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부동산 정책의 바람직한 방향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다양한 부동산투기대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라 할 수 있는 대통령도 아무리 어렵더라도 부동산을 통해 경기를 살리는 노력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만큼 부동산투기억제에 대한 정책의지는 그 어느 정권보다도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지난해 연말까지만 하더라도 10·29 부동산 종합 안정대책 이후 우리의 부동산시장은 일본과 같은 부동산의 자산가치 하락이 나타나지 않을까 할 정도로 부동산시장은 급랭한 상태를 수개월째 지속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부동산관련 전문기관에서는 주택시장은 물론 토지시장까지 가격붕괴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았으며, 정부에서도 부동산시장의 규제완화책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에 들어서면서 그 판세는 크게 변동되었다. 판교신도시의 분양가논쟁에서 비롯된 기존 아파트가격의 상승은 다시금 재건축아파트의 가격상승을 야기하게 했다. 또 분당신도시를 중심으로 대형아파트 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져 부동산시장의 안정화에 가장 큰 효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는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용인시 신봉·죽전·성복·풍덕천·동천동 지역을 추가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주택거래신고지역에서는 모든 부동산 거래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신고 됨에 따라 취득 및 등록세의 비중이 높아져 시장거래가 위축되는 효과를 가져온 바 있다. 이와 함께 보유세를 강화하고 1가구 2주택자에게도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물리겠다는 5·4부동산 대책은 더욱 강력한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으로 발표되었으나, 이러한 정책이 부동산시장의 안정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서는 아직 속단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부동산정책의 큰 방향은 투기억제와 건설산업 활성화라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하여 왔다는 점에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부동산시장과 부동산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산업활동인 건설업은 뗄래야 뗄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부동산정책의 집행은 건설산업과 부동업의 균형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에 항상 관점을 두어야 성공을 이룰 것이다. 자칫 부동산투기에 초점을 맞추어 정책을 집행하다가는 부동산시장은 안정화되지 않고 급랭하여 일반서민의 주거생활에 불안정을 가져옴은 물론 건설산업까지 위축시킨 사례를 보았으며, 위축된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 실시한 분양가자율화, 양도소득세부과기준 완화 등의 조치는 다시 부동산시장의 급등을 초래한 전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실 부동산시장의 안정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가 원하는 사항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올바른 부동산 정책이란 다양한 건설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도록 하며, 활발한 활동의 결과로 모든 국민이 판교신도시 청약과 같은 로또와 같은 대박의 꿈이 아니라 희망하는 지역에 희망하는 수준의 주택을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용 범 박사 (한국토지공사 토지정보센터)

경제프리즘/세계 철강메이커 견문기

1997년 가을 펜실베이니아의 베들레헴에 있는 미국 제2의 대형 고로(高爐)철강사인 Bethlehem Steel을 찾은 날은 공교롭게도 그 공장의 고로 불을 끄는 날이었다. 커다란 공룡이 마지막 임종의 단말마를 남기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은 미국 제1의 고로 철강메이커인 US Steel에서도 이미 경험한 바였고 나머지 미국의 다른 고로 메이커들도 같은 신세에 놓여 있었다. 베세머(Bessmer)공법으로 철강의 대량생산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던 영국의 BS(British Steel)도 Pax 브리태니커 시대의 명멸(明滅)과 맥을 같이 하는 듯 느껴졌다. 1970년대 초부터 일본의 고로 메이커들과 1980년대 들어 한국의 포스코(POSCO)에 경쟁력을 잃은 후 겨우 연명해오던 미국의 고로 메이커들이 90년을 전후해 급부상한 Steel Dynamics 등 미니밀(mini-mill)사들에 밀려 완전히 고사(枯死)당하는 형국이 되었던 것이다. WSD(World Steel Dynamics)의 맨해턴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철강전문가들과의 대담에서 세계 최고 최강의 철강 메이커로는 어디를 꼽느냐고 묻자 주저 없이 POSCO와 NSC(신일본제철)라고 답하는데서 순간 묘한 자긍심이 느껴졌다. 더욱이 워싱턴 DC에서 만난 한 철강 컨설턴트가 POSCO에 대한 로비를 부탁하는 데서는 더더욱 그랬다. 대만의 남단 항구도시인 카오슝(古雄)에 있는 CSC(China Steel Corporation)를 방문, 한국의 POSCO를 열심히 벤치마킹(benchmarking)하고 있는 그네들의 모습에선 미래의 경쟁력이 보이는 듯 했다. 뉴욕 센트럴파크의 남단근처에 위치한 미국 스틸클럽(Steel Club)에서 가톨릭신부이면서 철강전문가인 호간(Hogan)박사를 만났을 때 그는 미국의 고로 철강메이커 만큼이나 너무 늙어 있는 은퇴교수였다. 그가 초대한 식사자리에서 철강산업의 산업적 특성을 어떻게 보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정치적 산업(political industry)이란 한마디로 답을 던졌다. 의아해 하자 각국마다의 제품믹스(product mix)상 국가간의 교역이 생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철강산업은 자국의 수요를 전제로 하지 수출에 염두에 두는 산업은 아니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뒤이어 왜 미국의 고로 메이커들이 일본과 한국에 경쟁력을 빼앗겼는가를 묻자 그의 답은 역시 명쾌했다. 미국의 철강노조(鐵鋼勞組)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첨단 철강기술인 고로대형화(高爐大型化)기술과 연속주조(continuos casting) 및 소둔(annealing)기술로 덤비고 뒤를 이어 한국의 POSCO도 거기에 합세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신기술채택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막강한 철강노조와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집단 때문에 미국의 고로(高爐)산업은 끝장났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철강산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란 것이 그의 지론이기도 했다. 1860년에 설립된 후 두 번씩이나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승리를 가져오는데 크게 기여하면서 지난 140여 년간 미국의 자존심이기도 했던 Bethlehem Steel는 결국 내가 찾은 지 6년 후인 2003년에 ISG(Internat ional Steel Group)사에 매각되는 운명을 맞았다. 산업주도권(産業主導權)이 왜 바뀌는지를 절감케 하는 대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는 본인에겐 산업주도권의 이동현상을 이론적으로 구명해 봐야겠다는 의욕과 자극을 준 계기가 되었다. /김 인 호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경제프리즘/내가 만난 구공산권 사람들

