들어서면 바다를 품에 안은 그 집이 보인다 가까운 나들이를 할 때는 노란 손수건을 걸어 두는 집 먼 곳을 떠날 때는 낡은 깃발이 휘날리는 그 집 빈집에는 늘 바람이 찾아간다 버림받은 반려동물처럼 숨어든 바람은 손수건으로 지친 팔다리를 닦고 깃발이 휘날리는 날이면 때에 전 옷을 빨아 말린다 바람이 가끔 찾아드는 그 집처럼 마음을 비워야 할 때가 있다 머물지 못하는 것들을 위해 텅 빈 곳을 내어주는 그 집처럼 바람이 쉬어가는 맘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성백원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오산문인협회지부장 역임, 오산문학대상, 경기문학 작품상, 한국착시문학대상, 빙촌문학상, 한국예총공로상, 한국미소문학대상, 시집내일을 위한 변명 형님 바람 꽃 졌지요 아름다운고집
드디어 드디어 우리 한반도 힘줄인 태백산 자락이 여기쯤 와서 무릎을 적셔 숨을 고르고 숱한 그 세월을 기다려온 우리네 선대들의 뜨거운 바람이 서해 바다 물결 뿜어 올려 가득 채워 토해내느니 넘실넘실 당진 건너 당나라까지 평택강이다 노 저어가자 한강으로 대동강으로 엔진 높이 올려 요동반도로 태평양 건너 또 수 천 년의 또 수 만 년을 동서양 하늘 날아 철새들 나르고 수초들이 바다고기 떼 키우고 넘실대는 평택항 물길 열리면 한겨레의 염원 배에 싣고 인류평화 찾아 상해 동경, 적도 지나 시드니 런던 뉴욕까지 엔진 키를 높여가자 노 저어 가자 태평양으로 인도양으로 대서양으로 나가자 세계로 하늘 끝까지. 이삼헌평택 출생. 196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한국문인협회ㆍ국제PEN한국본부ㆍ한국현대시인협회ㆍ기독시인협회 회원. 중대문인회 상임이사. 시집 의정부행 막차를 타고 등 다수.
이른 아침 식당 TV 화면에 제주도 유채꽃 소식 요란스러운데 저만치 한 사내가 벌떡 일어나 아흔 살 어머니 모시고 제주도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란다 오, 저토록 오달지게 가슴 절절한 말 겨우내 팍팍했던 마음 밭에 봄비 내린다 아흔 살 노모 등에 업은 유채꽃보다 더 곱게 일천 마디 뼛속을 돌아 돋아 난 사무친 꽃 북상하는 꽃물결 따라 발긋발긋 물들어가는 세상 음, 사람 향기 참 좋다. 구향순
출행 맞춘 알람 첫 음에 발딱 몸을 일으키는데 내 어려부터 잠귀 밝다며 뒷걸음질로 샛별을 시계 삼아 새벽밥솥 불 지필 때 엄마머리칼 색 희었는지 검었는지 어릿하고 치마꼬리 당겨 허리띠 조이던 시간으로 기행 길 강변 조약돌 달군 볕 샛별 다 모은 듯 빛 부심 속으로 등성이 산 뻐꾸기 맑은 목청 옛집 태엽 가득 감은 뻐꾸기시계 시각마다 창 열고 청청한 뻐꾹 소리 소리 세며 일손 가늠하던 엄마시간으로 후딱, 희고 곱던 살빛 가뭇해진 밥알 삼킴도 알아챌 살갗 얇고 마른 목의 노구 목숨 놓도록 옥색탁상시계 시침분침 짚어 정신 줄 챙기던 엄마의 겨운 시간으로 샛별시계 뻐꾸기시계 옥색시계 이제도 내겐 시시때때 거꾸로 가는 시계. 김철기1983년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창립. 시집꿈 빛 나이테등 11권. 전자시집, 시낭송시집 다수. 한국자유시인상, 한국문예협회문학상, 해동문학상, 경기도문학상, 탐미문학상. 한국시학상 등 다수 수상.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독서진흥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지도위원.
ATM기계 옆 등굽은 전령사 쪼그리고 앉아 봄을 팔고 있다 수줍음 소복이 쌓인 봄을 만지작거리다 이천원에 한 바구니 담았다 꽁꽁 여민 내 봄 손 끝 붉히며 시작된 열병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된장 국물에 후루룩 풀어 놓으니 구수하게 일어나는 얼굴하나 오늘 저녁 식탁엔 내 어머니의 봄이 풀 빛 아지랑이를 피운다 전옥수
살아서는 이념의 총칼이더니 죽어서는 이름 없는 봉분의 잡초 적요의 고요만이 칠흑의 어둠 소란히 밟고 간다. 아아, 타향의 산하에 스러진 묘지의 원혼은 누가 달래주나 고향의 푸른 잔디 망향의 젖은 시름 누가 보듬나 여전히 충혈 된 민통선의 눈, 도라산 역에서 엉겅퀴 꽃에 누운 적막을 수송하라! 납 메아리가 그날의 곤한 잠에서 깨어나면 악의 없이 뛰노는 고라니 마을 부지깽이 어머니 군불 지피는 푸성귀의 새 아침은 오리라. 윤형돈건국대 영문학과, 성결대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전국 교원문학상 공모 시 당선. 경기문학인상 수상. 시집 땅끝 편지 슬픈 연 꽃 사과나무 아래서 영역시집 흑자갈의 노래 비너스의 태몽 응시. 현재 수원문인협회 번역위원장,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
수국(水菊) 지는 자리에 접시꽃 피다 - 또 다른 생(生)을 위하여 오월의 햇빛 속에 제 무게 겨워 지치고 여린 몸 기약만 믿고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여 힘겨워 내려앉는 어깨 추스를 때마다 창백한 눈물방울 뚝뚝 떨어지고 흩어진 눈물 한 방울 강이 되고 산이 되는 날 무성한 수국은 지고 접시꽃이 피었다 유경희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한국시학으로 등단. 글집 하룻강아지의 꿈 출간. 현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 국어교사
시계가 멈춘 시간 찻물을 끓인다 기포들이 탄산처럼 G단조의 춤을 추고 잎맥 속 잠자던 기공이 허기虛飢들을 토한다. 코끝에 스며드는 곡진한 그 향기는 순간을 놓칠 수 없는 바흐가 그린 꽃잎* 아득히 진설되는 향 찻잔 안에 고여 든다 *바흐의 시실리아노 G단조 김경은2008년 월간문예사조 신인상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 나래시조 회원, 경기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 수원문인협회 시낭송분과위원장, 동남보건대학교 평생교육원 시낭송 지도교수, 감성시집 선물, 낭송시디 1집 당신이 있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