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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에 오른다. 한 낮의 찜통 더위를 피해 아침녘에 출발한다. 솔 잎 사이사이를 뚫고 비치는 아침 햇살이 숲 속의 조명처럼 번진다. 수 많은 등산객들이 지나다닌 길이라 등산로 대부분이 빤빤하다. 광교산은 수원시와 의왕시, 용인시 등과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서, 수원에는 북쪽에서 부는 찬 바람을 막아주며 수원시를 감싸 안고 있는 수원의 주산(主山)이다. 이런 광교산과 관련된 유래와 고마움을 생각하며 능선의 등산로를 조금 걷다 보니, 숲 속 모든 자연의 소리를 뒤덮는 쇳소리가 별안간 귓전을 때린다. 이 굉음의 진원을 따져보니 광교산 남단을 가로지르는 신갈-안산간 고속도로 질주 차량의 소음이다. 이 고통스런 등산길 소음은 한참동안이나 내 머리속을 멍하게 만들었다. 주말이면 수원시민 뿐아니라 많은 경기 남부권 시민들이 광교산을 즐겨 찾는다. 가까운 곳에 별다른 녹색의 휴식 공간을 갖지 못한 시민들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옴살스런 휴식처가 심각한 중병에 빠져 있다. 형제봉 정상에서 밑으로 내려다보는 광교산에 대한 감회가 몹시 서글프다. 수원 방향은 저 멀리 광교 저수지 아래까지 녹지가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는 반면, 용인 방향은 골짜기 마다 빼곡이 채워져 올라오는 아파트 숲과 제법 규모가 큰 음식점들이 보는 이의 숨을 탁 막는다. 광교산의 3분의 1이상이 벌써 절단났다. 용인서북부 지역 상현·성복·신봉·수지·동천지구 등 광교산 동쪽 밑자락은 중턱까지 빼곡한 아파트 숲이다. 그런데도 최근 광교산 더 안 쪽으로 신봉지구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이 삽질을 준비 중이란다. 또한 광교산 동남쪽 위치의 이의동 개발 계획이 마지막 조율중이다. 중앙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도 이의동 개발시 광교산 녹지축만은 절대 보존하라는 전제가 있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조화를 꾀하게 될는지 적이 걱정이다. 여기에 광교산 동쪽 중턱 전체를 치고 나갈 영덕~양재간 고속도로 건설사업이 그 노선안을 확정하고 올해 안에 착공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원 계획 노선은 광교산 중턱까지 그렇게 많이 훼손하지 않았는데 힘 깨나 있는 기관들과 각계 이해집단의 압력에 밀려 아무 말없는 광교산만 더욱 절단나는 꼴이다. 이 고속도로는 용인 수지에서 판교까지의 신도시, 그리고 화성 동탄 신도시 건설 등에 따른 경기 남북축 교통난 해소 차원에서 계획되었다. 그러나 한편 이 고속도로는 현재 교통 한계 상황으로 인해 그나마 더 이상의 개발이 억제 되었던 광교산 동측의 용인 신봉지구, 수지지구, 동천지구 등에 대규모 택지개발의 물꼬를 터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몇 해전 광교산 생태계 조사에 나선 적이 있다. 애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종의 희귀 동식물들과 보호종 들이 발견되었다. 천연기념물인 붉은배새매, 소쩍새, 원앙새 등의 조류와 호랑버들, 가는 장구채, 노랑갈퀴 등 6종의 특산 물종들과 산림청 지정 희귀 식물인 낙지다리도 확인되었다. 광교산은 말이 없다. 아니 저 깊은 바닥 밑으로 무거운 신음을 토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광교산 능선길에서 오늘 나는 그 소리없는 아우성을 듣는다. 광교산을 살려내자. /염태영 수원환경운동센터 대표
우리 나라 대중목욕의 전통은 신라시대부터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집 밖에서 한 목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국내기록으로 동천과 북천에서 각각 목욕했다는 신라시조 박혁거세와 왕비 알영의 이야기를 꼽는다. 신라시대 땐 대형 공중목욕탕이 절에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고구려에서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사천왕 17년(286년)에 왕의 동생들이 온탕에 가서 무리들과 어울려 유락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인들은 목욕을 더 자주해 중국 송나라 문신 서긍이 고려에서 보고 들은 일을 기록한 ‘고려도경’에 ‘고려인들이 하루에 서너차례 어울려 목욕을 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조선시대에에 계곡과 냇가에서 노출을 꺼리는 생활관습 때문에 남녀 모두 옷을 입은 채 신체의 일부분을 씻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등에 나타나 있다. 1910년 이후 선교사들이 드나들면서 욕실을 부대시설로 갖춘 호텔과 여관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대중목욕탕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근대적 형태의 대중목욕탕은 1924년 평양에서 첫선을 보였고 행정관청인 부(府)에서 직접 관리를 맡았다. 서울에서는 1925년에 첫 대중목욕탕이 문을 열었고 1945년 이후 사설 대중목욕탕이 급속히 보급됐다. 2001년엔 1만98개로 최고에 달했지만 대형 사우나 찜질방이 급증하면서 대중목욕탕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목욕탕이 욕탕 중심에서 한증실 중심으로 바뀐 데다 아파트가 늘어나 굳이 목욕탕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고유가와 업소간 가격경쟁이 치열한 데다 비수기까지 겹쳐 동네 목욕탕이 고사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설이나 추석 전날이면 연례행사처럼 대중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벗기던 옛날이 그리워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은행들이 ‘돈 안 되는’ 서민고객을 외면하는 현상이 갈수록 극심해진다. 