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수수료를 너무 인상하고 있어 서민경제가 더욱 불안하다. 지난 달 신한·조흥은행이 각종 수수료를 올린 데 이어 하나·제일은행이 6월1일부터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거나 새로 부과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금융권의 인상 움직임은 경영여건 악화에 따른 부담을 고객에게 전가하는 것은 물론 물가 급등세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된다. 제일은행의 경우 타행 현금인출기로 현금을 뺄 때 수수료를 현재 800원에서 1천원으로, 영업시간 종료후에는 1천원에서 1천200원으로 올리고, 타행 계좌이체 수수로도 상향 조정한다고 한다. 더구나 그동안 받지 않았던 질권설정·명의변경·전표열람(이상 5천원)·사고신고(1천원) 수수료를 새로 부과키로했다. 국민은행은 은행업무 전반에 대한 원가분석 작업을 거쳐 수수료 신설이나 인상수준을 정해 하반기부터 수수료 인상에 나선다. 특히 지금까지 수수료를 물리지 않았던 지로·공과금 수납을 하반기부터 유료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 계획 역시 중소기업대출 연체율 상승 등에 따른 부담을 수수료 수입으로 해결하려는 것으로 적절치 못하다. 공공 서비스 요금 인상과 맞물려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므로 그 여파가 심히 우려된다. 대형 손해보험사들이 자동차 보험료를 불과 7개월만에 또 다시 올리기로 한 것도 문제가 심각하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LG화재, 동부화재, 동양화재 등 5개사는 범위요율을 상향 조정하는 방식으로 자동차보험료를 1.5~3%가량 인상, 6월부터 적용키로 했다. 범위요율은 금융감독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난해 11월 업계가 평균 3.5% 올린데 이어 7개월만에 다시 전 손보사가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은 국민경제차원에서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한 장기불황 중이다. 원자재 가격급등 여파로 자장면과 휘발유 등 생활필수품 가격마저 잇따라 오르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휘청거리는 판국이다. 물가안정이 과거 어느 보다 절실하다. 금융기관들이 수익률을 만회하기 위해 앞다퉈 수수료를 인상하는 영업전략을 구사, 서민들 몫으로 전가시키고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
수원이 차세대 첨단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 하였다. 서울대 첨단연구개발(R&D)시설인 ‘차세대융합기술원’이 오는 2007년까지 수원시 이의동에 건립된다.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정운찬 서울대총장이 체결한 미래 지향적 청사진의 이 양해각서는 차세대 국가 경쟁력 제고에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된다. 교수 160여명과 연구인력 200여명이 갖는 나노전자소자, 생명공학, 원격시스템 및 미래형자동차, 휴먼 테크놀로지, 디지털 곤텐츠 및 엔터테인먼트 등 분야에 걸친 연구와 이공계 기술인력의 재교육은 장차 국내 첨단산업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가 10년후, 20년후 뭘 수출해 먹고 살 것인가는 항상 고민되는 절실한 과제다. 해마다 심화하는 세계시장의 블럭화와 무한경쟁 시대를 타개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핵심 기술인력의 배양에 있다. 특히 반도체의 신(新)성장을 좌우하는 나노(Nano)기술연구는 이미 국제간에 총성없는 전쟁이 되었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나노는 물질의 분자나 원자를 직접 조작할 수 있어 앞으로 생명공학·섬유·의학 등 이밖의 폭넓은 분야에서 고도로 활용되는 최신 기술이다. 미국 같은 데서도 이의 연구에 박차를 가해 부시는 지난해 11월 향후 4년간 37억달러를 투입하는 내용의 ‘21세기 나노기술 연구개발법’에 서명했다. 서울대 차세대 융합기술원은 3천454억원을 들여 이의동 8만평 부지에 3만3천평 규모의 건평을 건립하는 공사를 연내 착수한다. 경기도와 서울대, 서울대와 경기도의 이같은 ‘융합기술원건립 양해각서’체결은 국가적 사업이다. 정부가 첨단산업 육성으로 국민에 대한 거시적 경제대책 일환의 장기민생을 생각한다면, 정부가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지금 무엇을 크게 도와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줄로 믿는다. 연구원이 문을 열면 올 10월, 그리고 내년 10월에 각각 완공될 예정인 별도의 경기바이오센터 및 나노특화단지와 더불어 첨단산업 발전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은 물론이다. 아울러 R&D 집적지대 형성으로 외국 첨단기업 유치에도 긍정적 기대가 가능하다. 이 사업 추진은 이의동 개발사업에 포함된 것이다. 지방정치권은 시와 도에서 이미 결정난 이의동 개발에 총선 때 같은 소모적 논쟁은 이제 삼가해야 한다. 양해각서 체결이행에 조금도 차질이 없기를 기대한다.
