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자춘추/교육문제, 자치단체가 나서야

많은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 중의 하나가 교육문제가 아닌가 한다. 각종 언론보도에서 매일 빼놓지 않고 보도되는 것 중의 하나도 바로 교육문제이며, 이 교육문제의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제언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정작 교육문제에 대해서 지방자치단체는 뒷짐만 지고 있다. 교육자치와 일반자치가 구분되어 있어 교육자치의 영역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를 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지방자치단체장을 새로 선출하는 선거 때만 되면 ‘외국어고등학교를 포함한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유치하겠다, 자립형사립고를 유치하겠다’고 외친다.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유치하면 하루아침에 그 자치단체의 교육여건이 개선되는가. 진정 교육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지방자치단체장이라고 하면 교육관련 예산을 확보하고, 교육환경개선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한다. 지금 각 지방자치단체의 전체 예산 중 교육관련예산이 몇 퍼센트나 될까. 지방자치단체가 교육내용, 교육제도에 관여할 수 없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가 교육내용이나 제도에 대한 결정권한이 없음은 사실이나,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투자가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눈에 보이는 특목고 유치라는 구호만 외칠 뿐 정작 교육의 전반적인 질적 향상을 위한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예산확보와 투자에는 인색하다. 이런 방법도 있다. 예컨대 지방자치단체가 실내체육관, 수영장, 도서관 등을 건립한다고 하자. 이러한 시설을 학교 안에 건립하는 것은 어떨까. 지방자치단체가 이러한 시설을 학교에 건립해 주면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또는 방과후에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또 일반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왜, 이러한 시설들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시민들의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나. 학교에 이런 체육시설들을 건립하면 시민들의 접근이 쉽고, 학생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 이상 특목고 유치라는 구호만 외치지 말고 교육환경개선을 위해서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라.

교사투신후 학생·학부모 ‘고통’

학생 체벌문제가 일선 교사의 아파트 투신 자살을 부른데 이어 피해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고통을 안겨 주고 있다. 피해 학생과 학부모가 네티즌들의 사이버 공간을 통한 폭력성 e-메일 공격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탓이다. 피해 학생 홈페이지로 쏟아지고 있는 폭력성 e-메일은 지난달 9일 모 중학교 교사 아파트 투신 자살 이후 최근까지 20여일동안 4천여건에 이르고 있다. 사정은 이런데도 피해 학부모와 학생은 속수무책이다. 피해 학부모는 1개월여동안의 전화통화기록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체벌사건 이후 최근까지 숨진 교사와 통화한 건 2통에 불과, 숨진 교사가 피해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고 고통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택했다는 네티즌들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호소했다. 피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네티즌들의 언어폭력은 결코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들도 제기되고 있다. 피해 학부모는 “사건의 진상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투신 자살한 교사와 2번 통화했을뿐인데도 학부모 전화를 견디지 못해 죽음을 택한 것처럼 보도돼 이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며 진상 규명을 호소하고 있다. 피해 학부모는 가능한 모든 채널을 이용해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피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쏟아지는 폭력성 e-메일 공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분명한 건 명확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한발자국 뒤로 물러 서서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이번 사태를 헤아려 보는 아량이다. 그렇지 않고선 피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정신적 고통만 가중될뿐이기 때문이다 /최 해 영 (제2사회부 평택) hychoi@kgib.co.kr