작년부터 이어진 경기위축 속에 시중 은행들이 적극적인 부실관리를 통한 수익성 극대화에 주력하면서 부터다. 그러나 고객 신용도에 따라 금리 차별을 최대화하는 영업전략에 주력하면서 서민들의 금융기관 이용을 갈수록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무리 이윤을 추구하는 은행이라 할 지라도 공익차원에서 사회적인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익을 내야 하는 은행으로서 어쩔 수 없는 경영 판단이라는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금리 상황 속에서도 경제여건이 어려운 서민들이 오히려 더 높은 금리를 지불하는 ‘금리 역선택 현상’을 심화시킬 우려가 너무 크다. 일례를 들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은행 대출 상품인 500만원 이하 소액 신용대출 잔액이 대부분 은행에서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점이다. 그만큼 서민들의 은행돈 이용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은행의 경우 6월말 현재 500만원 이하 소액 신용 대출 잔액은 4조8천465억원으로 전년 동기(5조369억원)보다 1천904억원 줄었다. 국민은행의 500만원 이하 소액 신용대출은 작년 말 4조9천253억원으로 줄어든 이래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작년 6월 말 현재 8천50억원이었던 조흥은행의 500만원 이하 소액 신용대출 잔액은 작년 말 7천600억원으로 줄어든 데 이어 올 6월 말에는 7천284억원으로 줄었다. 시중은행들은 올 하반기(7~12월) 고객의 소득 등 신용도에 따라 금리 차별을 가속화하고 있어 서민들의 은행 이용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미 국민은행이 지난 달 22일부터 신용도가 낮은 고객들에 대한 신용대출 금리를 최대 0.75% 포인트 올렸으며 조흥은행 역시 9월부터 0.5% 포인트 가산금리를 올려 적용키로 했다. 이렇게 서민고객이 계속 찬밥 대우를 받는 운영이 계속돼서는 안된다. 서민금융 지원을 오히려 예전보다 활성화 해 ‘저금리 시대의 과실’이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인 배려가 있기를 바란다.
경기도가 아차산 등 도내 60개소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보존 및 활용대책에 나선 것은 적절하다. 양주·연천·구리·파주·의정부 등에 산재한 고구려 유적을 체계적 관리와 역사적 고찰 등을 통해 ‘역사정보마당’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오는 2008년까지 구리시에 ‘고구려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중앙정부의 관심이 촉구되는 문제 제기의 지속적 사업이 추진된다. 도내의 고구려 유적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것은 유적이 비교적 미약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고구려 땅으로 속했던 기간이 길지않은 데도 연유가 있다. 그러나 유적은 많다. 한강 쟁탈이 삼국의 주도권 다툼에 요지가 됐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은 광개토대왕의 북방정책 이후, 5세기 후반 장수왕시대 들어 두드러졌다.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보는 역사 왜곡은 결국 중국 땅이 경기도까지 뻗친 것이라는 게 전제가 돼야 하지만 이는 성립될 수 없는 허구다. 동일 민족의 삼국 중 고구려만이 중국의 주권에 속했다는 것은 인류문화사로 보아도 심히 당치 않다. 돌아보면 우리의 역사는 너무 많은 외부 왜곡의 상처를 입고 있다. 조선조 사색 당쟁은 오늘날의 정당정치다. 이를 하릴없는 당파 싸움으로 비하한 것은 일제 침략기 조선 역사와 만주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만든 ‘만선(滿鮮)연구소’가 지어낸 식민지사관이다. 이젠 중국이 사회과학원을 앞세운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중국은 일찍이 한반도와의 국경선으로 백두산까지 절반이나 북으로부터 가져갔다. 장차 한반도가 통일되면 또 어떤 영토 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고구려사 왜곡은 이런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경기도의 고구려 유적 사업은 중앙정부와 학계의 중국에 대한 역사왜곡 시정 촉구와 병행하는 실로 깊은 의미를 갖는다. 이러므로 단순히 유적지 정비에 그쳐서는 안된다. 도내 고구려 유적을 상호 연계하는 역사문화의 이론을 개발하여 정립해야 한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관한 한국사 연구라고 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유적 탐사의 정밀지표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정확한 계획수립에 따른 소요 예산을 도는 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도내 대학과 경기문화재단 경기박물관 기전문화재연구원 등을 조직화한 책임있는 연구체제 구축도 신중히 검토하여야 한다.