지난 일요일, 농구귀재 허재 선수는 강원도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가진 은퇴 경기를 마지막으로 코트를 떠났다. 지금쯤 무슨 상념에 젖어 있을까. 경기마다 피마르도록 집착해야 했던 승부욕에서 해방된 것을 시원하게 여길 것인지, 아니면 땀 배인 코트에 아직도 못다한 향수에 젖어 있을 것인지. 무려 4천여명의 팬들, 그것도 10대에서 40~50대까지 폭넓은 팬들의 열광적 환호성 속에 은퇴경기를 치르고 선수생활을 마감했지만 만감이 교차되는 상념이 없을 순 없을 것이다. 한국 남자농구에서 이충희 선수에 이어 대들보 역할을 한 올라운드 플레이어 허재 선수, 그도 이젠 어느덧 설흔아홉이 됐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농구볼을 쥐어 용산고등학교 주니어 시절에 벌써 시니어 선수들을 앞지르며 두각을 드러낸 한국농구의 기린아로 등장했다. 허재 선수의 선수생활은 언제나 자만심을 가질 줄 몰랐던 겸손함이 특징이다. 스타덤에 오를 수록이 스스로가 자신을 채찍질 했다. 이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맞은 종아리 매를 고등학교를 졸업해서도 맞은 적이 있다. 선수생활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것 같으면 아버지는 영락없이 회초리를 들곤 했다. 허재 선수는 이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오는 팬레터도 제대로 받아볼 수가 없었다. 코트장 밖의 인기보다는 코트장 안의 실력이 자신의 생명임을 그의 아버지는 늘 일깨워주곤 하였다. 운동선수들에게 몸은 곧 자산이다.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은 게임의 질을 높이고 선수생활의 수명을 늘려 준다. 그가 마흔이 다 되도록 코트를 화려하게 누빌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몸 관리를 스스로가 그만큼 엄격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허재 선수는 선천적 감각과 순발력 등을 타고나 스타플레이어의 자질을 지녔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자질을 갈고 닦아 기량을 드높인 것은 부단한 후천적 노력임을 모든 운동선수들은 본받아 명심해야 한다./ 임양은 주필
지난달 21일 국립대인 창원대와 경상대가 대학통합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 전국 대학간 통·폐합이나 퇴출 등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학간 통합 움직임이 점점 탄력을 받는 이유는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으로 최근 몇 년간 대학의 숫자와 입학 정원은 크게 늘어난 반면 학생 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대학입학 적령인구의 감소로 인한 대학 파산이나 운영 부실로 학생들의 교육적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점과 대학 또는 학과의 통폐합을 통해 대학을 특성화하고 교육여건을 개선하여 대학교육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구조 개혁방안의 하나이다.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기관을 통합하는 인수합병과 대학의 운용전략으로 대학내 구조조정 또는 연계와 협력(Collaboration)이 있다. 이러한 대학통합은 보직교수 및 행정지원 인력 등이 줄어 비용이 축소되고 인적.물적 자원이 효율적으로 재배치되는 등의 장점이 있으며 학생정원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대학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학생, 교수, 졸업생, 지역사회 등의 이해관계가 제각각이어서 통합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거센 반발에 직면하거나 다툼을 벌이다 흐지부지되고 만다. 더군다나 교육의 질적 개선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오히려 더 큰 부실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대학의 구조조정은 단순히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수월성을 추구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사회의 자발적인 자구노력에 의해 시작되어야 한다. 대학들이 각기 실정에 맞도록 특성화, 다양화되고 교육시장 개방 등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에 있어서 자율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이해 당사자의 권익이 보호되어야 한다. 대학통합은 구조조정을 수반하고 임면권자 변경과 인사관련법규나 보수규정 등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교수 및 직원의 신분변동은 물론 재임용, 보수 및 근무조건 등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통합초기에는 가능하면 교직원의 면직등 급격한 조치 등은 유보하고 재교육을 통해서 활용하거나 자연 감원 등으로 해결해나가는 등 충격을 최소화 해야할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는 교원수, 재정상태 등 대학교육여건이 대단히 열악한 점에 비추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가능한 합병인가의 경우 학생수 증가를 억제하는 것이 교육지표향상에 도움이 된다. 