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누가 배신자냐?

배신인가, 아닌가? 민주당 간판을 달고 당선됐으면서 달고 나온 그 간판을 헌 신짝 버리듯이 버렸다. 이 당에서 저 당으로 옮기기만 해도 변절자라고 한다. 다른 당으로 옮기는 것도 아니고 몸 담았던 당을 박살 내가며 당을 새로 만들었다. 당선의 꿀 물까지 마셨다. 볼 일을 다 보고서는 그 우물이 더럽다며 침을 뱉고 새 우물을 판다. 누가 배신자일까? 민주당(잔류파)은 통합신당을 가리켜 당선의 몰표에 은공을 모르는 배신자로 규정하고, 통합신당(탈당파)은 국민적 여망의 개혁 참여를 외면한 수구집단의 배신이라고 민주당을 욕한다. 권모술수가 갈수록 능하고 타락이 심화할 수록이 더 화려해지는 것이 정치판의 말 재주다. 말 만은 꾀가 조조라던 옛날의 조조(曹操) 뺨치게 잘들한다. 둘러대는 화술이 너무 단수가 높아 듣는 이들을 더러 헷갈리게 만든다. 배신자는 과연 누구인가? 로마 황제를 노린 케사르를 원로원에서 급습해 척살한 두 주모자 중 카시우스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브루투스는 공화정 회복을 위해 케사르의 총애를 배신했다. 추악한 배신이 있는가 하면 배신의 미학도 있다. 서로가 배신자라고 우기는 것은 책임을 서로 미루는 주술적 행위다. 그 보다는 배신을 솔직히 시인하는 용기가 배신의 미학으로 보일 수 있을터인 데도 배신의 추악한 면모만 보인다. 어차피 민주당의 신·구주류는 물과 기름이다. 개혁신당이냐, 통합신당이냐, (민주당의) 리모델링이냐 하는 지루한 기세싸움은 분당의 수순이었다. 다만 서로가 배신자 소릴 듣지않기 위해 상대가 먼저 떠나주길 속으로 바랐을 뿐이다. 결국 (당무회의의) 난투극 시리즈 끝에 신주류가 탈당하고만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시일이 촉발했던 탓이다. 하지만 신주류가 탈당을 이토록 늦춘 게 나름대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호남에서 막상 어떻게 받아 들일 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대선에서 95% 이상 지지해준 인심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 한 것으로 해석되는 노력은 보인 셈이다. 배신이 아니라는 강변이 이래서 나올법도 하다. 또 대통령 당선이 오목눈이 같은 남의 새 둥지에 알을 부화하는 뻐꾸기처럼 보이지 않으려한 객관적 노력도 성립된다. 과연 누가 배신한 것일까? 기왕지사 이렇게 된 마당에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당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코미디다. 민주당원 대통령이라고 하여 당을 배신하고 안하고 하는 문제와 연관되진 않는다. 민주당을 탈당해도 통합신당엔 안들어갈 것이라는 것도 쇼다. 신당의 원내 열세를 내년 총선에서 만회하려는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신당행으로 발표된 이재정, 박양수, 이미경, 허운나, 조배숙, 오영식, 김기재 등 민주당 전국구 의원들이 의원직 상실이 두려워 탈당하지 못하는 것은 신당이 내세우는 참신한 정치개혁에 어긋난다. 신당의 이미지를 출발 선상에서부터 흐리게 한다. 정치개혁도 당연하고 지역구도 타파도 당연하다. 그러나 입으로 하는 정치개혁, 지역구도 타파는 누구라 할 것없이 그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벌여 왔다. 이제 이를 능란한 화술로 포장한다고 하여 민중의 귀에 곧이 곧대로 들리긴 어렵다. 민주당(잔류파)은 과연 DJ 등뒤에 숨어 의원직 탐닉을 노리는 불한당 같은 사람들인 지, 그리고 통합신당(탈당파)은 은혜를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들인 지, 아닌 지 하는 판정은 여기선 유보한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이 잘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 누가 배신한 것일까? 이는 분당을 자초한 민주당이나 통합신당이 앞으로 하기에 달려 평가된다. 번드레한 말 잔치로는 안된다. 속과 겉이 다르지 않아 민중을 감동 시킬 수 있는 용기있는 실천만이 민중의 지지를 받는다. 어느 쪽이 추악한 배신인 지, 배신의 미학인 지는 내년(4월) 총선민심이 판가름 한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민중의 민생경제에 코드를'

-청와대 편지- ‘한국호’의 선박이 그러찮아도 순탄치 않은 항해 중 더욱 거센 풍랑을 만났습니다. 항로를 잘못 잡았느니, 출항일자를 잘못 잡았느니 하고 선장을 탓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상황입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선장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는 일입니다. 딴은 그렇습니다. 농업시장 개방에 이젠 스위스 공식 관세를 적용할 수도 없을만큼 특히 절박해진 쌀시장 개방의 갈등이 노 대통령의 책임일 수는 없습니다. 십 수년동안 국내 농업구조를 경쟁력 있게 개조하지 못하고 미뤄온 전 정권의 책임이 큽니다. 군수 폭행의 엽기적 불상사를 가져온 부안 원전폐기물처리장 난동 사태 역시 이를 미루고 미룬 전 정권의 잘못에 기인합니다. 외환 위기의 특수 상황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인 1998년을 빼면 올 경제성장률이 1980년 이후 가장 낮은 3%를 밑도는 것도 전 정권과 무관하지 않아 대통령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앞으로 잘 감당해내야 하는 것은 분명한 대통령의 책임입니다. 노동운동의 왜곡으로 노동시장이 경직된 잘못을 탄력성있게 풀어야 하는 것도, 그리고 북 핵 문제를 잘 풀어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는 것도 대통령의 책임입니다. 또 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전투병 파병 요청도 종국적으로는 대통령이 단안을 내려야 하는 대통령의 책임에 속합니다. (이밖에 사회불안 요인 해소 등 당면 과제가 많습니다만, 가닥을 크게 잡은 초미의 관심사 만도 이렇습니다.)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흔히 보혁논리를 많이 내세웁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밥을 먹여주는 건 아닙니다. (소련도 중국도 사회주의가 인민을 먹여 살리지 못해 결국 붕괴되고 말았으니 까요.) 극우 논리 역시 능사가 아닙니다. 이런 저런 대통령의 책임을 생각하면 정말 어려운 자리로 압니다. 막중하기가 더 할 수 없어 어렵긴 하지만 해법은 있습니다. 하나 하나를 보시지 말고 총체적으로 판단하십시오. 그 기준은 오로지 국민민복의 실체, 즉 실질가치를 추구하면 됩니다. 보혁 간에 시민단체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침묵의 소리가 있습니다. 이 칼럼을 포함하여 언론 또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형상입니다. 그래도 이 사회엔 지성이 있습니다. 농민단체, 노동단체가 막강합니다. 하지만 민중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께서 코드를 어디다 맞추느냐에 있습니다. 그건 386세대도, 수석비서관이나, 개혁인사도 아닌 이 나라의 민중입니다. 민중은 지금 경제회생을 간곡히 원합니다. 정치가 뭡니까. 민중을 잘 살게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앞서 밝힌 여러 현안을, 파병 문제까지도 다 경제와 연관지어 처결하시는 것이 바로 민중과 접근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평가를 성급히 기대하지 마십시오. 약효는 늦게 나는 것이 선약입니다. 이른바 지지층의 이탈을 겁내지 마십시오. 지지층보다 더 큰것이 민중입니다. 재야의 정권 투쟁에선 패거리가 유효하여도 국정에서는 패거리가 되레 방해만 될 뿐입니다. YS나 DJ가 실패한 이같은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유념하셔야 합니다. 극한논법을 빌리면 가장 민주주의인 척 하는 게 가장 비민주주의일 수도 있습니다. 국력과 시일을 낭비할 여유가 없습니다. 국정 전반에 새로운 분위기를 활성화 할 리더십 발휘가 요구됩니다. 풍랑이 심해 나라가 어려울 수록이 항해의 안정을 유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민중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 민중들이 얼마만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지, 대통령께서 스스로 알아 보시기 바랍니다. 예컨대 중소기업은 말할 게 없고 구멍가게도 어렵다고들 아우성입니다. 민중의 민생경제와 코드를 맞추어 판단하는 데, 모든 현안의 파고를 타개해 나가는 길이 있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청와대 편지 ‘恨을 버리십시오’

