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장관?

법치(法治)와 인치(人治)가 있다. 법 위주의 다스림과 사람 위주의 다스림이다. 법치는 원칙논리인데 비해 인치는 상황논리다. 이 때문에 법치는 객관적이고 인치는 주관적이어서 전자는 잣대가 하나지만 후자는 상대에 따라 잣대가 달라진다. 조직, 즉 시스템은 법치에 의해 가동되어야 건강하다. 인치에 의해 가동되는 조직은 신뢰성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각을 6개 분야로 나눠 이른바 ‘책임장관’으로 이름하는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을 내놨다. 총리나 두 부총리가 맡은 일은 정부조직법에 어긋나는 건 아니다. 다만 행정각부를 총리가 통할하는 터에 ‘책임장관’을 두는 것은 옥상옥일 수는 있다. 이 점에서 ‘책임장관’이란 일종의 인치다. 통일부 장관이 정동영 국무위원, 복지부 장관이 김근태 국무위원이 아니어도 통일부 장관과 복지부 장관을 ‘책임장관’으로 둘 지는 심히 의문이다. 청와대는 ‘책임장관’이 상하의 수직관계가 아닌 상호협력의 수평관계라지만 당치 않다. 책임을 지는 수평관계란 있을 수 없다. 만약에 있다면 책임은 실종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조직법상의 내각 순서 4위인 통일부 장관이 하위인 유관부처를 팀으로 거느리는 것은 그래도 부당하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순서 14위인 복지부 장관이 10위인 문광부 장관 등을 팀으로 둔 ‘책임장관’인 것은 부당하다. 헌법은 대통령권한대행으로 국무총리 다음엔 ‘법률(정부조직법)이 정한 국무위원(장관)의 순서로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모든 국정 시스템을 헌법 등 법대로 하면 된다. 대통령은 국무총리 위상을 강화한다지만 이도 법대로 하면 절로 강화된다. 국무회의 또한 협의와 토론의 장으로 활성화하면 대통령의 권한 분산이나 유관부처의 팀 워크를 새삼 말할 것 없이 절로 이루어진다. 분명한 것은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공과는 대통령에게 돌아 간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통령 책임제이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의 법치정신을 촉구한다./임양은 주필

과거사는 학계, 정치권은 미래사 힘쓰라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의 선친이 일제 때 한국인 징병 독려를 일삼은 일본군 헌병 ‘고초’(伍長·하사)라는 사실이 신 의장과 연좌될 수는 없다. 다만 집안의 불행한 과거를 숨긴 것은 정치적 도의에 어긋나지만 그도 역시 범부의 인간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조선말을 쓰면 친구 아이들더러 보자기 씌우기로 머리에 뭇매질을 하도록 한 것이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었다. 일상생활에까지 일제영합을 강요하는 갖가지 수단을 참으로 악랄하게 썼다. 그 치하에 숨쉬고 살면서 조금이라도 친일하지 않고는 배겨나기 어렵게 만든 것이 일제다. 사실이 이렇기는 하나 과거 청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가담한 친일행위를 밝혀내자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광복직후가 아닌 60년이 다 된 이제와서 이분법적 논리로 규명하기엔 사실상 어려움이 많은데 있다. 과거청산을 말하자면 친일 말고도 또 있다. 민주화운동의 탄압만이 아니다. 6·25한국전쟁을 일으킨 북측 도발행위도 규명해야 하고 좌우익을 망라한 전쟁 중 양민학살이나 인공치하의 부역행위 또한 마땅히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전쟁 도발의 책임 규명은 남북관계로 보아 시기가 아니다. 부역행위는 친·인척간에 안걸리는 집안이 거의 없다. 현대사는 이토록 얽히고 설킨 불행한 상처투성이의 이면을 안고 있다. 신 의장의 선친인 신상묵씨는 한국전쟁 중 당시 경무관으로 서남지구전투사령부 사령관을 맡았었다. 그가 지리산을 무대 삼은 남로당 이현상 총사령관 휘하의 공비 토벌로 지리산 주변의 영호남에 평화를 가져온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신 의장이 일본 헌병을 지낸 선친의 일로 어떤 정치적 처신을 취하든 그것은 본인의 임의에 속한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를 정치적 공략의 호재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한 과거사 진실규명을 제대로 하려면 국회같은 정치권에서는 안된다. 정치적 규명은 정치적 왜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 중심의 학계 전문기구를 두어 이도 수년간에 걸친 엄정한 조사분석이 객관적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과거사 규명은 학계에 맡기고 정치권은 미래사 개척에 분발해야 민중은 희망을 갖는다.