지난 1996년께 몰디브(Maldives)라는 인도양(印度洋)상의 휴양지에서 몇 날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마침 커다란 유람여객선 한 척을 빌려와 3개월여를 지낼 예정에 있다는 30여명의 러시아인 중에서 한 친구와 잠시 얘길 나눌 기회가 있었다. 유난히 이글거릴 뿐만 아니라 살기(殺氣)까지 느껴지던 그 친구의 눈동자에서 그들이 범상한 친구들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선 방갈로 방들을 3개월씩이나 장기(長期)로 빌려서 사용하는데 드는 돈의 규모라든가 유람선까지 빌려 왔다는 사실부터 그러했다. 1985년 구소련 연방이 해체된 후 러시아는 곧 미국의 마피아 수중에 들어가 마피아와 끼고 무슨 비즈니스든지 다한다는 걸 어디선가 본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바로 그런 친구들이구나 하는 감이 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구공산권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었다. 이후 지난 2003년 겨울 태국 파타야(Pataya)해변에 새로 지운 휴양호텔에서 한 달간을 머물 예정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온 20여 명 정도의 중년 이상의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1박에 100달러가 넘는 방을 단체로 사용하는 그네들의 씀씀이에서 그들이 러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의 기준으로도 대단한 부자임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인천공항 세관에서 꼬치꼬치 묻는 세관원의 질문에 답하며 한참만에야 어렵게 통과하던 러시아 무희(舞姬)로 보이던 그 예쁜 여자와 그들은 너무나 딴 판이었다. 아마 이들도 마피아를 낀 비즈니스로 벼락치기 부자가 된 집안의 사람들로 생각되었다. 소련연방이 해체 후 러시아에서 빈부격차가 얼마나 심한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돈의 여유는 있어 보이는 그들 모두에게서 한결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표정도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오랫 동안 공산주의 사회에서 감시(監視)와 주시(注視)를 당하며 살다보니 저절로 무표정의 인간들이 되어버렸는가 보다. 그들 중엔 다소 젊은 남녀도 몇이 끼어 있었는데 그들은 약간의 감정과 표정을 담으려는 듯 보였지만 그들도 대체로 그러했다. 아무튼 내 눈에 비친 그들은 그야말로 사람이라 볼 수가 없었고 마치 밀랍(密蠟)인형들 같았다. 이것이 구공산권의 사람들에 대한 나의 두 번째의 인상이다. 지난해 여름 와이프와 함께 겸임교수로 있는 연변과학기술대학에 특강 차 갔다가 장춘(長春)으로 올라가 그곳의 주교좌성당(cathedral)엘 들러볼 수 있었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성당이었지만 공산화되던 1930년대에 문을 닫은 후 50여년이 지난 1980년대 들어 등소평이 등장한 이후에야 다시 성당 문을 열었다고 한다. 80세가 넘었지만 준수해 보이는 그곳 주교(bishop)와 한족(漢族)이면서도 조선족(朝鮮族) 선교를 위해 한국어를 배웠다는 중국인 신부 그리고 말은 서로 안 통하지만 홍조 띤 얼굴과 친절을 담은 미소를 내보이던 두 수녀(修女)에게서는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느낌을 받았다. 구공산권 치하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에이~’ 하며 두 손을 내 졌던 신부의 몸짓에서 구공산사회의 면모가 어떠했는가를 느끼는 듯 했다. 이것이 구 공산권의 사람을 대하며 가진 세 번째의 인상이다. 구공산권 사람들을 대하면서 유물론(唯物論)의 공산이념(共産理念)과 통제된 사회체제에서 계획경제(計劃經濟)에 사람들이 길들여질 때 어떻게 되어지는가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이는가를 또 확인하면서, ‘진리(眞理)가 너희를 자유(自由)케 하리라(The Truth will set you free)’ 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김 인 호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경제프리즘/올바른 교육개혁

교육에 관한 열정과 관심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현실의 반영 덕분인지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교육현실과 교육제도에 대해 개선책을 말하고 또한 걱정하는 걸 볼 때 교육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답답함을 느낀다. 그 답답함의 이면에는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교육정책이 진행되고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의 교육과정이 끝나면 당당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 취업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대학 졸업자의 절반이 취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모임에 갔다가 교육학을 전공한 교수에게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교육을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그 교수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게 현실 이듯이 자신의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이론보다는 자녀의 행동에 대해 질책과 회초리가 먼저였다”고 답변했다. 그만큼 교육이라는 게 가정 교육, 학교 교육, 사회 교육을 불문하고 어렵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 얼마 전 교육계의 원로들이 석고대죄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는 의식이었다. 교육자로서 사회의 원로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이러한 의식을 거행하게 된 동기였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교육문제에 있어 내 탓보다는 남의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교육제도의 잘못, 교육행정의 미숙한 집행, 학부모의 높은 기대, 학생의 자질문제 등을 문제 삼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의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의 책임문제에 대해서는 그간 너그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즈음 교육개혁에 대한 여러 가지 정책과 대안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올바른 교육개혁의 첫 번째는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교육현장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오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시행되는 새로운 교육제도인 상대평가제를 적용받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중간고사를 앞두고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이는 상대평가로 계산한 내신성적 중심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새로운 대입시험제도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학교의 친구와의 경쟁에서 좋은 내신성적을 얻어야하기 때문에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경쟁원리가 적용되는 제도이다. 문제는 현재의 대입시험제도이든 향후 시행되는 대입시험제도이든 간에 경쟁원리가 너무 강조되고 대입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너무 혹사시켜 이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전혀 공부에 흥미를 갖지 않는 다는데 문제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어떤 형태로든 학생과 학부모 입장을 고려해 수정돼야하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 창의성을 발휘해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교육개혁의 처음과 끝이 대학의 개혁으로 귀결되는 이유는 그만큼 대학이 가지는 가능성과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공립대학을 중심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진행되고 있는 인수합병도 기업에서와 같이 생산성을 담보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내재되었다고 생각되며 지방대학의 신입생수 격감현상과 맞물려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학교수의 의무이자 책임인 교육·연구·사회봉사는 향후 사회를 책임질 인재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졸업 후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하며, 자신의 연구영역에 대해 끊임 없이 노력해야하고, 자신의 교육과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봉사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자세를 잃지 않을 때 올바른 교육개혁도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이 종 선 대진大 기계설계공학과 교수

경제프리즘/엽면시비 할만한 것인가?

어떤 분에게 들은 이야기다. 인도네시아의 한 관광지에서 겪은 일이라고 했다. 어떤 오락장에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입장을 관리하는 사람이 다가와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갔더니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입장시키더라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입장하다가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한국 손님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매우 싫어해서 줄을 섰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일쑤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을 잃게 되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 했단다. 그 말을 듣고 민망해서 도로 나와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입장했다고 했다. 까닭 없이 일을 꾸물대며 하는 것은 물론 좋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늘 일을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도 좋지 않을 것이다. “바쁘다, 바빠!” “빨리 빨리!” 이런 말들이 한국 사람들의 입에 늘 붙어 다니는 말로 여기는 외국인들이 많은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게으른 이들이라고 여김 받는 편보다는 나을지 모르나 늘 바쁘게 서둘러 일을 신중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로 여겨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일은 자연과 대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씨앗을 땅에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김매기를 하고 병과 해충이 범하지 못하게 하는 일들 모두 자연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농사는 말 못하는 자연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특히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연에 대해 야단을 칠 수도 없는 일이고 매를 들 수도 없는 일이다. 씨앗을 땅에 심었을 때 땅의 온도가 알맞고 땅에 물기와 공기(산소)가 알맞게 들어 있으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싹이 나서 자라게 마련이다. 씨앗에서 싹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어린 식물은 씨앗에 들어 있는 양분으로 자라지만 식물이 어느 정도 커지면 땅에 들어 있는 양분과 스스로 광합성을 통해 얻은 것으로 자라고, 자라는 정도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다음 대를 이어갈 준비를 한다. 종자나 살찐 뿌리를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농작물이 광합성을 하는 기관은 잎이다. 그러나 농작물이 광합성을 하는 데에 필요한 질소, 인, 칼슘, 마그네슘, 황, 철, 망간, 아연, 구리, 붕소, 염소, 몰리브덴 같은 양분원소들과 물은 뿌리를 통해서 얻는다. 그런데 작물의 뿌리는 땅에 있다. 땅에 작물이 필요로 하는 양분원소들과 물을 땅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농사를 남다르게 잘 지어보려는 이들 가운데 작물의 잎에 비료나 그 밖의 다른 양분 같은 것을 뿌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특히 과채류나 과수를 기르는 이들 가운데에 그런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작물의 잎에 작물의 양분을 뿌리는 일이 전혀 효과가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소문만큼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에든 바른 길과 지름길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지름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른 길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역시 바른 길이 바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급해도 바른 길로 가라는 뜻일 것이다. 작물의 양분은 뿌리를 통해서 흡수시키는 것이 바른 길이다. 거름을 땅에 알맞게 주고 물을 잘 관리하면 작물 잎에 이런 저런 값비싼 것을 써서 작물에 필요한지도 모르는 양분을 흡수시키려는 피곤하고 때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부작용을 부르기까지 할 수 있는 이른바 엽면시비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바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서 바느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홍 종 운 토양학 박사

