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내부서 여전히 미량 검출” 국과수 등 감식작업

5명의 사상자를 낸 삼성전자 불산 누출사고와 관련, 사고가 발생한 공장 건물 내부에서 여전히 미량의 불산이 검출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과 국과수 등 합동감식반은 29일 오전 10시30분부터 사고현장에 대한 감식작업에 들어갔다. 30여명으로 구성된 감식반은 방독면과 노란색 방제복을 착용한 뒤 화성시 동탄면 삼성전자 생산 11라인 CCSS(중앙화학물질공급시스템) 건물 1층 부터 감식을 시작했다. 이어 50분 후께 누출 사고가 난 현장 부근의 불산 농도를 측정한 결과, 사고 지점으로부터 1m 이내에서 0.6ppm, 2.5m 떨어진 곳에서 0.2ppm 의불산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통제실 중앙에 붙은 무사고 존속의 가치 라는 슬로건 현수막이 무색해 지는 순간이었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가운데 감식반은 불산 보관 여부, 배관 노후 상태 등을 확인하는데 주력했다. 통제실 안 20여명의 감식반원들은 문을 굳게 닫은 채 감식 과정과 진행 사항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오전 10시30분부터 시작된 현장감식은 2시간이 지난 12시30분이 되서야 마무리 됐다. 감식반 관계자는 사고 현장 건물내부에서 여전히 미량의 불산이 검출되고 있다며 누출사고를 유발한 밸브를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환경부의 지시에 따라 지난 밤에 이어 오늘도 현장감식과 클리닝을 실시 중이라며 정확한 사고경위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양휘모기자 return778@kyeonggi.com

“형의 죽음은 경찰에 신고조차 되지 않아”

삼성 불산누출사망 故박명석씨 유족들 갑작스런 죽음에 울분 장비 미착용 회사발표 인정 못해 결혼 앞둔 우리 아들,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면 억울해서 어쩝니까 29일 오전 11시께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 누출사고로 사망한 박명석씨(34)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시 강동구 친구병원 장례식장. 화환 대여섯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빈소에는 십여 명의 유가족들만이 처참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박씨의 어머니 H씨(56)는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 초점 없는 눈으로 흐느껴 울었고 아버지(60)는 멍한 얼굴로 아들의 영정사진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H씨는 중학교부터 6년간 꼬박 신문배달을 하며 용돈을 벌었고, 회사에서도 15년 근속상까지 수상하며 인정받을 정도로 성실하고 꼼꼼했다. 어려서부터도 속 한번 썩인적 없었다며 오열했다. 숨진 박씨는 바쁜 가운데서도 짬을 내 야간대학을 다니던 늦깎이 대학생으로, 올해 결혼을 앞두고 최근 회사 근처에 신접살림까지 장만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아버지 P씨는 사무실에서 편한 일 하는 줄 알았지, 이렇게 위험한 일 하는 줄 몰랐다. 억장이 무너진다며 끝내 눈물을 내비쳤다. 유가족들은 박씨가 방제복을 입지 않아 사망했다는 삼성전자 측의 발표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박씨의 남동생(31)은 회사로부터 어떻게 얼마나 다쳤는지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한 가운데 형이 목숨을 잃었고, 사망진단서를 떼려고 알아보니 경찰에 신고조차 안돼 있어 오후 2시쯤 직접 신고한 것이라며 5명이 한 공간에 있었는데 회사측이 목숨을 잃은 형에게만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몰아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유족들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하면서 30일 오전 8시20분에 진행될 예정이다.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임시조치로 씌운 비닐봉지에 불산 흘러넘쳐”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 유출사고로 부상을 당한 협력업체 STI서비스 직원이 사고 발생 이틀 만에 입을 열었다. 29일 서울 한강성심병원에 입원 중인 STI서비스 직원 P씨(33)는 마스크와 가운을 입고 야간 근무를 위해 현장에 들어가자마자 냄새가 지독해 위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P씨는 불산을 막으려 임시조치로 씌워놓은 비닐 밖으로 불산이 흘러 넘친 상태였고 상황이 급박해 봉투를 작업장 밖으로 갖고 나와 처리했다며 이후 전신보호구와 마스크, 내산장화를 갖춰 입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숨진 박명석씨(35)에 대해서는 경황이 없어 기억이 자세히 나진 않지만 마스크와 가운만 입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평소 직원들에게 불산교육을 시킬 정도로 위험성을 잘 아는 분인데다 위급한 상황이라 기억이 정확치 않다고 말했다. P씨 외 부상직원 S씨(56), K씨(26), L씨(27)는 인터뷰를 거부했다. 한편 병원은 이들이 2주에서 한 달간 입원치료를 받으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임해준 한강성심병원 화상외과 교수는 부상 정도가 가장 심한 P씨가 전신의 10% 정도 화상을 입은 수준으로 네 명 모두 통상 2도 화상 정도여서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며 박명석씨의 경우 화상 정도만 보고 방제복을 입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순 없지만 노출량이 다른 직원들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불산’ 누출한 삼성 ‘불신’도 함께 부른다