광릉숲 우회도로 속히 개설하라

수도권의 허파로 불리는 포천 광릉숲을 관통하는 국가지원지방도(국지도) 86호선 주변 수목들이 회생하려면 첫째, 중·대형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소형차는 제한속도를 지키도록 조처해야 한다. 둘째,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 국지도 86호선 차량통행을 금지하는 ‘광릉숲 차 없는 거리’조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 문제는 광릉숲 주말개방 허용 문제와 맞물려 환경단체와 지역주민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미래를 위한 대승적인 차원에서 친환경적인 협조가 절대 필요하다. 셋째, 국지도 86호선을 100% 차 없는 거리를 만들려면 이미 1997년 마련한 ‘광릉숲 보전종합대책’의 핵심사업인 ‘광릉숲 우회도로’ 개설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사안을 단계적으로 시행치 않으면 광릉숲 관통도로 주변 수목은 생장하기 어렵다. 남양주시 능내동에서 포천시 직동리 산림생산기술연구소(구 중부임업시험장)까지의 국지도 86호선 가로변에는 수령 100년 이상인 전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 노거수가 예부터 장관이었다 그러나 이 국지도가 포천과 퇴계원을 잇는 지름길로 알려지면서 레미콘·유조차· 트레일러 등 대형차를 포함한 차량 통행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게 문제다. 국립수목원이 지난 6월 이 곳의 침엽수 654그루를 대상으로 ‘수목 활력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전체 나무 중 158그루가 자동차 매연으로 이미 고사했고, 334그루는 고사할 위험에 처했다. 그 중 160그루는 향후 5~10년 이내에 말라 죽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게 수목의 피해가 심한 것은 이 도로를 통과하는 차량이 하루 평균 6천505대에 이르기 때문이다. 1997년 보전대책이 마련된 당시의 4천230대보다 무려 54%나 늘어났다. 이 도로를 통과하는 차량들이 매연을 뿜어내는 것은 물론 차량들이 나무에 부딪히기까지 해 더욱 생장을 위협하고 있다. 국립수목원에서 도로변 나무 보호를 위해 최근 고사가 우려되는 100여그루에 살균·방수처리 후 인공수피를 씌우는 외과수술을 하고 있으며 차량 접촉사고 때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폐타이어로 나무 둘레를 감싸주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으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중·대형 차량 통행 제한, 광릉숲 차 없는 거리 조성, 광릉숲 우회도로의 조속한 개설을 거듭 촉구한다.

살며 생각하며/대학생 딸의 여름방학을 보며

대학 초년생의 여름방학은 넓은 안목을 키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현대사회는 세계화·디지털화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방향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사회는 유효기간이 짧은 전공지식보다는 체험이 풍부하고 발전성이 있는 인재를 더 원하게 된다. 대학 초년생 때부터 적성에 맞는 성장 비전을 세워 두고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의 여름방학은 고등학생 시절에 누릴 수 없었던 황금 시간이어서, 아르바이트, 여행, 봉사활동 등 다양한 실제 체험을 하거나 많은 독서를 통하여 간접 체험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러나 청년 실업난이 가중되면서 아예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취업 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려 온다. 많은 계획과 함께 시작한 올해 여름방학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혹시 당초 계획이 작심삼일이 되었더라도 지난 일에 구애받지 말고 지금이라도 절반의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우선 남은 여름방학 기간을 활용해서 간접 경험을 주는 좋은 책을 많이 읽도록 하자. 나에게도 대학 초년생인 큰딸이 있다. 방학 전에는 국토순례, 커피숍 아르바이트, 토플 몇 점 목표 등을 계획하며 스스로 열을 올리더니, 용돈이 아쉬워서 하고있는 아르바이트 외에는 보름 이상 완전히 집에만 있는 소위 방콕하며 놀고있다. 다소 방임형인 나였지만 허구한 날 이런 모습을 계속 방치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보름 전에 큰딸에게 가정의 물주 자격으로서 나의 권리를 강력히 선언했다. ‘방학이 끝날 때까지 5일간마다 독후감을 제출하되 한번이라도 거르면 2학기 등록금은 없다! 아울러 물주의 실행 의지를 시험해 보는 어리석은 짓도 하지 말 것!’ 다행히 지금까지 큰딸은 물주의 의지를 시험하지 않고 몇 권째 책을 읽어 주고 있다. 다음으로 여행을 하면서 직접 현지체험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여력이 있다면 해외 배낭여행도 권하고 싶다. 다만 여행을 떠나기 전, 그곳에 대해 공부하길 바란다. 고창 선운사를 두 번째로 갈 때에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를 한권 들고 갔었는데, 빈 머리로 갔던 처음과 달리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체험을 하였다. 우리 부부는 9일간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왔는데, 불안한 배낭여행이지만 인터넷으로 여행정보를 조사하며 준비해간 덕택에 저비용으로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기회는 미래를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온다고 한다. 내가 속한 회사는 학력과 지연 등을 타파한 사원 채용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본인도 면접관으로서 수많은 지원자를 선발해야했는데 지원자의 자기 소개서 외에는 판단자료가 없기 때문에 지원자의 안목이나 발전 가능성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지에 대하여 고심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 초년생의 여름방학에서부터 후일에 자기 소개서를 빼곡이 채울 수 있도록 자신만의 자랑거리를 차근차근 쌓아두기를 바란다. /임진묵 토공경기지역본부 실장

