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해제 및 주택건설지구 지정을 건교부 장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법률이 있다. 이른바 ‘국민임대주택 건설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다. 지난달 1일부터 발효됐다. 지방자치행정을 말살해대듯 하는 이 법률 바람에 수도권 그린벨트 820만평이 또 해제의 위기에 처했다. 건교부는 정책혼선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환경영향평가 등 사업 명세는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4·5등급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보존가치가 없는 지역이라는 자의적 주장이 고작이다. 수원 호매실·고양 삼송·남양주 별내·시흥 장현 목감·의정부 민락·양주 마전·성남 여수·구리 갈매·군포 당동2·부천 범박·안산 상록·안양 관양·의왕 오전 포일2 등 도내 13개 시 15개 지구의 그린벨트 지역에 일반 아파트와 임대아파트를 반반으로 하는 14만6천가구 분의 국민임대주택 건설절차가 추진중이다. 다음달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구지정이 확정되면 주택건설이 본격화 된다. 그린벨트는 벌써 형해화하였으나 이마저 이런식으로 잠식해가면 난개발이 더욱 유발된다. 자치단체의 도시계획이 심히 훼손당한다. 지역실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치단체와는 협의 한마디 없이 중앙정부의 책상머리 선 긋기로 그린벨트가 마구 난도질 당하고 있는 것이다. 실정이 이래도 자치단체에선 어쩔 수가 없다. 시장·군수회의에서 반대입장을 정해 전하는 등 뭐라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주택건설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이렇게 되어 있다. 명색이 지방분권을 한다는 이 정부에서 군사정부 시절에도 없는 행정독재의 중앙횡포가 자행되고 있다. 건교부는 되레 자치단체가 해야할 주택사업을 대신해 준다며 말도 안되는 생색을 내고 있으나 당치 않다. 저소득층 주택사업은 외딴 곳에 집만 덜렁 지어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저소득층일 수록이 생계수단이 도심과 연관이 깊다. 건교부가 추진하는 국민임대주택사업은 저소득층에게 실질 이익이 돌아가기 보다는 머지않아 도시슬럼화 현상의 흉물로 전락할 공산이 높다. 문제의 ‘국민주택건설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법리면에서나 사실면에서나 이토록 의문이 많은 법률이다. 헌법재판소에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청구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한글학회·국어문화운동 등이 국민은행과 KT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기업이미지 통합 과정에서 한글 제호를 버리고 ‘KB ×b’ ‘KT’ 등의 영문 제호를 택해 간판 등에 한글을 병기하지 않은 것은 옥외 광고물 등 관리법 위반”이라고 판결한 것은 타당하다. 이는 외국어 간판을 일일이 단속하지 않고 있는 일부 지자체 관행에 법원이 일침을 놓은 것이어서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재판부가 또 “현대사회에서 모국어의 중요성만 강조하는 것은 국제관계 고립을 초래하는 편협한 태도일 수도 있지만 공동체의 공용어를 지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무게를 더해 준다. 비록 시대의 변천이라고는 하지만 근년에 들어 선경, 금성 등 우리 귀에 익었던 기업이름들이 사라지고 SK, LG 등이 나타난 것은 정체성의 위기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물론 세계적인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 있는 삼성, 현대 등이 원래의 이름을 쓰고 있어 매우 다행스럽지만 그 반면에 수 많은 기업들이 국제화를 내세워 기업이름을 외국어로만 개명하는 일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대기업의 경우 상대가 우리 나라 소비자만이 아니고 여러 외국인 점에서 문제가 단순치는 않다. 여러 나라 사람이 두루 기억하기 쉽고 발음하기도 쉬운 이름이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를 상대로 한다고 한국이라는 특징을 숨기고 감추는 식으로 기업이름을 바꾸는 것이 과연 옳은 지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 세계 제2의 경제대국답게 세계적인 기업을 여럿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쓰비시, 토요타, 히타치, 마쓰시타, 닛산, 혼다 등 어느 것이든 일본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 것이 없다. 그 이름만으로도 일본 기업임을 세계인은 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알리안츠, 지멘스, 다임러크라이슬러, 폴크스바겐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 이름 역시 독일어 느낌을 풍김으로써 독일 기업임을 보여 준다. 세계화 시대일수록 각 나라, 각 민족의 정체성이 더욱 강조돼야 하는 것이다. 