보안 이유로 40분 이상 경찰 출입 막고 초동대처한 직원 2명 출석 요구도 거부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 불산 누출 사망사고(본보 29일자 17면)와 관련, 삼성측의 사건 축소은폐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안전을 부르짖던 국내 대표기업의 안일한 사고대응에 국민들의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삼성측은 변사사건 발생보고를 받고 찾아 온 경찰에게 보안을 이유로 40분 이상 출입을 통제했을 뿐 아니라 경기도에는 불산 누출을 신고하면서도 사망사고 발생은 알리지 않는 등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29일 경찰과 삼성전자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8일 오후 3시께 화성 반도체 사업장에 변사사건 수사를 위해 찾아 온 화성동부경찰서 형사팀, 과학수사팀 소속 직원 10여명의 출입을 보안을 이유로 통제했다. 이어 3시50분께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한 생산 11라인 불산탱크룸으로 경찰을 안내한 삼성전자는 이때까지도 불산 누출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경찰이 다른 곳으로부터 누출 여부를 듣고 난 이후에야 누출양이 미미하고 자체조사 결과, 위험하지 않다고 답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와 소방서에 신고 역시 삼성전자가 아닌 류보국 화성동부경찰서 형사과장이 직접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경찰에 앞서 오후 3시20분께 화성 반도체 사업장에 도착한 경기도 기후대기과 관계자들은 출입통제 없이 곧바로 사고현장으로 이동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도 관계자들에게 경찰과 달리 사망사고 발생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결국, 삼성전자가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면서 정부기관은 P씨가 사망한 이후 3시간여동안 단 한곳도 사고와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셈이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협력업체인 STI서비스 관계자가 경찰에 불산 누출 여부를 신고했다고 알렸지만 경찰은 이와 관련된 신고접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불산이 희석된 액체로 소량 누출됐다는 삼성전자의 발표와 달리 경찰과 부상을 입은 작업자들은 불산탱크룸에 불산가스가 가득했다고 증언한 상태다. 사정이 이런데도 삼성전자는 이날 경찰이 사고와 관련해 초동대처한 안전관리팀(GSC) 직원 2명에게 출석을 요구했음에도 거부하는 등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기업윤리마저 저버렸다는 지적이다. 사고 발생 인근의 동탄신도시 주민 A씨(52ㆍ여)는 불산이 누출돼 사람이 죽었는데, 삼성전자는 위험하지 않다고만 한다라며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것인지 이리저리 둘러대는데 분노가 치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삼성전자는 메모리사업부장인 전동수 사장 명의로 발표한 공식 유감 표명문에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고에 대한 관계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항구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 드린다고 말했다. 안영국기자 ang@kyeonggi.com 불산이란 불화수소산(hydrofluoric acid)의 줄임말로 반도체 웨이퍼 세척과정과 화장실 청소제, 불소함유 치약에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불산은 맹독성 물질로 피부에 묻으면 심한 화상을, 기체 상태의 불산을 호흡기를 통해 마시면 상기도에 출혈성 궤양과 폐수종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일반 화학화상의 경우 피부조직과 만나 조직괴사를 일으키지만 불산의 경우 피부 조직으로 스며들어 전신반응을 일으키며 사망에 이르게 한다.

독가스와 의혹에 아직도 숨막히는 현장

화성 동탄 주민들이 삼성전자발 불산 폭탄을 맞고 멘붕에 빠졌다. 반도체 공장 인근의 산부인과를 다니던 임산부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던 부모들은 다니던 곳을 옮기려 하고, 인근 초등학교는 개학일정을 연기하는 등 후폭풍이 확산되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1㎞ 가량 밖에 떨어지지 않은 화성시 석우동 D산부인과는 29일 오전부터 병원 홈페이지에 불산확산 소문 등에 관한 수십개의 글들이 게재됐다. 병원을 옮기겠다, 불안해서 다닐 수가 없다 등의 글들과 타 지역 다른 병원을 추천해 달라는 글들이 홈페이지를 도배했다. 이날 오후 2시께 병원에서 만난 C씨(36ㆍ여)는 늦은 나이에 임신을 했는데 하필 인근에서 불산 사고가 터졌다며 남편과 상의해 병원을 옮길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이곳을 찾은 외래환자 수는 평소보다 20%가량 줄었다. 인근 H대학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마스크를 쓰고 병원을 방문한 K씨(30ㆍ여)는 무엇보다 배 안에 있는 태아의 건강이 걱정된다며 당분간 서울의 친정집에서 휴식하며 병원을 옮길 생각이다고 말했다. D산부인과는 불산에 대한 임산부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외래진료 취소 전화가 오늘 하루에만 10여통이 걸려 왔다고 푸념했다. 이러한 불산 확산 공포는 어린이 시설에도 예외없이 나타났다. 화성시 석우동에 위치한 P 실내놀이시설에는 10여명의 아이들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었지만, 이는 평소 30~40여명의 아이들로 붐비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동탄면에 위치한 A어린이집은 모든 야외 프로그램을 실내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며 혹시나 모를 아이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지만, 자칫 원생이 줄어들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인근 초등학교는 개학일정을 연기했다. 사고 현장 인근 동탄신도시, 반월동 내 9개 초ㆍ중ㆍ고등학교 중 능동초는 30일로 예정된 개학일을 하루 늦췄다. 또한 31일 또는 다음달 초에 개학을 앞둔 동학초, 한마음초, 율목초, 석우초, 기산중, 능동중은 조사결과를 지켜본 뒤 개학일정 조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동탄으로 이사를 계획하던 사람들은 불안감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이주를 고민하는 등으로 자칫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일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삼성전자 화성사업장과 동탄1동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주민설명회를 30일 갖기로 했다. 한편 경찰은 삼성전자와 협력업체인 STI서비스 등의 미흡한 대응 및 사후처리 부실 등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벌일 예정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양휘모기자 return778@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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