반면에 인수합병과 유사중복학과의 통폐합이나 교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결손의 보전책과 동시에 특별 재정지원도 추진되어야 한다. 유례가 없는 대학의 위기상황에서 대학 구조조정의 부담을 사립대학에만 지우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사학재정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따라서 국립대학부터 대폭적인 정원감축을 통한 대학교육의 여건을 개선하여 우리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의지를 정부가 앞장서서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학과설치·운영에 있어서도 점차적으로 국립대학과 사립대학간에 차별적인 역할을 분담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고 본다. 국내 대학교육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의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OECD 평균수준인 GDP 대비 1%수준으로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확보된 재원은 가장 우선적으로 대학 구조조정을 통해서 대학을 특성화, 다양화 하는데 지원되어야 한다. 향후 안정적인 대학재원의 확보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의 마련도 필요하다고 본다. /김 경 우 서울보건대 인터넷정보과 교수
화창한 오후 오랜만에 공원을 찾았다. 최근 몇년 사이, 도와 시의 지속적인 노력 속에 발전하여 지금은 공원을 찾는 관광객의 수가 엄청나다. 아담한 저수지를 따라 거니는 발걸음은 향기로운 꽃내음처럼 연인들에게는 사랑의 속삭임의 장소로, 어린이들에게는 조각예술품과, 자연학습을 할 수 있는 현장학습의 장소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날로 늘어나는 쓰레기는 공원을 찾는 사람 수 만큼 불어나고 심각한 악취까지 풍기며 공원을 오염 시키고 있어 우려가 크다. 비록 청소부가 있기는 하지만 그 많은 양을 치우기에는 역부족이라 본다. 제안컨데 각자 쓰레기봉투를 지참, 자신의 쓰레기는 담아 주어가는 미덕을 보여야겠다. 누구나 그럴 마음은 있겠지만 나 하나쯤이야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우리지역에 이런 고맙고도, 귀중한 공원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보전해 나가야겠다./조정훈·대학생
많은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 중의 하나가 교육문제가 아닌가 한다. 각종 언론보도에서 매일 빼놓지 않고 보도되는 것 중의 하나도 바로 교육문제이며, 이 교육문제의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제언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정작 교육문제에 대해서 지방자치단체는 뒷짐만 지고 있다. 교육자치와 일반자치가 구분되어 있어 교육자치의 영역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를 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지방자치단체장을 새로 선출하는 선거 때만 되면 ‘외국어고등학교를 포함한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유치하겠다, 자립형사립고를 유치하겠다’고 외친다.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유치하면 하루아침에 그 자치단체의 교육여건이 개선되는가. 진정 교육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지방자치단체장이라고 하면 교육관련 예산을 확보하고, 교육환경개선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한다. 지금 각 지방자치단체의 전체 예산 중 교육관련예산이 몇 퍼센트나 될까. 지방자치단체가 교육내용, 교육제도에 관여할 수 없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가 교육내용이나 제도에 대한 결정권한이 없음은 사실이나,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투자가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눈에 보이는 특목고 유치라는 구호만 외칠 뿐 정작 교육의 전반적인 질적 향상을 위한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예산확보와 투자에는 인색하다. 이런 방법도 있다. 예컨대 지방자치단체가 실내체육관, 수영장, 도서관 등을 건립한다고 하자. 이러한 시설을 학교 안에 건립하는 것은 어떨까. 지방자치단체가 이러한 시설을 학교에 건립해 주면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또는 방과후에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또 일반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왜, 이러한 시설들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시민들의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나. 학교에 이런 체육시설들을 건립하면 시민들의 접근이 쉽고, 학생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 이상 특목고 유치라는 구호만 외치지 말고 교육환경개선을 위해서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라.