노무현 대통령님. 듣기싫은 말이 그리도 듣기 싫습니까. ‘듣기좋은 꽃노래도 석자리 반이라’하였으니 그럴만도 하긴 하겠지요. 하지만 범부가 아니잖습니까. 대통령이기 때문에 다 듣는 얘기로 아시면 됩니다. 이 칼럼도 대통령이 후보시절엔 꽤나 듣기싫은 소릴 했습니다. 그랬던 게 막상 대통령이 되시고 나선 거의 침묵을 지키거나 더러는 되레 두둔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그(대통령)에게 여유를(주자고),’ 이렇게도 말했고 ‘강변의 물(사소한 일)보단 강심의 물 줄기(큰 흐름)를 보자’고도 했습니다. 한폭의 그림을 그리는데도 구도가 잡히기까지는 수많은 소묘가 점철합니다. 하물며 갓 집권하여 국정의 틀을 잡는 덴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이 정부의 국정운영 데생 시점을 반년에서 1년으로 본 가운데 이제 반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긴 하나 명심하실 것은 국정에는 연습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간 다른 지면에서 많은 공격을 받아야 했던 연유가 이에 없지 않았음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공격이 온건하다 불온하다 하는 것은 민중이 판단할 몫이지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입에 담을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무던히도 애쓰신 것은 인정합니다. 검찰이나 국정원 같은 지근의 권력기관과 아직까진 전례없이 일정 거리를 두는 것 정말 보기 좋습니다. 흔히들 인재 발굴을 말합니다만 삼고초려할 제갈 공명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잘 아는 측근을 기용하는 파격을 굳이 이해 못할 것도 없습니다. 대통령의 파탈도 좋습니다. 벌써 국회 시정연설을 두번이나 갖게 되는 것은 임기동안 국회를 한번도 찾지 않았던 전직 대통령들에 비하면 참 좋아 보입니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에 대한 비난 가운데는 대통령께서 쓸데없는 말씀을 하신 게 더러 빌미가 된 것을 유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못해 먹겠다” “하야하지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씀은 이유가 어떻든 할 말이 못됩니다. 투박한 언어, 거친 표현 역시 서민풍모의 대통령상을 고집하고자 하는 파탈로 짐작되긴 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파탈이 순기능쪽으로 가면 보기가 좋지만 역기능쪽으로 가면 왜 그렇지 못한가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대통령께선 유난히 맺힌 한(恨)이 무척 많아 보입니다. 파격, 파탈의 고집이나 돌출의 오기 같은 것 역시 재래문화에 대한 저항의 한풀이로 보면 잘못일까요. 김해 진영의 빈가에서 태어나 오늘에 이른 것은 가히 청소년들에게 교범이 되는 입지전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성장 과정의 불우한 환경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정계에 입문해서도 실로 파란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민주당 안에서 한동안 나돈 후보 교체론, 대선과정에서의 열세를 막판에 뒤집기까지는 숱하게 중첩된 역경에 역경의 극복이었습니다. 어찌 가슴에 응어리 진 한이 없다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입니다. 맺힌 한을 이젠 내 던져야 합니다. 전 대통령 박정희가 생각 납니다. 성장 과정의 어려움은 두 분이 다 비슷합니다. 다른 점은 박 대통령은 정치적 난관없이 총칼로 바로 집권을 시작했고, 그래서 개인의 정치적 한은 당초엔 없었던 데 비해 노 대통령은 천신만고의 정치역정 끝에 집권하여 정치적 한이 피맺힌 점이 다릅니다. 박정희는 그래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보릿고개 같은 가난을 물리쳐 독재자이면서도 오늘의 경제성장에 초석을 다진 공로는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가 가난을 물리친 것은 그 역시 뼈저린 가난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성장기를 거친 대통령께서는 이제 무엇을 해보이시겠습니까. 개혁의 웅지를 짐작 못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정서를 불안케하는 한을 품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듣기좋은 말은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듣기싫은 소릴 들을 줄 아는 대통령이 되시면 참 좋겠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지난 날의 정치 원한에서 해방되는 당당한 면모를 보고 싶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임양은 주필

목요컬럼/이건 노동운동이 아니다

서울 홍제동 집에서 바쁜 걸음으로 무악재 고개 넘어 영천의 전차 종점 언저리에 이른다. 벌써 공사판엔 이른 새벽부터 줄지은 샛 노란 얼굴의 군상들이 현장감독의 삽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게으른 출근(?)으로 뒷줄에 처져 삽 배급이 끊긴 나는 그 날 하루를 공칠 수 없어 고양 신도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공사장을 허겁지겁 찾았다. 거긴 일당제가 아니고 돈 내기식의 할당제였으므로 쉽게 일할 수 있었으나 돈을 거머쥐진 못했다. 며칠동안 내리는 비로 천막 속에서 먹고자는 한밥집의 밥값마저 대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 부자들은 나에겐 저주의 대상이었다. 자본은 내몫을 빼앗아간 착취로 여겼다. 서울시의원선거 서대문구 제5선거구에서 갓 피선거권을 가진 스물다섯살에 출마했던 것은 나보다 앞서 입후보 등록한 채석장 사장 자본가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밑에서 저임금의 잡부로 뼈빠지게 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선거구호는 ‘무산계급에서 나온 사람, 무산대중이 밀어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힘은 달걀로 바위치기에 불과하여 돈키호테 같은 꼴이 됐다. 그 채석장 자본가는 시의원에 당선되어 서울시의회 의장까지 지냈다. 사회적 모순에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진보당 사무실을 드나들기도 했다. 공산주의자가 되려고 자본과 노동에 관한 책자, 그 중에도 불온서적을 특히 탐독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가 되진 못했다. 잉여가치설의 모순, 수요에 의해 공급되고 능력에 의해 기여하는 계급없는 사회실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계급투쟁 논리가 얼마나 허구에 찬 것인가를 발견한 것은 그 당시 나에겐 절망이었다. 무엇보다 인성 말살의 혁명관은 현실 불만의 저주는 될지언정 미래적 가치기준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더욱 북의 공산주의는 일찍이 마르크스와 레닌의 원전이 경계한 전형적 수정주의자며 종파분자 집단에 속하는 김일성주의다. 저들이 차라리 공산주의를 한다면 남북관계가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우리식 사회주의’의 주체사상으로 포장된 김일성주의로 인해 선뜻 개혁·개방을 못하는 데 오늘의 문제가 있다. 예컨대 일부 대학생들이 ‘민족공조’ ‘민족자주’의 어휘에 감춰진 저들의 혁명전략 차원의 전술적 개념을 모르고, 순수한 우리식 개념의 ‘민족공조’ ‘민족자주’로만 알고 동조하는 것을 보면서 철 없었던 나의 젊은 날을 생각해 본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작금의 노동운동이다. 학생은 학생이니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기성사회의 노동계가 벌이는 지금의 노동운동은 사회파괴가 아니면 집단이기주의 지 노동운동이 아니다. 노동운동에 관한한 뼈저린 젊은 시절을 체험하여 비교적 좌파성향의 관대함을 지녀온 개인적 노력을 배신당한 감마저 갖는다. 노동운동의 발상기, 정착기를 지나 이제는 개화기에 접어 들었음에도 노동계는 아직도 발상기의 투쟁이론을 내세우는 것은 엄청난 시대 착오다. 자본과 동등한 노동의 신성한 생산가치를 잘못된 노동운동으로 인하여 자본의 우위를 생성케 함으로써, 노동의 권위를 떨어뜨린 책임을 현 노동계 지도부는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른바 ‘노조귀족’들, 이들은 잘 먹고 잘 산다. 해마다 일선 노동자 노조원, 하위 노조 집행부를 불법의 아귀다툼 현장으로 몰고가는 이들의 선동은 부동의 만년 직업이 돼버렸다. 이 때문에 노조도 못만드는 숱한 일용직 진짜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 저소득층의 삶만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나는 부끄럽게도 이 나이 되도록 살기를 잘못 살아 매월 돌아오는 카드빚에 쪼들릴만큼 여전히 가난하지만, 젊어서처럼 가진자를 저주하는 우매한 생각은 갖지 않는다. 그래서 자본을 턱없이 저주하여 핏대 높이며 거품 쏟는 ‘노동귀족들’ 입에서 그들의 위선을 나는 발견한다.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고독하다. 이미 국내 노동운동은 상당부분 고독해 졌다. 여기서 노동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오기가 아니고 반성이다. 설령, ‘노동귀족들’ 그들에게 어떤 불이익을 받는다 하여도 나는 물러서지 않고 자신 있게 반성의 충고를 거듭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임 양 은 주 필

목요칼럼/'데모천국'.'데모망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서울 도심지 남대문통 데모 군중에서 이런 외침이 백주에 나왔다. 국회의사당이 데모대에 피습당해 개회 중이던 국회의원들이 이 복도 저 복도로 피해 도망 다녔다. 당시 국회의사당은 지금 서울시청 별관으로 쓰는 태평로 건물이다. 1960년 자유당(이승만 대통령) 정권의 3·15 정·부통령 부정선거 규탄이 독재정권 타도로 번진 4·19 유혈 민중의거는 이승만의 하야를 가져왔다. 그해 6월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독재에 혼난 것을 경험삼아 헌법을 내각책임제로 개헌, 7월12일엔 장면(총리) 정권의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그러나 집권당인 민주당은 민생 등 당면 과제는 뒷전인 채 신파와 구파로 나뉘어 정쟁으로 편할 날이 없었다. (장총리는 신파였으며 당시 김영삼은 구파, 김대중은 신파에 속했다.) 정부란 게 이 모양이다 보니 연일 데모 투성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데모로 날이 새고 데모로 날이 지는 가운데 “인민공화국 만세!” 소리가 나와도 잡혀가지 않고, 국회의사당을 습격해도 당하기만 할 정도의 무법천지 세상이 돼버렸다. ‘京畿道史’(경기도사)는 ‘제2공화국의 붕괴’ 대목을 ‘치안부재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에 사회는 크게 불안하게 되었으며 연일 항의집회와 시위가 끊일 사이 없어 집회와 시위의 범람을 초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데모 덕에 정권을 잡은 장면 정부는 그래선지 10개월만에 역시 데모 바람에 망하고 말았다. 이듬해 1961년(육군소장) 박정희가 5·16 군사혁명을 일으켜 데모가 자취를 감추자 ‘차라리 잘됐다’는 것이 당시의 대체적 사회감정이었다. 5·16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불행하게도 이같은 대중의 긍정적 정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SBS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정치깡패로 한창 득세하고 있는 이 아무개 등이 ‘나는 깡패입니다’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서울 도심지 거리를 조리 돌림당한 끝에 혁명검찰부와 혁명재판소를 거쳐 처형(사형)된 게 그 무렵이다. 1979년 10·26사건으로 박정희가 시해당한 이듬해 이른바 유신철권이 철폐되고 나서 ‘서울의 봄’이 한창이었다. 유신독재에서 되찾은 민주주의가 3김씨를 중심으로 만발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데모천국의 사태가 재발되었다. 이 혼돈의 틈새를 타고 세력을 키운 것이 전두환 노태우 (두 육군소장) 중심의 신군부였다. 참으로 기이한 독재와 데모의 악순환이 이 나라 정치사의 한 축을 이루었다. 데모 열풍은 도져 지금도 드세다. 물론 옛날 데모와는 다르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염려된다. 위도 원전폐기물처리장, 미군 용산기지 평택 이전 등 국책사업에서 시·군이 길을 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하는 것마다 반대에 부딪히지 않는 게 없다. 과천 정부청사나 지방자치단체엔 데모가 끊일 날이 드물다. 데모마다 ‘결사반대’를 내건다. 그같은 데모가 과연 죽음을 각오할 만큼의 명분을 지녔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고액 연봉의 노동자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통일운동가란 선동자들, 극우세력 등 이밖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데모할 궁리만 하는 세상이 됐다. 물론 데모의 이유가 다 부당하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다 정당하다고 할 수도 없다. 문제는 떼 쓰기로 밀어붙여야 뭐가 돼도 된다고 보는 굴절의식에 있다. 원칙이 변칙에 의해 파괴돼 가고 있는 게 두렵다. 세상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데모도 민주주의 한 수단이라면 데모의 방종보다는 책임이 더 큰데도 방종만 있고 책임은 실종됐다. 명색이 집권당이라는 민주당은 신주류·구주류로 나뉘어 싸우는 게 마치 옛 민주당 신·구파의 이전투구를 방불케 한다. 이 정권은 데모문화의 품질과 품격을 재정립해야 할 책임이 있다. 데모의 혼란이 보다 나은 사회문화의 성숙으로 가는 과정일 지라도 부정적 실험 과정은 되도록 빨리 끝내는 것이 국익이다. 이러다간 ‘인민공화국 만세’소리가 (데모 군중서) 또 나오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데모대에게 짓밟힐 수도 있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경기경제' 죽이기 균형발전론