손학규 경기지사가 지난 16일 부랴부랴 경기도내에 있는 60여개의 고구려 문화유적에 대한 재조명과 보전책을 지시했다.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 논란이 한창 가열되고 있는 마당에 이루어진 이같은 조치는 때늦은 감이 있으나 그래도 과즉물탄개(過卽勿憚改·잘못을 하면 곧 고친다)의 자세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 문제를 놓고 대처방법이 미흡하니, 현장방문을 따로하니,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언급이 없었니, 중국에 항의를 하니 등 옥신각신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갖고 있는 것만이라도 재조명하고 지켜보겠다는 손 지사의 의지는 그나마 가시적인 대책이라는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의 실태를 바라볼 때 참담함을 버릴 수는 없다. 최근에 이 문제를 다룬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지켜보자니 중국은 마치 고구려의 역사 왜곡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를 해 온듯 관련자료가 빼곡하게 수집된 반면 우리네 자료는 그저 역사학자들이 근근이 모아온 장서와 일부 도서관에 ‘고구려’라는 이름이 삽입된 고전 몇가지가 전부라는데서 과연 우리에게 역사의식이 있는지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외국 학생들의 교과서에 한국의 역사와 소개내용이 왜곡돼 기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권하에서 이와 관련된 수정노력이 극히 미비했고 현 정권하에서도 이를 바로잡기위해 정신문화연구원에 조사를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성원이 모두 임시직(상황에 따라 정부의 예산지원이 들쭉날쭉해 정규직 고용이 어렵다고 함)으로 구성돼 장기적인 조사 및 수정작업이 어렵다는 소식은 과연 이 나라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은 무엇인지 비애감마저 인다. 이러면서 세간에는 고조선의 역사까지 왜곡될 것이라는 뜬금없는 소문까지 나돈다. 고조선의 역사자료와 관련, 한국정부가 소장한 것은 50년분이요, 북한은 150년, 중국은 500년 분이라는 것이다. 즉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고구려에 이어 고조선 역사까지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 이같은 역사왜곡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일본과의 독도분쟁 및 동해 표기 등도 그렇고, 미국의 일부 교과서에 기술돼 있다는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를 통해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부분도 그렇다. 또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한국을 농업국이자 주 생산품이 흑백TV라고 기술하고 있다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답답한 노릇이다.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보여주기식 중국대사관을 통한 항의와 문제의식에 대한 논쟁만을 벌일뿐 정확하고 장기적인 개선·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일본은 패전이후, 자신들의 역사가 외국에 제대로 알려질 수 있도록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보완·개선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고 한다. 비록 ‘먼나라, 가까운 이웃’이지만 배워야 한다. 경기도도 이 기회에 시대상황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역사 재조명이 아니라 어느 누가 도지사가 되든 우리가 갖고 있는 역사만큼은 영원히 후손들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백년대계(百年大計)아니, 이 나라가 존재하는 한 영원대계(永遠大計)로 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늦었다고 깨우칠 때가 가장 빠른 때다’는 격언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정일형 정치부장
8월 17일~28일까지 ‘수원화성국제연극제’가 열린다. 정조가 백성을 위하여 위민정책(爲民政策)과 통합정책(統合政策)을 펼친 문예부흥의 군주라는 사실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특히 그가 어떤 사상의 소유자이며, 자신의 개혁 사상을 어떻게 관철하고자 하였는지 살펴보자. 21세기를 개척하고 통일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찾아야 할 지금 정조의 위민정책과 통합정책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조의 위민정책은 크게 7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인사정책은 ‘의리의 탕평책(蕩平策)’이다. 붕당의 명분과 개인의 명예를 존중해 줄때 비로소 지식인계층의 국정참여가 가능해진다. 소수의 독점계층이 주요 권력기구를 장악하지 못하게 하였다. 둘째, 경제정책은 특권타파를 추구하여 난전 활성화정책(亂廛活性化政策)을 폈다. 