정학.퇴학제도

그 여선생님은 불량학생 서클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느 학생이 ‘×××’이라고 제의하는 것을 “무슨 서클 이름이 유치하냐? 차라리 ‘불새’라고 하라”고 했던 것이다. 여선생님은 불량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함께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당구 같은 것도 같이 치곤 했다. 어쩌다가 며칠 학교에 안나오는 학생 집에 가보면 동생들과 라면 끓여 먹는 것을 보고는 개밥 그릇처럼 지저분한 그릇에 같이 퍼담아 함께 먹기도 했다. 여선생님은 교무회의 때마다 동료 교사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래도 퇴학은 안됩니다. 제가 책임 지겠습니다”라고 불량학생들을 감싸는 바람에 멸시를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같은 근질긴 노력이 헛되지 않아 서클은 해체되고 학생들은 어려웠지만 학교에 다시 정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교도소에나 가 있을 제가 지금은 군대에서 곧 제대할 날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성공한 모습으로 선생님을 꼭 찾아 뵙겠습니다…’ 그 여선생님이 이런 제자의 편지를 받은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만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았어요…”라고 여선생님은 말했다. 그것은 제자의 편지가 준 감동도 감동이지만, 불량학생들을 감싼다고 동료 교사들로부터 받았던 모진 서러움이 새삼 가슴을 치밀며 복받쳤기 때문이었다고 돌이켰다. 도내 어느 고등학교에서 십수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경기도교육청에 일선 기자로 나갈 때 직접 들어 확인했고 또 기사화하기도 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오는 2학기부터 정학 및 퇴학제도를 다시 부활한다고 한다. 신중을 기한다는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학이나 퇴학처분은 교육의 포기다. 물론 선량한 학생들을 위한 불량학생의 격리라는 취지를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이에 앞서 얼마나 학교가 과연 최선을 다 했는 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까맣게 잊었던 그 여선생님 얘기가 가슴에 다가온다./ 임양은 주필

광교산의 아침/여성문화예술제에 대한 소묘

자작나무 한그루와 느티나무 두그루, 백양나무 세그루, 굴참나무 여섯그루. 멀리로는 시베리아 대륙부터 가까이로는 한반도 남녁지방에서 연지와 곤지 바르고 시집을 온 나무들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서있는 봉숭아꽃과 옹기종기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 있는 숱한 민들레들과 엉겅퀴, 강아지풀. 이들 사이로 야트막한 구릉과 언덕들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강변에서 뛰어와 연신 거친 숨을 내쉬는 바람. 주말이 시작되는 오후 어느 시골 정경은 이처럼 한가로웠다. 딱히 허리를 구부리고 모를 내다 허리를 펴고 이마의 땀을 연신 훔치는 농부들의 모습도, 그렇다고 “훠이 훠이” 추임새를 흘리며 헤진 그물 코를 깁는 어부들의 바쁜 손놀림도 없는 시골인만큼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한가로운 게 아니라 고즈녁스럽다는 게 옳을듯 싶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첫째날 오후 2시께 여주군 강천면 굴암리 9의3. 새삼스럽게 딱딱한 행정지명을 들먹이는 까닭은 어느 곳이길래 호들갑을 떠느냐는 반문이 쏟아질듯 싶어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시각각으로 이지러지는 풍경 위로는 햇살이 수정가루처럼 하얀 분말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승용차 1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길을 따라 들어 가다 도착한 이곳에는 교실 세칸을 갖췄던, 그러나 지금은 폐교된 학교 건물이 아담한 운동장을 어줍잖게 내어 보이며 이방인들을 맞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교문 위로는 ‘2004 여성문화예술제’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학교 옆 얕은 언덕엔 매표소까지 갖췄다. 정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느티나무는 온통 붉고 푸른 만장으로 뒤덮혀 있었고 눈을 부릅 뜨고 서있는 장승도 이날만큼은 외할아버지처럼 인자하고 온화했다. 시골학교 운동회처럼 만국기도 걸려 있었고 광목으로 만든 고풍스러운 천막도 설치됐고 잡음 하나 없는 깨끗한 음향을 내는 앰프도 마련됐다. 무엇보다 신기한 건 앙증맞은 학교 건물 위로 걸려 있는 하늘이 비치빛이란 사실이었다. 이곳은 2년 전부터 천연염색을 통해 환경운동을 펼치는 이민경 선생이 자비를 털어 차린 국내 유일한 ‘여성생활사박물관’으로 몇칸 되지 않는 교실은 부엌용기류와 옷감 짤 때 사용되던 기구, 전통생활용기, 복식류 등이 가지런하게 전시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대장경호, 용목나무 냉장고, 물허벅, 십각놋화로, 방구리, 올챙이국수틀, 곱돌주전자, 배냇저고리, 벼메기솔, 주칠반닫이, 순백자 뿔등잔, 편교자, 뒤주, 돈궤…. 화단을 옆으로 끼고 현관으로 들어서면 복도 사이로 난 교실들마다 이처럼 이름만 들어도 정겹고 정다운 생활용품들이 돌아 가신 친정 어머니가 돼 어렵고 가파른 세상을 살고 있는 이 땅의 딸들을 맞고 있었다. 평소에는 뜨락 넓은 고가처럼 고즈녁했지만 이날만큼은 200평 남짓한 운동장 곳곳이 잔치집처럼 술렁거렸다. 서울 동숭동 대학로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름이 제법 알려진 관광지도 아닌, 여주읍내에서도 한참을 들어 가야 하는 산골에서 열리는 행사였다. 그것도 개념도 낯설은 여성문화예술제였다. ‘여성’이란 접두사가 걸려 있어 여성, 혹은 여권신장 등과 관련된 이벤트라는 점은 짐작되지만 상당수 이방인들에겐 속내를 열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무엇때문에 마련됐을까. “이번 총선을 통해 진보세력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여성 국회의원들의 진출도 눈에 띄게 늘었고, 항간에선 다음에는 어쩌면 여성 대통령도 나올 것이란 예측도 있지만 아직도 우린 여성문제만큼은 인색한 후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의 의지가 살짝 엿보였지만 그래도 물음표는 남았다. 남성이면서 이 일에 뛰어든 박태명 화백도 여성문제 만큼은 의견이 당당했다. “산술적으로 단순하게 남성과 동등하다는 궁색한 의미를 뛰어 넘는 그 무엇. 새로운 시대를 맞은만큼 우리의 여성관도 확 바뀌어야 합니다” 조용한 풍경 속에서 여성들의 용기 있는 혁명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여성이 아닌, 그렇다고 철저한 페미니스트도 아닌 숫기 없는 평범한 남성이 보기에는 적어도 그랬다. /허행윤 제2사회부장