학생 체벌문제가 일선 교사의 아파트 투신 자살을 부른데 이어 피해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고통을 안겨 주고 있다. 피해 학생과 학부모가 네티즌들의 사이버 공간을 통한 폭력성 e-메일 공격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탓이다. 피해 학생 홈페이지로 쏟아지고 있는 폭력성 e-메일은 지난달 9일 모 중학교 교사 아파트 투신 자살 이후 최근까지 20여일동안 4천여건에 이르고 있다. 사정은 이런데도 피해 학부모와 학생은 속수무책이다. 피해 학부모는 1개월여동안의 전화통화기록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체벌사건 이후 최근까지 숨진 교사와 통화한 건 2통에 불과, 숨진 교사가 피해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고 고통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택했다는 네티즌들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호소했다. 피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네티즌들의 언어폭력은 결코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들도 제기되고 있다. 피해 학부모는 “사건의 진상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투신 자살한 교사와 2번 통화했을뿐인데도 학부모 전화를 견디지 못해 죽음을 택한 것처럼 보도돼 이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며 진상 규명을 호소하고 있다. 피해 학부모는 가능한 모든 채널을 이용해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피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쏟아지는 폭력성 e-메일 공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분명한 건 명확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한발자국 뒤로 물러 서서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이번 사태를 헤아려 보는 아량이다. 그렇지 않고선 피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정신적 고통만 가중될뿐이기 때문이다 /최 해 영 (제2사회부 평택) hychoi@kgib.co.kr
그 여선생님은 불량학생 서클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느 학생이 ‘×××’이라고 제의하는 것을 “무슨 서클 이름이 유치하냐? 차라리 ‘불새’라고 하라”고 했던 것이다. 여선생님은 불량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함께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당구 같은 것도 같이 치곤 했다. 어쩌다가 며칠 학교에 안나오는 학생 집에 가보면 동생들과 라면 끓여 먹는 것을 보고는 개밥 그릇처럼 지저분한 그릇에 같이 퍼담아 함께 먹기도 했다. 여선생님은 교무회의 때마다 동료 교사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래도 퇴학은 안됩니다. 제가 책임 지겠습니다”라고 불량학생들을 감싸는 바람에 멸시를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같은 근질긴 노력이 헛되지 않아 서클은 해체되고 학생들은 어려웠지만 학교에 다시 정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교도소에나 가 있을 제가 지금은 군대에서 곧 제대할 날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성공한 모습으로 선생님을 꼭 찾아 뵙겠습니다…’ 그 여선생님이 이런 제자의 편지를 받은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만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았어요…”라고 여선생님은 말했다. 그것은 제자의 편지가 준 감동도 감동이지만, 불량학생들을 감싼다고 동료 교사들로부터 받았던 모진 서러움이 새삼 가슴을 치밀며 복받쳤기 때문이었다고 돌이켰다. 도내 어느 고등학교에서 십수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경기도교육청에 일선 기자로 나갈 때 직접 들어 확인했고 또 기사화하기도 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오는 2학기부터 정학 및 퇴학제도를 다시 부활한다고 한다. 신중을 기한다는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학이나 퇴학처분은 교육의 포기다. 물론 선량한 학생들을 위한 불량학생의 격리라는 취지를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이에 앞서 얼마나 학교가 과연 최선을 다 했는 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까맣게 잊었던 그 여선생님 얘기가 가슴에 다가온다./ 임양은 주필
자작나무 한그루와 느티나무 두그루, 백양나무 세그루, 굴참나무 여섯그루. 멀리로는 시베리아 대륙부터 가까이로는 한반도 남녁지방에서 연지와 곤지 바르고 시집을 온 나무들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서있는 봉숭아꽃과 옹기종기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 있는 숱한 민들레들과 엉겅퀴, 강아지풀. 이들 사이로 야트막한 구릉과 언덕들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강변에서 뛰어와 연신 거친 숨을 내쉬는 바람. 주말이 시작되는 오후 어느 시골 정경은 이처럼 한가로웠다. 딱히 허리를 구부리고 모를 내다 허리를 펴고 이마의 땀을 연신 훔치는 농부들의 모습도, 그렇다고 “훠이 훠이” 추임새를 흘리며 헤진 그물 코를 깁는 어부들의 바쁜 손놀림도 없는 시골인만큼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한가로운 게 아니라 고즈녁스럽다는 게 옳을듯 싶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첫째날 오후 2시께 여주군 강천면 굴암리 9의3. 