비단·무명·명주·종이·모시·어물을 팔던 육주비전(六注比廛)의 상품이 아닌것도 자율화와 개방화를 허용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서로 통하게(通共)하여 백성들을 부유하게 만들려는 조치다. 셋째, 사법정책은 형률완화정책으로 흠휼전칙(欽恤典則)을 추진한다. 형벌의 남용을 막고 악형에 의한 백성들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줄여주고자 한 것이다. 옥리에게 명하여 5일에 한번씩 감옥을 점검, 청소하고 형구를 세척하게 했다. 넷째, 종교정책은 포용정책을 펼친다. 정조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은 다양한 정치세력이 형성되었다. 실학뿐만 아니라 양명학·도교·불교·서학 등 ‘이단적’ 사유체제에 대해 개방성을 보인다. 이는 실효성을 강조한 정치관에 뿌리를 둔다. 다섯째, 복지정책은 자휼전칙(字恤典則)에 근본한 아동구휼정책이다. 흉년을 당하여 10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버림받아 굶주리면 부모나 친척 등 의지할 곳을 찾을 때까지 구휼하였다. 여섯째, 인권정책으로 평등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서얼허통정책(庶孼許通政策)과 노비제도개혁을 펼친다. 단지 서자와 노비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적·사회적 활동에 배척당하는 현실을 혁파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정책이다. 중국에서 최고의 문화대국이라고 생각해온 명나라가 오랑캐로 여기던 청나라에 의해 멸망당한 대격변기이다. 사상적·문화적으로 중국보다 건강한 성리학 체제를 건설하자는 조선중화주의를 제기하였다. 역사학자 E.H.카아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우리는 과연 정조의 위민정책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송기출 수원청소년문화센터 관장
30대에 경제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렵사리 조그마한 사무실을 하나 개설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일에 고객 유치를 생각하다 현수막을 건물 외벽에 걸었다. 정확한 크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로, 세로 각각 1m도 되지않았다. 한데 반나절도 되지않아 광고법 위반이라고 철거를 당했다. 현수막이라도 달라고 했더니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현수막 끄트머리를 붙잡았더니 공무집행방해가 뭔지 아느냐고 해서 겁이 나 놓아버렸다.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법을 알아보았더니 불법이 맞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그런데 웃기는 일은 그 다음부터다. 내가 있는 바로 옆 건물(범계역 주변의 무역센터)은 지난 7월부터 대낮에 내 현수막의 몇십 배가 되는 대형현수막(핸드폰가게)을 걸었다. 그래서 구청에 4번씩이나 민원을 넣었지만 왜 시비를 거느냐는 식이었다. 다시 시청에 민원을 제기했더니 바로 해결이 되었다. 그 기간이 무려 일주일이 걸렸다. 또 다시 우스운 일이 생겼다. 현수막을 이틀 뒤인 8월 7일 토요일 오후부터 다시 달기 시작 한 것이었다. 그것도 기존현수막에 더 큰 것을 하나 더해서 두개 씩이나 달았다. 월요일날 구청에 전화를 했다. 담당자가 벌써 알고있다면서 짜증을 내며 단속할테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철거를 하지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다시 전화를 해 왜 형평에 어긋나게 나만 단속하며 괴롭혔냐고, 정말 울면서 하소연했다. 그제서야 철거를 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8월 14일 또 걸려있는 현수막을 본 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떻게 공권력이 시민을 차별하는지. 내 현수막은 압수했는데 왜 이곳 현수막은 압수하지않고 매주 내걸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 법을 지키며 열심히 살면서 세금 충실히 내는 소시민은 억울함을 당해야 하는 게 이 사회라면 누가 법을 지키며 살겠는가. 공권력까지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에 시민들은 분노한다./인터넷독자
지난 주말에 잠시 짬을 내 강릉에 다녀올 일이 있어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였다. 막바지 동해안으로 가는 휴가차량들로 인해 고속도로와 주변도로가 많이 붐볐다. 그러나 교통정보를 알아보면서 우회도로도 이용하니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역시 교통정보나 우회도로 정보를 알아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이용차량들도 교통질서를 잘 지켜 심한 교통정체는 발생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아직도 고속도로에서의 추월차로 주행방법을 모르는 차량이 많아 정체 현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다. 고속도로는 일반도로와는 달리 편도 2차로의 경우 1차로는 추월차로로써 추월할 때만 이용해야 한다. 따라서 추월을 하고 나면 바로 2차로, 즉 주행차로로 운행해야 한다. 또한 편도 4차로의 경우 2차로는 승용·승합자동차 및 1.5t 이하 화물차가 주행하는 차로이고 추월할 때는 1차로를 이용하면 된다. 3차로는 대형승합자동차 및 1.5t 초과 화물차가 주행하는 차로이고 이들 차량이 추월할때는 2차로로 하면 된다. 이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주말이나 요즘 같은 휴가철이면 고속도로도 크게 붐빈다. 더욱이 초보 운전자나 운행법규를 잘 모르는 운전자도 많이 고속도로를 운행하게 된다. 고속도로는 고속으로 운행하게 만들어진 도로인 만큼 조그마한 교통법규도 철저히 준수하는 운전만이 원활한 소통과 안전운행을 보장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황규관 도로공사 중부지역본부 과장