“우리 강원도는 개발이란 것을 거부합니다.” 강원도 지사의 말이다. 개발은 결국 자연 파괴고 그래서 서울 사람들이 와서 개발하면 돈은 그 사람들이 벌어간다는 것이다. “지금의 자연환경을 후대에 부존자원으로 물려주는 게 의미가 훨씬 더 크지요.” 그 지사는 그렇게 말했다. 전북지사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제 와서 공장 유치를 하면 환경만 오염되지 크게 득될 게 뭐가 있습니까. 기왕 내친 김에 청정농법의 농도(農道)로 승부를 걸어야지요.” 중앙 일간지가 한동안 지방에 기자를 철수시키고 없을 때 지방순회취재를 하면서 들은 말이다. 그 전북지사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난다. 강원지사는 ‘김영진’이란 이로 나중에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 정부가 내놓은 국가균형발전론의 지방 개념을 두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뉘는 편가르기가 시작됐다. 그리하여 수도권을 압박하는 비수도권의 떼 공격이 마치 먹거리 싸움을 연상케 한다. ‘전국 시·도지사협의회’를 통한 비수도권의 집단공격은 정부의 수도권 압살정책에 상승하여 더욱 가열화하고 있다. 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어느 대학서 가진 ‘지역경제 활성화와 행정의 역할’ 주제 특강에서 “단체장(지역 CEO)의 비전과 역량에 따라 지역의 미래가 상당부분 결정된다”면서 “지자체 공무원의 프로화와 팀 워크 발휘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4개 유형으로 나누어 첨단산업 도전형 사례로 천안 청주 등지 첨단업체가 대덕연구단지와 연계한 삼각지대 형성, 광주(光州)의 광(光)산업 전략화 등을 들었다. 전통산업 부활형으로는 대구의 신프로젝트를 통한 섬유 경쟁력 회생, 부산 신발산업의 세계적 연구개발을 거점으로 하는 재도약을 예로 들었다. 브랜드와 이야기 만들기 유형으로는 전남 장성의 홍길동 생가복원 브랜드화 사람이 가꾸는 마을 유형으로 전북 순창이 ‘오지에서 세계로’를 슬로건으로 한 녹색관광의 국제화 도전을 사례로 꼽았다. 국가, 즉 지역균형발전론의 참다운 방향은 이밖에도 많은 각 지역의 지역 특성을 통한 특화산업을 지역이 많이 개발 육성하고 정부는 이를 최대한 지원하는 데 있다. 그럼으로써 국가 발전의 조화가 형성되는 것이 균형발전이 지, 잘 나가는 특정지역의 멀쩡한 산업을 죽이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균형발전이 아닌 균형공멸이다. 경기도는 전국 중소기업의 25%, 첨단산업의 40%를 가진 한국경제의 전략적 요충지다. 경기도 산업의 훼손은 곧 한국경제의 훼손이다. 경기도 산업을 탐내어 경기도를 규제강화로 압박하면 경기도 산업이 비수도권으로 갈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미 중국 등 외국으로 가버린 기업이 적잖다. 영국, 프랑스, 일본 같은 나라도 실업문제 해결과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수도권 규제정책을 푼지가 이미 오래 됐다. 유독 우리 나라만이 시계바늘을 더 세게 거꾸로 돌리고 있다. 도대체 지역이란 게 뭐란 말인가, 어차피 같은 국민경제의 틀안에 든다. 기업은 물과 같다. 어거지로 끌어들일 수도 없고 어거지로 쫓아낼 수도 없다. 기업의 위축만 가져온다. 못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산이 아니라면 비수도권이 정녕 이래서는 안된다. 산술적 수치 개념의 균형발전론은 근본적 오류를 내포한다. 전략적 본질 개념으로의 재정립이 절실하다. 중국이 무섭게 쫓아오고 있다. 우리의 수출 랭킹 특상 품목인 반도체 분야도 중국이 조만간 추월을 예고하는 지경이다. 한데도, 이 정부는 예컨대 도내 반도체공장 증설을 못하게 한다. 넋 나간 사람들의 경제 이적행위다. 손톱 밑에 가시 든 것만 알고 염통 곪는 줄을 모른다. 경제분란의 수도권 산업 흔들기는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그 책임이 비수도권 보다는 정부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임양은주필

목요칼럼/신주류의 '신당' 3대 거짓말

많은 사람들이 이젠 신물나게 여겨 재밋살 없는 신당 얘기를 한다. 민주당이 신당 논의에 담판을 짓기 위한 전당대회 소집을 두고도 신·구주류 간은 계속 첨예하게 맞서 여전히 난항이다. 이런 가운데 개혁신당이다 통합신당이다 하다가 이제는 리모델링신당론이 나온다. 리모델링형은 이를테면 신장개업이다. 그래서 신주류 강경파 일각에서는 “그럴바엔 굳이 신당을 할 게 뭐냐?”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는 모양이다. 어떻든 신당론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전후를 통틀어 반년 이상이나 끌어 ‘망건 쓰다가 장 파한다’는 속담을 생각케 한다. 요즘엔 내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 간판이 유리하냐, 아니면 신당 간판이 유리하냐를 두고 당내 각개 간에 속앓이가 적잖은 것 같다. 신당을 어떻게 하든 말든 남의 당 일에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영일이 없는 그같은 신당 혼선의 당내 사정이 더 이상 국민에게 국정 실종의 피해를 주어선 절대로 용납될 수가 없다. 그리고 신당 부진의 이유가 신당파의 세가지 큰 거짓말이 자승자박이 된 객관적 사실을 간과키 어렵다. 그 첫째가 보혁구도를 부인한 점이다. 신당파가 진보성향의 세력인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기회있을 때마다 신당의 진보정당 성향을 극구 부인하곤 했다. 개혁당이라고 우겼지만 개혁은 그들만의 독점 구호가 될 수 없다. 개혁은 누구나 다 주체가 되고 객체가 돼야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지역타파의 새로운 정치를 편다는 개혁당론 또한 공허하다. 지역타파 역시 이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절실한 소망이다. 유독 신당만이 지역타파 정치가 가능하고 지역타파는 구호로 말만 앞세워서 되는 것은 아니다. 신주류는 신당의 성격을 솔직히 진보정당으로 표방하고 나섰으면 명분도 서고 탄력도 받았을 것이다. 국내 정당체제를 보수·진보 양대정당으로 개편하는 기회를 갖고도 자신이 없어서인 지 주저하다가 놓쳤다. 보수정당인 민주당에서 또 보수정당인 신당을 만드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둘째는 인적청산의 일관성을 부정한 점이다. 신주류 중심의 신당이 구주류를 배제코자 한 새판 짜기인 것은 이 역시 다 아는 일이다. 아는 일을 두고 굳이 모호한 입장을 취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호남을 크게 의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어설픈 태도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내 후보시절 소극적이었던 구주류를 포용하거나 결별하는 것은 신주류측의 정치적 선택으로 가능한 재량권 행사인데도 이 또한 포용도 결별도 아닌 채 기회를 놓쳤다. 호남에 신진인사를 대거 공천하여 총선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당당한 입장을 보였어야 했다. 그 셋째는 노무현당임을 부인한 점이다. 신당이 노 대통령의 의중 정당인 게 뻔한 사실을 두고 애써 아니라고 우겼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 같은 아둔함이다. 그들은 대통령이 새로 취임할 때마다 당을 새로 만든다는 소릴 듣지않기 위해 그랬던 게 되레 자충수가 됐다. 신주류의 신당 중심 세력이 청와대서 나온 말로 다 코드가 맞는 사람들인 것은 세상이 다 안다. 대통령을 돕기 위한 ‘노무현당’이 바로 신당이라고 천명하고 나섰으면 오히려 떳떳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누구 말대로 총선에서 단 10석을 차지해도 신당을 할 것인지, 신장개업한 민주당 간판을 유지할 것인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예컨대 이런 객관적 전망은 가능하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든 정작 정치권 재편의 무서운 회오리 바람은 내년 4월 총선 이후에 불어 닥친다는 점이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손학규 주변, 인재가 있나?