세계 속에서 한국의 비중이 커지고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한국은 제 색깔을 또렷이 드러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세계화 시대임을 이유로 특징 없는 이름으로 마구 바꾸는 것을 자제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2004 만해축전’ 전국고교생 백일장에서 최고상 대통령상은 ‘칼’이라는 산문을 쓴 여고생이 차지했다. 도장쟁이 아버지가 도장을 팔 때 사용하는 ‘칼’을 감동있게 그렸다. 아버지의 손에 수 많은 상처를 입힌 ‘칼’을 여고생이 낭독할 때 물소리, 바람소리 들려오는 야외 시상식장이 숙연해졌다. 12일 만해축전 행사 중 하나인 제8회 만해대상 시상식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제8회 만해대상은 소설가 황석영(문학부문), 데이비드 매켄미 하버드대 교수(학술), 임권택 영화감독(예술), 법타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장(실천)이 상을 수상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에게 주어진 평화부문 대상은 시드니 바파나 쿠베카 주한 남아공 대사가 대신 받았다. 전국고교생 백일장 시상 후 실내악단의 생음악을 배경으로 시와 음악의 밤이 이어졌다. 신세훈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비롯한 시인들이 자작시를 낭송하였다. 이근배 만해마을 시인학교장은 서정주의 詩와 김기림의 수필 등을 유장한 목소리로 암송, 감동을 주었다. 이날 밤 주최측은 함지박에 찐감자와 옥수수를 가득 담아 들고 다니며 관람자들에게 일일이 나눠주어 강원도의 인심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내설악의 푸른 숲이 뻗어 내린 십이선녀탕 계곡에 자리 잡은 백담사 만해마을에선 8월 2일부터 15일까지 참으로 많은 문화예술행사가 펼쳐졌다. 시조문학 심포지엄·만해선사 서거 60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현대시 심포지엄(1)·만해축전 학생 사생대회·시인학교 입교식·만해축전 입재식·해곡 노태증 서예초대전·일오점등의 밤·비교문학 심포지엄·‘님의 침묵’ 서예대전 개막식 및 시화전·대동축구대회·전국고교생 백일장·2004 통일시전·현대시 심포지엄(2)·만해를 주제로 한 시서화전·한국문학 심포지엄·불교문학심포지엄·물현금의 밤·광복절 기념식·학생 씨름대회·시인학교 수료식·만해축전 회향식·만해 선사 열반 60주년 기념 특별공연 등이 연이어 개최됐다. 이 가운데 한국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는 ‘현대시와 선시의 경계’를 통해 ‘현대시와 불교의 영향’, ‘시인들은 해탈하려 하는가’, ‘현대시와 선시(禪詩)의 관계’, ‘ 禪과 현대시의 만남과 그 난제’를 집중 조명했고, 한국문인협회는 ‘만해사상과 통일문학’에서 ‘만해 선사의 일대시교(一代時敎)’, ‘한용운의 실천과 사상과 禪과 문학’, ‘만해의 민족정신과 통일문학’을 전망했다. 만해(萬海·卍海) 한용운(韓龍雲)! 그는 진정 누구인가. 만해 선사(禪師)는 불교사상사, 민족운동사, 문학예술사에 걸쳐서 위대한 공적을 남긴 우리 나라 근대사상 최대 인물의 한 사람이다.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박철마을에서 태어난 선사는 향리에서 한학을 수학한 후 백담사(百潭寺)에서 출가하여 김연곡 스님으로부터 법호 卍海와 법명 龍雲을 받아 승려생활을 시작하였다. 선사는 명저 <불교유신론> <불교대전> 등을 통하여 이 땅의 불교를 근대화하는 데 진력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에는 불교계 대표로 33인에 참여하여 ‘공약삼장’을 기초하고, ‘조선독립의 서’를 집필하는 등 민족운동의 횃불을 높이 치켜 들었다. 또한 선사는 1925년 백담사에서 시집 <님의 침묵>을 써서 생명사상, 사랑의 철학을 겨레의 가슴에 심어 주었다. 1944년 6월 29일 서울 성북동 심우장 냉돌 위에서 끝내 지조를 지키며 순국하기까지 선구한 자유사상, 평등사상, 민족사상, 민중사상, 진보사상, 통일사상, 평화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중한 민족사적 덕목으로 칭송된다. 한 사람의 생애가 이렇게 다방면으로 연구되고 논의된 일은 일찍이 없었다. “세상 밖에 천당이 따로 없고(世外天堂少) / 인간에게는 지옥도 많은 법(人間地獄多) / 백척간두에서 서 있기만 할 뿐(佇立竿頭勢) / 왜 한걸음 내딛지는 않은가(不進一步何)” “먹구름 걷히고 나니 외로운 달 드러나고(鳥雲散盡孤月橫) / 찬 달빛은 먼 나무까지 뚜렷하게 비추네(遠樹寒光歷歷生) / 학 날아간 빈 산에는 지금 꿈마저 없는데(空山鶴去今無夢) / 깊은 밤 누군가 잔설 밟으며 가는 소리(殘雪人歸夜有聲)” 일제의 식민지배로 우리 민족 전체가 고통에 빠져 있을 때 이 게송(偈頌)을 지은 만해 선사가 백담사에서 “아아, 임은 갔지마는 나는 임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하고 절규한 ‘임’은 정말 누구인가! 조국인가. 연인인가. 만해마을 계곡에서 곡주(穀酒)를 마시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으나 ‘임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만해마을의 밤은 점점 깊어 갔다. 백담사의 새벽이 오고 있었다. /임병호 논설위원