홍종운 농진청 농업기술상담위원 산소배출·공기정화 때론 쉼터주는 ‘굴뚝없는 공장’ 올 여름은 참 더웠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낮에는 아직도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는다. 밤에까지도 더위가 계속된다. 사람들이 입을 열면 “아이 더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이들일수록 더 그런다. 이런 더운 날, 햇빛이 쏟아지는 들판을 바라보자. 벼가 빽빽하게 들어선 논을 바라보자.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여름날의 논은 커다란 공장이다. 굴뚝 없는 큰 공장이다. 사실은 굴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작은 굴뚝들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그 굴뚝에서 나오는 것은 보통 공장들의 굴뚝에서 나오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보통 공장의 굴뚝들에서는 탄산가스와 황산가스, 질산가스, 탄소입자 같은 것들처럼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나오지만, 벼 잎에 달린 무수히 많은 굴뚝들에서는 산소, 즉 사람을 포함한 많은 생물들 숨을 쉬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산소가 나온다. 보통 공장의 굴뚝들에서 나오는 것은 공기를 더럽힘에 반해 살아 있는 벼 잎에서 나오는 것은 더럽혀진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더운 날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 잎이 하는 일은 공기에 소중한 산소를 내보내는 일만이 아니다. 살아 있는 벼 잎은 공기에 들어 있는 탄산가스를 빨아들여 사람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생물들에 꼭 필요한 에너지가 들어 있는 탄수화물을 만든다. 즉 더운 날 살아 있는 벼 잎은 공기에 너무 많으면 해로울 수 있는 탄산가스를 빨아들여 공기를 신선하게 만드는 산소를 내보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을 하기 위해 벼 잎은 무슨 건물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무슨 연료 같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또 사람이 줄곧 곁에 서서 무슨 일을 거들어 줄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벼 잎이 제 일을 하는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햇빛과 섭씨 25도~30도 정도의 온도와 물과 벼를 쓰러지지 않게 잡아주고 벼에 필요한 양분을 공급해줄 수 있는 흙이 있으면 되고 잡초와 해충과 병을 막는 일을 해주면 된다. 살아 있는 벼 잎이 공기로부터 탄산가스를 빨아들여 물과 작용시켜 탄수화물을 만들면서 산소를 공기로 내보내는 작용을 광합성(光合成) 또는 탄소동화작용(炭素同化作用)이라고 한다. 왜 똑같은 작용을 광합성이라고 또는 탄소동화작용이라고 다르게 부를까? 벼 잎에서 탄산가스와 물로부터 탄수화물이 만들어질 때 태양의 에너지가 탄수화물 속에 저장되는 면을 강조할 때에는 광합성이란 말을 쓰고, 공기 중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탄산가스를 쉽게 움직일 수 없는 탄수화물로 만들어 식물의 한 부분이 되게 한다는 면을 강조할 때에는 탄소동화작용이라는 말을 쓴다. 광합성이라고 부르든, 탄소동화작용이라고 부르든 더운 여름날 논에 자라고 있는 벼 잎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놀랍고도 중요한 일이다. 그 일이 일어남으로써 우리는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고, 또 여러 공장의 굴뚝들에서, 수많은 자동차, 기차, 비행기, 선박(船泊)들에서 많은 양의 탄산가스가 쉬지 않고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공기 중의 탄산가스가 증가하지도 않고 산소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논에 있는 벼만 이런 중요한 일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100만 정보(町步: 1 정보는 3000 평)의 논에서 일어나고 있을 이 중요한 일에 대해 생각하며 잠시 더위의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 더운 날 들에서 땀을 흘리며 일할 농사지으시는 분들의 노고도 생각해본다면 덥다고 호들갑을 떠는 일이 부끄러워지기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