지난 1일이었으므로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그날 청와대를 다녀 나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통령과 가진 독대는 수도권규제 완화를 위한 것이었다. 청와대 나들이는 이미 많이 경험했다. 문민정부에선 보사부 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그건 그때의 일이다. 지난 25일 YTN 대담 녹화에서 차기 대권 도전의사를 밝힌 입장에서는 그 날의 청와대 나들이는 마음속 감회가 달랐을 것이다. 일찍이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잠룡시절 청와대를 드나들며 청와대 주인의 꿈을 키웠던 것 같은 심정이었을 지 모른다. 손 지사의 행보는 역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YTN 대담에서도 그랬다. 대권 지향을 자신의 의사로 직접 노출하기보다는 사회자가 타진하는 간접 표출 형식을 빌렸지만 그건 각본이다. 대담 프로그램은 다 짜여진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되므로 그의 대권 의향 표명은 그 자신이 제기한 적극적 의사로 간주하기에 충분하다. 클린턴이 미합중국 남부 벽촌의 아칸소주 지사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도전했을 때, 무모한 것으로 보았던 객관적 예상을 뒤엎고 당 후보 자리에 올라 이윽고 현직 대통령인 부시에게 패배를 안기면서 당선의 이적을 창출한 데는 참모들의 힘이 컸다. 경기도 지사야 아칸소주 지사와는 비교도 안되는 국내 특등 도지사다. 여건은 클린턴보다 훨씬 낫지만 문제는 그같은 대통령 만들기 인재가 주변에 있느냐에 있다. 지금의 도지사 자리 주변에서 흔해 보이는 군상을 인재로 보기엔 지극히 제한된 한계가 있다. 대통령 만들기 인재는 폭탄이 떨어져도 흩어질 줄 모를만큼 가슴 저민 동지적 대화를 나누는 그런 유능한 기술자들이어야 한다. 벼슬자리 한자리 하려 하거나 자리 보전에 급급하여 야시롱 야시롱 해가며 알랑대기 일쑤인 주변머리 없는 속물은 인재가 아니다. 선거 때면 일을 해주고는 말없이 곁을 떠난 사람들, 어려울 때마다 아무 조건없이 돕고는 전화 한 통화도 할줄 모르는 사람들, 민주화운동시절 현상수배돼 막노동 현장에 은신한 그를 알고도 신고할 줄 몰랐던 노동자들과의 오랜 우정,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인재를 찾아야 한다. 손학규, 그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가정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갖게 한 것이 오늘의 경기도지사 자리다. 부인의 힘으로 어렵사리 살림을 꾸려가는 것만을 믿고 집에 돈 한푼 갖다 줄줄 몰랐던 그가 월급이랍시고 생활비를 제대로 들여놓게 된 게 경기도지사가 되고 나서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장관을 할 때보다 더 가정적 행복을 모처럼 누리는 그가 대권을 향해 다시 불안을 감수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모험이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자신을 극복하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양면이 잠재된 선악의 내부 갈등을 슬기롭게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길이 보인다. 그래야 사람다운 사람이 모인다. 범인이야 그같은 고도의 인간수양이 소용없겠지만 적어도 대권을 겨냥하는 비범부의 입장에서는 인간다운 비범한 포용이 요구된다. 일찍이 그랬다. 청와대를 다녀 나오면서 꿈꾼 그 많은 청와대 지망생의 포부가 다 이뤄진 건 아니다. 이뤄진건 극히 일부다. 그 일부에 손 지사가 들것인가는 그 자신의 역량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경기도지사로서의 소임에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이다. 야심의 인간, 손학규의 미래는 그래서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더 두고 지켜보아야 하겠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옥탑방' 엘레지

“애야! 제발 씨만은 받지 말거라….” 대학생 딸을 둔 어머니가 다 이러진 않는다. 그렇지만 임신을 걱정해 말도 안되는 이런 신신당부를 마지못해 해야하는 어머니들이 더러 있는 게 현실이다. 말려도 소용 없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계약동거만이 아니다. 결혼을 전제해도 그렇다. 살아보고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을 올려도 그렇다. 살아보고 혼인신고를 한다. 이즈음 일부의 젊은이들 풍조가 이렇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물론 극히 적은 수의 젊은이들 생각이긴 하다. 그래도 몹쓸 유행병의 영향은 마치 아편과 같아서 심각하다. 여기에 MTV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와 영화 ‘싱글즈’ 같은 게 바람을 부추겨 동거 관련 사이트가 후끈 달아 올랐다. 대학가 주변에서 방을 내놔도 ‘옥탑방 있음’하고 써붙여야 쉽게 나가는 지경이 됐다. 시청률 경쟁의 드라마 병폐, 흥미성 지상의 색영화 폐악은 이미 유죄 평결이다. 이런 드라마를 만들면서 사회공익을 내세우고, 이런 영화를 만들면서 스크린 쿼터 사수를 주장한다. 외국영화를 본다. 좋은 조건에서의 좋은 감정은 사랑의 실체가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악조건에서 확인된다. 지디 감독의 미국 영화 ‘두 연인’은 에로틱한 침실 장면은 하나도 안보이면서 잘 나가는 첨단 직업인의 남녀 주인공이 자유분방을 구가한다. 마침내 두 남녀는 대화재로 크게 부상당한 고통 속에서 서로가 느끼는 가슴 치미는 그리움이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브라우데 감독 ‘네프 므와’(Neuf Mois)는 프랑스어로 9개월이란 뜻이다. ‘사랑’이란 말은 유치한 단어로 아는 두 남녀의 독신주의자가 편의적 동거를 하다가 실수로 임신하고 만다. 게다가 프랑스에서 법으로 낙태를 금하는 임신 71일을 또 넘기고 말았다. 남자는 도망칠 궁리에 골똘했으나 여자는 전에 없던 행복감을 맛 본다. 그러다가 남자는 어느 날 여자가 임신복을 갈아입는 맨 몸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산달이 가까워 커다라진 배, 그것은 신의 계시와 같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자신이 잉태시킨 새 생명에 대한 희열과 책임감이 온 몸에 뿌듯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윽고 분만실에서 남자는 산모 곁을 지킨다. 난산의 우여곡절 끝에 절대절명의 순간을 넘어 마침내 터져나오는 아이의 울음소리, 아이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리”라고 싱글벙글하며 아이 어머닐 껴안는다. 임신에서 출산까지의 심리변화를 묘사한 ‘네프 므와’는 결코 영화속 얘기만이 아니다. 더 살아보고 결혼식 올리고, 더 살아보고 혼인신고 한다며, 아무리 더 살아도 그냥 살아서는 상대를 다 알지 못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단 맛만 즐기는 사랑보다는 쓴 맛을 이기는 사랑이 사랑의 지혜다. 그래서 계약동거는 인생의 위험부담이 더욱 높다. 자유로운 혼외 동거관계를 나중에 결혼해서 생각해 본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과거 동거 사실을 상대가 이해해 주고, 상대의 과거 동거 사실을 자신이 이해해 준다는 보장은 없다. 불행의 씨앗이다. 뉴엘 감독의 영국영화 ‘네번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에서 신랑은 결혼식장에 나타난 과거의 여자를 보게 되자 “어떠한 경우라도 신부만을 사랑하겠느냐”는 주례의 결혼서약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된다. 적어도 결혼은 연습이 아니다. 까먹는 사랑은 이내 바닥이 드러나고 일구는 사랑은 언제나 샘 솟는다. 결혼은 서로가 상대를 완전히 알고 하는 게 아니다. 어차피 불완전하게 알고 출발한다. 그러면서 서로가 맞지 않은 새로운 발견은 세파를 헤쳐가다 보면 조화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옥탑방’ 엘레지, 그러니까 대학생 딸 어머니가 겪는 엉뚱한 걱정은 여학생의 잘못도 있겠지만, 보다 남학생들이 치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헌법을 생각해 본다

제헌절을 맞으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고등학생 때다. 헌법 전 조문을 다 외웠다. 그냥 헌법이 좋아서 시작해본 게 암기하게 됐다. 그 무렵은 중소도시에는 시내버스가 없어 걷는 경우가 많았다. 길 가면서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으로 시작되는 전문(前文)부터 마지막 조문까지 외우면서 걷노라면 지루한 줄을 몰랐다. 미처 다 외우지 못하고 목적지에 닿거나 거듭 반복해야 할 때도 있었다. 어떤 수치를 떠올려 해당되는 조문을 틈새로 외워보기도 했다. 특히 매료됐던 조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경제질서의 기본 항목이었다. 웃기는 것은 다니다 그만 둔 대학생이 되고는 이 항목에 강한 의문과 반발심에서 한동안 모순의 갈등을 겪었던 일이다. 어떻든 헌법 조문의 구절구절이 다 주옥같은 명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내가 외운 헌법은 1차개헌(발췌개헌) 헌법이다. 그로부터 50년을 뛰어넘는 지금, 지금도 헌법을 (외우는 게 아니고) 읽어볼 때가 더러 있다. 그동안 아홉차례에 걸친 개헌이 있었다. 자유당 정권에선 대통령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해 사사오입이란 희한한 개헌이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간선으로 하는 정략적 개헌도 두번이나 있었다. 내각책임제도 해봤고 양원제 국회를 두기도 했다. 또 헌법이 중단되는 사태를 헌정 55년동안에 무려 세번이나 겪었다. 1961년 육군 소장 박정희가 주도한 5·16군사 쿠데타, 그리고 이어 1972년 제4공화국으로 가는 유신선포로 국회가 초법적으로 강제 해산되는 등 두번째 헌정중단이 있었다. 그 해 10월27일 오후 유신선포와 비상계엄을 결의한 비상국무회의가 있었던 날은 국회 국정감사가 한창이었다. 이튿날 문교위의 경북도교육위원회(당시는 지금의 도교육청을 그렇게 불렀다) 감사가 예정됐었다. 그래서 경북도교위가 그날 낮 기자들에게 오찬과 함께 상당액으로 추정되는 촌지를 내놨다. 그 때 경북도교위는 큰 비리가 있었으므로 국감을 계기삼아 단단히 문제화할 속셈으로, 밥은 얻어 먹었지만 촌지는 퇴짜를 놓았던 게 불과 몇시간 뒤 뜻밖에 국회가 해산됐다는 청천벽력의 TV속보가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촌지나 챙겨둘 걸 그랬다”는 동료들과의 농중진담을 해가며 포장마차에서 시국에 대한 푸념인지 울분인지를 소주잔에 토했던 게 생각난다. 세번째 헌정 중단은 1979년 대통령 박정희가 10·26 사건으로 타계한 이듬 해 5월31일 두 육군 소장 전두환, 노태우가 주축이 되어 역시 법에 없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란 것을 만들면서 비운을 맞은 국회 해산이다. 대통령 직선제 등을 골자로 한 현행 6공화국 헌법은 태평로를 연일 최루탄으로 물들인 6월항쟁 끝에 쟁취한 것으로 1987년 10월29일 개정이 확정됐다. 개헌한지 16년이 된다. 헌정사상 헌법을 고치지 않고 놔둔 기간으로는 가장 길다. 그래서인지 정치권의 개헌론이 간헐적으로 고개를 든다. 대통령의 5년제 단임을 없애고 4년 임기의 중임으로 고쳐야 한다는 게 요지다. 중임이 독재화를 가져온 폐단에 경을 쳐 도입한 것이 단임이다. 하지만 5년 단임이나 4년 중임이나 다 장·단점은 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운용에 있다. 영국처럼 불문율 헌법으로도 나라를 잘 다스리는 전통적 묘(妙)까지는 기대할 수 없어도 헌법정신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운용의 묘다. 현행 헌법은 수차 뜯어 고쳤다하여 흔히 ‘누더기 헌법’이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헌법이다. 제헌절인 오늘, 대통령·총리 및 장관·국회의원들은 헌법을 한번쯤 정독해 봤으면 좋겠다. /임양은주필

목요칼럼/정말 한번 해 볼끼가?