근간에 계속되는 사건과 소식들을 듣다보면 종합병원의 응급실이 생각난다. 물론 응급실이나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급박한 상황의 전개나 다양한 사연들로 항상 긴박감을 잃지않기 때문에 소설이나 ‘ER(응급실)’, ‘종합병원’ 등 TV극의 소재가 된다. 응급실(실제 응급실과 조금은 다르지만)을 상상해 보자. 한쪽에선 교통사고로 난리법석이 나고 또 한쪽은 응급수술실로 뛰어 들어가는 무리가 있고, 다른 한 구석에서는 사망자의 유가족들이 슬픔으로 펑펑 울고, 그 옆은 무사히 위기를 넘겨 함박웃음으로 기뻐하는 가운데 직원들과의 마찰이나 협조가 있고 환자와 의료인들 사이의 갈등도 있다. 때로는 그들 사이에 사랑도 피어나고…. 어쨌든 각양각색의 사건들로 점철되는 응급실 분위기와 우리나라의 현재 분위기는 일단 어수선하다는 것에서 흡사한 게 많다. 주가는 떨어지고 실업자도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경기가 곤두박질하는 사이 행정수도를 옮기네 마네, 경기부양을 위해 세금을 깎아야 하네, 공공사업을 늘려야하네 야단이다. 또 여야는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고, 우리근로자가 납치돼 처형을 당했는데 우리 정보기관과 외교기관은 뭘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고, 세계 유수의 경제평가기관은 한국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가운데 유가는 연일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자금이 필요한 국민과 중소기업에 요긴한 자금을 지원해야할 금융기관이나 국가경쟁력을 키워야 할 대기업은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 부실 금융만 잔뜩 만들어 급기야는 쫄딱 망해 실업자나 대량 생산하고, 국민 상당수가 경기가 너무나 어려워 너도 나도 못살겠다 하는 판국에 이 나라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느 것부터 응급조치를 취해야 할지, 차라리 아비규환에 가깝다. 그나마 ‘응급실’은 바쁜 와중에 나름대로의 체계와 질서가 있고 대체적으로 급한 질병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성질 급하기로 소문난 우리지만 차분히 정리를 해야 한다.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와 사회도 그 나름대로의 정리가 필요하다. 정부도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잘 보이려 하는 舊정부의 악습에서 벗어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솔한 노력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기업이건 금융이건 혹은 일반인이건 간에 근원을 해결하지 않는 전시 행정의 결과로 지금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그 짓을 또다시 되풀이 할 수는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선현들의 말씀이 새삼 솔깃해지는 건 지금의 이 난국을 예견한 지혜로움이 아닐까. /김용 이천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인민재판(人民裁判)은 재판관이나 배심원 등 일정한 자격을 갖춘 전문인(專門人)이 아닌 일반 대중들이 배심원이 돼 재판을 하는 것을 말한다. 미미한 사회적 규범을 어기거나 마을 공동체 등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주민들이 일정한 제재를 가하는 것도 일종의 인민재판의 성격으로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인민재판은 이념이나 사회적인 분위기를 이용,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일종의 희생양을 찾는 방법으로 유럽에서 진행됐던 ‘마녀사냥’도 인민재판의 한 형태다. 최근 수원의 한 사립학교에서 교사들이 동료교사를 해임하기 위한 투표를 진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학교법인이 바뀌고 새로운 교장이 부임한 뒤 기존에 학교를 핵심적으로 이끌어 오던 교감을 비롯, 3명의 부장교사가 대상이 됐다. 내부혼란을 겪었던 이 학교의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았던 교사들로서 학교를 안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교사들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과반수가 조금 넘는 찬성이었고, 교사들은 징계위에 회부됐다. 누가봐도 이번 투표는 새롭게 학교를 맡은 법인이 학교를 장악하기 위한 과정으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투표가 끝난 뒤 해당교사들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병원을 찾거나 안정제를 복용하는 등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동료교사들로부터 이같은 평가를 받은 교사들의 심정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렇다고 찬성표를 던졌던 교사들도 편할리 없다. 이 학교의 문제는 부분 해결되고 있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교사들은 서로간에 반목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 학교가 사회로부터 주목을 받는 이유는 모든 문제가 학교법인이나 교사에 국한하지 않고 곧바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있다. 수원 S교의 교사에 의한 교사해임에 대한 찬반투표는 법인이나 교사, 학생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최종식기자 jschoi@kgib.co.kr
