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2題

‘본드걸’하면 섹스 심벌로 손꼽힌다. 도발적 관능에 얼굴 표정 또한 유혹적이다. 이를테면 첩보전에서 미인계로 등장하는 것이 본드걸이다. 테렌스 영 감독의 ‘007 위기일발’로 시작된 영국의 이 첩보 영화로 무명의 숀 코넬리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으면서 일약 세계적 스타덤에 올랐다. 007은 국가에서 인정한 살인 면허다. 기기묘묘한 기상 천외의 첨단 장비가 동원되어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로 공상적 흥미를 유발한다. 영화 007시리즈는 20여편이 나온 가운데 숀 코넬리가 영국 외무성 소속의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역을 가장 많이 했다. ‘007 네버다이’에서 본드걸로 출연한 배우 겸 모델 세넌 레드베터(39)가 근래 영국 리버풀 성당에서 국교회의 사제 서품을 받아 화제가 됐다. “조용한 시골에서 주민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는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신학박사 사제가 된 본드걸의 인생 전환은 집념의 노력 끝에 일군 놀라운 변화다. 미국 영화인 제리 주커 감독의 ‘사랑과 영혼’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애틋한 사랑을 영상화한 애정영화의 백미다. 친구의 음모로 억울하게 죽은 촉망받던 청년 샘은 천사처럼 착하고 아름다운 몰리를 못잊어 서로 영육을 초월한 사랑을 나눈다. ‘길고 고독한 시간에… 시간은 흐르지만 너무 느려요…오 내 사랑, 내 님이여, 그대의 손 길이 그리웠소…’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제가 가사의 몇 대목이다.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수상이 영혼을 주제로 하는 영화 배우로 나섰다. 사회당 총재였던 무라야마는 1994년부터 약 2년간 연립 내각의 수상을 지냈다. 그 역시 서민풍이었지만 부인은 식당 종업원 등을 해가며 남편을 내조했다. ‘가리유시’란 제목의 영화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내용 중 비중있는 조연의 노인역을 하는 것이 무라야마 전 수상의 배역이다. 영화는 다음 달에 개봉된다. 그는 올해 일흔아홉살이다. 곱게 늙는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임양은 주필

월요칼럼/사회적 타살

심리학자들이 ‘자살은 항상 어떤 개인 또는 사회 전체에 대한 복수(G.버먼)’ , ‘다른 사람의 죽음을 원치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자살하지 않는다(스테켈)’ 고 했지만, 한국사회에 자살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아 허망하다. 30대 주부가 생활고를 비관, 세 자녀를 아파트에서 떨어뜨리고 삶을 마감한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전국 도처에서 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남고생이 “나는 아무래도 공부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고 자신의 방에서 목매 숨졌고, 아들의 신용카드 빚으로 고민하던 40대 부부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금속공장을 운영하는 남자의 30대 아내가 경매로 집이 넘어간 것을 비관, 목을 매 죽었고, 쌍꺼풀 수술이 잘못돼 고민하던 50대 주부가 농약을 먹고 목숨을 끊은 어이 없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의 연간 자살자 수는 1991년 6천593명에서 1998년 1만2천458명, 2002년 1만3천55명으로 10여년 새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공식집계가 이렇다면 실제는 더 많을 것이다. 한국인의 자살 원인은 ‘비관’과 ‘병고’가 70%를 차지, 실존적 문제로 인한 자살자가 많은 유럽 국가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한 생활고 비관형 자살이 2001년 844건, 2002년 968건으로 증가했으며, 초등학생이 과외 하기 싫다고 죽을 정도로 10대들의 자살도 지난해 273건이나 발생, 간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 인간처럼 자유롭게(?) 자살을 감행할 수 있는 생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은 자살만이 괴로운 현실로부터의 탈출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삶의 벼랑 끝에 몰려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는 절망과 무기력 상태에서 자살은 실행된다. 더구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빈곤층·실업자·신용불량자 등 ‘사회적 안전망’에서 소외된 계층이 마지막 도피 수단으로, 최후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이와 같은 자살 급증 현상은 대화의 부재와 죽음에 대한 가벼워진 인식 탓이기도 하다. 또 인터넷 게임 등을 통해 죽음 자체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게임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리셋(Reset) 증후군’도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자살자보다 자살 기도자들이 10배~20배 많다는 사실이다. 기자는 적지 않은 자살자의 사연에 가슴 아팠었다. 월남 참전의 후유증으로 고뇌하던 막내 삼촌, 실연을 극복하지 못한 여대생, 가난 때문에 자존심과 영혼에 상처 입은 K시인, 연하의 남성과의 이별 후 홀로 먼 길 떠난 여인의 뒷 모습을 보았다. 한때는 자살도 인생의 한 과정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지만 그러나 자살은 자신에 대한 명백한 살인행위이며 가족과 이웃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다. 자살 미수자와 자살자의 가족들에게 미치는 엄청난 영향을 생각하면 자살은 개인적인 은밀한 행위가 아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겡(1858 ~ 1917)은 1897년 ‘자살론’에서 “자살은 사회학적 현상”임을 통계적으로 밝혀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잇따르는 자살은 대부분 사회적 지원 체계가 무너진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다. 왜 자살했느냐고 힐책할 수도 없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누가 감히 ‘한 많은 세상 일찍 잘 떠났다 ’고 할 수 있는가. 죽은 사람만 불쌍하고 억울할 뿐이다. 그것이 가난한 사회의 비극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천자춘추/비(悲)와 서(恕)