새삼스럽게 딱딱한 행정지명을 들먹이는 까닭은 어느 곳이길래 호들갑을 떠느냐는 반문이 쏟아질듯 싶어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시각각으로 이지러지는 풍경 위로는 햇살이 수정가루처럼 하얀 분말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승용차 1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길을 따라 들어 가다 도착한 이곳에는 교실 세칸을 갖췄던, 그러나 지금은 폐교된 학교 건물이 아담한 운동장을 어줍잖게 내어 보이며 이방인들을 맞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교문 위로는 ‘2004 여성문화예술제’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학교 옆 얕은 언덕엔 매표소까지 갖췄다. 정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느티나무는 온통 붉고 푸른 만장으로 뒤덮혀 있었고 눈을 부릅 뜨고 서있는 장승도 이날만큼은 외할아버지처럼 인자하고 온화했다. 시골학교 운동회처럼 만국기도 걸려 있었고 광목으로 만든 고풍스러운 천막도 설치됐고 잡음 하나 없는 깨끗한 음향을 내는 앰프도 마련됐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앙증맞은 학교 건물 위로 걸려 있는 하늘이 비치빛이란 사실이었다. 이곳은 2년 전부터 천연염색을 통해 환경운동을 펼치는 이민경 선생이 자비를 털어 차린 국내 유일한 ‘여성생활사박물관’으로 몇칸 되지 않는 교실은 부엌용기류와 옷감 짤 때 사용되던 기구, 전통생활용기, 복식류 등이 가지런하게 전시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대장경호, 용목나무 냉장고, 물허벅, 십각놋화로, 방구리, 올챙이국수틀, 곱돌주전자, 배냇저고리, 벼메기솔, 주칠반닫이, 순백자 뿔등잔, 편교자, 뒤주, 돈궤…. 화단을 옆으로 끼고 현관으로 들어서면 복도 사이로 난 교실들마다 이처럼 이름만 들어도 정겹고 정다운 생활용품들이 돌아 가신 친정 어머니가 돼 어렵고 가파른 세상을 살고 있는 이 땅의 딸들을 맞고 있었다. 평소에는 뜨락 넓은 고가처럼 고즈녁했지만 이날만큼은 200평 남짓한 운동장 곳곳이 잔치집처럼 술렁거렸다. 서울 동숭동 대학로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름이 제법 알려진 관광지도 아닌, 여주읍내에서도 한참을 들어 가야 하는 산골에서 열리는 행사였다. 그것도 개념도 낯설은 여성문화예술제였다. ‘여성’이란 접두사가 걸려 있어 여성, 혹은 여권신장 등과 관련된 이벤트라는 점은 짐작되지만 상당수 이방인들에겐 속내를 열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무엇때문에 마련됐을까. “이번 총선을 통해 진보세력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여성 국회의원들의 진출도 눈에 띄게 늘었고, 항간에선 다음에는 어쩌면 여성 대통령도 나올 것이란 예측도 있지만 아직도 우린 여성문제만큼은 인색한 후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의 의지가 살짝 엿보였지만 그래도 물음표는 남았다. 남성이면서 이 일에 뛰어든 박태명 화백도 여성문제 만큼은 의견이 당당했다. “산술적으로 단순하게 남성과 동등하다는 궁색한 의미를 뛰어 넘는 그 무엇. 새로운 시대를 맞은만큼 우리의 여성관도 확 바뀌어야 합니다” 조용한 풍경 속에서 여성들의 용기 있는 혁명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여성이 아닌, 그렇다고 철저한 페미니스트도 아닌 숫기 없는 평범한 남성이 보기에는 적어도 그랬다. /허행윤 제2사회부장
세상을 살아가면서 요즈음처럼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너무 집착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누구나가 잘못된 과거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그것이 정상일 것이다. 어떻게 완벽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신이 아닐 바에…. 그러나 잘못된 과거를 지금에 와서 바꾼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잘못된 과거에 집착하다보면 세상은 시끄러워진다. 요즈음 시끄러운 세상을 사는 것이 남의 잘못된 과거에 너무나 집착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있겠는가?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한 방울도 되찾을 수 없다. 이미 늦었다. 다만 다시는 엎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과 엎질렀으면 완전히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교훈으로 배운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잘못을 냉정하게 분석해서 다시는 반복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얻기는커녕,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한다.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지금 해야 할일들에 대해 오히려 소홀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끝난 일에 이러쿵저러쿵 고민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잘못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두 번 다시 그 일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 물론 말은 쉽지만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라도 과거를 지워버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건설적인 일에 몰두하여 과거의 일로 고민하는 한가한 여유를 없앰으로써 멋지게 위기를 극복해 보려고 노력해보자. 현명한 사람은 앉아서 과거의 잘못으로 인한 손해를 한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힘차게 일어나서 그 손해를 보충할 방법을 찾는다. 과거 속에서 살아갈 생각도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생각도 없다. 빨리 받아들이고 그것을 청산한 뒤에 앞날을 위해 전력을 다하려고 한다. 그러면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보다도 훨씬 더 즐거운 생활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병만.경기도의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