천자춘추/과거 용서하고 현실에 충실하자

세상을 살아가면서 요즈음처럼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너무 집착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누구나가 잘못된 과거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그것이 정상일 것이다. 어떻게 완벽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신이 아닐 바에…. 그러나 잘못된 과거를 지금에 와서 바꾼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잘못된 과거에 집착하다보면 세상은 시끄러워진다. 요즈음 시끄러운 세상을 사는 것이 남의 잘못된 과거에 너무나 집착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있겠는가?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한 방울도 되찾을 수 없다. 이미 늦었다. 다만 다시는 엎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과 엎질렀으면 완전히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교훈으로 배운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잘못을 냉정하게 분석해서 다시는 반복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얻기는커녕,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한다.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지금 해야 할일들에 대해 오히려 소홀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끝난 일에 이러쿵저러쿵 고민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잘못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두 번 다시 그 일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 물론 말은 쉽지만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라도 과거를 지워버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건설적인 일에 몰두하여 과거의 일로 고민하는 한가한 여유를 없앰으로써 멋지게 위기를 극복해 보려고 노력해보자. 현명한 사람은 앉아서 과거의 잘못으로 인한 손해를 한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힘차게 일어나서 그 손해를 보충할 방법을 찾는다. 과거 속에서 살아갈 생각도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생각도 없다. 빨리 받아들이고 그것을 청산한 뒤에 앞날을 위해 전력을 다하려고 한다. 그러면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보다도 훨씬 더 즐거운 생활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병만.경기도의회 사무처장

"5월 4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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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만에 나온 군번, 나라의 정체성이다