하루가 힘겨울 때, 나는 가끔씩 러시아 노래를 찾아 듣곤한다. 가슴 아래로 스며드는 그 무엇 때문에. 러시아 노래에는 우리와 상통하는 시베리아 문화권의 공통 정서가 배어있어서인지 내게는 친근한 그 무엇인가가 그 속에 있다. 톨스토이에서 마야코프스키까지,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적잖이 배출했던 러시아에는 이런 말이 오래전부터 전해온다. “한 생애를 살며, 그대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았는가? 그대는 그대가 사랑하였던 사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믿음을 저버림 당해보았는가? 그대는 창살에 갇혀 한뼘의 햇살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답고, 소중한지 느껴보았는가? 이 세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과는 인생과 철학과 예술에 대해 논할 만하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들어서서 불현듯 떠오르는 옛 기억 때문에 잠 못이루는 밤,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이 말을 곱씹어 보기도 한다. 이 세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생을 두고 느끼고 깨우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추측컨대 비(悲)와 서(恕)가 아닐까. 더불어 살기도 쉽지않고, 홀로 살기도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겉과 속을 보며 느끼는 그 무엇. 비(悲) - 슬픔! 그 비(悲)란 것이 ‘내 마음(心)과 같지 아니하기(非)’ 때문에 느끼는 그 무엇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서(恕)란 것이 입장과 처지를 헤아리면, ‘내 마음(心)도 저럴 수 있다(如)’고 보고, 용서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이다. 내가 사추기(思秋期)에 들어선 것일까? 어린 시절, 내속에서 우러나와 내게 던지던 근본적인 물음들! 세월의 두께를 비집고 나와 다시금 내게 물음을 던진다. 먼지 속에 덮여있던 옛 경전들과 고전들을 다시금 펼쳐든다. 하루 가운데 한 두시간만이라도 그 속에서 옛사람들을 만나 지혜를 구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양원모.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팀장

독자투고/묵묵히 힘써 일하는 경찰관에 격려를

삶에 애착을 느낄 때쯤 경찰관들의 협력단체 일원으로서 그들을 알게 되었다. 항상 주민과 함께 하면서도 주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경찰관들은 어쩌면 경찰관들에게 아주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현대인으로 살다보면 어찌 한 번쯤 그들과 마주치지 않겠는가. 주야로 고생하고 있는 경찰관을 볼 때 그리고 그들의 친절함과 당당함에서 보여지는 또 다른 기대감은 나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근래 회의가 있어 경찰서에 들렀을 때 경찰서장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었다. 항상 세심한 배려와 직원들에 대한 걱정, 전·의경들에 대한 염려로 할 수 있으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던 경찰서장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구타사건과 직원의 비리로 인해 지휘관으로서의 책임을 느끼고 있는 모습에서 지휘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진실한 인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피해자들에게는 유감을 표한다. 또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와 같은 일을 교훈 삼아 재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히 어떠한 단면을 보고 전체를 표현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무엇일까? 열심히 근무하고 친절한 경찰관들에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상심이 큰 그들에게 우리의 작은 격려가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과 공존하면서 그들을 배격하면 안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우리 주민들이 주변인이 아닌 주체로서 경찰관들의 협력자로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문명섭·인천서부경찰서 행정발전위원장

7월 28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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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이견에 표류하는 민생정책