경제프리즘/건설산업의 발전과 정부의 역할

한 국가의 건설산업은 주택, 도로, 철도 등 국민생활과 각종 산업활동의 근간을 제공하며, 다른 산업의 생산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보완적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다른 산업에 비해 생산과 고용 및 부가가치의 유발효과가 크기 때문에 대다수 국가에서는 경기조절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중요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반세기 동안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건설산업의 발전과 함께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 건설산업은 총 고정자본형성 가운데 60% 내외의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생산시설과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에 기여할 뿐 아니라 해외건설활동을 통한 국제수지의 증대와 고용창출에 큰 비중을 차지함으로써 경제성장의 실질적인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건설산업에도 새로운 환경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모든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통합화·종합화 및 정보화의 큰 흐름은 건설산업에도 나타나고 있다. 바로 건설·전자·통신·방송·디지털콘텐츠 등 첨단기술과 서비스가 종합적으로 융합된 유비쿼터스와 같은 지능형 홈네트워크가 차세대 성장산업의 하나로 지목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변화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건설산업도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경험중심의 산업에서 지식중심의 산업으로, 업적위주의 사업수행에서 기능위주의 사업수행으로, 수주산업에서 기획산업으로 변화되고 있으며 이미 선진국에서는 단순 시공만을 위주로 하지 않고 프로젝트의 발굴과 기획, 타당성 조사, 기본 및 상세설계, 시공, 시운전, 조업지도 및 인도, 보수 및 운영까지의 전 과정을 포괄해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환경변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지식정보화 사회의 도래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산업패러다임의 정립과 국가정책을 필요로 하게 됐다. 특히 과거와 같이 경기조절용 산업으로서 다양한 정책적 혜택을 받으면서 성장해온 건설산업이 국경 없는 지구촌 사회를 맞아 무한경쟁의 체제에서 새로운 국가 기간산업으로 성장키 위해서는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러나 건설산업의 경쟁력은 궁극적으로는 건설산업의 주체인 건설업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확보해야 하나, 이러한 노력을 뒷받침해주는 정부의 정책수립과 집행이 또한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정부의 역할도 건설산업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환경의 조성, 법적 규제와 자원배분측면에서의 자유경쟁 지원체제로의 전환, 민영화 및 민간위탁의 활성화 등을 추진함으로써 정부주도형 산업에서 민간주도형 산업으로 변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건설산업이 국가기간산업으로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당사자인 민간부문의 노력은 물론 국가정책의 올바른 방향제시와 이를 정책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전략의 수립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이 용 범 박사(한국토지공사 토지정보센터)

경제프리즘/그리니치행 유람선에서

국내의 한 국책(國策)연구소에 재직 중이던 1980년 가을쯤 혼자서 해외출장 도중에 런던에서 일요일을 맞은 적이 있다. 주일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한 후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무심히 템즈(River Thames)강을 향해 걷다가 그리니치(Greenwich)행 관광선이 눈에 띄어 그냥 올랐다. 어릴 적 사회시간에 배운바 있는 그리니치 천문대가 떠올라 문득 올랐던 것이다. 배는 제법 컸는데도 승선손님은 별로 많지 않았고 시간이 되자 배는 출발하였다. 출발 얼마 후에 중년이 넘은 한 미국인 부인이 혼자 여행 중이냐며 다가와 우리는 같이 관광하기로 했다. 이런 저런 얘길 하며 강 양변에서 펼쳐지는 19세기 Pax 브리태니카 시대의 역사적 해적 유물들을 관광하며 템즈 강의 하류로 내려가고 있었다. 약 한 시간 30분 정도 후에 도착한 그리니치에서는 마침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국화(菊花)전시회가 대규모로 열리고 있었다. 참으로 특이하고 특별하게 키운 국화꽃의 대 잔치를 그곳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그리니치 천문대도 들러보고 또 그 드넓은 공원과 우람하게 솟아있는 거목들과 그 나무의 열매를 따려는 아이들의 여러 가지 몸동작들도 그 미국인 부인과 한가로이 즐길 수 있었다. 그 미국인 부인은 미국의 미시간(Michigan)에서 사는데 마침 텔아비브(Tel Aviv)에 있는 친구한테 가는 길에 잠시 관광하고 가려고 런던에 들렀다는 것이었다. 난 별 생각 없이 그러냐고 받아 넘겼다. 시간이 되어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노을 지는 템즈 강의 정취를 느끼며 런던으로 되돌아왔다. 도착해 헤어지기 직전에서야 나 자신을 그녀에게 소개하려고 나는 명함을 꺼내 막 건네려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럴 필요 없다며 ‘미스터 김, 난 당신을 잘 알고 있어요. 또 무얼 하는지도 잘 알아요’ 하는 것이었다. 난 순간 나의 온몸이 땅에 붙어버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이 여자가 어떻게 날 안단 말인가. 같이 구경하는 동안 난 한 번도 나에 대하여 언급을 한 적이 없었고 또 그럴 이유도 없었다. 전혀 뜻밖의 그녀의 그 말에 난 정말 너무나 놀라고 놀라서 그녀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발이 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잠시 서서 그녀가 날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다. 그러자 나의 놀람은 더욱 커졌다. 아니 그러면 그 여자가 미 CIA 요원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텔아비브를 꺼낸 걸 보면 혹시 이스라엘 모사드(Mossad)의 첩보원이었단 말인가. 당시 나의 여행목적은 원자력 발전용 핵연료(核燃料)가공시설의 건설과 관련한 아이디어와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었고, 내가 사용한 명함은 핵연료개발공단(Korea Nuclear Fuel Corporation)의 계획 및 관리이사(Director of Planning & Control)였다. 명함의 명칭으로 봐서 한국에서 뭔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미국이나 이스라엘에서 생각했던 모양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그래서 자연스레 내게 접근해와 훤히 다 보고 알고 있으니 혹시라도 딴 짓을 말라는 암시를 던진 것이로구나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갑자기 불안해졌다. 언젠가 런던에서 우산꼭지에 독침을 넣어 스파이를 살해하는 영화를 본 기억도 있고 해서 갑자기 신변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곧 나의 미션이 별것 아니란 걸 알고는 점잔하게 경고하고 사라져 간 것을 보면 안심해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이 돌긴 했지만 난 빨리 런던을 떠나고 싶었다. 당시 미 카터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가 공식화된 상황에서 미국 내의 한국인 핵전문가가 미 정보부에 의해 살해됐었다느니 하는 유언비어도 돌았던 터이다. 공교롭게도 나의 출장시기가 그 직후인지라 핵연료와 관련된 친구가 핵시설을 찾아다니니 한 번 그 뒤를 밟아보았던 모양이었다. 핵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첨예한 국제적 이슈인가 보다. /김 인 호 한양대 교수