‘도저히 기업할 수 없어 떠나왔죠.’ ‘방중 盧 대통령에 脫수도권 기업주들 불만 토로’ 제하의 경인일보 어제 날짜 현지 보도는 통렬했다. 노 대통령이 조어대서 가진 현지 경제인 조찬간담회 석상, 이 자리에서 삼영화학유한공사 회장 이종환씨는 교포 경제인 대표 연설을 통해 기업 내쫓는 수도권 규제 일변도의 정부 시책을 통박한 것으로 전했다. 같은 날, 정부는 지역특화 발전 특구 대상에서 경기도는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제외시켰다. 지역특화는 일본에선 ‘1촌 1품운동’에 이어 이미 추진된 사업이다. 지역특성을 살려 첨단산업단지, 전통산업 계승, 브랜드 전략화 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 다만 정부의 이번 결정은 이를 위한 규제완화, 재정 및 세제 지원 등을 하는 것이 골자로 돼있다. 생각해본다. ‘수도권, 수도권’하지만 영남이나 호남이 경기 북부지역보다 못한 건 아니다. 경기북부지역은 충북 도세만 하면서 인구 밀도는 현저히 낮고 지방재정이 비수도권 어느 곳 못지않게 열악하다. 실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수도권이란 이유로 경기북부지역을 지역특화 발전 특구 대상에서 빼버렸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비단 북부 지역에 국한하는 일만은 아니다. 경기도 전역의 전략산업을 이렇게 대접해서는 안된다. 예컨대 수차 밝힌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증설만 해도 그렇다. 이 라인을 증설하지 않으면 무섭게 쫓아오는 중국의 반도체 업계에 되레 추월 당할 것이라는 문병대 경기도전경련 회장의 경고는 설득력이 높다. 문 회장은 며칠전 경기언론인클럽이 주최한 조찬 특강에서 이같이 설파하였다. 경기도는 국토 면적의 12%를 차지하고 인구는 36%를 차지하며, 전국 제조업 생산의 43%, 생산 점유율은 그 부가가치가 45%에 이른다. 지역경제는 곧 국민경제이고 국민경제는 곧 지역경제다. 잘 나가는 지역경제의 탄력을 애써 소멸하여 국민경제가 잘 될 수는 없다. 또 국민경제가 잘 나가는 지역경제를 저해하여 성장하는 예는 절대로 없다. 수도권의 경제 발전은 바로 국민경제의 발전이다. 이같은 수도권, 즉 경기지역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정부의 이번 경기 지역특화 발전 특구 대상의 제외다. 이에 경기도가 분노하여 자체적으로 지역특화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것은 지방정부로서 당연하다. 중앙정부가 뭘 모르고 헷갈리면 지방정부가 들고 나서야 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고 국민, 즉 지역주민을 위하는 길이다. 이 정권에 심히 안타까운 것은 경제논리를 모르지 않을 사람들이 정치논리에 치우쳐 경제논리를 왜곡하고 있는 사실이다. 수도권에서 기업규제 환경에 견디다 못해 중국으로 가 성공한 재중국 기업인의 그같은 신랄한 ‘조어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는 어차피 그같은 비판은 귀담아 듣지 않는 쇠귀에 경 읽기와 같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수도권 정책을 정치적으로만 왜곡하는 노무현 정권을 정치적으로 응징하는 것 뿐이다. 뭣이 ‘노무현’과 코드가 맞는 신당인 지는 앞으로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국민경제를 해치는 이같은 무리는 경기도 지역의 다음 총선에서 국가차원의 안목으로 본때를 보여야 한다. “당신들은 정치논리가 그리도 좋나? 그럼 정치적 맛이 어떤가 한번 해 볼까!”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박사 樂士’와 파업

그는 밤 무대의 악사다. 오르가니스트다. 전자오르간이나 연주하면 그만이라 할지 모르지만 보통 악사가 아니다. 박사다. 그것도 노동운동이 전공분야에 속하는 그런 박사다. ‘박사악사’의 눈엔 그들의 외침이 공허하게만 들렸다. 무슨 연금 승계 등을 요구하며 가지각색의 깃발에 적힌 갖가지 구호, 목이 터져라 하고 핏대를 돋우는 모습들이 도시 이상하게만 보였다. 법 절차도 없고 명분도 없이 제멋대로 사회공익을 유린하는 이기적 패거리 작당으로 밖에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의 발걸음은 그날 따라 더 무거웠다. 아내를 대할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피땀 어린 내조로 명문 대학에서 학문 최고의 학위를 따고도 사회적 정착을 못하는 방황이 아내에게 부끄럽기도 했다. 시간강사다. 그런 자신을 보따리 장사꾼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K대학, S여대, P대학, D대학 등 네군데에 강의를 나간다. 그래봐야 모두 합쳐 200만원을 받는다. 그중 세군데는 지방 캠퍼스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충당하는 승용차 휘발유 값을 제하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다. ‘교수초빙’ 광고를 보고 원서도 내보았다. 아니다. 채용 기준은 학문적 실력이나 소양이 아니고 돈이었다. 그것도 최저가격 1억원을 시작으로 하여 입찰을 붙이는 것이었다. ‘초빙’이 아닌 ‘교수직 경매입찰’을 포기하곤 했다. 자치단체 같은데서 특정직을 공모하는 걸 보고 응모도 해보았다. 역시 아니다. 발령자를 미리 내정해둔 허울 뿐인 공모는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었다. 그의 알찬 이력의 적성, 발군의 실력, 이런 객관적 잣대도 정실 채용 앞에서는 무력하였다. 그래서 부업 아닌 부업으로 시작한 것이 밤 무대의 악사다. 학생시절 부터 악기엔 소질이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음악학원에서 어렵지 않게 솜씨를 익힐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전자오르가니스트로 밤이면 예술가 타입의 가발을 쓰고 무대에 섰다. 그건 우연이었다. ‘박사’의 ‘악사’데뷔는 우연이었으나 알고 보면 그만이 아니다. 부업을 귀띔해준 것은 역시 같은 시간강사였다. 그를 딱하게 보다 못한 동료가 자기도 악사 부업을 한다면서 일깨워 주어 막상 시작하고 보니 ‘시간강사 악사’가 한 둘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다만 서로간에 체면이 있고 해서 굳이 밝히지 않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 어렵게 됐다. 불경기의 장기화로 미사리 카페촌 같은데도 찬바람이 불어 문 닫는 업소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부업 업소 역시 휴업하게 되어 악사 자리마저 실직한 그의 귀가길 걸음이 무거워 진 것이다. 악사 소득이 네군데 대학의 시간강사 강의료보다 많았던 터라 여간 큰 타격이 아닌 것이다. 물론 아내에겐 처음 음악학원에 다닐적 부터 철저한 비밀이었다. 박사 학위까지 따게 해놓으니까 부업이든 무엇이든 간에 기껏 밤무대 악사냐 하는 실망을 아내에게 차마 끼쳐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름방학엔 시간강사 강의가 없으므로 쥐꼬리 만한 강의료도 그나마 없게된다. 시간강사가 주업일 수 있을는 지는 모르지만 어떻든 주업·부업을 다 잃은 ‘박사악사’의 시간강사 마음은 착잡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차라리 길거리에서 노운동이랍시고 되지도 않은 말로 악다구니를 벌이는 그 사람들의 직장, 그 자리가 정말 부러웠다면서 소주 잔을 단 숨에 들이켰다. 희극인가? 웃겨도 너무 웃긴다. 비극인가? 비참해도 너무 잔인하다. 도대체가 열심히 살려고 해도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런 한쪽에서는 자기네 직장을 엽기적으로 헐뜯고 매도한다. 세상을 좀 더 바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청와대 '공룡 경기' 화나게 할 건가?