정부가 발표한 기업연금 도입, 경차 활성화, 우체국 금융개편 등 중요 경제 정책들이 후속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 신뢰도가 크게 실추됐다. 부처간 손발이 전혀 안맞아 정부가 과연 이래도 되는가 싶어 실로 우려가 크다. 시책 입안, 발표를 ‘한 건 주의 ’로 여기는 것 같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재정경제부의 경우, 지난 3월 ‘민생경제대책’을 내놓으면서 기업연금제(퇴직연금)를 도입키로 하고 올 상반기 중 국회에 관련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법안은 상반기 중 정부안조차 확정짓지 못했다. 주무 부처인 노동부에서 “재경부가 퇴직금을 갖고 증시를 살리겠다는 발상을 한다”며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탓이다. 명칭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재경부는 ‘기업연금법’, 노동부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으로 주장하고 있어 언제 입법이 이뤄질 지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올 하반기부터 취득·등록세를 감면토록 하겠다는 경차 활성화도 ‘부도수표’가 됐다. 이 역시 줄어든 지방세수 보전방안 등을 놓고 정부 부처간 손발이 맞지 않아서다. 중·대형차들은 특소세율 인하로 가격인하 혜택이 주어졌으나 정부가 수차례 지원을 약속했던 경차는 오히려 혜택을 받지 못해 경차구입 희망자들의 불만이 커져 가고 있다. 우체국 금융에 대한 개선은 재경부가 현정부 출범초부터 약속한 시책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정통부와 의견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금융계는 예금보험료를 내지 않으면서 전액 예금보호가 되는 우체국에 대한 특혜가 축소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정통부는 읍·면 지역 주민들의 편의 등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놨다는 경제정책들이 이런 수준으로 용두사미가 된다면 국민들이 정부를 믿겠는가. 정책 추진의 지연 사유와 대책을 마땅히 국민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한다.

수원시장의 과실, 어떻게 해결할 건가?

수원 광교산 입구 대규모 건축물 분양 계약자들이 며칠 전 시청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가운데, 시는 오늘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문제의 5천844㎡ 부지에 대한 공원 조성안 심의를 강행한다. 그러나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이제 와서 용도지역을 공원으로 변경한다 하여 해결되는 게 아니다. 수원시는 앞으로 공원부지가 도시계획으로 확정되면 그 때 가서 건축허가를 취소할 요량이지만 그렇다고 뒤늦은 도시계획 입안으로 이미 지난 2월에 내준 건축허가가 소급해서 무효가 되는 건 아니다. 수원시가 정 건축허가 취소를 강행하면 필연적으로 일은 법정으로 번져 수원시장을 상대로 하는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이 제기될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간의 판결례에 비추어 시의 패소율은 지극히 높다. 만약 수원시가 건축주에 대한 소(訴) 제기를 막기 위하여 보상을 조건으로 건축주가 건축허가를 스스로 반납케 한다 해도 문제가 있다. 시의 피해보상은 건축주 뿐이 아니고 분양 계약자들에게까지 파급이 예상된다. 잘은 몰라도 수억원대로도 타협이 어려운 실로 막대한 금액이 될 것이다. 이렇게라도 하여 공원조성을 하게되는 건 좋지만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시장의 현저한 과실로 시민이 세금으로 부담하는 시 예산이 막대한 보상금으로 낭비된 데 대해 수원시장은 변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만일 변상 책임을 회피한다면 애당초 건축허가를 내준 시장 이하 관련 공무원들을 상대로 하는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고, 수원시민단체나 수원시민이면 누구든 구상권 행사의 소송이 가능하다. 문제는 또 있다. 보상금 지급에 그치지 않고 시가 뒤늦게 공원으로 묶어 건축을 만류한 실책으로 부지를 즉각 매입해야 하는 입장이 불가피하다. 이럴 경우 수십억원대의 부지 매입비는 구상권 청구 대상이 되는 건 아니지만 사업집행 순위의 형평성에 어긋난다. 시내엔 공원부지로 묶인지가 오래 됐으나 시가 사들이지 않아 재산권 행사를 제한받고 있는 사람들이 적잖다. 사리와 법리가 이러 함에도 불구하고 수원시가 그저 문제의 땅을 공원으로 뒤집으면 사태가 다 해결될 것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안일하다. 대규모 건축보다 공원이 조성돼야 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기 위해선 진즉 용도지역 변경을 서둘고 허가를 내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젠 시장이 보상금을 변상해 가며 못짓게 하든지, 아니면 짓게 놔두든지 해야할 지경이 됐다. 시장이 도장 한번 잘못 누른 과실의 책임이 이토록 크다.