천자춘추/가족기념방 갖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백년, 천년 살 것 같이 몸부림치지만 때가 되면 가야하는 것, 이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유일한 생명체이고 만물의 영장이며 세상만사의 주역(主役)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갖고있으며 이는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노력한 결과 과학 문명을 발달시켰으며 물직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신적 빈곤은 도를 넘어 인간이 인간을 두려워하는 불신과 허무의 메마른 인간 사회로 전락되었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백행의 근원(孝者百行之源)이라고 하는 효(孝)가 제자리를 못찾고 세계 제2의 이혼율과 날로 늘어가는 깨지는 가정과 이로 인한 가정과 사회문제는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행복한 인간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가?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가정교육(家庭敎育)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가정은 피붙이로 이루어지는 가장 원초적인 집단이고 이것이 모여 사회를 이루기 때문에 가정보다 더 끈끈한 사랑과 공경이 실현될 수 있는 집단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들어가는 학교가 가정이고 최초로 만나는 스승이 부모라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부모는 자녀를 어려서부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며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악(惡)인지를 솔선수범(率先垂範)하면서 가르쳐야 한다. 가족기념방을 갖도록 하자. 기념물의 많고 적음이나 공간의 크고 작음에 연연하지 말고 오늘의 나를 태어나게 해 준 조상들을 비롯한 피붙이들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공간을 갖자는 것이다. 그분들은 이 파란만장한 세상에 태어나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였으며 사회엔 어떤 봉사를 하였고 하는 그분들이 수고하고 남긴 흔적들을 정리하는 공간, 이 곳을 가문 교육의 도장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후손들은 겸허한 마음으로 그 흔적인 사진이나 유물이나 저서 등을 잘 보존, 관리하고 존경받는 큰 인물로 성장 발전하여, 보다 더 크고 멋진 발자취를 남기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마음을 갖도록 하자. 그리하여 자랑스런 후손으로 긍지를 갖고 최선을 다하여 자신에게는 성공(成功)을, 가문에는 영광(榮光)을 돌리는 삶을 사는 인물이 되게 하는 산실(産室)로의 역할을 기대하는 방을 각 가정에 가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서일성 경민대학 효실천본부장