경제프리즘/청년실업과 대책

얼마 전 지방대학에서 졸업생 제자들을 적극적으로 취업시킨 교수들에게 총장이 상을 주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이는 실업문제가 사회문제가 되었다는 방증이며 특히 대학 졸업자를 포함한 청년실업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징표이다. 우리사회가 IMF환란을 겪으면서 노동시장에서 고용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IMF 이전에 비해 구조조정을 쉽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되면서 예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정년보장에서 오륙도(56세), 오륙도에서 사오정(45세)으로 급격하게 하향 조정되고 있는 것도 실업률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해 신규채용이 많지 않은 점도 실업률 증가의 한 요인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월 전체 실업률이 4%로 상승했으며 청년실업률은 8.6%를 기록함으로써 전체 실업률의 두 배를 넘었다. 이는 실업자의 46%가 청년실업이며 그 대상은 15∼29세의 젊은이이다. 청년실업의 문제는 취업을 통한 건전한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결국에는 이들이 소득 없는 소비자가 돼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취업에 실패한 젊은이들이 진학·취업을 포기한 청년백수, 즉 NEET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됨으로써 사회적인 손실과 낭비가 커지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청년실업 증가의 이면에는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을 포기하고 고시공부에 매달리거나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과 교원이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적인 병리현상으로서 취업난에 시달리는 구직자를 울리는 취업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으며 지난해 기아자동차 노조의 취업비리가 밝혀지고 뒤를 이어 부산·인천항만노조의 취업비리가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청년실업의 문제를 풀기위해서는 정부, 기업, 대학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 정부는 실적위주의 실업대책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한가지 예로 많은 중소기업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틈새를 30만이 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우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중소기업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시키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국내의 청년실업자를 취업시킬 가능성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구직난을 겪고 있는 실업자와 대학 졸업자에게 기업의 취업정보를 충실히 전달함으로써 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 기업 또한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미래의 인력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가능한 대졸 신입사원의 수를 늘려야한다. 현재까지는 취업 후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경력사원 위주의 선발 관행을 바꿀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대학도 급변하는 노동시장의 변화와 졸업 후 산업현장에 빠른 투입을 원하는 기업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전문대학을 중심으로 산업체와 연계한 현장실무교육과 주문형 교육과정의 도입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학교육의 목적은 학문을 연마하는 것이며 기초가 튼튼해야 응용력이 크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공계의 교육과정부터 산업현장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청년실업의 당사자도 과감하게 눈높이를 낮출 필요성이 있다. 취업지망생 모두가 대기업에 취업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중소기업 취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취업하여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 실업자로 사는 것 보다 더 큰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종 선 대진대학교 교수

경제프리즘/강남수준의 신도시

부동산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위치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부동성(不動性)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부동성 때문에 아무리 최신식의 건물이나 쾌적한 고급아파트를 지어도 부동산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 서울 한복판에 위치하는 것과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 위치한 것과는 가격차이가 크게 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부동산도 재화인 관계로 수요가 많은 곳에서는 사고 싶은 사람이 많아 높은 가격이 형성되며, 반대로 수요가 적은 곳에서는 팔고 싶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아져 낮은 가격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최근 판교신도시 분양가 논의에서 시작된 불안한 주택시장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 강남수준의 신도시건설이다. 이러한 신도시건설의 정책방향은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항상 시장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에는 수요를 억제시키는 방법과 수요에 맞춰 공급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으며, 신도시건설은 수요에 따라 공급량을 확대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도시건설의 단서사항으로 제기된 강남수준의 신도시건설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강남수준의 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는가. 또한 현재 시점에서의 바람직한 신도시 건설방향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부동산의 특성 중 또 다른 하나는 유일성이며, 부증성(不增性)이다. 어떤 개별부동산이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하나이며, 또 이와 동일한 부동산을 생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최신시설의 동일한 설계의 건물을 서울과 농촌에 하나씩 건설하였다고 할때, 그 건물은 동일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점이며, 가치도 다르다는 점이다. 신도시 건설의 성패에는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효율적인 조화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교통·교육·문화 등의 종합적 인프라가 확충이 되어 있는 신도시를 건설해야 할 것이지만, 이는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단계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신도시 건설의 성공은 베드타운으로의 전락을 막고 자력적인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자족기능의 확보여부일 것이다. 5개 수도권신도시의 건설초기에는 베드타운으로의 역할밖에 못할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분당신도시의 경우 많은 공기업의 본사가 이전하면서 자족도시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이룬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 다양한 도시개발형태에 대해 논의되고 있으며, 국가의 균형개발이라는 측면과 수도권과밀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강남수준의 신도시건설이라는 애매한 정책방향의 제시보다는 현재 추진 중인 판교신도시와 같이 수요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 곳에 자족기능 부여를 목적으로 신도시건설 방향을 제시하고 추진한다면 주택시장의 안정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이 용 범 박사 (한국토지공사 토지정보센터)

경제프리즘/열린 시스템의 우위성

경제·경영학자 가운데 실제(實際)에 크게 기여한 사람을 꼽으라는 질문을 받으면 누구라고 할까하고 반문해 볼 때가 있다. 우선은 1776년에 국부론(國富論)을 통해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오는데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아담 스미스일 것이고, 그 다음은 아무래도 1929년 세계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대한 치유책을 마련했던 케인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일까의 견지에서는 그 답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력의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다른 주의·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거대한 패러다임이동(paradigm shift)이 진행되자 그에 대한 적응력이 없던 구공산권이 1980년대 중반에 붕괴한 사실이라든가 아프간 및 이라크전쟁에서 미군사력이 보여주는 바는 뛰어난 기술력이야말로 국력의 궁극적인 원천임을 강하게 시사해 준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라면 기술혁신이 곧 성정발전의 원동력이고 혁신의 주체가 기업가(entrepreneur)라고 1936년에 갈파한 슘페터야말로 대단한 예견력을 지닌 학자로 인정해야 될 것 같다. 또 같은 맥락에서 기술변화(technological change)가 경제성장-발전-변화의 동인이라며 신슘페터리안(neo-Schumpeterian)을 자처하는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의 효시인 넬슨과 윈터를 그 다음으로 꼽고 싶다. 이 외에도 신고전경제학의 기본 전제와 가정에 도전해 공을 세운 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사이몬이다. 그는 실제세계에서 신고전경제학에서의 전제나 내용이 실제로 추구되거나 중시되지도 않는 점을 인지하고 신고전경제학에서의 합리적 경제인 ‘완전한 합리성’ 최적화 대신에 사회인(social man)관과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기초한 만족화(satisficing)의 의사결정론으로 신고전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물론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경영학자로서는 현재까지 유일한 노벨경제학수상자로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국력의 원천이 기술력이라는 명제 하에 기술력확보를 국책(國策)으로 전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R&D투자비의 약 80% 정도가 국방성(Department of Defense:DOD)의 주도 하에 집행되고 있다. 국방성에서는 대학교와 연구기관에 경쟁방식을 통해 연구프로젝트를 수행시킴으로써 가장 최신의 기발한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하여 온갖 첨단신기술의 대부분을 국방성이 보유한다. 그리고 이들 보유첨단기술 중에서 실용성이 큰 기술을 우선 군(軍)에서 사용한 후 민간부문에 전수시키는 방식으로 미국의 군사력과 기술력에 바탕을 둔 경제력을 기본으로 Pax Americana시대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기술 확보 메커니즘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의 거대한 디지털혁명기를 거치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반면에 구소련은 결과의 평등(equality of consequence)을 강조하는 공산이념으로 인해 기술변혁에 적응할 동력을 잃고 1985년에 결국은 붕괴하고 말았다. 미소양극체제(兩極體制)에서 막강한 파워를 보여주던 구공산권이 왜 하필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렇게 쉽게 붕괴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명쾌하게 이해시켜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미국의 기술우위확보 메커니즘은 ‘기술력 없이는 어떤 이념(理念)도 국가(國家)도 체제(體制)도 제대로 존재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우리에게 강력하게 웅변해 준다. /김 인 호 한양대 교수