7월 26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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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지사의 대권 ‘도전’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대권 행보는 새삼스런 게 아니다. 그는 한번도 그런 의사를 밝힌 적은 없으나 이미 그같은 모습을 보여왔고 그렇게 보는 관측 또한 객관화 되어 있다. YTN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대통령 후보의 기회가 온다면 거절하지 않고 해보겠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것은 다만 그 자신이 처음으로 시인한 점에서 주목된다. 이로써 손 지사의 대권 의향은 수면으로 떠올라 향후 보폭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 됐다. 경기도지사의 대권 도전은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없다. 한반도 중핵인 1천만 웅도의 지방정부 수장으로서 능히 가질만한 포부다. 문제는 도정을 유종의 미로 장식해야 하는데 있다. 지사의 임기 만료와 대통령의 임기 만료는 약 20개월 시차가 있어 손 지사가 재임 중 중도하차 할 이유는 없다. 그 자신이 YTN 인터뷰에서 “대선 얘기는 너무 빠르다”고 한 건 도정의 착실한 추진을 우선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아진다. “현재는 경기도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언급은 적절하다. 역시나 그랬다. 손 지사의 도정을 통한 대권 지향성 행보는 군데군데서 감지됐던 게 사실이다. 전직 국무총리를 비롯, 정·관·학계 등 인사를 망라한 ‘경기발전위원회’ 출범 그리고 지난 달 방미 길의 부시 행정부 고위층 연쇄회동에 이은 미2사단 재배치 문제의 거듭된 재고 요청, 경기도·EU 바르셀로나 학술회의 등이 그같은 사례다. 수도권의 인적·물적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동북아 경제중심 실현 방안도 이에 속한다. 최근의 대북교류 장기계획도 문제점이 있긴 하나 같은 맥락이다. 수도권 접경지역의 최고 행정 책임자로서 역량 창출의 주요 소임이면서 국가차원의 전략사업인 것이다. 하지만 대권의 길은 평탄치 않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추구하는 중도 진보성향의 정치인으로 아는 손 지사가 한나라당의 보수 체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건 순전히 그의 몫이다. 시일은 있다. 그리고 도전은 수많은 태산준령과 망망대해와 늪지대를 헤쳐가는 실로 고독한 작업이다. 지역사회의 광역단체장 예우 차원에서 격려를 보낸다. 아울러 대권 후보를 향한 정진과 병행하여 일관된 도정 추진 의지에 변함이 없길 바란다. ‘경기 비전 2006’의 10대 정책분야에 걸친 51개 역점사업에 대한 소기의 성과를 당부한다.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삭제를 요구했는데도 민주노총이 홈페이지 게시판 ‘열린 마당’에 북한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동영상물을 다시 게재하는 것은 해이해진 우리 사회의 대북 인식을 여실히 증명한다. 북한이 올해 초 ‘인터넷은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된 특별공간’이라며 인터넷 게시판을 ‘항일유격대가 다루던 총과 같은 무기’로 활용해 대남 심리전을 강화하라는 지침을 공공연히 내린 사실을 생각하면 북한 찬양 게시물 재개는 부적절하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부는 인터넷 공안탄압을 중단하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현재의 남북대치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다. 더구나 북한정권에 대한 지지와 찬양 내용이 들어 있는 7개 사이트 2천600여건의 삭제 요구를 무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는 북한이 아직도 실질적인 전쟁 상대인데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인터넷을 해방구로 생각하고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이용, 정치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현정부의 개혁 성향을 시험하는 수준으로 보아지기도 한다. 비록 금강산 관광에 경의선, 경원선 복원 공사를 하고 있어도 지금 남북한은 엄연히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이 인터넷을 활용해 대남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돼 중단했던 김일성 부자 찬양 일색 게시물을 다시 게재하는 것은 국민정서와 거리가 있다. 자칫하면 민노총이 게시물을 올린 것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물론 이미 인터넷을 통해 누구든지 쉽게 북한 관련 자료를 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위해 그대로 두는 것이 게시판 운영의 원칙이라는 민노총 등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재고돼야 한다. 사이버상의 ‘사상혼란’과 국기(國基)를 흔드는 글이나 동영상이 인터넷에 오르는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 소수의 의견이 대다수보다 절대적일 수는 없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삭제요구에 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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