생각의 지평/꿈의 공간

지난 1997년 50년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연극축제 프랑스의 아비뇽을 다녀온 적이 있다. 물론 수원화성연극제와의 교류건과 축제의 노하우를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우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부러웠던 것은 그들의 작품이 아니었다. 극장 공간이었다. 꿈의 공간이었다. 허름한 창고, 성당광장, 성벽 아래, 학교 숲속, 체육관, 주차장, 공장, 깎아지른 절벽, 거리…. 여기에선 연극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완전한 토털아트쇼였다. 전람회, 시낭송, 록그룹 연주 등 아마추어, 청소년 발표에서부터 프로까지 너무나 다양하고 맛이 다르게 다가왔다. 이미 유럽연극 연출가 상을 무용가 피나바위시가 받는 문화였다. 크로스오버- 퓨전은 이미 그렇게 아비뇽에 와 있었고 고지식한 한국문화로선 많이 혼란스러웠지만 어느새 한국도 그러고 있는 중이다. 체육관에 가득 모래를 깔아놓고 진짜 말들이 내달리고, 한쪽에선 한국 판소리가 불려지고, 다른 한쪽에선 일본 씨름 스모가 연출되는 광경을 생각하면 웃기는 노릇 아닌가? 입장요금이 한국돈 10만원을 웃돌았으니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던 필자는 정말 맥이 다 풀릴 정도였다. 저것도 연극이라니, 이 시대를 대표할수 있는 극장 형태는 어떤 것일까? 이 시대는 모든 형태의 극장 중에서 작품에 어울리는 극장을 선택해서 쓰는 시대로 변했다. 그러나 수원의 극장과 전시장들은 직사각형을 벗어나지 못한다. 직사각형 공간에서 느끼는 맛이 비슷비슷해진다면 큰일이 아닌가. 벽돌 찍어내듯 말이다. 연극으로 말하자면 관객이 제 4벽을 통해 몰래 숨어서 들여다보는 사진틀 무대의 사실주의 연극에서 한치도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아테네 시민 모두가 함께 모여 공동의 큰 문제를 함께 다루는 것 같은 원형무대는 없다. 우리 고유의 탈판무대도 없다. 관객들이 신분에 따라 나뉘어 앉아 무대를 에워싸고 구경하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돌출무대도 안 보인다. 무대미학이란 것이 있다. 한 작품에 어울리는 공간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한 완전한 공간, 상상력을 보다 자유롭게 실현시킬수 있는 공간, 즉 극적인 공간을 찾게 된다. 물론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찾고있는 것이다. 꿈속에서나 본듯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특별한 공간, 관객에게 꿈을 줄 수 있고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요지경 같은 공간을 꿈꾼다. 수원시민은 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한국담배인삼공사(KT&G)를 멋진 문화공간으로 연출해 낼 수 있다. 이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시민의 힘이 아파트 단지가 아닌, 복합 문화공간을 창조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것이 수원지역 예술인들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의 꿈인 것이다. /김성렬 극단 城대표·연출가