우리 정부가 중국 당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으나 여러 가지 변명까지 늘어놓으며 거부함에 따라 정치권과 학계·시민단체 등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고구려사 장악’이 우리의 역사와 민족 정체성 왜곡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를 방관하면, 중국의 역사 왜곡은 더 심화되고, 결국에는 기정사실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오래전부터 “고구려사의 중요한 역사 현장을 계승했다”며 ‘역사적 정통성’을 내세워온 북한은 과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북한이 최근 언론 매체를 통해 “새로운 고구려 유적을 발굴했다”고 보도는 하고 있지만, 중국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물론 북한이 중국과의 현실적 이해관계 때문에 어려운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북한은 ‘주체의 나라’를 자부하고 있지 않은가. ‘주체’는 자신의 민족적·역사적 정통성과 정체성을 분명히 세우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 아닌가? 남북한 모두가 민족의식을 되찾고 통일의 당위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동 대응해야 한다. /인터넷독자
이원희 한경대 교수 정책전환 부작용 자치구의회서 해결노력 바람직 최근 몇몇 경기도의 시와 서울시의 자치구 의회에서 ‘재산세 소급 감면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재산세가 갑자기 증가하자 ‘재산세 반환 청구 소송’을 준비하는 등 주민들의 조세저항운동이 확산되었고, 이에 의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조례를 바꾸어 세율을 낮추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부 단체인 경기도와 서울시가 ‘조례무효확인소송’을 준비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다. 이번의 사례를 보면 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미리 장치를 구비하지 못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호들갑을 떠는 조급증의 정책과정이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4년부터 재산세 부과 기준을 면적에서 시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혼란과 저항은 이미 예측되고 있었다. 물론 당시 재산세 부과 기준을 전환한 것은 강남에 있는 작은 평수의 비싼 아파트 보다 신도시에 있는 넓은 평수의 저렴한 아파트에 비싼 재산세가 부과되는 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한 결과이었다. 그러나 정책의 전환은 있었지만 제도적 기반을 검토한다거나 부작용을 검토하는 과정이 너무나 생략되어 있었다. 아직 전근대적인 우리의 부동산 시장에서 시가를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여전히 지역별로 불공평한 사례가 지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갑자기 세금이 3배 정도 인상되는 것을 주민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당시 우리가 원했던 것은 세금의 형평성이었지 세금의 중과(重課)가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의 세금이 늘어난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중앙정부의 정책 기조가 부동산투기 억제라는 명분하에 종합부동산 제도를 도입하는 등 소위 ‘가진 자’에 대한 족쇄가 강화된다는 의식이 확산되는 과정이어서 중산층이 오히려 유탄을 맞았다고 피해의식을 갖게 되어 저항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그나마 지방의회가 이러한 주민의 저항을 고려하여 감면안을 통과시킨 것은 중요한 지방의회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지방세법에서 탄력세율 제도를 채택하여 지역별 특성에 따라 지방정부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세율을 낮추거나 높일 수 있는 권한은 부여하고 있는 바, 최소한 그 권한을 처음으로 활용하는 과정으로 이해해도 된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중앙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한다고 무효화하려는 행동은 스스로 지방자치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한편 주민도 적절한 공공서비스를 제공받는 대가로 부담하게 되는 요금, 즉 세금의 적정수준에 대해 공적인 책임의식을 느끼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부동산 투기의 원인을 보면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사실은 가해자이고 원인제공자이다. 차제에 건전한 부동산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지방의회의 재산세 감면에 대한 찬성의 이유가 투기적 목적으로 아파트를 여러 채 보유하고 있는 왜곡된 시장의 의사결정을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물을 선불(先拂)이라 잘못 찍었다 문득 낯선 이 한마디 앞을 막으며 다가선다 예정도 없이 등 떠밀려 백지 한 장 받아들고 온 세상, 일방통행의 이 길 햇빛 바람 풀꽃들 이 모든 것 선물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예까지 온걸 보면 누군가에게 낙점 되어 선불된 길 아니었을까 엉겅퀴 달개비 개망초 쑥부쟁이 웃자란 잡초까지 따뜻한 이웃 모두 손잡아 함께 가고 싶었는데 내가 누구에게 누가 나에게 선물이 되며 가고 싶은 세상길인데 손잡고 싶은 이들은 저만치 먼 곳에 있다 전생 누군가의 오타였을까 누가 나의 生을 선불한 걸까 탁 탁 탁, 순백의 종이 위에 이제라도 잘못 찍어선 안될 나의 삶을 기록한다 김애자
