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누드 파티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씨가 반포동 자신의 업소에서 상습적으로 ‘완전 나체 가면파티’를 주선하다가 최근 경찰에 구속되었다. 김씨는 인터넷 화상 채팅사이트를 이용해 ‘누드카페 멤버십 남자 회원’을 모집하는가 하면 구인·구직사이트에 ‘누드카페, 여 시간제 알바 모집’이라는 광고를 내서 여성 아르바이트 구직자들도 손쉽게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특히 여성 아르바이트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나체 심사를 한뒤 주부, 여대생 등 7명을 고용했다고 한다. 김 씨는 이런 방법으로 모은 누드파티 남자 회원들과 아르바이트 여성들 중에서 3~5명씩을 자신의 카페에 비밀리에 오게 한 뒤 여자들 모두 완전 나체 상태에서 각각 가면을 쓰게 하고 그 중 제비뽑기로 선발된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성행위를 연출시키는 일명 ‘왕게임’을 벌였다고 한다. 김씨는 이런 식의 누드파티 때마다 남자 회원들에게서 입장료 명목으로 30만원씩을 받아냈다. 이 변태 음란파티는 작년 6월부터 시작해서 올 3월까지 모두 20여 차례나 계속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적발된 것이다. ‘왕게임’을 하는 변태성 ‘누드파티’가 여러 곳에서 성행한다는 정보에 따라 경찰이 현재 유흥가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수사중이라고 한다. 가정을 가진 주부와 여대생들이 나체 심사를 받으면서까지 이처럼 변태 누드파티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저 알몸으로 술이나 마시는 단순한 누드파티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성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섹스파티를 열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섹스란 무엇인가.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 두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치르는 육체적 비밀행위가 아닌가. 짐승과 인간이 다른 것 중의 하나가 짐승은 공개적으로, 인간은 비공개적으로 성행위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적어도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처럼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 인간들은 저마다 공부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해서 돈도 버는 것 아니겠는가. 철없는 아이들도 아닌 가정을 가진 주부들, 최고학부를 다니고 있는 여대생들이 공개적 성행위도 불사하는 나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성도덕의 타락 정도가 아니라 기본적인 도덕의 파산이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인간의 정신과 존엄을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관을 내팽개치고 권력과 물질 만능주의를 키워온 일부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주도층 인사들, 그리고 우리 모든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육체의 누드가 아닌 정신의 누드가 필요한 시대이다. /정성수.시인

천자춘추/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며...

짙푸른 빛을 더해가는 5월의 산야를 보면서, 순환의 궤도를 어김없이 걷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낀다. 사람들의 삶도 자연의 순환법칙에 따라 물 흐르듯 생로병사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5월을 영어로 메이(May)라고 하는데 희랍의 마이여(Mayer)라는 아름다운 여신에서 따왔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예쁜 여인을 뽑아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기도 했으며, 한때 우리나라 어느 여자대학에서도 5월이면 메이퀸(May queen)을 뽑는 행사가 있었다. 5월을 에메랄드 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아름답고 싱그러운 약동의 계절에는 어린이 날이며 어버이 날, 스승의 날 같은 인간 관계의 사랑을 나누는 기념일들이 많아 5월을 가정의 달이라 하는 것 같다. 앞만 보며 달려온 젊은 날을 되돌아보면 가족에게 미안한 일이 적지 않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대학을 다닐 때 늦게까지 일에 파묻혀 진료한다는 핑계로 어린이 날마저 제대로 챙기지 못하였음을 가정의 달 들어 더욱 미안하게 생각된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서 멀리 직장이 있는 곳에서 살아간다. 외국에 사는 여식이 어버이날을 잊지않고 사랑과 감사의 뜻을 음성으로 전해왔을 때 눈시울이 뜨거웠다. 인간은 머리로만 살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때로는 넉넉한 마음으로 감싸안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야 자신의 결점을 어렵지 않게 치유하고 공동의 삶에 동참 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의 봄비와 햇볕에 젖은 새싹들이 싱싱하게 자라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한편으론 어버이로 대우를 받으며 죄스러운 마음을 갖게된다. ‘부모님을 섬기고자 하나 이미 계시지 않더라’는 선인의 가르침이 있었음에도 일찍이 깨우치지 못하였음을 후회하게 하는 5월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절이다. 각박하고 메마른 오늘을 살아간다는 소리가 나날이 높아 가는 현실이지만, 이런 때에 ‘나’ 아닌 ‘너’를 위해 무엇인가 생각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 가짐으로 가족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삶의 기쁨이요 생의 보람이 아닐까. 우리 모두 5월의 푸르름처럼 인간미 넘치는 따스한 가슴들로 살아 갔으면 한다. /정복희.경기도의사회장