칼럼/이 무더운 여름에

이렇게 찌물쿠는 여름일 줄 몰랐다. 올 여름은 무더울 것이라는 걸 미리 알긴 했었다. 기상청의 예보 덕분이었다. 그러나 감때사나운 가마솥더위와 열대야에 곤죽이 되도록 시달릴 줄은 몰랐다. 대기의 조화이겠으나, 정체모를 난뎃손님처럼 끼어든 높은 습도는 몹시 끈끈해서 휘어내기가 어렵다. 불쾌하다. 가진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골프채를 메고 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지만, 없는 사람들은 생활고와 무더위에 덜미를 잡혀 한숨을 토하고 있다. 물가고는 서민들을 옥죄고 있는 가운데 실업자와 빈곤층의 한숨소리는 애처롭다. 정치권은 ‘개혁’ ‘상생’ ‘민생’을 크게 외친다. 고루 잘 살게 하겠다는 다짐 같아 솔깃하다. 그러나 정치의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빤빤하고 오만하다. 그러므로 의심스럽고 두렵기까지 하다. 개혁이란 말은 얼마나 당차고 수련한가. 국민이 바라는 개혁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사회제도의 본질을 다치지 않고, 유해한 것을 골라 발전에 적합하도록 변혁시키는 것이다. 정치인은 다양한 의견 속에서 함수를 찾아내는 기량과 덕목을 가져야 한다. 개혁을 하는데도 다른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이견이 성립되는 걸 모순(矛盾)이라고 한다. 법을 가장 높은 가치로 여겼던 한비(韓非)가, 유가(儒家)의 덕치주의를 비판한 우화의 밑바닥에도 모순은 깔려 있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내세우는 주장 속에 이끗을 숨겼다면 그것은 구태와 다르지 않다. 상생이라는 말은 서로를 인정한다는 뜻이고, 상극은 상대를 배격하는 것이다.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의 이치이다. 여야는 17대 총선에서 상생을 비롯해 많은 걸 다짐했다. 국민 모두가 잘 살게 하겠다는 맹세였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우리의 정치는 상극과 혈통이 같다는 의구심이 든다. 지난달엔 여야가 국가의 정체성을 놓고 목줄띠를 곤두세웠다. 한나라당은 정권을 향해 ‘전면전’ ‘사상전’을 들고 나왔다. 발끈한 여당은 ‘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 가운데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단죄의 대상으로 점 찍힌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공격했다. ‘아프리카 반군’ ‘남미 해방 전선’과 같은 격한 표현도 나왔다. 그와 같은 전투적 용어는 듣기에 섬뜩하다. 모처럼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릴 낸 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해 남과 북이 공동대응을 해야 한다며 평양방문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또 삐쳤다. 지난 15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친일 반민족행위 및 인권 침해행위의 청산을 위해 국회에 진상규명위를 만들자’는 제의 때문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적극 지지한다’고 나섰고, 한나라당은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경축사’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42년 천사오위(陣紹禹)를 교조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천사오위는 캐나다의 공산당 기관지에 마오쩌둥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으며, 모스크바로 떠나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교조주의란 독단적 신념이나 학설에 맞춰 모든 사물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많이 쓰여진 것이다. 교조주의는 ‘좌’, 수정주의는 ‘우’였다. 이 나라에도 좌와 우는 있다. 하지만 그건 자유민주주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건전한 보수와 발전적인 진보이다.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어떤 명제이든, 그것을 둘러싸고 이쪽과 저쪽은 있는 법이다. 액체인 술은 불을 만나 비로소 탄생한다. 그렇듯 상생은 대자연의 원리이기도 하다. 과거사문제를 놓고 지루하게 티격태격하는 모양새는 볼썽사납다. 어느 선에서 합의가 되든지 시급히 마무릴 지어야 할 문제이다. 내수는 고개를 들 줄 모른다. 노동력은 가졌어도 팔 곳이 없다. 가난에 못 견뎌 동반자살도 한다. 저잣거리의 절박한 소리는 ‘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원초적인 뜨거운 절규이다. 그 때문일까. 이 여름은 몹시 무덥고 답답하다. / 언론인·소설가 신세묵

잘못된 법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지난 1994년 정기국회에서 ‘국가유공자 예우등에 관한 법’ 42조 3항이 개정됐다. ‘가료비는 국가가 부담한다’는 본문대목은 그대로 놔두고 그 뒷부분의 ‘다만 지자체의 의료시설에서 가료를 행한 경우 국가가 그 일부를 부담한다’는 단서 대목 중 ‘국가’가를 ‘지자체’로 개정했다. 그러니까 국가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지만 다만 지자체 의료시설에서 가료를 받았으면 주로 지자체 부담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개정 법률이 실린 관보 내용을 출판사가 잘못 해석하여 본문의 ‘가료비는 국가가 부담한다’ 대목의 ‘국가’를 엉뚱하게 ‘지자체’로 고쳐 법전에 실음으로써 무조건 지자체 부담인 것처럼 된데 있다. 토씨 하나 가지고도 어감이 다른 법률 조문을 출판사가 멋대로 고쳐 실었다는 것은 정말 황당하다. 그러나 이 법전의 오류를 발견치 못하고 그대로 적용한 판사도 좀 그렇다. 잘못된 법전내용을 옮겨본다.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가료에 소요되는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다만 지자체의 의료시설에서 가료를 행한 경우 지자체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일부를 부담할 수 있다”고 된 것은 본문과 단서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상한 소리인데도 묵과됐다. 희귀병을 얻어 제대한뒤 숨져 국가유공자로 결정된 아들의 치료비를 아버지가 국가에 청구한 소송에서 판사가 잘못된 법전을 보고 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는 그 아버지가 서울시를 상대로 재차 소를 제기했으나 서울시는 법제처에서 낸 법령집에 적힌 관련 법률을 보이며 ‘서울시 의료시설에서 가료도 받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 국가 부담이지 왜 지자체 부담이냐’며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밝혀졌다. 잘못 실린 법전이 10년이나 그대로 방치되면서 국민에게 억울한 피해를 끼친 건 법치사회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다. 출판사 법전은 믿을 수가 없으니 법제처가 발간한 ‘대한민국 법령집’을 보내 달라는 말이 판사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을는지 모르겠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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