올 여름은 참 더웠다. 예년보다 기온이 더 올라간 탓도 있지만 몸으로 느끼는 혹서가 정말 짜증스럴 정도였다. 마음이 피곤하였기 때문이다. 신명나는 일이 있으면 체감 더위가 좀 심해도 마음은 덜 할 터인데 뭐 하나 보는 것, 들리는 게 거의가 짜증나는 것 뿐이니 심신이 피곤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더위도 한 풀 꺾였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 자연의 조화다. 예컨대 동해의 해수욕장도 8월15일까지는 한창이다. 그러나 단 하루 상관이지만 16일부터는 아니다. 조류의 변화로 그만 물이 차가운 게 오래 버티기가 버거운 것이 해마다 똑 같다. 오는 23일 처서(處暑)를 고비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 비도 알맞게 내리고 삼복 더위가 찌는 듯 했으며 몇번에 걸친 태풍도 간접 영향권으로 비껴가곤 하였다. 농사란 곡식을 가마니에 담아야 마음을 놓는다고 하나 가을 들녘이 풍요로울 것 같다. 쌀이 남아도니 어쩌니 해도 농사는 풍년이 들고 봐야 한다. 비록 더위의 기세가 꺾였다 하여도 잔서(殘暑)란 게 있다. 오곡백과를 마지막으로 영글게 하는 것이 늦더위다. 늦더위 역시 땀을 흘리게 하긴 하지만 그래도 견딜만한 게 여름철 더위같진 않다. 휴가를 아껴 한 여름 혹서를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비지땀으로 치른 사람들은 이제부터 휴가를 제대로 즐기기가 딱 알맞은 계절이 된다. 더위는 가지만 짜증난 일들이 있기는 여전할 것 같다. 국제유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경제는 거의 빈사상태에 빠지고 정치권은 헛소리만이 무성하다. 사회는 패거리 작당의 풍조속에서 살인마가 설쳐 댈 정도로 사회병리현상이 위기 수준이다. 세상은 험해도 민초들은 먹고살기 위해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겨 민초들 가슴을 짓누를진 모르지만 그래도 살기위해선 발버둥 쳐야 한다. 더위는 가도 민중의 마음은 여전이 무겁기만 하다./임양은 주필
은행들이 부동산 하락에 따른 대출 부실화를 방지하기 위해 돈줄 죄기에 나서 서민과 중소기업들의 고충이 더욱 심각해졌다. 더구나 대출 만기가 돌아 온 경우 원금을 전부 갚거나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도 10% 상환 또는 추가 담보, 가산금리를 요구하고 있어 타격이 극심하다. 최근 은행권 집계를 보면 주택담보대출의 25%를 차지하는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이 올 상반기에 경매로 넘어간 것이 5만여 건에 이른다. 올 들어 지난 1 ~ 3월까지 개인 파산 신청도 1천80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84건보다 163.5%가 늘어났다. 특히 은행들은 가계대출에 대한 지점장 전결한도를 축소하고 신용등급에 따른 금리차 확대 등으로 가계대출 관리 기준을 강화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은 돌려 막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할 수 없이 사채시장을 찾게 되면서 결국 파산으로 내몰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가계의 자산과 부채, 저축률, 실업률 등을 토대로 한 가계부실지수는 올 1·4분기의 경우 127.9%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에는 123.55%였다. 지난 3월말 현재 가계금융부채 잔액은 535조5천억원으로 연간 이자 부담액은 33조1천억원에 이른다. 특히 2001년부터 3년 동안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액 180조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97조원이 주택구입용 대출이었다. 따라서 지난 6월 말 현재 161조4천31억원에 이르는 주택담보 대출의 만기가 올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돌아 오는 점을 감안하면 가계의 위험은 더욱 심해질 게 불을 보듯 자명하다. 사정이 이러한 데 원금 상환이나 추가담보 제출, 가산금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서민들이나 중소기업들을 낭떠러지 벼랑으로 내모는 것이다. 또 금융기관의 극단적인 반응으로 가계나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신용평가를 받지 못해 선의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은행들은 여신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서민들이나 중소기업의 경제난을 참작하는 가운데 정밀한 신용평가를 통해 옥석을 가리는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