독자투고/건전한 시위문화를 만들자

요즘 전국에서는 노동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개인과 단체의 이익과 주장을 관철 시키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가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다. 한데 요즘의 시위를 보면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어 불안하기 짝이 없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버스와 택시업계에서도 같은 수준의 혜택을 요구하고 있고, 전교조의 NEIS 반대, 혐오시설은 자기 지역에 안된다는 님비 현상으로 지역주민들의 시위가 매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어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들 시위들이 과격하고 폭력적이라는데 더 문제가 있다. 자신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집단의 힘으로 위협을 가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과격 행동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 시키려 하고 있어 대화와 타협을 힘들게 하고 있다. 단체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과격과 폭력을 불러오게 되며 이는 극한 대결 양상으로 치달아 서로를 불신하게 된다. 국민화합을 저해하며 대외 신인도 하락을 가져와 우리 경제의 불안요소로 이어져 국가 발전에 많은 장애를 줄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이나 단체의 주장을 요구하고 관철시키기 위해서 집회와 시위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폭력적인 시위 방법은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 없다. 미국에는 14만개의 이익단체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시위를 하지만 과격하고 폭력적인 모습은 찾아 볼수가 없다. 이제는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시위대와 공권력 특히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시위문화는 사라지고 모두에게 공감받는 건전한 시위 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 강윤택·인터넷독자

5월 31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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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측이 태도 분명히 하라

신당 추진 세력은 태도를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신당이 구주류 인적청산을 속셈으로 하는 진보성향의 ‘노무현당’을 표방하는 것은 이미 감지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인적청산 배제와 진보정당이 아닌 개혁정당을 들고 있는 것은 표리부동한 처신이다. 신당 추진은 진보세력의 연대로 이뤄지고 당 밖에서도 계속 작동되고 있다. 우리는 진보세력은 아니지만 진보정당의 출현을 정치발전의 계기로 보아 긍정적으로 보고자 하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 신당의 이번 진보정당이 기존의 군소 진보정당까지 모두 흡수하고, 보수정당 역시 대동단결하는 정계개편으로 명실공히 보수·진보 양대정당 체제가 되길 희망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신당 추진세력이 개혁정당으로 호도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간판 삼는 것은 참으로 신당답지 않아 진부하다. 개혁정당이나 지역주의 타파는 비단 신당만의 간판이 될 수 없는 모든 정당에 공통되는 시대적 소명인 것이다. 신당의 개혁성이 기실 진보성향이면서 막연히 개혁만 내세우는 것은 신념의 희박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인적청산을 원하면서 결단을 주저하는 것은 여전히 호남 민심을 의식한 지역주의 의존의 자가당착이다. 보수 세력인 구주류도 마찬가지다. 신주류의 진보세력과 신당을 함께 해봐야 어차피 주도권을 갖지 못하는 어정쩡한 동거상태를 면치못할 것을 알면서도 당내 논의를 고집하는 것은 구실 찾기에 불과하다. 민주당의 오늘과 같은 사태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로 결정나면서 이미 싹 텄던 것이며, 노 후보의 당선으로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진 숙명적 수순이다. 다만 분당의 책임도피, 그리고 서로가 유리한 명분 축적을 위해 갖는 신경전이 곧 지루한 지금의 신당 논쟁이다. 우리는 신주류의 신당 추진 세력이 여당 중 여당이고 또 구주류에 비해 능동적 입장에 있다고 보아 신주류가 이제는 단안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고 믿는다. 더 이상의 소모전은 신당세력에도 유익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정치발전을 저해하고 국가운영에도 유해하다. 신당을 막상 하자니 그렇고 안하자니 또 그렇다면 공식기구를 통해 당의 진로를 조속히 결정하든지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분리란 형식논리로 신당문제에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곧 있을 기자회견이 신당 추진의 분수령이 된다고 보아 책임있는 언급이 있기를 기대한다.