경제프리즘/벤처기업과 코스닥

설 연휴를 전후로 향후 우리나라의 경제전망을 밝게 보는 발표가 있었다. 첫째는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가와 금리를 포함한 금융 부문은 물론 지난 2년간 극심한 침체를 보였던 건설 경기도 점차 개선될 것으로 예측하면서 향후 경제상황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둘째는 도이체방크가 2006∼2020년 경제성장률 톱10 국가에 대한 분석보고서에서 한국은 2020년까지 경제성장 속도에서 주요 34개국 중 국내총생산(GDP) 연 3.3% 성장으로 8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같은 2가지 전망은 지난 연말까지 지배적이었던 경기하락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기분 좋은 소식이라 할 수 있다. 향후 경기에 대한 흐름을 밝게 보는 지표는 주식시장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500조원에 육박하면서 종합주가지수가 5년만에 1000을 돌파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현재 상황이 과거 3차례 1000을 돌파했던 상황보다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벤처기업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코스닥 시장의 지수도 500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지난해에 정부가 발표한 벤처기업지원대책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일부에서는 코스닥 시장의 묻지마 투자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현재의 벤처기업들이 가지는 경쟁력에 대한 우려이며 과거 한차례 겪었던 벤처기업 지원의 실패사례를 염두에 둔 우려이기도 한 것이다. 벤처기업이란 우수한 신진연구세력과 새로운 아이템에 대한 기술개발의 열정은 있으나 경영 노하우와 자본투자 여력이 부족한 신설 기업이며 ‘벤처기업육성에관한특별조치법’ 에서는 벤처기업의 개념을 벤처캐피탈 투자기업, 연구개발 투자기업, 특허기술 개발기업, 기술평가 기업으로 정의한다. 벤처캐피탈 투자기업은 창업투자회사로부터 총주식의 10%이상 투자받은 기업, 연구개발 투자기업은 연구개발비가 총매출액의 5% 이상인 기업, 특허기술 개발기업은 기술개발사업에 의한 매출액이 총매출액의 50%이상인 기업, 기술평가 기업은 평가기관에서 기술성이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기업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활황 속에서도 중소기업은 자금, 인력수급, 연구개발능력 등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이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벤처기업 육성정책이 문민정부 시절부터 정부의 주도하에 시행돼왔다. 그러한 결과로 한때는 실리콘벨리를 모방한 테헤란벨리와 전국 대학 안에 설치된 창업보육센터, 일반 제조업에 1만개가 넘는 벤처기업이 창업하거나 벤처기업을 인증 받았으나 그 결과는 기대치만큼 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벤처기업의 창업 의미에는 1천개가 창업해 한 개의 벤처기업이 크게 성공을 거둬 보상해주면 된다는 논리도 있지만 과거 일부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벤처기업들이 대기업을 모방한 기업운영과 도덕적해이로 언론매체를 시끄럽게 했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다. 활황 장세를 보이고 있는 코스닥 시장의 열기를 식지 않게 하는 것이 정부의 벤처기업지원시책이 아닌 벤처기업의 연구개발에 의한 경영실적이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시책도 일시적인 금융지원보다는 꾸준한 관심과 벤처기업에 절실한 연구개발 후 마케팅 전략과 내수시장보다는 수출시장을 향한 개발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돼야 하며 특히 지원시 건실한 벤처기업인지 옥석을 가려 투자해야한다. /이 종 선 대진대 기계설계공학과 교수

경제프리즘/환경문제에 대한 접근

우리는 요즘 환경을 보전하자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환경문제를 거론할 때 파단의 기준으로 삼는 잣대가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갯벌을 막아 농토로 만들고 빗물이 그냥 바다로 흘러가기 전에 일단 막아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한 뒤에 바다로 흘러가게 하고 그 동안 줄어왔고 앞으로도 줄어들게 될 통토를 일부라도 보충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 해온 새만금 사업 같은 것에 대해 갯벌의 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극력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이 갯벌이 됐든 어디가 됐든 생태계를 보전하자는 주장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수천 년 동안 우리를 먹여 살려온 논에 아파트를 짓는 일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논에도 갯벌 못지않게 풍부하고 다양한 생태계가 있다. 특히 우리의 젖줄인 쌀이 거기에서 생산된다. 이 훌륭한 생태계를 아파트로 대체하는 것은 철저한 생태계 파괴다. 그 뿐 아니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석회암을 파내고 부수고, 가공하고 운반해야 한다. 각 단계마다에 환경을 파괴하거나 환경의 질을 낮게 하는 요인들이 끼어든다. 백두대간을 허무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시멘트를 얻기 위해 석회암을 파내고 운반하는 일이다. 아파트에 사는 이들의 행동도 환경의 질을 낮게 한다. 집안의 열기를 에어컨이라는 장치를 써서 거리로 담아내고, 생활 쓰레기와 분뇨를 집중적으로 발생시켜 그것을 환경의 자연정화능력을 통해 처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뿐인가. 아니다. 아파트가 낡아졌을 때도 큰 문제가 된다. 그 때 발생하는 폐기물의 처리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폐기물의 일부는 재활용되겠지만 대부분은 어디엔가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도 쓰레기 버릴 곳이 없어 난처한 터에 90년대와 2010년대에 폭발적으로 세워졌거나 세워질 아파트들의 수명이 다하는 때쯤에는 이 나라는 쓰레기 대란을 겪게 될 것이다. 논에 아파트를 짓고 도시를 만드는 일은 다른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에게 밀과 옥수수와 콩을 우리가 지불하려는 가격에 팔고 있는 나라들이 앞으로 계속 그렇게 하리라고 믿는 것은 너무 안일한 판단이다. 미국과 캐나다가 또 중국이 우리에게 곡식을 더 이상 우리가 치르려는 가격에 팔지 않겠다고 변심할 상황은 언제라도 일어 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예견될 때 도시화한 땅을 쌀을 생산할 수 있는 논으로 복원시킬 수 있겠는가. 논에 아파트를 세우는 일이 이처럼 철저하게 생태계를 파괴하고 환경의 질을 낮추는 일일뿐 아니라 우리의 식량안보 대한 위험이 될 수 있는데도 이 문제에 대해 언론의 이목을 끌만큼 심각하게 거론하는 환경론자들이 별로 없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아파트는 예전의 주택에 비해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아파트를 짓는 데에 따르는 폐단이 여러 가지 있을지라도 그것을 지적하는 이도 별로 없는 가운데 아파트는 짓는 족족 팔리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조심해야 할 것이다. 아파트도 짓고 도시도 만들되 그것을 절도(節度)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새만금 사업 같은 것이 비록 갯벌의 생태계를 불가피하게 교란하는 면을 내포하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내륙에서 크게 줄어든 농토의 일부만이라도 갯벌이라도 막아 보충하려는 앞을 내다보고 하는 사업의 당위성도 인정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의 이중(二重) 잣대를 쓰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 것이다. /홍 종 운 토양학박사

경제프리즘/주택시장 안정과 분양가격

최근 판교신도시의 분양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2003년 10·29조치이후 안정세를 보였던 주택시장이 다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연일 부동산시장의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발단이 공공택지의 채권입찰제 분양에 따른 건설업체의 아파트분양가 인상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에 비해 국가경제의 규모가 커졌고 이에 따른 물가상승을 고려한 적정 분양가 인상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신규주택을 건설하는데 드는 인건비, 자재비용과 토지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분양가의 상승은 누구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제품이 성능과 품질이 향상되었으니 가격이 비싸지는 것은 시장경제에서는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주택은 시장경제를 이루는 일반재화와는 달리 위치적 고정성, 유일성과 같은 부동산의 특수한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생활의 필수요소인 의·식·주중 하나로서 어느 정도 공공재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사실 전국평균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서면서 공공재로의 의미는 많이 저하됐지만 주택가격의 급등은 아직도 집이 없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한다는 점에서 정부에서도 주택시장의 안정을 최우선과제로 선정한 배경이 아닐까 한다. 과거 우리의 주택시장은 두 가지의 중요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우선 199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주택가격의 안정기를 경험했다. 이 당시 주택시장의 안정은 단순하게 보면 수도권 5개 신도시 건설이라는 200만호의 신규주택의 공급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실제 이유중 하나는 신규주택의 분양가격을 국가가 규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당시 정부도 주택시장의 안정을 최우선과제로 삼아 신도시건설을 추진했지만 평당분양가를 143만원으로 규제하고 있어 비록 서울의 외곽에 위치한 열악한 입지조건이긴 하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누구나 주택마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서민들의 내집마련을 가능케 했고 최신 주택이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되자 기존 주택가격이 상승하지 못하고 주택시장은 안정기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IMF구제금융이라는 상황 하에서 건설경기의 추락을 막기 위해 실시한 분양가의 완전자율화는 신규아파트 분양가 상승을 부채질했으며 심지어 공공택지개발사업지구에서 분양되는 아파트마저 분양가가 상승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례로 분당과 인접한 죽전지역의 아파트 분양이 시작될 초기에는 최신식 빌트인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분양가가 거의 분당의 기존아파트 수준에 달하였으나 입주시기가 다가오자 이에 영향을 받은 기존분당신도시의 아파트까지 가격이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건설업체의 과다한 분양가 산정을 문제 삼아 원가공개를 요구하는 이유중 하나가 분양가 상승이 신규주택은 물론 기존 주택가격에도 영향을 미쳐 서민들의 주택마련에 어려움을 주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두 가지 사례에 비춰볼 때 주택시장의 안정은 단순히 공급만을 확대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특히 신규주택의 분양가가 기존 주택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명확한 만큼 주택정책에서 중요하게 검토돼야 할 사항이다. 특히 공공택지개발사업의 시행목적이 주택시장안정을 위한 주택공급이라는 점에서 공공택지개발사업지구내의 분양가격에 대한 정부의 관여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용 범 토지공사 국토정보사업팀장

