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인가, 아닌가? 민주당 간판을 달고 당선됐으면서 달고 나온 그 간판을 헌 신짝 버리듯이 버렸다. 이 당에서 저 당으로 옮기기만 해도 변절자라고 한다. 다른 당으로 옮기는 것도 아니고 몸 담았던 당을 박살 내가며 당을 새로 만들었다. 당선의 꿀 물까지 마셨다. 볼 일을 다 보고서는 그 우물이 더럽다며 침을 뱉고 새 우물을 판다. 누가 배신자일까? 민주당(잔류파)은 통합신당을 가리켜 당선의 몰표에 은공을 모르는 배신자로 규정하고, 통합신당(탈당파)은 국민적 여망의 개혁 참여를 외면한 수구집단의 배신이라고 민주당을 욕한다. 권모술수가 갈수록 능하고 타락이 심화할 수록이 더 화려해지는 것이 정치판의 말 재주다. 말 만은 꾀가 조조라던 옛날의 조조(曹操) 뺨치게 잘들한다. 둘러대는 화술이 너무 단수가 높아 듣는 이들을 더러 헷갈리게 만든다. 배신자는 과연 누구인가? 로마 황제를 노린 케사르를 원로원에서 급습해 척살한 두 주모자 중 카시우스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브루투스는 공화정 회복을 위해 케사르의 총애를 배신했다. 추악한 배신이 있는가 하면 배신의 미학도 있다. 서로가 배신자라고 우기는 것은 책임을 서로 미루는 주술적 행위다. 그 보다는 배신을 솔직히 시인하는 용기가 배신의 미학으로 보일 수 있을터인 데도 배신의 추악한 면모만 보인다. 어차피 민주당의 신·구주류는 물과 기름이다. 개혁신당이냐, 통합신당이냐, (민주당의) 리모델링이냐 하는 지루한 기세싸움은 분당의 수순이었다. 다만 서로가 배신자 소릴 듣지않기 위해 상대가 먼저 떠나주길 속으로 바랐을 뿐이다. 결국 (당무회의의) 난투극 시리즈 끝에 신주류가 탈당하고만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시일이 촉발했던 탓이다. 하지만 신주류가 탈당을 이토록 늦춘 게 나름대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호남에서 막상 어떻게 받아 들일 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대선에서 95% 이상 지지해준 인심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 한 것으로 해석되는 노력은 보인 셈이다. 배신이 아니라는 강변이 이래서 나올법도 하다. 또 대통령 당선이 오목눈이 같은 남의 새 둥지에 알을 부화하는 뻐꾸기처럼 보이지 않으려한 객관적 노력도 성립된다. 과연 누가 배신한 것일까? 기왕지사 이렇게 된 마당에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당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코미디다. 민주당원 대통령이라고 하여 당을 배신하고 안하고 하는 문제와 연관되진 않는다. 민주당을 탈당해도 통합신당엔 안들어갈 것이라는 것도 쇼다. 신당의 원내 열세를 내년 총선에서 만회하려는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신당행으로 발표된 이재정, 박양수, 이미경, 허운나, 조배숙, 오영식, 김기재 등 민주당 전국구 의원들이 의원직 상실이 두려워 탈당하지 못하는 것은 신당이 내세우는 참신한 정치개혁에 어긋난다. 신당의 이미지를 출발 선상에서부터 흐리게 한다. 정치개혁도 당연하고 지역구도 타파도 당연하다. 그러나 입으로 하는 정치개혁, 지역구도 타파는 누구라 할 것없이 그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벌여 왔다. 이제 이를 능란한 화술로 포장한다고 하여 민중의 귀에 곧이 곧대로 들리긴 어렵다. 민주당(잔류파)은 과연 DJ 등뒤에 숨어 의원직 탐닉을 노리는 불한당 같은 사람들인 지, 그리고 통합신당(탈당파)은 은혜를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들인 지, 아닌 지 하는 판정은 여기선 유보한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이 잘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 누가 배신한 것일까? 이는 분당을 자초한 민주당이나 통합신당이 앞으로 하기에 달려 평가된다. 번드레한 말 잔치로는 안된다. 속과 겉이 다르지 않아 민중을 감동 시킬 수 있는 용기있는 실천만이 민중의 지지를 받는다. 어느 쪽이 추악한 배신인 지, 배신의 미학인 지는 내년(4월) 총선민심이 판가름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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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3-09-2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