월드비전의 이라크 구호활동

월드비전 경기지부와 경기일보가 공동으로 펼치고 있는 ‘이라크 어린이 돕기’에 도민의 성금이 답지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이다. 월드비전이 민간단체 최초로 긴급구호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모술’은 110만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라크 북부 최대 도시로 부족간의 전쟁으로 치안이 불안하고 특히 어린이의 피해가 극심한 지역이다. 이라크는 2천400만명의 인구 중 40%가 14세 이하 어린이들이다 .이 중 절대적 보호가 필요한 5세 이하 어린이가 340만명이나 되고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어린이가 무려 100만명에 이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들이다. 수 많은 이라크 어린이들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식량과 식수 부족, 수질 악화와 위생시설 미비 등으로 각종 질병과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모술지역은 이라크군이 남긴 불발탄이 아직도 곳곳에 쌓여 있어 전쟁이 끝났는데도 불발탄 폭발로 어린이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하나 뿐인 병원에서 매일 1만5천~2만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었으며 그나마 전쟁 중 폭격으로 건물이 파괴돼 병원의 기능마저 잃었다. 현재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깨끗한 식수와 의약품, 구강수분보충염이라고 한다. 월드비전은 지난 달 27일 현지에 사무실을 설치하고 담요, 물통, 약품, 플라스틱 시트 등을 포함한 긴급구호물자를 전달한 데 이어 최근에는 영원무역이 기증한 아동의류 10만벌을 모술지역에 배포했다. ‘전쟁이 사람을 죽였다면 긴급구호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우리 돈 1만원이면 800ℓ의 물을 정화할 식수 정화제를, 2만원이면 설사병으로 고생하는 어린이에게 지급할 구강수분보충염 350봉지를 살 수 있으며, 3만원이면 기초의약품 세트 1개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정성이 모아질수록 전쟁의 참화를 입은 이라크 어린이들이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월드비전 경기지부와 경기일보가 도민의 인도정신과 인류애를 이라크에 심고 있는 어린이 돕기 긴급구호사업에 보다 많은 온정의 손길과 참여(성금계좌번호:농협 172-01-205392·예금주:월드비전)가 있기를 기대하여 마지 않는다.

공무원 윤리강령에 불만 많다?