삼성전자는 세계 IT산업에서 랭킹 3위인 굴지의 대기업이다. 특히 D램 S램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정상의 평가를 받는다. 이의 생산라인 증설을 위해 기흥에 공장을 시급히 지어야할 처지다. 삼성전자의 이러한 세계적 성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1류기업주의 지향의 뛰어난 경영철학과 막대한 투자의 결실이다.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 이 회장의 기업 정신이다. 삼성전자엔 이같은 천재가 많은 이를테면 수출두뇌의 보고다. 수출을 해서 국민이 먹고 살게해야 하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공장 증설을 마땅히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다. 이런데도 청와대는 데데하기만 하다. 법규에 문제가 있으면 법규를 고쳐서라도 당장 도와주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인데도 무슨 큰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군말이 많다. 한동안은 일부 생산라인의 지방 이전을 조건 삼았다. 공장을 짓고 옮기고 하는 일은 순전히 기업경영에 속하는 것으로 기업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청와대가 감놔라 배놔라하는 것은 월권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내년 4월 총선 이전엔 공장 증설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맨 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실효성 없는 수도권 규제를 과감히 풀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분명히 그랬다. 대통령의 말을 믿고 잔뜩 기대했던 게 결과는 아무 것도 아닌 게 돼버렸다. 대통령 말도 믿지 못하게 되면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하는 것인지 심히 황당하다. 기가 막힌 것은 총선 전엔 안된다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그 정치적 배경이다. 남부지역에서 반발하므로 선거에 지장이 있다는 걸로 들은 말이 청와대 생각인 게 맞다면 참으로 우매하다. 외국 자본이 수도권에 들어 오려다가 온갖 규제에 넌더리 친 그 외자가 비수도권에 간 것이 아니고 기업하기 좋은 다른 나라로 간 것을 정치권이 모르지 않으면서 우기는 건 그렇다 치고, 청와대까지 덩달아 경제논리에 정치논리를 앞세우는 것은 괴이하다. 경기도 지역을 지금처럼 비대하게 만든 것은 지역 사회가 아니고 바로 정부다. 정부가 지역사회엔 일언반구도 없이 신도시다 뭐다하여 인구를 잔뜩 들어오게 해놓고는 이를 빌미삼아 걸핏하면 규제를 들먹이는 것은 이만저만한 자가당착이 아니다. 마땅히 없애야할 ‘수정법’으로 동북아의 전초 기지인 수도권 기업을 꽁꽁 동결해 놓고 어떻게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인지, 생각한다는 게 도시 기가 차 웃기기만 한다. 중국 같은 후발 국가들이 이미 ‘흑묘백묘론’을 내세우며 무섭게 추격해오는 마당에 이 나라에서만이 쥐만 잘 잡으면 됐지 한가롭게 검은 고양이냐 흰고양이냐를 따지는 하릴없는 생각들만 하고 있으니 실로 걱정된다. 그것도 굴뚝산업시대에 만든 케케묵은 법규를 굴뚝이 소용없는 첨단 지식산업시대에까지 어거지로 꿰맞추는 것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처사다. 참다 참다, 보다 보다못한 지역사회가 그래서 이제 화가 났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증설 규제개선 촉구대회에 이어 나선 100만명 서명운동은 비단 삼성전자 190여 협력업체만의 의사가 아니다. 지역사회의 한결같은 여망으로 지역 정서가 이와 함께한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논리를 정 말한다면 경기도민도 생각이 있을 수가 있다. 다른 시·도를 서너개 합쳐도 경기도에 버금갈까 말까 한다. 지역사회는 그간 중앙의 온갖 천대에도 무던히 참고 견뎌왔다. 그러나 이젠 아닐 지 모른다. 정녕 그토록 지역사회를 끝내 구박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어떤 폭발적 본때를 보여주는 대반란이 일어날 수가 있다. 그리고 이는 누구들처럼 지역이기가 아닌 국가이익의 촉구를 위한 결단인 것이다. 청와대는 세계적 유수 기업의 수출 신장을 정치논리로 방해할 것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온순한 ‘공룡 경기’를 화나게 만들어선 안된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6월의 노래 ③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삿대를 저어라’ 황정자가 부른 트로트풍의 가요 ‘처녀 뱃사공’이 나온 것은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이다. 사회질서가 그런대로 안정된 시기였다. 당시엔 지금처럼 강에 다리가 없어 행인은 대개 도선장의 나룻배를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 나이든 사공이 어쩌다 병들어 누우면 아낙네나 처녀 사공이 노를 잡는 일이 많았다. 젊은 장정은 모두 군대에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난 첫 해에 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교전이 벌어져 강 나루가 전쟁터가 됐을 적엔 군인들이 나룻배를 징발했었다. 어느 쪽 군인이랄 것 없이 다 그랬다. 어렸을 적에 본 것이지만 기억한다. 나루터 초병이 초소에서 여대생을 강간했다. 피란 길의 그 부모는 외면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였고 살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 명문 여대의 이름을 그때 처음 들었다. 1·4후퇴 땐 기차의 곳간차마다 피란민이 꽉 차 할 수 없이 곳간차 지붕으로 올라간 사람들끼리 서로 떠밀어 떨어뜨려가며 자릴 잡았다는 얘길 피란민들 한테 들었다. 전쟁터에서 작전 중인 군인들 곁을 지나가면 딱 총 맞아 죽기 십상이다. 행인이 적대 군인들을 만나면 지나면서 본 상황을 캐묻게 되어 병력, 장비 등 비밀이 탄로나기 때문에 번연이 아무 죄없는 민간인 줄 알면서도 자기들 군대가 살기위해 쏴 죽이는 것이다. 어느 쪽이라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동네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끼리 평소의 감정을 이념으로 빗대어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곤 한다. 전쟁은 이처럼 모든 사람들을 미치광이로 만든다.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 치는 가운데 법이고 인권이고 그런 것 따윈 다 개나발 같은 소리가 된다. 그래도 그 처참했던 6·25 한국전쟁은 지금 생각하면 원시적 전쟁이다. 만약에 또 전쟁이 터지면 핵 무기든 미사일이든 뭐든 간에 사람이 무더기 무더기로 도륙된다. 전쟁 중엔 모든 자가용 차량은 운행이 동결되어 길에 나섰다가는 총질 당하고, 수도며 가스가 끊겨 주민생활은 뒤죽박죽 되면서 가치관이 혼돈된다. 예컨대 물은 금보다 귀해지고 고층아파트 베란다마다엔 가구를 부숴 먹거릴 끓이는 연기로 꽉 차고, 화장실 처리에 집집마다 골머리를 앓겠지만 이런 고통쯤은 그래도 약과다. 설사, 재발된 전쟁이 통일로 끝난다 해도 한반도는 유령의 땅이 된다. 하노이 정부에 의해 사이공 정부가 무너지고 나서 나타난 놀라운 현상은 그렇게 볼 수 없었던 사이공 정부 요로가운데 간첩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하노이 정부는 또 제세상 만난 것으로 기대했던 사이공 정부하의 친공 인사들을 말만 많은 위험 인물로 보아 모두 숙청했다. 지금 이 시대에 국기를 지켜야할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게 또 무엇이 있겠는가, 평화는 평시에 잘 지켜야 한다. 전시에 되찾으려는 평화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한국전쟁이 휴전된지 꼭 50년이다. 그 옛날의 처녀 뱃사공도 손주, 많으면 증손을 두었을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할머니의 소망은 후대가 제발 전쟁없는 평화를 누리는 것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기를 뒤흔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전쟁, 특히 동족상잔의 전쟁은 민족적 범죄다. 전쟁은 힘을 지녀야만이 막을 수가 있다. 잔인한 ‘6월의 노래’는 이제 끝내야 한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6월의 노래 ②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 지라도/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포크송의 양희은 노래 ‘아침이슬’이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을 때면 피가 뛴다. 민주화 6월 민중항쟁, 인파의 격랑 속에 퍼부은 최루탄이 서울시청 광장과 프레스센터 주변 태평로를 진동할 때, 매연으로 후두염을 앓아가면서 이리 저리 뛰어 취재했 던 게 생각난다. 또 하나의 6월, 한국전쟁 발발 땐 중학생으로 학도병을 지원하는 선배들 틈에서 ‘학도가’를 부르다가, 인공치하 3개월 동안 ‘김일성장군의 노래’ ‘빨치산 노래’ 등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워야 했다. 2003년의 6월 지금은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새 순 없인 뿌리가 있을 수 없고 뿌리 없인 새 순이 날 수가 없다. 1948년 같은 해에 수립된 대한민국은 자유주의 정권,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공산주의 정권으로 오늘에 이른다. 북에선 북조선인민회의 제3차회의가 구성한 인민회의특별회의에서 1948년2월6일 헌법 초안을 만들어 인공을 수립했던 게 그해 9월9일이다. 남에서는 같은 해 5월10일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를 치르면서 이를 방해한 공산세력들에 의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됐다. 남로당 사람들이 투표소를 습격, 죽창으로 선거관리 사무원과 유권자를 닥치는대로 찔러 죽이는 것을 어릴 적에 목격한 내가 살았던 곳 말고도 남쪽 전역에서 이런 참사가 여기 저기서 숱하게 있었다. 해방 후 우익 진영의 반탁과 좌익 진영의 찬탁을 둘러싼 이념 투쟁으로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간 희생을 치르고도 1948년8월15일 정부 수립을 위한 5·10총선 당시만 해도 실로 수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도 모자라 1950년엔 1천만 이산가족과 300만명의 사상자를 낸 6·25가 터져 3년여동안 국토가 불바다로 폐허화 했다. 이같은 수난과 폐허를 딛고 그래도 오늘만큼 일어선 대한민국의 뿌리는 자유민주주의다. 이런데도 자유민주주의 새 순이 돋아나야 할 대한민국 뿌리에 엉뚱한 인공 뿌리를 접 붙여 공산주의 순을 돋게 하려는 무리들이 있어 보인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엔 무엇이든 끝없이 관대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사사건건 트집잡는 이런 무리들은 기실 대한민국 덕분에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다. 막상 그들보다 못 먹고 못 산 민중은 태극기를 보면 충성심을 갖는데 비해 앞서가는 지식인으로 위장한 그 무리들은 태극기에 절하는 것조차 촌스럽다고 말한다. 남북이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무서운 전쟁 재발을 막자는 것이지 공산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남로당 반란군을 ‘남부군’이라 해도 보아주는 것은 서로의 시대적 희생을 아프게 여겨 그런 것이지 인공 정권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이 틈을 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망가뜨리려는 그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자본주의 모순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약점이고 모순의 극복은 가장 큰 강점이다. 대한민국 뿌리에 접 붙이려는 이단의 순은 결코 탄소동화작용을 일으킬 수가 없다. 그 뿌리엔 정체성 지닌 그 새 순이 진정한 이 시대의 새로운 지식인이다. 내년 6월 쯤엔 중도우익 민중의 새로운 저항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만일 그렇게 되는 불행한 사태가 생기면 ‘아침이슬’의 노래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설 것만 같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6월의 노래 ①