경제프리즘/산업구조와 노노(勞勞)갈등

IMF 환란(換亂)이 오히려 한국경제를 살렸다면 많은 이들이 의아해 할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대뜸 반문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은 60년대의 산업화추진 이래 줄곧 무역적자를 내다가 87~89년 3저(저임금, 저금리, 저유가)에 힘입어 처음으로 흑자를 낸후 97년 IMF환란 때까지 줄곧 무역적자를 기록해왔다. 그런데 IMF 위기 이후부터 무역흑자행진이 계속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IMF위기이후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DJ정부가 환란을 잘 극복한 탓일까. 천만에도 그 답은 오직 하나 수출기업들의 애국적(愛國的)노력과 환율인상(換率引上) 덕인 것이다. 통계로 보면 1971년부터 2004년 말 현재까지 약 590억달러의 무역누적흑자를 나타내고 있는데 작년 한해에 약 30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전기전자산업은 90년대 초반부터 흑자(黑字) 기조로 전환되기 시작했지만 큰 폭의 흑자행진은 IMF이후부터 본격화 되었고, 기계산업의 흑자행진은 순전히 IMF 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무튼 지난 40여 년 간의 산업화 결실이 흑자라니 대단한 위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동안 먹고 살면서 흑자(黑子)까지 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간 한국의 대기업들은 제품설계역량(製品設計力量)과 세계생산기지(世界生産基地)로서의 양산(量産)능력을 갖추고, 세계시장수요의 흐름에 발빠르게 대처하기위해 일본으로부터 조기에 핵심부품·소재를 들여와 생산·수출해 약 600억달러의 무역흑자국이 되게하는 주역이 되었고 그리고 그건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자족할 수 없는 측면은 국내부품·소재산업의 취약성으로 대일기술종속(?)굴레가 굳어지게 되었고 그래서 대일누적적자(對日累積赤字)가 2천450억달러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이제 이대로 그냥 간다면 우리의 무역누적흑자가 1천억달러가 될 때, 대일무역 누적적자는 아마도 3천~3천500억달러 이상이 될 것이다. 이와같이 대기업과 부품·소재산업간의 파행적 산업구조는 무역흑자국이면서도 대일 기술종속(?)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조립메이커(대기업)에 종사하는 약 12% 정도의 노동자들로 하여금 비교적 단순노동을 하면서도 보다 투쟁이 용이한 노동여건에 힘입어 노동귀족으로 불릴 정도의 엄청난 고소득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또 취직장사로 재미를 볼 수 있는 노조비리(勞組非理)의 풍토까지도 조장하기에 이르렀다. 반면에 부품·소재를 다루는 중소기업들은 더욱 핍진(乏盡)해지고 거기 종사하는 근로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반(半)도 안 되는 문자 그대로 노노착취(勞勞搾取)(?)의 구조가 굳어지게 되었다. 내일을 살기위한 신 성장동력(成長動力)을 마련키 위해 새로운 산업을 발굴함과 더불어 부품·소재산업을 획기적으로 키워야하는 당위(當爲)는 노노갈등의 해소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산업구조의 고도화의 견지에서, 대일관계의 호혜적 관계정립을 위해서, 그리고 2만 달러 달성의 핵심동력확보를 위해서 대단히 절실하다. 요컨대 부품·소재산업의 선진화는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갈릴 때마다 의례적으로 외쳐대는 정치적 구호로서가 아니라 정부 유관부서 CEO들과 특히 국가경영 CEO가 강하고도 확고한 의지로 기업CEO들을 독려하면서 국민적 에너지를 응집시켜 이뤄야할 최급선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과거를 밝히는 ‘일제강점하에서의 과거사 규명’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의 위상을 좌우할 전략적 현안이기 때문이다. /김 인 호 한양대 교수

경제프리즘/지적재산권의 중요성

새로운 한해의 시작과 함께 경제계의 좋은 소식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답답하던 서민경제와 교육부총리 임명과 관련하여 갈팡질팡하는 정치 때문에 속상해있던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된 세계 최대 가전기기 전시회인 ‘2005 CES’에서 LG전자와 삼성전자가 각각 16개와 13개의 혁신상을 받아 2500여개 참가업체 중에서 1·2위를 차지했다. 가전제품의 신기술 동향을 알 수 있는 CES에서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며 이를 계기로 일본의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 영국의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 미국의 경제주간지인 비지니스위크 등은 삼성·LG전자에서 배우라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국산 중형차들이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2004년 가장 큰 기쁨을 준 자동차(most delightful vehicle)’로 뽑혔다. 미국 소비자전문 조사기관이 혼다 어코드, 볼보 S40, 도요타 캠리 등 18개 유명 중형차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기아자동차의 ‘오피러스’(수출명 아만티)와 현대자동차 XG350이 각각 1위와 3위에 올라 향후 수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또한 현대자동차가 디트로이트의 ‘북미 국제오토쇼’에서 신형 쏘나타를 선보이면서 싸구려 자동차 제조업체라는 이름을 탈피하고 미국과 일본 업체들의 경쟁자로 떠올랐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이제 한국을 1980년대의 신진세력이었던 일본과 비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좋은 소식 뒤에는 그동안 좋은 상품의 연구개발에 밤낮이 없었던 연구원들과 생산성을 높이려는 현장 종업원들의 노력의 결실이며 이러한 연구결과를 활발하게 지적재산권으로 출원한 노력의 대가이다. 며칠 전 삼성전자가 특허경영을 강화하기로 하고 기술개발만이 안정적 실적확보라는 인식하에 2007년까지 연 2천건 이상을 특허등록하기로 결정한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해외기술 의존도가 높아 작년 한 해 동안 해외에 지불한 로열티가 5조원으로 추정되며 이는 반도체, 휴대폰 등 첨단 정보기술 산업분야에서 해외 지적재산권을 활용하는 빈도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을 해외에 팔아 받은 로열티는 지급액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므로 지적재산권 획득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길만이 로열티 수입을 늘리는 지름길이다. 지적재산권이란 새로운 기술을 등록받음으로써 권리자만이 독점 배타적으로 권리를 부여받는 제도로서 발명특허, 실용신안, 의장, 상표 등이 있으며, 국내특허와 국외특허가 있다. 특허의 대상이 되는 발명은 기술에 관한 모든 아이디어로서 반드시 제품일 필요는 없으며 새로운 물질, 제조기술, 통신방법 등 일정한 형체가 없는 기술사상도 해당된다. 특허는 특허권자 이외의 어느 누구도 그 기술을 자신의 영업 목적에 이용할 수 없으므로 특허발명을 실시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특허권자에게 특허권 사용료(로열티)를 지불하고 실시인가(라이센스)를 얻어야 한다. 이처럼 특허권은 경쟁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으며, 소비자들로부터 매우 큰 호응을 얻는 제품을 장기간 독점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함으로써 특허권자를 동종업계의 선두주자로 만드는 일등공신이 될 수 있으므로 기업은 적극적인 자세로 지적재산권을 획득해 국제경쟁에서 보호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 종 선 대진大 기계설계공학과 교수