공무원윤리강령이 시행된 지 불과 1주일쯤 지났는데 벌써부터 각종 편법이 나돌아 다닌다. “강령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여기 저기서 나온다. 식사값을 일정 액수로 제한한 게 ‘비현실적인 항목’ 1순위로 꼽힌다. 그래서 ‘꼼수’가 생겨난다. 값을 맞추기 위해 카드 전표 등 영수증의 날짜를 달리 하거나 식사값과 술값을 나눠 두 세장으로 떼기도 한다. 1인당 3만원 이내로 제한된 식사비용을 맞추기 위해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지불하는 방법도 쓴다. 청사에서 멀리 떨어진 고기집들은 단속(?)을 피해 ‘원정식사’를 하러 오는 공무원들로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변한 것은 일식·한정식 대신 대중식당으로 향하는 점이다. 양주와 맥주를 섞는 ‘폭탄주’ 대신 소주와 맥주를 이용한 폭탄주나 소주와 전통주를 섞어 마시는 소위 ‘50세주’가 인기라고 한다. 골프모임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한다. 축·부의금 액수를 따지는 사람들도 많다. 축의금, 부조금은 품앗이 성격인데, 예전에 5만원, 10만원을 받았다면 그 금액만큼 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업무관계자’의 범위가 애매해 결혼식 때 친지, 친구에게만 청첩장을 돌리고 공무원생활 하면서 사귄 이들에게는 알리지 않는다. 공무원 윤리강령이 문제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것은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으레 있었던 일이니 초반에는 몸조심하자”는 공무원들의 분위기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남 몰래 호화판 접대를 받는 소수 때문에 전체가 비리를 저지르는 것 처럼 오해를 받고 있어 사기만 꺾였다는 공무원들이 많다. 하긴 그렇다. 하위직 공무원들은 윤리강령이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인당 한끼 식대가 1만원이면 벅차다. 점심 도시락을 의무화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반신반의 한다. 최근 경찰청에 의해 드러난 공무원 접대 비리나 촌지수수 관행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마치 거머리처럼 관련 업체를 착취했다. 따지고 보면 공무원윤리강령이 또 생긴 것은 공직사회가 자초한 셈이다. 공무원들의 의식이 이번에는 정말 혁신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기고/망국적 식생활문화 개선해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위해 해야할 일들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식생활 문화의 개선일 것이다. 옛날 임금님의 수라상은 밥과 탕은 물론 신선로 등 5가지 기본 반찬을 제외하고도 12첩 반상으로 12가지 반찬이 올라간다. 이는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발생되는 음식물 쓰레기는 하루 평균 1만1천350t으로 8톤 대형 트럭 1천400대 분에 이르며 생활쓰레기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의 2001년 발표에 따르면 한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14조7천억원에 달하고, 그 음식물 쓰레기의 일부를 처리하는데도 연간 4천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한다. 업무관계로 일본에 갈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일본의 음식업소는 음식의 양과 가지수에 있어서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인색하다. 그러나 식사를 마친 그들의 식탁은 우리와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은 우리처럼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내오지도 않을 뿐더러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어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2년말 기준으로 우리의 세배인 3만2천불이다. 그들이 잘 살게된 배경에는 이와 같이 몸에 배어있는 근검과 절약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직도 결식아동이 존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버리는 음식이 절반이 넘는 우리의 식생활 문화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은 정부의 주요정책으로 오래전부터 추진해오고 있으나 현재까지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첫째, 우선 남기더라도 푸짐하게 음식을 차리는 것이 손님을 잘 접대하는 것으로 여기는 비합리적인 사고에 기인하고 있다. 둘째, 음식업소 및 국민의 참여의식 부족이다. 음식업소는 개인별 식성을 고려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으로 내옴으로써 남겨지는 음식량이 많을 수 밖에 없고, 일반고객은 다양하고 푸짐하게 차려주는 식당을 선호하고 있는 점이 문제다. 셋째, 그동안 정부시책으로 추진한 ‘주문식단제’ 등 여러가지 시책들이 국민의 호응을 불러 모으는데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참여가 중요하다. 따라서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음식물쓰레기 줄이기는 국민의식개혁 운동차원으로서 일회성이 아닌 단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추진방안으로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 고객에게는 음식값의 일부를 할인해 주는 제도의 도입이다. 업소의 부담을 덜어 주기위해 할인가의 일정액을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방안도 함께 고려할 문제다. 제도의 효과성을 높여 나가기 위하여 정기적인 평가를 실시하고 우수업소에 대해서는 세제감면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마련한다 해도 국민이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음식물쓰레기 문제는 결국 국민의 실천의지에 달려 있다. 이제 음식물쓰레기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 시대의 과제이자 의무다. 이토록 문제가 있는 식생활 문화를 개선하지 않고는 선진국의 길은 요원할 것이다. /김학용.경기도의회 부의장

천자춘추/기적 '틱낫한의 평화로움'