‘모야 모야 노랑 모야/언제 커서 열매 맺나’ 모내기 꾼들이 이렇게 소리 모아 뽑아대고 나면 ‘우우 우 후…’하는 논두렁 양쪽 갓 줄잡이들 후렴 속에 못 줄이 한 뼘쯤 뒤로 옮겨지면 이내 또 ‘이달 커고 저달 커서/칠팔월 되면 열매 맺지’하고 소리가 이어진다. 논바닥에 모를 꽂는 모내기 꾼들의 손이 논 물을 재빠르게 드나들며 내는 철벙거린 소리가 거의 쉴 새 없다. 지금은 모내기를 이앙기로 드르륵 하지만 그 땐 그랬다. 거머리는 왜 또 그리도 많았던지, 새참 때면 종아리 여기 저기에 찰싹 달아붙은 거머리를 떼어 내는 게 일이었다. 손으로 잡아 댕겨서 안떨어지면 모래로 밀어대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논엔 거머리가 있어야 제격이다. 거머리가 살 수 있으므로 해서 논에서 미꾸라지도 나고 우렁이도 나고 메뚜기도 난다. 그 무렵은 농약이란 걸 칠 줄 몰랐기 때문에 시쳇말로 청정 농법이었다. 논산 훈련소에 입대했을 때에도 더운 6월이었다. 수통에 물이 떨어지면 행군 중에 쩔쩔 끓는 논물을 마셔 갈증을 달래곤 했다. 지금 같으면 논물을 마셨다간 농약 중독으로 아마 목숨 부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요즘 모내기가 한창이다. 모내기를 마친 들판의 노랑 논을 보면서 쌀값이 헐값이어서 수지 타산이 맞니 안맞니 하면서도 논을 놀리지 않고 그래도 애써 모내기를 한 것이 대견스럽고 고마운 생각까지 든다. 농사는 남의 농사라도 역시 잘 되어야 인심이 후해진다. 모를 갓낸 6월의 논을 보는 회포는 해마다 그 때를 잊지 못한다. 잔인한 6월의 한국전쟁, 그것은 모내기를 다 마쳤을 무렵에 일어나서 벼 베기할 즈음에 9·28 수복이 있고도 그리고 3년이나 이어졌다. 1950년 6월 25일, 그 날도 온 나라가 모내기를 마친 논처럼 참으로 평화로웠다. 시골에선 바쁜 농사일 한 고비를 넘긴 안도감에서 모처럼 정자나무 그늘을 즐길만큼 사람들 마음이 푸근했고, 도시에선 일요일을 즐겨 서울 한강 같은데선 보트놀이 행락이 넘쳤다. 일선 장병은 대거 외박나온 가운데 육본 수뇌들은 전날 밤 늦도록 육군회관 낙성식 파티에서 진탕하게 놀아 주독에 빠졌다. 작취에서 헤어나지 못한 군 수뇌부는 이날 새벽 4시를 기해 38선 전역에서 노도처럼 밀고오는 북측 인민군대의 전면전 도발을 종종 있었던 우발적 국지전으로 지레 짐작하여 보고받는 것조차 귀찮아 했다. 정치권에서는 며칠 전까지 경찰에 검거된 남로당 거물 김삼룡과 이주하를 평양 고려호텔에 연금된 민족진영 거두 조만식과 교환하자고 협상을 제의해온 저들이 설마 남침했겠느냐며 반신반의 했다. 대통령 이승만은 ‘용맹무쌍한 국군이 반격에 나서 적을 격퇴시키고 있다’는 국방장관 신성모의 허위보고에 놀아나 ‘서울 시민은 안심하라’는 라디오 방송을 되풀이 했다. 그야말로 개판같은 잠꼬대 속에 수도 서울을 불과 사흘만에 내주고 말았다. 53년이 흘렀다. 전쟁 재발을 걱정하면 북측은 전쟁할 생각도 안하는데, 괜히 이쪽에서 먼저 야단들이라면서 선각자연하는 잘못된 지식인들이 행세하고 있다, 오늘의 이런 정황이 과연 1950년의 정황과 얼마나 다른 가를 생각해 보면 실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한국전쟁의 시산혈하를 경험하지 못한 일부의 세대들이 마치 전쟁을 무슨 게임처럼 여기는 그릇된 인식도 두렵다. 비록 모내기 소리는 사라지고 거머리 같은 건 없어졌지만 노랑 모를 낸 논은 역시 예쁘고 평화롭긴 마찬가지다. 이런데도 잔인했던 그 6월의 전율을 갖는 것은 그 모내기꾼들이 불과 얼마 뒤에 꿈도 못꾸었던 전쟁터에 나가 삼대처럼 쓰러진 그같은 동족상잔의 참극이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는 염원 때문이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진영 땅이 뭐길래?

정치인이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공식 방법의 후원금은 수년 전에 생긴 제도다. 지하 방법으로는 수뢰 및 이권개입이 있고 이밖에 부동산 투자(투기)도 있다. 정치인의 부동산 투기는 준지하 방법이긴 해도 세금을 다 내고 재산을 증식한 것이라면 굳이 탓할 건 없으나, 그 과정이 대개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 정치를 오래한 정치인 치고 이래서 과거로 부터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의문을 부단히 제기받지 않는 정치인은 드물다. 털면 먼지가 날 것으로 보는 사회적 눈이 그만큼 많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를 오래한 분이다. 후보 땐 돈이 없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그의 지지층은 돼지저금통들을 만들어 선거자금을 대주었다. 눈물겨운 돈들이다. 대통령은 (어제 특별기자 회견에서) ‘선거자금의 약 절반을 돼지저금통으로 충당하였다’고 말했다. 그 자리는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 땅 때문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로 문제의 진영 땅은 살 때 3억원을 대긴했지만 (생수사업으로 형님 돈을 갖다 써서) 노건평씨 땅이라고 하였다. 정치를 하기위해 땅을 사봤고 또 장수천(생수) 사업도 해보았지만 다 (손해 보아) 실패하였다는 것으로 들었다. TV로 생중계 되어 많은 시청자들이 들은 대통령 말대로라면 아무 의혹이 있을 수 없다. “부정이나 있는 것처럼 (신문에) 계속 나오니까…”라며 일부 신문보도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내용의 핵심적 실체에 직접 접근하지 못한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해명을 불신할 구체적 근거를 찾을 순 없다. 믿긴 믿어야겠는데 그래도 12억원의 경락대금 출처 등 뭔가 미진하다. 대통령 회견이 있던 날 아침까지도 일부 신문은 의혹을 제기했다. ‘진영 신용리 임야 8700평 매매과정 의혹-계약서 왜 실제거래 2년 후 작성했나’ ‘盧 대통령 진영 땅 언급 일관성 없어-93년 재산공개 땐 내 땅, 해양장관 땐 신고 안해, 관훈클럽선 ‘ “줄곧 소유”, 작년말 “92년부터 형 땅” ’ ‘ “진영 땅 2800만원에 팔았다고 밀고 나가라” 건평씨, 전 소유자에 전화’ 등등 이외에도 또 있다. ‘조·중·동’ 등 (일부 신문)은 벌써 일주일 넘게 이렇게 대서특필하고 있다. 만약 오보라면 엄청난 부담이 돌아올 기사가 연일 쏟아졌다. 특별회견은 맥없이 끝났다. 막상 ‘조·중·동’ 기자는 (일부러 질문을 안했는지, 못했는지) 질문도 않고, 질문을 한 춘추관 몇몇 기자 중엔 맹탕같은 질문을 하는 기자가 있었다. 대통령의 해명을 받쳐 줄 핵심 제기가(질문으로) 있어야 해명의 설득력이 살든지 말든지 할 터인데도 이런 게 없어 일반통행(회견)이 되어 결국 진영 땅 의혹은 더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다만 시청자들 중엔 이런 것을 느낀 사람은 많았을 것 같다. 시골에서 그냥 지내는 단순한 촌부로 여겼던 건평씨가 행세하는 땅부자가 아닌가 하는 점과 대통령의 재산이 알고 있었던 것보단 더 많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생각하면 참 이상하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초장엔 잘 나갔다. 파장에 가서 엉망이 되어 그랬지 초장 판세는 썩 좋았었다. 이에 비해 노무현 정부는 초장부터 삐거덕 소리가 요란하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와는 반대로 파장에 가서 잘 되려고 그러는진 모르지만 당장 당하는 국민은 불안하다. 진영 땅만 해도 그렇다. 아무 잘못이 없다니까 더 할말이 없지만 만약 크든 작든 문제가 있었다 하여도 고해성사하는 결단을 보였다면 사회감정은 능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치자는 모럴이 있어야 한다. 국민을 편하게 해줄 줄 아는 치자는 경륜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덕도 있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

“청와대에 막상 들어가서 보니까 마치 창고가 텅 빈 종가집 살림을 맡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박정희’가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을 약 15만표 차이로 제치고 당선된 뒤 밝힌 청와대 입성 소회가 이러 하였다. 그는 군사혁명 주도자로 근 2년을 사실상 집권한 예비기간을 거쳤으면서도 청와대 밖 군정과 청와대 안 민정의 차이점을 청와대 주인이 되고나서 비로소 실감했던 것이다. ‘노무현’ 의 집권에 정치적 입지가 다른 ‘박정희’와 비교하는 게 아니고 청와대 밖에서 보는 것과 청와대 안에서 보는 관점은 이처럼 다를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노무현 대통령의 형편은 박정희 대통령의 처지에 비해 나라 사정이 아주 다르긴 하나 청와대 주인의 입장에서 느끼는 점은 같을 것으로 보아진다. ‘반미’를 불사하던 ‘노무현’이 지난 방미 길에 ‘친미’로 돌아섰다면서 ‘굴욕론’까지 쏟으며 폄훼하는 목소리가 시끄럽게 한다. 예를 한번 들어본다. 만약 국가 안보가 불안하고 불투명하여 외자 이탈과 함께 수출이 막혀 민생이 북녘처럼 심히 어려워지면 어떻게 될까, 입맛 눈맛 말맛이 높을대로 높아진 남녘 사람들은 북녘 사람들처럼 끽 소리 못하고 사는 것이 아니고 난리가 날 것이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했고 엊그젠 “재앙”을 들먹인 저들 말처럼 대량 살상무기를 동원하는 전쟁이 재발된다면 또 어떻게 될까, ‘자유’와 ‘인권’이 사치스런 넋두리가 되는 6·25 때보다 더 무서운 지옥같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설마’가 아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다. 이리 되어도 좋다면 미국과 속 편하게 등져도 괜찮겠지만 빈대 보기 싫다고 초가삼간을 불태울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부시의 독선이 역겨워 욕하고 속은 불편해도 수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미국과 아주 등질 수는 없는 것이다. 남쪽 국방력이 북쪽에 비해 80%정도 밖에 안되는 현실에서 SOFA 개선을 또 따질 때 따지더라도 미군더러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와대 밖에서의 ‘노무현’ 말은 비판자였으며 지금의 ‘친미 굴욕론’ 역시 비판자의 소리다. 그러나 책임과 비판은 그 성격이 판이하다. 청와대 안의 대통령 ‘노무현’은 비판자일수 없는 고독한 책임자인 것이다.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고 다짐한 취임 선서의 이행을 위해서는 능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이다. 대통령의 대미관 변화는 국가의 실익과 국민의 실리를 위해선 불가피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실용주의의 선택인 것이다. 그렇다고 진보성향의 ‘노무현’이 보수성향으로 변할 것으로는 절대로 믿기지 않는다. 다만 대미 관계에 친미도 반미도 아닌 용미를 위해서는 보수든 진보든 그런 개념을 뛰어 넘는 고뇌의 결단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대통령의 방미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충심으로 함께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경제에 미국의 눈치가 필요없고, 미국이 아니어도 안보가 걱정없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보다 더 소망스럽지 않은가 생각한다. 미국을 무시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라라고 해서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는 러시아나 중국 또는 프랑스 등이 아니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처럼 자생력이 강한 나라다. 이들 나라에 미국의 영향력이 먹혀들지 않는 것은 미국을 무시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인 것이다. 작은 나라이면서도 강한 이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친미, 반미를 탓하기 앞서 우리들 스스로가 앞가림을 잘해야 한다. 배알로 말하자면 ‘굴욕론’을 들먹이는 이들보다 ‘노무현’이 더 할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므로 달랐을 뿐인 것이다. 훗날 회고록을 쓴다면 “나는 그 때 철저한 연기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기술할 것으로 촌탁된다. 청와대측 듣기 좋아라고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듣기 싫은 소릴 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아리랑