경제프리즘/음식물쓰레기에 대해

새해부터 음식물쓰레기 관리를 더 철저히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음식물쓰레기는 더 이상 땅에 묻을 수 없으며 가정에서 쓰레기를 버릴 때 음식물쓰레기를 더 엄격하게 분리해야 한다고 한다. 새 규제가 너무 엄격해서 잘 지켜질 지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어느 독일 부인은 음식물쓰레기를 매우 잘 관리하고 있는 독일에도 그렇게 엄격한 음식물쓰레기 분류 규정 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 음식물쓰레기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도는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 우리나라처럼 음식물쓰레기로 골머리를 앓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쓰레기로 벼려지는 음식물이 15조원 쯤 된다고 한다. 음식물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액수가 큰 것이 아깝기만 한 것이 아니나 15조원어치의 음식물이 쓰레기로 버려졌을때 처리하는 비용이 크다는 사실 또한 부담스럽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음식을 소홀히 다루기를 태연히 하는 데 있다. 식당 같은 데에서 눈뜨고 보기 딱할 만큼 난장판인 식탁을 뒤로하고 식당을 떠나면서 송구스럽게 여기는 이가 이 나라에 있기나 한가. 이런 도덕 불감증은 다른 데까지 확산돼 이 나라의 도덕성이 만신창이가 되는 원인이 되기까지 한다. 나라 안에 또 지척지간에 있는 북한에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동포들이 무수히 많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식을 그렇게 소홀히 다뤄도 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같은 사실은 매우 부끄럽고 부도덕한 일이다. 지금은 음식물쓰레기 관리를 위한 규정문제를 놓고 왈가왈부 할 때가 아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을 방도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때다. 음식물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찰에서 스님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찰에서 행해지는 의식들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러나 사찰에서 스님들의 식사하는 의식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 책을 통해 또 요즘 흔히 있는 동영상을 통해 스님들이 식사하는 의식에 대해 겉핥기로나마 조금 알게 됐다. 발우공양(鉢盂供養)이라고 불리는 사찰에서의 스님들의 식사의식은 쌀 한 톨도 양념 부스러기 하나도 남기지 않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식사를 끝낼 무렵 밥그릇에 물을 붓고 작은 김치 쪽 같은 것으로 밥그릇을 잘 씻어 마신 다음 밥그릇에 물을 다시 부어 마신다. 그 다음에 깨끗한 수건으로 밥그릇을 씻으면 설거지까지 마치게 된다. 설거지를 위해 물을 남용하지도 않고 세제 같은 것도 쓰지 않는다. 얼마나 환경 배려적이고 자원 절약적인 식사인가. 시중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사찰에서 스님들이 발우공양 하듯이 식사를 하라고 주문하기는 매우 어려울 지 모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찰에서 생활하는 스님들도 사람이고 시중의 사람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못할리 없을 것이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다. 우리의 음식을 소홀히 다루는 관행의 뿌리가 너무 깊어 전 국민이 수도(修道)하는 자세로 음식을 대하는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그 뿌리를 뽑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 다음 환경부장관을 새로 임명할 때에는 재임 기간 중에 음식물쓰레기 발생량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하고 그 공약을 실행할 수 있는 이가 임명됐으면 좋겠다. 환경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그런 공약을 하고 그 공약을 실천한다면 머잖아 우리나라의 음식물쓰레기 발생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음식물쓰레기 문제는 그만큼 심각한 것이다. /홍 종 운 토양학박사

경제프리즘/난개발 부추기는 규제개혁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던 1990년대 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중 하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던 국토의 난개발이었다. 이 당시 난개발은 우리나라 토지문제가 공급토지의 절대부족이라는 점에서 도입된 준농림지역제도의 운영에 기인하였다. 보전을 주로 하되 개발이 가능하였던 준농림지역은 전국토 면적의 27%나 되었고, 일정한 요건만 충족되면 자유롭게 토지를 이용할 수 있었다. 준농림지역에서의 개발행위가 도시지역보다 더 용이하게 됨에 따라 도로, 학교 등 기반시설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다양한 개발사업이 가능하게 되어 엄청난 양의 고층아파트와 소규모 공장이 무차별적으로 산과 들에 들어서면서 환경파괴, 교통혼잡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 적이 있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난개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이용 및 관리체계를 ‘선계획-후개발’ 체계로 개편하고 약 40여년 동안 도시와 비도시로 구분해 관리하던 국토관리체계를 통합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비도시지역의 난개발을 막고 일정규모 이상의 계획적 개발을 유도키 위한 준농림지역을 관리지역으로 변경했고 개발을 위해서는 일정규모 이상을 요구함과 동시에 개발을 위해서는 도로, 학교 등 기반시설 설치에 대한 부담이 증가되게 됨에 따라 사실 민간의 각종 개발사업이 크게 위축되었으며 난개발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고들 한다. 그러나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한 국토관리체계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에는 다소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최근 도시지역내 자연녹지지역에 대형할인유통시설의 설치를 가능하게 하거나 관리지역내 3천평 미만 공장의 신·증설이 가능하게 하는 것, 아파트건설용지의 부족을 이유로 개발가능 규모를 일정규모 이하로 축소하는 것 등의 시행이 검토되거나 준비 중에 있다. 이는 과거의 난개발이 다시금 유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게 한다. 토지는 사유재이기도 하지만 모든 국민이 또한 우리의 후손이 함께 이용하는 공공재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공익과 사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용과 관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도 용도지역제를 채택·운용하고 있다. 이는 국토의 이용은 국토계획이라는 틀 속에서 공익을 추구하고 그 틀 내에서 토지의 이용에 사익의 극대화를 도모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규제개혁이라는 이름하에 토지이용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자칫 경제살리기라는 단기적인 목표해결을 위해 수천 년 이상 우리의 후손들이 이용하여야 할 국토를 남용하는 것이라 하겠다.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화된 규정적용으로 도시용지를 쉽게 확보할 수 없게 됨에 따라 규제완화라는 이름하에 새롭게 도입된 국토관리체계를 손을 대기 시작하면 당초 제도의 도입취지가 변질됨은 물론 일선 행정의 집행에도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과거 외환위기때 이뤄졌던 많은 경제정책들이 단기적 목표해결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어 우리 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토지이용부문 규제개혁의 대부분이 공익보다 사익을 과다하게 배려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냉정한 검토가 더욱 필요하다. /이 용 범 토지공사 국토정보사업팀장

경제프리즘/크리스 교수와의 만남(下)