마음이 어디론가 사정없이 굴러가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하고 아프다. 음악을 들어도 숲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잡히지가 않는다. 문득 얼마 전 늦은 밤에 TV를 통해 보았던 틱낫한의 플럼 빌리지(자두마을) 공동체에서의 걷기 명상 장면이 떠올라 칠보산으로 향했다.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호흡을 골랐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걷는 동안 숲 냄새, 흙 냄새, 계곡 물소리, 새소리 등이 마음에 가득 채워졌다. 스스로 놀랄 정도의 알 수 없는 희열과 평화로움이 내 안에 밀려왔다. 틱낫한은 달라이라마와 더불어 세계 종교계의 두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불려진다. 그는 시인이고 선승이며 명상가이자 평화운동가다. 프랑스 남부 광활한 포도밭과 해바라기 밭으로 둘러싸인 보르도 지방의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자두 공동체에는 틱낫한을 만나 참 삶의 본질과 평화를 찾으려는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틱낫한의 대표적인 명상법은 걷는 것이다. “홀로, 또는 여럿이서 천천히 걸으라.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걷기 위해 걷는 것이다. 그것의 목적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위함이다. 모든 걱정과 불안을 떨쳐 버리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걷는 동안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면, 둘, 셋, 넷 그리고 다섯 걸음도 평화롭게 내디딜 수 있다.” 지금 이 곳에 존재하는 것, 이 순간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요, 지금 이 순간 푸르른 대지 위를 걷는 것, 그 안에서 평화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이다. “삶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지만 또한 푸른 하늘, 햇빛, 아이의 눈과 같은 경이로움들로 가득하다. 고통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삶의 수많은 경이로움들과도 만나야 한다. 그것들은 그대 안에, 그대 주위의 모든 곳에, 그리고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는 일상의 모든 것들 속에 삶의 기적과 경이로움, 행복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외치며 자신이 지은 짧은 시로서 모든 이들이 쉽게 수행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는 미소/ 나는 느낀다, 내가 살아 숨쉬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경이로운 순간임을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숨을 내쉬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성령을 받아라”하신 말씀이 연상된다. 하나님의 숨 속에 평화가 있고 참 생명이 있다. 깊게 천천히 반복해서 호흡하라. 물 위를 걷는 것만 기적이 아니라 숨을 쉬며 천천히 대지 위를 걷는 것이야말로 기적중의 기적이다 . /장병용.수원 등불교회 목사

독자투고/'실생활정보 지역신문서 얻자'

지역 신문이란 그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행정 등 생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또한 지역내의 주민들이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 등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가령 주요 중앙 일간지에서 지역의 현안, 환경관련 등 기사를 다루는 것이 한정된 것에 비해 지역 신문은 이런 것은 물론 구인, 구직 관련 등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주민들의 실생활에 보다 밀접하게 접근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여러가지 정보 서비스를 소개 해 주는 역할 또한 지역 신문이 하고 있다. 소규모 음악회, 스포츠 대회, 문화예술공연 등은 사실 자주 광고를 하는 것이 현실상 어려움이 많다. 그 홍보 또한 미미하여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해 아쉬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들은 지역 신문에서 자세히 소개되며 행사가 끝난 후에도 개개인의 의견을 올리는 형식을 통하여 그 의미를 공유할 수도 있다. 이렇듯 지역 신문은 구성원간의 화합을 도모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발전적 요소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다. 지역 기반으로 하는 편집 때문에 다양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일부 신문사는 재정 운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여 부수의 축소로 구독률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 신문사는 광고 수입 등을 통해 경영을 유지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도 참여를 확대해 나갈 때 지역 공동체와 함께 발전할 수 있다. 지역이란 단지 내가 사는 곳이라는 단순한 의미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활 터전이 창조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지역 사회의 의미를 깨닫고 보다 열린 시각으로 관심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성원이 관심을 두지 않는 신문이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으며 건설적 비판이 이루어 질 때 비로소 독자가 가장 많이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역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구성원간의 화합을 이루어 감으로써 공동체 생활에 이바지하고 자기 계발과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발판을 구축해야 한다. /한준희·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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