아리랑은 겨레의 가락이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 교민 4세(世)인 어린이들도 난생 처음 듣는 아리랑 가락에 어깨춤을 들먹였을 만큼 우리들 심신에 용해된 유전적 가락이다. 아리랑이 노랫말의 앞소리 또는 사잇소리나 후렴으로 드는 아리랑 가락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많은 아리랑 가락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같은 전통민요 아리랑이 있고 경기아리랑 같은 신민요 아리랑이 있으며 또 아리랑맘보와 같은 가요아리랑 등이 있다. 아리랑 가락은 많지만 하나로 모아지는 맥의 공통점이 있다. 한(恨)과 흥(興)이다. 그리고 그 한은 좌절감이며 흥은 성취욕이다. 이처럼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익살로 노래한 것이 아리랑 가락이다. 그래서 모든 아리랑 가락은 흥 속에 한이 있고 한 속에 흥이 있다. 언제나 애소(哀訴)와 진취(進取)의 정서를 같이 하면서 그것을 해학으로 간접 표현한 것이 모든 아리랑 가락의 특성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신민요 아리랑의 효시로 꼽히는 경기아리랑의 노랫말이다. 비록 님이 당장은 토라져서 떠나 가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결국 돌아 올 것으로 보는 이유를 발 병으로 빗댄다. 이를 필연적 사실로 확신하는 데엔 충분한 정서적 공감의 이유가 있다. 모든 아리랑 가락에는 이같이 한과 흥이 어울린다. 그것은 겨레의 불행한 과거를 언제나 전화위복으로 새롭게 열어온 강인한 의지이기도 하다. 아리랑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가 되는 알영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고 밀양의 전설적 낭자인 아랑에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으나 설일 뿐이다. 다만 옛것을 돌아보아 정선아리랑의 기원이 고려시대가 배경인 것으로 미루어 아리랑 가락은 그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것 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한 건 아리랑 가락은 사회적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고루 불려왔다는 사실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 간의 모든 계층을 초월하여 구전·구승돼 온 것이 아리랑 가락이다. 이 때문에 아리랑 가락은 복합성과 다양성이 있다. 구전·구승돼온 가락에 그 때마다 민중의 새로운 정서가 실린 신사회적 변화의 강한 의지를 아리랑 가락에 담아온 것이다. 조선조말 대원군이 밀어붙인 경복궁 복원공사의 가렴주구에서 나온 ‘경복궁 아리랑타령’이 그러했으며,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이 간곤하게 항거한데서 나온 ‘독립군 아리랑’ 등이 그러한 예로 들 수가 있다. 아리랑이란 말이 언제부터 시작되고 또 그 어의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마는 아리랑처럼 우리들 가슴에 와 닿는 단어가 없다. ‘아리랑’은 노래 가락의 노랫말 중 어조사(語助辭)에 불과하고 또 ‘아리랑 고개’는 어디를 가도 그러한 이름의 고개는 실제로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아리랑은 백마디의 말보다 우리의 공감대를 짙게 하는 응집력을 지닌 겨레의 소리다. 아리랑 고개는 그 어디에든 없어도 겨레의 가슴마다 살아 숨쉬는 우리의 맥이다. 조상대대로 이어 우리들 핏속에 꿈틀대며 흐르는 겨레의 가락이기 때문인 것이다. ‘아리랑’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 이즈음의 세태가 이같은 심정을 더욱 간절하게 한다. 모두가 제 입장에서 제 좋을대로 안간힘을 다해 다툼을 일삼는 혼돈의 시대다. 말로써는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차라리 말일랑은 침묵하고 모두가 ‘아리랑’을 불러보면 어떨까. 가슴에 맺힌 한을 풀고 새로운 희망을 샘솟는 우리의 아리랑 가락을 다 함께 목청 높여 부르고 싶다. /임양은 주필

목요칼럼/골프장 땅 말고, 공장 땅을

참 이상하다. 정부의 갑작스런 웬 선심 아닌 선심 인지? 골프장 총면적을 임야면적의 3%에서 5%로 확대한다면서, 경기도내에 18홀짜리 40개소를 더 만들 수 있다고 생색내지만 가당치 않다. 수도권을 더 꽁꽁 묶어 규제하지 못해 안달인 비수도권에서도 군 말이 없다. 골프장은 좋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 세입이 는다고 한다. 많이 늘긴 하지만 달갑지 않다. 피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골프장 피해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지역사회의 골프장 존재는 멀쩡한 이를 충치로 썩혀 망가뜨리는 왕눈깔사탕과 같다. 기실 무서운 환경공해업체인 게 골프장이다. 경기도가 골프장 천국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천국이 아닌 반환경 지옥임을 뜻한다. 전국의 골프장 143개소 중 무려 58%인 83개소가 있다. 면적은 전국 골프장의 4천9백58만2천여평 가운데 59.8%에 해당하는 2천9백63만7천여평에 이른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배나 된다. 이미 많은 야산이 헐리고 깎여 곳곳의 산하가 몸살을 앓고 있다. 초맹독성 농약까지 마구 뿌려 주민생활을 위협하기도 한다. 여기에 40개소를 더 만들어 1천500만평 가량의 산을 더 깔아 뭉개면 또 어떻게 되나? 그나마 남은 좀 반반한 야산이 잇달아 작살나기 시작할 것이다. 참 해도 너무 한다. “인근 주민의 고용창출이 증대되고 소비활성화 등 경제효과가 크다”는 정부 발표는 마치 골프장 업체를 대변하는 것 같다. 당치않은 주민고용이란 무슨 얼어죽을 소린가. 벌면 서울로 보내기 바쁜 돈이 지역경제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중앙에서 지방에 공장부지 물량을 배급하는 희한한 공장총량제란 걸 시행하는 나라는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만 해도 지난해 공장을 짓지 못해 적체된 소요부지가 20만여평인 터에, 애걸복걸한 올 물량 요구의 110만여평 중 겨우 74%인 81만여평만 배정한 정부가 골프장은 무려 1천500만평을 더 지을 수 있도록 했으니, 무슨 이런 시책이 다 있는 것인지. 그렇다고 공장이 대개는 산업사회시대와 같은 노동집약형도 아니다. 굴뚝이 없는 지적집약형 첨단산업이 태반인데도 정부 처사는 이 모양이다. 공장을 더 짓는다 해서 인구가 몰려드는 것 또한 아니다. 예컨대 수도권 주말 교통에 혼잡을 주는 것은 서울이나 비수도권 등지서 몰려드는 골퍼 유동인구가 더 이유일 것이다. 이만이 아니다. 외자 유치를 위한 관광단지 조성을 위해 땅을 쓸 수 있게 해달라 해도 예의 수도권정비계획법을 들먹이며 못하게 했다. 비수도권 지역의 반발을 우려한 눈치놀음 때문이다. 그래서 그같은 외자들이 비수도권으로 간 것은 아니다. 기업하기 좋은 다른 동남아 등지로 샜다. 경제문제를 이토록 정치논리로 막는 것을 보면 경제문제는 어디까지나 시장논리로 풀겠다는 것도 헛말인성 싶다. 동남아 전초 기지인 수도권의 경제활동을 이렇게 빗장 채워놓고 어떻게 동북아 경제중심을 건설하겠다는 것인지 걱정된다. 청와대 어느 인사가 “골프는 사회의 여가 취미생활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 것으로 신문에 났다. 잘 모르겠다. 국민은 고사하고 도대체 공무원 중에도 필드에 한번 서면 10만원짜리 수표 서 너장쯤 없애야 하는 골프를 제돈 주고 칠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골프의 대중화란 자기네들 끼리의 대중화다. 골프 하는 것을 굳이 탓할 것 까진 없지만 번드레한 골퍼들의 승용차 행렬을 보는 무산대중이 박탈감을 갖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참 이상하다. 대통령이 골프를 치고 나니까 이튿날 골프장 면적 규제 완화가 발표된 것은 우연치고는 너무 기막힌 우연이다. 하지만 골프장이라고 하면 이미 있는 골프장도 넌더리가 난다. 뚱단지도 유분수지, 무슨 골프장 땅을 더 준다는 것인가. 제발 골프장 땅일랑은 가져가고 대신 공장 지을 땅을 달라. 국가경제의 중추인 우리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골프장이 아니고 공장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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