크리스교수와 나는 선진국과 후발국과의 격차가 시간이 흐르면 줄어든다고 주장하는 신고전(新古典)경제학의 절대적 수렴설(absolute convergence)의 한계와 비현실성을 주장하면서 일국의 교육수준과 과학기술수준에 따라서 격차가 줄 수도 있고 더 벌어질 수도 있다는 조건부 수렴설(Iconditional convergence)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나의 ‘기업파워이론(The firm power theory)’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자기는 기술변화를 경제성장·발전의 결정인자로 보는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의 지지자이지만 결국 기술변화가 일어나는 현장은 기업이므로 자기의 이론도 결국 기업레벨로 끌고 내려가야 하는데, ‘기업파워이론(The firm power theory)’은 모르긴 해도 자기의 그런 전제와 부합된다며 나를 부추겨 주었다. 내가 그를 두 번째 찾은 것은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출간한 졸저 ‘기업파워는 어디에서 오는가?’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제7회 자유경제 출판문화상 수상자로 결정 됐다는 통보를 받은 지 얼마 뒤인 1996년 역시 여름이었다. 3년 전보다 건강이 몹시 안 좋아져서 학교에는 가끔밖에 안나온다는 말에 따라 크리스교수의 수제자이며 SPRU의 교수로 있는 홉데이 교수하고만 장시간 얘길 나누고 런던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호텔로 전갈이 오길 크리스교수가 내가 온다고 해서 모처럼 학교에 나와 나를 기다리다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내 탓은 아니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해서 전화연락을 했더니 홉데이 교수를 만났으면 자기를 만난 것과 같다며 이해해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평소 그가 한 일을 되새겨보았다. 산업 중에서 제조업이 국부(國富)에 가장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제조업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영국왕실에 건의해 여왕이 직접 세계를 돌아다니며 제조업을 유치하게 유도했다는 것이며 그 일환으로 한국의 삼성과 LG가 영국에 투자하게 되었고, 영국 경제는 그 이후부터 호전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당시 그의 설명이었다. 부품·소재산업의 취약성으로 인해 우리의 산업활동이 활발하고 수출이 늘면 늘수록 노노현상(勞勞搾取)이 심화되고 2천억불이 넘는 대일무역 누적적자규모가 눈덩이처럼 더 가속적으로 불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고민도 않으면서 정권이 바뀌거나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전략산업을 굴뚝산업보다는 벤처산업, 정보통신, 서비스산업, 또는 무슨 무슨 산업 등으로 바꿔야한다며 열을 올리는 사이비 전문가들을 볼 때면, 난 지금도 먼저 간 크리스의 충고를 잊을 수 없다. /김 인 호 한양대 교수

경제프리즘/크리스 교수와의 만남(上)

지금은 세상을 떴지만 내가 크리스토퍼 프리맨 교수를 처음 만난 곳은 1993년 여름 영국남단의 도시 Brighton에 소재한 Sussex 대학 내에 있는 SPRU(Science & Technology Policy Research)의 그의 연구실에서였다. SPRU란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과학기술력에 좌우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가 설립한 과학기술정책 전문의 단과대학인데도 설립자인 그의 연구실은 그의 명성과는 달리 너무나 초라했다. 영국은 더운 날이 며칠 안 되어서 에어컨을 별로 사용하질 않는다고는 듣고 있었지만 그의 방엔 무척 후텁 지근한 날씨였는데도 다 낡아빠진 선풍기 한 대만이 돌아가고 있었고, 방의 넓이는 한사람의 방문객을 맞을 정도의 비좁은 공간뿐이었다. 그곳 사람들의 얘기로는 크리스교수를 만나려면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며 어떻게 그를 쉽게 만날 수 있었느냐고 의아해 했다. 그러나 처음 만난 나를 대해주는 크리스교수는 대단히 소탈했고 언젠가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분위기였다. 차(茶)를 부탁한다고 비서에게 전화를 한 지가 한참이 되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또 비좁은 자기 방을 의식했음인지 휴게실로 옮겨서 얘길 하자며 날 데리고 간 곳은 복도와 복도가 연결되는 곳에 소파 한세트와 의자와 탁자 몇 개가 초라하게 놓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한쪽 모서리에는 한 젊은 할머니가 커피 등의 음료수와 초콜릿 등 몇 가지의 과자종류를 파는 조그만 매점(엄밀히 매점 수준이라 볼수 없는)이 하나 있었다. 소파를 차지하고 차를 마시는데 마침 그곳에 헝가리의 국책연구소 소장이라는 여자 한분이 내가 KIST에 있었다니까 KIST에 대해서 잘 안다며 얘길 같이 나누었으면 해서 동석하게 되었다. 크리스교수의 전문분야는 경제학이었지만 기술을 외생변수(exogenous variable)로 보는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경제학이 아니고 기술변화를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중시하는 비주류의 경제학자였다. 당시 그는 국가간 또는 경제 블록간의 경제수준의 차이와 격차를 기술변화와 경제성장과의 관계로 설명하는 자기의 독자적인 ‘기술변화 이론(The theory of technological change)’을 정립해 놓고 있는 학자였다. 그는 경제학자였기에 거시적(macro)관점에서 기술과 경제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본 저자는 미시적(micro)관점에서 기술과 기업성과와 관계에서 기업간의 우열과 그로 인한 산업의 주도권 이동에 대하여 그 원리를 구명해보려는 도전을 감히 시도하고 있었다. 학기가 끝나고 방학기간에 그를 만나려한 나의 방문목적과 이유를 확인한 뒤 런던에서 거기까지 어떻게 왔느냐고 내게 물었다. 사실 영국에서는 대중교통편이 한국에 비해 대단히 불편한 편이었기에 오기 전에 삼성런던사무소에서 교통편을 마련해 주었노라 답했더니 그의 태도가 갑자기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이었다. 삼성(SAMSUNG)이라는 말을 듣자 삼성과 어떤 관계냐고 물으며 갑자기 변하는 나에 대한 그의 정중한 태도에서 삼성의 이미지와 위상이 영국에서 세계 톱 레벨로 각인돼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1월6일 下편 계속> / 김인호 한양대 교수

경제프리즘/이노베이션의 시대

내년도 경제전망을 묻는 갤럽국제조사기구의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11월∼12월에 갤럽 회원국인 65개국 6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5년 전망에서 질문에 응답한 한국인 1천507명 중 62%가 내년이 올해보다 더 어려워 질것이라고 답했으며 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관적인 조사결과이다. 또한 65개국 공통질문 외에 한국인에게만 내년도 개인소망과 국가적 소망을 물은 결과 개인적 소망으로는 38%가 ‘가계소득 증가와 경제안정’이라 응답했으며, 국가적 소망으로는 52%가 ‘경제안정과 활성화’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가 말하는 것은 향후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폭넓게 형성되어 있으며 국가를 운영하는 정책 담당자들에 대한 불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에 대한 전망이 어둡다고 탓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자명하다. 전 세계의 기술 선도 국가들이 미래를 위한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글로벌 시대의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연구개발을 통한 이노베이션을 진행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비춰 우리나라의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정도를 알 수 있는 ‘2004년도 과학기술연구활동보고서’를 참고하면 2003년 우리나라 연구개발 투자액은 19조687억원으로 전년대비 10.1% 증가했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64%이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액이 국내총생산에 차지하는 비중은 높은 편이지만 절대규모를 비교해보면 상당히 미흡하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2.64%를 절대규모로 따지면 미국의 1/10, 일본의 1/4, 독일의 1/2에 불과하며 이 마저도 대기업에 의한 연구개발의 선도 덕분이다. 향후 건실한 경제구조를 가지려면 대기업뿐만 아니라 국책연구기관, 대학, 중소기업, 벤처기업의 연구개발비가 대폭 증가돼야하며 이에 발맞추어 이공계 박사급 연구원 수도 증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가가 지향하는 이노베이션은 새로운 환경변화에 능동적이고 신속하게 적응하는 것이며 항상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나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국가와 기업만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이노베이션은 구상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므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며 특히 정부는 국가를 이끄는 리더로서 옳은 지도력을 가져야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전자, 반도체, IT산업 등에서는 활발한 이노베이션이 진행되었고 현재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술을 위협하고 있는 중국, 핀란드 등 경쟁국들의 기술력을 능가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노베이션이 진행되어 신기술을 개발함으로써 기술격차를 넓혀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남의 기술을 모방하였으나 향후 창의성을 활용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며 신기술이 아니면 기술경쟁력을 잃어 퇴보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이노베이션이란 정부, 기업, 대학이 공통된 인식하에 상호협력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되며 특히 정부가 기업, 대학, 국책연구소 등 여러 주체들에게 이노베이션을 권장하고 앞장서야 하므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4대입법의 통과를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이노베이션에 위배되는 것이며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고 판단된다. 무릇 정치란 이노베이션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종 선 대진大 기계설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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