전시에 전사한 병사는 살아있는 평시의 장군 못지않게 소중하다. 전시의 절박한 사정을 평시에는 잊는다고 하지만 전시는 언제나 예고가 없다. 공전의 관객수 1천200만명을 돌파한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는 휴머니즘이 관객을 끌어들인 원동력이다. 살벌한 전쟁터를 통해 피어나는 휴머니즘은 이 또한 평시와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에 50년전 형이 전사한 곳에서 유골을 찾은 동생의 울부짖음이다. “형! 지금 뭣하고 있어! 꼭 돌아온다고 했잖아! 근데 이게 뭐야?!” 이미 백발이 성성한 동생은 전쟁터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생전에 사력을 다했던 형의 유골을 보며 이렇게 절규했다. 1953년 7월27일, 3년여의 처참한 6·25 한국전쟁이 휴전한지 반세기가 넘는 51년째다. 육군 36사단이 강원도 홍천군 내면 방내리에서 한국전쟁 전사자 발굴작업 중 전사자 유골을 인식표와 함께 발견했다는 소식은 새로운 일깨움을 갖게 한다. 군번 1125518 이만초 상병, 그는 제9사단 공병부대 소속으로 1950년 12월28일 중공군과 격전을 벌인 홍천전투에서 전사한 것이다. 국방부는 그가 일병 때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애국자가 많다. 그러나 평시에 입으로 하는 애국은 진실이 의심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나라를 위해 바친 애국보다 진실이 더한 애국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런 호국영령의 희생이 있었음으로 하여 나라의 정체성을 지킬 수가 있었다. 그리고 번영을 이룬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영화를 누리는 이들이 많다. 잘먹고 잘사는 이런 지도자들 가운데 자신이 서있는 정체성을 왜곡하거나 부인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 멸공이나 반공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북측과 적대시 하자는 것도 아니다. 또 다시 처참한 전쟁을 치르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교류협력이 역사의 필연이다. 심히 걱정되는 것은 소련과 동구권에서 이미 실패로 끝난지 오래인 해묵은 이데올로기를 들고나와 신장개업하는 이념론자들이다. 이 나라를 피땀 흘려 지키고 일군 정체성마저 경멸시하는 이들의 종국적 목표는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시류는 시대의 흐름이 있어도 나라의 정체성은 다름이 있을 수 없다. 국방부의 한국전쟁 전사자 발굴사업은 우리의 고귀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불변의 노력이라고 보아 높이 평가한다.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야

내일은 어린이 날이고 오는 8일은 어버이 날이다. 이번 주 정부는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 직장, 학교 등에서는 가정의 중요성을 알리는 다양한 주제의 가정의 날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질 예정이다.또한 각 가정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행사로 온 가족이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많아 5월은 신록의 계절만큼이나 사랑과 희망이 솟아나는 가정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가정은 삶의 기본적인 단위로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또한 보호해야 할 존재이다. 우리는 가정 속에서 가족이란 공동체를 통하여 생활하며 인간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가정이란 요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으로서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사회발전의 토대이다. 때문에 가정은 삶의 원천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귀중한 삶의 현장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는 후기 산업사회화되면서 가정의 존재는 전통적 가치로부터 퇴락하여 공동체적 삶의 기반이 서서히 붕괴되어 가고 있다. 물질만능의 배금사상이 사회전반을 지배하면서 이기주의적 사고방식과 공동체적 의식의 결여로 삶의 바탕이 허물어지고 있다. 해마다 증가하는 이혼율, 직장을 잃는 가장, 권위가 추락되는 부모들, 왜곡된 교육제도, 향략 위주의 사회풍조 등등은 한국사회의 전통적 가족관을 무너뜨리고 있다. 가정의 달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해체되어 가는 가족공동체를 복원시키는 작업이다. 생활의 중심체로서 가정의 소중함을 가족 모두가 인식할 수 있도록 사랑과 대화의 집합체로서 가정을 되살리는 운동이 각 가정 자체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가족공동체는 각자의 생활 현장에서 발생하는 희노애락을 가정을 통하여 서로 공유, 해결함으로서 가정이 가장 귀중한 삶의 존재임을 인식토록 해야 된다. 어려울 때 일수록이 가정이 더욱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추락된 부모의 권위는 회복되어야 하며 가족공동체의 해체는 막아야 된다. 가정의 존재가 무시되면 국가공동체도 역시 무너진다. 5월이 단순히 놀고 즐기는 행사 위주의 가정의 달이 아닌 진정한 가족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는 귀중한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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